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이경진 │45년의 예술 여정, 아티스트 김수자의 깊고 긴 숨.
2024
Volga Serin Suleymanoglu │ Kimsooja Discusses the Intriguing Stories Behind Her Art
2024
Kim Hong-hee │ Confront and Deconstruct - Nomadism
2024
김홍희 │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 - 노마디즘
2024
Emma Lavigne │ Kimsooja, To Breathe – Constellation
2024
Lilly Wei │ Kimsooja: Meta-Painting
2024
Kyoo Lee │ Kimsooja: On n On - Nine Threads on Kimsooja’s Pivottari, Its Ongoing Archival Reaches and Resonances
2024
규 리 │ 김수자: On n On - 김수자의 ‘보따리’, 그 현재 진행형 아카이브의 성취와 반향에 관한 아홉 가닥의 사유
2023
Soyeon Ahn │ Journey from point to infinity
2023
안소연 │ 점으로부터 무한으로의 여정
2023
Malene Vest Hansen │ Transcultural Weaving
2023
Keumhwa Kim │ Bottari as a Fluid Canvas and Sculpture
2023
Galeries Lafayette │ Kimsooja To Breathe
2022
Kim Kibu │ Kim Sooja: From Social Sculpture to the Realm of Infinity
2022
김기부 │ 김수자 : 사회조각에서 무한의 영역으로
2022
유선애 │ One the Spectrum: KIMSOOJA
2022
Andreson Subin │ Interview
2022
Lee Sunyoung │ Borders Crossed at Byways
2022
이선영 │ 김수자, 사잇길로 넘나든 경계
2021
김홍희 │ 김수자의 보따리
2020
이연재 │ 김수자, 문화인류학적 탐구를 이어가는 바늘 여인
2020
Yeon Shim Chung │ Dislocations/Relocations: Contemporaneity in Korean Art
2020
윤난지 │ 아우름과 떠남의 미학: 김수자의 보따리
2020
김복기 │ '바늘 여인’, 세계를 직조하다
2020
Mark Rappolt │ Kimsooja - The New Normal
2020
Doris von Drathen │ KIMSOOJA, SCHAUENDES DENKEN
2019
Andy Saint Louis │ Mirror image
2019
Emma Lavigne & Emmanuelle de Montgazon │ Encounter with a City
2019
So-Young Moon │ Transforming a city’s memories
2017
Jérôme Sans │ A Journey through Immobility
2017
Young Hee Suh │ Geometry of Mind and of Body
2017
서영희 │ 몸과 마음의 기하학
2017
Sungwon Kim │ Archetype of Mind
2017
김성원 │ 마음의 원형
2017
Steven Henry Madoff │ Kimsooja: The Task of Being-Together
2017
스티븐 헨리 마도프 │ 함께-있음의 과제
2017
Hou Hanru │ Create A New Light
2017
후 한루 │ 새로운 빛을 밝히다
2016
정재숙 │ 김수자, 바늘이 되어 인류의 마음을 꿰매다
2015
Thomas Van Loocke │ Kimsooja 'To Breathe' in Centre Pompidou Metz
2015
서영희 │ 세계 속에서 미술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작가, 김수자 Kimsooja
2015
Jaeho Chong │ A Needle Woman: Galaxy was a Memory, Earth is a Souvenir
2014
Christina Arum Sok │ Kimsooja: A Modern Day Global Nomad
2013
Selene Wendt │ Sewing into Life
2013
David Morgan │ Kimsooja and the Art of Place
2013
Mary Jane Jacob │ Essential Empathy
2013
Steven Henry Madoff │ Gnomon of Place, Gnomon of Foreignness
2013
Daina Augaitis │ Kimsooja: Ways of Being
2013
Lee Sohl │ An Anomaly in the Palace of Self-Worlds
2013
이솔 │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이례와 변칙을 외친다
2013
이건수 │ 김수자 〈호흡: 보따리 (To Breathe: Bottari)〉
2013
김현진 │ 빛과 어둠으로 채운 한국관
2013
김찬동 │ 2013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출품 '보따리' 작가 김수자
2013
한행길 │ 삼라만상을 하나로 묶는 김수자의 보따리
2013
Kostas Prapoglou │ 55th Venice Biennale: Il Palazzo Enciclopedico | The Encyclopedic Palace
2013
Franck Gautherot │ A Place to Be - A Conversation with Kimsooja
2013
Seungduk Kim │ Centripetal Acceleration
2012
Chiara Giovando │ The Unaltered Reality of the World
2012
René Morales │ Kimsooja: A Needle Woman
2012
Antonio Geusa │ Calm Chaos: Kimsooja's Earth – Water – Fire – Air
2012
Laeticia Mello │ The pilgrimage of our own existence
2012
Ricky D'Ambrose │ Kimsooja, To Breathe: Invisible Mirror/Invisible Needle
2012
Choi Yoonjung │ Interview
2012
최윤정 │ 인터뷰
2012
Suh Young-Hee │ Kimsooja: Contemplation on top of the Horizontal and Vertical System
2012
서영희 │김수자: 수직과 수평 체계 위에서의 사유
2012
Bak Sang Hwan │ Cultural Memory, Cultural Archetype and Communication
2012
박상환 │ 문화기억과 문화원형 그리고 소통
2012
Jinkyung YI │ Nomadism: Elements of Nomadic Life and Art
2012
이진경 │ 노마디즘: 유목적인 삶과 예술의 성분들
2012
Choi Yoonjung │ Kimsooja's <A Needle Woman>, Sacred Ritual
2012
최윤정 │ 김수자의 <바늘여인>, 성소적 의식
2012
로자 마르티네즈 │ 사라지는 여인
2012
Rosa Martinez │ A Disappearing Woman
2012
잉그리드 코망되르 │ 김수자: 검은 심연, 명상적인 사라짐, 그리고 우주적 거울로서의 자연
2011
Ingrid Commandeur │ Kimsooja: Black Holes, Meditative Vanishings and Nature as a Mirror of the Universe
2011
Andrew Maerkle │ Points of Convergence - Part 2: Mirror-Void-Other
2011
Andrew Maerkle │ Points of Convergence - Part I: Other-Self-World
2010
Maxa Zoller │ Interview: Woman / Needle
2010
Ryu Byounghak │To be Born, Love, Suffer and Die
2010
류병학 │'지수화풍(地水火風)’에서 생명을 보다
2010
Soyeon Ahn │ Contemplation on the Origin of Life
2010
안소연 │ 삶의 근원에 대한 사유
2010
Oliva María Rubio │ Tierra - Agua - Fuego - Aire / Earth - Water - Fire - Air
2010
올리바 마리아 루비오 │ 지 . 수 . 화 . 풍
2010
Choi Eunju │ Breakwater Turns into Kimsooja’s Needle
2010
최은주 │ 영광원전 방류제, 김수자의 바늘이 되다
2010
Sungwon Kim │ About nothingness: being nothing and making nothing
2010
김성원 │ About nothingness: being nothing and making nothing Copy
2008
Sunjung Kim │ An Interview with Kimsooja
2008
Kelly Gordon │ Interview with Kimsooja
2008
Eleanor Heartney │ Art & Today, Excerpt from Art & Globalism
2008
Doris von Drathen │ Standing at the Zero Point
2008
정준모 │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무는 김수자
2008
Marcella Beccaria │ Kimsooja
2007
Volker Adolphs │ Passages and Places - The City
2007
Jim Drobnick │ Kimsooja: Electric Chants
2006
Oliva María Rubio │ An interview with Kimsooja
2006
Petra Kapš │ Kimsooja - A One-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
2006
Olivia Sand │ An Interview with Kimsooja
2006
Oliva María Rubio │ Kimsooja: Less is More
2006
Francesca Pasini │ An Interview with Kimsooja
2006
Angela Vettese │ To Breathe / Respirar
2006
Eleanor Heartney │ Living in the Present, Connecting with the Universe
2005
Friedemann Malsch │ The Bottari as Time Capsule
2005
Doris von Drathen │ Concrete Metaphysics
2005
Letizia Regaglia │ Museion - The Perception of the Horizonta
2005
Robert C. Morgan │ Kimsooja: A Lighthouse Woman, A Needle in the World
2005
Emanuela De Cecco │ Experiencing A Vacuum
2005
Anna Kafetsi │ Kimsooja: Journey into the World
2005
David Morgan │ The Discipline of Looking
2004
Brown, Elizabeth A. │ From Exploring WOW; or, How Works of Art Work
2004
Nancy Princenthal │ Kimsooja at The Project
2003
Barbara Matilsky │ Kimsooja
2003
Linda Yablonsky │ Mandala: Zone of Zero
2003
Nicolas Bouriaud │ Interview
2003
Jonathan Goodman │ Conditions of Anonymity: The Performance Art of Kimsooja
2003
Julian Zugazagoitia │ An Incantation to Presence
2003
Maria Brewinska │ Kim Sooja: Being and Sewing
2003
Flaminia Generi Santori │ Interview
2003
Mary Jane Jacob │ 'In the Space of Art: Buddha and the Culture of Now' Interview
2003
Adam Szymczyk │ Kim Sooja: March 24, 2003
2003
Soyeon Ahn │ Kimsooja
2003
안소연 │ 김수자
2003
김찬동 │ 김수자의 바느질
2003
Kimsooja │ A One-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
2003
김수자 │ 한 단어 이름은 무정부주의자의 이름이다
2002
José Roca │ Kimsooja: A Mirror Woman
2002
Bernard Fibicher │ Homeland Exists Only in Our Memory in This Era
2002
Lilly Wei │ Kim Sooja at Peter Blum
2002
Kimsooja │Cloth and Life
2002
Olivia Sand │ Kim Sooja
2002
Robert C. Morgan │ The Persistence of the Void
2002
Bernard Fibicher │ Obvious but Problematic
2002
Gerald Matt │ Interview
2002
Lawrence Rinder │ Whitney Biennale
2001
Sunjung Kim │ Kimsooja's Bottari and Her Journey
2001
Gregory Volk │ Kim Sooja at P.S.1
2001
Ken Johnson │ One Woman's Serenity in the Thick of Things
2001
Annett Reckert │ The Concept of Bottari
2000
Seungduk Kim │ SelfScape
2000
Paul Ardenne │ Sooja Kim: InterCommunication Center (ICC)
2000
Tae Hyunsun │ Kim Sooja: A Needle Woman
2000
태현선 │ 김수자 : 세상을 엮는 바늘
2000
Keiji Nakamura │ Kim Sooja's A Needle Woman
2000
Harald Szeeman │ Kim Soo-Ja: Bottari
1999
Barry Schwabsky │ Folds and Loose Threads
1999
Yilmaz Dziewior │ Soo-Ja Kim
1998
Kim Airyung │ Soo-Ja Kim: A solitary performance with old fabric
1998
Hans Ulrich-Obrist │ Interview
1997
Hans Ulrich-Obrist │ Wrapping Bodies and Souls
1996
Park Young Taik │Interview: To Approach from Plane to Three-dimension, A Bundle
1996
박영택 │ Interview: 평면에서 입체로의 접근, 보따리
1994
Hwang In │ Sewing into Walking, an interview from 1994
1994
황인 │ Sewing into Walking, an interview from 1994 Copy
1994
Jae-Kil Yoo │ Formative Characteristics Shown In Kimsooja's Sewing And Deductive Object Works
1994
유재길 │ '꿰매기' 작업과 「연역적 오브제」에 나타난 조형적 특성
1994
Kimsooja │ Cloth and Life
1994
김수자 │ 천과 삶
1991
Kwang Soo Oh │ Recent Works of Kimsooja - A Return to the Archetype
1991
오광수 │ 김수자의 근작: 원형에의 회귀
1989
김수자 │ 천, 색면, 변주
1988
김수자 │ 작가노트
1988
Sung-Rok Suh │ The Grammar and Expression of "Sewing" - On the first solo exhibition of work by Kimsooja
1988
서성록 │'꿰매기'의 어법(語法)과 표현력(表現力)
1979
윤우학 │ 김수자·이윤동의 「호흡展」
2024
이경진
지난가을 일본 후쿠오카를 방문했더군요. 그곳 우치하마 중학교 학생들과 대화하고 박수받으며 퇴장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뭉클했어요. 약 45년간 활동해 온 예술가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나요?
김수자
제 작업을 600명의 학생에게 소개하는 자리였어요. 따뜻하고 감동적이었죠. 내게 주어진 1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남을 기억이 돼 영감을 주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언을 해야 할 자리가 생기면 늘 꿈을 포기하지 말고 위험을 감수하라는 얘기를 합니다. 젊은 작가들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죠. 물론 분별이 있어야겠지만,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는 힘이 필요해요. 이번 경험을 통해 저도 옛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학생 때 접했던 새로운 경험은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미술관에 갔던 일, 프랑스 작가 클로드 비알라(Claude Viallat)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 강의를 들었던 순간처럼요. 그보다 더 어릴 땐 아버지의 군 복무로 방방곡곡을 떠돌며 유목민 생활을 했고, 미술관 방문이나 미술과 관련된 경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경진
미술가라는 역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김수자
문학과 음악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중 미술을 택한 건 은퇴 없이 지속적으로 삶을 사유하고 반영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 작곡을 공부한 동생을 비롯해 음악인이 많은 가정이라 성악 같은 음악 분야가 저에게는 더 가까운 진로일 수도 있었죠. 하지만 성악은 신체와 나이의 한계가 있으니 전 생애에 걸쳐 예술 의지를 불태우기에는 활동 가능한 기간이 짧다고 느껴졌어요.
이경진
긴 호흡의 예술 활동으로서 미술을 꿈꿨군요.
김수자
항상 미술을 사색하고 응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삶과 예술을 사유하는 긴 호흡의 활동으로 미술을 택했던 것 같아요.
이경진
“삶과 예술의 토털리티(Totality)에 도달하고 싶다”고 자주 얘기해 왔어요. 미술가가 되지 않았으면 종교인이 됐을 거라는 말도 한 적 있습니다.
김수자
특히 휴머니즘에 관심이 있었어요.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신체적 · 정서적으로 취약하고 연약한 상태, 전쟁 혹은 어떤 부당함.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늘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땐 내가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는 데 죄책감을 느꼈어요. 그런 면에 민감했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채석장으로 가려는 마음도 먹었습니다. 삶의 터전에서 고통을 겪는 이들과 함께 힘듦을 나누고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스스로 많이 괴로워했어요.
이경진
괴로움을 기꺼이 겪으며 타인의 고통을 응시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김수자
글쎄요. 자연스럽게 그리 됐어요. 정현종 선생님의 시 ‘고통의 축제’ 구절이 내면에 잠재된 시절이었죠. 저는 타인의 고통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이경진
올해도 예술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빼곡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많은 관람객이 방문한 파리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에 펼친 전시가 있었죠. <엘르>는 올해를 빛낸 이름을 조명하는 ‘엘르 스타일 어워즈 2024’에서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해 무대로 모시기도 했고요.
김수자
밀도 있는 성취감을 느낀 해였습니다. 상반기에 중요한 프로젝트를 여러 개 마쳤고, 모두 잘 구현돼 기분 좋았어요. 각 사이트에 맞게 새로운 언어를 채굴하는 작업이었죠.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울라 사막에 설치한 ‘To Breathe-AlUla’ 프로젝트도 그랬고, 파리 피노 컬렉션의 로툰다 홀 작업은 미니 회고전 같은 전시였기 때문에 제 작업을 관통하는 ‘보따리’ 컨셉트의 총체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어요. 메츠 성당(Metz Cathedral)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영구 설치한 작업의 프로토타입을 다시 악셀 베르보르트에서 전시할 기회도 있었고요. 탄야 보나크다르(Tanya Bonakdar) 갤러리와 함께 20년 만에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어 그간 의미 있는 작업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이경진
피노 컬렉션 로툰다 홀을 채운 작품 ‘호흡-별자리 To Breathe-Constellation’는 이제껏 싸매온 ‘보따리’ 컨셉트를 건축물로 전환시킨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상징적인 레이나 소피아 크리스털 팰리스(Crystal Palace, Museo de National Reina Sofia)의 작업 ‘To Breathe-Mirror Woman’이 연상됐어요. 숨과 호흡은 김수자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김수자
페인터로 작업을 시작한 1970년대부터 저에겐 캔버스가 하나의 질문이었어요. 캔버스의 표면이나 구조를 고민했죠. 캔버스는 회화에 있어 대상이자, 다른 타자이자 그 자신이고, 항상 대립이 있는 대상이었어요. 정면으로 맞서면 동시에 뒷면을 꿰뚫어보고 싶은 의지를 느끼게 했죠. 캔버스의 표면은 하나의 보더(Border)이기도 하고, 벽이기도 해서 바느질이라는 방법론으로 그 깊이를 가늠하고 이어가는 작업을 1980년대 초부터 이어왔어요. 바느질에는 이원론적인 면이 있죠. 안과 밖을 들락거리고, 매스큘린하면서도 페미닌하고, 공격적인 한편으로는 치유하고, 두 개로 갈라진 틈새를 이어줍니다. 2004년 폴란드의 우치 비엔날레(Ƚódź Biennale)에서 과거 텍스타일 공장이었던 빈 공간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직조 기계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순간적으로 제 몸이 생생하게 의식됐어요. ‘숨 쉬는 일이 곧 직조 행위구나.’
이경진
그렇게 ‘더 위빙 팩토리(The Weaving Factory)’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그 공간을 위해 선보였습니다. 다양한 속도와 강도, 깊이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소리를 공간에 채웠어요.
김수자
2004년의 일이에요. 이후에는 2006년 초에 베니스의 오페라 극장 라 페니체(La Fenice)가 불에 탄 뒤 다시 오픈할 때 무대 위 스크린에 프로젝션 작업 커미션을 받았어요. 그때 오페라 극장인 라 페니체의 성격을 생각했죠. 노래라는 것 역시 ‘숨’이 확장돼 발생한, 문학적 내러티브가 있는 예술 형태잖아요. 숨을 다시 연결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운드를 설치하고 스크린에 비디오 프로젝션을 했는데 디지털 컬러 스펙트럼이 계속 루핑되는 화면이었어요. 제가 주목한 부분은 그 프로젝션 작업에서 과연 평면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시각, 응시하는 행위도 하나의 ‘바느질(Needling)’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To Breathe’라는 타이틀을 사용했어요. 같은 해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선보인 ‘To Breathe-A Mirror Woman’은 건축 공간을 하나의 보따리로 보면서 내외부 공간을 나누고, 실제와 버추얼한 이미지를 반사시키는 거울 표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숨, 날숨과 들숨 같은 것을 공간에 설치한 겁니다. 숨은 무엇보다 우리 존재가 나선 여행길의 시작과 끝입니다. 숨의 지속성은 삶의 지속성과 연결돼 있습니다. 제가 발전시켜 온 삶과 세계의 이중 구조를 통한 반영. 거기에서 드러나는 해답들. 이를 넘어서는 어떤 피안의 세계. 이런 것에 던져온 질문이 ‘숨’이라는 개념과 맞닥뜨려진 것 같아요.
이경진
피노 컬렉션에서 관객들이 ‘호흡-별자리’를 경험하는 모습도 장관이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왔고, 아마도 모든 관객은 김수자의 비밀스러운 퍼포머였겠죠.
김수자
싸매는 행위를 하지 않고 보따리를 싼 거죠. 다만 이번에는 옷이 아니라 휴머니티로요. 제가 그걸 퍼포먼스라고 발표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관람객 각자의 개성과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눈여겨보며 즐겼고, 기대보다 액티브한 리액션이 나와서 사실 놀랐어요. 많은 이가 그 공간 안에서 자신의 존재성을 다시 재인식하고 가늠해 봤죠.
이경진
이 작품으로 촉발된 새 질문이 있나요?
김수자
로툰다 홀의 ‘호흡-별자리’ 작업을 하며 보따리 컨셉트에 연관될 수 있는 24개의 작품을 24개의 비트린(유리 전시장)에 설치했어요. 퍼포먼스도 있고, 한지를 손으로 쥐었다 펼친 작업도 있었죠. 로툰다 홀에 거울을 설치하여 발아래에 다시 돔이 시각적 ‘보이드(Void)’를 창조하였어요. 우리가 달항아리를 제작할 때 두 점의 베이스를 사용하는 것과 같죠. 두 개의 돔을 엎어 연결하는 행위가 되잖아요. 베이스와 베이스가 서로 맞닿는 경계는 바로 거울이고요. 굉장히 큰 깨달음이었어요. 경계의 만남, 어둠과 보이드의 관계, 거울과 보이드의 관계. 양자적 관계성이 지금도 큰 물음으로 남아 있어요.
이경진
공간 요소를 새로 제작하는 작업이 아닌 주어진 공간 조건 속에서 최소한으로 개입해 최대한의 경험으로 응답한다는 입장으로 작업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는 어떤 물음에 대한 답이었나요? 또 결국 ‘보따리’가 김수자에게 중요한 컨셉트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지점은 무엇이었는지요?
김수자
보따리는 이미 존재하는 오브제라는 점이에요. 이미 존재하는 사물의 의미를 끊임없이 채굴하고 드러내는 일이 그동안의 제 작업이었습니다. 그 근간에 결정적 영향을 준 존 케이지(John Cage)가 198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시연한 작업을 하나 본 거죠. 그의 사운드 피스를 듣기 위해 6m 길이의 빈 컨테이너에 들어갔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측면에 적힌 간단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Que vous essayez de le faire ou pas, le son est entendu.(만드려고 하든 안 하든, 소리는 들립니다.)” 저는 완전히 충격받았어요. 이제까지 예술은 다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는 만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작업을 전했죠. 그때부터 어떻게 만들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지, 있는 것은 그대로 두되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일에 지속적으로 천착했죠. 최소한의 행위나 오브제를 공간에 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이면서 새로운 의미나 개념을 전달할 수 있는 작업을 지속해 온 거예요.
이경진
보따리 작업은 긴 시간 다변화되고 확장돼 왔습니다. 최근 메타 페인팅 작품을 선보이고 있죠. 페인터의 지점으로 다시 회귀한 걸까요?
김수자
페인터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실험해 왔기 때문에 항상 열정의 본질과 시작점은 페인팅에 있습니다. 보따리도 저에게 사실 하나의 페인팅이죠. 이불보 자체는 페인팅인데 싸는 행위는 퍼포먼스이고, 싸여 있는 형태는 조각이고 설치 혹은 오브제이기도 합니다. 그것 자체가 어떤 결정체로서 질문과 해답을 갖고 있어요. 메타 페인팅은 일련의 순환적 실험을 통해 다시 돌아간 지점이죠. 넓은 땅에 아마씨를 뿌렸어요. 리넨 캔버스 섬유와 린시드 오일의 재료가 되는 아마씨 오일을 얻을 수 있는 씨를 뿌리고, 수확해서 오일도 만들고, 섬유도 만들어 리넨 캔버스 천을 짰습니다. 직접 짠 것은 아니고 주변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았죠. 다시 회화의 본질로 돌아가는 작업의 시작이었어요. 더불어 ‘만들지 않음(Non-making)’의 태도와 방향성으로 되돌아가는, 새로운 목적지이자 출발점이에요.
이경진
오늘 저희가 만난, 서울에 마련된 작은 전시공간을 채운 이 블랙 페인팅도 같은 맥락인가요?
김수자
리넨 캔버스는 서구 회화의 가장 중요한 재료이지요. 여기에 스프레이한 검은 안료는 그 물질성을 최대한 제거하는, 더 이상의 블랙이 없는 ‘블래키스트 블랙’에 준하는 페인팅 재료예요. 거의 리플렉션이 없는데, 수많은 레이어의 스프레이 작업을 통해 안착된 스프레이 안료들을 가까이 보면 여전히 수많은 공간이 있죠. 바늘구멍 같아요. 공간이 어떻게 바늘구멍이 될 수 있을까요? 바늘구멍은 어떻게 공간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그 어둠의 캔버스를 바닥에 세우니 작업이 묘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개인의 묘비명이거나 페인팅으로 이뤄진 어둠의 보따리 혹은 보따리에 들어 있는 어두운 공간인지도 모릅니다. 이 역시 뭔가를 드러내지 않고, 최소한의 행위로 새롭게 생성되는 것이 현재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이경진
한 인터뷰에서 “결과를 빨리 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 적 있어요. 1999년 뉴욕으로 이주하며 문화적 망명자를 자처한 것처럼 쉽고 어려운 것이 놓인 선택의 기로에서 늘 후자를 택한 것 같습니다.
김수자
결혼 초기에도 우리 부부는 소록도행을 택했어요. 그들과 함께 살면서 정신과 의사였던 남편은 봉사를 했고 저는 관망자로 살았죠. 인생의 선택도 마찬가지였어요. 뉴욕으로 이주하며 가족과 분리된 삶을 20년간 지속해 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작가로서 판매에 관심도 없고, 작업 그 자체에만 몰두했죠. 제 성향대로 살아온 것 같아요.
이경진
“다른 사람의 고통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괴로웠다”는 말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고난을 선택하고 역경에 맞서는 방식으로 살아온 삶을 통해 괴로움이 좀 덜어졌는지 궁금합니다.
김수자
지금도 전쟁이나 기아, 폭력을 접하기란 참 힘듭니다. 근래에는 이를 작업으로 표현하는 단계에서 조금 벗어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광주 비엔날레에 헌사하거나, 일본에서 큰 쓰나미가 일어난 후 그곳의 옷을 가져와 보따리를 싼다든가 하면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헌옷과 보따리 설치미술 작업을 했어요. 이제는 이를 초월하는 상태에 관심이 많아요. 순수한 미학과 추상성을 더 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경진
약 45년의 예술 인생 내내 상업적이지 않은 영역을 걸어왔습니다. 그 치열하고 긴긴 세월을 지탱해 준 건 무엇이었나요?
김수자
자신을 믿었던 것 같아요. 오래전 클로드 비알라가 예술은 예술적 의지나 열망, 욕망이 주도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저도 그런 욕망을 믿는 편이에요. 보통의 일상에서는 다소 부족하지만 예술적 에너지, 나라는 존재가 우주
와 맞닥뜨리는 지점에선 신뢰가 있었죠. 그런 우주의 에너지를 믿었어요.
─ ELLE Magazine Korea, Decempber 2024, pp. 98-103.
2024
The world-renowned artist Kimsooja, known for her profound explorations of identity, culture, and spirituality, continues to captivate audiences with her impactful projects and thought-provoking installations. In a recent conversation, we delved into her artistic journey and career, discussing the influences that have shaped her work and the messages she wishes to convey through her art. From her unique perspectives on Korean heritage to her innovative approach to conceptual art, Kimsooja offers insights that illuminate her creative process and vision. She also shared, for the first time, some exciting details about new exhibitions she’s planning for next year.
Volga Serin Suleymanoglu
Could you please briefly introduce yourself?
Kimsooja
I am Kimsooja, a conceptual Korean artist currently living and working in Seoul.
Volga Serin Suleymanoglu
What kind of childhood did you have that inspired you to become an artist?
Kimsooja
My childhood inspired me more gradually, and only later in life did I become aware of how my daily life and activities of my childhood could be translated into an artistic vocabulary. In other words, rather than my childhood inspiring me to be an artist, it is now, as an artist, that I reflect back on those memories. Becoming an artist felt like it was in my blood. I grew up near the DMZ, with a nomadic lifestyle due to my father’s military service, which left me with rich sensory memories that find their way into my work.
Volga Serin Suleymanoglu
What are the elements of your art?
Kimsooja
I use various media to explore concepts in unique ways. For instance, I use bed covers for “bottari” (bundles) and filming as an immaterial wrapping method, capturing the reality of humanity and nature. Each medium, from textiles to video, unfolds different dimensions of universality and broadens the concepts within each work. Physicality in my work also reveals the void and spirituality inherent in life’s ephemeral moments.
Volga Serin Suleymanoglu
What role do fabrics play in expressing your art?
Kimsooja
Fabrics are like a second skin, carrying bodily memories. Traditional Korean bed covers, with their symbolic embroidery and patterns, represent unfulfilled desires, love, solitude, and even death. The bed becomes a frame for existence, holding memories that resonate deeply in my work.
Volga Serin Suleymanoglu
Could you tell us about some important memories from your early childhood that had a defining impact on your life and views as an artist?
Kimsooja
One day while sewing a traditional bedspread with my mother, I felt an energy surge as I observed how the needle pierced the fabric. This “revelation” pointed me toward the structural simplicity of horizontality and verticality, foundational to various life systems. It was a defining moment, showing me the deeper cross-structures in nature, mind, and artistic practice, which still influence my work.
Volga Serin Suleymanoglu
Your “bottari” works are quite fascinating. What inspired you to focus on “bottari” and how has this idea evolved over time?
Kimsooja
Since working on sewing practice during the early 80s, keeping “bottari” had always been part of the scene in my studio or at home for storing small objects or fabric scraps. It got transformed into a total art form while I was at P.S.1 Studio in New York in 1992. It became a sculpture, a painting, and a performance all in one. Over time, “bottari” has grown from bundles on a truck to architectural installations like the “Crystal Palace” in Madrid. Each evolution explores new ways of wrapping and unwrapping, mirroring life’s complexity through a simple form.
Volga Serin Suleymanoglu
What is the story behind combining your name into a single word, from Kim Soo-Ja to “Kimsooja”?
Kimsooja
A name often carries a deep sense of self-identity and, in my case, layers of history. My grandfather, who had hoped for a grandson, gave me the name Soo-Ja—a name with a strong, traditionally female sound in Japanese. My parents considered changing it, but ultimately respected his choice. Over time, I discovered even more meanings hidden within my name. While filming “Mumbai: A Laundry Field” in a Mumbai slum in 2007, I learned that in Hindi, the pronunciation of the word “Sooja” translates to "a needle," particularly a large, 30 cm needle used for sewing mattresses. This unexpected meaning left me speechless, almost as if I were a needle stitching together stories across cultures.
My family heritage also plays a role. The Kim clan to which I belong, specifically the "Samhyun branch," is believed to be descended from King Suro, the founder of the Gaya dynasty (45–562 CE) in southeastern Korea. King Suro married Queen Hur, an Indian princess from Ayodhya, who is credited with introducing Buddhism to Korea. Embracing the combined name "Kimsooja" allowed me to weave these fragments of history, culture, and personal identity into one unified expression.
Volga Serin Suleymanoglu
The 'A Needle Woman' video series is captivating. What emotions did you experience while shooting it, what were the biggest challenges, and how did you feel once the project was completed?
Kimsooja
"A Needle Woman” was a series of performance videos shot from 1999 to 2009 in crowded cities worldwide, capturing my solitude amidst social conflict. Some moments were challenging, particularly in areas with strong economic or religious tensions. Witnessing humanity’s ephemerality and suffering over a long period of time and across many places was a truly transformative experience for me, filling me with compassion and broader perspectives on existence.
Volga Serin Suleymanoglu
How have Korean women and their stories influenced you?
Kimsooja
For me, initially, “bottari” was just an aesthetic object, not a social one, but when I returned to Korea, I saw women’s roles as the mothers, wives or daughters under a new lens. Korean women’s resilience in the face of social constraints inspired me to work with entire used garments within “bottari”, rather than cutting them before placing them inside, revealing the realities of the human body and life stories. This allowed me to present “bottari” as something so much more than an aesthetic component.
Volga Serin Suleymanoglu
How did the artwork 'Archive of Mind,' which was completed with the participation of many visitors to the exhibition, come about?
Kimsooja
“Archive of Mind” emerged from a contribution to Yoko Ono’s Water Event in 2016. I realized that shaping a clay sphere could be a communal, meditative act, where visitors could share in the experience of creation. This interactive process allowed for a collective exploration of physical, geometric, and spiritual aspects of art.
Volga Serin Suleymanoglu
In your piece 'To Breathe – Constellation' exhibited at the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in Paris, France, what message are you trying to convey to the diverse visitors from different ethnic backgrounds?
Kimsooja
“To Breathe- Constellation” uses a mirror floor to create a wholeness in space, merging reality and illusion within the architecture of the marvelous dome in that space. Visitors, regardless of their background, become performers, looking, walking, sitting, posing, dancing, exploring their own reflections and engaging with existential questions in a shared, universal space. This piece dissolves boundaries, emphasizing the unity of human experience.
Volga Serin Suleymanoglu
What advice would you give to young artists?
Kimsooja
My advice is to keep moving forward, taking risks confidently, no matter what challenges or untruths may exist in the art world. Trust that your art will prove itself in time, and stay true to who you are and the world you live in.
Volga Serin Suleymanoglu
For those who wish to study or explore art in Korea, what aspects of Korean culture and art would you recommend they look into and learn about?
Kimsooja
Rather than focusing on specific aspects, I’d recommend fully immersing yourself in Korea—experiencing everything from its society, language, and food to its unique philosophy, humble beauty, and natural landscapes. Encounter the spirit of the “Seonbi” (a learned scholar’s ethos) and absorb the complexities and passion that define this place. It is an incredibly rich source of inspiration.
Volga Serin Suleymanoglu
What projects are you planning for the future? Could you share a bit about them with us?
Kimsooja
I will continue to contemplate current questions I have from different specific sites, themes of exhibitions, or biennales, exploring, answering, or questioning back to each of them. In this journey, I am planning to unveil a site-specific project for the main rotunda of the prestigious San Giorgio di Maggiore in Venice during the Venice Architecture Biennale 2025, followed by another site-specific project for the Oude Kerk, the oldest building and a church in Amsterdam, celebrating the city of Amsterdam’s 750-year anniversary, among others.
— Honorary Reporters, October 2024.
This interview took place via email in writing between August 17 and October 24.
Confront and Deconstruct - Nomadism (Kimsooja, Kyungah Ham)
2024
The topic of Chapter 8 is 'nomadism', and the artists under consideration this time are Kimsooja (b. 1957) and Kyungah Ham (b. 1966). While they differ considerably in the tendencies and artistic personality of their work, they represent a kind of 'dream team' in the sense that they both practise the ethics of contemporary nomadism through their travels. Kimsooja pursues nomadic journeys based on her anthropological interests, while Ham stimulates and nurtures artistic ideas through travel. Their nomadism has nothing to do with the sentiments of historical nomads who travelled constantly from region to region to sustain themselves and satisfy their survival instincts, nor with the contemporary nomadic life that their descendants continue to follow. In addition, their nomadism appears quite removed from the lifestyle of the rapid information age, where transportation and communication developments create a constant feeling of being 'on the move', and also from the romantic Bohemians who dream of spiritual wandering and travels to foreign lands in search of a liberated life.
The nomadism of these two artists can be properly understood in the context of reflective thinking about neo-liberalism and globalism - two key issues in the later part of the twentieth century. As is well known, neo-liberalism is an economic laissez- faire approach that is critical of state interventions in the market and emphasizes the role of the market and free activities within the private sector. In addition to its positive impact in terms of the immense power enjoyed by capital and the boosting of national competitiveness, it also has negative effects in its disregard for mutually beneficial lives and redistribution at the community level - as witnessed with issues of economic downturns, unemployment, the wealth gap and conflict between developed and underdeveloped countries. This neo-liberalism has formed part of the backdrop of global tectonic shifts in conjunction with the ideas of globalism, which involves the use of global systems to seek peace for humankind, economic welfare, social justice and harmony with the environment. As both an effect and a driving force of neo-liberalism, globalism, in spite of its transnational utopian vision, has been subject to non-Western and developing countries geopolitical critiques from a postcolonial perspective. The argument here is that the 'globalization' advocated by globalism is actually a Western- centric standardization that demands a full-scale re-examination.
In response to First World globalism and its vision of transforming developing countries in accordance with Western values and standards, an alternative concept emphasizing locality at the periphery, known as 'glocalism', has emerged, where non- Western cultures respond critically to Western influences in an attempt to globally expand their own cultural contexts. This is an issue related to the neocolonialism that has persisted even after the official end of the colonial era, and to the postcolonial concern and alarm over the neo-imperialism that perpetuates unequal international relationships in terms of politics, economy and culture. This offers the possibility for linking glocalism - that is, reorganization in a decentralized manner - to the artistic nomadism of Kimsooja and Ham, who objectify themselves while also embracing others through their intellectual and moral journeys.
As this discussion suggests, the nomadism practised by the two artists has been an artistic driving force bringing together the world with the region, and the centre with the periphery. Their nomadism is also a conscious mechanism for rendering female speakers visible. In that sense, the gender-specificity in aesthetic terms suggested by Kimsooja's bottari (bundles) work and Ham's North Korean 'Embroidery Project' should be mentioned. Of course, many contemporary artists - both female and male - have employed fabric-based work and handicrafts as a new plastic language. Yet, in the case of these two artists, it is notable in the way the thematic inevitability of 'medium as message', in the Marshall McLuhan sense, is prioritized over media interest or exploration. Kimsooja's bundles originated in her examination of the traditional role of Korean women and their daily housework, while Ham's 'Embroidery Project' can be viewed as the result of a 'feminine' approach devised to communicate with people in North Korea. From this perspective, it is difficult to separate their artwork using fabric, sewing and embroidery from a thematic consciousness relating to women's culture and community spirit.
In short, it is necessary to look into the bundle and embroidery that visualize their artistic nomadism in the context of globalism. Kimsooja's bottari are physical and symbolic tokens of nomadism, and Ham's North Korean embroidery can be read as an expansion into a metaphor of movement, in which a peripheral handicraft receives renewed attention in both cultural and geographical terms. In other words, fabric/embroidery become physical signifiers visualizing the two artists' nomadic consciousnesses. It therefore stands to reason that their fabric-based work necessarily encompasses thematic meanings that extend beyond the medium itself. Their aesthetic and political bearings are fixed at a point where 'women's crafts' intersect with the issue of nomadism, and their feminist implications may be seen as lying therein.
Kimsooja's bundle-based art shows a fascinating instance of how sewing and other everyday domestic tasks traditionally performed by women - or more general practices of managing food, clothing and shelter - are conceptualized and signified in an artistic context, specifically in contemporary art.'[1] The matrix out of which the artist's pictorial fabric-based work and sculptural bundles emerged was her grandmother's traditional hanbok clothing (which the artist treasures even today) and the nostalgia associated with it, as well as memories of quilting with her mother. These artworks have grown and evolved like organisms during Kimsooja's travels around the world. First shown in 1992 during her MoMA PS1 residency in New York, her bottari works have diversified in terms of form, medium and concept over the course of many domestic and international exhibitions. Sometimes, they are personified as the artist's body or a woman's body; other times, they take on a deeper aesthetic and political sense as the formal style shifts to non-material bundles of breath and light. 'My bundles' containing personal stories have transformed into 'our bundles' confronting historical oppression and hardships, and have also expanded into public narratives that reach beyond the personal realm and become a signifier of the act of embracing in order to heal scars.
Kimsooja's bundles first came to public attention through a touring exhibition that has now become the stuff of legend: 'Cities on the Move' (1997-99). Planned by Hans Ulrich Obrist and Hou Hanru, the exhibition was a multi-genre art event that captured the zeitgeist of the 1990s - a time when a 'New Town' construction boom and new urban culture were in ascendancy, as Asia developed into a major geopolitical region amid the effects of neo-liberalism and globalization.[2] For this exhibition, Kimsooja presented the work Cities on the Move - 2727 KM Bottari Truck (1997), which became a milestone in her career. The performance video records her 2,727-kilometer (1,694-mile)-long journey wandering along Korean village roads beloved by her in a truck filled with bundles. With the Korean landscape passing behind her, the lonesome artist is shown only from behind in the fixed frame, sitting atop her bundles, as if in defiance of contemporary urban phenomena and the concept of progress, evoking feelings of nomadic alienation and nostalgia. Recognized as a particularly original interpretation of the exhibition's theme, the work catapulted Kimsooja to global renown virtually overnight.
Much like the departing protagonist in her work, Kimsooja left Korea in 1999 to move to New York. Recalling this experience in an interview, she said, 'It was a tremendously difficult situation, but rather than seeing the stress in this dramatic situation of casting myself out alone in the world, or defining myself as a cultural exile, my idea was to drive myself to the limits, seeing it as another future challenge.'[3] It was here at the limits - living the life of an outsider - that Kimsooja produced numerous key works of performance videos contemplating her own sense of existence and suggesting the healing role of women, such as A Beggar Woman (2000-2001), A Homeless Woman-Delhi (2000), A Homeless Woman-Cairo (2001), A Laundry Woman (2000), A Mirror Woman (2002), A Wind Woman (2003) and the well-known series 'A Needle Woman' (1999-2009).
The first work in the series 'A Needle Woman' (1999-2001) is a multi- channel performance video filmed in densely populated cities around the world. Here, too, the artist has her back to the viewer as she stands unmoving amid waves of metropolitan crowds. Her trademark mise en scène - the motionless image seen from behind, which evokes inner turmoil - is based on an existential experience that took place on a Tokyo street. As she was walking in Shibuya, she explained, there was a 'moment when I was overwhelmed by the cumulative waves of people and could only stand in [one] place', adding that the 'arrival of that overwhelming moment was the start of the "Needle Woman" and that she had the feeling of being 'erased' during her motionless performance.[4] Yet, in that very moment, she regained her peace of mind and experienced a sense of 'mediumistic' oneness with the crowd, where she became a 'wrapping cloth' ensheathing the people and a needle knitting them together. Perhaps this can be an excitement of empathizing with, feeling compassion for, embracing and welcoming the anonymous masses.
The second work in the same series was a performance video created for the 51st Venice Biennale in 2005. For this work, the artist's explorations were not in densely populated cities, but in cities plagued by political and religious divisions, civil war, widespread violence and poverty: Patan, Jerusalem, Sana'a, Havana, Rio de Janeiro and N'Djamena. Presented in slow motion rather than real time, the video shows spaces that have been exploited, marginalized and rendered powerless, with the mounting, anguished sense of tension of urban catastrophe. With her silent, motionless stance, the artist has already been stripped of her sense of presence, annihilated in the slow-motion video and by abstract time like a needle that 'disappears from the place, just leaving the marks of the stitch after accomplishing its role as a medium of sewing fabric'.[5] She thematizes the light and dark aspects of globalism and neo-liberalism - that is, the chaos of alternating utopias and dystopias, the scenes of confusion where the 'First World' collides with the 'Third World', centre with periphery, global with regional, the West with Asia, stronger countries with weaker ones, the rich with the poor. By transforming herself into a needle that pierces and stitches, the artist desires to become a healer taking away the misfortunes that afflict the planet and humankind, as she also attempts to establish connections with the victims of war, migration and exile.[6]
As a continuation of 'A Needle Woman', 'Thread Routes' is a complex statement in which the artist uses her own body to weave together human beings, nature and the universe. Previously, she featured a sound performance of breaths, making a medium of the body that had been personified as a needle and bundle through the work The Weaving Factory (2004). Presented at the 1st Łódź Biennale in Poland in 2004, The Weaving Factory was inspired by a vacant former textile factory in the host city. It was conceived as a piece that would bring the works back to life by infusing the artist's own breaths and humming sounds - integrating her body with the empty building. The breathing performance drew an analogy between the repeated inhalations and exhalations and the crossing of warp and weft threads or the cyclical horizontal/ vertical structure of stitching. This was developed further into To Breathe/Respirare: Invisible Mirror, Invisible Needle, which she showed in 2006 at Teatro La Fenice in Venice. The breaths of the artist and the audience blended to envelop the theatre, which was transformed into a vessel for this ensemble of breathing: a feast of breaths and the sounds of life in place of an opera performance filled the air. For the solo presentation Respirar - Una Mujer Espejo / To Breathe - A Mirror Woman that same year at Palacio de Cristal in Madrid, she created another synaesthetic bundle through the resonance of light and breath, with a rainbow of sunlight refracted by special film across the building's glass windows to meet light reflected from mirrors on the floor, thereby enveloping the building and the bodies of those within.
If this dematerialized bundle enswathing space in breath and light can be described as a 'post-bundle', this was developed further with Kimsooja's exhibition 'To Breathe Bottari' at the Korean Pavilion of the 55th Venice Biennale in 2013. Here, the artist filled the space with a rainbow of colours infinitely refracted by the special film covering the pavilion's glass surfaces. A kaleidoscopic mirroring effect was produced as this light was re-reflected by mirrors on the floor. As if in response to this spectrum of light, a sealed, anechoic chamber was set up in one corner. In terrifying pitch-blackness, the viewer heard only the sounds of their own body: breathing, coughing, a pounding pulse. Kimsooja had woven a cosmic bundle where light and deep darkness coexisted - a bundle of life, where living and death had become one.
The artist presented another resonant bundle of light and sound in 'Archive of Mind', her solo exhibition for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in 2016. Alongside her light-based artwork transforming the museum's courtyard into a luminescent space using the reflections created by her special film, Kimsooja showed a new sound-based work entitled Unfolding Sphere. This work culminates with Archive of Mind (2016), a ritualistic audience participation performance where viewers are invited to a large elliptical table and asked to knead lumps of clay that have been placed there, forming abstract spherical shapes as though creating human beings out of the substance. As the duet between the friction noises of the clay balls rolling on the table and Unfolding Sounds, featuring the artist's gargling sounds, ring out through the space, there is an experience of synaesthetic unity where the spherical clay bodies become one with the viewers' hands as if encircled by the artist's wrapping cloth. The message of 'Needle Woman' has been intensified and expanded as the 'bundle' symbolizing nomadism shifts from geographical to psychological space.
[...]
If there is a common theme connecting the artistic oeuvres of Kimsooja and Ham, it is 'establishing relationships'. To begin with, these relationships are conceptualized through fabric and sewing. Kimsooja views her fabric-based work - the joining of cloth - as a mechanism for inclusiveness, uniting the self with others and the and wrapping world, nature and the universe. Ham regards her 'Embroidery Project' as a personal, non-linguistic dialogue with the potential to resolve Korea's political division.
The relationship they are aiming for is driven by a contemporary brand of nomadism, in the sense that they are actually physically moving and travelling between places. Their nomadism is distinct from the so-called 'new nomads' or digital nomads freewheeling figures powered by advanced, ubiquitous technology. But the way they employ online information as a means of approaching minority populations and multicultural phenomena, restoring a lost sense of community and opening up the possibilities for a more socially participatory, interactive democratization, means they can also be seen as sharing certain sentiments with the twenty-first- century model of the 'new nomad'. The important thing is, as mentioned above, that their nomadism satisfies the proposition of glocalism, which relates to a critical awareness of Western-centred globalism and neo-liberalism. Their nomadic travels can also be defined as journeys of artistic and moral exploration, since they are pursuing new values with anthropological interests and an experimental mindset, travelling the wastelands with a 'glocal' mentality. In other words, they upend static reality and stable order through proactive movements that turn natural places into spaces of praxis, and they introduce instead a reality that is one that is transformative, alien and vague. In that in the process of formation sense, their exploratory travels can be understood as the kind of 'spatial practice' or 'performance of place' described by Michel de Certeau in his The Practice of Everyday Life (first published in English in 1984).
Through their 'performance of place', these artists make a moral decision in the interest of global coexistence, human inclusiveness, correspondence with the other, compassion, and healing in the face of contemporary disasters and cross-cultural unity. In this way, their nomadism relates naturally to 'welcoming'. The value of hospitality is found in a free and liberated spirit and an intellectual richness that is open to all. When practised in the realm of art, it can achieve astonishing reversals. Through welcoming that is free of moral controls or conditions, it is possible to go beyond the cultural and artistic limits, and to resist state ideology and political violence, doubts and hostility towards others, distrust of the natural environment, and a neo-liberal political and economic climate that views economic acquisition as the ultimate goal.
In this context, hospitality is a radical aesthetic catalyst for a new political art, one that relates to such sharp issues as localism, feminism, postcolonialism, racism, climate and the environment. The adoption of hospitality for feminism in particular can be a means of resisting racial and gender-based oppression and achieving non- Western, non-patriarchal, non-modernist art through the embracing of subalterns, such as women, the elderly and disabled people. We can observe an expanded form of feminist art through the powerful and persuasive welcoming messages to be found in the work of Kimsooja, who alludes to the role of women as healers and mediators, as well as in the work of Ham, who attempts to communicate with North Korea, thematizing political division through dialogue and a gentle artistic approach. The rationale for comprehending these two artists' work from a feminist perspective lies in the way that an inclusive welcoming, an embracing of others, including those on the margins, offers a potential means of transcending the self-centred and local-egoistic cultural limits and the linear constraints of feminism.
[Note]
[1] Kimsooja, in Woman: The Difference and the Power exhibition catalogue (Seoul: Sam Shin Gak, 1994), p. 83. 'Women's daily lives are filled with two-dimensional work, three-dimensional work, installation work, and performance art. The visual systems associated with clothing, cooking, and housing are adequate to show certain aspects of contemporary art. There is washing clothes, wringing clothes, hanging clothes, folding clothes, ironing, sewing, winding thread, sweeping, mopping, dusting, decorating, preparing food, shopping, cooking, setting tables, doing dishes, and so on and so forth. It would not be overstating things to identify the structural logic of contemporary art as being present here. It's also possible to have a concrete analysis and appreciation for all the detailed particulars. Because they are logical and also fascinating. And because there are extraordinary elements that break apart the monotony of daily experience.It is a conceptualization of everyday life or the work of women. And at the same time, it is a work of annihilating myself through that process.’
[2] More than 150 artists, architects, filmmakers and designers were involved in this exhibition, which toured large cities in seven countries: Secession, Vienna; MoMA PS1, New York; CAPC Musée d'art contemporain de Bordeaux, France; the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Denmark; Hayward Gallery, London; various locations in Bangkok; and Kiasma, Helsinki.
[3] Kimsooja, interview with Yun Hyejeong, in 'Kimsooja; conceptual artist who questions life and existence endlessly', My Personal Artists (Seoul: Eulyoo Publishing Co., 2020).
[4] Kimsooja, written interview with the author, 2021.
[5] Kimsooja, in Choi Yoon Jung, 'A Needle Woman, Sacred Ritual', in Kimsooja exhibition catalogue (Daegu: Daegu Art Museum, 2011).
[6] Kimsooja, interview with Yun Hyejeong, in My Personal Artists: 'Relations extending to the body, hand, and fabric; the relationship formed between the footstep and the earth; the relationship formed between the exhalation and inhalation; the relationship between my eye and the eye in the mirror looking back at it. Is there anything in this world that is not related? Everything in our day-to-day lives in the Internet era is "stitching", and it has become difficult to extricate ourselves from this web of visible and invisible stitching.’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 - 노마디즘 (김수자, 함경아)
2024
이장의 화두인 '노마디즘'의 초대 작가는 김수자(1957)와 함경아(1966)이다. 이들은 작품의 경향이나 작가적 성향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지만, 여행을 통해 현대 노마디즘의 윤리를 실천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김수자는 인류학적 관심으로 유목민적 여행을 수행하며, 함경아는 여행을 통해 예술적 발상을 촉발, 숙성시킨다. 이러한 이들의 노마디즘은 생존 본능을 충족시키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지역을 이동하며 생활하던 전통적인 유목민이나, 그 후손들로서 아직까지 유목 생활을 유지하는 지금의 유목민의 정서와 무관하다. 또한 미지의 공간을 상상하고 관념적으로 이동 생활을 상정하는 정보화시대의 '호모모벤스(homo mobens)', 즉 이동하는 인간으로서 해방적인 삶을 찾아 타지를 여행하거나 정신적 방랑을 꿈꾸는 낭만적 보헤미안, 로망의 노마디즘과도 거리가 있다.
이 두 작가의 노마디즘은 이십세기 후반의 주요 화두인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리즘에 대한 반성적 사유의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는 국가 권력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로서 자본이 막강한 파워를 누리고 국가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순기능과 함께, 불황, 실업, 빈부격차, 선진국과 후진국의 갈등 등, 상호호혜적 관계와 공동체적 재분배가 외면되는 역기능을 초래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시스템을 통해서 인류의 평화, 경제적 복지, 사회정의, 환경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글로벌리즘 사상과 맞물려 전지구적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배경이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효과이자 동인으로 발생한 글로벌리즘은 초국가적 유토피안 비전의 제시에도 불구하고 탈식민주의 시각에서 제기되는 비서구와 제3세계의 지리정치학적 까닭에 그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가 요구된 것이다.
서양적 가치와 기준으로 저개발 국가를 변화시키는 제1세계의 글로벌리즘에 맞서 대두된 것이 비서구가 서구에 비판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문화적 맥락을 세계로 확장하려는 대안 개념이자 주변부의 지역성을 중시하는 글로컬리즘(glocalism)이다. 이는 공식적 식민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존속되는 신식민주의, 즉 정치, 경제, 문화의 불평등한 국제 관계를 유지시키는 신제국주의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경각심과 위기의식에 맞닿아 있는 관점이다. 탈중심주의적으로 재편된 글로컬리즘은 지적, 윤리적 여행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하고 타자를 포용하는 김수자와 함경아의 예술적 노마디즘을 연결하는 하나의 개연성이 된다.
김수자와 함경아의 노마디즘은 위의 논의가 시사하듯이 세계와 지역, 중심과 주변을 결합시키는 예술적 동력이 된다. 이와 맞물려 이들의 노마디즘은 여성 화자를 가시화하는 의식적 기제가 되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김수자의 ‘보따리 작’업과 함경아의 '자수 프로젝트'가 시사하는 조형의 젠더 특정성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다수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남녀 할 것 없이 천 작업이나 수공예를 새로운 조형 언어로 활용하고 있지만, 이 두 작가의 경우는 매체적 관심이나 탐구보다는 '매체가 메시지'가 되는 주제적 필연성이 우선시된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여성의 일상적 가사행위와 한국의 전통적 여성 역할에 대한 통찰에서 비롯됐고, 함경아의 '자수 프로젝트'는 북한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해 고안된 여성적 접근의 산물이라고 볼 때, 이들의 천, 바느질, 자수 작업을 여성 문화, 공동체 의식과 관련되는 주제의식과 분리시켜 생각하기 어렵다.
요컨대 이들의 예술적 노마디즘을 시각화하는 보따리와 자수를 글로컬리즘의 맥락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노마디즘의 물리적, 상징적 표상이며, 함경아의 북한 자수는 변방의 기예가 문화적, 지리적으로 재조명되는 이동의 메타포로 의미의 확장이 가능하다. 말하자면 천과 자수는 이 두 작가의 노마디즘이라는 주제의식을 가시화하는 기표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천 작업은 매체 이상의 의미를 필연적으로 함축한다. 결국 노마디즘과 여성 수공예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들 예술의 미학적, 정치적 좌표가 자리매김되고 페미니즘적인 함의가 깃들게 되는 것이다.
김수자의 보따리 작업은 바느질과 같은 여성의 일상적 가사행위, 크게는 의식주를 관장하는 생활 양식이 현대미술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개념화하고 의미화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1]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는 할머니의 한복과 그에 깃든 향수,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던 추억이 그의 회화적 천 작업과 조각적 보따리 작업을 탄생시킨 모태가 되었고, 작가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사이 그 작품들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성장하고 진화하였다. 1992년 뉴욕 P.S.1 컨템포러리아트센터 프로그램 레지던시에서 처음 선보인 작가의 보따리는 다수의 국내외 전시를 거쳐 양식적, 매체적, 개념적으로 다변화하였다. 때로는 작가의 몸, 여인의 몸으로 의인화하는가 하면 종래는 호흡과 빛 같은 비물질의 보따리로 그 양태가 바뀌면서 미학적, 정치적으로 심화되었다. 개인의 사연을 담은 '나의 보따리'가 역사의 질곡과 시련을 대면하는 '우리의 보따리'로 전환되고, 사적 영역을 넘는 공적 서사, 상처를 감싸고 치유하는 포용의 기표로 확장된 것이다.
김수자의 보따리가 처음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지금은 전설이 된 역사적 전시회 「떠도는 도시들 (Cities on the Move)」(1997-1999)[2]을 통해서였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와 후 한루(Hou Hanru)가 기획한 이 전시회는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리즘의 영향 아래 아시아가 지리정치학적 요지로 부상하면서, 신도시 건설 붐과 새로운 도시문화가 부흥하던 1990년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시의적인 다장르 예술 이벤트였다. 작가는 이 전시 출품작으로, 자기 작업의 이정표가 된 <떠도는 도시들- 2727 킬로미터 보따리 트럭>(1997)을 발표했다. 보따리를 가득 실은 트럭을 타고 한국의 정든 마을 길을 따라 장장 이천칠백이십칠 킬로를 달린 방랑의 여정을 기록한 이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작가는 스쳐 지나는 한국 풍경을 뒤로하며 보따리 위에 걸터앉은 채 고정된 프레임 속에서 내내 뒷모습만 보이고 있다. 현대적 도시 현상과 진보 개념을 역행하듯, 보따리와 쓸쓸한 여인의 뒷모습이 유랑민의 소외와 노스탤지어를 환기시키는 이 작품은, 전시 주제를 독창적으로 해석한 대표작으로 평가되어 그를 단번에 세계적 작가로 등극시켰다.
작품 속에서 길을 떠난 주인공처럼 김수자는 1999년 한국을 떠나뉴욕으로 이주했다. 그는 그때를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스스로가 자신을 세계에 홀로 내던진, 스스로를 문화적 망명자로 규정하는 그런 드라마틱한 상황이 스트레스로 여겨진다기보다는 나 자신을 한계 상황으로 내몬다는 생각이었고 또 하나의 미래의 도전으로 생각했었다"고 회고한다.[3] 문화적 망명자로서 이방인의 삶을 영위하는 한계 상황 속에서 그는 '바늘 여인' 연작(1999-2009)을 비롯해, <구걸하는 여인>(2000-2001) <집 없는 여인- 델리>(2000) <집 없는 여인-카이로>(2001) <빨래하는 여인>(2000) <거울 여인>(2002) <바람 여인>(2003) 등, 스스로에 대해 사유하고 여성이 가진 치유의 힘을 암시하는 다수의 퍼포먼스 비디오를 탄생시키게 된다.
'바늘 여인'의 첫번째 연작(1999-2001)은 도쿄, 상하이, 멕시코시티, 런던, 델리, 뉴욕, 카이로, 라고스 등 인구가 밀집한 여덟 개의 대도시에서 촬영한 다채널 퍼포먼스 비디오이다. 작가는 여기서도 관객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대도시 군중들의 물결 한가운데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내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부동의 뒷모습, 김수자 특유의 이러한 미장센은 도쿄 거리에서 일어났던 실존적 체험에 근간한다. 작가는 시부야 거리를 걸으며 "누적된 인파의 물결에 압도당한 순간 그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으며 그 압도적인 순간의 도착이 바로 바늘 여인의 시작"이 되었다고 말하며, 부동의 퍼포먼스 과정을 통해 자신이 “지워지는" 느낌이었다고 술회한다.[4] 바로 그 순간 작가는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자신이 군중을 감싸는 보자기가 되는 동시에 그들을 직조하는 바늘이 되어 군중과 하나되는 '접신적' 일체감을 느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익명의 군중을 향한 감정이입, 연민, 포용, 환대의 감흥이었을 것이다.
'바늘 여인'의 두번째 작품은 2005년 베네치아비엔날레를 위해 제작된 퍼포먼스 비디오로, 여기서 작가는 인구가 밀집한 불특정 대도시보다는 정치적, 종교적 분쟁과 내전, 폭력과 빈곤이 만연한 여섯 개 도시, 네팔의 파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예멘의 사나, 쿠바의 하바나,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차드의 은자메나를 탐방했다. 착취되고 소외되고 거세된 공간, 비탄에 빠진 도시 속 재앙의 긴장감이 리얼타임 대신에 슬로 모션으로 고조되는 이 비디오에서 작가는 무언과 부동의 자세로 존재감을 박탈당한 채, "천을 꿰매는 자신의 매개 역할을 하고 나면, 실 자국만 남기고 자기 자신은 그 장소에서 사라지는"[5] 바늘처럼, 느린 속도의 영상 속으로, 추상적 시간 속으로 소멸되었다. 글로벌리즘과 신자유주의의의 명암, 즉 제1세계와 제3세계, 중심과 주변, 세계와 지역, 서구와 아시아, 강국과 약소국, 빈부의 갈등이 충돌하는 혼란의 현장,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엇갈리는 혼란을 주제화하면서 작가는 자신이 찌르고 봉합하는 바늘이 되어 지구와 인류의 불행을 지우는 치유자가 되기를 염원하는 동시에 전쟁과 이주와 망명의 희생자들과 '관계 짓기'를 시도한 것이다.[6]
김수자의 노마디즘을 전하는 페미니스트 바늘 여인의 메시지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뭄바이-빨래터>(2007-2008)로 발전되었다. 고된 빨래 노동, 지저분한 거주공간, 지친 사람들을 가득 태운 기차 등, 뭄바이 슬럼가의 실제 일상을 포착한 이 비디오에서 작가는 옷과 직물을 모티프로 인간의 존재론적 현존을 진단했다. 직물을 매개로 한 다큐멘터리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실의 궤적' 연작에서 인류학적, 고고학적, 문명사적 차원으로 본격화되었다. 처음으로 16밀리 필름을 사용한 대형 파노라마이자 여섯 장으로 구성되는 대하 서사 다큐멘터리인 이 영상에서 작가는 유럽, 동남아시아, 북남미, 아프리카 등의 여러 문화권을 이동하며 실의 노선, 직물의 경로를 추적한다. 여기서는 작가의 모습이 사라지는 대신 카메라 뒤에서 응시하는 작가의 눈이 직조 문화의 원형적 장면과 어휘를 포착한다. 자연환경, 지리형태, 농경지, 건축물과 텍스타일의 구조적 유사성을 통해 다양한 직조 문화에 내재한 인간 존재의 원형, 원초적 생명원리를 발견하고 이분화될 수 없는 문명과 삶의 관계를 재확인한다. 페루에서의 <실의 궤적-제1장> (2010)은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는 직물의 결을 물속에 침전된 모래가 만든 선들, 원거리 숏으로부터 줌인(zoom in)되는 산등성이 경작지, 직조공들의 주름살, 건축물 구조에 유비시킨다. 이어지는 연작에서도 작가는 바구니, 자수, 물레질, 레이스뜨기와 같은 다양한 직조 문화에서 인간 존재의 공통적 원형, 원초적 생명원리를 발견하며 카메라 앵글을 통한 관객과의 대화를 이어간다.
'실의 궤적'은 '바늘 여인'의 연장선상에서 자신의 몸으로 인간, 자연, 우주를 직조해낸 복합적 진술이었다. 작가는 이미 <직물 공장>(2004)에서 바늘과 보따리로 의인화된 자신의 몸을 매체화하는 숨소리 사운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폴란드 우치비엔날레 출품작으로 직물 공장이었던 우치의 빈 건물에서 영감을 받은 <직물 공장>은 자신의 숨소리와 허밍 사운드를 불어넣어 공장을 재가동시킨다는, 즉 빈 공장과 몸을 일체화시킨다는 개념으로 발상되었다. 들숨과 날숨으로 반복되는 호흡을 씨줄과 날줄로 교차되는 직물 또는 바느질의 수직 수평 순환 구조에 유비시키는 호흡 퍼포먼스는 2006년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La Fenice) 극장에서 발표한 <호흡- 보이지 않는 거울, 보이지 않는 바늘>로 본격화되었다. 작가의 호흡과 관객의 호흡이 혼연일체가 되어 극장을 감싸고 극장은 이들의 숨소리 앙상블을 담는 매개가 되어 그야말로 오페라 공연을 대신하는 숨소리, 삶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같은 해 마드리드 크리스털팰리스 개인전 「호흡- 거울 여인」에서는 건축물에 입힌 특수 필름이 굴절시키는 무지개 태양빛과 바닥에 설치된 거울을 통해 반사되는 빛이 조우하며 크리스털팰리스와 온몸을 감싸고 빛과 호흡이 공명하는공감각적 보따리를 창출했다.
숨소리와 빛으로 공간을 감싸는, 탈물질화된 보따리를 '후기 보따리’로 명명한다면, 2013년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호흡보따리」가 이를 본격화했다. 작가는 한국관의 유리 전면을 특수필름으로 덮어 무한대로 굴절되는 무지갯빛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고, 바닥에 거울을 부착하여 반사된 빛을 재투영시키는 만화경 같은 미러링 효과를 연출했다. 빛의 스펙트럼에 조응하듯, 다른 편에는 빛이 없는 밀실이 마련되었다. 암흑의 공포 속에서 관객은 숨소리, 기침, 맥박 등 자기 몸의 소리만을 듣게 된다. 빛과 암흑이 공존하는 우주적 보따리, 죽음과 생명이 하나 된 삶의 보따리를 직조한 것이다.
이후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MMCA 현대차 시리즈 2016:김수자-마음의 기하학」에서도 관객을 공명시키는 빛과 소리의 보따리를 선사했다. 미술관 중정을 예의 특수필름으로 굴절시켜 영롱한 빛의 공간으로 전환시킨 빛 작업과 함께, 이번에는 <구의 궤적>이라는 새로운 사운드 퍼포먼스를 소개했다. 이 작업에서 커다란 타원형 탁자에 초대된 관객들은 그곳에 놓인 진흙 덩어리를 손으로 빚어 탁자에 굴린다. 그렇게 해서 마치 진흙으로 인간을 창조하듯, 추상적 구의 형태를 만드는 제식적 관객참여 퍼포먼스 <마음의 기하학(Archive of Mind)>이 완성된다. 관객이 빚은 찰흙 공을 탁자에 굴리는 소리와, 작가가 입으로 가글하는 소리가 2채널 사운드로 뒤섞여서 온 공간에 울려 퍼질 때, 관객은 진흙으로 빚어진 구체와 자신의 손이 하나가 되는 혼연일체의 감흥으로 실제 가글하는 녹음 소리와 공이 굴러가는 녹음 소리가 2채널로 들리는 공감각적 경험을 만끽하게 된다. 노마디즘의 징표인 보따리가 지리적 공간에서 심리적 공간으로 이동하며 '바늘 여인'의 메시지가 심화, 확장된 것이다.
[...]
김수자와 함경아의 작품세계를 연결하는 공통의 키워드는 '관계 맺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관계 맺기는 우선 천과 바느질로 개념화한다. 김수자는 천을 잇고 보자기로 싸는 자신의 '보따리' 작업을 나와 타인, 나와 세계, 자연, 우주를 일체화시키는 포용의 기제로, 함경아는 '자수 프로젝트'를 남북의 분단을 해소할 수 있는 사적, 비언어적 대화로 간주한다.
이들의 관계 맺기는 현대판 노마디즘으로 추동된다. 이들의 노마디즘은 실제로 물리적 장소를 이동하며 여행한다는 점에서 하이테크와 유비쿼터스로 견인되는 자유분방한 디지털 노마드, 또는 '신유목민'과 차별화되지만, 최소한 인터넷 정보를 발판으로 소수민족, 다문화 현상을 접하며 잃어버린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사회참여적이며 인터랙티브한 민주화의 지평을 열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십일세기형 신유목민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술하였듯이 중요한 점은 이들의 노마디즘이 서구중심의 글로벌리즘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의식과 맞닿아 있는 글로컬리즘이라는 명제를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세계적이면서도 지역적인 글로컬한 정서와 인류학적 관심, 실험정신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까닭에 이들의 여행을 예술적이고 윤리적인 탐사여행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전지구적 공생과 인간적 포용, 타자와의 조응, 동시대 재앙에 대한 연민과 치유, 교차문화적 연합을 위한 결단을 실행시키는 김수자와 함경아의 노마디즘은 자연스럽게 '환대'에 결부된다. 환대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열린 지적 풍요와 자유정신에서 찾아지는데, 이것이 예술로써 실천될 때 놀라운 반전의 효과가 나타난다. 도덕적 제어나 조건 없는 환대로 자기중심적, 지역 중심적 문화예술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으며, 국가주의 이념과 정치적 폭력,또는 타자에 대한 의심과 적개심, 자연적 환경에 대한 불신, 경제적 이득을 최종 목표로 삼는 신자유주의적 풍토에 대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환대는 지역주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인종차별, 기후와 환경 등 첨예한 이슈와 관련되는 새로운 정치 미술의 미학적 기폭제가 된다. •특히 페미니즘은 환대를 수용함으로써 인종과 젠더에 따른 억압에 대항하고, 여성, 고령자, 장애인과 같은 하위주체를 포용함으로써 비서구적이고 비부계적이며 비모더니즘적인 예술을 성취한다. 치유자, 매개자로서의 여성의 역할을 암시하는 김수자, 분단을 주제로 하는 대화와 부드러운 예술적 접근으로 북한과 소통하려는 함경아의 작품에는 강력하면서도 설득력있는 환대의 메시지가 존재하며, 그로써 확장된 페미니즘 미술의 사례를 제시한다. 타자와 주변부를 감싸는 포용적 환대로 자기중심적이고 지역 이기주의적인 한계, 단선적 페미니즘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이 두 작가의 예술을 확장된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독해하는 명분이다.
[Note]
[1] 김수자, 「여성, 그 다름과 힘」 전시 도록, p. 83. "여성의 일상은 평면 작업, 입체 작업, 주생활(housing)에 있어서의 시각적인 체계는 현대미술의 단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설치 작업, 그리고 행위예술로 점철되어 있다. 즉, 의생활(clothing), 식생활(cooking), 먼지 털기, 집안 꾸미기, 밥 짓기, 장보기, 요리하기, 상 차리기, 그리고 설거지하기 등등 (・・・) 현대미술의 구조적 논리가 이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이 모든 세 부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감상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논리적이고도 매혹적 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워 주는 비일상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상, 혹은 여성의 일의 개념화 (conceptualization)이다.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해 나 스스로를 소멸시키는 작업이다."
[2] 이 전시에는 미술가, 건축가, 영화 제작자, 디자이너 백오십여 명이 참여하였고, 이 년간 비엔나, 뉴욕, 보르도, 덴마크, 런던, 방콕, 헬싱키 등 일곱 개 국가의 대도시에서 순회전을 가졌다.
[3] 김수자, 윤혜정과의 인터뷰, 「김수자: 삶과 존재를 끝없이 질문하는 개념미술가」, 윤혜정,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을유문화사, 2020, p. 61.
[4] 김수자, 김홍희와의 인터뷰, 2021.
[5] 김수자, 최윤정과의 인터뷰, 「김수자의 바늘 여인, 성소적 의식」, 대구미술관 개관특별전 (2011.12.-2012. 4.) 도록 『김수자』, p. 40.
[6] 김수자, 윤혜정과의 인터뷰, 「김수자: 삶과 존재를 끝없이 질문하는 개념미술가」, 윤혜 정,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p. 53. "몸과 손, 천에 이르는 관계, 걸음과 땅의 관계 지음, 날숨과 들숨의 관계 지음, 또 내 눈과 그를 보는 거울 속의 눈의 관계 지음이다. 이 세상에 관계 지어지지 않는 것이 있을까? 인터넷 시대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상이 바로 '바느질 하기'이며 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바느질 망을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다."
Emma Lavigne
2024
Surrounded by the ring of the Passage, studded with a constellation of 24 display cases and accentuated by Tadao Ando's concrete volute, the zenithal Rotunda of the Bourse de Commerce, built in 1889, conserves the memory of its previous incarnations. In the sixteenth century, it was the palace of Catherine de' Medici flanked by its astronomical observation tower, and then, in the seventeenth century, the Halle au blé (Wheat Exchange) part of a tradition of with its circular floor plan. This remarkable architecture is constructions - from Hadrian's Pantheon in Rome to the utopian architecture of Boullée and Ledoux-that have used spherical forms as a metaphor for the symbolic forming of the world. Through the vast painted panorama of its marouflage canvas, it also features a paradoxical world tour, glorifying France's commercial expansion during the Third Republic. An artist of travel, crossings, and nomadism, since her eleven-day truck journey - across Korea, perched on makeshift fabric bundles - Kimsooja has deposited a constellation of works at the Bourse de Commerce, spanning nearly forty years of her artistic practice, as though laying down her luggage after a long voyage, so as to stay for a while, on her infinite trajectory, at this unique building. Echoing Tadao Ando's thought and his quest for an architecture of the void and the infinite, Kimsooja covers the floor of the Rotunda with mirrors and transforms the work of art - beyond an object, an installation, or an image into an essential experience. Between and disappearance, contemplation and astonishment, dizziness and dazzlement, the void thus transfigured is no longer, in François Cheng's words, "an inert presence, it is pervaded by breaths connecting the visible world to an invisible world."[1] The mirror that also presents a gathering place, inviting us to form a collective world.
Giving form and life to works that are not inert objects but immaterial presences engaging with the invisible and ephemeral, Kimsooja sets artworks in motion that are often spherical, grains of sand or flaxseed, porcelain or clay balls, fabric bottaris and moon jars in earthy colours. These arrangements that form miniature worlds or microcosms within the enclosed space of the display cases appear to have been put back into circulation, like an intangible choreography, sparked by the artist's gestures, which brought them into being, and animated by the slow and inexorable course of the stars as they make their way across the huge glass oculus. Peter Sloterdijk, in his trilogy Sphères (1998-2004), paints a philosophical history of humanity from the point of view of this fundamental form that is the sphere and which, according to the philosopher, allows humans to invent their own material, symbolic, and cosmological environment, thus enabling them to inhabit the world. Each clay ball shaped in the palm of Kimsooja's hand contributes to instituting a universal cosmogony, and awakens the power of archetypes and myths contained within the clay: the raw material of the human body. Each bottari is like a skin clinging to the body, from birth to death, like a shroud. The artist specifies the extent to which the "bottari is everywhere - body and mind, womb and tomb, globe and universe, … folding and unfolding our mind and geography, time and space."[2] Bottari, like a metaphor and extension of the human body in its eternal progression through the life cycle, weaves together Asian and Western cultures, everyday life and art, the individual and the universal, past and present, life on Earth and cosmic time, since - according to Kimsooja - each bottari can resemble a planet in motion, like the eclipse oriented towards Goa Beach, in India, in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2008.
[Note]
[1] François Cheng, Vide et Plein (Paris: Seuil, 1991), 47.
[2] Email conversation between Kimsooja and Hans Ulrich Obrist, 16 April - 5 May 1998, published in Kimsooja, A Needle Woman (Bern: Kunsthalle Bern, 2001), 39.
Lilly Wei
2024
Ambiguous, talismanic, intangible, meticulous – Kimsooja’s immersive installations explore themes of being, non-being and coming into being
Kimsooja’s exhibition at Tanya Bonakdar is her first solo show in New York in nearly two decades and a welcome chance to see what she has been up to of late. The artist (b1957, Daegu, South Korea) has impeccable international art world credentials and is an influential presence in top-tier exhibitions and venues across the globe: documenta 14 (2017); the 55th Venice Biennale (2013), representing Korea; the 24th São Paulo Biennial (1998), ditto; participating in more than 30 biennials and triennials in the last three decades – and the list goes on.
Much admired as a conceptual and performance artist, Kimsooja is a film-maker, photographer and sculptor, her increasingly immersive installations a combination of these disciplines and site-responsive, often incorporating textiles, mirrors, light and sound. Another characteristic of her oeuvre is the distinctive, unforced synthesis of the artistic traditions and philosophies of her native Korea with contemporary western visual practices and techniques. A cosmopolite studying art in Seoul and Paris and a longtime resident of those cities and New York, as a site-specific installation artist, she travels the world for the sake of her art.
The works on display in Chelsea, New York, are from the past six years to the present. While they bear titles of projects originating much earlier, they are different iterations of them as her thinking constantly evolves, re-envisioning them, recontextualising them. To Breathe (2024) consists of diffraction grating film, a material that has become a favourite of hers, applied to the windows of the gallery, which causes the incident light to fracture into countless colliding rainbows under the right conditions, the effect like that of a magnificent aurora borealis. To Breathe (2015), located in the main space, consists of an enormous rectangular platform raised slightly above the floor, its pristine surface a mirror. At its centre is a projection that slowly shifts colours, suffusing the room in a series of glowing ethereal hues, as if painting in space, on air, its rhythmic cycle suggesting the steady inhalation and exhalation of breath, making us more aware of our own breathing, our own bodies.
The reflective surface of the platform doubles the room, opening it up, and also completing it, a kind of yin/yang balancing. Viewers, feet bootied, are invited to walk on the platform, but it can also be unsettling, as the ground seemingly disappears from underfoot, the room turned upside down, the force of gravity no longer as certain, and we become free-floating. Kimsooja once said that instead of building new spaces, she transforms existing ones. The physical space remains more or less as is, but it has been so visually and psychologically altered that it is experienced in an entirely different way.
Upstairs, there is an installation of three unpainted linen canvases stretched over wooden frames, their grids visible through the finely woven, subtly sheened fabric, as if you were looking at the back of a painting or a screen, suspended from the ceiling to hover about two feet above the floor. Called Meta-Paintings (2024), they suggest potential, a state of fluidity and futurity in which the paintings are suspended temporarily, about to come into being, about to be constructed, a space for interweaving memories and feelings into structures that are intentionally indeterminate, a pause in between making and non-making, in complicity with the viewer.
They are accompanied by her signature bottari (wrapped cloth bundles that were the traditional Korean method of transporting possessions), made of the same fabric as the canvases, set on the floor, although in the past they have often been festively coloured and patterned, the materials more opulent. It is conceptually a critical form for her, drawing the commonplace and quotidian into the realm of art as a feminist stance, a form that she has returned to time and again since 1992. The bottari’s contents, although concealed, are chosen and packed with meticulous care – everything Kimsooja does is meticulous, with the classic elegance of the measured, the proportionate – often filled with clothing and objects from the locations of the show, and, like the unpainted paintings, also repositories for the invisible, the intangible. Carried by wanderers on their journeys, and emblematic of displacement, exile and impermanence, they symbolise the loss of home as well as a future in which a new home might be established. They also tell of the leavings and returns, voluntary and involuntary, that have become so inevitably, intractably part of contemporary life.
In the smaller upstairs project room, an upright six-foot-tall oval, Deductive Object (2016), far more imposing than its measurements and a bit of a visual conundrum, summons up Anish Kapoor’s optical feints. A dense, velvety, absorbent black, it is set on a mirrored base, the shape inspired by the Brahmanda stone, or “cosmic egg”, of Indian mythology, located at the centre of creation. It emerges twinned from the reflective circular surface, another manifestation of states of being and non-being, of coming into being. I walked around it several times, but it never seemed to change in shape. I thought it was flat, but I wasn’t sure; it didn’t seem to have an edge. But it didn’t seem to be three-dimensional either, the ambiguity intriguing, making it even more potent, mysterious, talismanic. I know my question could be resolved, but perhaps some things don’t need to be.
There are also three crumbled sheets of hanji paper, framed, called Deductive Object: (Un)fold (2023), nearby. To make them, the paper is crumpled in the artist’s hand, then released, smoothed back to its original shape, but with a surface that has now been marked, irrevocably changed, describing the act of creation in its purest, most primary gesture, one that lies at the core of Kimsooja’s art.
— Studio International, may 2024.
Kyoo Lee
2024
Kimsooja, the light-weaving, room-making conceptual artist, is an epochal ‘threader’ par excellence, and Archive of Mind (2016–2017) at the MMCA Seoul, one of her key exhibitions, epitomizes her ongoing pivottari art of planetary network and ecological knitwork.
At the center of the exhibition hall of Archive of Mind, Kimsooja constructed a large wooden table where visitors were invited to make balls of clay, whatever size and shape, and leave them there on the table. This part of the ‘show in the making', so to speak, this ingenious process in place, part of an immersive theatre within the exhibition space, automatically completed the show at the end and renders it, inevitably, incomplete.
This structured open-endedness, punctuated by the conceptual precision of the mode of material presentation, carries the signature of the artist, who works across the globe and whose works are scattered all over the world. Her Thread Routes series of 16 mm films (2010–), for instance, are filled with seamlessly connected images of textile cultures from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 and they, in turn, inspire me, the reader here, to see reading as a sort of radioactive threading as well. They form a marvelous mosaic of common and communal acts of sewing and weaving, mostly by women, as vividly illustrated by Chapter 4 of Thread Routes, a hypnotic series of wrapping and unwrapping, weaving and unweaving, constantly enveloping and reconnecting geometry and geology through the observant artist’s grammatical tool that is archival archaeology. This way, Kimsooja’s site-specific work -on-the-go becomes, at any given point in space and time, a concurrently unfolding (meta-)set of works in progress, which are quite literally countless except, perhaps, through her boarding passes and entry/exist records at various ports.
It is in that vein that I offer the following series of my own ‘rolling’ (gurooneun 구르는) thoughts on the ongoing work of Kimsooja. I begin by following the intricate polysemic resonances of her gu (a ball, spherically shaped or curved, 구 ), the centerpiece of Archive of Mind, along with her gigu (the Earth 지’구’ a ‘geo-ball’), both rhyming with gu, nine, one that is promisingly incomplete, infinitely pregnant.
Consider as a point of comparison The Dinner Party (1974–1979) by Judy Chicago at the Brooklyn Museum. There, the presence of ‘another’ 999 ‘women’ inscribed on the floor beneath the 39 virtually seated at the table, is sharply ghostly, to the point. The triangular edges of Chicago’s table make the point of it all pointedly clear, poignant. By contrast, the installation Archive of Mind by Kimsooja, a version of which is housed and still unfolding at the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is elliptical, not triangular, and retrofutural rather than historical. It is non-linear, not perspectival. All the edges softened, pushed in, pulled out, rounded off, and patted on, both the table and clay dumplings, everything around there is round or becoming rounder and rounder on mimacro scales.Kimsooja’s bottari-like open-ended planetary table embodies and stages different kinds of geometric considerations, imaginations, and sensibilities, where the sporadic fluidity of the circular structure, still anchored in its semi-visible center, architecturally communicates its topological porosity as well as kinetic inclusivity. To discern the porous dynamism of this otherwise serene ‘installation,’ we need to look, and listen, under the table as well for the Unfolding Sphere (2016) there, a sound piece with thirty-two speakers and a 16-channel soundtrack, which forms a subterranean micro-telecommunity. Dried clay balls rolling and touching angled corners generate sounds which can be thunderous when there is a hard enough collision, and together with the artist’s sound performance, “grrr,” a recording of her gargling with water, the collaborative concurrency of the Archive of Mind as a communing whole becomes more multi-sensorially complex as well.
In this cosmic pond at work that is not a pond, geometry in and of and around it becomes not only softly ‘manageable’ but audible. Geometry itself goes extradimensional. By de-angularizing, dynamizing, and polycentering the edges, by creatively deconstructing and amplifying them with a kind of gestural literalism and contingent collectivism, her table embraces an archival poignancy of political polarities and ongoing world-historical contradictions while translingualizing and translocating them. This communal table from the 2010s ‘throws out there’ while pivoting to, intersecting, tableaux, planes, or plates.
There, on the streets of consciousness where our peripatetic artist often works, kinetic contemporaneity and participatory democracy among people as living individuals is both practiced and presented. Such is how her ‘performances’ happen and happen in real time. Cohabitational coexistence is concretely contemplated. Her methodologically naturalized nomadism, transnationalism, and cosmopolitanism, in which her own reparative poethic spirit and anthropological insights are implicitly articulated, are an understated expression of her social-ethical commitment.Take her more recent project, Traversées (2020), which turns the city of Poitiers, France, into a public artistic laboratory, a utopic workshop, by creating a tapestry of her own works and those of 20 artists she invited. If the world is her stage, her stage is also in you.
Kimsooja’s hanahana (hana 1 하나, one by one or one after another) and hanttamhanttam (hanttam 한 땀, one stitch after another) approach to worldly singularities shows the care with which the artist sees them not as insulated individualities but rather as coextensive with her cosmic vision for the intricately collaborative continuous whole.
As intriguingly illustrated in One Breath (2006/2016), her first digital embroidery piece, where a segment of a soundwave from her breathing performance is sewn across the canvas, the sound of a sigh could be a sign of survival, quite literally. Each breath, a cycle of inhalation and exhalation, is not a static ‘set’ but part of a vibrating whole in flux.
Likewise, again, Archive of Mind is a prime example, an active allegory. From a block of clay comes each ball; each one becomes 1±1 which remains 1. Each spherical object, each soft microcosm, remains and becomes part of one, materially, conceptually, performatively, numerically all at once, not unlike each ‘human’ being made of humus.
Kimsooja’s ‘blanket’ compassion for humanity along with her ecological affinity with the universe is universal. Yet she is not a universalist in any abstract or politicized sense of the term. On the contrary, her aspirations and gestures, ever so agilely measured, get vitally concretized, trans-individuated, and practiced at each subtly coordinated ‘needle point’ of artistic imagination and activation, as diagrammatized by her early piece Structure—A Study on Body (1981), a biographical addition to Archive of Mind at the MMCA.
This way, each gong (another word for a ball공 as in a baseball or football) becomes an embodiment of gong (blank, empty, void, vacuum 공 空) as well, part of the concept ‘space,’ ‘emptiness in between.’ Each gong deductively produced, procured, or procreated out of mu (nothing 무 無), pairable to another gong (to engineer, make, craft, fabricate, 공 工), embodies a muwee (unforced or effortless act, 무위 無爲 wuwei in Mandarin) exercise of a double gong, carefully freed-up or freely gravitational Daoist action in inaction. Each phase or stage of muwee, as archived by Geometry of Body (2006–2015), where the artist’s used yoga mat is upcycled as an avant-garde canvas that contemplates the ecologically layered and receptive temporality of an already-used object, not just Duchampian “readymade,” reanimates the invisible traces of inter-being that can be documented otherwise.
Such a work of memory or memory-work is where mental harboring turns into existential honoring. I myself recall, quite vividly, the first time I came across a “note” by ‘early’ Kimsooja. I remember that small print on the now-yellowing page, the artist’s statement at the end of the catalog for her first solo show back in 1988 at Gallery Hyundai, Seoul. I also remember my own fascination with that last page, the second paragraph between the first that is introductory and the conclusionary third. As if stitching those two ends together, in that middle paragraph, the artist singled out that “quotidian” day in 1983, as she put it, when she suddenly had a flash of inspiration for a ‘textual’ way out of the two-dimensional canvas: she felt she had just found a way to overcome, to transcend, the flat horizontality and verticality of the otherwise static space for conventional painting. Indeed, how thrilling it must have been. I recall a kind of biogeometric vibration of the passage I myself felt, in turn, including the passage of time “folded in (내포 內包)” there as an actively archival “possibility,” as the young artist was saying. And such an otherwise passable pinnacle — a needle point of Kimsooja’s artistic intuition, where her rationality and sensibility converge — came at a moment of everyday muwee with her mother, the mother and the daughter sewing together as usual, as she pointed out. Revisiting that passage now, what I find remarkable is a curvy resonance, and virtual overlap, between that momentary episode and each random moment in Archive of Mind when each participant would make their own gong with gently focused meditative attention.
To read Kimsooja is to tread, gently, on the roundness of her piercing vision.
Gong in the (un)making is happening all the time, and gong is what Kimsooja’s bottari makes and is made of. Turn, now, to this separate, larger-scaled gong of the artist’s own making, Deductive Object (2016), part of an ongoing series with the same conceptual title; At the MMCA, Archive of Mind presented two iterations with the same name, one indoors and the other outdoors. The Deductive Object (2016) inside the building, a live-cast sculpture of the artist’s arms in the middle of making something, performs a kinetic gong through the space shared and shaped between the thumb and the index figure in a reciprocally gestural interaction. The other Deductive Object (2016), outside the building, is an oval-shaped ball, almost an odd ball, that could look, to some, like an inflated American football. An ovoid sculpture inspired by the Brahmanda (the Indian ‘cosmic egg’) and tightly wrapped in a vivid Obangsaek (a band of the ‘five’ rainbowy ‘directional colors’ in Korean culture) fabric, it stands serenely on a mirrored plinth, like a double parody of Columbus’ egg, with no part flattened at all.
Likewise, each of Kimsooja’s bottari tends to exist entirely on its own, yet stands in ready solidarity with any others. Her bottari is not an inductive object that can be accumulated like “one little, two little, three little” abstract “Indians” but, again, a deductive sobject, an object that stands like and turns into a subject at any agile moment. This bottari sobject as a knotted allegory of life and death on the moving walk holds — folds and unfolds — itself pivotally, like, let’s say, a pivottari. The Deductive Objects (2016) are a dual, pivotal manifestation of such self-concealing and revealing sobjectivity of a living and dying thingy, a container that cannot be contained. This ‘inoutside’ interfaciality between the two versions of Deductive Objects (2016) contributes to the exemplarity of Archive of Mind (or a ‘Geometry of Mind’ in Korean translation) as a unique placeholder in Kimsooja’s artistic trajectory, where the individual and the collective, the intensive and the extensive, hug, or hold hands, through a matrixial materialization of their intercategorical interdependence.
Particularly fascinating in that regard is Kimsooja’s more recent iteration of Deductive Object – Bottari (2023), an intensification of the inout-side sobjectivity of her pivottari. Her geological and geoptical navigation into the world of a measured land, namely, geometry, appears to have become more literal than ever. Taking her muwee art of site-specific making and unmaking to the next level, this time at Meridiano, an open-air gallery in Puerto Escondido, Mexico, she placed this new deductive object in the center of the square room at the gallery: a big rock she came across during her residency there, which she then painted matte black. At Meridiano, where the inside becomes outside and vice versa through the unique architectural porosity of the building, the found object reintroduced into the gallery as a kind of black hole library remains outside as well, and its nonhuman alterity unaltered. With its archaic illegibility shielded from human overfamiliarity, the rock becomes the new bottari, except that it is not exactly mobile. This time, her body alone, the bottari of her whole being, moves along, and with that, the movement becomes a moment, an event that is not only site-specific but time-sensitive.
Kimsooja’s performative gaze at this rock pivottari is an archive meeting another archive. Back in 2016, at the MMCA, it was an archival cast of the artist’s hands that met the gaze of a deductive object across the museum wall; in 2023 at Meridiano, it is the artist’s gaze at a distance, questioning itself more directly through the other, stony gaze from the object that had already been there all along, from immemorial times. Here, this kind of Daoist anonymity and liberty, this originary namelessness, of the rock and the artist’s body (both as deductive objects wirelessly united by their nameless contingent ecological affinity), is an aesthetic imperative stronger than any rule of the game. They both become a medium, the eye of a needle, through which a new horizon of perceptions arises, a new plane opens up.
Surface matters, especially if you can see it better, more deeply and broadly.
Imagine a world about to be decimated by its own hand that can only count 1 to 10, up and down. In the increasingly digitotalized world of climate change and collateral crises, the analog (im)materiality of Kimsooja’s connective gazes and gestures are breathtakingly retrofutural. Again, the visible void in and of One Breath (2006/2016) — a gong work of art discussed earlier as an example of hanahana modus operandi — indexicalizes this zone of ‘coviving’ survival, a possibility of zero as a bridge that goes on, a transfer point that keeps things in transit. Here is a glimmer of hope, an echo from the belly of the world.
In the tidal waves of spacetime, a push and pull of life and death, likewise, of being and non-being, light and darkness, sound and silence, and so on, creates its own kaleidoscopic dramas, as subtly sensorialized by To Breathe (2016). It was a rescaled, site-specific reinterpretation of Kimsooja’s earlier major works for the Reina Sofia’s Crystal Palace in 2006 and the Korean Pavilion at Venice Art Biennale in 2013. If we pair it now with the more microscopic, conceptual piece also at the show One Breath, we can better appreciate an epoch-heralding significance of the site-specific 2016 series To Breathe, recently reiterated at Palazzo Grassi in Venice (2023) and earlier in Leiden (2022) in the Netherlands.
Connecting them further to another current exhibition, Weaving the Light (2023) at Cisternerne, the former water reservoirs for the city of Copenhagen (now a unique, massive underground art space), we can see how her pivottari, deductive objects, and breath works converge more expansively and fundamentally than ever. Connecting these ‘breathing’ works across the globe, we begin to sense more clearly how and why subterranean and areal/aerial mediation and meditations matter, especially now.
To be is to be connected. To be on, especially today, electronically or otherwise, means to find ways to stay present in the moment across various visible and invisible boundaries and walls and wires. For We Do Not Dream Alone (2020), as Kimsooja puts it, in a nod to a text in Yoko Ono’s artist’s book Grapefruit (1964), in her contribution to the first Asia Society Triennale in New York in 2020 (which had the same title). The resonance between this 2020 ‘occasional’ dream piece accompanied by To Breathe – The Flags (2012) and the preceding fugues of Archive of Mind (2017) at the Palazzo Fortuny in Venice followed by the version at the Peabody Essex Museum (2018) and the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2022-2023) is immediate, both quotidian and global. She is on it, wherever she is.
As shown above, all the eight works in constellation in Archive of Mind are in constellation with numerous other works in the planetary plateau of Kimsooja, as shown above.
Everything I said above will have to remain inconclusive. That is not just because Kimsooja continues to work, even more prolifically than ever, but because to be in the world of Kimsoojian art, which constantly works on the pores and ports of being, is ‘to be continued.’ Continuity is what ‘is’ somehow in a thread, a non-linear line in time, not quite a point of demonstration or presence, but something slidingly, singularily moving between points, planes of immanent transcendence. The needle, the body, is that which disappears there, yet not without consequences. Archive of Mind once entered it: That timely event is now part of a broader archive of The KSJ Continuum that is reflecting on its ripple effects.
— Essay from ‘MMCA Hyundai Motor Series 2014-2023’' published b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2024. pp.150-160.
규 리 (Kyoo Lee)
2024
빛을 직조하고 공간을 창조하는 개념 예술가 김수자는 신기원적 작품 세계를 펼쳐온 ‘바느질꾼(threader)’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2016~2017년에 열린 《마음의 기하학(Archive of Mind)》전은 그의 주요 전시 중 하나로, 언제나 현재 진행형으로 지구의 관계망과 생태학적 직조를 담아내는 그의 중 추적 예술 세계를 완벽히 보여주었다.
김수자는 《마음의 기하학》전 전시관의 한가운데에 커다란 목재 탁자를 설치하고, 관람객이 찰흙으로 크기나 모양에 구애받지 않는 구를 직접 만들어 올려놓게 했다. ‘만들어지고 있는 전시회’라 할 수 있는 이 기발한 과정은, 전시 공간 속 참여 무대로서 《마음의 기하학》전을 자연히 완결시키는 동시에, 필연적으로 미완으로 남게 했다.
물질 표현 방식의 개념적 정밀함으로 더욱 강조된 그 확장 가능형 구조에, 세계를 무대로 지구 곳곳에 작품을 남기는 김수자의 대표적 고유성이 담겨 있다. 한편 〈실의 궤적(Thread Routes)〉(2010~)이라는 김수자의 16밀리미터 필름 영상 연작은 세계 곳곳의 다양한 직물 문화를 절묘하게 이어 붙인 작품으로, 바느질과 직물 짜기라는, 주로 여성들에 의해 행해지는 보편적이고 공동체적인 행위를 담아낸 경이로운 모자이크다. (이 작품이 준 영감으로 인해,
나는 글을 읽는 나의 행위를 일종의 방사성 바느질로서 바라보게 되었다.) 《마음의 기하학》전에서 선보인 그 4챕터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감싸고 풀고, 바느질하고 바느질을 푸는 행위가 최면을 걸듯 이어지며, 관찰하는 작가 김수자의 문법적 도구인 기록 고고학을 통해 기하학과 지질학이 끊임없이 내포하고 재연결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김수자의 장소특정적 작품들은 시공간의 어떤 지점에 있건 모두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는 하나의 (메타)집합체다. 그 집합체에 포함된 작품의 수는 말 그대로 셀 수 없겠으나, 작가의 지난 항공권과 지구 곳곳의 출입국 기록을 통해서는 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여전히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김수자의 작품 세계에 관한 나의 ‘구’르는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마음의 기하학》전의 중심물인 ‘구(球, a ball)’, 그리고 작가의 지‘구’(地球, the Earth)가 주는 다의어적 공명에 따라, 이 글은 아홉 개의 부분으로 구성했다. ‘구’는 미완인 동시에 무한을 잉태한 숫자 ‘9’의 소리가 아닌가.
브루클린박물관에서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전시된 주디 시카고의 〈디너 파티(The Dinner Party)〉를 먼저 비교점으로서 살펴보자. 테이블에는 39인의 여인을 위해 마련된 가상의 초대석이 있는데, 그 초대석의 바닥에 새겨진 ‘다른 여성’ 999명의 존재는 흐릿하고도 단순하다. 삼각형이라는 테이블의 형태로 인해 그 모든 의미는 더 명료하고 통렬해진다. 그에 반해 지금도 그 한 버전이 뉴사우스웨일스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김수자의 설치 미술 〈마음의 기하학〉은 삼각형이 아닌 타원형이 그 핵심이며, 역사보다는 레트로 퓨처리즘을 향한다. 비선형이고 비-원근법적이다. 모든 가장자리는 부드러워지고 밀어 넣어지고 잡아당겨지고 둥글려지고 토닥거려지며, 테이블도 찰흙으로 빚은 공도 모두 크고 작은 규모로 이미 둥글거나 점점 더 둥글어진다.
보따리’를 닮아 미완의 개방성을 지닌, 또한 행성 같기도 한 김수자의 테이블은 특별한 종류의 기하학적 탐구, 상상, 감수성을 내포하고 드러낸다. 그 원형 구조의 산발적 유동성은 반(半)가시적인 중심에 묶인 채 위상 기하학적 다공성과 동적 포용성을 건축학적으로 표현한다. 그저 평화로운 ‘설치’ 미술로 느껴질 수도 있을 이 작품의 다공성 구조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그 테이블 아래도 보고 들어야 하는데, 소리 작품인 〈구의 궤적(Unfolding Sphere)〉(2016)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16채널의 소리 트랙이 지하의 작은 통신 커뮤니티를 이루며 32개의 스피커에서 재생된다. 마른 찰흙 공이 굴러서 모난 가장자리에 부딪히는 소리는 천둥을 닮은 소리를 낼 수도 있고, 이에 작가 스스로가 물을 머금고 가글하는 사운드 퍼포먼스가 더해지니, 교감하는 전체로서의 협력적 동시성은 더욱 다감각적으로 복잡해진다.
이처럼 계속해서 펼쳐지고 있는 우주의 (연못 아닌) 연못에서, 우리는 기하학을 살며시 다루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들을 수도 있다. 기하학 그 자체가 차원을 초월한다. 작가는 테이블의 가장자리를 모나지 않게 하고 활성화시키고 다중심화함으로써, 또한 창의적으로 해체하고 일종의 사실주의와 집산주의로 강조함으로써, 정치적 양극화 및 세계 역사의 현재 진행형 모순이 지니는 통렬한 아카이브로서의 의미를 포용한다. 또한 그 의미를 다언어화하고 전위시킨다. 이 2010년대작 공동 테이블은 내부를 향하여 교차해 나아가는 다양한 광경과 면과 판을 ‘내던지는’ 동시에, 그것들을 향해 선회한다.
유랑하는 작가 김수자가 종종 작업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의식의 거리(streets of consciousness)’에서는 삶을 사는 개인으로서의 인류가 지닌 동적 동시대성과 참여적 민주주의가 실행되고 표현된다. 김수자의 ‘퍼포먼스’가 그렇게 실시간으로 발생하고 또 발생한다. 공동 거주적 공존이 구체적으로 사유된다. 치유력을 지닌 김수자의 시적 · 윤리적 영혼과 인류학자적 통찰력이 함축적으로 표현되는, 방법론적으로 토착화된 유목주의와 국가주의와 사해민족주의는 그의 사회 윤리적 헌신이 표현되는 절제된 방식이다. 좀 더 최근의 작품인 〈통과(Traversées)〉(2020)에서, 그는 프랑스의 푸아티에시(市)를 공공 예술 실험실이자 유토피아적 작업실로 바꾸고, 그곳에서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자신이 초대한 작가 스무 명의 작품들을 가지고 태피스트리를 짜냈다. 김수자의 무대가 이 세상이라면, 그 무대는 당신 안에도 있다.
김수자가 세속적인 것들의 특이성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복잡하게 협력적이고 지속적인 전체(whole)를 보는 작가 자신의 우주적 비전으로부터 단절된 성질이 아니라, 그것과 공존하는 성질로서 주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스로의 숨쉬기 퍼포먼스에서 추출한 음파 한 토막을 캔버스에 가로질러 수놓은 김수자의 첫 디지털 자수, 〈숨One Breath〉(2006/2016)에서는 내뱉는 숨의 소리가 말 그대로 생존의 신호가 될 수도 있음이 축약적으로 표현되었다. 각각의 호흡, 그 들숨과 날숨의 순환은 정지해 있는 한 ‘조합(set)’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진동하는 전체의 일부다.
〈마음의 기하학〉도 대표적 예시가 될 수 있는 능동적인 비유다. 한 덩이의 찰흙으로부터 각각의 구가 만들어지고, 하나의 구는 1±1 을 거쳐 계속해서 1로 남는다. 부드러운 소우주로서 둥글게 빚어진 그 각각의 오브젝트(오브제)는 물질적으로도 개념적으로도 수행적으로도 수적으로도, 하나로 남아 있는 동시에 하나의 일부가 되어 간다. 흙(humus[1])으로 빚어진 각각의 ‘인간(human)’과 그리 다르지 않게 말이다.
김수자가 인류에게 품은 ‘이불’ 같은 연민, 우주를 향해 품은 생태적 친밀감은 보편을 아우른다. 하지만 어떤 추상적 관점이나 정치화된 관점에서도, 그는 보편주의자가 아니다. 민첩하게 신중한 그의 야심과 시도는 작가적 상상력과 활성화의 첨예한 ‘바늘 끝’에서 한 땀 한 땀 의미 깊게 구체화되고, 개체초월화되고, 실행된다. 그 점은 《마음의 기하학》전에 포함된 김수자의 자전적 초기 작품, 〈몸의 연구(A Study on Body)〉(1981)에서 도식적으로 잘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각각의 ‘공(a ball)’은 공간이나 비움으로서의 ‘공(空)’의 일부가 된다. 무(無)로부터 연역적으로 만들어지고 획득된 공 하나하나는 또다른 ‘공(工)’과 짝을 이루기도 하며 이중(二重)의 ‘공’을, 다시 말해 조심스럽게 자유롭고 자유롭게 무거운 도교의 무위(無爲)를 행한다. 〈몸의 기하학(Geometry of Body)〉(2006~2015)을 살펴보면, 작가 자신이 직접 사용하던 요가 매트가 그저 뒤샹식 ‘레디메이드’가 아니라 아방가르드 캔버스로 업사이클링되어, 이미 사용된 물건이 지니는 생태학적으로 다층적 · 수용적인 시간성(temporality)을 탐색한다. 쓰던 요가 매트, ‘버려진’ 것이 시간으로부터 선사받은 밀도에 는 무위의 단계 하나하나가 저절로 기록, 보관되어 있고,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하는 일의 눈에 보이지 않는 흔적, 다른 차원에 기록되어 있던 그것이 여기에서 비로소 부활된다.
그러한 기억의 작동 또는 기억 작업을 통해, 내면적 항구에의 정박은 존재에의 예우가 된다. 나는 ‘신인’ 시절의 김수자가 쓴 ‘작가노트’를 처음으로 우연히 보았던 때를 퍽 또렷하게 기억한다. 1988년 서울의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김수자 첫 개인전의 도록, 지금은 누렇게 바래 가는 그 책자의 맨 끝에 작가의 말이 작게 실려 있었다. 그 마지막 페이지에서 소개 글인 첫 단락과 결론인 셋째 단락 사이 두 번째 단락에 마음을 사로잡혔던 것도 기억한다. 마치 양쪽 면을 바느질하여 잇듯 그 가운데 단락에서 작가는 2차원적 캔버스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직물’이라는 영감이 불현듯 찾아왔던 1983년 어느 ‘보통의’ 날을 짚었다. 당시 그는 정통적 회화에서는 멈춰버린 답보 상태로 남을 수도 있는 평면 공간의 수평성, 수직성을 극복하고 초월할 방법을 마침내 찾아냈다고 느꼈다. 그 순간은 실로 얼마나 짜릿했을까. 나는 그때 일종의 생체기하학적 진동의 흐름 속에 있다고 느꼈다. 그 흐름의 한 가닥은, 능동적으로 기록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내포’된 시간의 흐름이었다. 김수자의 합리성과 감수성이 만나는 작가적 직관의 ‘바늘 끝’ 같은 정점은 그렇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던 순간에 찾아왔다. 그가 말했듯, 모녀가 함께 바느질을 하던 일상적 무위의 순간에 말이다.
그 순간을 이제 다시 짚어보며 놀라운 점은 〈마음의 기하학〉에서 관객 한 명 한 명이 가만히 명상적 주의를 기울이며 저마다의 공을 만드는 무작위적 순간들이 이 한 순간의 에피소드와 공명한다는 점, 사실상 포개어진다는 점이다.
김수자를 읽는 일은 그의 날카로운 비전이 지니는 둥긂 위를 사뿐히 디디는 일이다.
공은 언제나 만들어지는 (또한 만들어지지 않는) 중이고, 보따리의 재료이자 보따리의 결과물이다. 《마음의 기하학》전에서 소개된 두 점의 〈연역적 오브제〉(2016)는 그중 규모가 큰 공이고, 같은 제목으로 지금도 계속되는 연작의 일부다. 한 점은 실내에 다른 한 점은 실외에 설치되었는데, 실내의 〈연역적 오브제〉는 작가 스스로의 팔을 본떠 만든 조소 작품이다. 그 두 팔은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고, 움직임의 소통을 나누는 엄지와 검지와 검지 사이, 그 공유되고 형성되는 공간을 통해 동적인 공을 보여준다. 실외에 자리한 〈연역적 오브제〉는 길쭉한 모양으로, 잔뜩 부풀린 미식축구 공처럼 보일 수도 있는 별난 공이라 하겠다. 브라만다(우주의 알)를 닮은 이 난형 작품은 선명한 오방색의 직물이 둘린 채, 거울로 된 중추 위에 서 있다. 마치 콜럼버스 계란의 이중 패러디처럼, 평평하게 찌그러뜨린 면 없이도 평화롭게.
이와 마찬가지로 김수자의 모든 보따리 작품 하나하나는 온전하게 홀로이면서 동시에 어떤 다른 존재와도 연대할 준비가 된 채 서 있다. 그의 보따리는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의 추상적 ‘인디언’이 축적될 수 있는 귀납적 오브젝트(object)가 아니다. 연역적이기도 하지만, 서브젝트(subject)처럼 존재하고 언제든 서브젝트가 될 수 있는 오브젝트, 즉, ‘소브젝트(sobject:
subject + object)’이기도 하다. 김수자의 보따리 소브젝트는 움직이는 길 위에서의 삶과 죽음에 대한 다층적 비유가 되어, 스스로를 (묶고 또 풀며) 중추적으로 지탱한다. 《마음의 기하학》전의 〈연역적 오브제〉들은 살아가면서 죽어가는 것과 담기지 못하면서 담는 것의, 스스로를 감추고 또 드러내는 소브젝티비티(sobjectivity)를 중추적으로 현현하는 한 쌍의 작품이다. 범주간의 상호 의존성을 망적으로 물질화하여 개인과 집단이, 집중과 포괄이 서로 포옹하거나 손을 잡게 하는, 그리하여 김수자의 예술 궤적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는 《마음의 기하학》전은 이처럼 ‘안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두 〈연역적 오브제〉 사이의 계면성으로 인해 한층 더 표상적 전시회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특히 놀라운 작품은 〈연역적 오브제〉 연작에 최근 합류한 〈보따리〉(2023)로, 김수자의 보따리가 지니는 ‘안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소브젝티비티’가 더욱 강화된 작품이다. 기하학의 세계를 향해 이어지는 김수자의 지질학적 · 기하광학적 탐색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정밀해진 작품이기도 하다. 김수자가 자신의 ‘만들며 만들지 않는’ 장소특정적 무위의 예술을 다음 단계로 데려간 이 새로운 〈연역적 오브제 - 보따리〉는 멕시코 푸에르토 에스콘디도의 개방형 갤러리, 메리디아노의 사각형 전시실 중심에 자리한다. 건축의 독특한 다공성으로 인해서 안이 바깥이 되고 바깥도 안이 되는 이곳에서, 이 파운드 오브젝트는 건물의 안에서도 일종의 블랙홀 도서관으로서 부활했지만, 건물의 바깥에도 남아 있다. 비-인간으로서의 타성도 변함 없이 유지된다. 몹시 오래된 것이 지니는 그 불가해함은 인류의 지나친 익숙함으로부터 보호되고, 그렇게 그 바위는 또 하나의 새로운 ‘보따리’가 된다. 다만 움직이는 성질은 없다. 이번에는 김수자라는 존재 전체의 ‘보따리’인 그의 몸만이 움직인다. 그렇게 움직임은 순간이 되고, 장소특정적일 뿐 아니라 시간성을 지니기도 한 사건이 된다.
이 바위 보따리를 향한 김수자의 응시 퍼포먼스는 하나의 아카이브가 다른 아카이브를 만나는 일이다. 2016년 《마음의 기하학》전에서 갤러리 벽 저편 연역적 오브제가 응시한 것은 아카이브로서 본떠진 작가의 두 손이었는데, 2023년 메리디아노에서 일어나는 연역적 오브제의 응시는 멀리 있는 작가의 응시를 만난다. 태곳적부터 내내 존재했던 그것의 꼼짝없는 응시를 마주하며, 작가의 응시는 스스로의 존재를 더 직접적으로 의문한다. 여기에서 바위와 작가의 몸(이 두 연역적 오브제는 이름 없는 존재끼리의 생태학적 친밀함을 통해 선 없이도 연결되어 있다)이 지니는 도교적 익명성과 자유, 원시적 무명성은 그 어느 규칙보다 강력한 미(美)적 규범이다. 두 오브제 모두 매개물이 되고 바늘 구멍이 되며, 그 통로를 통해 인식의 새로운 지평선이 솟고 새로운 평원이 열린다.
표면은 중요하다. 좀 더 깊고 넓게, 더 잘 볼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1에서 10까지만 셀 수 있는 스스로의 손에 의해 파괴되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점점 더 디지털로 총체화되고 기후 변화와 2차적 위기에 흔들리는 이 세상에서 김수자의 연결적 응시와 몸짓이 지닌 아날로그적 물질성(과 비물질성)은 놀랍도록 레트로퓨처리즘적이다. 앞서 한 땀 한 땀 접근하는 작업 방식의 예로서 논한 〈숨〉 (2006/2016)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공허로 인해, 우
리의 공동 생존(coviving) 구역이, 제로(0)가 지니는 교각으로서의 가능성이, 만물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이동점이 색인화(indexicalize)된다. 여기에 희망의 작은 빛이, 세상의 복부에서부터 퍼져나오는 메아리가 있다.
우주 시간의 해일 속에서 만화경 속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삶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 빛과 어둠, 소리와 고요의 밀고 당김이 〈호흡(To Breathe)〉(2016)에서 섬세하게 감각화되고 극대화되었다. 레이나소피아미술관의 크리스탈궁(2006)과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2013)에서 선보인 적 있는 작가의 주요 작업물들을 새로운 규모로, 장소특정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며, 같은 제목의 연작이 2023년에는 베니스의 그라시 궁전에서, 2022년에는 네덜란드 라이덴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마음의 기하학》전에서 함께 소개된, 좀 더 미시적이고 개념적인 〈숨〉과 더불어 감상할 때, 〈호흡〉의 신기원적 중요성은 더욱 온전하게 다가온다. 더 나아가, 이 작품들을 지금 코펜하겐의 시스테르네르네(한때 지하 수조였던 거대하고 특이한 지하 예술 전시관)에서 열리는 《빛의 직조(Weaving the Light)》(2023)와 연결하면, 우리는 보따리, 연역적 오브제, 그리고 숨을 아우르는 김수자의 작업들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팽창적으로, 또 본질적으로 서로 수렴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구 곳곳에서 ‘숨쉬고 있는’ 이 작품들을 연결함으로써 우리는 그와 같은 지하, 지면, 공중의 화해와 명상이 오늘날 어째서, 어떻게 중요한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전자적으로나 그 외의 방식들로 연결된다는 것은 여러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경계, 벽, 와이어를 넘어서 현재에 지속적으로 동참할 방법을 찾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홀로 꿈꾸지 않으니 말이다. 오노 요코(Ono Yoko)의 시집자몽(Grapefruit)》(1964)에서 영감을 받은 〈우리는 홀로 꿈꾸지 않는다(We Do Not Dream Alone)〉(2020)는 같은 제목으로 열린 제1회 아시아 소사이어티 트리엔날레에 함께 전시된 영상 〈호흡 – 깃발(To Breathe – The Flags)〉(2012), 그리고 베네치아의 포르투니미술관에서(2017), 세일럼의 피바디에섹스박물관에서(2018), 뉴사우스웨일스미술관에서(2022~2023) 각기 변주된 〈마음의 기하학〉 작품들과 서로 공명을 한다. 몹시도 직접적인, 직접적으로 일상적이며 또 지구적인 공명을 말이다. 김수자는 연결되어 있다, 어디에 있건 간에.
이렇듯 《마음의 기하학》전에 소개된 여덟 작품은 모두 이 지구 위 김수자의 고원(高原)에 자리한 수많은 다른 작품들과 함께 별자리를 이룬다.
지금까지 논한 모든 내용은 결론으로 마무리될 수 없다. 김수자가 여전히 활동하기 때문에, 심지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왕성하게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기 때문에는 아니다. 존재의 구멍과 항구들에 관해 끊임없이 탐색하는 그의 예술 세계에서, 존재함은 곧 ‘계속됨’이기 때문이다. 계속성은 시간 속 비선형의 선, 즉, 실 한 가닥 한 가닥에 있다. 그것은 실증이나 존재의 한 지점이라기보다는 그 지점들 사이를 고유하게 미끄러져 움직이는 무언가다. 내재적 초월의 면(面)이다. 바늘은, 또는 몸은 그곳으로 사라지고, 그러함으로써 결과를 발생시킨다. 《마음의 기하학》전은 한때 그곳으로 들어갔다. 시의적으로 일어난 그 사건은 이제 스스로의 반향을 반영하는 김수자 연속체의 더욱 넓어진 아카이브 속 한 부분이 되었다.
[Note]
[1] 흙이라는 뜻의 라틴어.
— Essay from ‘MMCA Hyundai Motor Series 2014-2023’' published b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2024. pp.235-243.
Interview by Soyeon Ahn (Artistic Director, Atelier Hermès)
2023
Soyeon Ahn
─ It has been my great pleasure to witness the entire process of your work for almost 40 years. From the first time I saw your work in a group exhibition in the late 1980s, to the dialogues we had during our visits to MoMA PS1 in the early 1990s. I still remember vividly the time we spent together thinking about and working on “The Tiger's Tail” exhibition at the Venice Biennale in 1995, with Mr. Nam June Paik’s support.
Your work is characterized by an exceptionally meditative and intense energy that evokes a strong sense of empathy and comfort in the viewer. Above all, each of your works has a life force that continues to change with the passage of time. For example, your artworks from the 1980s and 1990s that reflect particular issues of the time can still be reread today as a contemporary work; same artwork can be reinterpreted from many different perspectives depending on the interests of the exhibition organizers, which I believe is the unique power your artworks possess. I am drawn to this process that starts with the needle meeting the fabric or object, leading to the issues of human network created by the act of sewing, wherein the notions of movement and envelopment of the bottari (fabric bundles) extend conceptually, beyond the human world and into the universe with nature and light. In attempting to provide an overarching definition to your work, one might describe it as a “journey from point to infinity.”
The world of your work is so contemporary and comprehensive that there is little point in mentioning the temporality of each piece. So perhaps let us begin today's dialogue with a recent project that you have been tackling, and take a trip through time more freely? Among your ongoing projects, I would like to start with your work Weaving the Light (2023), which is installed in the Cisternerne at the Frederiksberg Museum in Copenhagen. I heard that you introduced light into a space with no natural light at all, since the exhibition venue is a former underground water reservoir. Please tell us about your production process.
Kimsooja
I had never worked in the dark without light, creating light and reacting to it. This time, I had to work in an old underground reservoir called Cisternerne, which is about 4,400 square meters in size and divided into three underground chambers, and it is a special space where water always maintains 100 percent humidity. Of course, we could have drained all the water out, but we did not.
When I went down into the first basement space, the floor was wet and it was very humid, the second basement was full of water compared to the first room, and the third basement was full of water. I saw the darkness, the water as a mirror, and these three basement spaces as a whole as a spectrum of experience. I wondered how I could fully interpret and materialize the situation and give the audience something special to experience. As a result, I came up with the idea of bringing artificial light into the darkness, which I had never used before.
Until then, rather than creating new architectural elements such as objects or new spaces, I had worked with the attitude of a minimal intervention to given spatial conditions, responding with the maximum possible experience. The spatial form of the Cisternerne was the same as that of the CAPC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Bordeaux, France, with arched brick walls. Within this dark space, I suspended acrylic panels, which are tableaus of light, throughout the arched architectural space. I had used diffraction grating films before on arched structures with glass windows, which we didn’t have this time. So instead of glass windows, I installed a total of 48 large acrylic panels to which I adhered diffraction grating films. We used different light sources for each space and position, and by slightly adjusting the angle and intensity of the light, we created spectra of lights that interacted with one another. In a sense, I considered the entire space as a single laboratory of light.
In this laboratory of light, I tried to create a space that would gradually expand the audience's experience from the starting point to the third basement. The second basement space is filled with 10 to 20 centimeters of water, so a wooden walkway was constructed to allow visitors to reach the water's edge and view a rainbow feast of light diffused on the surface of the water by a mirror-like effect as they walk by the films.
The space always has a 100 percent humidity, and because it’s very cold in winter and there is a lot of water, it was quite a challenge to install electric lighting. However, even under the most difficult spatial conditions, the project’s success exceeded my expectations, thanks to the wealth of experience of the site crew. I feel that this project is the culmination of all my past work in expression of light, but also marks a new chapter.
Soyeon Ahn
─ It is very interesting to see this new step forward in a project that uses artificial light, a laboratory of light. We can expect even more in the future.
Kimsooja
What is also special is that I conceptualized this work and titled the exhibition "Weaving the Light." This was the concept from which this project developed. In the course of my work over the past 40 years, I have developed and experimented with sewing, weaving, and wrapping, which are all acts related to textiles; it was done through breathing, looking, and walking, as well as the everyday act of domestic labor. This time, I tried to visualize light as an act of weaving. The light actually weaves itself, but I personified the weaving subject as if I (or the audience) were weaving and creating the light, and connected it to the spectra of lights, the shape and function of the needle, so that the audience can have a proactive experience within the space.
Soyeon Ahn
─ Your previous artworks had mainly used natural lighting, which makes it more of an encounter with uncontrollable situations, created by the artist’s direction and the actual natural light that is constantly changing. As with the concept of a "laboratory of light," I get the impression that with this artwork you have begun to intervene more actively, bringing light artificially into places where there is no light, weaving and creating, so to speak.
Kimsooja
Controlling the light is a new element, and I am particularly fascinated by the unintended movements of the audience created through this process, and the moment when an infinite language of light is born through performances.
Soyeon Ahn
─ It’s great to hear about your new experiments. Looking back at your artworks from the past, you have treated "light" as a very important medium. There are other artists that deal with "light," but usually the expression takes some kind of form or shape. Your artworks, on the other hand, are formless, based on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light and space. Here, you took the windows of the architecture as an opportunity for the visitors to see the inside and outside spaces as a whole. I think that through light, you give a vision of infinite functionality; could you tell us a little more about what led you to work with light, and your thoughts on light?
Kimsooja
In fact, I first attempted the transition from color to light in 2003, when I used theater lighting for the first time in a collaborative project at The Kitchen, an art space in New York. Since then, I have continued to do so through video projections, which recreate theater lighting in a portable format.
At this "Spotlight Readings" at The Kitchen, organized by Linda Jablonski, the original stage lighting for To Breathe - Invisible Mirror / Invisible Needle was screen-projected for the first time as a stage piece. Before this work, I had introduced light bulbs for the first time in Deductive Object, an early work I created at MoMA's PS1 studio that used objects such as cloth, ladders, and a pasta machine. In “The Tiger's Tail” exhibition we participated together, I inserted a piece of fabric into a hole in the wall of the old warehouse, as both color and substance; installed a bottari piece in the corner of the room; and left a fluorescent light propped up on the wall.
After that, I created To Breathe - A Mirror woman (2006/08) at the Crystal Palace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 using natural light combined with diffraction grating film for the first time. The foundation of all the work of the painting, derived from the crisscrossed surface and structure of the warp and weft threads of the canvas cloth, was transformed into rainbow light through the prism of the nanoscale crisscrossed scratches of the grating film, which for me was the very moment when the fundamental question of painting arose. It was a turning point, and in a sense, from that moment on, my work expanded in concept and dimension from color to light.
My use of grating film is also related to the cross symbols that represent the vertical and horizontal as planes, in terms of the structure of the world, language, and spirit, which I was constantly thinking about and exploring in the late 1970s and early 1980s. I carefully observed and studied Korean architecture, furniture, the structures of the Hangul, and various manifestations of nature. I even wrote my masters thesis on them. It all accumulated for me to consider more deeply the question of flatness, as well as the surface and structure in painting.
Within a centimeter of the diffraction grating film, there are approximately 5,000 vertical and horizontal scratches on an almost nano scale, which diffract light as soon as it reaches the surface, becoming transparent and reflecting to create streaks of light in five different colors. I think it was inevitable that my long-pursued questions regarding structures of the world and the plane led me to the expression of light using diffraction grating films. My journey into light began at that point. So, I would say that the light used by other artists and my use of light have very different contexts. I treated light as a fundamental structure and material more so in the art historical context.
The opportunity at the Crystal Palace was more of a decisive blow, in that I applied to an architectural structure the expressive technique of bottari (wrapping objects with fabric into bundles), which I had already repeated for some time. My perception is that, by wrapping a vacant space, the light encounters the lives of the performers, which in turn makes the artwork embrace the various lives of the people that are living with us.
Sewing and weaving: to breathe and to live
Soyeon Ahn
─ In addition to extending the concept of weaving and using new materials and architectural structures, you have also set forth the premise of "To Breathe" in your work. You have emphasized this premise, seeing the physical space as connected to life, opening the possibility to breathe and feel together in the physical space. Can you tell us about how you have come to explore the concept of "To Breathe"?
Kimsooja
I used grating film because I saw it as a fabric, and therefore conceptually suited for the expression of bottari, or wrapping things with fabric.
In short, I incorporated the concept of "breathing," the incessant intersection of inhalation and exhalation. We consider death to be the moment when the breath ceases, so to speak. So, similarly to sewing and knitting, in incorporating breathing as a phenomenon that traverse boundaries, artworks come to connect life and death, or self and others.
In my work, which always expands dimensions and concepts as vertical and horizontal space, the issue of duality is an important axis that is constantly evolving. Duality I mean here does not end as such, but rather is infinitely generated, transformed, annihilated, mutated, and reinterpreted, which in turn creates different worlds. So, ideas usually come to me suddenly, like a bolt of lightning, and brings about a conceptual evolution in my perception of duality.
Soyeon Ahn
─ Your work inherently has a very universal message, which may feel distant from life as each of us imagine it. Nevertheless, your expression is connected to the realities of life, as if it to live and breathe on its own right. As in "A Needle Woman" series, you the artist give the concept of "breathing" to the artwork, which turns the space itself into a sort of an organism, seemingly involving even the lives of those who experience the artwork.
Kimsooja
To return again to my graduate thesis, which I wrote in the early 1980s; I wrote about the universality and heritability of symbols of verticality and horizontality, as well as cross symbols. I was very intrigued because I had seen how so many artists had worked with the cross symbols in the contemporary art world ever since the emergence of modernism. I researched why so many artists, including myself, came across the cross symbol at some point in their lives, despite contemporary art being about pursuit of originality and uniqueness. This led me to the mandala, the original form of the mind, proposed by Carl Gustav Jung. I applied this concept not only to psychological aspects but also to the plastic arts. In other words, I came to the conclusion that, since the prototype of our mind is a cross-shaped form, we inevitably encounter cross-shaped forms when we strive to reach the essence.
The title of the work "To Breathe" is the result of the simultaneous development of this metaphysical approach and material interpretation in the production process. In the same context, I thought that the bottari work, with its flatness of the cloth and the three-dimensionality of the shape wrapped inside, could convey a metaphysical and material interpretation as an object that incorporates the birth and death of our bodies, our memories, and the joys of life. Through these questions, I believe I have been able to bring the audience and the work closer together. Once again, I can express my attitude toward life and forms of expression through this thought shift: "Weaving is breathing and breathing is living.”
Soyeon Ahn
─ May I ask you a personal question? Your partner, who recently passed away, was a psychiatrist, and I know you two had many conversations with and inspired each other. When I was at the PLATEAU, Samsung Museum of Art, he once came to see my exhibition alone and left a copy of Classic of Mountains and Seas [Shan-hai Ching] with me. Given how interested he was in art, did you ever discuss your thoughts on the human and the universe, the vertical and the horizontal?
Kimsooja
It is true that we have had a great deal of dialogue over the years, but we first met when I was writing my master’s thesis. At that time, we did not discuss art in detail. I think he had very few opportunities to experience art. However, he always lived with the essential questions of life, body, and spirit in mind.
One of my older works, Deductive Object - Remembrance (1991), consists of a small piece of old cloth, tied in a circle on a wooden staff used in hand-stitched rugs for Buddhist monks to sit on for their meditations; propped up against a steel frame with circle decorations, covered with bandages. When my husband saw it, he decided to fully believe in my art and said, "I'm going to use this as a textbook for my psychiatry.”
Soyeon Ahn
─ I am sure that for him, you were someone who could visualize the concepts he had. Your artworks do not reflect any particular religion, but at the same time, they are intricately intertwined with religious elements. The artworks you mentioned, which deal with light, by nature seem to have links with the tradition of stained-glass, since they utilize the glass windows provided in the architecture. I also heard that you created the stained-glass windows for Metz Cathedral in France. I assume that this was a very special experience, distinct from making artworks for an exhibition.
