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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노마디즘과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인류의 중요성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대한 성찰을 드러내는 예술
김수자(Kim Soo-Ja)라는 본명을 가진 작가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자신의 영문명을 “Kimsooja”(1957년, 한국 출생)라는 한 단어로 소개하는 선언문을 공개했다. 「한 단어 이름은 아나키스트의 이름이다(A One-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2003)에서 김수자는 성과 이름을 분리하지 않음으로써 젠더 정체성, 결혼 여부, 사회정치적·문화적·지리적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거부했다. 이처럼 고정된 정체성 없이 혹은 그것을 덧없게 만드는 방식으로 김수자는 1992년부터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장소특정적 프로젝트, 사진을 포괄하는 독창적이고 시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 왔다.
김수자는 다양한 문화를 찾아 여러 도시와 마을, 작은 촌락을 여행하며 작업을 제작한다. 그의 작업에는 운반을 위해 천으로 짐을 감싸는 사물을 의미하는 ‘보따리(bottari)’가 등장한다. 보따리를 들고 수행하는 순례를 담은 그의 작업 속에서 작가는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트럭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유목주의적 행위는 새롭게 마주하게 되는 문명과 전통, 그리고 언어에 관해 이야기한다.
김수자가 만들어내는 예술은 일종의 의식과 같은 성격을 띤다. 그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성찰로부터 시간과 공간에 관한 질문과 담론을 생성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김수자는 자신의 작업을 자연,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에 연결시킨다. 작품 속에서 관객은 작가가 제시하는 다수의 관점에 휩싸이며, 그 안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직물은 김수자가 자신의 믿음을 지도처럼 펼쳐내기 위해 선택한 매체다. 작업 초기에 작가는 직물 외에도 그와 유사한 여러 유형의 매체를 실험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물과 관계된 바느질은 그에게 가장 알맞은 도구가 되었다. 바느질은 캔버스 표면에 관한 김수자의 질문을 탐구하고, ‘나’와 ‘타자’ 사이 관계를 결합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작가와 화면 사이의 경계는 사라지고, 두 개의 접촉면은 치유의 연결고리로 전환된다.
보따리는 김수자 작업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일 것이다. 그것은 그의 나라에서 벌어진 이동의 역사뿐 아니라, 작업 전체의 핵심인 ‘인류’를 품고 있다. 이와 관련한 자신의 경험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항상 소수 유목민의 삶의 방식과 그들의 풍부한 시각문화와 독창성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 또한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한국 내에서 유목적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1997년에 발표한 <떠도는 도시들 - 2727km 보따리 트럭 (Cities on the Move–2727 km Bottari Truck)>를 만들기까지 나는 나의 가족이 늘 보따리를 싸고 또 풀기를 반복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조각적이다. 관객은 그것을 상상을 통해 열어보고, 만져보고,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작가는 헌 옷과 낡은 이불보의 원래 소유자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 사이의 중간 고리 역할을 한다. 관객이 보따리와 만나게 되는 순간, 이 직물 더미를 과거에 사용했던 사람들을 상상하며 각자의 여정을 시작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김수자의 작품은 동양적 전통이나 그에 얽힌 역사적 코드를 초월하고, 사물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는 통로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김수자가 레디메이드를 어떻게 재제작하거나 재맥락화했는가가 아니라, 그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한국이 전통적 삶의 방식에서 근대적 삶의 방식으로 전환되었던 시기의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이다.
김수자의 작업 중 <바늘여인(A Needle Woman)> , <구걸하는 여인(A Beggar Woman)>, <집 없는 여인(A Homeless Woman)>은 가장 심화되고 섬세한 퍼포먼스 작업이다. 해당 작품에서 작가는 끝없이 움직이는 군중 한가운데에서 성직자 같은 의연한 자세로 등장한다. 영상 속 군중은 작가를 향하거나 스쳐 지나가면서 때로는 그를 관찰하고, 때로는 그의 정지된 상태를 질문하는 눈빛을 보낸다. 익명성 속에서 중립적인 옷차림으로, 김수자는 ‘균형잡기(temper)’와 ‘진실(truth)’이라는 고유한 메시지를 지닌 채 도시의 규범과 흐름에 개입한다.
작가는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문화의 민속성과 일상적 관습을 인내심과 절제를 통해 자신의 영상에 가져온다. 이러한 태도 덕분에 그는 각 전통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된다. 김수자가 발견한 모든 민속적 실천은 일종의 부적과 같은 기능을 한다. 그는 먼저 문화의 기원과 문화 간의 만남을 조사한 뒤, 자기 자신에게 힘의 형상을 불어넣는다.
김수자의 영상이 담고 있는 다채로운 면면과 반복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통해 표현된다. 페루에서 촬영한 영상 <실의 궤적(Thread Routes)> 첫 장은 실을 엮는 페루 여성들이 거치는 여정을 기록한다. 이들은 그곳의 여러 세대와 영적 경험이 혼합된 색색의 자수를 계속해서 짜낸다. 인도에서 촬영된 <뭄바이: 빨래터(Mumbai: A Laundry Field)>에서는 남성들이 옷감을 돌에 내리치고, 짜내고, 털어 올리며 색조의 향연을 만들어낸다. 그들의 모습은 곧 시간의 재현이며, 우연적으로 발생했으며 손에 닿지 않는 무형의 정신적 공간이다.
“<바늘여인>과 같은 퍼포먼스 영상 작업의 경우, 저는 우선 퍼포먼스 작업을 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갖고 있었습니다. 촬영을 시작하는 순간까지 그것이 정확히 어떠한 형태를 띠게 될지는 알지 못했습니다”라는 김수자의 말을 비추어 봤을 때, 직관이 작업의 과정과 의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매개자이자,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예술을 세계가 볼 수 있게 하는 인류학적 통로로 거듭난다. 자연이 건네는 가시적·비가시적 세계를 읽어내는 사람.
다음에 열거할 프로젝트는 김수자를 오늘날 전 세계적인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현재 뉴욕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세계 각지에서 프로젝트와 작품을 선보여 왔다. 최근 참여한 주요 프로젝트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커미션으로 진행된 《영광 원자력 발전소 아트 프로젝트 2010》(2010),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김수자, 지-수-화-풍 (Kimsooja, Earth - Water - Fire – Air)》(2009), 영국 발틱 현대미술센터에서의 개인전 《김수자: 바늘 여인 1999-2001 (Kimsooja: A Needle Woman 1999-2001)》 (2009), 벨기에의 르통드 라벤슈타인 갤러리에서의 전시 《김수자, 로투스 – 0의 지점 (Kimsooja, Lotus: Zone of Zero)》(2008) 등이 있다. 이외에 참여한 주요 단체전 및 국제전시로는 《아르템포: 시간이 예술이 되는 곳 (Artempo: where time becomes art)》(2007), 《움직이는 도시 (Cities on the Move)》(1997-2000), 《전통/긴장 (Traditions / Tensions)》(1996–1998) 등이 있다. 또한 모스크바 비엔날레(2009), 휘트니 비엔날레(2002), 리옹 비엔날레(2000), 상파울루 비엔날레(1998) 등 여러 비엔날레에 참여한 바 있다.
김수자는 지난 2년간 <실의 궤적>이라는 16mm 필름 프로젝트 시리즈를 진행해 왔다. 그녀는 페루를 배경으로 한 직조 문화를 다룬 영상 한 편을 완성했으며, 유럽의 레이스 제작 문화를 주제로 한 영상을 현재 작업 중이다. <실의 궤적>은 직물 문화의 기원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로, 그중에서도 인도, 말리, 중국, 북미 등의 문화를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