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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2003년 3월 24일, 뉴욕의 경찰이 반전 시위에 참가한 140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뉴욕시 5번가 거리에 누워 교통을 마비시켜 도시를 정지 상태로 만들었다.
시위대는 바닥에 등을 댄 채 부동의 자세로 누워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전쟁에서 희생된 이라크 민간인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경찰은 그들을 들어 올려 차에 태웠고, 그 과정에서 시위대의 몸으로 가득한 거리 위를 천천히 이동해 나갔다. 이른바 이 “다이인(die-in)” 시위는 수백 건의 크고 작은 시민 불복종 시위 중 하나로 미국 주도로 일어난 일어난 이라크 침공에 대한 행동이었다.
시민 불복종이란 기존의 법질서를 자명하고 지속적으로 위반하는 행위로 구성된다. 이러한 교란 행위는 의도적이며 그 범위가 제한적이다. 이와 같은 시민 불복종은 적절한 질문에 비유해 볼 수 있다. 어떤 체제에서 가장 조심스럽게 선택한 요소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을 때, 그 대상이 비록 합법적으로 승인되었다 하더라도 불복종 행위는 표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것의 거짓을 드러낸다.
시민 불복종의 특별한 형태는 그 당시에는 그럴 권리가 없었던 공공장소의 일부를 일시적으로 점거하는 시위라는 점에 있다.
여기에는 1960년대 미국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서 대중화된 “연좌 농성(sit-in)”이 포함된다. (1960년 2월 1일 , 이른바 “그린즈버러 포(Greensboro Four)”로 알려진 흑인 시민 4명이 울워스 백화점의 백인 전용 바 카운터에 앉았던 것이 연좌 농성 형식의 상징적인 기원이다.) 이후 연좌 농성은 1968년 학생 운동에서도 채택되었으며, 다르게는 “비-인(be-in)”의 형태로 특정 장소에 (창의적으로) 함께 존재하는 히피들의 대규모 모임(가장 유명한 사례는 1967년 1월 14일 샌프란시스코 골든 게이트 공원에서 열린 바 있다)에서부터 공간 점거(occupation of premises)에 이르기까지를 아우른다. 이러한 행위들은 특정 공간을 점거하여 그와 결부된 권리들을 분쟁의 영역으로 이끌어내도록 압박을 가하는 방법인 것이다. 또한 규범적인 것에 대한 저항으로써 공간 점거는 그 공간과 그 안에 자리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결정권을 획득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뉴욕의 “다이인(die-in)” 시위는 참여자가 차량에 치일 위험을 극적으로 보여주지만, 궁극적으로 그 핵심은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가 충돌하는 데 있다. 그 이미지 중 하나는 뉴욕이라는 장소, 즉 물질적 부를 상징하는 거리 위에 누운 시위대의 구체적인 이미지이며, 다른 하나는 가난한 국가에서 민간인이 전쟁에 희생되었음을 알릴 때 보게 되는 상투적 이미지인 시체 더미의 이미지이다. 즉석에서 만들어진 무대 위에서의 연극적 죽음을 통해 폭력을 거부하는 이 행위는 최후통첩과 같은 힘을 갖게 된다.
아무도 던지지 않는 돌처럼 조용히 지속되고 있는 모습을 담은 김수자의 작업은 필연적으로 여러 형태의 상징적 행위와 공명한다. 이 행위는 시민 사회의 능동적 구성원들이 미디어가 송출하는 전쟁의 정의에 대한 반응과 연관되어 있다. 이들이 전쟁을 정의하는 방식은 군사적 은유를 통해 표현한 움직임 또는 정치인들이 미디어를 통해 하달하는 축약적 발언들과 같다. 이 모든 것은 폭탄, 전단지, 구호 물자처럼 항상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이러한 일방향적 운동, 곧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운동을 가장 설득력 있게 드러내는 이미지 중 하나는 한 트럭을 찍은 사진이다. 구호 요원들이 트럭 위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뻗은 손 위로 식량 꾸러미를 던지고 있고, 트럭의 지붕 위 맨 꼭대기에는 기자들이 서서 카메라를 아래로 겨누고 있다. 트럭 위에서 촬영된 이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에 어떻게 보일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친절한 시청자들이 다른 이들의 손을 통해 궁핍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건네주는 장면일 것이다.
김수자는 자신의 존재를 하나의 틈으로 제시한다. 그녀가 보여주는 부동의 “존재-하기(being-in)”는 점차 관객의 시야에서 사라지며, 그 장소 자체처럼 익숙하고 자명한 것이 된다. 여기서 한 장소에 존재한다는 것은 곧 그 장소가 되는 것이다. 물결이 돌을 감싸버리듯, 사각지대를 우리의 눈이 메우듯이. 어떤 장소에 머무름으로써 존재는 그 장소에 대한 권리를 획득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와 성문화된 법과 같이 장소의 외부에 위치한 특별한 권한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불확실한 시간과 공간, 움직이는 도시(cities on the move)에서 일정 시간동안 한 공간이 그 자체로 하나의 장소가 된다. 이는 (국경을) 가로질러 바느질하고 여행하기, (거리에서) 구걸하기, (바위) 위와 (하늘) 아래에 눕기, (나무) 아래에 앉기, (행진하는 군중) 앞에 서기를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또 위와 아래를 꿰매고, 자신을 이용해 꿰매며, 사라지는 바느질, 실 땀이 겉에 보이지 않는 공그르기 바느질을 통해서.
