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24
〈호흡 ― 레이던〉를 설치할 장소를 조사하고 있을 때, 라켄할 미술관이 직물과 연관된 놀라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나의 작품을 라켄할 미술관과 가까운 운하에 접하는 이 지점에 두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미술관 내부에도 내 작업이 있다.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
야외에 조명과 함께 설치한 나의 조각의 존재와 라켄할 미술관 공간을 함께 경험하면서 나는 이곳이 나의 작품 하나하나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장소임을 깨달았다. 〈메타-페인팅〉, 벽 페인트의 색, 건축물의 구조, 그리고 ‘보따리’까지, 모두가 함께 잘 어우러졌고, 정말 집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이 원래부터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김수자는 라켄할 미술관에서 자신의 개인전 《실의 궤적》이 개막한 다음날 열린 심포지움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그가 자신의 대표작 몇몇 점이 ‘라켄할러’(Laecken-Halle; ‘모직물 회관’을 뜻한다) 내부에 설치된 모습을 본 것은 그로부터 며칠 전이었다. 1641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1866년까지 양모 직물을 검수하고 거래하던 곳이었다. 17세기 레이던에서 직물업은 직물의 국제 수출과 이민을 원동력 삼아 번성했다. 모직물 생산은 수 세기 동안 레이던이라는 도시의 정체성과 위상을 규정해 왔다. 직물업은 레이던을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세계 섬유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남부 저지대국가(스페인령 네덜란드),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정치적 혹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떠나 온 수천 명의 직물공들은 레이던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옷감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시 의회는 다양한 직물을 검수하기 위한 일곱 곳의 검사소를 세웠는데, ‘라켄할러’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라켄할 구관(舊館)의 중심에서는 당대의 모습을 보존한 실내 공간을 통해 레이던 모직물 700년의 역사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라켄할 미술관은 과거와 동시대의 사물과 예술작품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엮어 낸다. 동시대 작가들과의 헙업을 통해 역사 속 이야기와 전통을 21세기의 새로운 서사 안에 위치시키는 전시를 정기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중 가장 최근의 사례가 김수자의 장소특정적 설치 작업을 위한 협업이었다. 이제 그의 작품이 설치된 공간들을 살펴보자.
소형 프레스실
소형 프레스실
‘라켄할러’의 역사적 공간에서 김수자의 작품들은 레이던의 직물 산업의 역사, 역사적으로 중요한 회화와 유물을 미술관으로서 이 건물의 현재 역할이라는 두 가지 맥락과 느슨하지만 의미있는 관계를 맺는다.
예를 들어 ‘소형 프레스실’에는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한 프랑스인 장밥티스트 반무르(Jean-Baptist Vanmour)가 그린 피에트로 드 레폴(Pietro de Lespaul)과 그의 형제 가스파로(Gasparo)의 초상화가 있다. 레폴 형제는 1700년경 오스만 제국령 스미르나(Smyrna, 現 튀르키예 이즈미르)에서 활동했던 레이던 직물상이었다. 그들은 지역 방적공에게서 앙고라염소 털실을 주문 생산해 레이던으로 보냈다. 그러면 레이던의 직조공들은 그 털실로 고급 모직물 캠릿을 짜서 스미르나로 보내 되팔았다. 이 호화롭고 광택이 나는 옷감은 그것을 걸친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이는 김수자의 작품 〈연역적 오브제 ― 보따리 수레〉(2007)의 한국 비단에서 반향한다.
