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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unter - Looking into Sewing, 1998/2002, digital c-print. Photo by Lee Jong Soo.

김수자: 존재와 바느질

마리아 브레빈스카

2003

  • 몸의 흔적. 오래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조금 전까지 이 자리에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일상의 리듬 속에 살며 주위 사물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했다. 무엇보다 분명한 생의 흔적이지만 하찮게 여겨지는 옷은 몸이 떠난 자리에 남아 공허하고 무용하게 된다. 옷은 누군가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어 점점 큰 사이즈로 이어진다. 옷은 항상 누군가가 착용하거나 욕망하거나 획득하고자 애쓰는 대상이며, 소유, 폐기, 보관, 상속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삶 동안 자신의 신체를 감싸고 보호하는 것, 피부에 닿아있고, 자신의 냄새와 때와 땀을 흡수하는 대상인 ‘옷’을 버리지 못한다.

  • 몸이 남긴 오브제, 그러니까 몸의 흔적이 배어 있는 옷들은 신체의 존재를 보여주는 가장 명백한 흔적이자 증거가 아닌가? 몸과 공존하는 물질적 세계는 그 기억의 가장 충실한 저장소이다. 특정한 삶이 끝나면 그 세계의 의미는 사라지지만, 새로운 생명과 함께 되살아날 수 있다. 어느 순간, 생명의 흐름이 멈추면 주체와 객체의 상태는 영구히 변형된다. 어쩌면 그것은 시간과 공간 사이를 흐르는 삶의 시간 속에서 신체적, 심리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체감되는 끝일 것이다.

  • 김수자: "우리는 태어날 때 면으로 된 천에 싸이고, 죽을 때까지 그걸 입고, 묻힐 때 다시 천으로 감싸진다. 특히 한국에서 성년식, 결혼식, 장례식, 제사 같은 중요한 순간에도 천을 상징적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천은 단순히 물질을 넘어 신체와 동일시되며, 영혼을 담는 그릇(container)으로 여겨진다. 사람이 죽으면 가족이 망자가 쓰던 옷과 이불을 태우는데, 이는 망자의 몸과 영혼을 하늘, 곧 미지의 세계로 송환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

  •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전통 한국 천으로 만든 옷과 보따리가 숲 바닥에 설치되어 있다. 김수자는 2.5톤에 달하는 헌 옷이 동원된 이 설치작 <바느질하여 걷기(Sewing into Walking)>를 1980년 광주 민주 항쟁의 희생자들에게 헌정했다. 그 비극은 신체의 존재를 가장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헌 옷의 대규모 집적으로 강렬하게 표상되었다.

  • 김수자, 2003년 4월 1일 이메일:

  • 광주 학살은 1980년에 일어났고 수백 명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 내가 광주에서 초청받았을 때, 나는 그들의 삶을 추모하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 <연역적 오브제 – 내 이웃에 바침(Deductive Object – Dedicated to my neighbours)>은 1996년에 작업했다. 그해 백화점 건물이 붕괴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 건물이 무너지기 30분 전까지도 나는 아들과 그 안에 있었고 바로 그 건물과 같은 구역에서 살고 있었다. 나는 이웃들의 희생을 언급하고 추모해야만 했다. 특히 역사적으로 한국과 많은 일을 겪은 일본에서 (전쟁, 식민지화, 분쟁...) 내 설치 작품을 전시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 이웃이란 서울에서의 내 이웃들뿐만 아니라 한-일 관계를 의미하기도 해서 한국과 일본의 헌 옷을 섞어서 사용했다.

  • 광주와 서울, 코소보(Kosovo)는 많은 이들의 죽음으로 영원히 흔적이 남겨진 장소이다. 김수자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정치적 갈등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김수자가 색색의 보따리를 가득 실은 망명의 보따리 트럭(Bottari Truck in Exile)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이면서 이 전시를 당시 (베니스에서 멀지 않은) 코소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헌정할 때, 이 행위는 단순히 타인에 대한 연민의 표현이었다.

