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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향한 주문

훌리안 수가사고이티아

2003

“몸이야말로 가장 복잡한 꾸러미다.” — 김수자

I. 시공을 넘어 바느질하기

  • 1980년대 이래, 실과 바늘 사이에서 김수자의 작업이 전개되어 왔다. 한국에서 뉴욕으로, 다시 파리를 거쳐 여러 대륙의 도시들로 이어지는 그의 여정은 바느질 행위에 대한 명시적인 은유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느질 그 자체라기보다 이전까지 분리되어 있던 서로 다른 현실의 파편을 연결하고 결합하는 일이다.
    작가의 초기 작업에서 천 조각들을 이어 꿰매는 행위는 손, 신체, 그리고 물질과의 관계 속의 정신이 결합되는 일종의 콜라주적 실천이었다. 영상 <바늘여인(A Needle Woman)>(1999-2001)에서는 작가가 하나의 바늘이 되어 도시의 직물 속으로 들어간다. 이렇듯 바느질은 계속 변화하는 조형 언어로 김수자가 섬세하게 탐구하고자 하는 바를 이끌어 간다. 이처럼 독특한 그의 접근 방식은 모두 지역을 참조하며 출발했지만, 궁극적으로 그 범위는 전 지구적인 함의를 갖게 되었다.

  • 시간이 흐르며 김수자는 회화의 물성과 평면에서 벗어나 해방적인 제3의 차원을 향해 나아갔고, 이는 <보따리>라는 제목의 작업을 통해 더욱 큰 유동성을 지니게 되었다. 영상과 퍼포먼스에서 그의 언어는 점점 더 절제된 형식으로 변화해갔으며, 마치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듯 작업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쫓는다. 작가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바늘이 되기를 원한다. 상처를 봉합한 뒤 사라지는 바늘처럼, 두 개의 천 조각, 두 개의 대륙, 혹은 두 개의 의식 상태를 연결한 뒤 사라지고자 한다. 이처럼 신중한 자기 소거는 그의 연구에 본질적으로 결부되어 있으며, 타자의 출현과 현존을 가능하게 한다. 이 경로는 한국적 전통에 뿌리를 둔 직물과 그와 관련된 실천들에서 출발하지만, 방랑과 교환, 그리고 타자와 미지의 영역에 대한 열린 상태의 언어를 통해 지역적 맥락을 넘어선다.

  • 회화 교육을 받은 김수자는 캔버스의 평면을 탐구의 장으로 인식하도록 훈련 받았다. 그의 초기 작업은 격자와 반복되는 모티프에 기반한 형식적 구성이었으며, 몬드리안을 비롯한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에 대한 관심은 김수자의 실천과 이론적 접근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곧 꿰맨 캔버스가 작업의 주된 물리적 형태가 되었고, 천 조각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중심이 되면서 보다 단순하지만 상징적인 제스처를 추구하게 된다.

  • 그리하여 바느질은 1980년대 작가의 예술적 과정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고, 회화적 요소들보다 더 큰 중요성을 지니게 되는 지점에 이른다. 그리고 김수자가 자신의 어머니 곁에서 바느질을 하며 발견했던 감정이 작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바느질은 친밀한 행위이며,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과정이다. 이는 전통과 가족의 기억을 동시에 대표하는 존재 상태와 공생하는 것에 가깝다. 수동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이 행위는 무한히 반복되는 느린 움직임의 연쇄 속에 작가를 묶어 두며 명상에 적합한 상태에 돌입하게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는 일이며, 자신의 역사로 스스로를 포화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김수자와 그의 어머니가 만든 이불은 이전에는 분리되어 있었던 두 세계, 즉 한국 조상의 전통과 자신의 회화적 탐구를 결합시켰다.

  • 김수자의 초기 작업은 자기 자신을 향한 내적 성찰이자 하나의 총체성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에 관해 질문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의 행위는 자아의 해소, 곧 자아가 풀려나는 순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실타래, 실을 감는 틀인 실패, 혹은 실뭉치에 감긴 실은 풀려야만 한다.

  • 천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작업은 시작된다. 서로 다른 섬유를 수집하는 행위는 과거의 파편을 재구성하는 일과 닮아 있다. 개별적인 이야기가 모여 새로운 총체가 되는 것이다. 이 조각들은 몸이 지녔던 흔적과 상흔, 꿈과 일상의 고통을 간직하고 있으며, 이것으로 재구성된 개체는 타인의 기억이 그에 대입해 작동할 수 있는 대리물이 된다.

