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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현시대의 글로벌 노마드

경계의 초월과 글로벌 정체성의 재구성

크리스티나 아름 석

2014

초록

  • 즉각적인 정보 생산과 소통이 가능해진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차원의 문화적 세계화가 서로 다른 집단이 모여 형성하는 공통의 익숙함 또는 문화를 가능케 했다. 이른바 ‘세계적 조화’라는 관념은 이상적이거나 순진한 의미에서의 국제적 유토피아를 의미하기보다는 널리 공유되는, 궁극적으로는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 존재 방식, 조건 및 감정에 관한 이해를 높이는 플랫폼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 한국의 개념미술가 김수자는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노마드로, 사회 속 경계, 구분, 제한적 범주를 초월하는 존재로서 그 개념을 스스로 체현해 낸다. 그녀는 다학제적이고 다면적인 예술가로서, 젠더, 결혼 여부, 사회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지리적 기준으로 개인을 규정하는 규범적 정체성을 거부한다. 김수자의 시각 언어는 바느질, 자수, 직물 등과 같이 여성과 공예에 연관된 한국의 문화적 전통 및 매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며 스스로를 전 지구적 풍경 속에 엮어 넣는다. 또한 그녀는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는 동시에 세계에 있는 요소들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섬세한 균형을 이루고자 시도하며, 서로 다른 현실들이 통합된 일련의 구조를 만들어낸다.

  • 본 논문은 김수자가 고찰해 온 개념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을 분석하며, 그녀가 정체성이라는 제약이 지닌 그림자와 무게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돌파해 나가는지를 살펴본다. 김수자는 현실 속 진실된 가치와 이야기에서 발견한 쟁점에 작업의 기반을 두고자 했으며, 글로벌 미술 시장이 야기한 상업화의 광채에 의해 망각되거나 가려진 생각을 발굴하는 데 주목했다. 또한 그녀의 신체는 성적 욕망이 투사되는 장소이거나, 1960–70년대 유럽 및 미국 페미니즘 담론이 주목했던 환상과 페티시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몸이 아니다. 오히려 김수자의 몸은 서로 다른 문화를 직조하는 바늘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바느질은 재구성과 통합을 향한 행위, 그리고 21세기에 인간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탐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김수자는 오늘날 진정한 인간 평등과 정직함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전하고자 노력하는 대표적인 여성 예술가이다. 고도로 지적이고 정제된 시각 언어를 매체로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본질적인 의도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늘 겸허함을 견지한다.

  • “바늘이 없다면 직물도 없고, 개인이 없다면 사회라는 직조물 또한 없다.”[1]

  • 초연결성과 유동성이 극대화된 오늘날의 사회는 이질적인 문화들이 서로 연결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안에서 김수자는 다면적인 여성 예술가이자 글로벌 시민, 그리고 인류를 위한 비판적 목소리의 역할을 한다. 인간의 영혼과 물리적 신체의 본질을 다루는 그녀의 작업은 시급하고도 흡입력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특히 자연 및 현실 세계와 만나고 또 교차하는 지점을 조명한다. 그녀의 작품은 인간과 그를 둘러싼 환경 사이의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관계에 대한 실존적이며 영적인 탐구이다. 또한 김수자는 형식적, 미적 특징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작업에 접근하여 독창적인 스토리텔링과 창작 방식을 실천한다.[2] 더불어 그녀는 대립과 역설을 상호 보완적이고 시적인 섬세한 방식[3]으로 조율해 내는 타고난 능력을 지녔으며, 바로 이 지점이 국제적 수준의 동시대 미술가로서 그녀를 차별화하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작업에는 공감의 태도가 깃들어 있으며, 인류 전체에 대한 깊은 관심을 담고 있다.[4] 결국, 김수자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는 ‘초월(Transcendence)’이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경계를 초월하는 동시에, 제한적이거나 이분법적 범주 너머의 정체성을 다시 구축하며 새로운 문화적 혼종성을 구현한다.

