Loading
김수자의 자기성찰적 설치, 푸아티에 시를 접수하다
2019
한국의 미술가 김수자는 25년 넘게 고국의 한 가지 시각 문화 요소에 집중해 왔다. 바로 보따리로, 물건을 싸서 들고 갈 때 쓰는 색색의 천 꾸러미를 말한다. 보따리는 한국인의 삶에서 오랫동안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요소이다. 종종 오래된 이불보를 보따리 천으로 재활용하는데, 이것은 가정과 공적 영역, 전통적인 성역할과 권력 구조를 전복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김수자가 작업에 보따리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는 '언제나 나의 현실, 나의 문화에서 출발했다'고 말한다. '꼭 그것을 좋아해서는 아니다. 나의 현실이기에 쓰는 것이다.'
김수자(문화적 관습에 저항하며 Kimsooja라는 한 단어의 이름을 쓴다)는 지난 20년 대부분을 뉴욕, 파리, 서울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세계 곳곳에서 프로젝트를 실현했다. 명상적인 그의 작업은 자아, 타인 그리고 삶의 여정을 거치며 직조되는 이야기를 탐색한다. '내가 바라본 세상 전체가 어떤 면에서 보따리를 싸고 푸는 것과 같았다'고 회고한다. 조각,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를 통해 보따리는 작가 자신의 중심에서 벗어난 존재와 인류의 일시성, 이주, 더 나아가 세계화된 현재의 세계화된 사회에서의 강제 이주에 대한 시각적 은유로 기능한다.
올해로 62세인 작가가 손에 들 크기의 보따리를 도시 규모로 확대해, 프랑스의 도시 푸아티에(Poitiers)를 공공 설치 작품으로 감싸 중세 도시 건축에 활기를 채우고 그 풍부한 역사를 드러낸다. '트라베르세(Traversées)'는 로마 시대부터 내려온 파리 남서부의 유서 깊은 도시 전역에서 펼쳐지는 현대미술 행사로, 김수자가 앞으로 10년에 걸쳐 진행될 이 문화·도시 유산 프로젝트의 서막을 연다. 십여 점이 넘는 김수자의 작품이 도시 곳곳의 역사적 장소를 감각적 경험의 장으로 변모시킨다.
'시선은 미래를 향한 채, 기억이 담긴 도시의 상징적 장소에서 출발하여 도시에 움직임을 불어넣고자 했다. 이 점을 김수자는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트라베르세의 공동예술감독 에마뉘엘 드 몽가종(Emmanuelle de Montgazon)은 김수자의 작품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작품들은 별자리를 이루며 함께 공명하여 방문객이 자신만의 행로를 그려나가게 한다.'
푸아티에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고향 도시라는 점에서도 김수자의 작업을 심도 있게 선보이기에 적합한 곳이다. 이 20세기의 영향력 있는 철학자가 말하는 헤테로토피아—타자성의 사회문화적 공간으로서, 우리의 생활 경험과 나란히 존재하는 독립적인 '세계 안의 세계'—는 김수자의 보따리를 설명하기에 꼭 맞는 개념처럼 보인다. 트라베르세의 기획진은 김수자의 작품에 담긴 이원성에 이끌렸다. '그의 작품은 점유한 장소와의 관계 속에 존재할 뿐 아니라, 강력한 내면적 성찰의 차원을 동반한다'고 드 몽가종은 말한다. '작품은 제 고유의 역사에 못지않게, 자신이 향한 장소와 사람들의 역사에도 속해 있다.'