Kimsooja
It was a great honor to be asked to create the permanent stained-glass windows for Metz Cathedral, known as one of the most beautiful cathedrals in France. At the same time, it was a very historic space, so I was under a lot of pressure when it came to making the work.
At first, I tried to create an experimental work with nanopolymer. However, when I actually placed the materials temporarily in the space, the distance from the audience was too great, and it was difficult to show the beauty of the details and the movement of light of the nanostructures. Above all, the cathedral is as an institution that makes decisions based on managing historical concepts, which values and must protect tradition at all costs. So, it was also difficult to get approval to use the new nanopolymer material. In the end, I proposed the alternative of using hand-crafted ancient glass and the newly developed dichroic glass together. This resulted in a better solution than using fragile nanopolymer-encrusted glass, since the dichroic glass emitted a rainbow of colors and changed its appearance as the visitors moved around. It also presented a new way of expression that was different from the classical stained glass, which all meant a lot to me. It was also significant for me because it presented a new way of expression different from classical stained glass. The French atelier Parot, which produced the stained glass, was the team that restored Notre Dame Cathedral. It was a great experience to work with the best collaborators in the production process. At the same time, it was an opportunity for me to introduce glass as a new material in my work. I continue to be inspired by the use of glass and am experimenting with it.
This project was carried out in a Catholic cathedral, but in fact, I would like to understand all religions. Of course, cathedrals feel like a familiar and friendly space to me, as both my and my husband’s families are Catholics for generations, and I attended Catholic schools for a time. However, in deciding on the color of the stained glass, I still applied the five colors of Obangsaek. It is a color system that originally appears in Taoism, Confucianism, and even Buddhism, and represents directions and dimensions. The encounter between Obangsaek and the cathedral is an interesting one, between the rainbow of the West and the colors of the East.
Furthermore, the glass windows of the cathedral were diamond-shaped, which is very meaningful to me, because in Buddhism, the diamond shape symbolizes the completed ego. This juxtaposition of multiple elements according to my own interpretation is a radical approach to a cathedral as a historical monument, but the cathedral was very accepting of it.
Soyeon Ahn
─ In the same way, you used the Obangsaek colors in your work Solarescope (2019), which was installed in Notre Dame Cathedral as part of the exhibition "Traversées / Kimsooja" (2019) in Poitiers, France. My understanding was that Obangsaek has an aspect of embracing matters that intrinsically cannot coexist. Our discussion has reminded me of the work Lotus: Zone of Zero (2011), which you and I installed in front of the Gates of Hell at the PLATEAU, Samsung Museum of Art. Sounds were emitted from a huge burning Buddha hanging from the ceiling, and you played chants of various religions in unison, right?
Kimsooja
Yes, that's right. Lotus: Zone of Zero at the PLATEAU, Samsung Museum of Art, played Tibetan Buddhist chants, Gregorian chants, and Islamic chants simultaneously, and visually showed a mandala-like burning Buddha. In a sense, it showed the tolerant attitude of Buddhism. The work expresses the hope that all religions will be reconciled and turn to an ideal world. The work was also made after the world was shaken drastically by many wars and conflicts caused due to religions. It was our message of coexistence and peace for all peoples of the world.
The work at Poitiers began with Solarescope, a projection mapping of the exterior walls of a war-torn and ruined building in gradually changing colors in all five directions, which was first shown at the 2nd Valencia Biennial in 2003. “Solarescope" means "knowledge of the earth”. By projecting light onto the walls of the building and emphasizing the walls, the intention was to draw attention to the existence of other spaces and to show the coexistence of the bifurcated spaces. This was my initial intention, but after the presentation at Notre Dame Cathedral, I made a donation so that the film would be shown every Christmas.
Soyeon Ahn
─ Your artwork Earth - Water - Fire - Air (2009), which debuted at Atelier Hermes in Seoul in 2010, was the first instance where your work with light expanded from a space of limited scale to an unlimited one. It was one of your most fundamental artworks, yet one that encompasses your practice to date, as it deals with nature itself, or the four elements of nature. The titles of each of the four elements (earth, water, fire, and wind) were embedded with deep meanings, and you presented how the four elements weave and interweave with each other.
Kimsooja
Yes, the four elements are the concept that water is not just water and fire is not just fire. They are in an interrelated dynamic, like how water always relies on fire, leaning on the wind, and depends on the earth. As the Buddhist theory of karma tells us, they are one, but they do not exist as one.
For example, I thought about water and earth in this way. First, there is water, namely the sea, which is constantly filled with still water. Then, as I look at it, I think of a mountainous landscape and find the existence of the earth there. This contemplation has developed into a concept that illustrates the relationship between nature and matter, which is important to my work.
Needles and Bottari: The Contraction and Expansion of Life
Soyeon Ahn
─ While engaging in a dialogue about light, space, and nature, I can't help but think of the needle and bottari (fabric bundles) that reflects the core philosophy of your practice. You have already mentioned it in numerous interviews, but I would like to talk about the needle and the bottari, the starting point and the core idea for your work. The atmosphere of the Korean art academy in the 1980s was rather insular, standardized and male-centered. What was it that led you to your current practice? Please tell us about what the circumstances were like when you first started out as a young artist.
Kimsooja
From the mid-1970s to the early 1980s, I attended Hongik University and its graduate school. At that time, professors associated with the Dansaekhwa movement had strong influences at the university, which meant I was also influenced by them. On the other hand, I had been experimenting in more avant-garde work since the late 1970s, making performative photographs through my body. I was very active in presenting alternative perspectives on certain issues, asking questions, and occasionally raising issues at the university, which in part influenced my work and the work of my peers.
At the time, I was also attempting to interpret my concerns and questions about the world, as well as my interest in the structure of the two-dimensional plane, through all aspects of my life. At the same time, I experimented with a variety of materials, wondering how I could express myself in my own language, a language that had never been used in art history before. But I could not find a sense of unity between my will and the medium or methodology. One day, while sewing a bed cover with my mother, I had a breakthrough encounter with the needle and thread.
As I have mentioned in other interviews, the moment the needle finally reached the soft fabric, I truly felt a shiver as if the energies of the entire universe were hitting me over the head and riding my fingertips to the very end of that fabric and needle. That moment when the needle and the sky met was exactly the starting point for confronting all the structural issues, including vertical and horizontal, that I had been struggling with for so long. Then I said, "Oh, this is it!" I had an epiphany and started doing needlework. In doing the needlework, I very impulsively and spontaneously went to the process of wrapping objects, or bottari, which in fact developed intuitively. I was not thinking of a concept or anticipating a result, but was driven by an energy that said, "I have to do it," and I immersed myself in bottari intuitively.
For example, there is a ring-shaped work entitled "Untitled" (1991). I used bent, square frames that form the circles as a canvas. The interconnection of the canvases created a ring, which became a structure that sewed or wrapped the space. This developed into the bottari.
In fact, the idea of using bottari did not come from the wrapping I was already doing in my work. But rather, one day I saw some bottari lying around that inspired me. As I continued to work with bottari, I realized that my continued expression of wrapping was, in a sense, the same in nature as bottari, which is wrapping with fabric. That is, I came to the realization that the act of wrapping objects with fabric is, after all, the same as needlework. Since needlework is the act of wrapping a flat surface that is fabric, I thought that it could also be applied to wrapping objects.
In other words, everything began as a combination of the specific energy of the time and my personal experience, but at the same time I realized that there was a definite structural logic that had been transformed to make it all happen. All of this has made the core of my practice and become the source of my work, and I believe that works such as the "To Breathe" series came to take place.
Soyeon Ahn
─ In fact, there was a major change of direction in the history of Korean art through the 1970s to the 1980s. Unlike today, where diversity is the order of the day, there was a major trend toward Dansaekhwa, a modernist form in Korea at the time, but it was supplanted by popular art in the 1980s. It was a time when even the major currents in art were overshadowed by other currents, and it was almost impossible to try something different. In your case, I think you have consistently been concerned about and rebelled against the limitations of modernism and found a breakthrough, but you were not swallowed up by the great patriarchal current of popular art. Popular art played a role in reflecting the spirit of the times, but it also failed to offer any alternatives for the art world. You, on the other hand, have sympathized with the spirit of the new era, such as the currents of feminism and nomadism, while incorporating them into artistic forms you have been developing for a long time. I think that is why you have followed a very meaningful path as an artist.
Kimsooja
I am very resistant not only to popular art, but also to collective flows and actions, which does not suit my temperament. In fact, I collaborated with some of the core members of the popular art movement when I was in college, right at the beginning of the movement. In the end, however, I chose to work alone. When I was at university, I was of course influenced by Dansaekhwa and the male-centered atmosphere, but I think that my experience with the Korean avant-garde movement and my continued interest in experimental art, as well as my participation in activities such as independent exhibitions, made this decision possible. And I was able to keep myself from the Dansaekhwa professors and artists to bring in younger artists to follow their path, because I could not see Dansaekhwa itself as a global and universal expression. I valued the experimental and avant-garde attitude in art. That being said, it is true that the two axes of Dansaekhwa and popular art have had a real influence on the Korean art world. So, I had no choice but to follow my own, solitary path.
Soyeon Ahn
─ So the monotonous atmosphere of the art world brought a sense of rebellion out of you as an artist, which led to an opportunity to seek your own path. You said that you did not come up with the idea of using bottari from the act of wrapping, but rather got inspired by "seeing" what was already there. Perhaps that is why you always give the title Deductive Object to your bottari and related artworks. Could you elaborate on why you gave them that title?
Kimsooja
Actually, I first used the title Deductive Object in the early 1990s in the process of creating the wrapping series. At the time, I was interested in discovering cross structures in things like farm tools, everyday objects, and at my home, and the wrapping process was a reaffirmation of those structures. I used this title, Deductive Object, in the way of reaffirming, rather than transforming, structures, and returning them to their original form again.
There are many bottari in my studio. But it was the moment when I happened to look down in my MoMA PS1 studio and saw a red bottari, that I began recognizing them as avant-garde objects. There had been many of them around me before that, but I guess I had not been able to recognize them that way. The bottari was a one I had wrapped to carry something, but at that moment I discovered its surprising meaning and formal elements.
Soyeon Ahn
─ I think that the bottari have a meaning in themselves as finished objects, but they also have the quality of expanding the surface of contact with the audience through the act of bundling and unfolding them. You have also done several performances in which the audience can participate, but each one has a different aspect. At the first Gwangju Biennial in 1995, the scattered bottari and clothes on the hill, dedicated to the victims of the Gwangju Uprising, left such a powerful impression on me that I am still emotionally moved to this day. On the other hand, at the Setagaya Art Museum, and other museums overseas, a more fun image is highlighted, such as the coffee tables wrapped in large bedding cover fabrics. In "MMCA Hyundai Motor Series 2016: KimSooja-Archive of Mind" (Seoul), the audience was encouraged to actively participate in the exhibition further more, where some parts of artworks were made by the audience. I am curious to know what the audience means to you.
Kimsooja
Before I answer your question, let me first explain about the bedding covers I used for the particular bottari. The bedding covers used for the coffee tables at the Setagaya Art Museum are commonly used by newlyweds in Korea, and I used mainly discarded ones. Speaking of which, the bedding covers are made of eye-catching, bright colors, and the complementary color contrasts make the colors stand out even more from each other, creating a spectacle of color. The covers also contain Chinese characters and numbers symbolizing things like longevity, love, happiness, wealth, and fertility, as well as symbols of the happiness we experience in life, such as flowers, butterflies, deer, and lucky purses. This is a heartfelt gift typically from the bride’s mother, but in reality life does not always work out like that. It can be a bundle of regrets instead. Life is not always beautiful, glamorous, and happy, so even though the bottari cloth is glamorous on the outside, it has its own contradictions. In fact, the bedding covers on the coffee table at the Setagaya Art Museum can be seen as a presentation of the contradictory reality of life.
At the same time, I presented on the same single plane some things that are forbidden together – like eating in a bedroom – as a painting. I developed the concept of invisible wrapping, by associating people's activities of meeting, eating, and interacting with each other in a rectangular space as if it were visible. I thought of the bottari as frames for life. The wrapping and unfolding of bottari is akin to how our lives fold and unfold.
That is why the audience accepted the happenings around the bedding covers at the Setagaya Art Museum, and at the Gwangju Biennale walked around old clothes and bottari that were tied and untied while listening to John Lennon’s “Imagine.”
I embrace the participation of the audience, and watch their actions through a third person’s eye. That is also another way of looking at my work, if you like. Although I did not photograph the audiences in these artworks for the sake of protecting their image rights, I saw all the actions of the people in the space, and their lives, as an unpredictable performance. Perhaps it was these considerations that further enabled audience-participatory works such as Archive of Mind (2016/17/19/20).
The “meridian”: the rebirth of bottari
Soyeon Ahn
Today, we have been moving back and forth in your timeline, deepening our understanding of the concepts of these important works, but I would like to conclude our conversation by returning to the present and discussing a recent exhibition. In February of this year, we heard that you had a solo exhibition called "Meridian" in a very special space in the Puerto Escondido region of Mexico. And I understand that it was the venue’s inaugural exhibition. In addition to introducing the space, could you talk about the exhibition concept and how you responded to that space?
Kimsooja
Actually, the name of the exhibition space, "Meridiano," means the "meridian" in Spanish. The space is very minimalistic, bright and clear, and beautiful, but the verticality and circularity of this "meridian" proposition itself was very inspiring to me. I was very intrigued, but I needed to consider how to interpret and present it.
At the time, I did not have time to see the venue in person. I had to be very careful in making decisions and presenting something under such circumstances. I made a choice not to put out any ideas until I actually went to the site. Instead, I discussed it with Boris Vervoordt of Axel Vervoordt Gallery, and we agreed to "take a risk" and visit the site for 10 days to think about it. If I came up with some ideas, I would suggest artworks, and if not, we would come up with a plan on-site.
During the ten days, I listened to the sound of the waves, had walks, looked at the trees bathed in the scorching Mexican sun, and the sky at night. In experiencing all this, I found in this minimal space the lines drawn by the sun, the point where the sun and meets the spave, and the geometric lines of light and shadow formed in a constant state of change.
I wanted to be alone in the empty space before the exhibition began, as if I were performing a ritual. I wanted to manifest the geometry of the meridian line by manifesting my own vertical presence in response to the changing angles of light at the point where the sun meets the earth. This became a series of photographed performances. In other words, it was my own personal ritual of encountering a space.
The only thing I did after that was to paint a rock I found in the area black, and placing it at the entrance of the space. I wrapped the rock, an object of maximum temporality and materiality, by painting it black.
This could be considered the second painting in "Deductive Object," after the one using five colors presented at "MMCA Hyundai Motor Series 2016: KimSooja-Archive of Mind" exhibition (2016) we mentioned. This was the first time I was able to combine wrapping and painting, and I think it was the first time I returned to painting. Also, by wrapping the rocks in black, the bottari was reborn.
On the other hand, I was very worried about what to show inside the gallery space, but when I fell asleep after much agony, I had a dream in which fire appeared by chance. This led me to visualize elements of fire in contrast to rock, namely ephemerality, vaporization, and the geometry of vertical annihilation, through the expression of creating a fire in the space.
The process of creating fire was also interesting. First, you lay down a vector structure, cover it with sand, then ground it flat again, before stacking more wood on top of it, as if building a pyramid. The smoke from the fire was then sent up into the sky, and light entered through the open ceiling, creating a geometry of light and smoke where the light meets the end of the ceiling. It became a performance in which everything eventually returned to nothing, as the work formed and then disappeared, with myself also disappearing at the end.
The meridian, the great circle that connects through the celestial poles that is perpendicular to the Equator, is a line that never ceases to exist. Through the meridian, I was able to express the geometric and cosmic relationship between the earth, the human body, and the sun. The verticality of such a meridian is represented instead by our bodies. In a way, this is also in continuum with the "cosmic egg," a Deductive Object inspired by the black Brahmananda stones. Such sequence of events was an interesting experience for me, as if bottari was reborn.
Soyeon Ahn
In the space embedded with the concept of meridian, you have so succinctly and clearly embodied the encounter between time and space; light and shadow; fire and air; and nature and humans. The performances that unfolded in this space, A Needle Woman and Deductive Object, seem to encompass the core of your art. I look forward to continue witnessing your practice that expand and inspire the viewer's thinking.
─ Edit by Kimsooja Studio 27 Sep. 2023
안소연 (아뜰리에 에르메스 아티스틱 디렉터)
2023
Soyeon Ahn
돌이켜보면 거의 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김수자 씨 작업의 전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큰 행운이었습니다. 80년대 말에 미술관 그룹전에서 작품을 처음 보았고 이후 90년대 초 MoMA PS1에 다녀오는 시기에 나누었던 대화들, 그리고 1995년 베니스에서 백남준 선생님이 서포트해 주신 ≪호랑이의 꼬리(Tiger’s Tail - 15 Korean contemporary artists for Venice ‘95)≫ 전시를 진행하면서 함께 상의하고 작업 설치를 했던 모든 과정들이 흥미로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김수자 씨 작업은 매우 명상적이면서도 강렬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는 이들의 마음에 큰 공감과 위로를 주는 특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작품 하나하나가 생명력을 지닌 것처럼 세월이 지나도 현재 진행형이란 점은 탁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1990년대에 제작되어 그 특정 시기의 이슈를 반영했던 작품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동시대의 작품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거나, 전시 기획자들의 관심사에 따라서 하나의 작품이 여러 방향과 시각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는 것은 김수자 작품 세계만이 가진 놀라운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늘이 천 또는 어떤 대상에 맞닿는 점으로부터 바느질과 엮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관계와 네트워크의 문제, 그리고 보따리의 이동과 포용의 개념이 인간세계를 넘어서서 자연이나 빛과 같이 우주까지 아우르며 개념적으로 확장되어 나가는 그 과정을 주목하게 됩니다. 이를 포괄적으로 정의하여 김수자의 작업 세계는 ‘점으로부터 무한으로의 여정’이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작가의 작품 세계는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작품 하나하나가 현재성과 전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늘 대화는 궁금했던 가장 최근의 프로젝트부터 시작해서 자유로운 시간 여행을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에서 코펜하겐 프레데릭스버그미술관(Frederiksberg Museums)의 시스턴(Cisternerne)에 설치한 작업에 대해서 우선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알기로 과거 지하 저수지를 활용한 전시장이기 때문에 자연광이 전혀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공간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에 빛을 도입했다고 들었습니다. 작업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십시오.
Kimsooja
사실 제가 빛이 전혀 없는 어둠 속에서 빛을 생성하고, 다시 그것을 반응하게 하는 작업을 이제까지 한 적이 없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2013)에서 완전한 어둠과 무반향의 공간을(anechoic chamber) 빛의 공간과 대비하여 보이기는 하였지만요. 그런데 규모가 4,400sqm나 되고, 3개의 챔버(chambers)로 나누어져 있는 시스턴(Cisternerne)이라는 특수한 옛 지하 저수지 공간에서 작업을 해야 했고 그곳은 늘 100%의 습도를 유지하는 물이 항상 존재하는 특수한 공간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의 물을 거의 다 뺄 수도, 채울 수도 있었습니다. 첫 번째 챔버로 내려가면 바닥이 젖어있어 습기로 가득차 있고, 두 번째 챔버는 첫번째 챔버에 비해 더 물이 고여있고, 세 번째는 조금 더 물이 차있는 상태를 유지하였습니다. 저는 어둠과, 거울을 대신하는 물, 그리고 그 세 개의 챔버를 거니는 과정 전체를 하나의 경험의 스펙트럼으로 생각하고, 그 상황을 어떻게 가장 잘 해석하고 구현하여 관객들에게 어떤 특별한 경험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제가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인공의 빛을 어둠 속에 드리우는 작업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어떤 오브제나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건축적인 요소를 새로 제작하는 작업이 아닌 주어진 공간 조건 속에서 최소한으로 개입하여 최대한의 경험으로 응답한다는 입장으로 작업을 지속해 왔습니다. 시스턴의 공간 형태는 보르도의 CAPC와 비슷하게 붉은 벽돌의 아치 형태로 되어있습니다. 이 어둠 속의 공간에서 저는 비어있는 아치형태의 건축적 공간을 빛의 따블로(tableau)인 아크릴릭 패널을 행잉(hanging)하여 전체 공간에 설치하였습니다. 저는 보통 기존의 유리창이 있는 아치 형태의 구조물에 회절 격자 필름(diffraction grating film)을 붙여서(wrapping) 사용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유리창 대신에 총 48개의 대형 아크릴릭 패널을 설치하여 회절격자 필름을 부착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공간과 시점,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라이트 소스(light source)를 사용하고 세심하게 각도와 빛의 강도를 조절하여 각기 다른 빛의 스펙트럼을 연출했고, 저는 이 전체 공간을 하나의 빛의 실험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빛의 실험실에서 저는 시작점으로부터 세 번째 방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이 점점 확장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연출했습니다. 두번째 챔버 부터는 10cm에서 20cm 가량 물이 차 있었기 때문에, 관객이 걸을 수 있도록 나무로 된 보도를 사용해 물 곁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고, 빛이 필름을 통과하면서 거울효과로 확산되는 물의 반향을 통해 무지갯빛 향연을 보일 수가 있었는데 관객이 물가를 걸을때 나무패널의 진동으로 인하여 잔물결이 일면서 멀리까지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어 흥미로왔지요.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챔버에서는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하나의 스펙터클(theatrical spectacle) 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의 빛의 파노라마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치했습니다. 이곳이 일년 사시사철 100%의 습도를 가진 공간이기 때문에 겨울에는 매우 춥기도 하고, 물이 가득찬 공간에서 전기조명을 설치한다는 것이 도전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극도로 어려운 공간조건에서도 그곳의 스태프들의 오랜 작업의 경험으로 예상 밖의 결과를 성취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프로젝트가 그동안의 빛작업을 통합하면서 빛 작업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Soyeon Ahn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빛의 실험실로서, 이제는 인공광을 이용한 프로젝트도 가능한 하나의 새로운 챕터라고 말씀하셔서 굉장히 흥미롭고 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
Kimsooja
또한 특이할 만한 사항은 개념적으로 제가 이 전시의 타이틀을 ≪Weaving the Light≫라고 명명했다는 겁니다. 빛을 엮는다는 개념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죠. 40년간의 지난 작업 과정을 통해 저는 바느질하기(sewing), 엮기(weaving), 그리고 감싸기(wrapping)라는 텍스타일과 연계된 행위와 실험들을 숨 쉬고 바라보고 걷는, 또 가사노동과 씨 뿌리는 일상적인 행위들을 통해서 개념을 발전시켜 왔는데요, 이번에는 그 빛 자체를 직조하는 행위로써 구현했습니다. 말하자면 빛이 스스로를 직조하고 있지만 마치 내가(혹은 관객이) 빛을 직조하는 것처럼, 직조의 주체를 사람으로 의인화해서 빛의 스펙트럼이나 바늘의 형상, 기능 등을 연계하고 그 공간 안에서 적극적으로 읽고 경험할 수 있게 했습니다.
Soyeon Ahn
그동안의 작업들은 주로 자연광을 이용한 작업들이었기 때문에 작가가 그 작업에서 추구하는 방향과 실제 자연광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만들어 내는,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 만나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빛의 실험실’이라는 개념처럼 이번 작업을 계기로 빛이 없는 곳에 작가가 인위적으로 빛을 가져와 직조하여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시작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Kimsooja
빛을 컨트롤한다는 게 새로운 요소였고, 그 과정을 통해 관객의 의도하지 않은 퍼포먼스로 인해 무한한 빛의 언어가 탄생하는 지점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Soyeon Ahn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동안의 작업을 돌이켜보면 김수자 작가는 ‘빛'을 매우 중요한 매개체로 다루어 왔습니다. ‘빛’과 관련한 작업을 하는 몇몇 작가들이 있습니다만 그들의 작업이 어떤 형태와 조형으로서의 결과를 도출했던 반면, 김수자 작가의 빛은 규정되지 않은 공간에 관한 것입니다. 전시장으로 주어진 건축물의 창을 일종의 경계로 설정하여 안과 밖의 공간 모두를 다루는 양상을 보입니다. 빛을 통해서 무한의 가능성을 바라보게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빛을 다루게 된 계기나 빛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공유해 주십시오.
Kimsooja
사실 색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전환을 처음 시도한 것은 극장 조명을 처음으로 사용한 2003년 뉴욕의 The Kitchen에서의 콜라보레이션에서 였고, 이후 극장조명을 포터블 형식으로 재현한 비디오 프로젝션을 통해서였습니다. 뉴욕에 있는 The Kitchen이라는 곳에서 Linda Yablonsky가 기획한 ‘Spotlight Reading’에서 To Breathe – Invisible Mirror / Invisible Needle의 원형이 된 무대조명을 처음으로 스크린에 프로젝션하면서 하나의 스테이지 작업으로 선보였습니다. 이 작업이 나오기 전에는 MoMA PS1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천과 사다리, 스파게티 뽑는 기계 등의 오브제를 사용한 초기 작업(연역적 오브제, 1993)에서 전구를 처음 도입했고, 또 안소연선생님과 함께 일한 ≪호랑이의 꼬리≫에서도 색이자 물질인 천을 오래된 창고벽의 구멍들에 꽂고 보따리 작업을 구석에 설치해 놓은 작업과 함께 형광등을 벽에 기대어 놓았었지요. 그 이후에 레이나 소피아 크리스탈 팔라스(Crystal Palace, Museo de National Reina Sofía)에서 처음으로 자연광을 이용하여 회절 필름(diffraction film)을 사용한 To Breathe – Mirror woman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이 바로 저에게는 회화에 있어서의 질문들, 즉 페인팅에 있어서 캔버스천의 날실과 씨실의 십자 표면과 구조에서 파생된 모든 작업의 기반들이 회절 필름이라는 또하나의 무수한 나노스케일의 십자형 스크레치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무지갯 빛으로 변환된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때부터 제 작업이 색에서 빛으로 개념과 차원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회절 필름을 사용하게 된 것은 70년대 말과 80년대 초반부터 늘 천착해왔던 평면의 또는 세계의 구조, 언어와 정신의 구조로써의 수직과 수평의 십자기호(crucifix)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논문까지 썼듯이 그것이 어떻게 독창성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에서 과거 고대미술에서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주요 화가들의 어느 시점에서 지속적으로 제시되어 왔는가(regenerate) 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건축, 가구, 한글의 구조를 또 자연의 제현상을 매우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하고 있었어요. 그것이 결국은 제가 질문하고 있었던 회화에 있어서의 평면성, 그리고 회화의 표면과 구조의 문제를 조금 더 심도있게 질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회절 필름의 1cm 안에는 거의 나노(Nano) 스케일의 약 5천 개의 수직과 수평으로 된 스크래치가 있고 그것이 프리즘으로 작용을 함으로써 빛이 그 면에 닿는 순간 회절되고 투과되며 반사되어 실을 뽑듯이 Wave length를 따라 오방색의(Obangsaek) 빛줄기를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천착해왔던 세계의 구조, 표면의 구조와 연계된 질문과 이 회절 격자 필름을 사용한 빛으로의 나아감은 사실 필연적이었다고 봅니다. 그때부터 빛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이 사용하는 빛과 제가 사용하는 빛의 근거는 아주 다르다고 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보다 미술사적인 맥락에서 근본적인 구조이자 재료로써 빛을 사용한 것입니다.
크리스탈 팔라스 작업의 경우는, 제가 이제껏 싸온 보따리를 건축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조금 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투명한 건축물을 필름으로 감싸서 그것이 하나의 건축적인 보따리(Bottari)가 된 것입니다. 보이드를 싸고, 빛과 퍼포머들의 삶이 만나게 되면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보따리라고도 할 수 있지요. 삶이 그안에 있는.
Soyeon Ahn
네. 말씀하신 특별한 직조의 개념을 확장시켜 새로운 재료나 건축 구조물을 사용한 것에 덧붙여 김수자 작가는 거기에 To Breathe라는 전제를 달고 있습니다. 작가만의 독특한 비전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전부터 그 전제를 중시했기 때문에 물리적인 공간 자체가 지금 말씀하신 삶과 연관이 되고, 그래서 그 안에서 우리가 함께 호흡하고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되는 거지요. To Breathe라는 개념을 도입을 하고 천착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Kimsooja
다시 말하자면 회절 격자 필름을 사용한 것은 제가 이 재료 자체를 하나의 천(textile)으로 보았다는 것, 그래서 개념적으로는 보따리 싸기(wrapping bottari) 내지는 건축적인 보따리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접근하자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요소들, 즉 실내외의 빛, 그리고 공간 안에 거울을 설치하고 호흡하는 사운드, 즉 들숨과 날숨이 끊임없이 교차되는 호흡하는 소리(breathing sound)를 넣었는데, 말하자면 날숨이나 들숨이 정지되는 순간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봐야할 겁니다. weaving이나 sewing과 마찬가지로 경계를 넘나드는 현상으로서의 들숨과 날숨을 담은 이 작업을 삶과 죽음을 잇고 self와 the other self를 잇는 작업이라고 봅니다.
제 작업은 늘 수직과 수평을 근간으로 해서 차원과 개념을 확장해왔고, 이원성(duality)의 문제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중요한 하나의 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원성이 이원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한대로 생성되고, 변화하고, 소멸되고, 변이되면서 재해석 되어 이것이 또 다른 세계를 창출하는 의미에서의 이원성을 말합니다. 제 인식의 한 축에 기반하여 저의 개념적인 진화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주 아이디어는 불현듯, 번개처럼 떠오르지만요.
Soyeon Ahn
작업 자체가 거대한 보편성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자칫하면 우리의 개별적인 삶과 거리감이 생길 수도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이 실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지금의 삶과 연결되는 이유는 이전의 바늘 여인과 같이 작가가 거기에 호흡하기의 개념을 부여했기 때문에 공간 자체가 유기체처럼 경험하는 이의 현존과 함께 하는 것 같았습니다.
Kimsooja
또다시 저의 80년대 초의 논문 이야기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때 제가 수직과 수평, 십자형 기호의 보편성과 유전성에 대해서 글을 썼습니다. 저는 모더니즘부터 그 이후의 현대미술에서 수많은 작가가 십자가를 거쳐오는 작업의 과정을 겪었다는 것, 그것에 굉장한 의문을 가졌습니다. 현대미술이 독창성과 독자성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무엇으로 인해 제 자신을 포함해 그 많은 작가들이 생애의 어떤 한 시점에 이 십자를 만나게 되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이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마음의 원형, 만달라(Mandala)에 다다랐어요. 심상의 형태가 십자가에서 시작해서 점점 확산되는 형태로 나가는데, 그것을 저는 심리학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조형 예술측면에서 도일하게 적용해 보았습니다. 결국 우리 마음 안에 그러한 구조가 있기 때문에 본질에 다다르려고 노력하는 많은 작가들이 어느 한 시점에는 필연적으로 십자가를 만날 수 밖에 없다는 이해에 다다른 것이지요.
To Breathe라는 제목은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접근과 물질적인 해석(metaphysical & physical interpretation)이 제 작업에서 함께 전개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볼때 보따리 작업 역시 보따리가 갖는 천의 평면 또는 입체의 형식적인 측면과 몸의 탄생과 죽음, 기억과 삶의 애환을 담아낸 하나의 오브제로서 양자를 같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두 축이 병행된 질문을 계속함으로써 관객과 작업을 가까이 둘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Weaving is breathing and breathing is living.”이라는 사유의 전환으로 저의 삶과 형식에 대한 태도를 대변할 수 있겠습니다.
Soyeon Ahn
개인적인 질문 하나 하고 넘어가도 될까요? 최근에 돌아가신 부군께서 정신과 의사셨는데, 서로 간에 많은 대화를 나누시고 또 영감을 주고 받았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제가 플라토(Plateau)에 있을 때 혼자 제 전시를 보러 오셔서 산해경(山海經)책을 남겨놓고 가신 적이 있어요. 그 정도로 미술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으셨는데, 김수자 작가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인간과 우주, 수직과 수평에 대한 개념을 혹시 서로 간에 공유하고 대화를 나누신 적이 있을까요?
Kimsooja
오랜 시간을 통해 끊임없는 대화가 오간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는 제가 대학원 논문을 쓰고 있을 때였고, 그 당시는 미술에 관해 서로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고 그도 미술을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걸로 압니다. 하지만 삶과 몸, 또 정신의 본질적인 문제를 늘 화두로 안고 살아간 사람이지요. 그런데 사실 예전에 저의 오브제 작업 중에 Deductive Object – Remembrance (1990)라는 작업이 있었는데, 불교에서 스님들이 좌선할 때 쓰시는 먹색 누비 깔개에 에이프레임 지개에 딸려있는 나무 지팡이와 작은 헌 천조각을 공처럼 엮어 매달고, 넝쿨 모양의 스틸 프레임 장식을 붕대로 감아 기대놓은 작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것을 보고 본인은 완전히 저의 예술을 믿기로 했다고 했고, 그것을 완전히 정신과적인 교과서라고 생각한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Soyeon Ahn
작가님이 본인의 생각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주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사실 김수자 작가의 작업에는 특정 종교가 반영되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부분이 복합적으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앞에 언급한 빛을 이용한 작업이 아무래도 주어진 건축물의 유리창을 활용하는 것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테인드글라스의 전통과도 맞닿은 것으로 보입니다. 프랑스 메츠(Metz)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보통 전시를 기획하는 경우와는 다른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그 경험을 공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Kimsooja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의 하나로 알려진, 그 생테티엔 드 메츠 성당(La cathédrale Saint-Étienne de Metz)의 영구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게 된 것은 굉장한 영광이었습니다. 동시에 워낙 유구한 역사가 담긴 공간이었기 때문에 굉장한 부담을 갖고 작업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나노 폴리머(nano polymer)로 실험적인 작업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공간에서 이 재료를 테스트해 보니 가시거리가 너무 멀어서 나노 구조가가 가진 디테일한 아름다움이나 빛의 움직임을 보이기가 어려웠습니다. 더군다나 역사적인 기념물을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커뮤니티는 아무래도 전통을 중요시하고 지속성을 담보해야했기 때문에 신물질인 나노 폴리머 재료의 사용 승인을 받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여러 이유로 인해 저는 있는 그대로의 수공의 고대 유리(ancient glass)에 새로 개발된 다이크로익 유리(dichroic glass)를 함께 사용하는 대안을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다이크로익 유리가 무지개색을 드러내며 걸어가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게끔 하기 때문에 이것이 제게는 깨어지기 쉬운 나노 폴리머를 입힌 글라스를 쓰는 것 보다 좋은 해결책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고전적인 스테인드글라스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게 되었고, 이것은 저에게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했던 아틀리에 파로(Atelier Parot)는 노트르담 성당을 복원(renovate)하는 팀이었습니다. 최고의 협업자들과 과정을 함께하며 좋은 경험을 했고, 이는 제가 유리라는 물질(material)에 새로 진입을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최근에도 유리 작업에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실험하는 중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가톨릭 성당에서 이루어졌지만, 사실 저는 모든 종교에 대해 포용적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양가가 대대로 가톨릭이고, 저 또한 한때 가톨릭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성당이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을 정하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오방색을 적용했습니다. 오방색이라는 것이 결국 도교(Taoism)나 유교(Confucianism), 심지어는 불교(Buddhism)에도 나오는 색의 영역이고, 방위나 차원이기 때문에 오방색과 성당의 만남은 어떻게 보면은 서양의 무지개와 동양의 오방색의 흥미로운 만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성당 유리창의 원래 구조가 다이아몬드 형태였는데 불교에서는 다이아몬드 형태가 자아가 완성된 단계를 상징하기 때문에 제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해석을 거쳐 다른 요소들을 병치시키는 것이 역사적인 기념비에 대한 급진적인(radical) 접근일 수도 있었는데 성당에서는 포용적으로 잘 받아주었습니다.
Soyeon Ahn
같은 개념으로 푸아티에(Poitier) 전시 ≪통과 \ 김수자(Traversées \ Kimsooja)≫를 통해 푸아티에 노트르담 성당에 설치했던 Solarescope라는 작품에서도 오방색을 쓰셨습니다. 함께 공존하지 못할 것들을 포용하는 개념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저와 함께 플라토 삼성미술관 ‘지옥의 문’ 앞에 설치한 Lotus: Zone of Zero작품이 떠오릅니다. 천장에 매단 거대한 연등 사이로 사운드 작업이 함께 울려 나왔는데, 각 종교의 성가(chant)들을 수집해서 한꺼번에 들려주는 작업이었습니다.
Kimsooja
그렇습니다. 플라토에서 했던 작업 역시 티베트 불교 성가, 그레고리안 성가, 그리고 이슬람 성가를 같이 들려주는 작업이었고, 시각적으로는 만달라 연등을 보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교의 포용적인 태도를 그 안에 담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 모든 종교가 화합하고 이상적인 세계로 전향하는 것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그 작업은 이라크 전쟁과 같이 종교로 인해 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갈등이 전 세계를 뒤흔든 이후의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의 공존과 평화에 대한 저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푸아티에 작업은 사실은 예전에 2003년 제2회 발렌시아 비엔날레에서 처음 했던 Solarescope라는 전쟁에 의해 파괴되어 폐허가 된 어떤 건물의 외벽에 오방색이 서서히 변환되는 빛 프로젝션을 하는 작업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Solarescope는 여지의 땅이라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건물의 벽면에 빛을 영사하고 그 벽면을 강조함으로써 그 이외의 공간을 드러내는, 이분법적인 공간의 공존을 드러내고자 한 작업이었습니다. 표면을 강조한 작업인데 사실은 노트르담 성당(L'église Notre-Dame-la-Grande) 설치 전시가 끝나면서 기부를 해서 매해 크리스마스 때마다 프로젝션을 하기로 했습니다.
Soyeon Ahn
빛을 매개로 한 작업의 규모가 특정 장소를 다루는 것에서 규모를 한정지을 수 없는 공간으로 확장하는 사례는 2010년에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처음 선보인 지수화풍이라는 작업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연 그 자체, 또는 자연의 사원소에 대한 개념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가장 포괄적인 작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지수화풍의 각각의 작품 제목에서도 깊은 의미가 담겨있었는데 사원소가 서로 간에 엮이며 직조하는 것을 제시했었습니다.
Kimsooja
사원소는 말하자면 물은 물이 아니고, 또 불은 불이 아니라는 개념입니다. 물이 항상 불에 기대어 있고, 공기에 기대어 있고, 또 땅에 기대어 서로 연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연기설이 말하듯 하나이지만 홀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물의 땅(Tierra de Agua, Earth of Water), 즉 잔잔한 물이 바닷가에서 끊임없이 찰랑이는 것을 보면서 산의 풍경을 떠올리면서 거기서 땅을 보았고, 이처럼 땅과 물, 불과 땅, 공기와 불 등 요소들을 순열 조합하듯 연계시킴으로써 생각을 발전시켰고, 제 작업의 중요한 근간이 되는 자연과 물질의 관계를 보여주는 개념으로 전개했습니다.
Soyeon Ahn
우리가 빛과 공간, 자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끊임없이 김수자 작가의 핵심적인 철학이 담긴 바늘과 보따리를 연상합니다. 이미 수많은 인터뷰에서 언급하셨겠지만 작업의 출발점이자 핵심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는 바늘과 보따리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철학적으로 보편성을 담은 작업세계도 작가 본인이 직접 경험한 작은 행위들, 바느질과 관련된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경험과 연계됨으로써 진정성을 확보한다고 생각합니다. 19800년대의 한국 미술아카데미 분위기는 매우 경직되어 있었고, 획일적이고 남성 중심적이었는데요, 그 당시 어떠한 각성들이 맹아가 되어 오늘날 김수자 작가의 작품 세계를 열게 되었는지 청년 작가로서 첫 발을 디뎠을 당시의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Kimsooja
사실 70년대 중반부터 말, 8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저는 홍익대학교에서 학부와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홍익대학교 단색화 교수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저는 70년대 말부터 전위적인 실험을 하고 있었고, 몸을 통해 퍼포머티브(performative)한 사진 작업도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떠한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로 다른 시각을 제시하거나 질문을 하기도 했고, 가끔 학교에서 문제를 삼기도 했지만 그것이 제 작업과 동료들의 작업과 의식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제가 천착하던 세계에 대한 구조, 평면의 구조에 대한 관심과 질문을 제 모든 삶 안에서 해석하려고 하곤 했습니다. 더불어서 어떻게 하면 나로부터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나만의 언어, 이제껏 미술사에서 나오지 않았던 어떠한 언어를 구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다양한 재료적 실험을 했지만 자아 매체, 또 방법론과의 동질성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시기의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을 하면서 어떤 획기적인 바늘과 천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다른 인터뷰에서 여러차례 언급한 것 처럼, 정말 바늘 끝이 부드러운 천에 닿는 순간 정말 전 우주의 에너지가 내 머리를 치며 손끝을 타고 바로 그 천과 바늘 끝에 다다른 것 같은 전율을 경험했습니다. 바늘과 천이 만나는 그 순간이 바로 제가 계속해서 고민해왔던 수직, 수평뿐만 아니라 모든 구조의 문제가 놓여있는 그 시작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아, 이거다!’ 깨닫고 바느질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느질을 하면서 매우 충동적으로 또 자연스럽게 또 오브제를 랩핑(wrapping)하는 작업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사실 이 오브제 랩핑은 직관적으로 전개한 작업이었습니다. 어떤 개념을 생각하거나, 결과를 예상하며 한 행동이 아니라, 제가 그것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 에너지를 가지고, 직관적으로 몰입해 랩핑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는 작업 중에는 링 형태의 Untitled(1991)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습니다. 저는 서클을 형성하는 그 휘어진 사각 프레임을 하나의 캔버스 프레임으로 간주했었습니다. 캔버스 프레임이 연결되어 링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공간을 소잉(sewing), 내지는 싸는(wrapping) 구조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작업들이 연결되고, 이것이 보따리 랩핑으로 급진전되었습니다. 사실 보따리는 제가 싸면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보따리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보따리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제가 계속 랩핑을 하는 것이 어찌 보면 결국은 보따리를 싸는 것과 같은 행위가 아닌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결국 보따리를 싸고 천을 오브제에 싸는 행위가 결국 바느질 행위와 같지 않나 하는 인식에 다다랐습니다. 천이라는 평면을 랩핑하는 행위가 소잉이었기 때문에 제가 오브제 랩핑을 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보따리를 할 수 있었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그래서 모든 것이 저의 당시의 특별한 에너지와 개인적인 체험에 의해서 시작되고 이어졌지만, 이것이 동시에 너무나도 명확한 구조적 논리에 의해서 전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제 작업에 대한 확신을 주었고, 작업의 소스(source) 가 되어 To Breathe와 같은 작업도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Soyeon Ahn
사실 19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면서 한국 미술사에도 커다란 방향 전환이 있었습니다. 다양성이 특성인 오늘날의 상황과는 달리, 당시는 한국적 모더니즘의 형식인 단색화의 큰 흐름이 1980년대에 민중 미술로 대체되었습니다. 커다란 흐름이 다른 흐름으로 뒤덮어 버려 방향이 다른 시도들은 거의 불가능한 시기였는데요. 김수자 작가의 경우는 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반항하며 그에 대해 하나의 탈출구를 마련하면서도 민중미술이라는 가부장적인 큰 흐름에 휩싸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민중미술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역할을 했지만, 미술 내적으로는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반면, 김수자 작가는 그 새로운 시대정신에 공감해서 여성주의적인 시각이나 노마딕한 시대의 상황 등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면서도 그것을 본인이 오랜 시간 고민해 온 조형 형식 속에 녹여냈습니다. 그렇기에 아티스트로서 굉장히 중요한 독자적인 발걸음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Kimsooja
저는 민중미술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어떤 움직임이나 행위를 굉장히 꺼려했고 제 체질에 맞지 않았습니다. 사실 민중미술이 막 시작될 무렵 현재 민중미술의 중요한 핵심이 되는 멤버들과 대학원시절 스터디 그룹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들이 저와 함께 무언가를 해보려고 했지만, 저는 거기에 함께하기보다는 나만의 독자적인, 홀로 가는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물론 대학시절 단색화의 영향이나 남성중심적인 분위기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당시 제가 70년대 중후반 한국의 아방가르드의 움직임을 경험하고, 앙데팡당과 같은 활동도 한두 번 같이 하면서 실험미술에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러한 결정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은 단색화 교수나 작가들이 후기 젊은 작가들을 같이 끌어들이려고 했던 그런 태도에 대해 저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단색화 자체를 글로벌하고 보편적인 작업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도 있고, 개인적으로 예술에 있어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태도나 접근에 조금 더 가치를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색화와 민중미술이라는 기존의 두 축이 현실적으로는 큰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죠. 그래서 고독한 혼자만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구요.
Soyeon Ahn
단조로운 화단의 분위기가 작가로 하여금 반발력을 가지고 스스로의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보따리는 그것을 묶으면서 의미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보고’ 발견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보따리 작업 또는 그와 연관된 작업에는 항상 연역적 오브제라는 타이틀이 붙습니다. 그렇게 제목을 붙이신 이유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Kimsooja
사실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라는 작품명은 제가 90년대 초반에 랩핑 시리즈를 하면서 처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농기구나 일상의 오브제들, 우리의 가옥 등에서 십자구조를 발견하는 것에 흥미가 있었고, 랩핑작업은 그 구조를 재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조를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재확인하고, 다시 원형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라는 의미에서 연역적 오브제라는 작품명을 썼던 것입니다. 사실 이전부터 스튜디오에 많은 보따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MoMA PS1 스튜디오에서 우연히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 놓여 있던 붉은색 보따리 하나를 보는 순간부터 보따리를 하나의 전위의 새로운 오브제로 자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주변에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이전에는 보따리를 그렇게 보지 않았던 것이지요. 제가 이용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싸기 위해 소장하고, 이동하려고 썼던 물건이었는데, 그 순간 저는 보따리가 가진 놀라운 의미와 조형적인 요소를 발견한 것입니다.
Soyeon Ahn
보따리는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완성된 것으로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을 묶기도 하고 펼치기도 하는 행위를 통해서 관객들과의 접촉면을 늘리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작업도 여러 번 진행하셨는데,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각각 양상이 매우 다르고 또 다양한 것 같습니다. 1995년 제1회 광주 비엔날레 당시, 광주 희생자들을 위해서 언덕에 펼쳐 둔 보따리와 의복들은 저의 마음속에 너무나 슬프고 강력하게 각인이 되어 아직까지도 큰 감동을 줍니다. 그런가 하면 세타가야 미술관이나 다른 해외 미술관에서는 커피 테이블에 이불보를 덮음으로써 이불보가 가지고 있는 환희로운 순간을 관객들과 함께 나누는 등 즐거움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또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6 : 김수자- 마음의 기하학(MMCA-HYUNDAI MOTOR SERIES 2016: Kimsooja - Archive of Mind)≫에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의 일부를 만들게 했습니다. 관객은 김수자 작가에게 어떤 존재인지 궁금합니다.
Kimsooja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보따리에 사용된 이불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타가야 미술관의 카페 테이블에 놓였던 이불보는 우리나라의 신혼부부들이 사용했던 버려진 이불보를 주로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불보는 눈부시게 화려한 색들로 이루어져 있고, 또 보색대비으로 인해서 더욱 눈에 띄는 색의 스펙트럼을 보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장수, 사랑, 행복, 재물, 다산 등을 상징하는 한자나 수가 놓아져 있고 꽃, 나비, 사슴이나 복주머니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함께하고픈 상징적인 기원의 기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주로 신부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선물로 주어지는 것인데, 사실 삶의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지요. 오히려 회한의 이불보가 될 수도 있겠지요. 삶이 항상 아름답고, 화려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보따리를 싸는 천도 외면은 화려하지만 그 자체로 반대급부를 제시하는 모순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타가야 미술관의 커피 테이블에 놓인 이불보도 사실 삶의 모순된 현실을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를테면 이부자리에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과 같이 금기시되는 것들을 하나의 평면 작업이자 페인팅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더불어 만나고, 먹고, 대화하는 사람들의 활동이 보이지 않도록 사각형의 공간에서 일어나게 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랩핑이라는 개념으로 작업을 전개한 것입니다. 저는 항상 보따리 이불보를 우리 삶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따리가 실질적으로 쌓이고 펼쳐지는 것이 결국 우리의 삶이 쌓이고 펼쳐지고 전개되는 현장(site)과 닮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타가야 미술관의 관객들이 이불보 주변에서 일으키는 행위를, 또는 광주비엔날레의 관객들이 존 레논의(John Lennon) '이메진(Imagine)' 음악을 들으면서 헌옷 위를 걷거나 보따리를 메고 푸는 행위를 허용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관객들의 참여를 수용하고, 저는 제3자의 시각으로 그들의 행위를 바라보는 또 다른 하나의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니스비엔날레나 크리스탈 팔라스에서의 작업도 저는 하나의 퍼포먼스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발적이고 의도되지 않은 퍼포먼스이고, 단지 작가인 저만이 보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초상권 등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촬영해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모든 활동들, 삶 자체를 이미 의식되지 않은 퍼포먼스로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제가 Archive of Mind와 같은 관객 참여 작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시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Soyeon Ahn
오늘 저희가 시간을 종횡무진하면서 여러 중요한 작품들과 개념들에 대해서 짚어봤습니다. 이제 다시 현재로 돌아와 최근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전체 대화를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올해 초 멕시코의 푸에르토 에스콘디도(Puerto Escondido) 지역의 매우 특별한 공간에서 ‘자오선’이라는 개인전을 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시가 이 공간의 개관 전시였다는 말을 들었고요. 공간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 공간에 어떻게 대응하고자 했는지 전시의 개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Kimsooja
사실 이 공간의 명칭이기도 한 메리디아노(Meridiano)는 스페인어로 ‘자오선’를 뜻합니다. 공간이 너무나도 미니멀하고 명징적(definite)이면서 아름다웠지만, 이 ‘자오선’이라는 수직성이면서 원형인 명제 자체가 저한테는 굉장히 영감을 주는 질문이었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우면서도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제시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장소를 직접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결정하고 보인다라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실제로 가기까지 아무런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대신 Axel Vervoordt 갤러리의 Boris Vervoordt와 “Let’s take a risk.”라는 합의 하에 열흘 정도 그 주변에 가서 생각해보고, 어떠한 대안을 찾으면 작품을 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공간을 오픈한다는 조건으로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열흘 동안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듣고, 산책을 하고, 멕시코의 따가운 햇살을 받은 초목들을 또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그곳을 체험하면서 그 미니멀한 공간 안에 태양이 그리는 선들, 태양과 이 공간이 만나는 지점, 그 끊임없이 변하면서 형성되는 빛과 그림자의 기하학적인 선들이 너무나도 흥미롭고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전시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 그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의식을(ceremonial) 치르듯이 나홀로 존재하고 싶었습니다. 해와 지면이 만나는 공간에서 변화하는 빛의 각도에 조응하면서 저라는 수직의 존재를 극명하게 드러냄으로써 각기 다른 자오선(Meridiano)이라는 지오메트리(Geometry)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 시리즈는 일련의 퍼포먼스 사진 작업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공간을 조우하는 저만의 의식(ceremony)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제가 유일하게 남겨놓은 작업은 그 지역에서 발견한 바윗돌을 검은색으로 칠에서 그곳에 들어가는 첫 번째 공간에 놓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성과 물질성을 최대한으로 갖고 있는 바위라는 오브제를 검은색으로 칠함으로써 랩핑한 것입니다. 이것을 MMCA 현대차 시리즈에서 보였던 오방색 연역적 오브제 이후의 두번째 페인팅으로써의 연역적 오브제 작업이라고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작업에서 랩핑과 페인팅을 처음으로 만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시 제가 페인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바위를 검은색으로 랩핑함으로써 보따리가 재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오프닝 세레머니에서는 내부 갤러리 공간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고민 끝에 잠을 자다가 꿈에서 불을 보았고, 불이 갖는 바위와의 대극적인 요소들, 즉 찰나성, 기화성, 수직적 사라짐의 기하학을 공간 안에 불을 피우는 작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불을 피우는 과정도 재미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래에 벽돌 구조를 깔고, 그 다음에 모래를 덮어 콘형태로 쌓고, 그 위를 다시 평평하게 깎아서 다시 나무를 격자형 구조로 엇갈려 피라미스식으로 집을 짓듯이 쌓았습니다. 그 다음에 불을 지펴서 천장이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뚫린 천장을 통해 빛이 들어오면서 빛과 천장의 끝부분이 만나는 자리에서 타올라가는 빛과 연기의 기하학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형성되고 사라지고, 마지막에는 제가 사라지면서 결국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그런 퍼포먼스 작업이었습니다.
이 자오선이라는 것은 적도를 중심으로 90도의 수직적 원을 그린 선이고, 적도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존재하는 선입니다. 저는 이러한 자오선을 통해 기하학적이고 우주적인(cosmic)한 지구와 몸, 그리고 태양의 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자오선의 수직성을 저의 몸이 대신한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저의 브라만다의 검은 돌에서 영감을 얻었던 연역적 오브제인 '우주의 알(Cosmic Egg)'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일련의 작업은 저에게는 보따리가 또다시 재탄생하게 되는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Soyeon Ahn
공간이 워낙 특별해서 뭔가 한 것이 없다고 겸손하게 말씀을 하셨지만, 자오선이라는 개념을 가진 공간 안에서 시간과 공간, 빛과 그림자, 불과 공기, 자연과 인간이 조우하는 상태를 군더더기 없이 명확히 구현한 것 같습니다. 그 한 가운데서 펼쳐진 A Needle Woman 퍼포먼스와 연역적 오브제 한 점은 김수자 작가 예술 세계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보는 이들의 사고를 확장하고 고취시키는 작업 기대하겠습니다.
─ Edit by Kimsooja Studio 27 Sep. 2023
Malene Vest Hansen (Art Historian, Associate Professor, PhD)
2023
A certain memory is still clear as day to the Korean artist Kimsooja many years after the fact: one day when she was helping her mother sew bed covers, a common occupation for Korean women, a shock ran through her body as the needle punctured the fabric. As she sewed it felt like energy from the whole universe was collected in the tip of the needle: she became the energy conduit of the needle's circular motions; the needle which simultaneously hurts and heals.[1] This image can be seen as formative to Kimsooja's oeuvre with her examinations of textiles and textures, her exploration of the senses, symbols and structures in art, gender, and culture.
When you experience Weaving the Light, which Kimsooja has created for Cisternerne, with spectral patterns of rainbow light dancing in the damp dark chambers beneath Søndermarken in Frederiksberg, the new immersive installation can perhaps seem miles away from Kimsooja's memory of the electrifying encounter with the fabric during intimate housework with needle and thread. However, there are clear threads that can be drawn through the conceptual artist's oeuvre across the decades; here I will follow significant tracks through Kimsooja's examinations of visible crossings in the fabrics of the world.
The title Weaving the Light is characteristic of Kimsooja, an inter- weaving of concrete and abstract symbolic meanings. The title establishes a duality of the material and static with the immaterial and procedural. As for the technical side, we encounter a rather simple idea in Cisternerne: In the underground chambers, a series of transparent acrylic sheets have been hung up, whose smooth surfaces are covered with diffraction grating film. In the damp darkness of the old water reservoir, the new textures of the acrylic sheets act as prisms to the electric light sources that are placed behind the screens. This light is visibly split into the colours of the rainbow and because the film is woven into nets of varying density, the light forms different patterns. The title is therefore descriptive: The installation consists of the weaving of light.
But even if it seems simple to explain at first what we are seeing, it is not so easy to catch the meanings that open them- selves to us when we sense the dance of the light patterns in the installation. For what is light? How do we sense it? And how do we understand the colours of the light? Weaving the Light becomes like a laboratory of light and opens to interpretations of wonderful sights and visions in the subterranean darkness. An archive of light is hiding in the old, damp water reservoir beneath Søndermarken.
Kimsooja sees her acrylic sheets covered with diffraction film as a kind of canvas on which she paints with light. Kimsooja has become a well-known figure on the global contemporary art scene through her work with a diverse array of materials and media and is typically characterized as a conceptual multi- media artist. But her insistence on using the canvas in a kind of extended painting is significant.
Kimsooja was born in 1957, grew up in Korea, and was educated as a painter in Seoul where she studied Western painting. As such she is schooled in the tradition of the modern Western concept of art in a Korean culture. In Korean culture the colour spectrum known as obangsaek (a direct translation would be five-orientation-colour) plays a very central role – it figures in traditional art, and everywhere from cooking to architecture, fashion, and textile patterns.
Obangsaek consists of the five colours: blue, red, yellow, white, and black, which are to be balanced to achieve a good life, a healthy body, and a good society. The five colours each symbolize a direction – blue is east, red is south, yellow is centre, white is west, and black is north – but they are also interpreted as symbols of what is considered the five fundamental elements of life: wood (blue), fire (red), earth (yellow), metal (white), and water (black). Obangsaek permeates Korean art and culture through the centuries and this too is a part of Kimsooja's palette.
But Kimsooja works with rather than in the tradition – or rather traditions, plural. She works transculturally and chooses her subjects, patterns, and media from the canon and culture of Asia and Korea as well as the West.
She moulds familiar signs, symbols, and canons into new patterns, she reinterprets prescribed shapes, discreetly but disobediently, so that the usual and formal is seen in a new light, familiar yet alien.
Kimsooja is a Korean pioneer on the international art scene. Through the decades she has travelled, lived, and worked trans- nationally, lived in Seoul, Paris, and New York, and as a nomad artist she embodies globalization. Kimsooja has thematised nomadic refractions between nations, cultures, and traditions in a series of works focusing on the bottari: the Korean word for a bundle consisting of wrapping cloth tied around belongings so they can be brought on the road. Kimsooja has worked with bottaris, made from brightly coloured traditional Korean bed covers, through paintings, photos, videos, and installations where the beautiful patterned fabric bundles envelop memories, loss, and unknown goals.
Like many other female artists' work with textiles, Kimsooja's work with fabric and sewing can also be seen as 'subversive stitches', as the British feminist art historian Rozsika Parker has termed it.[2] Textile work wasn't traditionally considered as fine art on par with painting and sculpture, but rather as typically female handicraft and labour. Art works involving textile can therefore be said to bring both mundane as well as gendered connotations with it to the field of contemporary art. With that said, Kimsooja’s motivation behind working with textile was not to address it as a textile art form, but instead to investigate the historical Western canvas as a textile, circling the question of the tableau, the painting, and the structure of its surface.
Still, Kimsooja searches the gendered and cultural connotations – she has therefore changed her name from Kim Soo-Ja to Kimsooja, a name that doesn't appear to signal gender or marital status.
Transcultural weaving is the theme in a series of Kimsooja’s first film Thread Routes, where Kimsooja focuses on traditional textile cultures and techniques across the globe – in South American, European, Indian, Chinese, North American, and North African local workshops.
In parallel with these explorations, she has examined the more abstract interweaving of forms and shapes. Here, architecture is what is being transformed by the dance of the rainbow prism, buildings wrapped in colours as if they were enormous bottaris into which we as visitors can immerse and explore.
In 2006, for the Palacio de Cristal in Madrid, Kimsooja created To Breathe: A Mirror Woman, which had the glass building wrapped in diffraction film and the floor covered with mirrors such that the site-specific installation transformed the exhibition building into a space vibrating with dancing colours of the rainbow, along with rhythmic breathing sounds in the auditory piece The Weaving Factory. 'Painting' with the 'immaterial' prismatic rainbow colours is something Kimsooja has worked with variations on in a series of site-specific installations, among them several Catholic churches, where the connection to traditional Christian metaphors of divine light in the stained-glass mosaics clearly link Eastern and Western colour symbolism. The works of Kimsooja thereby circulate methods and elements that appear again and again in new constellations in new places – repetitions such as the basic rhythmic movements of life, like breathing and weaving.
Weaving the Light is the latest in a series of installations where Kimsooja expands something site-specific into a new meaning. Kimsooja explains that she is simply responding to a place when she works with a specific location.
She is a transformer; she receives and reacts to what she can see the place is calling for.[3] This is in line with the role of the artist as the British art historian and writer John Berger describes it in the text Steps Towards a Small Theory of the Visible.
According to Berger, the idea of understanding the artist as a 'creator' is a modern illusion. The artist is rather a 'receiver' who relates to the world and collaborates with the observer who meets the work.[4] When Kimsooja works with painting in a generalized scope, she examines the visible and invites us to join this examination.
Daylight has played an essential role to the dance of the prism light in Kimsooja's earlier site-specific installations with diffraction film; the sun has set the installations in motion with its daily walk across the sky. In the gloom of Cisternerne we have left daylight behind and descended into the subterranean darkness.
Here there is no moving light from the sun, here it is the movement of electricity which puts light in the prisms. In Cisternerne we, the visitors, become 'performers' in Kimsooja's immersive installation. As we walk around the damp, dark, and echoing halls we become moving shadows making the light wave in the colours of the rainbow when it is reflected in a surface of water. It feels strange yet simple, like walking through a dream vision, without a sense of where you are, sensing ourselves in a subterranean sea of lights, as we together weave the light in Kimsooja's archive of lights.
[Note]
[1] Malene Vest Hansen: interview with Kimsooja, Frederiksberg 17 January 2023.
[2] Rozsika Parker: The Subversive Stitch: Embroidery and the Making of the Feminine, 2019.
[3] Malene Vest Hansen: interview with Kimsooja, Frederiksberg 17 January 2023
[4] John Berger: Steps Towards a Small Theory of the Visible, 2020, s. 84.
A conversation between Keumhwa Kim and Kimsooja
2023
Keumhwa Kim
Dear Sooja, you have been described by many art critics as a global nomad time and again. The meaning of travelling has changed a lot in recent years, especially due to the Covid pandemic. How has this affected your artistic practice? And how important is the experience of being on the road to your work?
Kimsooja
The last four years have been an interesting shift in how to make art in times of a pandemic, both in terms of my own experience as a nomadic artist and with regard to my installation practice in situ. For my site-specific installations, I would normally travel there to get an idea of and to feel the physicality of the site. Instead of physical presence, however, I rather had to use my imagination and sense of space, judging from the photos or videos provided. Moreover, I would install pieces via video calls, communicating with the installers and curators, even for large-scale installations that need a great sense of precision and a long development process. This was sometimes possible thanks to my sense of space from memory, but often with great collaboration and support from the curators and community members. Still, I cannot deny the benefits of travelling, as it has frequently been my source of inspiration and experience in the world, often giving me new artistic insights. In the last few years, we had to spend a part of our lives in virtual reality, but today we may also have to travel less to save the planet and our limited energy. After the process of globalisation, which opened up the world and made it accessible from everywhere, we are finally appreciating locality.
Keumhwa Kim
Let’s talk about bottari, which gives the exhibition its title: (Un)Folding Bottari. What is your personal connection to bottari?
Kimsooja
I noticed that bottari have been used in Korea and other Asian countries as a typical carrying item, and even as a means of protecting important government and legal documents. I have also come to notice that bottari are universal objects, used for any means of migration as well as in war zones in Europe and around the world, as it is the easiest, lightest, and simplest way to pack things in urgency. It is interesting for me to see the coincidence of linguistic similarities of bottari (beginning with b or bo) for instance in Turkish (bohça), Mongolian (bagts), Hindi (bandal), Vietnamese (bó), Nepali (bandala), English (bundle) or German (Bündel). It was a ground-breaking moment when I discovered that this everyday making and methodology of bottari would become my core artistic inspiration and new vocabulary. A number of bottari have been in my studio ever since 1983, as I have been keeping them to store my sewing materials, such as used clothes and bedspreads. One day when I was at the PS1 residency in 1992, I was sitting in my studio. Suddenly I turned around and discovered a unique red bottari sitting on the floor that looked completely different from the everyday object I had been storing and using. It was a significant and unique object, consisting of different elements of visual languages and meanings; a wrapped two-dimensional painting, a three-dimensional sculpture held together by a knot. I started making Bottari as a three-dimensional sewing practice by wrapping, and I wrapped Bottari with fragments of used cut fabrics of colourful traditional clothes until 1993, then with used everyday clothes since I returned to Korea when I realised that bottari are not only aesthetic but also realistic objects.
Keumhwa Kim
The exhibition displays the multimedia trans- formation of your concept of bottari: starting from Bottari (2017), wrapped in ybulbo, Korean bed sheets, to Bottari 1999 – 2019 (2019), the transport container painted in obangsaek, and Deductive Object – Bottari (2023), new porcelain work, how would you define the concept of bottari in your artistic practices?
Kimsooja
For me, a bottari is an essential object that rep- resents our body, the condition of humanity, a fundamental aesthetic and formal aspect that retains spatial, social, political and temporal dimensions. I see our body as the most complicated bottari, and the place of ybulbo, a Korean bedspread I use as a wrapping cloth, as the frame of our life; the place where we are born, love, dream, suffer, and die. It contains so much, so many different issues that we deal with. I have wrapped and unwrapped bottari and I am still discovering new aspects of this fluid canvas and sculpture.
Keumhwa Kim
Based on the collection of the Korea Gallery, you developed a new work for the show: Deductive Object – Bottari, inspired by an icon of Korean art: a moon jar. Why did you decide to derive Bottari from moon jars?
Kimsooja
When I saw the Korean gallery for the first time, I was quite surprised to see the poor collection of ceramics and the small gallery space compared to other Asian countries such as China, Japan and India etc. I felt the urge to bring large Korean moon jars, representative of Korean traditional treasures with a humble presence of beauty and generosity, portraying the Korean spirit. While thinking about a possible loan of the moon jars from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 decided to collaborate with the ceramic factory Staatliche Porzellan-Manufaktur Meissen to make them in my own bottari concept and form. Ever since my collaboration with the Sèvres Ceramic Manufacture in Paris (2019), I have been conceptualising the moon jar as a Bottari, but I have never installed a Bottari in a display case to physically juxtapose it with the moon jar. In fact, creating a direct visual relationship between a Bottari and a moon jar at the Humboldt Forum was a very effective and interesting way to present Bottari; one with fabric, the other with porcelain.
Keumhwa Kim
What aspect of the moon jar interests you personally?
Kimsooja
For me, it symbolises gentleness, abundance and an embracing generosity that is ready to hold everything in humble presence, like a moon. It also reminds me of a woman’s body, especially the belly of a pregnant woman wearing a traditional long white Korean skirt with a wide band around the chest. In the sense that a moon jar is a container, I immediately relate it to the functionality of my Bottari as a container that also has a width that can be embraced with both arms. I rather emphasised the inner emptiness by opening only a tiny hole, with- out leaving any functional space as with traditional moon jars, and without adding any other elements that the traditional Korean moon jar shape has, such as the opening band part and that of the base. My idea of conceptualising the Korean moon jar as a Bottari stands alone with its own basic formal elements; the surface as a wrapped fabric, the orbit of horizontal and vertical movement to form the shape as a contemplative process of life and time. The tactile physicality of the moon jar makes it the other, and the wrapped invisible dark void as the unknown black hole, revealing a larger question about the material and immaterial, existence and transience, even cosmic questions similar to Bottari.
Keumhwa Kim
To Breathe: Mandala (2010) is presented by means of two different sound channels: the artist’s voice on the one hand and a mix of Gregorian and Tibetan chants and the Islamic call to prayer on the other, forming an expansive and site-specific dia- logue with the Bodhisattva sculpture. What was your intention to bring both sound channels together?
Kimsooja
My initial concept was to use the typical American jukebox loudspeaker as a mandala. While the first edition only played Tibetan mandala chanting as a single channel sound in 2003, the Iraq war broke out in the same year. When I noticed how much destruction, hatred and violence was created all around the globe, I decided to comment on it in a spirit of criticism, also suggesting a harmonious and peaceful coexistence by overlapping the three representative religious chants. Installing it next to the Bodhisattva together with To Breathe: Mandala, which plays my own breathing and humming performance, gives an even stronger presence of existence and peace, although I did not intend to emphasise Buddhism as the main religious practice among others.
— From the Solo Exhibition Kimsooja: Wrapping the Void, Humboldt Forum, Reader, pp.20-23.
2023
— From the Solo Exhibition Kimsooja: To Breathe, Galeries Lafayette Paris Haussmann, Bookelet
Kim Kibu (Independent Curator, MA in Art History, Tsinghua University, Beijing)
2022
In 1994, Kim Sooja's performance at Oksan Seowon in Gyeongju marked the beginning of a social sculpture. Traditionally, sculpture involves carving a form to create the artist's desired shape. However, another definition of sculpture encompasses the assembly of objects. Within this definition, Sewing Into Walking-Kyungju becomes the starting point for defining Kim Sooja's bundle work as a sculptural piece and a postmodernist work.
Since time immemorial, the banks of valleys have been private yet communicative spaces for women. The artist's performance at Oksan Seowon's valley involves walking across a quilt, the result of generations of aesthetic tradition and transmission, while collecting individual patches laid on the stone floor. Through this process, the work demonstrates the creation of a bundle. Though it may seem like an intensely personal and mundane activity, it can be viewed as performance art that modernises the work resulting from the continuous transmission of generations.
From grandmothers to mothers, and onto adult women forming new households, the starting point has always been the transmission and gifting of a colourful quilt. Traditionally, the quilt travels between the bride's and groom's homes during the exchange of clothes and gifts, accompanied by the wedding document. During this process, dowries come and go, usually consisting of silk, quilt linings, cotton, and money. As each household goes through this process to form a new home, quilts accumulate. Various blessings for a new beginning in forming a future home are engraved on the quilt with diverse colours and harmonies. The traditional Korean definition of fortune and wishes for blessings are carved into these patches in various ways.
In Korean households, the quilt is not just a functional, fabric-made product but an object imbued with the care, thought, and aesthetic vision of both families in preparing for and forming a new home.
Joseph Beuys defined sculpture as "Thought is sculpture. Rather than a sculptural piece derived from a single object or materialised through a process, the act of 'thinking' naturally has a much more passionate effect in this world."[1] The quilt, comprised of thoughts that create a social starting point, holds the stories and thoughts of each family member receiving the object.
Kim Sooja chooses these quilts, laden with thoughts, memories, and aesthetic synthesis, as the objects for her social sculptures, and proceeds to bind the traces of generations and memories of time into a single bundle. She gathers these objects, which encapsulate the touch of grandmothers and mothers and serve as the starting point for forming households, and sometimes sews them together with needle and thread to create shapes, or ties them into a single bundle. This process itself is a performance that creates a social sculpture.
Kim Sooja's works choose a different artistic direction than the monochrome movement of previous generations, which fell into the abstract world due to a lack of communication with authority, and the people's art of her contemporaries, which was collectively centred on themes of excessive self-assertion, shedding authority, and resistance to power. This direction is connected to postcolonial discourses and multicultural debates that began in the Western art world. This trend, triggered by the exhibition "Les Magiciens de la terre" held at the Pompidou Centre in 1989, was a time when more outsiders, namely, Eastern and African artists, were gradually given opportunities to participate in exhibitions in the Western contemporary art mainstream.
In line with these changes, Kim Sooja's artistic activities transformed and took various forms, starting with a wall sculpture exhibition at MoMA PS1 in 1992-93. Her sophisticated yet Eastern contemporary art provided opportunities for interaction with numerous curators seeking contemporary challenges. Kim Sooja was in search of a new artistic starting point.
"Sometimes, she connects the concept of 'sewing' with the concept of 'walking', turning it into an everyday life notion, and links the fabric that first wraps the skin in birth and death with the soul, protecting and embracing it from the outside world."[2]
Kim Sooja's artistic creation ideology connects with other concepts at the end of the long Cold War, the onset of globalisation, and the increasing freedom of movement. As global diasporic movements and migrations increase, Kim Sooja's work is classified as nomadic, opening the door to further interpretations. Her soft-material objects, unlike the rigid, angular cases of the West traditionally associated with immigration, can seamlessly fill any space, and have evoked admiration for the Eastern aesthetic of diverse colours and patterns, even during moments of movement, amongst Westerners.
The quotidian bundle is exhibited at the Venice Biennale, a hall of contemporary art, and later in churches where it encounters the divine and requires sanctity. The realm of the everyday encounters new spaces and expands the activity area of the work into the realm of the eternal.
Harald Szeeman, the general director of the art section of the Venice Biennale in 1999 and 2001, defined Kim Sooja's creative process and her work's keywords as follows:
"Through a mixture of weaving close to the present and at the same time far away, she challenges us to reflect on the most basic actions, namely the ephemerality of our existence, the celebration of the moment, change, migration, resettlement, adventure, suffering, and having to leave what is familiar. She skilfully adapts her memorious and narrative-rich fabric to the present situation, creating an area of beauty and influence."[3]
Kim Sooja's work enjoys the status of nomadic works that can adapt and operate more openly in accordance with the requirements of a global environment. The nomadic life is one always prepared to leave. Kim Sooja's aesthetic and material heritage from her grandfather, who operated the first weaving factory in Daegu, and her father's frequent migrations as a military man who moved his station often, are reflected in her work.
After 2000, Kim Sooja's work expands the definition of the artistic realm through new objects. In "To Breathe - A Mirror Woman," she focuses on the breath of light. The work held at the Palacio de Cristal in Madrid (2006) shifts its focus from the traditional bundle to light.
The range of light visible to the human eye is the realm of visible light. This visible light is composed of various combinations of light, and when it reflects off water particles or translucent glass, its original colours are projected, making the wavelengths of light visible to the observer.
Kim Sooja reflects and distorts these breaths and waves of light through film in architectural spaces, creating a harmonious interplay of space and light on a mirror, allowing one to experience infinite spatial inclusion without distinction between above and below. One can witness the expansion of the artistic realm of images as representations of humans, architecture, and nature through the interplay of spaces created by human planning and the celestial light reflecting below the mirrored woman.
This process offers a new direction for Kim Sooja, who sought healing through art while embracing compassion for humanity and vulnerability to violence, crossing visible boundaries. The focus of art, which was previously directed towards humans, is expanded to encompass the realm of the natural world and infinity.
The numerous vertical and horizontal lines of the structure of specific film materials function as prisms for light. Light passes through this film, creating a rainbow effect. Through this process, Kim Sooja, who studied the structure of canvas, light, colour, and pigment, envisions a structure capable of expressing the essence of light and sound in an inner space. In a completely sealed and dark space, she creates a silent space with blocked noise and contrasts it with light to forge a new space. [4]
If the conventional works of art moved towards a more open space in relation to objects and actions, and towards a goal-oriented purpose, in ‘Archive of Mind, 2016’, a confined and restricted space is created where a certain light shines from above to below, inviting the audience's participation on the table. The breaths exchanged between the participating audience members create invisible waves through numerous clay balls due to collisions and absorption, which are then transmitted to strangers seated at the round table. This visualises the process of light waves being transmitted to us through installation art and implies another meaning.
Much like the body, water, which constitutes the majority of the human body, adjusts the balance of the internal world through blood pressure, cells, and blood flow under the influence of gravity, the direction of the brain, and hormone regulation. Similarly, the human mind is constantly determined by the intersectional encounters of the body, soul, and spiritual realm within the chambers of the mind.
Two thousand years ago, Apostle Paul recognised that the state of the mind, body, and soul was not only connected to the present situation but also to the eternal world, and he left these words in a letter to the Thessalonian church:
"May the God of peace himself sanctify you wholly; and may your spirit and soul and body be kept sound and blameless a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1 Thessalonians 5:23).
The installation art structured in the inner mind visualises the continuous formation of human spirit, soul, and body connections in everyday relationships, creating waves, inner conflicts, and collisions, sometimes bleeding like wounded souls. It structures the minds of people who cannot cope with or recognise these conflicts. Furthermore, it encourages confrontation with the inner world and oneself through new structures, transcending the realm of everyday life.
Kim Sooja has always been at the forefront of her time, expanding her artistic world in response to the needs of the era. As the real world becomes increasingly complex, and the direction of exchange and media leads to the loss of humanity, Kim Sooja's work focuses on creating her artistic realm in a direction that allows her to listen to the invisible inner voice.
‘Deductive Object, 2016’ reflects a large amorphous structure onto a mirror below, bringing together the realms of earth and sky, and leading the viewer's gaze from a previously complex inner space to an infinite abyss.
While Anish Kapoor created abstract yet meditative sculptures that evoke tension and fear in the audience with the smoothness of a woman's nipple on the surface and an overwhelming size that dominates the space, or an unpredictable darkness, Kim Sooja presents works that harmoniously encounter the existing natural world rather than a one-sided and structured space. Her works do not overwhelm the human mind or create an atmosphere of discomfort. Instead, they create environments that allow for a gentle contemplation of the inner self, much like the smoothness of the object's surface.
This aspect is connected to the direction of her future-oriented works involving architecture, space, nature, and objects, as well as the artist herself since the 2000s.
In 2022 Frieze Seoul Artist talk, Kim Sooja expressed her views on the future of art, emphasising the importance of understanding humanity, creating art that truly communicates and moves the artist from deep within their heart, and moving away from rough and destructive artworks. She hopes that the direction of art will progress towards works that genuinely respect human dignity and contribute to human civilisation.
Such an artistic view provides a new sanctuary and meditative space amidst the ongoing transformations, explorations of new objects, and the increasingly complex and aggressive contemporary art world. It prompts audiences to reconsider what true art is. This artistic realm may appear like a dreamy space created by sitting on a bundle truck, absorbing the breath of nature and the dew held overnight, projected in the light. Much like the mythological early works of the artist, which transformed everyday migration into something mysterious, her artistic world may even now be taking long strides towards creating another dreamy yet beautiful future.
10 September, 2022
[Note]
[1] Carmela thiele, Schnellkurs skulptur, DuMont Buchverlag GmbH, 1995
[2] Hans Ulrich Obrist, Wrapping Bodies and Souls, 1997
[3] Harald Szeeman, Bottari, 2000
[4] A Conversation between Kimsooja and Hou Hanru, Create A new Light, 2016
김기부 (독립 큐레이터, 북경 칭화대 예술사 석사)
2022
1994년 경주 옥산서원에서 행해진 김수자의 퍼포먼스는 하나의 사회 조각 작품의 출발점을 알린다. 전통적으로 조각은 어떠한 형태를 새겨서 예술가가 원하는 형태를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조각의 또 다른 정의는 어떤 대상을 모아서 결합하는 것(Assembling)도 내포한다. 그러한 조각의 정의 안에서,
예로부터 계곡 물가는 여인들의 사적인 소통이 일어나는 장소였다. 옥산서원 근처 계곡에서 이뤄지는 예술가의 퍼포먼스는 세대의 심미적 전통과 전승의 결과인 이불보 위를 걸어가면서 하나하나 돌 바닥에 놓여있는 조각보를 수집한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의 보따리로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보여준다. 이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활동인 것 같아 보이지만 지속적인 세대의 전승에 의해 이뤄진 작업을 현대적으로 전환시킨 행위 예술로 볼 수 있다.
할머니부터 어머니, 그리고 앞으로 새로운 가정을 이뤄나갈 성인 여인의 출발점은 언제나 오색찬란한 이불보의 전승과 선물에서 시작된다. 전통적으로 이불보는 신랑의 집에서 신부의 집으로 송복(送服)이 이뤄질 때 신부의 두벌 옷과 패물, 혼서지(婚書紙)와 함께 오간다. 이 과정 속에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한 혼수들이 오고 가는데, 대게 비단·이불감·솜·돈 등을 선물한다.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 각 가정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불보가 쌓이게 된다. 이불보에는 미래에 한 가정을 이뤄나갈 새 출발에 대한 여러가지 축복이 담긴 상징물들이 다양한 색상과 조화를 이루며 새겨진다. 한국의 전통적 복(福)의 정의와 축복의 소망들이 이 조각보에 다양한 방식으로 새겨진 것이다.
한국의 가정에 있어서 이불보는 단순한 기능적 역할을 하는 섬유로 만든 생산품이 아닌, 한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이루기 위해 양측 가정에서 사려깊게 준비하고 선택한 마음과 생각, 심미적 안목이 담겨져 있는 오브젝트인 것이다.
요셉 보이스는 “생각은 곧 조각이다. 단지 하나의 대상물로부터 파생되었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물질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조각품보다는, ‘생각한다’는 행위가 이 세상에서 당연히 훨씬 더 격정적으로 작용한다.”[1]라고 조각을 정의하였다. 사회적 출발점을 만들어나가는 생각들이 모인 이불보에는 그 오브젝트를 받는 대상, 즉, 가족의 구성원 마다 각자의 사연과 생각들이 축적되어 있다.
김수자는 이러한 생각들과 추억, 심미적 종합인 이불보를 자신의 사회적 조각을 위한 오브젝트로 선택하고, 세대의 흔적과 시간의 기억들을 하나의 보따리로 묶어 나가는 행위를 진행한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길이 담겨지고, 가정을 이뤄나가는 하나의 출발점이 되는 이 오브젝트를 한 곳에 모아 때로는 바늘과 실로 꿰어서 형태를 만들거나, 하나로 묶어내어 보따리를 만들어 나간다.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사회 조각을 창조하는 퍼포먼스인 것이다.
김수자의 작품은, 권위에 의해 소통할 수 없어 추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 앞 세대의 단색화 운동과 과도한 자기주장과 권위 탈피, 권력에 대한 반목과 대항이라는 주제로 집단적으로 이뤄진 동세대의 민중미술과는 다른 예술 방향성을 선택한다. 그 방향성은 서양 예술계에서 시작한 탈식민적 담론과 다문화적 논쟁과 연결된다. 1989년 퐁피두 센터에서 이뤄진 대지의 마술사들”(Les Magiciens de la terre) 전시로 촉발된 이러한 흐름은, 서양 주류 동시대 예술계에서 더욱 많은 외부인들, 즉, 동양과 아프리카계 예술가들에 대한 전시참여의 기회가 점차 증대되는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맞춰서 1992-1993년 MoMA PS1에서 벽 조각 전시를 시작으로 김수자의 예술활동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고 조각된다. 김수자의 동양적이면서도 세련된 현대예술은 시대적 과제를 찾던 수 많은 큐레이터들과의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김수자는 새로운 예술적 출발점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때로는 ‘바느질’의 개념을 ‘걷기’개념과 연결시켜서 일상 생활의 개념으로 전환시키고, 출생과 죽음의 현장에서 처음 피부를 감싸게 되는 직물과 영혼을 연결시켜 외부의 세계로부터 보호하고 포옹시킨다.”[2]
김수자의 예술 창작 이념은 기나긴 냉전의 종식과 세계화의 촉발, 이동의 자유가 증진되는 시점에 또 다른 개념과 연결된다. 전지구적으로 이뤄지는 디아스포라적 이동과 이주의 증대에 맞춰서 김수자의 작품은 유목민적 작품으로 분류되며 또 다른 해석의 문이 열리게 된다. 이민가방으로 딱딱하게 정의되던 서양의 각진 케이스가 아닌 어떠한 공간에서도 빈틈없이 공간을 메워 나갈 수 있는 부드러운 소재의 김수자의 오브젝트는, 서양인들로 하여금 이동의 순간에도 심미적 요소를 고려하여 다양한 색상과 문양이 새겨진 동양의 멋에 감탄을 자아들게 만들었다.
일상의 보따리는 동시대 예술의 전당인 베니스 비엔날레의 현장에서도 전시가 되고, 이후 신과 조우하며 거룩의 성결함을 요구하는 교회에서도 전시되게 된다. 일상의 영역에서 새로운 공간과 만남을 이뤄나가며, 영원의 영역으로 작품의 활동 공간이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1999년과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예술부분 총감독을 한 Harald Szeeman는 김수자의 창작행위의 과정과 그의 작품 키워드를 정의하면서 아래와 같이 작품을 정의한다.
“가까운 현재에 있고 동시에 먼 곳에 있는 직조의 혼합을 통해, 그녀는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행동, 즉 우리의 존재의 덧없음, 순간을 즐기는 의식, 변화, 이주, 재정착, 모험, 고통, 익숙한 것을 남겨야 하는 것에 대해 성찰하도록 도전합니다. 그녀는 기억력과 서사가 풍부한 그녀의 옷감을 아름다움과 영향을 미치는 연상의 영역으로 능숙하게 현재의 상황에 맞춥니다.”[3]
김수자의 작품은 시대의 상황에 맞춰서 더욱 개방적이면서도 세계적인 환경의 요구에 맞춰서 활동하며 적응할 수 있는 유목민적 작품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유목민은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는 삶이다. 김수자는 대구에서 직조공장을 최초로 운영하던 조부의 심미적, 재료적 유산과 매번 주둔지를 옮겨가던 군인 아버지의 잦은 이주성이 자신의 작품세계에도 반영이 된 것이다.
2000년 이후 김수자의 작품은 새로운 오브젝트를 통해 예술영역의 정의를 확장시킨다. <To Breathe - A Mirror Woman>에서 김수자는 빛의 호흡에 주목한다. 마드리드 팔라시오 데 크리스탈(Palacio de Cristal, 2006)에서 진행된 작품은 기존의 보따리가 아닌 빛에 주목한다.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빛의 영역은 가시광선의 영역이다. 이 가시광선은 다양한 빛의 조합으로 이뤄지는데, 물의 입자나 반투명의 유리에 빛이 반사가 되면 본래 가지고 있던 색상이 투영되어 빛의 파동을 가시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김수자는 이러한 빛의 호흡과 파동을 필름을 통해 건축의 공간에 반영하고 왜곡시켜서, 거울 위에 공간과 빛의 조화가 상을 맺어, 위와 아래의 구분 없이 무한한 공간적 포용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든다. 인간의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과 천상에서 비춰진 빛이 거울 위 여인 아래로 비춰지고, 인간과 건축, 자연의 표상으로 이미지의 예술 영역이 확장됨을 목도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가시적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에 대한 연민과 폭력에 대한 취약성을 감싸안으며 예술을 통한 치유의 방향을 모색하던 김수자에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기존에 인간으로 향하던 예술의 시선을 자연계와 무한의 영역으로 작품 영역을 확장시킨 것이다.
특정 필름의 재료가 가지는 수 많은 수직과 수평선의 구조는 빛에 있어서 프리즘과 같은 기능을 가진다. 빛은 이 필름을 통과하여, 무지개 빛을 만들어 나간다. 이 과정을 통해 캔버스와 빛, 색상과 안료의 구조에 대해 연구하던 김수자는 빛과 소리의 본질을 내면적 공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구조를 생각한다. 완전히 밀폐되고 어두운 공간에서 소음이 차단된 침묵의 공간을 조성하여, 빛과 대비시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 나간다.[4]
기존의 작품은 오브젝트와 행위적 관계, 어떠한 지향적 목표점을 향해 보다 열린 공간으로 나아갔다면, <Archive of Mind, 2016>에서는 밀폐되고 제한된 공간 속에서 일정 빛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면서 테이블 위에서는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작품에 참여하는 관객들 간의 호흡이 수많은 Clay Ball을 지나면서 충돌과 흡착에 의해 보이지 않는 파동을 만들어 나가면서 원탁에 앉은 타인에게 전달되게 된다. 이 것은 빛의 파동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설치 예술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인 것이며, 또 다른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육체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물은 중력의 영향, 뇌의 방향성과 호르몬의 조정에 의해 혈압과 세포, 혈류를 통해 신체 내부세계의 발란스를 조정한다. 이러한 신체와 유사하게 인간의 마음 역시 지속적으로 마음의 방에 몸과 혼, 영의 영역의 교차적 조우를 통해 마음의 상태가 결정이 된다.
2000년 전 사도 바울은 이러한 마음과 몸, 혼의 상태가 현재의 상황뿐만 아니라 영원의 세계와 연결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데살로니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이러한 문구를 남긴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내면적 마음에 형태가 구조화된 설치작품은 인간의 영과 혼, 몸의 연결고리가 지속적으로 일상의 관계 속에서 파동을 일으키며, 내면적 갈등과 충돌, 때로는 상처입은 영혼처럼 피흘리며 이에 대처하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들을 시각적으로 구조화 시킨다. 그리고 새로운 구조물을 통해 더 이상 일상의 영역이 아닌 내면의 세계와 자신과의 대면을 유도한다.
김수자는 언제나 시대의 필요에 앞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쳐나갔다. 현실세계는 점점 더 복잡화되고 교류와 매체의 방향성은 인간성을 상실하는 내용들이 세상을 점령해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 김수자의 작품은 더욱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창조해나간다.
아니쉬 카푸어는 여성의 젖꼭지와 같은 표면의 부드러움과 때로는 압도적인 크기로 공간을 점령하거나, 깊이를 예측할 수 없는 어둠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긴장감과 두려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추상적이면서도 명상적 조각을 만들었다면, 김수자는 이러한 일방적이면서도 구조화된 공간의 요청이 아닌, 기존의 자연계와 함께 조우하면서 조화를 이뤄나가는 작품을 선보인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압도하거나 일방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분위기를 조장하지 않는다. 오브젝트 표면의 부드러운 느낌처럼 내면을 부드럽게 관조할 수 있는 환경들을 조성한다.
그 점은 2000년대 이후 건축과 공간, 자연과 오브젝트, 그리고 작가 자신의 미래지향적 작품의 방향성과 연결된다.
2022년 Frieze Seoul Artist talk에서 김수자는 앞으로 미래 예술의 방향에 대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작가 스스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감동하며 소통할 수 있는 예술, 더 이상 거칠고 파괴적인 예술 작품이 아닌, 진정으로 인간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인류 문명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작품으로 예술의 방향이 진행이 되면 좋겠다고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한다.
이러한 예술관은 지속적인 변형과 새로운 오브젝트에 대한 모색과 점차 복잡화되고 과격해지는 현대의 예술세계에 새로운 안식처와 명상의 공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객들에게 다시 질문하게 된다. 이러한 예술세계는 보따리 트럭 위에 앉아 자연의 호흡과 밤새 머금은 이슬이 빛에 투영되어 하나의 몽환적 공간을 연출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일상의 이주를 신비로움을 자아내게 만든 그녀의 신화적 초기 작품의 모습처럼, 예술가의 작품세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 나갈 먼 걸음을 내딛고 있는지도 모른다.
2022.9.10.
[Note]
[1] Carmela thiele, Schnellkurs skulptur, DuMont Buchverlag GmbH, 1995
[2] Hans Ulrich Obrist, Wrapping Bodies and Souls, 1997
[3] Harald Szeeman, Bottari, 2000
[4] A Conversation between Kimsooja and Hou Hanru, Create A New Light, 2016
유선애
2022
유선애
리움미술관에 설치한 작품 ‘호흡’(2021) 안에서 인터뷰 촬영할 것을 제안하셨지요. 햇빛을 반사해 맺히는 빛의 형상을 담아야 하는데 며칠 동안 내내 비가 와 마음을 졸였습니다. (웃음)
김수자
우리가 오늘 ‘자연’을 봤잖아요.
유선애
해가 잠깐 난 찰나에 운명적으로 촬영하지 않았습니까.
김수자
정말 ‘럭키’했어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본 것이 오히려 본 것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잖아요.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들고요. 늘, 항상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찰나에 대해 기억을 안 할 것 같거든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적어도 그 순간은 우리에게 다른 시간이 되는 거죠.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변화하는 빛의 속성이 잠깐 스쳐가는,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는 삶과도 맞물린다는 게 내게는 흥미롭게 다가와요. 하지에는 빛이 태양처럼 바닥에 맺히는 데 이를 보기 위해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도요. 자연의 리듬에 맡기고 작업을 하는 게 나에게 새로운 요소가 되지 않았나 해요. 리움미술관 ‘호흡’ 작업을 하며 이를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됐어요.
유선애
보따리라는 가시적인 물질에서 빛과 숨이라는 비가시적 물질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나요?
김수자
저로서는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 과정이 하나의 흐름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양가적인 특성들은 늘 제 안에서 평행으로 움직이고 있었어요. 제 작업에서 보이는 물질과 비물질, 빛과 어둠, 안과 밖, 삶과 죽음 등은 이분법적인 게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고 생성 변동하며 교차하는 것이니까요.
유선애
‘직조 공장’(2004), 베니스 라 페니체 극장에서 발표한 <호흡: 보이지 않는 거울, 보이지 않는 바늘>(2006) 같은 해 마드리드 크리스탈 팰리스 개인전 <호흡: 거울여인> 등을 거치며 작가에게 ‘호흡’이라는 중요한 키워드가 생겼습니다. 명상이나 요가 등 수행에서 호흡이 몸의 움직임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잖아요. 어떻게 숨에 천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수자
숨을 먼저 생각하고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저의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은 항상 ‘페인터’라고 생각하고 있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은 굳이 페인터라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요. 초기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처음, 페인터로서 내 앞에 놓인 질문은 캔버스의 평면성에 관한 것이었어요. 눈앞의 평면이 과연 무엇이며, 내가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관통해야 하는가가 하나의 거울처럼 내게 다가오는 질문이었거든요. 그렇게 평면을 재해석하고 관통해보려 하고 동시에 나와 내 몸, 마음을 일체화하려는 과정에서 바느질이라는 행위가 나온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아시는, 우연한 기회에 어머니와 했던 바느질 경험을 통해 재발견한 바느질의 속성과, 이후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랩핑(wrapping) 과정에서 순환의 원리를, 또 ‘바늘여인(A Needle Woman)’을 통해 은유적(metaphotrical) 순환의 고리를 재발견한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숨 역시 나 자신과의 대면으로부터 출발한 거죠. 비어 있는 한 직조 공장 안에 들어가는 순간 내 몸과 숨을 의식하게 된 체험이 사운드 작업을 통해 몸의 ‘직조 공장’으로 이어진 것이죠. 숨이라는 것은 평면과 나 자신과의 어떤 대면, 타(他)와 자아와의 대면에서부터 출발한 것 같아요. 그 숨은 시각, 타를 보는 응시, 나의 눈, 그리고 타가 나에게 향하는 어떤 눈. 이를테면 질문이겠죠. 바느질이라는 행위와 연계돼 평면성을 극복하고 재해석했듯이 숨과 빛을 통해 평면성과 연계한 행위의 맥락을 확장해보는 시도인 거예요.
유선애
운동성 면에서 바느질과 호흡은 유사한 지점이 있어요.
김수자
바느질이 천의 안팎을 오가는 반복이라면, 숨 역시 들숨과 날숨의 반복이죠. 이들 모두 내부와 외부 세계의 경계를 끊임없이 오간다는 점에서 내 모든 작업의 처음과 끝은 바늘땀처럼 연계돼있다고 할 수 있지요.
유선애
이번 키아프 서울에서 악셀 베르보르트 솔로 부스 참가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작가님이 한국에 계시다는 소식에 더 기뻤고요. 2016년 MMCA <마음의 기하학> 전시 이후 국내 대중과 처음 만나는 자리이죠?
김수자
지금까지 한국 페어에서는 제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고, 대중을 만날 기회가 없었죠. 한국에는 책으로도 출간된 적이 별로 없던 터라 이번 솔로 부스로 많은 관객들을 직접 마주할 수 있어 저 역시 반갑습니다. 개인전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저 나름대로는 맥락을 가져가려 했어요. 작업의 근간이 되는 오방색이라는 컬러 스펙트럼과 형성의 뿌리인 보따리를 중심으로 전개될 거예요. 그 밖에 ‘움직이는 도시들(Cities on the Move)’(1997), 파리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보따리 트럭-이민자들(Bottari Truck-Migrateurs)’(2007) 이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마드리드 크리스탈 팰리스 개인전 등의 작업을 라이트박스로 재현한 작업도 함께 전시할 예정입니다.
유선애
국내에서는 소개되지 않은 신작도 있죠?
김수자
가장 최근 작업 중 MMCA에서 보인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는 ‘브라만다의 검은 돌’ 형태에 오방색을 페인트 칠 하면서 그 페인팅을 하나의 랩핑(wrapping)으로 개념화 해 거울을 바닥에 깔고 반사시키는 작업이었는데 이 형태에 이번에는 오방색이 아닌, 모든 색을 완전히 흡수하는 블랙. 그야말로 완전한 블랙(blackest black)을 랩핑 했어요. 이전부터 염두한 작업이었고 2016년에 일본 나라현의 사찰 옥외에서 다른 재료로 설치했었는데 재료의 한계로 미루다가 최근 적합한 재료를 발견해 새로 제작해 실내 작업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 작업을 통해 저 스스로는 맥락이 확장됐다고 할까요. 이전까지 관계성을 중심으로 작업해왔다면, 이번에는 모든 감정과 내러티브, 콘셉트까지도 그 안에 다 흡수하여 보다 일원화하는 집합체인 셈이에요. 즉, 절대성을 가진 몸으로써의 ‘연역적 오브제’라 할 수 있죠. 특히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업이라 관객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유선애
‘보자기’ 연작을 통해 싸는 행위, 즉 ‘포용’의 개념이 작업의 근간이 되었죠. 보자기와 마찬가지로 빛 역시 ‘감싸다, 아우르다’라는 표현을 쓰고요. 성찰과 수행, 존재와 관계, 이해와 포용, 나눔과 공존 등 그간 작가님의 작업을 관통해온 말이 점점 희귀한 단어가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김수자
희귀해지기 때문에 우리가 되뇌어야 하는 단어이기도 하죠. 최근 세계적인 미술 흐름을 보면 환대와 공존, 수용 등 삶의 태도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느껴요. 이번 ‘카셀 도큐멘타 15’ 역시 이를 반영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결국 제 작업은 폭력성에 대한 반작용인 것 같아요. 이는 어쩔 수 없는 성향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예술을 하는 방법론적인 것에 있어서도 ‘하지 않는 일’, ‘하지 않으며 하는 것’을 우선하는 거죠. 논두잉(non-doing), 논메이킹(non-making)은 논바이얼런스(non-violence)와 일맥상통하니까요. 어떤 것을 만들고 조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본다거나 재해석하는 것, 있는 것에 대해 새롭게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왔습니다.
유선애
타인을, 세상을 감싸는 행위의 근간은 어디에서 출발한다고 보십니까.
김수자
측은지심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포용성이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배워서 알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요. 똑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다른 어떤 개인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반응하니까요. 그렇다고 한 개인이 포용을 더 할 수 있고 없고 식의 우열을 따지자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삶의 태도겠죠. 그 사람의 삶의 태도가 어떠한가의 차이고, 어떻게 진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결별도 진실의 한 맥락 속에 있는 것이겠지요. 그 역시 진실에 다가가려는 어떤 종류의 삶의 태도와 결단을 내리는 행위이니까요. 또 감싼다는 것은 외부로부터의 차단을 의미하기도 해요.
유선애
작가님의 작품은 세계 각국을 이동하는 등 노동의 수고로움이 담기기도 합니다. 몸을 움직임으로써 성취하는 것이 분명히 있고, 이는 굉장히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김수자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결국 경험인데, 그 경험은 곧 타자와의 만남이잖아요. 만남 속에서 ‘스파클’이 일어나고요. 물론 정지한 상태에서 내면을 볼 때, ‘본다’는 것은 다른 것을 보는것이거든요. 자신 내부에 있는 것도 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을 타(他)의 상태에 놓아야 하니까요. 즉, 자기를 객관화시키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이 있지요. 이때 자기 객관화의 가장 유효한 방법론 중 하나가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 봐요. 이때는 나와 나 자신과의 대면이라기보다는 세상과의 대면이기 때문에. 그래서 어린 시절, 성장 과정에서(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떠돌며 산 경험이 내 상상력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자각과 몸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듯이, 작업으로 인한 움직임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세계를 향한 질문에 영향을 주었다고 봐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작가로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죠.
유선애
20시간씩 캔버스 앞에 앉아 반복된 움직임을 거듭하며 만들어지는 수행적 측면과는 다른 수행성을 가지게 된 거죠.
김수자
어떻게 보면 제 경우는 수행을 앞세웠다기보다는 철학적 고뇌였다고 볼 수 있는 거겠죠. 철학적 질문을 통해 어떤 새로운 해답을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나름대로 여과하면서 예술적 행위가 일어나는 순간에 생기는 깨달음이 있어요. 하나의 과정으로서의 수행이라면 수행이고요. 예술적 과정과 관조를 통해 도달하는 수행적 지점이 생기는 거겠지요. 캔버스 앞에서 수십 년간 선만 그리는 분들의 차원이 있을 거고요. 제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젠 프렉티스(zen practice)에 가깝지 않을까 해요. 제가 특정 종교를 ‘프렉티스’ 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종교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저의 초기 천 작업 당시에는 돌아가신 이경성 선생님께서 저를 보고 샤먼이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영적인(spiritual) 부분에 대해서는 보다 긴 대화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유선애
그런 의미에서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km’(1997)는 작가에게 큰 전환이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수행적 측면에서도, 작가로서 자리한 세계적인 인지도와 입지 면에서도요.
김수자
제게도 굉장히 기념비적인 순간(모먼트)이었죠. 왜냐하면 그 퍼포먼스를 통해서 나 자신의, 한 삶의 시기를 회고하는 그런 과정이자 작업이었으니까요. 굉장히 퍼스널하게 한 작업인데 되돌아보면 그때 마침 글로벌리즘(globalism)이 국제적으로 부상하고 있었어요. 글로벌리즘이라는 타이틀을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지만 시기적으로 제 작품이 자연스럽게 연루되더라고요. 돌아보면 내 작업이 지극히 지역적이었기에 글로벌리즘에 합류한 것 같아요. 지금도 글로벌리즘의 한 측면에서 제 작업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죠. 글로벌리즘적인 속성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부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고요. 제가 어떤 세계 미술의 한자리를, 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 작품이 굉장히 중요한 계기였다고 볼 수 있어요.
유선애
가장 큰 모먼트는 1999년 뉴욕으로의 이주이기도 했고요. ‘노매드 작가’가 돼 이주 직후 ‘바늘여인’, ‘구걸하는 여인’(2000~2001) 등의 결정적인 작품이 탄생했지요. 당시를 기억하십니까.
김수자
기억나죠. 해외에서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지만 오히려 한국에서는 작가로서의 위상이나 입지가 없을 때였죠. 작품 판매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지만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작품 팔기를 늘 거부했었지요. 남성 지배적 사회 안에서 여성으로서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열린 눈과 귀로 내 작업을 읽어주고 알아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저 자신도 뉴욕에서 감성이 더욱 열리고 자유로워져(적어도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후부터는 작가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없었어요. 그저 제겐 한국이 항상 적응하기 힘들고 어려웠어요.
유선애
지금은 조금 쉬워지셨습니까.
김수자
쉬워지지 않죠.(웃음) 다만 조금 편리해진 것 같아요. 뉴욕행 자체는 내게 문화적 망명(cultural exile)이었어요. 이 사회에서는 더 이상 작가로서 활동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고, 가족 역시 ‘여기는 아니다’ 하고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가게 됐으니까요.(웃음) 여전히 제게 한국은 참 묘한 사회입니다. 모순적이고 극렬한 네거티브 에너지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동력과 에너지는 끊임없이 솟아나죠. 물론 그런 면은 다행스럽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 동력과 에너지가 여과되고 보다 중력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미래지향적인 것은 좋지만 단지 시공간적으로 앞으로 간다고 해서 거기에 다 미래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때로는 뒤로 잘 돌아갈 때도 미래는 올 수 있어요. 과잉 경쟁 시스템 속에서 자기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현상을 볼 때 견디기 어렵고 힘
들죠.
유선애
폭력적인 현상은 사회 도처에 있고, 작품을 통해 내전과 난민 문제에도 천착했습니다. 폭력적 상황은 작가가 지극히 피하고 싶은 일이자 대면해야 하는 일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한두 가지 이유만으로 오랜 시간 작업을 이어오지 못했을 것 같은데요. 본인의 어떤 성향이 결국 작가의 삶을 중도에 그만두지 않게 했다고 보십니까?
김수자
그것이 문제적 문제죠.(웃음) 문제가 없다면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 언젠가 ‘내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자족적인 인간으로서 나눌 수 있을 때 그때가 내 작업이 완성되는 시점이고 또 내가 온전한 인간으로서, 존재 자체로서 살아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해요.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게, 문제가 계속 생기더라고요. 어느 시점쯤에 ‘이제 해결이 되는 거 아닌가’, ‘이 시점에는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닌가’, ‘더 이상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문제들이 생겨요. 그래서 삶이 연속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언제 그만두느냐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거지만. 글쎄요, 그것이 죽음이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죽음이 반드시 작업을 그만두게 하는 요소는 아닌 것 같아요. 죽음 이후에도 내 작업을 바라보는 이에 의해 작업은 지속된다고 봐요. 전체 생명력 내지는 생명체의 어떤 순환 관계에서 볼 때 연속성의 일환인 거죠.
유선애
자족에 있어서는 굉장히 엄격하리라 생각됩니다. (웃음)
김수자
모르겠어요. 자족은 멀었죠. 아직 멀었고, 사는 게 쉽진 않아요. 작업의 여정이 쉬웠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단지 힘들었던 건 경제적인 요인이었죠. 이를 감당하며 해야 할 새로운 작업을 지속하는 게 어렵지, 작업 자체가 내게 힘든 적은 별로 없었어요. 작가로서 늘 질문이 있다는 것, 그걸로 족하죠. 하지만 글쎄요. 스스로는 외부적인 요인들과 치열하게 부딪히며 작가로서 생존해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늘 거기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는 거니까요.
유선애
스스로 미진하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습니까.
김수자
물론이에요. ‘이런 부분은 내가 좀 더 광범위하게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스케일 면에서, 물질적인 면에서, 질과 양적인 부분에서 성에 차지 않는 상황이 올 때가 있어요. 하지만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진행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실행 가능한 선에서 내가 배울 수 있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을 해왔습니다. 신기한 건 정말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이 오더라고요. 이 시작과 끝에는 가족의 지원이 있었고, 작업 면에서의 지원도 전시라는 형태로, 비엔날레라는 형식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훼손되고 있지만, 비엔날레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현대미술에서 새로운 개념과 담론을 창출하는 그릇이니까요. 비엔날레가 주는 질문에 제가 답을 하는 과정이 작업의 원동력이 됐고, 계속해서 새로운 작업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믿고 지원해준 갤러리들과 큐레이터, 컬렉터, 칼럼니스트 등 세계에 흩어진 많은 좋은 친구들이 있기에 견뎌온 것 같아요.
유선애
키아프 서울 일정 이후 프랑스 메츠에 위치한 생테티엔 성당의 세계 최대 규모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인 ‘호흡 – 메츠 성당’의 공개를 앞두고 있습니다.
김수자
생테티엔 성당 취임식이 9월 15일에 있어요. 매년 9월 셋째 주 주말은 프랑스와 유럽 전역이 문화유산을 기념하는 ‘유럽 문화유산의 날’인데, 올해의 문화유산으로 생테티엔 성당이 주목받게 됐어요. 이때 맞춰 8백 주년 기념 사업으로 의뢰받은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일반에게 공개할 예정입니다. 생테티엔 성당은 유럽에서 가장 큰 스테인드글라스 파사드를 가진 성당이고, 지난 각 세기마다 작가를 초청해 작업을 해왔어요. (20세기 프로젝트에는 샤갈이 초청됨) 컬렉션으로써 의미를 따지면 생테티엔 성당이야말로 가장 다양한 프랑스와 독일의 작가 컬렉션을 보유한 곳이죠. 저는 총 16개 창의 설치를 주문받았고, 전통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와 함께 현대적 소재이자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다이크로익 유리(dichroic glass)를 동시에 사용해요.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투영하긴 하지만 아주 투명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 될 것 같습니다. 생테티엔 성당 창의 투명성과 공간성을 움직이며 변화하고, 반사하는 빛을 통해 이전에 볼 수 없던 방법으로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초대받아 작업을 하게 된 것을 작가로서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한국 여행자들의 발길도 많이 닿기를 기대해봅니다.
유선애
오늘 이야기를 나눠보니 김수자 작가의 작업을 이끄는 추동은 결국 질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어떤 질문을 품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수자
저는 아직도 그걸 모르겠어요. 삶과 죽음의 그 경계, 그게 제일 큰 질문인 것 같아요. 이를 해결하면 될 것 같은데, 그래서 제가 어느 인터뷰에서 한 번 얘기한 적도 있어요.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꿰매는 일을 해보고 싶다’라고 답했어요. 지금 제게 굉장히 크게 자리 잡고 있는 하나의 질문이죠.
— Marie Claire, September, 2022. pp.58-67.
Andreson Subin
2022
For more than four decades, Kimsooja has been using the form and the idea of the traditional
Korean fabric bundle known as bottari to explore the self, the other, and the narratives woven through life’s journeys. As the purpose of bottari, which embodies the essential carried by those on the move, may sound unpretentious, Kimsooja’s bottaris are not merely symbolic; they also function as a formal proposition,merging elements of beauty, impermanence,and universality.
Her exploration goes beyond the bottari, utilizing Obangsaek (a color scheme of the five Korean traditional colors), needles, and bedcovers, which all address existential questions of life. Most
recently, commissioned for an enthralling installation at the Leeum Museum (located in Hannam-dong, one of Korea’s most vibrant neighborhoods for art), Kimsooja created To Beathe,
composed of holographic halls that explore the meditative qualities of space. In this interview, we sat down with Kimsooja to discuss the role of ephemerality in her principles of “non-doing” and “non-making.”
Andreson Subin
You have carried the origins of Korean heritage and culture since the beginning of your career. How have these materials come to you throughout your oeuvre, and how do they figure in your life now?
Kimsooja
After over 40 years of practice, I can now say that the urges of my specific artistic actions in each stage of my career and their respective acts of creation seemed to have predicted my destiny. One early example of this was when I encountered this indescribable, immense energy from the universe while I was preparing a bedspread with my mother in 1983. It felt inevitable, and this intense power passed through my body all the way to the needlepoint, and at that very moment, I was about to push the needle into the bedcover fabric. Since then, the conditions of my life and the questions of bedcovers have been closely linked throughout my personal and artistic life. Nonetheless, this is just one example and part of my continuing career.
Andreson Subin
Speaking of the fabrics and bedspreads, the earlier works of Deductive Objects presented a cluster of used clothing fragments tied with copper lines. Can you talk about the transition from revealing to covering/wrapping the object as Bottari?
Kimsooja
In the Deductive Objects series, which I started in the early 1990s, I wrapped objects with fragments of used fabric and then encircled these wrapped objects with copper wire, and sewed pieces of old, used clothing as one object. I realized there is a degree of homogeneity in both Deductive Objects and Bottari, in the sense that sewing is a three-dimensional act of wrapping thread around fabric, similar to wrapping objects. In that regard, Bottari is also a mode of three-dimensional sewing. The transition between these bodies of work evolved purely by focusing on the act of wrapping rather than revealing or hiding the subject matter.
Andreson Subin
And unlike the works that utilize tangible materials, the performance works, A Needle Woman, A Beggar Woman, A Homeless Woman, and Cities on the move, feature your body as a tool.
Kimsooja
I consider these performances to be a form of time-based art that creates new relations and meanings within oneself and in relation to others by presenting the body as a tool or medium. However, if neither the performer nor the audience experiences any psychological or physical awareness or transformation, it may be considered a failed performance.
Andreson Subin
Were there moments that allowed you to develop closure from one performance to another?
Kimsooja
In my first A Needle Woman performance, I allowed myself to observe the relationship between my body and the humanity around me until I felt either an urge to act or into a complete ‘non-action,’ while walking around in Shibuya, Tokyo. This critical awareness created an inner silent scream, where I stopped walking and stood completely still. I was utterly overwhelmed by this mass crowd, and my senses became so alert that I perceived and entered into a meditative state while observing. At that very moment, I was able to insert myself into the crowd as a motionless, anonymous actor without notifying the audience. This performance often ended with enlightening instances in which my compassion toward humanity extended beyond the waves of people on the street. Nevertheless, a transformation of consciousness has always occurred, due to the site-specificity and temporality of my body and mind, unfolding transcendent experiences that generated different questions and modes of awareness in each performance. That is why after the first intense experience of A Needle Woman (one in nature and the other in an urban context), I continued the performance as a series in eight metropolitan cities around the world (1999-2001), six critical cities facing conflicts (2005), and also in Paris (2009). Each location evoked a different response to my body or to the performance itself, based on the city’s geographic, ethnic, cultural,religious, or socioeconomic conditions, and these particular conditions induced additional experiences in other cities.
Andreson Subin
You have adapted and experienced different cultures and art scenes throughout various parts of the world. What were some of your first encounters with the art world outside Korea?
Kimsooja
I was in my mid-twenties when I visited Paris for the first time on a French government scholarship. I spent six months at a lithography atelier of the Ecoles National des Beaux-Arts, so my experience with European contemporary art, in terms of the works and exhibitions that I saw at museums during that period, was minimal. I often took short trips to museums in other European countries to experience similar yet unfamiliar cultures and sensibilities around Europe, affirming my basic knowledge of European art. I also discovered an unexpected new interest in American culture during my stay in Paris, which I had never felt before living in Europe. Back then, the Korean art world lacked any solid commercial structure, at least until the end of the 1990s, which was when I immigrated from Korea to live in New York after the 24th Sao Paulo Biennale. At that time, only a handful of galleries in Korea showed contemporary art since they were mostly focused on modern and traditional art. Moreover, Korea had just experienced the IMF crisis, so there was virtually no support for the art world. No one considered my work to be commercially viable, which was fine with me because I was never
interested in the commercial world either.
Andreson Subin
And what was New York like?
Kimsooja
Unlike my European experience, living in New York in the 90s truly broadened my outlook. The city was already engaged in active discussions regarding multicultural practices and globalism. This allowed me to express myself in dialogue with different genres of art, artists, and writers in the contemporary art scene. Especially from 1992 to 1993, during my residency at P.S.1/MoMA, I met many acclaimed professionals from diverse fields interested in and understood my work. I rarely sold any of my work until I was about 40 and was reluctant to sell anything until I started working with a gallery in Geneva in the early 2000s. The gallerist used to complain that I didn’t want to sell my work to the gallery’s collection or private collections. But interestingly, since the mid-2000s, Europe has been the most supportive region for my work, and I have held more exhibitions there than in the U.S.or Korea. I find this interesting because that was when the art market slowly asserted control over the art world, a trend that continues today. In comparison, I believe Europeans value art and artists more than other parts of the world regarding their respect for original concepts and creative impulses.
Andreson Subin
As we are looking through the To Breathe series, where the installation provides meditativeness through diffraction of light and change in atmosphere, creating an ever-changing sculpture. Along with many of your oeuvres, it’s beguiling how no component can be controlled.
Kimsooja
Some people might think that the piece is simply not working at times. They may be disappointed when the weather doesn’t allow iridescent light to be transmitted and reflected into the interior space. After so many years of working on To Breathe installations, the breathing cycle of my artwork has stretched into a much longer wavelength than ever. Now, I feel comfortable and blessed that my work can breathe throughout the cycle of an entire year, waiting for the summer solstice to feel the sunlight traverse directly and connect in alignment with our body or for the complete circular iridescent shadow of the sun to become eclipsed onto the lobby area at Leeum Museum of Art. This way, you can come and go as the light moves in and out
Andreson Subin
Also, this series takes a symbolic form of bottari that is fully exposed in the context of wrapping the structure. Does this signify any metaphorical progression in the relationship of healing and embracing?
Kimsooja
A bottari is constructed to form an opaque and invisible yet fluid shape of closed borderlines, which can be likened to one’s body, memory, physicality, and possessions, while at the same time recalling a womb or a tomb, thus connecting with sensibilities of darkness. On the other hand, when I considered the solid structure of the architecture of bottari as a kind of a boundary, I could encompass light, air, sound, and performance within the void that traverses exterior and interior spaces. This relationship between our body, which is enveloped by bedsheets, and the architecture we inhabit may have meant to be interconnected in space. When I juxtaposed an anechoic room of complete darkness alongside a space of iridescent light and reflectivity—anchored by the sound of my breathing—at the Korean Pavilion of the 2013 Venice Biennale, it was composed of dualistic elements that resonated with the interrelationships of everyday life. I have constantly been contemplating the reality of these living conditions, commemorating and embracing them by all means.
Andreson Subin
As we are looking through the To Breathe series, where the installation provides meditativeness through diffraction of light and change in atmosphere, creating an ever-changing sculpture. Along with many of your oeuvres, it’s beguiling how no component can be controlled.
Kimsooja
Some people might think that the piece is simply not working at times. They may be disappointed when the weather doesn’t allow iridescent light to be transmitted and reflected into the interior space. After so many years of working on To Breathe installations, the breathing cycle of my artwork has stretched into a much longer wavelength than ever. Now, I feel comfortable and blessed that my work can breathe throughout the cycle of an entire year, waiting for the summer solstice to feel the sunlight traverse directly and connect in alignment with our body or for the complete circular iridescent shadow of the sun to become eclipsed onto the lobby area at Leeum Museum of Art. This way, you can come and go as the light moves in and out.
Andreson Subin
I’m also curious about your approach to the participatory exhibition, Archive of Mind, which first began at MMCA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in 2016. Accompanied by sound, this installation allowed visitors to make a sphere-shaped ball out of clay which then was placed on an enlarged wooden table. You started this work, but the public completed it.
Kimsooja
Perhaps this type of participatory project in my practice has to do with my concept of “non-doing” and “non-making.” When I realized A Needle Woman, no one was forced to do anything, yet the work came forth at the point of encounter between the passing pedestrians’ movements and the stillness of my own body. Archive of Mind adopted a similar structure: I placed a large elliptical wooden table as a wrapping tableau in the center, where it embodied stillness. When viewers sat down, made clay balls, and left them on the table, this generated the necessary interaction to complete the piece.
Andreson Subin
And the circular table in this exhibition also references Roman paintings where the figures are congregated and have no central figure, implying that everyone who sits there has equal status—which is reflected in many of your works.
Kimsooja
That’s an interesting idea. The circle or bottari shape manifests a geometry of even distribution from its central point. As you point out, my perception of humanity is also based on equality and human rights. Speaking in geometric terms, I discovered that one must push the edges of opposing corners towards the center, using two hands and applying equal force from all sides, to form a sphere. It is surprising to realize that an invisible void in one’s mind is created while producing the positive form of a clay sphere, establishing an equal negative space in our minds
that provides stability and balance so that we can let things go.
Andreson Subin
Widely considered one of your most ambitious and inspiring works, Traversées\Kimsooja, 2019, presented more than ten site-specific works city-wide. What role did historical sites play in these more recent works, and how might they shape your work to come?
Kimsooja
Having complete freedom to access the significant historical monuments in Poitiers was an exciting and challenging proposition. The project’s co-directors, Emma Lavigne and Emmanuelle de Montgazon, bravely trusted me with this huge responsibility and freedom while having close discussions throughout the process. I was literally given the key to the city and allowed to unfold it as a vast canvas while inviting other artists and colleagues whose works are relevant to the theme of Traversée. It was an absolutely unique experience, and I consider it the artistic privilege of a lifetime. We were very conscious of aspects of hospitality and otherness in this project, particularly with other projects dealing with migration and the awareness of others, as well as the idea of hospitality through collaborating with other artists and colleagues, including Lee Mingwei, Subodh Gupta, Rirkrit Tiravanija, Tadashi Kawamata, Stephen Vitiello, Achilleas Souras, Sammy Baloji, Lenio Kaklea, and Jung Mari, just to name a few who participated by exhibiting installations and performances. We disseminated these works across the city’s most beautiful and meaningful sites, contextualizing each work’s deep roots amid issues of migration and postcolonialism, as well as geographical and social issues, by activating amazing locations such as Palais, Cathedral, Eglise, Chapel, Museum, Convent, Art Center, theater, major streets, and other sites around this historic and beautiful medieval city. Taking inspiration from the idea of heterotopia as theorized by Michel Foucault, who was born in Poitiers, led to exciting encounters about various aspects of the project from the beginning of our discussions. I discovered that the altars of Chapelle Saint-Louis, which served as the background for the Bottari Truck installation, imbued the work with a historical and formal connection to its physicality and spirit. The newest re-contextualization of bottari was the obangsaek container titled Bottari 1999-2019, which held all the personal belongings that I had lived with for the past twenty years; this container traversed from my apartment in Manhattan’s East Village to Poitiers, finally being installed in front of Cathedral Saint-Pierre.
Andreson Subin
How do you hope to engage with your ongoing dialogue with ephemerality moving forward?
Kimsooja
If it were possible, I would seek to connect the mystery of the borderline between life and death.
— Plus Magazine, 2022, pp.132-145.
Lee Sunyoung (Art Critic)
2022
Even just a quick skim through Kimsooja’s career makes us wonder how a person could have possibly worked so hard. She made her debut on the international stage rather early, which was not all that large for Korean artists of her generation, and she gained domestic recognition, thanks to her success overseas. Yet that is not to say that she dives in for anything and everything; she refuses to show her work in exhibitions that do not align well with her philosophical and aesthetic beliefs or her sense of ethics, no matter how large and reputable they are. The long list of exhibitions and projects she participated in at home and abroad is the result of her enthusiasm about looking for opportunities to truly demonstrate her work and challenging herself through them. She took the decisive action to relocate not to settle somewhere, but solely for the sake of her work. Born in 1957, Kimsooja falls right in the middle of Korea’s baby boomer generation, which refers to those born between 1945 and 1965. Since this generation saw a surge in population, she had to live in an extremely competitive Korean society while compressed modernization was underway in the ashes of war. Opening a short critique of an artist’s work tritely with the generation theory is relevant to the questions about Kimsooja’s journey that seems close to impossible
In evolutionary terms, leaving the place one was born in and is familiar with is often due to the pressure for survival. This has been the case since ages ago when beings from the origin of our times moved from the waters to land and climbed down from the trees to dwell on land. Kimsooja is most widely referred to as the artist who globalized the very Korean object and concept of “bottari,” but nationality, ethnicity, school of thought, and school of art are typical
categories she wishes to avoid. The artist made clear judgments and had opinions about situations, but by nature, she was not aggressively vocal, which caused her to go on “cultural exile” in New York in the early 1990s when globalization was slowly starting to bud in Korea. Bottari, which had special meaning to the artist, was not so much about aesthetics to her, but rather a condition of life. In regards to her personal history, Kimsooja had to pack her bottari
often because her father was a soldier. Even today, where bottari is rare and due to the severance of tradition that has made hanbok material close to obsolete, bottari continues to occupy a place in the subconscious of Koreans that when someone tells us, “pack your bottari!” it strikes us like a bolt from the blue. Bottari sits between memory and expectation as well as between regrets and excitement. As in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of Bottari Truck (1997), through which the artist delivered an impressive performance of sitting on a bed of bottaris on a truck with her back facing us, the process is what’s important, not the starting point nor destination. Kimsooja’s bottaris paved the way for concepts and phenomena such as globalization, nomadism, and feminism that followed; however, an era is coincidentally encountered, not followed.
Meanwhile, Kimsooja’s work is transcendental and contemplative, as I noticed in her 2016 exhibition at the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Her work appears distant from metaphysical idealism because she connects an understanding from trivial, everyday activities of a woman, like sewing, with performance, which has become “grammar” of contemporary art. She gives considerate amount of thought to the empty space that will come to be filled abundantly. Archive of Mind, a participatory installation where visitors are invited to roll clay balls, involves a large 19-meter-long oval wooden table, but the method it employs is simple. It resembles the scene of people gathering in circles during Korean holidays to roll mochi balls, and Kimsooja’s table of participation creates a structure like the Möbius band that naturally joins the opposites into one. Archive and mind seem like things that would not meet, but the artist brings the two together like fabric and needle. The meeting of fabric and needle creates something—the harmony of the soft and hard, the harmony of the opposites. This is
the fundamental and ultimate message of Kimsooja’s work.
The newest version of Kimsooja’s bottari project, presented in 2021, is an on-site installation of a shipping container painted in five cardinal colors called obangsaek, which expands the meaning of bottari to an industrialized module. Another recent work from last year that was installed at Leeum Museum of Art and filled the space with rainbow auroras reveals the existence of light that is omnipresent like the air that channels sound and breath. This light seems to fall in the mystic tradition, rather than have a metaphysical aspect to it as “a metaphor for truth” as said by Hans Blumenberg. Women have placed more importance on love and spirit than on doctrines and scriptures.
— Article from Public Art, No. 193, October, 2022, pp.82-89.
이선영 (미술평론가)
2022
김수자의 작업 이력을 대략만 훑어봐도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해왔나 싶다. 작가가 속한 세대로 볼 때, 국내파에게 그리 넓지 못했던 세계무대에서 일찍이 활동을 개시했고, 그 덕에 국내에서도 평가받은 경우다. 하지만 무작정 열심히 한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명망 있는 큰 전시라 해도 자신의 철학과 미학, 더 나아가 윤리의식에 맞지 않으면 거부 의사를 밝혀왔다. 가령 ‘한국 미술의 양극단인 현대미술 그룹과 민중미술 그룹을 조사하고 병치시켰던’ 쿤스트할레 빈(Kunsthalle Wien) 한국 전시에 대한 참가 거부가 그것이다. 이는 작가 스스로 특정 화파와 무관하게 독립된 길을 걸어왔던 아웃사이더 입장을 표명한 경우다. 국내외의 수많은 전시 및 프로젝트 이력은 작업을 제대로 펼칠 기회를 찾아 꾸준히 도전해왔던 적극적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다. 정주를 위한 이동이 아닌, 오로지 작업을 위한 이동의 감행이다. 1957년생의 작가는 전후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인 1945년에서 1965년의 중간에 속한다. 그 나이대의 인구수가 많아 전쟁의 폐허에서 진행된 압축적 근대화 와중 엄청나게 경쟁적인 한국 사회를 통과해야 했다. 구태의연하게 세대론으로 한 작가에 대한 짧은 평문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김수자의 여정에 대한 의문과 관련된다.