  • 이 글에서는 김수자가 공존의 본질적 균형을 어떻게 여러 층위에서 이끌어내는지 살펴볼 것이다. 먼저, 그녀의 초기 형식 및 미적 특징에 관한 물음을 살펴보고, 이어서 젠더, 국적, 정체성에 대한 개념적 탐구를 중심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후자의 관심사에 천착한 그녀의 작업은 결국 인류가 공유하는 인식을 대화하듯 일깨우고, 인간의 영혼, 몸, 그리고 자연의 통합을 이뤄낸다. 이 글은 김수자의 작업이 지닌 복합적인 층위들을 살펴보고 그것들이 어떻게 다채로운 표현의 도구가 되는지를 보여주며, 작가가 현시대의 글로벌 노마드 예술가로서 마주한 독자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언어가 인류 전체와 공명하는 방식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는 김수자의 비디오 연작 <바늘여인(A Needle Woman)>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해당 연작은 1999–2001년 사이에 처음 만들어졌고, 두 번째 작업은 2005년에 제작되었다. <바늘여인>의 마지막 작업은 2009년 파리 라 뉘 블랑쉬(La Nuit Blanche) 축제의 커미션 의뢰로 제작되었으며, 파리 시청 – 오텔 드 빌(Hôtel de Ville)의 외벽에 영사하는 방법으로 전시된 바 있다. <바늘여인> 연작에 관한 분석은 19세기 후반 한국 미술사에서 비롯한 사진 자료와 다른 중요한 시각 자료들과 함께 살펴보며 논의할 것이다. 김수자의 표현 방식은 시간이 흐르며 변화했지만, 인류를 위한 목소리이자 인간 정신의 창, 그리고 지금 현재 진정한 글로벌 노마드의 역할에 대한 작가의 주된 관심사와 개념은 일관되게 지속되어 왔다.

김수자의 초기 형식적·미적 탐구

  • 김수자의 작업은 단계적으로 변모해 왔다. 하나의 예술적 실천과 미적 탐구가 그 다음의 시도로 이어지면서 그녀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토대로 기능한다. 최근에는 캐나다의 벤쿠버 아트 갤러리(Vancouver Art Gallery)에서의 회고전 《김수자 / 펼침 (Kimsooja / Unfolding)》(2013년 10월 11일~2014년 1월 26일)을 통해 김수자의 작업을 연대기 순으로 통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해당 전시는 그녀의 작업 세계를 세 가지의 초점에 맞춰 전시했다. 첫 번째는 시간, 기억, 이동에 관한 작가의 관심을 조명하고, 두 번째는 인간의 몸과 물리적·물질적 세계와의 관계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는 색채, 빛, 형태의 표현적이고 개념적인 속성에 관한 작가의 깊은 사유에 집중한다.[5]

  • 김수자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페인터(painter)’로서의 정체성은 그녀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출발점이 되었다.[6]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타블로(tableau)의 개념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예술과 삶의 교차점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녀에게 예술은 자신의 삶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포괄하는 실제 삶과 단절된 패러다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7] 김수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이불보를 꿰매던 경험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이 일화는 그녀의 생각과 감수성, 그리고 행위가 하나로 통합되는 깨달음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녀의 예술적 신념을 형성했다.[8] 그녀의 초기 작업 <하늘과 땅 The Earth and the Heaven>(1984)(도 1)의 미적 특징을 살펴보면, 작가가 추상표현주의 회화, 콜라주, 레디메이드(ready-made)의 유산을 참고하고 있으며 자신이 ‘레디유즈드(ready-used)’라고 일컫는 기성 재료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표현 양식을 반영한 것을 알 수 있다.[9] 천의 사용과 바느질 행위는 일견 페미니스트적이고 행동주의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작가의 말에 따르면 “여성의 가사 노동을 바탕으로 한 방법론은 오히려 현시대의 회화와 타블로 개념에 대한 아방가르드적 행동”으로 모더니즘 전통에 기반한 비판적 성찰을 꾀한 것이다.[10]

