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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Needle Woman – Kitakyushu, 1999, Single channel video projection, 6:33 loop, silent, Commissioned by CCA Kitakyushu

사라지는 여인

로자 마르티네즈

2012

  • 지난 20세기 동안 동.서 간의 정신적인 지적 교류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야기되는 부정적 면모를 순화하는 동시에 극단적인 합리주의 정신과 균형을 유지하도록 독려해왔다. 불교철학을 따르는 서양의 지식인들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반문화적이고 비판적인 화두의 증가, 비폭력적 저항, 그리고 아시아 작가들의 지속적인 집단적 이동, 곧 유목적인 삶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이러한 새로운 관점들을 조명하기 위한 초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따른 『황금 꽃의 비밀』은 2천년 전에 쓰여진 도교서적의 영문판으로서 1931년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브 융과 리처드 빌헬름에 의해 서구에 소개되었다. 융과 빌헬름은 자아성찰을 목적으로 하며 해석학의 전통을 기반으로 둔 고차원적 지식의 영적 인지론 - 예를 들어 요가와 같은 물리적.감정적인 치유 방법, 그리고 인류에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초자연을 기반으로 한 집단 의식과정을 제시 하였다. 또한 『황금 꽃의 비밀』은 모든 신비주의적 전통의 지도자들이 추구하는 내적인 변모라는 연금술적인 논문이기도 하였다. ‘황금 꽃은 빛이며 천국의 빛은 도(道)이다. [1]

  • 또 다른 저서인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우리는 13세기 몽고 쿠빌라이 칸 궁정에 도달했던 전설적인 베네치아 출신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의 모험을 듣게 된다. 17년간 대사로 지내면서 궁정에 머물렀던, 대부분 상상된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그가 책 속에서 방문했던 도시들에 관한 것, 또 어떻게 칸을 흥겹게 해주었는가가 포함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의미 있는 교훈을 남기며 끝을 맺게 되는데 이중 한문구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살아있는 이들에게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다가올 미래의 무엇이 아니라 이미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옥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일상에 있다. 이 곳에서는 고통으로부터 탈출구는
    없다.’ 이 문장들에 따르면 첫째 문장은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가 가능한, 곧,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지옥을 받아들이고 이후 그 고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을 언급한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의 의미는 다소 직설적이기도 하거니와, 지속적인 노력을 통한 이해가 필요한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지옥의 불구덩이 한 가운데에서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방법을 구하고 배우라. 너 자신은 지옥 불이아니기에 그 불구덩이를 견뎌내도록 그것들에 거리를 두라. [2]

  • 김수자의 작품에는 바로 이러한 교훈과 지혜의 맥락이 새겨져 있다. 지난 30여 년간 그녀의 작품은 동서양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조형적 맥락을 추구하고 아름다움, 치유, 자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김수자는 실로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였고, 행위예술, 다큐멘터리, 설치를 통해 장소 특정적으로 개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한국문화의 계보와 전지구적 수위의 현대미술의 언어 체계를 조형적인 언어로 연계하는 것이다. 호세 로카의 표현에 따르면 그 조형언어는, 타자에 열광하는 매체 내에서 좀 더 “이국적”이 되기 위한 변별성을 과장하는 동시에 현 시대의 다원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다시 말해 이미 면역된 국제주의로 해석되기를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3]

  • 김수자는 직관을 지각의 즉각적인 인식방법으로 취한다. 즉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실로 서로 다른 문화를 이어가는 동안 작가는 지극히 보편적인 인류학에 근거한 제반 문화의 본질을 추구하며, 인류의 특성에 대한 모든 것을 고민한다. ‘나의 철학적, 예술적 목표는 나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질문을 수렴하고 통합하는 전체성을 획득하는데 있다.’ [4]