  • 김수자는 보따리와 한국의 전통 이불보 같은 여성성과 연결된 오브제를 주요 요소로 삼는 설치를 통해 정치적 사건을 개념화한다. (한국에서는 유교적 영향으로 여성의 역할이 많이 제한되어 왔다.) 김수자의 설치 미술에서 중요한 또 다른 요소는 헌 옷이다. 헌 옷은 한국 전통에서 영혼을 담는 그릇처럼 여겨지며,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의 몸을 상징한다. 이 세 가지 프로젝트만이 정치적, 사회적, 정서적 의미를 내포한 듯하고, 다른 작품들은 오브제,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로 구현된 창작물로 최근에는 더욱 미니멀해지고 있다. 의도된 "무위(無爲, inaction)"의 태도는 전 세계 다양한 장소에서 실행, 기록된 퍼포먼스에서 점차 분명하게 표출되어 전시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 아담 심칙(Adam Szymczyk)은 이번 도록에 발표한 에세이에서 김수자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그는 이라크 전쟁 보도를 언급하며 김수자의 고요함을 전 세계의 정치 상황을 둘러싼 미디어의 떠들썩한 소음과 대조시킨다. 김수자의 미디어적 페르소나는 전형적인 미디어 작동 방식과 확연히 다르다. 김수자는 비디오 퍼포먼스에서 자신의 신체를 보여주지만, 관객으로부터 돌아선 채 침묵을 유지하고 얼굴을 감춘다. 이러한 태도는 미디어가 만드는 소음과 서울의 백화점 붕괴 같은 우발적 비극을 포함한 인간에게 가해지는 모든 행위에 대한 일종의 항의로 해석할 수 있으며, 옷에 축적된 아픔과 고통에 대한 저항(opposition)을 드러낸다.

  • 김수자는 세계를 관조적으로 인식하고, 정보 과잉을 의도적으로 거부함으로써 특유의 태도를 형성한다. 그는 유목적 이동을 지속하는 작가이지만 땅 위에 견고하게 서 있는 인상을 준다. 이러한 태도는 단순화된 관점에서 하이데거의 ‘현존재’ 개념 - 세상 안에 던져진 존재로서 자신의 공간성을 인식하는 존재-의 실천적 예시로 볼 수 있다.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공간을 알고,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두려워 하지는 않으며, 세상의 여러 속성에 개방적으로 타존재를 수용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 김수자: "이불보를 다룬 지난 20여 년을 되돌아보면, 나는 늘 내 삶의 주변에서 나와 함께해온 천 더미에 이끌려 퍼포먼스를 해왔다고 느낀다.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꿰매고 무엇을 이어 붙였을까. 보따리로 싼 것은 무엇일까. 내 바늘의 여정은 언제 끝이날까, 나의 누에고치는 언제 허물을 벗을 지. 목적지가 없는 무한함 속에서 저마다 스스로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Will the boundless with no destinations find theirs ways to go.)"

  • 김수자가 20년 동안 선보인 작업을 보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음을 느낀다. 서울에서 미술을 전공한 김수자는 1992년 무렵까지 한국의 전통 직물과 옷을 이용해 추상적 콜라주를 만든다. 그는 바느질을 드로잉·회화와 결합한다. 작품에서 바느질은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직접적인 방법일 뿐 아니라 그의 작업을 규정하는 필수적인 구성 요소가 된다. 대개 젠더 예술, 여성 예술과 연결되는 이 기법은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이불보를 꿰매던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결합된다. 그는 물려받은 옷과 이불로 첫 작품을 제작한다.

  • 김수자의 초기 콜라주는 평면 부조의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로 나타나며, 표면은 이어붙인 천 조각으로 이루어지고 먹과 추상 드로잉으로 마무리했다. 그 예로 <하늘과 땅(The Earth and the Heaven)>(1984), <파랑(Le Blue)>(1987), <검정(La Noir)>(1987) 등의 작업이 있다. 1990년대에는 더 큰 천 조각을 이용한 3차원의 오브제로 전환된다. 이 작품들은 회화처럼 벽에 걸 수 있지만 천 조각을 바로크식으로 바닥까지 늘어뜨린 아상블라주(assemblage)로 질감이 훨씬 풍부하다. 마치 꽃이나 대지, 초상처럼 보이는 다채로운 덩어리로 피어난다. 화려한 색감의 덩어리들은 추상적인 꽃(<꽃을 향하여(Toward the Flower)>(1992)이나 지구(<대지를 향하여(Towards the Mother Earth)>(1990-1991), 초상(<초상(Portrait)>(1991)을 연상시키며, 한층 더 은유적인 의미를 <마음과 세계(Mind and the World)>(1991)에 담고 있다. 일부는 벽에 기대어 놓거나 대나무 막대로 받쳐 세워져 있다. 이처럼 이 작품들은 2차원 벽의 현실과 공간 사이에 있는 설치 장르로 분류해 볼 수 있다.