진화론적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익숙한 장소를 떠난다는 것은 생존의 압박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인류의 먼 시원의 어떤 존재가 물에서 육지로 올라왔을 때 그리고 나무에서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부터 있었던 경향이다. 김수자는 ‘보따리’라는 한국적 소재를 세계화한 작가로 흔히 말해지지만, 국가나 민족, 학파나 화파 등은 작가가 회피하고 싶은 전형적인 유형이다. 상황에 대한 판단과 주관은 뚜렷했지만 그리 투쟁적이지 못한 작가의 성향이 한국에서 세계화가 슬슬 시작되던 1990년대 초에 뉴욕으로 ‘문화적 망명’을 떠나게 했다. 김수자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 보따리는 미학이기보다는 우선 삶의 조건이었다. 자전적으로는 직업 군인인 아버지를 둔 탓에 어릴 때부터 보따리 쌀 일이 많았다. 한복 천이 소멸하다시피 한 전통의 단절 속에 보따리가 희귀해진 현재에도 ‘보따리 싸라!’라는 말이 청천벽력 같은 발언으로 다가올 만큼 한국인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존재다. 보따리는 기억과 기대, 회한과 설렘 사이에 있다. 트럭에 실린 보따리, 그 위에 앉아있던 작가의 뒷모습이 인상적인 작품 <떠도는 도시들-보따리 트럭2727km>(1997)처럼, 출발과 목적지가 아닌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세계화, 유목주의, 페미니즘 등을 따라오게 했다. 하지만 시대와는 우연히 만나는 것이지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OO이즘’은 늘 작가를 불편하게 했다. 김수자는 1980년에 학부를 졸업했는데, 당시 미술계는 단색화로 대표되던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이라는 ‘양대 산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화적 좌우익에 공히 적용되던 근대성은 문화적 성과이면서도 억압으로 다가왔다. 굳이 그 양대 산맥을 좌표로 설정하자면, 김수자의 작품은 단색이 아닌 다색이었고, 민중이 아닌 민주였다. 또는 고향 대구에서의 큰 전시 때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차라리 자신의 작업은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2011년, 대구미술관) 보따리나 퍼포먼스와 결합되는 천의 유치찬란한 색상은 한국뿐아니라 김수자가 연구하고 기록한 수많은 민속 전통에서의 아름다움과 같은 반열에 있다. 가령 2010년부터 진행 중인 ‘실의 궤적’은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한 세계 곳곳 원주민들의 직물 관련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탐구다. 작품 속에 담긴 그토록 아름답고 기이한 문화적 텍스트를 짜던 이들은 이름도 남아있지 않은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2021년에 발표한 최신 버전의 ‘보따리’는 컨테이너에 오방색을 칠한 현장 설치작품으로, 보따리의 의미를 산업화된 모듈로 확장한다. 지난해 리움미술관을 가득 채운 무지갯빛 작품은 소리와 호흡을 매개하는 공기처럼 편재하는 빛의 현존을 드러낸다. 이 빛은 ‘진리의 은유’(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로서의 형이상학적 차원을 가지기보다는 신비주의 전통에 속하는 듯이 보인다. 여성은 교리와 경전보다는 사랑과 영혼을 중시해왔다.
또한 김수자에게 ‘유목’은 느슨한 자유가 아니라 경계의 의식이 고조되는 치열한 실천이다. 낯선 장소에서 붐비는 군중 사이에서 홀로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 ‘바늘 여인’ 시리즈(1999-)는 세계의 주요 분쟁 지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된 것이 많다. 분단의 여파와 무관하지 않은 한국 문화에서 지금도 고질병인 이분법은 학업을 마치고 막 작업을 시작하려던 작가 에게 선명하게 다가왔다. 단색화파나 민중미술로 나뉜 화단은 물론, 이후 하위문화와 결합된 키치 스타일의 세대와도 자신을 구별지었다. 대립보다는 차이였다. 물론 위계적인 인간 사회는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악습에 절어 있지만 말이다. 김수자에게 중요한 것은 차이를 위한 차이가 아니라, 유의미한 종합을 위한 전제로서의 차이였다. 가령 수직/수평은 좌/우처럼 극적인 차이를 대변한다. 김수자가 1980년대 초반에 쓴 논문은 수직 수평과 관련된 십자형 코드에 대한 것이었다.
작가는 2017년 후 한루(Hou Hanru)와의 대담에서 “당시 자연, 캔버스, 온갖 십자형의 시각적 요소에 자리한 수직과 수평의 구조에 대해 연구했고, 이를 토대로 대학원에서 고미술에서부터 동시대 미술에 나타난 십자가 형상에 대한 졸업 논문을 썼다”고 회고했다. 수직 수평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실크스크린으로 제작된 작품 <몸의 연구>(1981)에서 잘 드러나는데,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구조를 연상시키는 수직 수평의 구조를 매개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관념이 아닌 몸이라는 점이 기성의 기하학적 추상과 다르다. ‘바늘 여인’에서 수많은 군중 틈 사이로 요지부동한 작가의 자세 또한 수직적인 부분이 없지 않은지, 이후에는 와불처럼 누운 자세도 등장한다.
당시 여성 작가라는 주변적인 위치는 이항 대립적 사고의 배타성과 폭력성을 날카롭게 의식하게 했다. 1980년대 그리고 이후로도 한참을 더 그 양대산맥은 동 세대 남성 작가들의 차지였다. 끼고 싶지도 않고 낄 수도 없었던 그 시대 또한 다 나간 시점에서, 홀로 갈 수밖에 없었던 여정을 소급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간 길이 극소수의 진짜 예술가로 남게 한 셈이다. 하지만 김수자에게는 ‘예술’ 또한 지양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대한 해법은 다소간 역설적이다. 김수자는 2013년 프랭크 고테로(Franck Gautherot)와의 인터뷰에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나의 연습은 점점 비물질화되어 왔다. 예술가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내 몸을 포함해 물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자급자족하고 욕망에서 해방되는 것은 제 예술에서 가장 큰 성취다. 예술적 에너지를 한계까지 소멸시켜 예술을 하거나 예술을 하는 것에서 해방되고 싶다.
이것은 단순히 예술을 하는 행위를 멈추는 것으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역설적으로 그것은 가장 심오하고 신랄한 방식으로 충만하게 살고, 예술을 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몸의 기하학>(2006-2015)은 작가가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요가 매트를 사용한 작품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몸의흔적을 그대로 담은 ‘회화’로 제시되었다.
김수자는 자신을 ‘천’이 아닌 ‘바늘’자리에 위치시킨다. 바느질을 마친 후에 바늘은 결과물에서 사라진다. 바늘은 마치 샤먼(shaman)처럼 매개자일 따름이다. 바늘 되기는 몸 또한 포함하기에 현존한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 때 느낀 바지만, 김수자의 작품은 초월적이고 관조적이다. 거의 고정되다시피 한 금욕적 차림새 또한 그런 인상을 더 한다. 하지만 김수자의 작업이 형이상학적인 관념주의와 거리를 두는 지점은 바느질 같은 사소한 여성의 일상으로부터의 깨달음을 현대미술의 한 문법이 된 수행성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충만하게 채워질 빈 부분이 최대한 고려된다. 전시의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전시 부제와 같은 <마음의 기하학>(2016)은 관람객이 흙을 주물러서 구를 만드는 체험형 작품으로 제시됐다. 19m 길이의 타원형 나무 탁자는 규모는 크지만, 방식은 소박하다. 우연찮게 그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일시적인 공동체만을 이룰 따름이다. <마음의 기하학>은 명절 때 모여 새알심을 빚는 듯한 느낌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이며, 반대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뫼비우스띠 같은 구조다.
우유니 소금사막을 떠올리게 하는, 건축적 규모를 가지는 거울반사형 시공간의 연출 또한 유일한 세계를 반영하거나 변형하는 차원이 아닌, 평행하게 존재하는 우주에 대한 신비로운 상상을 담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면서 그리고 낯선 도시들에서 자신을 바늘 삼아 서 있던 경험을 말하는 대목에서 사물 또는 사람들과 하나가 된 준종교적인 체험을 이야기한다. 여러 가지로 실망을 안겨주었던 한국에도 관심을 가질만한 샤머니즘이 있었다. 마음과 기하학은 연결될 것 같지 않지만, 작가는 그것을 천과 바늘처럼 잇는다. 천과 바늘의 만남이 무엇인가를 만든다. 부드러운 것과 단단한 것의 만남이다. 반대되는 것의 조화다. 여기에 김수자 작품의 기본적이면서도 궁극적인 메시지가 있다. 작가가 선택한 소재인 보따리 자체가 융통성 있는 기하학에 바탕한다. 보따리는 가방처럼 빈 상자가 아니라, 접고 펼칠 수 있는 적극적인 공간-시간을 전제하는 현대적 기하학이다. 보따리는 진화를 거듭하여 작품 <연역적 오브제>(2016)처럼 우주의 알처럼보이는 괴물체가 되기도 한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무엇이든 쌀 수 있고 그래서 무엇이라도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
— Public Art, No. 193, October, 2022, pp.82-89.
보따리로 감싸고 자수로 엮어낸 여성성…공통된 키워드는 ‘관계맺기'
2021
김수자의 보따리 작업은 바느질과 같은 여성의 가사행위가 예술적으로, 동시에 세계 무대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의미화되는지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준다. 어머니와 함께하던 바느질 기억으로부터 천을 이어 붙이는 회화적 천 작업과 조각적 보따리 작업이 탄생했다. 그 보따리는 30년 창작활동과 국내외 전시를 거치면서 양식적·매체적으로 다변화되고 미학적·정치적으로 심화, 확장되고 있다.
지금은 전설이 된 역사적 전시회 ‘떠도는 도시들(Cities on the Move)’(1997~1999)은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리즘 영향하에 아시아가 지리정치학적 요지로 부상하면서 신도시 건설붐과 새 도시문화가 부흥되던 1990년대를 배경으로 기획된 시의적인 전시회였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이정표가 된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킬로미터’를 발표했다. 보따리를 가득 실은 트럭을 타고 장장 2727㎞를 달린 방랑의 여정을 기록한 이 비디오에서 작가는 스쳐가는 한국 풍경을 뒤로하며 보따리 위에 걸터앉은 채 고정된 프레임 속에서 내내 뒷모습만 보인다. 현대적 도시현상과 진보개념을 역행하듯 보따리와 쓸쓸한 여인의 뒷모습이 유랑민의 소외와 향수를 환기시킨다.
김수자는 1999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문화적 망명자”를 자처한 그는 이방인의 삶을 영위하는 “한계 상황” 속에서 ‘바늘 여인’과 같은 퍼포먼스 비디오를 탄생시킨다. 첫번째 ‘바늘 여인’(1999~2001)은 도쿄·상하이·런던·뉴욕 등 인구가 밀집한 8개 대도시에서 촬영한 다채널 비디오다. 작가는 여기서도 관객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대도시 군중 물결 한가운데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내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부동의 뒷모습, 그 특유의 이러한 미장센은 도쿄 시부야 번화가에서 느꼈던 실존적 경험에 근간한다. 행인 인파로 자신이 “지워지는” 느낌을 받는 순간, 그들과 하나 되는 일체감으로 “안도와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고 그는 회고한다. 이것이 무명의 군중을 보자기로 감싸는 연민·포용·환대의 감흥이 아니었을까?
두번째 ‘바늘 여인’(2005~2009)에서 작가는 정치적·종교적 분쟁, 내전·폭력과 빈곤으로 피폐해진 6개 도시인 파탄·예루살렘·사나·하바나·리우데자네이루·은자메나를 탐방했다. 착취되고 거세된 현장, 유토피아·디스토피아가 엇갈리는 혼란을 대면하면서 작가는 자신이 찌르고 봉합하는 바늘이 돼 지구와 인류의 불행을 지우는 치유자가 되기를 염원했다.
우리를 각성시키는 바늘 여인의 메시지는 ‘실의 궤적’(2010~2019) 연작에서 다른 모습으로 계승된다. 인류학적·고고학적·문명사적 다큐멘터리이자, 유럽과 남·동아시아, 북·남미, 아프리카 등 다른 문화권을 이동하며 직물의 경로를 추적한 이 대하 서사시에서 작가의 모습은 사라지고 카메라 뒤에서 응시하는 눈이 직조문화의 원형적 장면과 어휘를 포착하며 다양한 직조문화에 내재한 인간 존재의 원형, 원초적 생명원리를 발견하게 한다.
김수자는 한편으로 자신의 몸을 매체화하는 숨소리 사운드 퍼포먼스를 수행해왔다. ‘직조공장’(2004)은 폴란드 우치의 공장 빈 건물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숨소리와 허밍 사운드로 공장을 재가동시킨다는 개념으로 발상됐다. 들숨·날숨의 반복되는 호흡을 씨줄·날줄로 교차되는 직물에 유비시키는 호흡 퍼포먼스는 2006년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발표한 ‘호흡: 보이지 않는 거울, 보이지 않는 바늘’로 본격화됐고, 같은 해 마드리드 크리스탈 팰리스 개인전 ‘호흡: 거울여인’에서는 건축물에 부착된 특수필름과 바닥에 설치된 거울을 통해 반사되는 빛이 호흡 퍼포먼스와 어우러지는, 빛과 호흡이 공명하는 공감각적 보따리를 창출했다.
숨소리와 빛으로 공간을 감싸는, 탈물질화된 보따리를 ‘후기 보따리’로 명명한다면,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가 이를 명문화한다. 작가는 한국관의 유리 전면을 특수필름으로 덮어 무한대로 굴절되는 무지갯빛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고, 바닥에 거울을 부착해 반사된 빛을 재투영시키는 만화경 같은 미러링 효과를 연출했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시리즈 개인전 ‘마음의 기하학’에서도 관객이 점토를 구형으로 빚게 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후기 보따리’를 예증했다. 특수필름을 사용하는 빛 작업과 함께 ‘구의 궤적’이란 새로운 소리 작업으로 관객을 공명시켰다. 커다란 타원형 탁자 위를 굴러가는 찰흙 공의 마찰 소리와 작가의 가글링 소리가 뒤섞인, 어떤 언술보다 강력한 주술적 초성의 마력이 관객과의 일체감을 조성했다. 이로써 주객체를 연결하는 ‘마음의 기하학’이 완결됐다.
— The Kyunghyang daily news, March 2021
이연재 (서울시립미술관 수집연구과 학예연구사)
2020
보따리 오브제와 바늘 여인으로 2000년대 전후 세계 미술무대에서 명성을 얻은 김수자(1957∼)는 어머니와 이불보를 만들며 바느질을 하고 있을 때, 온 우주적 에너지가 자신의 몸을 통과하여 바늘 끝에 모이는 느낌을 경험했다고 밝혀왔다. 손으로 직물을 짜고 만드는 행위는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전담했고, 이는 예술(art)이 아닌 수공예(craft)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쓰여진 것’이라는 의미의 ‘텍스트(text)’의 라틴어 어원이 ‘짜여진 것(thing woven)’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김수자의 작업들은 여성적 행위를 환유하는 ‘바느질’로 만든 직물들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이것들이 인간에 의해 직조되고 기록되어 온 문화·역사적인 텍스트로 확장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가의 작업은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온 여성들의 서사가 사실은 인류의 문화·역사 기반 곳곳에 짙게 배어있다는 점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김수자의 작업에서 역사의 주변부로 위치 지워진 영역들의 문화인류학적 전복을 읽을 수 있다.
김수자가 미술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 말∼198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 화단은 크게 단색화 계열과 민중미술 계열 작가들로 양분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다적인 오브제· 행위 미술, 개념미술 등 실험적인 작업을 탐구하는 작가들도 일군 존재했다. 그러나 김수자는 “정치적 미술이 내재한 공격적 측면에 공감할 수 없었고” [1] 그렇다고 단색화의 시류를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미술대학을 다니던 당시 재료와 물성에 대한 탐구뿐 아니라 아방가르드적인 설치나 퍼포먼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캔버스 회화의 구조와 이 세계의 내적 구조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는 김수자는 우리 주변에 이미 존재하는 십자(十字)형의 기호에서 그 답을 찾고자 했다. 김수자는 이러한 수평·수직의 기하학적 기호는 역사 이전의 시간에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며, 이것이 보이지 않는 우주의 질서와 본질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아이디어를 석사학위 논문으로 발전시켰다. [2]
김수자는 자신에게 불편하지 않고 익숙한 소재들인 실, 바늘 등을 사용하여 캔버스 틀을 벗어난, 콜라주 회화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의 자신에 작업에 대해 서양의 현대미술에서 다루지 않았던 재료를 사용하여 “여성의 일상을 현대미술사의 문맥에서 재해석하고 펼쳐 보이려는” [3] 아방가르드적 접근이었다고 평가했다. 씨실과 날실이 종횡으로 엮인 비단 이불보, 그리고 이를 바늘이 수직으로 뚫고 들어가고 나가고를 반복하며 잇는 행위는 김수자가 구축해나가기 시작한 고유의 조형적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형식이었다. 김수자의 초기 ‘꿰매기’ 회화는 곧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입체적 보따리 오브제로 변주되었고, 이 꿰매기와 보따리 모티프는 이후 전개된 작가의 영상작업에서도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작가의 초기 ‘꿰매기’ 회화 작품은 사각형의 조각보들과 색동천을 한 땀 한 땀 바느질하여 이어붙인 것이다. 바느질 자국을 살펴보면 작가는 사실 이보다 더 규칙적이고 반듯하게 잘 꿰맸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지점은 바느질이 듬성듬성하고 또 어느 지점은 꽤 촘촘하다. 사용된 천의 모양도 정확하게 재단된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이 아니고, 모서리 실밥이 드문드문 풀어헤쳐진 것이 보인다. 작가는 당시 수평·수직의 문제에 깊이 빠져있었다고 했는데, 김수자의 조각보 콜라주 회화에 드러난 수평·수직은 몬드리안의 기하추상 회화와 달리 정확하고 단단하게 각이 잡혀있지 않다. 천 조각들을 덧대어 성기게 이어붙인 마디를 들추면 미세하게 벌어지는 틈이 남겨져 있는 것이다. 어떤 조각보 면은 검은 잉크와 아크릴 물감이 거칠게 덧발라져 있다. 수평과 수직의 조형요소로 추출된, 균형 잡힌 완전함에 대한 갈망에도 불구하고 본디 우리의 삶은 아무리 계획하고 재단해도 엉성하며 때로는 암흑으로 뒤덮이기도 한다는 것을 은유하듯 말이다.
김수자는 전통 가옥의 문살에 이 형형색색의 조각보들을 덧대거나 휘감는 설치 작업을 지나 조각보 자체를 볼륨을 가진 입체적 오브제로 발전시킨다. 그는 1992년 뉴욕현대미술관 PS1 레지던시에 참여했을 때, 이불보로 만든 보따리 작업을 선보였다. 뉴욕 레지던시에서 보따리에 싸인 자신의 짐을 보고 영감을 얻었던 것이다. 지금은 세대교체와 생활양식의 변화로 보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물은 아니지만 당시 한국인에게 아주 익숙한 사물이었던 보따리는 그저 둥글게 말은 짐꾸러미였다. 그 꾸러미 안에는 귀한 선물이 들어있기도 하고, 장소를 옮겨가면서도 꼭 가지고 가야 하는 필수적이고 소중한 물건들이 싸매져 있었다. 불편한 이동 중에도 이고 지고 들고 간 짐꾸러미 보따리에는 낯선 곳에서 잘 뿌리내리고 살아가보겠다는 의지와 간절한 마음이 깃들어 있던 것이다.
보따리 오브제의 소재인 비단 이불보는 한국인이 겪는 생로병사의 흔적이 내재된 천이다. 우리는 이불 위에서 나고 죽으며, 잠들고 사랑한다. 한국 여성들은 여전히 인생의 큰 관문인 혼인을 준비할 때 혼수와 예단으로 이불을 준비한다. 김수자는 한국 전통색감의 이불보와 조각보를 사용한 것은 오직 오리엔탈리즘, 포스트식민주의, 한국의 지역적 미학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본인 삶의 큰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4] 또한 작가는 최근 인터뷰에서 “그 재료 자체가 현대미술의, 특히 회화의 평면성과 그 구조를 실험하는 유효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했고 만약 이것이 실존의 문제, 여성과 인간의 본질적 삶의 화두를 가져오는 재료가 아니었다면 쓰지 않았을 것” [5] 이라고 밝혔다. 1990년대에는 지구촌, 세계화가 화두였던 시기였다. 권력과 위계를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은 경제적·문화적 패권을 쥐고 있던 미국과 유럽 중심주의를 벗어나 주변부, 제3세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중심부에 편입되지 못하고 떠도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산과 유목주의)가 미술계의 하나의 거대 주제로 부상하였다. 따라서 작가가 의도하였든 아니든, 이러한 한국적인 소재와 정서는 역으로 세계무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보따리 오브제 설치는 영상작업으로 확장되었다. <떠도는 도시들 - 보따리 트럭 2727km>(1997)은 용달 트럭에 실린 보따리들 위에 올라앉은 작가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이 트럭은 어린 시절 작가가 이사 다녔던 우리나라의 지역들을 찾아 이동하는데, 이렇게 이동하는 작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관객은 마치 작가의 뒷자리에 함께 앉아 이사가는 그 상황 속에 놓인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덜컹거리며 나아가는 보따리 트럭에 몸을 싣고서 멀리 앞을 응시하는 작가의 모습은 명상적이다. 이동하는 그 상황 속에 함께 놓인 관객은 경계를 넘어 새로운 영토에 들어가 그가 맞닥뜨릴 삶에 대한 두려움, 희망 그리고 잠시 익숙했던 곳을 떠나야만 하는 아쉬움의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묶은 머리를 길게 내려뜨린 이 여성이 홀로 짐꾸러미를 싸고 이를 트럭에 단단히 동여맸을 모습을 짐작하게 된다. 결국, 김수자의 보따리 트럭 영상작업은 때로는 정착에 성공하였을 테지만, 대부분은 본 땅에 안착하지 못하고 가장자리를 배회했을 외부인·이민자들의 외로운 역사의 기억을 여성의 몸으로써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이 작업이 “나와 우리 가족의 뿌리에 관한 기록에 가까웠다”고 [6] 했다. 이 영상작업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하랄드 제만이 각각 기획했던 국제 전시에 출품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김수자는 세계 미술계에서 명성을 쌓아갔다.
김수자의 최초의 영상작업 <바느질하며 걷기 - 경주>(1994)는 돌과 낙엽이 쌓인 땅 위에 원색의 이불보들을 넓게 펼쳐두고, 작가가 그 위를 걸으며 이불보들을 손으로 하나씩 거둬들이는 퍼포먼스 영상이다. 바닥에 깔린 다채로운 이불보들을 발로 밟고, 손으로 거둬들이며, 이를 팔에 걸치는 작가의 행위는 스스로 바늘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퍼포먼스가 자연이라는 거대한 캔버스를 꿰매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개념화 한 작업이었다. 또한 베틀을 이용해 실을 수평·수직의 엮어 손으로 삼베를 짜던 여성들의 전통적인 모습을 은유한다고 볼 수 있다. 전술하였듯, 생로병사의 흔적이 내재된 이불보를 긴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성이 바늘이 되어 그 속을 들고 나며 엮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작업은 이후 제작된 김수자의 영상작업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적인 주제를 예고한다.
<바늘 여인>(1999∼2001)에서 작가는 8개의 각 화면 가운데 등을 보인 채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보따리 트럭>에서처럼 관객은 긴머리를 하나로 묶은 작가의 뒷모습을 보게 되고, 작가의 옆을 스쳐 지나가는 도쿄·상하이·멕시코시티·런던·델리·뉴욕·카이로·라고스 도심 속 수많은 군중들을 마주치게 된다. 8채널 영상 속 전 세계 군중들에 둘러싸인 관객은 그들의 바쁜 움직임과 강한 에너지를 함께 느끼게 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영상에서 작가는 명확하게 바늘의 역할을 자처하며, 여기에 지켜보는 관객도 가담시킨다. 그렇다면 바늘에 꿸 실과 원색의 원단들은 어디에 있는가. 바늘 여인 옆을 스쳐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각의 날실이자 직물이 되는 것이다. 그 하나하나의 날실에 축적된 각자의 시간과 기억들, 삶의 아우라가 바늘 여인과 관객의 곁을 통과하는 것이다. 결국, 이 작업은 자유롭게 흐르는 이러한 수많은 날실들이 서로 엮이고 상호 관계되어 그 도시 고유의 사회문화적 콘텍스트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바늘 여인인 작가는 이 과정에 관객이 적극 동참하도록 제안하면서 홀로 독창적이고 중심적인 모더니즘적 작가의 지위에서 벗어난다.
김수자의 비교적 최근 작업인 <실의 궤적>(2010∼2019)은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경의가 담긴 문화인류학적 다큐멘터리라고 부를 수 있다. 다양한 문화권의 직조문화를 다루고 있는 이 영상작업 시리즈는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는 페루의 직물 문화(Ⅰ), 유럽의 레이스 문화(Ⅱ), 인도의 판목 날염 문화(Ⅲ), 중국의 자수 문화(Ⅳ), 미국 원주민의 직물과 바구니 문화(Ⅴ), 모로코의 모자이크 타일 문화(Ⅵ) 등을 기록하여 보여준다. 손으로 꿰매고, 엮고, 두드려서 만드는 각 민족 고유의 공예 방식과 그 민족이 살아온 대자연·고대 유적·건축물 등을 화면 속에 병렬한 것이다.
예를 들어, Ⅰ장에서는 페루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이 꽃과 식물의 잎으로 염색한 실을 손으로 감고 돌려가며 직물(textile)을 짜고 있다. 고대 페루 문화에서 직물짜기는 개인과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방식이었다. 알파카·라마·양의 털 등 자연에서 온 원료가 여인의 손에서 실의 형태로 뽑혀 나와 텍스타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작가는 페루 여성이 입고 있는 전통의상의 자수 문양과 그의 뒤로 보이는 고대 페루 유적지의 기하학적 패턴, 그리고 여성의 손에 의해 돌고 있는 실패의 모양에서 형태적 유사성이 발견되도록 카메라 촬영 구도를 의도하였다. 유럽의 레이스 제작문화를 다룬 Ⅱ장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초목과 꽃을 보여주던 화면이 손으로 보빈 레이스를 만드는 유럽 여성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자연을 닮은 보빈 레이스의 문양과 유럽 건축물에서 발견되는 구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김수자의 이 영상작업은 여성은 자연, 남성은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는 인류학의 전통적인 이분법적 서술에 부드럽게 저항한다. 여성적 작업의 기호인 공예와 텍스타일이 각 민족·지역의 텍스트, 콘텍스트를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자연, 전통의상, 직물, 공예, 음식, 건축을 화면 속에 병치하고 뒤섞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인류학자들이 특권적으로 규정해 온, 인간의 문화 및 사상의 발전사라는 거대 구조의 근저에는 젠더화 된 남성·여성적의 작업 모두 공존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바느질에서 출발한 김수자의 작업은 여성적인 행위와 노동을 자연, 결혼, 가족 등 여성에게 허락되어온 영역 속에 종속시켜 묘사하지 않고, 젠더화 된 권력과 지식체계를 균형 있게 재구성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인류의 문화양식은 서서히 축적되어 변증법적으로 발전되어 왔다. 이 발전과정 속에는 언제나 역사의 승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김수자는 그다지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중심의 바깥에 위치한 사물, 기억, 존재들을 작업 속으로 끌고 와 탐구자의 시선으로 조명한다. 이를 통해 서구의 지배적인 이론과 지식으로 편중된 우리 사고체계의 틈새에 새로운 무게 추를 올려둔다.
[Note]
[1] 김수자·후한루 대담, 「새로운 빛을 밝히다」, 『김수자-마음의 기하학』(국립현대미술관, 2017), p. 46.
[2] 김수자, 「조형기호의 보편성과 유전성의 관한 고찰: 십자형 기호를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4.
[3] 김수자와의 메일 인터뷰, 2021년 5월 10일.
[4] 김수자·후 한루 대담(2017), p. 56.
[5] 김수자와의 메일 인터뷰, 2021년 5월 10일.
[6] 김수자·후 한루 대담(2017), p. 24
Dislocations/Relocations: Contemporaneity in Korean Art
2020
Kimsooja, of a slightly earlier generation than Suh, also had transformative experiences during her international residencies and exhibition work. Kim had studied painting at Hongik University in 1983 before she went to the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in Paris in 1985. She then attended the visiting artists' studio programme at PS1 in Long Island, New York in 1992, and presented her Deductive Object in the following year.(1993) From the 1980s, the artist has incorporated sewing in her work, utilizing many different textiles: 'satins, linens, colour-striped silks and fine silk gossamers'.[1] The needle, in Kimsooja's projects, is a metaphor for travel, and the act of stitching, through fissure and suture, connects points and places of 'identity, mobility, borderlessness, and nomadism'.[2] Over time, her work began to incorporate her body as a performative index, becoming a signal, anchor and signifier of the duration of time spent in various locations. Earlier performance work in 1981 had involved the register of the horizontal and the vertical through the body in Structure: A Study on Body, a series of silkscreen photographs that record her performance.[3]
In the early 1990s Kimsooja participated in an important international travelling exhibition 'Cities on the Move', curated by Hou Hanru and Hans Ulrich Obrist, that opened at the Secession in Vienna in 1997. The exhibition dealt with the rapidly changing East and Southeast Asian metropolis over the late twentieth century and displayed diverse artistic mediums like painting, sculpture, film, video, performance, installation and architecture. As well as Kimsooja, the show included work by fellow Korean artists Choi Jeong-hwa, Choi Wook, Kim Jinai, Koo Jeonga and Lee Bul, and by Korean architects Min Sohnjoo and Seung Hyosang (also known as Seung H-Sang)." True to its name, the exhibition travelled to many different cities in Asia and Europe, and a version of it was shown in New York at PS1 in 1998-9.
In conjunction with the show, Kimsooja produced her own mobile work, Cities on the Move-2727 KM Bottari Truck (1997), which travelled around various cities in Korea, and was shown at the São Paulo Biennale in 1998 and the Venice Biennale in 1999. While bottari in Korean means 'bundles' or 'the wrapping of personal belongings', the word also connotes a 'departure' (in the act of packing or wrapping 'bottari') and is traditionally associated with female domestic labour and a generational collectivity, passing from grandmother to mother to child. The sense of departure embedded in bottari refers both to Kim's own past – her father was a military employee who was posted to various locations over the course of her childhood - and also to her own voluntary migration around the globe. For eleven days and over 2,727 kilometres, the artist rode in the back of a blue truck surrounded by fabric bundles of bottari. Her motionless back was captured in photographs by the well-known Korean photographer Ju Myung Duk, and an accompanying video features a constantly shifting landscape that frames Kimsooja's dark silhouette and the colourful patchwork of bottari. The packing of bottari means that one is leaving or moving, choosing a new, unpredictable and possibly precarious state. In an interview with Hans Ulrich Obrist in 1997, Kimsooja described the truck in terms of its association with 'homelessness, refugees or immigrants of any sort'.
In other works, such as A Needle Woman (1999-2001), which was shown at PS1 in 2001, the performative dimension of the artist's body becomes more prominent. In this video installation, filmed in Shanghai, Tokyo, New York and New Delhi, Kimsooja's body is like a stone in a river of people flooding a busy street, a bustling marketplace and a pedestrian thoroughfare. The artist, though once again only visible from the back, is a figure set apart, surrounded by crowds of people who come in contact with, and flow past, her body. When asked about the motivation for this work, Kimsooja replied:
"After this two-hour period, when I arrived at a street in Shibuya, where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were constantly passing, like waves of a human ocean ebbing and flowing - I suddenly became aware of the meaning of my 'walking'. It was a breathtaking moment. I had to stop on the spot and stand still - creating a contradictory position against the flow of the pedestrians, like a needle or an axis, observing and contemplating them coming and going, weaving through and against my body as a medium, like a symbolic needle."
Weaving together sensations of different cities increasingly altered by global- ization, Kimsooja's body acts as a temporal anchor point for the line of sight, stitching together varied cultural and social circumstances in what David Harvey has described as 'a time-space compression that has had a disorienting and disruptive impact'.
Kimsooja's contemporary, Minjung Kim (b. 1962), also weaves a theme of nomadism through her work. Best known for her abstract, calligraphic and monochrome pictorial idioms, Minjung Kim works with colours and references that often derive from Korean tradition, a practice she began after she moved from Korea to Italy in the 1990s.29 Kim uses traditional Korean paper called hanji, often burning the edges of the paper with an incense stick, a practice that she began in the late 1990s in Milan. This repetitive practice has a performative dimension that stems from the artist's diasporic existence and psychological dislocation from her family and home country. By burning the edges of the hanji over many hours, Kim creates a layered, textured surface that leads to visible physical tensions and faultlines, as seen in The Room (2017; fig. 13). In her ink-based abstract paintings, the ink settles into saturated stains that merge into dark lines and flat areas. In reference to these, the artist has said that 'boundaries' and 'lines' represent an essential part of the human condition, creating a space where people collect and find security and psychological comfort. At the same time, Kim's lines invade, intermingle and smudge, reflecting the divisions that embody the artist's own complex identification with the local, collective history and marginalized identity of her hometown of Gwangju. The painter evokes her own dislocations through the work of cutting, accumulating, layering and burning.
[Note]
[1] Seo Seong-rok, 'The Grammar and Expression of "Sewing": On the First Solo Exhibition of Work by Kimsooja'; "The Horizontal and the Vertical Structure as an Essential and Universal Framework in which Nature and Man Meet'. Seo's essays were written in 1988 and reprinted, http://www.kimsooja. com/texts. Accessed 15 January 2019.
[2] Ahn So-yeon, Mind Space (Samsung Museum of Art, Seoul, 2003). For Korean women artists in the global context, see Jin Whui-Yeon, Coexisting Differences (Seoul, 2011).
[3] Kimsooja's MA thesis, housed at the Hongik University Library, is also concerned with the geometry of the horizontal and the vertical, in an examination of modern abstract painting. If the vertical and horizontal grid is an important visual icon for modernist painting, Kimsooja dismantles the painterly grid in her bodily performance and related forty- five silkscreen works. Kimsooja, 'Study on Universal and Hereditary Characters in Formative Signs', MFA Thesis (Hongik University, Seoul, 1984); Suh Young-Hee, 'Contemplating a System of Horizontals and Verticals', in Vancouver Art Gallery, Kimsooja: Unfolding (Hatje Cantz Verlag, Ostfildern, Germany, 2013), pp. 25-42. See also Rosalind Krauss, 'Grids', October, vol. 9 (Summer 1979), pp. 50-64.
[4] The exhibition initially opened in 1997 and then travelled to CAPC musée d'art contemporain de Bordeaux in France (5 June-30 August 1998); MoMA PS1, NY (18 October 1998-10 January 1999); The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Humlebæk, Denmark (29 January-21 April 1999); Hayward Gallery, London (13 May-27 June 1999); after this, it travelled to Bangkok and Kiasma in Helsinki in 1999.
[5] About her use of cloth, which started in 1983, she recalls: 'One day I was sewing up bed covers with [my] mother, when suddenly I experienced intimacy and amazing oneness in which all my thoughts, sensitivity, and gesture were all united and fused. I also found a possibility to embrace in it numerous long-buried memories and pains, and even the love of life.' Quoted from Oh Gwang-su, 'Recent Work of Kimsooja: A Return to the Archetype', in Soo Ja Kim (Gallery Hyundai, Seoul, 1991); for Kim's interview with Hans Ulrich Obrist, see Flash Art, no. 192 (January-February 1997).
[6] Sunjung Kim, 'Interview with Kimsooja', April 2008; www.kimsooja. com. Accessed 10 December 2018. See also Kimsooja: A Needle Woman (Kunsthalle Vern, Bern, Switzerland, 2001). This catalogue publishes texts by Nakamura Kenji, Bernhard Fibicher, Robert C. Morgan and Harald Szeemann. Hans Ulrich Orbist's email conversation with Kimsooja is in this catalogue.
[7] David Harvey, 'Time-space Compression and the Postmodern Condition', in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Cambridge and Oxford, 1990), p. 284.
[8] Part of this text on Minjung Kim is based on Yeon Shim Chung's essay in the catalogue for 'Faultlines', one of the exhibitions of the 2018 edition of the Gwangju Biennale, entitled 'Imagined Borders'.
2020
‘작가 김수자’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보따리’다. 주로 서민들의 이삿짐이었던 알록달록한 이불 천으로 된 보따리는 김수자 작업의 화두이자 1990년대 미술의 주요 아이콘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또 다른 곳을 향한 떠남을 암시하는 보따리는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고 여행과 이주가 빈번해진 이른 바 전 지구화 시대를 표상하는 모티프가 되었다. 더하여, 한국의 토착문화,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문화와 그 문화의 이동을 의미함으로써 로컬과 글로벌, 주변과 중심이 교차하는 당대 세계의 문화지형도에도 적절하게 부합하였다. 보따리 작업이 구체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2년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이지만 그 연원은 이전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수자가 수업기를 보낸 1970년대 말~1980년대 초는 이른바 단색화 시대였는데, 이때부터 그는 단색화의 모더니즘 미학, 특히 그 고답적인 정신주의에 의문을 가지면서 천이라는 촉각적 재료와 바느질이라는 일상공예 기법을 평면작업에 적용하는 실험을 시도하였다. 또한 자신의 신체 움직임을 기하학적 구조로 분석한 <구조-몸의 연구>(1981, 사진, 실크스크린)에서처럼, ‘몸’을 작업의 주요 계기로 주목하게 된다. 몸과 그 몸이 살아가는 일상이라는 화두에 점차 이끌리게 된 것인데, 이에 확신을 갖게 한 계기가 작가가 자주 언급해온 어머니와의 바느질이다.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가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천이 가지는 기본 구조로서의 날실과 씨실, 우리 천의 그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드는 꿰매는 행위의 천과의 자기동일성,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1]
1983년의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당대 두 주류로 대치하고 있던 단색화와도, 민중미술과도 다른, 자신만의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이후 그는 알록달록한 천의 질감과 바느질 자국을 드러내는 천 콜라주로, 지게나 얼레 등 전통기물을 천으로 싼 오브제 작업으로, 그리고 천 조각들 자체를 오브제 삼아 집적한 아쌍블라주로 과감하게 나아갔다. 평면작업의 재료가 되었던 천이 점차 그 자체로서 미학적 의미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이런 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1992년 우연한 계기로 발견한 모티프가 ‘보따리’다. 그가 뉴욕 PS1에 체류 중이던 어느 날 천 재료들을 싸서 보관한 보따리가 눈에 띄게 되었는데, 작가의 말처럼, 그 순간 보따리는 “하나의 조각이고 회화”[2]가 되었다.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아우르는 보따리는 또한 바늘 없는 바느질, 즉 어머니와의 일상에서 발견한 새로운 미학의 또 다른 구현물이었다.
이렇게 발견한 보따리를 김수자는 같은 해 오픈 스튜디오에서 처음 전시하게 되는데, 이 작업에도 이전 오브제 싸기 작업과 마찬가지로 <연역적 오브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천으로 또 다른 평면을 만들어가는 초기 작업의 귀납적인 방법에 대해 천을 통해 오브제를 역 추적한다는 의미를 함축한 이 명칭이 보따리에도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보따리는 하나의 모티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업 원리를 구현한 시각 기호였던 것이다.
싸고 묶고 풀고 다시 싸는 과정을 함축한 보따리는 여성의 일상 특히 그 신체적 움직임과 긴밀하게 엮인 오브제인데, 이를 구체화한 예가 1994년의 전시 《바느질하여 걷기》(갤러리 서미)다. 전시장 바닥에 배치된 보따리들과 옷가지들, 오래된 가옥이나 자연 속에 놓인 보따리와 펼쳐진 천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작가를 찍은 영상, 그리고 그 설치 공간 속을 걸어 다니는 관람자를 찍은 실시간 영상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보따리가 여성 몸의 움직임과 하나가 되는 과정을 구현한 총체적 퍼포먼스였다. 영상에서 작가는 스스로 보따리들 중 하나가 되거나 보따리 천을 펼치고 싸거나 자연이라는 드넓은 천 속으로 바느질하듯 걸어 들어가는 행위를 시연하였다. 자신의 모든 작업을 천이 이끄는 ‘퍼포먼스’[3]라고 한 작가의 입장이 이 전시를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이렇게 관람자를 퍼포머로 끌어들이는 퍼포먼스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중외공원에서 이루어진 같은 제목의 작업에서 작가는 자연 속에 헌 옷과 보따리들을 펼쳐 놓고 관람자들이 그 속을 걸을 수 있게 하였다. 반전 운동의 상징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Imagine)’과 ‘스탠 바이 미(Stand by Me)’가 흘러나오는 현장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떠올리게 하면서 이 작업의 정치적 의미를 부각하였다. 두 달여 전시 후에 흙과 낙엽과 옷이 뒤범벅이 된 현장은 이를 다시 확인하게 했다. 이 작업을 통해 보따리는 희생자의 넋을 기린다는 치유의 의미 또한 함축하게 되었다. 보따리는 퍼포먼스와 엮이면서 바느질로, 그 신체적 구현으로서의 걷기로, 그리고 그 심리적 효과로서의 아우르기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간 것이다.
이런 퍼포먼스와 함께 보따리가 움직임 혹은 이동의 매체이자 도상으로 부각된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보따리와 작가의 몸이 함께 이동하는 <떠도는 도시들-2727Km 보따리 트럭>(1997)이 그 증거다.
“보따리를 싸고 풀듯이 내 몸 역시 끊임없이 머물고 떠납니다.”[4]
1995년의 한 대담에서의 작가의 이 말이 예언이 된 듯, 2년 후 그는 스스로 하나의 보따리가 되어 다른 보따리들과 함께 머물고 떠나는 여정을 시도하였다. 보따리를 실은 트럭에 작가가 함께 타고 11일 동안 전국의 마을들을 누비는 퍼포먼스이자 이를 기록한 비디오 영상인 이 작업은 아우름과 함께 떠남의 계기를 함축하는 보따리 미학을 작가가 몸소 실천한 예다. 이사가 잦았던 어린 시절 주거지들을 거쳐 가는 이 여정을 통해 그 자신도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끊임없이 떠나는, 혹은 떠남으로써 또 다른 것을 아우르는 보따리가 되었다.
작가 자신 또한 유목 혹은 여행의 주체로 부각된 것인데, 전 세계 여러 도시들에서 이루어진 거리 퍼포먼스를 기록한 <바늘 여인> 시리즈(1999~)는 이런 작가 개념이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진 예다. 작가 스스로 바늘이 되어 현지인들 속으로 스며드는 과정을 기록한 이 비디오 작업에서 보따리는 사라졌지만 그 의미는 “치유의 도구”[5]로서의 바늘을 통해 구현되었다. 여기서 김수자는 자신의 몸을 스쳐 가는 낯선 이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에게 여행은 다른 문화를 포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또한 있는 그대로 두고 떠나기 위한 것이다. 이는 19세기 산업혁명이 촉발한 남성적 정복의 여행과 대극에 있다. 마치 바늘이 헝겊과 헝겊을 이어주고 떠나듯, 보따리가 서로 다른 천들을 감쌌다 풀어주듯 그는 아우름과 떠남의 반복으로서의 여행, 이른바 여성적 포용의 여행을 실천한 것이다. 어머니와의 바느질 체험이 사회적 차원으로 드러난 그의 여행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부드러운 정치학의 구현이다. 소외된 지역이나 분쟁 지역에서 이루어진 이후의 작업들이 이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김수자의 작업을 이끌어 온 것이 보따리와 그 미학이며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보따리는 펼쳐져 빨래처럼 널리기도, 낯선 이국 카페의 테이블보로 쓰이기도, 조각조각 잘려 벽돌 틈새에 끼워지기도 하면서 변이를 거듭해 왔다. 비디오 작업 또한 장소를 달리하면서 지속되었다. 보따리 트럭은 1998년 사웅파울로 비엔날레 등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전시되면서 이른바 노마디즘(nomadism)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특히 ‘코소보 난민에게 바침’이라는 부제가 붙은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것은 이주와 그에 따른 문제를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 파리에서 이민자 관련 장소들을 순회하면서 다시 제작된 보따리 트럭에는 ‘이주’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는 최근 작가가 전시감독을 맡은 푸아티에 비엔날레 《가로지르기/김수자》(2019.10.12.~2020.1.19.)에도 전시되었으며, <보따리>라는 이름으로 설치된 뉴욕 이삿짐 컨테이너와 함께 전시의 의미를 각인시켰다. 보따리가 바느질로 개념화된 <바늘 여인> 또한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시연되어 왔다.
마드리드 크리스털 궁전 설치 작업(2006)에서 시작된 <숨쉬기> 연작은 보따리 개념을 건축적 공간에 적용한 예다. 유리창에 붙인 회절격자 필름을 통해 오방색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을 연출한 것인데, 이는 빛으로 가득 찬, 그리고 그 빛의 움직임처럼 살아 숨 쉬는 보따리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작가의 숨소리와 허밍소리는 그 공간을 거대한 신체로 체험하게 한다. 전 세계 다양한 건물들을 옮겨 다니며 지속되고 있는 이런 작업과 함께 보따리는 점차 비 물질화되고 개념화되어 왔는데, 근작 <마음의 기하학>(2016)은 그것이 심리적인 차원으로 발현된 예다. 관람자들은 점토로 각자의 형상을 만들면서 마음의 보따리를 싸고 푸는 과정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넘나들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를 관통하고 2000년대로 이어진 김수자 작업은 그 자체가 신체적, 심리적 유목의 도정이었다. 평면도 입체도, 비움도 채움도 되는 보따리의 유연함이 그의 작업, 그 유목을 가능하게 한 것이며, 이를 통해 그의 작업은 인간 사회를 넘어 자연과 우주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작업의 내용 뿐 아니라 작업방식, 나아가 전시와 사회활동에 있어서도 작가의 유목은 지속되었다. 자신의 뉴욕 행을 일종의 “문화적 망명”[6]으로 본 작가 말대로, 그는 단지 물리적으로 뿐 아니라 심리, 사회적으로도 거처를 옮겨 다닌 것이다. 1980년대 중·후반에는 일본과 대만, 1990년대 초·중엽에는 뉴욕, 이후 전 세계 여러 도시들로 이어진 그의 여정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언제쯤 바느질 뜸을 따라 걸어가는 이 길이 끝날 것인가”7라는 작가 자신의 질문은 진행 중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작업의 여정에서 작가 이미지는 거의 변하지 않는 모습, 즉 긴 검은 머리를 묶거나 땋은 뒷모습으로 기호화되어 왔다. 작업의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작가 자신은 전형적인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고수해왔는데, 이런 이미지는 그의 작업을 페미니즘과 관련짓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김수자 스스로도, 페미니스트 작가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여성적 정체성을 부정하지는 않으며 작업을 통해서도 이를 일관되게 추구해왔다. 여성적 일상, 특히 어머니와의 모성적 유대관계를 통해서 발견한 소재와 기법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이른바 ‘여성적 감수성(feminine sensibility)'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는 점에서 페미니즘 중에서도 본질주의(essentialism)와 닿아 있다. 자신의 재료인 천을 “감싸고 덮고 보호하는 것” 즉 “여성의 자궁과 같은 이미지”8로 본 작가의 입장이 이를 확인하게 한다.
1990년대 미술에서 김수자 작업이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재료와 기법을 통해 여성적 일상을 미술의 영역으로 수용하고 설치와 퍼포먼스, 비디오 등 새로운 방법과 매체 실험을 시도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몸과 마음 같은 생리, 심리의 세계와 기하학적 구조라는 수학 혹은 과학의 원리를 융합하려는 의도가 초기 작업에서부터 일관되게 내재되어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듯이, 그의 작업의 진정한 의미는 서구 근대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넘어선 또 다른 미학을 제안한 점에 있다. 이는 서구 근대를 추동한 남성 미학, 그 배제의 논리에 대해 포용의 원리라는 대안을 제안하는 점에서 여성 미학으로 이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보따리는 이러한 여성 미학의 출발점이자 그 도상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또한 모든 것을 떠나보내는 보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진해 온 모더니스트 영웅 신화, 그 남성적인 직진의 논리를 비껴간다. 한국성의 기호이자 여성성의 기호인 보따리는 다양한 문화들과의 접점과 함께 차이를 또한 만들어내면서 로컬 문화를 글로벌한 지평에 스며들게 하였다. 로컬 문화를 통한 글로벌한 아우름의 표상인 그것은 정복이 아닌 포용을 지향하는, 그런 의미에서 여성적인 글로벌리즘의 도상이다.
몸과 천이 하나가 된 또 다른 보따리 <만남-바라보며 바느질하기>(1998, 2011)에서 나는 천에서 혼령을 불러내는 영매와 같은 예술가, 김수자를 본다. 그는 보따리 작업을 시작한 이래 아우름과 떠남을 반복하면서 인간과 인간, 문화와 자연의 교응을 중개해 왔다. ‘아우르고 떠나기’ 이것이 김수자의 노마디즘, 이를 통한 글로벌리즘의 진정한 정체다.
[Note]
[1] 김수자, 「작가노트」, 『김수자』(전시도록), 갤러리 현대, 1988, p.9.
[2] 박영택, 김수자(대담), 「김수자: 평면에서 입체로의 접근, 보따리」, 『공간』, 1996년 6월, p. 116.
[3] 김수자, 「천과 삶」, Sewing into Walking(전시리플릿), 갤러리 서미, 1994, n.p.
[4] 황인, 김수자(대담), “Sewing into Walking: Cloth, Video, Sound Installaion by Kim Soo-Ja”, 『공간』, 1995년 1월, p. 38.
[5] 김수자의 편지(2000. 2. 15): 태현선, 「김수자: 세상을 엮는 바늘」, 『김수자: 세상을 엮는 바늘』(전시도록), 로댕갤러리, 2000, p.13.
[6] 후 한루, 김수자(대담), 「새로운 빛을 밝히다」, 『김수자: 마음의 기하학』(전시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16, p. 24.
2020
글로벌 아티스트 김수자(金守子). 그가 매머드 전시를 열고 있다. 프랑스의 중세도시 푸아티에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 형식의 제1회〈트라베르세/김수자 (Traversées/Kimsooja)〉(2019. 10. 12~ 2020. 1. 19). 전시제목인 ‘트라베르세’는 ‘통과(crossing)’ 또는 ‘가로지르기 (traverse)’라는 뜻이다. 전쟁 이주 망명 등 오늘의 ‘글로벌 위기’를 반영하는 주제다. 여기에, 유목(nomad)의 표상인 ‘보따리 작가’ 김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는 사운드를 아우르는 장소특정적 설치와 퍼포먼스 오브제 비디오 필름 라이트설치 등 총 15점의 대형 작품을 발표했다. 또 주제에 부합하는 글로벌 작가를 초대하는 큐레이터 역할까지 맡았다. 실로 김수자 예술의 빛나는 무대가 아닐 수 없다. 김수자와 초대작가 14명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13개의 역사적인 기념 건축에 작품을 선보였다. 이 전시에 주목해 작가와 인터뷰를 가졌다. 내용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트라베르세/김수자〉의 전시 개념과 공간 매핑,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는 개별 작품을 소개했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참여작가 간의 조형적 연계성을 리뷰했다. 또 하나는, 김수자의 ‘관객-주체’ 퍼포먼스, 무지갯빛 스펙트럼, 실재와 가상이 혼재하는 거울 설치 등 근자의 작품에 주목해 그 조형론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바느질과 보따리 같은 모국주의 개인사에서 출발해 인간의 존재론 같은 보편적 예술 성취로 이어지는 작품 여정을 조망한다.
김복기
작년 연말에 뉴욕 스튜디오를 철수했다. 한국으로 캠프를 이동하는 중이다. 작가로서 큰 전기를 맞고 있다. 작가 이전에 자연인으로 본다면,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나 할까, 고향으로의 회귀의식이 발동한 것인가. 그 소회를 듣고 싶다.
김수자
수구초심으로 한국으로 돌아온 건 아니고, 그저 한 자연인으로서 나를 필요로 하는 가족의 일원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 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정확하게 말하면 ‘돌아왔다’기보다는 ‘와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에 있다 해도 과연 얼마나 한국에서 산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선 거의 섬에 살듯이 지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 기간 뉴욕에서 화상이나 컬렉터, 미술관의 아무런 지원 없이 주로 유럽의 지원에 의존해 작업해 왔다. 2000년대 이후 점점 상업성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뉴욕이 더 이상 나에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떠날 계획을 이미 갖고 있었다.(사실 인텔렉추얼한 측면에서 뉴욕을 아끼는 부분이 아직도 남아 있다. 뉴욕은 역시 내가 그 속에서 죽고 싶은 마지막 도시이다.) 1년 전만 해도 파리를 유럽의 베이스로 삼아 그곳으로 스튜디오를 옮기려 했다. 이번에 근 20년간 거주한(그래 봐야 실제로는 10년도 채 못 살았지만) 뉴욕의 이스트빌리지 아파트 짐을 모두 컨테이너에 실어 프랑스의 푸아티에로 운송하는 새로운 작업 〈보따리 1999-2019〉은 애초 파리에 정착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 이전에 보다 경제적인 도시 베를린으로 옮겨 보려고 6개월간 오가며 지내 봤지만, 정붙이기 어려웠다. 여러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역시 나는 파리가 수월하다. 프랑스 정부나 자치단체, 그리고 미술관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오고 있다.
김복기
이번 인터뷰에서 다룰 중점 사안은 현재 프랑스 중부 도시 푸아티에 전역에서 열리고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 〈트라베르세/김수자(Traversées/Kimsooja)〉다. 우선 ‘트라베르세(traversées)’는 ‘통과(crossing)’ 또는 ‘가로지르기(traverse)’라는 뜻이다. 이게 바로 전시 주제인데, 무엇보다 이 전시의 시스템이 아주 특별하다. 여느 국제전과 달리 한 명의 예술가를 선정해, 그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까지 도시 전역에 전시하는 방식이다. 그 첫 번째 축제의 〈트라베르세〉를 이끄는 주인공으로 김수자가 선정됐다. 그러니까 김수자는 작품 발표뿐만 아니라 큐레이터 역할까지 맡았다. 주연배우와 감독을 겸하는 일이니, 작가로서 이보다 더 큰 영광이 또 있을까 싶다. 푸아티에 예술축제의 설립 배경, 미션과 비전은 무엇인가?
김수자
푸아티에는 파리에서 보르도 방향인 남서쪽으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인구 9만 5,000명 정도의 작은 중세도시다.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한때 프랑스의 수도이기도 했고, 푸아티에 전투로 유명했던 아랍권과의 전쟁 등을 겪으며 끊임없이 외부의 도전을 받았다. 그러니까 실제로 과거에 수많은 주변국가와 그 문화의 트라베르세가 일어났던 곳이다. 또 이 푸아티에 전투로 인해 ‘유럽’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탄생지이기도 하며, 종교와 교육도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애초에 40여 명이 참여하는 비엔날레로 기획한 이 프로젝트의 전체 제목이 〈트라베르세〉이고, 초대작가를 한 명으로 압축하여 트라베르세의 의미를 오래 탐구해 온 작가에게 전시 콘텐츠를 전권위임(Carte Blanche)함으로써, 그 첫 에디션의 제목을 〈트라베르세/김수자〉로 시작한 것은 이 비엔날레의 독특한 성격을 대변한다. 특히 도시의 진보적인 정치 성향과 현 시장의 이민과 난민 수용의 포용정책이 프로젝트의 추진 동력이 됐다. 무엇보다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삼아 한 작가의 작업으로 매핑(mapping)할 뿐 아니라, 작가와 이번 전시에 연계될 수 있는 다른 작가의 작업을 초대할 수 있는 권한과 지원을 해 준 것은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엔날레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트라베르세/김수자〉는 푸아티에 시장인 알랭 클래이(Alain Claeys)가 푸아티에 출신이며 전 루브르미술관 관장이자 2015년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행사를 총지휘한 앙리 루아레트(Henri Loyrette)의 제의를 받아들임으로써 만들어졌다. 전 퐁피두센터-메스 디렉터이자 현재 팔레드도쿄 관장인 엠마 라비뉴(Emma Lavigne)와 독립큐레이터 엠마누엘 드 몽가종(Emmanuelle de Montgazon)을 공동 예술감독에 임명함으로써 그 첫발을 내딛게 됐다. 시장은 이 행사를 통해 푸아티에를 국제사회와 국제미술의 지형 속에 자리매김한다는 취지와 함께 최근 유럽의 가장 첨예한 이슈인 전쟁, 난민, 이주 문제를 전적으로 포용하는 입장을 표명하고자 했다. 또한 푸아티에에는 매우 흥미로운 콩포르모데른(Confort Moderne)아트센터가 있지만 아직 현대미술관이 없다. 중세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도시의 중심에 자리잡은 상징적인 건물이며 최근까지 법원으로 사용된 아키텐 공국의 궁전(Palais des ducs d’Aquitaine)을 새로운 현대미술 공간으로 전환해 시민에게 선사한다는 의미도 크다.
김복기
‘트라베르세’, 이른바 ‘경계 넘기’ ‘가로지르기’는 익히 잘 알려져 있듯이, 그동안 김수자가 견지해 온 작품 주제다. 1992∼93년 뉴욕 PS1창작스튜디오 작업실에서 태동된 〈보따리〉 시리즈 이후 김수자의 작품은 유목(nomad)의 표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푸아티에 예술 축제에서는 이 트라베르세의 개념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품에 실현되었는가. 〈보따리〉가 푸아티에라는 사이트에서 어떻게 새롭게 구현되었는가. 전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김수자
우선, 두 명의 공동디렉터는 유서 깊은 중세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로 삼아 작업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나를 믿고 지원하며 〈트라베르세/김수자〉의 길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 나로서는 큰 영광이었다. 또한 푸아티에라는 도시의 ‘열쇠’를 한 작가에게 넘겨줄 수 있는 시장과 디렉터들의 용기와 실험정신이 없었다면, 이런 대규모 비엔날레 형식의 개인/공공 프로젝트가 이처럼 새롭게 탄생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드림 큐레이터(Dream Curator)팀’이었다.(Curator는 ‘신경쓰다’ ‘돌봐 주다’를 뜻하는 라틴어 ‘curare’에서 나왔다.) 우선 트라베르세라는 타이틀을 받았을 때, 국제적인 지형도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아이디어는 그동안 내가 오래 계획해 온 유럽으로의 베이스 이동, 특히 뉴욕에서 파리로의 이주를 실행할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삶 자체를 옮기는 작업인 〈보따리 1999-2019〉는 지난 20년간 살아온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아파트에 쌓인 나의 일상생활의 모든 짐을 오방색 컨테이너에 싣고 푸아티에로 옮겨 피난처로서의 상징성을 지닌 성당(Cathedrale de Saint-Pierre) 앞에 내려놓는 여정이었다. 반면 푸아티에 도시 내의 지형도는 팔레(Palais des ducs d’Aquitaine)를 중심축으로 십자를 그으며 구도시와 맞닿는다는 생각으로 팔레로부터 매핑을 했다. 그래서 팔레의 중심에 〈마음의 기하학(Archive of Mind)>을 설치해 시민이 함께 모이는 중심축으로 상정했고, 구도심을 관통하는 오래 닫힌 팔레의 문을 열어 중세부터 중심 길이었던 카테드랄 길(rue de Cathedrale)을 통과해 성십자미술관(Musée Saint-Croix)과 콩포르모데른 아트센터에 이르는 긴 산책로의 좌우측 군데군데에 산재한 성당과 교육시설, 회랑 등 도시의 역사적 건물들을 문맥에 따라 경험하도록 계획했다. 각 사이트가 전체와 서로 연계를 가지면서도 각기 하나의 시각적 의미론적 중심으로서 내러티브를 갖도록 했다.
김복기
《e-flux》에 실린 컨테이너 〈보따리 1999-2019〉가 인상적이다. 한국의 보따리가 컨테이너로 치환된 작품이다. 한마디로 보따리의 변주인데, 이 작품의 함의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주 이동 유목의 의미를 담고 있는 보따리라는 이름을 유지하면서도 실제 보따리 형상은 컨테이너로 바뀌었다. 보따리의 ‘문화 번역’이라고 해야 할까. 컨테이너 표면은 5가지 원소(목 화 토 금 수)를 표상하는 한국의 전통 오방색으로 색띠를 그려 넣었다. 보따리의 원천을 유지하면서도 실제 작가 자신의 이주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래서 리얼리티가 강한 작품으로 보였다. 사실 2016년부터 〈연역적 오브제〉라는 입체작품을 발표했는데, 이 역시 색동천의 변주가 아닌가. 강철을 용접한 난형(卵形)의 형태에 기본 방향(동 남 중앙 서 북)과 전통 오방색으로 아주 현대적으로 입체화한 작품으로 보인다.
김수자
〈보따리 1999-2019〉는 지난 8월 말 뉴욕의 짐을 컨테이너에 실어 푸아티에로 보내면서 말 그대로대서양을 횡단해 설치한 작품이다.
김복기
큐레이터 자격으로 일본의 타다시 가와마타(Tadashi Kawamata), 인도의 수보드 굽타(Subodh Gupta)를 초대했다. 이 작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고,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 콩고의 새미 발로지(Sammy Baloji)도 참가했다. 그 외 초대작가와 김수자 작품과의 개연성이랄까, 이번 전시 프로젝트와의 관련성에서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할 것 같다.
김수자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웠고 영감을 준 요소는 내가 이번 테마와 연계되는, 혹은 나의 작업과 연계되는 다른 동료작가를 초대해, 내 작업과의 연계성을 공유하며 〈트라베르세〉의 의미를 심화하고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타다시 가와마타의 작업을 남성적 직조 행위로 본다. 그의 작업은 내가 2010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는 〈실의 궤적(Thread Routes)〉 16mm 필름 프로젝트를 맨 처음 발상할 당시인 2002년, 벨기에의 브루주(Brugge)에서 보빈 레이스(Bobbin Lace)를 짜고 있는 한 여성을 보면서 바로 병치하게 된 남성적 직조 행위로서의 건축 행위를 연상시킨다. 텍스타일에서 여성적 직조 행위와 건축에서 남성적 직조 행위는 그동안 내가 〈실의 궤적〉 필름 속에 병치해 왔다. 이러한 건축적 요소를 이번에 팔레의 입구 기둥에 설치한 가와마타의 〈둥지〉를 통해 물리적으로 잘 병치할 수 있었다.
김복기
가와마타는 기존의 건축에 기생하는 나무로 된 집 혹은 둥지 같은 형상의 설치작품을 통해 구축과 해체의 모호한 풍경을 연출한다. 시작도 끝도 아닌, 일종의 이항대립의 중간지대와 같은 차원은 마치 김수자의 〈보따리〉가 이제 막 떠나려는 상황과 이제 막 도착한 상황, 그 두 상황의 사이 혹은 공존과도 통한다.
김수자
공감한다. 관객들이 가와마타의 〈둥지〉를 지나 팔레 내부로 들어가면 중심에 설치된 〈마음의 기하학〉(2019)을 체험할 수 있다. 여기서 보따리와 구(球)로의 이행을 보다 더 구체적이고 물리적으로, 또 심리학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지적한 대로 형식적으로 하나의 가능태로서의 보따리가 형성과 해체의 가능성을 공유하고 있는 동시에 이 전시가 강조하는 중요한 요소인 ‘환대와 보호(Hospitality and Protection)’라는 측면, 즉 미셀 푸코가 말하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특수한 장소성을 가지면서도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하는 환대와 환영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첫 입구에 가와마타의 작업을 선보였다. 전시의 중심축이 되는 18m 길이의 타원형 테이블 위에서의 퍼포먼스 〈마음의 기하학〉은 팔레 내의 다른 두 설치, 과거 재판관들의 개인 사무실 공간이었던 투르 모베르종(Tour Maubergeon)의 〈숨쉬기(To Breathe)〉 거울과 숨소리 설치에서 다시 아치형 천장과 그 구조의 반사로 인해 조성된 타원형의 가상적 공간을 만든다.
김복기
김수자 예술에서 퍼포먼스의 중요성을 빼놓을 없다. 흔히 ‘작가-주체’의 퍼포먼스로는 〈바늘 여인〉이나 〈빨래하는 여인〉처럼 작가 스스로를 공간의 축이자 시간의 축으로 설정하는 작품이 있다. 그런데 근자의 〈마음의 기하학〉에서는 ‘관객-주체’의 퍼포먼스로 이동했다. 〈마음의 기하학〉은 많은 사람이 작은 찰흙 구(球)를 빚어 텅 빈 거대한 타원형 테이블을 채우는 작업이다. 단순히 관객 참여형이라고만 평가하기에는 작품의 의미가 대단히 깊고 넓다. 작품의 주제가우주라든가 우리 인간의 존재론과 같은 문제로 이동했다. 각기 다른 사람이 만들어 낸 각기 다른 형태의 찰흙 구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소우주이고, 그 소우주가 모여 은하수와 같은 대우주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우주의 소리를 연상시키는 사운드 〈구의 궤적〉이 조합된다. ‘오디오 퍼포먼스’라고 해야 할까. 결국 촉각 시각 청각이 총동원되는 작품이다.
김수자
팔레에는 특별히 이번에 푸아티에시에서 커미션하여 모로코에서 새로 제작한 아프리카 챕터인 〈실의 궤적 Vl〉과 함께 전체 프로젝트의 하나의 센터로서 각기 다른 형식(설치 퍼포먼스 사운드 필름 라이트)으로 전체 프로젝트의 스펙트럼을 대변하게끔 설치하였다. 또한 가와마타의 〈터널〉은 오랜 세월 막혀 있던 구도시로 통로를 열어 주는 매개 작업이었다. 이렇게 다다른 카테드랄 길은 2012년 런던올림픽 때 참가국으로만 제작된 〈숨쉬기: 깃발〉 이후 국가를 상징하는 모든 존재하는 국기를(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차별 없이 알파벨 순서로, 여기서 남한과 북한의 국기가 오브랩된다) 사용해 재편집한 비디오 작업에서 추출한 이미지들로 초국가적 깃발을 제작해, 카테드랄 길을 따라 컨테이너 보따리가 있는 생피에르 성당까지 설치되어 뮤지엄 쪽으로 안내하게 된다. 여기서 또 시리아 난민의 도착 장소 중 하나이고 근년에 가장 회자되었던 그리스의 레스보아 섬에서 발견한 난민의 구명조끼로 제작한, 그리스 작가이자 건축가 아킬레아스 수라스(Achilleas Souras)의 돔 형식의 설치 〈SOS(Save our Souls)〉를 만나게 된다. 바다 내음과 소금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이 작업은 성탄절 전날 밤 설치 일부가 불에 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 시점의 유럽과 프랑스의 여러 정치 종교 사회적 문제를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사건은 불안정한 시대를 대변하는 이 작업의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사건이 됐다.
김복기
구명조끼를 작품에 끌어들이는 다른 작가도 있지만, 아킬레아스 수라스의 경우 건축가여서인지 단순히 구명조끼를 난민의 상징으로 외형적으로 돋보이게 하기보다는 대단히 구축적인 조형이 돋보인다. 가와마타의 작품 〈둥지〉와 〈터널〉과도 구조적으로 잘 어울린다.
김수자
19세의 젊은 그리스 건축가 아킬레아스 수라스의 작업 역시 이민과 난민의 문제, 또 환대의 문제를 제기한다. 나는 그의 작업과 〈보따리〉의 의미와 형식적 유형을 여기서 또 한번 연계하면서 내용적 유사성을 제시했다. 내가 초대한 작가들에게서는 여타의 유사한 재료를 쓰거나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의문은 들지 않았다. 그 의미의 진정성과 형식과 내용의 일관성 때문이다. 일단 뮤지엄 광장에 들어서면 리크리트 티라바냐(Rirkrit Travanija)의 수직수평 구조로 대나무를 사용한 건축적 미로와 중심에 위치한 찻집 설치와 다도(茶道)를 아우른 작업 〈무제(the infinite dimension of smallness)〉(2018) 역시 그가 오래 유지해 온 헤테로토피아적 공간 제시와 환대를 대변하는 나눔의 퍼포먼스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다.
김복기
이번 프로젝트에 입체 설치작품 이외에 퍼포먼스의 비중도 높은 것 같다. 리밍웨이(Lee Mingwei)의 〈수선 프로젝트〉는 한눈에 봐도 김수자의 작품과 연결된다. 바느질, 이른바 직조라는 개념인데, 남성작가의 바느질이 흥미롭다.
김수자'
미술관 내부에 설치한 리밍웨이의 〈수선 프로젝트〉 역시 비폭력주의와 환대 내지는 관용적 태도와 맥을 같이 하는 남성의 바느질 작업이다. 그의 작업은 전자의 남성적 직조라기보다는 여성성에 기초한 남성의 직조로 보이는 러빙 케어(Loving Care)의 의미를 늘 추구하고 있다. 그의 예술적 접근 역시 비폭력주의와 나눔, 포용, 그리고 상처 치유와 통합과 하모니를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내 작업과 맥락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 그러한 일련의 접근은 미술관 2층에 설치된 〈실의 궤적 l, ll, lll〉에서 바느질, 마름질, 염색, 레이스 뜨기, 직조, 쿠킹, 노마딕 생활상과 각 챕터의 지역성에 기초한 역사적 건축물과 자연과 현지의 수공예적 감수성과 미학의 병치를 통해 종합적으로 통합되어 선보인다. 콩고 출신의 작가 세미 발로지 역시 구리 탄피를 녹여 십자가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과 그 십자가를 목에 매단 교회의 소년합창단을 통해 과거 콩고의 식민지배의 역사와 문화를 성스러운 안무와도 같은 필름과 설치작업 〈Tales of the Copper Cross Garden〉(2017)에 담아냈다. 폭력을 치유로 전환시키고 있는 이 작가의 작업 역시 나의 감수성과 방향성과 결을 함께한다고 생각된다.
김복기
식기를 소재로 삼아 다양한 입체 설치작품을 펼치는 인도작가 수보드 굽타는 이번에 요리 퍼포먼스로 각광을 받았다.
김수자
굽타는 푸아티에 건축센터(Maison d’Architecture)에서 오래된 부엌의 소스팬과 냄비 등을 이용하여 하나의 투과성 있는 독특한 집을 만들고 그 안을 부엌 겸 식당으로 꾸며 인도음식 퍼포먼스 〈요리 세계〉(2017)를 펼쳤다. 작가가 관객과 대화하며 본인의 레시피를 가미한 인도의 거리음식을 나누는 퍼포먼스는 문화적 건축적 미학적이었고, 이식된 공동체를 오감과 함께 느낄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이었다. 나 역시 2018년 중국의 인촨비엔날레(Yinchuan Biennale)에서 시도한 장소특정적인 죽(porridge) 프로젝트를 푸아티에 현지 조건에 맞추어 실행하고 싶었지만, 10여 개의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겨를이 없어 포기했다. 굽타와 한 공간의 블랙박스에 나는 뭄바이의 슬럼가와 공공빨래터 도비갓(dhobighat), 또 인산인해를 이루며 기차로 출퇴근하는 모습을 담은 〈뭄바이: 빨래터〉(2007)를 병치했다. 인도의 문화와 사회적 현주소를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 주어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온 프로젝트였다. 사실 이 작업은 나의 이불보 설치작업의 연장으로 보면 된다. 한편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세례성당(Baptistère Saint-Jean)에서는 한국의 국악인 정마리가 정가를 불렀다. 지고한 순수미와 독특한 창법으로 〈영속하는 기쁨의 노래〉를 60분간 쉼 없이 노래하며 관객 모두에게 명상과 초월적 경험을 선사했다. 끊일 둣 이어지는 그녀의 숨막힐 듯 가녀린 목소리의 풀림은 마치 직조행위를 비물질화하여 바라보는 것 같은 연상작용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녀의 소리를 이 프로젝트의 미학적 정점에 놓고 싶었다.
김복기
이번에도 무지갯빛 효과를 자아내는 빛 작업을 선보였다. 김수자가 빛을 작품에 끌어들인 것은 2006년 스페인의 마드리드 크리스털 궁전의 설치작품 〈숨쉬기–거울여인〉(2016)에 이어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였다. 유리창에 회절격자 필름을 부착해 빛이 스며들면 무지갯빛 효과를 낼 수 있다. 전시공간은 마치 우주와 같은 스펙터클한 환경으로 바뀐다. 김수자가 비물질을 작품 재료로 끌어들인 것은 획기적인 변화다. 베니스에서는 빛이 스며드는 공간과는 대조적으로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적막한 공간을 조성하기도 했다. 외부 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빛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빛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빛은 김수자 예술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
김수자
이 답변을 위해서는 색의 스펙트럼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오방색과 십자, 보따리에 대한 내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다. 근 40년 가까이 내가 끊임없이 실험해 온 지속적인 문제 중 하나는 화가로서의 시각을 견지하며 질문해 온 캔버스의 표면(surface), 나아가 경계(border), 캔버스를 지탱하고 있는 십자구조이다. 이 십자구조는 1980년 홍익대 대학원 졸업논문으로 발표했던 〈조형기호의 유전성–십자형 기호를 중심으로〉에서도 다루었다. 나는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 1875∼961)의 만다라에서 보인 마음의 원형(Archive of Mind)에서 그 구조적 심리적 근원을 찾았다. 십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구조적으로도 많은 작가가 거치지 않을 수 없는 터널과도 같은 것이다. 색의 기본적인 스펙트럼으로서의 오방색은 그 방향성과 계절, 맛과 물질의 성질을 포함하는 우주의 스펙트럼이라고 해야 옳다. 이보다 더 풍부한 의미를 내포하는 색의 정의가 있을까.
김복기
예나 지금이나 화가에게 색채에 대한 물음은 결국 그 시작과 끝이 빛의 세계로 귀결된다. 무지갯빛의 스펙트럼은 결과는 비물질이지만, 실상 회절격자의 물질이 매개가 된 것이다. 김수자가 보여 준 물질과 비물질이라는 이중구조에의 관심에서 본다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자
그렇다. 기본적으로 바로 이 오방색(빛에 내재하는)과 십자구조인 회절격자 필름의 만남이 내가 사용하는 무지개 스펙트럼의 핵심이다. 이 필름은 1cm에 거의 수천 개의 수직수평 스크래치로 긁혀져 특수 제작된 것이다. 거의 나노스케일이어서 눈에 감지되지 않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투명한 천이다. 나의 작업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필름이 유리창에 부착되어 외부의 빛을 통과할 때 유리창 면과 하나가 된 필름 표면은 프리즘처럼 빛을 굴절시킨다. 결국 유리창은 하나의 빛의 타블로인 셈이다. 날씨 변화에 따라 빛을 호흡하고 변주하면서 벽과 바닥, 또는 천장과 사람의 신체에 빛의 페인팅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때 바닥에 설치된 거울은 또 한번의 반사굴절로 내부 공간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인다. 이 필름이 부착된 표면을 처음 사용할 때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구조의 궁전 건축물 자체를 아무런 오브제도 설치하지 않고 하나의 ‘보따리로 싼다’는 개념이었다. 여기에서 바닥의 거울도 보따리 천에 해당된다. 허의 공간을 건축 표면까지 밀어낸 것, 즉 공(vide)의 공간과 나의 숨소리(삶과 죽음의 경계로서의)가 바로 보따리의 구조물이 됐던 것이다. 관람객들은 기존 보따리의 상징적인 인물인 헌옷 대신 살아 있는 퍼포머로 그 안에 싸여지는 것이다. 또 바닥의 거울설치를 통해 그 건축물마저도 이중성을 갖게 되며 하나의 완전성인 구(球)를 지향하는 것이다.
김복기
반사의 매개체인 거울은 실제와 가상이 혼재하는 확장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투과성을 띠는 빛과 함께 거울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김수자
거울을 처음 사용한 것은 하랄트 제만이 감독을 맡았던 1999년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의 본전시 아페르투토(d’Aperttuto)에서였다. 그때의 거울은 코소보 난민에게 헌정한 〈아페르투토, 혹은 보따리트럭(d’Aperttuto, or Bottari Truck in Exile)〉(1999)을 위한 하나의 가상의 길을 여는 작업이자 동시에 아르세날레의 전체 공간을 거울로 싸서 보여 주는 보따리 작업이었다. 거울의 운용은 그때그때 사이트가 요구하는 질문에 응답하며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왔다.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1979년에 지금은 없어진 그로리치화랑에서 동료 이윤동 작가와 〈호흡전〉이라는 2인전을 열었다. 그때 창호지를 제거한 한국 가옥의 투명한 격자구조의 문짝을 들고 서서 홍익대 뒷쪽 와우산을 배경으로 일련의 퍼포먼스 사진(흥미롭게도 그때 입었던 스커트가 무지개 색의 사선으로 된 줄무늬 스커트였다)을 흑백 네거티브로 프린트한 투명필름을 빨랫줄에 걸어 한 공간에 설치했다. 또 검은 카펫이 깔려 있던 갤러리 바닥에는 지름 10~15cm 정도의 두 개의 길고 가는 나무둥지를 거의 40~50cm 간격으로 잘라 조금씩 어긋나게 드로잉을 하고, 그 어긋난 나이테 사이에 30cm 정방형의 투명 플렉시글라스를 끼워 넣었던 설치작업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바늘땀이었던 것 같다. 수직수평의 개념도 함축되어 있었고. 내가 회화의 평면성을 질문하던 그때부터 투명성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필름의 투명성이나 투과성, 나 자신과 세상을 비추는 거울의 상징적 투명성과 대상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푸아티에의 거울 작업처럼 있는 그대로의 특정 공간의 바닥에 거울을 설치해 공간의 구조를 거울이라는 경계를 통해 재해석하기도 하고, 관객을 의도되지 않은 자율적인 퍼포머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10폭 거울 병풍을 새로운 회화 형식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거울은 아직도 나의 조형적 질문의 대상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개념이 발견될 것만 같은 거울을 기회 있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실험할 계획이다.
김복기
‘경계 넘기’ ‘가로지르기’는 1990년대 광주비엔날레의 ‘경계를 넘어서’ 같은 주제나,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보니토 올리버가 내세웠던 ‘유목성’ 같은 주제를 떠올린다.김수자의 〈보따리〉가 이 시기에 태동된 것은 참으로 절묘하다. 이 시기의 경계나 노마드는 글로벌리제이션으로 쏠려 있다. 동서 냉전 이데올로기의 해체 이후 복합문화주의의 도래, 비서구권 미술의 약진 등 여러 환경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김수자
보따리가 1992년에 탄생했다고 할 때, 노마디즘이나 글로벌리즘의 이슈가 미술과 사회에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단지 내 작업에서의 유목적 특성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에 기인하며, 그 당시 글로벌리즘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떤 ‘이즘(ism)’ 등의 프레임워크에는 현재까지도 별 관심이 없다. 보따리는 한순간 직관적으로 발견된 것이지만, 하나의 전체(totality)로서 그 안에 논리적 형식적 내용과 삶의 본질적인 철학과 정서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지속성을 가지고 진화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보는 이의 관점이 낭만적일 때 작업도 더 낭만적으로 보일 것이고, 그것이 더 이상 낭만적일 수 없는 시점에서의 감상은 보다 리얼해 보일 것이다.
김복기
돌이켜보면, 1992년 〈보따리〉가 나오면서 김수자의 작가적 행보가 급속하게 분주해졌다. ‘물꼬가 터졌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해야 하리라.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호랑이 꼬리〉, 1995년 광주비엔날레, 1996년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의 한일교류전 〈1990년대 한국미술 이야기〉 등에서 ‘보따리의 변주’가 이어졌다. 보따리야말로 천변만화의 가변성을 지닌 입체 구조다. 묶기/풀기, 닫음/열림, 구축/해체, 수직성/수평성, 3차원/2차원, 긴장/이완, 수축/팽창, 채움/비움, 정지/이동 등의 조형 체계와 사유의 임의성을 지니고 있다. 이불보를 바닥에 가지런히 깔거나, 테이블보로 설치하거나, 빨랫줄에 널듯이 걸거나…. 〈보따리〉는 이 다양한 얼굴이 무엇보다 매력이다. 1997년에 〈떠도는 도시들-보따리 트럭 2727km〉를 제작하고, 그 이후 1999년부터 〈바늘 여인〉〈빨래하는 여인〉 시리즈가 이어졌다. 〈바늘 여인〉은 서영희가 지적했듯이 “자신이 바늘(수직축)이 되어 세계의 도시와 인파의 층(수평축)을 거듭 관통하며 시공간을 넘어 기억과 체험을 하나로 연결한 작업이다.” 각 대륙의 8개 도시를 방문하면서 〈바늘 여인〉 시리즈를 이어 갔다. 긴 머리를 동여맨 김수자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이 뒷모습은 천상 바늘로 보인다. 1999년 김수자는 뉴욕으로 삶의 무대를 옮겼다. 작품도 작가도 이동, 이주가 본격화되었다.
김수자
때때로 글로벌리즘의 이슈로 읽히기도 했던 〈바늘 여인(1999∼2001)의 첫 번째 시리즈는 마침 9.11테러가 일어난 바로 그날도 뉴욕 MoMA PS1 개인전에서 전시 중이었다. 그 이후 이라크전쟁 발발과 함께 전 세계가 불신과 증오와 혼란에 빠지고 이슬람권과 기독교권과의 대립이 심화된 상황은 나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시작한 첫 작업이 지금은 사라진 뉴욕의 전설적인 갤러리 더프로젝트(The Project)에서 처음 선보였던 〈Mandala: Zone of Zero〉(2004)였다. 이 작품에는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고, 동시에 세계의 평화와 화합을 암시하는 작업으로 부시(Bush)정책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담았다. 키치한 미국의 겜블링 오브제 상점에서 착상한 주크박스 스피커 3개에 티벳과 그레고리언, 그리고 애초엔 이슬람의 성가들이 각각 푸른 벽의 공간에 섞여 다소 혼란스러운 불협화음이 나도록 병치시킨 설치였다. 하지만 실상 이 불협한 세계의 종교와 이념을 모아 들어보면, 매우 공평하고 조화롭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는가. 거의 베이스와 바리톤, 그리고 테너의 성악적 체계가 공존하며 나름의 음색으로 대화하듯이 조화로운 코러스를 이룬다. 이번 〈트라베르세/김수자〉에서도 싱글 주크박스에 3개의 성가가 혼합되어 들리도록 제작한 싱글채널 에디션을 콩포르모데른(Confort Moderne) 아트센터에 선보였다. 현재 로마의 21세기미술관 MAXXI에서도 다른 에디션이 선보이고 있고, 시애틀아시아미술관(Seattle Asian Art Museum)에서도 곧 초기 에디션이 동시 다발적으로 선보이게 된다. 이제야 이 작업이 제도권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복기
T. J. 디모스 같은 이론가는 1980, 90년대의 진행되었던 글로벌리제이션 속의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은 대단히 로맨틱한 ‘노마디즘’이었다고 간주하는 한편, 2000년대에 와서는 글로벌리제이션에 의해 일어났던 다양한 갈등을 되묻는 물음으로 패러다임이 변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9.11이후의 상황을 ‘글로벌 위기(Crisis Globalization)’이라 부르고, 그것이 내포하는 여러 모순과 아티스트들의 실천 관계를 묻는다. 그것은 오늘의 세계 상황에 대한 미술의 대응이라 요약할 수 있다. 국경을 뛰어넘는 자본주의 경제의 끊임없는 유동,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태어난 글로벌 사회는 냉전 종식과 함께 세계 질서의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었지만, 그 꿈은 결과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이 와중에 진행되었던 경제 불균형의 확대, 난민의 증가, 새로운 정치적 대립은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글로벌 아트를 지향해 왔던 아티스트와 큐레이터들의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작금은 글로벌한 규모로 이동하는 삶의 양태 그 자체, 이를테면 망명, 디아스포라, 난민에 개입해 상상력을 갖춘 비판적 도큐멘터리로서의 아트가 전면에 나왔다. 2017년의 카셀도쿠멘타(여기에 김수자의 〈보따리〉가 출품되었다), 2018년 광주와 부산의 비엔날레에서도 크게 보면, ‘글로벌 위기’가 주제였다. 여기서, 좀 거칠게 묻는다. ‘트라베르세’ 혹은 김수자의 작품은 오늘의 세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김수자
T. J. 디모스의 해석에 공감한다.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프로젝트를 위해 〈바늘 여인〉의 두 번째 시리즈를 제작할 때, 나는 첫 번째 시리즈(1999~2001)와 달리 세계의 중심적 대도시가 아니라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충돌이 발생하는 각 대륙의 문제의 도시와 후기식민주의 문제를 안고 있던 도시를 찾아 나섰다. 그럴 필요를 강력하게 느꼈다. 첫 번째 퍼포먼스를 통해 세계가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했다면, 9.11 이후에 폭력과 대립이 만연한 전 세계의 이중삼중의 충돌현상, 그 혼란의 파고를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나는 현 시대에 살며 한 개인사에서 출발해 확장된 인간의 조건들에 천착해 왔다. 세계에 던지는 나의 존재론적 질문들, 혹은 정치사회적 인류학적 질문들은 언제나 비폭력과 평화, 정의와 진실, 사랑과 화해, 즉 휴머니즘과 유토피아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김복기
앞으로 작품 활동 계획은?
김수자
뉴욕 스튜디오의 짐도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새로운 스튜디오도 마련해야 하는데 뜻대로 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늘 불확정적인 삶을 살아서인지 스튜디오가 없어도 걱정되지 않는다. 현재도 뉴욕에서 일하는 어시스턴트가 있고 오랫동안 일해 온 협업자들이 있다. 파리는 파리대로 일을 도와주는 어시스턴트가 있어 모든 프랑스 프로젝트를 현지의 협업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협업자를 찾고 있다. 한국을 기반으로 멀리 여행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그동안 관심을 가졌던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를 펼치고 싶다. 사실 그동안 글로벌하게 협업자들과 일해서 어디를 가더라도 더 이상 거주지가 문제시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한국 관객들과 더 자주 만나고 참여하며, 작업 외에 한국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간 잘 뒤쫓아 가지 못했던 한국미술도 좀 속속들이 보고 싶다. 늘 낯설고 쉽지 않지만 한국에 조금씩 적응해 봐야 할 것 같다.
— Art in Culture, January 2020, pp. 44-67.
2020
While most people were locking down this May, Korean artist Kimsooja was hanging out laundry, in a wood northeast of Malmö, not too far from the border between Sweden and Denmark, on the site of a medieval castle and an organic farm. Between the trees, 100 pristine white bedsheets are pinned to clotheslines and flap, like so many captured cartoon ghosts, in the wind. They give an idea of stains removed, fresh starts, new beginnings, extreme hygiene and slates wiped clean. And, with their embroidered trims (an example of local craftspersonship), of old traditions of manufacture and housework, which to a lot of us might seem anachronistic in a world of urbanised living, rapid manufacture, household convenience and washing machines. White: the mark of mourning, purity and rebirth. Or perhaps all this is to overthink what is simply evidence of an easily comprehensible, quotidian routine.
But overthinking is a pastime in which many of us have had an opportunity to indulge over the past few months. Locked down, changing our routines, afraid of other people, afraid of going out, conjuring profundity out of banality and, egged on by politicians around the world, constantly redefining what we mean by ‘normal’. As if the term was anything other than subjective in the first place.
The sheets make up an artwork titled A Laundry Field (2020). If that ‘A’ before ‘laundry field’ suggests that it is one of many, it is. And in more ways than one. On the one hand, because what we see is nothing new: many people around the world hang out their washing to dry; they’ve been doing it since they had things to wash, and things to hang them on. If you stumbled across the washables here, at Wanås Konst, you’d be forgiven for thinking that it was simply evidence of a routine interrupted by, say, a sudden global health emergency meaning that no one was around to take it in. On the other hand, A Laundry Field is a development of earlier works by Kimsooja, such as Mumbai: A Laundry Field (2007–08), a multi-channel video that uses footage of the city to cast the overcrowded Maharashtra port as a field inhabited by people wearing clothes and people cleaning or drying clothes. Both works play with their ‘matter-of-fact’ nature and are evocative in their banality, their normality and the ways in which they accept – but do not insist on – projection and interpretation on the part of the viewer. You want to see garments as embodying the history and traces of human bodies? Fine. You just see ordinary life? That’s a truth too. It’s a form of equivocation that lies at the heart of much of Kimsooja’s work. And, you might say, at the heart of much good art. ‘I saw art in life and life as art,’ the artist said in a 2008 interview with Susan Sollins. ‘I couldn’t separate one from another. So my gaze to the world and my questions were always related to life itself.’
Kimsooja’s best known works feature bottari, a traditional Korean cloth bundle used to wrap goods in preparation for transport by hand. While such fabrics (bottari are often recycled from colourful bedspreads) have acquired links over time to the gendering of labour, the dynamics of domestic and civic power and the segregation of public and private space, bottari bundles are also evocative of displacement and migration (frequently, and particularly in terms of Korea’s modern history, as a result of war and famine), symbolic of both the home and a lack of one.
Although this interest is born of the artist’s Korean cultural heritage – her own ‘reality’, as she puts it – it developed as a medium to be used in more than just two-dimensional works (the artist trained as a painter) when she was displaced from that heritage, during a 1992 residency at moma ps1 in New York. There, the museum became a space in which to accept the bottari’s cultural baggage and to subvert it. In the resultant installation, Deductive Object, she inserted fragments of Korean bedcovers into gaps in the gallery’s brick wall and made static sculptures out of a series of everyday objects covered in bottari cloth. Over the years the bottari works have developed simultaneously as a reality and an abstraction, similar to the way in which civic and social culture across the world has drifted these past few months.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1997, first shown in the group exhibition Cities on the Move, from which the work’s title derives) was a performance and video documenting the artist’s 11-day journey across South Korea, visiting places with which she had a personal connection, on the back of a truck overloaded with tied bottari bundles; To Breathe: A Mirror Woman (2006) saw her clad Madrid’s Crystal Palace in translucent, light-refracting film in such a way that the building itself and the atmosphere within it became a colourful wrapping, a type of bottari.
At the same time Kimsooja has expanded such interests beyond her own cultural inheritance in works like the ongoing Thread Routes (2010–), a series of videos inspired after witnessing traditional lace- making in Bruges in 2002. Taking the performative elements of local textile cultures as its subject, the first focuses on Peruvian weaving and the relationship it has with issues of tradition, gender, historic and vernacular architecture, and local landscapes.
Further chapters have explored European, Indian, Chinese, Native American and Moroccan practices to create a body of work that further evokes relationships between the particular and the universal, and brings to mind the poetry of mystics such as Kabir. A fifteenth-century Muslim weaver from India, Kabir linked the process of textile manufacture to meditation on and exploration of the divine in his verses. Indeed, they proved to be so successful and easily comprehensible that his influence spans both Islam and Hinduism, and the practices of Bhakti and yoga. Works by Kimsooja such as To Breathe: A Mirror Woman and the interactive installation Archive of Mind (2016) have featured recordings of the artist’s own breathing as components of the installation, while she refers to the videos that make up Thread Routes as a form of “visual poetry”.
“The reality of myself and my culture has constantly and gradually evolved, and rather dramatically since I moved to New York,” the artist writes as we exchange emails between London and Korea and their respective lockdowns.
“This move gave me the perspective of my own culture as part of a multi-cultural context. Yet, I held the string of my particular personal life as a continuum that questions fundamental and existential problems: what Zen Buddhism describes as ‘Wha Du (in Korean, Gong An in Chinese)’. This might have given me the consistency and long breath in my career.” She’s referring to the practice in which a story, statement or question is used to provoke a crisis of doubt in the mind of a student of Zen on their pathway to enlightenment. And perhaps nowhere in her work is such a crisis evoked more than in the video series A Needle Woman (1999–2001). In it the artist, clad in grey, is recorded, standing motionless, her back to camera, generally against the flow of traffic, in some of the busiest pedestrian junctions in some of the most densely populated metropolises in the world (Shanghai, Tokyo, Mexico City and Delhi). It’s a work that explores the ways in which losing yourself is linked to finding yourself, about the individual and the collective, and one that has added resonance now that crowds are a source of added fear. The last is something the Nobel Prize-winning writer Elias Canetti described as ‘the touch of the unknown’ in his 1960 analysis of relations between the self and others, Crowds and Power. Although one of Canetti’s assertions – ‘It is only in a crowd that a man can become free of this fear of being touched. That is the only situation in which fear turns into its opposite’ – is looking a bit shaky right now.
“Artists often discover the art in daily life,” the artist writes, “and bring daily life to the museum to contextualise it within art history.” Indeed, even before the intrusions of urinals and readymades and the age of modern art museums, attempts by the authors of poetry (whether visual or written) to engage with the unauthored poetics of everyday life have enjoyed a rich history, not least in painting, and works by Joseon artists such as Danwon, or the seventeenth-century Dutch masters. Yet on the site of the museum there is often a question about what – between daily life and art history – is contextualising or responding to what. And an anxiety about whether it is the artworks in a museum or the circumstances of lived experience that gets audiences closer to truths about the world. All of which responds to a more general paranoia that what enters the museum is removed from lived life. And perhaps it’s a paradox of museum culture for artists like Kimsooja that the more she has sought to introduce the ordinary, the more her work is celebrated as extraordinary.
As we discuss A Laundry Field, Kimsooja explains that her works have been shown mostly within the museum context, but for a few exceptions. “In museum spaces,” she writes, “I used fans, lights, and sounds to give a vibration to it and bring sensation to the audiences as they encounter the persona of the fabrics. When situated within nature, such as Wanås sculpture park [the Swedish foundation is located in a natural landscape], the wind, light, cast shadows of trees, and bird sounds paint the laundered bedcovers and evoke the memories and poetics of the bedcovers. I find A Laundry Field installed at Wanås sculpture park gives an experience that blurs the boundary between daily life and the museum context that maximises the audience’s imagination and experience.” Reading this, it’s hard not to think of the new work as an attack on the exceptionalism of the museum context.
In that, the exhibition at Wanås, titled Sowing into Painting, goes a little further than other works by Kimsooja. It traces a circle through her varied output (it contains chapters one, two and four of Thread Routes, a series of the Deductive Objects (1993–2020), Meta-Painting (2020, which comprises stretched and frame linen canvases as well as bottaris made of linen canvas and used clothes) and To Breathe (2020, an evolution of the work shown in Madrid). And it traces a circle through the manufacture of painting in the title work Sowing into Painting, a field sown with two types of flax that are harvested to produce canvas and other fabrics as well as the linseed oil that is classically used as a binding agent in Western painting. It returns the exceptional to the normal, culture to nature, and a life observed (not least in the types of paintings of ‘everyday’ life that populate museums and other archives) to a life lived.
— ArtReview Asia, Summer 2020
2020
Zweimal in ihrem 37-jährigen Werk hat sich die südkoreanische Künstlerin auf ihr persönliches Leben bezogen. Im Herbst 2019 stellt Kimsooja einen 6 mal 2,4 mal 2,6 Meter großen Container auf den Platz vor die Kathedrale von Poitiers (s. Kunstforum Nr. 265) und markiert damit ihren Abschied von New York, wo sie, seit den ersten Stipendien bis heute, fast 30 Jahre gelebt hatte. Ein radikaler Wendepunkt, denn seither pendelt Kimsooja zwischen Seoul und Paris, wo sie sich vielleicht in der Zukunft niederlassen wird, auch wenn sie längst im Unterwegssein zuhause ist. Der Container aber birgt nicht nur ihre Umzugskisten, sondern auch ihre künstlerische Weltsicht: Gelb, Rot, Blau, Weiß, Schwarz, Gelb, Rot, Blau … skandieren die leuchtenden Streifen auf seinen Wänden die alte koreanische Tradition eines Farbkosmos, der bis heute das analogische Denken der Künstlerin prägt: So entspricht Blau dem Holz, Rot dem Feuer, Gelb dem Erdmittelpunkt, Weiß dem Metall und Schwarz dem Wasser; die fünf Elemente finden ihr Pendant in den fünf Himmelsrichtungen und Jahreszeiten, die ihrerseits um ein Zentrum kreisen. Wie das Farbspektrum lebendig wird im Sonnenlicht, so erwacht der Kosmos im universalen Atemstrom zu beständiger Wandlung und Bewegung. Ein webender Austausch verbindet alle Elemente, Zeiten, Winde und Wesen zu unaufhörlich neuen Analogiereihen. Der Container hat den Titel „Bottari 1999 – 2019“ und holt damit den zweiten ebenso radikalen Wendepunkt ins Gedächtnis: Zur Biennale von Venedig 1999, stellt Kimsooja in Harald Szeemanns d’Apertutto ihren blauen „Bottari Truck in Exile“ vor eine Raum öffnende Spiegelwand. Das Vehikel ist Zeitzeuge ihrer Abschiedsreise von Korea, als ihr fester Wohnsitz in New York entschieden war. In elf Tagen hatte sie 2.727 Kilometer zurückgelegt und in den Orten ihrer Erinnerung die Einwohner um ausgediente Kleider und Bettüberwürfe gebeten. Gefaltet, eingewickelt, an den Stoffenden zusammengeknotet, so entstanden die traditionellen Reisebündel, die seidigen, farbenreichen „Bottaris“, die bald zum Leitmotiv ihrer Arbeit werden sollten. Zwischen den anwachsenden Bergen von Bottaris auf der offenen Ladefläche des Lasters sitzend fuhr sie über Bergpässe und Feldweg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hieß diese erste gefilmte Performance.
Als Artist in Residence am PS1, hatte die Künstlerin 1992 in ihrem New Yorker Atelier zum ersten Mal den skulpturalen Aspekt ihrer eigenen Reisebündel gesehen. Von jeher war sie an die Gestik gewöhnt, Kleider, Hausrat, Bücher mit den Bettüberwürfen, die traditionell in jede Familie gehörten, zusammenzubinden. Auf diesen Tüchern, den kunstvoll gewirkten Ybulbos, wurde geruht, geliebt, geschlafen, darin wurden Säuglinge auf den Rücken gebunden und getragen, Kranke und Tote transportiert. Die Funktionen der Ybulbos beschreiben also einen Existenzbogen. 1994 hatte die Künstlerin in Korea ihre erste Installation photographiert: Bottaris auf der Türschwelle eines verlassenen Hauses, im südkoreanischen Dorf Yangdong, der Umgebung von Gyeongju. Die leuchtend farbigen, kunstvoll gewirkten Bottaris als Spuren von Angst, Hast und Flucht vor diktatorischer Unterdrückung. Dieser politische Hintergrund prägt die Bilder der Performance-Reis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Die Gesten des Zusammenfaltens, Bündelns, Knotens hatten den Rhythmus dieser Zeitreise bestimmt. Als Bottari der Gegenwart hatte die Künstlerin sich selbst verstanden, die auf ihrer Reise in die Zukunft versucht, Spuren der Vergangenheit zu sammeln. Denn die ausgedienten Kleider und Bettüberwürfe mit ihren Gerüchen und eingeprägten Gesten sind für Kimsooja vor allem dies: Erinnerungsvehikel menschlicher Gegenwart. Ähnlich wie Photographien bezeugen sie vergangenes Leben.
In diesem Sinn hatte Kimsooja im Jahr 1995, zum 15. Jahrestag des Massakers von Gwangju, auch hier abgelegte Kleidung und Bett-Tücher gesammelt. Die südkoreanische Stadt war weltweit bekannt geworden durch den von Studenten angeführten, massiven Aufstand der demokratischen Bewegung, die vom Militärregime im Mai 1980 brutal niedergeschlagen worden war. Kimsooja baut kein Monument. „Sewing into Walking“ heißt ihre Performance: Die Künstlerin schleppt Bottari um Bottari in den Wald des Massenfriedhofs, und deckt im langsamen Gehen die alten Kleider und Ybulbos über die Erde, als müßte sie heilend gewärmt werden, als müßte den Toten, die Umarmung ihrer Nachbarn nachgetragen werden. So näht Kimsooja tatsächlich die Vergangenheit in die Gegenwart, näht Zeiträume, Entstehen und Vergehen zusammen. Auf ihrem Weg, in ihrem „Walking“, tritt sie zum ersten Mal als verkörperte Nadel auf, die in ihrer Vertikalität die horizontale Kleiderschicht mit der Erde verbindet.
In dieser Künstlerauffassung eines konzeptuellen Nähens, hatte sie 1984 in Seoul, nach ihrem Studium der Malerei, die Arbeit „The Earth and the Heaven“ aus Seidenresten zusammengenäht, ein Achsenkreuz aus den Farbfeldern der fünf Elemente. Was sie daran interessierte, war die Gestik an der Grenze, die Nadelbewegung selbst, in ihrem verbindenden Durchqueren unterer und oberer Schichten, die Kimsooja wie selbstverständlich auf die Zeit, den Raum und das Universum bezieht. Die Bewegung der Hände, wenn sie die vier Stoffzipfel der farbenreichen Bett-Tücher unter- und übereinander führen und einen Knoten festzurren, ist der nähenden Geste vergleichbar. Wenn aus dem Falten und Bündeln des Tuches nun eine kugelförmige Dreidimensionalität entsteht, erscheint es für Kimsooja wiederum selbstverständlich, darin eine Welt zu sehen. Damit nähert sie sich, so könnte man es sehen, über ihr experimentell künstlerisches Tun, einem Mathematiker und Philosophen der europäischen frühen Aufklärung: Leibniz war aus dem spirituell-körperlichen Doppelcharakter des Tuches und dessen Faltungen, die er eingehend betrachtet hatte, die Einsicht hergeleitet, das gesamte Universum sei ein einziger kontinuierlicher, sich wandelnder Körper, der verschiedene Gestalten annimmt. Die Möglichkeit dieser Parallele zeigt die transkulturelle Dimension, die Kimsoojas Weltsicht öffnet.
In einer Reihe von Performances zwischen 1999 und 2005 erweitert sie die Logik ihrer Künstlerkonzeption, Nadel zu sein. Als unbewegliche Gestalt im grauen Gewand wird sie in der Rückenansicht für den Zuschauer zum Medium, das vermag, den Atem und die Wahrnehmung zu verlangsamen, den Betrachter hineinzuziehen in verdichtete Situationen des Zeitraums. So sehen wir sie 1999 in Japan, als „A Needle Woman – Kitakyushu“, horizontal auf einem langen, glatten Felsen ausgestreckt; ihr Körper verbindet sich mit der grauen Gesteinsformation, zeichnet die Grenzlinie zwischen Himmel und Erde nach. Der Zuschauer, auf ihren Rücken schauend, atmet wie sie den offenen Himmelsraum und dessen Stille, teilt ihr Erleben. Ein Jahr später steht sie in Indien an der Böschung des Yamuna River; vorübertreibende Verbrennungsreste zeigen sein stetiges Strömen. Kimsooja nennt sich hier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schaut in dunstige horizontlose Ferne, weiß, der Fluß wird weiterströmen, auch nach ihrem Lebensende. In folgenden großen Video-Reihen, steht sie im Mittelpunkt von dicht bevölkerten Metropolen, wie Tokio, Mexico City, London oder Kairo. Ihre unbewegliche graue Gestalt erscheint als Seismograph im Zeitstrom der vorüberziehenden Menschenmassen; ein Strom, der kaum innehält, wenn das Gesicht eines Vorübergehenden dem ihren begegnet. In einer zweiten großen Serie bereist sie ebenso als unbeweglicher Zeitzeuge, konzentriert auf ihr physisch gegenwärtiges Sein, die Krisenherde der Zeit, Havanna, Rio de Janeiro, Jerusalem, N’Djamena, Sana’a, Patan und Nepal. Fast einem Kriegsreporter gleich, muß sie in dieser zweiten Performance-Reihe, oftmals um ihr Leben fürchten. Ihre Präsenz bewegt sich also auch hier an einer Grenze. Die Identifikation mit der physischen Zeugenschaft der Künstlerin, mag im Betrachter eine neue Aufmerksamkeit für das Weltgeschehen wecken. Die Video-Installation der zweiten Reihen war 2005 in Aperto zu sehen.
Vom Phänomen der Nadelbewegung, vom Prinzip ihres Verbindens verschiedener Raum- und Zeitschichten ausgehend, entwickelt Kimsooja von nun an erweiterte Bildkonzeptionen, indem sie das Phänomen des Spiegels, das schon angeklungen war, zum Thema macht. Denn auch der Spiegel führt verschiedene Raumschichten zusammen. Wie die Nadel bleibt der Spiegel unsichtbar, erschafft Bilder und verschwindet mit ihnen. Wie die Nadel markiert der Spiegel eine Grenze des Raums. Auch sein Auftritt bezeichnet eine Grenze der Zeit, den haarscharfen Augenblick, wenn Zeit erst geschieht. Im Palacio de Cristales in Madrid verband Kimsooja dieses Agieren des Spiegels mit ihrem ruhigen Atemgeräusch. „To breathe – A Mirror Woman“ hieß die Arbeit, im Jahr 2006: Einer lebendigen Bestimmungsgröße des Raums gleich, so steht sie als zierliche schwarze Gestalt auf einem grenzauflösenden Spiegelboden, inmitten von hohen, funkelnden Glaswänden, die mit einem optischen Prisma beschichtet sind. Kein Halt nirgends: Unter den Füßen werden die Glaskuppeln zum schwankenden Abgrund, der Körper schwebt im Raum, dessen Grenzen zerstieben in einem Feuerwerk der Spektralfarben. Atmender, Licht durchpulster Raum. Damit öffnet Kimsooja ihre Performance für den Betrachter, der hier nun selbst die Bewegungen von Raum und Zeit ausloten kann.
Das ist der Absprung für die Künstlerin in eine bis dahin nicht gekannte Freiheit, die Welt aus dem Blickwinkel des Ein- und Ausfaltens von Stoffbahnen zu verstehen: Kimsooja findet ihre Bilder auf der Straße und in der Natur. So beobachtet sie die Wäscher in den Armenvierteln von Mumbai: die daraus entstandene Videoinstallation heißt, „Mumbai: A Laundry Field“, 2007–2008. Die Kamera schafft eine Analogie zwischen Körper und Tuch, wenn die Wäscher ihre harte Arbeit, das Bürsten und Reiben, das Ausspülen, Wringen und Ausschlagen der hoch auffliegenden, spritzenden Stoffe unterbrechen und sich selbst unter den Wasserschlauch stellen. Daneben Bilder von der alten Gleichung Habitat und Habit, wenn Obdachlose ihren Schlafplatz auf der Straße und sich selbst mit Tüchern schützen.
Die seltenen Weltgegenden, die von menschlicher Zerstörung noch bewahrt sind, sind das Thema in einer Folge von acht Filmen, die das unaufhörliche Verwandeln im Austauschtanz der Elemente beobachtet: „Earth-Water-Fire-Air“, 2009 – 2010. Achtmal zeigt die Kamera deren fließende Interdependenz: Das innere Feuer der Erde und seine rotglühende Lava erstarren zu schwarzen, noch weiterglühenden Gesteinsflammen; das Feuer kann ohne die Luft nicht sein; eine Wasseroberfläche gleicht Bodenwellen; eine Meereswelle schlägt meterhoch gegen einen Felsen, während ihre im Sonnenlicht aufwehende Gischt das Feuerwerk der Spektralfarben entfacht – unmögliche, alltägliche Verbindung von Feuer und Wasser. Was Kimsooja zeigt, ist das haarscharf austarierte Zusammenwirken der Elemente und ihrer Kräfte, deren Wandlungen ohne unser Zutun beständig neue Bilder erzeugt, an der Zeitgrenze des Augenblicks. Kimsooja zeigt die andere Seite: Als gelte es für den Betrachter ein Atemreservoir zu schaffen, trägt sie unermüdlich Bilder zusammen aus einer weiterlebenden Harmonie. Ihr Künstlercredo heißt verbinden, heilen, weben, statt trennen, zerreißen und verwerfen. „Thread-Routes“ ist der Titel ihrer bis heute weitergeführten Folge, die 2010 begann, und bisher sechs abgeschlossene Filme umfaßt: Quer durch die Welt folgt die Künstlerin hier den selten gewordenen Spinnerinnen, Weberinnen, Klöpplerinnen, Gerbern und Stoffdruckern mit der Kamera. Auf den Gebirgspfaden des Altiplano von Peru beobachtet sie, wie alteingeübte Hände Schafswolle zu Fäden zwirbeln, im Gehen, die Spindel kreiseln lassen, irgendwo unterwegs einen Haken in die Erde schlagen, Fäden spannen und ihr Weben beginnen. Der Wiederholungstanz uralter Gesten beseelt von Afrika bis Kroatien diese Filme, deren Bilder immer wieder das Weben des Windes, der Wolken, des Lichts und der Schatten verbinden mit den fabrizierenden Händen und ihren Fadenwegen. Die Akteure sind in jedem Filmabspann mit Namen aufgeführt, oftmals zusammengenähte Namen aus den ursprünglichen und später aufgezwungenen Kulturen. Vier dieser Filme waren im Herbst 2019 in Poitiers zu sehen. Nichts ist nostalgisch; die Bilder leben aus dem dokumentierten Tun heraus.
Nichts manipulieren, nichts hinzufügen, das ist ihr Schaffensprinzip. Kimsooja, die ihre Arbeit aus ihrer pragmatischen Beobachtung entwickelt, anerkennt nur ein Künstlervorbild: John Cage. Kurz nach ihrem Studium hatte sie 1985 zur Biennale von Paris dessen weißen Container gesehen. Im Innenraum seiner Leere und Stille war an der Wand ein einziger Satz zu lesen: „Whether you try to make it or not, the sound is heard“. Diese Worte haben die Künstlerin seither begleitet und bestärkt in ihrer Künstlerhaltung eines „Non-Making“, in ihrer Überzeugung, keine Gegenstände herzustellen. Bis heute ist sie davon nicht abgerückt. Während ihrer Ausstellung in Poitiers, im Herbst 2019, sind die Besucher aufgefordert, an einem „Archive of Mind“ mitzuwirken. Im Palais der Ducs d’Aquitaine steht, wie zuvor im Museum für zeitgenössische Kunst in Seoul, der große ovale Holztisch mit seinen Schemeln. Die Gäste bedienen sich aus großen Lehmklumpen, setzen sich an den Tisch, drehen ihre Handvoll Lehm zu einer Kugel und hinterlassen sie dort. Die Stille öffnet das Gehör für ein leises auf- und absteigendes Wassergurgeln, ein vertikales Echo auf die horizontalen Kreisbahnen am Tisch. Es dauert, bis eine Kugel sich formt. Die Wiederholungsgeste wird zum Alltagsfilter. Das Freigeben eines eigenen Bottari öffnet einen anderen Denkraum. Sich beteiligen, ohne zu besitzen, ohne zu besetzen.
Diese Logik wird einen Kreis schließen, wenn Kimsooja im Verlauf von 2020 im Park der schwedischen Wanås Foundation, Leinen aussäen, seine blau blühenden Felder, seine Ernte und schließlich das Fadenspinnen und Weben von groben Leinwänden beobachten wird. Keine Objekte, keine Bilder. Auch nicht im Dezember 2020, wenn sie in der Kathedrale von Metz ein Fenster aus dichroitischem Glas herstellen wird: eigentlicher Autor werden die Farbbrechungen des Lichts sein. Was sie erschafft, sind Seherfahrungen, mit Leibniz gesagt, ein schauendes Denken.
— Kunstforum, Bd.267, May 2020
Kimsooja’s self-reflective installations take over the French city of Poitiers
2019
For more than 25 years, South Korean artist Kimsooja has focused her practice on a specific element in her country’s visual culture: the bottari, a colourful bundle of cloth used to wrap and transport items by hand. It is a traditional and timeless component of life in Korea, where bottari fabrics are often recycled from old silk bedcovers, a repurposing that inverts domestic and public spheres, conventional gender roles and power structures. It is in this context that Kimsooja began using this material in her work: ‘I’ve always started from my own reality and my own culture,’ she says. ‘It’s not that I like them, necessarily. I use them because it’s my reality.’
Kimsooja (who goes by a single-word name, in defiance of cultural conventions) has spent the better part of the past two decades peripatetically, based between New York, Paris and Seoul, and realising projects around the world. Her meditative works explore the self, the other, and the narratives woven through life’s journeys. ‘The whole world I was viewing has been, in a way, wrapping and unwrapping the bottari,’ she reflects. Across sculpture, installation, performance and video, the bottari has served as a visual metaphor for the artist’s own decentred existence and a longer history of human transience, migration and now displacement in a globalised society.
This year, the 62-year-old artist has translated the handheld bottari to an urban scale, wrapping the French city of Poitiers in a bundle of public art installations that activate its medieval architecture and foreground its rich history. Traversées is a sprawling contemporary art event in this old Roman town southwest of Paris, where Kimsooja inaugurates a new ten- year cultural and urban heritage initiative. More than a dozen works by the artist transform the city’s historic sites into sensorial experiences.
‘We wanted to put the city in motion, starting from its iconic sites of memory while looking to the future, which Kimsooja understood perfectly,’ explains the event’s co-artistic director Emmanuelle de Montgazon. ‘This constellation of works resonates together and allows visitors to chart their own course.’
As the birthplace of Michel Foucault, Poitiers is an apt locale for an in- depth presentation of Kimsooja’s work. The influential 20th-century philosopher’s premise of heterotopia – a socio-cultural space of otherness theorised as a self-contained ‘world within a world’ that exists in parallel to our lived experience – seems a fitting description of Kimsooja’s bottari. The organisers of Traversées were drawn to the duality conveyed by Kimsooja’s works: ‘They exist only in relation to the places they take over, but they come with a very strong introspective dimension, says de Montgazon. ‘They belong as much to their own history as to the history of the places and people to which they are addressed.’
Kimsooja was originally drawn to bottari in 1992, during an artist residency in New York at PS1 Contemporary Art Center. She adopted it as a colourful, readymade, three-dimensional canvas and alternative platform for art-making that she quickly expanded in multiple directions. ‘I also started working in video, considering the video frame as a wrapping method – wrapping the world or wrapping nature – rather than image- making,’ she recalls. A representative series of her video performance works, collectively titled A Needle Woman (1999-2001), depicts the artist standing motionless in the midst of busy pedestrian thoroughfares around the world, with her back to the camera. In these simple yet compelling works, her body acts as a needle, the unceasing flow of passers-by serving to wrap her stationary form. For Kimsooja, video offers ‘an immaterial way of wrapping the reality of the world’.
In 2006, Kimsooja received a commission from the Museo Nacional de Reina Sofía in Madrid in which she introduced a different approach to wrapping reality: a site-specific installation at the city’s iron-and-glass Crystal Palace, built in 1887. Titled To Breathe: A Mirror Woman (2006), this large-scale architectural intervention covered the building’s glass exterior with a translucent film that diffracts white light into a spectrum of colours, swathing the interior space in an ethereal prismatic environment. A floor-covering of mirrors multiplied the refractions, completely enveloping the audience in her luminous bottari.
Similar bottaris of light and sound were subsequently unveiled at the 55th in 2013 (where Kimsooja represented her country at the Korean Pavilion) and earlier this year at the . In Yorkshire, Kimsooja transformed the art centre’s 18th-century chapel into a vertiginous space of reflection, both literally and metaphorically, softening the solid interior surfaces of its historic masonry, to convey a lightness that contrasted with its rigid exterior. In Poitiers, she unveils her first mirror installations to be exhibited in France, including one that reveals the stunning vaulted ceiling of the Maubergeon tower in the medieval Palais des Ducs d’Aquitaine.
Similar bottaris of light and sound were subsequently unveiled at the 55th in 2013 (where Kimsooja represented her country at the Korean Pavilion) and earlier this year at the . In Yorkshire, Kimsooja transformed the art centre’s 18th-century chapel into a vertiginous space of reflection, both literally and metaphorically, softening the solid interior surfaces of its historic masonry, to convey a lightness that contrasted with its rigid exterior. In Poitiers, she unveils her first mirror installations to be exhibited in France, including one that reveals the stunning vaulted ceiling of the Maubergeon tower in the medieval Palais des Ducs d’Aquitaine.
For Traversées, Kimsooja approaches the city of Poitiers as a tapestry, its medieval streets and historic sites forming paths that intersect, converge and separate as visitors trace their own journeys while traversing its contours. Not only are her works installed throughout the city, but she has invited an array of other creators – among them composer Myriam Boucher, choreographer Min Tanaka, and artists , Tadashi Kawamata and Rirkrit Tiravanija – to contribute to the project, incorporating their own threads to the warp and weft of Kimsooja’s cultural fabric. §
— Wallpaper, October 2019
2019
During her first visit to the Musée Sainte-Croix of Poitiers, Kimsooja stopped at length in front of Francois Nautré’s painting, Le siège de Poitiers par l’amiral Gaspard de Coligny en 1569 [The Siege of Poitiers by Admiral Gaspard de Coligny in 1569] (1619), a true pictorial account and faithful portrait of the city. She was moved by the representation of the besieged city, by the precision of the narrative, and was overwhelmed by this seeming detail: how the inhabitants sought to survive and protect themselves in this context of war. She was particularly drawn to the large swaths of white cloth protecting the inhabitants’ movements from the enemies on the lookout, and referencing the work of the drapers and weavers in the region.
Her visits were closely tied to the history of the city, a history that is inseparable from its cultural and social fabric, which makes it so rich.
“It is only one step from memory to encounter,” wrote Marc Augé2. Thus Kimsooja focuses on personal stories that are often forgotten by History. From the splendor of Eleanor of Aquitaine to the famous passage of Joan of Arc, Kimsooja preferred the tutelary figure of Saint Radegund (520-587), Queen of the Francs, “divorced” from a tyrant, who devoted the rest of her life as nun to the disenfranchised. In the church of Sainte-Radegonde, Kimsooja was moved by the sobriety of her tomb and the many votive plaques, some of which are still recent, that cover the dark crypt and the choir. She was also attached to the figure of Jean-Richard Bloch, a politically-engaged poet and writer, friend of Louis Aragon and André Malraux, “exiled in his own city,” who opened his house in La Mérigotte—which has become the Villa Bloch 2019 artists’ residency—to writers, political refugees, poets and musicians.
Kimsooja was born in Korea, a country where Christianity is at its most influential in Asia, while co-existing with Confucianism, Shamanism, Taoism, and Buddhism. By choosing a nomadic life, she carries with her the origins of her culture, whose belief in the “Spirit heart” is founded on the pursuit of harmony. This cultural identity mixed with family history leads to the encounter with the Other, the necessary mirror to one’s own existence.
In the majestic Palace of the dukes of Aquitaine, the center of spirituality and contemporary culture, Kimsooja conceived a crossing of the City based on the very principles of co-existence and harmony that have inspired all of her work for over thirty years.
“Travelling reaffirms that the world is not a flawless process.” These are the words of philosopher Jean-Godeffroy Bidima, whose works on African identity are built around this notion, which he deems to be resolutely plural. His definition is a promise that looks to the future and to growth, opening the fertile ground between identity, travel and memory to a constellation of new possibilities. With the issue of migration occupying a central place in society, and the West still struggling to break free from postcolonial discourse, the Traversées project questions the factors behind the acts of travel, movement and uprooting that fuel the work of Kimsooja and her fellow artists who, through personal experiences and without bias, are able to capture and portray the perceptible and invisible flows of an increasingly unsettled contemporary world. The common thread between voluntary nomadism and forced migration is probably found in the act of being uprooted.
To symbolically hand over the keys of Poitiers to Kimsooja is to accept that the city’s memories will be transformed into a space in which to imagine the future. But it is also to offer the artist the opportunity to re-frame her work; to imbed it in a new time and space, that of a city steeped in history; to imperceptibly sketch out new lines, influenced by the ideas of Michel Foucault, by the memory of the former Palais de Justice, by the spirituality of places of worship, and by the generosity of the Villa Bloch. These “traversées” will open our eyes to new paths and will write a new chapter in this rich story, one that will not only be recounted but lived and shared, turning local residents and visitors alike into wanderers, following the paths left by the artists, routes that fork and multiply into a disorienting infinity. The catalogue accompanying Traversées / Kimsooja aims to guide the viewer through this journey, and to suggest through certain key works, including Bottari, A Needle Woman, and To Breathe, pathways that connect Kimsooja’s work to that of other invited artists, and invent a new geography.
Jung Marie’s Korea meets Subodh Gupta’s India. Rirkrit Tiravanija nests a tea house inside a scaffolding of bamboo from Thailand, with a ceremony led by Mai Ueda. New Yorker Stephen Vitiello reveals the buried sounds of the city of Poitiers, while Sammy Baloji slows down the monotonous chants of a children’s choir inside the Chapel of the Augustins, drawing out the role played by the Church in the colonial enterprise.
A “traversée” is an experience of otherness and hospitality and the paths of Traversées / Kimsooja are outlined, everyone can create their own journey. Similarly, the artists accompanying Kimsooja “advance life, activate it, intensify it, renew it”.3 The city, transformed by these unique works, as the shared meals of Thomas Ferrand or Subodh Gupta, progressively reveals its various historical, social, collective and individual dimensions. In this kaleidoscope, every movement, every action, every breath, every glance becomes another possibility for physical and metaphysical discovery, and constitutes a shared memory, woven together by the gestures, as the danced portraits or choreographies of Lenio Kaklea, that comprise – just like Kimsooja’s Thread Routes – this “slow and silent journey”.
Space is transfigured in Kimsooja’s work, becoming a sensory experience. She hollows out the architecture of the different sites, letting new sensations in, disturbing their stability. She instils a void in the heart of the stone, that interstitial space essential to the dialectics of Yin and Yang, to the rhythm of breathing, the beat at the core of life.
Inspired by Michel Foucault and his definition of heterotopia, which “has the power to juxtapose in a single real space, several spaces, several locations which are in themselves incompatible,”4 Kimsooja disperses space using light diffraction and mirrors, as seen in her work To Breathe. Her spaces are dematerialised; they shake the weight of history to become – like the artist herself – nomadic, as the nests of Tadashi Kawamata. They are spaces without space and thus, in Foucault’s eyes, produce the shift required to make the coexistence of utopias possible. Kimsooja metonymically inverses the world order, her aesthetic response to the turbulence and violence she perceives. Our sense of horizontality is disturbed as it becomes warped by the effect of the mirrors into abyss-like depths, while the space takes on an atmospheric quality. “I’d like to make works that are like water and air, that cannot be owned but can be shared by everyone,” explains Kimsooja. Like the miniature world contained in the “bottari”, the lines between Kimsooja’s work and the space that it inhabits become blurred. Fabrics, films and mirrors – the artist’s vocabulary – take on the appearance of bodies or membranes, skins that sense, react and reveal, that filter and diffract the commotion of urban life, the ashes of light, energy and electric short circuits that punctuate the outside world, transforming them into a constantly self-renewing visual and pictorial experience.
The works by the guest artists infiltrate city life, offering shared vessels for beleaguered bodies, worn down by the inconsistencies of the world, gradually breathing in unison or moulding, as is the case with the clay spheres of Archive of Mind. An emotion is released from these works; the realisation that we can now conceive, to borrow the words of Jean-Paul Sartre on the eve of the Second World War, “what an emotion is. It is a transformation of the world.”
— Traversees\Kimsooja Exhibition Catalogue, October 2019
2019
POITIERS, France — In front of many historic places in the western French city of Poitiers — including the Palace of the Dukes of Aquitaine, the former home of the medieval celebrity Eleanor, the queen consort of France and then of England — stand big boards announcing a three-month citywide contemporary art festival that runs through Jan. 19.
Surprisingly, the boards are decorated with obangsaek, or the Korean traditional spectrum of five cardinal colors, which represent the four directions and the center. Moreover, the event’s title is “Traversées / Kimsooja,” including the name of the Korean contemporary artist of international renown.
There is also a shipping container covered with obangsaek in the square of the city’s landmark Poitiers Cathedral. It is Kimsooja’s new work titled “Bottari 1999-2019,” which carries her personal belongings that she amassed in her New York apartment over the last 20 years. Now that she is leaving the apartment, the container is a symbol of her migratory, nomadic and in-between state. Bottari means traditional Korean cloth bundles used to carry belongings.
The inaugural edition of Poitiers’ new art festival “Traversées,” which translates to traverses or acts of crossing, has not taken the typical form of the international art biennials that have saturated the world. Instead, it let one artist interact with and change the city by installing her works in the new contexts of the city’s old buildings and streets.
The artist was also encouraged to invite other artists to join the citywide exhibition. Sixteen artists from all around the world, including big names like Indian artist Subodh Gupta, Japanese artist Tadashi Kawamata and Congolese artist Sammy Baloji, have joined.
“It was the idea of the festival’s co-curator Emma Lavigne,” Kimsooja told the Korea JoongAng Daily at the opening on Oct. 12. Lavigne, the new president of the prestigious Palais de Tokyo museum in Paris, and Emmanuelle de Montgazon, an art historian born in Poitiers, are co-curators of the art event.
“This might be the most inspiring, challenging and ambitious project I’ve done so far, mainly focusing on site-specificity responding to the notion of Traversées, to which I’ve been devoted for so many years,” Kimsooja said.
Indeed, throughout her oeuvre, the 62-year-old artist has explored borders and crossed borders, sometimes with performances and films that symbolically allude to migration in the real world and sometimes with abstract installations that visualize moving through the borders between cosmic dualities such as yin and yang and material and non-material.
The very work that propelled the artist to international fame in 1997 was also about migration. For the performance and video work “Cities on the Move: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she traveled throughout Korea for 11 days on top of a truck loaded with bottari. Its 2007 version, commissioned by a French museum, was set in Paris and is now projected on a wall of Saint-Louis Chapel in Poitiers, with the truck used for the performance parked inside the chapel near its gracefully-arched and painted altar.
According to Lavigne and de Montgazon, the colorful bottari on the truck “reveals the tension between perpetual displacement and a desire for familiarity” and the performance is “an allegory of migration but also an appeal for empathy and peaceful co-existence.” Such elements of the work gain more resonance in the new context of the old Catholic chapel, which could have been either a place of religious exclusivism or a refuge for alienated people.