이 설치 작업에서 김수자는 19세기 프랑스의 바게트 운반용 수레와 같은 일상 사물에 대한 애정을 자신의 작업을 대표하는 보따리와 결합한다. 이 수레들은 가진 것을 한데 묶고, 들고, 옮기는 행위를 상징하며, 끊임없이 이동 중인 이민자나 피신처도 없이 가진 전부를 꽁꽁 묶어 끌고 다니다 길 위에서 하나씩 잃어버리기도 하는 난민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동(displacement)은 김수자의 삶과 작업 모두에서 중요한 주제다. 군인의 딸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남북한 접경 지역의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이삿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하던 일과 기차의 창밖으로 미끄러지듯 지나가며 달라지는 풍경을 보던 기억은 1990년대 초반부터 김수자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다. 김수자 자신도 파리와 서울, 그밖의 다른 장소들을 오가는 유목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연역적 오브제 – 보따리 수레〉와 〈떠도는 도시들 – 2727km 보따리 트럭〉(1997-2001)은 전시실 벽에 걸린 두 점의 알레고리 회화와 연결된다. 레이던의 화가 이삭 클라스 판 스바넨뷔르흐(Isaac Claesz van Swanenburg)가 레이던의 모직물 산업에 관해 그린 것으로, 〈옛 산업과 새로운 산업과 함께 있는 레이던의 여신〉(The Patroness of Leiden with the Old and New Syndicates, 1596–1601)과 〈레이던의 여신이 산업에 규정을 수여하다〉(The Patroness of Leiden Confers the Statutes on the Syndicates, 1596–1601)는 새로운 직물의 도입과 모직물 산업을 위한 검사 규정의 제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여기서도 이주와 외국인 노동자의 영향이 또 한번 분명하게 드러난다. 플랑드르 지방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이전의 모직물보다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물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김수자는 뉴욕으로 이주하기 직전인 1997년 11월, 예전에 살았던 적이 있는 한국 내 모든 장소들을 다시 찾아간다. 〈떠도는 도시들 – 2727km 보따리 트럭〉은 이 11일간의 여행 중에 제작한 것이다. 이 사진은 김수자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미지로, 여기서는 김수자의 작업을 구성하는 여러 줄기들이 모두 한데 뒤얽힌다.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인) 이동, 작가가 직접 조합한 보따리들, 과거를 짊어지고 미래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강인한 여성의 모습은 함께 묶여,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의 스틸 이미지 속에 강렬하게 나타난다.
회관
사진 〈만남 – 바라보며 바느질하기〉(1998/2013)와 오브제 〈보따리〉(2000)는 모직물 소장품 전시실 중에서 가장 내밀한 공간인 ‘검사위원실’의 전실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공간에 있는 금고에는 17세기부터 검사위원들이 사용했던 중요한 기록 자료인 ‘모직물 회관 견본집’이 보관되어 있었다.
지금 이 공간은 한국의 이불보를 덮어 쓴 마네킹(의 사진)이 차지하고 있다. 이 사진은 김수자가 1998년 독일 카셀의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Museum Fridericianum)에서 선보인 설치 작업을 재현해 촬영한 것이다. 김수자 자신이 아니라 조각처럼 보이는 인물상이 전시 공간에 움직임 없이 서 있었다. 관객은 그 인물이 움직일 거라 기대하며 그 주변을 서성였지만, 그것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작가는 이것을 ‘행위 없는 행위예술’(a performance without performing)이라 부른다.
이 인물상과 마주치는 경험은, 실물로든 사진이 재현한 이미지로든, 관람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저 속에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 그(녀)는 어떤 문화 정체성을 갖고 있는가? 사용된 적 있는 저 이불보에는 어떤 이야기와 기억이 숨겨져 있을까? 관람자와 이미지의 만남은 이불보를 꿰매거나 직조하는 일이 그러하듯, 연결의 생성을 상징한다.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뿐만이 아니라 개념적으로나 비교문화적으로, 또 비유적으로도 그렇다. 이 내밀한 공간에서는 이러한 연결을 피할 수 없다.
키티 제일만스(Kitty Zijlmans)가 자신의 글에서 강조하듯, 보따리는 김수자의 퍼포먼스와 영상 작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기억, 시간, 공간을 수렴하는 사회적 조각으로 기능한다. 알록달록한 색이 돋보이는 이 보따리들은 이동, 이주, 피난을 표상한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사용된 적 있는 한국 전통 이불보로 천과 옷가지 더미를 감싸 묶어 만든 것이다. 이불보의 네 귀퉁이는 하나로 단단히 묶여 있으며, 상징적 자수로 장식되어 있다. 김수자는 이러한 보따리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조각이자 예술적 사물로 변모시킨다.