  • 김수자는 바늘을 ‘캔버스’나 천의 표면을 뚫고 나아가는 도구로 개념화함으로써, 예술과 삶을 나누는 경계를 돌파할 수 있었다. 이에 관해 미술사학자 서영희는 마치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가 단색의 캔버스를 칼로 베는 행위를 했듯 김수자도 수 세기에 걸쳐 구성된 회화의 표면을 관통하는 방식으로 더 이상 이차원의 환영적 화면에 갇히지 않고, 그녀의 ‘바늘’이 천을 관통하여 이루는 3차원의 입체적 공간, 더 나아가 4차원의 구조를 창조하는 과정에 관여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바느질이라는 행위가 예술과 삶을 엮어내기에 김수자는 새로운 현실과 경험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11] 이로 말미암아 천과 바느질 행위는 김수자가 자신을 포함한 인류를 표현하는 형태가 되었다.[12] 1992-1993년 뉴욕 MoMA PS1에서의 레지던시는 작가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다. 이때 그녀는 헌 이불보, 그중에서도 한국 전통 문양을 지닌 이불보를 레디유즈드 오브제[13]로 채택하여 그것을 하나의 미적 형식으로 제시하고, 의미를 재부여했다. 당시 고향을 떠나 있었던 김수자는 그녀의 대표 작업으로 알려진 <보따리>[14](도 2)를 구상하게 되었다. 해당 작업에서 2차원 평면의 천인 ‘타블로’는 그 안에 헌 옷을 채우고 매듭을 묶는 행위를 통해 3차원의 조각적 형태로의 변환을 담게 된다. 이처럼 몸과 기억을 감싸는 행위는 김수자의 작업에 있어서 진정한 형식적·미적 표현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녀의 예술적 실천에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 김수자의 초기 형식 탐구와 새로운 표현 방법의 창출은 1970년대에 한국 현대미술을 선도했던 단색화 미술가들과 유사한 면이 있다. 이들은 개인적 경험에 기반하여 새로운 표현 양식을 모색했으며 한국적 모더니즘의 절실한 필요성을 절감했다. 김수자는 한국미술사의 계보 안에서 또 다른 예술적 표현 양식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존재감을 지닌다. 이에 빗대어 봤을 때 단색화 작가들은 오로지 현대 회화의 영역에서 한국적 정체성을 정의하려 했다. 예를 들어, 단색화 작가 하종현은 물질의 물리적 성질에 주목했다(도 3). 그는 물감과 표면이 맞물리게 될 때까지 리넨 천의 앞뒤로 물감을 밀어 넣고 빼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물질과 표면 사이의 경계를 허물었다. 김수자는 물질과 형식에 관한 고민을 넘어서면서 단색화 미술가들이 ‘표면’에 관해 사유했던 범위를 넘어선다. 그녀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예술가와 어떤 창작물 사이에 새롭게 성립된 관계, 그리고 형식적 구조와 미적 수준에 관한 새로운 고찰이 표현의 도구로 사용되는 방식에 있다. 이러한 독특한 표현 방식은 김수자로 하여금 예술 창작을 현실과 밀접하게 얽힌 행위로 수행할 수 있게 하며, 여기서 예술과 현실은 서로 다른 영역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 나아가 김수자의 작업이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 3차원의 구조 이상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되면서 예술가로서 그녀의 역할은 더욱 심화되었다. 김수자의 퍼포먼스는 성적 함의가 강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 혹은 이불의 작업(도 4)처럼 여성의 신체를 착취의 장 또는 극단적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스펙트럼에 있다. 오히려 김수자는 “작가를 지배적인 행위자로 간주하는 관념을 ‘무위(non-doing)’와 ‘만들지 않음(non-making)’의 방법론으로 전복시킴으로써, 영웅주의나 폭력성 또는 공격성 없이도 비판적 지점을 드러내는”[15] 방법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김수자에게 있어 예술 창작은 명상적인 여정이 되었으며, 천의 표면을 뚫고 나아가는 바늘의 반복적 여정과 다양한 환경을 꿰매고 지나는 은유적 바늘로서의 자신의 몸을 통해 절대적인 자각 상태를 만들어낸다. [16] 이러한 철학은 물론 선불교 사상과 동양 철학의 전통, 그리고 자신을 비우는 행위로서의 명상 수행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마음과 몸과 영혼을 연결하여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게 되는 행위로 이어진다. 실제로 김수자는 <바늘 여인> 연작이 담는 경험을 취약한 상태에서 집중되고 명상적이며 깨달음을 얻은 상태로 전환되는 중대한 변화의 경험이라고 설명한다.[17] 이러한 방식으로, 김수자의 작업은 결과물보다는 창작 행위와 그 과정에 집중하며, 객관적 서술보다는 주관적 경험을 조명한다.[18]

  • 따라서 김수자의 예술에서는 물리적, 물질적, 영적 차원이 일치하며, 창조와 비창조, 행위와 비행위의 공존 또한 두드러진다. 김수자는 특정 형식이 오직 예술의 차원과 목적에서만 고려되는 본질주의적 접근을 넘어선다. 그 대신, 형식과 미적인 것을 탐구하는 자신의 다변적 예술적 방법론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신, 신체, 영혼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고자 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더불어 <바늘여인>을 통해 14개의 도시에 방문하여 여러 다른 인간의 현실들뿐 아니라 ‘인류의 조건들’을 마주하고 동기화 되어보고자 했으며, 그 예술적 여정은 여러 민족적, 지정학적 위치, 경제적, 문화적, 종교적, 정치적 긴장 속에 존재하는 차이에 관한 날카로운 성찰을 이끌어낸다.[19]

