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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땀-한-땀-꿰-매-며나는 걸어간다

김수자와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Elisabeth Millqvist)의 대화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2023

  • 한-땀-한-땀-꿰-매-며[1] 나는 걸어간다

  • 바노스 콘스트(Wanås Konst)를 처음 방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수자는 이렇게 말했다. “식물을 재배하고 싶다. 여기에 있으니 그러는 것이 맞다고 느껴진다.” 예술재단이자 조각공원인 바노스 콘스트는 친환경 농장 부지에 자리하고 있다. 김수자는 곧이어 아마를 사용해 작업하겠다는 생각을 발전시켰고 프로젝트의 일부로 아마씨 기름과 리넨 섬유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식물인 아마 씨앗 두 종을 심었다. 이 아마씨앗들판은 회화 재료의 물리적 원천이면서 동시에 유동적인 평면 작품이 되는데, 김수자는 이를 아마씨앗들판이 대지에 심겨저 직조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4월 말에 뿌려진 씨앗은 봄에 자라나 여름에 꽃을 피운다. 8월부터 수확된 식물들은 이어 자연 섬유로 만들어져 아마 섬유가 짜여 실이 되고, 실이 짜여져 캔버스가 된다. 린시드 기름을 추출하는 아마씨는 9월에 수확되어 압착되고, 그 기름과 안료를 섞은 것으로 재료로서의 유화 안료의 전체 과정이 마무리된다. 이 프로젝트는 삶과 예술의 전체적인 순환을 아우르며 회화를 직물 생산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하는 김수자의 전반적인 작업 세계와 그의 아티스트로서의 순환 주기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회화의 재료와 직물에 대한 김수자 작가의 계속되는 탐구는 <씨 뿌려 그리기(Sowing into Painting)> 전시의 중심적인 요소이다. 김수자 작가는 페인팅을 어느 시점에서 중지하고 아티스트로서 삶이라는 직물이 캔버스가 되고, 바늘은 곧 붓이 된다는 점에 대해 말해왔다. 그런데 바느질하기 또한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다.

  • 김수자
    (웃음)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화가의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많은 실험들을 해오고 있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그 후 회화도, 바느질도 아닌 다른 형식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바느질 없이 이어왔다. 퍼포먼스 작업인 <바늘 여인(A Needle Woman)>은 그런 입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 퍼포먼스 영상은 김수자 작가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닌, 하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 김수자
    나는 내가 무엇을 ‘수행’한다기보다는 ‘존재’한다, 더 정확하게는 ‘그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바늘여인>은 무언가를 수행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나의 입장 표명이기도 하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그래도 여전히 서고, 앉고, 눕는 행동을 수행하는데, 일상생활을 작업의 재료로 취해 일상적인 동작들을 작품에 사용하시는 점에 대해 좀 더 듣고 싶다.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의 건물 벽을 걸어내려오는 작업이나 시몬 포티(Simone Forti)가 밧줄을 꼰 것과 같이 미국 안무가가 1970년대에 한 작업들과의 연관성이 있는가?

  • 김수자
    내가 작업을 할 당시에는 그들의 작품에 대해 알고 있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접할 수 있는 국제적인 동시대 미술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에야 그런 정보들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1980년대까지도 한국인들은 해외여행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

  • 초기엔 여성의 일상적인 삶의 행위에 초점을 두고 그 행위들을 동시대 미술,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의 맥락에서 녹여내고 싶었다. 1980년대 중반을 거쳐 1990년대에 이르며 바느질, 빨래하기, 요리하기, 청소하기, 장보기, 집 꾸미기 등 여성의 가사활동을 관찰하고 그 각각의 개념화에 집중했다.

  • 그 모든 행위들이 나의 탐구의 대상이었다. 내가 페인터로서 제시하는 질문들은 직조된 - 캔버스 표면의 본질에서 비롯하는데, 어머니와 이불보를 준비하던 중 이불보 표면에 바늘 끝이 닿아 - 평면을 뚫고 들어간 - 바로 그 순간이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직조된 캔버스 천의 수직과 수평구조에 큰 영감을 받았고, 그 십자 구조와 연계해 - 의미 있는 담론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뉴욕의 피에스원 모마(P.S.1 MOMA) 레지던시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 ‘보따리’ 설치작업을 지속했는데 그 시점이 나의 개인사적인 관심사가 - 여성, 나아가 인류의 현상황에 관한 것으로 확장되며 전환되는 때였다. 헌옷을 수정이 가해지지 않은 현실의 조각으로 보았고, 그래서 헌옷 자체를 이용해 ‘보따리싸기’를 시작했다. 옷을 (마치 안료같이) 작은 조각으로 잘라 헌 이불보로 감싸던 이전의 뉴욕에서의 작업 방식으로부터 변화가 생긴 지점이다.