  • 재료를 선별해 소생하고 그것들을 모아 꿰매는 일은 도취하게 되는 또는 인내와 반복으로 점철된 (정지 상태에서 무아지경의 상태로 돌입하는) 몰입적인 행위이다. 또한 이 과정은 제스처의 단조로움을 통해 자기 내부에 하나의 공백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한다. 그 공백은 충만함이 될 수 있는 종류의 공백이다. 김수자에게 있어 <너의 초상(Portrait of Yourself)>(1990–1991)과 같은 작업은 고독한 고백이자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고 무한한 대화이다. 결과만큼이나 그 과정이 중요하다. 이 작업의 제작 과정은 일종의 명상과도 같으며, 여기에 요구되는 친밀함을 갖고 접근했을 때 이것은 만다라가 된다. 따라서 이 작업은 자화상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심층적 표현으로 작가의 유머 감각에 더불어 그녀가 스스로를 어떻게 수련했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성장을 경험하고 그것이 형성하는 선형적 움직임에서 비켜섰는지를 조명한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동작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경험으로부터 상당한 에너지를 얻었다고 한다. 이 시기 제작한 작업의 제목인 <대지를 향하여(Toward the Mother Earth)>(1990-1991)가 암시하듯,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새롭게 환기해 볼 수 있었다.

  • 바늘이 재료를 관통하며 앞에서 뒤로 움직이고, 그것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이는 평면을 넘어 조용히 제3의 차원을 향한 입구를 개방한다. 작업에 환원주의적 논리를 적용하면서, 김수자는 사물을 천으로 덮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공간을 점유해 나갔다.

  • 1990년대 초, 위와 같은 질서를 갖춘 첫 번째 작업 <무제(Untitled)>(1991)가 만들어졌다. 두 개의 고리가 막대로 연결된 작업의 형태는 선에서 제3차원으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이 구조물들은 이후 천 조각으로 감싸졌는데, 이는 작품을 벽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방식이었으며(이는 김수자의 작업 세계에서 하나의 전환을 암시한다), 첫 바느질 작업의 상징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회화의 평면성으로부터 벗어나는 시도이기도 하다. 한동안 작가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바느질 행위로부터 물러나 그 은유를 사물을 덮는 단순한 행위로 옮겨 수행했다.

II. 기억을 감싸는 일

  • 김수자는 단순함을 추구하는 해방적인 행위를 지난 10여 년간 계속해서 더욱 급진적인 방향으로 추구해왔다. 이는 이제는 그의 대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작업, 즉 ‘보따리’라고 부르는 꾸러미를 통해 드러난다.

  • 이들 가운데 최초의 작업은 1992년에 제작되었다. 뉴욕의 P.S.1의 오픈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졌으며,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어떤 특정한 의식이나 계획과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미 구축되어 있던 절차 안에서 그 본질과 최상의 효율성을 향해 단순화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천 그 자체만을 남기고, 모든 인공적, 부수적, 지지체 성격의 요소를 철폐하는 선택은 그의 작업 방식에서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천은 작업의 내용이자 용기가 되었고, 구조이자 표면이 되었으며, 안과 밖이 되었다. 보따리는 열려 있으면서도 닫혀 있는 구조 또는 드러내는 동시에 숨겨지는 구조를 통해 표면에서 벗어났으며, 이것이 작가가 탐구했던 표면의 문제에 대한 미학적 해법이었다.

  • 꾸러미는 한국 전통에 대한 참조이자 이동, 심지어는 모험에 대한 보편적인 은유를 암시한다. 또한 ‘보따리’는 개인이 가진 모든 소지품을 담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보따리는 해진 비단 옷에서 아직 쓸만하고 색채가 선명한 조각을 떼어내 만들어졌다. 그리하여 옷의 일부가 용도를 바꾸어 보존될 수 있었다.