“To symbolically hand over the keys of Poitiers to an artist is to accept that the city’s memories will be transformed into a space in which to imagine the future,” Lavigne and de Montgazon said in a joint statement. “Poitiers is a city famous for its rich heritage and its university,” said Alain Claeys, the mayor of the city. “Our wish is to build a relationship between heritage and contemporary art, which will allow heritage to have a new life. In particular, with artist Kimsooja’s works, we can talk about the very important topic of our time : migration"
Kimsooja has dealt with crossing geopolitical and cultural borders, as well as abstract borders between dualities such as light and darkness, with the motifs of sewing, weaving and bottari. In sewing, a needle and thread penetrate the borders of fabric. And bottari, which is two-dimensional when spread out and three-dimensional when bundled up, makes a very flexible boundary between inside and outside.
The artist has used the motifs sometimes in literal forms and sometimes in abstract and symbolic forms. The latter is seen in the “To Breathe” series now installed at the cloister of Chapelle des Augustins and the catacomb of Sainte-Radegonde Church in Poitiers.
Their windows have been wrapped by Kimsooja with translucent diffraction film sheets, so that sunlight coming through them and falling on the walls and floors make planes of iridescent light that constantly change, just like “breathing obangsaek bottari,” the artist said.
“The works lead the viewers to stay for a long time and meditate, while perceiving the changes of the spaces over time,” Lavigne said.
Not only Kimsooja but also some of the artists invited to “Traversées” have transformed the historic spaces of Poitiers into those of new perception and imagination with relatively simple physical interventions. When Korean artist Jung Marie sang a jeongga, or an elegant song enjoyed by the aristocracy in the Joseon era (1392-1910), a cappella at Sainte-Radegonde Church, her clear voice resounded even better under the church’s high vaults, sending the audience to an ethereal and spiritual space in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Meanwhile, Gupta’s installation and performance art piece “Cooking the World” attracted many people at the opening of the festival. In a house-shaped installation that consists of used Indian pots and pans hanging from the ceiling, the artist himself cooked popular street foods from several Indian cities and served them to the viewers.
“Inspired by the book ‘Cooking the World’ by Charles Malamoud about how food is essential in Indian ceremonies and rituals, I thought I can do something with food, as I love to cook myself and have created artworks with utensils for more than 20 years,” the Indian artist said. One of the highlights of the exhibits is Kimsooja’s performance installation “Archive of Mind” at the Palace of the Dukes of Aquitaine. There’s a giant, oval-shaped wooden table. Visitors are encouraged to take lumps of clay in four shades, roll them into spheres and then place them on the table to dry. The table with finished balls of clay resembles the landscape of a desolate alien planet, giving a cosmic feel.
When Kimsooja introduced the work in Seoul in 2016, she said the forms of the spheres would reflect the symmetrical forces of the palms of the participants and their minds. The clay balls would have edges, because of the impossibility to make a perfect sphere and because of gravity’s effect when they are dried on the table.
The dried clay balls make sounds when they are rolled and the sounds represent their geometric forms — the forms caused by the dual forces of the participants’ palms, their minds and gravity.
“Poitiers, which was important in international politics in medieval times but then was dormant for quite a time, is now opening itself up to the world again” Kimsooja told the Korea JoongAng Daily. “Responding to the city’s wish, I have weaved the city with other parts of the world through my works based in the notions of crossing borders and works by other artists from all around the world.”
— Korea Joongang Daily, October 2019
2017
Jérôme Sans
How would you define your work?
Kimsooja
I view my work as a threshold: “any place or point of entering or beginning, a magnitude or intensity that must be exceeded for a certain reaction, phenomenon, result, or condition to occur or be manifested.”
Jérôme Sans
Would you call some of your works self-portraits? Is it important that you yourself are in some works?
Kimsooja
In some ways, my work could be viewed as a self-portrait. I do not wish to display my personal identity in my work—especially in the video performances when my back is facing the viewer—but the position demonstrated does show a certain kind of identity. I think a person’s back can be one of the most evocative parts of the human body; it isn’t dynamic, but it presents a profound and abstract encapsulation of a person.
Jérôme Sans
How do you consider the globalized world?
Kimsooja
A globalized world sounds very positive, dynamic, interconnected: a constant flow of cultural, economic, technological, and intellectual interactions. But we face many visible and invisible divisions created by constant border crossings: racial, economic, political, and religious conflicts. The standardization of daily life under globalism could benefit those who need it most, but we lose the authenticity, spirituality, and the myth of a land and its people. Globalism reduces the uniqueness and specificity of humanity, although new technology will bring a new facet.
Jérôme Sans
What do you think of migration today?
Kimsooja
More than five million Syrians have migrated to Greece, Turkey, Germany, and nearby countries; there is a constant flow from Africa to Southern Italy and Spain; people from Mexico and Central and Latin America try to get to the United States. As an artist who has always been concerned with borders, migration, and refugee issues, especially from living near the Korean Demilitarized Zone during my childhood, I am shocked by President Trump’s decision to block borders, deny immigrants a new life in the United States, and deport second-generation immigrants. American citizens have to pay attention to this humanitarian issue, especially since only a few organizations and individuals are focused on the refugee crisis. Major European countries are taking risks to support and help the refugees. Along with global warming, it is the most urgent issue of our time.
Jérôme Sans
Your work deals with exile and displacement. Do you feel exiled too?
Kimsooja
Definitely. I have considered myself a cultural exile since 1999. Recently, I’ve collaborated with Korean-specific projects, such as Année France-Corée for a solo show at the Centre Pompidou-Metz in 2015 and the MMCA Hyundai Motor 2016 project. Still, my position as an artist remains that of an outsider rather than insider, even though I’ve been well received. Perhaps it is the fundamental nature of being an artist?
Jérôme Sans
You have lived in New York for several years, how have things changed for you?
Kimsooja
Thanks to support from Arts Council Korea in 1992, I was able to participate in the P.S. 1 studio residency program in New York. I met people who understood my work and viewed it objectively, with enthusiasm and generosity. It really opened up possibilities for me. Due to the Korean financial crisis in the late 1990s, I was not able to receive financial and intellectual support for my work. It truly disappointed me and made me realize that I needed to find support outside Korea.
In the last ten years, this has changed dramatically and Korea is now one of the most supportive countries in the world. However, when I go back to Korea, I am too established to get support from my country. The level of professionalism still needs to be raised, especially in governmental organizations. Where to live, work, and die are big questions. You need a nation to live—but you don’t need a nation to die.
Jérôme Sans
The idea of displacement is very present within your work.
Kimsooja
All good art is made from thinking outside the box. In that sense, having displacement as a condition of life is not a bad choice for an artist.
Jérôme Sans
In some of your works, like A Needle Woman (1999–2001, 2005, 2009), immobility rather than displacement is present. Is it a way to show personal identity toward the global world?
Kimsooja
In my practice, the notion of duality and its complex geometry and disorder are always present through my understanding of the world. While I am presenting my immobility, which is impossible in literal terms, a lot of mobility happens in my body and mind, allowing me to reach to the place and moment of my performances. This immobility gives me an anchor to hold onto, so my journey flows through immobility.
Jérôme Sans
Some of your works and installations are made with bottari, meaning, “to pack for a trip.” Which trip are you addressing?
Kimsooja
The bottari represent our body and skin, their agony and memory as a wrapped frame for life. Bottari are the simplest way of holding objects or belongings that embody many meanings and temporal dimensions. A trip could be a simple A-to-B, or a relocation, or a separation of a couple in feminist terms, wrapping only the most essential belongings in an emergency—migration, exile, or our final journey: death.
Jérôme Sans
Do you consider yourself as a nomad?
Kimsooja
Yes, fundamentally.
Jérôme Sans
Your work is an invitation to a sensorial and visual trip—a way to travel without moving.
Kimsooja
We can easily grasp what is going on in this hyper-informed society, but we can’t experience true reality, not in depth. All experiences are limited by the conditions of space and time; I am determined to witness the here and now, living through my eyes and body, sharing my experiences with the audiences.
Jérôme Sans
In the emblematic work, A Needle Woman, you stand in moving crowds. Who was this needle woman? And who is she now?
Kimsooja
A Needle Woman is a woman who gazes at the world, gazing at and witnessing the world without acting. She allows us to take a journey to reality and reach for the ontological root—our destiny. She is there as a tool, a question, a permanency; I am here as a temporality.
Jérôme Sans
In your installation To Breathe – A Mirror Woman (2006), shown in Madrid, we can hear your own breathing, filling the space. What is your relationship to the body and the act of breathing?
Kimsooja
I’ve always reinterpreted and recontextualized existing concepts, depending on the site, the questions I had, and the relationship to other works and sites. This installation has three different components from past projects. The Weaving Factory (2004), was my first sound performance, I overlapped my breathing and humming; it developed from the idea of my body as a weaving machine, inspired by an old textile factory in Lodz, Poland, for the First Lodz Biennale. Later, I worked on a video installation commissioned by Teatro La Fenice, Venice, called To Breathe (2006), which incorporated The Weaving Factory. La Fenice is an opera house and singing is about breathing. When I was invited to make a work for the Palacio de Cristal in Madrid, I brought all of these elements together, contextualized as a bottari and as a void. Attaching the diffraction film to the architecture was an act of wrapping and unfolding the daylight into a rainbow spectrum.
Jérôme Sans
One of your upcoming projects is a work for the new subway station at Mairie de Saint-Ouen in Paris.
Kimsooja
Although it is a site-specific and permanent installation, this project brings me back to the body/work and audience/pedestrian relationships in A Needle Woman. This installation will symbolize another body of mine, one that witnesses the station’s pedestrians. The diffraction film installation will function as my body, standing still in the station and witnessing the pedestrians, while offering the public a forum.
Jérôme Sans
You were teaching at the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What is your connection to Paris?
Kimsooja
Paris was the first western city I visited; I stayed for six months in the mid-1980s. A scholarship from the French government allowed me to work at the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in the lithography studio. Whenever I had a project in Europe in past thirty years, I’ve also visited Paris, even if I didn’t have any particular reason.
During my six-month stay in Paris, I traveled to other European cities for the first time, visiting major museums in Germany, Italy, Holland, and England. I was 27 years old. I absorbed the language, art, culture, and life in Paris, they are forever in my memory. In 1985 at the Biennale de Paris, I first encountered John Cage’s work. Although I knew of him as an avant-garde composer, I had never heard his music live, or seen any of his visual works. With great curiosity, I entered an empty railway car to hear his sound piece, but there was only silence and a simple written statement, “Que vous essayez de le faire ou pas, le son est entendu” (“Whether we try to make it or not, the sound is heard”).
It was interesting that I learned so much from an American avant-garde composer, rather than from European art or artists, although I was aware of the French Supports/Surfaces group and the influential artists at the time. After my encounter with Cage’s work, I became curious about American art and culture for the first time.
I’ve shown quite often in France, the French government and institutions have supported many of my works, and I owe them a lot. I was admitted to the 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by the Minister of Culture for my modest contribution to French culture. I have a love for Paris and French culture and want to spend more time working there.
Jérôme Sans
What new avenues are you exploring?
Kimsooja
Since 2010 I’ve been working on a 16mm film series titled Thread Routes, filming textile cultures from around the world: Peruvian weavings (chapter I), European lacemaking (chapter II), Nomadic Indian textiles (chapter III), Chinese embroidery (chapter IV), Native American weaving (chapter V), and African textiles (chapter VI). I can’t wait to visit Africa to film soon. Since 2016, I have realized a large-scale participatory installation titled Archive of Mind, firstly for a solo exhibition at the National Museum for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as part of the MMCA Hyundai Motor Series. This project is evolving and was presented at the Intuition exhibition at Palazzo Fortuny in Venice this year, and opens up to explore the sculptural aspect of my practice from the position of a painter.
There is also a new installation at Nijo Castle, Kyoto, commissioned by the Culture City of East Asia, with the title Asian Corridor; it’s a ten-panel folding mirror screen on a mirrored floor, entitled Encounter – A Mirror Woman (2017). This is my second East Asian City project, the first, in Nara, was Deductive Object (2016), a black sculpture, inspired by an Indian ritual stone called Brahmanda (a cosmic egg in Hindu culture), installed on top of a mirror panel.
These works redefine the geometry of bottari and the surface of the symbolic bottari that represents the totality of the universe. I want to explore further what this could bring to my future practice. I am also starting new clay works. All of these are exciting, new directions to keep exploring, and I am very curious about the outcome.
Jérôme Sans
How do you see the future?
Kimsooja
The future doesn’t exist anymore—it is past.
— Kimsooja: Interviews Exhibition Catalogue published by Verlag der Buchhandlung Walther König in association with Kunstmuseum Liechtenstein, 2018
Young Hee Suh (Professor, Hongik University)
2017
For her special exhibition at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of Korea in the Hyundai Motors Series 2016, Kimsooja presented nine artworks, including her most recent, which were displayed in the Exhibition Hall 5 and in the courtyard of the Museum’s Seoul branch from July 27, 2016, to February 5, 2017. The exhibition featured artworks of diverse media, both two-dimensional and three-dimensional works, installations, and audio and video. This exhibition offered a rare opportunity to appreciate the breadth of the artist’s work scope and varied use of materials.
Kimsooja is an established, mid-career artist who has been internationally prominent for almost thirty years. In her previous exhibitions, she has used diverse media and implemented creative ways of installing artworks. Audiences have admired her endeavours to push the envelope of her own creative domain, and had high expectations for what the artist would convey on this occasion. In the titles Kimsooja chose, she deliberately asked viewers to ponder certain meanings in her art. She called the two most prominent works in the exhibition Archive of Mind (Geometry of Mind in Korean) and Geometry of Body, which established an overarching theme that extended throughout the exhibition. This was an invitation for the viewers to look at each piece in the context of either the expansion of body or the expansion of mind. More specifically, viewers were confronted with a dualistic interplay of mind and body. Through the visual extrapolation of these two contrasting but inextricable concepts, Kimsooja unfolded a realm in which one could reflect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ubstantial and the insubstantial, between the inside and outside of being, or between the self and the world.
The artist chose to title the exhibition bilingually: its Korean title, Maeummui gihahak, or Geometry of Mind, together with its English title, Archive of Mind, hinted that the exhibition was more than an illustration of the sensory employment of medium or an experimentation with forms of expression. Rather, the exhibition revolved around the metaphysical notions of mind and body. Serious viewers would realize that her goal in this exhibition was not to differentiate her artistic present from the past by demonstrating certain expressive forms in unexpected or unprecedented ways. They were expected to focus on very specific messages that Kimsooja’s artworks signify and find themselves asking questions like: What is the fundamental motivation for her art-making? What is the consistent theme that runs through her works in this exhibition? How should such profound-sounding titles be construed? This essay aims to help the reader revisit these questions and, in the process of seeking answers, come upon discoveries both intended and serendipitous. This would help us experience the epiphany Kimsooja wished to share with all of us through her reflective project at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of Korea.
In most of the writings on Kimsooja, her work is interpreted through conceptual frameworks borrowed from such disciplines as cultural anthropology, psychology, philosophy, religion, sociology, or feminism. This study does not stray far from those frames of reference, but differs in its focus on the concepts of body and mind as manifested in Kimsooja’s art — a viewpoint that has not been pursued in the past. It specifically strives to expound the relationship between mind and body from the perspectives of both Eastern and Western philosophical traditions; I will try to interleave East Asian and European thoughts in relation to the concepts in Kimsooja’s works. Kimsooja has arranged each bundle of her ideas in non-contiguous spaces, which then have to be stitched together with a metaphysical thread across the gaps of discontinuity. This study is organized in the same way — that is, in a structure of non-contiguous thoughts and their synthesis across the discontinuous boundaries to propose a new condition of contemplation.
The concept of mind is inherently difficult to grasp. In general, the term mind refers to a person’s personality or character; but it can also mean a metaphysical space that contains a person’s thought or emotion. In English, mind represents the spirit or thought of the brain. The corresponding French word âme means soul or consciousness. The meaning of mind differs somewhat whether the Korean or English term is used. This divergence is probably a result of differences in Eastern and Western thought. In many traditions of European origin, mind and material have been disparate concepts. Mind is a human attribute whereas material is an attribute of things. The human mind stands independent of the external, material world and is subject to rational principles, thus forming a dimension that is separate from the material world, to which the body belongs. This way of thinking is called dualism of mind and body, predicated on the premise that mind and body are independent of each other. However, Eastern thought is not compatible with this kind of dualism. In East Asia, mind and material are deemed interdependent or complementary to each other, forming an inseparable relationship. This view, which has become the basic underpinning of philosophical thinking, treats mind and body as two different manifestations of the same entity. It does not hold that the mind governs over a body seen to be inferior. This is a monism of mind and body, or monistic dualism. According to this view, mind and body originate in and ultimately fuse and return to the state of being one. Oneness is deemed as the fundamental principle of the whole universe; it corresponds to the Great Ultimate (??, taiji) in the Confucian book the I Ching or Yijing (??, Classic of Changes), the universal and absolute principle (?, li) in the teachings of Neo-Confucianism, and nothingness (?, kong) in doctrines of Buddhism.
Recently, a monism of mind and body has been accommodated by many European thinkers, one of them being Jean-Luc Nancy. In his book Corpus, Nancy focuses on the disparaged status of the body in relation to mind, and attempts to rebalance the conventionally lopsided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The premise of his claims is that the body is der einzelne, meaning that it does not exist in the dominion of the mind, nor is it an existence that is merged with the mind. At the same time, he repudiates the concept of body that is perceived as the opposite to soul or mind. Nancy’s “body” is not a foreign or unfamiliar object to an inner soul (âme, psyché) but a correlator that coexists with soul. To paraphrase, body is the expansion of soul and at the same time the exterior of soul. According to Nancy, the body is opened toward the outside, i.e., it is revealed and unfolded outwards. The body is the soul’s expansion toward the exterior and forms itself as the Other (l’autrui). The soul or the mind, then, is the inner substance of the outer body and, as such, supports the body’s sense of contact. Body and soul form an oppositional pair to each other. This is a monistic dualism as the relationship between body and mind.
The concept of mind cannot be apprehended by logic or be defined by certain categories or boundaries. In order to discern the concept of mind beyond this impossibility of knowing or the limit of our rational capacity, one has to dispense with the belief in the mind’s self-sufficiency and experience a break from the closed, egocentric self. One must see that the mind is opened toward the outside — the outside which may be called the body, the Other, and the world or the universe. The process of the mind opening up or unfolding toward the outside — thereby breaking out of the subject-centred closedness that endlessly collapses inwards — is what Nancy calls as the expansion of the soul. Through such a process, the soul transcends the limitation of being immanent in itself and enters what both Emmanuel Levinas and Nancy describe as the altruistic coexisting relationship of “being-with.” The characterization of the relationship between mind and body (soul and body) as “being-together” parallels the concept of the “pluralistic singular existence (être singulier pluriel),” which is the essence of ourselves in society. Rather than expand on the relationship of pluralistic singular existence to the democratic community, I intend to connect this concept to the monistic dualism of material and mind, material and non-material, and, by extension, to the monistic dualism of finiteness and infiniteness.
In his discourse on the expansion of the soul, Nancy set out by addressing the issue of the body among the many facets of the Other. He argues that when the soul tries to reach the body, which is its own Other, as well as the outside, the soul contacts itself through the outer skin of the body, which is its own exposure (l’exposition du soi, l’expeausition). Owing to the ego outside the ego and the body that is the boundary between the self and the world, the soul is able to maintain its balance without leaning toward the inside or the outside. The concept of body, which stands as neither a subject nor an object, in conjunction with the idea of a balanced soul, offers a valuable clue to understanding Kimsooja’s works in this exhibition.
Nancy’s expansive argument about body and soul leads to a discussion of the existential finiteness of the body and its coexistence in a social context. However, in Kimsooja’s Geometry of Body, the finite coexistence of people is not a matter of importance; her focus is on our original existence that confronts the absolute or the infinite. In that regard, Kimsooja’s work diverges from Nancy’s discourse. Additionally, as a means of approaching the infinite that is the limit of existence, most of Kimsooja’s works involve geometrical structures and a balance that symbolically signify the monistic dualism of body and soul. The geometric balance, with its primordial power, brings about an effect by which we are almost unconsciously drawn into the world of the absolute and the infinite. Facing the overwhelming infinite or absolute, we are awakened from the state of our everyday existence and compelled to turn our eyes towards our original existence. We either avoid facing death or lead a life oblivious to it even though the inevitability of death is embedded in the very foundation of our present existence. If existence comes to grips with death through a constant ontological anxiety, it is said to be in fundamental and inherent authenticity (Eigenlichkeit). It was the philosopher Martin Heidegger who set out this ontological perspective and touched on the issue of “authentic existence” in Sein und Zeit (Being and Time). This authenticity of being metamorphoses the state of everyday “being there” (Dasein) into authentic existence. An authentically finite self anticipates its eventual death and projects (Entwurf) itself into authentic being, thus breaking from the self-contained self.
In my view, the concept of authentic being is closely aligned with the monistic dualism of mind and body. A human being conceived as a dualistic entity of mind and body is an existence placed on a path to absolute nothingness, or death. Of course, death in Western existentialism is the negation and perishing of being. Little or no attention is paid to the state beyond death. Even though Dasein anticipates its own death, it does not pursue the absolute domain that death ushers in. In contrast, traditional Eastern thought does not consider the death of body and soul to be a perishing, but as either a threshold through which existence enters the absolute world or a stage where existence is united with the infinite world. Therefore the meaning of existence expands to the dynamic absolute (taiji) or nothingness. While the East and the West may differ in their answers to what constitutes authenticity of being, both affirm death to be instrumental in opening up the complete possibility of being, or the ultimate infiniteness that establishes the meaning of our existence.
The monistic dualism of body and mind provides an effective framework when we seek to grasp the significance of “geometry” as specified in the titles of works such as Geometry of Body and Geometry of Mind. It is obvious that the artist did not intend geometry to be a mathematical study dealing with figures or space. Kimsooja’s geometry is an intuitive method to help visualize complex ideas around the metaphysical notions of body or mind. The artist, by employing such a geometric method, reminds viewers of the dualistic and agonistic structure of body and mind — or the dualistic structure of material and consciousness, of the finite and the infinite, and of authenticity and non-authenticity of being. Furthermore, through geometric structure, Kimsooja leads each viewer to think of possible aspects of being. Geometry in this case can be understood as a statistician’s method that transforms a great deal of complex information into visual models, or a logician’s method of deductive reasoning in which concrete and evident facts are laid out as the ground for general principles. This methodological approach has helped the artist to avoid being lured into subjective, emotional traps while rendering images and objects in the visual arts. Kimsooja could better convey her ideas to the viewer thanks to intuitive clarity and deductive facility offered by this geometric method. Thus we could argue that her works can be categorized as conceptual art.
Verticality and horizontality, as key elements of a geometric structure, can effectively represent the ideas underlying a monistic dualism of the body and mind. Since the early 1980s, Kimsooja’s works almost without exception have a structure of verticality and horizontality, with intersections of longitudinal and transversal lines in an orderly fashion. The structure of perpendicular lines intersecting each other and extending in opposite directions displays a sense of expanding movement that unfolds toward infinity, while maintaining balance in the four cardinal directions. This structure creates an open-ended space in which the inside communicates with the outside and movement can take place in any direction. When a vertical and a horizontal line intersect, the four directions come into being. As lines are added through that intersection, the number of directions increases to eight, sixteen, thirty-two, sixty-four, and so on. In traditional East Asian philosophy and religion, these numbers signify time and space. In the Yijing, the sacred book of Confucianism, sixty-four trigrams symbolize sixty-four directions and represent divergent attributes of being. In the Buddhist scripture Taejanggaemandara, the eight lotus petals called jungdaepalyeobeon — which contain the four Buddhas of east, west, south and north and the four Buddhas of the northeast, southeast, northwest and southwest — symbolize the omnipresence of Buddha throughout the universe. Additionally, the eight or sixteen spokes of the wheel represent the Buddhist Dharma that permeates all directions of the universe. It is also the archetypal image of wonyoongmuae, which means “all things in all directions with no obstructions and in perfect integration.” The vertical and horizontal structure underlying all these concepts may be viewed as the dualistic structure of yin and yang or of heaven and earth, symbolizing the universe as an unhindered infinite space.
The concept of cheonjiinsamjae, as expounded in the Yijing, offers an interesting perspective on how the universe functions in relation to human beings. It adds the human being to the dualistic order of heaven and earth. Even though the universe initially comprised these two fundamental elements, human beings have come to be an indispensable mediator between heaven and earth, enabling the universe to function at its full capacity. A dualistic view of heaven and earth presumes that the world is just spread between the earth and the sky does not accommodate the use of the human mind, and is devoid of any engagement with human mind or attention. In contrast, the theory of samjaeron, the theory of three generative forces, asserts a role for human beings in the operation of heaven and earth. It raises the status of human beings to the same level , while asserting that human beings are the linchpin that holds together the universe. The inclusion of humans alters the traditional view of nature into a humanistic view of the world. Owing to this shift of views, nature philosophy in the East evolved into a humanistic moral philosophy, as manifested in Confucianism. The Doctrine of the Mean, written by the Confucian scholar Zisi, states that a human being is able to assist in change and operation of the universe and, if he or she is willing, can participate in the ranks of the three generative forces. For this, a person should perfect his or her own “human identity” bestowed by the universe. The Doctrine of the Mean dictates that it is imperative for human identity to be in compliance with the principles of the universe, or li. This is called the axiom of sungjeuklee, which means “human identity equal to the principle of the universe,” and is considered the core proposition of Confucianism. Therefore people should always cultivate their own body and mind so that their human identity is in sync with the principles of the universe — that is, in the state of golden mean. This is a state of balance maintained by a steady mind that does not get disturbed or swayed in any direction. A person in the state of golden mean attains his or her original identity, which is aligned with the principles of the universe, and can effectuate a harmonious world. If the human, who is a significant medium in helping to change and operate the world, is absent or disengaged, what would become of the world? Then, heaven and earth would remain indifferent to each other, separate, without relation, which brings us back to a dichotomous dualism. With humans engaged in conscious efforts to realize the principles of the universe, a dualistic structure is replaced by a monistic dualism of the world.
Although humans are finite beings, as mediators, they have the potential to reach for heaven in vertical relations and traverse the earth in horizontal relations. The vertical-horizontal structure defines our infinite universe. The encounter of yang, the spirit of heaven, and yin, the spirit of earth, procreates living matter and entities. Of these, only humans can join as the third of the three generative forces of the universe and engage in the operations of heaven and earth. Humans are capable of giving unitary interpretations of the world and of nature, as only humans have mind. According to the Doctrine of the Mean the ideal state of existence is the golden mean, which is alternatively called the middle or composure in the sense that it is the harmonious middle between yin and yang. The notion of composure resonates with ataraxia — “imperturbability,” the composed and stable state of mind and body sought after by the Epicurean School of ancient Greece. They believed human happiness exists in the state of ataraxia just as Confucian scholars asserted that if humans abide by the rule of the golden mean they are able to live a life that is delightful, worry free and happy, a life in which they perceive their own humanity without imbalance or bias.
The geometry of vertical and horizontal structure embodies a state of calm and composure that does not tilt to one side — this composure of body and mind is similar to what Confucianism pursued. The most fitting image of the stability of mind and body in the state of composure would be one of a vertical and horizontal structure in balance. Kimsooja may not have intentionally predicated her works on the propositions of Confucianism or, more precisely, Neo-Confucianism, however, it cannot be denied that her framework parallels them quite aptly. Just as Heidegger argued for the existential being to be authentic (to stay in existential anxiety by facing death and thereby overcoming the dualism between existence and nothingness), Confucian philosophies pursued a more positive human existence that communicates with the infinite and the absolute — a spatial and temporal realm that cannot be experienced. Confucianism in particular emphasized the universe as the root of the beginning and end, of the world of yin and yang. The basic tenet of Confucianism lies in the harmonization of human identity with the cardinal rule of the universe and living a balanced life in accordance with the order of yin and yang.
Kimsooja’s Geometry of Mind, an installation that was shown for the first time in this exhibition, prompts us to closely analyze the mind and realize it indeed is unified with the body as one and at the same time is related to authentic human identity. As there is no way to define this mind, we instead have to observe what state the mind exists in. When we observe our own mind, we realize that it initially has no shape or movement — it exists in a state of potential. It is only when a stimulus enters that the mind moves and arises; it oscillates to the state of reality filled with perception and emotion. The mind’s tranquil state of potential, while traversing through the time and space of our reality, transforms into a state of “being real” and reveals itself in this process. One of the annotations to the Yijing refers to the state of mind that has not yet been revealed to the outside as “the mind being calm and undisturbed.” In comparison, the state of mind that is revealed and able to respond is referred to as “the mind feeling and communicating.” Cheng Yi, a renowned Confucian scholar, wrote that a “calm and undisturbed state” is the original body of mind, and the state of “mind feeling and communicating” is the operation of mind. He postulated a duality of mind as an a priori state and an experienced state.
Since the nature of mind cannot be seen or touched, Confucians viewed it as empty. Buddhists viewed the mind as nothingness. Nevertheless, the mind is not completely empty. The energy of yin and yang is implicitly embedded in the mind. When the mind that has remained calm, it takes an orientation toward something at a given moment, the energy of yin and yang is activated, enabling the mind to feel. This energy allows the mind to realize or embody itself through time and space, and also allows the mind to change into various shapes. Zhu Xi, the founder of Neo-Confucianism in the Song period, compared the nature of the mind to a mirror that is clean and clear, and explained that emotion is something reflected on the mirror of the mind — that is, a reflection of the mind’s mysterious movement. He referred to the change and function of the human mind as “mysterious perception, sensation and judgment”. This mysterious function of mind has two aspects: one is the self-control of trifling emotions and desires generated by the body, and the other is the moral or ethical mind, which is based on human identity. The ethical intelligence refers to a mind that feels shame when it sees something that is not right and detests injustice, a mind of humility and accommodation for other people, and a mind that can discern right from wrong. This mind comes from a place of truth and must be encouraged. This ethical mind provides clues for understanding four personalities: gentle and virtuous, righteous, polite and civil, and wise and sagacious. The mind based on human identity acts as a swinging pendulum, gradually leading us to a state of balanced composure as well as a state of authentic being.
Eastern essence-function theory states that the mind would be in a peaceful pause when the body is also paused, and the mind would respond and feel once the body is activated. In other words, states of the mind are understood to match states of the body. This postulation of a mind-body identity is predicated on the theory that both mind and body are subject to the same energies of yin and yang. For this reason, a human being is defined as one and at the same time as two, entailing an argument that a human being can be split in two while maintaining its wholeness. This is the unification of matter and mind. In relation to the tranquility and movement of the mind, Nancy discusses something of note in Corpus. He paraphrased a quotation from Freud that came to light after his death: “the soul is unfolding (étendue) outwards, [but of the movement of being unfolded,] nothing is known.” If we substitute this “soul” for “mind,” we can see that that mind resides peacefully inside and then migrates outward and unfolds itself. The mind is not able to perceive its own movement of expansion because its unfolding is carried out unconsciously and quietly. However, if the unfolded mind makes contact with the body, the body of the mind would move towards the outside and evoke the unification of stillness and movement in the manner of twoness (mind and body) within one (the self) and oneness within twoness. Nancy makes clear that the self’s “unknowing” is the authentic self, and the process of the soul moving toward the outside, registering bodily sensation and going through thoughts and experiences, is the means of the unification of stillness and movement through which the unity of mind and body is exposed to world. Neo-Confucianism long ago explained the phenomenon of the mind being unified with the body (that is its own outside) and expanding toward the world through its essence-function theory.
Nothing could illustrate the stillness and then movement of the mind more vividly and persuasively than an experience that came upon Kimsooja one day in 1983, when she was sewing a bedcover with her mother. Suddenly she came to an important realization:
Through the banal activity of sewing a bed cover with my mother, I experienced a surprising sensation that my own thoughts, sensitivity and action were all integrated. That unifying sensation was so private and surprising. At that moment, I was able to find some kind of possibility that can include within itself countless memories, pain, as well as affection and love in life, all of which I had buried within me until that moment. The warp and weft as the fabric’s basic structure, the raw sense of colour of our own fabric, the unification of the action of sewing up and through the two-dimensional fabric, the fabric and myself and the strange nostalgia that all of this evoked...with all of this I was completely enchanted.
Later, when describing this experience again, she recounted that when the sharp needle poked into the fabric, she felt the energy of the universe suddenly penetrating through her whole body. This surprising epiphanic experience not only marked the origin of her Sewing series but also helped form the spiritual archetype for her oeuvre. The coincidence of the tension of mind with that of the body in the act of sewing brought memories and emotions that had been buried deep inside the mind to the threshold of the unconscious. This in turn electrified and moved the artist’s body and mind. Kimsooja described how this experience of the unification of her mind and body gave birth to Sewing, in which the meaning of the needle and thread is rooted in oneness of mind and body. Just as mind and body are two sides of a real being, needle and thread are as one and, as a unified entity, do the work of sewing the fabric — which symbolizes the outside world or the infinite space between heaven and earth. In the installation Archive of Mind, the participants are given an opportunity to experience the same kind of epiphany through the ritualistic act of forming clay balls rolled between their hands.
When one is touched by an artwork, his or her mind is stimulated in response: “the tranquil and unstirred mind” begins to “communicate and stir” in response to the stimulus, thus, revealing itself. In the Sewing series, Kimsooja’s artworks have been structured in a way to best resonate with the stillness and the movement of mind. The bed cover is worked with needle and thread that symbolize the oneness of body and mind. The fabric, smoothly spread out, is a horizontal structure that accommodates the movement of the mind traversing over it. Against the backdrop of the horizontal fabric, the vertical movement of sewing through the warps and wefts represents the unfolding of the mind. The mind, in sync with the hand-movement of sewing, eventually brings to the surface the nature of being and emotion that has been sequestered in the unconscious. It is not just the repetitive hand movement that stirs the stillness of mind; the artist’s mind and body are stimulated on multiple levels. For example, the colorful, traditional fabric Kimsooja uses serves as a strong stimulus for the visual and tactile senses. Furthermore, the artist is inspired by the cultural implications of these silk fabrics. The vertical and horizontal structures in Kimsooja’s work are the most conspicuous visual stimuli that inspire the viewers.
...
The artist’s working method, which is to join squares of fabric along their widths and lengths and multiply them by sewing, also aligns with the structure of verticality and horizontality. To the question of what Geometry of Mind and Geometry of Body mean, answers may be found if one understands the principles of the three generative forces and the manifestation of heaven, earth, and human. Now let’s delve further into the geometry of the vertical and horizontal structure.
As suggested above, the geometry of the vertical and horizontal structure has nothing to do with reifying certain idealistic concepts, nor with the identification and classification of conceptual objects in a geometric lattice. The geometry of the vertical-horizontal structure in this essay refers to a method that helps one intuit the infiniteness of the universe or the intrinsic nature of the uncertainty of being, as well as intuit the state of balance between dualistic, antagonistic elements such as body and mind, or yin and yang. Geometric structuralization is a method to facilitate the observation and reflection of complex, often conceptual, notions. It is necessary to rely on such methods in order to have categorical, systematic or structural unity when contemplating the essence of the indeterminate consciousness called mind. Through this method we are able to reach the intuition of and reflect on such topics as body and mind, or yin and yang, all of which are indefinable by knowledge.
In a similar vein, Julia Kristeva, a semiologist, opts for a dualistic system of the semiotic and the symbolic in order to explain how the signification of poetic language is ingenerated from pulsion, which exists under the consciousness. It is, in fact, impossible to formulate the disorderliness and pulsation that flows and moves into a state of segmentation in a self-evident logic or axiom. Nonetheless, Kristeva hypothesizes that pulsion, the drive of desire, generates the ultimate signification of the text. She divides the process of signification into the strata of semiotic and symbolic, and investigates the interaction of these two. Consequently, she claims that signification is ingenerated out of the semiotic field in which the fragmented pulsion is condensed and subsequently connected to the symbolic field in which law, order, and social consciousness are concentrated. In other words, the two conflicting categories are connected in such a way that the semiotic mobility engages with the symbolic order, the former moving into the latter to compose signification.
There can be many possible interpretations for the vertical and horizontal structure that characterizes Kimsooja’s work. One would be as follows: (a) the expansion of mind construed as the expansion of the energy of pulsion in the field of the semiotic, (b) the integration of the body with the outside world interpreted as the unification with society and history in the symbolic field, and (c) the monistic dualism of body and mind construed as the formation of signification generated from the cooperation of the semiotic and the symbolic. The mind is the realm that is indefinite and uncertain, like the field of the semiotic. Yet it can be said that the mind’s own expanding energy — that is, the body — creates the meaning of “being” along with the order of the symbolic, such as sewing, the hand movement of rolling clay balls, or the somatic movement of yoga. As for how the pulsion that moves across the artist’s body and mind gives rise to certain meanings in the process of sewing, that is, at the moment of “poking the sharp needle” into the fabric, the artist explained: I experienced a surprising sensation that my own thoughts, sensitivity and action were all integrated. That unifying sensation was so private and surprising. At that moment, I was able to find some kind of possibility that can include within itself countless memories, pain, as well as affection and love in life, all of which I had buried within me until that moment. [...] the strange nostalgia that all of this evoked...with all of this I was completely enchanted.
Kimsooja mused that the meaning of her works is forged when subconscious memories and feelings are introduced to the consciousness, causing her to reflect on the innate nature of being. Is this not the true role of art? Art should let the artist’s hidden desires that have been forgotten or hidden in the mundane or everyday to be truly unfolded and expanded onto the horizon of the consciousness, and enable her or him to experience the epiphanic moment of recovering the original emotion and nature of being. It is for this reason that I sincerely recommend viewers immerse themselves and directly participate in the process through which the artist creates the meaning of her art, thereby relishing the opportunity to relive their own memories and feelings as well as intuit the nature of being.
— Extract of Essay from Exhibition Catalogue 'Kimsooja: Archive of Mind' published b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2017. pp.156-269.
서영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2017
국립현대미술관은 현대자동차 후원의 ‘현대차 시리즈 2016’을 위한 초대작가로 김수자를 선정했다. 2016년 7월 27일부터 2017년 2월 5일까지, 서울관 제5전시실과 전시마당에 작가의 최근작을 포함한 아홉 점의 작품들을 전시했는데, 출품작들은 평면과 입체, 오브제, 설치 그리고 비디오를 오가는 다양한 매체들로 구성됐다. 그만큼 이번 전시는 작가의 폭넓은 작업 영역과 자유로운 소재 사용을 한 눈에 조망해보는 기회가 됐다.
김수자는 국제적인 활동 경력만 해도 거의 30년에 달하는 중진 작가이다. 그런 그가 이번 국내 전시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게 보여주려 한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전시 때마다 기대를 뛰어넘는 다양한 매체와 설치 방식을 선보였던 그지만, 이번 전
시에서는 그 자신이 설정한 작품 표제와 거기에 담긴 의미에 더 큰 주목을 하게 만든다. 가령 이번에 처음 소개되고 유독 눈길을 끈 두 작품에 각각 ‘마음의 기하학’과 ‘몸의 기하학’이란 제목을 붙여놓았을 뿐 아니라, 다른 전시작에서도 제각각 ‘몸’의
확장 혹은 ‘마음의 확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런 결정 덕분에 전시를 둘러본 사람들은 작가가 이번 기회를 통해 마음과 몸이라는 존재의 이원적 분화를 게시하고자 했음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우리에게 친숙한 몸과 마음이란 테마를 통해 그리고 두 개념을 확장시킴으로써, 그는 실체와 비실체, 존재의 안과 바깥, 나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사유할 수 있는 장을 펼치려 했다고 생각된다.
전시의 제목부터 한글로 ‘마음의 기하학’, 영문으로 ‘Archive of Mind’라고 명시된 점만 보더라도, 이 전시가 감각적 매체 사용이나 표현 형식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마음’이라는 관념적 내용을 성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신중한 관객이라면, 작가의 의도가 예상 밖의 표현 수단이나 형식을 드러내 보여 자신의 현재를 차별화시키는 일에 있지 않음을 간파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관람 내내 무엇을 주목했을까? 아마도 이들은 작품이 어떻게 제작됐는지가 아니고 무엇을 표상하고 있는지를 궁금하게 여겼을 것 같다. 외형적 편차가 큰 이 작품들이 대관절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전체 작품들이 가리키는 의미는 무엇이고 작업의 근본 동인은 무엇인지, 또 이번 전시 작품들을 연결해주는 일관된 주제는 무엇인지를 질문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가정된 물음들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면서 글을 준비하기로 했고, 글의 방향도 이 독창적이고 사색적인 프로젝트가 재연해내는 내용을 풀어보는 쪽으로 맞추었다.
지금까지 김수자의 작품을 분석하거나 설명하는 글들을 보면 주로 문화인류학, 심리학, 철학, 종교학, 사회학, 여성학 등의 범주에서 취한 개념들로 풀이하곤 했다. 필자 역시도 그런 참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선행한 글들과 다
른 차이가 있다면, 본문에서 논의할 핵심 주제가 그동안 다뤄지지 않았던 ‘몸’과 ‘마음’이라는 점과 작품에서 이것이 각각 어떻게 고려되고 표현이 됐는지, 그리고 두 개념이 어떤 관계인지를 밝히려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동양의 철학, 종
교적 사유와 서양의 사상을 함께 참조할 것이다. 그리고 논점을 수미일관하게 구축하기보다는, 동서양의 관련 사유들을 작은 단위의 글들로 배열할 것이다. 이어 사유의 각 묶음들이 맥이 잘린 상태로 배치된 가운데, 그 결락된 자리에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사유의 새 국면이 돌출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행할 것이다.
‘마음’ 자체를 규명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대체로 마음은 사람의 성격이나 품성을 뜻하고, 생각이나 감정을 담아두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영어로 마음인 ‘mind’는 머리의 정신, 생각을, 불어로 마음에 상응하는 단어인 ‘âme’는 영혼, 의식을 뜻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한글 ‘마음(心, 心性)’의 뜻과 영어 ‘mind’의 뜻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이 차이는 동서양의 사유방식의 차이에서 나온다고 여겨진다.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정신과 물질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생각해왔다. 정신은 인간의 속성이고 물질은 사물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물과 상관없이 저 스스로 사유하는 인간은 정신적 존재로, 물질적 외부 세계와는 무관한 자기 충족적인 실체라고 보았다. 정신의 차원인 마음 역시 물질과 관계없는 자기 완결적 실체여서, 객체인 대상들을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주체로 간주되곤 했다. 따라서 정신으로서 마음은 사유하는 이성적 활동의 영역으로, 신체를 포함한 물질계와는 아무 공통점이 없는 차원으로 구획됐다. 이것이 정신과 물질은 아무런 교섭이 없다는 물심(mind and body)이원론의 근거이다. 하지만 동양 사상은 이것과 다르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체, 마음과
몸의 양자가 서로 분별되면서도 서로에 대해 열려있고 불가분리(不可分離)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왔다. 마음과 몸이 속과 겉처럼 서로 분별되면서도, 지배와 종속의 대립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의 관계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동양의 물심일원론, 즉 이원적 일원론은 이렇게 정신과 물질, 마음과 몸이 실체의 표리(表裏, 안과 밖)라는, 즉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내외의 일원화된 관점 위에서 확립되었다. 또한 마음과 몸이 궁극에 닿으면, 파열하여 서로 융합하여 하나로 돌아간다고 본다. 이 하나가 우주만유의 근본이자 본래적 시작과 끝이다. 주역에서의 태극, 유학(성리학)에서의 리(理),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개공(一切皆空)의 공(空)이 그것이다.
최근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에서 탈피하여 물심일원론에 공명하는 서양 사상가들도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장-뤽 낭시이다. 낭시는 자신의 책 『코르푸스 Corpus』에서, 그동안 정신에 비해 폄하되었던 몸에 초점을 맞추고, 통상적인 몸과 마음의 불평등한 관계를 재정립하는 시도를 했다.[1] 우선 그가 내세운 전제는 몸이 단독자로서 정신의 지배 아래, 정신에 합병된 그런 몸이 아니란 것이다. 그에 의하면 몸은 밖을 향해 열려 있으며, 밖으로 드러나고 펼쳐지는 몸, 닫히지 않은 몸이다. 흔한 일상 대화에서 영혼이나 정신에 상반된 것으로 떠올리던 몸, 살덩어리로 꽉 차고 닫힌 독자적인 어떤 것으로서의 몸이라는 개념을 부인한 것이다. 낭시가 말하는 몸은 내면의 영혼(âme, psyché, 마음)에 대한 낯선 객체가 아니라, 영혼과 함께 공존하는 상관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몸은 영혼의 확장이고 그것의 겉이며 바깥이다. 우리가 스스로 저 자신이라 생각하던 마음의 밖으로의 확장이 몸인 것이다. 이렇게 확장과 관련된 몸은 외부로 열려있는 존재인 동시에 영혼에 의해 침투되는 것이어서, 몸은 영혼(마음)의 바깥에 있다고 말해진다. 그러면 몸은 보통 저 자신이라 느끼는 영혼에 대한 차이가 되며, 영혼의 타(l’autrui, the other)로서 스스로를 형성하게 된다. 반면에 몸의 대립 쌍으로서의 영혼은 몸에 대해 무엇인가? 영혼 역시 몸에 대해서 차이이고, 타자이며, 몸의 바깥이 될 수밖에 없다. 몸의 바깥 존재가 영혼 혹은 마음이라면, 이 바깥 존재에 의해 몸은 자신의 안을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몸은 저 스스로인 마음에 대해서 바깥이고, 이를 뒤집을 경우 몸에게 몸의 바깥 존재는 마음인 거다. 그리고 이 바깥 존재에 의해 몸은 자신의 안, 다시 말해 곧 저 자신이 몸이라고 느끼는 영혼을 가지게 된다. 이때 몸의 안 또는 몸의 영혼이란 몸에의 접촉 감각을 이르는 명칭이다.[2] 이렇게 자기 내면성이 외면성과 마주하고 연결되는 것, 이것이 바로 몸과 영혼의 상관성이며, 서로에 대해 안과 밖이 되는 이 상호 공존의 존재 관계를 이 글에서는 몸과 마음의 이원적 일원성의 관계로 간주하는 것이다. 앞에서 필자는 ‘마음’ 자체를 규명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썼다.
앞에서 필자는 ‘마음’ 자체를 규명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고 썼다. 왜냐하면 마음을 명확히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논리로 파악되거나 어떤 경계로 확정 지을 수 없는 것이 마음이니까. 이 앎의 불가능성, 즉 우리 오성(悟性)의 한계를 넘어서는 마음을 통찰하려면, 자기 완결적 주체에 대한 확신을 깨트려야 하고, 닫힌 이기적 자신과의 결렬이라는 경험을 해야 한다. 이어 마음이 밖을 향해 열려 있음을 확인해야만 한다. 마음의 바깥-이것은 마음의 한계이기도 하다-을 무엇으로 부를 수 있을까? 아마도 존재론에서는 몸, 윤리학에서는 타자, 종교철학에서는 자연, 세계, 우주로 부를 것이다. 스스로를 자기 자신으로 느끼는 이 마음이 바깥의 몸 혹은 물질, 자연, 우주로 열리고 펼쳐질(unfolding) 때-낭시가 영혼의 확장이라고 말한 바로 그 과정-, 비로소 우리는 내면으로 끊임없이 함몰되는 주체 중심의 폐쇄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와 낭시가 강조했던 저 이타적인 ‘함께-있음’의 공존의 관계도 이런 것이다. 오직 자아만이 주체라는 자기중심적 억견을 넘어 자기 바깥, 즉 몸, 타자, 공동체로 펼쳐지면, 이 외부와의 접촉(le toucher)을 통해, 영혼은 내재성의 한계를 넘어선
다. 그리고 영혼과 육체, 마음과 몸이 ‘함께 있는’ 존재, 즉 ‘복수적 단일 존재(être singulier pluriel)’가 바로 우리의 실체임을 인식하면, 우리는 안과 밖의 동형 구조인 자아와 타자, 자아와 외부세계 내지는 인간과 자연도 본래 같이 나누고 함께 소통하는 관계임을 저절로 자각하게 된다. 필자는 이 복수적 단일 존재 개념을 민주적 공동체 논리로 확대시키기보다, 보편적인 물(
物)과 심(心), 물질과 비물질, 나아가 유한과 무한, 색(色)과 공(空)의 이원적 일원성 개념으로 연결시키고자 한다.
몸과 영혼의 이원적 일원성 개념을 개진한 낭시가 핵심 논제인 영혼의 확장에서 가장 먼저 불러낸 상대(l’autrui, the other)는 앞에서 말했듯 몸이다. 영혼은 우선 저 자신의 차이자 타자이며, 바깥인 몸에 가 닿으려 한다. 그런데 영혼과 불가분인 이 몸의 전체 피부와 눈, 얼굴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를 향해 돌려진 것이다. 눈이 고개를 돌려 저 자신 속의 영혼을 쳐다볼 수는 없다. 그래서 영혼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바깥으로부터 나에 닿지, 안으로부터 나를 접촉하는 것이 아니다.’ 바깥을 향한 몸과 접촉하려는 영혼은 이를 위해 에고(ego) 밖으로 나가야 하며, 저 자신의 노출(l’exposition du soi, l’expeausition)인 몸의 피부를 통해 자신과 접촉하게 된다. 몸에 가 닿고 접촉하면 결국 영혼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영혼의 확장은 이렇게 바깥을 향해, 바깥의 일부로 있는 몸과의 만남으로 구원된다. 에고 밖의 에고, 나와 세계의 경계인 몸 덕분에, 영혼은 주체의 내면으로 기울어짐 없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평형을 이룬 저울처럼 내면과 몸 양쪽으로 균형을 이루는 영혼과, 주체도 대상도 아닌 채 영혼의 바깥인 몸은 우리의 사유를 새로운 방향으로 접어들게 한다. 김수자 작가의 몸과 마음에 관한 작품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런 논의로부터 해석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낭시의 몸과 영혼에 관한 확장적 담론에 대한 참조는 여기서 그쳐야겠다. 그의 이후의 사유가 몸의 실존적 유한성에 대한 논의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동체에서 나의 타인을 향한 외존(外存, ex-position)은 어떤 경우에도 지금 여기에 있는 유한한 내 몸과 타인의 유한한 몸이 서로 만나서 이루어지므로, 그렇게 전개가 된다. 하지만 김수자의 ‘몸과 마음의 기하학’ 연작에서는 일상적인 사람들의 유한한 공존 양태가 관건이 아니다. 오히려 초점은 절대 혹은 무한과 마주하는 우리 자신의 본래적 존재 양태에 맞추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낭시의 담론을 비켜 나간다. 그리고 존재의 한계인 무한으로 접근하는 경험을 위해, 대부분의 작품들은 몸과 영혼의 이원적 일원성을 상징하는 기하학적 구조와 균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기하학적 균형의 추상성은 우리를 직관적으로 또 거의 무의식적으로 절대와 무한으로 다가가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압도적인 무한 내지 절대에의 접근은 우리를 일상의 평균적인 존재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한편 본래적 실존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 있는 우리는 보통 존재의 소멸인 죽음을 회피하거나 망각한 채로 살아간다. 하지만 죽음은 엄연히 현존재의 근저에 묻혀 있으며, 가려졌더라도 언젠가는 그것과 반드시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존재의 한계인 죽음은 존재자에게 앞으로 닥칠 유일무이한 가능성이자, 존재자에게 본래부터 있던 원천적이고도 고유한 본래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죽음에 이르는 존재가 바로 본래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존재론적 관점을 처음 피력했던 철학자가 마르틴 하이데거이다. 그는 『존재와 시간 Being and Time』에서 죽음에 이르는 운명의 존재를 본래적 존재라고 불렀다.[3] 그리고 이 같은 존재의 본래성(eigenlichkeit)이 일상의 현존재(dasein)를 본래적 존재인 실존의 존재로 변양시킨다고 하였다. 즉, 유한자인 내가 마음속으로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미리 예상(anticipation)해둠으로써, 그래서 자신을 죽음을 향해 기투함(던짐)으로써, 죽음-무(無)의 완전한 가능성을 자기 삶 안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에는 실존의 존재자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일상의 우리는 이렇게 존재자의 예상된 조건인 죽음을 인정함으로서 자기 완결적 에고로부터 탈피할 수 있을뿐더러, 존재자의 가능한 전체 존재-탄생 후부터 죽음 직전까지의 존재-를 확보함으로써 자신의 본래적 가능성 앞에 직면할 단서를 마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죽음에 이르는 본래적 존재’ 개념은 앞에서 말했던 몸과 마음의 이원적 일원성 개념과 상관이 있는가? 필자는 양쪽 개념이 서로 상관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의 이원적 실체인 인간은 뛰어넘을 수 없는 죽음이라는 저 하나의 절대적 무를 향해 스스로를 열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 실존주의에서 죽음은 존재의 부정이고 소멸이므로 그 너머를 적극적으로 사유하지 않는다. 현존재가 자신의 죽음을 예상한다 하더라도 죽음의 실현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추구하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동양 전통 사상에서는 영육의 죽음을 소멸이 아니라, 존재가 무한한 절대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 내지는 무한과 합치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존재의 의미는 오히려 역동적 절대인 태극, 무한한 열림을 뜻하는 공 혹은 무위한 자연의 개념들로 확장이 된다. 그러므로 동서양에서 존재의 본래성을 결정하는 차원이 죽음이든지 아니면 무한한 절대이든지 하는 차이가 있어도, 존재의 완전한 가능성을 개시하는 계기인 죽음 혹은 궁극의 무한이 우리의 존재 의미를 정립한다는 사실을 긍정하는 일은 같다.
몸과 마음의 이원적 일원성에 대한 확인에 이어, ‘몸의 기하학’, ‘마음의 기하학’처럼 작품 제목에 명기돼 있는 ‘기하학’의 의미를 살펴보려 한다. 전시된 작품들 자체가 분명히 입증하고 있듯이, 작가가 의도한 ‘기하학’은 도형이나 공간의 성질을 규명하는 수학 연구도, 원, 삼각형 따위의 도형들을 배열하는 어떤 미술 양식도 아니다. 그의 기하학은 몸 혹은 마음으로 전제된 주제를 수리적 방식이 아닌 직관의 방식으로 시각화해내는 표현 방법에 대한 이름이다. 작가는 이 기하학의 방법으로 다양한 매체들을 사용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몸과 마음, 물질과 의식, 유한성과 무한성, 존재의 본래성과 비본래성 등의 이원적 대립 구조를 환기시킨다. 그리고 기하학적 구조를 통해 각자가 존재의 가능한 양태들을 생각해보도록 이끈다. 이러한 기하학적 표현을 비유해보면, 통계학자들이 많은 양의 복잡한 정보를 도형이나 그래프라는 시각적 모델로 바꾸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논리학자들이 일반적 원리에 대해 구체적이고 자명한 사실을 논거로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연역적으로 확증해내는 방법과 매우 흡사하다. 그만큼 개념적인 표현 방법이다. 때문에 시각예술로서 이미지와 오브제들을 제시하면서도 주관적 감정 표현에 빠져들지 않고, 직관적 인식과 연역법적 개념의 표상으로 공감대를 넓히는 그의 작품은 자연스럽게 개념예술로 분류가 된다.
필자는 몸과 마음의 이원적 일원성을 잘 표현해줄 수 있는 기하학적 구조들 중 하나로 수직 수평의 구조를 말하고 싶다. 실제로 198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작가의 작품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이 수직 수평의 구조, 즉 수직선과 수평선이 상호 교차해서 균형을 이루는 십자형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두 상반된 방향으로 진행하는 선들이 만나는 이 구조는 상호 교차하는 접촉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균형을 이루면서 무한하게 펼쳐지는 확장형 운동감을 드러낸다. 안과 밖으로 소통되는 열린 구조인데다, 각도를 돌릴 때마다 방향성이 무한히 변화될 수 있는 구조이다. 또한 수직선과 수평선의 두 선을 직각으로 교차시키는 순간, 4개의 방향이 생기고, 이어 동일한 교차점에서 선들을 두 배수로 거듭 증가를 시키면, 8개, 16개, 32개, 64개… 로 방향을 가리키는 수들이 늘어나게 된다. 동양 전통 종교철학에서는 이 수들을 시, 공간을 암시하는 방향이나 위치로 보아서, 가령 유교의 한 경전인 『주역(周易)』에서는 방향을 가리키는 64가지 기호들인 64괘가 존재의 다양한 속성들을 상징하고, 불교의 태장계 만다라에서는 동서남북의 4부처와 동북 동남서북 서남의 4보살을 각각 담은 8장의 연꽃잎들인 ‘중대팔엽원(中臺八葉
院)’이 중요 도상으로 전래되어 오고 있다. 또한 불교의 법륜(法輪)을 뜻하는 수레바퀴의 8개 내지 16개 바큇살로 온 세상을 가리키는 동시에 이 수레바퀴로 어느 때, 어느 곳이든 굴러가 닿는 부처의 법을, 그리고 천지 사방의 방향에 대한 비유로 어디든 막힘없이 두루 통하는 상태를 뜻하는 화엄종의 ‘원융무애(圓融無碍)’의 원형 이미지가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이것들은 모두가 본래 음과 양, 하늘과 땅 같은 이원적 구조에서 출발하여, 영원한 시간, 막힘없는 무한 공간의 우주를 상징하는 기하학적 도상들로 전개됐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한데 『주역』에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천지인삼재’ 개념도 있다.[4] 이 개념은 독특하게 천지의 이원적 체계 위에 세 번째 우주 원리로 인간을 덧붙인다. 우주가 본래 하늘과 땅의 두 근원으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하늘(天)과 땅(地) 사이에 매개체 역할을 하는 인간(人)이 있어야만 비로소 우주의 운행이 제 의미를 띨 수 있다는 개념이다. 세상이 하늘과 땅 사이에 펼쳐져 있다는 천지이원론은 인간(人)의 결여, 즉 인간 부재로 말미암아 ‘마음씀’이 없는 무심(無心)한 자연관이 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천지자연의 운행에 인간을 참여시킨 삼재론은 인간의 위치를 천지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천지를 연결하는 중심점이 되게 함으로써, 전통적인 자연관을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적 사고로 전환케 한다. 이로써 동양의 자연철학은 인간을 근본으로 하는 윤리학으로 전이되며, 이 후자가 바로 유학이다. 그래서 유학자인 자사(子思)가 저술한 『중용(中庸)』을 보면, 인간이 천지의 화육(化育, 변화와 작용)을 도울 수 있고, 천지의 화육을 능히 도울 수 있어야 인간이 천지와 더불어 삼재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5] 이어 인간이 자기를 완성하는 것은 하늘에서 받은 ‘성(性)’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며,
타자를 돕는 것은 천지의 작용을 돕는 것과 한 가지라고 하였다. 이것이 『중용』이 말하는 명(明, 질서), 즉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천지의 질서를 이루는 일이며, 그 실천을 통해서 인간은 세상의 균형과 조화에 참여하는 삼재가 된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삼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필히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실천적 태도라 할 수 있는 윤리적 태도이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성(性)-인간에게 있는 성이 하늘의 이치인 리와 동질이라는 성즉리(性卽理)는 유학의 핵심 명제이다-을 따라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항상 수양해야만 한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심과 비도덕성을 다스리고 혼탁한 감정을 절제하는 수양을 하면, 중용(中庸, golden mean)의 균형 상태, 즉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평상심으로 정도를 지켜 나아가는 상태에 달하게 된다. 이 중용이 이루어지면 인간은 하늘의 이치대로 자기 본연의 성(性)을 다할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하늘과 땅 사이의 무량한 변화에 조응하며 조화를 이루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하늘과 땅의 화육을 돕는 매개자인 인간이 부재하거나 혹은 있어도 그런 참여를 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가정해보면, 천지는 각각 독립적으로 분리된 채, 상호 무관한 상태로 머물 고 말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간은 천지와 더불어 삼재가 되는 일이 당연하며, 이 당위성을 토대로 인간은 중용을 실행하려 노력하면서, 천지와 만물을 연결하는 매듭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마주하는 세상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원적 구조로 정립된 세계이다. 하지만 여기에 인간이 매개자가 되어 개입하면서, 천지(음양)는 서로 어우러져 돌아가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세계는 이원적 일원성의 실체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거듭 주목해야 할 점은 하늘과 땅의 두 요소가 만나는 균형점이 바로 인간 존재란 사실이다. 비록 그 자신이 유한자일지라도, 인간은 무한한 우주인 수직으로 치솟은 하늘과 수평으로 펼쳐진 땅을 연결하는 잠재적인 접촉점이 된다. 한데 하늘의 기운인 양(陽)과 땅의 기운인 음(陰)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존재는 인간만이 아니다. 인간 외에도 삼라만상이라는 만물이 있다. 하지만 천지의 변화와 작용을 도와서 삼재의 우주원리 안에 드는 것은 무심한 만물이 아니라 마음씀이 있는 사람이다. 사람은 천지인의 삼재 가운데서 유일하게 몸과 마음을 가진 존재, 즉 유심(有心)한 존재여서, 무심한 하늘과 땅 그리고 만물을 일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존재자로 판명된다. 천지의 이치인 리(理)와 동질인 자신의 본성, 즉 성(性)을 충실히 수행하면, 인간은 우주와 합일할 수 있으며, 그 변화에 참여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자사가 저술한 『중용』에서는 인간이 획득하는 존재론적 차원을 세상 안에서 화합과 일치를 이루는 중화(中和)의 차원이라고 말한다. 이 중화를 다시 인성론의 용어로 바꾸어 말하면 평정 혹은 평정심이다. 인간이 음과 양 사이에서 조화로운 중화에 들면, 몸과 마음이 희로애락에 휩쓸리지 않는 ‘중(中)’의 상태가 되고, 설혹 감정이 일어나더라도 모두 절도에 맞는 ‘화(和)’가 되어, 가장 이상적인 존재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중화가 고대 그리스의 에피쿠로스학파가 추구했던 아타락시아(ataraxia)의 개념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인간 삶의 행복이 평정하고 안정된 심신의 상태인 아타락시아에 있다고 본 고대 그리스인들과 유사하게 동양 유학자들도 천지의 이치를 따라 심신을 다스리는 중용을 지키면, 불균형이나 치우침 없이 자신의 본성을 인식하는 쾌(快)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글에서 언급한 기하학의 의미 다시 말해 수직 수평 구조의 안정된 균형이 암시하는 내용도 그렇게 유학이 지향하는 존재 상태인 심신의 치우침 없는 평정이 아닐까 한다. 성(性)의 이치에 기초한 심신의 안정된 균형(즉, 중화)을 이미지로 표현할 경우, 이것은 자연스럽게 수직수평 구조의 균형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의도한 내용이 반드시 유학-더 정확히는 성리학-의 명제들과 일치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존재와 무, 삶과 죽음의 이원성을 일원화하여 죽음에 이르는 실존의 존재를 본래적 존재라고 간주한 것 같이, 동양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무한의 절대적 시공간의 이쪽에 있는 인간 삶을 중심으로, 인간의 능동성을 중시하며 존재의 양태를 규명하고자 한 것은 동일하다고 본다. 다만 유학에서는 존재의 본래적 시작과 끝의 원천이라고 생각되는 우주, 즉 천지의 음과 양의 세계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고, 그래서 인간이 천지의 이치(理)와 결부된 성에 큰 비중을 두고 음양의 조화대로 살아가는 균형을 중요시한 고유한 특성이 있다.
한편 이번 전시에 처음 소개된 설치 작품인 <마음의 기하학>을 염두에 두고서, 몸과 하나를 이루며 동시에 본연의 성(
性)과도 통하는 ‘마음’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주목해보자. 이 마음은 무엇이라고 규명되기보다도 어떤 상태로 있는 것인가 하고 질문되어야 하리라. 사실 우리의 마음을 스스로 관찰해보면, 이것이 본래는 모양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잠재 상태로 머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생기면, 마음은 비로소 생기는 것 같이 일어나서 지각과 감정을 느끼는 현실
상태로 이동을 하게 된다. 고요한 마음의 잠재 상태가 우리의 시공간을 통과하면서, 겉으로 드러나고 작용하는 현실화된 상태로 전환되는 것이다. 『주역』의 「계사전」에서는 이렇게 아직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마음 상태를 ‘적연부동(寂然不動, 고요하고 동요하지 않음)’이라 하고, 밖으로 나타나 감응하는 마음 상태를 ‘감이수통(感而遂通, 느끼고 통함)’이라 하였다. 유학자인 정이(程頤)는 이 ‘적연부동’이 마음의 본체(體)이며, ‘감이수통’은 마음의 작용(用)이라 불렀다. 즉, 마음의 상태를
선험적 상태와 경험적 상태로 이원화하는 설명을 한 것이다.[6]
마음의 본성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으므로, 이 심(心)을 허(虛)하다고 말하기도-불교에서는 이를 공(空)이라 함-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아무 것도 없이 텅 빈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음과 양의 기운이 함축돼 있다. 그래서 고요하게 머물던 마음에 어느 순간 대상에의 지향성이 생기면, 마음 속 음양의 기운이 동하여 실제로 느끼고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음양의 에너지는 마음을 시공간을 통해 현실적으로 발현될 수 있게 하고, 또 여러 모양으로 변할 수도 있게 하는 동력이다. 중국 송대에 신유학을 창안한 주희(朱熹)는 마음의 본성인 성(性)을 아직 아무것도 비추지 않은 깨끗하고 맑은 거울로 비유한 한편, 마음이 동하여 작용하는 정(情)을 저 맑은 마음의 거울에 무엇인가 비추어져서 마음이 신묘하게 움직이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마음(心)의 변화와 작용을 요약해서 그는 마음의 ‘허령지각(虛靈知覺)’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마음이 대상에 대해 작용하는 허령지각은 하나일 뿐이지만, 그 내용은 두 가지여서, 몸에 의해 생겨난 사사로운 감정과 욕망의 허령지각을 절제해야 하는 반면, 마음의 실체인 성(性)을 원리로 한 허령지각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의 도덕적 마음씀을 일으키므로 이를 북돋아야 한다고 말했다.[7] 후자의 네 가지 마음씀은 각각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실마리가 된다. 마음은 대상을 향한 허령지각을 주재하는 주체이며. 성(고요함)과 정(느끼어 일어남)을 관통하기에 (心統性情), 성을 원리로 한 마음이야말로 우리를 평정의 균형으로 이끌 수 있을 뿐 아니라 존재의 본래적 상태로 향하게 하는 추가 될 수 있다고 하겠다.
한편 동양에서는 고요히 멈추어 있는 마음을 정지 상태의 몸으로 비유하고, 감응하는 마음을 움직이고 활동하는 몸으로 비유하기도 한다(體用論). 마음의 고요한 정지와 움직임의 양면을 또한 몸의 쉼과 운동으로 간주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과 몸이 동일하게 간주될 수 있는 근거는 둘 다 음양의 기운을 바탕 삼아 정지하거나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체로서 인간이 하나이면서도 둘(몸과 마음)이고, 둘이면서도 하나라는 물심일원론으로 규명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마음의 정(靜, 고요함)-동(動, 움직임)과 관련하여, 낭시가 『코르푸스』에서 프로이트 사후에 공개된 메모 하나를 인용한 내용은 흥미롭다. 요약하면, ‘영혼은 밖으로 펼쳐진다(étendue, unfolding). 하지만 그 펼쳐짐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내용이다.[8] 즉, 영혼을 마음으로 바꾸어 말하면, 안으로 고요히 머물던 마음이 이동해서 밖으로 펼쳐지지만, 이 확장의 움직임을 막상 마음 저 자신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음의 펼쳐짐은 무의식으로 고요히 진행되므로 그러하다. 하지만 이 펼쳐진 마음이 몸에 닿으면, 마음의 몸은 바깥을 향해 움직이면서, 하나(자아) 속의 둘(심, 신)이자 둘 속의 하나라는 방식으로 일치의 정-동을 일으키게 된다. 즉, 낭시는 이렇게 의식 아래에 있는 자아의 알지-못함[un ne-pas-(pouvoir/vouloir)-se savoir]이야말로 진정한 자아의 본모습일 뿐 아니라, 마음(psyche)이 바깥을 향해 움직이면서 몸의 감각을 동요시켜 사유와 경험을 하게 되는 과정이 세계에 노출되는 심신 일원의 일치된 정-동이라고 밝힌다. 마음이 자신의 바깥인 몸과 하나가 되어 움직이며 세계로 확장되는 일, 이를 두고 신유학은 이미 오래 전에 체용론(體用論)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마음의 정-동에 관한 한, 김수자 작가의 오래 전 경험담만큼 생생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이 될 수 있는 것도 없다. 이 에피소드는 1983년 어느 날 자신의 모친과 더불어 이불보를 시침하면서, 불현듯 중요한 깨달음을 얻는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가 모두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다. 그 순간 나는 그 동안 묻어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천이 갖는 기본구조로서의 날실과 씨실, 우리 천의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들며 꿰매는 행위와 천과의 자기동일성,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완전 매료되었다”.[9] 또 훗날 작가는 이 경험을 다시 언급하며, 천에 뾰족한 바늘을 꽂는 순간 갑자기 온몸을 관통하는 우주의 에너지를 느꼈다고 회상했다. 이 우연한 경험의 놀라운 일화들은 그의 바느질 연작의 출발점과 전체 작업의 정신적 원형이 무엇인지 분명히 환기시켜준다. 마음의 집중과 몸의 긴장이 일치된 바느질의 순간-<마음의 기하학> 워크숍에서 관객이 두 손으로 흙 공을 굴리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마음속 깊이 파묻혀있던 기억과 감정들이 무의식의 경계 밖으로 솟아나 심신이 감동의 전율을 체험하는 것이다. 작가가 이 경험을 바느질 연작의 출발점이라고 고백한다면, 필자는 이 경험이 작가의 마음과 몸의 일치를 노출시킨 최초의 사건이었다고 본다. 그리고 바늘과 실의 의미가 바로 이 심신 일원의 확장 개념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과 몸이 실체적 존재의 양면이면서도 바깥세계에 대해서는 하나이듯이, 바늘과 실도 서로 연결된 채 하나가 되어 바깥세계 혹은 천지간의 무한 공간을 뜻하는 천들을 꿰매어 나간 것이다.
작품에 대한 감동은 현상적으로 가만히 있던 마음이 동요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적연부동의 고요한 마음이 어떤 일을 마주하게 됐을 때, 그에 반응하여 감정이 통하고 움직이는 감이수통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특히 바느질 연작의 경우, 이러한 마음의 정(靜)과 동(動)의 구조가 매우 확연하게 드러난 편이다. 몸과 마음의 일원성을 상징하는 바늘과 실이 마주하는 이불보, 이 평평하게 펼쳐진 천은 그 위에서 전개될 마음의 움직임을 수용하는 물적 토대이자 수평의 구조이다. 그리고 천의 씨실과 날실 사이를 위 아래로 넘나드는 바느질은 수직 구조의 운동으로 마음의 펼쳐짐 내지 확산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전제가 된다. 이렇게 바느질의 손동작에 감응하면서 마음은 급기야 무의식 아래 은폐됐던 존재의 본성과 감정을 의식의 지면 위로 떠올리는 것 이다. 물론 반복된 손동작만이 고요하던 마음을 동요시키는 유일한 계기가 아니다. 작가의 심신은 복합적으로 자극을 받는다. 가령 오방색 이불보의 광택, 색, 질감에 의해 시각과 촉각의 감각이 자극될 뿐 아니라, 오방색 비단 천의 전통적, 문화적 함의에 의해서도 자극을 받는다. 결국 이 모든 마음의 복합적인 변화 과정을 기하학적 이미지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수직 수평 구조의 이미지가 될 수밖에 없다.
작가가 1980년대 중후반에 바느질 연작의 제목으로 선택했던 ‘ㄱ, ㄴ, ㄷ, ㄹ’도 역시 수직선과 수평선이 결합된 구조를 보인다. ‘ㄱ, ㄴ, ㄷ, ㄹ’은 한글의 17개 자음자들 중 첫 네 가지 기호들이다. 15세기에 한글을 창안한 학자들은 훈민정음 제자(制字)의 합리적 체계를 위해, 『주역』의 질서정연한 음양오행의 원리와 천지인삼재의 모양을 본뜨는 상형의 원리를 따랐다. 가령 네 기본 자음자들인 ‘ㄱ, ㄴ, ㄷ, ㄹ’은 소우주로 여겨지는 사람의 몸, 그 중에도 발음기관인 혀가 각 기호를 발음할 때의 모양을 본뜬 것이며, 세 기본 모음자들인 ‘•, ㅡ, ㅣ’는 ‘천, 지, 인(하늘, 땅, 사람)’의 모양을 본뜬 상형 원리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하늘의 형상으로 둥근 점을, 땅의 형상으로 평평한 수평선을, 사람의 형상으로 서있는 수직선을 모음 형태로 삼았고, 음양의 원리대로 하늘-‘•’은 양기(陽氣)를, 땅-‘ㅡ’은 음기(陰氣)를 그리고 사람-‘ㅣ’은 천과 지, 음과 양을 잇는 중성(中性)의 기운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또 한글에서는 자음과 모음이 결합된 글자가 완벽한 기하학 형태인 정사각형의 공간 안에 맞추어지는데, 그 안에서 자음, 모음의 배열은 하늘을 뜻하는 초성, 사람을 뜻하는 중성 그리고 땅을 뜻하는 종성의 순서로 구성이 된다.[10] 이처럼 인간을 중심으로 하늘과 땅의 배열과 음양의 질서를 따르는 한글 제자의 원칙과 동일하게, 바느질 연작에서도 하늘
과 땅, 물(物)과 심(心), 음과 양의 관계를 보여주는 수직 수평의 구조적 원리가 작용한다. 작가가 자신의 첫 작품들-바느질 연작은 그의 데뷔작임-에서 보여준 제작방식, 즉 바느질로 사각형 천들을 가로와 세로로 연결하며 확장해나가는 방식은 가장 최근작들인 ‘마음의 기하학’과 ‘몸의 기하학’이 암시하는 확장적 조형질서, 즉 수직 수평의 기하학적 구조와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효한 도움이 된다.
우주 혹은 세계는 본질적으로 확장적이다. 워낙 광대하고 무한해서,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는 절대적인 미지의 타자로 간주된다. 그러면서도 인간 생명의 시작과 끝의 원천인 우주는 인간을 비롯한 만물의 생성과 변화 그리고 소멸을 포용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또한 소우주로 비유되는 인간의 몸과 마음의 작용도 객관의 논리로 설명되거나 질서정연한 체계로 규명될 수 없다. 그러면 이러한 세계와 인간 전체를 수 직 수평의 구조 같은 하나의 단일한 체계 안에 가두어 놓기가 가능한 일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필자는 김수자의 작품론에서 수직 수평의 기하학적 구조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짧게 해명해보려 한다.
앞글에서 암시했듯이, 수직 수평의 구조라는 기하학은 어떤 이상적 관념을 구체화해서 부동의 사유로 포획하거나 그것을 물신화(fetishize)하는 일이 아니다. 또 객관적 질서로든 ‘나’의 자기동일성을 위해서든 대상을 위계화하거나 대상의 차이를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일도 아니다. 필자가 이 글에서 말하는 수직 수평의 기하학적 구조는 우주의 무한성에 대해 혹은 불확실한 존재의 본래성에 대해 직관하는 방식이자, 몸과 마음, 음과 양 같은 이원적 대립의 요소들을 배타적이 아닌, 즉 다양성을 포용하는 일원화된 관계, 균형의 상태로 직관하기 위한 방식이다. 구조화, 체계화는 그 같은 대상에 대한 관찰과 관조를 가능하게 하는 여건이다. 마음이라는 불확실한 의식의 본질을 관조하는 데는 그에 유효한 통일성, 즉 체계나 구조의 범주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지 몸과 마음, 타자로서의 우주, 음과 양 등 지식으로 확정지을 수 없는 주제에 대해 직관과 성찰의 시선이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기호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가 의식 아래의 욕동(pulsion)에서부터 시적 언어의 의미가 산출되는 과정을 직관하기 위해, 세미오틱(sémiotique)과 생볼릭(symbolique)의 이원적 체계를 선택한 일과 흡사하다. 분절 상태로 흐르고 움직이는 욕동의 무질서와 유동성을 공리화하는 일은 사실 불가능하다. 하지만 크리스테바는 욕망(desire)의 맥동인 욕동(pulsion)이 텍스트의 최종적 의미의 근원이 된다는 전제 아래, 의미 생성의 과정(le procès de la signifiance)을 세미오틱과 생볼릭의 두 층위로 나누고, 이들 두 층위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의미 생성은 분절된 욕동의 세계를 압축(condensation/verdichtung)한 세미오틱과 법, 질서, 사회적 의식을 압축한 생볼릭이라는 두 대립적 범주들이 서로 연결됨으로써, 즉 세미오틱의 운동성이 생볼릭의 질서에 개입하고 그 속으로 이동(deplacement/verschiebung)하게 됨으로서 의미가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11]
만일 김수자 작품의 수직 수평 구조에 대한 범주화의 모든 다양성을 받아들인다면, 마음의 확장을 세미오틱의 욕동 에너지의 확장으로, 몸의 바깥세계와의 결부를 생볼릭의 사회, 역사와의 결부로 비교하는 일이 그리고 몸과 마음의 이원적 일원성을 세미오틱과 생볼릭의 두 층위가 함께 의미생성을 하는 과정으로 비유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마음은 세미오틱의 범주처럼 불확실하고 확정지을 수 없는 영역이지만, 그 기운(에너지)의 확장은 몸 예컨대 바느질이나 흙을 굴리는 손동작, 요가의 몸동작 같은 생볼릭의 질서와 함께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을 가로지르는 욕동이 바느질의 순간, 즉 천 위에 ‘뾰족한 바늘을 꽂는 순간’에 어떤 의미를 발생케 하는지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가 모두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묻어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완전 매료되었다”. 이처럼 의식 밑에 묻혔던 기억과 감정이 의식 밖으로 표출되면서 그리하여 존재의 본래성을 관조하면서, 작품의 의미는 산출이 된다. 진정한 예술작품은 이와 같지 않을까? 일상에서 잊히고 은폐됐던 욕망이 의식의 지평 위에서 실제로 펼쳐지고 확장되는 일, 그래서 존재의 본래적 감정과 본성의 귀환을 환영하는 그런 소중한 기회가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관객들이 작가의 작품을 통해 욕망과 감수성이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에 몰입하거나 가능하다면 그 과정에 직접 참여해보도록, 그래서 몸과 마음의 일치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되살리고 존재의 본성을 직관해보는 기회를 누리도록 진심으로 권유하고 싶다.
몸과 마음에 대해서 말하거나 표현하는 것은 어떤 열려 있고 무한한 대상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과 같다. 이러한 경우에 작품에 대한 실증적 사고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 총괄적 단일화를 요구하는 형식주의 관점도 부적합하다. 몸과 마음에 대한 담론은 이것이 무엇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결정 불가능한 주제가 직관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그것이 어떻게 펼쳐지고 드러나는지를 말하는 일이어야 한다. 특히 마음은 몸과 달리 모양도 없으며 분할도 가능하지 않다. 다만 잠재성의 상태로 일정한 질(quality)만을 가진다. 그러면서 마음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작용하는, 즉 지속적으로 차이를 일으키며 분화를 이룬다. 수직 수평의 기하학적 구조가 필요한 이유도 이런 불확정성 때문이다. 기하학적 구조가 그런 마음의 작용을 연역적으로 직관하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하학적 구조가 마음을 연역적으로 추론하는 방식일 수는 있어도, 마음을 완벽하게 도해하거나 설명해내는 해결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해명하지 못함이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일을 저해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마음은 본래 설명되고 증명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으로 필자는 작가의 최근작인 <마음의 기하학>을 살펴보고, 마음의 작용을 둘러싼 작품의 의미를 밝혀보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작품은 작가가 완성한 다음에 전시장에 설치된다. 이것이 작품 전시의 관례이다. 하지만 <마음의 기하학>은 작가의 기획대로 전시장에 설치된 다음, 관객이 작품을 점차 완성해 나간다. 작가가 작품의 일부를 설치했다면, 관객이 작품의 다른 부분을 완성하는 것이다. 작품은 참여하는 관객에 의해 매일 진행되며, 작품의 의미도 전시 기간 동안 계속 생성 중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가령 관객은 전시장 입구에서 제공된 찰흙을 두 손바닥으로 굴려서 작은 구를 만들며, 완성 후에는
이 구를 커다란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행위를 한다. 관객이 스스로 흙 공을 만드는 이 작업은 작품의 형태와 의미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관객이 참여해서 완성하는 워크숍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편 관객들이 빚어놓은 흙 공들은 어느 정도 건조가 되면, 정기적으로 테이블 중앙으로 모아지고 촘촘하게 디스플레이 된다. 마른 흙 공들이 테이블 중앙에 모여 있는 장면은 천정의 카메라로 촬영되어, 다른 전시실 벽면에 부착된 TV모니터에 실시간으로 그 영상이 비추어진다. 완성된 흙 공들은 하루 종일 테이블 위에 놓여 있지만, 이후 일정 분량이 되면 저장고로 옮겨진다. 그래서 테이블 위에는 다음 관객들이 흙 공을 만들어 놓을 빈 공간이 늘 확보되어 있다.
<마음의 기하학>에서 돋보이는 소재들은 커다란 테이블과 그 위에 올려져 있는 흙 공들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게 되는 길이 19m, 폭 11m에 달하는 타원형의 목조 테이블 덕분에, <마음의 기하학>은 이번 초대전에 소개된 작품들 중 규모가 가장 큰 설치 작품이 됐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완성된 흙 공들이 펼쳐져 있어서, 금방 입장한 관객들의 시선을 수평으로 확산시킨다. 작품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테이블 위에 세워져 있는 작고 둥근 흙 공들이다. 관객들이 이것을 만들기 위해 각자 손바닥으로 흙덩이를 굴리며 고요히 명상에 잠겨있는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다. 그들이 흙 공을 만드는 과정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도록, 전시장 조명은 다소 어둡게 설정되어 있다. 천정에서 수직으로 내려오는 빛이 수평으로 펼쳐진 테이블 표면을 환히 밝힐 뿐, 다른 조명은 없다. 관객들을 위한 36개의 의자도 대략 1m 이상의 넉넉한 간격으로 설치되어, 누구든지 익명의 상태로 조용히 흙을 빚고 내면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는 이것을 관객이 자신의 마음을 흙 공에 담아내는 일 혹은 자신의 마음의 보따리를 싸는 일이라고 비유했다.
관객이 자신이 빚고 있는 흙 공에 마음을 투사하는 과정은 비정형의 흙덩이가 차츰 둥근 구형으로 변형되는 과정과 일치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마음의 상태는 몸의 두 손 혹은 흙을 굴리는 손바닥의 감각으로 확장됐다가 이어 형태가 없는 흙덩이가 점차 구형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통해 세계와 맞닿는 경험을 하게 된다. 두 손바닥으로 흙을 감싸 굴리면서 서서히 완벽한 구형의 오브제를 만드는 행위는 실상 어떤 목적도 염두에 두지 않는 무위의 신체행위이다. 하지만 이 무위의 반복 행위를 통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내면으로 집중하게 된다. 이어 자신의 내면-마음을 관조하면서,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본래적 고요함을 인식하는 한편 그런 마음을 움직여서 구체적 실재인 흙 공으로 이환해내게 된다. 그러니까 두 손을 비비면서 둥근 구를 만드는 과정은, 불교에서 수식관(數息觀)을 행할 때, 숨을 다듬고 생각을 가라앉혀서 마음을 정관(靜觀)하는 과정과 다름이 없다. 또 잠재상태의 마음을 바깥으로 분화해내는 과정이기도 하고, 모난 마음을 다듬어 바로잡는 자기수양의 과정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둥근 흙 공을 만드는 과정은 가능태로 잠재된 마음을 직관하는 일이며, 더 나아가서는 마음을 다스
리는 수양의 윤리적 의미까지도 실현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렇게 관객이 자신의 마음에서 출발해 기하학적 형태의 구를 빚어내는 일에 주목하여, 이 작품을 ‘마음의 기하학’이라고 명명하고, 또한 각자의 마음을 표상하는 흙 공들이 테이블 위에 쌓이기 때문에, ‘Archive of Mind’란 영문제목을 붙였다고 생각된다.
테이블과 그 위에 올려져 있는 흙 공들의 이원적 관계를 생각해보자. 수평으로 펼쳐진 테이블과 그 위에 세워진 흙 공들은 작가의 선행 연작들이 보여준 이원적 구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가로와 세로로 연결된 천들을 제시한 <바느질> 연작이나 평평한 장소에 우뚝 세워놓은 <보따리> 연작, 그리고 지구 곳곳의 지면을 밟고 꼿꼿이 서있는 <바늘 여인> 연작, 들숨과 날숨으로 교차되는 <호흡> 연작, 하늘과 땅 사이의 자연 풍경과 씨실과 날실이 직조되는 광경을 보여주는 <실의 궤적> 연작은 경이롭게도 모두 수직 수평의 이원적 구조 내지는 그와 동등한 이원적 질서의 세계를 보여준다. <마음의 기하학>에도 수평의 테이블과 수직으로 서있는 흙 공들 사이의 물리적인 이원적 관계가 있다. 나아가 작품의 의미가 발생되는 측면에서 이원적 일원성의 관계를 주목할 수도 있다. 가령 마음과 흙 공 사이의 의미 생성 관계가 그렇다.
마치 보따리 연작에서 보따리를 쌌다가 풀어 펼치고, 다시 싸고 푸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보따리의 의미가 생성되듯이, <마음의 기하학>에서도 마음과 몸 그리고 흙 공으로 이어지는 확장적 펼침이 무수히 반복되면서 작품의 의미가 형성된다. 마음과 흙 공의 관념적 위상은 각각 무형과 유형, 잠재태와 현실태, 가능태와 실제태, 공(空)과 색(色), 무(無)와 물질이다. 하지만 작품의 진행 과정에서 이들 이원적 대립의 쌍들이 차츰 일원적 일치를 이루면서, 작품의 의미의 깊이는 생성되는 것이다. 관객이 자신의 흙 공을 빚어내는 과정은 그의 텅 비어있던 마음이 일어나고 생겨남을 사유하고 경험하는 허령지각의 과정이며, 자신의 무형의 마음을 유형의 물질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잠재태의 공(空)한 마음이 현실의 흙 공이란 실제 상태로 분화되어 나오는 과정이다. 동시에 비정형의 흙덩이가 자신의 두 손안에서 흙 공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관조하거나 혹은 테이블 위에 세워진 흙 공을 관조하는 관객은 유형의 물질을 계기로 그로부터 자기 몰입을 하면서 내면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필자는 이 과정을 물질에서 자아를 찾는 일 혹은 정반대로 물질에 집착하는 자아를 비워서 무아(無我)의 단계로 건너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후자를 불교에서는 색에서 공으로 건너가는 의식 과정이라고 말하며, 도교에서는 작위에서 무위로 전환되는 의식 과정이라고 말한다. 비유하자면 묵주로 기도하는 신자들이 묵주의 작고 둥근 공들을 굴리면서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무아의 단계로 이입되는 일과 같다. 또한 관객이 자신의 마주한 두 손바닥과 그 가운데 흙 공이라는 양 극점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지각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의 본래 상태 내지 무위 상태로 들어가 고요한 평정을 발견하는, 즉 다시 말해 심신이 하나가 되는 입정(入靜)을 하는 일과도 동일하다고 본다. 결국 작품의 의미는 이 같은 이원적 일원화 과정(1+1=1)을 통해서 형성되며, 이 일원화를 위해 이원적 위상이 상호 지향적이고 확장적이라는 것은 필요불가결한 조건이 된다고 하겠다.
<마음의 기하학>에서 이원적 일원성을 발견하게 되는 또 다른 계기가 바로 우리의 공감각 작용, 즉 감각들 사이의 접촉에 있다. <마음의 기하학>은 관객들이 차분한 관조 상태에 이입되도록 하기 위해 세 가지 감각적 통로를 제시한다. 테이블 위에 세워진 흙 공들을 바라보는 시각 경험과 손바닥으로 흙덩이를 굴리는 촉각 경험 그리고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 청각 경험이 그것이다. 물 흐르는 소리의 내용을 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작가가 입안에서 가글링하는 소리,
즉 물방울들이 뒹굴고 부딪히는 소리와 그 외 자연 상태에서 물방울들이 떨어지고 구르고 흐르는 소리다. 작가는 이들 총 36가지의 소리들을 15분 31초의 길이로 녹음하여 테이블 아래에 장착한 스피커로 들려준다. 이것이 <마음의 기하학>과 함께 최초로 공개되는 <구의 궤적>이라는 사운드 퍼포먼스 작품이다. 필자는 테이블과 흙 공들로 구성된 설치작품에서 경험하는 시각 촉각의 내용과 <구의 궤적>에서 경험하는 청각의 내용이 상호 교차하면서 감각들 간의 공명 상태를 이룩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낭시가 말한 것처럼, 마음의 확장인 몸을 이미지로 덧씌워 표현하지 않으면서, 실제 우리의 몸을 그대로 쓰는 것이 공감각 작용이다. 이 공감각은 마음과 몸의 간격을 가로지르는 작용일 뿐 아니라, 감각들 간의 접촉으로 인해 실존의 확장을 일으키며 바깥으로 펼쳐지는 ‘몸-쓰기(l’excription du corps)’가 되기도 한다.[12] 그리고 감각들 간의 적극적인 상호 교차적 감각작용은 사유를 촉발시켜, 심신의 동일한 역학적 움직임, 즉 일치하는 움직임을 돌아보게 한다. 테이블 위의 작고 둥근 흙 공의 형태와 사운드가 상기시키는 물방울의 형태는 그것들의 근본적인 물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구형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되어 있다. 공감각 작용이 그만큼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셈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흙 공은 마음이 구체적으로 물화된 시각 촉각의 이미지인데 비해, 물방울의 사운드는 마음을 추상적으로 상기시키는 청각 이미지란 점이다. 또한 흙 공은 부동 상태로 멈추어 있어서 마음의 잠재적 운동성을, 뒹구는 물방울 소리는 마음의 실제화된 운동성을 유추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각의 역동성은 마음과 그것의 확장인 몸의 동역학성과 연동성을 암시하는 최적의 표현임이 분명하다.
거대한 타원형 테이블 위에 밀집된 채 모여 있는 흙 공들은 우주의 타원형 궤도를 따라 늘어선 행성들의 배열처럼 비추어져서, 테이블의 수평면은 은하계의 별들을 보여주는 스크린처럼 지각되기도 한다.[13] 흙 공의 기하학적 형태인 구가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작용하는 중력, 인력 같은 구심력의 상징적 형상임을 의식한다면, 또한 천정에 고정된 카메라로 촬영된 테이블 위의 스펙터클 영상을 볼 때, 색도 크기도 조금씩 다른 수많은 흙 공들의 배열 장면이 구심력을 유지하는 소우주 같아
보인다는 점을 상기하면, 마음의 압축, 마음의 보따리를 뜻하는 흙 공의 본래적 의미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가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마음의 보따리는 영구적으로 고정되어서는 안 되고, 반대로 풀려서 밖으로 펼쳐져야만 한다. 사실 보따리는 그 본래 의미대로라면 이산형 (dispersion)의 오브제이다. <구의 궤적>, 즉 ‘Unfolding sphere’의 음향은 물방울이 흐르고 구르고 뒹굴며 확산되는 운동을 하고 있음을 명백히 가리킨다. 그러니까 마음의 기하학적 형태인 구가 이번에는 우주 혹은 세계가 얼마나 리드미컬하고 팽창적인지, 또 마음의 이동도 결코 멈추지 않을뿐더러 항상 잠재적 운동 상태에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기호가 되는 셈이다.
<마음의 기하학>과 <구의 궤적>에서 각각 지각되는 내용의 차이는 자극을 수용하는 감각기관-눈, 손, 귀-이 달라서라기 보다도, 시각, 촉각이 공간 감각인 반면 청각은 시간 감각이란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상호 배타적이지도 않고 대립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작품의 감각인상들은 상호 보완적이며, 서로를 향한 감각전이(sense transference)를 통해, 작품의 의미에 대한 관객의 교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전자가 후자를 시각 촉각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라면, 후자는 전자를 청각적으로 해석한 사례이다. 흙 공들이 테이블 위에서 구르다가 멈추어 선 스펙터클을 <구의 궤적>은 소리를 통해 물방울의 끝없는 펼침의 운동으로 전환시켜 놓았다. 멈춤과 움직임, 고요함과 소리, 압축과 팽창, 접음과 펼침 등의 이원적 대립 요소들은 서로에 대한 보완으로 작용하고 또 상호 조응하면서, 결국 지각 효과를 상승시키고 주제인 마음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나타낼 수 있게 한다고 본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여러 동시감각의 통로를 따라 작품의 깊이를 다층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여건을 갖는 셈이다. 문학적 기법으로 치자면, 감각의 전이와 결합은 환유와 은유의 형식이다. 공감각으로 인해 그만큼 작품의 의미화(signification) 형식은 더 다양해졌으며, 관객이 작품의 주제와 그 내용의 깊이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도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의 기하학>에서 드러난 수직 수평의 이원적 구조와 그것이 형성하는 의미를 살펴보면, 성리학의 심론(心論)이 마음의 생성을 설명하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수평의 타원형 테이블과 그 위에 서있는 구형의 흙 공들은 특정 대상과의 구체적인 유사성(similitude)이 없다는 점에서 초형태적이다. 이 오브제들은 현실의 어떤 대상의 생김새를 모방하거나 재현한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지시대상(referent) 없이, 엄밀하게 기하학적인 형태로 현시된 이 오브제들은 수직 수평의 구조를 통해서 의미를 산출하는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기호들이다. 일반적으로 언어학, 기호학 그리고 우주론(cosmogony) 내의 생성론에서는 무한과 유한, 불변과 변화, 부동과 유동이 서로 연동하는 이원적 대립쌍의 개념들이라고 이해한다. 앞에서 언급한 동양의 『주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음과 양의 대립적인 두 기운이 연결된 채, 우주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잠재해 있고, 마음 역시 이 한 쌍의 기운들에 의해 생겨나거나 소멸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본래적 마음 상태-공(空)과 허(虛), 무(無)의 상태-에서는 음과 양의 에너지가 부동이고 불변이어도, 마음은 언젠가 일어나고 변화하기 마련이므로, 마음의 본성은 항상 음과 양의 에너지로 연동될 수 있는 가능태 (dynamis)-아리스토텔레스, 들뢰즈(Gilles Deleuze)가 사용한 개념로존재한다고 간주된다. 그러다가 계기를 만나면, 잠재된 에너지가 가능태에서 현실태(actuality)로 전이되어, 현실 속 실재로 변화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에너지가 잠재태에서 현실태로 혹은 가능태에서 실재태로 전이됨으로서, 우주 만물이 생성된다는 대개념은 동서양에서 우주와 사물의 생성을 설명할 때 보편적으로 적용이 된다. 존재론에서 주체의 형성을 설명할 때나 기호학에서 의미의 생성(le proces de la signifiance)을 설명할 때도, 역시 이 개념은 적용된다.
마찬가지로 성리학에서도, 음과 양의 기운을 지닌 마음은 존재의 정지된 근원이 아니라 인식과 지각의 능동적인 주체로서 고려된다. 심지어 마음은 우주의 이치인 리(理)와 연결되어 있어서, 마음의 성즉리(性卽理)의 원리로 온갖 윤리적 판단 및 감정과도 통한다고 여겨진다. (心統性情). 하지만 본래적 마음은 부동이고 불변이어서 고요하고 공허(虛)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타자와의 관계 내지는 사물과의 접촉이 생기면, 마음은 현실적으로 생겨나고 작용하며, 지각하고 변화한다. 가령 <바느질> 연작에서 실과 바늘이 천을 뚫고 움직이니까 마음이 감응하는 것이고, <마음의 기하학>에서도 두 손으로 흙을 만지며 비비니까, 그 접촉으로 인해 마음이 일어나고 작용하는 이치이다. 이런 관점으로 마음을 살피기 때문에, 성리학에서는 마음의 정동(靜動)을 매우 중시하여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즉, 마음이 고요함에서 일어난다거나, 잠잠함에서 동함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주목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주희와 퇴계 이황은 ‘적연부동 감이수통(寂然不動 感而遂通,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껴서 통하다)’이라는 『주역』의 「계사전」의 문구를 빌려서 마음의 부동과 동을 해설했다. 그리고 마음이 사단칠정(四端七情)[14]을 발할 때, 이 마음의 작용을 잘 통제하여 존재의 본성과 본래적 감정을 놓치지 말도록 권유한다. 작품이 수직 수평의 기하학의 구조로 마음의 균형을 포착하려는 의도도 이렇게 존재의 본래적 상태를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작가가 <마음의 기하학>에서 궁극적으로 산출하려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몸의 기하학>은 작가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거의 10년 동안 매일 사용했던 요가 매트를 오브제로 사용한 평면 작품이다. 이 짙은 적갈색의 평범한 요가 매트 위에는 일반 회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아무런 형상도 붓질 자국도 없다. 단지 오랜 신체 접촉으로 인해 생긴 자국들이 천이 마모되고 염색이 바랜 채 나타나 있다. 굳이 작품의 이미지를 말한다면, 몸이 만들어낸 흔적들, 즉 손과 발이 셀 수 없이 반복해서 닿았음을 증명해주는 매트 위의 허연 자국들이다. 이 무형의 얼룩 자국들은 요가를 위해 바닥에 수평으로 펼친 매트와 그 위에 수직으로 서거나 앉은 몸이 서로 교차한 접촉 지점들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지면과 몸 사이의 수평·수직의 균형 속에서 생겨난 흔적일 뿐 아니라 또한 몸과 마음 사이의 평형이 낳은 흔적들이기도 하다. 몸이 몸 바깥의 자연 혹은 우주의 힘과 균형을 이루어야 하듯이, 몸은 자신의 안이라 할 수 있는 마음 혹은 영혼과도 평형을 유지해야만, 요가는 성립될 수 있다. 사실 요가의 핵심은 서로 대응하는 이원적 요소들 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데 있다. 아트만(atman)으로 불리는 본래적 자아와 우주 사이의 조응을 위해, 요가는 신체의 힘과 자연의 힘 간의 균형을 추구할 뿐 아니라 몸과 마음(영혼) 사이의 평형, 호흡인 들숨과 날숨의 균형 등 그야말로 실체와 비실체 사이의 소통과 일치의 관계를 지향하는데 주력한다.
요가 경전인 『요가 수트라』 제1장에서 정의하는 내용을 보면, 요가는 명상과 호흡, 몸의 긴장과 이완이 결합된 몸과 마음의 수련법이라고 되어 있다.[15] 요가라는 어휘도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결합한다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yuj’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따라서 요가에서 중시하는 몸과 마음의 결합, 즉 둘 사이의 평형의 문제는 이번 전시에서 다루고자 하는 ‘몸과 마음의 기하학’이 추구하는 균형의 문제, 즉 심신의 이원적 일원화와도 부합하는 것이다. 이렇게 안(마음)과 밖(몸)을 연결하여 소우주인 자아(atman)를 성찰하는 일이 요가의 목표라고 하면, 역시 몸의 균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마음의 평형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마음의 번잡한 움직임을 가라앉히고 고요한 내면으로 집중하는 실천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것이 요가의 명상 수행이다. 잡다한 생각을 지우고 마음을 깨끗이 비우는 이 명상의 의미를 유학에서는 허명(虛明)한 본래 마음으로의 회귀로, 불교의 경우에는 공(空)의 실천이라고 바꾸어 말한다. <몸의 기하학>이 제목으로 명시한 몸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 이유도, 요가 수행자의 몸과 하나 된 보이지 않는 마음을 암시하기 위함이며, 결국 몸과 마음의 잠재적 일치 내지는 양자의 이원적 일원성을 직관하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매트 위에 드러난 비정형의 흔적들은 따라서 신체와 물질 간의 접촉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 사이의 균형을 나타내는 자국들이 된다. 또한 어둠 속 섬광이 남긴 흔적처럼, 비실체적 형상인 마음이 몸 위를 스치고 지나간 자국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왜냐면 심신의 관계에서 몸은 마음의 궤적이고 흔적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한 형상을 표현하지 않은 <몸의 기하학>, 그 침묵을 통해 관객은 더 효과적으로 내면화되고, 흔적이란 잠재적 실체에의 암시를 통해 본래적 존재 의미를 직관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의 기하학>이 표현하고 있는 몸은 확실히 종래의 형이상학이 자기 충족적이라고 규정해왔던 방식의 단독자로서의 몸이 아니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몸은 마음과 함께 공존하는 몸인 동시에, 마음과 분절되면서 안과 바깥으로 열린 몸이다. 안의 마음을 바라보면서도 바깥에 기입된 몸(l’excription du corps)인 것이다. 작품이 나타내고 있는 것, 즉 수평과 수직의 방향으로 교차하며 접촉하는 매트와 신체의 균형은 몸과 마음의 이원적 균형과 일치를 암시하며, 그로 인해 관객은 존재의 본래적 의미를 관조하게 된다. 작품의 의미가 이렇게 마음과 몸, 안과 바깥 사이의 경계에서 양자의 접촉을 통해 생성된다는 사실은 필자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더 낭시의 『코르푸스』로 되돌아가게 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낭시는 몸이 구체적인 살덩어리의 실체임을 전제하면서도, 동시에 몸이 마음(영혼)의 바깥 존재이며, 외부세계로 열려있는 실체라는 관점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이 유익한 관점에 기대어서, 필자는 몸이 내면과 외면이 있는 보자기로 상상될 수 있다고 본다. 몸이 내면으로는 마음을 감싼 보자기면서, 동시에 외면으로는 세계에 그 마음을 펼쳐 보이는 실체로서의 보자기라는 뜻이다. 몸-보자기가 마음을 감싸고 풀어낼 때마다, 몸과 마음 사이의 접촉은 당연히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몸의 기하학>에서 매트에 나타난 흔적은 일차적으로는 실체인 몸이 외부세계 물질과 접촉하면서 남긴 흔적으로 간주되나, 이차적으로 몸이 마음이라는 내재적 원인과 접촉하면서 생성된 흔적이기도 하다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매트 위에 보이는 비정형의 흐릿한 흔적은 미분화된 상태로 남아있던 마음의 잠재적 상태를 매우 잘 암시한다. 그리고 잠재적 층위의 마음이 몸과의 접촉으로 차츰 분화되면서 모양과 질을 가지고 서서히 현실화되는 과정을 설득하는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이미지는 있을 수 없다고 여겨진다. 이것을 들뢰즈의 ‘되기(devenir)’ 개념과 ‘펼침 (unfolding)’ 개념으로 다시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로 설득력을 잃지 않는다. 마음이 살아있는 알처럼 내재적 원인으로 잠재되어 있다가(잠재성의 층위), 몸이라는 실체와의 접촉과 자극에 따라 분화되면서(개체성의 층위), 구체적인 형태의 흔적 혹은 형태를 가지게 되는(현실성의 층위), 이 일련의 마음의 현실화 내지 펼쳐짐의 과정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 중 <몸의 기하학>이 가장 잘 표현해내고 있는 부분이다. 심지어 크리스테바가 언어의 의미생성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설정한 이중 구조인 코라-세미오틱의 심층적 미분화 상태와 생볼릭의 표면적 현실화도 두 영역 간의 교차적 연동 작용으로 인해 수직 수평의 이원적 구조로서의 인용이 가능하다.
<몸의 기하학>이 전시된 공간 안에는 몸이란 테마를 중심으로 몸과 마음의 이원적 존재 양상을 표현하는 세 가지 다른 작품들도 함께 소개되고 있다. <숨>과 <연역적 오브제>, 그리고 <몸의 연구>가 그것이다. 이들 세 작품들은 <몸의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몸이 자기가 아닌 마음 혹은 외부세계로 열린 존재 상태임을 제시하고 있으며, 접촉과 만남의 관계를 통해 심신의 이중적 일원화를 보여준다. 가령 디지털 자수 작품인 <숨>은-작가가 1992년 바느질을 중단한 이후, 2004년에 재개한 최초의 자수 작품-들숨과 날숨의 숨소리 퍼포먼스를 시각화한 것이다. 2004년의 작품인 <직물공장>에서 관객들에게 들려주었던 작가 자신의 호흡 사운드를 이번에 음파 그래픽으로 전환하여 디지털로 수놓은 것이다. 몸에서 호흡이 끊어지면, 생명도 끊어지고 만다. 그래서 호흡의 지속은 곧 생명의 지속으로 은유된다. 들고 나는 호흡, 즉 들숨과 날숨의 규칙적 음파를 이미지화한 자수는 씨실과 날실의 직물 사이를 위, 아래로 누비는 수직 수평 구조의 바느질을 통하여, 음과 양, 삶과 죽음, 존재의 이원적 순환을 이미지로 재연한다고 볼 수 있다. 호흡이 몸과 마음의 확장이듯이, <연역적 오브제>(석고 조각과 목조 테이블의 설치 작품)와 <몸의 연구>(1981년의 신체 퍼포먼스 자료를 재생한 실크스크린)가 보여주는 작가 자신의 신체적 자세도 마음과 몸의 기하학적 균형과 일원화된 존재 양태를 상징한다. 두 작품은 신체와 공간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확인해준 대표적인 경우이다. 특히 <몸의 연구>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도>처럼, 신체를 기하학적 구조를 따라 공간에 펼치고, 신체의 확장으로 공간을 점유하는 실험들을 보여준다. 몸 자체가 자나 컴퍼스가 되어 공간에 완벽한 평면 기하학의 도형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에서도 몸과 정신의 균형 관계는 요가에서처럼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가 이번 전시에서 이해해야 하는 점은, 몸과 마음 사이에 이루어지던 모든 종류의 위계화, 즉 몸과 마음의 이원적 분리 및 마음에 대한 절대 관념화 혹은 몸의 마음에 대한 굴종 같은 일련의 불균형한 편견의 전통을 탈피하고, 몸과 마음이 상호 연결된 평형 관계에 있음을 그래서 동양의 음양이론에서와 같이 심신의 이원적 일원성으로부터 존재의 본래적 양태를 직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김수자 작가의 대부분 작품들은 수직 수평의 이원적 구조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 기하학적 구조의 균형을 통해 심신의 이원적 일원성 내용을 표현한다는 것을 밝힐 수 있다. ‘몸과 마음의 기하학’도 그 중의 하나이다. 몸이 마음에 병합되거나 마음이 몸을 귀속시키는 법은 없다. 양자의 차이는 소멸되지 않은 채, 절대 혹은 무한과 마주한다. 그리하여 앞에서 말했듯이, 실존적 한계 너머의 우리 자신의 본래적 존재 양태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이원적 일원성은 곧 그리고 언제든지 다원적 일원성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이로서 우리에게 ‘하나는 만물이고 만물은 하나이며, 티끌 하나가 온 우주를 담고 있다’는 불교 화엄종의 법성게(法性偈) 가르침이 떠오른다.[16] 즉, 현상계의 모든 사물이 서로 차별하는 일 없이 일체화되어 있다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의 유연한 관계와 열린 만남의 사고가 마치 앞으로 작가의 작품에서 풀어야 할 화두처럼 떠오름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수직 수평의 기하학적 구조는 궁극적으로 바로 이러한 사실, 즉 이원적 일원성의 균형 속에 미처 현실화되지 않은 수많은 존재적 의미의 가능성들이 잠재되어 있음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다.
[Note]
[1] Jean-Luc Nancy, “Corpus,” “Etranges corps étrangers,” Corpus (Editions Métailié, 1992/réédité en 2000), pp. 7-11; 장-뤽 낭시, 김예령 옮김, 「코르푸스」와 「기이하고 낯선 몸들」, 『코르푸스』(문학과지성사, 2012).
[2] 낭시에게 존재란 곧 몸이다. 영혼인 프시케 역시 하나의 몸으로 인식된다. 영혼-프시케의 확장이 몸이며, 이것이 존재 그 자체라는 것이『코르푸스』의 기본 전제이다. 자크 데리다는『코르푸스』에 관한 연구서인 『접촉: 장-뤽 낭시 Le toucher: Jean-Luc Nancy』에서, 몸과 영혼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영혼의 확장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Psyche is extended, stretched out (ėten-due). In her essence, she is some extension [de l’ėtendue] (extensio). She is made extended, made of extension. She is the extension/extended-noun and attribute.” Jacques Derrida, On Touching: Jean-Luc Nancy, trans. Christine Irizarry (Stanford/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5), p. 12
[3] Martin Heidegger, Being and Time (Sein und Zeit, 1926), trans. Joan Stambaugh (revised by Dennis J. Schmidt. Albany) (New York: SUNY Press, 2010). 마르틴 하이데거, 이선일 옮김, 「죽음에 이르는 본래적 존재: 선구」, 『존재와 시간』(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출판, 2003), pp. 206-211.
[4] 천지인삼재는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우주를 구성하는 요소로, 각각 하늘, 땅, 사람을 뜻한다. 『주역』의 「계사전 (繫辭傳)」에 의하면, 천지인의 세 가지 도(道)는 일원적인 도의 내적 삼분을 의미한다. 하지만 도의 본질은 천지인에게서 동질적이다. 서양 기독교 교리인 삼위일체에서 하늘의 성부, 땅에 임재한 성자, 그 둘을 연결하는 성령의 세 가지 격이 일원화되는 개념과 비교될 수 있다. 정병석, 「해제」, 『주역』(을유문화사, 2010), 참조.
[5] 『중용』은 유교의 경전으로, 『논어』, 『맹자』, 『대학』과 함께 유교의 사서(四書) 중 하나로 꼽힌다. 유교 사상을 가장 명료하게 정리한 문헌으로 알려져 있으며, 저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라고 전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은 『중용』 제22장의 마지막 문장을 해제한 것이다: “能盡物之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則可以與天地參矣.” 『중용』(Upaper, 2012)의 이홍표 역주.
[6] 이창일 외, 『심경 철학 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08), pp. 71, 137-138
[7] 본문에 언급한 네 가지 마음 즉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은 윤리적 인성(人性)을 설명하는 신유학 즉 성리학의 주요 개념들로 줄여서 사단(四端)이라고 한다. 이와 대립하는 사사로운 감정의 마음을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으로 분별하여, 이 일곱 가지 마음은 경계하도록 권고했다. 본래 공자가 정립한 유교에서는 인간의 심성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유학인 성리학에서는 유학을 심성 수양의 윤리학으로까지 확대하였다. 또 체계적인 세계관을 수립하려 했던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심성 문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기에, 마음이 사물에 감응하지 않은 상태를 성(性)이라 하고, 마음이 사물에 이미 감응한 상태를 정(情)이라 고 구분했다. 결국 성이 발한 것이 정이므로, 사단의 네 가지 마음과 칠정의 일곱 가지 마음 모두 근본적으로는 정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주희는 사단을 ‘이지발 (理之發)’로, 칠정은 ‘기지발(氣之發)’로 설명하여, 리에서 비롯된 사단이 마음의 본연지성이므로 기에서 비롯된 사사로운 칠정보다 더 도덕적일 수밖에 없음을 논하여, 양자를 구분하였다. 위의 책, pp. 156-157 참조; 『주자대전(朱子大全)』 卷55 (예문동양사상연구원, 2011) 참조
[8] Jean-Luc Nancy, “Psyche ist ausgedehnt,” Corpus, p. 22.
[9] 작가노트, 현대화랑 팸플릿(1988).
[10] 홍기문 외, 『증보정음발달사』(역락출판, 2016) 참조함.
[11] Julia Kristeva, “I. Sémiotique et Symbolique-2. La ‘chora’ sémiotique: l’ordonnancement des pulsions,” La révolution du langage poétique (Paris: Edition du Seuil, coll. Points essais, 1974/2012), pp. 22-30. 줄리아 크리스테 바, 김인환 옮김, 『시적 언어의 혁명』(동문선, 2000), pp. 25-33.
[12] Jean-Luc Nancy, “Soit à écrire le corps,” Corpus, pp. 12-13.
[13] 타원형 테이블이 행성들로 밀집된 우주라는 비유가 비약적이긴 하지만, 아주 근거 없는 상상도 아니다. 이번 전시회의 야외전시장에 설치된 조각 작품 <연역적 오브제>의 이미지가 바로 인도 힌두교의 우주 탄생을 뜻하는 도상인 ‘브라만다’에서 착상됐다는 점에서, 필자는 이 비유를 확신할 수 있다. 브라만다는 ‘브라마 신(梵天)의 알’이라는 용어로, 그 모양은 커다란 타원형이나 구형으로 묘사되곤 한다. 힌두교 우주창조설에서는 이 브라만다를 만물의 근원인 우주로 간주한다. <마음의 기하학>과 <연역적 오브제>는 둘 다 대규모의 타원형 형태를 사용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전자가 타원형의 테이블을 수평으로 설치한데 비해, 후자는 타원형의 입체물을 수직으로 세웠다는 데 있다.
[14] 사단(四端)은 인간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 도덕적 감정인 반면, 칠정(七情)은 인간 본성이 사물을 접하면서 사사로이 경험하는 일곱 가지 감정이다. 각주 7번을 볼 것.
[15] 비야사(Vyāsa), 정승석 옮김, 「요가 수트라와 요가 철학」, 『요가 수트라 주석』(소명출판, 2012) 참조함.
[16] 법성게(法性偈) 중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法性圓融無二相(현상과 본성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으며), 諸法不動本來寂(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으니 본래 고요하여), 無名無相絶一切(이름할 수 없고 모양도 없고 일체가 끊어져) 證智所知非餘境(증득한 지혜로 알 것이요 범부의 경계가 아니네). (…) 一中一切多中一(하나 가운데 전체가 있고 전체 가운데 하나 있
으니). 一卽一切多卽一(하나가 곧 전체요 전체가 곧 하나이네). 一微塵中含十方(한 티끌 그 가운데 시방을 머금고 있으니) 一切塵中亦如是(전체의 티끌 가운데도 역시 시방을 머금었네).
Kim Sung Won (Professor,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2017
The sound that continually echoes through the space of Archive of Mind is a mixture of the sound of dried clay balls being rolled across the table in different directions and the sound of the artist gargling water. The recorded sound, which is amplified from underneath the table, travels between 32 speakers, transforming the space into a meditative arena. When the volume is low, the sound of the clay balls is clear and vivid, but when the volume is raised, the sound becomes a storm of thunder and lightning. The cosmic dimension of the work is particularly intriguing, given that the artist Kimsooja described Archive of Mind as a “galaxy of mind.” She continued to say that the “sound of the clay balls rolling over the flat surface represents the horizontal trajectory, while the gurgling sound of water represents the vertical trajectory of traversing one’s diaphragm.”[1] Hence, the work visualizes a psychological geometry that arises from the coexistence and dynamics between these horizontal and vertical trajectories. Moreover, the sound of the round balls rolling across the table provides viewers with an auditory experience of geometric shapes. Thus, through sound, Archive of Mind evinces both the material surface and the surrounding void. Archive of Mind encompasses the sound of Unfolding Sphere along with the performance of the people forming the clay balls, yielding an immersive experience that transcends polarities and dualities, enacting a unity that may be seen as the motivating power behind Kimsooja’s art.
Although her interest in ceramics can be traced back about ten years, Kimsooja has only recently begun to create works with clay. The clay balls first appeared in 2016, when Kimsooja was invited to participate in Water Event, the solo exhibition of Ono Yoko (b. 1933) at the Musée d’Art Contemporain de Lyon.[2] For that exhibition, Kimsooja exhibited a single ball that she had shaped from a handful of wet clay. Rather than transforming clay into utensils or objects, she is primarily interested in the material characteristics of the clay, as well as the dual possibility of emptying and filling. The act of making a ball of clay requires the use of both hands to cover, press, and roll the clay. In order to form a perfect sphere, all points of each hand must be focused and directed towards the center. Each clay sphere, consisting of earth and water, is a microcosm of our planet as a living organism.
This simple and repetitive process is also related to the concept of Bottari, Kimsooja’s artistic trademark. “Bottari” refers to the practice of bundling goods or possessions in a traditional wrapping cloth for easier transportation. Considering this universal act, Kimsooja said, “Like these forms gradually converging to the center, my mind also converges. Moreover, these acts embody the moment when materiality is transformed into immateriality and ‘void’.”[3] Here, rolling a clay ball is no longer a frivolous act of play. Instead, it becomes a type of ritual in which a mind is formed and shaped by shaving off the sharp corners. Also, the repetitious act of rolling balls of clay between one’s palms can leave people enchanted, like a spell.
At the entrance of Kimsooja’s Archive of Mind, clay is provided for visitors; they may take as much as they like, with the understanding that they will roll it into one or more balls and place them on the table. It is crucial to note that Kimsooja has never incorporated this type of audience participation in any of her previous works. As such, it seems to necessitate some explanation and justification. In the contemporary art world, works involving audience participation are generally well-received, in part because they are almost guaranteed to draw a large audience. At the same time, however, they have been criticized for pandering to popular tastes. Of course, just because an artwork or exhibition generates a positive public response does not necessarily mean that it has pandered to popular tastes, just as works that are not well-received cannot automatically be classified as progressive or experimental. Moving beyond such issues, we should focus on the details of audience participation in this work. In particular, how do the audience’s actions (i.e., entering the exhibition, choosing clay, rolling it into a ball, putting it on the table, leaving the exhibition) connect and contribute to the overall meaning and context of Kimsooja’s existing oeuvre?
In her works, the audience has always been one with the artist, sharing the artist’s thoughts and point of view. To understand her works, we must examine how the artist-subject is transformed into the audience-subject. In A Needle Woman and A Laundry Woman, for example, the audience is forced to focus their attention on a woman’s back. As such, the audience virtually wears the clothes of the artist, and sees the world from the position of the artist. For her Bottari works, discarded clothes are bundled inside used blankets and sheets of unknown origin; the resulting parcels are then carried to various parts of the world by a searching subject. Thus, the subject is once again conflated with the audience. In Kimsooja’s works, the audience is not a passive recipient of the artist’s ideas or perspectives; instead, the audience is transformed into an active and initiative subject who shares various forms of life that are guided by the artist. In Archive of Mind, the audience takes on an even more active role by clasping and rolling clay, an act that distinctly recalls the packing and wrapping of Bottari parcels. Like the active subject who symbolically becomes the artist’s body and envelopes the world, the audience of this exhibition participates in a kind of ritual by forming balls of clay, thereby helping to complete this work by unfolding their own “Archive of Mind.”
For people who know Kimsooja primarily through A Needle Woman or her Bottari works, the theme of this exhibition might be a little surprising. Notably, however, the displayed works still feature two fundamental characteristics that have defined her work for over thirty years: a horizontal-vertical structure and a dynamic spatial relationship. In her art, Kimsooja uses geometric thoughts and experiences to unify dualities, thus yielding a new type of space. This psychological geometry tends to emphasize the quality of space, rather than the quantity, often creating new forms by transitioning from one condition to another.
In A Study on Body (1981), an early work that she made while she was in her twenties, Kimsooja explored geometric shapes by using her own body as an axis, around which her various joints bend both vertically and horizontally. The documentation of her performance demonstrates how bodily movements can enact basic geometric shapes, such as triangles, squares, circles, and semicircles. Indeed, A Study on Body lays the framework for understanding the recurring vertical-horizontal cross structure that has now characterized Kimsooja’s works for more than thirty-five years. In the early 1980s, when there were many regulations limiting international travel for Koreans, Kimsooja went to Japan for the first time, as part of an exchange exhibition. Almost immediately, she noted the difference between the cultures of the two countries. From that point forward, she began emphasizing structural and formal characteristics that are inherent to Korea, such as austerity, incompletion, unique colors, and the principle of the “Three Ultimates” (i.e., Heaven, Earth, and mankind). She began utilizing the dynamism of the cross structure to interpret everything from aspects of daily life to grand concepts of life and death. This is the context from which A Study on Body emerged. Indeed, this structure has remained a consistent element of her subsequent works (e.g., Bottari, A Needle Woman, A Mirror Woman, To Breathe), functioning like an archetype of her practice. Furthermore, this structure provides the primary meaning and connection among the diverse works presented in this exhibition, such as A Study on Body (1981), Geometry of Body (2006-2015), and Archive of Mind (2016).
One of the main characteristics of contemporary art is the mixture of temporal and spatial attributes. In this sense, Kimsooja’s Geometry of Body can be said to visualize the invisible by spatializing time. This work involves a yoga mat that the artist has used since 2006, such that it is now embedded with traces of her body, forming a perfect self-portrait. The colorless traces left by countless pressings of her hands and feet cause us to imagine gravity and her momentary movements. The yoga mat also extends the concept of the “readyused,”[4] which characterized her earlier works with bottari, blankets, and sheets. Here, however, the object is used to visualize the body and to reveal ephemeral motion and gravity. In a similar vein, One Breath (2004/2016), which originated as part of Kimsooja’s sound performance of The Weaving Factory (2004), is a digital embroidery drawing that reproduces the wavelength of a single breath of Kimsooja. During a breathing performance, a monitor tracks the artist’s inhalations and exhalations; then, one full breath is chosen at random and rendered as digital embroidery. The peaks and valleys of regular respiration are recorded as a graph, followed by a horizontal line that marks the moment of respiratory arrest. The prominent vertical-horizontal structure and depth of the breathing performance represent an extension of the circular loop that she had earlier represented in her sewing works, which she stopped making in 1992.
Deductive Object (2016), a sculpture of the artist’s own arms, is Kimsooja’s first work involving life casting. The two arms are facing one another, with the thumb and index finger touching to form the void. At first glance, it looks like a rather straightforward example of life casting sculpture. But upon further consideration, the distinctive position of the thumb and index finger inevitably makes us think of holding a needle. Kimsooja views this connection as another form of weaving, constructing a void within the act. This gesture calls to mind her earlier series Deductive Object (1992), which consisted of wrapped objects. That series was an extension of Kimsooja’s early sewing works, wherein she used the motion of the needle to represent the repeated penetration of the horizontal by the vertical. Similar to Bottari, the act of sewing connects dualities, weaves separate entities to form a new relationship, and proposes an aesthetic of tolerance and embrace. Installed in the museum’s courtyard, the new version of Deductive Object (2016) is Kimsooja’s second outdoor sculpture; the first was A Needle Woman: Galaxy Was A Memory, Earth Is A Souvenir (2014), a work involving nanotechnology, which was installed on the campus of Cornell University in New York. Deductive Object (2016) was inspired by the Brahmanda (black stones sometimes called “cosmic eggs”) an Indian symbol of the birth of the universe. According to Indian tradition, the black surface of the Brahmanda is rubbed until it becomes reflective, like a mirror. Learning about the Brahmanda, Kimsooja recognized various points of connection with her own work, particularly related to the attitude and significance of her Bottari works. These affinities led to the creation of a huge ellipsoid decorated with Obangsaek (five-colored bands – include description in footnote). In Kimsooja’s early Bottari works, the two-dimensional surface (or tableau) of fabric became a three-dimensional sculpture through the simple act of tying.[5] For this exhibition, Deductive Object enacts a new type of transformation, with the geometry of Bottari now visualized as a five-colored ellipsoid. Moreover, this unique transformation is reflected and expanded by the mirrored pedestal that holds the ellipsoid.
A cosmic egg placed on a mirror, Deductive Object coexists with To Breathe (2016), a site-specific work made with diffraction grating film. For To Breathe, Kimsooja transformed the windows and walls of the museum’s courtyard into a giant Bottari, a technique she had previously employed with A Mirror Woman (2006) at the Crystal Palace in Madrid.[6] In the current work, the walls are covered with the diffraction grating film that radiates an array of colors and sunlight in all directions, filling the space with a brilliant spectrum. Through this site-specific work, the courtyard becomes a welcome respite where the audience can rest and meditate. In addition, the ground is lined with mirrors that reflect everything, highlighting the immateriality and void of the five-colored ellipsoid. To Breathe extends the void of space onto the surfaces, thereby “immaterializing” the duality of Bottari into the language of light. Therefore, the work maximizes the symbolic power of the unity between sculpture and flat surface, between the material and immaterial.
The only video work in the exhibition is Thread Routes – Chapter V (2016), the fifth in Kimsooja’s Thread Routes series (2010-) documenting her travels throughout the world. This edition, set in North America, merges cultural anthropology, unique geology, and astounding natural scenery. The artist combines images of a spinning wheel with scenes of basket weaving by the Navajo and Hopi tribes, against the magnificent scenery of Shiprock and Canyon de Chelly in the Southwest United States, along with ancient ruins of the Chaco Culture. The huge mountains and caves, formed over eons of time by water, wind, and soil, move both spatially and temporally until they become connected to overhead wires, long stretches of road, and eventually, the industrial environment of a huge metropolis. The video ends with an aerial view of the massive ramps, freeways, and intersections of Los Angeles. Using an anthropological exploration, the video reveals how the fabric of the world is shaped by acts of weaving, enveloping, and unfolding.
Although the first chapter of the Thread Routes series was finished in 2010, the series can actually be traced back to 2002. At that time, Kimsooja drew the inspiration for “Thread Routes” from the tradition of weaving lace in Bruges, Belgium, which she examined within the context of various architectural features. Through the series, she has explored other European and Asian traditions of lace weaving, crafts, and embroidery, as well as the spinning wheel of Native American nomads. On one hand, the series may be seen as a type of cultural anthropology, but at the same time, it overwhelms us with lyrical beauty, and thus might be called the poetics of nature and civilization. Although the new video does not include any of Kimsooja’s most recognizable motifs (e.g., a needle, bottari, the artist’s back), it deftly posits a grand unity by addressing various dualities (e.g., self and others, man and woman, wrapping and unfolding, spirit and material, civilization and non-civilization, traditional and contemporary, city and nature).