  • 당시 나는 여성주의 운동이나 직물을 짜고 직물 오브제를 만드는 소위 섬유예술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다는 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섬유예술가들이 직물을 사용하는 방식은 나와는 다른 의도로 해당 재료들에서 출발하는 형식적 또는 장식적 질문들에서 영감을 받는 듯 한데, 나는 페인터의 입장에서 회화 표면으로서의 ‘캔버스’ 자체에서 발생하는 질문을 갖고 직물과 캔버스의 구조에 관해 탐구해왔다. 1983년에서 1984년 사이 나는 대학원 졸업 논문을 쓰는 중이었는데, 동시대 미술에서 십자가의 중요성과 십자형상과 십자구조의 편재성과 초월성, 그리고 이 형상이 고미술로부터 동시대 미술의 여러 시대를 통틀어 작가들의 작품에 출현을 거듭하는 점을 관심의 촛점으로 다룬 논문이었다. 인간의 몸에 연관되는 고대의 종교적인 십자가들부터 근대미술의 초기 역사와 구조주의까지 아우르는 관심사를 탐구했다. 그리고 나서 회화와 결합한 바느질 작업을 시작했다. 색조와 표현주의적인 특성에 이끌려 아크릴과 먹을 사용했고, 초반에는 어떤 서포트 구조 없이 바느질을 위해서만 천을 사용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평소 입으시던 옷이나 할머니가 직접 짠 비단과 같은 그분의 유품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할머니와 가깝게 지낸 기억이 어려 있는 그분의 옷가지들은 나의 바느질을 위한 재료가 되었다. 옷과 천을 모아 작업하는 과정에서 할머니의 몸과 영혼의 존재를 느끼고 애정을 느낄 수 있었으며 할머니의 옷들을 가지고 바느질해 만든 가로 세로의 천 조각들은 십자가, 삼각형, 타원형의 꿰매진 아상블라주 작품이 되었고, 이후 캔버스 천을 바탕으로 사용해 옷과 침대보 조각들을 바느질하는 대형 작품들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스스로에게 회화가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 탐구해 왔다. 그전에는 1970년대의 단색화 운동을 통해 사실주의를 거부하며 모노크롬으로만 그리기를 택한 작가들이 있었고, 그 이후에는 한국 출신인 이우환 작가가 이론가로 중심적인 활동을 한 일본의 모노하 운동이 있었다.

  • 김수자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70년대 후반에도 이우환 작가의 점선 드로잉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종이에 그린 그의 연필 드로잉들을 내가 처음 본 것은 덕수궁에서 열린 제10회 앙데팡당 전시에서였다. 나 또한 첫 번째 대규모 바느질 작업인 십자가 형태의 <나의 초상(Portrait of Yourself)>(1983)으로 참여한 전시였다. 모노하는 일본의 미술운동으로 알려졌으나 나는 한국 작가인 이우환의 존재를 시작으로 후에 보다 넓은 스펙트럼의 일본의 모노하를 접했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1960년대 중반에 부상한 모노하에서는 변형을 가하지 않은 상태의 재료 탐색이 중심적이었고, ‘만들지 않기’의 태도 또한 김수자 작가의 작업과 밀접하게 관련될 수 있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모노하 운동에는 남성 예술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졌고 가사생활은 다뤄지지 않는 요소였다. 그들이 선호한 재료는 돌이었다. 모노하가 김수자 작가가 받은 예술적 영향 중 하나로 언급되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가?

  • 김수자
    그렇다. 그리고 그들의 활동 시기가 좀 더 이전이기도 했다. 당시에 중요한 활동을 한 예술가들 몇몇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나의 삶과 감각의 상태에 기반해 캔버스의 구조에 대한 나만의 탐구를 계속해 갔다. 특히 <바느질하며 걷기: 광주 희생자들에게 헌정(Sewing into Walking – Dedicated to the Victims of Gwangju)>(1995) 과 <바늘여인>(1999) 이후로, 내 작업이 다루는 범위는 여성의 가사 노동으로부터 모든 인간의 활동으로 확장되었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실의 궤적(Thread Routes)>의 챕터 1, 2, 4와 <실의 궤적> 영상이 전시에 포함되면서, 김수자 작가가 직물과 작업하는 여러 방법들이 강조되었다. 첫 번째 챕터는 2010년에 마무리되었지만 2002년에 브루지(Bruges)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실의 궤적> 영상을 작업하면서 특별히 이루고자 한 점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다.