  • 한국에서 천은 전통적으로 이불과 옷을 보관하거나 옮길 때, 특히 세탁을 위해 그것들을 들고 갈 때, 혹은 음식을 나르거나 선물을 포장하는 상황 등 다양한 일상적 기능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사용되어 왔다. 한국인에게 보따리는 친밀하고 익숙한 존재로 일상 속에서 사용된다. 그것은 오랜 시간 전달되어 온 세련됨의 표식이며, 때로는 큰 가치를 지닌 물건이다. 또한 강한 정동적 특성을 지니며,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

  • 김수자가 한국을 떠나 살던 중 보따리의 가능성을 처음 탐구했다는 점은 하나의 징후처럼 보인다. 그는 P.S.1의 레지던시에서 초청 작가로 머물렀던 기간 이후 1994년 경주의 한 폐가에 보따리를 이용한 설치 작업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보따리는 모든 물질적 소유를 하나의 꾸러미에 담아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된 이주자를 상징한다. 따라서 그가 돌아와 바닥 위에 보따리를 놓았을 때, 김수자는 공간을 다시 점유하는 동시에 임박한 출발이 준비된 상태를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 다른 곳에 있었던 사람에게 여행은 계속해서 열망하거나, 심지어 필수적인 것이 된다.

  • 작가가 ‘다른 곳’에서 마주하게 된 여성성에 대한 또 다른 인식은 작업 전반에 암묵적인 테마로 저변에 깃들어 있다. 몸은 현대 서구 사회와 동양적 조상의 세계관 사이에서 갈라져 있다. 여행을 통해 두 세계를 교차하며 그 사이의 합의에 이르는 가능성이 없었다면, 이러한 양가성은 절대 양립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이로 인한 긴장은 김수자의 모든 작업에 잠재해 있던 것으로 1996년 나고야에서 선보인 설치 작업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 - Dedicated to my Neighbors)>에서 가감없이 드러난다. 해당 작업은 그의 작업 세계에서 비롯된 두 가지 형태를 하나의 공간 안에 함께 배치한 것이다. 여기서 김수자는 처음으로 꾸러미를 어딘가에 놓는 것과 바닥에 한국의 전통 이불보를 배치하는 것의 대비를 보여주었다.

  • 이불보는 종종 신부의 혼수와 함께 선물로 주고받으며, 한 가정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 중 하나다. 겹겹의 이불보는 그것의 주인인 커플의 역사를 조용히 담고 있다. 여기에 쓰이는 문양은 사랑과 자녀, 그리고 건강이 가득한 삶을 기원하고 장려하는 상징이다.

  • 이불보의 상징적 문양이 드러나는 것과 상상 속의 귀중한 내용물을 감싸고 있는 꾸러미의 신비 사이에는 긴장감이 존재하며, 이는 한국적 맥락에서 전통 이불이 지니는 특별함을 인식할 때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김수자의 작업은 이불보의 평면성과 보따리의 조각적 차원 사이의 형식적 차이 혹은 대립을 넘어선다. 그리고 이것이 설치 작업으로 구성되었을 때 관람자는 사적인 삶과 자기 내면으로의 회귀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 또한 이불보는 일상적인 접촉을 통해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목도하는 사물(witness-object)이다. 그것은 사랑, 성, 꿈, 악몽, 출산의 순간에 함께하며, 궁극적으로 죽음이 당도했을 때는 수의가 된다. 이렇듯 사람을 감싸는 이 사물은 피부와 같은 것으로 이불보 사이의 사람들(소유자들)의 초상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담고 있다. 그것이 보따리의 형태로 매듭지어졌을 때 이불보는 친밀한 소유물을 한 데 모으고 의심의 눈초리로부터 그것들을 보호한다. 펼쳐졌을 때에는 평평함을 통해 자신을 열어 내어주며 그 표면의 전통적 문양이 함의하는 여러가지 꿈을 암시한다.

  • 이러한 의미에서 표현에 있어 극도로 단순하고 순수한 나고야에서의 설치는 시간과 삶과 죽음의 순환에 관한 사유 방식 전체를 담고 있었다. 이후 이러한 함의가 지닌 특성을 이용해 작가는 다양한 상황에서 이불보를 독립적으로 사용했다. 레스토랑의 테이블보 혹은 세탁물을 걸어놓듯 넓게 펴서 널어두는 형태로 설치하기도 했다. 각각의 설치에서 관람자의 참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업을 활성화하는 것은 관람자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테이블보를 예로 들었을 때, 미술관 레스토랑에서 관람자가 실제로 테이블을 사용하는 행위가 작품을 존재하게 만든다.