작가에 따르면 이 보따리에는 ‘이전 주인들의 냄새, 기억, 욕망, ‘영혼’, 그리고 삶이 여전히 배어’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인간의 몸과 탄생, 사랑, 고통, 죽음이라는 삶의 순환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조각으로서 보따리는 물질이자 은유로 간주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의 소지품을 싸매고 보호하는 동시에, 집, 이주, 이동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드러낸다.
검사위원실
라켄할 미술관은 1977년까지 레이던에서 생산된 수천 점에 달하는 직물 견본을 소장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희귀한 컬렉션이다. 모직물 산업의 그 특별한 견본들 외에도 이 컬렉션은 크란츠(Krantz), 르 폴러(Le Poole), 잘베르흐(Zaalberg) 같은 레이던의 유명한 직물 공장에서 생산한 19세기와 20세기 견본들도 포함하고 있다.
김수자는 라켄할 미술관의 견본 컬렉션을 접한 후, 자신의 텍스타일 아카이브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이번 전시를 위한 견본집 한 권과 설치 작품 〈메타페인팅 – 직물 견본 2442-24127〉을 제작했다. 검사위원실(Syndics’ Chamber)에는 17세기와 18세기 초 모직물 회관의 행정문서로 사용된 견본집 두 권이 전시되어 있는데, 김수자의 견본집은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 작가가 견본집에 사용한 거친 질감의 수제 면지(綿紙)는 옛 견본집의 심하게 비틀린 양피지와 강렬하게 공명한다.
〈메타-페인팅 – 직물 견본 2442-24127〉은 김수자가 ‘총독의 방’(Governor’s Room) 안에 놓인 18세기 직물 측정용 테이블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설치 작품이다. 그는 색, 재료, 질감, 문양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수제 면섬유지 위에 직물들을 직관적으로 배열하는 방식으로 이 구성을 완성했다. 이 견본들은 미술관의 배치 방식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방법론에 예술적대응 관계를 이루며, 여기서 흰 캔버스들은 프레임이자 회화의 지지대로 기능한다.
여러 장의 종이 위에 밝은 색의 줄무늬 직물들이 배열되어 있다. 어떤 것은 좁은 줄무늬, 어떤 것은 넓은 줄무늬이며, 종종 자수가 더해져 있다. 줄무늬의 색은 한국의 전통 색 체계인 오방색―흰색, 검정, 노랑, 파랑, 빨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다섯 가지 색은 종종 기본 방위 및 원소와 연관된다. 오방색은 동·서·남·북의 네 방위와 중앙을 상징하며, 동시에 다섯 가지 원소(공기·불·흙·물, 그리고 한국 문화에서는 금속을 포함), 즉 오행을 나타낸다. 김수자는 이 색채 스펙트럼을 자신의 작업에 자주 채택한다.
〈메타-페인팅 – 직물 견본 2442-24127〉은 선택하고, 살펴보고, 관찰하고, 느끼고, 분류하는 연속적 행위를 포함하는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이다. 관람자가 견본을 집어 들고, 살펴보고, 관찰하고, 느끼고, 분류할 때마다 작품은 계속해서 변한다. 17세기의 총독들(과 동시대의 감시 카메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관람자는 흰색 장갑을 끼고 다채로운 견본들을 캔버스에서 다른 캔버스로 하나씩 조심스럽게 옮기도록 초대받는다. 이로써 관객은 미술관 종사자, 혹은 퍼포머처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김수자의 작품을 탐색해 볼 수 있다.