  • 김수자
    2002년 처음 브루지 골목골목에서 레이스를 짜고있는 장인들을 봤을 때, 보빈 실타래의 구조와 움직임, 그리고 그 실타래를 움직이는 손의 퍼포먼스에 매료되었다. 보빈과 실로 이어진 핀 사이의 관계는 도시 구조-과도 매우 닮아 보였다. 또 실이 움직이며 장소들을 잇는 방식은 자연에 내재해 있는 구성방식과도 같아 보였다. 나를 둘러싼 중세건물들을 바라보며, 이와 같은 구성시각이 곧 건축물을 지어내는 어떤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노동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규모와 물성의 측면에서 레이스 공예와 건축 사이에는 유사한 점들이 많다. 건축은 더욱 단단한 표면을 다루고, 직물과 레이스 공예는 건축적 구조의 선들이 만들어내는 사이 공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즉, 레이스 공예는 2차원적 평면 같아 보이면서도 다차원적으로 유동적이고 투명성을 가진다. 이런 차이점과 유사성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내 첫 <실의 궤적(Thread Routes)>영상 프로젝트에서 그 점들을 연결하며 세계 곳곳의 각기 다른 문화적, 지리적 문맥에서 어떻게 이런 관계들이 발전됐는지를 탐구하고 싶었다. 그 후 관심사가 직물에서 건축으로, 지역의 식생과 생활방식으로, 장인들의 퍼포먼스, 의복, 장식, 심지어는 인도의 요리로까지 확장되어 갔고 영상 제작은 나의 관심사와 시각을 넓혀 주었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바늘 여인> 퍼포먼스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선보였다. 또 <실의 궤적>의 각 챕터들은 여러 대륙에서 촬영되었다. 전 지구적 시각에 대한 김수자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다.

  • 김수자
    <바늘여인>에서 나의 모습이 작품 프레임 안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내가 스스로를 소재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내 몸은 문화, 지리, 사회의 매개체, 혹은 그것들을 드러내는 일종의 잣대로만 기능한다.

  • 어머니와 이불보를 바느질하며 부드럽고, 빛나고, 알록달록한 천에 바늘을 찔러넣던 그때 나는 마치 우주로부터 온 전기충격과도 같은 무엇이 내 몸을 거쳐 바늘 끝을 통해 그 천의 표면을 건드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그 순간이 내가 페인터로서 캔버스의 구조와 그 표면에 대한 개념적인 접근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깨닫게 된 전환적인 지점이었다.

  • 각각의 퍼포먼스로부터 내가 체화하게 된 경험과 각 지역의 사람들로부터 받은 고유한 반응을 늘 소중히 여기는데, <바늘 여인>은 세계와 인류를 공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늘이 자웅동체라는, 매개가 완료되면 사라지는 도구라는 점도 인식하게 되었는데, <실의 궤적>은 직물문화, 특히 직물제작과 장인들의 퍼포먼스, 건축과 자연에 대한 나의 지형학적인 시선을, 실과 바늘, 그리고 실타래와 실의 시각적, 물리적, 상징적 관계항을 통해 문화인류학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그 영상들은 계속되는 프로젝트인가? 몇 점을 작업해야겠다고 미리 정해두었는지 궁금하다.

  • 김수자

  • 프로젝트 시작부터 세계 6개 대륙에서 6개의 챕터를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까지 페루의 직조 문화, 유럽의 레이스 공예 문화, 인도의 자수, 판화, 염색 문화, 중국의 자수, 의복, 장신구와 염색 문화, 아메리카 원주민의 직조 문화, 아프리카의 직조, 모자이크와 염색 문화에 대한 작업을 했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직조와 회화, 오세아니아 직조 문화를 더 탐색해 보고 싶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직 모로코에서만 촬영하였는데, 아프리카를 조금 더 깊숙히 경험하고 또 구현하고 싶다. 오세아니아 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연결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이나 일본 문화를 본격적으로 탐구하지는 않았는데, 다른 챕터도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연결고리를 잇고 구조를 재점검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늘 열어두고 생각하고 있다. 끊임없는 매혹이 원동력이 되는 연구 프로젝트이기에 지금에 와서는 마무리된 버전을 만드는 것은 덜 중요하다고 본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실의 궤적>은 직물, 건축, 공예, 풍경에 중점을 둔다. 다른 작품들에서 김수자 작가는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가진 많은 장인들과 작업하며 그들과 함께 재료에 대해 연구하고 탐구했다. 제작에도 직접 참여한 적이 있는가?

