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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한국의 미술가 김수자에게는 아직도 대낮처럼 선명한 기억 하나가 있다. 한국 여인들이 흔히 하던 대로 이불보를 꿰매던 어머니를 도와 바느질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바늘이 천을 꿰뚫은 순간 전율이 그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천을 꿰매자 온 우주의 에너지가 바늘 끝에 모여든 듯했고, 자신은 바늘의 순환 운동이 자아낸 에너지의 통로가 되었으니, 바늘이란 상처를 내는 사물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봉합하여 아물게 하는 것이었다.[1] 이 이미지는 직물과 결을 면밀히 살피고, 예술과 젠더와 문화 속에 존재하는 감각과 상징과 구조를 탐색하는 김수자의 작업 세계를 형성한 토대라고 볼 수 있다.
<빛의 직조(Weaving the Light)>는 프레데릭스베르(Frederiksberg) 미술관이 운영하는 지하 예술 공간인 시스테르네(Cisternerne)를 위해 만든 작품으로, 코펜하겐의 쇤데르마르켄(Søndermarken) 공원 지하에 자리한 축축하고 컴컴한 저수실 안으로 무지갯빛 패턴들이 춤을 춘다. 김수자의 이 몰입적인 설치 신작을 체험하면, 바늘과 실로 사사로이 집안일을 하다 천과 마주했던 전율의 기억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개념미술가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작업 세계를 꿰뚫는 선명한 실가닥이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세계의 직조 구조에 드러난 가시적 교차점을 탐색해 온 김수자의 작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궤적을 따라가 보려 한다.
<빛의 직조>라는 제목은 상징적 의미를 구체적 차원과 추상적 차원에서 서로 엮어내는 김수자 특유의 작업 성격을 잘 보여준다. 제목은 물질적이면서 정적인 것과 비물질적이면서 과정적인 것의 이원성을 설정한다. 기술적인 면에서 볼 때, 우리가 시스테르네에서 마주하는 것은 꽤 단순한 발상이다. 지하 저수실 안으로 표면에 회절 격자 필름을 입힌 투명 아크릴판이 연이어 매달려 있다. 오래된 저수실의 축축한 어둠 속에서, 새로운 결을 얻은 아크릴판이 뒤쪽의 전기 조명 빛을 받아 프리즘처럼 작용한다. 빛은 무지개색으로 선명하게 갈라지고, 밀도를 달리하는 회절 필름의 격자망으로 인해 빛은 서로 다른 패턴을 형성한다. 따라서 위 제목은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셈이니, 작품은 빛의 직조로 이뤄져 있다.
처음 생각에는 보이는 광경을 간단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춤추는 빛의 패턴을 감각하면서 막상 그것이 우리에게 열어 보이는 의미를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빛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빛을 어떻게 감각하나? 우리는 빛의 색을 어떤 식으로 이해할까? <빛의 직조>는 일종의 빛의 실험실이 되어, 지하의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경이로운 광경과 심상에 대한 해석의 길을 열어준다. 쇤데르마르켄 공원 지하, 그 오래되고 축축한 저수실 안에 빛의 아카이브가 숨어 있다.
김수자는 회절 필름을 입힌 아크릴판을 빛으로 그릴 일종의 캔버스로 본다. 다양한 재료와 매체를 활용하며 현대 미술계의 저명인사가 된 김수자는 보통 개념적 멀티미디어 작가로 인식되지만, 그가 일종의 확장된 회화로서 캔버스를 고집한다는 점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1957년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김수자는 서울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화가 교육을 받았다. 그렇게 그는 한국의 문화 안에서 근대적 개념의 서양 예술 전통을 익혔다. 한국 문화에서는 오방색(직역하면 다섯 가지 방향의 색)이라는 색상군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전통 예술은 물론 요리에서 건축, 패션, 직물 패턴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등장한다.
오방색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의 다섯 색으로 구성되며, 좋은 삶, 건강한 몸, 건전한 사회를 이루려면 색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다섯 가지 색은 각각 특정 방향을 상징하는데, 청색은 동쪽, 적색은 남쪽, 황색은 중앙, 백색은 서쪽, 흑색은 북쪽을 나타낸다. 또한 이 색들은 생명의 다섯 가지 기본 원소를 나타내는 상징으로도 해석되어서, 청색은 나무, 적색은 불, 황색은 흙, 백색은 금속, 흑색은 물을 뜻한다. 오방색은 수 세기에 걸쳐 한국의 예술과 문화에 스며들었고, 또한 김수자의 팔레트를 이루는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수자는 전통 안에 머무르기보다 전통을 가지고 작업한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복수형의 여러 전통으로 말이다. 그는 여러 문화를 횡단하며 서양은 물론 아시아와 한국의 정전과 문화로부터 주제, 패턴, 매체를 선택한다.
그는 익숙한 기호, 상징, 정전을 새로운 틀에 넣어 주형하고, 정해진 형상을 신중하면서도 순응하지 않는 태도로 재해석한다. 그리하여 평범하고 인습적인 것이 새로운 시각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으로 드러난다.
김수자는 국제 미술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선구적 작가이다. 서울, 파리, 뉴욕에 거주하며 수십 년 넘게 국경을 넘어 여행하고 생활하며 작업해 온 그는 세계화를 몸소 구현한 유목의 예술가이다. 김수자는 보따리에 초점을 맞춘 일련의 작품에서 국가, 문화, 전통 사이에서 빚어지는 유목적 굴절(nomadic refractions) 현상을 주제로 다루었다. 보따리란 들고 떠날 수 있게 소지품을 천으로 싸서 묶은 꾸러미를 뜻한다. 김수자는 화려한 한국 전통 이불보로 만든 보따리를 회화, 사진, 비디오, 설치 등 여러 매체로 다루어왔는데, 그 아름다운 문양의 천 꾸러미는 기억, 상실 그리고 미지의 목표(goal)를 감싼다.
