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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한국 미술가 김수자의 이번 첫 뉴욕 개인전에서는 최근의 비디오 작품들을 선보였지만 사실 그의 작업은 비디오, 퍼포먼스, 조각(작가 자신의 몸을 포함하여), 그리고 야외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사적인 명상 행위가 혼합되어 있다. 그 중심에는 <바늘 여인(A Needle Woman)>(1999-2001)이 있다. 이 작품을 위해 김수자는 카이로, 델리, 라고스, 런던, 멕시코시티, 뉴욕, 상하이, 도쿄 등 8개의 주요 도시를 여행했지만, 작품 속에서 그는 보행자들과 갖가지 차량으로 북적이는 시내 한복판에서 카메라를 등진 채 결국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P.S. 1 현대미술관(P.S. 1 Contemporary Art Center)에서는 작가로부터 뒤쪽으로 몇 미터 떨어진 위치에 고정된 카메라로 이러한 행위들을 촬영한 무성 비디오가 대형 홀의 벽면에 투사되었다. 단조로운 회색 원피스를 입은 작가는 인간적 이동과 소동의 한가운데에 서 있고, 사람들은 그를 향해 주변으로 밀려든다. 이따금 작가는 인파에 휩쓸릴 것만 같고, 어쩌면 누군가 무심코 그에게 부딪히거나 어떤 식으로든 위협을 가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보는 이는 그의 안전을 걱정하게 된다. 때로 그녀는, 모든 이가 제 갈 길로 흩어지는 와중에도 그저 한 자리에 머무르며,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강인한 신비로움을 품은 채 존재한다.
언제나 시각적으로 매혹적인 이 비디오들은 개인과 대중 사회 사이의 불편한 관계, 다른 문화에 에워싸인 외국인이 느끼는 위치 상실(dislocation)의 감각, 혼란스럽고불안정한 세계에서 자신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룬다.. 김수자의 표정은 한 번도 보이지 않지만, 이러한 행동을 하기까지 그에게 용기와 강렬한 내면의 활력이 필요했으리라는 것은 확연하다. 그의 작품 전반에는 보는 이에게 강한 울림을 주는 인내심 있는 수용과 정신적 평온함이 배어 있다. 그리고 이 퍼포먼스의 일부는 거리의 삶이기도 하다. 이름 없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성큼성큼 걷고 자전거 페달을 밟고 차를 몰아 작가 쪽으로 다가왔다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진다. 분주한 뉴욕 사람들은 자기 일에 몰두하느라 그를 보지 못하고, 다민족의 런던 사람들은 휴대폰에 대고 재잘대기 바쁘며, 상하이 사람들은 작가를 몰래 힐끗거린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김수자가 취하는 이와 같은 최소한의 행위가 각기 다른 도시의 감각과 사유를 자극하는 인물의 초상들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도쿄에서 김수자는 철저히 무시되어 마치 유령처럼 보이고, 우리는 일본에서 한국계 소수자들이 문화적으로 비가시적인 존재로서 오랫동안 차별을 겪어온 현실을 자연히 떠올릴 수밖에 없다. 라고스에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사람들이 호기심이 역력한 얼굴로 작가 주변에 모여든다.
또한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와 연관된 다른 행위들을 담은 비디오도 선보였는데, 이 비디오들은 때로는 벽에 투사되고 때로는 모니터로 상영되었다. 카이로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성인 남성들과 소년들에게 둘러싸여 모로 누워 있는 김수자는 여성 "타자"의 전형이 되며, 작가의 눈에 띄지 않지만 당혹스러운 행동은 구경꾼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작가가 델리의 야무나 강 둑에 서 있을 때, 강은 좌에서 우로 잔잔하게 흐르고, 그 표면은 천천히 떠 가는 부유물로 장식되어 있다. 눈앞에서 지나가는 것은 쓰레기이지만, 우리는 지나가는 기억을, 소망과 상실을, 한 생의 눈부신 파편들을 생각하게 된다. 겉으론 소박해 보이는 김수자의 행위는, 그 안에 깃든 복합적이고도 깊은 울림으로 우리의 내면을 조용히 사로잡는다.
—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 2001년 12월호에서. 번역(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홍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