  • 김수자가 여행한 도시, 길, 풍경은 환상적이지도 않고 상상의 결과물도 아니다. 작품 속 대도시들은 실제로 존재하고, 인구는 과밀하며,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식민통치로 착취되거나 이데올로기로 인해 거세된 장소들이다. 그녀가 택하는 길들은 지정학적인 경계 안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여행하는 통로들이다. 또한 그녀는 고대의 장소 혹은 원시적인 자연의 힘이 펼쳐지는 문맥을 선택한다. 김수자의 견고하고도 가녀린 신체는 자주 군중들 한 가운데나 바위 위에 서거나 누운 채로 등장하는데, 언제나 동요 없이 관객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 누구에게나 인식 가능한 그녀의 신체는 긴 머리를 뒤로 묶고, 명상적이며 움직이지 않은 채로, 세상 - 인도의 야무나(Yamuna) 강이거나 카이로의 군중의 바다가 되건 간에 - 이 흘러 가도록 허락한다. ‘퍼포먼스를 통해 얻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물인 비디오가 아니라 자신만의 경험과 과정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과 세상을 향해 지속적으로 행하는 질문법이다. [5]

  • 이러한 작품들에는 최면 상태와 같은 강렬함이 있다. 작품들은 어수선한 관객의 눈길을 끌어 모아 순간적으로 작가의 고유한 경험과 동일시 되게 한다. 이들 작업의 제목은 작가의 철학적, 원형적 고민을 주목하기에 적절하다. <하늘과 땅 The Earth and the Heaven>(1984), <대지를 향하여 Toward the Mother Earth>(1990-1991), <세계와 마음 Mind and the World>(1991)와 같은 제목의 작품들은 우주적인 연결을 이야기한다. <바늘 여인 A Needle Woman>(1999-2009), <구걸하는 여인 A Beggar Woman>(2000-2001), <빨래하는 여인 A Laundry Woman>(2000), <거울여인 A Mirror Woman>(2002), <바람여인 A Wind Woman>(2003)은 치유자로서, 또는 매개자로서 여성의 역할을 암시한다. <숨쉬기 To Breathe>(2006)는 호흡과 빛의 회절을 통해 인간 본연의 감정에 주목하게 하고, <지수화풍 Earth-Water-Fire-Air>(2009-2010)은 자연의 요소에 대한 본질적인 명상으로 돌아간다.

  • 형식적 측면에서 보자면,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친 김수자의 작업적 진화는 어떻게 그녀가 한국에서의 주도적인 흐름에 - 예를들어 단색화와 민중미술과 같은 - 둘러 쌓여있으면서, 동시에 독립된 거리를 유지하는 1980년대 평면적인 바느질 작업과 조각적 오브제 작업, 1990년대 보따리 설치, 시간예술인 퍼포먼스와 비디오작업을 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김수자의 상징적인 작업인 보따리는 그녀의 신비적인 비환원적 오브제이며, 보따리 설치작업은 김수자의 심사숙고 된 예술언어가 확장된 조각 영역에 어떻게 포함되는가를 보여준다. 심지어 요셉 보이스가 관객의 정신을 조형적으로 형상화 할 수 있다면 관념이라 하더라도 조각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언급하고 피에로 만조니의 작품 <세계의 기태 Socle du Monde>(1961)가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레디메이드로 탈바꿈시킨 이후, 예술가들은 실제를 재창조, 재구성, 탐험해 왔고 이것은 실제의 근본적인 물질: 사람들, 자연, 욕구, 파괴로부터 시작한다.

  • 김수자는 자신의 시선을 세계에 고정하고 그 안에 개입하면서 언제나 극도의 예민함을 통하여 용어들을 병치한다. 또한 기성품이 ‘이미-만들어진’ 보다는 ‘이미-사용된’ 존재라는 맥락에 대하여 고민한다. 1983년 김수자는 할머니가 간직했던 옷을 처음으로 사용 하였고, 이후 한국의 전통의상이나 전통이불은 ‘우리의 신체와 삶 그 자체’를 재해석하는 도구가 되었다. [6]

  • 재활용 되는 한국식 이불은, 곧 보따리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거나 바닥에 펼쳐져 있을 때 우리 삶의 캔버스이자 프레임의 의미로서 김수자의 작업에 계속해서 나타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녀 자신의 신체는 행위의 대상으로서 치유의 매개적 역할이 끝난 뒤 소멸하는 상징적인 바늘이 되었다. ‘바느질 하기와 천으로 감싸기는 명상과 치유를 공유하는 과정이었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바늘과 천 사이의 관계는 내 몸과 우주의 관계와 동일하다.’ 라고 덧붙인다. [7]