Wrapping and unfolding, tying and untying, connecting and disconnecting are the basic acts of Kimsooja’s art. While these acts play a prominent role in her art (especially her bottari and breathing performances), they are not merely formalistic executions. Instead, operating within a vertical-horizontal structural relationship, they link various dualities and enact a shift from material to immaterial. Archive of Mind is the geometry of wrapping and unfolding, acts that enable dots, lines, and planes to come into contact with one another. In that moment, the immaterial is changed into the material, and vice versa. Hence, this geometry of unfolding-and-wrapping is an incessant exploration of the space of materiality and immateriality. Archive of Mind is a psychological geometry that reveals the dynamic relationship between movements and forms, producing surfaces and structures with the potential for motion, while simultaneously searching for a formless form. Summoning the psychological archetype from the “archive of mind,” these works ultimately guide our attention towards an empty void and an intangible space.
[Note]
[1] Interview with the artist on October 22, 2016.
[2] Yoko Ono, Invitation to Participate in a Water Event (1971, new version 2016), Musée d’Art Contemporain de Lyon, 2016.
[3] Interview with the artist on October 22, 2016
[4] The preexistence of an object was conceptualized through the transition from “readymade” to “readyused.”
[5] Ryu Byeonghak, “Special Interview: Kimsooja,” Art in Culture (February 2010), pp. 126-137.
[6] A Mirror Woman (2006), exhibition catalogue published by the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 Madrid, Spain
김성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2017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소리가 검은 공간을 감싸고, 거대한 타원형 탁자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광경이 어슴푸레 드러난다. 우주를 연상케 하는 사운드와 텅 빈 타원형 탁자에서 시작된 <마음의 기하학>은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시간이 빚어낸 작은 찰흙 구들이 타원형 탁자를 채우면서 서서히 완성된다. 작고 단단해 보이는 찰흙 구들로 가득 찬 공간과 우주의 소리를 방불케 하는 사운드, <구의 궤적>의 절묘한 결합은 마치 우리를 문명 이전의 태초의 시공간으로 안내하는 듯하다.
공간을 지속적으로 감싸는 이 신비로운 사운드 <구의 궤적>은 서너 명의 사람들이 단단하게 건조된 찰흙 구들을 탁자 위에서 서로 각기 다른 방향으로부터 굴리는 소리와 작가가 물로 가글링하는 소리를 믹스한 사운드 작업이다. 볼륨이 낮을 때는 구슬들이 굴러다니는 듯한 영롱한 소리로 들리다가, 볼륨의 세기가 점점 커질수록 천둥 번개가 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우주의 행성들이 부딪히는 굉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마음의 은하수’라는 작가의 시각적 표현과 더불어 이 작업의 우주적 차원은 작품에 흥미로움을 더한다. 이 작업에서 “찰흙 구들이 평면 위를 굴러다니는 사운드는 수평 궤도를 반영하고 물로 가글링하는 사운드는 신체의 횡격막을 가로지르는 수직 궤도를 반영하며”,[1] <구의 궤적>은 수직・수평 궤도의 공존과 그 역학 관계에 의해 생성되는 심리적 기하학을 가시화하게 된다. 더불어 이것은 사운드를 통해서 표면의 기하학과 보이드(void)의 기하학을 시각화하고 있으며, 마모된 찰흙 구의 모서리들이 표면에 맞닿을 때, 그것의 기하학적 형태를 청각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한편, 이 작업의 영어 제목인 ‘Unfolding Sphere’ 사운드 퍼포먼스와<마음의 기하학>에서 찰흙 구들을 ‘둥그렇게 감싸는’ 퍼포먼스는 서로 쌍을 이루며 김수자 작업의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양극성과 이원성의 화합을 청각적, 촉각적 경험으로 풀어내고 있다.
작가가 도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가 흙으로 작품을 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2016년 초 리옹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요코 오노 개인전의 ‘워터 이벤트’에 초청받아 만든 작은 찰흙 구가 그의 첫 흙 작품이었다.[2] 그는 마르지 않은, 물을 머금은 찰흙 한 줌으로 작은 구를 한 개 빚어 그것을 그대로 미술관에 보냈다. 사실 작가는 흙으로 용기나 오브제를 만드는 것보다는 ‘비움과 채움’의 가능성을 가진 흙의 재료적 특성에 더 끌렸다. 찰흙으로 구를 만드는 행위에는 양 손바닥에서 점토를 끊임없이 감싸고 누르고 어루만지는 행위가 수반된다. 이 행위는 손의 양극을 싸는 모서리들이 중심을 향해 모아져야 하며, 모든 모서리들이 중심을 향해서 모였을 때 하나의 구가 형성된다. 이렇게 형성된 작은 찰흙 구는 그 자체가 물을 담고 있는 용기일 뿐만 아니라 생명체로서의 지구를 은유하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김수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보따리의 개념을 연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이 단순하고 평범한 행위에서 김수자는 “형태가 점점 중심을 향해 모아지면서 마음도 함께 모아진다는 것, 그리고 그런 행위를 통해서 물질성이 어느 순간 비물질성, 즉 ‘보이드’로 변형되는 순간”을 인식하게 된다.[3] 이제 찰흙 구 만들기는 그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마음의 형태를 만들고 그 모서리를 깎아 나가는 일종의 ‘의식(ritual)’과도 같다. 양 손바닥으로 흙을 빚는 반복적 행위는 가히 주술적이라 할 만큼 사람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김수자의 <마음의 기하학>은 관객들이 전시장 입구에 준비된 다양한 점토들을 선택하고 원하는 양만큼 덜어가서 둥글게 빚은 후 탁자 위에 올려놓는 것이 주가 되는 작품이다. 이러한 관객의 참여는 그의 기존 작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인데 그렇다면 이것의 의미와 그 당위성을 밝히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현대미술에서 관객 참여형 작업은 대중적 흥행을 담보한다는 점에서 최근 들어 환영받고 있기도 하나, 동시에 현대미술의 대중 영합적 측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대중의 호응도가 높다고 무조건 대중 영합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다고 해서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것도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서서 점토를 선택하고 동그란 구를 빚어 탁자에 올려놓고 나오는 행위가 김수자의 기존 작업의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며, 여기서 ‘관객의 행위는 무엇에 일조하는가’라는 답을 찾는 것이다. 김수자의 작업에서 관객은 언제나 작가와 하나가 되어 작가의 시선과 사유를 공유해 왔다. 그의 작업에서는 ‘작가-주체’가 ‘관객-주체’로 이행되는 과정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관객이 <바늘 여인>, <빨래하는 여인 A Laundry Woman>의 ‘뒷모습’에 주목하는 순간, 관객은 ‘작가 몸의 옷’을 입고 바로 작가가 선 자리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보게 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그 누군가가 사용했던 이불보로 버려진 헌 옷들을 싸며 그것을 싣고 이 세상 곳곳 을 찾아 나서는 <보따리 Bottari> 작업의 주체와 관객과의 관계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김수자의 작업에서 관객은 더 이상 작가가 제시하는 관점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수동적 주체가 아니라 작가가 안내하는 삶의 다양한 형태들을 공유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 주체로 전환된다. 이러한 능동적 관객은 이번 <마음의 기하학>을 통해서 찰흙을 감싸고 굴리는 행위가 보따리를 싸고 아우르는 행위와 동일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또한 작가의 몸이 되어 세계를 감싸 안으며 작업을 완성시키는 능동적 주체와 마찬가지로 이 전시의 관객은 찰흙 구의 모서리를 깎는 일종의 ‘의식’에 동참하며, 각자의 ‘마음의 기하학’을 품어냄으로써 이 작업의 완성에 일조하게 된다.
김수자를 <보따리>와 <바늘 여인>의 작가로만 알고 있던 관객에게는 이번 전시의 주제어라 할 수 있는 ‘기하학’이 다소 생경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직・수평 구조와 공간의 역동적 관계는 지난 30년간의 김수자의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근본적 개념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김수자의 작업에서 기하학적 사유와 경험은 이원성과 양극성의 화합을 통해서 새로운 유형의 공간을 창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 심리적 기하학은 공간의 양보다는 공간의 질, 즉 한 조건에서 다른 조건으로의 이행을 형태화하는 것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그의 아주 초기 작업인 <몸의 연구>는 몸을 하나의 축으로 잡고 몸의 마디를 수직과 수평으로 접으면서 몸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연구한 작업 이다. 이는 삼각형, 정사각형, 반원, 원 등의 기본적인 기하학의 구도 안에서 신체 동작들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결과물이다. <몸의 연구>는 작가가 20대 때 시도했던 초기의 작품이지만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김수자 작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수직・수평 구조(십자 형태)를 이해하는 데 단초가 된다.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1980년대 초에 작가는 일본에서 열린 교류 전시를 계기로 처음 일본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양국의 문화가 다름을 인식한다. 이후 작가는 우리 삶에 배어 있는 소박함, 미완성, 독특한 색감 그리고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에 근거한 구조적 특성에 주목하게 되고, 일상의 모든 것, 삶과 죽음까지도 십자형 구조의 역학관계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몸의 연구>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작업이며 수직・수평 구조와 공간의 역학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어 그 이후 지금까지 작가의 ‘마음의 원형’처럼 작동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보따리>, <바늘 여인>, <거울 여인 A Mirror Woman>, <호흡 To Breathe> 작업을 호출하는 한편,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몸의 연구>, <몸의 기하학 Geometry of Body>(2006~2015), 그리고 <마음의 기하학>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시간과 공간의 속성을 혼합하는 것이 오늘날 현대미술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면, 김수자의 <몸의 기하학>은 시간을 공간화하며 비가시성을 구체화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2006년부터 10년간 사용한 작가의 요가 매트, 거기에 새겨진 몸의 흔적은 작가의 완벽한 하나의 자화상으로 전환되며, 우리는 역설적으로 작가의 손과 발이 남긴 요가 매트의 색 바랜 흔적에서 순간적인 동작과 중력을 상상하게 된다. 이 매트는 또한 기존의 ‘보따리’나 ‘이불보’가 다루었던 ‘레디유즈드(readyused)’[4]의 개념을 연장하는 동시에 비가시적인 동작과 중력이 시각적으로 드러난 인체 페인팅으로 전환된다. <숨 One Breath>(2004/2016)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한 숨’의 파장을 재현한 디지털 자수 드로잉이다. 작가의 호흡 퍼포먼스인 <직물공장> 중에서 들숨과 날숨의 한 ‘세그먼트(segment)’를 임의로 끊어서 디지털로 자수를 놓은 작업이다. 날숨과 들숨의 극점들이 서로 연결되는 과정이 그래프로 표현되고 수평으로 가로지는 선은 호흡이 정지된 순간을 의미하게 된다. 김수자의 호흡 퍼포먼스는 1992년에 바느질을 그만둔 이후 바느질이 상징하는 수직・수평 구조와 깊이 그리고 순환 고리의 개념을 연장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김수자의 작업에서 최초의 라이프 캐스팅(life casting) 작업인 <연역적 오브제>(2016)는 작가의 두 팔을 캐스팅한 조각 작품이다. 양손의 엄지와 검지는 동그란 원을 그리며 맞닿아 있고 이 두 팔은 서로 마주보게 설치되었다. 단순한 신체 캐스팅 조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엄지와 검지가 맞닿아 있는 모양은 자연스럽게 ‘바느질’ 행위와 연결된다. ‘바느질’은 수평적 세계에 물리적으로 관통하는 수직의 세계를 상징하는 김수자의 초기 바느질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오브제 감싸기 작업인 <연역적 오브제>(1992)을 호출하며 ‘보따리’와 함께 양극을 잇고 타자와의 관계를 직조하며 수용과 포용의 미학을 제안한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연역적 오브제>(2016)는 미술관 중정(中庭)에 설치된 야외 조각이다. 2014년 코넬 대학교에 설치된 나노 테크놀로지 조각인 <바늘 여인> 이후 두 번째 야외 조각인 이 <연역적 오브제>는 우주의 탄생을 상징하는 인도 브라만다의 검은 돌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업이다. 검은 돌이 거울처럼 될 때까지 문지르는 인도의 브라만다 전통과 ‘우주의 알(cosmic egg)’이라는 이름에서 작가는 자신이 <보따리> 작업에 임하는 태도와 보따리의 의미가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했고, 이는 오방색 띠로 장식된 거대한 타원체가 탄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초기 보따리 작업에서 ‘천’이라는 2차원의 평면(tableau)이 단순히 ‘묶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서 3차원의 조각이 된다는 ‘변형(transformation)’에 주목했다면,[5] 이번 <연역적 오브제>는 이러한 ‘보따리의 변형’을 재정의한 작업이다. 즉, 이 오방색 타원체는 그것을 반영하고 확장하는 거울을 좌대 삼아 우주의 기원과 순환을 상징화하면서 보따리의 기하학을 시각화했다.
거울 위에 놓인 우주의 알(<연역적 오브제>)은 특수필름을 이용한 장소 특정적 작업인 <호흡>(2016)과 공존하고 있다. 이 <호흡> 작업은 크리스털 궁전에서와 마찬가지로[6] 미술관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 벽을 하나의 보따리로 상정하고, 빛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하는 특수필름을 유리 벽에 설치하면서 중정을 감싼다는 개념을 제안하고 있다. 태양 광선이 회절되며 오색찬란한 빛의 스펙트럼이 확산되는 이 사각형의 중정은 관객이 명상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 특정적 작품으로 전환된다. 모든 것을 반사하는 거울 바닥은 오방색 타원체의 비물질성을 반영하고 그것의 보이드를 시각화한다. 아울러 이 작업은 공간의 보이드 개념을 표면으로 확장하고 보따리의 이원성과 양극성 개념을 빛의 언어로 비물질화하면서 조각과 평면, 물질과 비물질의 화합의 상징적 효과를 더욱더 극대화한다
이번 전시의 유일한 영상 작업인 <실의 궤적 V>은 2010년부터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기획 중인 <실의 궤적> 시리즈 가운데 다섯 번째 작업으로, 북미 지역을 무대로 하고 있다. 이 영상은 애리조나의 배를 닮은 거대한 바위 봉우리인 십락과 캐니언 드 셰이 협곡의 기묘한 지형과 환상적인 자연, 그리고 뉴멕시코 차코 문화의 오래된 폐허 건축 등 문화인류학적으로도, 지질학적으로도 경이로운 경관을 배경으로 나바호 족과 호피 족의 물레질, 바구니 만들기, 갈퀴로 직조하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의 흙이 조성한 거대한 산, 동굴, 물회오리 등의 자연 환경은 시・공간을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도로의 전기선들과 연결되고 거대 도시의 산업적 환경과 조우하게 된다. LA의 거대한 도시 교차로를 항공 촬영한 장면과 함께 끝나는 이 영상 작업은 세계라는 직물을 짜고 감싸고 풀어내는 행위를 인류학적 탐구로 풀어낸다.
<실의 궤적> 시리즈의 첫 번째 장이 완성된 해는 2010년이지만, 사실 이 작업의 시작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가는 벨기에 브뤼주의 전통인 레이스 뜨기와 건축물의 구조적 특징에 주목하면서 <실의 궤적>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그 이후 유럽의 레이스 뜨기, 인디언 유목민들의 자수와 물레질, 아시아의 다양한 직조나 공예적 전통을 수집하며 <실의 궤적>의 장을 하나씩 완성해 갔다. 이 영상 시리즈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인류학적 보고(寶庫)이기도 하며, 자연과 문명의 시학이라 할 만큼 서정적 웅장미로 우리를 압도한다. 여기에는 바늘이나 보따리, 혹은 작가의 뒷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자아와 타자, 남성과 여성, 펼침과 감싸기, 정신과 물질, 문명과 비문명, 전통과 현대, 도시와 자연과 같은 이원적 요소들이 절묘하게 다루어지며 이중성과 양극성의 대화합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감싸고 펼치고, 묶고 풀고, 잇고 끊는 것은 김수자 작업의 기본 행위이다. <보따리> 퍼포먼스, <호흡> 퍼포먼스, 그리고 김수자의 작업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 행위들은 단순한 형식주의적 실행은 아니다. 이것은 매번 수직・수평의 구조적 관계 속에서 양극을 연결하고 이원적 요소들을 결합하며 물질에서 비물질로의 전환을 주도한다. <마음의 기하학>은 펼침(unfolding)과 쌈(wrapping)의 기하학이다. 싸고 펼치는 행위는 점, 선, 면을 서로 접촉시키는 것이며 이때 비물질이 물질이 되고 또 물질이 비물질로 전환되는 것이다. 물질과 비물질의 공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로서 ‘마음의 기하학’은 움직임과 형태의 역동적 관계를 드러내고 잠재적으로 이동 가능한 표면과 구조를 형성하며 무형의 형태를 찾는 심리적 기하학이다. 이것은 마음의 기록 보관소(archive of mind)에서 심리적 원형(archetype)을 호출하고 완벽하게 비어 있는 상태, 비물질적 공간을 향해 나가는 데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Note]
[1] 작가와의 인터뷰(2016. 10. 22.) 중에서.
[2] 요코 오노, ‘워터 이벤트 초청(1971, new version 2016)’(리옹 현대미술관, 2016)
[3] 작가와의 인터뷰(2016. 10. 22.) 중에서.
[4] 레디메이드(readymade)에서 레디유즈드로의 이행을 통해 오브제의 선재성(先在性)을 개념화한 것.
[5] 류병학, 「스페셜 인터뷰: 김수자, 지수화풍(地水火風)에서 생명을 보다」, 『아트 인 컬처』11권 2(2010. 2), pp. 127-137.
[6] 《호흡: 거울 여인》, 2006, 레이나 소피아 현대미술관, 스페인 마드리드.
Steven Henry Madoff (Professor, the School of Visual Arts in New York)
2017
The world is torn by conflict and yet each tear, each micro-struggle and clash is toward its own version of unity. All conflict is a nostalgia for and trajectory toward a totalizing scheme. Of course, there are different structures of totalization, some that suppress difference and others that support a democratic ethos. In the broadest sense, the idea of totalization is captured by Martin Heidegger’s term “Being-in,” for which the simplest definition is offered by
Peter Sloterdijk as “something with something in something.”[1] The social example of Being-in is that we are each a something, and so we are somethings together within the something that is society. Society: from the Latin socius, a being-together of social beings. Civitas: from the Greek word for city and which leads to the word “citizen,” or those who live together in organized space. Polis: from the proto-Indo-European pele, an enclosed space, so that the polis is an enclosed space of citizens in which to Be-in is to live under the organization of social codes, of codes among social beings, though the codes, as all the annals of human time tell us, are always in a state of both schematized and anarchic disruption carried forward into negotiation and revision.
Socius. Civitas. Polis. In the art of Kimsooja, there are two assumptions that underlie the symbolic social intention running throughout her career of making. One of these assumptions is journalistic in its basis, accepting the daily and historical record of events. This assumption is that humans are (by the evidence of actions always and everywhere repeated) violent, destructive, and intolerant. The other assumption, in contrast with the first, is that we seek wholeness and rely on healing and care in its many forms to address the iniquities of human destructiveness. Indeed, these counterpoised signatures of human conduct are the needle dipping in and out of the cloth of being human and the belief structures underlying our nature, both theological and philosophical. The biosphere, the life codes, the sociality, the deistic principles, the ethical apparatuses – whether it is a war in our blood, a crisis of political sovereignty or a crisis of religious faith – these constructs torn asunder or joined together in unified consensus toward the co-existence of difference are within the praxis of Being-in.
Society within itself has, from the time of Aristotle, asked the questions of what is the good life and how can we live together? This is the subject of ethics. But in the short space of this essay, I would like to specify this thinking about ethics as a questioning of how we should act toward one another in order to live in consensual understanding and agreement, and by doing so mediate violence toward the social whole. Can we, therefore, understand Being-in in the limited sense of its social format of being-together? Can we understand totalization not as universalism and absolutism, but as a space of closeness in which otherness and improvisation act as fulcrums in a continual rising and falling of chaos and order? And can we then define this being-together as the responsibility of the socius to overcome its violence toward wholeness, its lacerating shards that are the fragmentation of the enclosed space of society and the undoing of unifying social forms?
In this case, unification does not void the presence of violence, but envisions a flexibility of social codes under the contingencies of circumstance so that recodings can take place through consensual agreement, by deliberation and plebiscite. Ethical wholeness is understood as the agreement among selves alert to their equality, for the ethical self is the self that bears responsibility for its actions toward other selves, and therefore ethics is a questioning of actions and a listening to the answers of others toward resolution. This is a form of critique in which the social self is formed in the crucible of the exchange of questions and answers about how to act on and in this being with others, this being-together, which is always a mapping of the social space, the space of what could be called ethical intimacy. Ethics in this sense is a form of creative practice that takes into consideration contingency, agency, and the mutuality of deliberation.
I come to this thinking about ethics in light of the overall project of Kimsooja’s art, as it seems to me that her questions and propositions in the argument of her work are fundamentally presented as what I will call a gestural ethics. Her work over the years and in its various forms offers itself as a symbolic representation of an aspirational being-together. The opacity of individual selves is not so much taken into account as an idealized transparency of recognition of selves who may move through the violent complications of human nature toward a valorized sociality of tolerance. Commonality is a feature of the artist’s proposal of what being-together can mean, and to this point, we see a repeated figural gesture in her art, for whenever we see Kimsooja in a video or photograph, her back is to us, she is facing other people, other things, as if to always say, “How can I be with you if we are to be together in light of our differences from one another, in light of the possibility of agreement?” As if to insist on a dance of the reciprocity of identities, “Who am I in you and who are you in me?”[2]
In fact, a constant in the artist’s works is the sense of collective presence, of watching and participating in the dance of selves with selves performing that dance. In this movement of I-with-you,there is an implicit proposal of the similarities and conjunctions among disparate things in environments of work and contemplation – seen, for example, in moving-image works such as A Needle Woman and Thread Routes. These are spaces that feel hermetically concentrated, given to an almost ethnographic scrutiny, narrowed by a gaze that looks to the weighted significance of hands and figures focused by the charged intensity of enclosed space. Kimsooja’s camera may establish its point of view in open air, as we see continually in her films and videos, but there is always a sense of motions framed, cropped, pulled inward. Meditative attention is paid to the study of human movements whose results are linked at once to embodied presence, sociality, material labor, and, at the same time, to the ethereal abstraction of repetition.
The artist’s installations are underwritten by this sense of collective intimacy, this gestural ethics in which space presents itself as the enraptured site of an enlightened stitching of things, one to another. Light itself and the symbolic value of colors imbue this being-together. I think of her Deductive Object (2016), an ovoid welded steel form painted with stripes in the colors of the traditional Korean Obangsaek, colors representing the five cardinal directions – east, south, center, west, north – and the five elements as established in Korean culture: wood, fire, earth, metal, and water. Touch, sight, breath, weight, durability, time’s duration, the direction of the sun, what the body needs to sustain itself, where it will travel, hearth and tool… all speak to the idea of Being-in as a home in the world, the world of life, of what the Greeks called zoē, as Giorgio Agamben notes, zoē as “the simple fact of living common to all living beings,” and here also, the Greek bios, the way of living as an individual and in being together.[3] These dual flows of living, crossing one into the other as streams of unbridled and governed energies, are indicated in the coded colors and the completed geometry of this sculpture, whose title confers its reasoned status as a physical artifice deduced from a totalizing metaphysical proposition. Kimsooja undergirds this symbolism by placing her Deductive Object on a mirrored plinth in an enclosed courtyard so that it sits at a center, an omphalos of the socius that amplifies this Being-in and being-together, above it a sky that brings light from every direction.
Around this sculpture, which towers at nearly two-and-a-half meters like a heroic obelisk, are the museum’s windowed walls that the artist has covered with a special diffraction grating she has often used. It refracts the light into a rainbow’s spectrum. It is a pictorial device, as it turns every windowed view into a frame in which details are dissolved into vaguely abstract shapes alive with angles of color. The abstraction activates an optical demater ialization, one thing melting into another, and this too underscores a theme of unified being, returning us from matter to metaphysical belonging. Even the title of the work, To Breathe, intends to dissolve boundaries, suggesting that seeing and breathing are one with the other, a kind of synesthesia, a sensory miscegenation. This trajectory toward fluidity and fusion is a perennial current in the Kimsooja’s work: bodies together in repeated acts of attention, of moving, of making; bodies that float on mirrored surfaces, suspending materiality, that are abstracted and generalized, that are corporeal but are oftentimes inflected by a sound recording variously of the artist’s breathing, humming or gurgling that hovers in the air, which she uses recurrently to suggest the shedding of the body, of the liquefaction of inside and outside, the original version of which was titled The Weaving Factory from 2004, and the most recent, Unfolding Sphere, from 2016. It’s as if, in this art, the consecrations of repeated actions and motifs form a ritual of conjoined being – this gestural ethics in which the rendering of a ceaselessly various but continuous activity of negotiating the sociality of I-with-you is predicated on the idea of repetition as order, repetition as an emblem of the establishment of norms, of practiced ways of being-together that are open to play, to process and change.
So it is that the communal performance of Kimsooja’s installation titled Archive of Mind (2016), which is also the name of the exhibition here at the MMCA in Seoul, presents us with a nineteen meter elliptical wood table set out with lumps of clay to be rolled between each guest’s hands to form spheres, the table filling with them like a model of a domed city or the map of a constellation dense with newborn planets. Clay, of course, is the material from which we are made in origin myths of the world, that a Godfigure shapes, breathing into that clay of the raw human form to “inspire” it – from the Latin inspīrāre, meaning literally to fill with breath – to bring the body to life. These clay spheres, then, bear the symbolic inspiration of the hand that makes, shapes, encloses, a marking of self and selves, of recognitions, as recognition itself is a conscious acknowledgment of the other. And here this recognition is an acknowledged mutuality that is premised on the playful pleasure of the communal act, of hands directed toward similar motions with a single material, producing similar sounds as they transform this clay and momentarily themselves, transfigured by this act of the mutual (for the word “mutual” originates in the Latin mūtāre, to change). Mutuality and mutability are one with the other, just as the philosopher Jean-Luc Nancy notes of the I-with-you, of the transformation in being together:“I can only recognize myself recognized by the other to the extent that this recognition of the other alters me.”4
It is the transformative act of recognition of self and other, of the reciprocity of the I and you that makes way for social discourse, for dissensus and consensus in the negotiation of how we can be together. This discourse is always mobilized by circumstance, though the frame of ethics is based on a durable plinth of reason reflecting upward to present the possibility of a complementary perspective from the grounds of interdependence. In Archive of Mind, bodies address each other through the motion and task of hands, entering into the sociality of being. Through
this act of making, of the manual activity of those sitting in the ellipse of this table, watching each other, listening to each other, and listening together to the amplified recording of balls rolling and Kimsooja’s body gurgling (that audio work, Unfolding Sphere), these closed circles of unifying actions present a normative purpose that instantiates the recognizability of I-with-you, of each with the other’s being-together.
Still, the project of Kimsooja’s work is not limited to the human self as subject, but proposes that we are things among other things, a broader ethics, an idea of agency that is animistic in its reach. All things are woven in this proposition, as in a web that catches each thing that exists as a generative machine of correlation and, with hope, affiliation that populates the Being-in. This is made manifest in the artist’s series of six 16-milimeter films entitled Thread Routes (2010 - ). Take, for example, the most recent of these, Thread Routes – Chapter V(2016), whose method, as we also see in the previous works in the series, is to show in a documentary yet poetic style a global range of landscapes and peoples and their practices of weaving. In Thread Routes– Chapter V, we see wicker baskets being made. We see various women working with handlooms, and I am reminded that the loom was the progenitor of modern computation, so that a web of woven yarn is parent to the billions of strands of data on the Internet’s World Wide Web, and that the Internet as an active form of ordering, of interwoven streams of electricity
and light, is only a microcosm of the still more universal zoē and bios, a marker in a much greater, constellated vastness.
That is the artist’s documentary point, as the images of human actants are inter cut with close-ups held like a long breath so that our attention is steadied and concentrates on natural things – grasses, currents of water, clouds, floral patterns, even the dense strands of hair on someone’s head – that suddenly appear in their knitted forms, just as yarn and wicker do. What we are presented with in this film and the others in the series is the motif of similitude, the way one thing is a formal echo of another, and it isn’t necessary that every single thing has agency, but that we
can see in all things their common parentage in the composition of the world and discern by a leap of ontological inference an originary intelligence. This prelapsarian, ante-methodological, originary ejaculation of active materiality is presented as evidence, as I have said, of all zoē, all life in its primordial and blossoming forms, whether abject or ecstatic, by which the “thread route” is the thread of this originary intelligence through all matter, and threading is equivalent with marvel, equivalent with “something with something in something,” and equivalent, therefore, with the wovenness of Being, as if the world in the thread of all time and before time were shrunk to a miracle of emblematic presence displayed in a glass vitrine, a cosmos in a teacup, all threading as the gesture of the genomic impulse toward supreme order hung like an amulet on Being’s many-bodied and bodiless body.
These woven likenesses in Kimsooja’s artworks suggest an expansive mise en abyme among materially different things; a mirrored reciprocity of othernesses in constant address that are therefore exemplars of a gestural ethics that invokes the obligation of one thing to another to find a normative frame in which Being-in in its aspect of being-together can give account of an agora of reparative promise. This ethical work, because of its openness, in which all things, human and nonhuman, may participate and are envisioned as participating, rests on anecdotal moments of local histories, geographies, politics, and the most localized gestures of bodies in rooms together, at the same time that it is pan-political and trans-temporal through the artist’s regular investment of symbolism in materials, colors, gestures, and forms. Ethical relativism, the moral systems of individual cultures, is simultaneously acknowledged and contravened, imagined within a supreme coefficiency of thing with thing, a breath elongated, a
light refracted and spread, in the artist’s overarching imagining of Being-in, this task of intimacy, of being-together.
[Note]
[1] Peter Sloterdijk, Bubbles: Spheres I, trans. Wieland Hoban (New York: Semiotext(e), 2011), p. 542.
[2] My thinking about ethics is touched specifically in this essay by Jürgen Habermas, Moral Consciousness and Communicative Action, trans. Christian Lenhardt and Shierry Weber Nicholsen (Cambridge, MA: MIT Press, 1990) and Judith Butler, Giving an Account of Oneself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5).
[3] Giorgio Agamben, Homo Sacer: Sovereign Power and Bare Life, trans. Daniel Heller-Roazen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8), p. 1.
[4] Jean-Luc Nancy, quoted in Judith Butler, op.cit., p. 26.
스티븐 헨리 마도프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 교수)
2017
세계는 끝없는 갈등으로 인해 분열되어 있지만 눈물 한 방울 한 방울, 작디작은 갈등과 충돌 하나하나조차 모두 나름대로의 통합을 지향한다. 어떤 갈등이더라도 그것은 전체 구조에 대한 노스탤지어이자 전체를 향해 가는 길의 궤적이다. 물론 각양각색의 전체화 구조들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차이를 억압하는 구조도 있고 민주적인 질서를 지지하는 구조도 있다.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 전체화라는 개념은 마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용어인 ‘무엇 내에서 존재함(being-in)’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가장 간단한 정의로는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의 “무엇 안에 무엇과 함께하는 무엇(something with something in something)”을 들 수 있다.[1] ‘무엇 내에서 존재함’의 사회적 실례를 들자면, 우리는 각자 하나의 무엇이고 따라서 우리는 무엇과 함께 하는 사회라고 하는 무엇 안의 존재이다. 사회(society)는 공존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의미의 라틴어 ‘socius’에서 유래했다. 그렇다면 사회는 곧 ‘함께-존재함’이다. 시민(civitas)은 도시(city)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말로서 ‘시민(citizen)’, 혹은 조직화된 공간 내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 귀결된다. ‘폴리스(도시국가, polis)’라는 단어는 ‘경계 지어진 공간’을 뜻하는 원시 인구어(原始印歐語, the proto-IndoEuropean) ‘pele’에서 유래한 말인바, 폴리스는 곧 경계 지어진 시민들의
공간이고 이 공간에서 ‘존재한다(to be-in)’는 것은 사회적 코드들, 즉 사회적 존재 간에 유통되는 코드들의 체계에 따라 함께 산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과 동물이 살아온 시간에 대한 모든 기록들이 말해주듯, 코드들은 언제나 도식적인 동시에 무정부적인 분열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다시 협의되고 수정되는 과정에 노출된다.
‘사회(socius)’, ‘시민(civitas)’, ‘폴리스(polis)’. 김수자의 작업 세계 전체를 관통하며 흐르는 상징적 의도는 두 가지를 전제로 한다. 하나는 저널리스트적 태도로 일상적인 사건들을 역사적 시각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그 전제는 언제 어디서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행동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폭력적이고 파괴적이며 관용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온전함을 추구하며 파괴성이라는 인간의 사악함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치유와 보살핌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수자의 작품을 보면 이러한 상호 균형적인 인간의 행동들이 천의 안팎을 관통하는 바늘로 표현되고, 이것들이 인간 본성의 바탕을 이루는 신학적이고 철학적 믿음 체계들을 통해 구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생물권(生物圈)과 삶의 코드들, 사회성, 그리고 이신론 (理神論)적 원리들과 윤리적 장치들은 모두 ‘무엇 내에서 존재함’의 방식에 따라 차이의 공존을 지향하는 통합적 합의하에 철저히 분열되거나 서로 탄탄히 결합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사회 내부적으로 선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또 모두가 함께 살아갈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해 왔다. 이는 윤리학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이 글의 제한된 지면상 필자는 이러한 윤리학적 사유의 범위를 합의된 인식과 동의에 근거하여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로 제한한다. 이를 통해 사회의 전체성을 성취하기 위한 폭력의 중재를 꾀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일련의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무엇 내에서 존재함’을 사회적 형태인 ‘함께-존재함 (being-together)’이라는 제한된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전체화를 보편주의나 절대주의의 관점이 아닌 타자성과 즉흥성, 혼란과 질서가 끊임없이 번갈아 오르내리는 지렛대의 지렛목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함께-있음’을 사회(socius)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즉 전체성의 성취를 위해 사회 내부의 폭력을 극복할 책임, 그리고 사회라는 경계 지어진 공간의 파편화와 사회적 형태들의 해체, 다시 말해 사회 내부의 분열을 극복할 책임 말이다.
이 경우에 통합은 폭력의 현존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코드들의 유연성을 상정함으로써 신중한 판단과 투표를 통한 합의하에 재코드화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윤리적 전체성(wholeness)은 평등을 예리하게 인식하는 자아들 간의 합의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윤리적 자아란 다른 자아들에 대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아를 일컬으며, 이때의 윤리란 행동에 대한 물음이고 해결을 위한 타자들의 대답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 자아가 형성되는 하나의 비평 형식으로서 타자들과 ‘함께-있음’, 즉 윤리적 친밀성이라 부를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그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문답의 장(場)을 통해 비로소 형성된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윤리는 어떠한 사태, 행위자의 능력, 의논 과정에서의 상호성을 고려 대상으로 하는 창의적 실천의 한 형태이다.
윤리에 대해 필자가 이러한 사유에 이르게 된 데에는 김수자의 예술이 기여한 바가 크다. 김수자가 자신의 작업을 행하는 과정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행위의 윤리학’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여러 해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진행된 그녀의 작업은 염원적 ‘함께-있음’에 대한 상징적 재현이라 할 것이다. 개인적 자아들의 불투명성은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관용이라는 어떤 안정된 사회성에 이르는 길목에서 인간 본성의 복잡한 폭력적 단계들을 거치는 자아들에 대한 이상화된 투명한 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함께-있음’에 대해 작가가 내린 정의의 특징은 공통된 일상성에 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김수자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의 행위를 감지하게 된다. 영상 또는 사진 작품에서 김수자는 항상 우리를 등진 채 다른 사람들, 다른 사물들을 마주하고 있다. 마치 “서로의 다름을 인지하고 합의의 가능성을 감안해서 우리가 함께해야 한다면 어떻게 내가 당신과 함께할 수 있는가?”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마치 독자적 정체성들의 호혜적 춤을 고집하려는 것처럼. “당신 안의 나는 누구이며 내 안의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묻기라도 하는 양.[2]
-실제로 작가의 작품들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자아들의 춤과 그 춤을 지켜보고 동참하는 집단적 존재감이다. ‘나-더불어-너(I-withyou)’라는이 움직임에는 작업과 사색의 여러 환경에서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유사점들과 접점들에 대한 암시가 존재한다.[3] 이는 <바늘 여인>, <실의 궤적>과 같은 영상 작품들을 통해 잘 예시되고 있다. 이 작품들에서 보이는 공간들은 긴밀하게 농축되어 있으며 민족지학(民族誌學)적인 정밀한 현미경 렌즈를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 듯하다. 게다가 폐쇄된 공간의 밀도가 강조하는 손들과 인물들의 묵직한 의미에 주목하는 응시에 의해 공간은 좁혀지고 있다. 김수자의 영상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것처럼 그녀는 카메라의 시점을 공중에 위치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의 작품에서 예외 없이 감지되는 것은 작품에 표현된 운동감이 어떠한 틀에 의해 제한된 듯, 잘린 듯, 그리고 안쪽으로 당겨진 듯하다는 점이다. 인간 신체의 움직임에 대한 사색적인 고찰의 흔적이 보이고, 이는 지체
없이 존재감과 사회성, 물리적 노동의 구현으로 표현되는 동시에 반복에 대한 지극히 가벼운 무게의 추상적 표현으로 연결된다.
작가의 설치 작품에는 이러한 집단적 친밀감이 흠뻑 스며 있다. 앞서 언급한 행위 윤리학의 접근으로 인해 공간은 사물들을 서로 연결하는 깨우침의 바느질이 만들어 내는 희열의 장으로 변모한다. 빛과 색채들의 상징성은 이 ‘함께-있음’에 가득 투사되고 있다. <연역적 오브제 Deductive Object>(2016)에서 작가는 강철을 용접한 난형(卵形)의 형태에 기본 방향(동, 남, 중앙, 서, 북)과 5가지 원소(목, 화, 토, 금, 수)를 표상하는 한국의 전통 오방색으로 색띠를 그려 넣었다. 촉감, 시각, 호흡, 무게, 견고성, 시간의 지속, 해의 방향, 신체가 지탱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 신체가 가는 장소, 가정 그리고 도구, 이 모든 것들이 세계 내의 집, 생명 또는 삶의 세계로서 존재와 연결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리스인들이 ‘zoē’라고 부른 것과 그리스어 ‘bios’, 즉 개인으로서 ‘함께-있음’의 삶의 방식에 대해 말하고 있다.[4] 이러한 삶의 이중적 흐름, 걷잡을 수 없으면서도 통제된 에너지들의 흐름들이 서로를 거쳐 지나치며 작품의 코드화된 색채들과 완성된 기하학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의 제목은 전체성의 형이상학적 명제로부터 연역된 물리적 방법론으로서 작품의 논리적 지위를 한층 강조한다. 김수자는 <연역적 오브제>를 사방이 막힌 뜰에 놓인 거울 대좌 위에 위치시키며 이러한 상징주의적 효과를 더욱 강화한다. 따라서 작품은 중앙, 즉 사회(socius)의 중심(omphalos)에 자리하게 된다. 이를 통해 존재함과 ‘함께-있음’의 강도가 한층 더 증폭되는 가운데 작품 위의 하늘은 방향을 가리지 않고 사방으로 빛을 비춘다.
약 2.5m 높이로 마치 거대한 오벨리스크처럼 치솟아 있는 이 조각 작품 주변은 작가가 자주 사용해 온 특수 회절격자 필름으로 뒤덮인 미술관의 유리 벽들이 에워싸고 있다. 이로 인해 빛은 무지갯빛 띠로 굴절된다. 창을 통한 모든 전경은 하나의 틀이 되고, 이 틀로 인해 세부 요소들은 색채의 각도에 의해 살아 움직이는 어렴풋한 추상적 형태들로 녹아든다. 이러한 점에서 조각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 벽은 하나의 회화적 장치라 할 수 있다. 이 추상화의 과정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각적 비물질화를 유도하고, 통합된 존재라는 주제를 더욱 부각하면서 우리를 물질에서 형이상학적 관계로 되돌려 보낸다. 이 작품의 제목인 ‘호흡’조차 경계들을 흐리려는 의도에 일조하면서 보는 것과 호흡하는 것이 서로 함께함, 병치되는 일종의 공감각적 작용 또는 감각적 혼혈 생식을 암시한다. 유동성과 융합을 향한 이러한 궤도는 김수자의 작업에서 일종의 다년생 식물의 생명 주기처럼 계속 반복되는 요소이다. 집중하고 움직이며 무언가
만들기를 반복하는 신체들은 물질성을 유예한다. 이러한 신체들은 거울 표면 위에서 부유하며 추상화되고 일반화된 형체를 가졌으나 대개의 경우에는 종종 녹음된 작가의 호흡, 콧노래, 또는 가글 소리로 부풀어 공기 중에 떠돌게 된다. 이러한 소리는 작가가 신체의 발산, 즉 안팎의 용해를 암시하기 위해 되풀이하는 방법론적 요소인데, <직물공장 The Weaving Factory>(2004)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이번 <구의 궤적>에서도 이러한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반복되는 행위들과 모티브들의 봉헌은 마치 하나의 결합된 존재를 위한 제의(祭儀)인 듯하다. 이 또한 ‘나-더불어-너’라는 사회성을 성사하는, 쉴 새 없이 변화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활동함을 표현하는 것은 질서로서의 반복, 규범의 확립,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는 ‘함께-있음’의 숙련된 방식들의 확립에 대한 상징으로서, 반복이라는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는 행위의 윤리학임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김수자의 설치 작품이자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마음의 기하학>의 집단 공동체적 퍼포먼스는 관람자가 19m에 달하는 타원형 나무 탁자 위에 놓인 찰흙 덩어리들을 손으로 굴려 구 형태를 만드는 것으로 완성된다. 구로 가득한 탁자는 돔으로 덮인 도시의 모형, 또는 신생 행성들이 군집한 별자리 지도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찰흙은 천지창조 신화에서 인간을 만드는 데 쓰인 재료이다. 신화에서는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든,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인간 형태의 찰흙에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영감을 ‘불어넣어(inspire)’ 생명을 부여한다.[5] 인식 자체가 타자에 대한 의식적인 인정(認定)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 찰흙 구들은 만들고 형태를 부여하고 다듬는 손에 의한 상징적 영감(靈感)의 구현이며, 자아와 자아들, 그리고 존재 인식의 표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인정된 상호 관계로 해석되며, 이 상호 관계는 집단 공동체적 행위의, 단일 재료로 여러 동작들을 반복하는 손의 유희적 즐거움을 전제로 하고 있다. 동시에 찰흙을 변
형시키는 행위 도중에는 유사한 소리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찰흙을 변형시키는 와중에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자신들을 변화시키기도 하는데, 이러한 상호적(mutual) 행위에 의해 변모되는 것이다. 이때 상호 관계(mutuality)와 변형성(mutability)은 같은 것이 된다. 즉, 이것은 철학자 장-뤽 낭시(Jean-Luc Nancy)가 ‘나-더불어-너’에 대해 ‘함께-있음’에 있어서의 변형에 대해 “내가 타자에 의해 인식된 나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정도는 타자의 나에 대한 인식이 나를 변화시키는 정도와 비례한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6]
우리가 어떻게 함께 있을 수 있느냐에 대한 사회적 담론의 길을 터주는 것은 다름 아닌 ‘자아와 타자’에 대한 인식, ‘나와 너’의 호혜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변형적 행위이다. 여기서 이 담론은 항상 정황에 의해 활성화된다. 다만 윤리의 틀은 이성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서 상호 의존의 장에서 비롯되는 상호 보완적 관점의 가능성을 반영하지만 말이다. <마음의 기하학>에서 신체들은 손의 동작과 작업을 통해 서로에게 말을 걸며 존재의 사회성에 진입한다. 만드는 행위를 통해 탁자의 타원 주위로 앉아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에게 귀 기울이게 된다. 동시에 <구의 궤적>에서 공이 굴러가는 소리와 가글 행위의 신체적 소음에 귀 기울이는 상호 활동을 통해 사람들은 통일된 행위들로 인해 닫힌 구조의 원을 그리며 ‘나-더불어-너’에 대해 인식하는 하나의 규범을 보여주게 된다.
그러나 김수자의 작업은 주체로서의 인간 자아에 그 프로젝트를 국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인간이 다른 사물 속에 있는 사물임을 인식하며, 하나의 보다 광범위한 윤리에 있어 물활론(物活論)적인 행위자의 능력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이 제안에는 모든 것들이 서로 얽혀 있다. 상관 관계와 ‘무엇 내에서 존재함’으로 이주를 유도하며, 소속성을 생성하는 기계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포착하는 그물같이 말이다. 이는 ‘실의 궤적’이라는 제목을 가진 여섯 개의 16mm 영상 작품들에서 분명하게 보인다. 이 중에서 가장 최근의 작품인 <실의 궤적V>(2016)을 예로 살펴보면, 이전 작품들처럼 시적인 요소가 가미된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전 세계의 전경들과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직조 작업을 보여준다. <실의 궤적 V>에서 우리는 바구니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수직기 (手織機)로 작업하는 여인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베틀이 현대컴퓨터의 원형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직조된 방적사의 망은 인터넷상의 수억 가닥 데이터의 어버이인 셈이다. 또한 배치, 배열의 적극적 형식으로서, 복잡하게 얽힌 전기와 빛의 흐름의 형식으로서 인터넷은 훨씬 더 보편적인 ‘zoē’와 ‘bios’의 소우주, 다시 말해 훨씬 더 엄청난 성좌가 형성된 광대함의 작은 표식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다큐멘터리적 특징이다. 확대된 이미지에 행위자들의 영상들이
심호흡하듯 삽입되어 있어 우리의 주의력은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고 방직사나 바구니처럼 편직된 형태로 갑자기 등장하는 풀, 물의 흐름, 구름, 꽃무늬, 심지어는 누군가의 숱 많은 머리와 같은 자연적인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이 영상이나 앞서 말한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에서 우리에게 제시된 것은 다름 아닌 ‘유사함’이라는 소재이다. 즉 하나가 다른 하나의 형식상 메아리로 기능하는 방식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물이 그 원초적 원인을 반드시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는 모든 사물에서 체계상 그들의 공통된 혈통을 발견할 수 있으며 존재론적
추론을 통해 근원적 정보를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적극적 물질성을 선사시대의 전(前) 방법론적이고 근원적인 방식으로 표출한다는 점은 어떤 대상을 절망이나 무아지경으로 몰아가는 것과는 상관없이 ‘zoē’, 모든 생명이 원초적이고 개화(開花)적인 형식으로 함께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실의 궤적’은 모든 물질을 관통하는 근원적 ‘정보의 실’이 된다. 그리고 실 꿰기는 경이(驚異)와 등가(等價)이고 ‘무엇이 무엇과 함께 무엇 내에 있음’과 같으므로 존재의 직조성(woven-ness)과도 등가이다. 마치 모든 시간과 시간 이전의 실의 세계가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된 상징적 존재로서 경이로운 사물로 오그라들 듯 집약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실 꿰기’는 찻잔 안의 우주처럼 존재의 다(多) 신체적, 그리고 무(無) 신체적 신체에 부적처럼 걸려 있는 지상명령(至上命令)을 향한 게놈(genome)적 충동의 몸짓이다.
김수자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이 직조된 유사성은 물질적으로 상이한 것들 간에 존재하는 포괄적인 미장아빔(mise en abyme)을 넌지시 암시한다. 한편, 끊임없이 언급되는 행위 윤리학의 모범적 전형이기도 한 다름들의 거울적 호혜성과 행위 윤리학의 하나가 다른 하나에 대한 규범적인 틀을 찾아낼 의무를 작동하면, 이 틀 내에서 ‘무엇 내에 존재함’은 그 ‘함께-있음’의 요소로 치유 가능한 아고라(agora)를 설명할 수 있다. 그 개방적 특성으로 인해 인간적 개체든 비인간적 개체든 상관없이 모든 것들이 공존할 수 있다. 참여하는 것으로 상상되는 이 윤리적 작품은 지역 역사의 일화적 순간들, 지리, 정치, 그리고 신체들의 가장 국지적인 몸짓들에 기초하는 동시에 범정치적이고 초시간적이기도 한데, 이는 작가가 재료, 색, 몸짓, 형식에 규칙적으로 상징성을 부여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윤리적 상대주의, 즉 개별 문화들의 도덕적 체계들이 동시에 인정되기도 하고 위배되기도 한다. 또한 사물과 더불어 있는 사물의 최대 계수(係數) 내에서 상상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품의 호흡은 길어지며 빛은 굴절되고 확산된다. ‘무엇 내에서 존재함’에 대한 작가의 폭넓은 상상의 장에서 이 친밀함의 작업, ‘함께-있음’의 작업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Note]
[1] Peter Sloterdijk, Bubbles: Spheres I, trans. Wieland Hoban (New York: Semiotext(e), 2011), p. 542.
[2] 이 글에서 다뤄지고 있는 윤리에 대한 나의 사유는 특히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rbermas)의 영향을 받았다. Jürgen Habermas, Moral Consciousness and Communicative Action, trans. Christian Lenhardt and Shierry Weber Nicholsen (Cambridge, MA: MIT Press, 1990)과 Judith Butler, Giving an Account of Oneself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05).
[3] 이 글에서 언급되는 ‘나-더불어-너(I-with-you)’라는 개념은 필자의 표현이다.
[4]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zo
ē’를 “모든 살아있는 존재에 공통으로 적
용되는 살아있다는 혹은 살아간다는 단순한 사실”로 정의한다. Giorgio Agamben,
Homo Sacer: Sovereign Power and Bare Life, trans. Daniel Heller-Roazen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8), p. 1.
[5] 라틴어 ‘inspīrāre’는 문자 그대로 ‘숨으로 채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6] Judith Butler, 앞의 책, p. 26에서 재인용.
A Conversation between Kimsooja and Hou Hanru
2017
Hou Hanru
Let's start with travel. Today, we are constantly traveling: last week we were in New York and now you're in Berlin and I'm in Rome. Traveling has become a norm of contemporary life, both in the everyday and in the artistic...
Kimsooja
Yes, traveling has become increasingly common in this era. In a way, we are living and working on the move.
Hou Hanru
So this is really a state of being. Traveling is also a very important aspect in your work. From the beginning, you reflected on the question of identity from a female perspective, using traditional Korean textiles with your Bottari works. This question is also addressed from another perspective, that of an artist who is constantly traveling and moving. You look at the world through the lens of a nomad. Traveling has become a common motivation for people to reflect on the subject of identity.
Kimsooja
Yes, definitely.
Hou Hanru
On the other hand, travel has become a way of life, don't you think?
K : Traveling has always been a part of my life. From a young age, I lived in various cities and villages, moving every couple of years within South Korea, including the Demilitarized Zone where my father served. Sorok Island, where my husband and I lived during his military service as a psychiatrist, was especially isolated from the public because it was used as a national hospital for leprosy patients. As a member of a nomadic family, traveling became my reality. My visual experience and perspective on nature and humanity have developed significantly from these transitory places and moments. One important experience was in 1978 when Hongik University, which I attended, started an exchange program with Osaka University; it was an eye opening experience about Korea and Korean cultural identity. Although Japan is only a short distance away, the trip altered my perception of Asian cultures and their differences. This began my investigation of my culture, such as the structural elements of architecture, furniture, language, nature, and sense of colors. I rediscovered that the aesthetics, the sensibilities of colors and forms, are very different in Korea and Japan. This period coincided with my investigation of the horizontal and vertical structures in nature, canvas, and all types of cruciform visual elements. This was the subject of my thesis, focusing on the cross in ancient and contemporary art. In 1984, I received a scholarship to the …cole nationale sup Èrieure des Beaux-Arts, Paris, to study printmaking for six months. It was my first exposure to European art and ancient culture; as a result, I started to inquire what is new in art and culture after European art history, and became interested in learning about American culture.
Hou Hanru
This led to a new direction in your life and work. Also, your traveling changed from national to international, from local to global. In the meantime, the image of bottari was introduced to represent this tension, between trying to be at home and travelling across the world. . . .
Kimsooja
I didn't realize that my family had been wrapping and unwrapping bottaris all the time until I worked on Cities on the Move ─ 2,727 km Bottari Truck (1997), a performance and video project for the Cities on the Move exhibition, which you and Hans Ulrich Obrist curated in 1997. It marked a turning point in my work from local to global travel. I hadn't considered that I was dealing with global travel, as the journey was deeply personal. It was a record of my family's roots, but many people thought the project was dealing with globalism. Maybe that's true, in the sense that the performance can represent migration. Cities on the Move traveled to so many cities; the title served as its destiny and global exchange in the arts had been launched.
Hou Hanru
Can you talk about your move to New York?
Kimsooja
I consider my move to New York as a cultural exile from Korean society. It was the moment when I made more critical performances: the series A Needle Woman (1999-2001), A Homeless Woman (2000-2001), and A Beggar Woman (2000-2001). I made them right after I moved to New York during a transitional period I felt like I was stepping off a cliff, with one foot already in the air. This risky move made me reflect on my surroundings and the human condition more critically. I started living in Berlin recently, although I am not sure if it will be for the long term. It's interesting because it brings me back to when I established myself in New York in the late 1990s. That was a very difficult moment for me, every single step of the way, adjusting to a new society. Currently I am located in the Moabit area, which is a multicultural neighborhood. I like it, but I feel alienated. As an artist, I cherish this ambiguous state; distance and alienation bring me to a more objective and critical perception. I want to keep that critical distance all the time and New York provides that. Each time I arrive back in New York, I find a new definition, or have a specific feeling about New York, one that I haven't had before. When I feel that I'm losing perspective, I relocate myself, but I cannot deny that I somewhat respect the familiarity and rhythms of mundane life.
Hou Hanru
You have spoken of being a Korean woman growing up in a family influenced by Confucianism. Obviously, you were aware of very important social and political changes in Korea in the 1980s and 1990s. Maybe growing up in a military family allowed you to experience this change in a way that other people would not? How much has this background influenced your way of thinking and art making? Was there was a moment of emancipation from this background?
Kimsooja
Both of my parents were from Catholic families and very open-minded; however, as my father was the only son, he had to follow the traditional Confucian ways, which were deeply rooted in Korean society.
As a military family, we lived in temporary and sometimes dangerous places, like refugees, migrating from one place to another. During my elementary school years, I lived near the Demilitarized Zone, in and around Cheorwon and Daegwang-ri, the second to last stop on the Kyung-Eui train line, which used to run all the way to North Korea. We often heard stories about North Korean spies who snuck into South Korea, and there were casualties every now and then. We didn't live far from a mined area; kids played with the spent bullets and would get injured by the landmines. I am of the generation, born a few years after the Korean War, who really experienced the conditions of the war and the conflict that it brought to our daily lives. Iive always been aware of the Other, because of my daily experience with the border. My thoughts on borders and those living on the other side made me question the relationship between myself and the Other. The idea of a border and questioning it had to do with being a painter reacting to the canvas as another border. I tried to overcome this border, or limit, in front of me, and connect with the Other. This was also part of the psychology in my sewing practice. The act of wrapping, with bottaris, is a way of three-dimensional sewing; it is unifying in that sense. Borders have always been part of an underlying psychology and challenge in my work.
Hou Hanru
In the 1980s Korea transitioned from a military dictatorship to a democracy. You began exhibiting your work during this period, can you describe your early exhibition experiences?
Kimsooja
I started showing in 1978 when I was in my third year at Hongik University; it was a two-person show at the Growrich Gallery in Seoul. I hung a series of transparent films on a laundry line; they were silkscreened with images of a traditional Korean doorframe taken in a forest, one showed me holding it from behind and one was without me. I also installed two pieces of wood, inserting Plexiglas between them, with the wood blocks slightly tilted and following the curves of the wood. The other artist was my classmate Lee Yoon-Dong, who experimented by dripping black coal tar pigment on canvas; the work questioned gravity and materiality and its rhythm. I showed a few times in Japan and Taiwan in the mid- to late-1980s and in the US after the early 1990s, but it was not until the mid-1990s that I started to exhibit more globally. Some shows included Division of Labor: Women'ss Work in Contemporary Art at the Bronx Museum of the Arts, which traveled to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Los Angeles (1995), the First Gwangju Biennale (1995), and Manifesta 1 at the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Rotterdam (1996).
Hou Hanru
Globalism has expanded and affected much of our thinking about our way of making art, and our way of living. It seems almost inevitable to work globally, especially as I work a lot with site-specific performances, installations, and videos. Many female artists were extremely active and audacious in their work often performances during this transitional period in the 1990s. Lee Bul is another well-known female artist. How did you feel about this? And why did you decide to leave Korea in 1999, right after participating in the Twenty-fourth S„o Paulo Biennial (1998)?
Kimsooja
In the 1990s, female artists, including myself, were engaged in performances using their bodies. I think that had to do with womenís social status in Korea at that time. Many female artists were associated with feminism. But performance art was already popular in the 1970s and 1980s in Korea, under the rubric of Happenings or Events, mostly by the Avant-Garde group, or the S. T group, which was entirely male, except one female artist, Chung Kang-Ja. During the mid-1990s, women did not have the equality they have now much of our daily lives was governed by a patriarchal Confucian value system.
After my residency at P.S. 1, Long Island City, NY (1992ñ93), my first solo show was at Seomi Gallery in Seoul; I showed three of my first performance videos Sewing into Walking ─ Kyungju, Yang Dong Village, and Mai Mountain (1994), and a Bottari installation. Used clothes were also installed on the gallery floor together with rows of TV monitors with Bottaris as a ìmedia Bottari,î and surveillance camera footage of re-wrapping the space of the wrapped Bottaris. These works could have been easily associated with feminism, but I refused the feminist label, owing to the formal and conceptual elements of my Bottaris, and my approach to universality. As a female artist, it was not easy to survive in this hierarchical and patriarchal society, or even in the global art world, until now. I noticed Korean social and cultural issues more clearly after my return from the P.S 1 residency. At the same time, economic development changed Korean society, which was quickly shaken by the financial crisis starting in 1997. I was chosen to represent Korea for the Twenty-fourth S„o Paulo Biennial, but I couldn't get any state support, only from a couple of individuals and a commission from ARCO. Korea wasn't able to ship my Cities on the Move ─ 11,633 Miles Bottari Truck (1998) from Korea to S„o Paulo. I felt hopeless and disappointed by my country, and I had to accept personal support from Korean-Brazilian immigrants who had heard about my situation. This situation confirmed my decision to find support elsewhere, so I moved to New York.
I established myself as an artist without much support from my home country until recently. After the late 1990s financial crisis, the slowly growing Korean art market and Korean journalism often misled audiences by promoting marketable and status-oriented artists. My career trajectory is totally different from that of older and younger generations, who constantly receive support from the state and their galleries.
Hou Hanru
Around that period, several important art movements were created by students to oppose the power of the establishment.
Kimsooja
Minjung Art was one and there were many modernist and postmodernist group activities that were against the established movements, such as Nanjido and Metavox from the mid-1980s. The newer groups were organized by artists from Hongik University, where I studied. Other groups Museum, TARA, Logos and Path were also around. I kept myself completely independent, although I was friends with some of the members.
Hou Hanru
Minjung Art and artists from your generation represented a tendency toward conceptual and experimental forms of creation, especially performance and installation. What was your role?
Kimsooja
Prior to my generation, there were experimental modernist group movements, such as the Avant-Garde and S. T. groups, which coexisted with the Dansaekhwa artists. I didnít follow Dansaekhwa art theory or practice, although the theories were predominant at Hongik University. Also, there was a big age gap between my generation and the Dansaekhwa members.
When I was at Hongik University attending undergraduate and graduate school (1976-1980 and 1982-84), the Minjung Art movement was slowly happening and I knew a few of the leading members. We would meet casually in a study group, as I was intellectually interested for some time, but when they wanted me to join, I couldn't because I always had a certain resentment about focusing only on political issues and such dogmatism. I couldn't connect with the aggression of some of the political art. At that time I was making art that was abstract, performative, conceptual, and spiritual.
I had zero interest in any group or collective activities. I always kept myself independent by questioning the monopoly of the Dansaekhwa group, to which most of my professors belonged. I voiced my opinions in classes to open up the dialogue, offering my fellow students different possibilities and perspectives. I kept myself completely isolated, to be independent from political and artistic hierarchies, to preserve my own integrity. It has been a long and lonely path. To address further your question about my role in performance and installation in a Korean art context: the large scale of my site-specific installations and global performance projects in the 1990s and early 2000s might have influenced a younger generation in Korea, as I see many are expanding their practices. live noticed that some of my interests the notion of the needle, thread, wrapping, and unfolding have achieved wider currency in current contemporary art, particularly in art concerned with the body, textiles, and everyday life.
Hou Hanru
People often identify you as a leading figure, together with a few younger artists such as Lee Bul or Choi Jeong-Hwa. They express similar positions, confronting the status quo, social and political situations. Lee Bul's work is a kind of counter-violence against oppression, while your work is much more related to meditation and transcendence. You use intimate materials such as textiles and bottaris. How did you arrive at this language?
Kimsooja
I cannot associate with any type of violence or raw expression. In that sense, Iive been working closely with non-violence and that is my position to the individual and society. I couldn't and didn't engage directly with political issues. The artistic language that I created has always stemmed from a healing perspective, maybe because of my compassion for humanity and my vulnerability to violence.
This vulnerability might be rooted in my childhood experience of living near the Korean border, among others. I felt innately vulnerable. I cannot watch scenes of violence and my inclination has always been to embrace and connect with those around me. However, it is true that I gain strength through resistance and patience. Maybe this mindset originated when I discovered sewing and needlework as a methodology for healing despite the violent potential of a needle. Searching for my own medium, I focused on vertical, horizontal, and cruciform structures in the world. In 1983, when I was making a bedcover with my mother, I was about to push the needle into the brilliant, soft, and silky fabric but when the needle touched the fabric, I experienced a revelation, as if the whole universe's energy passed through my body to the tip of the needle. I immediately recognized the relation with this border, the surface, and the vertical and horizontal woven structure that was penetrated by the needle. The fabric had a woven vertical and horizontal pattern (warp and weft) and I saw this as a way to investigate the surface of a structure as a painting. This action and experience was the moment that I interwove myself as a person who is innately vulnerable, seeking to connect with and embrace those around me.
At the same time this experience coincided with my artistic struggle to redefine the structure of the surface of a canvas. I'd been trying to find an original painting methodology for a number of years, since beginning college. That was the moment I discovered sewing as a methodology for painting, using the fabric of life as a canvas and the needle as a brush. The concept of needle and sewing evolved naturally into social, cultural, and political dimensions and has expanded with a broader context into my current practice.
Hou Hanru
For many years, you have developed this process of wrapping and unwrapping bedcovers, carrying them on your travels, and showing them as installations. They are more than luggage, more like real companions. They have become your partner as you travel. It's like having a life that you can carry around with you in your global displacements. During the last few years you extended this interest, engaging with textiles from other cultures and places. For example, you went to Peru to work with the local women and filmed the weaving culture, called Thread Routes ─ Chapter I (2010).
Kimsooja
Yes, Thread Routes continued with Chapter II (2011) filming lace making in European countries, block printing, embroideries and weavings in India (Chapter III, 2012), embroideries in China (Chapter IV, 2014), and basket weavings in Native American communities (Chapter V, 2016). I am also planning to film weaving in African cultures (Chapter VI).
Hou Hanru
That gives your vision broader cultural dimensions.
Kimsooja
I consider the Thread Routes films as a retrospective of my formal practices related to thread and needle, with the textile as a canvas and a structural investigation. It was conceived in 2002 in Bruges, when I first saw a bobbin lace maker on a street. It immediately inspired me to juxtapose it with the local architectural structures, as a sort of masculine lacemaking, but it took a long time to start the actual film. I finally started, using 16 mm film, with textiles in Peruvian culture. It's a non-narrative documentary film, using only visual juxtapositions with minimal environmental sound. I wanted to approach this project as anthropological poetry, capturing the long, silent journey of textile cultures around the world, revealing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different production methods. Through the camera's lens, I wanted to reveal each culture's craftsmanship as a living form in textile, in architecture, and in nature.
I didn't use Korean secondhand bedcovers because I was interested in orientalism or local aesthetics, but because they were part of my daily life in Korean society. It's the same reason that Europeans or Americans use their local materials, so there is nothing exotic about them, although Westerners might view them that way. The material I chose for the Bottari works was not originally wrapping cloth. Initially, I chose a bedcover for wrapping as the bed is the place for our bodies to rest, as a frame of life where we are born, love, dream, suffer, and die. This symbolic site carries all of our dreams, love, agony, pain, and despair throughout our lives. The colors are striking and have extreme contrasts, but I didn't choose the colors for aesthetic reasons, they just came with the fabric as cultural symbols, symbols of the daily life that I lived. I accepted what was created and what was handed down from our parents upon marriage. The wrapping and unwrapping is another language I discovered when looking at an existing bottari bundle in 1993. Bottaris are common universal objects, existing in all cultures, but the bottaris I discovered at my P.S. 1 studio appeared to me in a completely different context: a totally different object that was a painting in the form of a wrapped canvas, a ready-used object, a sculpture, and a performed object that unifies the form as a totality.
Hou Hanru
One of your recent projects, An Album: Sewing into Borderlines (2013), is on the American-Mexican border, initiated a few years ago under the federal 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 Art in Architecture Program. In the beginning, you wanted to work with people who had been deported from the US, but since the GSA could not accommodate that project, you shifted to working with migrants who cross the US-Mexican border every day to work.
Kimsooja
In the end, I focused more on the positive, welcoming aspects of migration for the different generations of Mexican immigrants traveling to the US. It was during the Obama administration, when artists were supported during the economic crisis more about hospitality than despair.
Hou Hanru
But now the policy of the new government forces you to raise new questions about the issue. The political structure under Trump is a different situation. How will this change influence your project? You have been interested in female migrants, who have a very different life and experience with migration than men do.
Kimsooja
Women are central to the migration chain; they are the major nexus, connecting everyone in the family. Women travel on more visible routes like trains, cars, and buses, which makes them more vulnerable to arrest. Generally one-third of women are deported. Men use riskier methods, on foot through the desert or by boat. There are even tunnels dug under the border. Female migration is more transitional. Women work for others, generally in homes or little stores during their migrations. They stay in one place for a short time, earn some money, and then move on.
Hou Hanru
You developed this project along the US-Mexican border, where migrants are both caught and detained.
Kimsooja
The GSA project, which is a permanent installation at the land port of entry in Mariposa, Arizona, was installed right on the border. I installed large LED screens with portraits of the immigrants who cross the border, commuting to work every day. I filmed each portrait from the front and back, showing each person's psychological journey in a durational gaze. I would call their names and they would turn to the camera, creating a psychological border between themselves and the Other first the camera and then the public. I focused on the juxtaposition of their psychological borders with the political border where the work is installed.
I learned a lot about the border situation between Mexico and the US. Lately, the social, political, and cultural geography has shifted because of Trump's immigration policies, especially with Mexico. This new view on immigration is the most urgent and critical issue to address right now.
I began to research the new reality Mexican immigrants are facing since last year. There are interesting organizations that support women's migration, including El Instituto para la Mujeres en la Migracion (Institute for Women in Migration). Interestingly, the organization is supported mainly by American non-profit organizations. I researched the conditions of women migrating in South America, especially in Mexico. There's a constant migration through Mexico. The organizations support detained family members, women, or children, by providing shelter, educational programs, and further support. Families get separated, sometimes women are detained and sent back to Mexico, but if their kids were born in the US, then the children enter the care of these organizations. The children are then moved to a shelter where their mothers cannot see them. Once in the shelters, American families can adopt the children and change their names. Basically the mothers no longer have any rights to their children after they are adopted. So, there are efforts to reunite these families. It is not only a migration issue; it's also a whole family-related issue.
The importance of the women's role in a family experiencing migration made me think of dealing with women as central figures. For this new Mexican immigration project, yet untitled, I want to have female performers wearing national flags. The location will be a former route from where the Spanish conquered Mexico. I'll film the performance between two volcanoes in the Valley of Mexico, one of which, IztaccÌhuatl, is also know as the Mujer Dormida or the Sleeping Woman. There is a myth surrounding these two volcanoes (the other one is PopocatÈpetl): they symbolize grief and the eternal love between a man and a woman.
Hou Hanru
Obviously, this covers issues far beyond the specific question of immigrant families. It should be extended to explore the question of all relationships, the human family. For your new exhibition in Seoul, Kimsooja: Archive of Mind,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MMCA), Seoul, you installed a huge oval table covered with clay balls that are made by the audience. Can you explain this project and its participatory aspect?
Kimsooja
I've been interested in clay and ceramics for a long time. My interest is more in the void that the vessels create, rather than the vessel itself. I was invited to participate in Water Event for Yoko Ono's solo show, LumiËre de líAube, at the MusÈe díart contemporain, Lyon, 2016; the Biennale de Lyon invited artists to create water containers. At the time, I was thinking about the clay ball as a Bottari, but also as the Earth, as a container. So rather than creating a void to contain water, I decided to make a clay ball as a pre-existing water container and address environmental issues. I sent a small clay ball that was still drying. Since then, I have been contemplating the formation of clay balls, how its creation has a psychological and meditative effect on the maker. When you make a clay ball you have to push your fingers and palms toward the center. A sphere is made by pushing from every point on the surface. It's not easy to make a perfect sphere because you need to smooth every angle. The action of pushing opposing sides toward the center is similar to producing gravity within the sphere. To make the smoothest sphere, you roll the clay ball between your palms. It's like a wrapping action, similar to making Bottari. This repetitive rolling action creates a spherical shape in your mind. I was working with my assistants with this clay and we reacted to it instinctively, enthusiastically touching it, rolling it. I found this instant reaction and concentration very interesting. It made me think that this project is not only for me to experience, but might even be more important for the viewers as participants. I decided to make an enormous communal table, bringing everyone together, sharing this experience at this elliptical wooden table, 62 feet (19 m) long. Each person has his or her space and time, but the work also creates a communal space, a communal society, working together toward a certain state of mind, creating a kind of cosmic landscape, a mind-galaxy.
Hou Hanru
Like a field?
Kimsooja
Yes. I made the large table out of 68 smaller tables, which are made from irregular shapes to construct the elliptical geometric shapes. I also installed a sound piece, Unfolding Spheres (2016), with thirty-two speakers under the table, and a 16-channel soundtrack. One part is the sounds of the dried clay balls rolling, crushing, and touching, recorded with 4 or 5 different microphones. Because sound is only made when the ball touches an angled corner, it reveals the geometry of the clay ball. At the same time, it creates a cosmic sound: when the balls bang loudly, it produces a sound like a thunderstorm. I also made an audio performance, gargling with water in my throat, like a grrr sound. Sometimes it sounds like a stream, then it reveals more of the verticality of the rolling spheres, pushing air against gravity. It has a vertical force or movement, while the sound of the clay balls rolling reveals a horizontal axis. Iive engaged in this vertical-horizontal structural relationship since the late 1970s. I also showed Structure ─ A Study on Body (1981); for this series of prints, I moved my arms at 90? to create geometric shapes, such as a triangle, circle, octagon, or square, to connect my body to the earth and the sky. I also included different colors to create different geometric shapes between my body and to determine the space around it. These prints directly connect to my sewn works, which have vertical-horizontal structures.
Hou Hanru
You mentioned a cosmic sensation, the connection between the body and the world. I think one interesting aspect of this work is the relation between the body and architecture, highlighted through your use of light. For example, with your installations, Respirar ñ Una Mujer Espejo / To Breathe ñ A Mirror Woman, at the Palacio de Cristal, Madrid (2006), To Breathe: Bottari for the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2013), and now To Breathe (2016) in the exhibition at the MMCA, you have created beautiful environments with diffraction grating film applied to the windows. The light enters and creates a rainbow spectrum; it transforms the interior, giving it a cosmic feeling. On the other hand, in the Korean Pavilion there was an additional room, which was completely dark and silent. This is a fascinating contrast between the two aspects of cosmic existence. It seems to be a new dimension of your work developed in the last few years.
Kimsooja
In the MMCA courtyard I used the same film as in the Palacio Cristal and the Korean Pavilion. In a way, the painting or pigment was transmitted into light. This particular film has thousands of vertical and horizontal lines in every inch. It has a woven structure and functions like a prism, creating iridescent light when light passes through it. This is one of my investigations into the structure of painting, of canvas, and of color and pigment in relation to light. I created a completely dark and silent space, an anechoic room, to define the nature of light and sound. It was the opposite state of visualization, operating in connection with my questions of duality in both life and art. My questioning of duality the vertical and horizontal structure of the canvas relates to the psychological structures, the mandalas in our mind.
My Master's thesis was on the symbol of cross, from antiquity up to contemporary painting and sculpture. This cross and the horizontal-vertical structure are always present in art. Iím curious how it constantly reappears despite contemporary art's desire for creativity and innovation. Many artists reach this point, confronting this very basic structure: Piet Mondrian, Kazimir Malevich, Joseph Beuys, Antoni T‡pies, Lucio Fontana, Frank Stella, and many more. Iive always questioned the inner structures of our world and our psychology. In my thesis I identified a relationship with psychological geometry of the Mandala, which utilizes cross structures and Carl Jung's archetypal phenomena theory. This isn't unrelated to my question of duality in art and life.
When I was planning the Korean Pavilion, I experienced Hurricane Sandy in New York. I was living in complete darkness without any electricity for more than a week. I questioned the fear I had while walking in the dark in my building and on the streets, especially when someone is walking toward you. I realized that the fear occurs in our mind because of the unknown ignorance of the Other. The unknown and the ignorance in the human mind were the questions I had at that time. Eventually, the relationship between light and darkness, sound and silence forming an architecture of bottari was what I created in the Korean Pavilion.
Hou Hanru
This can be a perfect conclusion. Now we all live in a kind of darkness, and we need to find a way out, to create new light.
Kimsooja
Precisely.
— Essay from Exhibition Catalogue 'Kimsooja: Archive of Mind' published b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2017. pp.18-85.
김수자, 후 한루 대담
2017
Hou Hanru
여행에 관한 이야기로 우선 시작해보자. 요즈음 우리는 끊임없이 여행을 한다. 지난주 우리는 뉴욕에서 만났는데, 이제 당신은 베를린에 있고 나는 로마에 있다. 일상에서든 미술에 관한 것이든, 여행은 오늘날 우리 삶에서 필수적인 활동이 되었다.
Kimsooja
그렇다, 여행은 점점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고, 우리는 이동하며 살고, 또 이동하며 일하고 있다.
Hou Hanru
이렇게 여행하는 삶은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었고, 또 여행은 당신의 작업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초기부터 한국 전통 이불보를 사용한 보따리를 만들며, 여성의 관점에서 정체성 문제를 제기해왔다. 또한, 끊임없이 여행하고 이동하는 노마드와 이주자의 관점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고 할 수 있겠다. 현대인에게 여행은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는 하나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Kimsooja
그렇게 된 셈이다. 사실 여행은 늘 내 삶의 일부였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만 하더라도 어렸을 때부터 거의 몇 년마다 이 도시에서 저 마을로 이사를 하곤 했는데, 어린 시절, 직업군인인 아버지가 근무하셨던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몇 년을 살았다. 또, 결혼 후 남편이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는 소록도에서 2년간 살기도 했다. 그곳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국립 의료 기관이 있던 특수한 곳이어서 일반인이 살 수 없었다. 방랑하며 떠도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어린 시절부터 여행은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이 되었다. 이처럼 일시적으로 거쳐 가는 장소와 시간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으며, 자연과 인간성(humanity)에 대한 나의 시각적 경험과 관점이 형성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1978년 홍익대학교 재학 시절, 일본 오사카 대학교에 방문했던 것은 내게 중요한 여행이었다. 이 여행을 통해 나는 아시아의 여러 문화와 그 차이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때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에 관해 보다 명확하게 눈을 떴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일본 여행을 계기로 내가 성장해온 문화, 즉 건축, 가구, 언어, 자연, 색감 등 구조적 요소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일본은 거리상 매우 가깝지만, 미학, 색과 형상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감성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자연, 캔버스, 온갖 십자형의 시각적 요소에 자리한 수직과 수평의 구조에 대해 연구했고, 이를 토대로 대학원에서 고미술에서부터 동시대 미술에 나타난 십자가 형상에 대한 졸업 논문을 썼다. 1984년 나는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아 6개월간 파리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시기에 유럽의 고전 문화와 미술을 직접 접하게 되었는데, 이때 나는 ‘유럽 미술사 이후에 어떤 새로운 미술과 문화가 있고, 또 어디에 있는 것일까?’라고 자문하기 시작하며 무관심했던 미국 문화에 비로소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Hou Hanru
이 경험을 통해 당신의 삶과 작업 모두가 새로운 방향을 갖기 시작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당신이 여행하면서 겪은 일들은 지역적인 것에서 세계적인 것으로 변화했다. 그러면서 보따리의 이미지는 집이라는 보금자리에 머무르려는 것과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 사이의 긴장 관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Kimsooja
당신과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가 공동 기획했던 《떠도는 도시들 Cities on the Move》(1997)에 선보였던 퍼포먼스 및 비디오 프로젝트 <떠도는 도시들-2,727km 보따리 트럭 Cities on the Move-2,727km Bottari Truck>(1997) 전까지 우리 가족은 매번 보따리를 싸고 풀었는데도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이 프로젝트는 나
의 여행이 지역 단위에서 국제적인 범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 작업을하며 떠돌았던 여행은 매우 개인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글로벌리즘과 연관되어 작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 프로젝트는 나와 우리 가족의 뿌리에 관한 기록에 가까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내가 글로벌리즘에 관해 논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 퍼포먼스가 이주에 관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러한 견해가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떠도는 도시들》은 전 세계 여러 도시를 순회하게 되었는데, 제목처럼 전시도 그 방랑의 운명을 따랐고, 미술계의 국제 교류도 보다 더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Hou Hanru
뉴욕으로 이사했을 때에 관해 더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Kimsooja
내가 뉴욕으로 떠났던 것은 일종의 ‘문화적 망명’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 시기는 내게 매우 중요했고, 나의 중요한 퍼포먼스 작업인 <바늘 여인 A Needle Woman>(1999∼2001)과 <집 없는 여인 A Homeless Woman>(2000∼2001), <구걸하는 여인 A Beggar Woman>(2000∼2001)
시리즈도 뉴욕으로 이주했던 바로 직후 제작되었다. 마치 벼랑 끝에서 한 발을 공중에 내디딘 채, 나머지 한 발을 허공에 내딛고 서 있는 것 같았다고 할까? 한국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큰 모험이었고, 그로 인해 나의 주변 상황과 인간적 조건에 대해서도 더욱 철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2008년 이후 수년간 파리를 오가며 일하다가 올해 들어 베를린에서 조금씩 머물기 시작했는데,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뉴욕과 베를린을 오가며 일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뉴욕에서의 삶이 시작되어 고심하던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 내 삶의 우여곡절이 흥미롭기도 하다. 당시 새로운 사회에 나를 적응시키던 걸음 걸음이 무척이나 힘겨웠었다. 현재 베를린에서는 여러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모아비트 지역에 머물고 있다. 이곳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꽤나 낯선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로서 불확정적인 이 상황을 소중히 여기기도 한다. 거리감과 낯섦은 언제나 내가 더욱 객관적이고 비평적인 관점을 견지하도록 이끌어준다. 이러한 비평적 거리감을 늘 유지하고 싶은데, 그러한 면에서는 뉴욕이 내게 적합한 도시이다. 여행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올 때마다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이 도시를 새롭게 정의하게 되고, 또 전에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감정을 느끼곤 힌다. 어떤 비판적인 관점을 잃어가는 것 같다고 느끼면 나는 나 자신을 또 다른 생경한 곳으로 밀어 넣곤 하지만, 결국 나 역시 평이한 삶의 리듬과 친숙함을 어느 정도 원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Hou Hanru
당신은 나에게 유교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은 가정에서 한 한국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관해 말해준 적이 있다. 1980∼1990년대에 한국이 매우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당시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군인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 변화를 다른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했을 방식으로 느끼진 않았을까 한다. 이러한 배경이 당신의 사고방식과 작업 방식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을까? 그러한 조건과 환경에서 해방되는 순간도 있었을까?
Kimsooja
부모님 모두 몇 대째 가톨릭 신앙을 이어 온 집안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매우 개방적인 분들이었으나 우리는 종손으로서 유교적인 한국 가정의 시스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동시에 마치 피난민처럼 이곳저곳 정처 없이 이주하며 살았다. 때로는 위험한 지역을 오가며. 초등학교 시절에는 비무장지대 근처, 철원과 대광리 안팎을 오가며 살았는데, 이 지역은 과거 북한으로 이어졌던 경의선 종착지 바로 직전의 정거장이 있었던 곳이다. 월남한 간첩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기도 했고, 사고가 오늘내일 끊이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살던 곳은 지뢰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동네 아이들은 탄피를 주워서 놀기도 했고, 지뢰 때문에 크게 다치거나 동상에 걸려 손가락을 잘라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몇 년 후에 태어난 세대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 일상에 난입했던 전쟁과 갈등의 양상을 직간접적으로 겪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국경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겪었던 일들 때문에 나는 늘 ‘타자’를 인식하며 살아왔다. 경계와 그 경계 너머에 살아가는 이들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 대해 자문하게 되었던 것 같다. 경계(border)라는 개념, 그리고 이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은 내가 화가로 살아가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또 다른 경계인 캔버스에 반응하는 것처럼. 나는 내 앞에 놓인 경계 혹은 한계를 극복하고, 그 너머의 타자와 소통하려 노력해왔다. 바느질 작업의 심리 작용 역시 이와 같다고 할까. 보따리로 무언가를 싸는 행위는 삼차원적 바느질과도 같다. 그런 의미에서 감싸기는 통합하는 것이고. 경계는 언제나 내 작업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심리적 상태이자 과제인 셈이다.
Hou Hanru
1980년대 한국은 군사독재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변화했다. 당신 역시 이 시기 대중 앞에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했는데, 초창기 전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겠나.
Kimsooja
처음 전시에 참여한 것은 1978년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지금은 사라진 서울 그로리치 화랑에서 열렸던, 대학 동기 이윤동과의 2인전이었다. 나는 나무로 된 한국의 전통적인 격자형 문창살을 들고 숲속에 선 나의 퍼포먼스를 촬영한 사진과, 내가 제거된 상황을 투명한 필름에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여 빨랫줄에 걸어 전시했다. 바닥에는 몇 토막으로 자른 가는 통나무를 선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어긋나게 설치하고, 그 갈라진 틈에 투명한 사각 플라스틱을 끼워 넣어 투명성과 수직·수평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함께 전시했던 이윤동은 캔버스 천에 검은색 콜타르 염료를 드리핑(dripping) 기법으로 실험한 작업을 출품했는데, 이 작품은 중력, 물질성, 리듬에 관해 질문하고 있었다. 이후 나는 1980년대 중후반 일본과 대만에서 몇 차례 전시했고, 1990년대 초반부터는 워싱턴과 뉴욕 MoMA PS1, 뉴 뮤지움에서 작업을 선보였는데, 1990년대 중반부터 비엔날레를 무대로 본격적인 국제활동을 시작했다. 1995년 뉴욕의 브롱크스 미술관에서 LA 현대미술관으로 순회했던 《노동의 영역: 현대미술에서의 여성의 작업 Division of Labor: Women
’s Work in Contemporary Art》, 1995년 제1회 광주 비엔날레, 1996년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에서 열린 제1회 마니페스타, 1997년부터 세계 각지에 순회했던 《떠도는 도시들》, 1999년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의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등이 있다. 그 당시 세계화의 확산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작업 방식, 삶의 방식에 영향
을 끼쳤고, 이제는 국제적으로 일하는 것이 거의 불가피한 일처럼 되기 시작했었는데, 1990년대 중후반에 들어오면서 나 역시 점차 세계 도처에서 장소 특정적 퍼포먼스, 설치, 영상 작업 등을 하게 되었다.
Hou Hanru
1990년대의 전환기 동안 많은 여성 작가들이 매우 대담한 작업, 특히 퍼포먼스를 다루었다.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또 다른 여성 작가 중 이 불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또한, 1998년 제2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한 직후, 이듬해 왜 돌연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나?
Kimsooja
나를 포함한 1990년대 한국의 여성 작가들은 자신의 신체를 통해 사회적인 억압을 표출하는 퍼포먼스 작업을 많이 했다. 이는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한국 여성이 대면하는 사회적 지위, 또 억압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당시 많은 여성 작가들이 페미니즘을 지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퍼포먼스 아트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이미 한국에서 해프닝이나 이벤트의 형태로 성행하고 있었는데, 대체로 AG(Avant-Garde)나 여성 작가 정강자 외에는 주로 남성 작가로 구성된 ST(Space and Time)가 주도하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여성들은 오늘날만큼 평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고, 일반적인 여성의 일상은 유교적 가치 체계와 사회적 가부장적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곤 했다.
1992년부터 이듬해까지, 뉴욕 MoMA PS1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서울의 서미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여기서 <바느질하며 걷기 Sewing into Walking>(1994)라는 3개의 퍼포먼스에 의한 최초의 비디오 작업과 MoMA PS1 이후 한국에서 처음으로 보따리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이미 싸매진 보따리로 갤러리 공간을 다시 ‘감싸는’ CCTV 영상과 함께 ‘미디어 보따리’로서 TV 모니터와 보따리를 설치하고 헌 옷들을 갤러리 바닥에 깔아 관객이 그 위를 걷게 했다. 이러한 작업들은 페미니즘과 쉽게 연결할 수 있었는데, 나는 이 ‘페미니즘’이라는 타이틀을 거부해왔다. 페미니즘은 나의 보따리가 가진 형식적이고 개념적인 요소, 그리고 내가 접근하려 했던 통합과 보편성이라는 가치를 대변하기에는 적절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 작가들은 개인전이나 단체전에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반감을 표출했다. 여성 작가 개인으로, 이처럼 서열화된 한국 사회에서, 심지어는 국제 미술계에서조차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1993년 MoMA PS1 레지던시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후, 이러한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 이슈들을 더욱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은 경제 발전 덕분에 사회적으로 다양하게 변하고 있었지만 1997년 시작된 경제 위기로 급속히 흔들리게 되었다. 나는 제24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의 한국 대표 작가로 선정되었지만, 정부로부터 타당한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 브라질의 한인 지원과 이전에 아르코(ARCO)로부터 받은 특별지원 외에, 나는 당시 한국으로부터 그 어떤 충분한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때문에 내가 출품하려 했던<떠도는 도시들-11,633마일 보따리 트럭 Cities on the Move-11,633 Miles Bottari Truck>(1998)을 상파울루로 운송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 상황이 무척 실망스러웠고, 또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알고 개인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한국계 브라질 이민자의 도
움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여러모로 나는 한국에서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고, 가족과 생이별을 하며 결국 뉴욕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한국 미술계는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는 한국으로부터의 소외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도움 없이 작가로서 입지를 굳혀왔다. 1990년대 후반 경제 위기 이후, 서서히 성장하던 한국의 미술시장과 저널리즘은 공공연하게, 아전인수 격으로 관객의 눈을 가리고 미술계를 왜곡해온 사실이 많았다. 작가로서 내가 걸어온 길은 정부와 갤러리로부터 지속적인 지원을 받으며 기득권을 누려온 몇몇 한국 작가들과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Hou Hanru
그 당시 기존 권력에 반대하던 학생들이 몇몇 중요한 미술 운동을 전개하고 단체를 조직한 것으로 알고 있다.
Kimsooja
민중미술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1980년대부터 난지도, 메타복스(META-VOX)같이 기존의 흐름에 반기를 든 세대와는 다른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단체의 활동도 이어졌다. 주로 내가 수학했던 홍익대학교 출신 작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단체들이 만들어졌고, 뒤따라 뮤지 엄(MUSEUM), 타라(TARA), 로고스 & 파토스(Logos & Pathos) 등이 결성되어 활동했다. 이들 단체의 일부 구성원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런 흐름에서 완전히 독립되어 있었다.
Hou Hanru
당시 민중미술과 당신 세대의 작가들이 개념적이고 실험적인 형태의 작업을 시도하는 새로운 경향을 드러냈는데, 특히 퍼포먼스와 설치 작품이라는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여기서 당신은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Kimsooja
우리 세대에 앞서, 단색화 작가들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AG, S.T그룹 같은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미술 단체의 모더니즘 운동이 있었다. 단색화는 특히 홍익대학교 교수들을 주축으로 그 담론을 구축하며 세력을 공고히 하고 있었지만, 나는 개인적인 관계를 떠나 단색화 이론이나 활동, 그 어느 것도 따르지 않았다. 내 또래와 단색화 작가들 사이에는 큰 세대 차이가 있기도 했고.
홍익대학교에서 1976년부터 1980년까지 학사 과정, 이후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석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민중미술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 운동을 주도하는 일부 구성원을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지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두기는 했지만, 그들이 나에게 민중운동에 동참하기를 바랐을 때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정치적 이슈에만 몰두하는 것에 일종의 거부감 같은 것이 있었고, 일부 정치적 미술이 내재한 공격적 측면에 공감할 수 없었다. 당시 나는 추상적이고 행위적이며, 개념적인 순수 미학을 지향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 어떤 단체나 집단 활동에 전혀 관심이 없다. 대학생 시절, 나는 교수, 화가 대부분이 속해 있던 단색화 그룹이 화단을 지배하다시피 하는 경향에 질문을 던지면서 여기서 나를 분리하고 독립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동기들에게 여러 가능성과 관점을 제안하고 대화의 창구를 열기 위해 수업 시간에 의도적으로 단색화 교수들과 상반되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정치적 서열, 미술계의 위계와 단절하기 위해, 또 나 자신 본연의 모습을 지키고자 자신을 완전히 고립시켜왔다. 지난하고 외로운 여정이었다. 내 퍼포먼스와 설치작업의 영향력에 관해서는, 대형의 장소 특정적인 설치작업 혹은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의 글로벌한 퍼포먼스 작업이 젊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이후 그들의 작업 규모나 재료에서, 또는 장소성에 있어 글로벌한 이슈를 다루는 것을 자주 목격해왔다. 그리고 최근 나의 관심사 중 하나로서 지속적으로 문맥화하고 있는 바느질과, 그에 연관된 바늘과 실의 관계, 거울, 싸매기, 풀기 등의 개념들이 서서히 현대미술 사조 내에서 확산되고 언어화되고 있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특히 몸의 정체성과 직조의 방식에서.
Hou Hanru
사람들은 미술계를 주도하는 인물로서 당신을 이불이나 최정화 작가 같은 좀 더 젊은 세대와 자주 동일시하곤 한다. 이들은 그 시기 사회정치적 상황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유사한 입장을 표출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불의 작업은 압제에 반대하는 일종의 보복적 성격을 띠는 반면, 당신의 작업은 명상과 초월성에 훨씬 더 가깝다. 그리고 당신은 직물이나 보따리같이 사람들이 친밀하게 느끼는 소재를 사용했다. 어떻게 이러한 조형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나?
Kimsooja
나는 천성적으로 그 어떤 종류의 폭력이나 정제되지 않은 감정 표현을 꺼리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비폭력성을 다루는 자기성찰적 작업을 해왔고, 이것이 개인과 사회에 대한 나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 어떤 정치적 이슈에도 직접 관여하지 않았고 또 그럴 수도 없었다. 내가 만들어낸 미술 언어는 언제나 치유와 관조의 관점에서 비롯했는데, 아마 폭력에 민감한 나의 취약성과 인간에 대한 연민에 기인했을 거라고 본다.
이 취약함은 어린 시절 휴전선 근방에 살았던 나의 경험에 근간을 두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선천적으로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고, 그 어떤 폭력적 장면도 볼 수 없다. 하지만 오랜 시간 소리 없는 저항과 인내로 내성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나는 대체로 주변 사람들을 포용하고 또 소통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성향은 캔버스의 표면에서도 반응하며, 나를 구조적인 측면 이외에 치유를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바느질에 주목하게 만들지 않았나 한다. 바늘의 잠재적인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예술 매체를 탐색하며 이 세상에 산재한 십자형의 구조들을 집요하게 주시했다. 1983년 어느 날, 어머니와 이불보를 만들었던 경험을 통해 회화의 방법론으로서 바느질을 발견했다. 어머니와 마주 앉아 뾰족한 바늘 끝으로 부드럽고 선명한 색깔을 가진 비단을 막 꿰매려던 찰나, 마치 온 우주의 에너지가 나의 몸을 통과해 바늘 끝에 닿는 것 같은 전율과 함께 놀라운 충격을 받았다. 이때 곧바로 경계와 표면, 그리고 바늘이 꿰뚫고 가는 종횡의 직물 구조와의 관계를 인지했다. 대부분의 천은 수직·수평의 패턴으로 직조되어 있는데, 나는 이를 하나의 회화로서, 표면의 구조를 탐구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경험은 선천적으로 상처받기 쉽고, 주변을 감싸고 연결하고자 노력하는 나 자신을 ‘함께 엮어 직조’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동시에 이때는 내가 캔버스의 표면 구조에 관한 미학적 딜레마를 겪고 있었던 시기였다. 대학 생활을 시작한 후 여러 해 동안 나만의 회화적 방법론을 찾고자 노력하던 중, 일상의 천을 캔버스 삼고 바늘을 붓 삼는 바느질을 발견했던 거다. 바늘과 바느질이라는 개념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차원으로 확장되어 나갔고, 나의 최근 작업까지 광범위하게 확장되어 왔다.
Hou Hanru
이처럼 당신은 오랫동안 이불보를 싸고 풀고, 함께 여행할 뿐 아니라, 이를 설치 작업으로 전개하며 바느질 작업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이 이불보는 짐이라기보다 함께 다니는 동료에 가까운데, 말하자면 같이 여행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된 거다. 당신이 세계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때 동반할 수 있는 하나의 삶을 갖게 된 것과 같다고 할까? 지난 몇 년간 다른 지역과 문화에서 비롯한 다양한 직물까지 다루면서 이러한 관심사를 확장해온 것처럼. 즉, 페루에서 그 지역의 여성들과 작업하고, 또 그 직물문화를 영상에 담은 <실의 궤적 I Thread Routes - Chapter I>처럼 말이다.
Kimsooja
그렇다. 나의 최초의 영상 작품인 <실의 궤적 Thread Routes>(2010~2016) 연작은 유럽의 레이스 문화(II장), 인도의 자수와 판목 날염 문화(III장), 중국의 자수문화(IV장), 그리고 미국 원주민의 직물과 바구니 제작 문화(V장) 등을 다루었다. 조만간 아프리카에 관한 작업(VI장)을 진행하고자 한다.
Hou Hanru
그러한 작업을 통해 당신의 이상(vision)에 새로운 문화가 더해지리라 보는데, 어떤가?
Kimsooja
<실의 궤적>은 과거 실과 바늘, 캔버스이자 구조로서의 직물과 자연, 그리고 건축과 문화 전반에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총망라한 회고적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는 2002년 벨기에 브뤼주 길거리에서 레이스를 만들고 있는 중년 여성의 손동작과 그 보빈 레이스 (bobbin lace) 기구의 움직임을 처음 보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 레이스 제작을 그 지역의 남성적인 건축 구조물들과 비교 해석하며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실제로 구현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결국 2010년에 16mm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여 페루의 직물 문화부터 촬영하기 시작했다. 서사(narrative)가 없는 시적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촬영지 주변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소리와 시각적 요소만을 최소한으로 사용했다. 나는 ‘인류학적 시(anthropological poetry)’로서 이 프로젝트에 접근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 세계 여러 직물 문화를 다루는 길고도 고요한 여정을 통하여 서로 다른 제작 방식과 문화적 유사성, 차이점을 드러내고자 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각 문화가 가진 특수성, 직물, 건축, 자연, 삶의 방식, 의상 등을 살아있는 상태로 나타내고 싶었던 거다.
지금까지 누군가 사용했던 이불보를 작업에 사용해 온 이유는 내가 오리엔탈리즘이나 한국의 지역적 미학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의 이불보야말로 한국에서 살았던 내 삶의 정체성에 있어 큰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인이나 미국인이 그들 지역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에 이불보 역시 전혀 이국적이지 않다고 해야 맞다. 서구 중심적 사고가 여전히 이불보를 그런 식으로 보고 있는 것뿐이다. 보따리 작업을 위해 선택한 이 이불보라는 타블로(tableau)는 원래 몸 이외에 무엇을 싸매기 위한 천이 아니었다. 처음에 감싸는 작업 방식을 위해 이불보를 선택했던 것은 우리가 태어나고, 사랑하고, 꿈꾸고,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즉 삶을 압축한 하나의 ‘틀’로서, 또 우리가 몸을 누이고 쉬는 장소가 바로 ‘이부자리’이기 때문이었다. ‘이부자리’라는 이 상징적 장소는 우리의 삶 전체를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이불보는 강한 색채가 유난히 눈에 띄고, 때로는 매우 극단적인 보색으로 이뤄져 있는데, 어떤 미학적인 이유로 그러한 색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고, 이미 그 천과 문화적 코드의 상징적 요소로 따라왔을 뿐이다. 나는 그저 이미 만들어진 것, 그리고 결혼하면서 우리 조상과 부모님이 물려 주신 것을 그대로 차용하였던 것일 뿐이다.
무언가를 싸고 푸는 방식은 1993년 어느 날 MoMA PS1 스튜디오에서 내가 만들어 놓았던 보따리 하나를 바라보다가 문득 재발견한 것이다. 그 보따리는 우리가 어느 문화권에서든지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사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 보따리가 완전히 다른 맥락에 놓여 있음을 발견했다. 감싸진 이불보가 갖는 캔버스로서의 회화, 레디메이드, 그리고 이미 사용된 오브제(readyused object), 형상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조각으로서의 보따리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 것이다.
Hou Hanru
당신의 최근 작품 중 <앨범: 경계를 엮기 An Album: Sewing into Borderlines>(2013)는 몇 해 전 미국 연방정부(GSA)의 예술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다. 이 작품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다루고 있는데, 처음에 당신은 미국 정부가 추방한 사람들과 작업하려 했으나 연방정부가 협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넘어 출퇴근하는 이민자들과 작업하기로 했다.
Kimsooja
미국 국경을 넘나드는 멕시코 이민자들을 위해 이민과 관련된 개인사를 다루며 긍정적이고 포용적인 측면에 보다 집중한 작업이었다. 당시 오바마 정부는 경제 위기가 시작된 이래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이민 문제가 거부보다는 환영에 가까웠을 때다.
Hou Hanru
하지만 새로 들어선 트럼프 정부의 정책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해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정치 구조로 인해 또 다른 상황이 주어진 거다. 이러한 변화가 당신의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는가? 당신은 남성들과는 매우 다른 삶과 경험을 가진 여성 이주민들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Kimsooja
사실 이민 문제에서 여성은 그 중심에 있다. 여성은 모든 가족 구성원을 연결하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은 주로 기차, 자동차, 버스같이 가시적인 수단을 통해 이동하는데, 불법 이민일 경우 체포될 가능성이 높은 방식이다. 때문에 통상 3분의 1에 해당하는 이주 여성이 추방된다. 남성은 위험 요소가 더 큰 방식을 택하는데, 주로 도보로 사막을 횡단하거나 보트를 타고 간다. 심지어 국경을 넘기 위해 파놓은 지상과 해상의 터널들도 있다. 여성은 보통 다른 이들을 위해 일을 하며 점진적인 이민 방식으로 생존해간다. 예를 들어 다른 가정이나 작은 상점 등에서. 이들은 단기간 한 장소에 머물고, 일정 수익을 얻으면 다시 이동한다.
Hou Hanru
이 프로젝트는 이민자들이 붙잡히고 구금되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 바로 위에서 전개되었다.
Kimsooja
그렇다. 이 프로젝트는 애리조나 주의 새로 확장한 마리포사 입국장에 입항할 수 있는 입구이자 출구에 영구적으로 설치됐으며, 미국과 멕시코 국경선 바로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대형 LED 화면에는 출퇴근하며 매일 국경을 넘나드는 이민자들의 얼굴이 리드미컬하게 떠올라 머무르고, 또 사라진다. 심리적 여정의 시간 흐름을 보여주며 각 인물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촬영했는데, 내가 개개인의 이름을 부르면 카메라를 향해 돌아보는 방식이었다. 이는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의 심리적 경계를 만드는데, 첫 번째 타자는 카메라, 그다음 타자는 관객이다. 나는 이들의 정신적 경계와 작품이 설치된 정치적 경계의 접점에 주목했다.
사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이민의 현실과 멕시코인들의 삶의 조건을 더 이해하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 정책, 특히 멕시코에 관한 정책 때문에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지형도가 변했다. 우리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민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현재 전 세계인들에게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사안이 되었다. 나는 지난해 멕시코 이민자들이 마주하는 새로운 현실을 리서치할 기회가 있었다. 멕시코의 여성이민협회 등 여성들의 이민을 지원하는 다양한 기관이 활동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여성이민협회가 미국의 비영리 기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남미, 특히 멕시코에서 이주하는 여성들이 놓인 여러 상황을 조사했다. 멕시코를 통한 이민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이민을 돕는 기관들은 억류된 가족 구성원, 여성 혹은 아이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해주며 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한 많은 지원책을 제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이주 과정에서 가족은 흩어지고, 여성들은 구금되거나 멕시코로 되돌려 보내지기도 하는데, 이들의 자녀들이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지원 기관들의 관리를 받을 수 있다. 아이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동하게 되는데, 안타깝게도 불법 이민자인 어머니는 자녀를 만날 수 없다. 이후 미국인이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고 아이들의 성과 이름이 바뀐다. 그리고 이들의 생물학적 어머니들은 자녀에 대한 그 어떠한 권리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지원 기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 문제는 단지 한 개인의 이민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관련된 전반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이민 가정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으면서, 새로운 필름 작업에 여성을 중심 인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멕시코 이민 프로젝트에는 여러 국기를 몸에 걸친 여성 퍼포머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과거 스페인이 멕시코를 침략했던 경로를 배경으로 하여, 멕시코 밸리의 두 화산 사이에서 퍼포먼스를 촬영할 계획이다. ‘이츠타치우아틀(Iztaccíhuatl)’과 ‘포포카테페틀(Popocatepetl)’ 화산 사이이다. 이츠타치우아틀 화산은 ‘라 무헤르 도르미다(La Mujer Dormida)’, 즉 ‘잠자는 여인’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 두 화산에는 멕시코인에게 잘 알려진 남녀 사이의 슬픔과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신화가 있다고 한다.
Hou Hanru
이는 분명 이민 가정을 둘러싼 특정 문제를 넘어 다양한 이슈를 아우르고 있다. 나아가 모든 이들의 관계, 혹은 가족 관계의 문제를 연구하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하겠다. 이번 서울관의 전시에서는 관객이 직접 만든 찰흙 공으로 뒤덮인 커다란 타원형의 탁자를 선보였다. 이 관객 참여형 작품에 관해 설명해 줄 수 있겠나?
Kimsooja
나는 오랫동안 세라믹에 관심을 갖고 주시해왔다. 한 번도 실제로 제작해 보진 않았지만, 용기 그 자체보다는 그릇이 만들어 내는 허 (viod)의 공간이 더욱 흥미로웠다. 2016년 리옹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요코 오노(Yoko Ono)의 개인전
《여명의 빛 Lumière de l'aube》을 위해 마련된 ‘워터 이벤트(Water Event)’에 미술관 관장으로부터 초청된 적이 있다. 요코 오노는 미술가들에게 물을 담는 용기를 제작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나는 찱흙을 만지게 되었는데, 하나의 보따리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이자 무언가를 담는 용기로 찰흙 공을 떠올렸다. 물을 담기 위해 어떤 빈 공간을 만들기보다는, 이미 물기를 머금은 찰흙 공을 만들어 전시함으로써 환경 문제까지 다루고자 했다. 그래서 말라가고 있는 작은 찰흙 공 하나를 보냈다. 그때부터 찰흙 공의 여러 형상에 주목하며 찰흙 공을 만드는 행위가 이를 만드는 사람에게 어떠한 심리적, 명상적 영향을 끼치는지 관찰하게 되었다. 찰흙 공을 만들려면 손가락과 손바닥을 전부 중앙으로 밀며 힘을 가해야 한다. 또, 그 표면에 있는 모든 모서리 부분을 밀어 넣으며 매만져야 한다. 각진 부분을 매끄럽게 만들어야 하므로 완벽한 구 형태를 만드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양쪽에서 중앙으로 힘을 가하는 행위는 이 찰흙 공에 작용하는 중력을 만들어내는 것과 흡사하다. 가장 완벽하고 매끄러운 구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양 손바닥 사이에 찰흙 공을 굴려야 한다. 보따리를 만드는 것처럼, 두 손으로 무언가를 감싸는 행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구를 만들기 위해 찰흙을 굴리는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마음속에 구 형상을 떠올리게 된다.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들과 찰흙으로 작업했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재료에 반응했고, 매우 열중하여 찰흙을 만지고 굴렸다. 이 즉각적 반응과 집중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 작업은 나보다 참가자들에게 훨씬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세계 내지는 우주를 상징하는 길이 19m의 거대한 타원형 탁자를 만들고, 관객을 그 자리에 모아 그 경험을 공유하도록 했다. 이 작품에서 참여자들은 각자의 공간과 시간을 누리지만, 어떠한 물리적 결과물과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도록 함께 작업하는 프로젝트인 셈이다. 또 우주적 풍경, 마음의 우주를 만들어내면서 함께하는 공간, 공동의 커뮤니티를 창조해낸다.
Hou Hanru
광장처럼 말인가?
Kimsooja
그렇다. 이 거대한 타원형의 탁자는 총 68개의 불규칙적이고 기하학적 형태의 작은 탁자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탁자 아래에는 32개의 스피커와 16트랙의 사운드 작품 <구의 궤적 Unfolding Sphere>을 함께 설치했다. 이 작품은 완전히 마른 찰흙 공들이 구르고, 부딪혀 굴러가고, 스치는 소리를 담고 있으며, 4∼5명이 움직인 찰흙 공들이 각각의 다른 마이크에 녹음되고 편집되었다. 찰흙 공이 굴러가며 테이블의 각진 코너에 부딪힐 때 소리가 나기 때문에, 이 소리는 공의 기하학을 드러내는 셈이다. 그래서 사운드 작업의 제목도 ‘구의 궤적(Unfolding Sphere)’이라고 정했다. 공들이 큰 소리를 내며 부딪힐 때는 천둥 같은 소리, 우주적인 소리를 내기도 한다. 연이어, 오디오 퍼포먼스로써 내가 직접 물을 머금고 ‘그르르르’하며 목을 울리는 음향이 함께 편집되어 있다. 때로는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듯한 소리로 들리기도 하는데, 목에서 구르는 수포가 중력을 거슬러 공기를 밀어내기 때문에 움직이는 공의 수직성이 두드러지게 된다. 찰흙 공이 굴러가는 소리는 수직적인 힘이나 움직임을 갖고 있으면서도, 탁자의 수평축을 드러내게 된다. 나는 1970년대 후반부터 이와 같은 수직과 수평의 구조에 깊이 관심을 가져왔고,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제작된, 나의 퍼포먼스 사진을 활용한 실크스크린 판화 작품 시리즈 〈몸의 연구 Structure-A Study on Body>(1981)도 선보인다. 이 작품에서 나는 팔을 90도로 기울여 삼각형, 원, 팔각형,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 도상을 만들고 있다. 나의 신체와 그 움직임의 형태 사이에서 생성되는 기하학적 공간을 규정하기 위해 삼원색(빨강, 노랑, 파랑)을 사용했다. 이 작업들은 이후 수직·수평의 구조를 가진 나의 바느질 작업과 <바늘 여인>과도 직접 연계된다고 할 수 있다.
Hou Hanru
우주적인 감각, 즉 신체와 세상의 연결을 언급하고 있다. 이 작업에서 흥미로운 점은 빛을 사용하면서 강조된 신체와 건축물 사이의 관계성인 것 같다. 예를 들어, 당신은 2006년 스페인의 마드리드 크리스털 궁전,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설치 작업처럼, 창문에 회절격자 필름을 부착해 스펙터클한 환경을 조성해냈다. 빛이 스며들어와 무지개 효과를 만들며 내부 환경에 변화를 주면 우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의 <호흡: 거울 여인 Respirar–Una Mujer Espejo/To Breathe–A Mirror Woman>(2013)에서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적막한 공간이 설치되기도 했다. 이는 우주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두 가지 측면 사이의 대조를 환상적으로 보여주는 거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전개된 새로운 작업인 것 같다.
Kimsooja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도 크리스털 궁전과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사용했던 필름과 같은 것을 사용했다. 이러한 작업은 회화나 안료를 빛으로 전환한 것이다. 특수 필름은 인치(inch)마다 수많은 가로, 세로의 금이 나 있어 직조된 듯한 구조를 보인다. 빛이 이 필름을 통과하면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여 무지갯빛을 만들어낸다. 프리즘처럼. 이는 빛과 관련하여 내가 지속해오고 있는 회화, 캔버스, 색채, 안료의 구조에 대한 연구 중 하나이다. 나는 빛과 소리의 성질을 밝혀내기 위해 칠흑같이 어두운 절대 침묵과 암흑의 공간을 만들었다. 시각화하는 방법은 다른 작업과 정반대지만, 이 작업은 내가 삶과 예술에 내재한 이중성에 대해 던져왔던 질문들과 연결된다. 캔버스의 종횡 구조처럼 내가 이중성에 관해 제기하는 문제들은 정신적인 구조들, 우리 마음속의 만다라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나의 석사 논문 『조형기호의 보편성과 유전성에 관한 고찰: 십자형 기호를 중심으로』(1984)는 고대 유산부터 동시대 회화와 조각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품에 나타난 십자 형태의 상징을 다룬다. 미술사 전반에 걸쳐 이 십자 형상과 구조를 찾아볼 수 있고 현재까지도 그 지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구조와 모티프가 창조성과 혁신성을 갈구하는 동시대 미술에 어떻게 끊이지 않고 나타날 수 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안토니 타피에스(Antoni Tapies),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등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근본적인 십자 구조를 대면해왔다. 나 역시도 예외가 아니며, 늘 세계와 인간의 정신에 깃든 내적 구조들에 관해 질문해왔다. 석사 논문에서 십자형 구조들과 칼 융(Carl Gustav Jung)의 원형 이론(archetypes theory)을 적용하여 만다라의 심리적 기하학 관계를 밝혀내고자 했다. 이는 예술과 삶의 이중성에 관한 나의 물음들과 무관하지 않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빛과 암흑 공간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면, 뉴욕에서 이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허리케인이 몰아닥친 일이 계기가 되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전원이 끊긴 완전한 암흑 속에 살아야 했다. 나는 그 시기 동안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지내던 아파트 건물과 거리를 걸으며, 누군가 나를 향해 걸어올 때 공포감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공포감이 타인에 대한 나의 ‘무지(ignorance)’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마음 속에, 또 관계 속에 자리한 이 무지는 내가 작품에서 만들어낸 공간에서 경험하는 어둠과도 같고, 결국 그 무지에의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것이었다.
Hou Hanru
완벽한 마무리인 것 같다. 현재 우리는 일종의 암흑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 암흑을 헤쳐 나갈 새로운 빛을 창조해내야 한다.
Kimsooja
정확하게 그렇다.
— Essay from Exhibition Catalogue 'Kimsooja: Archive of Mind' published by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2017. pp.18-85.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2016
김수자(Kim Soo-ja, 金守子)는 1999년 ‘천으로 삶을 표현한 보따리 작가’로 미국 뉴욕에 발판을 마련한 뒤 늘 길 위에 있었다. 세계 곳곳을 떠돌며 ‘제 몸을 바늘 삼아’ 사람과 삶의 궤적을 직조하며 살아왔다. 그가 4년 만에 고향에서 여는 전시회 제목은 “김수자-마음의 기하학(Archive of Mind)”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풀어놓은 9점의 작품들은 작가의 바느질이 인류의 근원에 더 다가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수자는 어느 장소에서나 그 실루엣만으로 눈에 잘 띈다. 승려나 사제가 입을 법한 검고 긴 옷에 하나로 질끈 묶은 긴 생머리는 그에게 선(禪)을 탐구하는 도인의 이미지를 입혔다. 예순을 바라보도록 여일한 그 심플 스타일은 그의 일관된 예술 세계를 드러낸다. 김수자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보따리(Bottari)’ 더미 위에 저 모습을 하고 앉아 지구 수십 바퀴를 돌며 주요 도시를 선승처럼 유랑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마련한 개인전에서 그는 지난 30년 걸어온 행위의 흔적을 정리했다. 특히 관람객이 자연스레 작품에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치 마련에 고심한 듯 보인다. 해외 곳곳에서 살인적인 스케줄을 이어가며 종종걸음 쳤던 국제적 작가의 위상을 잠시 내려놓고 무엇이 ‘나를 그렇게 몰두하게 했을까’ 함께 생각해보자고 관객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수자를 국제 미술 무대에 각인시킨 첫 작업은 보따리 트럭이었다. 알록달록 갖가지 색채 꽃무늬로 장식된 큼직한 보따리 위에 올라앉은 그의 뒤태를 처음 찍어 세상에 알린 사람은 사진작가 주명덕이었다. 그 사진은 한 여성 미술가의 시도를 평범한 물체 싸기에서 사람을 엮는 비범한 예술 개념으로 승화시켰다. 천(fabric)을 매개체로 사람들을 그리는 김수자에게 바늘은 손의 연장이자 몸의 늘림이었고, 실은 마음의 연장이었다. 작가는 바늘과 만났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어머니와 이불보를 꿰매다 문득 천의 앞뒤를 오가는 바느질에서 삶과 죽음, 들숨과 날숨, 음양의 이치를 보았다.”
홍익대 미대 회화과 시절부터 그는 남다른 고민으로 조숙했던 작가였다. “오래도록 삶을 관조하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미술 입문의 이유다. 세계의 구조를 수직과 수평으로 파악해 그걸 어떻게 2차원 평면에서 보여줄까 고민했던 그에게 바느질과의 만남은 일순에 과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 펼치면 2차원 평면이요, 싸면 3차원 입체가 되는 보따리의 포용성과 융통성, 가변성은 인류의 모든 것을 품고 싶었던 김수자에게 맞춤한 도구이자 개념으로 들어앉았다.
그의 이름 ‘수자’는 힌디어로 바늘이라는 뜻이다. 운명적인 선택이었을까. 그는 분쟁과 불화의 도시 한복판에서 인파를 꿰뚫고 지나가는 그 자신을 바늘의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보따리’ 연작에 이어 ‘바늘 여인(A Needle Woman)’ ‘거울 여인(A Mirror Woman)’ 시리즈로 진화한 행보는 그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바쁜 국제미술계의 스타 작가 중 하나로 만들었다.
오늘날 국제적인 유명 작가를 가늠하는 조건으로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는 무엇일까. 한때 그 답은 경매나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가격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잣대가 생겼다. 비행기 탑승 마일리지다. 각국에서 주최하는 비엔날레 참여나 유명 미술관 초대 등으로 1년 내 어디론가 떠도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작가는 그 유목민의 숙명으로 이미 작품 세계에 방랑의 기운을 품기 마련이다.
김수자도 1999년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뒤 1년 중 다섯 달은 뉴욕, 한 달씩은 서울과 파리에서, 나머지는 개인전이나 초대전을 위해 도시에서 도시로 움직여야 하는 고된 일정을 소화해왔다.
미술 담당 기자 이메일 함에는 1주일이 멀다 하고 김수자 스튜디오에서 보낸 새로운 전시회 소식이 도착한다. 여행 와중에 새 아이디어를 내고 짬짬이 실행의 도구를 챙기며 만들어가는 작품 세계는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이 핵심이기 마련이다.
김수자 역시 사람을 매개로 진화해왔다. 자신의 작품 세계 특징을 ‘장소성, 정신성, 정체성’으로 잡지만 그 중심 동력은 인간이고, 그들이 움직여가는 인간의 미래다. 2010년 9월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선보였던 설치 프로젝트 <지-수-화-풍(地水火風)>은 핵폭탄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반도의 현실을 영상물로 다룬 작품이었다. 원자력의 폭력성을 품은 동시에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시켜 줄 미래 대안의 이중적 성격을 지닌 원자력발전소에서 작가는 유목민의 시각을 드러낸다.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이 순환하는 자연 속에 자신을 맡기라고.
<마음의 기하학>(2016년 7월 27일-2017년 2월 5일)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객이 만나는 건 긴 지름 19m에 이르는 거대한 타원형 탁자다. 실내에서 만나기에는 너무나 큰 그 테이블은 보는 이에 따라 심상(心象)일 수도 있고 은하계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 대형 탁자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토를 주물러 구(球)를 만든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찰흙의 질감을 느끼며 반죽을 손바닥에서 굴려 원형을 일군다. 동그랗게 흙을 동글리며 사람들은 생각한다. ‘왜 원형만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까?’ 워크숍 참여 방법에 김수자의 마음이 들어있다.
작가는 작품 설명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비우고, 마음의 모서리를 깎는 자리입니다.” 인간사에 모난 모서리는 얼마나 많은가. 분쟁과 분열의 모서리 탓에 테러가 터지고 전쟁이 발발한다. 손으로 찰흙을 감싸며 굴리는 순환 행위는 관객이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두 손바닥에서 마찰하는 힘 사이에서 뭔가를 느끼게 한다. 원초적인 촉각을 자각하며 허(虛)를 감싸는 손짓을 반복하면서 문득 무(無)의 둥근 환영을 접한다. “인도에는 검은 돌을 갈고 닦아 거울을 만든다는 말이 있죠.” 작가가 한마디 덧붙였다. 이 전시 표제작과 함께 전시되는 사운드 퍼포먼스 신작 <구의 궤적 Unfolding Sphere〉은 구형 찰흙이 흩뿌려진 타원형 탁자 표면의 이미지와 조응하여 관객을 우주적 조형성에 휩싸이게 한다.
<몸의 기하학(Geometry of Body)>은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온 몸을 던져 정진했던 요가용 깔개를 벽에 붙여놓은 작품이다. 손과 발이 닿은 흔적, 땀과 눈물로 적셔진 물질의 변화가 드러난 일종의 ‘몸 회화(body painting)’다. 여기서 매트는 기존의 미술이 오랫동안 받들어온 기성품 오브제가 아니다. 몸의 흔적이 마음에 투영돼 나타난 ‘사용된 오브제(used)’다. 몸의 흔적이 새로운 개념의 회화를 창조했다.
김수자는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평생 수직과 수평의 문제에 집착해왔다. 1981년 작 <몸의 연구(A Study on Body)>는 그 초심을 보여주는 시각 자료다. 여기에서 작가는 스스로 행한 퍼포먼스 사진으로 45점 실크스크린 연작을 떴다. 몸은 그가 자신과 세계를 자각한 출발이자 그의 작품 세계의 밑둥치처럼 보인다.
<숨(One Breath)>은 들숨과 날숨이 만들어낸 파동을 기록한 디지털 자수다. 작가는 인간의 생존 조건인 숨쉬기의 구조와 형식을 직물 사이를 누비는 바느질로 형상화했다. 새틴 위에 수 놓인 숨의 순환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절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인가, 생각하게 된다. 2004년에 발표했던 호흡 사운드 퍼포먼스 <직물공장(The Weaving Factory)>의 음파 그래픽이 기초가 됐다.
나무 탁자 위에 두 팔만 덩그러니 놓인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는 문득 외로워 보인다. 허(void)를 표상하고 있어서일까. 석고로 본뜬 작가의 양 손에서 엄지와 검지는 서로 맞닿아 있다.
전시의 대단원은 영상 작품 시리즈 “실의 궤적(Thread Routes)>”의 새로운 챕터(Chapter V) 첫 공개다. 작가가 평생 천착해온 직조, 직물 문화에 대한 탐구가 21분 48초 영상물에 담겼다. 평론가들은 그의 영상작업을 “내러티브가 없는 시각적 시”, “시각적 인류학”이라고 명명했다.
전시의 대단원은 영상 작품 시리즈 “실의 궤적(Thread Routes)”의 새로운 챕터(Chapter V) 첫 공개다. 김수자는 2010년부터 전 세계를 무대로 16mm 기록영화 “실의 궤적”을 찍고 있는데 6편 중 5번째 편이 완성된 것이다. 작가가 평생 천착해온 직조, 직물 문화에 대한 탐구가 21분 48초 영상물에 담겼다.
화면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나바호족과 호피족이 살아가는 인디언 보호구역과 뉴멕시코 지역에서 촬영됐다. 평론가들은 그의 영상작업을 “내러티브가 없는 시각적 시” “시각적 인류학”으로 이름지었다. 인류의 시원을 더듬게 하는 아득한 평원, 석기 시대를 연상시키는 거친 폐허, 우뚝한 돌산과 끝없는 지평선이 캔버스의 밑칠처럼 떠오른다. 그 속에서 무언가를 짜고 풀고 또 짜고 있는 여인들이 도톰한 바느질처럼 질감을 드러낸다. 인간이 걸어온 길은 저것이 다일 수 있다.
자연 속에 바느질되어 들숨과 날숨을 호흡하며 허(虛)로 스며들기.
보따리를 바느질하던 작은 바늘 여인은 지구를 바느질하는 큰 바늘 여인이 되어 오늘도 은하계를 여행한다.
─ Article from Koreana Online Magazine, Winter 2016.
2015
Visiting an exhibition preview can impede an uninhibited view at the art at hand, but in the event of a large-scale installation that opens to the invitees at a specific time, it can also have a magical shine, as if you enter and explore a shrine together. However, this heightened sense of wonder can only partly explain why I was overwhelmed by a wave of goose flesh, even before I fully set foot in Kimsooja's latest installation. That is the impact her art can have.
Kimsooja's 'To Breathe' in Centre Pompidou Metz is a part of the 2015-2016 Korea-France Billateral Exchange, an event to celebrate 130 years diplomatic of relations between the two countries. The Korean artist, who lives and works in New York, Seoul and Paris, is known for her simple visual language and her deep humanism, a combination of core features, which led Olivia María Rubio to label her art as existential minimalism.
In Metz she presents the next chapter in her To Breathe series. How to describe and assess an installation that immerses you instantaneous and do justice to its total experience? One immediately feels the limitations of language. It seems that the only way is to chop it into manageable components and in Kimsooja's case a possible path is to deal with these components in a chronological order.
The oldest one is the recording of her humming and breathing. For her participation in the Lodz Biennale of 2004 she was inspired by her assigned location: a former weaving factory. The rhythmic and cyclic movement of a loom made her think of the inhaling and exhaling of the human body. In other words, in her sound performance she replaced mechanical movement with bodily motion and mechanical sound with human humming.
The aural facet of her installation in Metz is similar to the one in Lodz. First we hear a skin-tingling humming. Then her soft nasal sounds develop into a polyphonic flirt on the edge of harmony and dissonance. They suddenly fade away and after a few silent seconds, we hear the artist breathing, from calm to agitated. It goes crescendo to a climax which we do not know the content of. Is it the angst of gasping for life or is it the rapture of la petite morte?
The affective force of the soundscape is soothed by the second component of her installation: the slow projection of color fields on a floor screen. She first experimented with this in 2006, when she presented 'To Breathe / Respirare (Invisible Mirror, Invisible Needle)' at the Teatro la Fenice in Venice and the Theatre du Chatelet in Paris.
The monochromes, more or less in the middle of the installation, are an oasis of serenity where the look can linger. They are surrounded by a sea of glittering mirrors that is bounded by the bay windows on both sides of the 80 meters long Gallery 2. The mirrors and the diffraction grid film on the windows are the more recent components in 'To Breathe'. In 2006 she transformed the Palacio de Cristal, a glass pavilion in the heart of the Buen Retiro Park in Madrid, with them.
Whereas the film folds and blurs Metz's skyline and landmarks into a fairy-like rainbow spectrum, the mirror stickers unfold the space and the self. The ripples where they stick together and the reflection of the grid ceiling are dizzying and disorientating. Strolling while looking in the mirrors has a vertigo-like effect, but it also sharpens your sense of self-awareness. Something that was already ignited by the breathing.
The abstraction of the alternating color projection, the virtuality of the mirrors and the reality of the cityscape and changing light melt together to an immersing experience that is as confronting as it is comforting. Here's an artist who is confident in her simple visual language and whose modest power is exposed to those who are open to it.
Thomas Van Loocke
How difficult is it to create intimate art that can host a lot of visitors, like your installation in Metz? How do you feel about this tension?
Kimsooja
I think all art can be intimate as long as the audience takes it as such. My breathing performance might be intimidating to some visitors, as it evokes a strong physical reaction because of its intimate, physical and sexual aspects. However, when you take it serious enough to go beyond those dimensions, you start to question the borderline between the moments of life and death.
Thomas Van Loocke
What are the best conditions to view and experience your installation? All alone or with a few or even a lot of others?
Kimsooja
All alone is interesting, but so is having someone else's presence, as the other's body serves as a measurement of scale to the installation. Even if there are several others, you can always be focused as long as you find an element to focus onto. At the moment, the number of visitors is limited to fifteen.
Thomas Van Loocke
In an earlier interview you said that "the whole of (your) practice has always been a journey of searching for a self-awareness". Do you think visitors can enter that state of mind when they're more and more preoccupied with their smartphones and shooting the most likeable Instagram photos?
Kimsooja
It is one of the symptoms of our contemporary technological society. Most people are not able to focus on the here and now. Instead of experiencing the now, they record it, so that they can replay it later. There's no corporeality and mindfulness to the time they spend. However, I was surprised to see many of the visitors very much engaging with the installation. Walking slowly, contemplating the moment. Visitors can experience whatever they want, as long as they don't do anything dangerous or disturb the others. I know you can't control your audience. The piece is there for the ones who are ready for and open to it.
Thomas Van Loocke
Regarding that lack of control and the ability to experience your spatial installations, how do you look back on your participation in the Venice Biennale of 2013? One reviewer noted that "the impact of the installation itself (was) far outweighed by the bureaucratic procedure one (had) to transition through".