김수자의 유목적 존재의 문화적·젠더특정적 뿌리

  • 기본적으로 김수자는 전통적인 인식론을 넘어, 익숙하고 예상 가능한 범주들을 초월한다. 이와 같은 초월적 특성은 성과 이름의 구분 없이 단 하나의 이름으로 존재하는 그녀의 이름, ‘김수자(Kimsooja)’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김수자는 이와 같은 한 단어 이름을 “아나키스트의 이름”이라고 공표한 바 있다.[20] 이러한 저항적 행위는 이름이 지닌 젠더, 결혼 여부, 사회정치적·사회경제적 지위, 문화적, 지리적 정체성이라는 구성에 대한 거부를 상징한다. 이와 같은 규범들과의 불화는 그녀의 존재를 자유롭게 만들며, 시간, 장소, 사상을 가로지르며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미적으로 고려했을 때, 그녀의 작품에는 그녀가 여성이며 한국 국적을 가졌다는 점과 분명 연결되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 김수자의 작업 세계를 살펴보면 젠더와 관계된 여러 암시와 연계점을 발견하게 된다. <만남 - 바라보며 바느질하기(Encounter – Looking into Sewing)>는 그녀가 여성 예술가로서 수행하는 역할을 논의하는 데 적절한 전환점이 된다(도 5). 이 강렬한 사진은 전통적인 이불보[21] 여러 겹에 완전히 쌓여 가려진 여성의 형상을 암시하는데, 이는 여성 정체성의 다층적인 복잡성을 포착하며, 그 사회적 구성에 의문을 제기할 뿐 아니라 전통적인 젠더 패러다임을 넘어선다. 고무신[22]을 신은 천으로 싸인 여성의 형상은 전통을 의미하며, 이는 젠더 역할의 구분에 있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을 나타낸다. 그러나 동시에 이 고무신을 신은 발은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고 있으며, 이는 현재 여성들이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움직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김수자의 사진 작업과 조선 말기 한 여성의 외출 복장을 담은 사진(도 6)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무슬림 여성이 착용하는 부르카(burka)와 다르지 않게, 19세기 말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몸과 머리를 가리기를 요구받았다. 여성의 신체를 감싸는 천의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형태는 젠더 정치학, 사회 내에서의 젠더 역할, 그리고 여성의 권리에 대한 문제를 시사한다.

  •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담론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글로벌 동시대 미술의 주요 쟁점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김수자는 ‘페미니즘’이라는 범주와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23] 그녀는 자신이 페미니즘 운동의 전통이나, 신체를 성적이거나 폭력의 장으로 보는 관점에서 무대 위에 오르거나 그로테스크한 행위를 퍼포먼스로 선보이는 실천 방식 안에서 작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24] 특히 <보따리>(도 2)는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작업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천이라는 소재와 바느질 행위, 또한 보따리를 싸는 전통은 역사적, 기능적, 미적인 면에서 여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가정에서 여성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는 한편, 소외된 주부로서의 현실을 암시하는 듯하다.[25]

