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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reathe – Leiden 2022

Colin Huizing

2024

  • 라켄할 미술관(Museum De Lakenhal) 앞에는 운하의 양쪽 둑길 아우더 페스트와 아우더 싱헬을 이어주는 흰색 강철 아치들이 세워져 있다. 이 아치들은 일정한 각도로 이어지며 물길 위를 가로지른다. 밤이 되면 이 아치들은 조명을 받아 물 위에 비친 이미지와 이어져 완전한 원을 이룬다. 공중에서 바라보면 이 아치들은 두 둑길을 꿰맨 바늘땀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뤼카스 판 레이던 기금(Lucas van Leyden Fund)이 김수자에게 의뢰한 것으로, 작가는 이 작품에 〈호흡 ― 레이던〉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 뤼카스 판 레이던 기금의 시 공공미술 기획위원회(stadscuratorium)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레이던 시의 공공 장소를 위한 여러 작품을 제작의뢰했다. 그 목적은 시각예술을 통해 시민과 방문객 모두가 예술과 학문의 도시라는 레이던 시의 정체성을 더욱 잘 인식하게 하는 데 있었다. [뤼카스 판 레이던 기금이] 김수자를 초대한 중요한 이유는 그의 작품에 내재한 인문주의적 태도, 즉 예술가로서 그가 세계를 대하는 특징적인 방식 때문이었다. 이 태도는 그의 작업에서 되풀이해 나타나는 주제―이주, 개인과 국가의 정체성―에서 잘 드러난다. 이 중요한 주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강하게 자리 잡은 국제적인 대학 도시로서의 레이던의 정체성과 완벽하게 맞물린다. 개인이 자신의 사회적 환경과 관계를 맺는 방식,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사회적, 문화적 세계의 변화가 우리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은 김수자가 작업에서 강조하는 주제에 속한다. 이러한 주제는 레이던 대학교에서 다루어지는 학문 분야와도 관련된다.

  • 김수자는 최소한의,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미묘한 시각 언어를 사용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만들지 않는(non-making) 예술’이라는 말로 기술하기도 한다. 그는 절제된 개입만으로 사회적, 문화적, 물리적 환경의 고유한 특성을 강조하는 조각, 퍼포먼스, 영상, 사진, 공간 설치 작품을 만들어낸다. ‘호흡’은 건축적 요소로서 빛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일련의 장소특정적 작업을 묶어 부르는 제목이다. 김수자는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빛을 사용한다. 〈호흡 – 레이던〉은 계속 진행 중인 이 시리즈에 속하는 작품이다. 다른 많은 작품에서 그랬듯 이 작품에서도 김수자는 제한된 재료만으로 여러 겹의 의미를 생성해 내면서 그 장소의 구체적 특성을 시적으로 표현해 낸다. 〈호흡 –레이던〉에서 김수자는 지역의 역사를 건물들의 현재 용도에 연결시키고, 상상력을 통해 예술과 과학의 세계를 결합한다.

  • 〈호흡 – 레이던〉은 라켄할 미술관 앞에 위치해 있다. 수 세기 동안 레이던은 직물 생산의 중심지였고, 과거 직물회관이었던 이 건물은 레이던 직물 산업의 핵심 거점이었다. 〈호흡 – 레이던〉의 아치는 이같은 역사를 암시하며, 물그림자와 만나 만드는 원형의 상은 한때 양모실을 잣던 물레를 연상시킨다. 라켄할은 시각 예술, 역사, 응용미술을 위한 시립 미술관의 역할을 한다. 운하 건너편에는 과학·의학 박물관인 부르하버 국립박물관(Rijksmuseum Boerhaave)이 있다. 〈호흡 – 레이던〉의 아치(혹은 실)은 양모 산업의 물레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한 편의 과학(부르하버 국립박물관)과 다른 한 편의 문화(라켄할 미술관)를 상징적으로 잇는다.

  • 이 공간적 설치에는 그것이 놓인 환경을 반영하는 다층적 의미가 담겨 있다. 그와 동시에, 비스듬히 기운 하얀색 아치가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는 이 작품의 물리적 존재감은 특히 밤에 조명의 빛을 받을 때면 그 자체만으로 감각을 일깨운다. 정면에서 바라보면 하얀색 아치는 수면 위와 아래를 오가며 앞뒤로 이어지는 고리처럼 나타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호흡의 리듬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호흡 – 레이던〉은 자기 반성과 알아차림을 위한 하나의 도구처럼, 감상자가 자신을 비춰보게 만드는 장치인 셈이다.

  • — 『김수자 – 실의궤적』, 2024년 도록 수록 글, 번역(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문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