  • 동시에, 1991년 무렵부터 김수자는 공간적 오브제와 설치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회화와 평면 섬유 작업이 등장하지 않는다. 새 작품은 사다리, 조정용 보트의 일부(part of a rowing boat), 탁자 같은 기성품을 천으로 싸서 말아놓은 것으로, 이러한 작품 연작은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로 일컬어진다. 이 연작은 이후 확장되어 오로지 직물로만 구성된 공간적 오브제로 확장되었다. 바늘, 천, 실, 바느질, 꿰매어 잇기, 싸기, 덮기, 펼치기, 깔기는 김수자의 예술적 활동을 규정한다.

  • 김수자, 2003년 4월 2일 이메일:
    "한국의 전통적인 싸개 천은 '보자기(Bojagi)'(사람들은 이것을 'Pojagi'로 표기했지만 나는 Bojagi라고 쓰는 쪽을 선호한다—이제 한국인들은 실제 발음대로 표기하려고 하고 실제 발음과 동일한 글자와 소리는 'Bo'이다. '보자기'는 이름 없는 여성들이 작은 천조각을 바느질로 이어붙여 만든 싸개이다. 하지만 나는 보자기를 사용하지 않고 신혼부부용으로 만든 헌 이불보를 사용했다.
    '보따리'는 천으로 싼 봇짐인데 사람들은 이걸로 가재도구나 천, 옷, 책, 선물 따위를 쌌지만, 나는 익명의 사람들이 입었던 헌 옷을 쌌다—뉴욕시를 떠나기 전인 1993년에는 뉴욕 전화번호부를 사용했다. 마치 뉴욕 사람들을 보자기에 싸는 것처럼 말이다."

  • 김수자 작품의 전환점은 1992년 뉴욕 P.S.1 스튜디오 전시였다. 이 전시에서 그는 이전 작품들과 한국의 전통 이불보로 만든 보따리를 함께 선보였다. 보따리는 옷으로 채워져 있었다. 김수자는 또한 구겨진 천을 표면에 부착하고 일부는 액자 밖으로 돌출시켜 마치 화면 내부에서 끌어낸 듯한 일종의 ‘타블로’를 포함한 회화, 아상블라주를 전시했다. 프레임의 상징적 와해는 바로 이 오브제를 통해 비로소 실현되었다. 일 년 뒤, 김수자는 뉴욕의 ISE 예술 재단(ISE Art Foundation)에서 단 하나의 거대한 보따리 설치를 전시했는데, 형태뿐만 아니라 천의 강렬한 붉은색으로 인해 더욱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 1990년대 초반, 김수자는 제한적인 "타블로"의 형식을 버리고, 공간을 여러 방향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뉴욕 P.S. 1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단체전 《그들 자체의 이미지에서(In Their Own Images)》는 벽의 "공간성"과 친밀함을 활용한 새로운 실험의 시작점이었다. '연역적 오브제'—벽에 난 금을 채운 천조각들—는 1997년 제5회 이스탄불비엔날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P.S. 1 현대미술관에서는 색색의 직물 조각이 벽 밖으로 경쾌하게 튀어나와 있었던 반면, 이스탄불의 하기아 에이레니 미술관(Hagia Eireni Museum)에서 직물 조각들은 회랑식 복도와 은근히 섞여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 작품이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 난 금에 끼워진 천조각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꽤 분명해 보인다.