  • 또한 김수자의 작품은 한국의 관습적인 여성의 역할과 긴밀한 연관을 가질 뿐만 아니라 바늘이 가진 치유의 양가적 힘에 주목했던 루이스 부르주아와 같은 작가의 관점과도 연계될 수 있다. 김수자가 카메라를 등지고 서있는 모습은 시각적으로 캐스퍼 데이비드 프레드리히의 작업을 연상시킬 수도 있으나 김수자는 이와 구분되는 개념적인 차이를 확립하고 있다: 프레드리히의 작업은 우주적 고독에 젖은 감상적 인물을 묘사하고, 김수자의 시선은 비극적이지 않은 근접성, 일종의 지각을 형성하는 정지/침묵을 제시한다. 김수자가 끊임없이 신성한 기하학을 추구하는 것은 수평과 수직을 연계 하게끔 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기본 구성 요소인 땅, 하늘, 인류 그리고 세계를 구성하는 에너지로서 음(陰), 양(陽)을 연결하는 것 모두가 피에 몬드리안과 같은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접신론과 추상적인 연구와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몇몇의 작업 중 작가가 행하는 창조적 여정에서 특히 중요한 작품은 이 전시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보따리: 알파해변 Bottari: Alfa Beach>(2001)에서는 하늘과 바다가 수평선을 중심으로 뒤바뀌어져 있는데 이는 작가의 의식과 감정을 가시화한다: 아프리카의 노예가 대서양 너머로 강제로 보내졌던 나이지리아 알파해변의 수평선을 보는 순간 하늘과 바다의 역전을 생각했다. 노예가 된 그들의 운명과 그들이 빼앗긴 자유를 생각하게 한 그 수평선은 내가 본 가장 슬픈 선(Line)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뒤집혀진 수평선이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왜곡된 수평선, 중력의 방향성을 잃은, 그리고 그들이 떠나야 했던 해변에 다다르는 파도의 밀물결에서 내가 감지할 수 있었던 노예들의 심리적인 회귀이다. [8]

  • 그린란드에서 촬영된 삼부작 <물의 거울, 공기의 거울, 바람의 거울 Mirror of Water, Mirror of Air, Mirror of Wind>(2010)에서 자연적 요소가 가진 물질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김수자의 다른 작업에서도 나타나는 회화적 표면이라는 개념으로 돌아가도록 한다. 의심의 여지 없이 김수자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바늘 여인 A Needle Woman>은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상징적 작품이다. 1999-2001년에 제작된 <바늘 여인> 연작의 첫 번째 에디션에서 작가는 서로 다른 도시 도쿄, 상하이, 멕시코 시티, 런던, 델리, 뉴욕, 카이로, 라고스를 방문하여 관객을 등지고 서있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제작한 에디션에서는 파탄, 예루살렘, 하바나, 리우데자네이로, 은자메나에 방문하였는데, 작품 속 김수자는 인간의 세포조직을 공간과 무한의 시간에 꿰메는 우주적인 바늘로 등장한다. 달아나는 듯한 풍경이 고속으로 촬영된 <바람 여인 A Wind Woman>(2003) 작업은 마치 이 풍경들이 공간과 공간 사이로 퍼져나가도록 바람으로 만들어진 붓 또는 시간의 실타래로 그려진 듯이 보인다. 작품 속 칠흑같이 어둡거나 환하거나, 혹은
    밝고 푸르른 하늘이 꽉 들어 찬 풍경은 인상주의, 표현주의 심지어는 미니멀리즘과 같은 서로 다른 회화적 양식의 흔적을 드러내고 지워버린다. <앨범: 하바나 An Album: Havana>(2007)는 쿠바의 말레콘(malec n) 해변과 평행선을 이루도록 촬영된 연작이다. 영상 속 해안선, 사람, 풍경이 점차적으로 합쳐져 추상적이고 다이내믹하면서 동시에 공기와 같이 가벼운 구성을 이루며, 후반부에서 이들은 바람과 빛에 녹아든다. 이러한 작업들에서 작가의 신체는 미니멀한 단색톤이 지속적으로 다양한 색조로 변화하는 디지털 스펙트럼으로 처리된 영상이 투사되는 작업 <숨쉬기: 보이지 않는 거울 / 보이지 않는 바늘 To Breathe: Invisible Mirror / Invisible Needle>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스크린의 가시영역 바깥으로 생략된 것처럼 보인다. <숨쉬기: 보이지 않는 거울 / 보이지 않는 바늘>에는 작가의 평화로운 혹은 긴장된 호흡과 명상적인, 입을 열고 닫는 소리의 합성이 펼쳐진다.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상영된 이 작업은 캔버스라는 문제로 되돌아오고 있다. 작가는 미니멀리즘적 추상화(化)의 맥락 안에서 이렇게 묻는다. ‘표면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또한 ‘디지털 색상의 화면이 지속적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표면이 가진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9] 동시에 기호나 한국의 전통이불, 옷과 같은 도상학적인 모티브들은 그 형태나 색상이 순수한 빛과 숨소리로 녹아 들어감에 따라 비물질화 된다. 관객들은 작가의 사운드 퍼포먼스에 따라 시청각적으로 호흡하게 되는 것이다.