  •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잠을 자는 곳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삼가기 때문에 이불보를 테이블보로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인 용도를 위반하는 것과도 같다. 식사 시간 동안 테이블보는 그곳에 착석한 이들의 삶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얼룩, 인간 존재의 단면이 남긴 흔적을 받아들이면서 미묘하게 그 형태가 변형될 것이다.

  • 김수자의 다른 설치 작업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관람자는 유동하는 공간을 구성하는 주인공이다. 여러시점에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이동하는 걸음마다 작품은 새롭게 갱신된다. 이 논리를 더욱 확장해 최근 뉴욕 피터 블룸 갤러리에서 전시한 빨래 설치 작업 <거울여인(A Mirror Woman)>(2002)에서는 모든 벽에 거울을 설치했으며, 빨랫줄처럼 줄지어 놓인 작품을 선보였다. 중심부에 놓인 작업과 함께 무한한 공간을 비추는 거울 속에서 관람자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감상이 흐트러진다. 자기 자신과 시각적으로 대면하는 상황은 김수자의 작업에서 호기심을 자아내는 특이한 지점으로 내면의 성찰을 위해 작가가 모습을 감추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그의 작업에 인물이 등장할 때(그리고 최근의 영상에서는 종종 작가 자신이 등장한다), 그 인물은 등을 돌리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개인의 개별성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존재를 암시하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예로 퍼포먼스 비디오 <떠도는 도시들 – 2727km 보따리 트럭(Cities on the Move – 2727km Bottari Truck)>(1997/2007)에서도 이와 같은 특성이 나타난다.

  • 1997년 11월, 김수자는 현대미술가들의 유목적 삶에 다시 돌입하면서 자신의 보따리를 들고 길에 나섰다. 이는 유목적 삶을 강화하는 동시에 활동의 장과 의미론적 장을 확장하는 결정이었다. 그는 11일간 개인적 기억이 깃든 한국의 도시와 장소 곳곳을 방문했다. 이러한 제스처는 그의 보따리에 과거의 역사와 여행의 기억과 같은 새로운 내용을 담기 위한 것이다. 영상 속 퍼포먼스에서 그는 성직자처럼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등진 모습으로 트럭에 단단히 고정된 보따리 위에 앉아 있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지나친다.

  • 해당 작업은 친밀함과 공적 차원이 명확하게 결합된 최초의 사례로 이동의 개념이 실제화된다. 절제된 검은 옷차림을 한 작가의 실루엣은 선명하고 다양한 색채의 보따리와 대조를 이루며 바늘처럼 곧게 서 있다.

  • 그가 우리에게 등만을 보여준다는 사실은 보는 이의 인식을 시험하면서 또 풍경의 중심으로 밀어 넣는 장치이다.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낭만주의 회화에서처럼 뒷모습의 실루엣은 우리 신체의 참조점이 되며, 보는 이는 그 위에 자신을 투사하게 된다. 이러한 이동은 작업에 또 다른 실체를 부여하고, 관람자가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형태를 부여한다(이와 같은 방식은 이후 다른 도시가 등장하는 영상들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도로를 따라 흘러가는 동안 보따리 위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앉은 ‘바늘여인’은 상처가 다시 붙어 아물듯 풍경을 가르는 동시에 다시 꿰맨다. 결국 이 기억의 수난은 김수자가 자신의 역사와 연결 고리를 만들고, 자신의 여정에 감정적 의미를 다시 주입하는 방식이다. 그와 함께 이동하는 보따리들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며, 이 여정은 그것에 경의를 표한다. 각 보따리는 어떤 사람과 연결될 수 있으며, 그 여정은 소중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기리는 순례의 성격을 띠게 된다.

  • <보따리 트럭>이 여러 주요 현대미술제에 전시되면서, 작업이 지닌 개인적 의례라는 차원은 이미 초월되었다. 친밀한 영역에 속하던 경험이 작업 속에서 보편적, 심지어 비판적인 차원의 의미를 띠게 된 것이다.

