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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일마즈 지비오르

1999

  • 한국 작가 김수자의 〈떠도는 도시들(Cities on the Move)〉은 전 세계적으로 시작돼 계속해서 확장되는 프로젝트로, 각기 다른 매체와 맥락으로 구현됐다. 이 프로젝트는 11일 동안 진행되는 퍼포먼스, 이를 촬영한 두 편의 영상 작품, 사운드 설치 작품, 아시아나 항공 기내지 협업, 도록, 몇 차례의 전시 등으로 구성된다. 작가는 동명의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와 후 한루(Hou Hanru)의 동의를 받아 이 전시 제목을 빌려 자신의 프로젝트 이름을 지었는데, 두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동하는 전시는 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던 거대한 구조적 변화를 배경 삼아 젊은 작가들, 특히 대체로 아시아 출신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근래의 건축적 전망을 한데 모아 선보였다.

  • 1997년 11월 4일부터 14일까지 김수자는 개인적으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한국 내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가 이전에 그러했듯 자신의 모국을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횡단했다. 이 퍼포먼스를 촬영한 비디오는 작은 보따리 트럭을 보여주는데, 이 트럭 위에는 산더미처럼 천 꾸러미(보따리)를 쌓아 밧줄로 단단히 묶은 일종의 침대가 있고, 트럭은 서서히 마을과 시골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이 비디오 중 하나에는 작가가 트럭에 실린 천 꾸러미 위에 앉은 채로 변화하는 풍경을 따라 여행을 한다. 혹자는 영상 속 작가를 단지 배경 인물 정도로 여길 수도 있는데, 이는 그 관객이 작가 대신 시골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천 꾸러미는 이 퍼포먼스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전형적인 보따리는 옷가지, 침구, 가정용품, 책 등 깨지지 않는 물건을 지니고 다닐 수 있는 꾸러미를 뜻한다. 평론가 김애령은 보따리가 불안, 동요, 쉼 없는 상태(restlessness)를 상징한다고 보았다. 특히 전쟁과 기근에서 달아나기 위해, 혹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집을 떠나야만 했던 한국에서 보따리는 역사적으로 충만하고 상징적인 오브제다. 보따리는 피난민과 상인 모두가 애용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물건을 이 안에 담아 날랐다. 또한 은유적인 차원에서 보따리는 예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공간에서의 이동성이라는 기표로 기능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을 포함하고 있는 용기(container)이기도 하다.[1]

  • 김수자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통해 단지 이동성이 자발적인지 혹은 외부적 상황에 의해 강요됐는지 등을 주제화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보따리에 사용된 천은 아시아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가령 한국 여성은 이 천 조각을 이용해 침구를 바느질했다는 점이 그러하다. 따라서 작가가 직접 전통 직물을 바느질하며 천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작업은 해방된 의식과 여성이 특정한 유형의 행위에만 국한된 점 사이의 불일치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작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감안하면, 김수자의 보따리는 매우 개인적인 문제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관심사로 읽힌다. 작가는 이러한 천을 사용하는 이유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이불보를 바느질하고 계셨는데, 그때 매우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이로써 나의 생각, 감정, 순간의 행동이 모두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았다. 또한 삶의 고요한 격정 속에 묻힌 기억과 고통을 실어 나르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나는 직물의 근본적이고 직교(直交)하는 구조, 부드러운 표면을 통과해 움직이는 실과 바늘, 생기발랄한 색감을 가진 전통 천의 표현력에 매료됐다.”[2]

  • 김수자는 1980년대 중반부터 천을 사용해 오기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추상적이고 형상적인 측면, 고로 천의 이미지적인 성격을 더 강조했지만, 이 천은 이미 그 자체 속에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의 기억을 내포하고 있고 과거의, 이전의 소유자를 넌지시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후 작가가 미술관 카페의 식탁보로 이 천을 사용했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더욱 퍼포먼스적이고 상호적인 과정에 큰 관심을 키워갔다. 관객들은 광주비엔날레에 전시된 작가의 설치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숲 속에 흩뿌려진 옷가지를 밟고 지나가거나, 주워서 집에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한때 다른 개인의 소유였던 천이 공적인 메멘토모리(memento mori)가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작가는 세계적인 이주 현상에 대한 알레고리를 개괄했고, 자신의 문화적 전통을 되새김으로써 동시대적 관련성을 지닌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1] 김애령, 『Soo-Ja Kim: Solitary Performance with Old Cloth, in Echolot, or Nine Women on the Periphery』, 전시도록, 프레데리치아눔 미술관(Museum Fredericianum), 1998, p.2.
[2] 위의 글, p.7.


― 전시도록 『Art-Worlds in Dialogue: From Gauguin to the Global Present』(루드비히 쾰른 미술관(Museum Ludwig Cologne), 2000)에서 발췌
― 일마즈 지비오르는 독일 루드비히 쾰른 미술관의 큐레이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