Kimsooja
I agree that the opening period of the Biennale was not ideal to fully experience this particular piece. The Biennale attracts such a large number of visitors that we needed a procedure to ensure that everything ran as smooth as possible. Without it could have been dangerous for some people to enter the anechoic darkroom, just as walking on the mirror floor could have been for seniors or for people who suffer from vertigo. Although I am grateful for the enthusiasm and patience of the people who waited to experience both spaces in the Korean Pavilion, I still regret that we couldn't give more time in the anechoic chamber to the visitors. If I were able to recreate the piece, I think that more time would make it possible to delve deeper in one's inner space and to have a richer experience.
Thomas Van Loocke
Your work is based on displacement and humanness. What is your view on the biggest refugee and migration crisis since the Second World War?
Kimsooja
I personally think the Third World War is already happening. It was ignited by America's reaction to 9/11. In an endless cycle of violence, the whole world is now drenched in human blood. It threatens our freedom, sanity and daily life. We all have to witness this incessant violence, as mass media shows it non-stop in this era. It numbs us and makes us more and more indifferent, which is a huge problem. Contemplating our own individual problems will be the key to solve this, I think. We need to recover our heart, love and peace, now more than ever. The key is in our mind.
Equally distressing is the unbelievable desperation of the refugees crossing oceans and borders. In this time we need art that can comfort and heal the human mind that has been hurt so much. We have to rethink how to lead our life and how to respect, embrace and share with the other, instead of arguing with or attacking him or her – to save ourselves, the others and the next generations and to save this globe.
Thomas Van Loocke
Are politicians tackling it in the right way? Do they show enough humanness in their approach?
Kimsooja
I am so disappointed by all measures taken by politicians in the name of the nation and humanity. What they do is exactly the same as what the ones they condemn are doing: killing. There's no better solution in history than Mahatma Ghandi's resistance, as there can be no excuse for taking someone's life. What are religious leaders teaching to their followers? Why can't we hear them speak up? What are influential thinkers doing nowadays? I was touched by the speech of the Princess of Jordan: she proposed to open her country for the huge number of refugees and to educate the immigrant kids. As she is one of the most powerful figures in Jordan, her words have a huge impact. I wished all nations showed this kind of courage, responsibility and humanity. Americans and Asians hesitate to act, as they think it is someone else's problem. Especially America should welcome refugees, given every citizen descends from immigrants all over the world.
Thomas Van Loocke
Has this crisis affected your work?
Kimsooja
My work has always been a response to violence and inhumanity and this will never change. I answer it by means of healing. Either by showing society's reality as a witness or by proposing a harmonious way of co-existence, questioning who we are and where we're going. I wish people find equilibrium and peace in my work that comes from their own empathy.
As a child, I spent some important years near DMZ areas in South Korea, as my father served in the military. I came to realize lately that experiencing the specific geographical condition as well as the daily danger and DMZ border issues, must have given me a sensitive and vulnerable attitude to any kind of violence, be it verbal, visual or physical. Although my father was forced to serve during the Korean War and continued his responsibility until he retired as a general, he didn't believe in physical force and often showed anger over the military conduct towards civilians, especially the Gwangju massacre on May 21, 1980. I am sure the whole condition of my childhood has influenced my thoughts and my work a lot. Not only the environment in which we lived, but the education my parents gave me. There was love and care and they always emphasized and demonstrated the equality of every human being.
As a teenager, I suffered a lot not being able to help people in need. I wished to quit high school and to become a social worker or labourer, as I was burdened by the thought that I was a privileged individual, although we were just a normal middle class family in Korean society. I chose to go to college, to be financially independent and to gain the strength to help others, while pursuing art as a tool for my contemplation on life and the world. My engagement with social issues in different forms is the basis of my art.
Thomas Van Loocke
What are your prospects?
Kimsooja
I'm doing extensive research for the last chapter of the Thread Routes, a film project that consists of six chapters, each one in a different location around the globe. I hope the political situation in Africa becomes stabilized so that I can travel more freely in the coming years to create it. This is the most important project on my mind right now.
Another big plan is to find the right location for 'A Needle Woman – Galaxy was a Memory, Earth is a Souvenir', a 46-foot-taal needle-shaped sculpture in iridescent steel and polymer that I developed in collaboration with architect Jaeho Chong – my son – and Cornell University nano material engineer Ulirich Wiesner last year.
─ Art Dependence Magazine, Online Art Publication, December 15, 2015
2015
누구든지 김수자 작가가 제작한 작품들을 신속히 훑어보기로 한다면, 필자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그의 작품들이 매체별로 정리된 웹 홈페이지 www.kimsooja.com로 일단 들어가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썩 잘 분류된 이 홈페이지는 작가의 글, 인터뷰, 작품에 대한 생생한 포트폴리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도 여느 감상자들과 마찬가지이다. 김수자의 예외적인 전시들을 보기 위해 수시로 해외로 나갈 수는 없다. 그래서 빈번하게 이 사이트에 링크를 걸곤 한다. 그럼 그때마다 간화선(看話禪)의 화두 같은 작품들이 하나씩 하나씩 또렷이 드러나고, 이윽고는 일상에서 둔탁해진 의식의 벽이 얇은 필름처럼 예민해지는 묘한 기쁨을 느낀다.
김수자의 작품은 우리의 마른 감각에만 호소하지 않는다. 빠르고 격한 충격을 주거나 새뜻한 간질거림으로 자극하는 작품들과는 매우 다르다. 특이하게도 그의 작품들은 감상자의 몸과 의식을 동시에 사로잡고, 시각과 감성의 깊이(profondeur)를 파고든다. 그의 상상력과 정서도 그저 그렇고 그런 충동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 그의 미적 상상력은 출렁이지 않고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과 여유로운 호흡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도 너 나 없이 부지불식간에 방치해왔던 깊은 생각들 속으로 가라앉는다. '나'를 질문하게 하는 존재라는 것 혹은 세계 속 존재의 의미 내지 근원을 더듬어가는 사색의 느린 흐름을 타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감상자들의 이 같은 특별한 경험을 배려하기 위함인지, 작가는 자신의 작품 안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세우지 않는 편이다. 작품을 설치하고서는 에고의 흔적을 지운 채 조용히 물러난다. 예술가가 주관과 감정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음이 감상자에겐 흔치 않은 당혹스런 일이 되겠으나, 하지만 그렇기에 스스로 의식의 체험을 할 수 있는 넉넉한 사유의 자리를 얻음에야 ... 그러니 우리가 그의 작품 속으로 풍덩 빠져 볼만 하지 않겠는가.
천들을 바늘과 실로 꿰매어 연결한 1980년대의 <ㄱ, ㄴ, ㄷ, ㄹ> 연작과 <天, 地> 연작에서부터 최근의 비디오 설치작품인 <地水火風> 연작까지, 작가의 작품 구성은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킬 만큼 늘 단순하고 구조적이다. 초기작에서 수직선과 수평선 혹은 사선으로 이어진 사각형 천들은 조각조각마다 염색된 오방색들을 그대로 드러낸 채,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색조 구성을 보여준다. <지수화풍>에서도 세계를 구성하는 4 요소들인 흙, 물, 불, 바람의 자연 이미지들을 순열로 연결해 설치함으로서, 존재를 둘러싼 세계의 근원적 의미를 네 방향을 따라 구조적으로 사유하도록 한다. 작가가 스펙터클의 축으로 등장한 <바늘여인> 연작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등을 돌린 채 얼굴을 보이지 않는 침묵 상태로 그렇게 '수직'으로 멈추어 서있다. 그 대신 주변 도시와 다양한 면모의 사람들이 형형색색의 천 조각들처럼 '수평'으로 그를 감싸 흐르고 움직인다. 2010년을 전후해 등장한 일련의 비디오 작품들인 <뭄바이: 빨래터>과 <앨범: 허드슨 길드> 그리고 <실의 궤적> 연작들 역시도 유사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보이지 않는 작가의 몸은 여전히 지구 곳곳을 수평으로 흐르는 갖가지의 존재의 삶들, 그 조각과 편린들을 끌어 모았다가 때가 되면 우리 눈앞에 보따리를 풀듯 펼쳐놓고 주목하도록 손짓한다.
그의 비디오 작품들은 그 전에 선행된 <보따리> 연작의 연장선 위에 있다. 초기에 천들을 아상블라주하듯 꿰맨 작품들은 평면작업이지만, 1991년 뉴욕 PS1 작업실에서 발견한 <보따리> 연작은 천들을 꿰매지 않고 천 조각 하나하나의 단위를 독립된 기표로 인식하면서 시작된다. 천 조각들은 색과 문양 그리고 크기에 상관없이 각각 하나의 기호가 되며, 전시장 바닥 혹은 테이블 위에 펼쳐놓는 산포의 기호로 유연하게 변화된다. 그러다가 작가가 어느 순간에 이 천 조각들을 끌어 모아 보따리로 싸면서, 평면 작업(수평 구조, 정지 상태)이 입체 작업(수직 구조, 이동 상태)으로 이행되고, 보따리는 신체와 함께 여행하는 오브제로 변환된다. 펼치고 싸는 다시 그 반대로도 전환되는 <보따리> 연작은 그 가변성과 이동성(유목성) 덕분에 시, 공간을 통한 작품 구조의 열림을 가져온 그야말로 현대미술의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후 작가는 세계 곳곳마다 보따리들을 들고 다니며 전시장마다 상이한 퍼포먼스를 펼쳐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보따리를 열 때마다 존재와 삶의 다양한 상들을 풀어내는 작가의 행위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미술의 정체성이란 경계를 허물며 다른 영역으로 나아갔다. 새로운 출발점은 <보따리>의 무한한 구조적 가변성에 있었다. 그로부터 작가는 천 조각들 대신 비디오 영상 단편을 매재로 삼고 그리고 보따리를 펼치고 싸는 일 대신 필름을 편집해내는 일로 이행하며, 전혀 또 다른 이미지들을 펼쳐냈다. 필자는 비디오와 필름 영상의 선택이 그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생각할 때마다, 감탄과 환호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비단 작품 스케일과 구상에서 실현에 이르는 과정의 변화 뿐 아니라, 영상의 흐르는 시간성은 음양을 따라 오행하는 유동적 사태들 다시 말해 만물의 생성-변화-소멸의 변전을 근원적으로 설명해내는 최적의 방법적 조건을 마련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들숨과 날숨의 호흡이나 실을 잣고 씨실, 날실을 직조하는 일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실의 궤적과 남미, 유럽의 바늘 여인들의 이중 구조 역시 그의 비디오 작품에서는 존재-삶의 구조적 양태에 대한 직관의 이미지들로 살아났다.
호흡(숨쉬기)은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이다. 첫 호흡으로 태어나며, 마지막 호흡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 보이지 않는 들숨, 날숨의 끝없는 반복은 우주의 보이지 않는 무한 에너지(氣, 光)의 맥동 그 자체이다. 다양한 삶들을 이루는 바탕이자 가장 근본적이고 통일된 존재 상징으로서 이 호흡을 김수자는 2006년 마드리드의 '크리스탈 궁전' 내부에 가득 채웠다(<호흡: 거울여인>). 이어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호흡하기: 보따리>란 설치작품을 통해, 전시장을 빛과 호흡으로 채웠다. 국내외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던진 두 설치작품들은 비시각적인 빛과 호흡을 특수 필름과 거울을 사용해 눈부시도록 찬란한 무지개빛과 확대된 호흡 소리로 즉 심장의 수축과 확장, 씨실과 날실의 직조처럼 손에 잡힐 듯 생생한 촉각적, 청각적 맥동으로 전환시켰다. 그리하여 작가나 감상자의 존재/부재를 부각시키는 한편 생명과 환경의 연계에 더 주목하도록 하는 관계적 상황을 연출해냈다.
2015
A silent figure stands with its back facing the viewer, poised motionless against the ebb and flow of the anonymous crowd, unsheltered and without a want. Standing in front of A Needle Woman, a performance/video work (1999-2009) by the acclaimed artist Kimsooja, we see a body which, without doing anything, becomes a measure of time and space. As the artist's body weaves ceaselessly through the crowd, it shifts in and out of our field of vision. For a fleeting moment we experience our body transposed into hers, and through the borrowed gaze of the artist we confront our own impermanence in the face of time.
Her most recent work, similarly titled, A Needle Woman: Galaxy was a Memory, Earth is a Souvenir, carries this experience forward in a new form of practice. It is the result of a close collaboration between Kimsooja, the nanoscientist Ulrich Wiesner, and myself, an architect, on the occasion of the Cornell University's inaugural art biennial organized by Stephanie Owens, director of the Cornell Council for the Arts. Sited at the heart of the university's Arts Quad, the 46 foot high 4.5 foot diameter custom-fabricated steel structure is fleshed out with transparent acrylic panels that have been individually coated in iridescent nanopolymer. Under a raking light, each of these panels transforms the entire pavilion into a radiant spectrum of color as the molecularly engineered 'block copolymer,' produced by Hiroaki Sai and Ferdinand Kohle from the Wiesner Group, refracts various wavelengths of light dependent on the angle from which it is viewed. The interior of the floor is mirrored, doubling and extending the sky into the ground.
Cornell has a long history of commissioning site-specific art works. Perhaps those best known came out of the seminal 1969 Earth Art show curated by Willoughby Sharp, which brought together a group of young artists, including Hans Haacke, Richard Long, Robert Smithson, Dennis Oppenheim, and Günther Uecker, to produce new works on campus. Many of these artists treated the earth itself as a canvas and as sculptural material, just as today Kimsooja sees the earth as a "readyused" object – an idea akin to Duchamp's readymades, or Piero Manzoni's 1961 Socle Du Monde. In fact, much like Duchamp's attitude, Kimsooja's work resists human desire and adoration for visual pleasure, never making anything, but creating new thoughts for any given object or phenomenon. However, drawing such a formalistic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artists in using found objects has its limits. For instance, the idea of the needle employed by Kimsooja, in her own words, is "a medium, a mystery, a reality, a hermaphrodite, a barometer, a moment, and Zen," which is much closer to a state of empathy than to a rationale of apathy. It echoes the spirit of Arte Povera, whose attitude, according to Germano Celant, is "intent upon retrieving the factual significance of the emerging meaning of human life."
What then, led an artist who refuses to 'make' objects to conceive a 46-foot tall 'sculpture'? At the first meeting between the collaborators, Kimsooja was presented with a small vial containing an iridescent substance. Generally known as 'structural color,' and characterized by Ulrich Wiesner as 'block copolymer,' this chemically grown chain of monomers produce a continuous banding of molecules with light-refracting qualities similar to those found on the wings of butterflies or the shells of beetles. When examined under an electron microscope, it appears as a striated fabric. Needless to say, Kimsooja's sustained interest in used fabrics as a tableau of life finds another scale of reality here. Such a profound consistency between nanoscientific phenomena and her artistic practice allows her to work within an invisible realm outside the register of human senses and to bring reality closer to our own experience – a practice to which she has always been committed.
"Interconnected to observations in art-making," she says, "nano-techniques are an inverse expression of our perspective of the universe (cosmology)." The former constantly sharpens our gaze towards a single point, infinitely dividing and redefining space almost to the point of eliminating interiority, while the latter moves toward the limits of exterior space, beyond geometric imagination. Architecture, whose purpose includes the preservation of interiority through geometry, frames this vast scope of space at a scale conducive to a direct bodily experience. To this end, the physical form of the pavilion has little relevance as a sculptural object, but rises out of a necessity of finding an instrument to bridge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The form of a needle is not without its own architectural history. The Egyptian obelisk, for example, functioned as a religious axis between man and the cosmos for many centuries. Some known as 'Cleopatra's Needle,' these sacred structures embody early Egyptian creation myths that explained the rising and setting of the sun – the solar cycle – through the metaphor of birth and consummation of life closely associated with solar deities, namely the sun god Ra. As such, light and time had already emerged as symbolic channels between man and celestial order in the shape of a needle.
In effect, it is neither the nanomaterial, the architecture, nor the artistic intention that reveals the invisible, but the subtle yet perpetual cosmic motion reflected in the change of light. Material seizes such an instance. The molecular structure on the skin of the pavilion physically unwraps light, enabling a person's gaze to weave through the undulating depths of visual surface – a phenomenon perfectly mirroring the dynamic reciprocity between the standing figure and the gazing subject in the artist's video work. The 'needle,' in turn, anchored perpendicular to the ground, parallels our bodies and emerges as an object of non-violence. A stream of consciousness that once took the form of a brushstroke on the surface of a canvas is abstracted over the years in Kimsooja's practice as first a needle, then a body, a camera lens, and finally a luminous void. A gaze is all that remains.
More than a symbol of, or a testament to, the confluence of art and science, A Needle Woman: Galaxy was a Memory, Earth is a Souvenir opens the ontological dimension between our fleeting existence and the cosmos by rendering all of our gaze – an emphatic gesture of human subjectivity – instrumental to the relational structure between distance, time, matter, and memory: a void at the tip of a needle point.
— From Space: Issue 566, January 2015
Transcending boundaries, re-constructing a global identity
2014
In this digital era of instant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a new level of cultural globalization has allowed disparate groups to come together, forming a familiar and shared culture. This idea of 'global harmony' is not suggestive of an idealized and naïve state of international utopia, but rather should be considered as a platform for increased understanding of shared human traits, states of being, conditions and emotions, which are ultimately, universal.
Contemporary Korean artist, Kimsooja, is an embodiment of this concept of transcending boundaries, distinctions and limiting categories, as she is a true modern day global nomad. She is a multidisciplinary and multi-faceted artist, who, in fact, rejects prescriptive identity groups such as gender and marital status as well as socio-political, socio-economic, cultural and geographical identity constructs. Kimsooja's visual language may be rooted in Korean cultural traditions and mediums often associated with women and craft such as sewing, embroidery and textiles; however, she resolves to re-construct her identity and weaves herself into a global landscape. She achieves a delicate balance of leaving her mark as well as absorbing what is out there in the world, integrating into the fabric of different realities.
This paper examines Kimsooja's selected conceptual works to understand how she critically overcomes the shadows and burdens of identity constraints. Kimsooja is able to ground herself to issues of real value and genuine stories that are concerned with the world, and artistic practices that uncover ideas that are neglected or overshadowed by the commercial gloss of the global art market. Furthermore, her body is neither the site of sexuality nor the fantasized/fetishized female body of the 1960s and 1970s Euro American Feminist context. Alternatively, her body can be seen as a needle weaving through disparate cultures, in an act of re-construction, unification and investigation of what it means to be a human being in the 21st century. As such, Kimsooja is an exemplary contemporary woman artist who strives to deliver her stance on true human equality and honesty, going back to basic story telling through highly sophisticated and intellectual visual mediums that nonetheless remain humble in its true intentions.
"Without a needle, there would be no fabric, and without each individual, no fabric of society."
In today's inter-connected contemporary context of hyper permeability and fluidity between disparate cultures, Kimsooja, can be seen as a multifaceted woman artist, a global citizen and a critical voice for humankind. She presents pressing and engaging works that touch upon the very essence of the human spirit and the physical body, particularly as it relates to and intersects with nature and the real world. Her works are existential and spiritual explorations of humankind's basic and fundamental relationship with the environment around them. Furthermore, her artistic practice investigates formal qualities and aesthetics, engaging in a unique method of story telling and creation. In addition, Kimsooja has an innate ability to balance oppositions and paradoxes in complementary and poetically sensitive ways, setting her apart as a contemporary artist of international caliber. Her works are empathetic and deeply concerned with humankind at large. As such, the decisive word for Kimsooja is transcendence. Ultimately, Kimsooja is the personification and embodiment of transcending boundaries as well as re-constructing identities beyond limiting categories or binaries, into a new type of cultural hybridity.
In this paper, I will investigate how Kimsooja strikes an inherent balance of co-existences on multiple levels: firstly, in her early inquiries of form and aesthetics, and subsequently, in conceptual explorations of gender, nationality and identity. The latter ultimately results in dialogic awareness amongst humankind as well as the unity of the human spirit, the human body and nature. By weaving through these multifarious layers and demonstrating how they all function as variegated tools of expression, I will present the framework that grounds Kimsooja's presence as a modern day global nomadic artist, who speaks a language derived from her unique experiences, that resonates with all of humankind. I will be focusing mainly on Kimsooja's video series titled A Needle Woman, which was first done between 1999 and 2001, followed by a second set of works done in 2005, and a final iteration in 2009 in Paris, which was commissioned by La Nuit Blanche and projected onto the façade of the Hôtel de Ville, Paris. The reading of these works will be complemented with a number of other images including a late-19th century photograph and other historically significant images from the rich span of Korean art history. Kimsooja's modes of expression may have changed over the course of her artistic career; however, her core interest and concept of being a voice for humankind, a window into the human spirit and ultimately, a true modern day global nomad has always remained steadfast.
Kimsooja's works have evolved in a step-by-step process, with one artistic practice and aesthetic investigation resulting in another, providing critical building blocks for her oeuvre. Kimsooja's works were recently displayed in its chronological entirety for the first time at the Vancouver Art Gallery's exhibition Kimsooja Unfolding (October 2013 – January 2014). This survey exhibition displayed her work with 3 specific foci: her interest in time, memory and displacemen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human body and the physical, material world; and last but not least, her engagement with the expressive and conceptual qualities of colour, light and form.
Kimsooja studied Western painting at the prestigious Hong-Ik University in Seoul, and her origin as a painter was a crucial starting point for the development of her art. Beginning her professional career in the 1980s, Kimsooja had a heightened level of consciousness about the concept of tableau. From the very onset, she was interested in the intersection of art and life, as for her, art was not a paradigm disconnected from real life – not just her own life but also the world around her. In fact, Kimsooja was inspired by her childhood experiences as a young girl sewing bedcovers with her mother, which brought about the revelation of unity between her thoughts, sensitivity and activity, forming her artistic tenet. Her early aesthetic investigations in formative works such as The Earth and the Heaven (Plate 1) allowed for varied expressive formats that followed the legacy of abstract expressionist style painting, collage and the ready-made, or 'ready-used' as she calls them. The use of textiles and the act of sewing were not so much a demonstration of a feminist, activist standpoint, as it may at first seem, but rather, as the artist states, "the engagement with methodologies based on female domestic labour was more about avant-garde action in relation to contemporary painting and the concept of tableau," following in the tradition of modernist inquiry.
Having rationalized the needle as the tool that breaks through the surface of the 'canvas' or piece of cloth, Kimsooja was able to penetrate the barrier that separated art from life. As Suh Young-Hee elaborates, having punctured the surface of pictorial art of the preceding centuries, like Lucio Fontana, who slashed his monochromatic canvases, Kimsooja is no longer bound to the two-dimensional screen of illusion but rather, engaged in a process of creating three-dimensional as well as four-dimensional structures that her 'needle' passes through and conjoins. As the act of sewing intertwines art and life, a renewed reality and experience is forged for the artist. Therefore, the fabric and the act of sewing become the forms to which Kimsooja expresses the world of human beings like herself. A pivotal moment for Kimsooja was her 1992-1993 residency in New York City at MoMA PS1, where she was roused to re-assign meaning to used traditional Korean bedcovers as a ready-used aesthetic formation. At this time, being away from her native land, Kimsooja conceived of her iconic bottari (Plate 2), which aggregates a wrapped two-dimensional 'tableau' into a three-dimensional sculptural form through the act of filling the tableau up with used clothes and tying a knot to unite the contents together. As such, this action of wrapping bodies and memories was seen as a true formalistic and aesthetic statement that provided a breakthrough for Kimsooja's artistic practice.
Kimsooja's early inquiry into form and fashioning new methods of expression is similar to the pioneers of Korean modern art, the forefathers of Monochrome art. These artists in the 1970s pursued new modes of expression that were connected to their personal experiences, contemplating the exigency of a Korean modernism. Kimsooja marks a significant presence in this continuum of Korean art history as she is carving out another mode of artistic expression. The Monochrome artists, however, were trying to define a Korean identity solely in the realm of modern painting. To take an example, Monochrome artist, Ha Chong-hyun was concerned with the materials' physical qualities (Plate 3), as he pushed pigment back and forth between the linen, until the paint and the surface became intermeshed, breaking the distinction between material and surface. In contrast, moving far beyond the confines of Monochrome artists' contemplations on the 'surface,' Kimsooja is not merely concerned with material and form. For her, it is more about using her newfound relationship with artistic creation and renewed engagement with formalistic structures and aesthetic qualities as a tool for expression. This unique mode of expression for Kimsooja allows her to pursue art-making that is closely intermeshed with real life; there is no separation between the two dimensions.
Moreover, as her artistic career has evolved beyond the three-dimensional structure into video, installation and performance, Kimsooja's role as an artist has further sophisticated. Her performances are on the complete opposite spectrum to the often violent, sexually charged performances of Marina Abramovic and Lee Bul (Plate 4) where the female body is the site of exploitation and extreme forms of expression. Rather, Kimsooja emphasizes "inverting the notion of an artist as a predominant actor through 'non-doing' and 'non-making' in order to reveal a critical point that is without heroism and without violent action or aggression." In other words, art-making has become a meditative journey for Kimsooja; through the repetitive voyage of the needle piercing through material surfaces and her body as a metaphorical needle weaving through different environments, Kimsooja achieves an absolute sense of self-awareness. This philosophy of course is tied to Zen Buddhism and Eastern philosophies with the practice of meditation as an act of emptying oneself, resulting in a connection between the mind, body and soul, to ultimately attain enlightenment. In fact, Kimsooja describes A Needle Woman series to be a critical, transformative experience when she transitioned from a vulnerable state of mind to a focused, meditative and enlightened state of mind. In this way, Kimsooja's works focus on the process and act of art-making rather than the end result, as well as subjective experience rather than objective articulation.
Therefore, in Kimsooja's art, the physical, material and spiritual dimensions coincide, while co-existence of creation and non-creation, of doing and non-doing is also prevalent. Kimsooja transcends the essentialized inquiries in formalistic qualities that are only concerned with art in its singular dimension and purpose. Instead, utilizing her diversified artistic methods of exploring form and aesthetics as a way to move into greater self-awareness, she connects her mind, body and soul with the outer world in order to understand what it means to be truly human. Moreover, she is in sync with the many different human realities as well as the 'conditions of humanity' she encounters through her artistic journeys as a Needle Woman across 14 cities, which results in acute contemplations on the differences in ethnicities, geography, economics and cultural, religious, political tensions.
At the core, Kimsooja moves beyond traditional epistemology, transcending familiar and expected categorizations. Kimsooja's ontological manifestation is explicated in her one-word name, without distinction between surname and given name, which as she declares, becomes an anarchist's name. This defiant act of changing her name to be one entity is symbolic of her rejecting gender, marital status, socio-political, socio-economic, cultural and geographical identity constructs. Her discord with categories allows her existence to be free, moving seamlessly through time, place and ideas. However, aesthetically there are clear connections to her being a woman and a Korean native.
When examining Kimsooja's oeuvre there are unavoidable implications and associations with regards to gender. Encounter – Looking into Sewing (Plate 5) is an appropriate segue into this discussion of her role as a woman artist. This arresting photograph suggests a woman's figure completely veiled by multiple layers of traditional bedcovers, capturing the multi-layered complexity of the female identity, not only questioning its societal construct but also moving beyond conventional gender paradigms. The female figure hinted by the gomusin shrouded by cloths represents tradition, signifying the weight of Confucian values that to varying extents still govern gender roles in Korean society today. Yet the gomusin is taking a step forward, seemingly an allusion to the position of women today striving to re-define their status and position at large. At this point, we can compare Kimsooja's photograph with a late-Choson dynasty photograph (Plate 6) of a young Korean woman in street costume. Not so different from the burka, in late-19th century Korea, women were expected to cover their body and head in public as a sign of propriety. The incredibly similar form of the cloths engulfing the female figure insinuates gender politics, gender roles in society and issues concerned with women's rights.
However, Kimsooja consciously chooses to disassociate with the confines of 'feminism,' even despite the changing landscape of global feminisms, a sub-domain of global contemporary art today. She clearly states that she is neither operating within the traditions of the feminist movement nor within the practices of performance artists who use their body as sites of sexuality and violence in staged performances or grotesque actions. We can read her bottari works (Plate 2) in particular, as art for women by women, in the sense that these textiles and the act of sewing, as well as the tradition of wrapping bottaris, are historically, functionally and aesthetically associated with women. These works inevitably bring about questions of women's position in society, simultaneously underscoring the important role of women in the family domain, perhaps also intimating their conditions as alienated housewives.
Admittedly, Kimsooja recounts that though she had been predominantly influenced by the avant-garde aesthetic engagements in New York City, which inspired the formation of the bottari, that in actual fact, upon return to Korea, she came to a critical realization of Korean society and Korean women's role bundled up in her formerly-mere aesthetic 'ready-used' object. Notably, it was after this grounding to socio-cultural issues and awareness of the real world that further evolved Kimsooja's bottari works to a critical level, as it is seen as a site of intersection of the physical body, Kimsooja's own conditions as a woman as well as Korean women at large, and further, human destiny. Therefore, she moved on to wrap the bottari with used clothing, as a way of reinforcing fragments of reality in her 'ready-used' object. It is important to acknowledge Kimsooja's feminine sensibilities and recognize that these visual motifs associated with the female gender are tools for expression. Furthermore, although her contribution to visual culture is as a woman artist, she is ultimately interested in the physical and spiritual interactions with nature and the realm of human reality, which transcends gender identity and constructs. Her art is a phenomenological experience for both herself and the audience, rooted in a feminine aesthetic.
As always, Kimsooja mediates between polarizing movements or philosophies. She has married the interest in form and problematic of art-making with a spiritual dimension – art becoming more of an 'experience,' for both herself and her audiences. Her solid foundation and higher consciousness and sensitivity to perceiving the intricate connection between the human body, spirit and the earth allows her to move into the realm of existentialism. In A Needle Woman, we are able to understand how harmony, balance and unity is achieved between the human body, spirit and nature.
Although Kimsooja's aesthetics are based on feminine sensibilities and rooted in Korean cultural traditions, she is neither celebrating individuality nor predominantly on a quest to discover her 'inner-self,' articulating her unique 'identity.' Instead, Kimsooja's visual roots become tools for expression, as well as points of entry into her narrative. What becomes the universal appeal and deeper criticality of Kimsooja's work is the fact that through her meditative approach to art-making, she provides an engaging platform that becomes a window to humanity. Her work is a universal lens to perceive the human spirit and to have awareness of the modern day conditions of being a human being.
Fundamentally, Kimsooja goes back to the core of human existence. Her work transcends its singular purpose as an aesthetic object, in order to enhance our understanding of our position in the world. She provides us with insight as to how art is sincerely intertwined with our own existence and experience of the world. Kimsooja, therefore, provides a platform for critical dialogue related to identities in a globalized world. No doubt her work emerges from a Korean cultural context, yet again, her work transcends a singular, local context having a much broader impact to a global audience. In other words, Kimsooja's art is all about human expression and basic human emotions that knows no boundaries.
In a work that deals with globalization at the core – A Needle Woman (Plate 7) – Kimsooja places herself in 15 different cities around the world over the course of 10 years. Her body and physical presence is the constant in these works, as she blends in or sticks out of the crowd. She describes herself as a needle that weaves through the different cities and experiences the diversity, building a tapestry of global inter-connectedness. She becomes either an expression of the all-too-familiar global citizen or a stranger/foreigner who does not belong. While presenting this contradiction, she also desires to reconcile "perfect immobility and perpetual motion," wanting to exist simultaneously everywhere and nowhere. This notion is a fundamental questioning of existence and identity in globalization. Through her works, the social identities of people in the different locations can be examined, as people go about their daily existence, responding to the artist's body in vastly different ways. Concurrently, her own identity is questioned as she simultaneously embodies and rejects her indigenous culture, constantly altering and blending into the global, social fabric. Kimsooja is influenced by her Korean roots, yet she takes these elements of culture to befit her patchwork identity, her skin wrapping and re-wrapping her body, just like a bottari, as it passes through the world.
In A Needle Woman, Tokyo (Plate 8), the movement and the pace at which people are passing by is entirely unsettling, chaotic, disruptive and jarring for the audience. The endless crowd walks in front of the camera lens, while the chaos of traffic and lights of the ambulance murmur past in the distance, unfocused. Although the people walking by constantly change, and individuals only stay in the focus of the camera lens for a split second, the viewer cannot help but feel the monotony of the crowd. There is no individual within this mass. It quickly becomes exhausting to look at, our eyes become tired and restless. All the while, Kimsooja remains still, meditative in the hectic chaos, where people are barely stopping and noticing her presence. Kimsooja's presence becomes the constant, her long black hair flowing down her back, creating a perfect symmetry to her body. Her presence intersects the flow of people and the entire experience. She remains inconspicuous in her monk-like attire, not ostentatious, yet she is also highly conspicuous – the only stillness in the constant movement.
Complementing this Tokyo work is A Needle Woman, Kitakyushu (Plate 9), which has Kimsooja lying horizontally on a rock formation. In stark contrast, to the hustle and bustle of a great metropolis, here, Kimsooja is becoming one with nature. The distinction between her body and the natural environment begin to merge as the video progresses in stillness and silence. We begin to look beyond the specific shapes of her body's contour laying on the rock, and in turn, we begin to see the unity between the body, the rock and the sky, as our spirit connects with this specific time and place on a contemplative level. Kimsooja states that the most important thing to arise out of these performances is her own experience of 'self' and awareness as a process, rather than the video as a result.
In 2005, Kimsooja continued her video works in A Needle Woman series in 6 new cities. In complete contrast to her presence in the bustling streets of Tokyo, the public reaction in Havana (Plate 10) is vastly different. These second set of video works had been deliberately slowed down so that the passersby's interactions with her body could be accentuated. When the video begins the first thing we notice is an elderly man standing right in front of Kimsooja, trying humorously to illicit a response from her, while another man stands on the right corner of the frame, staring from a safe distance for a prolonged period of time. Throughout the work, the people strolling by all slow down to take a look and there is a general sense of reaction to Kimsooja's presence. As such, this then becomes a sociological experiment, providing insight into the cultural differences between Cubans and Japanese, to say the very least.
Kimsooja desires to be "like a needle that leaves no mark," connecting two pieces of cloth, two continents or states of consciousness. Kimsooja's openness to the world is what makes her a global, nomadic artist, embodying a hybrid identity. She weaves seamlessly through different cultures, leaving her mark but more importantly absorbing what is out there. Synchronously, she is mesmerized by the sense of unity felt through this act of sewing and weaving, as she equates it to a process of emptying and connecting with the inner self. In A Needle Woman, this process of weaving is like a continuous act of repetition, which becomes a form of meditation and contemplation. The greater function and purpose of Kimsooja's art is for us to question what it actually means to be human. The power of her art is that the different layers in her work stimulate thought and engage the mind, to cultivate "mindfulness of what human beings encounter by virtue of being human," similar to the goal of meditation practice.
Kimsooja challenges societal as well as art historical constructs and categories, operating as a free-agent of change. It is through her practice, modus operandi and philosophy that a new epistemology of contemporary art takes place, as she escapes from being pinned down to any movement, style, or group of artistic practice. Kimsooja has created a unique language of expression, fusing her deep-rooted cultural influences with her feminine sensibility, filtering through her personal history and communicating her innate empathy towards humankind and the greater human spirit. Her art opens us up to see the world from totally unexpected perspectives, as she herself truly feels with her body, transcending the artistic medium, the actual performance as well as the time and place to sensuously experience the world around her.
There is already so much conflict, negativity, criticism and problems in the world; in Kimsooja's works, her belief is apparent that there does not need to be anymore negative energy expended on inculpating existing systems. Instead of focusing on the failures and injustices, she does what is most human, she feels great empathy for humankind, her art being a heartfelt gesture of reaching out to the common human spirit that we all share. She engages with matters, issues and state of realities in the most basic human way, opening her heart, which in turn, inspires us to open our hearts, to come to a common, shared understanding and experience of the world. Her works re-discover what has always existed in nature but that has never really been 'found,' as she goes beyond painting methodology to "[reveal] visual realities in nature that have always been there." To conclude, Kimsooja desires art to be the world fine-tuned to make us conscious of place – "our place, the place of others and the place of art, arising in the interstices of culture."
2013
An artist is not an isolated system. In order to survive he has to continuously interact with the world around him…Theoretically there are no limits to his involvement – Hans Haacke
Interacting with the world around her is precisely what Kimsooja does throughout her work. Since the early eighties, she has relied on the power of the needle, literally and metaphorically, as a means of expressing the direct interaction between art and life. This is the golden thread that binds her work together. Although educated as a painter in Seoul with a short printmaking scholarship in Paris, Kimsooja quickly discovered the unique possibilities associated with the use of needle and fabric as opposed to brush and canvas. She first discovered fabric as a powerful artistic medium, as a young girl, while sewing a bedcover with her mother. The act of stitching through the surface with a needle made her mind wander; philosophy, artistic process, and history all seemed to converge with the fabric.
When she first began sewing, Kimsooja wanted to overcome the limited surface of painting by reaching to the other side. She was drawn to the idea of getting in and beyond the membrane of cloth with a needle, and subsequently realized the significance of sewing as a process of wrapping fabric with threads. Kimsooja was intrigued by the continuous and mesmerizing back and forth action involved in sewing, and its inherent creative or mending purpose. From the outset, the process of sewing allowed her to identify herself with the object being sewn, which simultaneously represented an extension of the self. With needle and thread in hand, the mind can wander while the hand goes through the motions of a precise and monotonous craft. Quite simply, Kimsooja had discovered the possibility of sewing meaning into life.
From the start, the cultural relevance of traditional Korean cloths has been an integral aspect of Kimsooja’s work. The fabrics implemented throughout her work function as powerful traces of the countless personal stories that, when purposefully brought together, speak of the ultimate interconnectedness of all humanity. Her fascination with the formal structure of fabric and the implications of the needle and thread moving through its surface translate to a silent conversation with the fabric, one that also involves an investigation of issues related to craft and traditional women’s roles. Kimsooja’s earliest works involved collage-like techniques that were, for the most part, more formal than conceptual. These delicate, sewn works hinted at important aspects that would unfold in later work. For example, a plain beige t-shirt decorated with roughly sewn patches of red, yellow and green fragments of clothing comprises a study in color, form and composition, and an underlying meaning is woven into the loose threads and rough unfinished edges. While patchwork, quilting, needlework and stitching are implemented in textile works that speak of pain, loss and vulnerability, sewing itself is simply a means of expression, not the end goal. Through the years, Kimsooja’s approach to sewing has become increasingly conceptual; the complete absence of thread or fabric in some works is as important as the bright textiles featured in other works. The power of sewing as metaphor, and the symbolism associated with a sewing needle in particular, relate to universal issues of identity and existentialism that tie all of Kimsooja’s work neatly together.
Kimsooja’s Deductive Object series from the early nineties is also highly indicative of later developments in her work, particularly in terms of the possibilities associated with conveying life stories through common objects. For this series, Kimsooja made use of culturally specific everyday items, such as kites, reels, shovels, forks, or window frames that she wrapped with swatches of Korean bedcovers and clothes, in works that pushed formal and conceptual boundaries. These ‘already-mades’[1] are strongly linked to issues of domesticity and women’s labor, and are rich with social, cultural and aesthetic implications. In her work with found objects, and bedcovers in particular, Kimsooja stresses that she is most interested in the fact that the cloth or objects are ‘pre-used’ rather than ‘pre-made’. The history of the cloth as connected to its owner is underlined, rather than the significance of the anonymous person who may have sewn the bedcover in the first place. The soul, aura and memory of the objects and fabrics she uses are of utmost importance, both spiritually and conceptually.
Kimsooja subsequently widened the context of her Deductive Object series by placing emphasis on how the objects relate to the surrounding space. In 1993, she had an important exhibition at PS1 in New York, and one particular installation really stood out. As is so often the case with Kimsooja, ‘complex simplicity’ is precisely what makes the work so powerful. Imagine a white washed brick wall, scattered with small holes, the kind of exhibition wall that most artists and curators would want to smooth out or cover up. Kimsooja engaged directly with this wall, in a beautiful introduction to the idea of sewing as intervention. Hiding in the cracks of the wall, and nestled between the threads of the work, are some very important clues about the direction that Kimsooja’s work was taking – sewing into life. The colorful scraps of fabric scattered around the wall play with the concept of sewing, as each hole in the wall relates to the eye of a needle metaphorically threaded with tiny pieces of cloth. While the overall pattern echoes a textile work in progress, the true essence of the work lies in the space in between, in the connection between the invisible threads that join humanity together. By placing emphasis on metaphor rather than material, Kimsooja reveals the bare threads of her ongoing investigation of existential issues while simultaneously embracing and challenging the possibilities connected with textiles and the practice of sewing.
In the early nineties, Kimsooja started making bottari, and the underlying conceptual issues that bring art and life together became even more evident. This raised her work to an entirely new level. Kimsooja gained international recognition for these colorful fabric bundles made from traditional Korean cloths, used to wrap and carry one’s possessions. Although bottari can be made using any kind of fabric, Kimsooja intentionally uses abandoned Korean bedcovers made for newlyweds that she subsequently wraps around used clothing. As such, her use of bottari involves a fascinating double entendre. The bottari function as art objects that relate directly to the Korean tradition of wrapping ones possessions, conveying the idea of being on the move, while also functioning as real bottari that contain something of personal value. A perfect balance between pure form and function, they are beautifully situated on the boundary between art and life. Kimsooja’s interest in bottari also signaled a logical transition from a painterly interest in surface planes to the use of fabric as sculptural mass. This gradually led to a more abstract realm, where sewing is implied within the context of various spaces and environments. So, although she had started out with a traditional needle, Kimsooja freed herself from being bound by the needle by purposefully, yet almost imperceptibly, deconstructing the process of sewing, to the extent that the connection to a needle, thread or fabric eventually becomes barely discernable. Ultimately, all that is left in relation to real sewing are conceptual traces of the needle, or the metaphor of a needle as a tool of empowerment and liberation.
With or without a needle and thread, Kimsooja relays captivating stories through art that relates to life as it relates to the concept of sewing. Sewing as an artistic process, sewing as a quiet contemplative activity, sewing as a conversation with the surface of fabric, sewing as a formal investigation, sewing as a meditative process, sewing as it relates to traditional women’s roles, sewing as craft, sewing as intervention, sewing as wrapping, and sewing as a connective act, are all part of the complex fabric of Kimsooja’s singular artistic approach. Reflections about life and art are spun from a seemingly endless thread that weaves in and out of time and space, where past, present and future are melded into one.
Around the same time that Kimsooja realized that she could use bottari to effectively express the notion of the totality of art and life, Suzi Gablik was investigating similar themes in her research about connective aesthetics. What Gablik would describe as participative, empathetic and relational modalities of engagement are the defining factors of Kimsooja’s approach to art. Gablik’s theory of connective aesthetics, as outlined in her book The Reenchantment of Art, reads almost as an ode to Kimsooja’s artistic practice. If art should somehow help us to understand our place in the world, if art should work beyond its immediate role as an object and truly relate to our own existence, Kimsooja certainly provides the kind of approach that Gablik was interested in. Mindfulness, consciousness, compassion, and empathy are words that consistently appear in Gablik’s writing, and these words also come to mind in relation to Kimsooja’s practice. Gablik’s search for an enveloping relational vision that would embrace a feminine approach is definitely found in Kimsooja’s work. As Gablik writes, “The sense of everything being in opposition rather than in relation is the essence of the old point of view, whereas the world view that is now emerging demands that we enter into a union with what we perceive, so that we can see with the eyes of compassion.” [2] Twenty years later, Kimsooja’s art is as compassionate and relevant as ever.
In retrospect, we can see the visible and invisible traces of an artistic practice that has been consistently defined by a very conscious and determined use of the same materials or approach, set within different contexts where new layers of meaning emerge with each new project. The intricate pattern of Kimsooja’s work is created from a needle that keeps pointing towards concepts that are as fluid as they are static, simultaneously material and immaterial, visible and invisible, simple and complex. Louise Bourgeois once said that fibers, whether spun by spiders or created on a spinning wheel, have deep significance, and that threads weave important memories and emotional connections for us all. This truly captures the essence of Kimsooja’s fascination with the stories that are permanently imbedded in the fabrics that have provided an ongoing source of artistic and even spiritual inspiration for Kimsooja.
Through the years, Kimsooja’s bottari have appeared in many different contexts around the world, almost magical in the way they fit into almost any gallery space or natural environment. Like seasoned world travelers, Kimsooja’s bottari are constantly on the move; whether in a museum space or a forest, appearing in multitudes, or all alone, they have been arranged in a meticulously arranged row, or strewn about in a more chaotic manner, they have remained completely still, or moved 2727 kilometers on a truck. With each new setting, added depth and meaning unfolds.
In beautiful contrast to the bottari, Kimsooja is equally renowned for her textile installations where the bedcovers are unwrapped, unfolded, laid out, or carefully hung in gorgeous labyrinths of shiny, vibrant fabric. The vividly colored textile work A Laundry Woman, 2000, is a perfect example of this approach. On entering the installation, the viewer is completely surrounded by textiles and is invited to walk through an intricate web of color where pattern and meaning converge. Kimsooja has often compared sewing and walking as similar activities, and describes how this first came about, “In 1994, I started connecting my body as a symbol of a needle in the moment that I was viewing the documentary footage of my daily working process undertaken at Oksanseowon Valley near Kyungju, Korea. I decided to make this as a video performance piece called Sewing into Walking - Kyungju. I identified this walking process in nature—the collecting and gathering of all these bedcovers—as a symbolic needlework which my body was serving.” [3] To walk through A Laundry Woman is to understand the inherent communicative power of textiles, and the underlying meanings are seemingly endless. With each step, as with each stitch, the viewer is one step closer to understanding the metaphysical aspect of work. In this case, the viewer plays the metaphorical role of the needle, winding in and out, betwixt and between these gorgeous fabrics that have a story to tell. The specific choice of decorative Korean bedcovers as intimate possessions that tell life stories of pain, loss, love, and desire is, of course, as significant as ever. These fabrics, colored by cultural and personal histories, are narratives that are literally left hanging for the viewer to unravel as they delicately float between the worlds of art and craft.
In Kimsooja’s work, each project is inextricably bound to the thread of the next project. From project to project, the conceptual thread is picked up and re-sewn into a complex and interwoven vision of reality. A perfect example of this is seen in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A Laundry Woman and A Mirror Woman, 2002. These works appear to be quite similar, both formally and conceptually, and they both relate to a wide range of existential issues; yet the simple addition of mirrors that cover the walls is all it takes to set these works dramatically apart. The mirrors contribute to a heightened sense of infinite space, thereby shifting the focus from the immediate reality of the viewer’s experience to an endless space that can be understood as relating more to the universe than the individual. Similar to separate threads in an intricate piece of fabric, even if they don’t touch each other, they are still bound to the same fabric, and every single thread plays an equally important role in contributing to the overall effect. These works are cut from the same cloth, and stand as powerful symbols for the place of each individual in the universe. The message is abundantly clear; without a needle there would be no fabric, without each individual, no fabric of society.
As we follow the needle to its most abstract form, the significance of sewing as metaphor becomes abundantly clear. A needle is easily understood as an extension of the body, and nowhere is this more evident than in the two-screen video installation A Needle Woman, 1999 where the needle moves in a completely theoretical direction. In one projection Kimsooja stands motionless within various urban environments; in the other she lies immobile on a rock. The two projections create a compelling dialogue of opposites typical of her work in general. In the bustling city streets of Tokyo, Shanghai or Delhi, her role is non-changing; she stands alone, straight as a needle. She sews herself into the fabric of society, disappearing periodically just as a needle would. In the accompanying projection she lies upon a colossal rock in natural surroundings. In contrast to the fast paced city scenes, the only changing elements are the drifting clouds against a clear blue sky, and subtle nuances of light. Clearly, Kimsooja is a metaphor for the needle—she connects two parts and in the end disappears. Her role, or the role of her body, is to interact with the fabric of society and to direct our focus; then she disappears, just as a needle does after it’s job is done.
In A Needle Woman the body is understood as a needle within the fabric of life. Kimsooja elaborates on this important aspect; ”The mobility of my body comes to represent the immobility of it, locating it in different geographies and socio-cultural contexts. Immobility can only be revealed by mobility, and vice versa. Constant interaction between the mobility of people on the street and the immobility of my body in-situ are activated during the course of the performance depending on the context of the society, the people, nature of the city and that of the streets…I pose ontological questions by juxtaposing my body and outer world in ‘relational condition’ to space/body and time/consciousness.” [4] This captures the essence of Kimsooja’s overall approach, which ultimately relates to the idea of the singularity of the individual as part of an endless multiplicity. Looking at the world through Kimsooja’s eyes, we find ourselves looking at the universe through the eye of a needle. As Kimsooja ‘sews into life’ she simultaneously unravels the thread that is the entire conceptual basis for her work. Imbedded in the visible and invisible seams of her work we see how the traces of migration, war and cultural conflict necessarily affect ones identity and perception of reality—conveyed by an artist who is fully aware of the power of connective aesthetics. Her vision of the totality of art and life is beautifully conveyed through the symbolic power of the needle to mend, heal and connect. She uses a needle to guide us towards awareness and understanding in an approach to art that is intricately spun around the literal and conceptual practice of sewing.
[Note]
[1] Kimsooja consciously uses the term already-made instead of readymade.
[2] Suzi Gablik, The Reenchantment of Art, Thames and Hudson, NY, 1991. Page 130.
[3] From an interview with Olivia Sand that appeared in Asian Art Newspaper, 2002
[4] From an interview with Chiara Giovando, 2012 featured on Kimsooja's website. www.kimsooja.com
2013
Place is important in the work of Kimsooja. The Bottari Truck in Exile (1999) was a work on the road, a truck heaped with bundles of clothing and bedcovers wrapped in brilliant silk fabric, travelling from one place to the next. In video work from 1999 to 2001, she traveled to many places around the world to produce pieces such as A Needle Woman (1999-2001) and A Laundry Woman (2000). More recently, she has devoted much effort to site-specific work that transforms an existing place such as the Crystal Palace in Madrid (2005) or the Teatro la Fenice in Venice (2006) through the graceful calibrations of light and color. In many ways, Kimsooja’s art may be described as a searching meditation on the nature of place—asking a number of questions such as what a place is, how it is defined, how long it lasts, who makes it, what the relation of place is to body, and how places are experienced. A Homeless Woman (2001) and A Beggar Woman (2001), videos that document her emplacement within teeming urban crowds as an anonymous female figure dressed in gray, whose silent, immovable presence is literally out of place, disrupting the traffic of befuddled pedestrians, if only for a moment. Some respond by pausing to inspect her, others are bemused by the camera that witnesses their presence. Still others fail to notice her at all, for whom she is nothing but the blurred place through which they hurry on their way to work.
The signals of critique, whether political or economic or geared to considerations of ethnicity or gender, are not hard to see. One could readily give Kimsooja’s art of place a reading that stresses an incisive reflection on the politics of identity, the social construction of gender and race, the economics of power and agency. Clearly, the crafting of place relies fundamentally on the coordinates of authority, social relations, and hierarchies keyed to ethnicity, race, and gender. And one need not look far in her discussions of her own work to find the artist’s corroboration of a political reading. She dedicated Bottari Truck in Exile, exhibited at the Venice Biennale in 1999, to refugees of the current war in Kosovo. Exile is an apt theme in regard to place because it means the loss of one’s native setting or milieu, one’s homeland. Kimsooja brought the truck loaded with bottari (Korean for “bundle”) from Korea to Venice for the Biennale. The work was not simply the truck, but the process of getting it from one place to another. She traversed countless national and international boundaries to transport bundles of laundry, the baggage in which exiles haul the traces of their existence. One thinks of transnationalism and the global flows of labor; of forced migrations; of international traffic in contraband; or of worldwide circuitry of capital pulsing through networks of markets.
The politics of power and powerlessness, of loss and theft are there, yet one senses that this framework does not exhaust what the work has to offer, where it wants to go. Kimsooja has spoken of the “dimension of pure humanity” as the special interest that drives her work[1]. She wants to ponder what she calls “the human condition and its reality” rather than indict political and economic systems. So she laments the refugees of the war in Kosovo rather than scrutinizing the conditions of the war’s existence. As an artist, human suffering concerns her in the first place, before the failure of social institutions and political will. An artist does not have to choose between the two, of course, but rather than critique and jeremiad, Kimsooja explores the intimate connection of art and moral sensibilities. She is a passionate observer of human beings. All of the work mentioned so far is evidence of an eye bent on the daily routines of human life, using them to register a wistful but wistfully beautiful sense of “the human condition and its reality.”
One might say that the common and principal function of religion, morality, and traditional philosophy is to posit a human condition as a way of explaining suffering and proposing a solution to it, or at least a way of enduring it. Kimsooja does not want her art to engage viewers as a religion or morality or philosophy. But it is clear that she wants her work to elicit profound aesthetic reflection. Everything she works with is something that bears the traces of human touch—the things women gather and clean, launder and stretch for the wind to dry. The clothing and bedding that touch us everyday, like a second skin. The things we bundle and carry from place to place, the things we save when the house is burning, when the village is destroyed, when the economy collapses. The things that are left when we are gone, that lie scattered on the ground, as in Sewing into Walking (1994) or in Portrait (1991), where a massive cloak of discarded fragments of cloth rises like a monumental gravestone, a mortuary icon of lives whose flesh is remembered in a dense clutter of castoff artifacts. It is the way of all flesh, this scatter of clothing. Sewing into Walking traces a walk through time as a patchy fabric of strewn memories, if even that. This is an elegiac work, bound to evoke in many viewers a sense of what the artist calls “the human condition.”
According to Buddhist teaching, everything, every feeling, is marked by impermanence, holding no place and passing away. Impermanence joins suffering and non-self as the three characteristics of existence, according to Buddhist thought. As one scholar has summarized the matter, “change, degeneration, and non-essentialism are fundamental features of everything.” [2] Nothing lasts, everything fails to satisfy, and there is no soul or self or substance that abides above it all. In short, there is no place to hold us that will not itself crumble into something else—except the dharma of release, or nirvana. Religions often describe a human condition because they want to diagnose the cause of suffering and to prescribe its solution—either through methods like the Four Noble Truths of Buddhism or the redemption that any number of salvific faiths offer their adherents.
But Kimsooja does not craft an art tasked with human salvation—either by divine means or by human politics. Her work is not preachy or propagandistic or doctrinaire because what really drives her art is the power of things to provoke thought, to arrest the mind and to fix it on something elusive and mysterious, something we want to take for a truth. Kimsooja wants to cultivate a mindfulness of what human beings encounter by virtue of being human. She ponders what is human—loss, yearning, beauty, routine, work—and does so in the sensuous terms of art that define the places of everyday life. Art is a heightened sensory consciousness, a poignant awareness of the world that opens up in the place that watching, touching, hearing, and making afford. “I’ve never practiced meditation in my life,” she once said in an interview, “but I found every moment for me was a meditation in itself. I reached a similar Zen Buddhism completely through my own way of meditation on life and art and its practice.” [3]
What does this make of art? The arts used to operate in the service of institutional religion, contributing to devotional life, decorating the altars of churches, shrines, pilgrimage sites, bodying forth the sacred in the daily exchanges between earthly mortals and heavenly powers in a sacred economy of pledge and favor, petition and reward. Popular imagery in everyday religious life still does that for believers today. But fine art has arisen over the last two centuries to occupy a different space in Western culture. For some people, art is a kind of therapy. It conducts a service of comfort, diversion, or uplifting pleasure. For others, however, the benefit must be described in terms of the meditative absorption to which Kimsooja alludes. Art is a way of refining or honing perception, for use as the means of introspection and as a social and cultural lens. In this approach, “aesthetic” does not mean beauty for the sake of beauty, but something more like sensuous cognition, a delicate tooling of the senses to scrutinize the world for the sake of a penetrating take on its weight and heat and chaos. And so we have Kimsooja’s artistic postulation of the human condition. This is neither religion nor politics; neither preaching nor moral reform. It is a limbic way of seeing, a projection of sensation into the larger world for the sake of feeling it vicariously in the skin of an artwork.
What does that mean? Kimsooja’s art is about the cultural work of looking. You may behold A Needle Woman in at least two ways. First, as a video projected on a screen in a gallery over the course of an exhibition for a few weeks. In this instance the video acts as a documentary, recording human actions at another place and time. The scene is a street, far away, a place that is not here, where you and I are standing. We look upon the place with curiosity. An image of the video’s installation in a gallery shows how this works: a bench invites you to sit down and watch an image projected from above. The image appears, as if through a rectangular aperture that has opened up in the gallery wall. In the dimly lit space, you are urged to sit or stand quietly and gaze upon the scene. You devote yourself to the task, if you have time, because you hope to see something interesting, something you’ve not seen before. You wait for something to happen. It’s art, after all. It’s supposed to do something. But when very little happens, the second way of seeing the piece begins to take shape. You glance furtively about the gallery at those standing near you. You glance at your watch, you wonder how long this will go on. Ineluctably, your perception shifts from looking at a video image-window in the wall to looking at people in your vicinity looking at a video image-window in the wall. You become aware of the discomforts of your body. If you’ve ever meditated, the feeling will be familiar. The scene moves from there, on the other side of the wall, to here, in and around you, and you realize that you are part of the art. The piece takes your time, your body, your patience and invests it in a work that includes you. You might look for the door. You might want to get out of here. Yet you’re intrigued by the two sets of looking—on the screen and in this room, and you wonder what you feel.
The boundaries of a work of art dissolved in the twentieth century. Art went from hanging on walls and perching on pedestals to happening in deserts and junkyards, on street corners and human bodies. With the dissolution of conventional boundaries came a redefinition of the place of art. So looking at A Needle Woman and A Laundry Woman, we ask: where is the artwork? Is it there, in the crowd’s response to or unawareness of the stolid presence around which they move? Or is it here, among us? Perhaps the two modalities are really one: we are yet another crowd in which the impassive worker woman stands. Perhaps our wandering eye is no different than the urban crowds in Tokyo, Cairo, Mexico City, London, or Delhi. Perhaps Kimsooja lures us into the gallery to sew the art world into the larger fabric of far-flung cities. To see her work is to be transported into a global work of art that shows us to ourselves. The boundaries demarcating the place of this art are disorienting, sublime. There is no getting out of it or away from it. Its center is everywhere, marked by the visual field that pivots on the gray figure of the artist standing steadfastly at the intersection of blinking gazes.
The steady feature of the artist in these videos is the structure that configures our visual field. Even when she is engulfed by the crowd that weaves obliviously about her, she remains our point of reference. Kimsooja transcends the world out there by holding her back irresolutely toward us, here. The camera is never forgotten. The people there are placed on a stage stretching before us. They were filmed for the purpose of being screened elsewhere. Place as local site is not singular, but part of a larger set of places that only the art viewer is allowed to see. The folks in Delhi don’t know or ever see the people in Mexico City or Shanghai—or us. We do, thanks to Kimsooja’s back. If she only wanted to be a needle, to transform her body into an inanimate object, it would not matter if we saw her from the side or front or any other angle. But we never see her face. This device structures the work of art by showing its proper side, where it is to be viewed—in a gallery. The place of art is a critical moment, a step back in space or time to see anew. Kimsooja wants art to be the world tweaked to make us conscious of place—our place, the place of others, and the place of art, arising in the interstices of culture. Place matters to her because she loves the beguiling way that art seizes our attention and invites our devoted scrutiny.
The appropriation of place for artistic purposes is something we see elsewhere in Kimsooja’s oeuvre. In the haunting beauty of An Album: Havana (2007), a ten-minute silent video created on site in Cuba. The camera runs for nearly three minutes down a pier overlooking the ocean and a cloudy horizon as lovers, tourists, and fishermen saunter along or sit on a stonewall. The video repeats for a second and third time, but each iteration increasingly blurs focus until in the final run the screen is a blank flicker that gradually transforms into bright light. In the second run we can still recognize the figures, but in the third sequence they evaporate in brownish haze. Deprived of sound and focus, the result is a lushly beautiful portrait of a place that steadily vanishes. What seems at first solid melts into the air, leaving viewers to wonder what their relation is to place that is no more. Memory of place may not be as sure as we’d like to think. With each replay, what we once stood before fades until finally it is gone. With nothing to see, it is not clear that the seer abides.
In an altogether different piece, Mandala: Zone of Zero (2003), the sound of Tibetan, Gregorian, and Islamic chant animates a scintillating object, a large target-shaped series of concentric circles composed of mirrors, fabric, and colored plastic. Circular mandalas are familiar to North Americans because of the “wheel of time” rituals conducted by lamas who created elaborate sand forms, often in museums [4]. Kimsooja’s Mandala resembles the Tibetan Wheel of Existence, a teaching tool used by itinerant Buddhist teachers who unfurled their charts to explicate the doctrines of Buddhism. The chrome ornaments that mark the four directions on the mandala even recall the jaws of the Lord of Death who holds the wheel in Tibetan tangkas. And like the wheel of dharma set in motion by the Buddha, and the samsaric cycle of rebirth and the circular arrangement of teachings illustrating the Wheel of Existence, Kimsooja’s wheel turns, too.
But the use of Buddhist, Christian, and Muslim chant in Mandala suggests that the artist has something broader in mind than the traditional Tibetan mandala. The object itself resembles a monumental roulette wheel more than a religious device—the star motifs recall the four-armed spindles at the center of roulette tables. Its glittering mirrors, sumptuous fabrics, gleaming chrome, and loud colors celebrate the ephemeral character of sensation, the flutter of fond feelings one associates with a jukebox full of favorite songs. All of this is very different from Buddhism’s diagnosis of the flitting mind’s need for the discipline of meditation to tame and control it. Yet although the art deco chrome ornamentation of the jukebox in Mandala reminds one of soda fountains and dance halls more than anything in a mediation hall, it does resemble popular Buddhist shrines and temples. One thinks of shiny golden statuettes of bodhisattvas, or of the long lines of brightly colored lanterns that appear each year at temples to celebrate Buddha’s birthday. Mandala spins and flashes like an incandescent turntable as the sound of chanting fills the room. Perhaps the mission of art, if it has one, is to reconnect introspection to the body and the senses. Whether you are in a disco or a Zen hall, you are in your body, and that is the means by which religion, mediation or art take place.
Both Havana and Mandala invoke Buddhist tradition in different ways. Mandala uses a familiar motif in Tibetan tangkas; Havana recalls the three features of all phenomena: impermanence, dissatisfaction, and no-self. Yet neither piece can be said to emulate Buddhism by offering itself as a tool for Buddhist practice. Both are about the power and place of art in modern life. Where Havana blurs, and finally erases a sense of place, Mandala seems to transpose the viewer from the body of the Buddha enthroned in the mental architecture of an imagined shrine to the splendor of the human body awash in sensation. The point is not therapy or religion or meditation technique, but a refinement of perception, the aesthetic cultivation of imaginative, felt life. Kimsooja’s work is not art in the place of religion, but art as sensory reflection on the places where life happens in the way it does.
[Note]
[1] Gerald Matt, "Interview" in Kimsooja. To Breathe/Respirare (Milan: Charta, 2005), 87.
[2] Brian Black, "Senses of Self and Not-Self in the Upanishads and Nikayas," in Irina Kuznetsova, Jonardon Ganeri, and Chakravarthi Ram-Prasad, eds., Hindu and Buddhist Ideas in Dialogue: Self and No-Self (Abingdon, England: Ashgate, 2012), 18.
[3] Matt, "Interview", 91.
[4] Pratapaditya Pal, Himalayas: An Aesthetic Adventure (Art Institute of Chicago in association with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and Mapin Publishing, 2003), 256.
— Essay of the Catalogue, 'Kimsooja - Unfolding '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The Vancouver Art Gallery, USA, 2013.
David Morgan is an art historian and Professor of Religion at Duke University. He has written on contemporary art, including such artists as Bill Viola, Magdalena Abakanowicz, and Ed Paschke. He is also author of several books on the history and theory of religious visual culture: Visual Piety (1997), Protestants & Pictures (1999), The Sacred Gaze (2005), The Lure of Images (2007), and The Embodied Eye (2012).
2013
Kimsooja gives herself to us. She does so through her art not simply because she is an artist, but because through art she can give to others. This exchange between artist and viewer has its rewards, offering access to the essence of human communication as well as essential connections to the larger reality of which we are a part. So following Kimsooja's path of communion among peoples and realms, empathy will be the focus of this essay.
When we look at Kimsooja's art and see her standing there, we experience her aliveness and partake of her vitality along with our own. Her art makes us feel our aliveness. When we see Kimsooja there, completely still, we also see beyond her and beyond ourselves. Along with her presence in the wind, with the sun and the moon, we sense something more. She endeavors not so much to represent so we can see, but to be one with the world through her work so we can recognize our being too.
In this way she participates in what cultures have always done. The names of those makers have not come down to us, so we praise past societies without individual recognition. But as she takes up her ancient charge we know her name or do we? To be her art, she consciously steps out of self, taking on a one-word name that "refuses gender identity, marital status, socio-political or cultural and geographical identity by not separating the family name and the first name.[1]"
Making art as one's way of being, or more accurately way of becoming, is to see art as a path. It can also be a reminder of our shared path, and in that way art is like religion and philosophy. But unlike these other fields of endeavor, art alone can be an experience that words on a page can never quite be. More than explaining a connection between the mundane and spiritual realms, between what is perceived by the senses and what is sensed by the mind, in art these can unite and be one. Making art with this aim of ultimate meaning is an act of hubris (punishable by the ancient Greeks), and a dicey claim in our world today. So this is a precarious start for an essay, though for the work of Kimsooja, a necessary one. Her ambition calls for no less.
Artists, like philosophers and theologians, are in the business of understanding the relation of the everyday to something greater: ideas, values, the ethereal. But it's not just a professional thing. It's what we do as humans and have done since the beginning of time. This is how we live and must. Each generation, each individual must find their meaning or live a life without it. Kimsooja's concerns are both with the here and now and beyond this place and time. Consciousness overtakes self-consciousness. How can we talk of this? "Spiritual" conjures notions too religious or new age-y for those in contemporary art, while the "unconscious" had a place earlier in the twentieth century, with the birth of psychology. The ambiguity of the ethereal, the other worldly, or unknown, means that it tends to be left out of discussion or to remain tacitly unspoken. "Universal" is a word banished by postmodernism. The claim to represent humanity is a totalizing concept that makes the use of this word suspicious; the complexity of social and cultural difference makes it taboo.
An understanding of Eastern philosophy, religions, and culture are ways to think about for Kimsooja's art; they clearly enter into the very nature of who she is. Some have expertly written of this, and these references remain central sources for knowing for her art, but there is more, not just because she is a person of our times who lives and works across cultures, but also because there has been a rich cross-pollination between Eastern and Western thought for centuries now. So, while Kimsooja's work is grounded in Asian philosophy[2], I have chosen to write about her work through the lens of the Western pragmatist philosophy of John Dewey, who was himself influenced by Taoist and Buddhist philosophy[3]. Turning to Dewey, we encounter the ideas of a humanist not embarrassed to venture into the wholeness of the enterprise that is life, because he, like Kimsooja, believed that a wide view is necessary and that art is the most meaningful way to achieve it.
As Dewey saw it, life compartmentalized into high and low, and values categorized as profane or spiritual, material or ideal, betrays the nature of things. Likewise, he felt that dividing occupations or interests into practice and insight, imagination from doing, significant purpose from work, and emotion from thought and doing, is to mistake human nature. But when they come together, are one, as in Kimsooja's work, we can experience "deep realizations of intrinsic meanings," " the sense of reality that is in them and behind them," as they tell "a common and enlarged story," and Dewey believed, the ideal can be embodied and realized[4]. Then distinctions of mind and body, soul and matter fade away.
To Dewey, this sense of continuity between the mundane world and something greater comes with experience, not just by living over time but by living life in a reflective, consciousness way[5]. For Kimsooja, her body is her medium and instrument conscious experience for others, not merely for expression or representation. And Dewey firmly believed, as Kimsooja demonstrates, that the senses, our own bodily capacity can be used directly to access the "spiritual, eternal and universal."[6] In Taoism, these realms are understood as one universal and ubiquitous vital energy. For Dewey we can know this through art.[7] The aliveness and vitality that art produces makes sense of life's experiences as it generates continuity between the earthly and eternal.
Thus, the experience of art (and for Dewey, art is an experience rather than an entity or object ) puts us in touch with the spiritual, non-physical world. But just as not all experience possesses insight or continuity, not all art rises to the level where it achieve a union of the material and the ideal. Yet when looking at Kimsooja's work, we understand Dewey when he says: "The depth of the responses stirred by works of art shows their continuity with the operations of this enduring experience" because such "works and the responses they evoke are continuous with the very processes of living." Her works affect what this philosopher called: "The mystic aspect of acute esthetic surrender, that renders it so akin as an experience to what religionists term ecstatic communion." [9]
Being consciously alive rises to the level of the aesthetic. It occurs, to Dewey, when we are fully and completely present in the experience of making and perceiving, but this does not only happen in the act of making art; it can happen in life.[10] For him, like Kimsooja, to live well, in an aesthetic or art way, is to be fully conscious, open, awake. As we are continually evolving in a state of becoming, we need to continually practice awareness. In Dewey's system of thought, in which each individual is responsible for themselves and for advancing society, practice involves putting one's values to work. His concept of the aware individual for his Pragmatist philosophy finds alignment with Buddhism's concept of buddha mind an awakened state of consciousness which respects both everyday action and the search to enlightenment as the same path. But whereas in Buddhism and Taoism this is achieved through meditation, Dewey advocated art. The work of art, in Dewey's view, as an object of practice can be a path to self-realization.
This path includes understanding others, and in experiencing art, we can experience others. On one level, in viewing art we can share the feelings of others, what we commonly call empathy. On another level, in art we can be with others, something we might describe as an experience of humanity. Dewey knew that empathy was the basis for any social enterprise. Art, for Dewey, had this great capacity for empathetic experience because, he believed, experiencing art is an act of re-creation:
Works of art are the means by which we enter, through imagination and the emotions they evoke, into other forms of relationship and participation than our own. We understand it in the degree in which we make it a part of our own attitudes, not just by collective information concerning the conditions under which it was produced. We accomplish this result when, to borrow a term from Bergson, we install ourselves in modes of apprehending nature that at first are strange to us. To some degree we become artists ourselves as we undertake this integration, and, by bringing it to pass, our own experience is reoriented. This insensible melting is far more efficacious than the change effected by reasoning, because it enters directly into attitude. [11]
How might this apply in the art of Kimsooja? A Homeless Woman - Cairo (2001) becomes an object of interest, even of compassion, on the part of passersby who pause to consider her manifestation of a human condition that till then had been almost invisible. In A Beggar Woman the artist presented herself to people in the streets of Delhi (2000), Mexico City (2000), Cairo (2001), and Lagos (2001). A different manifestation of this work occurred with Beggar Woman: Times Square (2005). Misinterpreted in the press as a gesture flying in the face if this city's truly needy, we might contemplate the questions, How do we draw attention to need? Can we experience others throughout a city, beyond just one city, holding in our hearts their hunger? Is acknowledgment of them acceptance without change? Who is in need? Who is present? Who offers what to whom?
Have you ever received a comment from a homeless person that stayed with you even though you gave nothing, while a thank you in return for money given on another occasion was not a memorable moment? Here the hands of Kimsooja's sitters are in a gesture simultaneously receiving and offering, being needy and charitable, troubled and wise. A practice in many religious traditions including Hinduism, Jainism, Buddhism, and Christianity, in which beneficence is manifested through both giving and receiving this act of engagement contains all things. [12]
Other empathetic works, beginning in 1995 with Sewing into Walking - Dedicated to the Victims of Gwangju, have taken the form of memorials. Clothes stood in for persons, spread out on a mountainside where tragedy had struck. It was a commemoration of as many at 2000 killed there as they rose up against the dictatorship of then-president Chun Doo-hwan. And it was a poultice for the earth. This incident, called 518 to signify its start date of May 18, found a parallel in 9/11 when later Kimsooja was moved to a enact a loving gesture of remembrance. In Epitaph (2002) she laid a single bedspread at Greenlawn cemetery in view of New York's skyline. Clothes, used as in Gwangju, were laid out on the floor of Hitler's former office in Poznan, Poland, to form Mandala: Chant for Auschwitz (2010), while cloth in all its colors and forms flow through four screens of Mumbai: A Laundry Field (2007-08), standing "for human presences and the questions that concern us all," [13] and creating a wider circle of life, not just of this place but many. On this occasion, as in other works, she also draws upon the ancient form of the mandala as a symbol of the universe and a vehicle of practice for focusing attention and bringing one in touch with a realm beyond the profane.
Carpets of clothes led to newly fashioned carpets with Planted Names (2002). Four woven works memorialize those who made the Middle Passage, packed in rows aboard ships, and then planted in rows the vast carpet of the former rice fields of the plantation site for which they were made [14]. In part inspired by the artist's experience the year before in Nigeria, this work was preceded by Bottari: Alfa Beach (2001) in which the sea sits atop the sky. This inversion is an empathetic response, she said, to "the saddest line I've ever seen in my life, thinking of the destiny of the slaves and their deprived freedom. Thus the flipped horizon was, for me, a disturbed horizon, a disoriented sense of gravity and of the slaves' psychological return I perceived in the curls of the waves reaching the same shore from which they had left." [15]
Kimsooja embraces the many associations of water: purification and cleansing, the depth of the womb and the vastness of the universe, its lunar cycles or the mind, and fluidity, as Taoism tells us, is the flow of energies and the inevitability of impermanence. In A Lighthouse Woman (2002), a companion to Planted Names, she created a witness to the waters' histories of pain through an oversized needle-like object surrounded by water. Its repeating, hour-long sequence of nine hues projected onto the lighthouse caused it to change as if breathing, saturating it and spilling into a pool the color. Viewers gave time to see this work, participated in being witnesses to time. And in experiencing A Lighthouse Woman they could experience empathy, not as an idea but, as Dewey said, through their individual senses they could actually experience "the spiritual, eternal and universal." Visited communally, there was communion.
The empathy of each of these works was made real through the use of historical and geographic reference and the artist's astute choice of tangible, material form, yet became the embodiment of others. In perceiving these works, as Dewey knew, we come to understand the wider story of humanity over time and to appreciate others' struggles. This happens across cultures, and even if we think we are more critical and aware of cultural differences than Dewey's generation, there's some truth as he says: "when the art of another culture enters into attitudes that determine our experience genuine continuity is effected. Our own experience does not thereby lose its individuality but it takes unto itself and weds elements that expand its significance"; then experience is one of "complete interpenetration of self and the world of objects and events," transforming into "participation and communication." [16]
In Kimsooja's work empathy of specific moments and situations gives way to a greater sense of oneness in humanity. This is the experience we have of Kimsooja's magnum opus, A Needle Woman. Begun in 1999, it is the embodiment of the fluidity of ourselves and our self into others, of time flowing into time, of place flowing into place, of oneness. She is the needle and yet the eye of the needle. She is the key that opens our vision, yet at the same moment the keyhole through which we pass. She shifts seamlessly, fluidly, between being solid and there, to empty, a shadow. Thus, in Needle Woman, we have two sides, too spectator and participant, as we looking at and moving into the scene, seeing others flowing along, being in the flow. Here our full participation is the transformation through the experience of art.
It has often been remarked that here the artist remains anonymous by not revealing her face. But it is more: she and all the persons in the frame are part of a larger, unframed whole: everything, everywhere. We understand this when this artist says, "I have an ambition as an artist: it is to consume myself to the limit where I will be extinguished. From that moment, I won't need to be an artist anymore, but just a self-sufficient being, or a nothingness that is free from desire." [17] Thus, Kimsooja aspires to a level beyond that of the experience of others and their story, and even beyond humanity as she seeks to approach the experience of a greater realm. To do this, art is a path not a goal, and a way to achieve full self-realization.
Taoism says the human mind before creation is pure emptiness, and that within this emptiness or void resides all potential. With awareness our mind can return to this state of emptiness, once again becoming part of it, connecting us to the universe and, during moments of insight, producing a sense of oneness with all things. This mental state is not a matter of representing reality; it is a state of being. This all-inclusive reality connects with our own mundane self because it is already ours or, better, it is already us. When Kimsooja speaks of "being consumed to the limit," she participates in that wholeness and is one with it. Art that evokes this multi-dimensional connection possesses an empathetic essentialism that goes beyond coming in touch with the emotions of others to achieve true identification, an understanding of being.
This level of empathy has been called by Gonzalo Obelleiro "imaginative empathy." It "is concerned with the essence of emotion, not the specifics of its manifestations," he writes, finding Dewey's philosophy of experience useful to ground a pedagogy imaginative empathy [18]. It is true that in addition to art's practical social roles of producing empathy, hence, creating an empathetic state of awareness, Dewey also felt that imagination through art played a social role [19]. But imagination in art and in common parlance has a sense of flights of fancy rather than of truth of experience, so here I prefer to recast this empathy found in the essence of emotion, as "essential empathy."
In A Needle Woman—Kitakysuhu (1999) the artist lies on an exposed rock of a mountain. Her stillness between earth and sky allows us to perceive the connected transitoriness of all nature, human as well as earthly and heavenly. Moving beyond self, she says: "Over time, I find that my body, with its duration of stillness—breathing in the rhythm of nature—becomes itself a part of nature as matter, neutral, a transcendent state. To me it is like offering and serving my body to nature. [20]" Likewise in Laundry woman—Yamuna River, India (2000), we experience, as she did, a similar oneness. Standing downriver from a cremation site, she faces the ephemeral joining the eternal. She des not represents or expresses this moment of passage but achieves it in a complete enlightened state of awakeness. And when this was achieved, she said, she "finally realized that it is the river that is changing all the time in front of this still body, but it is my body that will be changed and vanish very soon, while the river will remain there, moving slowly, as it is now. [21]" Our life is fluid, always changing, as we float in the river of the universe. As with A Needle Woman, she is in the picture yet evaporates from it, opening up the space for us to enter. As viewers, she gives us a glimpse of an awakened state: initially what it looks like, then with time, if we can achieve a deeper state of consciousness and presence, the chance to fuse and become one with her, replacing the artist, participating ourselves. So her art, like potent, sacred objects of cultures throughout time immemorial are not representations but means to this state of essential empathy, not the picture of it.
One of the primary aims of perceptual awareness for Dewey is for us to become conscious of the consequences of our actions, on other peoples and humankind, and for the planet. Today we think "planetary" in regard to ecological and environmental stewardship, but Dewey was also thinking in less tangible ways. With an understanding our individual effect on the greater whole, Dewey modeled a responsive and elastic web of consciousness in co-existent, recalling the Buddhist concept of interconnectedness as envisioned as Indra's Net: all things are a part; each reflects the whole; each affects and is affected by every other part.. With a belief that art was useful in guiding personal development toward social good, Dewey seized upon art's exceptional ability to create feelings of empathy and, thus, deeper understanding of the human condition and existential condition. For this he depended on art, for he knew it was essential to imagine a better future.
In other works, such as A Wind Woman (2003), Kimsooja becomes nature. In Earth—Water—Fire—Air (2010) she works at the site of a nuclear plant in Korea. For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2008), filmed on a beach in Goa, India, she created the moment of eclipse, when the sun and moon become one. The artist, it could be said, is gone in these works, but rather she is fully present with everything. Doris von Drathen has so aptly written of this work when she says the space the artist occupies is "the dividing wall of the mirror that generates consciousness," from which "she can view the impossible, open her range of vision into the cosmos, intensify her own sense of consciousness towards transcendence. At this moment of absolute presence, an ethical dimension reveals itself," whish is at once "the relinquishment of an identity that is defined by belonging" and "an awareness that concentrates utterly and absolutely on the Self." And here, too, we participate as: "The viewer merges into the incessant breathing of the sea, as it gives forth its waves, allowing them to rise and subside in eternal circuit...the viewer becomes susceptible to the circuit of the celestial bodies in the selfsame endlessness of their return [22]. Our full existence demands this connection to something larger.
Artists can be insightful and make insightful art. If we are perceptive, art can give glimpses of insight. But rarely is art insight. Yet this happens when Kimsooja embodies oneness or, Dewey's terms, continuity, giving herself to us and, when we experience it as we give ourselves to her art and fully participate in it. Participation. It's a word Dewey chose [23], but which has taken on a new meaning in art today as we have lost the capability to participate with art objects, and talk about engaging viewers in modes of participation such as collaborative authorship or other forms of making. Spectatorship connotes detachment, looking at the surface of things or actions. In American and European contemporary life the spectacle society is one of superficial and mediated relationships [24]. The spectator does not feel empathy, but the participant does. And only as a participant can we partake on yet another level of the essential empathy that Kimsooja experiences and which become her art.
To be a participant in Kimsooja's art does not require sitting in Times Square or being with the artist on a beach in India. It can happen in front of a video in a gallery. To an exceptional degree her art revives the experience of art Dewey knew—where being with art makes all the difference. If we think about the viewer as involved in empathetic relation to the artist's experience, to others' experiences, and to the essence of empathy, then as participants we are caring, hence engaged. Caring, the engaged audience functions like the artist, invested in the moment [25]. This parallel of artist-to-audience is so fundamental that as we experience art we "become artists ourselves." [26] Kimsooja gives us the possibility to do this with her art. If we fully participate, the experience is ours.
[Note]
[1] http://www.kimsooja.com/action1.html
[2] See Interview with Kimsooja in Buddha Mind in Contemporary Art, Eds. Jacquelynn Baas and Mary Jane Jacob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4), 212-219.
[3] In dealing with a wider realm, Dewey advocated a philosophy that "accepts life and experience in all its uncertainty, mystery, doubt, and half-knowledge and turns that experience upon itself to deepen and intensify its own qualities—to imagination and art." John Dewey, Art as Experience (1934; New York: Penguin, 2005), 35. For a discussion of Dewey's personal connections to Eastern philosophy, see the author's essay "Like-Minded: Jane Addams, John Dewey, and Laszlo Moholy-Nagy," in Chicago Makes Modern: How Creative Minds Changed Society, Eds. Mary Jane Jacob and Jacquelynn Baa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2), 23-25.
[4] Ibid., 21, 28
[5] Dewey wrote: "The existence of art is the concrete proof…that man uses the materials and energies of nature with intent to expand his own life….Art is the living and concrete proof that man is capable of restoring consciously, and thus on the plane of meaning, the union of sense, need, impulse and action characteristic of the live creature. The intervention of consciousness adds regulation, power of selection, and redisposition. Thus it varies the arts in ways without end. But its intervention also leads in time to the idea of art as a conscious idea—the greatest intellectual achievement in the history of humanity." Ibid., 26.
[6] Ibid., 32.
[7] Dewey wrote: "The conception of man as the being that uses art became at once the ground of the distinction of man from the rest of nature and of the bond that ties him to nature…art itself is the best proof of the existence of a realized and therefore realizable, union of material and ideal...There is no limit to the capacity of immediate sensuous experience to absorb into itself meanings and values that in and of themselves—that is in the abstract—would be designated 'ideal' and 'spiritual.'" Ibid., 26, 29, 28.
[8] Ibid., 344.
[9] Ibid., 28-29
[10] We might think here of when someone remarks they are "living the project," being so fully engaged. We see it in the excitement or focus someone give sot what they are doing, their skillful command but with the presence of the moment that is each time lived anew. This Dewey called esthetic. By way of example, he wrote: "An angler may eat his catch without thereby losing the esthetic satisfaction he experienced in casting and playing. It is the degree of living in the experience of making and of perceiving that makes the difference between what is fine or esthetic in art and what is not. Whether the thing made is out to use…is, intrinsically, speaking, a matter of indifference….Whenever conditions are such as to prevent the act of production from being an experience in which the whole creature is alive and in which he possesses his living through enjoyment, the product will lack something of being esthetic. No matter how useful it is for special and limited ends, it will not be useful in the ultimate degree—that of contributing directly and liberally to an expanding and enriched life." Ibid., 27.
[11] Dewey, Ibid., 347 - 348. This proceeds from Dewey's premise that: "Without an act of recreation the object is not perceived as a work of art." Ibid., 56
[12] See also http://www.dharmasculpture.com/buddha-varada-mudra-sanskrit-boon-granting-charity-hand-gesture.html
[13] Rosa Martinez, "A Disappearing Woman," in Kimsooja: To Breathe (Seoul: Kukje Gallery, 2012), 22.
[14] Planted Names was made for and exhibited at Drayton Hall, Charleston, South Carolina, commissioned by the author for the Spoleto Festival USA in 2002. Interestingly one of the descendents of this plantation family, Bill Drayton is the founder of the progressive social entrepreneurship organization Ashoka that uses empathy-based ethics as a keystone to working together to make change.
[15] Martinez, 21.
[16] Dewey, 349, 22-23
[17] Ingrid Commandeur, "Kimsooja: Black Holes, Meditative Vanishings and Nature as a Mirror of the Universe," in Kimsooja: To Breathe, 9.
[18] See Gonzalo Obelleiro, “Imaginative Empathy in Daisaku Ikeda’s Philosophy of Soka Education,” conference paper for Soka Education: Leadership for Sustainable Development, Soka University of America, February 11-12, 2006, 39-51. www.sokaeducation.org/images/4/48/Imaginative_Empathy-Obelleiro.pdf. Obelleiro argued that empathy, in line with Buddhist tradition, is not the mere act of re-experiencing one’s own sufferings, but when “[w]e feel empathy when we partake on the essence of the emotions that person is experiencing.” To the author, this is supported by Dewey’s philosophy of experience because it “shares with Buddhism the basic epistemological premise of the oneness of self and environment and oneness of mind and body,” and because “in its clear humanistic approach, it privileges human interactions and regards ethics as not as fixated in a particular framework of rules and maxims, but as the art of creative, inner dialogue between primary experience and critical reflection.” To Obelleiro, “Dewey makes it clear that concepts like imaginative empathy are not simply theoretical concepts but are modes of praxis or manifestations of philosophy as art, which can only be learned in experience, particularly in interaction with other human beings.” So he concludes: “it is only through the creative integration of the two, direct experience and cultivation of mind and spirit, that imaginative empathy can be attained. The kind of artistic skill required for this integration can only be learned from another human being, for it is the quintessential human quality. Some call it wisdom.”
[19] Dewey wrote: “The first stirrings of dissatisfaction and the first intimations of a better future are always found in works of art.” Ibid., 360.
[20] Kimsooja, Buddha Mind in Contemporary Art, 217.
[21] Ibid., 217.
[22] Doris von Drathen, "Standing at the Zero Point," in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Tokyo, Shiseido Gallery, 2008).
[23] As stated previously, Dewey said, experience “when carried to the full, is a transformation of interaction into participation and communication”; and also: “Works of art are means by which we enter, through imagination and the emotions they evoke, into other forms of relationship and participation than our own.”
[24] Here, of course, I am referring to Guy Debord’s The Society of the Spectacle, (New York: Zone Books, 1994, originally published in French 1967).
[25] Robert M. Pirsig, in his classic 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 distinguishes between being involved and being a spectator. Care, for Pirsig, is what makes one’s work or actions an art. See Robert M. Pirsig 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 (New York: Harper and Collins, 1974), 34-35.
[26] Dewey, Art As Experience, 348
2013
"Hospitality is certainly, necessarily, a right, a duty, an obligation, the greeting of the foreign other as a friend but on the condition that the host, the Wirt, the one who receives, lodges or gives asylum remains the patron, the master of the household, on the condition that he maintains his own authority in his own home, that he looks after himself and sees to and considers all that concerns him and thereby affirms the law of hospitality as the law of the household, oikonomia, the law of his household, the law of a place…." —Jacques Derrida, "Hostipitality" [1]
The six videos projected simultaneously that comprise the Korean artist Kimsooja's A Needle Woman (2005) present the artist wearing precisely the same clothes, standing precisely the same way, and, it would seem, at the same time of day, the sun shining down. She is absolutely still amid passing crowds of inhabitants in Patan, Nepal; Havana, Cuba; N'Djamena, Chad; Rio de Janeiro, Brazil; Sana'a, Yemen; and Jerusalem, Israel. The crowds react differently to this odd figure, clearly a foreigner. They are presented in slow motion, with no sound, which only emphasizes the sense of movement, instant reaction, passage.
A Needle Woman has been written about many times, and Kimsooja is often described in these writings as a nomadic figure in this work, traveling across the world to come to rest in a crowded thoroughfare and then move on to the next. The needle referred to in the title is Kimsooja theorizing herself as a needle that passes through the fabric of a place and its people; and there is that other sense of a needle, that it sews together, is an instrument of suture, of healing, which could not be more appropriate because the locations that are visited in the work are all places of violence, disrepair or unresolved conflict. But as the light falls on her vertical figure, I would suggest another instrument that she can be interpreted to represent, and that is the gnomon.
A gnomon is the standing element of a sundial that casts the shadow and indicates the hour. It is an index of the sun's passage over the surface of the earth, but not an index of the sun for itself, so to speak, but the sun as a sign of time, and time not for itself but as the sign of what happens ultimately to each of us. Time is the marker of our transition through aging, the marker of our passage, we at the center; and the gnomon, therefore, indicates not only surfaces but human interiority, not only an exterior of sunlight and shadow but time in us, of us, and for us. (The old Greek word gnomon means "indicator," "the one who discerns," or "that which reveals.") This is to say that light and shadow begin on the surface of things, and we inscribe them in a symbolic regime; they become elements in the narrative of our rise in time and our fading, of our moral troubles, our ethical thresholds and flaws. These lights and shadows work their ways into us, embed themselves, and are indicated by the marks our actions leave.
Kimsooja, who plants herself in the middle of place, which is the activation of space as a locus of meaning, is this gnomon figure, this gnomon of place, against whom the physical light and its symbolic presence falls—an indexical instrument recording human passage and transition. This is on the level of the anthropocentric, of the human as the root of all occasion, all meaningfulness. [2] But the index here does not simply regard the internalization of knowledge, an epistemological dominion of its own self-reflexive primacy. No, Kimsooja, whose face is always unseen in this work, who stands like statuary, a flesh monument to the human, offers us the face of everyone else. These faces are the signifying engines of each tableau. They reflect light passing, of movement that is notated in time, of shadows, of a narrative unspooling, telling the story of a transitory exchange, of the value of the transitory in its opposite: that which leaves a mark. Where is this exchange? It is transacted within that "law of a place" Derrida suggests, which is a place of exchange, with its oikonomia, its discipline of the household's inventory. It is an economy of relations that, like hospitality, assumes an exchange, and it happens here, in A Needle Woman, among a triad of nodes:
1 ) There are the individual faces in the crowd.
2 ) There is Kimsooja, the one who discerns.
3 ) There are the viewers, us, the ones toward whom these faces move.
The author Susan Stewart has written that a face is a "‘deep' text, a text whose meaning is complicated by change and by a constant series of alterations between a reader and an author," [3] and this is what we find here. These texts are read by Kimsooja, as they read hers. They write each other and read each other, and these trajectories of reciprocity extend to us, the third node of the triad. Kimsooja is the indicator of meaning, that which reveals, which she reads on the faces of these foreigners, who are not foreigners in this place where she is the foreigner, but to her and to us are themselves foreigners in foreign lands, who she instigates to project meaning, and we receive it. Our position, of course, is the same as the artist's. Our expressions, our knowledges, our dispositions are not seen, since we too face forward, away from others. If she is the index of these texts, then we who receive the meanings of these faces are the archive. In us lie the accumulation of their expressions and perceived meanings. They leave notations, marks.
In each of these places where Kimsooja has come, she writes herself into another book, another register: the book of guests. As such she has the right to be treated decently, without aggression, by the people of any foreign land, as Immanuel Kant says. He says it plainly in his tract from 1795, "Perpetual Peace: A Philosophical Sketch," of which the third section is entitled, "The Law of World Citizenship Shall Be Limited to Conditions of Universal Hospitality." He writes that hospitality is "not a question of philanthropy but of right. Hospitality means the right of a stranger not to be treated as an enemy when he arrives on the soil of another." Her position is one of cosmopolitan demand. International law supports this principle of cosmopolitanism: If I intend to do you no harm, I will not be the subject of hostility when I cross into your territory. That is the right of cosmopolitanism, of hospitality.
But of course note that hostility has the word "host" within it, so it is buried within the genealogy of human praxis that to be host may also mean to be an aggressor. So it is that this turning of tables, this inversion of meaning, is embedded within the figure of Kimsooja herself. She would seem to be the guest here in Jerusalem, Patan, Havana, and so forth, an open receptor of her hosts' reactions to her presence. But there is always this possibility of inversion in these terms of host and guest. In her presencing, she is the aggressor, the one who makes a demand, the one who claims by her indexical stance an ownership of place, this space of meaning-making, a directive presence, an emanation of control projected onto her guests, who instantaneously and therefore unwittingly enter into her symbolic territory and offer up to her, as guests do, something of themselves that she requires for their entrance. As the gnomon, she records these passages, her monitoring of time's essence as the passage of the body, its consciousness, and its disposition of knowledge and meaning. This is what we see. This is what then enters into us and is stored in our memories.
There is another machine at work in A Needle Woman because what I have been describing are machines, mechanisms that produce end-products through their labors—in this case, writing machines and reading machines, machines that record each place's citizens caught in the encounter of revealing their reaction to foreignness and leaving their text for the artist, for us. The task the artist has given herself is to be the apparatus of this textuality, to perform it in each of these spaces where, as Henri Lefebvre states, space "is the shifting intersection between that which touches, penetrates, threatens or benefits my body on the one hand, and all other bodies on the other." [4] It is in this spatial situation that Kimsooja's body performs the act of a particular inscription: this revealing of difference. For as I've said, each of these places she has chosen to stand in is a conflict zone, and violence can be defined as a foreignness alien to a first state of being in its tolerance of difference that is Edenic peace. These are then places alien to themselves, and Kimsooja is an alien in these lands of alienation, an index of Otherness in which everyone is an Other as long as there is no resolution of difference or in which difference has not been an accepted resolution in itself. The artist has loaded her meaning-machine with the data of geopolitics and history. And with that data stored, she adds the element of the foreign irritant (herself), the virus, the possibility of another data set with which this first data set must interact.
If Kimsooja's first machine is the performance-body in the operative process of revealing the text of foreignness, this other machine is a byproduct of her body's performance: a different kind of machine, a self-referential machine, an aesthetic machine—the machine of Modernism, built in the nineteenth century, dominant in the twentieth, and still working today. Its operating principle is the self-conscious unveiling of an artwork's mechanism, as Mallarmé unveiled the workings of the poem through a poetry about the self-consciousness of making a poem; as the Cubists made representational illusion on a painted surface a problem of painting to be observed, broken down, and rebuilt, etc. This machine is made manifest in the form that it takes before us here: A Needle Woman as video, as a time-based transition of images that hosts time while denying time the ultimacy of its ongoing forward movement. Her video's slow motion distends time and then keeps stopping, refusing it continuity because the video implies that time goes on, then cuts it off over and over in a loop of suspension. The continuity of time in A Needle Woman lasts for precisely ten minutes and thirty seconds. Then it begins again. Nor is it one time that starts and stops; its six places present six times starting and stopping simultaneously.
It does not contradict my argument to say, "Well, that's true of any film, video, TV show, streaming webcast, radio program, even a theater play." That may be so, but nonetheless it is here the matter of specific artistic choice that is crucial. In the first performance video of A Needle Woman, executed in 1999, Kimsooja did not use slow motion; it was presented in "real" time. But here she purposefully does so, availing herself of the medium's technical self-consciousness of time, revealing the medium's unwillingness to surrender to the time-ness of time, to its continuity, and instead overwhelms it, denies it, commands it, erupts it. (Modernism counts among its hallmarks discontinuity and eruption.) In this sense, her video is a parasite of time, a foreign guest who overtakes its host, just as Derrida says that the host can become the hostage. [5]
This self-referential aesthetic machine is a ghostly presence, for ghost and guest are also words that share the same root in their signifying of the one who visits. This machine of representation hovers, being hosted by time and yet taking time hostage, revealing this internal conflict that remains unresolved—an echo, a shadow laid down over the video's first presence as the record of bodies as meaning-machines whose subject, too, is the encounter of conflict that remains unresolved, the question of the foreigner. Subject and mechanism share the double-position of the aporia, of an internal confrontation of contradictory forces who are both hosts and guests, just as Kimsooja's figure in A Needle Woman stands in this double-position, this double-imposition of silent entreaty and power's requisition of others for one's own purpose. Her figure, then, belongs to the discourse of hospitality. She is the steward of the aporia, the body of supplicant and sovereign, of visitor and imposing owner of place, a needle piercing time, not healing it, but holding it in suspension. Yet we, who are the third node in this transaction, are not outside of time, not held in place. The gnomon of foreignness falls across us and enters us. Time continues in us as foreignness does, with its demands on hosts and guests, its questions of domination, its juridications, its texts, its burdens and pleasures that enter us again, now held by us: an inquiry, an offering, a mirror, a virus of troubled rights.
[Note]
[1] Jacques Derrida, "Hospitality," trans. Barry Stocker and Forbes Morlock, Angelaki, volume 5, number 3, December 2000, 4.
[2] I will not address here the agency and autonomy of nonhuman things because that is not Kimsooja's subject in this work.
[3] Susan Stewart, On Longing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93), 127.
[4] Henri Lefebvre, The Production of Space, trans. Donald Nicholson-Smith (Malden, MA: Blackwell Publishers, 1991), 184.
[5] As Derrida says: "So it is indeed the master, the one who invites, the inviting host, who becomes the hostage—and who really always has been. And the guest, the invited hostage, becomes the one who invites the one who invites, the master of the host." Of Hostipitality, trans. Rachel Bowlby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0), 123-25.
2013
A fundamental presence in much of Kimsooja's work is that of the body. Over decades of production, beginning with the sewn works of the eighties, in which the body was merely implied through the presence of cloth, followed by the bottari works of the nineties that served as metaphors for intimate coverings of the body, to her canonical video works recording the artist's bold physical presence in the world and some of her most recent works implicating the human presence of others, the body has been one of the underpinnings of an artistic practice that addresses large issues of our time—primarily, how we relate as human beings, and the physical/spiritual/social nature of such relations. After all, it is through the body that we perceive and act in the world, and it is also through our bodies, as viewers of Kimsooja's work, that we come to gain a perspective on her ideas. The following dialogue with the artist focuses on four points of entry into to the performative aspects of her work: body, place, time and participation.
Daina Augaitis
One of your earliest works, Structure – A Study on Body (1981), is a set of prints that explores the idea of a universal body—but in this case you were already, as a young artist in 1981, inserting the specificities of your own subjective body into your work, as if to counter a universal stereotype. Can you describe the impetus for making this work?
Kimsooja
After graduating from college in 1980, I continued investigating questions of tableau as a place in which painters spend their lives trying to find their own mirror. I especially focused on its woven horizontal and vertical system—and with this, the structure of the world and the universe at large. I valued this cruciform structure as a means for understanding the inner structure of aesthetics and human psychology, and it also gave me a perspective from which to approach natural phenomena. This also led to my master's thesis: "A Study on the Universality and Hereditariness of the Plastic Sign: A Focus on the Cruciform Sign" (1984). It was an investigation of the transcendent examples of ancient archetypes through to modern and contemporary painting and sculpture in relation to anthropological and psychological aspects. For example, my enthusiasm for Korean culture at that time extended to the Korean alphabets that were constructed by three symbolic Taoist elements: earth (horizontal line), sky (vertical line) and the human being (dot), a system invented by King Sejong of the Joseon dynasty in the fifteenth century that has an intrinsic horizontality and verticality. I've been focusing totally on this cruciform structure in Korean architecture, furniture, objects and alphabets—even in traditional garments and human psychology—as a basis for understanding the world. During my first trip to Japan in the late 1970s, I came to recognize the uniqueness of Korean visual culture in terms of its own sensibility of colour, especially in relation to Japanese, Chinese and other Asian cultures, which I had previously thought had greater similarities. This interest then expanded to include the body as a tool for the formal examination of horizontal and vertical structures, in a way that is similar to how it is incorporated in our alphabet. My intention in these performative prints was to explore my body within a circular framework as a geometric axis, using images of my arms, hands and legs stretched and folded in various poses to create spatial dimensions that were highlighted with different colour tones. Leonardo da Vinci created a certain universal stereotype in his Vitruvian Man, but for me it was less about proportion than about the dimensionality of the space extended into the world through the cross-like structures of my own body. That was the starting point for this project, which ended up as a series of serigraph prints. It was only a few years later that I escaped from Christianity/Catholicism, and while I won't disagree that I have had a psychological association with cruciform shapes in the artistic domain, that was not the motivation behind exploring the cross shape in my sewn work.
Daina Augaitis
You were conscious of the specificities of your culture and exploring those, but what about the specificity of gender? Were you consciously making work as a female? What was the situation for women in Seoul in the eighties?
Kimsooja
When I was young I understood the position of women in our society to a limited degree, but I became much more aware of it after I married in 1983, when the different roles and positions of women in the family and in society became clearer to me and I began to explore identity issues. However, I looked at my own culture through completely different eyes when I returned to Seoul at the end of 1993 from New York (after finishing a one-year residency at PS1), a place where many different roles, ethnicities, cultures and value systems were in action.
At times I am conscious that I am a female when it comes to domestic daily-life relationships, and in a political sense, but not as much in art-making, even though I realize I implicate the traditional female domain by using tools like the needle and activities like sewing. However, I believe these elements have evolved conceptually beyond contexts of femininity. It's not that I wish to emphasize my gender, but I am simply not a man, and I can't make my titles A Needle Man or A Mirror Man or A Beggar Man. I started a "sewing" practice in the early eighties neither as a female artist nor as a female specifically interested in sewing nor as someone who was particularly good at sewing. Rather, I was questioning the surface of the tableau and measuring its bodily and psychological depth, binding myself to it (the other) and taking it as a mirror with which to reflect myself, which was also a healing process for me and for others. I discovered experimental artistic value in women's domestic labour—especially in Korea, where female and male labour were clearly separated until the late nineties. Even now, tasks such as cleaning the house, doing laundry, cooking, decorating the home, shopping and educating children are divided along gender lines, although the younger generation has become more open to sharing domestic responsibilities and there are more female professionals in Korean society in recent years. In the late nineties I was compelled to refer to the context of women's labour in performative painting, sculpture and installation. And the discovery of the bottari (Korean word for "bundle") as a form of tableau—a sculpture and a "ready-used" object—made me continue to extend this notion of women's "labour" in contemporary art practice. I was increasingly engaged with my symbolic works made from bedcover fabrics, which had a parallel meaning in my personal life after I got married. It is not unrelated to the cultural and ethical position or expectations that Korean women have in our society. Nevertheless, I never wished my practice to demonstrate a feminist or an activist position, although I certainly accept my own femininity and the strong feminine aspect of my work. More importantly, I believe in a basis of humanity, and while feminism stands alongside humanism, I am less interested in gender-oriented power struggles. In hindsight, I still think my engagement with methodologies based on female domestic labour was more about avant-garde action in relation to contemporary painting and the concept of tableau.
The short period I spent in New York was instrumental, because that's when I discovered a new meaning in the used traditional Korean bedcovers of newly married couples as a ready-made/ready-used aesthetic formation. By wrapping fragments of used traditional clothing in these colourful bedcovers, the bottari constituted a wrapped two-dimensional "tableau" that had been transformed into a three-dimensional sculpture simply by tying one knot and encasing all the contents, as if hugging them all inwardly or being pregnant. It is an action of wrapping bodies and memories. While I was in New York, these bottari objects were a formalistic and aesthetic statement, but when I returned to Korea, I saw our society and women's roles in it from a more critical perspective, and the bottari was no longer just an aesthetic object. Rather, it became tied to notions of the body, to my own conditions and to those of women in general in Korean society, and also to human destiny in a broader sense. After that, I no longer used fragments of coloured fabrics inside of the bottari as a way of creating a type of "pigment." Instead, I began to wrap used clothing in its entirety in order to emphasize elements of reality.
Daina Augaitis
When you're using fabric and clothing as the material for many of your works, it implies an absent body. As you think back on these early works, what body were you referring to? Is it your body? Is it a metaphorical body of society?
Kimsooja
Looking back at my earlier practice, it seems interesting that I've been so focused on associating fabric and clothing with the skin and the body; even now I realize how much I've been conscious of its presence and connotation. The question began with the conditions of my own body, but I must say it was translated and transformed into somebody else's and then, ultimately, into an anonymous body. I try to use my body more objectively than subjectively and don't wish to make it about personal revelation.
Daina Augaitis
Thinking about when you began to make bottari in New York, could you further describe the implication of the memory of their previous owners?
Kimsooja
I had been making large sewn pieces since 1983, stitching square- or rectangleshaped parts of used clothes together into a flexible and not pre-determined "canvas." A few of them were cross-shaped—which of course can be a reference to a body or have a religious connotation—while others were triangular or irregularly shaped, based on verticality and horizontality. I started with the old clothes of my grandmother and then I used anonymous people's clothing. At that time, I worked mostly with traditional clothing not only because I was fascinated with the nature of the fabric, but also because the practices of Korean daily life were very much ruled by tradition—that is to say, by Confucianism, which created a strong hierarchy in domestic life and in our society. However, this was also one of the reasons that non-verbalized suppression and contradictions were present in our society. I was never actively engaged with feminism or with any particular groups or isms in my private life or in my art. It was my goal to maintain an independent stance while pursuing a sense of totality in my practice. What happened was that these social concerns merged with my existential and aesthetic problems.
After 1990, I moved away from the square shapes and made irregularly assembled forms with the same materials on a larger scale, which brought a more open dimension to my work. My last sewn piece made at PS1, Towards the Flower (1992), is a large, sewn assemblage wall piece consisting of a long pole wrapped with reused bedcovers and scraps of clothing leaning against the tableau together with my first wrapped bottari as another component. The piece combines three elements: the wall tableau as a painting; the pole leaning onto the painting, which replaces my (or the audience's) hand and gaze and is an extended body; and the first bottari I had made as a sculpture that enfolds and wraps up all the sewn pieces I had made in the past. In the end, the bottari seemed to encapsulate everything inside of it and became a complex symbol. I didn't make any more sewn pieces after that.
Daina Augaitis
How did you make the transition from the bottari works to the video works in which you begin to use your own body as subject matter?
Kimsooja
My first video was actually intended as a documentary film of my methodical working process with the bedcovers at a chosen site in Oksanseowon Valley in Kyungju. There I laid the bedcovers out on the ground like a field of laundry and then slowly collected them in my arms and wrapped them into bottari. The film shows every single step and interaction with these flexible fabrics (or "canvases"). At the end, I wrapped everything into two bottari and carried them away. When I was reviewing the footage, I immediately noticed that my body walking on the fabric signified a symbolic needle and I furthermore discovered that the camera's lens and the video's frame served as another form of immaterial framing within the screen. The video thus became a wrapping of the wrapping. The juxtaposition of such opposites—the physicality of the bottari, which evokes a body, together with the video frame as another immaterial way of wrapping—has been a component of my work ever since.
Daina Augaitis
As you began to move into this field of performance centred on your own living body as an essential aspect of the work were you thinking at all about some of the experiments of Valie Export, Marina Abramović or Yoko Ono? Were you interested in the history of performance art as you began to use your own body?
Kimsooja
I had only seen a few historical performance images, but I was not interested at all in the staged performances or violent actions of Western performers. Instead I wished to interact directly with nature or in the realm in which real life occurs—not to show something to the audience, but rather to offer an experience for both the audience and myself… In 1979, while I was still at art school, there was an "event" as part of the Daegu Contemporary Art Festival that I was invited to be a part of. It was an interactive "Two-Person Event" organized by Kim Yong-Min for which we ravelled from Seoul to the Gangjeong riverside in Daegu. We wore identical orange workers' vests and departed from the Seoul train station for Daegu, my home town. We took notes on the journey (mainly done by Kim Yong-Min) and each one of us collected preferred objects along the river that were installed in two small adjacent spaces with primitive walls constructed from gathered branches. I collected small objects, such as stones, small piles of sand, little tree branches, flowers, a tiny soju (Korean sake) glass, fresh garlic cloves, etc. I placed the garlic and the soju glass on top of a small installation of branches and leaves atop a tiny sand dune, as if it were a small shrine offering in a shamanistic ceremony. Each of us hung our clothes on the wall and left our travel notes that recorded the entire journey from the train station in Seoul to the Gangjeong riverside and the exhibition space in Daegu. This journey together was unplanned, and was guided completely by each of our individual desires. I realized then that this raw energy of daily life would become the essence of my performances. I wanted to establish a totally different way of doing performances by inverting the notion of an artist as a predominant actor through "non-doing" and "nonmaking" in order to reveal a critical point that is without heroism and without violent action or aggression. I was quite vulnerable and disturbed by the violent performance actions of some performance artists in relation to their own bodies or those of others. I've always questioned a violent exploitation of the body, as it is something I am completely against, even if it is intended to demonstrate the infliction of violence upon the body. I have always believed that there is a way to demonstrate critical ideas without being aggressive.
Daina Augaitis
Your earliest performance-based works occurred when you began to travel with the bottari works in the mid nineties. Was this to explore different places as a way of locating specific contexts and histories that would emerge out of them?
Kimsooja
I was inspired by Hans Ulrich Obrist and Hou Hanru's exhibition Cities on the Move, a project in which I participated. When I was young, my family was always moving from one city or village to another due to my father's job. I often enjoyed playing with my school friends in my teenage years by writing down all the names of the cities and villages in which I had lived, connecting them to one another with lines like long sewn stitches in between the names of the towns. The title of Cities on the Move reminded me of our family's nomadic life and inspired me to do th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1997) performance, revisiting all of the villages and cities of my youth in an eleven-day trip across Korea.
Daina Augaitis
By now you have worked in a vast number of cities throughout Asia and around the world. What are your thoughts about the idea of place now? Are you using those locations as a way to root your experience in them? How do you choose where you'll be going?
Kimsooja
When I chose Tokyo as the location for the first performance of A Needle Woman (1999), I only had the idea that I would do a performance piece in the city followed by one in nature, without any more specific plans. Clearly, I didn't want to be an actor on stage, and it was a new challenge for me to pursue this experience as an anonymous performer. This work was intended as the first performance piece that I would record and show to the public, working together with the CCA Kitakyushu. I follow my instinct in terms of the energy that I feel from a place—it is an energy that has a lot to do with either people or nature. I often choose the place intuitively, otherwise I am not inspired and can't perform.
In order to experience my body defined by different realities, the enlightening experience in Shibuya of standing solitarily in the middle of humanity was followed by the opposite axis of standing with a performance of lying horizontally in solitude in nature.
Daina Augaitis
When you work in different locations, does your work change? And how do you intersect with the social, cultural, political and economic dimensions of each place?
Kimsooja
I had an incredible experience performing in Tokyo. The performance started the moment in which I became aware of my body in an extreme state of conflict in the middle of a big crowd. I couldn't walk anymore and just had to stop right there and be still in order to tame the inner scream building in my body from the energy of all the people around me. As it became more and more extreme it felt as if I were getting wrapped up inside my own body like a bundle—an absolute sense of self-awareness. That's how the performances of A Needle Woman (1999–2001, 2005, 2009) began. While I was standing still and remaining centred, I experienced an incredible transition in my mind from vulnerability to a focused, meditative and enlightened state of mind. This is when my mind and eyes entered the reality of a large universe, seeing the white light beyond the horizon of the waves of people coming and going. This powerful experience of enlightenment enabled me to meet the people of the world's most crowded cities. For the first series of A Needle Woman performances, I chose the most populated locations in the world in order to meet oceans of people—Shanghai, Delhi, Cairo, New York, Mexico City, London and Lagos, all metropolises on different continents.
Daina Augaitis
When you arrived in these cities did you think in advance about what the politics of each place were?
Kimsooja
Before this work, I hadn't witnessed the conflicts, violence or poverty that exist around the world. But after visiting Delhi, Lagos and Cairo, those places really made me reconsider differences in ethnicities, geography, cultural and religious tensions, politics and economics. When I finished all eight cities in the series in 2001, I realized how problematic the entire world had become. The more I travel,the more challenging and violent the world seems. Eventually, for the 2005 Venice Biennale I decided to create another series of A Needle Woman performances dedicated to cities in conflict, whether this was economic, ethnic, religious, violent or post-colonial in nature. The condition of humanity in each place and my growing inner awareness intersect, leading to deeper and broader questions.
Daina Augaitis
Do you work with local people? And is community collaboration important? It seems that the notion of collaboration has evolved in your work.
Kimsooja
Actually, I'm not big on collaborating with large groups; I almost have a fear of it. I prefer one-on-one relationships rather than group relationships. But I am getting more involved in collaborative work, and it does offer me valuable experiences. Recent collaborations with communities include working on An Album: Hudson Guild (2009), for which I collaborated with the Hudson Guild Senior Center. Another example is my most recent ongoing film project, Thread Routes (2010–), which focuses on specific weaving communities around the world. In these works I am now physically removed from the viewers, but through my gaze, I explore my perspective through the specific communities that perform their passions, desires and rituals. In Thread Routes these are captured in their textile-related performances, implicating local environmental conditions and the aesthetics of movement that unfold in the actions of their bodies. It goes back to my earlier work displaying an interest in sewing, spinning, wrapping and unwrapping. In a sense, I unwrap their bodies and minds, creating drawings of their movements and life. I feel the psychological dimensions of our bodies are demonstrated when they are unfolding in a performative state.
Daina Augaitis
The passage of time is a significant aspect of your work. How do you think about time and impermanence in relation to your work?
Kimsooja
I believe not in permanency but in constant transition. Everything is in process and is ephemeral, including my own body. In my earlier works the process of sewing was a journey to the past, present and future, as an internal voyage through space and time. The performance of A Needle Woman afforded me the awakening experience of an internal journey by locating/dislocating the physicality of my own body, which in turn posed questions and suggested different perceptions of time in both my mind and that of the viewer. Yet another special state of perception occurred in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India (2000), the performance in which I was standing on the bank of the Yamuna River. At one point I became confused to such a degree that I could not determine whether it was my body or the river that was moving. How could I be so confused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my body and the river? A while after finishing the performance, I came to realize that the reason was because I had been so focused—to the extreme, like the point of a needle, which has no space but only location. And when there is no space but only location, you're open to all dimensionality; you cannot relate your physical body to any particular thing or direction because you are simultaneously unrelated and entirely related within. I had become confused in that zero point of time and space, and it was a profound and humbling moment of awareness of my own ephemerality.
Also, when I did the second version of A Needle Woman (2005) I focused more on my body as an axis of time: it has more emphasis as a video piece rather than a performance in comparison to the previous version and is presented in slow motion, whereas the first version focuses on my body as an axis of space in a realtime performance. I accentuated a temporal aspect and reduced the tension of the world in this second version by slowing down the video so that passersby have a longer interaction with my body, and this smoothed out even aggressive actions. Also, the viewers' experience of a slightly longer duration during these moments of interaction allows the delicate psychological threads woven into this video to become apparent. Slowing down the video's speed produces an expansion of time and creates a stretched stillness as a result. My body in stillness slows down to the degree of permanency, a zero point of time, the central needle point of a clock. I have been increasingly interested in extending time while observing the phenomenon of duration.
In An Album : Hudson Guild, the camera focuses on each individual's face for a certain length of time and freezes their movement at one point, thereby seeming to transform a moment into eternity. An awareness of time becomes more obvious in this video through the psychological journeys visible on the faces of each individual, whom I filmed closely for many minutes. It is as if I had stopped each person walking by me in A Needle Woman to give my gaze—carefully and closely, one person at a time—to them and all the individuals who pass through my life. I must say, this creates a continuum linking this work with A Needle Woman, and there is still much to explore in what time can reveal. But time reveals things to us only when we have consciousness.
Daina Augaitis
What about the psychological dimension of duration? What's going on in your mind and what connection do you make with the people around you, especially in a piece like A Beggar Woman (2000–2001)?
Kimsooja
When I did A Needle Woman, I felt a great empathy for the humanity around me just by gazing at people coming and going. It's a short moment, but in it one can grasp the essence of the ephemerality of human reality. Also I felt a great amount of affection toward the people I encountered. All of those emotions about people were accumulating in my body and embracing me. By the end, I was filled with such fulfilment, peace and happiness. The performance of A Needle Woman was a truly amazing experience for me.
In the various performances of A Beggar Woman, in contrast to those of A Needle Woman, I relate directly to the specific social reality in a suggestive way by sitting in a pose with my hand outstretched like a beggar. I was not asking for money by posing as a beggar, but instead asking questions by opening my palm to the audience. I didn't expect that people would react by giving real money in this performance. However, I was given money in most places, and I was extremely touched and humbled by this action, as it was a moment of personal communication for me. The interaction and psychology of reacting to a beggar and giving something to him is complicated for both of the people involved. It is a moment of sympathy/expectation, doubt/anti-doubt, hesitation/frustration, willingness/request, withdrawal/disappointment, anxiety/anger and regret/relief—all of which are tensions that are generated between the giver and the receiver. The only place I wasn't given money was in Cairo, but instead I was given an even more valuable gift there: someone placed a baby chick in my hand, and I was so shocked to have this small, warm, moving life in my outstretched palm—in my bottari. Even if it was a playful gesture, the person who gave me the bird had responded to my open question with a profound answer, "A life." Another special experience was the first performance of A Beggar Woman that I did in Mexico City (2000), where I saw and connected with a man from a distance. I had already felt his presence in advance, and I had the intuition that he would give me his money. As soon as I sensed this, I was very touched and couldn't stop weeping as I awaited his action. I tried hard to maintain my stillness. As he slowly approached, he searched for money in his various pockets. Once he found a coin, he slowly came to me and put it carefully into my palm and then left. This was a real response to me, not to a performer. I have learned a great deal from my performances, about people and cultures.
Daina Augaitis
I wonder about a piece like Encounter (1998), which is a photograph. As a photographic document, is it therefore more about gesture rather than performance?
Kimsooja
Encounter is actually a performative photograph I made in connection with another performative sculpture called Encounter – Looking into Sewing, which I made in 1998 at the Kunsthalle Fridericianum in Kassel. For this work, I placed a mannequin covered with silk bedcovers at the central intersection of the crossshaped room in the museum's tower and I declared it to be "A Performance." People came and waited, watching the figure/sculpture for a while, expecting some sort of action. When the figure didn't move after a long time, instead of assuming the figure was a performer, the audiences started walking around the figure to try to understand. So I interpreted this interaction on the part of the audience as a kind of "relational performance." That was the original work; the photograph is a re-creation or a record of a similar performative sculpture covering an actual woman inside.
Daina Augaitis
The idea of speed is one that Western society is both enthralled with and dependent on. Your work seems to function in the opposite way. Is it your intention to slow things down, to change the speed of engagement?
Kimsooja
Rather than being against speed, I suppose my work sets up a certain kind of observation in relation to speed. However, sometimes a speeded-up action can also open up reality. For example, I was in Hawaii for a site-specific installation and then ended up making the video A Wind Woman (2003). I was filming while driving along a mountaintop and at a certain point, when the speed of the camera and the car coincided, the lens captured the hidden threads between the sky and the trees—the border between things and space (something I've always been curious about and wished to define), stretching it into a brushstroke of wind/speed. Stretching space and time enables different relationships to be noticeable and awakens us to see the world from totally different perspectives. So by observing how quickly or slowly I look at things through changing speeds, I have discovered a series of historical phases of abstract painting—Realism, Impressionism, Expressionism and even Minimalism—as a series of momentary transitions of painting practices. It took many centuries in the history of painting to arrive at the point where Gerhard Richter's brushstroke is recognized as a unique painting methodology; however, A Wind Woman, for example, demonstrates different movements of painting in the history of modern painting, revealing visual realities in nature that have always been there.
I began my practice as a painter, and most of my evolution stems from my position as a painter.
Daina Augaitis
It seems that your work is very much about the connections you make with humanity, but can you imagine a performance in which there is a surrogate body in place of your own?
Kimsooja
It is inevitable that I perform A Needle Woman, as it is about not just the visual representation but also the unique experience I have as a person and a practitioner whose body has been contextualizing the notion of a needle for thirty years now. Most of my performances were about not just the form but also my inner experience. The state of mind I achieve while I stand there comes from a particular motivation and autonomy of the status of my body and mind. I notice that my back reveals the neutral identity and my state of mind at the time. The back is actually one of the most honest parts of our body. When I'm not stable or focused, I feel it is visible in my back. It's critical for me to be centred, with a focused state of mind and body. If someone else did this piece, the results as an experience and the tension of the performance would be completely different. I did direct and re-perform a version of A Beggar Woman as the project Conditions of Anonymity (2005) with a group of about twenty-two volunteers, a work that was commissioned by Creative Time in New York. The performance was done in Times Square while the videos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India (2000) and A Beggar Woman – Cairo (2001) were being presented on an LED screen. I couldn't repeat myself by doing the same performance while my videos were presented on-site, but I was able to direct a group performance of the same action. I thought this performance could be experienced by any individual without pretention, and it worked out very well, with participants sharing amazing individual experiences and the interactions of the performance.
Daina Augaitis
You speak about your back revealing the truth, but there is also truth in the gaze. Who is the primary audience for you in the case of A Needle Woman? Is it the sea of people walking by you in real life, or are you already thinking of the video projection and the audience that will be behind you?
Kimsooja
Both of those are my audiences, and so am I—I, too, am observing from my back while looking forward. At the same time, in order to maintain my body as balanced, I never lock eyes with the passersby. I continuously gaze at a perspective point—a distant needle point. For those watching the video, my body becomes like a vertical needle with a symbolic void in it that allows viewers to enter or erase my body after watching my back for a while, almost like weaving. In the end, it is as if I become an invisible woman whose physicality is erased by waves of people on the street and by audiences—by being watched.
Daina Augaitis
At what point does the spectator become part of your work? I was reading Jacques Rancière's Emancipated Spectator, and he writes about the need for theatre to mobilize the viewers as much as the actors. When I watched Hudson Guild, I felt that you had activated the participants and that the border between actor, viewer and action had been blurred.
Kimsooja
In a way, An Album: Hudson Guild was an extended version of A Needle Woman but with my body removed and the roles reversed. In the first part of the video, I am watching each individual community member via the camera as he or she stares into its lens, and in the moment each enters his or her own imaginary world—regardless of what he or she is looking at—and looks back at the camera, that gaze answers my voice when I call his or her name. Rather than being anonymous people in the street, here people from the street come and sit and perform their own personality during their psychological journey, which allows their specific individuality to emerge. One might think this video has something to do with Andy Warhol's screen tests, but Warhol's approach to celebrities that had personal relationships with him is just the opposite of mine and has totally different associations to each of the performers in relationship to the audience. The gazes of the people in Hudson Guild become a parallel to A Needle Woman's gaze, because now they observe themselves from a fixed position, although I give them the freedom to be who they are and do what they wish. In the second part of the video, I placed them all together in the audience's seats of a theatre for a group video portrait and filmed them from the centre of the stage—treating the audience as performers and placing the camera in the same position of A Needle Woman. As performers of themselves, they seem like a sort of constellation of humanity in their own embodied bottari in the theatre. The frozen gaze of each individual turns the continuity into discontinuity, and at the same time, it transforms a moment into eternity.
Once I screened this video in the same theatre in which I had filmed it and invited the performers to attend. Doing so mirrored the audience, raising questions about who is the viewer and who is the performer; what is performed and what is activated/de-activated; who is watched and who is watching; and what are we looking at and what do we really see.
Daina Augaitis
This brings our discussion back to the activation of the individual in society. We are all performers in the theatre of life.
— Essay of the Catalogue, 'Kimsooja - Unfolding '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The Vancouver Art Gallery, USA, 2013.
Lee Sohl (Art critic and curator)
2013
This year’s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is an anomaly. Curated by commissioner Seungduk Kim, the co-director of Le Consortium in Dijon, the pavilion features Kimsooja’s installation ‘To Breathe: Bottari’ (2013), for which the artist covered the building’s inner surface with mirrors and diffraction grating film sheets. From afar, the pavilion resembles a crystal palace, or a pseudo-architecture that dissipates into the air like a mirage. Only a dozen or so visitors are allowed to enter the translucent pavilion at a time, forming a noticeably long queue during the preview week— giving the act of entering the feel of a privilege or a sacred ritual. At the entrance, the friendly guides tell the visitors to take off their shoes, another ritualistic activity before visitors willingly submit themselves to the pavilion with nothing inside except light and warmth. In a corner tucked in the pavilion, the artist also constructed Breathe: Blackout (2013), a small anechoic chamber of absolute darkness in which only one person at a time can experience the nothingness. The phenomenological exhibition of illumination and blackness as a whole is an anomaly for two reasons. It seems, at least on the surface, far removed from the artist’s previous works, which of ten prey on culturally specific metaphors with a global spin. Additionally, it creates a visual disjuncture from the rest of the Venice Biennale, which I will discuss later. It is a fantastically orchestrated anomaly that is the hidden jewel of this year’s biennale— especially in the context of the Korean Pavilion, the last national pavilion erected in Giardini that celebrates its tenth participation in the art world’s Olympics.
To give greater context to Kimsooja’s oeuvre: it is rare to discuss the art of Kimsooja without mentioning terms like the artist’s female body, the diasporic identity and global itinerancy. The South Korean-born artist began her overseas career in the mid-1980s, after her study abroad at the 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Arts in Paris. In the 1990s, she then quickly joined the circuit of contemporary artists whose frequent traveling coincided with the international art bienniales and galleries in metropolitan cities. Her most celebrated work comprises a range of adaptation and appropriation of bottari (bundles enveloped with silk clothes) and yibul (quilt-like bed covers), which the artist designates under the metaphors of sewing, wrapping, and, more specifically, the Korean cultural tradition embodied in the artist’s self. While weaving yibul with her mother back in 1983, as Kimsooja famously accounts, she rediscovered clothes and needles as her artistic medium, eventually leading her to abandon the canvas and brush. The vibrant silks in Kimsooja’s bottari and yibul series therefore conjure a culturally gendered aura, if not the mystified persona of the artist, wherever the works are installed, either in white cubes (P.S.1,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Lyon, etc.) or in site-specific spaces (a public park in Gwangju, the Greenlawn Cemetery in Brooklyn, etc.). In more recent years, she began to perform her pieces standing immobile on the bustling streets of Tokyo, Cairo, Lagos, New York, Shanghai and more, with her back turned away from the viewers. The subject of her videos, titled A Needle Woman (1999 – 2001; 2005), is the diverse portraits and varied reactions of passers-by, of whom the artist, like a ‘needle’, weaves in and out. Here, a question should be raised.