  • 김수자
    아니다. 언제나 관찰에 중점을 두는 쪽이었다. 단지 개별작업으로서 카페트 제작을 두 번 한 적은 있으나 각각의 다른 장인들의 워크샵과의 제작이었다. <실의 궤적>에서도 내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나 단순한 바라봄을 통해 한 요소를 다른 요소와 잇는다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내 작업은 내가 직접 뭔가를 만드는 것을 다루지 않는다. 나는 작업을 통해 지식과 전통이 다양한 지역들을 통과하며 각기 다른 삶의 양식들에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인지, 그 점이 동시대 미술과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재문맥화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있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바노스에서, <실의 궤적> 영상에서 일어나는 ‘만들기’라는 일은 아마가 자라고 처리되는 과정을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일어났다.

  • 김수자
    그렇다. 미리 계획한 점은 아니었지만 전체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 내가 바노스에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의 궤적> 시리즈를 촬영한 뒤 바노스콘스트의 플랜팅 프로젝트가 매우 흥미로운 연속적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 되었다. 되돌아 보니 이 전시는 또한 <농경(Agriculture)>이라는 내 1988년 작 바느질 회화에 순환적으로 연결되는 회고적 프로젝트라고도 할 수 있겠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농경>에 대해서도 말해보겠다. 캔버스에 페인팅한 작품이었는가?

  • 김수자
    페인팅에 더해서, 할머니가 입으시던 옷을 캔버스에 꿰매어 붙였다. ‘농경’이라 붙인 제목은 다소 현학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나는 농경을 의식하게 됐고, 식물심기가 땅에 바느질하는 행위와도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개념적으로 아주 중요했던 그 지점을 2020년에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순환적인 페인팅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종종 예술을 치유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만드는 것과 치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 김수자
    나에게는 예술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언제나 치유의 과정이었던 듯 하다. 바느질은 세계의 구조나 캔버스에 대한 개념적인 접근만은 아니었다. 그에 상응해 나 자신과 타인들을 위한 치유의 과정이라는 측면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나를 타자를 통해 열어 보이고 공감해 왔고, 내 안의 많은 고통, 상실의 기억, 삶의 여러 사건들은 내가 바느질을 과거, 심지어는 현재 시점에서 미래를 향한 여정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일종의 시간을 넘나드는 여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꿰매기는 분리된 조각들을 하나로 잇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발상과 마음가짐을 언제나 갖고 있었다. 이런 개념적 접근과 감정적 접근 사이의 조응은 지금까지도 내 작업에서 발전되어 오고 있다. 때때로 이 삶과 예술의 평행구조가 흥미로운 충돌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새로운 발견이나 발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언제나 스스로의 욕망을 따라야 할 필요를 느끼고, 미리 어떤 이론이나 개념을 생각하지 않고, 충동에 반응하는 스스로에 이끌려간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마음의 기하학(Archive of Mind)>에서처럼, 때로는 김수자 작가 작품의 관객이 작품의 완성에 기여하기도 한다. <씨 뿌려 그리기>의 경우, 어떤 상태가 완성이라고 볼 수 있는가?

  • 김수자
    흥미로운 지점을 언급해 주었다.

  • 두 작품 모두 완성된 상태보다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과정은 긍정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마음의 기하학>은 찰흙 구를 만들며 물질과 그 기하학을 작동시키는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집중한 프로젝트이다. 만드는 사람이 균형 잡힌 구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모든 각도와 축으로부터 중심축을 향해 손과 손가락의 힘을 균형있게 모을 때 찰흙은 구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러는 동안 내 마음 또한 균형을 잡아가게 됨을 발견했다.

  • 매우 수학적이라고 할까.

  • 동시에, 우리는 정화되고 비워지는 마음의 공간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스스로를 잊기 시작하고, 고뇌, 고통, 걱정을 잊게 된다. 우리 마음의 모난 부분들이 손에 쥔 찰흙처럼 둥글둥글해지면서.

