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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김수자(대한민국, 1957)는 1995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마니페스타 1(Manifesta 1)을 통해 유럽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사람들은 바닥에 펼치거나 둥글게 말아놓은 침대보와 이불보로 구성된 김수자의 설치미술 작품에 익숙해졌다. 작년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그리고 올여름에는 프랑스 리옹 비엔날레에서 작가가 선보인 이 엄숙한 메타포들은 신체와 그것이 맞이하는 완결의 순간들(finalities)—신생아, 연인들, 시신을 감싸는 천—에 대한 성찰을 자극한다.
그러나 김수자의 <바늘 여인>은 그중에서도 특출한 성취에 해당한다. 일본 도쿄의 인터커뮤니케이션 센터(ICC)에 전시된 이 비디오 설치 작품은 완성된 버전으로서, 작가는 1999년 6월 스위스 바젤 아트 페어에서 완결되지 않은 시리즈의 초기 버전을 미리 선보인 바 있다. 우리가 시간·공간과 맺는 관계라는 주제는 이 작품에서 지극히 섬세한 방식으로 다루어진다. 작가는 직사각형으로 배치된 여섯 개의 스크린을 통해 뒤쪽에서 촬영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회색의 긴 원피스를 입은 작가는 도시 및 자연의 풍경 한가운데에 있다. 그는 뉴욕·델리·상하이·도쿄의 번화한 거리에 서 있고, 일본 기타큐슈의 바위 위에 홀로 누워 있고, 마지막에는 인도 야무나 강가에 또 다시 홀로, 또 다시 서 있다.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바늘은 젠더-특정적인 도구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작가의 정지한 자세가 환기하는 나침반 바늘을 지칭한다. 이는 거리에서 보행자들이 작가 주변을 부산히 지나가는 장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바늘 여인>의 첫 인상은 매우 강렬하다. 관람자는 작가 주변에서 움직이는 사람들과 사물들 한가운데에서 미동 없이 홀로 서 있는 몸의 이미지에 시선을 빼앗긴다. 이 이미지는 작가의 완벽히 고정된 자세와 영상의 정적으로 인해 더욱 강조되고 증폭된다. 이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답해지지 않은 한 질문이 관람자의 마음속에 떠오른다. 왜 이 신체는 세상과의 모든 연관, 현실적 관계로부터 단절된 채 고립되어 있는가? 또한 이 작품은 관객 안에서 강렬한 동일시의 과정을 촉발시킨다. 군중이나 자연의 힘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긍정 속에 당당히 서 있는 이 신체는, 틀림없이 나 자신이어야 한다. 세번째로 중요한 지점은 이 작품이 두 가지 종류의 시간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이다. 거리를 담은 장면은 인간의 시간, 즉 활발한 삶의 본질, 행위에 의해 움직이는 시간성으로 가득 차 있다. 대조적으로 일본과 인도에서 촬영된 자연의 장면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그곳에서는 우리의 활동이 우리를 소외시키는 개인적 조건으로부터 벗어나, 또 다른 형태의 시간성으로 끌려 들어간다. 강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비유를 나타내고, 암석은 극단적인 광물의 강인함을 상징한다. 이 이미지들은 인간의 시간 개념에서 벗어나, 지구와 우주의 자연 리듬에 더 가까운 것들을 표현하고 있다. 바위에 누운 자세는, 서 있는 자세와 대조적으로, 휴식과 명상, 절제된 긴장 상태를 떠올리게 한다. 그 안에서 자신을 초월해 있는 것과 대면한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재인식한다. 우리는 여기서 세계와 창조물을 관조하는 나른한 붓다, 완전한 열반의 상태(parinirvana)를 떠올릴 수 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거리를 보여주는 비디오 설치 작품인 전작 <바느질하여 걷기(Sewing into Walking)>(1997)는 우리가 사물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관점-그냥 그것들을 기록하는 것-을 채택할 것을 권한다. 또한 이 시퀀스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밀도와 리듬을 지닌 세계의 현실을, 다른 한편으로는 영원히 융합과 조화를 추구하는 우리 자신의 위치를 저울질함으로써 이해될 수 있다. ICC 전시 큐레이터 케이지 나카무라는 <바늘 여인>에 관한 글에서 이 작품을 두 단어로 완벽하게 요약했으니 그것은 “존재론적 미니멀리즘”이다.
— 『Art Press』, 2000년 10월호 no.261 수록, 2000년 도쿄 ICC 전시 도록에서. L-S 토르고프(L-S Torgoff)가 불어에서 영어로 번역.
영한 번역(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 홍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