If Bottari and the act of weaving and wrapping have long functioned as the central theme for the artist—and there is no silk, bundles, or artist’s image posed as a Korean woman in ‘To Breathe: Bottari’ at this year’s Korean Pavilion—how then does this work fit or challenge Kimsooja’s path? Before delving into this question further, I would address the pavilion’s dissonant relationship to the rest of the Biennale. This year’s main exhibition, entitled ‘The Encyclopedic Palace’, is curated by Massimiliano Gioni, which takes inspiration from a 1955 architectural model of the same title. Built by Marino Auriti, an Italian American who dreamt of an imaginary museum housing all the knowledge of the world, the model was of course never realised in real life. The leap of utopian fantasy and artistic obsession, however, are more than alive in Gioni’s own encyclopedia of dynamic contemporary art. Perhaps too similar to what Gioni showcased at the 2010 Gwangju Biennale, this year’s main exhibition in Venice is packed with microcosms constructed by creative, at times erratic, artistic minds. Indeed, the reproduction of portraits or self-images is one significant thread, as seen from the fact that Gioni shared his curatorial authorship with only one other person—Cindy Sherman, who is another inspiration for the curator and to whom he ‘outsourced’ the curation of a room in Arsenale. Sherman’s gallery is, surprisingly, focused on the staged nature of portraits, photographs, and sculptures, exposing the lack of an innate quality in one’s identity. A picture is a picture, even though it is the only means through which to express the self. Likewise, art is not a transparent reflection of the world, but is contingent with the world around us, and is simultaneously world-making.
Unlike any other worlds imagined in Venice—for example, the Golden Lion winner Edson Chagas’s Angolan Pavilion, which featured still-life photographs as stacks of posters that visitors can collect in a provided folder to make his/her own collection of Angolan images, or Stefanos Tsivopoulos’s Greek Pavilion with a three-channel video about the world of alternative currency— the world proposed by Kimsooja for the Korean Pavilion seems empty. It is at least empty of images created by the artist for the viewer to see. What welcomes the visitors at the Korean Pavilion is the double-bound set of light and darkness, transparency and opacity, which calls for a heightened bodily experience. In the room of light, the viewers confront the images of themselves on intermittently installed planes of mirror on existing walls. Some walls refract the self-images because they are of a half-transparent, half-reflective surface that lets the light from outside.
Considering Kimsooja’s interests in the female body and self-image, her works like A Needle Woman might strike lines of affiliation with Cindy Sherman’s Film Stills. However, the current installation of the light-filled room with no built-in portraits signifies Kimsooja’s break away from the play on representations and appropriation that have earned her international recognition. It must also be recognised that this trajectory began in 2006, when she enveloped the Crystal Palace at the Reina Sofia with diffraction grating film sheets. Here, Bottari as a metaphor had lost its cultural root in Korean women’s domestic labor and their mobility forced by the country’s rapid modernization; it has become a mere gesture that wraps things, at times even a building. If Bottari previously allegorized the artist’s body, it has now become a bundle as an empty signifier, to which the viewers as breathing bodies enter and look into the self-images. Or as Lacan would say, they would face the images of not-me, the mis-recognized self (méconnaissance).
That is the magical irony of Kimsooja’s Korean Pavilion. What no longer lingers in the exhibition are the deep-seated metaphors of ‘Koreanness’ based on the artist’s personal history—or to be more precise, pre modern Korean traditions revived as contemporary art tropes which the artist articulated alongside her own transcultural trajectory. The visual and symbolic disappearance of the Korean Pavilion is telling this year, especially when the German and French ones controversially swapped galleries with each other in order to critique the embraced nationalism in the pavilion system at Venice. The magical disappearance of the Korean Pavilion can be said to demonstrate a more compelling aesthetic impact than the Franco-German scandal.
There is another story to be told about the aptness of Kimsooja’s Bottari for this year’s Korean Pavilion. One has to remember that such a clever visual trick owes much to the fact that the pavilion is essentially built with glass and steel—that is, light materials, compared to the concrete or limestone of any other national pavilion. When selected as this year’s commissioner, Seungduk Kim sought to intervene in the pavilion’s architectural location and history. She was well aware that in 1993, when Nam June Paik shared the Golden Lion award with Hans Haacke, Paik argued with impassioned force for the construction of a national pavilion for Korea. Biennale’s first response to this request was that it was ‘impossible’, as Yongwoo Lee, who collaborated with Paik during the historical moment, accounts in his essay included in the catalogue. The last card that Paik played, and which eventually won South Korea the current site, was, to the surprise of many people today, none other than North Korea. Paik argued that the pavilion would serve both Koreas on cultural terms, at a time when the post-Berlin Wall era had just begun and many conjectured an optimistic future for the divided peninsula. In exchange for the relatively central location of the pavilion, the city of Venice barred the building from obstructing the view onto the Grand Canal located right behind it —hence the current shape and material of the pavilion.
Of course not a single North Korean artist has ever exhibited in the Korean Pavilion, which is why the mirror play in ‘To Breathe: Bottari’ is tragically beautiful and poignant. It pays homage to the misrecognized political motivation back in 1993, while making self-as-other portraits emerge within the very empty signifier of peace and hope. Moreover, the portraits of visitors are not only replicated through mirror reflection but also fractured and multiplied into numerous fragments via the aluminum sheets laid on the floor. As seen in the picture of the Korean Pavilion, the exhibition hall is less a linear mise-en-abÎme than a kaleidoscopic image composed by a dozen visitors whose dismembered images, like tapered needles, effusively crowd the gigantic Bottari. For such a striking visual metaphor to arise in the Korean Pavilion, the personal allegories of the artistic self had to be minimized. The sound installation of the artist’s breathing titled The Weaving Factory (2004 – 2013) is effectively over to the blackout that the artist experienced in New York during Hurricane
Sandy takes on a different epistemological spin in the context of the Korean Pavilion. Isn’t the northern half of the peninsula the darkest part of the world, as apparent in the infamous satellite photograph of Northeast Asia? It is quite a coincidence that Minsuk Cho, the Korean commissioner for next year’s Venice Architecture Biennale, announced that his show would feature commentaries on North Korean architecture as well as South Korean. Such a curatorial direction might evince the reality that the marquee ‘COREA’ inscribed on the pavilion’s facade does not indicate either the South or the North. A more convincing tack, however, is that the South Korean arts can only exist because of the presence of Northern society and culture, and vice versa. The binary of light and darkness never promises the absolute but is always already defined in relative terms. In this sense, the political, social, and cultural path-taking of North Korea in the post-Communist era serves not as a catastrophic exception but as an unavoidable symptom of the unidirectional neoliberal march taken by the rest of the world, as if the anomaly of ‘To Breathe: Bottari’ is symptomatic of the Venice Biennale and the Korean Pavilion.
─ Article from Space Magazine, August 2013, pp.114-120.
이솔 (비평가, 큐레이터)
2013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이례적이다. 프랑스 디종 콩소 시움의 공동디렉터인 김승덕 커미셔너와 작가 김수자의 협업으로 개최된 <호흡: 보따리>전은 한국관 내부 표면을 거울과 반투명 필름으로 뒤덮었다. 자르디니 정원에서 보았을 때 건물 전체가 마치 투명한 유리궁전처럼 혹은 사라져가는 신기루처럼 보인다. 한번에 10명 내외의 관람객 입장할 수 있는 규칙 때문에 프리뷰 기간 내내 함상 길게 줄을 서기다린 뒤, 신발을 벗으라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발로 전시관에 들어서고 나서야 환한 빛의 공간을 맞닥뜨릴 수 있다. 이러한 전시관 한구석에 절대적인 어둠을 경험할 수 있는 '호흡: 정전’이란 제목의 무향실을 설치했다. 여기는 또 한번에 한 명의 관광객만 입장하여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홀로 경험하도록 했다. 이처럼 빛과 어둠의 현상학적인 경험을 끌어내는 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두 가지 이유에서 이래 혹은 변칙이라 할 수 있다. 우선 표면적으로 이 전시는 종종 한국 문화의 특수한 메타포에 글로벌한 감각을 첨가했던 작가의 지난 작업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리고 나중에 더 다루겠으나, 김수자의 이번 전시는 베니스비엔날레의 다른 국가관 전시들과 견주어 보아도 시각적으로 이례적이다. 하지만 자르디니 공원에 세워진 마지막 국가관으로 미술계의 올림픽인 베니스비엔날레 참여 10회째를 맞이하는 한국관의 문화사적 맥락을 참 고할 때 올해 한국관은 탁월하게 기획된 변칙이며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숨겨진 보물이라 할 수 있다.
먼저 김수자 작업의 맥락은 작가의 여성적 신체 디아스포라 정체성 글로벌한 순례 등의 용어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수자는 프랑스 에콜 데 보자르에서 수학 한 뒤 1980년대 중반부터 해외 미술계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곧이 어 1990년대부터 세계적인 미술가 대열에 합류하여 국제적인 비엔날레와 전시를 따라 전 세계 대도시들을 이동해왔다. 작가의 작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보따리와 이불을 차용하고 활용한 것으로 이러한 소재들은 바늘을 이용해 천을 꿰매거나 오브제를 천으로 감싸고 다시 튀거나 푸는 행위에 대한 비유로 언급되었다. 좀 더 정 확히 말해 보따리와 이불은 작가 자신의 내면에 새겨진 한국적인 문화의 전통을 표상한다. 잘 알려진 일화에 따르면 작가는 1983년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던 중 그동안 대학의 미술교육으로 익숙해진 캔버스와 붓을 포기하고 천과 바늘을 작업의 주요 매체로 쓰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따라서 뉴욕의 P.S.1. 리옹의 현대미술관 등의 화이트큐브 안에 설치되거나 광주의 산등성이 혹은 브루클린의 공동묘지 등의 장소 특정성을 띤 야외에 놓이는 것에 별 관계 없이 김수자의 이불과 보따리 작업에 쓰인 비단의 화려한 색상은 문 화적(한국적)이며 젠더적(여성적인 코드가 덧씌워진 아우라를 표 출하며 작가의 신비화된 페르소나 또한 자아낸다. 최근 10여 년 동안 작가는 도쿄, 카이로 라고스, 뉴욕, 상하이 등 여러 도시의 붐비 는 거리 한가운데서 관람객들에게서 등을 돌린 채 움직이지 않고서 있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이를 영상작업으로 남기기도 했다. ‘바늘 여인’(1999~2001: 2005)으로 명명된 이 영상작업 시리즈의 주제는 작가의 모습이 아닌 그녀를 지나치는 행인들의 다양한 초상과 반용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작가는 자신을 보이지 않는 바늘로서 수많은 도시들의 외면과 이면을 엮는 매체로 상징화한다.
그렇다면 <호흡: 보따리> 전시에서 과연 보따리는 실재하는가? 전시 에서 바늘의 메타포가 지속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한국관이 베니스비엔날레의 본 전시나 다른 국가관과 비교했을 때 어떤 이례적 면모를 보이는지 언급하고자 한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는 <백과사전식 궁전>으로 기획을 맡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1955년에 이탈리아계 미국인 건축가 마리노 아우리티가 착상한 건축 모델에서 전시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아우리티의 건축 모델은 세계의 모든 지식을 담은 상상 속 박물관으로, 물론 실제로 구현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꿈꿨던 유토피아적 환상과 예술 적인 집착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구축한 동시대 미술의 백과사전 에서 역동적인 것 이상으로 구현되었다. 어쩌면 3년 전 지오니기 최한 2010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보여준 것과 지나치게 비슷할 수도 있지만,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는 창조적이며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예술적 사고로 구축된 수많은 소우주로 가득했다. 초상이나 자화상의 이미지는 올해 본 전시의 주요한 축이었고, 이는 지오니가 전시의 유일한 공동큐레이터로 신디 셔먼을 선택한 데서도 살펴볼 수 있다. 지오니는 신디 셔먼을 자신의 전시 세계의 영감으로 삼는다며 그녀에게 아르세날레진의 전시실 하나를 아웃소싱하였다. 신디 셔먼이 기획을 맡은 전시실은 너무나도 당연히 초상화와 사진, 조각의 연출된 성격에 초점을 맞추었고, 정체성은 본질적 속성의 결여로 재현됨을 역설했다. 이미지는 언제나 이미지일 뿐이지만 이미지 재현은 자아를 표현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일 수 있다. 이처럼 예술은 세계를 투명하게 반영하지 않으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걸쳐져 있는 동시에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본 전시와 마찬가지로 올해 비엔날레에 참여한 여러 국가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각각의 세상을 상상 구축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에드슨 치가스가 참여하여 황금사자상을 받은 앙골라 국가관은 길가에 놓여진 정물의 사진을 포스터로 인쇄하여 전시장에 쌓아두고 관람객들이 미리 배포된 폴더에 각자 앙골라에 대한 이미지 컬렉션을 만들 수 있게 했으며, 스테파노스 치보포물로스를 내세운 그리스 국가관은 금융위기에 관한 사유로 대안화폐에 관한 3채널 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하지만 김수자가 참여한 한국관 전시는 이와 상반되게 텅 빈 듯 보이는 세계를 제시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김수자의 전시장은 적어도 관람객이 감상할 수 있는 이미지를 작가가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텅 비어 있는 것이다. 한국관을 찾은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이중으로 구속된 빛과 어둠, 투명함과 불투명함으로 긴장된 육체적 경험을 유발한다. 관람객은 빛으로 이루어진 방에서 전시장 의 기존 벽면 이곳저곳에 설치된 거울에 비친 제 모습과 맞닥뜨린다. 전시장 내벽의 일부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굴절하는데 반투명, 반반 사 소재로 만들어져 외부의 빛 혹은 풍경 또한 비추기 때문이다. 어둠의 방에서는 시청각적 경험을 최소화시키고 선험적 느낌만을 강조한다.
1980년대부터 지속된 여성의 신체와 자아 이미지에 관한 작가의 관심을 고려해볼 때, ‘바늘여인'과 같은 작업들은 신디 셔먼의 '영화 스틸’ 작업과 유사성을 지닌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벽에 걸린 작업 없이 빛으로만 공간을 채운 설치를 선보인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작가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데 이바지한 재현과 전유의 놀이에서 탈피했음을 알린다. 한편 이러한 흐름은 이미 2006년부터 전조를 보였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크리스털 궁을 둘러싼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업에서 보따리는 한국 여성들의 가사노동과 급격한 현대화로 빚어진 불가피한 이동이라는 한국적 뿌리를 상실하며 사물을 감싸는 하나의 제스처로 변환된다. 물론 싸고 묶는 제스처의 대상은 종종 건물 전체가 되기도 한다. 초기 작업에서 보따리가 작가의 신체를 비유했다면 이제 보따리는 텅 빈 기표가 된 것이다. 관람객들은 호흡하는 신체로서 김수자의 작업 안에 들어가 자아이미지를 바라 보게 된다. 라캉식으로 말해보면 관람객들은 나 아닌 것(not-me) 혹은 오류 인식된 자아(meconnaissance)를 마주하는 것이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김수자의 한국관이 선보이는 마술적인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에 있다. 김수자의 작품 세계 깊숙이 자리 잡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은유, 정확히는 동시대 미술의 비유로 부활한 전 근대적인 한국의 전통과 더불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작가의 인생 발자취에 기반을 둔 탈식민지적 망명에 빗댄 작품 해설은 한국관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소위 한국적인 것과 더불어 한국관이 시각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도 소멸한 것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의 맥락에 서 강력한 효과를 자아낸다. 이는 특히 바로 옆에 위치한 독일과 프랑스가 베니스비엔날레의 국가관 체제에 내재한 국가주의를 비판하고자 서로 전시장을 맞바꾼 것에 비추어보았을 때 더욱 그러하다. 한국관이 김수자의 작업을 통해 마술적으로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은 프랑스와 독일이 일으킨 일련의 스캔들보다 더 충격적이고 정교한 미적 효과를 자아낸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한국관 기획과 작업은 또 다른 맥락에서 적절하다. 여기서 우리 는 작가의 재치있는 시각적 속임수가 한국관 건물이 유리와 강철로 세워졌기에 가능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콘크리트나 대리 석 등으로 세워진 다른 국가관들에 비해 한국관은 시각적으로 가벼운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김승덕 큐레이터는 커미셔너로 선정된 후 한국관의 건축과 위치, 역사에 관해 언급하는 전시를 기획 하고자 노력했는데, 한국관의 기원은 정확히 20년을 거슬러 올라가 1993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백남준은 한스 하케와 더불어 독일 관을 대표해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이미 몇 해 전부터 구상해온 한국관 건립 논의를 베니스 시에 강력히 건의했다. 백남준의 요청은 "불가능하다"라는 차가운 대답으로 돌아왔는데, 한국관 건립에 관해서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던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이 이번 한국관 전시 도록에 기고한 글에서 자세히 기술했다. 지금의 관점 에서는 꽤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지만 한국관 건립 과정에서 백남준이 던진 마지막 승부수는 새로 지어질 한국관이 문화적인 측면에서 남한과 북한 모두를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로 한반도 분단체제의 미래에 관해 낙관적인 전망이 범람했고, 그 결과 한국은 이례적으로 뒤늦게 자르디니 공원의 마 지막 국가관을 획득했다. 베니스 시 당국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중심 부에 가까운 지점에 건물을 세우도록 허가하는 대신 건물이 뒤편의 대운하를 가리지 못하도록 했고, 이러한 이유로 한국관 건물의 형태 와 소재는 지금과 같이 가볍고 투명하며 소규모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국관에서 지금까지 북한 작가가 소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이런 점 역시 <호흡: 보따리>에 쓰인 거울이라는 소재가 비극적인 아름다움과 신랄함을 전달하는 이유가 된다. 김수자의 작업은 한국관 건립이 이뤄진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정치적인 오류 인식을 오마주하며, 평화와 희망이라는 텅 빈 기표 안에서 떠 오르는 타자로서의 자아의 초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관람객의 초상은 벽에 설치된 거울에 반사될 뿐만 아니라 바닥과 천 장에 설치된 알루미늄 패널에 의해서 수없이 많은 파편된 이미지로 복사, 재생된다. 사진으로 기록된 한국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전시장은 정돈된 모습의 미장아빔(mise-en-abime)이 아닌 좁은 공간을 공유하는 10여 명의 자아들의 만화경 이미지를 성립한다. 관람객들은 텅 빈 보따리 안에 들어가는 순간 수많은 뾰족 바늘이 되어 보따리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한국관에서 이처럼 충격적인 시각적 은유를 끌어올리기 위해 작가의 자아에 관한 개인적인 은유는 최소화된 것 같다. 작가의 호흡으로 만든 사운드 작업 ‘더 위빙 팩토리 '(2004~2013)는 빛의 전시관에 설치되어 있지만 전시관의 시각적 요소에 사실상 압도되며, 작가가 허리케인 샌디 상륙 기간에 뉴욕에서 겪은 정전을 바탕으로 구축했다는 무반향실은 한국관의 역사적 맥락에서 또 다른 의미를 얻는다. 동북아시아를 촬영한 위성사진 이미지를 통해 잘 알려졌다시피, 한반도의 북쪽 절반은 사실상 전 세계에서 가장 어두컴컴한 부분이 아니 었던가?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로 선정된 조민석이 남한만 아니라 북한 건축에 대한 포섭을 발표한 것은 이런 점에서 꽤 심상치 않은 우연일 것이다. 이런 발상은 한국관에 새겨진 'COREA'라는 푯말이 남한과 북한 어느 한 곳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으로 뒷받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남한의 문화가 한 반도 북쪽의 사회와 예술의 존재를 통해 비로소 지금의 형태를 띠는 것이고 북쪽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것이 더 큰 이유로 작용한다. 빛과 어둠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상대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지난 20년간의 북한의 사회·문화·정치적 행보는 그다지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한 방향으로 몰려가는 전 지구적 흐름의 한 징후로 작동하는 것 같다. 마치 <호흡: 보따리>의 이례성 또한 베니스비엔날레와 한국관의 징후로 그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처럼.
─ Article from Space Magazine, August 2013, pp.114-120. 번역 박재용
이건수 (월간미술 편집장)
2013
김수자는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984년 파리의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주요 개인전으로 마이애미뮤지엄의 <김수자: 바늘여인>(2012), 영광 원자력발전소 아트프로젝트(2010), 아틀리에 에르메스의 <지-수-화-풍전>(2009), 리히텐슈타인 쿤스트뮤지엄에서 주최한 <뭄바이: 빨래터>(2010), 영국 발틱센터의 <바늘여인>(2009), 브뤼셀 BOZAR의 <로투스: 영의 지점>(2008),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의 크리스탈팰리 스에서의 <호흡: 거울여인>, 베니스 라 페니체극장과 폰다치오네 베비라콰라마 사에서의 <호흡>(2006), 리옹현대미술관, 뒤셀도르프 뮤지움쿤스트팔라스트, 밀라 노PAC에서의 순회전인 <인간의 조건>(2003~04), PS1 현대미술센터와 MoMA의 <바늘여인>(2001), 쿤스트할레 베른의 <김수자>(2001) 등이 있다. 그룹전으로는 베니스의 <아르템포(Artempo)>, <인-파니툼(In-Finitum)>, <움직이는 도시 (Cities on the Move)> 순회전 뿐만 아니라 포츠난비엔날레(2010), 모스크바비엔날레(2009), 베니스비엔날레(2005, 1999), 휘트니비엔날레(2002), 부산비엔날레 (2002), 상파울로비엔날레(1998), 이스탄불비엔날레(1997), 광주비엔날레 (1995, 2000) 등이 있다.
올해로 10번째 전시를 여는 한국관엔 설치작가 김수자가 참여했다. 1999년, 2005년 본전시에 두 차례, 비엔날레 공식 기획전 등 지금까지총 6차례에 걸쳐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작가는 드디어 '예술적 망명의 길을 끝냈다. 1999년 본전시에서 코소보 전쟁 난민들에게 헌정하는 보따리 트럭 작업을 소개했던 작가가 이번 전시에는 한국관 전체를 숨쉬는 보따리로 바꿔 놓았다. 전시 제목은 〈호흡: 보따리 (To Breathe: Bottari)〉.
신발을 벗고 한국관에 들어서면 아무 것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저 빈공간과 그 안을 배회하는 관객들만 보일 뿐이다. 바닥은 거울로, 유리벽은 반투명필름(회절격자필름)으로 뒤덮여져, 텅 빈 공간은 오직 외부의 움직임 때문에 일렁이는 무지개 빛으로만 가득하다. 작은 수정궁이라할까? 관객은 빛의 공간 속에서 작품을 스스로 완성해 간다. 그 공간속을 거니는 동안, 작가의 숨소리를 녹음한 사운드 퍼포먼스 작품 <더 위빙 팩토리(The Weaving Factory)>를 동시에 체험하게 된다.
빛의 궁전속을 한동안 거닐고 난 후 줄을 서서 또 하나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른바 <호흡: 정전(Black Out)>이라고 하는, “자궁이자 무덤이기도 하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어둠의 공간이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흑암만이 가득한 공간속에서 관객들은 조금 전에 체험했던 빛의 잔영을 지워버린다. 빛과 어둠으로 유위(有)와 무위(無爲)의 의미를 존재론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보따리>, <바늘여인>, <실의 궤적> 시리즈 등을 발표하면서 삶과 예술의 직조에 일관된 작품세계를 보여 왔던 작가답게 김수자는 "미국 뉴욕에 머물 당시 허리케인 샐리 때문에 1주일간 전기, 물공 급 같은 것이 멈춰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 경험을 녹일 것"이라고 비엔날레 참여 직전 밝힌 바있다.
"한국관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보따리로 변모시켜, 그동안 집적된 보따리의 개념과 문맥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보따리 결정판이다. 한국관 전체를 보따리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자연과실 내 공간이 나뉘는 경계지점을 반투명 필름으로 싸보았다. 건물외부의 유리창을 하나의 피부로, 한국관을 내몸으로 제시한 작업이다. 빛의 밝기나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온종일 변화하는 작업이다. 보따리의 싸고 푸는 성격, 빛과소리를 최대한 밀도 높게 전개하였다. 특히 신체적으로 맞닿는 관객의 체험을 유도하려 했다. 빛과 어둠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호흡: 정전>에서는 내 숨소리가 차단된 곳에서 관객이 자신의 호흡을 마주하는 경험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 빛도 어둠의 일부이며, 어둠 없이 빛이 존재할수 없다. 어둠 속에서 자기 몸만 느끼다가 쏟아지는 빛 가운데로 나와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 30년간 작업을 총체적이면서도 가장 비물질화된 환경으로 제시한 것이다. 거대한 보따리로 상징되는 한국관은 인간과 자연, 어둠과 빛, 남과 여, 음과 양의 상호관계가 비물질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개념 같지만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 하나이듯 결국 모두가 연결된 것이 아니겠느냐. 자궁 속에서 접한 어둠, 마지막 숨을 내쉴 때 만나는 어둠, 두 어둠은 결국 빛의 연장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 어둠과 빛, 소리와 정적 등을 체험하며 자신의 인식 체계와 감각 체계를 돌아보고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발적 망명에서 모국으로부터 받은 가장 영예스러운 초대이다. 1999년 한국을 떠나면서 '망명작가’처럼 살았다. 이번 기회에 모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보려고 했다."
이번 한국관 커미셔너인 김승덕(프랑스 르 콩소르시엄 공동디렉터)은 "외관이 유리로 되어 있어 매번 커미셔너를 괴롭혀온 전시 공간의 문제점을 오히려 프로젝트의 중요한 이슈로 삼고 한국관의 구조물에 정면으로 맞서고 도전하는 방법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애당초 작가에게 제시한 한국관의 기준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화이트큐브 콘셉트에서 벗어나 비물질적인 요소로 구성하는 방법. 둘째는 옥상에서 바다가 보이고 나무가 울창한 한국관 주변의 자연적인 요소를 살리는 방법. 자연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안에서 밖을 내다볼수 있는 비물질적인 것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한국관의 특징과 건축구조를 전시의 주요 방향으로 채택하여, 기존의 공간을 변형시키는 대신 한국관 고유의 건축적 특징을 부각시킨 장소특정적 프로젝트로 진행하였다. 전시장의 작품은 작가가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햇빛과 어둠, 숨소리다. 작가에게 까다롭기로 유명한 한국관 건축물 자체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관객에게는 새롭고 초월적인 공간 경험이 되는동시에 스스로 적극적인 퍼포머가 되도록 유도하려 했다. 빛과 어둠, 소리와 정적 등이 극명하게 대비된 조건 속에서 자신들의 감각과 인식을 곤두세우게 될 것이다. 인간과 현대문명 제반조건에 문제를 제기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빛과 색들로 이루어진 순간을 경험하고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여행이 될 것 이다.무언가를 많이 넣거나 빼지 않고 그저 반투명 필름으로 한국관을 보따리처럼 싸서 우리가 늘 보는 빛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체험케하고, 진짜 고요가 무엇인지 느낄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의 일원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시인 고은은 "다른 국가관 전시는 자기 주장을 너무 강하게 펼쳐 시끄러웠는데 여기는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작가가 조용히 사라진 것 같은 작업이다. 전시장에서 마치 엄마의 몸, 자궁 속 태아와 같이 스스로가 정화된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중국의 독립 큐레이터 황두는 "빛, 어둠, 명상, 간결함 등이 떠오른다."면서 한국관을 호평했다.
─ Article from Montly Art Magazine, Wolgan Misool, July 2013, Vol. 342, pp. 88-91.
김현진 (일민미술관 학예실장)
2013
2013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이 6월 1일 개막과 함께 일반에 공개됐다. 올해 한국관 전시는 프랑스 현대미술센터 르콩소르시움 공동디렉터인 김승덕이 커미셔너를 맡아 ‘보따리’ 작가로 널리 알려진 김수자의 작품을 전시했다. 김수자는 ‘호흡-보따리’란 제목의 설치작품으로 한국관을 빛과 어둠의 공간으로 나누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과 주제관, 주요 국가관들의 전시를 따라가 본다.
올해 한국관의 작가와 작업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특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시작 당시 만국박람회의 미술 버전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자르디니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관 모델로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1998년부터 소위 보다 복잡한 경향들의 동시대 미술씬이 강력해지면서 기획력과 방향 제시가 가능한 큐레이터들을 초대하여 특별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헤럴드 제만의 아페르튀토를 시작으로 올해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요 큐레이터들의 특별전들은 지난
십여 년간의 베니스비엔날레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 국제 미술의 향방을 점치는 순간들로 여겨져 왔다.
동시대 미술에 있어 새로운 형식이나 경향들은 이미 포화상태에 달하였고 그만큼 새로운 비전의 제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미술 내부에 새로움의 신화가 공황상태를 맞이한 오늘날, 21세기 동시대 미술 현장을 타개해 나가려는 노력 중에 눈에 띄는 방법론이라면 리서치와 아카이브와 같은 수집과 연구적 태도일 것이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의 특별전, ‘백과사전적 궁전(the Encyclopedic Palace)’ 역시 리서치를 방법론으로 취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를 축적하고 재발견하는 방법이자 동시대를 재탄생시키는 과정으로 유효하다. 하지만 리서치와 아카이브적 방법론을 전체화하거나 지극히 일반화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한국관은 1인의 작가 선택에 집중하던 기존 방식을 지속하면서도, 한계로 여겨져 왔던 전시 공간을 급진적으로 활용하여 비움을 통해 완성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한국관은 90년대 동시대 미술부터 현재를 관통해 김승덕, 김수자 세대의 주관과 고집에 입각한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 큐레이터인 김승덕 씨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90년대부터 왕성한 활동을 보여 왔으며, 작가로 초대된 김수자 씨 역시 뉴욕 기반으로 90년대부터 국제적인 활동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작가로 한국의 전통적인 ‘보따리’에 담긴 여성주의적 역사나 유랑, 보따리 천의 짜임과 색채 등 보따리로부터 함의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소재로 오랜 기간 작업해 왔다.
작가로서 국제적으로 오랜 활동을 한 만큼 이미 김수자 작가에 대한 정보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바가 많다. 때문에 새로운 버전의 보따리 오브제나 보따리가 은유적으로 확장된 노마딕한 여정과 풍광을 드러내는 영상 작업이 예측될 만한 상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기획자와 작가는 공간은 비우고 오랫동안 전시 공간으로서의 한국관의 문제나 한계에 대한 논란을 적극적으로 보듬어 앉으면서도 빛이라는 요소를 통해 그 공간을 매우 적극적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 꽉 찬 수집품 박물관의 피로감을 안고 자르디니로 향했을 때 한국관은 잠시 하나의 색다른 명상적 공간을 통해 숨 쉴 자리를 마련해 준다. 이 빛의 공간은 오랜 세월 김수자 작업의 인상을 결정해왔던 다양한 색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보따리 천의 요소나 한국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정서를 절제와 수용 사이에서 아름답게 조율하고 있다. 이 공간은 무엇보다 조도나 날씨 상태에 따라 공간에서 경험되는 빛이 달라지기 때문에, 관람객이 날을 달리해 재차 방문한다면 재현 불가능한 매일의 서로 다른 경험을 가져갈 수 있다. 아마도 비워진 공간 내부로 창을 통해 스며드는 오묘한 빛들은 건물이 전시장으로써 기능하지 못하지만 국가관이라는 거대 서사에서 방문자들을 위한 새로운 ‘집’의 소서사의 의미를 찾게 해준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정서적인 경험은 비규범성을 강력하게 통제된 공간에 패키지화한 백인 남성 큐레이터의 ‘백과사전적 궁전’과는 대조적인 면모라 할 수 있다. 물성을 절제하면서도 명상적 공간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있는 이 공간은 동아시아 배경을 가진 여성의 유연함과 수용력을 기반으로 완성되고 있으며, 여기서 또한 김수자 작가의 작업에 대한 새로운 향방을 보여주려는 큐레이터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람객은 빛의 공간 후 암흑으로 가득 찬 작은 방에서 1분간 보내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극적 구성과도 같은 단절로써 전시적 내러티브를 완성하게 된다.
국가 간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글로벌한 사회가 펼쳐져 왔지만 역설적으로 국경의 문제는 곳곳에서 더욱 첨예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니스비엔날레는 국가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로맨스가 허락되는 유일한 영역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거대한 국제 행사라는 점에서 큐레이터들에게 이러한 문제는 늘 어딘가 불편한 동참이다. 때문에 단일한 국가이데올로기를 다원화하고 이상적인 초국가성을 예술적 이상과 함께 추구해 온 수많은 큐레이터들의 노력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자르디니 안에 수용되지 못한 국가들이 베니스 전역에 흩어져 자르디니 국가관들의 패권성을 견제할 뿐 아니라 더 좋은 전시들로 자르디니의 나태함을 대조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올해 주목받은 대부분의 국가관은 자르디니 외부에 존재한다. 한국관 역시 이러한 점에서는 좀 더 다른 기획적 혁신이 요구되기도 한다. 한편 대체로 신선한 전시적 접근보다는 작가 1인의 대표성으로 귀결되는 한국관의 한계는 사실 전시 공간으로써의 적합성이나 그 한계가 늘 도마에 오르는 한국관 내부 공간의 문제로부터 기인하는 점도 크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타개할 근본적인 고민도 함께 필요하다.
─ Article from Arko Webzine Vol.237, 17 June, 2013.
김찬동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문위원)
2013
‘보따리 작가’로 미술계뿐만 아니라 일반에게도 익히 알려진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 김수자가 2013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출품작가로 선정되었다. 그녀는 뉴욕에 거주하며 일 년의 절반 정도를 해외의 다양한 전시일정으로 보내고 있고 해외에서 이미 한국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확고한 자리를 점하고 있다. 실제로 오래 전에 베니스비엔날레의 본전시에도 두 번이나 초대된 경험이 있는 작가에게는 이번 한국관 참가는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번 참가를 계기로 그녀가 계획하고 있는 출품작에 대한 구상과 그의 작품세계, 그가 바라보는 세계 화단에 있어서의 한국 현대미술의 정황과 과제, 그리고 한국 미술을 좀 더 효율적으로 세계무대에 등단시키기 위한 정책적 과제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고 그의 향후작품 활동 계획에 대해 알아본다.
김찬동
금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국제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통해 이미 오래 전에 상파울로비엔날레에도 참가하셨고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도 참가경력이 있지만 특별히 이번에 작가로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말씀해 주신다면?
김수자
90년대 후반 IMF 시절의 열악한 경제, 문화적 상황에서의 상파울로비엔날레 국가관 참여 이후 한국을 떠나 활동해 온 저로서는, 당시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놀라운 물질적 성장과 사회문화적 발전을 이뤄내고 있는 한국을 대표한다는 사실이 새롭고, 늘 아웃사이더의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다가 제 자신이 인사이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뜻밖의 영광이며 국가가 지지하는 비엔날레가 과연 제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문해 봅니다.
김찬동
‘보따리 작가’로 이름을 떨치면서 동양성, 여성성, 노마디즘, 생태학 등과 관련된 주제로 일련의 작업을 해오고 계신데 이번 전시를 위해 선보이실 작품은 어떤 내용입니까?
김수자
국가관 건물 자체를 하나의 ‘보따리’ 개념으로 파악하였고, 가능한 한 만들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건축적 조건과 문제들을 출발점으로 건축 내에서 비물질적 보따리를 싸는 동시에 펼쳐 보이는 작업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즉 외부의 자연을 끌어들여 내부에 펼치고, 또 내부공간의 구조적 요소들을 열고 싸면서 외부의 자연을 조응하는, 보따리의 개념이 확장된 작업으로서 빛과 소리가 이를 매개할 것입니다. 특별히 지난해 뉴욕에서 경험하였던 자연의 재앙인 허리케인 샌디(Sandi)의 개인적인 경험이 기존의 작업에 본질적이고도 새로운 콘셉트의 방향성을 갖게 했습니다. 그리고 비물질적인 접근을 한국관의 기본 개념으로 설정한 커미셔너의 전시방향과도 공통적인 일치점을 찾은 것 같습니다.
김찬동
전시 참가기간 중 별도의 부대 행사 같은 것을 검토하고 있나요?
김수자
커미셔너와 많은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지만 늘 프로그레시브한 것에 관심을 갖고 대화중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예산이 허락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김찬동
다양한 비엔날레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경험을 갖고 계신데 개인적으로 베니스비엔날레는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김수자
개인적으로 베니스와 인연이 깊다고 생각하는데, 1995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한 ‘호랑이 꼬리’전에서의 보따리 설치작업을 시작으로, <보따리 트럭> 거울설치와 <바늘여인>을 선보였던 비엔날레 본전시(1999, 2005), 그리고 비엔날레 공식행사였던 ‘ArtTempo’에서의 <빨래하는 여인>, ‘비디오 보따리’를 콘셉트로 선보였던 베빌라콰 라마사 파운데이션과 라 페니체 극장에서의 개인전 ‘호흡’ 등 베니스에서의 일련의 전시들은 지속적이고 일관된 보따리 개념에의 전개과정 하나하나의 매듭을 푸는 전시들이었습니다. 이번에 보따리 개념이 비물질적이고 총체적인 요소로서 장소 특정적 설치작업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베니스비엔날레는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비엔날레인 동시에 제 작업의 핵심적인 맥을 순차적으로 짚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엔날레라고 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베니스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보따리 개념의 총체를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찬동
뉴욕에 거주하며 다양한 국가에서의 전시경험을 가지고 계신데, 해외미술계에서 바라보는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과 위상을 어떻게 판단하고 계신가요?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국제무대에서 생존과 관련하여 조언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김수자
과거와 달리 그동안 한국 미술계의 노력과 발전이 가시화 되어온 지 수년이 되었습니다. 이는 많은 젊은 작가들의 해외 진출이나 중견작가들과 원로들의 주요 미술관에서의 초대전이 반증합니다. 아무리 좋은 작가라도 국가나 미술계의 지원이 없다면 오늘 같은 물질만능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력이 세계미술사에서의 자리매김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들의 치열한 작가정신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가정신은 작업행위 자체에 있다기보다 작가의 삶의 태도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속일 수 없는 작가의 예술성과 작가로서의 도덕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젊은 작가들에게는 늘 “위험을 감수하라!(Take Risk!)”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찬동
위 질문과 관련하여 정부가 정책적으로 강화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내용일까요?
김수자
그동안 국가가 많은 노력과 지원을 해온 것이 사실이나, 그러나 과연 어떤 형태로 예산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도 포퓰리즘에 의거한 정책들을 목격합니다. 순수예술은 대중예술과 달리 소수의 탁월한 개인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 소수의 예술가만이 세계의 폭넓은 관객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술지원은 복지지원이 아니며, 정례의 국제적인 안목과 경험, 그리고 미술사적 통찰력이 있는 최고의 전문가, 때로는 작가들에 의해 선정된 작가들이나 큐레이터, 그리고 기관에 아낌없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건 없는 충분한 지원이 아닌 한 단시간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특히 상업주의의 팽배와 큐레이터들의 역할이 증폭되면서 예술비평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국내미술계의 실정을 고려한다면, 많은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비평문화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많은 비평지나 전문서적을 지원하고 그들의 해외 리서치를 도우며 한국에서도 국제무대에 내세울 수 있는 비평가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작가들의 미술사적 자리매김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지속적인 지원으로 아카이브를 축적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떠들썩한 잔치가 아닌 차근차근 견고한 한국 미술사의 지층을 쌓아가는 정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찬동
최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비엔날레가 개최되어 과거에 비해 비엔날레의 의미와 성격이 많이 달라졌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엔날레가 상업주의와 결탁한 폐해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수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오늘날 현대미술의 양상은 비엔날레는 물론이고, 큐레이터나 미술관, 작가 역시 거대한 상업주의의 그물망 속에서 존재합니다. 이는 공공기관이나 전문가들이 경제적 자율성을 갖지 못한 데에 기인함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늘 꿈꾸는 작가와 제작자들의 생리에도 기인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알게 모르게 상업주의의 폐해가 발생합니다. 조건 없는 순수한 지원이 아닌 한 그들의 상업행위는 주고받는 이들의 도덕성과도 깊이 연계되어 있습니다. 다만, 상호존중의 태도를 잃지 않는 상호관계 속에서만 불가피한 자본주의적 속성을 인정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공식적인 예산만 가지고, 혹은 예산 없이 전시를 한다면 어떤 흥미로운 일들이 발생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도움을 예상할 수 없는 작가 선정, 조금 복잡한 문제일 테지만, 권력지양적인 비엔날레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다만 상업주의로 점철된 비엔날레는 좀처럼 치열한 프로젝트가 아닌 한 대중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고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신생 비엔날레들이 비엔날레 고유의 성격인 현대 미술의 현재를 제시하며 새로운 담론을 생성한다는 목적에서라기보다, 각국의 자치도시들이 그들의 세계 속에서의 자리매김과 관광수입내지 선전효과에 연연한 나머지 확고한 존재의미나 검증 없이 생겨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이 도출된다고 봅니다.
김찬동
광주비엔날레 등 국내에도 다양한 국제 비엔날레가 있는데, 이러한 행사들이 국제무대에서 그 위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수자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의 비엔날레 숫자는 세계 미술계에 유래가 없고 이 좁은 나라에 가히 폭발일로에 있습니다. 세계미술계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동안 타당성을 갖고 성공적으로 세계미술계에서 자리매김한 비엔날레 외에는 다른 명칭 내지는 포맷으로 전시를 하면서 고유의 전시형태와 담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라도 제대로 된 비엔날레를 자신이나 자신의 지역의 관계여부와 상관없이 넉넉하게 봐주고 또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은 한 비엔날레의 성공이 다른 지역의 작가의 성공에 기여하고 나아가 한국의 위상을 프로페셔널하고 자신 있게 알리는 길이라고 봅니다.
김찬동
비엔날레 참가 계획 이외에 향후 전시나 작품 활동과 관련한 별도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김수자
올해 벤쿠버미술관에서의 회고전 형식의 전시가 가장 중요한 전시가 될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상의해 왔고 30년간의 작업을 조망하는 전시로서 작업 전체의 스펙트럼을 보일 수 있는 전시라 특별히 의미를 둡니다. 그 외에 미국 공공시설청(GSA)에서 커미션한 미국과 멕시코 국경선에 설치할 신작 비디오의 영구설치와 유럽과 아시에서의 설치작업들도 논의 중입니다. 진행 중인 ‘실의 궤적’ 시리즈도 늘 스케줄에 포함되어 있으나 올해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비엔날레나 테마전들은 작업의 컨텍스트를 확장하고, 나름대로 제 작업을 다각도로 질문해 볼 수 있어 흥미로운 질문이라면 참여할 계획입니다.
김찬동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전시참가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 Article from Arko Webzine Vol.227, 28 January, 2013.
2013
김수자 작가는 1990년대 초에 '보따리' 연작을 시작했고 한국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전통 자수로 장식된 이불보를 국제적인 현대미술의 조형언어로 발전시켰다. 작가는 이불보의 레디메이드 특성보다는 '이미 사용되었었던' 헌 물건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그 천들을 사용한 사람들의 무명성과, 육체, 운명 등의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것에 대한, 즉 삶에 대한 해석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노력해왔다.
작가는 이불보가 사람의 탄생과 죽음, 수면과 사랑, 고통과 꿈 등의 사건들이 발생하는 현장임을 지적했고, 사랑과 복, 행운, 장수, 후손 등의 기원을 상징하는 이불보의 자수 장식을 강조했다. 작가는 이불보에서 인간의 존재를 규정짓는 틀을 가리키는 색인적 기호를 발견했다.
작가는 또한 이불보가 내포하는 젠더의 역할과 미적 구조에도 초점을 두었다. 이불보는 가정에서의 여성노동, 사회에 가려진 여성의 무보상 업무와 활동을 암시한다. 이불보 상징을 활용하는 작가의 활동은 여성의 사회적, 문화적, 미적 의미를 재정립하는 행위였고, 현대예술사에서 여성의 독특한 맥락을 창조하는 행위였다.
올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설치될 '보따리'는 장소특정적인(site-specific) 설치가 될 것이다. 김수자 작가는 유리, 철조, 나무 등의 다양한 건축 자재와 굴곡진 벽면 등의 일반적인 파빌리온 건축양식을 갖춘 한국관을 전시를 위해 변형시키지 않고, 기존의 건축양식을 최대한으로 살리면서 그 구조 자체가 작가의 특징적인 개념인 '보따리'의 연장선으로 기능하도록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소리, 빛, 색채 등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감성적인 요소들을 사용하여 관객이 전시공간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게끔 하는 체험 중점적인(experiential) 전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전시는 동시에 상징체계의 역할도 수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가 바깥 자연을 실내공간 안으로 끌고 들어와 밖을 안에서 보는 상황을 창조하여 안과 밖의 경계선을 넘나들 뿐만 아니라, 전시공간 자체를 자족적인 자연으로 전환시켜 인간의식의 소우주를 재구성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잡동사니를 이동하려는 의도를 충족시키는 수단이라기보다는 그 잡동사니를 묶는 목적을 충당하는 보따리의 기능에서 김 작가는 변화무쌍한 인간역사,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세계, 혹은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한 개인의 정체성과 삶을 하나로 묶는 틀의 개념을 발견한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하나로 결합된 우주를 상징한다. 여기서 우주는 인간의 의식세계를 의미한다. 보따리는 삶의 총체성을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삶을 총체성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 보따리 상징의 의도는 '하나로 된 우주'라는 개념을 소통, 혹은 타인에게 전달하려는 것이다. 반면 그 보따리 상징의 목적은 '하나로 된 우주'라는 개념을 재현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즉 이동수단으로 지각되는 보따리가 자족적인 우주공간의 상징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김수자의 창조성과 예술성이 두드러진다. 김 작가의 과거 작업들을 살펴보면, 우주의 총체성을 의미하는 '보따리' 개념의 확장은 전통 한국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보따리를 전시장으로 옮겨 놓아 첫째, 그 일상적 맥락의 해체를 통해, 그리고 둘째, 시각예술이란 새로운 맥락과의 결합을 통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김수자 작가는 지난 30여 년 동안 전체성과 보편성을 토론하는 작업을 일관성 있게 추구해 왔다. 삶의 총체적인 틀을 논하는 '보따리'도 그렇고, 천조각들을 꿰매어 하나로 연결 짓는 바늘의 의미를 논하는 '바늘 여인'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작업이 제시하는 전체성과 보편성은 관객에 의해 특수하게 분석되어야 한다.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기획하는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의 주제는 인간역사에서 나타난 모든 창조물을 수집하고자하는, 실행 불가능한 인간의 집착적인 의지를 표현하는 '백과사전적 궁전'이다. 우주의 총체성과 보편성을 논하는 김수자의 '보따리' 개념은 비엔날레의 전체적인 주제개념에 딱 맞아떨어지는 안성맞춤이다. 따라서 올해 한국관의 김수자 <보따리>전은 맥락특정적인(context-specific) 전시가 될 것이다.
나아가 올해 한국관 전시는 절묘하게 시기적절한(time-specific) 행사가 될 것이다. 김 작가는 뉴욕에서 허리케인 샌디를 경험했다. 전기와 가스, 그리고 온수가 없이 일주일간을 고통스럽게 산 작가는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도처에서 갈수록 빈번하게 발생하는 천재지변을 토론하는 새 작업을 이번 한국관 전시를 통해서 발표할 예정이다. 따라서 자연재해 문제를 다루는 환경의식(environment-conscious)적인 작업이 예상된다.
이렇게 한국의 가정문화,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한국관의 건축 특징, 작가 개인의 경험, 관객의 감수성 등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요소들을 꿰어 하나의 네트워크로 결합시키는 김수자의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보따리' 설치는 이 국제전에서 보기 드문 보석 같은 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Misulsegye, May, 2013, pp. 86-89.
2013
This year's Venice Biennale's subject, the 'Encyclopedic Palace', is conceived by Biennale director Massimiliano Gioni after M. Auriti's 'Il Enciclopedico Palazzo del Mondo' in the 1950s. Auriti's model built on a 1:200 scale, welcomes guests at the central Pavilion of Giardini. The original 136 floor skyscraper-to-be would have occupied a vast area in Washington DC and would have played host to an international knowledge database from all times.
In a similar fashion to Auriti, Kippenberger's utopic 'Metro-Net World Connection' series (1993-7) envisaging a vast network of tube lines connecting the entire world, materialised with the production of only but a few real-life metro-like entrances (such as the one on the Greek island of Syros). His work was posthumously exhibited at the German Pavilion of the 50th Biennale in 2003 and although it did not become the subject of the entire Biennale back then, the profound romanticism, idealisation and conceptualisation of both arcadian cases inspired artists and philosophers on a grand scale.
This year's 88 national participations scattered at the Arsenale, Giardini and various other sites as well as other independent exhibitions around Venice, have tailor made their shows to fit and survey this year's theme.
How can art evolve and expand along the lines of "what could knowledge be or become"? The answer derives from the spectrum of what the modern world may accept as valuable piece of information; consequently, that is knowledge-worth extracting and distilling from today's reality. Needless to catalogue the valuable portion of data from the non-valuable, perhaps it all deserves to fall into the 'universal' category of encyclopedic knowledge. This would include pretty much everything in the Platonic and Aristotelian domain.
For the art enthusiast and critic, the national pavilion behaviourism is always an interesting factor. The perception and acuity of knowledge filtered through national identity and social layering proves to be rather pronounced in this year's Biennale. While several national participations seem to establish their artistic locus via certain political and socio-economic routes, probably in the hope that their chosen narrative will create international awareness, some others free themselves from analogous needs and effectively represent an artistic oeuvre and calibre worth revisiting and investigating further.
The unique environment of the Korean Pavilion, 'To Breathe: Bottari' (curated by Seungduk Kim), encapsulates both the long artistic tradition of its creator Kimsooja and diverse elements of Korean culture. The transformation of the entire pavilion space into a bubble-like enclosure allows light and sound to dominate throughout, instantly activating the viewer's senses. We are invited to experience the given domain and increasingly become part of it. But by entering a small dark anechoic chamber and remaining there in a state of blandness for just one minute the visitor is vulgarly amputated from their senses. Kimsooja's exploration of senses via the stern process of 'total voidance' created by introducing this black hole reaches (via manipulating our living environment) a state of realisation and, therefore, total appreciation of our current known situation. By actively involving the viewer with this experience, the artist succeeds in producing an ongoing mass performance thus generating a living intervention.
Konrad Smolen愀ki of the Polish Pavilion works along the same lines of understanding our senses in a natural and non-natural, controlled environment. His installation, 'Everything Was Forever, Until it Was No More' (curated by Daniel Muzyczuk and Agnieszka Pindera), encompasses the assessment of sound produced by a traditional instrument (two bronze handmade ecclesiastical bells), its reproduction by loudspeakers and its processing with a special technique that re-transmits a delayed, altered resounding sound wave. Smolen愀ki's lengthy research on the properties of sound and time has not only achieved to de-characterise and separate a source from its very own physical sound but also to free and re-baptise the latter with a brand new hypostasis. The 'newly born' abstract sound echoing forcefully among the pavilion walls voids the original pre-sound minimalistic locus and introduces a surreal time lapse domain. I personally found extremely intriguing how eager visitors were to investigate the soundless space before the activation of the two bells, and how keen they were to abandon it shortly after the production of the reverberating noise despite the earplugs provided. This intense discomfort may be explained as the natural result of the process of deconstruction of senses through deanalysing and decoding noise against time. It all proves how complex it can be to re-register in our collective unconscious a modified detail in one of our senses. Coincidentally enough, the artist has been recently asked by the Biennale organisers to pause the installation until further notice.
Outside the borders of Biennale proper, the Azerbaijan Pavilion situated at Campo San Stefano presents a group exhibition of six young artists focusing on aspects of cultural existence, ethnic distinctiveness and social discourse. 'Ornamentation', the title of Azerbaijan's show (curated by Hervé Mikaeloff), is an amalgamation of decorative arts, religion and tradition infused with contemporary vision. Rashad Alakbarov's installations, 'Intersection' and 'Miniature', are assemblages of random objects made of wood or metal organised in -what appears to be- unsystematic fashion. Only when a projector light hits the mass of objects we witness the hidden imagery forming on the opposite wall. Although sharing a very similar technique with other highly acclaimed artists such as Tim Noble and Sue Webster, Alakbarov's chosen shadow iconography is profound; from the traditional shebeke designs and patterns to a human reclining figure and an optical illusion that reveals its message only when you use a camera.
"It is not chaos" appears through the camera lens pointing out to the [semi]obvious oxymoron, that the actual appearance of things can only be subjective, the mass of knowledge generated from the conscious world can only be interpreted through the de-construction and re-construction of its individual components.
Auriti's vision can only depart from its limbo by praising the value of senses. This year's Biennale has had several strong participants, whose artistic oeuvre and exploration have gone a step further and, undoubtedly, increased our expectations in the fields of research, technological development and medium advancement, and in absolute synchronicity with the latest psychoanalytic, philosophical and scientific impetus.
2013
Franck Gautherot
In 2005 Seungduk Kim, your present commissioner for the Pavilion, invited you to participate in a Korean group show she curated at the Vienna Kunsthalle. You didn't agree to take part in such an exhibition. What led you to accept her invitation for Venice? How do you feel about this national identity when you have been a 'self-exiled' artist for so long?
Kimsooja
I think 'national exhibition' refers to so many different categories and connotations. For an artist who considers herself a 'self-exile' and a cosmopolitan, the notion of a 'nation', or 'national' is not that simple. The particular concept of the nation or national has to be defined before one can address its criteria. The historical, political, economic and cultural specificities of a society and a nation have a lot to do with an artist in terms of her/his personal and collective identity. These factors define how an artist has built up her/his own perceptions of the world and artistic criteria within the international art scene. A nation is like ones' parents by whom you were raised and who have influenced your life with given conditions and perceptions. When it comes to a collective identity, an artist who pursues his or her own unique and individual vocabularies must have their own point of view as to what category they fit into within a specific group show, or an exhibition as a national representative.
Over the years I had to decline a number of national group shows including biennales that weren't in line with my personal artistic practice and my beliefs. For example, I declined to participate in a national group exhibition which was an exchange between Korea and China in Beijing a couple of years ago. That decision was a reaction against the constant violence inflicted on an artist Ai Wei Wei by his government. I have no personal relationship with Ai Wei Wei, but I don't believe that a government can deprive an artist of their freedom of expression and perform violent actions towards them regardless of who they are. The decision I made not to participate in this exhibition had nothing to do with the curator, organizer or invited artists and their artistic values but was solely a humanitarian and ethical action; in the attitude of taking a position as an outsider.
My reaction to the Korean Exhibition at the Kunsthalle Vienna was also an action to declare my position as an outsider. That was still a time when I was questioning "Koreanness". As far as I know, the show examined and juxtaposed two opposite poles in Korean art: the Modern Art group and the Minjung Art group. These two groups were usually not curated together, because they had a certain kind of political conflict between each other and also due to their respective interests in Korean society. As an artist who had tried to keep a distance from any group activities or any hierarchical structures in Korean society, I didn't want to return to that particular political context in a national exhibition such as this, as it was something that I had consciously avoided for much of my career. I have worked hard to retain my autonomy and independence as an artist, although it has not been an easy path for me over the years. Besides which, I had already been introduced to the audiences in Kunsthalle Vienna during a solo show just a few years before and an international group show in Vienna Seccession in the past. It is more to do with my own personal history and position rather than with the show itself. When I saw the catalogue, I thought the show looked quite interesting as a spectator.
I guess being invited to represent my own country's national pavilion is the most exceptional recognition I can achieve as an artist who considers herself in self-exile. Without a doubt, it is an honor and it is a challenging question for me to work on this particular biennale, so I was willing to develop the best possible project for the Korean Pavilion.
Franck Gautherot
Seungduk Kim expressed, from the beginning, her wish to focus on the pavilion as an architecturally strong component that the artist will have to play with. How did you take her invitation to mainly connect to this given architectural situation?
Kimsooja
I understand how much the nature of the particular architectural elements of the Korean Pavilion has raised questions for the commissioners and invited artists in the past, and we are no exception. However, I value Seungduk Kim's approach to the pavilion, as it has never been examined from a solely architectural perspective. This certainly coincided with my immaterial way of approaching the site specific project and I tried to preserve the original structure of the pavilion while challenging its specific qualities and problems.
Leaving the whole space empty without installing any objects in it, the installation expands the void to the maximum by taking the architecture of the Korean Pavilion itself as a Bottari (Korean word for bundle). I tried to transform the entire pavilion into 'A Bottari of Light and Sound, Darkness and Soundlessness' that inhales and exhales; as if the architecture itself were my body. I have chosen not to install any objects in the space so that the audience's body may be embraced by the sound of my breathing. The Weaving Factory (2004-2013) sound performance fills the pavilion and proposes a unified experience, together with the yang energy which enters as sunlight, and extending all the way to the yin energy of the black hole in the anechoic chamber.
The skin of the glass windows is wrapped with the diffraction grating film fabric that defuses the sunlight into a rainbow color spectrum. What we see is the unfolded sunlight and the shadows of nature that shower into the pavilion and are translated into a color spectrum. This light and shadow reflects onto the white walls and simultaneously bounces endlessly back and forth from the mirrored skin of the ceiling and the floor; folding and unfolding into infinity. The darkness in light and the light in darkness is stretched to an extreme into waves of light and sound. The audience's body resides within mine as a whole, wrapping and unwrapping, communicating with each other. The light waves and the sound waves together with my humming and the inhaling and exhaling of my own breath, question the moment of life and death while the mirrors bounce light off their surfaces breathing in and out.
It was significant that Hurricane Sandy happened in New York right at the moment when we were discussing this project. The experience of living without power, electricity, heat and conveniences for one week with the whole community, was a humbling and contemplative moment. At the same time, this special moment gave me an insight into the Korean pavilion project by encouraging me to construct an anechoic chamber to explore a state of complete darkness and soundlessness. In this way, the visual knowledge of infinite reflection in the main space—which is constructed from purely natural light, finds a counterpoint in the space of the 'unknown' or 'unseen' in the anechoic chamber.
Franck Gautherot
In general how do you picture your contribution to any exhibition situation: Is it the space that calls first? The people? The context? The location and its history?
Kimsooja
I am aware of all the factors and consider them all simultaneously. The artist's job is done by an omnipresent gaze and mind that looks at both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Franck Gautherot
You have been invited many times to exhibit at the Venice Biennale. So the biennale is no longer an issue for you, but the Korean Pavilion is a new challenge. How do you locate yourself within its specific history? You said you have seen many of the shows there over the years.
Kimsooja
I have been invited to participate in the main Venice Biennale exhibition twice. The first time for Harald Szeemann's d'APERTutto (1999), and the second time for Rosa Martinez's exhibition Always a little further (2005), both were shown in the Arsenale. I have also participated in other official exhibitions at the biennale such as the Tiger's Tail (1995) curated by Soyeon Ahn and organized by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in the Palazzo Vendramin. Nam June Paik had been at the German pavilion in 1993; this was the following biennale for which he contributed to present large scale Korean Contemporary Art in Venice. It was the first time I had presented my installation with bottaris in Venice. I also participated in Markers (2001) curated by Ryszard Waskow on Garibaldi Street; and ArtTempo (2007) at the Palazzo Fortuni organized by Axel Vervorrdt, and curated by Jean-Hubert Martin and Matijs Visser. This exhibition became an inspiration for many curators to create a historical return of the Gutai group through exhibitions such as the show Daniel Birnbaum invited Matijs Visser to curate at the following Venice biennale. They are now introduced everywhere around the world.
Most of the biennale projects were marvelous experiences for me, especially when my work was in a context that opens a new dimensionality, was re-contextualized, or when I could create a meaningful new piece that opens up new possibilities. Many of the Biennales I participated in served these kinds of opportunities, and each time I have also been able to see the Korean Pavilion and its projects and other pavilions. This certainly helped me to understand what was going on in the world at that time. It also helped me to form an approach to the Korean Pavilion and an understanding of what position the Korean pavilion has on the contemporary art map, along with its relationship with other pavilions. Therefore, this provided me with some insight as to how to approach the Korean pavilion project and the practicality of dealing with specific local conditions. Most of the biennales I have participated in have given me opportunities to create new commissioned works with challenging themes and audiences. However, I am always interested in challenging new projects that I am inspired by—whether it is a biennale that gets more attention, or a small, remote local project—as long as there exists the possibility to realize work and develop from it.
This project was inspired not only by Seungduk Kim's approach to the architecture, which assured me the chance to pursue the site-specificity, but also by contemplating Massimiliano Gioni 's title Encyclopidia di Palazzo. For me, this title immediately connects with my thoughts on the notion of bottari and Gioni's reference reiterated a certain common knowledge which is in line with the evolution of my practice. National Pavilions don't always correspond directly to the biennale's main theme, but rather present their artists' own theme independently. However, even if I am not invited to participate in certain projects, I always take curatorial positions as my question and contemplate how I would answer. So I have a number of unrealized projects that are related to projects I was not invited to, but which I considered from my artistic position. Without exception, each time I come to the biennale as a visitor or as an exhibitor, I have examined the Korean Pavilion, asking myself "How could I answer if I were using this space or this theme?" You know, it has already been almost twenty years since I saw the opening of the Korean Pavilion.
Franck Gautherot
You have been quite familiar with biennales around the world. What stays with you after all these participations? In your work? What are your ideas about biennales and why did you kindly agree to be part of this one?
Kimsooja
I must say that many of my projects were developed not only by my own thoughts, but also by interesting themes and questions that have been posed by each of the national or international curators with whom I have worked. Biennales have been one of the exhibition frames that has enabled me to realize a number of my important new projects, as they present a supportive model for new work—rather than showing existing works—either by posing inspiring questions or offering specific spaces and challenging ideas to contemplate. I value all these opportunities for developing new projects and expanding or contextualizing my ideas and practices in new ways. I am always interested in trying to find the best answer I can deliver through my perspective in response to the current aesthetic, philosophical, psychological or political questions posed by curators through their exhibitions, and also in response to the work of writers. Although biennales are often tough, most biennales I have participated in have examined broad and specific current issues of this era, and obviously they fulfill an important role as agents for re-contextualizing contemporary art history. The fabric of my practice and my approach in general has threads that relate directly and indirectly to many current issues in life and art. In fact, any theme can be discussed with my approach towards the 'totality in life and art'.
For three consecutive biennales, I turned down kind invitations to participate. My decision to decline the invitations had nothing to do with the curatorship, or any other matter, it was purely because I couldn't accept the title of the biennale, which I felt was no longer relevant in this era. As I defined my position, I also couldn't participate in subsequent editions, even if a good friend of mine was inviting me and the show was nothing to do with the problem I found in that biennale's title. I don't serve the biennale itself but instead I participate as a communicator for those whose question is valuable—to find my own answer and experiment with it. I must say, most biennales served my practice so well by opening up my artistic paths and giving me opportunities that I hadn't had before.
I am skeptical about the current boom of biennales around the world and their political power structures. Sometimes it seems more like manufacturing an industry in order to promote a city as an international destination through a focus on the tourism and economic benefits of staging a biennale. I don't blame cities for this, but I do think sometimes there is a lack of awareness and reflection on the origin of the art biennale model as a structure to examine the cutting edge of contemporary art. Maybe that is also a current symptom that we face in this era that reveals the reality of the commercially driven art world.
Franck Gautherot
Concerning your project, I am very impressed by your precise way of following the 'brief' to propose, within this framework, a very original environmental creation filling the entire space. How did you come to this solution?
Kimsooja
My practice has been increasingly dematerializing since the early days until now. My ultimate goal as an artist is to be liberated from materiality, including my body. To become self-sufficient and freed from desire—for me—is the highest achievement in my art. I wish to be liberated from doing art or making art by extinguishing my artistic energy to the limit. This cannot be achieved by simply stopping the act of making art—paradoxically, it can only be achieved by doing art, living fully, in the most profound and poignant way.
Since I created To Breathe: A Mirror Woman (2006) at the Crystal Palace in Madrid (curated by Oliva Maria Rubio and commissioned by the Reina Sofia Museum), I reached the point where I could contextualize three decades of my sewing practice process in the most immaterial and conceptual manner. The notion of sewing and that of wrapping and unwrapping in this context, defines the identity of a bottari in the most open and immaterial manner. By emptying the whole space and filling the void only with my breathing, I can address the whole architectural structure as a bottari of light and sound.
The experience of the Crystal Palace installation helped me to envisage the transformation of the Korean Pavilion into a bottari of light and sound. What differentiates this installation from the Cyrstal Palace installation is the addition of the added element of 'parallel mirror surfaces'. That is; the installation of mirrors on the ceiling as well as the floor, which expands the visual void into infinity. This addition opens up the entire space into an infinite rainbow spectrum—a 'breathing pavilion'. The complete darkness of the anechoic chamber is another important component that I have never examined in conjunction with the parameters of light and sound.
I hope that all of these elements of immateriality will together create a sensational physical and audio-visual experience for the audiences.
Franck Gautherot
Seungduk Kim in her text points out something rather new in the comment and analysis of your work: the centripetal nature and forces at work in the pavilion. Are you aware of this idea?
Kimsooja
I think the word 'centripetal' serves very well to define the formal and mental structure of my perspective in time and space. Since the beginning of my awareness and art practice, I've been investigating the origins of the cruciform structure in analyzing tableaux, daily objects, physical, psychological human activities and body, and the natural phenomena in its relationship to the cosmic world. During the whole course of my experimentation since the late 1970s, I've been digging into the core structure, even before sewing and wrapping or performing. My piercing gaze and focus naturally transmits into a spiral force. This force has also been embodied in the 'standing still' performance in A Needle Woman (1999-2009) where the stillness of my body functions as an axis of time and space. Standing still can represent the inner turmoil of chaos, speed, the scream and also rebirth.
— Essay of the Catalogue, 'To Breathe: Bottari'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Korean Pavilion at the 55th Venice Biennale, 2013. in association with the Les presses Du Reel.
2013
"The proper place of the inner life is defined solely by the failure to establish any satisfactory relationship with external reality." - Jean Starobinski, Jean-Jacques Rousseau: Transparency and Obstruction, 1957
What has not yet occurred cannot be described, of course... even though we have all the information imaginable on materials, the construction plans, and the display. We experimented with every aspect separately in a highly visual manner: checking samples of aluminium mirror panel for the floor and ceiling; sticking portions of diffraction grating film on the windows of the pavilion on a cold November day; testing the sound-absorbing foam for the anechoic dark room; spending hours on Chinese websites to find ideas for the "by-products": bags, socks, USB keys; going to Dongdaemum night market in Seoul to look for bojagi fabric. In fact if we had already done similar things for previous shows, this time was rather special since all the elements were mass-produced and the entire display is handled by a local construction team. Nothing directly implies an artwork, but there is a huge volume of material for an intangible installation.
Paradoxes are common in art, but in Kimsooja's case, it comes close to the wire. Which is exactly what makes it exciting, and challenging. Nothing can be gauged in advance, it has to be completed to be delivered and experienced properly. No model, no CGI can offer the final vision... For the artist, it is a method and a life-long involvement, but for the curator there is a certain amount of suspended action. Slowly we will perceive the strengths and effects of the materials, patiently we will figure out the reflections on the ceiling and on the floor, gradually we will begin to fathom the sounds absorbed by layers of thick and heavy rockwool, plasterboard, rubber coatings and sharp foam pyramids. Virtuality will be at play all through the weeks of April and May until the last touch is added by the sound installation. The voice of the artist will imbue the whole environment with organic bodily breathing.
In order to work within Sukchul Kim's architecture for the Pavilion with no structural modifications, additions or alterations [1], Kimsooja decided that the metal skeleton of the pavilion would receive several skins to shape it into a consistent body: diffraction grating films will cover the glass windows (walls and roof); aluminium mirror panels will be stuck on the floor and fixed to the ceiling; the artist's voice will wrap the main space; an anechoic chamber will occupy the brick pavilion on the South side. The volume of the space will thus be opened out; the skins provide the mutation of the initial transparent cage-like space into a translucent web of light diffracted into rainbow colours, which speed up through an infinity of reflections. Humming and breathing will fill the space with kaleidoscopic volume. A dark anechoic chamber will bury the coloured experience deep inside the visitor's body. Kimsooja's project for the Biennale, To Breathe: Bottari, is original and perfectly fitting within her body of work.
Kimsooja's work could also perhaps be qualified as acts of unveiling and disclosing: slips of papers are left behind, a corpus of secrets is wrapped in bundles, she is seen from the back in the video works. Kimsooja does not willingly participate in the transparency of the present world, where everything is supposed to be accessible, revealed, only to be forgotten a moment later. She is keeping layers of narratives deep within the knotted fabric. If she does not show her face in the videos, it means that we will never see the way she looks at the crowds of human beings in the noisy streets of the cities of the world. She stands as an obstacle in the flow, like in Etienne-Jules Marey's poetic science experiences – such as the mechanics of fluids visualised by using a square object (obstacle). Does Kimsooja mean to study how much an obstacle – here a still and quiet standing woman – may slow down the pace of humanity on the move? What will such a woman in grey outfits cause to the movement of a crowd? Often she stays invisible and does not produce any slow down. Swiss professor of French Literature and Historian of Ideas, Jean Starobinski, analysed the constant unbalanced position in the case of Jean-Jacques Rousseau between his sincere desire for "transparency" and his frustration that created "obstruction" and led him to passive resignation.
Contradiction in form usually creates unsolved situations. In Kimsooja's works, paradox is an engine, a tool for building shelters and places for relief. Neither an "art aid", nor a comfort spot for exhausted art travellers, her places are energy batteries. Transparency is not invisibility. But rather, turning transparent is the ultimate dream of the voyeur: nothing is kept secret, everything is visible, accessible to desire. Architecture in modern times has fought for this since glass could be mass produced in large sizes and reinforced to resist [2]. The combination of clarity (glass) and blurring via a colourgenerating device is one step further than stained-glass in churches, where light comes through coloured glass windows and projects onto the stone paving in a complex palette of colour tones [3].
For the 2013 Korean Pavilion, with a formal strategy of non-doing, Kimsooja will allow the random good fortune of the changing lights to shape and reshape the whole building. The composition will not be controlled, leaving chance and mischance to create the coloured ambiance. Mirrors on the floor and ceiling will multiply to infinity the reflected coloured lights contained inside the pavilion showering the visitors with jets of diffracted violet, blue, green, yellow, orange and red pure light colours.
The proposed environment will function as a centripetal engine, an unplugged energy plant absorbing energies of any kind like the ever-changing daylight and the empathy left behind by the viewer. Every single component and effect will be sucked up by the centre, by the nucleus. The Korean Pavilion will be turned into a large scale experiential generator.
The additional room could be described either as the total opposite or as the end result of chromatic light experiences. This anechoic chamber is a darkened space designed to completely absorb the reflections of sound waves and be insulated from exterior sources of noise. It is designed to accommodate just a few people at a time who are prepared to lose their sense of auditory stability and dwell in their own heartbeat or the turmoil of their blood circulation. To complete the Korean Pavilion visit as if attracted and absorbed into a black hole.
Somehow this could be envisaged as a summary of a number of Kimsooja's previous works in which the elements of the composition have been captured, absorbed, wrapped. We have decided to take the visitors to a region of space from which nothing can escape, neither light, nor sound. A perfect hijacking. For the greater good.
[Note]
[1] The framework and its limitation to the architecture isn't a curator's caprice to challenge the artist, but rather a rooted project deeply attached to the specificity – in style and in meaning – of this particular and significant edifice: the Korean Pavilion looks like a temporary World Expotype national pavilion. For this reason, the visitor's journey needed to be cast as an immersive art experience. Since La Biennale di Venezia is a gigantic theme park with contemporary art as the core, it was absolutely obvious to stay within that very format. There was no point in mimicking museums or art centres but instead it seemed important to follow the World Expo style as a natural place and moment for the participation of avant-garde artistic movements and individuals. Osaka Expo 1970 was the last edition to be really in tune with such a practical utopia.
[2] Different to the Crystal Palace, erected for the 1851 Great Exhibition in London, the Glass Pavilion by Bruno Taut in Cologne in 1914 and La Maison de verre (1927-1931) by Pierre Chareau in Paris, which used glass bricks as a light provider more than as a source of transparency.
[3] In Theo van Doesburg's Stained-Glass Composition II (1917) and Stained-Glass Composition V (1917-1918) designed for the Villa Allegonda, the projection of diffracted light is already planned at the design stage, having organised the nonobjective distribution of rainbow-coloured units (primary and complementary colours) in the vertical format. Daniel Buren's Passages Under a Colored Sky in 2007 in Anyang in Korea operates in a similar way: using the pergola structure with coloured glass casting coloured shadows on the ground.
2012
Chiara Giovando
I just arrived on the island of Møen in Denmark, where your work will shortly be shown. Last night I spoke with a young Swedish traveler and he said, “I am interested in learning everything by doing nothing.” His statement brought your practice to mind. You have made a series of performance videos that elaborate on each other. A Beggar Woman (2000–2001), A Homeless Woman (2000–2001), and A Needle Woman (1999–2001, 2005, 2009): all present stillness in the midst of chaotic activity. In the latter you inhabit a fixed performative posture within various urban environments, blurring the boundaries between private and public space. In a sense, your body seems to be the place that you inhabit. Could you speak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lace of the body (the performative posture) and the geographical place?
Kimsooja
You can imagine zooming in, the way a needle engages with a piece of fabric. My body’s mobility comes to represent its immobility, locating it in different geographies and socio-cultural contexts. Immobility can only be revealed by mobility, and vice versa. There is a constant interaction between the mobility of people on the street and the immobility of my body during the performance, depending on the society, people, nature of the city and the streets. Different elements inhabit the site as the qualities of the city and the presence of my body appear as an accumulated container of my own gaze toward humanity, and other gazes reacting to my body. While the decision of the location is based on research of its populations, conflicts, culture, economy, and history, the idea of the immobile performance arrived all of a sudden, like a thunderclap or a Zen moment: the conflict between the extreme mobility of the outer world and my mind’s silence coalesced in my body. I always had the desire to present the unaltered reality of the world, by presenting bodies, objects, and nature without manipulating them or making something new. Instead, I want the audience’s and my experiences to reveal new perceptions of the reality of the world and our existence. I pose ontological questions by juxtaposing my body and the outer world in a relational condition to space/body and time/consciousness.
Chiara Giovando
Your video Bottari Truck – Migrateurs (2007) and the sculptural work Deductive Object (2007) will both come to Kunsthal 44 Møen. Both of these works include bottari. In your work Bottari appears as brightly colored fabric bundles, loaded onto carts or trucks, or placed on the floor. The different contexts draw out various metaphors, representing a journey when loaded on a truck, or exile when displayed half-open and scattered. Once you said, “The body is the most complicated bundle.” What are the imagined and symbolic contents of these bottari and how do they relate to the body?
Kimsooja
In modern society, bottari (bundles in Korean) have changed into bags; they are the most flexible container in which we carry the minimum of valuables, their use is universal throughout history. We hold onto precious things in dangerous times, such as war, migration, exile, separation, or during an urgent move. Anyone can make a bottari using any kind of fabric. However, I’ve been intentionally using abandoned Korean bedcovers that were made for newly married couples, covered with symbols and embroideries and mostly wrapping used clothing inside—these have significant meanings and questions on life. In other words, my bottari contains husks of our bodies, wrapped with a fabric that is the place of birth, love, dream, suffering, and death—a framing of life.
While a bottari wraps bodies and souls, containing the past, present, and future, a bottari truck is more a process than a product, or rather it oscillates between process and object as a social sculpture. It represents an abstraction of the individual, of society, of time, and memory. It is a loaded self, a loaded other, a loaded history, and a loaded in-between. My Bottari Truck is an object operating in time and space, locating and dislocating ourselves to the place where we came from, and to where we are going. I consider a Bottari as a womb and a tomb, globe and universe. Bottari Truck is a bundle of a bundle of a bundle, folding and unfolding our mind and geography, time and space.
Chiara Giovando
Sewing into Walking (1995) is dedicated to the victims of Gwangju. In this work, piles of clothing and fabric covered the ground and the Bottari were scattered.
Kimsooja
It’s a metaphor for the victims of Gwangju uprising in the mid-1980s. The bottari represent people with no power and those forced to remain silent.
Chiara Giovando
There seems to be both very private and public aspects to your practice. Many of your early works are meticulously sewn, an activity both intimate and meditative. Yet in your films you work with large crews in public spaces. How do these two methodologies affect your process?
Kimsooja
I made the sewn works alone in my studio; the A Needle Woman performances were shot spontaneously, inserting myself into the general public. I traveled alone to meet people in about fifteen large cities on different continents—except Shanghai and Cairo where I couldn’t easily find a videographer in time. It was not always safe and easy. I am the only witness to all of my performances.
Recently, I started making a film series, Thread Routes (2010–), shot on 16mm film in many locations of different continents. It’s not about my own experience, but instead other men and women who performed the needlework and threadwork respectively. For this project I had to work with a team. It’s been very inspiring for me to work with a team and travel together, communicating with the group. I’ve learned from them and their research. It’s a different process of production, requiring me to work toward an objective, with a collective way of seeing revealing production process. But in the end it is still an intimate process, where I can revise through editing—that is the next step in the process.
Chiara Giovando
The sculpture Encounter – Looking into Sewing (1998–2011) is also a part of your show at Kunsthal 44 Møen. In this work a mannequin, beneath layers of fabric, stands in for a body. Can you tell me about your concept, what happens when this work is looked “into”?
Kimsooja
It originated with an installation I made in the Museum Fridericianum, Kassel, 1998, for the exhibition Echolot, also curated by René Block. I conceived the work as a performance, but without any performing. An immobile mannequin was fully covered with used Korean bedcovers, and I documented the performative actions made by the audiences, who tried to locate the covered figure. Thus, a visible and invisible interaction is happening, peeling off the fabric by looking. I consider this “invisible sewing.”
I wanted to create a tension between the audience and the ambiguous figure, the sculptural object. The audience looked at this figure waiting for a performance—but of course there was no movement. I used the immobile figure as a performer for the first time, before using my own body, without planning, A Needle Woman performance at that time, so the audience members themselves become the performers, through their own curiosity and reactions.
This piece is one of the earliest manifestations of the ideas that led to A Needle Woman. It’s a fundamental moment: a strange encounter occurs between the figure and the audience, marked by this intense gaze.
— Kimsooja: Interviews Exhibition Catalogue published by Verlag der Buchhandlung Walther König in association with Kunstmuseum Liechtenstein, 2018, pp.151-154.
-*This is the revised version of the unpublished interview conducted on the occasion of the exhibition Kimsooja at Kunsthal 44 Møen, Askeby, Denmark, in 2012. It is published here with the kind permission of Chiara Giovando.
2012
A woman stands on the street, immersed amid a torrent of passersby, utterly motionless -- a needle sewing through the fabric of humanity. With a simple, stoic gesture, Kimsooja vividly embodies the struggle to preserve a place for the individual within society, using her body as a conduit for critical questioning. This struggle is a perennial one, but by situating herself in an array of urban centers that span the planet, she imbues it with the tenor of contemporaneity: for if there is a single experience that can be said to exemplify the urgent conditions of today's world, it is the state of being engulfed by the "global city."
This first version of A Needle Woman was created between 1999 and 2001. Approximately six years later, a silent but momentous event occurred: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the world's urban populace outnumbered the rural one. [1] Over the last 30 years, urban populations have reached staggering proportions, and their rates of growth are accelerating exponentially. In 1900, only 10% of the world's population lived in cities. Today the figure has climbed above 50%; by 2050, it will represent three-fourths of humanity. [2]
A Needle Woman was produced just as the full realization of this explosion of urbanization reached a fever pitch, spilling across a variety of academic disciplines as well as art and popular media. The work is particularly emblematic of the directness with which the phenomenon tended to be addressed at the turn of the new millennium. With the benefit of a little more than ten years' hindsight, it is all the more striking for how it remains relevant to the discourse that developed in the wake of those confrontations.
One of the most important of these discursive evolutions involves the way in which urbanism has grafted onto globalization studies. It was the rise of mega-cities throughout the world that made it no longer necessary to abstractly theorize that globalization is happening. Indeed, urbanization is increasingly seen not as an after-effect of globalization, but as its primary driving force. [3] Over the last three or four decades, the increased number and scale of cities capable of participating in the production and management of global flows of goods and capital have led to a vast expansion of those same flows. At the same time, they have produced significant populations of middle-class, cosmopolitan individuals, while mobilizing large numbers of migrant workers from the countryside as well as immigrants from poorer places. The result has been the development of cities bearing unprecedented levels of heterogeneity. The urbanization of the globe has turned out to be inseparable from the globalization of the urban.
The nuance and poetry with which A Needle Woman captures these complex dynamics belies the precision with which it communicates meaning. This is especially so with respect to the artist's deliberate selection of the eight sites that "pass through" the anonymous, solitary figure. The academic literature on global urbanism provides a useful entry point (one of many) through which to access the implications that arise from this particular grouping of cities. Viewed in this light, the work bears a particularly strong resonance with an important theoretical framework known as the "global city" paradigm, as well as with the critiques to which it has been subjected. Originally advanced by the urban scholar Saskia Sassen in the 1990s, this approach focuses on how specific urban centers interface with and influence the world economy, using a series of measures such as monetary exchanges, volume of trade, and the number of transnational corporations based in a given urban zone as a way of quantifying its degree of "structural relevance" within a hierarchy of cities. From this perspective, the inclusion of New York, London, and Tokyo in A Needle Woman would serve to represent the traditional command centers of the global economy. Shanghai would serve to indicate the elite class of ascendant hubs that have established themselves more recently as major financial players. Mexico City, Delhi, and Cairo might stand for the crucial "second-" and "third-tier" cities that have also managed to lay a significant claim on the global financial sphere, though at a lower level.
While there can be no doubt that the "global city" rubric has produced invaluable insights, in its earliest manifestations it met with heated criticism, especially from the direction of the "Global South" -- that is, from beyond Europe and North America. [4] By prioritizing economic criteria, the methodology involved in this concept had the effect of placing limits on the types of questions that were asked. Indeed, by reducing a city's relevance to its contribution to the world's financial system, it had the effect of focusing the attention of researchers onto a limited number of cities -- perhaps 30 or 40, all but three or four of them in the developed world. Advocates of these critiques also remind us of the importance of more grounded and culturally oriented lines of investigation through which we might uncover valuable means for improving city life -- from the creative productions of Rio's favela architecture, to the vibrant informal economies of Mumbai, to the socially cohesive effects of local popular culture in Kinshasa.
With this debate as backdrop, A Needle Woman delivers a keen insight through the inclusion of an eighth site that paradigmatically represents the reverse side of the forces of global urban change: With a population that has escalated from 300,000 in 1950 to one that is estimated to top 23 million inhabitants by 2015, the city-region of Lagos exemplifies the lot of urban agglomerations that have witnessed astonishing growth in the context of severe poverty. [5]
In human terms, mass urbanization has had its most powerful effects in the poorest parts of the world. Here again, the rate of the transformations is staggering: Today, about 70% of city dwellers live in developing countries, compared with less than 50% in 1970; by 2030, roughly four out of five urbanites will reside in the developing world. With much of this growth playing out against city infrastructures that remain ill-equipped to handle such expansion, unprecedented numbers have come to inhabit what are typically described as "slums." In the least developed countries, the proportion of slum residents approaches 80% of the populace; already, this figure represents one-third of the total global urban population. [6] While it is important to resist the chronic tendency to reduce the complexity of informal settlements to a single, homogenized vision of Dickensian bleakness, it is difficult not to read such mind-boggling statistics without being struck by the sense that we are in the midst of a crisis.
In the face of these and other challenges, a pressing need has arisen to focus at least as much energy on understanding the specific and differentiated local repercussions of globalization as on identifying the resonant scenarios that it creates throughout the world. It has become vitally important, in other words, to survey this global age from the level of the street, the neighborhood, the city, where we may hope to find concrete ways both to maximize its potentials and to mitigate its most distressing symptoms.
It is precisely in this sense that A Needle Woman seems so well attuned to the exigencies of the global-urban era. The figure that appears in these images confronts head-on the fearsome power of the contemporary city. At the same time, through her stillness, she expresses the possibility of making peace with it. It is worth paying attention to the mixture of resoluteness and humanism with which she looks forward to the volatile century that stretches out before us.
[Note]
[1] United Nations HABITAT Office, 2006 report.
[2] Ricky Burdett and Deyan Sudjic, eds. The Endless City: The Urban Age Project by the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Deutsche Bank's Alfred Herrhausen Society, pg. 9. New York: Phaidon Press, 2007.
[3] This paragraph is indebted to J. Miguel Kanai and Edward Soja, "The Urbanization of the World," in The Endless City, pgs. 54-69.
[4] See Jennifer Robinson, "Global and World Cities: A View from off the Map" in International Journal of Urban and Regional Research, 26.3, September 2002, pgs. 531-554; as well as Kris Olds and Henry Wai-Chung, "Pathways to Global City Formation: A View from the Developmental City-State of Singapore" in Review of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11:3 August 2004, pgs. 489-521.
[5] Mike Davis, Planet of Slums, pg. 15. London: Verso, 2006.
[6] Davis, pg. 51.
2012
The modern artist is living in a mechanical age and we have a mechanical means of representing objects in nature such as the camera and photograph. The modern artist, it seems to me, is working and expressing an inner world – in other words – expressing the energy, the motion and the other inner forces.. ..the modern artist is working with space and time, and expressing his feelings rather than illustrating. [1] — Jackson Pollock
In the preface to the second edition of his collection of poems "Lyrical Ballads" William Wordsworth asks a simple yet crucial question "What is a Poet?" The answer he gives is probably the most truthful ever given: "He is a man speaking to men: a man, it is true, endowed with more lively sensibility, more enthusiasm and tenderness, who has a greater knowledge of human nature, and a more comprehensive soul, than are supposed to be common among mankind; a man […] who rejoices more than other men in the spirit of life that is in him; delighting to contemplate similar volitions and passions as manifested in the goings-on of the Universe[.] [2]
Kimsooja's work as an artist is constant proof that she perfectly embodies Wordsworth's definition of a Poet. At the core of her production there is always a physical and at the same time metaphysical confrontation between the "spirit of life" that is in her and the "spirit of life" of the world surrounding her. Ultimately, her art is the result of using her body, the shell of her "comprehensive soul", to achieve a balance in the connection of inner and outer life. To quote Kimsooja's own words, her body is the "medium, mystery, hermaphrodite, abstraction, barometer, and shaman" [3] uniting her with the essence of the world. It is charged with and releases spiritual power. All her works, from 2727 kilometres Bottari Truck (1997) to A Needle Woman (1999-2001, 2005), from A Beggar Woman (2000-2001) to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2008), to mention just a few, are the visualization of this flow of energy.
Even when Kimsooja is not physically present in the work on display in the gallery space, the reality that she offers the viewers is not a mere representation of a given natural phenomenon. It is the result of an interaction between two parts, of an exchange of energies. Her words about that production in which she is not in the frame – "When I disappear, I represent the act of nature more closely. Thus only my gaze becomes active" [4] – are self-explanatory. The objective of the video camera recording Nature is not a mechanical substitute of her eyes or an extension of her body. It is the activator of the gaze, an active participant in the process of capturing the flow of energy running in both directions between the artist and the outside world. It acts like that needle that for the first time made her sense a strong and inexplicable force emanating from her whole body when she was still a child and was helping her mother sewing together different pieces of fabric into a blanket cover. The absence of her body in the final composition of the projected images does not mean that Kimsooja was there, but she is not there any longer. Kimsooja is still there. To a certain extent, her videos are visual correspondents of what a "trace" is in Jacques Derrida's linguistic studies, that is a "mark of the absence of a presence, an always-already absent present" [5] .
The Earth – Water – Fire – Air project, started in 2009, is one of those instances in which Kimsooja's body is not visible in the exhibited images. Natural phenomena, or "Beautiful and permanent forms of nature" – the "Lyrical Ballads" once again – are its main "subjects". In the specific, they are video recordings taken on the island of Lanzarote in the Canary Islands and in Guatemala – volcanic landscapes with incandescent lava, the restless sea, millenarian rocks sculptured by time, clouds of pure white on a clear blue sky. The four basic elements essential to both Eastern and Western thought as the basics of life in the Universe are not presented as single units, each of which is independent and isolated from each other. On the contrary, as suggested by the titles of the videos [6] , they are shown in binary combinations, interacting one with the other, flowing one into the other, the same way as the artist did with the space surrounding her when she recorded those images. Clearly, viewers can fully feel the strength of this energy when inside the space where the work – an eight-channel video installation in its current form – is exhibited. Without any doubts, Earth – Water – Fire – Air is first of all a work that has to be experienced. The intensity of the bond between the artist and the visible objects that she captured with the help of her camera is perceived in the gallery space where viewers are free to move around and use their senses to take in the energy coming out from the screens.
It is by experiencing the work as an installation that any possible references to Beauty suggested by the incontestable magnificence of the natural spectacles lose their validity. Beauty is not a keyword here. Surely, a more appropriate approach would be through the concept of the Sublime in aesthetics. To be more precise, the way the Sublime was perceived by the Neo-Kantian school of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according to which the feelings of fear and horror – fundamental qualities for the 18th and 19th centuries (Edmund Burke and the English Romantics, amongst others) – were replaced by a sense of contentment and safety before an object of superior force.
Kimsooja stands with her video camera in front of an object of "superior force". The moment she presses the rec button, like a needle piercing a piece of cloth, her "superior force" starts to interact with that of Nature before her. The energy of the exchange is very strong and overwhelming. However, the effect reached – Earth, Water, Fire, and Air displayed in the exhibition space – is indisputably one of ease and wellbeing. Her works are never a methodical process of "quoting" from Nature, simply because Kimsooja is not a passive receiver. The segment called "Fire of Air" can serve as a proof of the artist's dialoguing with Nature. In it, while being driven she operates a spotlight to break the darkness of the night and illuminate the rocky fields of the landscape. Here, she in charge of what can be seen and what stays wrapped in darkness. Because of this constant dialoguing, none of the images offered to the viewers can ever be, to quote Wordsworth again, a "soulless image on the eye" [7] , a mere visual impression on the retina of the spectator. On the other hand, Kimsooja sublimates the etymological meaning of the word "video", that is "I see", first person of the present tense of videre (to see). She invests it with both spiritual and lyrical power. Simply, albeit roughly, put, it is poetry camouflaged as science.
As an artist Kimsooja's possess the unique ability to turn the chaos of energy exchanging during the time of performing or recording – that "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s" [8] between the Poet and Nature – into a sense of tranquility and calmness for the viewers. Accordingly, the screens framing the videos lose their boundaries and a distinct feeling of oneness with Nature is strongly felt. To a certain degree, the genesis of Earth – Water – Fire – Air is not that dissimilar to that of Jackson Pollock's canvases. It is the same intensity of human artistic energy – albeit different in nature. Obviously, the outcome is at the antipodes. Kimsooja's is a calm chaos generated by the maturity of the passions of the artist's heart. And it is this proven maturity that, paraphrasing Pollock when he was asked if he worked from Nature, allows to state that Earth – Water – Fire – Air proves once and for all that Kimsooja is Nature.
[Note]
[1] Pollock, Jackson. Interview by William Wright, Summer 1950. Quoted in Clifford Ross (ed.), Abstract Expressionism: Creators and Critics, Abrahams Publishers: New York, 1990, pp. 139-140. > return to article >
[2] Eliot, Charles William (ed.). Prefaces and Prologues. Vol. XXXIX. The Harvard Classics. New York: P.F. Collier & Son, 1909–14; Bartleby.com, 2001. www.bartleby.com/39/. 2 May 2012. > return to article >
[3] Kim, Sung-Wong, "About Nothingness: Being Nothing and Making Nothing". Official internet site of Kimsooja. www.kimsooja.com/texts/sung_won_kim_EWFA_2009.html. 2 May 2012. > return to article >
[4] Commandeur, Ingrid. "Black Holes, Meditative Vanishings and Nature as a Mirror of the Universe". Kimsooja – Windflower: Perceptions of Nature (Catalogue). Kroller Muller Museum, The Netherlands. Interview with the artist by the author, November 2010. > return to article >
[5] Macsey, Richard and Eugenio Donato (eds). The Languages of Criticism and The Sciences of Man: the Structuralist Controversy. JHU Press: Baltimore, 1970, p. 254. > return to article >
[6] n its current version Earth – Water – Fire – Air comprises the following eight videos: “Fire of Earth”, “Water of Earth”, “Fire of Air”, “Earth of Water”, “Air of Fire”, “Air of Earth”, “Air of Water”, “Water of Air”. > return to article >
[7] Wordsworth, William. The Complete Poetical Works. London: Macmillan and Co., 1888; Bartleby.com, 1999. www.bartleby.com/145/. 2 May 2012. > return to article >
[8] Eliot. > return to article >
2012
-An art where nomadism and the relation with the other reveals the importance of mankind and the contemplation of the reality that we live in.
Kim Soo-Ja is her full name, but she introduces herself in her web page as Kimsooja (Korea, 1957) with her own manifesto: In "A One-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 (2003), Kimsooja refuses gender identity, marital status, socio-political or cultural and geographical identity by not separating the family name and the first name. In this same way – without an identity or with an almost ephemeral one – she has been developing since 1992 her singular and poetic work that includes videos, performances, installations, site-specific projects and photographs.
To give rise to her work, Kimsooja travels to different cities, villages and small towns in search of diverse cultures. It is a pilgrimage with bottaris – Korean word that means "wrapping luggage with a wrapping cloth", the easiest and most functional way of carrying one's belongings– sometimes walking and others by truck; a nomadism that speaks about civilizations, traditions, and languages that shall be faced in the new crossing.
The art that she creates becomes ceremonial. She looks through her own past, present and future and through that contemplation the questions and discourses on time and space emerge. This way, Kimsooja links her work to nature and the relation with others. In her pieces the viewers are engulfed by the multiple perspectives introduced by the artist and they can participate of it lively.
Textiles are the media that Kimsooja chooses to develop her maps of beliefs. Despite her origins where there always existed a need of experimenting different types of media similar to fabrics, sewing became the wisest and most accurate tool. It allowed her to combine her questionings and the relation between the "I" and the "Other" over the canvas surface. Thereby, the separation between the artist and the surface disappears and transforms into a healing joint.
Bottaris are probably the most distinctive element in Kimsooja's art. They hold not only references to the migration of her land but also to the essence of all her work: mankind. "I've always been fascinated by nomadic minorities' life style and their rich visual culture and originality. During my youth my family also lived a nomadic life due to my father's job, although within Korea. I wasn't aware of the fact that my family had been wrapping and unwrapping bottaris all the time until I started Cities on the Move–2727 km Bottari Truck in 1997", she explains.
Kimsooja's bottaris are sculptural pieces. Viewers can open, touch and examine them. The artist acts as an intermediary between the owners of those clothes and old bedspreads and the observers. As they make contact with the bottaris, they embark on their own journey imagining who used these fabrics before. This way, the pieces transcend the Eastern tradition and the historical codes that were associated to them; they become channels which redefine the concept of the object. Here it doesn't matter if Kimsooja re-makes and re-contextualizes a ready-made but the way she chooses to look at her past and the transition that Korea lived from a traditional lifestyle to a modern one.
A Needle Woman, A Beggar Woman and A Homeless Woman are the most developed and delicate performances by Kimsooja. In them, she appears with a singular hieratic posture amongst a crowd in continuous flow that walks towards and by her sometimes observing and others questioning themselves the truth of her static stance. Anonymous and with neutral clothing, she achieves to interfere with the canons and flux of the city with one unique message: temper and truth.
The patience and austerity that the artist uses to introduce folklore and daily habits of Asian and Latin-American cultures in her videos is what lets her bonds so closely to their respective traditions. Each folkloric practice that Kimsooja discovers works as a talisman. First she researches the origins and encounters of the culture and then she charges herself with figures of power.
The spectrum and repetition which Kimsooja works with in her videos is expressed by the cities in move, in an action loop. In Thread Routes (Chapter 1. Peru) – a video that captures the routes of the threading women in Peru –, women weave again and again the colorful embroideries of their origins where generations and spiritual experiences are combined together. Mumbai: A Laundry Field was filmed in India where men shake, drain and strain against the stones the symphony of tonalities of their clothes. They are the representation of time, an intangible and unapproachable mental space, never planned.
"When it comes to the performative video pieces such as A Needle Woman performance series, I just had a strong desire to do a performative piece but didn't know what exactly it would be, even until the moment I started filming", Kimsooja says. That is the main reason why intuition plays such an important role in the process and meaning of her work. She rises as a medium woman, as an ethnographic canal that lets the world see the most pure forms of art. A reader of the visible and invisible worlds given by nature.
These projects have turned Kimsooja into one of most renowned and interesting artists from the international contemporary panorama. She lives and works in New York, and has exhibited her projects and artworks all around the world. Among them latest ones we can name NPPAP - Yong Gwang Nuclear Power Plant Art Project, commissioned by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2010), Earth – Water – Fire – Air, Hermes (2009), Kimsooja, Baltic Center (2009) and Lotus: Zone of Zero, BOZAR, Brussels (2008), as well as other emblematic ones like Artempo: where time becomes art (2007) presented at the Venice Biennale, Cities on the Move (1997-2000) and Traditions/Tensions (1996-1998), and the participation in other biennales like Moscow (2009), Whitney Biennial (2002), Lyon (2000), São Paulo (1998), to name some.
Kimsooja has been working for two years on a series of a 16 mm film project called Thread Routes. She has completed the Peruvian chapter on weaving culture and the European chapter on lace making is being developed. The project about origins of textile culture includes India, Mali, China, and Native America.
─ Arte Al Limite, March 2012, pp. 30–38
2012
From blue to violet. The nine minutes of To Breathe: Invisible Mirror/Invisible Needle involve a lifecycle of the color spectrum, an electronic spiritual autobiography of red-yellow-blue sanctified at the four hard edges of the screen. These are colors that command, rather than pacify, the eye; the problem, to borrow Duchamp's phrase, of being "up to the neck in the retina," here becomes a compelling visual solution, an optical tease with metaphysical consequences. "My motivation for creating this piece was to question the depth of the surface," Kimsooja has said. "Where is the surface? What in the world is there between things?"
These migrating color fields, these on-screen anti-surfaces, frustrate the eye, if only temporarily; the effort here is to re-educate our visual intelligence, to make the eye more buoyant, less habituated. What Kimsooja calls her interest in in-betweens – in those enigmatic medial spaces that can be intuited but never experienced simultaneously – gives this work its itinerant sensibility, and it is this skepticism of the surface that disaffiliates To Breathe from a mid-twentieth-century aesthetics apotheosized by Barnett Newman, Ellsworth Kelly, Anne Truitt, Robert Ryman, etc. A more suitable list of aesthetic influences might include: magic lantern shows, Stan Brakhage films, Technicolor, stained glass windows, and also Cézanne, whose attraction to what he called "the meeting of planes in the sunlight" might describe another visual corollary to this work: the sensation, the flicker of colors, produced when staring at the sun with one's closed.
The two channels. The inhale-exhale component of the soundtrack forms its metrical unit: the couplet. The rhyming of inhale and exhale is made possible by an activity (breathing) which, in this instance, becomes increasingly less agile, more labored and urgent. Once the last exhale is replaced by the low, monophonic sound of humming, however, we assume that a change in condition has taken place, that a transaction between physical and spiritual experience has culminated in repose. And yet, Kimsooja's colors continue their gestation; the juxtaposition of an uninterrupted, trifurcated human hum and an image with no reliable surface and no discernable visual plane is the technique of a stereoscopic aesthetics. The effort is toward two radically dissociated channels of information that cannot be unified by the eye alone, but that require a bit of imaginative thinking and mental ingenuity to grant their coalescence.
But to think imaginatively entails a sensorial leap of faith and a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that often feels peculiar and difficult, but that is also necessarily clarifying and inventive. Hence the statement by Kimsooja: "I don't believe in creating something new but in inventing new perspectives based on mundane daily life." The result plays like an ecstatic vision; a flash of light and sound that transforms Duchamp's "retinal element" into an instrument – a needle to thread and combine, a mirror to duplicate and rhyme – for achieving the movement from surface to spirit.
─ May 2012
2012
최윤정
I first want to express my gratitude for being part of our opening exhibition. Since this is your hometown, I'm sure this would be a particularly emotional experience for you. Do you mind sharing with us your impression of the participation? Is this your first exhibition in Daegu?
김수자
I have worked in Daegu, perhaps in the late 70s. It was the 'Daegu Contemporary Art Festival" hosted by Daegu Daily. I was able to work with Kim Yongmin on an event for the occasion. We took the train from Seoul, wore orange vests and went about collecting things without saying a word to each other. We collected anything and everything. The exhibition was at the Maeil Daily Gallery, and our work involved installing collected objects. I remember I made a small stone grave of sort with the pebbles, sand, garlic and tree branches I
found out in the field. So this is the first exhibition since then, and actually a first ever solo exhibition in Daegu. This certainly is an emotional experience, and to be able to meet with the audience and citizens of Daegu through my work makes the exhibition all the more special.
최윤정
The exhibited work here is 'Needle Woman (2005).' If the first Needle Woman series that took place from 1999 to 2001 were to be considered a kind of sacred ritual wherein the Needle Woman perceives the body as a 'needle' in the midst of the throngs of people, it seems as though the 2005 work confers additional significance. How would you differentiate the two projects?
김수자
In the early 'Needle Woman' my body would operate as one symbolic needle or medium, a certain 'axis of space.' This is why the sites I sought out were where I could meet many people. Especially in the metropolitan areas like Tokyo, Shanghai, New York and London, my performance was in real-time, carrying out the mind of embracing the people I meet. The 2005 piece exhibited here is similar in that it is also a performance, but this time it is not a performance shown in real-time. Rather, it is in a kind of 'slow-mode' where my body is brought to point zero, now as an 'axis of time.' In other words, it is a work where the temporal difference among my body(Zero-time), slow mode(extended-time) and the audience(real-time), and the changes on the psychological dimension rising from such difference could be explored more in depth. I looked into countries that symbolize factors of conflict in politics, religion, culture and economics; post-colonial Cuba, Chad; poverty-stricken, violence-laden Rio de Janeiro; Sana'a, Yemen and Jerusalem, Israel where religious, cultural conflicts are ongoing; Patan, Nepal where civil war remains. This is based on the very question about condition of humanity. After the Iraq-war, violent crime was rampant in the world. So this work shows a longing for peace. Despite the conflict, discord, poverty and strife, when the performance footage from each city is brought into one space, temporally extended into 'slow-mode,' one realizes that there is human's universal nature to be found.
최윤정
I'm aware that this work is originally intended to be displayed consecutively alongisde each other on one wall. I would like to hear more about the relation between a work and the mode of installation proper to the work.
김수자
Every city has its own particular problems, and when these problems are laid out on one wall in one space, and when these are stretched out in time, I believe that real existing problems starts to unravel and become allayed. And what remains is the essential. Perhaps the work would be able to reflect the universality and origin commonly shared by humanity as well as express the possibility of reconciliation. Though it may be ironic to display countries with elements of conflict in allayed form, it contains my intention to portray the horizon of my viewpoint that faces towards the possibility of such a world. So that is an important visual element.
최윤정
When we look at your work, we start to understand the artist's body displayed as 'axis' and the work's significance through the performance scenes. It's also interesting to note the various responses of the crowd in different countries and cities. I'm sure there were many happenings at the sites of shooting.
김수자
The work in Yemen, for example, was at a vast marketplace. Many merchants and pedestrians were passing by, and there were a variety of shops including a music shop where they sold CDs and cassette tapes. There was local music being played from the shop, and since I had my back against them I was unaware of what was going on. Behind me was an elderly man dancing with a croissant-like sword which Yemenite men wear around their waists. At a glimpse, the scene may look violent or dangerous, but I was told that the dance was of Yemen's traditional ritual, performed at weddings and festivals. A cultural act characteristic of the place. It was so impressive to me.
최윤정
Then I'm sure you were exposed to actually dangerous situations.
김수자
Our work in Patan near Kathmandu, Nepal was during the time of the civil war. Employees of the Korean consulate office and other foreign consulate offices were being told to go back to their countries. I did look into the situation beforehand and concluded that it was not direly dangerous, so I decided to proceed. When I arrived in Kathmandu, armed soldiers were placed in every nook and cranny, and I frequently heard gun- shots from the hotel I stayed. The area was actually the site of ongoing contention be- tween the Maoists and the government, making it, in fact, extremely dangerous. I was also a slum called Rocinha in Rio de Janeiro. Being one of the biggest slums (favela), the area was laden with topless young men with guns around their waists and drug dealers. One day I went up to the rooftop to take a view of the mountainside that was surrounded by houses crammed against each other. Then suddenly I heard gunshots right behind me as well as across from where I was standing. Uneasy about not knowing what was happening, I later found out that it was an occasion where drug dealers exchange signals when conflict is triggered.
최윤정
In the process of researching data and references of critical reviews and interviews, I personally wanted to ask this question. There are cases where 'shaman' or 'shamanistic act' is mentioned in relation to your work. I assume that this is largely due to the fact that your performance itself takes on the attitude of a medium, mediating between humans, between worlds. What do you think about this expressions?
김수자
Well, during the act of wrapping and sewing fabric(or folklore object) of primary, traditional Korean pure colors, there were moments when I felt that the energy I had was shamanistic. But since calling it shamanistic would mean it is a religious activity, I think it is a bit closer to 'Zen' in Buddhism. When I was in Shibuya, Tokyo to carry out my walking performance, I saw throngs of people passing by Shibuya and could not but pause where I was standing, and piles of outcries accumulated within me besieged by like a whirlwind of silence. I'm thinking that to hear that sound might be closer to an act of 'Zen' and that the decisive moment of artistic act occurs from this experience. I believe it is through this that the inexplicable energy and the creative act of the artist as a transcendental act - an act that seems to completely demolish that energy, time and space - could be better explained.
최윤정
Likewise, what I zeroed in on was the possibility of interpreting this more in connection with the aspect of cultural archetypes and elements of the humanities, rather than with the shaman as an agent. In this respect, the historical origin of shaman in Eastern culture finds its context in Confucian, Buddhist and Taoist thought, also showing parallels to the Confucian sage and the Taoist hermit. This surely isn't a common topic, though very interesting. I'm sure that this also makes the interpretation for the contemporary artist so fertile.
김수자
Because my work is a result of a general rumination over the problem of how to obliquely present my viewpoint in the larger context of contemporary art history and performance art, thus it requires a consideration of diverse aspects that cannot be tackled merely from the viewpoint of 'shaman,' energy, or spirit-possession. Again, this must be contextualized in contemporary art as well as incorporate different viewpoints, that is, the four points of viewing the world. If I performed the Needle Woman towards four, or eight, directions, there is also Sufism, where the idea that this world-encompassing act is the act of love for mankind and the extent to which this love should reach are expressed in a kind of poetic language. In other words, I am saying that rather than viewing this as one phenomenon in our culture, an attempt to combine complex and multilateral interpretation is needed. The combination of, say, the context of contemporary art, both the position of obliquely expressing the performer's contextual thought and the position of a medium, the position of Zen, Sufism, the cruciform structure in Christianity, the viewpoint on sacrifice, etc. Hence, I believe that it is possible to speak of various viewpoints in a complex manner.
최윤정
Because your performance incorporates regions of conflict, some might think of your work as a journalistic effort to bring awareness about certain situations.
김수자
I am not interesting in tools of social change utilized for direct incitement about the situation itself. But I stand in the position of always being conscious of such problems, of looking at the situations and of mediating to help look at the situations. This has less to do with trying to solve the problems through a direct, one-to-one contact with every state of affair than the effort to help immerse oneself in the situation by means of contemplation and taking a transcendental stance. The next depends upon audiences. They will be able to experience each different dimension, following their own memories, sensibilities, and capabilities.
최윤정
The word 'nomadism' also makes a frequent appearance in references to your work. I was looking at past interviews, and there were no negative mentions in relation to this. I also remember you mentioned this as a 'life style' of the modern man, whereas the critics had no hesitation in connecting nomdaism with bottari(bundles) as a symbol of moving and relocating. At the Whitney Biennale, you wrapped the table with traditional Korean fabric, which was called nomadic (by Yi-Jinkyung). I agree with this view. Rather than bottari symbolizing moving, relocation or sedentism, it seems to be where new values are generated from the collision under a table cloth with traditional patterns, covering self-identity, familiar cultures which have been put in a different culture.
김수자
Yes, I agree as well. But I also think that the very process of my act can also be considered nomadic. In this respect, whether it is fabric spread out in Whitney Museum or the Bottari truck at the Venice Biennale, are they not all parts of a nomadic act displayed? After all, contemporary people live in a time where living a nomadic life is inevitable. So now nomadism is not close to live in free and easy retirement and echo-friendly but in hectic Urban-global-business as prag- matic meanings. Constantly, world wide-communication and 'omnipresent Nomadism' is rampant. I believe that my work is a natural result of my real-life wrestling with personal problems and agonies. It was not my original intention to fit my work into a specific framework of nomadism or cultural context.
최윤정
I got the sense that 'Needle Woman' (2005) was in line with your preceding works such as 'Sewing into walking' (1995) that commemorates the victims of the Gwangju massacre, 'D'apertutto or Bottari Truck in Exile' (1999) dedicated to the victims of the Kosovo War, and 'Planted Names' (2002) that recorded the names of the black slaves victimized in the plantations of South Carolina. This aspect was also noted in Oliva Maria Rubio's review. I start thinking that your work might show an activist's appearance already from the very content it contains.
김수자
That's possible. Some view my work as Minjung art. It isn't entirely wrong, but I believe my work contains both modernism and Minjung art elements. Aesthetically, my work always is in the realm of the abstract(form) and the representational (reality). Thus without connecting a certain collective movement(Modernism or Minjung art) or any other groups, In spite of all this, I adamantly refused to take a political stance, thus independently going about my own way. In the case of Minjung art in Korea, it rises from the basis of the absurdities of the times and political realities, but for me, problems on a more personal level, especially the ontological passion of an individual, self-contradictions and self-love had priority. If those ten-something years of passionate acts of sewing were to be viewed as processes of healing within the self, once the healing was thought to be complete, I turned to the healing of the other. Of course even during the times of sewing, the individual as the 'self' was, let's say, not so much a revealer of some hidden story or identity. Because it was through the borrowing of the other's body, the other's pain that I dealt with my own pains and passions, the physical healing of sewing was transformed into 'Needle Woman,' a way of healing without acting. The idea of the nomadic is also something about emptying your space. It's not about setting your own space and building your own territory. It's about constantly opening and dissolving oneself to another world through self-negation, a constant experience of numerous processes of this sort.
최윤정
There is, of course a critical consciousness that comes from internal situations as an artist before the needle work times. Such process continues till now, and coupled with 'mediation', you cast it back to the relation between yourself and the world, between humans, all the way to the relation between elements in nature. I want to hear an elaboration on 'relation'.
김수자
The first work with sewing was actually a visual expression of a certain relation. It is a kind of statement I made as an artist, a statement which I still hold fast to, and through fabric as tableau(surface), needle as a symbolic brush and artist's body. The stage of my work was comprised of a passion for surface I had as a painter, believing that such surface could be the other as well as myself, a kind of 'mirror,' a study of otherness. Thus, the act of sewing is one that traverses the division between the self and the other, for it intends to question and subsequently find the answers to the questions. In this sense, such an act may be considered a personification of the problem of painting in its form. That is, 'surface' became 'character.' Onto-logically it became the 'other,' and in turn occupies an equivalent position as a medium. In terms of the medium, this also made it possible to unfold upon a surface the studies on form as well as questions of mankind and essence. Thus this makes one, not two.
최윤정
The breadth of the genres in which you work seems broad, ranging from installation to video and sound. You approach such diverse genres and forms, and I want to know whether there is something you intend to convey in your choice of each genre?
김수자
Well. When I move from sewing to wrapping objects, and from there to wrapping bottari, the passage is not guided by a kind of logic or preconceived idea but rather by an immediate response. It is an accumulation through an instant impulse, an artistic will that is proper to me. But in retrospect, I certainly see an internal logic or sensibility at work. Thus, the wrapping work was possible because the properties of wrapping were already implicit in the original questions I had towards flatness and the properties of sewing. In other words, such things were naturally unraveling out of my body. As a flat bottari, it was discovered from within me, then naturally connecting to artistic im- pulses. I frequently feel like I am being led by something. Different from intending something, I feel led to a place where I have no other choice but to act, and such an act becomes the ground for the next project. After the bottari project, clues to the problem of ideas and media fitting to the experience of a new space were discovered. For example, what enabled me to think up the weaving sound at a weaving factory was the experience of the weaving factory space at 2004 Lodz biennale in Poland, an empty room similar in structure to this project room. It was a case where I became conscious of my body as it felt like I was hearing the sound of weaving machines where weft and warp intersect. In the end, I realized that our inhalations and exhalations are like weaving, and started puzzling over their meaning beyond mere yin and yang, but its connection to life and death. This is what led me to the sound performance of 'To Breathe.' When it comes to choosing a new medium and intending its application, I invoke a new kind of thinking in the encounters with a new space, new culture, cultural archetype or natural structure. In this sense, rather than merely calling it a discovery of new media/genres, it might be more appropriate to say that the medium is discovered in the process of attempting to deepen the questions and concerns I initially carried. Thus my
selection of a certain kind of medium is triggered by the deepening of the concepts behind my work, not about the medium or genre itself. This is the same with my video work, where the camera lens confers a conceptual meaning in the context of connecting the world and people.
최윤정
You mainly work abroad. Do you mind sharing your exhibition plans for next year or projects you are either working on right now or are interested in working on?
김수자
A few solo exhibitions and group exhibitions are planned to take place for next year in Europe, Asia and USA. Especially I have to create the video project for the installation in the IOC Olympic Museum and in the border between Arizona and Mexico commissioned by the USA Government. Thus, next year I will so busy that I cannot take a rest. And another project I am working on right now stands at the antipode of the Needle Woman project. While the Needle Woman work centers on finding the trajectory of the needle, 'Thread Routes' is a 16mm film project which traces the trajectory of the thread. We had better guess the meaning of 'Thread routes' as 'Thread roots'. As the Roots(nature) seems to lead us to the Routes(road) on our necessary journeys.
─ Interview on December 5, 2011. from Exhibition Catalogue 'Kimsooja' published by Daegu Art Museum, Korea. 2012, pp.404-411.
2012
최윤정
대구미술관 마지막 개관특별전에 참여해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대구가 고향이다보니 감회가 새로울 듯 한데, 참여에 대한 소감을 부탁한다. 이것이 대구에서 첫 전시인가?
김수자
이전에 대구에서 작업 한 바가 있다. 아마 70년대 말, 대구일보사에서 주최한 ‘대구현대미술제'로 기억하는데, 그때 김용민 선생과 함께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함께 와서 오렌지색 조끼를 입고 야외를 다니면서 각자 서로 얘기하지 않고 무엇이든 채취를 하는 행위였다. 매일신문사 갤러리에서 전시하게 되었고, 채취한 오브제들을 그곳에 설치하였다. 그때 들에서 주운돌, 모래 그리고 마늘, 나뭇가지들을 가지고서 조그만 돌무덤 같은 것을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이후로 처음으로 대구에서 하는 전시이자 첫 개인전이다. 그래서 사실 감회가 깊고 또한 대구 관객들, 시민들을 내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특별한 전시이다.
최윤정
이번 전시작품은 '바늘여인(2005)'이다. 1999년도에서 2001년도 바늘여인 첫 번째 시리즈가 많은 군중들이 집결해있는 장소에서 '바늘'로서 몸을 인식하고 또한 '바늘여인'으로서 행하는 일종의 성소적 의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면, 2005년도 작품에는 또 다른 의미들이 부가된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입장에서 두 시리즈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달라.
김수자
초기 '바늘여인'은 내 몸이 하나의 상징적인 바늘 또는 매개체로서, 하나의 '공간의 축'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주로 찾아가 멈추어 섰던 장소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거리, 특히 메트로폴리스들(도쿄, 상하이, 뉴욕, 런던 등)이었고, 거기에서 모두를 만나고 그들을 포옹한 마음을 리얼타임 퍼포먼스로 펼쳤다. 2005년도 작품은 같은 퍼포먼스임에도 불구하고, 초기 리얼타임으로 보여지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슬로우 모드'로써 이제는 내 몸을 '시간의 축'으로 삼는다. 그래서 나의 몸(정지의 시간성), 슬로우모드(확장된 시간성), 그리고 관객(리얼타임)의 시간적 차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인 차원의 변화들을 더 심도있게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나 종교, 문화 그리고 경제 등 갈등적 요인을 상징하는 나라들을 찾아보았다.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 대한 쿠바, 차드 그리고 빈곤과 폭력 이런 것들에 노출이 되어 있는 리우 데 자이 네이루, 종교적 문화적 갈등을 겪고 있는 예멘의 사나와 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시민전쟁 등이 벌어지고 있던 네팔 파탄. 이것은 인간의 조건(condition of humanity)에 대한 의문을 바탕으로 한다. 이라크 전쟁이후 혼란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 속에서 평화를 갈망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분쟁과 불화와 빈곤과 갈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로우 모드'로 시간을 연장시킴으로써, 각 도시들이 한 공간에 놓여있는 경우, 그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보편적인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최윤정
원래 이 작품은 벽면에 모두 함께 연속적으로 설치되는 형태를 갖는다. 작품과 고유한 설치 방식이 갖는 연관성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듣고 싶다.
김수자
사실 각 도시들은 각기 다른 특징적인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것들이 한 벽면에 한 공간에 놓여져 있을 때, 그리고 그 시간을 슬로우 모드로 표현해 보일 때, 실재하는 문제들이 유화되어 풀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쩌면 인류 전체가 갖고 있는 보편성과 원형성을 비추고, 또한 화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표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갈등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을 유화된 모습으로 함께 보여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겠지만, 사실 그러한 세계를 향하는 내 시선의 지평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또한 의도이다. 그래서 그 부분이 이 작품의 비주얼한 요소로서 중요하다.
최윤정
작품을 보면 '축'으로서 보여지는 작가의 몸, 이를 통한 퍼포먼스 장면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헤아리게 된다. 또 한편으로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각 나라마다 각 도시마다 군중의 반응이 참 재미나다는 생각이 든다. 촬영현장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을 것 같다.
김수자
예멘에서의 작업을 얘기하자면 내가 퍼포먼스하고 있는 그 거리는 굉장한 시장통이었다. 많은 상인과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이제 그 중에는 씨디나 테잎을 판매하는 뮤직숍도 있었고, 거기서 그곳 특유의 음악들이 흘러나 오고 있었는데, 퍼포먼스하면서 뒤돌아 서있었으니 그때는 몰랐지만, 내 뒤에서 어떤 노인이 예멘 남성이 복부에 차는 초승달 모양의 칼을 빼고 춤을 추고 있었다. 얼핏 보면 폭력적이고 위험한 장면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예멘의 전통적인 춤 예식, 결혼식 혹은 축제 때 추는 춤이었다. 그곳만의 문화적인 행위로 나에게는 정말 흥미로웠다.
최윤정
반면에 직접적으로 위험한 순간에 노출 된 적도 있었는가.
김수자
네팔 카트만두 인근 파탄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시기는 시민전쟁이 벌어졌던 때였다. 그때 한국영사관, 외국영사관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고 그러한 상황이었다. 알아보는 데로 크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겠다 판단해서, 떠나기로 결심을 하였다. 카트만두 골목 곳곳에 무장한 군인들이 서 있었고 내가 묵었던 호텔 인근에서조차 총성이 들려왔다. 사실 그 주변에 있었던 마오이스트들과 정부간 분쟁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는 로시나(Rocinha)라는 빈민촌으로 가장 큰 슬럼가(favela) 중 하나였다. 거의 반라의 젊은 청년들이 양 허리에 권총을 차고 각 골목 코너에는 마약 중개상들이 앉아있기도 하였다. 어느 날 옥상 위에 올라가서 그 빈민촌 주택들이 빼곡히 둘러싸여 있는 산 전경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그리고 바로 맞은 편에서 총성이 울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라 불안하였는데, 알고 보니 마약 중개상들이 서로를 위협하는 총성이었다.
최윤정
비평자료들, 인터뷰 자료들을 찾아보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내 나름으로 꼭 이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작가 김수자와 작업에 관련해서 '샤먼', '샤먼적', '샤먼적인 행위'를 거론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작가의 퍼포먼스가 인간과 인간을 매개하거나 세상과 세상을 매개하는 매개자, 수행이 느껴지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와 같은 표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김수자
글쎄.. 80년대에 아주 원색적인, 한국 고유의 오방색 천들(혹은 민속오브제)을 사용해서 매고 감고 꿰매고 감싸는 행위들을 할 때, 나는 내가 품은 어떤 에너지가 샤먼적이라고 느낀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 샤먼이라고 한다면 일종의 종교적인 행위이고, 오히려 나의 경우는 이를 불교의 '선(zen)'에 더 가깝지 않은가 생각한다. 처음 도쿄 시부야에서 워킹walking퍼포먼스를 하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 시부야의 수많은 인파들이 오고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 순간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고 내부에 쌓여있는 '외침들이 마치 침묵의 회오리처럼 나를 감싸 안았다. 작가의 예술 행위에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그러한 경험에서 생성된다고 본다. 그것이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 그리고 그 에너지와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파괴하는 듯 초월하는 행위로서 예술가의 창작을 보다 잘 설명하는 것이 아닐까.
최윤정
마찬가지로 내가 주목한 바는 행위자로서의 샤먼보다도 이를 문화원형적인 측면, 인 문학적인 요소와 연결지어 독해할 수 있지 않은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관련해서 동양의 문화
가 가지고 있는 샤먼 역사의 기원, 그것이 유불선 사상과도 연결되는 문맥이 있고, 그 역할이 유교의 성인, 노장사상에서의 신선과도 원형적 으로 문맥상 연결이 된다. 흔치 않으면서 아주 흥미로운 주제였다. 이것은 현대예술가에 대한 해석을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김수자
이것은 우선적으로 예술적인 행위이자 동시대미술사 내지는 퍼포먼스의 문맥 안에서, 내가 어떤 관점을 우회적인 방식으로 선보일 수 있는가 전반을 고민하여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샤먼' 즉 전적으로 접신이나 에너지 의 측면에서만 볼 수 없는 다양한 측면을 고려 할 필요가 있다. 구조적으로는 기독교적 측면, 불교, 도교적인 측면도 포괄한다고 본다. 그리고 다른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4개의 관점. 제가 그 4방 혹은 8방을 향해서 바늘여인 퍼포먼스를 했다고 한다면 그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행위는 사방을 향한 '인류애'의 행위 그리고 그 인류애가 어디까지 위치지어져야 하는가를 일종의 시어로 표현한 수피즘도 있다. 즉 우리 문화의 어떤 한 현상으로 보기보다는 아주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해석을 결합할 필요 가 있다.
최윤정
보통은 분쟁적인 요소가 있는 지역이라면 혹자는 작가의 퍼포먼스를 일종의 저널리즘으로서 사태를 인식시키는 내용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수자
나는 사회 변혁을 위한 도구로서, 사태 자체를 직접적으로 선동하는 그러한 부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단지 그러한 문제점들을 늘 인지하고 있고, 바라보는 자로서 또한 바라볼 수 있게끔 매개하는 입장에 서있다. 이는 각각을 일대일 관계 안에서 해결해 보이려는 게 아니다. 관조하면서도 초월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바다. 그 다음은 관객의 몫이다. 개개인의 경험과 감수성, 또 지적능력에 따라 각기 다른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최윤정
노마디즘에 대해 말하고 싶다. 기존 인터뷰 내용들을 보니, 작가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종의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로서 언급했던 바가 있다. 오히려 비평가들은 이동과 이주를 상징하는 보따리와 노마디즘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진경은 휘트니 비엔날레 시기, 테이블에 우리나라 전통 천을 씌웠던 작품을 보고 그것이 과연 노마디즘적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공감하는 바다. 오히려 이동이나 이주 및 정주를 상징하는 보따리보다는 자기 정체성, 습득하고 있는 고유한 문화 등이 이질적인 곳에 전통문양의 테이블보를 덮어씌움으로써 그 안에서 충돌하면서 새로운 가치가 생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김수자
나 역시도 그러한 시각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또한 물론 거기에는 내 행위의 어떤 프로세스가 노마딕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의미에서 휘트니 뮤지엄에서 천을 펼쳐놓았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보따리 트럭을 가져다 놓았건 어쨌건 간에 그 또한 노마딕한 행위의 부분으로 드러날 수 있다. 어차피 현대인들 모두가 라이프스타일로서 노마딕한 삶을 살지 않을 수가 없는 시대이다. 그래서 현대의 노마디즘은 과거의 유유자적하고 자연친화적인 것이기보다는 실용적 의미에서 숨가쁜 도회적 사업(Urban global business)에 가깝다. 쉴새없이 세계적으로 소통하고 무소부재한(Omnipresent) 노마디즘이 횡행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내 작업은 그야말로 자연과 관계를 맺으면서, 개인의 삶의 방식과 필요성들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펼치고 떠나가는, 노마디즘이라는 어휘조차도 필요하지 않은 그런 곳에 있다. 삶 속에서 저 개인의 고민과 문제점이 자연스럽게 펼쳐진 결과이다. 애초 노마디즘 자체 프레임 안에서 이루고자 했다든지 문화적인 문맥으로 의도한 바는 없었다.