판 스테인 갤러리
라켄할 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는 영상 연작 ‘실의 궤적’ 중에서 두 장(章)을 소개한다. 〈실의 궤적 – 제4장(중국)〉과 〈실의 궤적 – 제6장(모로코)〉는 서로 다른 문화권을 다룬다. 아시아는 작가의 뿌리와 긴밀히 연결되며, 중국처럼 모로코는 지금도 여전히 유럽에 직물을 공급하는 주요 지역이다. ‘실의 궤적’ 연작을 위해 김수자는 세계의 여러 문화권을 여행하며 직물 생산 과정을 16mm 필름에 담았다. 이 연작은 현재 총 여섯 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페루, 유럽, 인도, 중국, 멕시코, 모로코에서 촬영됐다. 이 영상들은 하나로 모여 다양한 직물 문화와 풍경들의 모자이크, 즉 과거와 현재가 엮어내는 세계적 태피스트리를 이룬다. 이 영상들은 모든 것이 생겨나는 그 풍경과 장인정신을 기리며, 직물이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 요소임을 보여준다. 순환적 생산 과정을 담은 미학적 이미지들은 그 생산 활동과 주변 풍경 속 삶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의 소리를 동반한다. 김수자는 ‘실의 궤적’을 ‘시각적 시’, 즉 ‘시각 인류학’의 예시라고 평가한다. 영상들은 장인의 지식과 전통, 그리고 문화 간, 남녀 역할 간의 유사성과 차이에 관해 숙고한다. 그러한 지식과 전통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본질적으로 동일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작업은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하나로 묶는다. 또는 김수자의 말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이 연작은 나의 보따리 작업 중 하나와 같다. 세계의 현실을 포착하고 끌어안는다. ‘실의 궤적’ 영상에서 나는 내 눈으로 보따리를 싸고, 내 시선은 바늘로, 직물 문화는 수행적 요소로 삼는다. 자연, 식생, 지역의 건축 구조, 장인정신 사이의 관계들은 내러티브다. 그 내러티브는 일상 속에서처럼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세계를 향한 나의 시선을 펼쳐 보인다. 나는 타자를 바라본다. 그리고 사물과 인간, 자연과 구조 사이에서 내가 만들어 내는 연결을 본다.”
설치 작업 〈메타-페인팅〉(2020)은 하펄 코르넬리서 페르후번 아키텍츠(HCVA)가 설계해 2019년 공개된 라켄할 미술관 신관 전시실의 건축적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반투명한 캔버스들은 그 수와 크기 모두 메인 전시실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고운 입자의 석재로 마감한 트로프 셸 구조의 콘크리트 지붕과 모래빛 테라초 바닥 사이에서 반짝이며 미세한 입자가 퍼지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아치형의 커다란 창은 내부 공간을 창밖의 일상과 이어주며, 그 형태와 빛을 통해 설치 안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김수자는 이 리넨 캔버스 설치를 통해 문자 그대로, 또 은유적으로도 자신의 예술적 뿌리로 회귀한다. 그는 회화를 그것의 가장 기본 형태, 즉 캔버스로 환원한다. 색이나 장식에 대한 모든 언급은 생략된다. 여기서 캔버스의 본질은 작가가 바노스 콘스트(Wanås Konst)에서 직접 씨앗을 뿌리고 수확한 아마로 짠 직물이라는 가장 순수한 물질적 형태로서 제시된다. ‘메타-페인팅’은 회화에 관한 작업이지만, 물감을 필요로 하진 않는다.
이 새로운 전시 공간에서 김수자의 작업은 다시 한 번 라켄할 미술관의 과거와 접속한다. 직물 검사장이자 작업장이었던 이곳은 노동자, 상인, 고위 관리들이 매일 어울려 다니던 장소였으며, 17세기 검사위원들이 직물을 빛에 비추어 보며 결함이나 불균일한 부분이 있는지 조사하던 곳이었다.
섬세하게 직조된 김수자의 캔버스에 깃들어 있는 힘과 아름다움은 우리도 그렇게 세심히 살펴보도록 부추긴다. 관객은 표면의 차이와 불균일함을 살피고, 투명도를 확인하며, 스트레처 프레임의 강한 수직선과 수평선을 따라간다. 개별 캔버스 사이를 마치 퍼포머처럼 걸어 다니다 보면, 관객도 캔버스 위에 놓인 이미지가 된다.
[Note]
[1] Based on text on Museum De Lakenhal website
[2] See also essay by Roel Arkesteijn on page.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