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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피터 블럼 갤러리 전시

릴리 웨이

2002

  • 1998년부터 뉴욕에서 활동해 온 김수자는 이번 전시에서 <거울여인>이라는 새로운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작년에 P.S. 1과 올해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매혹적인 영상 작품 <바늘여인>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던 이 작가는, 그녀의 작품이 일상생활의 모습에 너무 가깝기 때문에 고국인 한국에서는 예술로 여겨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김수자는 “ 당신이 지금까지 보아온 중 가장 멋진 빨래의 방”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총 14열로 나란히 늘어선 화려한 색상의 실크 혼례 이불이 빨랫줄에 고정된 채 전시 공간을 가로지르고 있었고, 바닥에서 천장까지 벽 전체에는 거울이 설치되었다. 이불보는 봉황, 용, 과일, 꽃 등 장수와 다산을 상징하는 문양에는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었으며, 자홍, 진녹, 연노랑, 감청, 황금, 진자두, 진분홍, 선홍 등 선명한 색의 조화가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고, 그의 설치물은 거울을 통해 끝없이 반복되며 확장되었다.

  • 이불보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신혼부부에게 선물로 주던 것으로, 필요시에는 접어서 들고 떠날 수 있는 가정용 물품이다. 실제로 마치 텐트처럼 임시 거처를 만들 수 있는 이 이불보는 여성이 수 세기 동안 수행해 온 전통적 가사노동의 상징적 복합체이다. 그들은 빨래를 널고, 자신이 짜고 장식한 직물을, 단순한 가사 노동을 넘어선 예술적, 명상적 행위로 인식하며 섬세하게 돌본다. 작가는 이를 두고 "근원적 장소"라 말한다. 이 이불보들은 혼례 이불과 수의, 탄생과 죽음, 사랑과 고통, 희망과 절망, 수면과 각성, 환생과 꿈의 순환을 담고 있다. 이는 여성의 삶을 섬세하고도 포괄적으로 조망하는 장치이다.

  • 설치된 이불보는 첫 번째 열과 마지막 두 줄을 제하고는 모두 쌍을 이루어 걸려 있으며, 전략적으로 배치됐다. 설치 공간에 들어서면, 마치 한 폭의 그림 속에 들어가는 듯한 경험이 시작된다. 미로를 연상시키는 공간을 통과하면서 관객은 스스로 길을 선택해야 했고, 그 동선은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일상적인 통과 의례처럼 부드럽게 조정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천장팬 바람에 너울대는 비단은 생명의 숨결인 ‘기(氣)’에 의해 움직이는 듯 보인다. 색색의 평면에 둘러싸인 관객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티베트의 만트라 독경 소리와 간헐적으로 울리는 종소리에 위안을 느낀다. 이는 어쩌면 영적인 형태의 베갯머리 대화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정교하게 배열된 거울을 통해 전달되는 이 작품은 아시아 불교의 시각을 바탕으로 한, 부드럽고 사려 깊으며, 자기 인식적인 페미니즘의 표현이다.

  • — 『아트 인 아메리카』, 2002년 9월호, 번역(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이재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