  • 또한 그는 예술적 유목주의를 핵심적으로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비엔날레(1998년 제24회 상파울로비엔날레, 1999년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 2000년 제5회 리옹비엔날레)에 여러 차례 참여한 바 있다. 서로 다른 지역의 집단이 상품과 문화를 교환하기 위해 모여드는 장터에 도착하듯 색색의 보따리로 가득 찬 트럭은 전 세계 언론이 당시 세상에 일어난 강제 이주에 주목하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이동을 강조한다. 그러나 김수자의 설치가 이동을 긍정적인 가치로 또는 새로운 낙원을 향한 탐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한 장소의 변화를 통일성이 영원히 상실되는 상태로 인식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전제를 지울 수 없다. 이동은 언제나 출생지와 조상적 뿌리로부터의 단절을 내포한다. 성공적으로 더 나은 삶을 찾은 자발적 망명자도 있으나 뿌리 뽑힌 이의 영혼 깊숙한 곳에는 언제나 은밀하고 만성적인 상처가 존재한다.

  • <보따리 트럭>의 역사적 맥락은 그것이 제작되던 시기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사례들만 추렸을 때) 발칸, 아프리카, 근동 지역에서 자행된 잔혹 행위를 분명하게 상기시킨다.

  • 끝없는 분쟁이, 그리고 더 드물게는 자연재해가 전체 인구로 하여금 보따리를 싸들고 집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나서게 한다. 반짝이는 색채의 보따리는 마음을 뒤흔드는 기억이자 깊은 상처라는 역설적인 감정을 전한다.

III. 동시적인 다른 곳

  • 김수자의 이동 경로가 그리는 실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의 최근 영상들은 시적 섬세함과 강렬한 전시 방식, 그리고 사회적 함의의 복잡성을 동시에 지닌다. 이 작업들은 하나의 포괄적 제목 아래 묶인다. 〈바늘여인〉은 건초더미 속의 바늘처럼 사라지고자 하는 그녀의 열망을 암시하기도 하고, 도시의 직물 속으로 스며드는 바늘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가리키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퍼포먼스와 여기서 파생된 작업인 〈구걸하는 여인(A Beggar Woman)〉 같은 작업은 2001년 P.S.1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처음 전시되었다.

  • 바늘여인〉은 여덟 개의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 안 네 개의 벽면에 동시에 투사된다. 각 영상은 김수자가 가능한 한 가장 중립적인 복장으로 동일하게 입은 채 뒷모습으로 서서 뉴욕, 도쿄, 런던, 멕시코시티, 카이로, 델리, 상하이, 라고스 등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들의 번화한 거리에서 작가 주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군중의 물결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 작가는 관람자를 모든 대륙의 도시로 데려가면서, 우리가 능동적 참여자가 되는 장소로 이끈다. 대형 스크린에 투사된 영상은 실제 크기의 인물과 마주하는 상황을 연출하여 작업이 형성하는 공간 안으로의 완전한 몰입을 유도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작가의 뒷모습은 우리가 작품 안으로, 대도시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고 더불어 그 심연을 간신히 피하게 한다. 이는 칸트가 정의한 숭고의 개념을 일정 부분 구현한다. 그것은 김수자가 제시하는 장치를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그는 우리가 어떤 위험이나 위협 없이 그 감정에 진입할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을 열어 보인다. 존재감 있지만 개입이 조심스러운 작가의 태도는 개별성이 우리가 가진 사유의 본질에 자리를 내어주는 여러 접근 방식을 제공한다.

  • 김수자의 절제된 태도는 그가 감수해야 했던 시련에서 모든 심리적 측면을 제거한다. 핵심은 그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들, 즉 촉매로 작용하는 환경이다. 작가의 설치 작업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았을 때, 우리가 겪은 시련을 겪는 누구에게든 무엇이 친밀하고 개인적인지를 깨닫게 된다. 분명히 이 작업의 물리적 차원은 명상에서 출발해 일종의 무아지경에 도달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개인으로서 자기 자신 바깥에 있다. 그는 스스로를 추상화하여 열쇠구멍이 되거나 자신이 반전된 이미지와 같은 대상이 되어 우리를 지각할 수 있게 만든다.

  • ‘다른 곳’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새 천년의 문턱에서 글로벌화의 한계를 질문하는 이주 예술가 세대의 중심에 그를 위치시킨다. 작가로서 그는 전 세계 문화 기관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작업을 선보이는 한편, 미술계는 창의적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는 환경인 부유한 국가를 넘어서 그보다는 예술에 덜 우호적인 국가들에까지 확장되어 왔다. 그 결과 예술 담론은 여러 목소리들로 풍부해지고, 작품의 순환적 이동은 새로운 관점을 촉발한다.

