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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거리에 선 여인의 시선

김애령 (미술평론가)

2001

  • 이스탄불 · 광주 · 상파울루 · 베니스 비엔날레 등 무게 있는 국제전을 위시해서 일본. 미국·유럽 미술관의 여러 전시와 국내 로댕갤러리의 개인전을 통해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작가로 떠오른 김수자의 뉴욕 데뷔전이 P.S.1 에서 열렸다. 김수자는 92년부터 1년간 P.S.1 국제 스튜디오 프로그램에 참가하였으며, 거기서 그의 예술에 전기 를 맞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개인전은 각별한 의미가 있으며 그가 지난 8~9년간 얼마나 치열하고 명석하게 작가의 길을 열어왔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 지상 4층, 지하 1층의 거대한 P.S.1 건물은 방마다 그룹전이나 개인전이 열리고, 복도. 계단 · 휴게실은 물론 화장실까지 각종 프로젝트들이 침입하여 온 건물로 벌집 쑤신 듯 창작 에너지와 커뮤니케이션의 욕망으로 들끓는 특이한 장소다. <김수자전>은 P.S.1 의 창립자인 알라나 하이스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3층 갤러리에서 열렸다. 주 전시실 주변 5개의 방이 좌우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어 P.S. 1의 다른 전시실과는 달리 경건함까지 느껴지는 장소로서, 김수자 작업의 실존적 엄숙함과 반복성의 대칭성을 더할 나위 없이 부각시켜 주는 공간이다.

  • 이번 전시는 지난 2년간 도쿄·상하이 · 델리 ·뉴욕· 멕시코시티 · 카이로 · 라고스 · 런던 등 8개 도시에서 실행한 <바늘여인(A Needle Woman)> 비디오 퍼포먼스를 하나의 보따리로 싸듯 매듭지어 보여주는 것을 중심으로 <바늘여인>의 바리에이션인 <빨래하는 여인(A Laundry Woman)> <집 없는 여인(A Homeless Woman)> <구걸하는 여인(A Beggar Woman)>, 이 모든 퍼포먼스의 시발점이 된 <바느질하면서 걷기(Sewing into Walking)>을 전시했다.

  • 97년 이스탄불 비엔날레 참가했을 때에 붐비는 거리를 고정 시점에서 찍은 이 비디오는 이전에 작가 혼자서 행한 같은 제목의 퍼포먼스의 타자적 버전으로 이 둘의 변증법적 전 개가 <바늘여인>으로 귀결되었다. 바느질과 보따리 싸기를 시작한 김수자의 예술은 여성을 초월하고 자아를 극복하면서 세계와의 만남을 찾아 나섰다. 보따리는 기왕에 이동을 상징하는 물건이지만, 작가는 바느질에서도 무한한 여행과 발견 · 만남을 상상하였던 것이다. 그의 여행은 글로벌 문화의 상징이자 현상처럼 거론되지만, 사실은 고대로부터 진리 를 구하는 자들이 행한 '가출'에 가깝다. 익명의 여자로서 그냥 거리에 던져진 소외된 자의 모습으로 평범한 삶들을 마주치며 그 속에서 인생의 화두를 얻는 그의 자세와 방법은 불교적 명상과 실천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예술의 관점에서 더욱 의미있는 것은 작가가 자신의 체험을 전달하는 형식이다. 말이 아닌 시선과 몸의 언어, 비디오라는 보따리 싼 얼마든지 이동 가능한 시간 · 공간 · 관객을 흡수하는 구성, 보이지 않는 부분이나 형태를 가질 수 없는 것까지 예감하고 그릴 수 있게 하는 여백.

  • 낯선 거리 한복판에 멈춰 서서 주변을 동요 없이 바라보는 작가의 뒷모습을 담은 <바늘여인>은 놀라운 흡입력으로 관객이 작가의 정지 자세를 따르게 한다. "왜 저러고 서있 는가?" 혹은 "무엇을 바라보는가?"라는 질문은 곧 그녀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세상 풍경 에 흡수되어 버리고, 관객은 '나'를 버린 시선으로 존재하는 텅빈 순간으로 인도된다. <바늘여인>은 정보와 계획, 상상과 환상이 포화상태인 일상생활과 실재와 가상의 구분 조차 모호해지는 시대에 온몸으로 거기 있음'을 실천하는 퍼포먼스다.

  • 그러함으로써 작가가 서 있던 때와 장소를 관객의 시공과 맞댈 뿐 아니라 언어와 풍 습. 국경으로 분리된 '나'와 '타인' 을 이어 붙이는 상징적 바느질이다. 따라서 김수자의 멈춤은 거부나 저항, 혹은 자기성찰을 위한 일단 정지가 아니고 외부를 향한 열림의 자 세다. 열림은 <구걸하는 여인>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미지의 군중을 향해 벌린 손바닥 위에서 벌어 진 드라마들, 돈이 쥐어진다던가, 놓인 돈을 훔쳐간다던가 혹은 살아 있는 병아리가 놓인 일들을 작가는 각성의 계기로 여긴다. 흐르는 강물 앞에서 변하는 것은 강이 아니라 부동의 자세로 서 있던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했듯이 멈춤은 내면과 외부를 소통시키는 자세이기도 하다. 내면의 변화는 다양한 색깔과 냄새, 그러나 하나의 인생을 사는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장소를 공평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자에게 주어지는 세계의 선물일 것이다.

— 『아트인컬처』 서울, 한국, 2001년 9월호
*작품 시리즈명은 원문에서 일부 수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