최전방에서의 전형적인 TV 보도: 많은 고생 끝에 기자가 현장에 도착한다. 피곤하지만 기쁜 얼굴이 그의 보도가 진실임을 확인해준다. 헬멧과 방탄 조끼를 착용한 기자가 마이크를 들고 있다. 그는 종종 군복과 같은 위장복 차림을 하고 있지만, 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신뢰해야 한다. 기자는 우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그의 뒤에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거나, 혹은 사건의 서막이나 결말이 일어나고 있다. 차량, 군인들, 민간인들, 불타버린 폐허, 붕괴된 장비, 점령된 다리, 몇몇 아이들의 움직임. 화면 하단의 자막은 장소에 대한 모든 의심을 소거한다. 구체적인 지명과 사람이 그곳에 실제로 있으며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의심은 없다. 이것이 바로 현존이며, 우리는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촬영한 일련의 영상에서 김수자는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고정된 카메라는 움직임 없이 서 있는 한 인물의 뒷모습을 촬영한다. 이 검은 수직 형상은 화면 중앙의 시야를 부분적으로 가린다. 화면의 가장자리에는 군중이 모여 있으며, 그것은 프레임의 가장자리와 중앙의 어두운 형상 사이로 단편적으로 보이며, 그 형상에 초점을 맞추기가 어렵다. 여기서 나타나는 장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이 형상의 인물에게 “위임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 인물의 얼굴을 볼 수 없기에 그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눈을 뜨고 있는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는 그저 완강한 존재감으로, 우리의 시야 속에 생긴 하나의 틈으로, 우리가 온전히 보고자 하는 이미지와 우리 사이에 서 있다. 우리 앞에 서 있는 그 사람은, 더 많이 보기 위해 밀어내고 싶은 존재다. 김수자는 관람자로 하여금 결코 완전히 충족되지 않을 부분적 인식의 상태에 머물게 한다.
김수자의 작업은 1960–70년대 개념미술에서 인간의 현존을 다루는 방식과 정치적 영역에서 특수한 맥락을 고려하여 인간의 현존을 연출하는 다양한 시민 불복종 시위 형식 사이의 유사성을 떠올리게 한다.
1970년, 에이드리언 파이퍼(Adrian Piper)는 자신이 “예술의 객체가 되기로” 결심하며 작품으로서의 오브제 제작을 중단했다. 그녀는 다양한 공공장소(거리, 바, 버스 정류장 등)에서 수행된 일련의 퍼포먼스에서 자기자신을 일상의 질서 어딘가를 교란시키는 “페르소나”로 이용했으며, 그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 이 타자의 출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했다. 〈촉매과정 III(Catalysis III )〉(1970)에서 파이퍼는 하얀 페인트로 뒤덮인 옷에 “WET PAINT(젖은 페인트)”라는 팻말을 달고 백화점에 들어섰다. 파이퍼가 만들어낸 이러한 상황은 흑인 예술가가 폭력을 은폐하는 미학과 관습의 왜곡된 영역에 개입하는 직접 행동을 보여준다.
김수자 또한 폭력의 가능성에 맞서서 자신이 채택한 인격체(혹은 페르소나)를 통해 대응한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촬영된 〈구걸하는 여인(Beggar Woman)〉에서 김수자는 길가에 구걸하는 자세로 손을 내밀고 앉아 있다. 처음에 그녀가 내민 손은 비어 있다. 누군가가 그 위에 동전을 올려놓고, 손은 닫히지 않은 채로 있어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갈취해 간다. 이와 같은 미세하고 세부적인 상황에서 금전과 연관된 의도와는 별개로 신뢰와 책임의 문제가 드러난다. 구걸하는 여인의 손은 돈이 경유하는 일종의 중간 지점 또는 장소가 된다. 그 손은 선물을 받아들이고 또 내어준다. 구걸하는 이 인물은 특정한 어떤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 설득과 저항의 게임과 결부된 일반적인 구걸 행위에서 벗어난 형태로 김수자는 관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녀 자신을 둘러싼 하나의 경제를 작동시킨다. 김수자의 작업은 항아리에 585달러를 담으며 시작되었던 리 로자노(Lee Lozano)의 〈리얼 머니 피스(Real Money Piece)〉(1969)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로자노가 만난 사람들은 그 항아리에서 돈을 꺼내거나 추가할 수 있었고, 그와 연결된 상황, 관계자의 성명과 관련 금액은 기록되었다. 내부에서부터 경제를 전복하는 경제적 순환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만약 사물에 대한 본질적 자기 의문이 미니멀리즘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데니스 오펜하임(Dennis Oppenheim)의 말처럼 그것은 “감각적 긴장을 사물에서 장소로 이동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자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이동을 촉발시킨다. 그녀의 작업을 바라보는 이의 주의는 사물에서 장소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녀는 관객의 주의를 이끌어 자신이 있는 자리로 온전히 옮겨놓는다.
— 자헨타 갤러리(Zacheta Gallery) 전시 도록,『김수자』2003, 번역(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임서진
아담 심칙(Adam Szymczyk): 1970년 출생. 큐레이터이자 평론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바르샤바의 폭살 갤러리 재단(Foksal Gallery Foundation)의 공동 설립자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2003년부터 쿤스트할레 바젤(Kunsthalle Basel) 관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