  • P.S. 1 스튜디오 전시(1992)와 ISE 예술 재단 전시(1993) 이후, 김수자는 <연역적 오브제>라는 제목의 보따리 전시를 더욱 자주 열었었다. 보따리의 배치는 다양하게 바뀐다. 한 전시실에 보따리 하나만 전시되기도 하고(1998년 독일 카셀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Museum Fridericianum]), 바닥에 깐 이불보와 함께 전시되기도 하며(1996년 일본 나고야 아키라 이케다 갤러리[Akira Ikeda Gallery]와 2000년 제5회 프랑스 리옹 비엔날레), 여러 보따리가 옥외에 빽빽하게 배치되거나(1994년 서울 관훈갤리리), 개인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나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옮기기 위한 실용적 도구라는 보따리의 기본적 기능을 환기하는 풍경과 대비되어 선보임으로써 보따리가 유목주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1995년 인천 용유도 백사장). 1994년 서울 서미갤러리에서는 보따리와 모니터, 널브러진 옷가지가 비디오 설치 작품과 결합되어 전시되었다. <바느질하여 걷기>라는 제목의 이 설치 작품은 훗날 광주 학살 희생자에게 헌정될 작품의 등장을 예고했다.

  • 보따리 이외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전통 이불보이다. 이불보는 작가에게 여성, 성, 사랑, 몸의 휴식, 수면, 사생활, 다산, 장수, 건강을 상징한다. 또한 이불보는 삶의 특별한 흔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불보는 과거에 사용된 천, 그러니까 삶과 탄생, 죽음의 비범한 증인이다. 김수자가 갤러리현대에서 선보인 두번째 개인전(1991)에서는 그러한 이불보 한 장이 다른 낡고 감성적인 오브제들과 함께 걸려 있었고, 이후 다수의 천 조각이 모여 다채로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오래 전, 김수자는 이불보를 묶어 보따리로 만들고 일부러 슬로우 모드로 그것들을 풀밭에 펼치는 장면을 보여준다(1994년 퍼포먼스 <바느질하여 걷기>). 최근 몇 년간 이불보는 <빨래하는 여인(Laundry woman)> 같은 설치 작품에서 가장 자주 등장했다. 세탁을 마친 천을 말리는 듯 갤러리에 널어놓은 수많은 천을 소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 내에서 여성의 역할, 더 일반적으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김수자는 항상 여성의 행위를 미니멀한 몸짓으로 반복한다. 펼치고, 묶고, 접고, 또 걸어둔다.

  • 1997년 11월, 김수자는 트럭을 타고 11일간 한국을 여행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 여행을 촬영한 7분 33초짜리 영상은 색색의 보따리를 싣고 길 위를 가는 트럭의 풍경을 담아낸다. 어쩌면 김수자는 비무장지대에서 일하던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떠돌던 옛 길로 되돌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행위는 과거의 이동을 회상하는 여정인 동시에, 국경을 넘나드는 유목적 예술가로서의 현재의 삶을 상징하기도 한다. 퍼포먼스, 그리고 보따리 설치. 영상에서 나타나는 유목주의적 측면은 그의 예술에서 핵심적 쟁점 중 하나이다. 이러한 유목주의는 개방된 공간을 전제로 하면서도, 세계의 수평적 배치와 국가에 의해 조직된 공간의 제한에 의해 제약받는다.

  • 김수자의 영상은 세계의 다양한 도시와 장소에서 일어난 퍼포먼스의 기록이다. 김수자는 이들 영상에서 카메라를 등진 채 등장한다. 그는 행인들 사이에 서 있거나 기타큐슈의 바위에 누운 여성(<바늘여인>), 카이로와 멕시코시티의 포장도로에 앉아 구걸하는 여성(<구걸하는 여인>), 델리와 카이로의 거리에 드러눕고(<집 없는 여인>) 또 델리에서 강가에 서 있는(<빨래하는 여인>) 여성이다.

  • 영상에 담긴 공간과 사람들이 이루는 배경과 대비되는 인물로서, 김수자는 그들의 리듬, 움직임, 이미지와 확연히 구별된다. 이는 평면적이고 일루전과 같은 이미지를 생산하는 영상이라는 매체가 일으키는 효과다. 아울러 이는 작가가 "타자" 또는 심지어 "이방인"의 역할을 자처하는 데에서도 기인한다. 미동조차 없는 인물의 위치는 그가 주변의 환경과 통합되는 것을 방해한다. 김수자가 자리한 분주한 거리와 풍경으로부터 우리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한다. 작가는 수용되는 감각을 오로지 시각적 정보로 축소한다. 우리는 작가를 영상에 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화면 한가운데에 작가의 형체가 없다면, 이 영상은 그저 거리를 감시하는 익명의 보안 카메라, 아무런 시나리오도 없이 그저 현장을 생중계하는 카메라에 남은 기록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도시의 거주민인 모든 행인이 영상에 담기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가 된다.