  • 이처럼 작가 존재의 동시성은 단순한 직감 이상의 것이다. 서로에게서 비롯되었지만 떨어져 있고, 도시계획이나 건축적 특성과는 별개로 역사적·경제적 맥락이 상이할지라도 영상 속 도시들은 끊임없이 파도 치는 개인들의 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들은 각자의 필연적인 운명을 향해 바쁘게 나아간다. 그리하여 인종과 집단의 연속체가 공간 안에서 가상적인 중심을 찾게 된다. 여덟 개의 영상이 동시에 상영되는 모습은 이동하는 존재들 사이의 공통점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오직 주의 깊은 시선만이 그들 사이의 차이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 작품의 시간이 우리에게 작용하는 동안 우리의 몸은 작가의 몸을 대체하여 실을 인도하는 바늘이 된다. 김수자가 스스로를 정의하듯 ‘바늘여인’은 도시의 직물을 찢어 가르는 동시에 꿰맨다. 가느다란 바늘은 세계를 관통하지만, 전 우주가 바늘귀를 통과한다. 어떤 맥락에서는 김수자가 스스로를 지우려 해도 그는 자신의 타자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는 이방인이며, 관찰자이자 분열시키는 동시에 결합하는 요소이다. 실제로 작가는 그를 지나가거나 피하거나 혹은 그에게 마음을 여는 사람들의 흐름을 가른다. 이 만남 속에서 각 집단의 특수성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만남 자체가 바로 특수성의 지표가 된다.

  • 도시들의 특성은 반대되는 것에 따른 대비를 통해 부각된다. 각각은 고유한 리듬을 지니며, 이는 완전히 정지한 상태의 작가의 모습이 불변의 기준점이 되면서 드러난다. 작가의 고유의 시간은 유예된 것처럼 보이는 반면, 도시는 작가 주위를 소용돌이친다. 김수자의 수동성은 불안과 긴장을 낳는다. 무언가가 일어날 것 같고, 침입이나 폭력의 가능성이 떠오른다. 이러한 폭력의 가능성은 이 대도시의 거리를 배회하는 망령과도 같다.

  • 행인들의 반응은(혹은 반응의 완전한 부재는) 각 도시가 갖는 전형적이고 상상적인 성격이다. 따라서 사회학적 초상을 의도하지 않더라도, 이 영상은 사람들과 그 환경을 특징지을 수 있는 여러 요소를 포함한다. 그들의 옷차림, 거리를 점유하는 방식, 도시 공간에서의 태도 등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뉴욕, 런던, 도쿄의 행인들은 빠르고 단호한 걸음걸이로 구별된다. 그들은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보행은 ‘파워 워크’라고도 표현된다. 효율적이며, 작가의 존재를 거의 인식하지 않는다. 카메라 바깥에 그들의 개인적 목표가 있으며, 그 궤적을 향한 방향으로 걷는 이들에게는 그외의 길이나 그것에 예기치 않은 것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거리는 사회적 장소가 아니라 단지 이동의 경로일 뿐이다.

  • 이러한 국제적 도시들에서는 인종적 차이가 거의 사라진 듯 보인다. 작가는 거의 눈에 띄지 않으며, 다양한 출신과 혼종성이 일반화된 공간에서는 그의 외형 역시 두드러지지 않는다. 여기서 근대성은 개별성의 약화, 즉 균질화를 향한 일종의 자폐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자극과 환상이 넘쳐나는 이 도시들에서는 예술가의 개입이 큰 주목을 받지 않는다.

  • 반면 카이로, 델리, 멕시코, 특히 라고스 같은 도시들에서는 근대와 전통 사이의 긴장이 존재하며, 이는 존재의 강렬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개인은 열린 공간에서 주변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며 완전한 존재감을 발견한다. 해당 문화의 필수적 부분인 사회적 계급과 전통적 위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지위를 가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거리에서는 서로 다른 계급과 집단이 섞이며, 이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응시하며 긴장이 항시 존재하는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킨다. 이곳에서 거리는 공존과 구분이 동시에 발생하는 장소가 된다.