  • 치유의 과정이라는 면에 관해 설명하자면, 만들기를 하고 그것에 집중할 때 우리의 마음이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점점 더 평정과 균형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만들기에 있는 치유의 과정이다. 물리적인 기하학이 마음의 공간과 겹쳐지는 모습이 흥미롭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1994년부터 헌 옷으로 작업해 왔다. 할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빨래터(Laundry Field)>에 쓰인 시트와 침대보,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에 등장하는 천들 또한 사용된 적이 있는 물건이고 새 물건을 구해 쓰지 않았다. 이런 점에 어떤 중요성이 있는지 알려달라.

  • 김수자
    할머니가 입으시던 옷, 그분이 직접 짠 비단 등 할머니의 유품을 내 작업에서 사용하는 경험을 한 뒤, 나는 어머니, 친구들의 옷과 제가 알지 못하는 무명의 사람들이 쓰던 옷 등 또한 사용하기 시작했다. 후자는 보따리 작업들, 특히 <보따리 트럭(Bottari Truck)>(1997)의 내용물이기도 하다. 이 작품들은 난민들, 이민, 분쟁 지역에서의 전쟁과 연결되며, 온전히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더 넓은 사회적 풍경에의 함의가 있다. 나는 언제나 이런 더 넓은 사회적 문제의 형식적인 문맥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 점이 동시대 미술 역사와 관계 맺는 지점에 대해 생각한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감싸기와 접기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걸기도 등장한다. 1978년의 초기작에서 빨랫줄에 투명한 필름을 걸었다.

  • 김수자
    그 작품을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때는 숲 속에 서 있거나, 창호지를 떼어낸 뚫린 격자의 한국 전통 창호를 들고 있는 등의 퍼포먼스를 하는 내 사진을 찍은 흑백 네거티브 필름을 확대해 갤러리 공간에 빨래처럼 걸었다. 당시 빨래처럼 널기를 처음 시도한 것은 투명성을 탐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관객에게 양쪽 면으로부터 관통해 바라보는 경험을 주기 위해서는 투명한 물질이 필요했다. 바닥에는 원형을 간직하며 그대로 놓인 나무의 나이테 단면 사이사이에 작은 투명 아크릴 판들을 삽입했다. 최근에는 <호흡(To Breathe)> 시리즈의 공간 속으로 형형색색의 빛이 반사, 비치게 하는 몇 점의 건축적인 영상 설치 작업을 완성했다. 이 작업 또한 표면과 투명성에 관한 것이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거기에는 벽이자 장벽, 분리와 연결의 가능성을 동시에 내재한 사이 공간의 표면이라는 특성이 있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팬데믹 동안 많은 사람들은 안쪽으로 향했고, 우리는 물러남의 시기를 거쳐왔다. 보통 김수자 작가의 영상 작업에서 우리는 김수자 작가를, 작가의 뒷모습을 본다. 이를 통해 관객은 스스로를 김수자 작가와 동일시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실의 궤적>에서 우리는 타인의 모습만을 보게 된다. 이 점을 김수자 작가가 작품의 화면으로부터 물러났다고 해석할 수 있는가?

  • 김수자
    내가 카메라 렌즈 자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김수자 작가의 많은 작품에서 작가의 존재는 목소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목소리를 통해 탐색해 온 점에 대해 설명을 부탁한다.

  • 김수자
    자신의 실을 엮는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내 가족사와 연계된 면도 있다. 가족 모두가 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어머니는 성악을 전공하셨고 우리가족은 늘 함께 노래하곤 했다. 내 두 남자 형제들은 음악가고, 나의 음악 선생님이 나에게 언젠가 성악을 하지 않겠냐고 추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성악의 신체적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일생에 걸쳐 조금 더 관조적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원했고, 그런 이유로 관찰자로서의 면이 더 두드러진다고 생각하는 시각 예술의 길을 걷게 되었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많은 면에서, 김수자 작가의 작업은 매우 미니멀하다. 목소리로 작업하실 때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낭송하지 않고, 숨 쉬는 소리만 들려준다.