섬유 작업을 하는 다른 여성 작가의 작품처럼, 천과 바느질을 이용한 김수자의 작업 역시 영국의 페미니스트 미술사학자 로지카 파커(Rozsika Parker)가 말한 '전복적 바느질(subversive stitches)'로 볼 수 있다. [2] 전통적으로 섬유 작업은 회화나 조각과 동등한 위치의 순수 미술이 아니라, 전형적인 여성의 수공예이자 노동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섬유 작업은 섬유에 내포된 일상의 의미와 젠더화된 의미를 현대미술의 장으로 불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김수자가 섬유 예술의 형식으로 다뤄보겠다는 뜻에서 직물 작업을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양 미술사의 전통적 캔버스를 하나의 직물로 바라보고, 타블로(tableau)와 회화(painting) 그리고 그 표면(surface) 구조를 둘러싼 문제를 탐구하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김수자는 직물에 깃든 젠더적, 문화적 의미의 탐색도 외면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Kim Soo-Ja에서 Kimsooja로, 즉 성별이나 혼인 여부를 암시하지 않는 한 단어의 이름으로 바꾼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문화를 횡단하며 엮어 나가는 것은 김수자의 필름 연작인 <실의 궤적(Thread Routes)>의 주제이다. 여기에서 김수자는 남미, 유럽, 인도, 중국, 북미, 북아프리카 지역의 공방을 찾아 세계 곳곳의 전통 섬유 문화와 기법에 주목한다.
이러한 탐구와 함께, 그는 형태와 모양의 추상적인 상호 엮임(interweaving)을 탐구해 왔다. 이곳에서 건축은 무지개 프리즘의 춤에 의해 변형되고 있으며, 건물은 마치 관객이 몰입하고 탐험할 수 있는 거대한 보따리처럼 색으로 둘러싸여 있다.
2006년 김수자는 마드리드의 크리스털 팰리스(Palacio de Cristal)에서 <호흡 - 거울 여인(To Breathe: A Mirror Woman)>을 선보였다. 유리 건물 표면에 회절 필름을 입히고 내부 바닥에 거울을 깔아놓은 장소특정적 설치로, 건물은 춤추는 무지갯빛으로 진동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하였고, 여기에 사운드 작품인 전작 <직물공장(Weaving Factory)>의 리드미컬한 숨소리가 더해졌다. '비물질적'인 무지개빛으로 '그리는 것'은 김수자가 여러 장소특정적 설치 작품에서 변주하여 작업해온 주제이다. 그중에는 성당 몇 곳이 포함되는데, 관객은 이곳의 스테인드글라스 모자이크를 통해 전통적 기독교의 신성한 빛에 대한 은유과 동서양의 색채 상징이 명확하게 연결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김수자의 작업은 반복하여 등장하는 방법론과 요소를 순환시켜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별자리(constellations)로 펼쳐낸다. 이러한 반복은 호흡이나 직조 같은 삶의 기본이 되는 리드미컬한 움직임과 닮아 있다.
<빛의 직조>는 김수자가 특정 장소의 특성을 새로운 의미로 확장하는 설치 작업 시리즈의 최신 작품이다. 어떤 장소에서 작업할 때 자신은 그저 그곳에 응답할 따름이라고 김수자는 말한다.
김수자는 변형자(transformer)이다. 그는 장소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파악하여 이를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3] 이는 영국의 미술사학자이자 저술가인 존 버거(John Berger)가 『가시적인 것에 관한 소론을 향한 발걸음(Steps Towards a Small Theory of the Visible)』에서 말한 예술가의 역할과 궤를 같이한다.
버거에 따르면, 예술가를 '창조자(creator)'로 보는 생각은 근대의 환상이다. 예술가는 차라리 '수신자(receiver)'로서, 세계와 관계 맺고 작품을 마주하는 관찰자와 협력하는 존재이다. [4] 김수자가 일반적인 범위에서 회화를 다룰 때, 그는 가시적인 것을 탐구하고 우리를 이에 동참하도록 초대한다.
회절 필름을 이용한 초기 장소특정적 설치에서 햇빛은 프리즘 빛의 춤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태양은 매일 하늘을 가로질러 이동하며 작품을 살아 움직이게 하였다. 시스테르네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낮의 빛을 뒤로 하고, 지하의 어둠으로 내려가게 된다.
여기에는 태양의 움직이는 빛이 사라진 대신,전기의 움직임이 프리즘에 빛을 비춘다. 시스테르네에서 관객은 김수자의 몰입적 설치 속 '퍼포머'가 된다. 우리는 축축하고 어둡고 메아리치는 홀을 걸어 다니며 움직이는 그림자가 된다. 그 그림자는 무지개 색 빛이 물의 표면에 반사될 때 파동을 일으키도록 한다. 그 느낌은 이상하면서도 단순하다. 마치 꿈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들며,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 빛으로 가득한 지하의 바다 속에서 나 자신을 느끼며 김수자의 빛의 아카이브를 함께 엮어 나간다.
[Note]
[1] Malene Vest Hansen: interview with Kimsooja, Frederiksberg 17 January 2023.
[2] Rozsika Parker: The Subversive Stitch: Embroidery and the Making of the Feminine, 2019.
[3] Malene Vest Hansen: interview with Kimsooja, Frederiksberg 17 January 2023
[4] John Berger: Steps Towards a Small Theory of the Visible, 2020, s. 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