김수자가 처음 보따리에 이끌린 것은 1992년으로, 뉴욕 PS1 현대미술센터에 입주 작가로 머물던 때였다. 그는 보따리를 형형색색의 레디메이드 입체 캔버스이자 예술 창작의 대안적 발판으로 삼아 여러 방향으로 빠르게 확장했다. '비디오 작업도 시작했는데, 화면 프레임을 이미지 만들기의 도구라기보다, 세상이나 자연을 두르는 감싸기의 방식으로 보았다'고 김수자는 회고한다. 대표적인 비디오 퍼포먼스 연작으로 통틀어 <바늘여인>(1999-2001)이라 이름 붙인 작업에서 그는 세계 각지의 혼잡한 보행로 한가운데에서 카메라를 등진 채 가만히 서 있다. 이 단순하지만 강렬한 작품 속에서 그의 몸은 바늘의 구실을 하고, 쉴 새 없는 행인들의 흐름은 그의 정적인 형상을 감싸는 역할을 한다. 김수자에게 비디오는 '세계의 현실을 비물질적으로 감싸는 방식'을 제공한다.
2006년 김수자는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나 국립미술관(Museo Nacional de Reina Sofía)의 의뢰를 계기로 현실을 감싸는 새로운 접근법을 선보였으니, 1887년 마드리드에 세워진 유리-철골 건물인 크리스털 팰리스를 위한 장소특정적 설치였다. <호흡: 거울여인(To Breathe: A Mirror Woman)>(2006)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의 건축적 개입에 나선 그는 건물의 유리 외관에 반투명 회절 필름을 붙여 백색광을 다색의 스펙트럼으로 분광시켜 건물 내부를 영묘한 무지갯빛 환경으로 감쌌다. 건물 바닥을 덮은 거울이 그 굴절된 빛을 배가시키며, 관객을 빛의 보따리로 완전히 둘러싼다.
이후 빛과 소리로 지은 유사한 보따리들이 2013년 제55회 베니스비엔날레(한국관 대표 작가)에 이어 올해 초 요크셔 조각공원(Yorkshire Sculpture Park)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요크셔에서 김수자는 아트센터의 18세기 예배당 건물을 물리적 의미에서나 은유적 의미에서나 현기증이 날 듯 어지러운 반영의 공간으로 변모시키며, 유서 깊은 석조 건물의 단단한 표면을 부드럽게 만들어, 그 견고한 외관과 대비되는 가벼움을 전했다. 이번 트라베르세에서 김수자는 퐁피두 메츠에 이어 프랑스에서는 두번째로 거울 설치 작품을 공개하는데, 중세 아키텐 공작궁(Palais des Ducs d’Aquitaine)의 모베르종 탑(Maubergeon tower) 내부의 아름다운 아치형 천장을 드러내 보이는 작품도 여기 포함된다.
트라베르세는 김수자의 여러 신작이 첫선을 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진행 중인 비디오 연작으로 지역의 직조 문화를 통해 공예, 건축, 풍경의 교차점을 관조하는 <실의 궤적>(2010-2019)의 최신 챕터가 여기 포함된다. 앞선 장에서 페루, 유럽, 인도, 중국, 북미 선주민들의 다양한 직물 전통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실의 궤적 6장>(2019)에서는 모로코를 무대로 가죽 염색, 타일 모자이크 제작, 자수, 직조 공예 장인들의 실천을 탐구한다. 이전 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 역시 지역 고유의 자연 풍경과 미학적 특징을 공예 전통과 연결 지어,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주변 환경과의 대화 속에 밟아온 궤적과 실타래를 엮어 하나의 시적 초상을 그려낸다.
트라베르세에서 김수자는 푸아티에라는 도시를 태피스트리로 보고 접근한다. 도시의 중세 거리와 유적지가 서로 교차하고 수렴하고 갈라지며 길을 이루는 동안, 방문객은 도시의 윤곽을 가로질러 자신만의 여정을 이어간다. 도시 곳곳에 김수자의 작품만 설치된 것은 아니다. 작곡가 미리엄 부셰(Myriam Boucher,), 안무가 민 타나카(Min Tanaka)를 비롯해 수보드 굽타(Subodh Gupta), 타다시 카와마타(Tadashi Kawamata),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등 김수자가 초청한 예술가가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김수자가 문화적 직물에 저마다의 실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