  • 인류학적 다큐멘터리의 경계선에 있으며 4개의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공간 형식을 고수하는 비디오 설치 작품 <뭄바이: 빨래터 Mumbai: A Laundry Field>(2008)는 뭄바이를 관통하는 시각적인 산책이라 할 수 있다. 카메라는 빨래라는 고된 노동, 좁은 슬럼가의 골목길을 따라 여행하면서 지저분한 거주공간, 타맥(tarmac)위에서 잠든 사람들, 그리고 일상의 억압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가득 태운 기차를 아주 가깝게 끌어들여 포착한다.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말을 따르면 ‘이것은 극단적으로 힘든 인간 삶의 조건과 풍부한 시각적 경험이 모순되게 병치된 작업이다. 이 작업은 변형된 캔버스 작업이라는 미학적 구조를 따르는 동시에 힘겨운 뭄바이 슬럼가의 실제 일상을 드러내는 작업이며, (중략) 내게 있어서 이 작업은 이전 작업을 회고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에 제작했던 작업의 구조와 그것의 층위가 상징적으로, 시각적으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옷과 직물은 인류의 현존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의 존재론적 질문을 상징한다.’[10]

  • <실의 궤적 제 1장 Thread Routes - Chapter 1>(2010)는 작가가 처음으로 16mm 필름을 사용하여 촬영한 현재진행 중인 연작으로 서로 다른 문화로 엮어진 물질과 비물질적 실의 궤적을 탐구한다. <제 1장 Chapter 1>(2010)는 야외원형극장의 한 가운데에 서서 한 여인이 실타래를 감는 파노라마로 시작된다. 호수의 물 속 침전된 모래가 만드는 선과 여인의 주름, 베틀의 양털실이 그러하듯이, 원거리에서 산등성이에서 마을을 향해 서서히 내려가며 촬영된 이미지는 씨실과 날실로 직조된 농경지 풍경을 드러냄으로써 직조와 경작의 구조적 관계성을 보여준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수사학적인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슬로우 모션 기법을 고집스럽게 유지한다. 또한 페루의 시적인 실타래 감는 행위와 작가가 서로 연계하려는 요소들의 회화적 병치라는 표현에 전념한다. 김수자는 이러한 시선에서 실을 감고 직조하고 뜨개질하는 행위를 기하학적, 농경적, 그리고 건축적인 형태와 연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풍경으로 엮인 구조, 명상적이며 반복적인 행위, 원형적인 진실과 미학을 드러내는 제의적 형식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11]