  • 김수자는 <보따리>의 형성에 영감을 준 것은 뉴욕 아방가르드 미술의 조류였다고 회상하지만, 귀국 후 단순히 미적인 조건으로 여겼던 ‘레디유즈드’ 오브제의 형태가 실은 한국 사회와 그 속의 여성의 역할과 관계되어 있음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26] 이러한 사회문화적 문제와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에 더불어 김수자의 <보따리>가 비평적 독해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작업은 육체적 몸, 여성이라는 작가의 개인적 조건, 더 나아가 한국인 여성, 그리고 인간의 운명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녀는 현실의 단편들을 강화하는 기제로 그녀의 ‘레디유즈드’ 오브제를 사용했으며, 헌 옷을 감싸는 <보따리> 작업을 만들게 되었다.[27]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며 김수자의 작품을 살펴봤을 때 작가가 가진 여성적 감수성과 여성과 관련된 시각적 모티프들을 작가의 표현 도구로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수자가 여성 예술가로서 시각문화에 기여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녀는 젠더 정체성과 그 구성을 초월하는 자연과 인간의 현실 사이의 물리적이고 영적인 영역의 상호작용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녀의 예술은 작가 자신과 관람자 모두에게 현상학적 경험을 선사하며, 여성적 미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 언제나 그렇듯, 김수자는 상반된 움직임 혹은 철학 사이를 중재한다. 그녀는 형식에 대한 관심과 창작에 대한 문제의식을 영적인 차원과 결합시키는데, 이러한 구도는 예술을 작가 자신과 관람자를 위한 ‘경험’으로 전환시킨다.[28] 인간의 몸, 정신, 대지 사이의 복잡한 연결성에 대한 섬세한 인식과 자각을 바탕으로, 그녀는 실존주의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바늘 여인>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몸과 정신, 자연 사이에 어떻게 조화와 균형, 통합이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 비록 김수자의 미학이 여성적 감수성과 한국의 문화적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녀는 독창성을 찬양하거나 고유한 ‘내적 자아’ 혹은 ‘정체성’을 탐색하는 여정을 주된 목표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김수자의 시각적 뿌리는 표현을 위한 도구가 되며, 그녀의 서사에 진입하는 통로가 된다. 김수자 작업의 보편적 매력과 심도 있는 비판적 관점은 창작에 대해 명상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 기인하며, 그녀는 인류에 관해 사유해 보도록 하는 장을 제공한다. 그녀의 작업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으며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조건을 자각하도록 하는 하나의 보편적 관점을 제공한다.

경계를 초월하기

  • 근본적으로 김수자는 인간 존재의 본질로 돌아간다. 그녀의 작업은 단순히 미적 대상으로서의 목적을 넘어서, 우리가 세상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29] 그녀는 예술이 우리의 존재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과 어떻게 진정으로 얽혀 있는지 통찰을 제공한다. 따라서 김수자는 글로벌화된 세계 속에서 정체성과 연계된 비판적 담론을 촉발하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물론 그녀의 작업은 한국이라는 문화적 맥락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특정한 지역적 배경을 넘어서 보다 광범위하게 전 지구적 관객층에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김수자의 예술은 국경이라는 경계가 무의미한 인간의 표현과 기본적인 감정들에 관한 것이다.

  • 세계화라는 주제를 중심에 두고 있는 작업, <바늘여인>(도 7) 에서 김수자는 10년에 걸쳐 전 세계 15개 도시 속에 자신의 몸을 위치시킨다. 해당 연작의 작업들에는 작가의 몸, 즉 신체적 존재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이 몸은 군중 속에 섞이기도 하고 때로는 눈에 띄게 도드라지기도 한다. 그녀는 여러 도시들을 관통하며 다양성을 경험하는 '바늘'에 자신을 비유하며,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직조물(tapestry)을 이룬다고 설명한다. 그녀는 너무나 친숙한 세계 시민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외국인의 모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을 제시하면서도 “완전한 부동성과 영원한 움직임”을 조화시키길 바라는 작가는 어디에나 있는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30] 이와 같은 개념은 세계화 속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김수자는 자신의 작업을 통해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재고해 보도록 한다.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가의 몸을 마주했을 때 그 반응은 도시마다 상이하다. 이때 그녀 자신의 정체성도 의문에 부쳐진다. 지역 고유의 문화를 체현하는 동시에 부정하고, 또 세계적, 사회적 직물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면서도 그 안에 스며들고자 하면서 말이다. 김수자는 한국적 뿌리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이러한 조건은 조각보처럼 이어 붙여진 그녀의 정체성에 적합한 형태로 더해진다. 그것은 ‘보따리’처럼 세계를 관통하며 그녀의 피부를 감싸고, 또 그녀의 몸을 감싸는 요소가 된다.