  • 김수자
    숨쉬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의 전환적인 반복이다. 우리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데, 그것을 멈추는 순간이 바로 죽음이다. 그 행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한 당신의 삶은 지속되지만 그것이 멈추면 끝이다. 숨 쉬는 소리를 바느질과 연결했다. 마드리드 레티로 공원의 크리스털 궁전에서 나는 거울을 바라보고, 걷는 행위, 숨쉬기 또한 바느질로서 접근했다. 이는 우리 몸의 경계 안팎에서의 바느질, 물리적이고도 소리에 관련된 행위이며, 보이지않는 공간 속에서의 바느질이라는 개념이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프레드 샌드백(Fred Sandback)은 실에 대해 이런 아름다운 말을 남겼다. “실로 하는 뜨개질은 내가 보고 싶고 그 안에 있고 싶은 공간들을 짓는 비율, 틈, 형태들을 만드는 데 최적이다. 마치 색연필 통 같다.” 김수자 작가는 작업을 통해 최소한의 것만을 더하고 싶어 한다. 짓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바라봄을 통해서 말이다.

  • 김수자
    그에 더해 깨닫게끔 하고, 이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그 지점이 김수자 작가 작품의 거울과 연결되는 면인가?

  • 김수자
    거울은 자신과 타자에 대한 의식과 인식을 갖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대립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거기에는 가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양면성이 있다. 거울은 그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이다. 바느질로서의 미러링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을 때, 거울이 마치 펼쳐진 바늘과도 같다는 점을 발견했다. <바늘여인>과도 같이, 거울은 그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거울에는 바느질하고, 잇고, 비추는 요소들이 있다. 나에게는 거울이 곧 회화 그 자체이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거울은 그 스스로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바노스에서의 거울 설치 작업에 사용된 헛간에 대해 “그곳이 꽉 차 있는 동시에 여전히 비어 있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 의미를 조금 더 설명해달라.

  • 김수자
    거울을 작업에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언제나 그것들이 이미 완전하다고 느꼈다. 비물질적인 소리를 더하는 예외를 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더할 필요가 없었다. 어떤 면에서, 미러링은 현존하는 구조를 드러내기 위한 행위에 가깝다. 미러링은 오브제들을 더하는 대신 존재하는 구조와 형태를 다른 방식으로 복제하는 동시에 확장하는, 비물질인 방식으로 더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영적인 지식이 물리적인 몸을 통해서, 그리고 몸과 함께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김수자 작가 작업의 관객에게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듯하다. 관객에게 작가의 작업을 통해 어떤 특정한 상태를 이루기를 바라는지 언젠가 물은 적이 있었는데, 아니라고 답한 적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일이 그저 일어난다.

  • 김수자
    그렇다. 사실 내가 관객을 공간에 더한 것이다. 내가 사람들을 초대했고, 그들은 퍼포머가 된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크리스털 궁전에서 선보인 <거울 여인(A Mirror Woman)>(2006)은 내 초기작 중 하나로, 테아트로 라 페니체에서의 <숨쉬기-보이지 않는 거울, 보이지 않는 바늘(To Breathe-Invisible Mirror, Invisible Needle)>에서와 같이 내가 관객을 퍼포머로서 초대해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존재하도록 한 작품이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도 그 점을 좀 더 부각해 관객을 퍼포머로 변환시켰다. 그 전에 그런 생각을 해본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안네 임호프(Anne Imhof)나 티노 세갈(Tino Sehgal)의 작업을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작가들은 실제 활동하는 안무가와 퍼포머들을 작업에 사용했다. 나는 조금 더 미묘한 방식을 통해 관객이 스스로가 퍼포머가 되는 상황을 스스로 의식하지조차 못하는 상태를 이루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퍼포밍이라고는 생각한다.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존중하고 싶었기에 영상 촬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거나, 벽에 기대거나, 그저 서 있거나, 내려다보거나 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모든 행위를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특정한 상태에 진입한다고 느끼는 것은 관객에게 달렸다는 의미인가?

  • 김수자
    맞다. 관객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초대에 가깝다. 관객은 그들이 뭔가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 엘리자베스 밀크비스트
    비밀스러운 초대인 셈이다. 대화를 마무리하기에도 훌륭한 말씀이다. 나눠주신 말씀에 감사를 전한다.

[Note]
[1] 이 인터뷰의 제목은 부르쿠 사힌(Burcu Sahin)의 첫 시집 <자수(Broderier)> (Stockholm: Albert Bonniers Förlag, 2018)에서 인용했다.


— 개인전 도록 수록 인터뷰 『씨 뿌려 그리기 Sowing into Painting』바노스 예술재단 및 케베니히 갤러리 공동 발행, 바노스, 스웨덴, pp. 20–47. 영한 번역: 김효정 (2020년 바노스 예술재단 개인전 연계 도록; 인터뷰는 2021년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