  • 예술과 작가들은 그들이 관계하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 신기루를 꿰뚫는 통로를 다듬어가고 우리를 심오한 실체의 본질로 인도하는 것이다. 김수자를 포함하여 이러한 개념에 적용되는 작가들은 그들의 비전이 가진 진실을 제공하고 혼란을 비워내며 잡음을 사라지게 하는 매개자, 채널, 다리의 역할을 수행한다.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작가들은 자신들의 존재론적인 여정에서 수 많은 현상을 경험하지만, 이들은 창조적인 행위의 실천을 통해 이 경험을 정제할 수 있다. 김수자의 전 생애에 걸친 작업세계는 인식의 가장 깊은 영역을 가장 정확한 예술적 과정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풍부하게 만드는 확고한 의지다. 그녀는 기억, 감정, 거리, 보편적 실제를 이동하는 작업을 통해 이를 성취한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려는 시도; 하나되기를 요구하는 제스처, 자애와 암묵. 심지어 작가는 그녀의 바램이 곧 사라지는 것,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라 선언하였다: ‘나는 내가 결정하는 어느 시점에
    서 사라지고 싶다. (사라지는 여인) 작업을 계획 중이다....’[12] 이 사라짐은 수 많은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점점 더 지워지고 은둔하고 싶은 작가의 요구, 세계에의 책임, 자신의 존재론적인 질문 그 모두에서 시작된 것이다.

  • 그리스의 시인 니코 카장차키는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썼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나는 자유롭다.’[13] 그의 묘비명은 영적인 실천이 광기 속의 지혜, 즉 모든 것은 희망과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와 관련된다고 선언하는 불교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실로, 무소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는 것이 소유하는 것임을 그리고 사라짐을 두려워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다.

  • 김수자는 우리가 그녀의 작업을 통해 ‘무위(無爲)’로서 ‘행위(爲)’를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의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무위’를 취함으로써 의식의 순간, 예술적 실천 그 자체에서 얻어지는 ‘빛의 순간’과 같은 의미 있는 그 무엇이 드러날 수 있다.지, 수, 화, 풍으로 돌아감으로써 모든 예술적 실천은 빛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모든 죽음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함을 충분히 인식하게 한다. 이 같은 지혜로운 균형감각 덕분에 우리가 스러지거나 사라지리라는 두려움 없이 진정한 예술과 삶의 근본을 관조하게 하는 제3의 눈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Note]
[1] 칼 구스타브 융, 리차드 빌헬름, 『황금 꽃의 비밀, 중국의 삶에 관한 도서』, 라우트레지, 런던, 1999, p. 21. 초판은 1931년 런던의 라우트레지 앤 키간 폴 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2]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교육학 연구소, 에모리 대학, 조지아.
http://des.emory.edu/mfp/calvino/callast.html 에서 인용.
[3] 호세 로카, ‘김수자: 거울 여인’, 피터 블룸 화랑, 뉴욕, 2002.
[4] 제랄드 매트, ‘김수자와 제랄드 매트와의 인터뷰’, 『김수자: 빨래하는 여인』(전시 도록), 빈 아트센터, 비엔나, 2002.
[5] 메리 제인 제이콥, ‘김수자와의 인터뷰’, 재클린 바스와 메리제인 제이콥(편저), 『현대미술에 있어서의 불심』, 캘리포니아 대학 출판사, 로스엔젤레스, 런던, 2003.
[6] 제랄드 매트, ‘김수자, 제랄드 매트와의 인터뷰’, 앞의 책, 2002.
[7] 메리 제인 제이콥, ‘예술의 공간: 오늘의 부처와 문화’, 앞의 책, 2003.
[8] 로자 마르티네즈와의 인터뷰에서 발췌, 2012.
[9] 같은 저자.
[10] 같은 저자.
[11] 같은 저자.
[12] 제랄드 매트, ‘김수자, 제랄드 매트와의 인터뷰’, 앞의 책, 2002.
[13] 촉얌 트렁파, ‘RMDC, 1번 국도, 리버모어’, 『처음의 생각, 최선의 생각 - 108 편의 시』중 49 번째 시(詩). 알렌 긴스버그의 소개글이 수록되어있음. 매사추세츠: 샴발라 출판사, 1983, p. 85.

  • ─ Translated by Hyunjin Shin, Zoe Minkyung Chun, Jihyun Ha, Bona Hyun-Yi Yoo published to accompany the exhibition of 'Kimsooja: To Breathe'(2012) at Kukje Gallery. pp. 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