  • 〈바늘여인 – 도쿄〉(도 8) 에서 사람들의 움직임과 속도는 관객에게 불안하고 혼란스러우며 급작스럽고 충돌하는 인상으로 다가온다. 끊임없이 많은 인파가 카메라 앞을 지나치고, 자동차와 구급차의 불빛이 저 멀리 초점 밖에서 깜박거리며 지나간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바뀌고, 각 개인은 단 몇 초간만 화면에 포착된다. 이를 바라보면서 관람자는 단조로운 반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무리 속에 개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눈은 곧 지치고, 피로해지며 불안정해진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광경 속에서 김수자는 명상하듯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거의 아무도 그녀를 인지하지 않고 지나친다. 김수자의 존재가 고정축이 되면서, 그녀의 등 뒤에 흘러내리듯 놓인 긴 머리카락은 조형적으로 몸을 완벽한 대칭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녀의 존재는 군중의 흐름과 총체적 경험 사이를 가로지른다. 수도자 같은 그녀의 복장은 과시적이지 않지만, 끊임없는 움직임 속 유일하게 정지해 있는 그녀는 군중 속에서 오히려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 그에 반해 〈바늘여인 – 기타큐슈〉(도 9)에서는 작가가 바위 위에 수평으로 누워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도쿄가 가진 대도시의 혼잡함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풍경으로, 기타큐슈에서 김수자는 자연과 하나가 된다. 영상은 부동의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상태와 정적 속에서 흘러가고, 그 과정에서 작가의 몸과 자연환경의 구분은 사라지고 하나의 통합된 장면이 되는 듯하다. 바위 위에 누워있는 작가의 몸의 윤곽선을 넘어서 관람자는 몸과 바위와 하늘이 통합된 하나의 장면을 바라보게 되고, 우리의 정신이 이 구체적인 시공간에 명상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김수자는 이 퍼포먼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이라는 결과물보다는 자신이 ‘자아’를 경험하게 되는 경험과 자각의 과정이라고 밝힌다.[31]

  • 2005년 김수자는 총 6곳의 새로운 도시에서 영상을 촬영하며 <바늘여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도쿄의 분주한 거리에서 그녀가 가졌던 존재감과 비교했을 때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에서 촬영한 영상(도 10) 속 군중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두 번째 세트에 포함된 이 작업에서는 행인들이 작가의 몸과 어떠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를 더욱 잘 드러내기 위해 고의적으로 영상의 속도를 늦추는 식으로 편집되었다.[32] 영상이 시작되고 머지않아 관객은 한 노년의 남성이 김수자 앞에 서서 장난스럽게 반응을 유도하려 하는 모습과 화면의 오른편에는 또 다른 남성이 거리를 두고 한참 동안 그녀를 쳐다보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영상이 재생되는 내내 사람들은 대부분 김수자를 주목하며 그녀의 주변에서 걸음을 늦추는 반응을 보인다. 이처럼 <바늘 여인>은 일종의 사회학적 실험처럼 기능하기도 하면서 쿠바인과 일본인이 보인 반응의 차이처럼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상이함을 보여준다.

  • 김수자는 두 조각의 천, 두 개의 대륙, 혹은 두 개의 의식 상태를 “흔적 없이 연결하는 바늘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33] 김수자를 혼종적 정체성을 가진 세계적이고 유목적인 예술가로 만드는 것은 바로 세계를 향한 그녀의 개방성이다. 그녀는 서로 다른 문화를 매끄럽게 지나며 엮어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되 더 중요하게는 지나온 그 세계를 흡수하는 데 주력한다. 동시에 그녀는 바느질하고 직조하는 행위를 통해 느끼는 일치감에 주목하는데, 이것을 그녀는 내적 자아를 비우고 또 연결하는 과정과 동일시한다.[34] 이와 같은 직조의 과정은 <바늘여인>에서 반복적 행위를 지속하는 일종의 명상과 성찰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김수자의 예술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질문하게 한다. 그녀의 작업이 가진 힘은 여러 층위에서 사유를 자극하고 촉발하며, “인간이 인간이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들에 대한 자각”을 일군다는 점에서 명상적 실천과 유사한 지향점을 지닌다.[35]

결론

  • 김수자는 사회적, 미술사적 구조와 분류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변화의 자유로운 주체로 작동한다. 김수자는 특정한 미술 운동이나 양식, 집단에 귀속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작업 방식과 철학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인식론을 제안한다. 김수자는 자신의 문화적 뿌리와 여성적 감수성을 개인사의 흐름 속에서 융합하며, 인류와 인간 정신에 대한 깊은 공감을 담은 독창적인 언어를 구축해 왔다. 김수자의 예술은 우리가 세계를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한다. 이는 그녀 스스로가 자신의 몸으로 세계를 감각하며, 예술 매체나 퍼포먼스 그 자체, 그리고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주변 세계를 온전히 경험하기 때문이다.[36]