  • 대립이 강한 도시에서는 개인이 그 분열의 축을 가로지르며 자기주장을 한다. 서로를 바라보며 비교하고, 모든 시선에는 질문이 담겨 있다(저 사람과 나는 같은 계층인가, 아닌가? 이 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나는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 이를 고려했을 때, 정지 상태로 존재하는 김수자가 해당 도시들에서 가장 많은 반응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아직 감동이란 없는 일상에 잠식되지 않았으며, 그럼으로 거리 위의 예술가는 더욱 뚜렷이 이방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그의 수동성과 자기 추상화에 대한 결연한 태도다. 또한 사람들은 그를 반응하게 만들고 싶어하고, 그를 그의 내면에서 끌어내 다시 일상과 공동체의 흐름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모든 도시에서 가장 주저 없이 김수자 주변에 맴도는 존재는 늘 아이들이며, 이들은 그의 퍼포먼스를 놀이로 전환시킨다.

  • 여덟 개의 거리가 하나의 특별한 공간(전시 공간)에 가상으로 모이게 되는 상황은 우리를 인간의 연속체라는 희한한 강 속으로 밀어 넣는다. 군중 속에 잠겨있는 작가는 그가 때때로 열망해왔던 것처럼 비가시적인 상태가 된다. 이러한 조건은 김수자의 작업을 자연과 문화라는 이분법 혹은 현대적 도시와 태초의 자연 사이의 이분법을 뛰어넘게 한다. 〈바늘여인 - 기타큐슈〉(1999)에서 바위 위에 누워 있거나 〈빨래하는 여인 - 인도 야무나 강〉(2000)에서 강을 마주하고 서 있는 자연 안에서의 퍼포먼스에서도 작가는 도시 환경에서 수행하는 것과 동일하게 사색적인 무심함의 상태를 추구한다. 아마도 그의 가장 깊은 욕망은 완전한 정지와 영원한 움직임을 화해시키는 것일테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가 휘트니비엔날레 기간 한 달간 사라지고 싶었다고 표현한 열망과 유사할 것이다. 어디에든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바라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 김수자가 자신의 몸으로 체현하는 것은 지역적 특성을 선언하는 동시에 부정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복합성이다. 그의 직물 작업은 작가의 조국인 한국에 특수한 맥락을 지니고 있지만, 이것은 그가 이동을 거듭하던 중 열린 길이고 선택이었다. 이를 통해 김수자는 자신의 뿌리를 잘라내거나 저버리지 않은 채 그 폭을 확장한다. 그의 영상은 자연과 도시, 개인과 집단, 글로벌과 지역을 결합한다. 그의 접근 방식이 지닌 풍요로움은 절제와 미묘함 속에서 분열을 초월하고 해소하는 특유의 방식에 있다. 작가가 천착한 질문의 과정과 그 핵심에 관람자를 초대하는 그의 작업은 곧 개인에게 개인적이고 친밀한 질문을 던진다.


  • 훌리안 수가사고이티아(Julian Zugazagoitia)는 뉴욕에서 라틴계 문화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문화 기관인 바리오 박물관(El Museo del Barrio)의 관장이다. 이에 앞서 수가사고이티아는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관장의 수석 보좌관으로 재직하였으며, 전시 《브라질: 몸과 영혼 (Brazil: Body and Soul)》를 기획했다. 그는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파리 에꼴 뒤 루브르(École du Louvre)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그는 8년간 게티재단(The Getty)과 협력하여 베냉, 이집트, 예멘,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보존 및 문화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데 참여하였다. 또한 유네스코(UNESCO)와의 장기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모은 순회전 《네페르타리: 이집트의 빛 (Nefertari: Light of Egypt)》를 기획하였다. 독립 큐레이터로서 그는 1997년 나폴리에서 열린 멕시코 20세기 미술 전시 《파시오네 페르 라 비타 (Passione per la Vita)》를 기획했으며, 이탈리아 스폴레토 페스티벌에서 개최된 여러 전시의 예술 감독을 맡았다. 2002년에는 제25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의 초청 큐레이터로 참여하여 뉴욕 섹션을 기획하였다. ‘총체예술(Total Work of Art)’을 주제로 한 저서 『총체예술작품 (L'œuvre d'art Totale)』(갈리마르, 파리, 2003)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책의 내용은 그의 박사 학위 논문과 2002년 장 갈라르(Jean Galard)와 함께 루브르미술관과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조직한 강연 시리즈에서 출발한 것이다.


    — 김수자 전시 도록 《Conditions of Humanity》, 리옹 현대미술관, 2003 수록
  • 영한 번역(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임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