  • <바늘여인>(1999-2000)에서 작가는 분주한 거리에 서 있다. 김수자의 완벽한 부동성(不動性)은 대도시의 움직임이나 소음과 대조를 이루지만, 우리는 그 소음을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카메라는 런던, 도쿄, 상하이, 라고스, 뉴욕, 카이로, 멕시코시티, 델리의 거리를 따라 이동하는 수많은 몸을 영상에 담는다. 도쿄에서는 찌는 듯이 더운 여름에도 군중이 줄지 않는다. 군중은 일본인답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리저리 부드럽게 움직인다. 저녁에는 하나의 거대한 대화처럼 들리는 것이 도시의 상공을 맴돌다 거리의 소리와 섞인다.

  • 하지만 김수자의 영상에서 우리는 도쿄의 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다. 이 영상에서 우리는, 다른 영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리를 듣고 작가의 얼굴을 보는 대신 작가의 몸과 익명적 군중의 얼굴만 볼 뿐이다. 수천 명이 그를 향해 걸어와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일순간 사라진다. 영상은 사회학자의 기록물과 같은 역할을 한다—그것은 "또 다른 누군가"와 마주한 군중의 반응을 보여준다. 런던, 뉴욕, 멕시코시티에서 군중은 김수자를 거의 완전히 무시하고 지나친다. 도쿄에서도 마찬가지였다—이곳은 무관심한 도시로 손꼽힌다(일례로 일본 음악 그룹 하이레드 센터 (HiRed Center)가 거리와 군중을 "활성화"한다며 수차례 거리 공연을 펼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상하이, 델리, 카이로의 군중 역시 딱히 다르지 않아 이따금 누군가 고개를 돌리거나 잠시 멈추어 바라볼 뿐이다. 김수자에게 호기심을 가장 많이 보인 곳은 라고스였다. 이들 비디오의 정지 화면은 군중이 아닌 개인의 얼굴을, 감정을, 반응을 보여준다. 도쿄에서 어느 미소 짓는 일본 여성의 얼굴이 잠시 나타나지만 그것은 익명의 군중에게서 감정이 드러난 단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카이로에서 카메라는 작은 사건들을 기록한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난다, 따뜻한 인사를 건넨다 등. 그것들은 김수자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가장 매혹적인 관찰이다. 한편, "군중"이—전체로서 군중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그 전체를 구성하는 개개인에 대해서도—어떤 적대감과 공격성을 드러낼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영상기록과 작가의 태도는 일종의 항의를, 그리고 세계와 "세계-내-존재" 전체에 대한 긍정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것을 표현한다. 또한 비디오에는 순수하고 무구한 어떤 것, 또한 분명 용감한 어떤 것이 있다. 김수자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째서 낯선 몸들은 우리에게 그토록 큰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 <구걸하는 여인>에서 김수자는 라고스, 카이로, 멕시코시티의 거리에서 구걸한다. 카이로에서는 젠더 문제와 문화적 차이라는 두 가지 이슈가 충돌한다. 김수자—여성, "타자"—는 남성들에게만 둘러싸여 있다. 김수자보다 더 젊거나 나이든 이 남성의 무리가 그의 몸을 에워싸고 이 부동의 형체는 이따금 시야에서 사라진다. <집 없는 여인>은 델리와 카이로에서 촬영되었고, 이 집 없는 여인에게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곳은 카이로였다. 무리를 이룬 남성들은 호기심을 감추지 못한다. 그들은 말을 건다, 그들은 심지어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본다.

  • 김수자는 자신의 불변하는 이미지—사람들 사이에 고요히 서 있거나 자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인물—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사람들과 자연은 각자의 신체적 물질적 요소를 작품으로 가져오며, 이것은 다양한 존재 양태의 가시적 표명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김수자는 존재의 근본적 문제를 환기한다. 우리는 언제나 고유한 존재로서 홀로 서 있지만, 동시에 세계와 다른 이들과 함께 있다는 점 말이다.

  • — 2003년 폴란드 바르샤바 자헤타 미술관(Zacheta Gallery of Art)에서 열린 김수자 개인전 도록에서.


    영한 번역(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홍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