  • 세상에는 이미 수많은 갈등과 부정성, 비판, 문제가 존재한다. 김수자의 작업에서는 기존의 체계를 비난하는 방향의 부정적인 에너지는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작가의 믿음이 드러난다. 실패와 불의에 집중하기보다는, 김수자는 가장 인간적인 일을 택한다. 그녀는 인류에 대한 깊은 공감을 품고 있으며, 그녀의 예술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보편적 인간 정신에 다가가고자 하는 진심 어린 몸짓이다. 김수자는 문제와 현실의 다양한 국면들에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방식으로 응답한다. 바로 마음을 여는 방식이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지켜보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음을 여는 경험을 불러일으키며, 세계를 공통의 감각으로 이해하고 체험하게 만든다. 김수자의 작업은 삼라만상에 항상 존재해 왔지만 결코 ‘발견된 적 없는’ 것을 새롭게 환기시키며, 회화적 방법론을 넘어 “삼라만상 속에 내재된 시각적 실재”를 드러낸다.[37] 마지막으로 김수자는 예술이 곧 섬세하게 조율된 세계로서 우리가 “문화의 간극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우리의 자리, 타인의 자리, 예술의 자리”를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38]

  • [Note]
    [1] Wendt (2013), 60.
    [2] Kimsooja (2013), 84.
    [3] Jin (2012), 157.
    [4] Wendt (2013), 58.
    [5] Bartels (2013), 11.
    [6] Kimsooja (2013), 97.
    [7] Wendt (2013), 55.
    [8] Yoo (1994).
    [9] Yoo (1994); Kimsooja (2013), 84.
    [10] Kimsooja (2013), 84.
    [11] Suh (2013), 31.
    [12] Suh (2013), 28.
    [13] Kimsooja (2013), 84; Brewinska (2003).
    [14] 보따리는 침구류나 의류를 보관하거나, 개인 물품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길 때 사용하는 등, 여성이 다양한 일상적 용도로 사용하던 한국 전통의 천으로 매듭 지어 싼 꾸러미이다.
    [15] Kimsooja (2013), 88.
    [16] Kimsooja (2013), 89.
    [17] Ibid.
    [18] Jin (2012), 43.
    [19] Kimsooja (2013), 89-90.
    [20] Kimsooja (2003).
    [21] 김수자는 보자기(전통적으로 선물 포장, 결혼, 불교 의식 등에 사용되는 한국의 다채색 천) 대신 이불보를 사용하는 것을 의식적인 예술적 기준으로 삼아 작업에 활용해왔다. 보자기는 물건을 포장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되지만, 이불보는 포장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주로 결혼하는 부부에게 주는 선물로 제작된다. 일반적으로 집 안에서 가장 큰 천이기 때문에, 이불보는 이삿짐을 싸는 데에도 활용되며, 큰 물건이나 옷, 생활용품 등을 감쌀 때 유용하다. 보자기와 보따리는 용도와 형태에서 명확히 구별되지만, 김수자의 작업에서 이불보는 신체와 침대를 상징적으로 연결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여기서 침대는 출생, 결혼, 사랑, 죽음이 교차하는 장소로 이해된다. 김수자의 작업에서 보따리를 사용한 시기와 민속 오브제, 농기구, 가정공간의 창틀이나 문틀 등 한국의 일상 속 사물을 다룬 작업들의 시기를 분명히 구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후자의 오브제를 재료 삼은 그녀의 작업이 시작된 시기는 197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는 다른 작가들의 활동과 비교하는 맥락에서도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22] 고무로 만든 전통적 스타일의 신발.
    [23] Reilly (2007).
    [24] Kimsooja (2013), 83-84; 87-88; Pollack (2007), 123.
    [25] Jin (2012), 39.
    [26] Kimsooja (2013), 84.
    [27] Ibid.
    [28] Jacob (2013), 150-151.
    [29] Wendt (2013), 58. This is derived from the theory of connective aesthetics articulated by Suzi Gablik in The
    Reenchantment of Art
    (1991).
    [30] Zugazagoitia (2003), 38-39; Adolphs (2008).
    [31] Martinez (2012).
    [32] Kimsooja (2013), 92.
    [33] Zugazagoitia (2003), 15-16; Tae (2000).
    [34] Suh (2013), 29.
    [35] Morgan (2013), 116-118.
    [36] Kimsooja (2013), 96-97.
    [37] Kimsooja (2013), 97.
    [38] Morgan (2013), 120.

  • — 싱가포르 「사진 속 여성」 심포지엄 발표 논문, 2014년 3월 28–29일, 번역(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임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