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자에 대한 오마주 – 비평으로서의 수직성을 중심으로

다테하타 아키라

2026

  • 동아시아 문화도시 교류 프로젝트로 일본 교토, 한국 대구, 중국의 창사 세 도시가 선정된 것은 2017년이었다. 일본 측 예술감독을 맡았던 필자는 교토의 니조성을 주 전시장으로 삼아 《아시아 회랑(Asia Corridor Contemporary Art Exhibition)》이라는 전시를 개최했고, 김수자는 그 중심 작가 중 한 명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그의 작품은 이번 서울에서의 개인전 《김수자, 호흡−선혜원》으로 이어지는 선행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니조성 어전의 대청에 거울 패널을 깔고, 그 위에 거울처럼 연마된 스테인리스 병풍을 배치했다.

  • 《김수자, 호흡−선혜원》에서도 중심을 이루는 작품은 건축과 일체화된 대규모 설치 작업으로, 한국 전통 건축 양식으로 새롭게 지어진 목조 건물의 바닥 전면에 거울 패널을 깐 것이다. 관객은 그 위에 올라 시선을 위아래로 옮기며 걸어 다니게 된다. 바닥에는 굵은 서까래가 드러난 높은 천장이 뒤집힌 채 비쳐 있으며, 그 위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신기한 감각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실재와 반영된 이미지 공간의 시각적 수용과 신체적 수용, 인식의 주체와 객체, 나아가 전통과 현대라는 이항 대립적 인식을 뒤흔들고 그 상호 간의 경계를 위태롭게 만드는,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스릴 넘치는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 특정적인 장치를 김수자는 구현해 낸 것이다.

  • 이 설치 작업의 제목에 ‘호흡’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점은 이러한 맥락에서 흥미롭다. ‘호흡하다’라는 동사는 장소와 우리 사이의 관계를 대립으로 설정하지도, 그렇다고 동일시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둘 사이에 ‘상응(correspondence)’의 상태를 가져오는 것이다.

  • 김수자의 잘 알려진 비디오 퍼포먼스로 〈바늘여인(A Needle Woman)〉(1999-2001)이 있다. 그는 다양한 도시의 번화한 거리 한가운데에서 홀로 움직이지 않는 자세로 서 있다. 그곳에는 어떠한 메시지도 감정도 없으며, 고정된 카메라가 그의 뒷모습을 오랜 시간 촬영할 뿐이다. 좌우로 수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가는 가운데, 그는 그저 철저히 타자로서 서 있다. ‘바늘여인’이란 도시인의 일상적 풍경 속에 수직으로 꽂힌 하나의 바늘인 것이다. ‘바늘여인’은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감정이 배제된 채 장면 속에서 주변과 분리된 타자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또한 여성이라는 점에서(‘바늘 여인’이 본래 바느질하는 여성을 뜻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오늘날 사회를 향한 무언의 비평으로서 우리 앞에 서 있다.

  • 수평적으로 흐르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그 속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서 있는 ‘바늘여인’. 도시를 옮겨 가며 반복적으로 시도되어 온 그의 퍼포먼스에서 드러나는 이 수직성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필자 나름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 요시모토 다카아키(Yoshimoto Takaaki, 1924-2012)는 사상가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확고한 비평 정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사회를 직시한 시인이기도 했다. 그러한 그의 시 「작은 무리에게 보내는 인사」(1952)에는 “내가 쓰러진다면 하나의 직접성이 쓰러진다”는 매우 강렬한 한 구절이 있다.

  • 여기서 말하는 ‘직접성’이란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시인으로서의 존재의 직접성이며, 억압적 제도나 사회적 부조리와 대치하는 강인한 정신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구절에 앞서 “나는 나아간다 / 무수한 적들의 한복판으로” “나의 고독은 거의 극한까지 견딜 수 있다”라고 쓰여 있다. 적들의 한가운데로 나아가도, 고독의 극한에 있어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나의 직접성이란,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시인의 사명을 짊어진 자의 자부였을 것이다.

  • 요시모토 다카아키의 직접성은 ‘바늘여인’의 움직이지 않는 직립과 맞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수평적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흐름 속에서 타자로 놓인 작가 뒷모습의 수직성은, 사회의 흐름에 휩쓸리지도, 쓰러지지도 않는 예술가로서의 확고한 의지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이번 전시 《김수자, 호흡−선혜원》에서 수직성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관객이 직접 그 공간에 들어섬으로써 성립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는 〈바늘여인〉의 경우와는 다른 성격을 지닌다. 우리는 실재와 그것을 반사한 상(像)이 맞닿는 경계인 거울로 된 면 위에 올라서 걸어 다닌다. 위와 아래에는 관객 자신의 모습까지 포함된 동일한 광경이 펼쳐지고, 당연하게도 두 이미지의 관계는 수직 방향으로 있어 대칭을 이룬다. 일반적인 갤러리 전시가 동선을 따라 수평적으로 전개되는 것과 달리, 관객이 시선을 주로 위아래로 움직이며 감상하는 점 또한 수직적 공간 경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의 전통적 공간에 김수자 특유의 개념적인 방법으로 거울 바닥이라는 허구를 더하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공간에 대한 수직적 개입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교토 니조성에서의 작품이든, 원형의 역사적 건축을 안도 다다오(Ando Tadao, 1941-)가 리노베이션한 파리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 미술관)에서 바닥을 거울로 만든 작품 〈호흡−별자리〉(2024)든, 이번 설치 작품과 마찬가지로 거울을 통한 수직적 개입에 의해 역사적 공간을 현재적 경험으로 만들어 내는 “아름답고도 스릴 넘치는” 장치임에는 틀림없다.

  • 〈(연역적 오브제−보따리(Deductive Object−Bottari)〉(2023)는 독일 마이센에서 제작된 백자 작품으로, 그 구형의 형태는 조선 시대 문화의 상징인 달항아리를 따른 것이다. 두 반구의 단면이 맞물려 이루어지는 이 완전한 구형은, 관점에 따라 수평성과 수직성의 상호 긴장, 전통과 현대의 경계가 더없이 우아한 방식으로 해소되거나 지양된 상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출발점이자,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보따리 작업도 함께 소개되었다. 보자기(김수자의 경우 이불보)는 다양한 사물을 감싸고 운반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며, 복을 싸서 간직하는 길상적 의미를 지니거나 선물로 사용되기도 하는 큰 천으로, 한국의 전통적 생활 문화와 깊이 연결되어 왔다. 김수자에게 그것은 성장기의 기억이자, 여행과 이동의 메타포이며, 동시에 젠더와 연결된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는 매개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보자기는 이러한 모든 것을 감싸안으면서도, 여전히 화려한 색채와 풍요롭고 따뜻한 정서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 그렇다. 김수자는 동시대와 마주하는 ‘바늘여인’으로서의 의지와, 역사를 새롭게 포착하는 유연한 시선, 그리고 사유의 깊이를 바탕으로 더 나아가 ‘호흡’이라는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상응의 상태를 통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계속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SK 선혜원, 『김수자, 호흡 — 선혜원』, 개인전 도록, (서울: SK 주식회사, 2026),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