최윤정
이번 바늘여인(2005)에 대해서 실은 전작들, 광주학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업
김수자
혹자는 내 작업을 민중미술로 읽기도 하였다. 내 작업은 모더니즘과 민중적인 부분들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미학적으로 추상과 구상 두 양식 과의 평행선에 있다고 보고, 나는 추상적(형식적) 영역과 구적 (현실적)영역을 함께 다루어 왔다. 어떤 집단적 운동(모더니즘 혹은 민중미술)이나 단체와 연계하지 않은 채,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내 길을 택해왔다. 그리고 민중미술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경우 시대적 모순 정치적 현실을 기반으로 일어난 것이지만, 사실 나에게는 개인의 문제, 특히 제 개인의 존재론적인 열정이나 자기모순, 자기애가 그보다 우선이었다. 십여 년간 바느질sewing 작업을 행했던 그 모든 과정들을 열정을 보이고 자기에 대한 치유과정이었다고 한다면, 어느 순간 그 치유가 완료되었다 생각한 순간부터 나는 타인에 대한 치유에 많은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물론 바느질 작업을 하면서도 '나'라는 개인은 항상 뭐라 그럴까. 나의 보이지 않는 스토리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기 보다 타인의 몸을 빌려 즉 타인의 고통을 빌어서 나의 고통과 열정들을 담아왔기 때문에, 바느질이라는 물리적인 치유는 '바늘여인'이라는 행위하지 않으면서 치유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노마딕하다는 것 자체도 늘 자신의 자리를 버리는 자의 입장이 된다할까. 그래서 자신의 자리를 설정하고서 자기만의 성을 쌓는 게 아니고, 항상 자기 부정을 통해서 또 다른 세계로 자기를 열고 또다시 해체하고... 이러한 무수한 과정 들을 끊임없이 겪게 되는 행위들, 그러한 행위 가 또 다른 형태의 문답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오기도 한다.
최윤정
바느질 작업 이전 시기 예술가로서 자기로서 내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상황들로부터 비롯된 문제의식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 과정이 지금 현재까지 이어져 '매개'와 더불어 본인과 세계, 인간과 인간, 자연의 요소적 관계에까지 소급해가는 것으로 보이는데, '관계'에 대해 보다 심도있는 의견을 듣고 싶다.
김수자
사실 최초의 바느질 작업 자체가 하나의 관계에 대한 시각적인 표현이었다. 일종의 예술가의 진술로서 늘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견지 되고있는 바다. 화가로서의 입장이 천이라는 따블로(Tableau)와 바늘이라는 상징적인 붓(brush), 도는 작가의 몸(body)을 통해 견지되어 왔던 바이고, 바느질은 따블로/평면에 대한 물음으로 점철되었고 그 평면은 타자(the other)이자 거울(Mirror)이었다. 그래서 바느질 행위는 자아와 타자의 구분을 넘나드는 행위이고, 이에 대해 의문을 갖고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형식상에서 회화에 대한 문제를 의인화시킨 것이라 보면 어떨까 한다. '평면'이 '인물'이 된 것이다. 내가 그동안 회화의 형식적인 탐구를 해온 것과 동시에 삶과 인간에 대한 탐구를 평면을 빌어 해 올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조형적 양상과 삶의 양상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윤정
장르의 폭이 넓다는 생각이 든다. 설치 작업에서부터 영상작업, 사운드 작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와 형식들에 대해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는데, 혹여나 각각의 장르 선택에서 의도하는 바가 있는가.
김수자
글쎄... 바느질sewing에서 오브제를 감싸는wrapping 작업으로 넘어가고 또 그것이 '보따리'로 감싸는 작업으로 넘어갔을 때, 그것은 사실 내가 어떤 논리나 미리 계획된 아이디어에 의해서 결정을 하는 것이기 보다는, 아주 즉각적인 반응에 더욱 근접한다. 거의 순간적인 예술충동이자 제 고유의 예술의지로 쌓여왔던 것이고, 그런데 또한 되돌아보면 그 안에 내적인 논리나 감수성 역시 있었던 바다. 그래서 감싸는wrapping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최초로 의문을 갖곤 하였던 평면성과 바느질의 속성, 바느질 행위가 지니는 속성 안에 이미 그 감싸기wrapping의 속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저절로 내 몸 속에서 풀어져 나온 것으로 생각한다. 평면적인 보따리 bottari로서 어느 순간 내 안으로부터 발견이 되었던 것이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예술 충동에 의해서 연결이 되기도 하고, 뭐랄까 무엇으로부터인가 이끌린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의도라기보다 이끌려 행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 행위가 결국은 다음 작업의 근거가 되어준다. 보따리 이후에는 새로운 공간의 체험을 통해서 그에 맞는 아이디어나 매체에 대한 실마리를 더욱 풀게 되었다. 이를테면 직조공장 위빙사운드를 생각해 냈던 것은 폴란드 우지(Lodz)에 비어있는 직조공간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내 몸과 직조기계의 움직임을 병치하면서 들숨날숨과 직조의 유사성을, 또 음양의 요소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호흡(Breathing)사운드 퍼포먼스를 2004년도 우지비엔날레(Lodz Biennale)에서 선보이게 된 것이다. 나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선택과 적용 의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새로운 공간을 만나면서 혹은 새로운 문화, 문화적 원형, 자연적 구조 상에서 새로운 발상을 떠올린다. 그것은 미디어/장르를 발견하는 것보다 기존에 갖고 있던 나의 질문과 고민들을 더 심화되는 바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선상에서 미디어가 발견된다는 표현이 더 적합 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는 미디어는 작업개념의 심화에 따라 시작된 것이지, 미디어/장르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다. 비디오 작업 역시도 카메라렌즈가 세상과 사람을 잇는 선상에서 개념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에 시작된 바다.
최윤정
주로 해외를 중심으로 많은 활동을 선보이고 있다. 내년 전시 일정 및 지금 현재 진행 하고 있는 혹은 의미있게 바라볼 만한 프로젝트를 소개해달라.
김수자
내년에도 유럽과 아시아 미국에서의 몇몇 개인전과 단체전이 기획되어 있다. 로잔의 IOC올림픽 미술관과 아리조나와 멕시코 국경에 설치할 미국정부에서 커미션한 비디오 설치 작업들로 쉴 새 없이 일해야 할 것 같다. 그 외에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바늘여인의 대척점에 있는데, 바늘여인이 바늘의 궤적을 찾는 작업이라면, '실의 여정(Thread Routes)이라는 실의 궤적을 추적하는 작업이다. 'Thread roots'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Roots(근원)로부터 Routes(길)에 도달하는 삶의 여정이라고 할까.
대구미술관 프로젝트룸(B1F), 2011년 12월 5일 월요일
참여: 김수자 작가/ 진행 : 최윤정 큐레이터
─ Interview on December 5, 2011. from Exhibition Catalogue 'Kimsooja' published by Daegu Art Museum, Korea. 2012, pp.404-411.
Suh Young-Hee (Art Critic and Professor at Hong Ik University, Seoul)
2012
When the vertical and the horizontal meet, they form a cross. As they come together as a cross, harmony comes forth in a relation of interdependence. Even when seeing the horizontal line and the vertical line separately, we easily conjure up their intersection. From the early ages of primitive culture or ancient culture, the repetition or rearrangements of the horizontal and vertical lines were used as signs for arithmetic, or further as symbolic signs for communication and letters. The cross being formed as a result of the perpendicular intersection was considered a sign of perfection, more so than the square composed of two sets of equally measured horizontal lines and vertical lines, particularly because of the conception that its centripetal force was greater. The ┼ even when turned over to an ╳ was regarded as a sign of perfection that displayed harmony and completion. This is why the ancient Latins devised to write ╳ after the number nine, and the ancient Chinese also used ┼ as their sign for ten. The human body as a measure of the world is also in the form of a cross. The human limbs and organs are structured centripetally: the body with arms spread and legs together form ┼, and the copy of the human body drawn by Vitruvius in AD 1st century and later again by Leonardo da Vinci forms an ╳ with all the limbs spread apart. Furthermore, the cross symbolically signified the connection between the heavens - the world of the gods - and earth. Considered as a connection between the transcendental world and the secular world, the intersection of the horizontal line and the vertical line is also called the 'world's axis.' Let us look at the cross in Christianity and the swastika(卍) in Buddhism. The former signifies the tribulations on earth and glory in heaven and the latter refers to the cosmic symbol of the connection of heaven and earth; both imply psychological healing as well as religious salvation. Thus in Western culture, the cathedral - the dwelling place of God - had as its basis the floor plan of a cross as well as the cruciform vault, and the mandala in Hinduism and Buddhism had as its basic structure the cross intersection of the horizontal and the vertical, symbolizing the order of the cosmos that pointed towards the heavens and the earth. The cross structure, divided into four areas of the upper-lower hemispheres and the left-right hemispheres, also symbolized the different aspects of a human being: the cognitive and sensory, the intuitive and affective. One can find both in the Confucianist Book of Changes and in Buddhism that the four directions in the horizontal-vertical intersection symbolize the cosmic order formed by water, earth, fire and wind. As is well known, the Korean vowels also make use of the horizontal and vertical lines: ㅡ as earth, ㅣas the sky, and the middle dot as the human.
The horizontal-vertical form frequently appears in art as well. From the primitive arts to contemporary, from decorative art to fine art, the horizontal-vertical lines generally appears as signs that signify the universe and man. When looking at ancient art and primitive artifacts, one frequently finds horizontal-vertical intersections, cross structures, and grids on murals, ceramics, textile and basket weaving, etc. As explicated in art psychology, this phenomenon may be derived from the human effort to control and impute order upon a world, or nature, that is otherwise too vast and unpredictable. Wilhelm Worringer, too, explains the horizontal-vertical structure in his 'Abstraction and Empathy' as an order standing in contrast to the disorder of nature. Commentaries on abstract art generally mention Cezanne's attitude that reorganized nature into a sturdy order of geometry as well as the geometric abstraction of Kandinsky and Mondrian's horizontal-vertical system and Klee's hieroglyph-like symbol paintings as a way to elucidate that the context of the horizontal-vertical system is the expression of the abstract painters' worldview. This form of argument, taking the form of structuralist epistemology, argues that the horizontal-vertical structure perceived as a symbol of man and the universe has been generally inherited in artists from the primitive ages to contemporary times (i.e., ranging from the grid work in minimalist paintings to cross-like shaped-canvas). The cross as an intersection of the horizontal and vertical lines is an extremely condensed sign, implying with the lines' directions all five senses of humans, inner psychology and even spiritual content, thus rendering inevitable to admit that the artist's faculty for abstraction operates in tandem. The anthropologist Levi-Strauss, having been much interested in art, explains in his "Elementary Structures of Kinship" that the basic structure of dichotomy that formed an internal relation of interdependence is effectively at work in various cultures and arts, an argument aided by the Saussurean intersection of the diachronic and synchronic (horizontal and vertical, respectively) axes.
Kimsooja, the subject of this article, is surely a painter, though she does not paint on the canvas. Instead, she is an artist who takes as her premise the horizontal-vertical structure as a general order for the world and mankind, further expressing this premise by coupling it with metaphysical thought. In this respect, the works of Kim is an interesting metaphor on the world, her series a continuous metonymy on the horizontal-vertical structure. The meditation on the basic structure of the horizontal and the vertical is consistently in effect as the logic and archetype of her production, manifested from the fabric-weaving series, "Sewing," through "Deductive Objet" all the way to the "Needle Woman" series and "Earth, Water, Fire, Air" series. In this respect, it is important to remember that the artist herself has repeatedly mentioned in interviews – and especially in her master's thesis, "A Study on the Universality and Hereditariness of the Plastic Sign: A Focus on the Cruciform Sign (1984)" –that, like the Eastern yin and yang, the binary structure of the horizontal and vertical is the fundamental system which encompasses and composes the world. This article intends to examine, albeit briefly, the transition of Kim's thought from canvas to fabric as well as how the horizontal and vertical lines and their cruciform intersection are actualized in her work.
For Kim, the tools for expression are no longer limited to the canvas, paint and brush. The flat surface and rectangular stretcher of the canvas is but a tool for representation, whether concrete or abstract, a rigid device that in inapt to take the place of the free flow of thought. Thus the artist selects from fabric, a flexible material among the components of the canvas. The "Sewing" series (1983-1988), the first work with fabric, brought forth works of indeterminate forms, sewing together various scraps of fabric. If one would insist on calling these pictorial art, would it be considered a kind of Color Field abstractionism? But in contrast to the hard-edge or Color Field paintings of 70s America, one does not find the homogeneity of the color surface or a precisely cut contour. Rather, the different scraps of fabric, varying in size and stained with traces of drawing, are connected without being tidied up – their surfaces rugged, edges irregular and seams tattered. In place of an artist's will for perfection, the materiality proper to fabric is wholly accentuated. Even still, this should not be categorized under a kind of Dadaist act of choosing anti-aesthetic objets or a tendency for conceptual art. Fabric and sewing is Kim's subject matter by which she expresses the world of humans like herself–entangled, knotted, and contemplating the fundamental structures of the world. Pieces of fabric are linked both horizontally and vertically, sewn in a manner that is interdependent and mutually supportive. As a result, the fact that the 'woven' scraps sustain a horizontal-vertical structure without sagging down despite the disappearance of the stretcher is called to our attention. Replacing the wooden stretcher, the source of the tautness that pulls the fabric is the relational device, that is, the 'countless stitches of sewing.' Thus is the support that holds the balance between gravity and the pieces of fabric.
Here, I would like to mention the source by which the work's order is formed: the binary structure between the tension of the needlework and the flexibility of the fabric. It is often regarded as merely coincidental this appearance of the working with sewn fabric pieces. As the artist repeatedly mentioned, this method suddenly crossed her mind in 1983 as she was tacking up the duvet cover with her mother. This anecdote is well known through various writings, but I reference it once more, for it offers a clue to the embarking of the artist's distinct art world: "In the quotidian act of tacking up bed sheets with my mother, I experienced an intimate yet wonderful sense of unity of my thoughts, sensibilities and actions. I found the possibility to contain such abundance of memory and pain, even the affection for life in that unity. The weaving of the weft and warp as a basic structure of the fabric, our primordial sense of color in our fabrics, the self-identification with fabric in the act of weaving through flat surface, and the strange nostalgia evoked in it… all of this was entirely mesmerizing." (The Artist's Notes, 1988 Gallery Hyundai) Later the artist reminisces this experience, remarking that the moment she tacks the pointy needle into the fabric, she feels the energy of the universe penetrating her entire body. This astounding anecdote on a rather serendipitous experience would be repeated in every of her interviews, becoming a clue that renews our awareness to what the archetype of her work is.
I would like to interpret the 'moment she tacks the point needle' into the duvet cover spread across the floor as a ground breaking moment of penetrating the surface screen of pictorial art that persisted for several hundred years. Like the Spatialist painter Lucio Fontana who pierced the uni-colored canvas with a sharped-edged dagger, Kim also realized pictorial art that was no longer a screen of illusion but a three-dimensional structure as she weaved through the surface of the duvet cover, piercing holes into it. What is of particular importance here is the perpendicular penetration of the needle into the sheets horizontally spread on the floor. This three-dimensional relation between horizontality and verticality is thought to be a decisive opportunity for Kim - only familiar with the illusion of the surface - to identify the reality of painting, or the hidden structure of the canvas. For some time, pictorial art has been identified as a conceptual representation of the illusion created by the screen of paint covering the canvas surface. But once the shift in thought takes place where the signifiers, or the structural elements – the materiality of color, the fabric of the canvas, the wooden stretcher that supports the screen – is thought to define the meaning of painting, the modernist equation of 'painting = flat, rectangular screen' is also rendered null. Further more, when one stretches the canvas or the bed sheets, it sees that they are also products of the horizontal-vertical system where threads are intersecting. When Kim decided to suspend the bed sheets in the exhibition center for the audience to be able to see both sides of the fabric, this method of installation was of particular importance in terms of confirming the three-dimensionality and spatial topology of fabric.
In any occasion of the "Sewing" series, one is able to find sewn horizontal-vertical joints. Taking "Heaven and Earth (1984)" has a representative example, the work is of a horizontal-vertical structure formed by sewing various-sized square fabric pieces. The contour is also in the form of a cross. Here we find the horizontal-vertical system, frequently encountered in the history of cultural anthropology, appearing as an component sign of the universe and the archetype of production. Other works such as "Earth," "Your Portrait," and "Wall" repeatedly display the cruciform sign, and one recognizes that this is a binary composition of the horizontal-vertical signifying the yin and yang. Around 1989, the "Deductive Objet" appears. This second series is significant in that it marks a transition from surface work to three-dimensional work. Composed of works that covers or wraps curios or everyday objects with fabric, this series is of the flexibility of fabric added to the rigidity of the objet. If the previous work was an inductive production where the needlework that gave fabric tension gradually worked towards completing a form, this series worked oppositely. The artist given from the beginning an objet already structured in a horizontal-vertical manner, then she works deductively to reveal its original form by wrapping fabric around it. The motivation behind this way of production, also known through interviews, was the allure of the plain and clear structural beauty inherent in antique articles like the carrier(ji-gae), the sliding door frame, the spool, the shuttle, the clotheshorse, the ladder, all that evoked old memories. Coincidentally enough, these everyday articles each form a horizontal-vertical structure. The simple geometric structural beauty found in the deductive objets of the laid carrier or the doorframe and the trapezoidal ladder – it is not so different from the horizontal-vertical mosaic structure found in the "Sewing" series. It may be considered different because of the shift from surface structure to three-dimensional structure and the changes in material, but the structural systems are equivalent between both series; one can say that thought made the transition from the plane geometry of the x-y axis to the solid geometry of the xyz axis where depth is added. "Untitled (1991)" a work where a large circular steel rim used by gymnasts covered by fabric may not seem like a horizontal-vertical structure. But if were to imagine this round three-dimensional objet that rolls through space to be spread out on surface, the horizontal-vertical structure of a long, narrow ladder is conjured.
When we notice that the rigid objet is the wooden support for the canvas and the tautly stretched canvas is the surface, the inference that this is another adaptation of the structural deconstruction of the canvas is possible. Before we go too far, it is necessary that we compare this with the analytic experimental painting movement, Supports/Surfaces, that took place in 70s France. Starting from a point of self-criticism on paintings, the artists of Supports/Surfaces revealed the very structure of the canvas in an effort based on structural epistemology to break away from the superior ideas in pictorial art, making various objets of binary oppositions by considering fabric and wood as signifiers that made meaning. It is difficult to know at the moment how much of this profound process Kim consulted, but a critical discourse that objectively reveals their inter-relation seems like a significant attempt to be made at another opportunity.
At any rate, the "deductive objet" series, formed from three-dimensional structures, also has a site-specific characteristic in that it acquires meaning when it is installed in a particular location. For example, cloths hung on the walls or those stacked on the floor of the exhibition hall can only form meaning by covering that particulate site called the exhibition hall. Needless to say, the hard wall and floor stand in binary opposite to the soft pieces of fabric, following the production archetype of horizontal-vertical. Rocks in nature and multifarious pieces of fabric in "Lying in Nature," which took place in the valleys of Oksan Seowon in Kyungju, and the table and bed sheets in the "Deductive objets", in which they are used as tablecloths in cafeteria and restaurant of Biennale, are another cases that they leave the exhibition halls and become reinstalled in the specific sites of nature and the city, realizing the horizontal-vertical system by covering the given structure with cloth. The "deductive objet" I found most interesting was "Encounter, Seeing through Sewing"(1998-2002). The artist's body, upright, is none but the pointed needle, and the multi-colored pieces of cloth stacked on top of her head are that bed sheets right on the verge of being pierced. The issue concerning the Korean woman's identity from the viewpoint of general feminism at the sight of the new bride, both beautiful and doleful wrapped around in multi-colored fabric, is one to be dealt elsewhere. Here, we want to take a step away from feminism and first take on the interpretive project of inferring the more fundamental structural production archetype of the horizontal and vertical.
Following the "Deductive Objet," the "Bottari" series, birthed in the PS1 studio in New York, is considered to be the case where the artist's thoughts transition from surface to three-dimensionality, then to location, then finally into another space. An everyday object consisting of wrapping cloth (bojagi) and miscellaneous contents, the bottari is associated with the nomadic origins of the Korean people, the moving customs of the commoner as well as the nomadic memories of the artist's childhood. Here, let us attend to the three-dimensional structure that the artist must have had to consider when wrapping the bottari each time. First, the act of taking four corners of the cloth and tying them together: The flat cloth is born into three-dimensional bottari only after the four corners of the cloth are gathered to the corner of the content and knotted cross-wise. The knot formed here is balanced only when the corners cross at right angles, and thus gives form to a proper bottari. If not, the knot of the bottari loses balance and the content inside becomes unpleasantly disfigured as if organs were spilling out. The most important moment in the transformation of the cloth into bottari (bojagi into bottari) is when the four corners of the cloth come together to form a horizontal-vertical cruciform. Anyone who has tied a bojagi would understand the important of this moment. One repeatedly ties and unties the knot to check the balance of the horizontal-vertical knot structure, also making sure with his eyes whether the bottari has enough tension to stay parallel to the ground. Only after this final inspect can we pick up the bottari and take our steps in movement.
As the "Bottari" series is where Kim was able to establish her reputation as an international artist, its significance is noteworthy. The rectangular surface structure of the canvas turned into a variable form of three-dimensional structure, and from the screen where the image was permanently uncovered, into a structure where revealing/concealing, opening/closing are repeated through the untying/tying of the bottari, also possessing a kind of spontaneity where revealing/concealing co-exist through glimpses of cloths caught between the gaps in the bottari. On the other hand, the force of the bojagi that adds tension by tightly tying otherwise loosely sprawled fabric is nothing but the equivalent of the stretcher of the canvas, the needlework of the bed sheets, the objets that conferred formed onto multifarious pieces of fabric, each imposing tension. Put in a different location at every turn, the bottari is a vertical structure moving parallel along the horizon as well as an objet that actively communicates with its spectators with the splendid display of Eastern color and distinct ethnic presence in its space.
The place where the flowing universe and the mind stays##
After "Wandering Cities – the Bottari Truck 2727km" in 1997, Kim presents the "Needle Woman" series and "The Laundering Woman" series consecutively. As if to weave different regions by riding the bottari truck through local highways and mountain roads, this time Kim becomes the needle (vertical axis) herself and passes through cities all over the world and throngs of people (horizontal axis), going beyond time and space to connect memory and experience as one. The artist always appears with her back against us, her long hair tightly tied, and we see in her surrounding crowds of people of various physiques and skin color passing her by in waves. But it is difficult to discern whether it is the artist who passes through the city dwellers all over the world or the other way around. When we look at water flowing, we are confused about whether we are flowing or the water. Such confusion of consciousness gives a sudden realization that whether it is the other or I that move, the logic of flowing remains the same. This brings to mind the Buddhist account that says beyond the uncertainty of human perception, all things flow and change and there is no immutable substance. The Avatamska Sutra also states that the agent of the flowing external world is one's mind. So the Needle Woman, standing still and looking at the waves of people, or the river with particles of a cremated body floating, seems to be a sign representing both the ever-renewing universe and the condition of the mind prone to change in an instant. Also, where the sky meets the earth, i.e. the horizon, the body of the artist lies at an angle with her limbs stretched horizontally. In this case the Needle Woman lies on flat ground, but in relation to the soaring mountains, trees and buildings, or even people moving around upright, her body lies at right angles. Thus it becomes relative which is horizontal and which is vertical. When one turns upside down and looks at the world, it is the world that seems turned upside down. The "Earth, Water, Fire, Air" series, her most recent work, displays the every changing landscapes of nature with 7-8 large projects installed depending on the kind of exhibition space. From Lanzarote Island in Spain and Pacaya Volcano in Guatemala, the artist recorded footage of lava erupting and solidifying, the crashing waves of the oceans and wet fog, the clouds and win, the movement of the earth and sand, and from Greenland she captured footage of glaciers – such video footage puts the spectator before the massive force of primordial nature. The artist is nowhere to be seen, but because the very viewpoint that captured the panoramic vision of nature is projected on the screen, the artist is beyond the boundaries of presence and absence. Flowing scenes of the 'Earth, Water, Fire, Air' are projected on all the walls, and the spectator who stands in the middle of the exhibition hall feels as the vertical axis, feeling as though all things in nature are continuously flowing.
In Buddhism, when referring to the human being, one speaks of the Five Elements: the material element of body, the spiritual elements of sentiment, imagination, volition and judgement. One can argue that in this work the artist is absent, for she is condensed into invisible spiritual elements. But because the four basic components of the material element of body are 'Earth, Water, Fire, Air', it can also be said that through the landscape of 'Earth, Water, Fire, Air', the artist and the rest of human existence is presence as a metaphor. Like the ancient Greek materialist Heraclitus argued, is not the human body born already composed of the four elements of earth, water, fire and wind, only to decompose back to the four, into nature? Then the images of nature in "Earth, Water, Fire, Air" may be like the image before a human's formation as well as the image it will return to according to the cycle of disappearance. Thus "Earth, Water, Fire, Air" series is, as mentioned in the artist's interview in February 2010, a meditative work where "questions of the unity of nature and mankind are posed." Furthermore, this serendipitous spark is that which confers the dynamism of life upon the cycle of the four elements, that is, 'Earth, Water, Fire, Air' in which earth becomes water, water becomes fire and fire becomes air; it is a spark that happens at the very moment the vertical spirit (mind or soul) intersects, fixed upright like the needle.
─ 'Korean Journal of Art Criticism'(March 2011), Vol.100, pp. 53-64. And it was published in the Exhibition Catalogue 'Kimsooja' by Daegu Art Museum, Korea. 2012, pp.94-110.
서영희 (미술평론, 홍익대교수)
2012
수평선과 수직선이 서로 만나면 십자형이 된다. 이 두 선들은 종횡으로 엇갈려 십자형을 구성함으로서 서로에게 없어서 안 되는 상호 보족의 관계를 이루고 균형을 잡는다. 설혹 수평선과 수직선이 떨어져 있더라도, 우리는 이 둘을 잇는 십자형을 쉽게 머리에 떠올리게 된다. 일찍이 원시문화나 고대문화에서도 수평선과 수직선을 반복하거나 위치를 조정함으로서 셈을 세는 기호 혹은 메시지를 전하는 상징기호 나아가 문자로 사용했다. 특히 이 두 선들이 중앙에서 직각으로 마주친 십자형은 동일한 길이의 두 수평선과 두 수직선이 네 개의 직각을 이룬 정사각형보다 중앙집중의 힘이 강하다 하여 한층 더 완벽한 기호로 여겼다고 한다. 심지어 ┼형 구조가 기울어져 ╳형 구조로 되어도 균형과 완성을 상징하는 완벽한 기호로 본다. 그래서 고대 라틴인은 마지막 숫자 아홉 다음에 완성을 뜻하는 숫자로 ╳형을, 고대 중국인도 열 십자를 ┼형으로 그렸다. 또한 세상의 척도로서 인체도 십자형이다. 인체는 사지와 장기가 중심을 향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양 팔을 펴고 두 발을 모으고 있는 사람의 형태는 ┼형이며, AD1세기의 비트루비우스가 그렸고 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사한 인체도는 사지를 벌려 ╳형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십자형은 신들의 세계인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수평과 수직의 만남을 초월적 세계와 세속적 세계의 연결로 간주해 '세계의 축'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독교의 십자가와 불교의 만(卍)자 기호를 보자. 전자는 지상의 수난과 천상의 영광을, 후자는 천지 연결을 뜻하는 우주적 상징으로, 둘 다 심리적 치유와 종교적 구원을 암시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신의 거처인 성당을 건축할 때 십자형 도면과 십자형 교차궁륭이 기본이고, 힌두교, 불교의 만다라에서는 수평과 수직이 교차하는 십자형을 기본골격으로 삼되 이를 하늘과 땅을 가리키는 우주질서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상반구와 하반구, 그리고 좌반구와 우반구, 네 개의 영역을 나누는 십자형 구조를 토대로 사고와 감각, 직관과 감정으로 구분해서 인간의 격을 상징하기도 한다. 유교 주역과 불교에서는 수평-수직의 네 방위를 물, 흙, 불, 바람의 네 가지 원소로 상징하여 우주적 질서를 나타낸 것을 볼 수 있다. 잘 알고 있듯이 한글 모음도 수평선, 수직선을 이용하여 땅은 ᅳ로, 하늘은 ㅣ로 그리고 인간은 가운데 점으로 상징해서 구성된 체계이다.
미술에서도 수평과 수직의 형태는 자주 등장한다. 원시미술에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장식미술에서든 순수미술에서든, 수평선과 수직선은 보편적으로 우주와 인간을 상징하는 기호로 나타난다. 고대미술과 원시공예품을 살펴보면, 수평-수직선, 십자형, 격자무늬가 벽화, 도자기화, 섬유직조, 바구니엮기 등에서 빈번하게 발견이 된다. 이는 예술심리학에서 설명하듯이 인간이 광대하고 예측불가능한 세계 내지는 자연에의 불안을 통제하고 그것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의도에서 파생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W.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에 관한 이론도 무질서한 자연에 대립한 질서로서 수평, 수직의 구조를 밝힌 바 있다. 일반적으로 추상미술과 관련한 해설들은 세잔이 자연을 견고한 기하학적 질서로 재조직한 태도를 언급하며, 나아가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수직, 수평 시스템의 기하추상 그리고 클레의 기호회화를 해명하면서 수평-수직 체계의 맥락을 추상화가들의 세계관 표현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구조주의적 인식방법을 취한 이 같은 논의는 한마디로 인간과 우주의 상징으로 인식된 수직, 수평의 구조가 원시시대부터 현대-이를테면 미니멀 회화의 격자구조나 십자형 셰이프트캔버스에 이르기까지, 미술가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유전되어 왔음을 주장하게 한다. 수평선과 수직선이 교차한 십자형은 고도로 축약된 기호이며, 두 선들이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인간의 오감과 내면 심리, 정신적 내용까지 함축하므로, 미술가의 추상재능도 더불어 작동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예술에도 관심이 많았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도 "친족관계의 기본단위"에서, 소쉬르의 공시축-통시축 즉 수평-수직의 교차하는 두 축을 토대로, 내적으로 의존관계를 맺는 이원대립의 기본구조 dichotomie가 여러 문화, 예술영역에서도 공통으로 유효한 작동인임을 가리킨 적이 있다.
이 글에서 조명하려는 김수자는 화가이면서도 캔버스 화면 위에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대신 인간을 비롯한 세계를 수평-수직 구조란 보편적 질서로 상정하고 이를 형이상학적 사유와 연동시켜 표현하는 작가이다. 그런 점에서 김수자의 작품은 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은유이고, 연작들은 수평-수직 구조에 대한 환유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수평, 수직의 기본구조에 대한 사유는 그의 천을 꿰매는 바느질 작업-"꿰매기 연작"-에서부터 출발하여 이후 "연역적 오브제" 연작을 거쳐 "바늘여인" 연작 그리고 최근의 "지수화풍 地水火風" 연작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작업논리 내지는 제작원형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는 수차례 인터뷰에서 특히 자신의 석사논문(<조형기호의 보편성과 유전성에 관한 고찰, 십자형 기호를 중심으로> 1984)에서 수평, 수직의 이원적 구조가 동양의 음양론과 마찬가지로 세계를 포괄하고 구성하는 근본체계임을 암시하거나 설명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작가의 사유가 어떻게 캔버스 화면에서 천 작업으로 이동하는지 그리고 수평선과 수직선 그리고 두 선의 연결인 십자형이 작가의 작품에서 어떻게 구체화되어 나타나는지를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김수자에게 있어 표현의 도구는 더 이상 캔버스와 물감 그리고 붓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 캔버스의 평평한 면과 사각 틀은 구상, 추상을 불문한 재현의 도구일 뿐이고 너무 딱딱한 장치여서, 자유로운 사유의 흐름을 대신하기에는 전혀 적합하지가 않다. 그래서 작가는 캔버스의 구성요소들 중 하나인 유연한 소재, 천을 선택했다. 최초의 천작업인 "꿰매기" 연작(1983-1988)은 각양각색의 천 조각들을 바느질로 연결하여 부정형의 외현을 갖는 작품들을 등장시켰다. 이들을 굳이 회화라고 부른다면, 색면추상이라고 할까? 하지만 1970년대 미국의 하드에지나 컬러필드 회화와는 정반대로, 여기서는 균질의 평평한 색면이나 자른 듯 선명한 윤곽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드로잉 흔적으로 얼룩진 크고 작은 헝겊조각들이 다소 울퉁불퉁한 표면을 보이며 연결되어 있고, 테두리는 불규칙하며 너덜대는 실밥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 붙어있다. 완성을 향한 작가의 의지보다는 재료인 천의 고유한 물질성이 전면으로 부각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다다이스트 같은 반미학적 오브제 선택이라든가 혹은 포괄적인 개념미술의 성향이라고 분류하지는 않겠다. 그가 고른 천과 바느질은 세계의 근본적 구조를 관조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자기 자신처럼 얽히고 설킨 인간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선별된 소재들이다. 사각형으로 자른 천들을 수평과 수직 방향으로 잇대어 놓고 바느질로 연결하여 서로를 기대고 부축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주목되는 것은 캔버스의 딱딱한 나무틀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꿰매어진’ 천들은 밑으로 늘어지지 않고 수평-수직 구조를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천을 잡아당기는 팽팽한 긴장감의 근원은 나무틀을 대신한 관계의 장치 즉 '바느질의 무수한 땀들'이다. 이들이 조각천과 중력 사이의 균형을 이루게 하는 근거이다.
여기서 필자는 작품의 질서를 형성하는 원천인 긴장된 바느질과 유연한 천의 이원적 구조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바느질한 천 작업의 발생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으로 설명된다. 작가가 여러 차례 말했듯이, 1983년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이불보를 시침하면서, 불현듯 깨닫게 된 작업방식이다. 이 일화는 그 동안 여러 글들을 통해 잘 알려진 내용이긴 하지만, 작가의 고유한 작품세계의 출발을 알리는 단초가 되므로 다시 인용한다 :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가 모두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묻어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천이 갖는 기본구조로서의 날실과 씨실, 우리 천의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들며 꿰매는 행위의 천과의 자기동일성,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완전 매료되었다” (<작가노트>, 현대화랑, 1988). 훗날 작가는 이 경험을 다시 회상하며, 천에 뾰족한 바늘을 꽂는 순간 갑자기 온 몸을 관통하는 우주의 에너지를 느꼈다고 말한다. 이 우연한 경험의 놀라운 일화는 이후 그가 인터뷰할 때마다 반복되는 내용으로서, 그의 작업의 원형이 무엇인지 새삼 환기시켜주는 단서가 된다.
작가가 방바닥에 펼쳐진 이불보 천위에 '뾰족한 바늘을 꽂는 순간'을 필자는 수 백 년 동안 지속된 회화의 평면 스크린을 꿰뚫는 획기적인 순간이라고 바꾸어 해석하고 싶다. 일찍이 단색만 칠한 캔버스를 예리한 칼로 찢고 구멍을 내었던 공간주의 화가 루치오 폰타나처럼, 그도 이불보 표면을 바늘로 넘나들어 구멍을 내면서, 회화를 더 이상 일루전의 스크린이 아닌 입체 구조물의 존재로 깨닫게 된 것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할 점은 수직의 바늘이 수평으로 펼쳐진 이불보의 천을 관통해 나가는 장면이다. 이 3차원의 수평과 수직의 관계는 평면 일루전에만 익숙했던 작가에게 회화의 실체 즉 은폐됐던 캔버스의 구조를 확인시키는 결정적 계기였다고 생각된다. 그 동안 회화는 불투명한 스크린 위에 그려진 물감의 막, 그 환영들의 관념적인 재현 내용으로 정의되곤 했었다. 하지만 환영 아래에 감춰져 있던 회화의 기표들 즉 색물감, 캔버스의 천, 그리고 나무틀 같이 화면을 지지하던 구조요소들이 곧 회화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사고 전환을 이룬다면, '회화 = 사각형의 평평한 화면'이란 모더니스트 공식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캔버스나 이불보를 확대해보면, 틈새가 있는 날실과 씨실로 직조된 구조물임이 드러나서, 이들도 실상 상호 교차하는 두 실들로 이뤄진 수평-수직 체계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후일 그가 이불보들을 전시장 공간에 매달아 천의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한 설치법 역시 천의 입체적 구조와 공간적 위상을 증명한 이벤트였다고 생각된다.
바느질로 완성되는 "꿰매기" 연작 작품들은 어느 경우이든 바느질로 연결된 수평-수직의 이음새들을 볼 수 있다. <하늘과 땅>(1984)이 대표적 예로, 상이한 크기의 사각형 헝겊들이 바느질에 의해 수평-수직 구조로 연결되어 있으며, 외형의 윤곽마저도 수평선과 수직선이 만나는 십자형을 이루고 있다. 인류문화사에서 보편적으로 마주칠 수 있는 수평-수직의 체계가 여기서도 우주구성의 기호로서 그리고 제작의 원형으로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의 작품들, <대지>>, <너의 초상>, <벽>에서도 변형된 십자형 기호를 거듭 마주칠 수 있으며, 음양을 상징한 수평-수직의 이원구성임을 발견하게 된다. 1989년 즈음하여 "연역적 오브제"가 등장한다. 이 두 번째 연작은 평면 작업에서 입체 작업으로 옮아갔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오래된 골동 집기나 일상 물품을 천으로 감싸거나 덮는 이 작업은 딱딱한 골격의 오브제에 부드럽고 유연한 천이 덧붙여진 상황이다. 앞서 천에 긴장된 힘을 주던 바느질 작업이 차츰 형태를 완성해내는 귀납법식 제작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다. 처음부터 수평-수직 형태의 골격을 이룬 오브제가 주어지고 그 위에 천을 감싸서 본래 주어진 모양을 드러내는 연역법의 제작인 것이다. 제작 동기는 작가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졌듯이, 오랜 기억을 되살리는 기물들인 지게, 창호지문틀, 얼레와 북, 빨래걸이, 사다리 등에 내재된 단순명료한 구조미에 매혹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상적 사물들은 아닌게 아니라 가만히 들여다보면, 뜻 밖에도 수평-수직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땅바닥에 드러누운 지게의 연역적 오브제나 사각형 문틀 그리고 위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이등변 사각형의 사다리 등 그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미는 '바느질' 연작에서 볼 수 있던 수평-수직의 모자이크식 구조미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평면구조에서 입체구조로 바뀌고 재료가 달라서 이질적이랄 수 있겠지만, 구조의 체제는 등가여서, 마치 xy축의 평면기하학에서 공간의 깊이를 더한 xyz축의 입체기하학으로 사유의 이동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체조선수들이 사용하는 커다란 원형 강철 테에 천을 입힌 작품(<무제> 1991)은 수평-수직 구조가 아닌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공간을 가로질러 굴러갈 수 있는 이 둥근 입체 오브제를 풀어 평면으로 되돌린다고 상상할 경우, 좁고 긴 사다리 모양의 수평-수직 구조가 금방 눈앞에 나타나게 된다.
딱딱한 오브제가 캔버스의 나무틀-support 역할을 하며, 팽팽하게 둘러싼 천이 화면의 천-surface이라고 상정해본다면, 이 역시도 캔버스의 구조적 해체에 대한 또 다른 번안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너무 멀리 가기 전에 이 같은 작업을 1970년을 전후하여 프랑스에서 전개된 분석적 실험회화운동인 쉬포르/쉬르파스 Supports/Surfaces와 비교해야 할 필요가 있다. 회화에 대한 자기비판으로 출발한 쉬포르/쉬르파스 작가들은 구조주의 인식론을 토대로 회화의 우월했던 관념과 단절하기 위해 캔버스 구조 자체를 드러내고, 각자 천/나무를 의미를 만드는 기표로 간주하여 다양한 이원대립쌍의 오브제들을 만들어내곤 했다. 이들의 의미심장한 작업을 작가가 알거나 참조했는지 지금 확인할 수 없으나, 객관적으로 상호 관련성을 밝혀내는 비평적 논의는 앞으로 또 다른 기회에 시도해 볼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입체 구조물로 이룩된 "연역적 오브제" 연작의 또 다른 특징은 작품이 특정 장소에 놓여짐으로서 비로소 자신의 의미를 획득하는 장소특수성을 지닌다는 점에 있다. 가령 전시장 벽면이나 바닥에 설치된 헝겊들의 축적은 바로 해당 전시장 공간의 그 특정 장소를 덮음으로서 작품의 의미를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딱딱한 벽면과 바닥이 여기서도 부드러운 천과 이원적 대응 구조를 이루며 수평-수직의 제작 원형을 따른다는 사실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이후 경주 옥산서원 계곡에서 이루어진 <자연에 눕다>는 자연의 바위들과 색동 천들이, 비엔날레의 카페테리아나 식당에서 테이블보로 사용된 "연역적 오브제"는 식탁과 이불보가, 각각 전시장을 떠나 자연과 도시의 특정 장소에서 주어진 골격 위에 천을 덮는 수평-수직의 체제를 실현한 경우가 된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흥미로운 "연역적 오브제"의 예는 <만남, 바느질하여 바라보기>(1998-2002)이다. 여기서 수직으로 직립한 작가 자신의 몸은 뾰족한 바늘에 다름 아니고 그 머리 위에 겹겹이 덮인 색동 천들은 바늘이 이제 막 만나자 마자 뚫고 지나갈 바로 그 이불천들이다. 색동천들을 두른 새색시의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한 모습을 관찰하며 보편적인 페미니즘 관점에서 한국 여인의 정체성을 논의하는 일은 다른 지면에서 시도될 문제이다. 여기서는 페미니즘을 비켜서 보다 근본적인 수직과 수평의 구조적 제작원형을 추론하는 일이 앞선 해석의 과제라 여겨진다.
뉴욕 PS1 창작스튜디오의 작업실에서 태동된 "보따리" 연작은 "연역적 오브제"에 이어 작가의 사유가 평면에서 입체, 입체에서 장소 그리고 다시 다른 공간으로 이동되는 사례라고 판단된다. 보자기와 내용물로 구성된 보따리는 지난 세대의 평범한 일상사물로, 그에 얽힌 한민족의 유랑기원과 서민들의 이삿짐 풍습 그리고 작가개인의 어린 시절 유랑기억이 기술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작가가 매번 보따리를 싸면서 고려했을 입체적 구조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자. 우선 사각형 보자기의 모퉁이를 손으로 거두어 잡아 싸는 행위 즉 매는 행위로부터 상기해보자. 평면의 보자기는 4개 모서리 끝의 천을 잡아 올려 중앙에 놓인 짐 위로 잔뜩 잡아당긴 다음 그 짐의 정중앙 위에서 서로 엇갈려 맬 때, 비로소 입체의 보따리로 탄생한다. 여기서 매듭은 네 손잡이 천들이 정확히 직교해야만 균형을 이루며, 보따리도 제대로 된 모습을 갖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보따리는 매듭의 균형을 잃고 일그러져 속에 든 내용물을 마치 내장을 드러내 듯 흉한 모양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역시 보자기가 보따리로 변신할 때, 가장 중요한 순간은 그 네 모서리 천이 한 쌍식 수직과 수평의 십자형 교차를 이룰 때이다.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보자기를 매어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쌌다가도 풀러 다시 매기를 여러 번 하면서 수평-수직의 매듭구조가 균형을 잘 잡았는지 그래서 보따리가 팽팽한 긴장감을 가지고 지면에서 평형을 이루며 앉았는지 눈으로 거듭 확인해보게 된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그 보따리를 단숨에 들어 올리고 걸음을 내딛으며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보따리" 연작에서부터 김수자의 국제작가로서의 명성이 확립됐다고 볼 수 있는 만큼, 이 연작이 갖는 의미는 크다. 캔버스의 사각형 평면구조가 가변성 있는 형태의 입체구조로 되었고, 이미지가 고정적으로 현시되던 화면 상태에서 보자기의 풀기/매기에 따라 현시/은폐, 열림/닫힘을 반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보따리 틈새로 보이는 천들에 의해 현시/은폐가 공존하기도 하는 그런 임의성을 지닌 구조물로 전환되어 있다. 다른 한편, 늘어진 천들을 팽팽히 싸매어 긴장시키는 보자기의 힘은 역시 화포를 잡아당기던 나무틀이나 이불보에 장력을 주던 바느질, 각양각색 천들에 형태를 부여하던 오브제의 또 다른 대응물에 다름 아니다. 매번 달라진 장소에 놓이는 보따리는 수평의 지평을 따라 이동하는 수직의 구조물이자, 해당 장소에서 그 화려한 동양적 색감과 독특한 민속적 존재감으로 감상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의 관계맺기를 하는 오브제이기도 하다.
김수자는 1997년의 작품 <떠도는 도시들-보따리트럭 2727km> 이후 "바늘여인" 연작과 "빨래하는 여인" 연작을 연달아 발표한다. 이는 보따리트럭 위의 자신이 국도나 산간도로를 타고 이동하며 상이한 지역을 엮어낸 것처럼, 이번에는 자신이 바늘(수직축)이 되어 세계의 도시와 인파의 층(수평축)을 거듭 관통하며 시공간을 넘어 기억과 체험을 하나로 연결한 작업이다. 작가는 항상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맨 뒷모습으로 등장하며, 정지해 서있는 그의 주변을 다양한 골격과 피부색의 인파가 물결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보인다. 그런데 막상 작품 비디오나 사진을 보면, 작가가 세계 곳곳의 도시인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지 혹은 사람들이 그를 스치고 지나가는지 확실히 분별되지 않는다. 흐르는 물길을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물이 흐르는지 내가 흐르는지 혼돈되는 것과도 같다. 이런 의식의 헷갈림은 주체인 내가 움직이든 타자가 움직이든 궁극으로는 흐르는 이치는 동일하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한다. 인간 지각의 불확실함 너머로 불교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만물은 흐르고 변화할 뿐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음과 화엄경의 유심설(唯心說)에서 말하는 흐르는 외부세계의 주체는 바로 나의 마음자리란 사실을 떠오르게 한다. 바늘여인은 그렇게 가만히 서서 사람들의 물결 혹은 화장한 시신의 부유물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생멸변화하는 우주와 찰나로 바뀌는 마음자리를 표상하는 기호 역할을 하는 듯하다. 또한 하늘과 땅이 맞닿아 만들어낸 지평(바위산 혹은 도로면)에 몸을 모로 누이고 팔과 다리를 수평으로 길게 뻗고 있는 작가의 모습도 있다. 이 경우 바늘여인은 평평한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이지만 주변의 치솟은 산과 나무나 건물들 혹은 서서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직교하는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쪽이 수평으로 누어있고 수직으로 서있는지는 상대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바라보면, 그 세상이 도리어 뒤집힌 모습으로 지각되지 않던가. 가장 최근 작품인 <지수화풍> 연작은 전시 장소에 따라 설치된 7개~8개의 대형 프로젝터를 통해 자연의 변화무쌍한 풍경들을 펼쳐 보인다. 작가가 스페인의 란자로테산과 콰테말라의 파카야화산에서 촬영한 용암 분출과 응고, 바다의 출렁이는 파도와 물안개, 하늘의 구름과 바람, 대지의 움직임과 모래 그리고 그린랜드에서 촬영한 빙하의 동영상들은 감상자를 원시적 자연의 엄청난 힘과 맞닥뜨리게 한다. 물론 작가는 어디에도 비추어지지 않지만,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담은 작가의 시야가 곧 스크린에 투영되어 있으므로,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넘어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방 벽에 비추어진 동영상에는 수지화풍의 장면들이 흘러가며 전시장 가운데 서있는 감상자는 마치 자신이 세상의 수직축이고 사방으로 자연의 삼라만상이 연이어 흘러간다고 여겨질 것이다.
불교에서 인간존재를 가리킬 때 5온(蘊)이란 말을 하는데, 이는 물질적 요소인 색(色)과 정신적 요소인 수(受).상(想).행(行).식(識)의 5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비가시적인 정신적 요소들로 축약되어 부재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실상 육체(색)의 물질적인 4가지 기본 요소들이 지수화풍이므로 자연의 지수화풍 풍경들을 통해 작가를 비롯한 인간 존재가 은유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인간 육신은 고대 그리스 유물론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대로 흙, 물, 불, 공기의 4원소로 구성된 채 탄생했다가 다시 그들 4원소로 분해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지수화풍>의 자연의 모습들은 곧 인간으로 생성되기 전의 본래 모습이며 또 장차 소멸의 순환고리에 따라 돌아갈 모습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수화풍> 연작은 작가의 2010년 2월 인터뷰에서 한 언급처럼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일체성을 근간으로 한 질문들을 담고" 있는 명상적 작품이다. 그리고 흙이 물이 되고 물이 불이 되며 불이 공기가 되는 이 수평으로 돌고 도는 지수화풍, 4 원소의 순환고리에 생명의 역동성을 부여하는 우연의 스파크는 바로 수직의 마음(정신 혹은 영)이 바늘처럼 꽂혀 교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것이리라.
─ 'Korean Journal of Art Criticism'(March 2011), Vol.100, pp. 53-64. And it was published in the Exhibition Catalogue 'Kimsooja' by Daegu Art Museum, Korea. 2012, pp.94-110.
Bak Sang Hwan (Professor of Confucian and Oriental Studies at Sungkyunkwan University)
2012
Kimsooja, the female artist now in her fifties, first drew attention from her performance in 1997 where she traveled around Korea on her truck loaded with hundreds of bottaries (bundles), soon rising to international fame by taking performances with themes of bottari and needles to Italy, the Seine River and the Liberation Square in France. Her main subject-matter, the bottari and the needle, reminiscent of the life of the modern people, their joys and sorrows, is apt to express issues such as the refugees, starvation, and cultural conflicts. Through the mediation of her body, Kim's performances are intended to show by reconstructing and actualizing our memories of cultural difference and the dogma of religion rising from troubling factors in any region in the world. Here, the body is functioning not as disconnection from the past but as a form of observation that connects herself to a group. The process of reconstruction of the past is proceeded in an unique frame of world interpretation not applied an individual – though one is the agent of the process – but to a group to which one belongs. Herein lies the reason why her performances become the content of communication.
Memory is generally produced in the process of socialization. In this sense, Kimsooja's work is fundamentally to invent a new model for 'social memory'. Social memory, or group memory, consistently influences society in the context of tradition, but it is forgotten or eradicated when the group is dissolved through political or social upheaval. Substituting this phenomena which happen when existing social conditions changes for 'cultural memory (kulturelles Gedaechtnis)', Kim also alters the process that recalls the cultural archetype universal to mankind into the process of thinking of 'timeness.' These are expressed in her works such as , a performance in which she both stays in and moves through crowds of people, and in which she is wandering to search for her archetype which has been thrown into the world. 'Cultural memory' expressed by Kimsooja, though, is quite at a distance from memory that is concocted by political power.
When a social group remembers a recent past they experienced, they actualize it through daily communication, acquiring a concrete identity. However the time span and social effectiveness of this 'vivid memory' is inevitably limited. A group that secures political hegemony in a give society tries to conceal the exclusiveness of their limited memory by means of casting back its origin to a far and remote past, subsequently attempting to acquire universal validity of its group that owns that memory. However, because 'origin' is separate from actual experiences and thus inevitably mythical, it is necessary to mobilize media such as, documents, texts, architecture, icon, gravestones, temples, monuments, rituals, festivals, and so on.
Like this, 'cultural memory' means a social memory which institutionalizes and systematically transmits the significance of culture, constituting group identity. In the sense that it is closely connected to group identity, cultural memory is differentiated from history which seeks abstract and universal knowledge. Here, culture is communication via material basis or medium where cultural memory is takes root, and the development and changes of the medium plays a role in changing the mode of culture and cultural memory. The role of text as a leading medium for memory is replaced by that of photographs, video images, and computers as a consequence of the revolutionary development of multimedia in the twentieth century.
The cultural memory which Kimsooja wanted to recognize, can be understood as a reinterpretation of the act of memorializing the deceased (returning to the cultural archetype). As Aleida Assmann noted, "the most essential and pervasive form of memory that connects the live and the deceased, is the respect towards the deceased"[1], also mentioning that while this tradition was maintained until the eighteenth century, it perished on the threshold of the modern period. Because the idea that the deceased occupies a legal and social status in the memory of the living has come to an end, the relation among cultural archetype, tradition and custom calls for an even closer examination.
Here Assmann distinguishes two forms of memory: one is 'functional memory (Funktionsgedaechtnis)', structured to function directly according to immediate needs, and the other is 'storing memory(Speichergedaechtnis)', where experiences of the past and knowledges are stored via media and accessed as necessary. History corresponds to the latter. If storing memory plays a role of basis on which functional memory is verified and corrected, then functional memory is the steerman of storing memory. With regard to this, Kimsooja's work can be defined as a kind of 'meta-memory' which performs 'the working of memory.' If history ― constructed in the form of universal or abstract discourse, which is nation-centered and elite-centered ― is an ideology which speaks for the power of authority in current society, Kim interprets the working of memory in the aspect of dissolving oppressed and forgotten truth. Instead of reflecting the experience of the past as it were, she reorganizes it in a way to appeal to the cultural identity; that is, she artificially organizes it to have the marks of the minority be understood more vividly in ordinary life. By freeing herself from the grand discourse of social or political issues and looking back on herself, she pursues diversity instead of unity and attempts a shift in the perceiving of conflict.
Kimsooja refuses a voluntary submission to authoritarianism and exclusivism ― self-rationalizing within collectivism ― and attempts at a social consent that takes its form in an act of rational distancing from the group to which one belongs. This is an effort to understand that the cause of contradiction and conflict as analysed in history, or remembered culture coexist within and without herself. This is not an attempt to avoid social conflicts and contradictions, but a way to resolve the problems while constantly and actively confronting(Umgang) them. This way, Kimsooja pursues the return to the 'cultural archetype.' That is, works which remind us of the archetype of mythology, primitive or universal, or works which replaces contents ― harmonized through our body-as-nature ― with sound (in Weaving factory) or with natural scenary (in Earth, Water, Fire, Air), are manifestations of her effort to approach cultural archetype in an attempt to fill the gap of social, and historical differences. For proper understanding, the keyword, 'cultural archetype' calls for a detailed examination through the process of reflecting on history.
Cultural archetype is a more confusing concept than that of culture, which itself is no less difficult to define. However we can gain some form of consensus at least in the area of art in that we are conscious of cultural propagation, cultural transmission and cultural change. Although there is conceptual vagueness, tradition, in a cultural memory that reconstructs the past, still holds an important position with regard to communicating with the past. When we cast back limited memory to a remote past, it is estranged from reality, then requiring a mythical symbol, and when the cultural archetype aspires towards traditional culture as a subject-matter of creation, it is frequently connected to mythical imagination.
Of course, the concept of time used in cultural memory occupies a rather peculiar position. Time contemporaneously used within a specific group is their own time, but the timeness of cultural memory as transmitted memory is operating in a 'distended situation (die zerdehnte Situation)', a situation where it is disconnected and then reconnected. Cultural memory has a cultural meaning, in which the past and present are arranged and transmitted along the same line. Myth is the memory of origins, a memory which "is directed and experienced through the monumental field of communication, such as symbols, rituals or festivals. It is thus a memory which refers to what stands in contrast with the quotidian, or rather, to the root of being(dasein) that is excluded from the quotidian; it creates the meaning of the quotidian by making known the order towards which the quotidian should aim. It is a memory that, according to Assman, cures the lack in the quotidian."[2]
We seek a kind of psychological comfort in the parallels of time. The discourse of memory vascillates between two contrasting axes of criticizing and enjoying the past. On the one hand, it dissolves the myth of the past, and on the other hand, it remythicizes it. Culture and cultural archetypes, and 'root-searching,' or re-mythicizing connected with tradition can eventually be reduced to the problem of modernization contained in culture. For a better understanding, here I quote a passage from the preface of The Invention of Tradition, written by Eric Hobsbawm.
"However, insofar as there is such reference to a historic past, the peculiarity of 'invented' traditions is that the continuity with it is largely factitious. In short, they are responses to novel situations which take the form of reference to old situations, or which establish their own past by quasi-obligatory repetition. It is the contrast between the constant change and innovation of the modern world and the attempt to structure at least some parts of social life within it as unchanging and invariant, that makes the 'invention of tradition' so interesting for historians of the past two centuries."[3]
If custom is the living past, tradition is a mental image that is 'invented' to hide the fact that it is actually disconnected from the past. In world history, it was in the nineteenth century that nationalism suddenly surfaced and European countries advocated their own culture by setting up the virtual other; now, Korea follows in their footsteps. From the late the twentieth century, Korea has been searching from within the virtual others which was invented in Europe. It is the so-called Re-Orientalism phenomenon. Paradoxically, when we remember our culture, we are either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approaching it from the viewpoint of Orientalism, a perspective invented in the West. Culture has basically been developed in the process of searching for identity, but as is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in Korea, the identity of science is always the object of question, and the ordinary people's pursuit of self-identity has distortedly developed under the influence of the West, Japan and U. S. A. This trend once began to be replaced with independent viewpoints triggered by the G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in 1980, but now, thirty years later, it is being reversed again. The main slogan of this period is now back to the logic of the powerful, emphasizing only warped ends rather than the reasonability of means and processes. Here we need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history which is molded through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Starting from the late nineteenth century, modernization in the Korean peninsula intersected with westernization, and at the same time awareness of our cultural identity began to emerge in earnest. This was, however, not a situation particular to East-Asian countries such as Korea or China, but a shared historical experience among late capitalism societies.
Let us take Germany as an example, a late capitalist country in Europe. "The contrast between civilization and culture which was suggested by the German bourgeoisie may be considered pre-historical to the discourses of 'Chinese Substance and Western Function(中體西用, Zhongti Xiyong)' or 'Eastern Ways and Western Machines(東道西器, Tongtosoki)', both propagated by East-Asian countries when western European countries came in with imperialistic spoliation."[4] As is generally known, early modern Germany was under the influence of the spirit of the times(Zeitgeist) of the bourgeoisie, which justified their desire to compensate for their political-economical inferiority to western Europe (i.e. England and France) with spiritualism, that is, the belief that their values have intrinsic intellectual and artistic superiority[5]. 'Culture' and 'civilization' can be used interchangeably in English, but this was not possible in Germany. Kant's statement ― "We are cultivated(kultiviert) on a very high level by art and science...The ideology of morality belongs to culture(Kultur), but if we search for it only in something like the desire for fame, manners, or superficial courtesy, it would result in civilization(Zivilisierung)."[6] ― is speaking for the superiority of German culture which emphasizes inner morality in contrast to material and ostentatious civilization of Western Europe. German intellectuals since Kant in the eighteenth century understood culture in two different concepts: spiritual culture(Kultur) and material civilization(Zivilisation). Based on this understanding of the relationship between culture and civilization, Germany comprehended the First World War as bursting out from an intensified conflict between nations, as a cultural struggle of Germany, Central Europe, against the material civilization of Western Europe.
Originating from the Latin word 'cultura(cultivation, education)', which is derived from the verb 'colere(to take care, to enlighten)', the concept of culture accentuates human intervention and has an especially close relation to education. The usage of 'culture' in modern Germany reflects the process of self-education of the individual and society. The dichotomous reasoning which divides higher spiritual culture and lower material culture and the concept of culture related to the concept of education are usually discovered in late modern society. The ancient concept of culture in the East has also been developed in the context of education and cultivation; 文化(culture) is derived from 以文敎化(education with literature), and this stems from a Confucian spirit of the humanities along with 文治敎化(educating people without punishment) and 德治敎化(educating people with virtue). In other words, it was a device invented to inspire active human intervention in the period of social change. The reason that late developing countries, taking top-down reformation strategies, seek for people's motivation ― urgently required in the process of economic development ― particularly in spiritual or moral aspects is that it is easy to obtain social consent from in those areas to the extent that they have deep affinity with cultural memory of pre-modern society. In this context, we can say that the concept of culture is directly connected to the problem of modernization still effective today.
High culture formed in the German conception of culture is certainly different from folk culture, and its influence reached to Adorno, who criticized the culture industry in the middle of the twentieth century. Though Contemporary Korean society does show capitalist traits that are distinguishable from those of Western societies at that time, it is also possible to analyze Korean society in another way, according to which Korean society is relatively less classified than Western societies where culture is consumed discriminatively according to class. Instead of discriminatively accommodating or practicing culture according to class or hierarchical identity, contemporary Korean society shows a mixture of aspects that makes it difficult to discriminate cultural classes. However, when social change is analyzed in a broader perspective, considering the tendency to pursue dominant culture without forming resistant culture in the mixed state, we can find similar contrasts within the cultural traditions of East Asia, between the higher and the lower, and it has been influential until now on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A spirit-centered dichotomy and retrospective ways of thinking ― which are revealed in the logic of modernization, such as Chinese Substance and Western Function(中體西用, Zhongti Xiyong), Japanese Spirit and Western Techniques(和魂洋才, Wakon Yosai), Eastern Ways and Western Machines(東道西器, Tongtosoki) ― are still dominant, and in this continuous trend, the worries of returning to the spirit of the literary in this pursuit of the spirit of humanities sounds persuasive. In this tradition it is not easy for cultural memory to be free. It is necessary to examine this trend to find the root of culture. Theories of modernization in China or the later period of Chosun ― accepting social and economic modernization but refusing cultural modernization, that is, the coexistence with others ― approached contrasting relation between the old and new, the East and West from a compromising perspective. The cultural conservatism that is intrinsic in this compromise, such as Chinese Substance and Western Function, is not a phenomenon particular to the late nineteenth century. Nowadays, we heavily rely on Huntingtonian cultural essentialism when it comes to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 Refusing the modern in the name of tradition on the one hand, criticizing tradition in the name of the modern on the other, the contrasting dichotomous discourse of modernism ― an all-out rejection and an all-out affirmation at the same time ― reveals our very reality.
[Note]
[1] Aleida Assmann, Erinnerungsräume : Formen und Wandlungen des kulturellen Gedächtnisses, C. H. Beck, 1999, p. 39
[2] Hak Ie Kim, "'Cultural Memory' of Jan Assmann", The Journal of Western History, Vol. 33, 2005, p. 241
[3] Eric Hobsbawm, The Invention of Tradi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3, p. 2.
[4] Kim Jong Yup, "The Change of the Concept of Culture and a Problem of Cultural Study" The Practice of Cultural Study and Cultural Contents (Inha University College of Humanities Specialized Research Group, Inha University, 2005), p. 72.
[5] In this context, Schiller criticized the French Revolution and utopianism in the fourth letter of "On the Aesthetic Education of man in a Series of Letters". (F. Schiller, Ueber die aesthetische Erziehung des Menschen (Stuttgart, Reclam, 1965). S. 9.)
[6] Kant, '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uergerlicher Absicht', in; Werke Bd.9 (Darmstadt, 1983), S. 44 (A402~403)
[7] Bak Sang Hwan "The Study of Communication and Possibility on the Cultural Contents and Humanism", Journal of the humanities, Vol. 41, (Sungkyunkwan University Research Institute for the Humanities, 2008), pp. 228-229
[8] A viewpoint that counts culture as essential in that it determines everything in human society.
[9] Dieter Senghaas, Zivilisierung wider Willen: der Konflikt der Kulturen mit sich selbst (English translation, The Clash within Civilisations: Coming to Terms with Cultural Conflicts, p. 6)
Bak Sang Hwan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교수)
2012
50대 여성작가인 김수자는 1997년 보따리 수 백 개를 자신의 트럭에 싣고 우리나라 전역을 떠돌아다니는 퍼포먼스 예술로 주목을 받은 이후, 이탈리아, 세느강, 리베라시옹 광장 등 세계 곳곳의 광장에서 보따리와 바늘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선보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가 메인 주제로 삼고 있는 '보따리와 바늘'은 전 세계 현대인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소재로서 난민문제나, 기아문제 그리고 문화적 갈등에 대한 표현을 담고 있다. 세계 어느 지역이던 상관없이 갈등적 요소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와 종교의 독단 등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자신의 몸을 매개로 하여 재구성하고 현재화시키는 작업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몸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현재 자신과 집단을 연결시키는 관찰의 한 형식으로 작동한다. 과거를 재구성하는 과정은 주체가 비록 개인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집단에 적용되는 세계 해석의 특정한 틀 속에서 진행된다. 그의 작업이 소통의 내용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기억은 사회화 과정에서 도출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김수자의 작업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기억'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고자 한다. 사회적 기억 또는 집단적 기억은 전통의 맥락에서 그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정치적 내지 사회적 대변혁기를 거쳐 집단이 해체되면 망각되거나 소멸된다. 작가는 기존의 사회적 조건이 변화할 때 발생하는 이러한 현상의 지점을 '문화적 기억(kulturelles Gedächtnis)'으로 대체하고, 인류보편의 문화원형을 상기시키는 과정을 '시간성'에 대한 사유화 과정으로 극복한다. 군중 속에 서 있으면서도 군중 사이를 가로지르는 퍼포먼스 <바늘여인>, 유랑을 통해 세계에 던져진 자신의 원형을 찾아 헤매는 <보따리 여인>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김수자에 의한 '문화적 기억' 이란 정치권력에 의해 조작된 기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한 사회집단은 자신들이 실제 체험한 근거리 과거를 기억할 때 일상적 소통을 통해 그것을 현재화하고 '구체적' 정체성을 획득하지만, 그것이 '생생한 기억'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사회적 효력에서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 사회 내에서 정치적 헤게모니를 쟁취한 집단은 그들의 제한된 기억을 머나먼 '기원'에 소급함으로써 그것의 배타성을 은폐하고 그것을 담지한 자기 집단의 보편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원'은 현실 체험과 유리되어 있기에 신화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를 소환하기 위해서는 기록물, 텍스트, 건축물, 도상, 묘비, 사원, 기념비 또는 제의와 축제 등의 매체가 동원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문화적 이거’이란 문화의 의미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 조직적으로 전승하며 집단정체성을 구성하는 사회적 기억을 의미한다. 문화적 기억은 집단의 정체성과 밀접히 이처럼 '문화적 기억' 이란 문화의 의미를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고 조직적으로 전승하며 관련된다는 점에서 추상적이고 보편적 지식을 위주로 하는 역사와 구별되고, 또 산발적으로 저변에 있는 기억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조직되고 규율되는 전통과 다르다. 여기서 문화는 문화적 기억이 뿌리를 내리는 물질적 기반 즉 매체를 통한 소통이며, 매체의 발전과 변화는 문화의 양태와 문화기억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억매체로서의 문자의 주도적 역할은, 19세기 사진의 발명과 그리고 20세기 영상매체의 혁명적 발전으로 그 자리를 사진, 영상, 컴퓨터에게 양도하였다.
작가가 인식코자 한 문화기억은 그 가운데, 죽은 자를 위한 추모행위의 재해석(문화원형으로의 복귀)이라고 볼 수 있다. 아스만(Aleida Assmann)은 “살아 있는 자와 망자를 서로 연결해주는 기억의 가장 본질적이고 널리 알려진 형식은 망자숭배”[1]이고, 서구 역사에서 망자의 추모 제도는 18세기까지 유지되어 왔으나 이후 근대의 문턱에서 소멸되었다고 말한다. 생존한 자들의 기억 속에 망자가 법적,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고는 종말을 고했기 때문에, 문화원형과 전통, 관습의 관계는 보다 면밀히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스만은 기억을 2가지 형태로 구분하는데 하나는 현재의 직접적 요청에 기능하도록 구성된 '기능적 기억' (Funktionsgedächtnis)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이 매체를 통해 저장되어 필요시 사용되는 '저장기억' (Speichergedächtnis)이다. 역사는 두 번째에 해당된다. 저장기억이 기능기억을 검증하고 수정하는 토대역할을 한다면, 기능기억은 저장 기억의 조타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수자의 작업은 '기억 작업을 수행하는 일종의 '메타기억'으로 정의할 수 있다. 역사가 민족중심, 엘리트 중심으로 보편적 내지 추상적 담론의 형태로 구성되어 현실 사회에서 권력의 힘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라면, 작가에게 기억작업은 억압되고 망각된 진실을 해체한다는 측면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문화적 정체성에 호소하는 측면에서 작가는 과거의 체험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재구성한 방식, 다시 말해 일정한 인위적 구성작업을 통해 소수자의 흔적을 일상생활 속에 보다 생생하게 이해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사회적 혹은 정치적 사건의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단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을 지향하고 갈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작가는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자기 합리화하는 권위주의와 배타주의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거부하고, 개인이 속한 집단과의 합리적 거리두기라는 사회적 합의를 시도한다. 이것은 기억된 문화, 역사에서 분석되는 모순과 갈등의 원인이 자신의 안과 밖에 공존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이는 사회적 갈등과 모순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리고 적극적으로 문제와 대면(Umgang)하는 가운데 해결되는 방식인 것이다. 그 안에서 작가가 추구한 것이 바로 '문화원형'으로의 복귀이다. 즉 태초의 혹은 인류 보편의 신화원형을 상기시키는 작업이나 자연 자체로의 우리 몸을 통해 조화로울 수 있는 내용들을 소리(Weaving factory) 혹은 대자연의 광경(지수화풍) 등으로 대체하는 작업은 문화원형이 접근해 사회적, 역사적 차이에서 오는 현실적 간극을 좁히기 위한 작가의 노력인 셈이다.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원형'이라는 키워드를 역사성찰의 과정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문화 자체가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인 만큼, 문화원형은 더더욱 혼란을 야기한다. 그러나 최소한 미술적 차원에서는 문화전파와 문화전승 그리고 문화변동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가 형성된다. 비록 개념상의 모호함은 있지만 과거를 재구성하는 문화적 기억에서 전통은 여전히 과거와 소통하는 길목에 있다. 제한된 기억을 먼 과거로 소급할 때 현실과의 괴리에서 그것은 신화적 상징을 요청하고, 창작소재로서 문화원형이 전통문화를 지향할 때 신화적 상상력과 흔히 연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적 기억에서 사용되는 시간의 개념은 다소 특이한 지점에 자리한다. 특정집단의 당대에 소통되는 시간은 자기 시간인 것에 비해, 전승되는 기억으로서의 문화기억의 시간성은 분리되었다가 다시 결합하는 '절합된 상황'(die zerdehnte Situation) 속에서 작동한다. 문화적 기억은 과거와 현재가 동렬로 배치되어 전승되는 문화적 의미이다. 신화는 기원에 대한 기억인데, 그것은 “상징과 제의와 같은 기념비적 소통의 장 즉, 축제를 통해 연출되고 경험되는 기억이다. 그것은 따라서 일상과 대비되는 것, 아니 일상에서 배제되어 있는 현존재의 근원을 지시해 주고, 일상이 지향해야 할 질서를 일러줌으로써 일상의 의미를 비로소 생성 시켜주는, 아스만의 표현에 따르면 일상의 결핍을 '치유해주는 기억이다."[2]
우리는 시간적 병렬 속에서 일종의 심리적 위안을 찾는다. 기억담론은 과거에 대한 비판과 향유라는 대립하는 두 축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한편은 과거의 신화를 해체하고, 다른 한편은 과거를 재신화화하고 있다. 문화와 문화원형 그리고 전통과 연관된 '뿌리찾기' 즉 재신화화는 결국 문화에 내포된 근대화의 문제점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홉스봄(Eric Hobsbawm)의 「만들어진 전통의 서론 '전통들을 발명해내기'의 한 단락을 인용한다.
"역사적으로 기념할만한 과거에 준거하는 한, '만들어진 전통의 특수성은 대체로 과거와의 연속성을 인위적으로 내세우려 든다는 데에 있다. 요컨대 전통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반응인데, 여기서 역설적이게도 예전 상황들에 준거하는 형식을 띠거나, 아니면 거의 강제적인 반복을 통해 제 나름의 과거를 구성한다. 따라서 지난 두 세기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전통의 발명'을 그렇게도 흥미로워하는 까닭 역시, 근대세계 안의 지속적인 변화 및 혁신과, 사회적 삶의 몇몇 부분만큼은 고정불변의 것으로 구조화하려는 시도 사이의 대립에 있는 것이다."[3]
관습이 살아 있는 과거라면, 전통은 과거와의 실질적인 단절 속에서 그 단절을 은폐하기 위해 '고안된' 정신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세계사적으로 19세기 민족주의가 발흥할 때 가상의 타자를 설정함으로써, 자민족에게 고유한 문화가 유럽에서 주장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서 그 작업을 본격화시키고 있는 형국이다. 20세기 후반 한국인은 서구에서 고안된 가상의 타자를 자발적으로 우리 안에서 찾아왔다. 이른바 Re-Orientalism 현상이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를 기억할 때, 많은 사람들이 역설적이지만 서구에서 만들어진 관점인 Orientalism의 시각에서 의식, 무의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발전하였으나,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이 그러하듯 학문의 정체성은 늘 의문의 대상이었고, 일상인들의 자기 정체성 추구 역시 서구화와 일본화, 미국화 속에서 왜곡 발전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일단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주체적 관점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으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나가는 지금 그 흐름은 다시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대의 주된 구호는 다시 수단과 과정의 합리성 보다는 찌그러진 결과만을 강조하는 경쟁 중심의 강자의 논리로 귀환하였다. 여기서 근대화 과정에 만들어진 문화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한반도의 근대화는 서구화와 교차하였고 동시에 우리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런 정황은 한국이나 중국 등 동아시아만의 특징이 아니라 후발 자본주의 사회가 동일하게 겪는 역사적 체험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후발국인 독일의 예를 들어보자. "독일 부르주아가 제기한 문명과 문화의 대립은 뒤에 서구사회가 동아시아를 제국주의적으로 침탈해 올 때에 동아시아가 제기했던 중체 서용이나 동도서기 같은 담론의 전사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4] 주지하듯이 근대초기 독일은 서구(즉 영국과 프랑스)에 대한 정치경제적 후진성을 정신주의적으로 보상하려는 욕구를 '자신들만의 가치에 내재하는 지적, 예술적 우위성'으로 정당화하려는 부르주아들의 시대 정신의 영향력이 있었다.[5] 영어에서 culture와 civilization은 동의어적 성격이 강하나,독일에서는 이러한 언어의 의미동일성이 수용될 수 없었다. "우리는 예술과 학문을 통해 매우 높은 수준으로 문화적으로 교화되었다(kultiviert)... 도덕성의 이념은 문화(Kultur)에 속하는데, 이를 단지 명예욕, 예절과 같은 무엇과 피상적으로 예의바른 어떤 것에서만 찾는다면 이는 문명화(Zivilisierung)에 귀결될 것이다."[6]라는 칸트의 진술은 겉치레적이고 물질적인 서유럽의 문명에 대해 내면적 도덕성을 강조하는 독일문화의 우위성을 대변하고 있다. 칸트 이후 18세기 독일 지식인들은 문화를 정신적 문화(Kultur)와 물질적 문명 (Zivilisation)라는 대립구도로 이해하였다. 이렇게 이해된 문명과 문화 관계에서 독일인들은 민족적 대립이 격화되면서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을 서부 유럽의 물질적 문명에 대항하는 중부 유럽 독일의 문화 투쟁으로 파악하였다.
본래 서양에서 문화에 해당되는 라틴어 cultura(경작, 교육)는 동사 colere(돌보다, 교화하다)에서 유래하였듯이 문화에는 인간의 개입 행위가 강조되는데, 특히 교육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근대 독일어 '문화'의 용례는 개인과 사회의 자아교육과정을 반영한다. 인간적 품위를 지닌 고급의 정신문화와 저급한 대중의 물질문화에서 보이는 이분법적 사유와 그리고 '교양' 개념과 연결된 문화개념은 특히 후발 근대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찾을 수 있다. 동양의 고대 문화 개념도 인간의 교육과 수양의 맥락에서 발전되었다. 문화는 본래 ‘이문교화(以文敎化)’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문치교화(文治敎化)와 덕치교화(德治敎化)와 함께 유가적 인문정신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즉 사회적 변화 시기 인간의 적극적 개입을 추동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위로부터의 개혁' 방식을 취한 후발국들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시급히 요청되는 대중의 동기유발을 주로 정신적 혹은 도덕적 측면에서 찾는 이유는 전근대 사회의 문화적 기억과 친화성이 깊기에 그만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개념은 여전히 오늘날도 유효한 근(현)대화 문제와 직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독일적 문화 개념에서 형성된 고급문화는 대중문화와 분명히 다르고, 이러한 영향은 20세기 중반 문화산업를 비판한 아도르노까지 미치고 있다. 물론 현대 한국사회는 그 당시 서구와 구별되는 자본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유럽사회의 계급에 따른 문화의 차별적 소비 형태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분명한 차별성을 찾기가 어렵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계급 혹은 계층적 정체성으로 차별되게 문화를 수용하거나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구별이 어려운 혼합적 양상을 보이는 것이 우리의 현재이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사회변화를 분석할 때, 혼합적 상태에서 저항문화를 형성하지 못하고 지배문화를 추수하는 경향을 감안한다면 위에서 말한 고급-저급의 대립적 문화전통은 동아시아에서도 유사한 흐름을 찾을 수 있고, 근대화 과정에서 지금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시아의 중체서용(中體西用), 화혼양재(和魂洋才), 동도서기(東道西器)적 근(현)대화(Modernization) 논리에서 보이는 정신 중심적 이분법과 과거 회귀적 사유형태는 여전히 지배적이고, 이 연속되는 흐름 속에서는 인문(人文)정신의 추구가 '문인(文人)정신'으로 회귀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우리에게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러한 전통에서 문화적 기억도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화의 뿌리 찾기도 이러한 흐름에 대한 성찰이 필수적이다. 사회경제적 근대화는 수용하면서 문화적 근대화 즉 타자와의 공존을 거부하였던 중국이나 조선 후기의 근대화론은 신구·동서간의 대립관계를 절충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하였다. 중체서용적 절충주의에 내재한 문화보수주의는 다만 19세기 말의 현상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 지배적인 문화해석은 헌팅턴식의 문화본질주의 측면이 강하다. 전통의 이름으로 근(현)대를 거부하고, 동시에 근(현)대라는 이름으로 전통을 비판하는 다시 말해 전면적 긍정을 하면서 동시에 전면적 부정을 하는 이원대립적 현대성 담론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Note]
[1] 얀 아스만, 『기억의 공간』 (경북대학교 출판부, 2004), 39쪽.
[2] 김학이, 「얀 아스만의 '문화적 기억'」, 『서양사연구』 (서울대 서양사연구 33, 2005), 241쪽.
[3] 에릭 홉스봄, 박지향 외역, 「만들어진 전통」(휴마니스트, 2004), 21쪽
[4] 김종엽, 「문화개념의 변동과 문화연구의 과제」, 「문화이론과 문화컨텐츠의 실제」 (인하대 문과대학 특화사업단, 인하대, 2005), 72쪽.
[5] 이러한 맥락에서 쉴러는 "미적 교육" 4번째 편지에서 프랑스 혁명과 유토피아 사조를 비판한다. F.Schiller, Ueber die ästhetische Erziehung des Menschen (Stuttgart, Reclam, 1965).S.9.
[6] Kant, 'Idee zu einer allgemeinen, Geschichte in weltbürgerlicher Absicht', in; Werke Bd.9 (Darmstadt, 1983), S. 44
(A402~403).
[7] 이하는 박상환, 「문화콘텐츠와 인문학의 소통과 가능성」, 『인문과학 41호』 (성대 인문과학연구소, 2008), 228-229 쪽에서 요약 및 발전시킴.
[8] 문화가 인류사회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시각.
[9] 디터 젱하스, 『문명내의 충돌』 (문학과지성사,2007), 22쪽.
2012
Once Nietzsche expressed his attitude toward knowledge like this: "I see knowledge from the viewpoint of art, and art from the viewpoint of life." What does it mean to see knowledge from the viewpoint of art? Creativity is the essence of art. People and events remembered in the history of art are those that created something new, going beyond manners and styles that preceded them. In most cases, in the area of scholarship and knowledge, we learn from existing achievements of other people, and end up merely reproducing without adding much to their achievements. Nietzsche called this philosophical labor, or knowledge labor, in the sense of repeating something given, and in the sense that we do it reluctantly and painfully, a contrast to play which we willing to do.
But even in the history of study or knowledge those who create something different from what was before are remembered. Seeing knowledge from the viewpoint of art is thinking and studying with the will to invent something new. Deleuze would name it 'flight,' in a sense that it is like drawing a line of flight from existing achievement, and in another sense that the history of art is composed of lines of flight and that knowledge, science, or study should be also defined by them. It may be replaced with the expression 'clinamen', an element swerving from inertial movement.
Nietzsche thought it is not enough to see knowledge from the viewpoint of art. So he added that we should see art from the viewpoint of life. What does it mean? Isn't art an activity pursuing beauty? On the contrary, we don't say life pursues beauty.
In Untimely Meditations (Unzeitgemasse Betrachtungen), Nietzsche criticized modern knowledge as that which became separated from people's lives, turning into liberal arts. Though I am not sure about the pre-modern status of knowledge in the West, if we assume that philosophy means 'love for wisdom (philos+sophia)', following the Greek origin of the word, it must have had to do with the wisdom for living. In the pre-modern period, the role of history was also to teach how to solve the confronted problems based on past events. It was in the modern period that philosophy became a paranoid knowledge seeking for a firm ground of certainty, and history became a universal law that has its own logic of progress, achieving its purpose everywhere. Seeking for 'truth' became a sublime aim separated from life, taking knowledge beyond the realm of life.
If 'beauty' becomes a sublime aim existing on its own, it will carry our lives away from this world -- into an escapist world by rendering our real lives insignificant and contemptible, then to nihilism that denies real life by yearning for another world. In this context, Nietzsche must have meant that we should not regard art as an activity merely seeking for beauty. Beauty itself, art itself should not be the aim of art. In fact, isn't beauty itself a cohesive sense of the beautiful felt within the realm of life? Thus, isn't the content and standard of beauty subject to change according to the shifting ways of life? Didn't art occur when an activity of making something necessary in the course of life, such as ritual and practical things, acquire expressive originality? Isn't art an activity that becomes a part of life in which it participates with aesthetic peculiarity?
After all, seeing art from the viewpoint of life means to see art as an activity that betters our lives. It means that art should lead us to a better life. In other words, it would mean that a better life, more happy and exciting life should lead art. Or, it would almost mean that we demand for an art that leads us to such a life. We require art to acknowledge life, to stir happiness and excitement, to make us see something we have not seen before, to let us live with different sensibility, etc.
Every outstanding artwork is soaked with a life that an artist experienced, observed, thought of and imagined, though not always in the form of realism. Not only in Dostoevsky's and Goethe's, but also in Kafka's novel of absurdism and Borges' work of compression, there exists an insight into life, an understanding of the world. Not only Gogh's and Picasso's, but also the pictures of Klee and those of Magritte are filled with stimuli that make us see the world before us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Not only in Beethoven and Mahler, but also in the Beatles, Nirvana, Radio Head, or in the noises of Sonic Youth and My Bloody Valentine, new sensations are overflowing, letting us encounter every moment of life in such a different way. All of these make our life abundant. As time goes by, the new becomes the old, but even this process itself requires something new again. For every newness that emerges, our life is enriched that much more.
In this respect, an art as a creation may belong to artists, but an art as a way of life, endless self-overcoming, is not monopolized by artists. Artists make artworks with material, but we make artworks with our own lives. We should make our life art. It doesn't mean that we should decorate our life and make it look good, but it rather means that as we confront the things coming to us, we are to constantly change our senses, bodies and thoughts through them. And with these changes we create a different life. Art participates in life through stimulating change in our senses and bodies that are otherwise resistant to it. While literature provides us a different sense of speaking and thinking, the plastic arts provide us with a different sense of seeing and feeling. Through different kinds of sound and rhythms of music, we obtain a different rhythm of living. It is perhaps for this reason that we should rely on artists' works in order to make our life art. Art participates in life and becomes a part of it in this way. I understand this is what Nietzsche meant when he said "we should see art from the viewpoint of life".
Freud showed that a fixation of mind is a kind of disease. Trauma, a Greek word, literally means wound. It is a painful memory that remains indelible. It is a wound that is disappeared from consciousness because it's painful to recall, but remaining in the corner of mind, a place Freud calls unconsciousness, because it cannot be erased. It is a wound that is forgotten in the conscious memory but keeps reappearing in various forms because it has not actually disappeared. It is a wound that appears in transformed and distorted forms but cannot be extinguished because it is not in the area of consciousness. This is trauma.
Freud called 'fixation' a state in which there is a wound and our mind or desire is obsessed with it. A fixed desire keeps returning to our life as a hysterical reaction, obsessive neurosis or anxiety neurosis, i.e., the 'Return of the Oppressed.' Freud called these symptoms. If these symptoms keep occurring, it signifies a disease. In this sense, a mind fixed somewhere signifies a sickness. 'Adherence' is a state in which our mind is obsessed and fixed but is not a disease. Fixation is reactive, because it is related with a wound, but adherence is active, a kind of attachment. It is a reactive desire hiding itself in an active form. It is close to fixation (Besetzung) in the way it projects desire. It is a loose form of fixation, or a Be-setzung that is not strongly oppressed, easily appearing on the surface of consciousness. Fixation or adherence ties our desire to wounds and drives stakes into our lives. Therefore our life becomes a symptom of disease circling around the stake instead of an endless journey searching for the new.
Settlement is different from fixation in that we can change the place we settle and move to another place. In the state of settlement, we choose to stay even though we are able to leave, whereas in the state of fixation, we are deprived of the ability to leave. The state of settlement is neither obsessively reactive fixation nor active adherence, but it is a way of a passive projection of desire in that it tries to avoid the fatigue of a wandering life. It is a way of living in which we stop wherever we find 'success' -- whether in acquiring food or in enjoying something -- and attempt to maintain that success. The settler invents 'possession' for such maintenance. It is pronouncement that the profitable place belongs to them, that nobody is permitted to invade into it or share it. It gives form to a new reactivity. The passivity of avoiding invasion becomes a new reactivity preventing and pushing out any access from the other.
This reactivity creates a negative activity when it is transformed into an 'imperialistic' desire to secure and expand possession -- a negative activity which desires extinction of the approaching other. Money and capital provide the threshold of these changes. Within this inertia of desire, settlement becomes adherence, and soon fixation. Life seeking for comfort turns into one that destroys any comfort and peace. In this respect, it is not difficult to understand that though settlement is not a disease like fixation and adherence, when provided a slightly favorable condition, it could be an insane, sick desire that stakes one's entire life to increase possession and money.
Nomadism is defined by a vector contrary to settlement as well as fixation and adherence. It is opposed to staying and the fixing of projected desire. It is inevitable, of course, to stop and to stay from time to time, but the stop exists within the elements of movement, that is, a stop is just an element of movement, and staying is connected to another departure. Settler wants to possess and maintain any success, but nomad takes the ripeness of success as a sign that tells them it is time to leave, so they distribute their success to others, and leave to start new life.
One must notice that the nomad is different from the migrant. Migrants are the people who abandon and leave the place they have been settled when they have consumed everything or failed to get anything profitable. They abandon and leave the barren land in search of another profit. On the other hand, nomads are people who invent creative ways to live in a wasteland, whether it is prairie or desert, from which it seems nothing to get, in a land of failure. In this respect, nomad is not defined by wandering, migration or movement. For this reason Deleuze and Guattari suggested the paradoxical definition, "nomad doesn't move", or the 'unmoving nomad.'
Suppose we can define it in a slightly different way: that is, the migrant is one who abandons failure, but the nomad abandons success. Migrant is content with success and exploit it until it becomes barren, but nomad embraces failure and invent new ways to succeed, then leaving for another land when success is ripe. The nomad fights not only failure but also success. They confront failure rather than avoid and turn away from it, and fight success rather than remain content with it. In this sense, nomads are those who fight themselves, always leave the familiar self. Always open to strange lives, strange worlds and strangers, they change themselves through strange beings. They bring forth new differences within themselves through strangers.
Art is essentially nomadic in that it leaves and changes something familiar. It is nomadic in that it cannot succeed without leaving. However this is not the only type of art or artist. There is an artist who rose to fame from painting water drops, eventually spending a lifetime of repeatedly painting water drops. In this case, is success a blessing or a disaster? In fact, such a case is not uncommon. Marcel Duchamp once said that most artists repeatedly plagiarize their own successful artwork, and even master artists created just a few valuable works. Of course when artists give birth to difference in repetition and along repetition, and when such difference makes repetition another name for difference, we can acknowledge such repetition as another name of difference. However, the artists themselves are the ones to ask the question whether the difference within repetition is the difference that makes them leave their territory.
Let alone the artists who stay in their success, how many artists are there who are parasitic on the success of others? When the success of Impressionism was secured, many became impressionists in order to exploit such familiarity for the sake of profit. When cubic buildings became the international style, architects made a living out of profiting from churning out cubic buildings. They are all settlers. They have never even been migrants. Though prompted by a sizable scandal -- the distortion and attack on the part of the Church towards the statement, "Now the Beatles is more famous than Jesus." -- the Beatles makes a decision to stop endless performance which made new attempt impossible, embarking on a new musical experiment within the studio. The great albums of the later period, represented by 'Sergean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were made possible by leaving former success. John Lennon had begun to consider leaving the Beatles after the group achieved great success, establishing itself as a superstar; however, when he abandoned success and chose a new path, enduring blame, he found another world. In this period John Lennon was neither the Beatles nor a member of the Beatles.
Nomadism is leaving familiarity, success, and proficiency. In this respect, nomadism is another name of the way of endless renewal of life. It is another name of the way in which one makes life into art. If we can call the better way to live 'ethica', borrowing Spinoza's terminology, nomadism can be redefined as an ethica of making life into art. It is a passage through which art (renewing and stimulating life with a sense of flight) intervenes in life and a way in which art is rolled into (in-volve) life.
There would be no other period where nomadism is more easily misunderstood than the so called 'globalized' period, in which the speed of production, distribution, consumption and culture all over the world is next to that of light. Capital is the fastest. The chain of increase is produced while the flow of financial capital is moving across national borders. And so does production. The laptop I am writing with has a Toshiba mark (Japanese brand), but its CPU is made in the USA, the RAM in Korea, the CD-ROM in Malaysia, and other parts have their own nationalities. Finally all of these are assembled in China. Not only high-tech products but also traditional products like clothes are produced and distributed across borders. Globalized production, globalized consumption etc. Company employees, sales people, consumers as well as capital and capitalists are drawing a globalized trajectory. The education system, such as college and graduate school, cannot be more globalized, and studying abroad is now a necessary qualification for getting a job. Trips abroad are now popular, even routinized. Social movements as well as the activities of intellectuals and artists are globalized. Globally scaled movements are proceeding everywhere in a generalized form. Moreover, mobile technology, such as the Internet, computers, smart phones and so on, is drawing a vector of movement in the daily lives of most people.
It is a commonly accepted idea that traveling life in the globalized world is nomadic. 'Digital Nomad' was once the copy of a commercial of a leading Korean company, and a TV show introducing new trends invited me for the reason that I wrote a book titled 'Nomadism.' These cases show the commonly accepted idea. But if the mind of an enterpriser, who says "The world is wide, and there a lot of things to do" and makes a business trip abroad less than every three days, is centered only on making money or is anxious about his family's comfort, we do not think of him as a nomad, regardless of the frequency of his travels. Or, though people cannot take their eyes off their smart phones, continuously fiddling about with them, we would not say they are nomadic, unless their thoughts and acts depart from the standard criteria of life. In this respect, Deleuze and Guattari's paradoxical proposition -- "nomad doesn't move" -- that separates the concept nomad from moving, and distinguishes nomad from migrant, seems to foresee this period.
It is not surprising that this is a period where books like Homo Nomad, in which moving life is universalized as another human nature, is written and ideas like the 'Job Nomad' -- one who constantly changes jobs -- is generalized as a new trend. The emergence of the intellectual, who mistakes nomadism for the moving mode of life, is persuasive within the boundary of commonsense, as far as it is close to the generally accepted idea. Although art is supposed to break generally accepted ideas and challenge commonsense, the phenomena of artists creating artworks on the subject of nomadism, is not difficult to understand. Nothing is more commonsensical than to think of nomadism as a proper arrangement of items that symbolize moving or leaving, such as nomadic tents or bundles (bottari). However, what differentiates nomadism from settlement is not that it moves but that even when it stays, it stays in the vector of moving, and that the vector of de-territorialization has primary power even when it proceed with re-territorialization -- a deterritorializing while dismantling a given order, given commonsense or sense. It is not moving along the striae that control and organize flows, but it is operating vector, like a swirl, that is open to every direction, overflowing the striae. It is not tracing a visual form created by contours but it is to read the tactile surface, to capture and comprehend the singularity (singularité), or this-ness (theccéité) of each place, in a nearness within which contours disappear and the shape is indiscernible. Deleuze and Gahttari summarize this with the concept 'smooth space'. Nomadism is to create smooth space anywhere, to occupy it, and to gather the masses, or the public within it.
For this reason, it seems to me that to deterritorialize the entire arrangement around a western table by covering it with unfamiliar and different cloths, is closer to nomadism than the bundle (bottari) which symbolizes leaving or moving or to install a high-tech screen within an old temple, to make something that is not irrelevant but sufficiently distant, invade it, to deterritorialize the entire space to install a wide screen beside the elegant baroque palace and projecting images of an unfamiliar world on it, to displace the palace into a different order such is more nomadic than to mark the trace of movement with items that symbolize the nomad, or the nomadic shape supported by commonsense.
I should say likewise about the nomadism frequently discovered in works of Paik Nam June. Rather than to install a video work on a nomadic carriage or horse, to create new entities from mixing elements of humans and machines, while calling the commonsensical concept of boundary between human and machine into question, is closer to nomadism. And rather than artworks or performances using ethnic elements of the nomad, to bring the act of breaking commonsense about music, instruments and performance into one flat surface where non-music is connected in the name of music and non-dance is called dance, is closer to nomadism.
After all, we should say, then, it is necessary to create a nomadic art opposed to the concept of nomadism, or to create anew the form of nomad by deterritorializing the very existing form of nomad. Perhaps this could be a way to get art closer to nomadism in the age of large scale movements where movement and the appearance of it replace nomadism and erase the essence of nomadism. To invent a way of nomadic life beyond the way of moving life (which is already dominant), to operate the nomadic war machine in anew kind of space we now live in, to recreate a new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life in the nomadic smooth space, to create an attractive singularity gathering the public into the space and to make it operate thus is the call of the will of the positive life that pleads with the artist.
— Essay from Exhibition Catalogue 'Kimsooja' published by Daegu Art Museum, Korea. 2012, pp.58-73.
이진경
2012
예전에 어디선가 니체는 공부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예술의 관점에서 지식(공부)을 보고, 삶의 관점에서 예술을 본다." 예술의 관점에서 공부를 본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예술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안하지 않고선 잘 할 수 없다. 예술사에서 기억되는 사람들, 기억되는 문턱들은 전부 이전의 양식이나 스타일을 제끼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안한 사람이나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공부 내지 학문은 많은 경우 기존에 남들이 해놓은 것을 배우는 것으로 진행되고, 그러다보니 배운 걸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재'생산해 놓는 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을 니체는 철학적 노동자, 지식 노동자라고 불렀다. 노동이란 주어진 것을 반복하는 것이란 의미에서, 신이 나서 하는 놀이와 달리 싫어도 힘들어도 참고 해야 하는 것이란 의미에서.
그러나 학문이나 지식의 역사 역시 기억할 만한 것들은 전부 기존의 것들과 다른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안한 사건이나 사람들이다. 즉 예술의 관점에서 공부를 본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창안하려는 의지 속에서 사유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들뢰즈라면 이를 '탈주'라는 개념으로 명명했을 것이다.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는 탈주의 선을 그리는 것이라고. 예술의 역사는 탈주선들에 의해 구성된다고. 지식이나 과학, 공부 역시 탈주선에 의해 정의되어야 한다고. 이를 '클리나멘(clinamen, 편위)'이란 말로 바꾸어 말해도 좋을 것이다. 관성적인 움직임에서 벗어나는 성분으로서 클리나멘.
그런데 니체는 예술의 관점에서 공부의 문제를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덧붙인 것이다. 그 예술 또한 삶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예술을 삶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술은 미를 추구하는 활동 아닌가? 반면 삶이 미를 추구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반시대적 고찰』에서 니체는 근대의 지식이 사람들의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교양이 되어 버렸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서구에서 근대 이전에 지식이 모두 그랬는지는 잘 모르지만, 가령 철학이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라고 했을 때, 그것은 삶을 사는 지혜를 가르치려는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역사 역시 근대 이전에는 과거의 일들을 들어서 현재 당면한 일을 풀어나가는 지혜나 교훈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철학은 인식의 확실성을 보증하기 위해 근거를 찾는 편집증적 지식이 되고 말았고, 역사는 그 자체로 고유한 발전의 논리를 갖는, 어디서나 관철되는 보편적인 법칙이 되고 말았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은 이처럼 삶에서 분리된 어떤 고상한 목적이 되어 지식을 삶의 저편으로 인도했다.
'미' 또한 그 자체로 존재하는 고상한 목적이 된다면, 마찬가지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삶의 저편으로 인도할 것이다. 현실적 삶을 초라하고 비루한 것으로 만드는 지고한 피안의 세계, 그리하여 피안의 삶에 대한 동경의 형태로 현실의 삶을 부정하게 하는 니힐리즘으로. 이런 점에서 본다면, 앞서 인용한 명제를 통해 니체가 말하려는 것은 예술을 그저 미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아선 안된다는 말일 게다. 미 자체, 예술 자체가 예술의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는 말일 게다. 사실 '미' 자체 또한 삶 속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의 감각이 응집되어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그렇기에 삶의 방식이 다르면 미의 내용이나 기준이 달라지는 것 아닌가? 예술이란 의식(ritual)이든 생산이든 삶의 과정이 요구하는 것을 만드는 활동이 표현적인 독자성을 획득할 때 발생했던 것 아닌가? 결국 예술이란 미적인 특이성을 갖고 참여(participation)하는 방식으로 삶의 일부분이 되는(participation) 그런 활동이 아닐까?
따라서 삶의 관점에서 예술을 본다는 것은 좀더 나은 삶을 산출하는 활동으로서 예술을 본다는 말일 게다. 예술이 좀더 나은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게 해야 한다는 말일 게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삶이, 좀더 나은 삶이, 좀더 즐겁고 신나는 삶이 예술을 인도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혹은 그런 삶으로 인도하는 예술이 될 것을 삶의 이름으로 요구하는 것을 뜻하는 것일 게다. 삶을 긍정하고, 즐겁고 신나는 삶을 촉발하는 예술, 이전과 다른 것을 보게 하고 이전과 다른 감각으로 살게 하는 예술 등등.
사실 리얼리즘이 아니더라도, 탁월한 예술작품 속에는 예술가가 체험하거나 관찰한, 혹은 사유하거나 상상한 삶이 스며들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나 괴테만이 아니라 카프카의 '어이없는' 소설 속에도, 보르헤스의 압축적 소설 속에도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그런 삶을 사는 세계에 대한 깊은 사유가 들어 있다. 고흐나 피카소만이 아니라, 클레, 마그리트의 그림은 내 눈 앞에 펼쳐진 세계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만드는 촉발로 충만해 있고, 베토벤, 말러만이 아니라 비틀즈, 너바나, 라디오 헤드, 혹은 소음으로 흘러넘치는 소닉 유스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음악에도 삶의 한 순간순간을 다른 방식으로 만나게 하는 새로운 감각으로 흘러넘친다. 그것으로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풍요로워진다. 새로운 것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낡은 것이 되지만, 바로 그렇기에 다시 새로운 것을 부른다. 새로운 것이 또 하나 나타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또 하나 체험할 때마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풍요로워진다. 이런 점에서 창작으로서의 예술은 예술가들의 것일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스스로를 넘어서는 삶의 방식으로서 예술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예술가들은 주어진 재료로 작품을 만들지만, 우리는 바로 우리의 삶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삶의 예쁘게 치장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들과 진지하게 대면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감각, 자신의 신체,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바꾸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달라진 감각, 신체, 생각으로 다른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예술이 삶에 참여하는 방식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 우리의 감각이나 신체를 바꾸도록 촉발하는 것을 통해서일 것이다. 말하고 생각하는 다른 감각을 문학이 준다면, 보고 느끼는 다른 감각을 미술이 준다. 음악이 주는 다른 종류의 소리, 다른 종류의 리듬을 통해 우리는 삶을 사는 다른 리듬을 얻는다. 우리가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들기 위해 예술가들의 힘을 빌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 터이다. 예술이 삶에 참여하고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 일 것이다. 니체가 삶의 관점에서 예술을 보자고 했던 것도 이런 의미에서 일 것이다.
프로이트는 마음이 어딘가에 고착되는 것이 질병임을 보여주었다. 흔히 외상(外傷)이라고 번역되는 트라우마(Trauma)는 말 그대로 상처를 뜻한다.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아픈 기억이다. 떠올리는 것이 고통스럽기에 억압되어 의식에서는 사라졌지만, 지워질 수 없는 것이기에 마음 한구석, 프로이트가 무의식이라고 불렀던 곳에 기억되어 남아 있는 상처, 의식에선 잊혀졌지만, 없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드러나고 표현되게 마련인 상처, 의식되고 있지 않기에 항상 변형되거나 왜곡되어 드러나고 의식되고 있지 않기에 없앨 수 없게 되어버린 상처, 그게 트라우마다.
이런 상처가 있고, 우리의 욕망 내지 마음이 그 상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프로이트는 '고착(fixation)'이라고 부른다. 고착된 욕망은 우리의 삶 속으로 반복되어 되돌아온다. '억압된 것의 귀환'. 히스테릭컬한 반응으로, 혹은 강박증적인 신경증으로, 혹은 불안 신경증으로 등등. 이를 프로이트는 '증상(symptom)'이라고 부른다. 이런 증상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경우, 그것은 '질병'이라고 정의된다. 이런 점에서 어딘가에 마음이 고착된다는 것은 병에 걸린 것을 뜻한다. '집착'이란 흔히 질병이라고 하진 않지만, 어딘가에 마음이 사로잡히고 고착된 것을 뜻한다. 그리고 고착과 달리 상처라는 '반동적(reactive)' 형식이 아니라, '애착'이라는 '능동적(active)' 형식을 취한다. 능동성의 형태로 자신을 가린 반동적 욕망. 그것은 고착과 아주 인접한 욕망의 투여(Besetzung)방식이다. 그것은 고착의 완화된 형태, 혹은 그처럼 강하게 억압되진 않아서 의식의 표면으로 쉽게 떠오르는 붙박힘 (Be-setzung)이다. 고착이나 집착은 우리의 욕망을 상처에 매이게 하고 우리의 삶에 말뚝을 박는다. 이로써 삶은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끝없는 여행이 아니라, 그 말뚝 주변을 맴도는 질병의 증상이 된다.
정착이란 정착할 곳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착과는 다르다. 그것은 떠날 수 있지만 머무는 것이기에, 떠날 능력을 상실한 고착과 다르다. 그것은 고착처럼 사로잡힌 반동성도, 집착처럼 달려드는 '능동성도 없지만, 버틸 수 있는 한 떠나는 삶의 피곤함을 피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욕망의 수동적 (passive) 투여방식이다. 먹을 것을 얻는 데서든, 무언가 영유하는 데서든, '성공'한 어떤 곳에 멈추어 서고 그 성공을 반복해서 영유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것을 반복하기 위해서 정착민은 '소유'를 발명한다. 무언가 이득을 주는 곳은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속한다는 선언, 남들은 그것을 침범해선 안되며, 그것을 나누어가지려고 해서도 안된다는 선언이 그것이다. 그것은 이제 새로운 반동성을 만들어낸다. 침범당하고 싶지 않다는 수동성이 타인들의 접근을 저지하고 밀쳐내는 새로운 반동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반동성은 소유를 확보하고 확장하려는 '제국주의적' 욕망으로 변형되면서 부정적인 '능동성'을 새로이 만들어낸다. 근접해오는 타자들의 절멸을 욕망하는 부정적 능동성을. 화 폐와 자본이 이러한 변환의 문턱을 제공한다. 이 욕망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제 정착은 집착이 되고 고착이 된다. 편안함을 구하던 삶은 모든 편안함과 평화를 깨는 질병이 된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정착이 언제나 고착이나 집착 같은 질병인 것은 아니라고 해도, 약간의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언제든지 소유물의 증식을 위해, 화폐의 증식을 향해 삶 전체 를 거는 미친 욕망, 병든 욕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목은 고착이나 집착은 물론 이런 정착 자체와 반대되는 벡터에 의해 정의된다. 그것은 욕망의 투여가 어딘가에 머물거나 고정되는 것에 반한다. 물론 멈추지 않을 수 없고 종종 머물지 않을 수 없지만, 멈춤은 이동의 성분 안에 있고, 이동의 중간에 지나지 않으며, 머묾은 또 다른 떠남으로 이어진다. 정착민은 어떤 성공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여 지속적으로 영유하려 하지만 유목민은 충분히 성공했다는 것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 성공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며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위해 떠난다. 여기서 유목민이란 이주민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주민이란 어딘가에 정착하지만 그곳이 더 이상 얻을 게 없어지면, 혹은 거기서 이득을 얻는데 실패하면 쉽게 그곳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다. 또 다른 이득을 얻기 위해, 불모가 된 땅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다. 반면 유목민은 초원이든 사막이든 불모가 된 땅에, 더는 얻을 게 없어 보이는 땅에, 그 실패한 삶의 영토에 달라붙어 거기서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을 창안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점에서 이동이나 이주, 움직임이 유목민을 정의하는게 아니다.
그래서 들뢰즈/가타리는 "유목민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움직이지 않는 유목'이라는 역설적 정의를 제시한다. 이를 우리는 약간 다른 식으로 대비하여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이주민은 실패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라면, 유목민이란 성공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이라고. 이주민이 하나의 성공에 안주하여 그 성공이 불모가 될 때까지 이용/착취 (exploitation)하는 사람들이라면, 유목민은 실패를 떠안고 거기서 새로운 성공의 방법을 창안하며 그 성공이 충분하면 새로운 영토로 떠나는 사람들이라고. 유목민이란 자신의 실패와 성공 모두와 대결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실패를 피하고 외연하기보다는 그것과 대결하는 사람들이고, 자신의 성공에 안주 하기보다는 그것과 대결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목민은 자신과 대결하는 사람이고 언제나 익숙해진 자신을 떠나는 사람이다. 낯선 삶, 낯선 세계, 낯선 타자들을 향해 언제나 자신을 열어두고 그 낯선 존재들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자다. 그 낯선 존재들을 통해 자신 안에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내는 자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익숙해진 것을 떠나고 변형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유목적이다. 떠남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유목적이다. 그러나 그런 예술, 그런 예술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오브제를 그려 성공한 덕분에 평생 그것만 그린 사람도 있다. 이 경우 성공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이는 사실 특별한 경우라고 하기 어렵다. 마르셀 뒤샹은 대부분의 작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그런 반복 안에서, 그 반복을 따라, 그 반복을 다르게 만드는 어떤 차이들이 되돌아올 때, 그 차이로 인해 반복이 차이의 다른 이름이 될 때, 우리는 그 반복마저 차이의 다른 이름으로 긍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복 속의 차이가 정말 자신을 떠나게 만드는 차이인지, 정말 자신의 영토를 떠나게 만드는 차이인지를 정작 물어야 할 것은 예술가 자신일 것이다.
그러나 성공에 안주하는 것은 그만두고, 남의 성공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예술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인상주의의 성공이 확실해지자 인상주의자가 되어 그 익숙함의 이득을 착취하며 살아간 사람들, 육면체 박스로 만든 건축물이 '국제주의 양식'이 되자, 평생 육면체 박스 모양의 건물만을 지어 이득을 획득하며 살아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모두 정착민이다. 이주자도 못 되어본 사람들이다. 비틀즈는, 작지 않은 스캔들(“비틀즈는 이제 예수보다 유명하게 되었다”는 발언에 대한 교회의 곡해와 공격)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긴 했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없게 만드는 끝없는 공연을 접고 스튜디오에 들어앉아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시작한다. <서전트 페퍼 앤 론리 하츠 클럽 밴드>로 상징되는 후기의 걸작 앨범들은 이전의 성공을 떠남으로써 가능했던 것일 게다. 비틀즈가 크게 성공하여 슈퍼스타가 되었을 때부터, 존 레넌은 비틀즈를 떠날 생각을 하기 시작한 바 있지만, 그 거대한 성공을 떠나 비난마저 따르는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 그는 또 다른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 시기 존 레넌은 비틀즈가 아니었고, 비틀즈의 레넌이 아니었다.
이처럼 유목은 익숙해진 것, 성공한 것, 능숙하게 된 것을 떠나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마디즘은 앞서 말했듯이 끊임없이 삶을 갱신하고 새로 만들어내는 방법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 자신의 삶을 예술로 만드는 방법의 다른 이름이다. 좀더 나은 삶의 방법을 스피노자의 용어법을 빌어 '윤리학(ethica)'라고 말할 수 있다면, 노마디즘은 삶을 예술로 만드는 윤리학의 이름이라고 다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갱신의 기술, 탈주 의 감응으로 삶을 촉발하는 예술이 삶에 개입하는 통로고, 그럼으로써 예술이 삶에 말려 드는(in-volve) 길이다.
생산이나 유통, 소비와 문화가 지구 전체를 빛에 버금가는 속도로 이동하는 이른바 '전지구화 (globalization)'의 시대만큼 유목 내지 '노마디즘'이 오해되기 쉬운 경우는 없을 것이다. 가장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은 자본이다. 금융화된 자본의 흐름이 국경을 넘나들며 증식의 고리들을 만들어낸다. 생산 또한 그렇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 컴퓨터는 일본 도시바의 상표를 달고 있지만, CPU는 미국에서, RAM은 한국에서, CD롬은 말레이시아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다른 것들 또한 나름의 '국적'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중국에서 조립한 것이다. 이렇게 현대적인 상품만이 아니라 옷 같은 전통적인 상품 또한 국경을 넘어서 생산되고 판매된다. 생산의 국제화, 소비의 국제화 등등. 따라서 자본이나 자본가는 물론 기업에서 일을 하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 그리고 소비자 또한 전지구적인 이동의 궤적을 그리며 산다. 대학이나 대학원 같은 교육 또한 더할 수 없이 국제화되어, 유학은 그만두고라도 어학연수 같은 것을 다녀온 것은 취업을 위한 필수적인 스펙의 일부가 되었다. 해외여행 또한 일상화되었고, 대중화되었다.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의 활동은 물론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활동 또한 전지구화되었다. 전지구적 스케일의 이동이 어디서나 일반화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컴퓨터,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술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매일매일의 삶에 이동의 벡터를 그려넣는다.
이처럼 이동하는 삶을 유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통념적인 것이다. 한때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이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의 광고 카피가 되어 등장하고, 트렌드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노마디즘이란 책을 썼다는 이유로 나 같은 사람을 불려냈던 것은 이런 통념에 따른 것일 게다. 그러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3일이 멀다하고 국제선 비행기를 타는 기업가의 마음이 오직 하나 돈을 버는 것에 쏠려 있다면, 혹은 매주 국제선을 타고 출장을 다니는 사람의 마음이 가족의 안위와 돈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아무리 이동의 빈도가 많고 이동한 거리가 길다고 해도 그를 유목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스마트 폰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버스에 앉아서도 끊임없이 손가락을 놀려 서핑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의 사고나 행동이 표준적인 삶의 척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코 유목을 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유목을 이동과 구별하고, 유목민은 이주민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유목민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역설적 정의를 제안했던 들뢰즈/가타리의 명제는 이런 시대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하다. 이런 시대에 「호모 노마드」 같이 이동하며 사는 것을 또 하나의 '인간의 본성'으로 보편화하여 책을 쓰고, 심지어 직업을 옮겨다니는 '잡 노마드' 같은 것을 새로운 시대적 조류로 일반화 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동하는 삶의 양상을 유목이라고 오해하는 지식인의 출현은 앞서 말한 통념에 아주 가까이 있는 만큼 상식의 범위만큼 설득력을 갖는다. 예술이 비록 통념화된 것을 깨고 상식화된 것과 대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식적이고 통념적인 오인 속에서 예술가들이 유목을 주제로 작품을 만드는 것 역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유목민의 텐트나 보따리 같이 이동, 혹은 떠남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늘어놓는 것이 노마디즘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상식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목이 정착과 구별되는 것은 이동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멈출 경우에도 이동의 벡터 속에서멈춘다는 것. 비록 재영토화를 하며 나아가지만 언제나 탈영토화의 벡터가 일차적인 힘을 갖는다는 것에 의해서다. 주어진 배치, 주어진 상식이나 감각을 와해시키며 탈영토화하는 것. 그리고 흐름을 통제하고 질서화하는 홈을 따라 이동하는 게 아니라, 그런 홈을 범람하고 흘러넘치면서 소용돌이처럼 모든 방향으로 열린 벡터를 가동하는 것. 또한 윤곽선에 의해 만들어지는 어떤 시각적 형상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윤곽선이 사라지고 형상의 구별이 불가능해지는 근접성 속에서 촉감적인 표면을 읽고 각각의 장소들이 갖는 특이성 (singularite)을, 이른바 특개성(hecceite, thisness)을 포착하고 읽어내는 것. 이를 들뢰즈/ 가타리는 '매끄러운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요약한다. 유목이란 어디서든 매끄러운 공간을 창안하고 그것을 점유하며 그 공간 속으로 대중을, 민중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떠남이나 이동을 상징하는 보따리보다는 차라리 서양의 탁자를 낯설고 이질적인 직물로 덮어버림으로써 탁자를 둘러싼 배치 전체를 탈영토화하는 것이 사실은 노마디즘에 더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오래된 사원 안에 현대적인 스크린을 세우고, 아마도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충분한 거리를 갖는 어떤 것이 침입해 들어오게 함으로써 그 공간 전체를 탈영토화하는 것, 혹은 전아한 바로크식 궁전 옆에 커다란 화면을 세우곤 아주 거리가 먼 것 같은 세계를 가시화함으로써 궁전 자체를 다른 배치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유목민을 상징하는 물건들로 이동의 궤적을 표시하는, 상식이 지지하는 유목적 형상보다 훨씬 더 유목적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흔히들 백남준의 작품들에서 발견하는 노마디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해야 할 것이다. 유목민의 마차나 말에 실린 비디오보다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 대한 통념에 의문을 던지며 양자의 요소를 뒤섞어 새로운 종류의 존재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유목민의 민속적인 요소들을 사용한 작품이나 퍼포먼스보다는 차라리 음악이나 악기, 연주 등에 대한 통념을 깨부수며 음악 아닌 것을 음악이란 이름으로 하나로 묶고, 춤이 아닌 것을 춤이라고 불리는 하나의 평면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유목이란 이름에 더 가깝다.
그러고 보면, 유목이란 관념에 반하여 유목적인 예술을 창조하는 것, 유목민의 형상마저 탈영토화하며 유목민의 형상을 창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한다. 아마도 그것이 이동이 유목을 대신하고 이동의 외양이 유목의 본질을 지워버리는 대대적인 이동의 시대에 예술이 유목에, 노마디즘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미 지배적인 것이 되어버린 이동적인 삶의 방식을 넘어서, 유목적인 삶의 방식을 발명하고, 유목민의 전쟁기계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새로운 종류의 공간 속에서 가동시키는 것, 그리하여 예술과 삶의 새로운 관계를 유목적인 매끄러운 공간 속에서 재창조하는 것, 그 공간 속으로 도래할 민중을 불러들일 매혹의 특이점을 만들어내고 가동시키는 것, 그것이 지금 긍정적 삶의 의지가 예술가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요청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 Essay from Exhibition Catalogue 'Kimsooja' published by Daegu Art Museum, Korea. 2012, pp.58-73.
2012
This project is planned as an experiment, which introduces new arrangement from a deviated and strayed viewpoint, rather than unilaterally maintaining fixed conceptions. The Project Room, starting from the appearance of warehouse, or 'preparatory warehouse', reveals various aspects, such as 'underground - isolation from natural light'; 'concrete' wall, revealing its raw material; 'properties of road - passages and intersections.' As previous exhibition[1] showed the possibility of the Project Room as an exhibition hall, this exhibition is the result of the finding that the very aspects of the Project Room can be a main stem of a project.
The original form of the Project Room was composed of just eighteen columns connecting the ceiling and the floor. To make it an exhibition hall, walls were made between columns and six new ones were added, which form a skeletal space of 'passage_road' and 'intersections_center.' This basic form, which is isolated from natural light, has advantages of not only playing a basic role as an exhibition hall, but also effectively installing and producing works which utilize effects of light and the luminous intensity. Each section seen from 'intersection_center' is over six meters in width. It provides various criterion of space production and enables experimental and genre-integrating project such as concert, performance and films to be planned.
Therefore the plan for the Project Room will be to make programs which will be able to emit 'indiscriminate' energy by concentrating on finding experimental local art, young art, and various genre related with space interpretation, as well as utilizing the characteristic form of the space.
This exhibition aims to introduce a 'video series' that is conceived as a work from the start for dense space interpretation and introduction of the work. So we invited Kimsooja(1957), a world renowned artist born in Daegu, and researched her video works, which have been exhibited as projects, to choose a work which not only reveals kim's proper color but also flexibly fit into the direction of interpretation on the Project Room. In this process, we start from reading the structure of intersection (cross) of the Project Room, and then we begin to imagine, during continuous discussion, the structure of symmetric labyrinth as a variant of the structure of passage. Each video, planned for a project, is placed on various screens, which is located on the designed line of flow, rather than arranged according to the established way of installation. It is the moment when the meaning of space is positively expanded through the integration of the work and the space into a work of installation. In this project, Kimsooja's representative work, <A Needle Woman(2005)>, which takes as its stages symbolic sites of religious conflict, poverty, international isolation, civil war occurring worldwide, provided the core of this research and the criterion of thinking.
This work, composed of six pieces, extended time through slow playing and was arranged on a wall side by side in a form of embodying the figure life-size. The artist's body as an axis of time mediates spectators with the world, and the spectators are cognitively able to experience the gap of time by borrowing the artist's body. In other words, it was intended to reflect the problem of the universality and the substance of mankind which persists after making the elements of trouble in each city naturally and psychologically resolve through this cognitive process.
This exhibition was devised so as to expand the experience of the meaning of the work through the space interpretation, all without losing the existing intention. Therefore the road structure of this space plays a primary role of setting a physical distance for appreciation, and the line of flow leads a kind of practice walking that is a walking from work to work while connecting them. We intended psychological distance for thinking for spectators to concentrate on the work through this process, and we placed on six screens, three kinds in their size, peculiar cognitive experience in which we can recognize the artist's body as medium, aiming at more dramatic effect. At last, spectators who arrive at the last work on the line of flow go beyond being mere spectators, becoming agents who participate in the exhibition and are able to have their own trace of thinking of the work.
At the stage of researching the works of kimsooja, organizing articles also functions as a keyword constituting the core of this project. We selected articles - first, contextualizing kimsooja's entire work for a systematic understanding[2]; second, conceiving appropriate application and interpretation of [3]>, which is frequently mentioned with regard to kimsooja's works; third, dealing with a perspective on the meditation and memory as a starting point of 'archetypal' thinking[4]; and, finally a referential article, comparatively analyzing shamanism, Confucianism, Buddhism, and Daoism in East Asia with regard to cultural archetypes[5] - to provide various humanistic perspectives for the significance of kimsooja and her work.
Having shown the inherited cultural memory and the flow of her inner necessity through the act of sewing and working with fabric and bottari while plunging herself into the world, Kimsooja now transforms her meditative thinking of the awareness of nature and universal value into action, concentrating on the relation between things and herself, and between human and nature and human relationships. Here, the body of the artist as a medium becomes a vanishing point of perspective and relation, deriving a certain resonance which visualizes the form of performance.
Backdrops of <A Needle Woman(2005)> are Patan (Nepal), Havana (Cuba), Jerusalem (Israel), Sana'a (Yemen), Rio de Janero (Brazil), N¡¯Djamena (Chad in Central Africa). <A Needle Woman(1999-2001)> is a kind of sacred ritual in which she is aware of her 'body' as a 'needle' passing through people crowded in major metropolises, naming herself 'a needle woman'. <A Needle Woman(2005)> provides a wider room to interpret the problem of 'relation' from the perspectives of comparative culture, sociology and humanities, in that it approaches sites which symbolize conflict over international interests and paradoxical oppositions that remain unresolved.
Chad(N¡¯Djamena) is a representative post-colonial country which has been suffering from a civil war between Islam and Christianity for over 30 years, all within a structure that precluded independent and autonomous social development. Nepal(Patan), despite its status as a cultural sanctuary, is still laden with the anxiety of a civil war triggered and prolonged by the ideological discord and internal troubles in the country's leadership. Yemen(Sana'a) is the site of extreme opposition between Islamic fundamentalism (North Yemen) and separatism (South Yemen), and Rio de Janiero (Brazil) has long been called the gang's empire, a city full of crime, poverty and violence. Jerusalem (Israel) shows the absence of communication and extreme opposition against the Islamic society, and Havana (Cuba) symbolizes post-colonial ideology and the isolation from international society, an act led by U.S.A. Poverty is still widespread in these countries because of the structural contradiction of society, spurred by solid imperialistic violence and discriminated accommodation of the differences of ideologies and religions, perpetuating an anxiety of hostility.
Kimsooja's perspective of seeing 'relation' here is sentimental. Act of enduring pain is to prove the pain by plunging into the painful reality regardless of ideologic category. Kimsooja doesn't represent dramatic moment of the situation, or journalistic viewpoint. She just encounters people who are living in the site where life goes on anyway. Though aware of the impoverishment in 'pseudo-death'-like reality, they carry on with the weariness of life. Her act of being a medium, a kind of monument for mankind, does not attempt any dichotomous valuation, but acts as a sea embracing everything. It penetrates what she intended in works such as <sewing into walking(1995)>, paying a tribute to the memory of the victims of the Gwangju massacre; <d'apertutto or Bottari Truck in Exile(1999)>, a tribute to the victims of the Kosovo civil war; <Planted Names(2002)>, an installation in which names of black people who are victimized in plantations of South Carolina, are inscribed.
Measuring the sentiment with the memory of 'the site' in the act of connecting 'the site' with the 'self'. The act of embracing, seeking for reconciliation, and bringing human value back to life through the spiritual cure.
Existing works, showing forms of leaving and staying, were a process of meditation on her cultural memory through 'being' in the world, and bottari, symbolizing this process, became a cause of the modifier 'nomadism' which repeatedly appears in the discussions of her works. <A Needle Woman(2005)> is "always open to strange lives, strange worlds and strangers,[...]it brings forth new differences within itself through strangers"[7] and embodies the root of relation in the commonsensical mechanism of nomadism that is inherent in the act of approaching cities of anxiety and distrust. Additionally, if we can say that this interpretation is related to the process of defining agent by the otherness bringing forth new differences, this should be explicated from the perspective of kimsooja's attitude. This attitude is not irrelevant to the process of defining herself while facing the world as medium or a kind of messenger.
A 'needle', consistent in the context of the artist's attitude, becomes a symbol which dramatically builds a sense of unity with the other through the disappearance of the self.
"A needle disappears from the place, just leaving the marks of the stitch after accomplishing its role as a medium of sewing fabric[...]At the moment when spectators are not aware of my body, they wear it and stand in my position. This is not different from the property of needle."_kimsooja
The body of the artist, a personified needle, is a mere medium, or what is intended to be erased. For a medium implies the existential limit that it should rely on phenomena, it may seem that there isn't any necessity, substance and root in itself.[8] If it is a contextualized element in kimsooja's persisting attitude, we need to understand 'the erasure of body' not as disappearing or finishing its role, but as fulfilling its role.
Art is an embodied voice of life, 'pure crystal' of existing consciousness, that speaks when it is located in its body or in the system of society or nation.[9]
It is an act that starts with a zen-like awareness of the relation between the self and things, the self and the world, then plunging the self into particular circumstances. An individual acquires the meaning of its existence by awareness of its being in 'common existence.' The needle woman performance is a sort of self christening to the world. This christening is an act of perceiving and having others perceived the situation as a necessary occasion to select and arrange a possibility from all possibilities, and a symbolic mechanism to justify her act by properties of 'needle' which are hurting and curing. It makes us consider the other side of consciousness which determines an attitude.
Once again the category of 'relation' goes back to the self and things (sewing, bottari), human and human , body and nature, and elements of nature <Earth, Water, Fire, Air>. Then the consciousness of the artist becomes the beginning and end that carries such ruminations, and in this beginning and end, the body becomes the mediator that acts as a barometer of the world. The artist probes self-recognition to proceed to trace the world and elements of the world, and this process can be compared to a kind of 'trance' which we necessarily encounter in the desperate request for self-salvation," seeking for a methodology to satisfy everyone in front of the endlessly challenging surface, paradox of self-existence, or strong desire for originality."[10] This pattern appears in the early works where, "[i]n the quotidian act of tacking up bed sheets, I experienced an intimate yet wonderful sense of unity of my thoughts, sensibilities and actions. I found the possibility to contain such abundance of memory and pain, even the affection for life in that unity"[11], as well as in the first stage of .[12] It is a starting point of her entire works which have passed through the act of sewing and the act of wrapping(bottari) and finally accomplished in the act of wandering.
In such an experience which is a starting point of works, she was urgent. Every urgentness is replaced with symbolic death. At least, if the will to live is a human nature, it desires a possibility to cure a lack and anxiety and to live. It is an instinct to find a spiritual origin on which the will to live is able to rely beyond the painful routine and reality.
If not to the routine, then our thought may be cast back to mythic inspiration which is the spiritual origin, to 'cultural archetype' which makes the proof of reality reflected by unusual things reminded. The objet of work sometimes speaks of something located behind the act of the artist, or cultural memory which forms category or cultural archetype which the universal can comprehend. Of course it also has singularities such as geographical environment, species or generation, but we can find in these singularities inherited common terms that concern the formation of society, conflict and reconciliation which are handed down and acquired, and myth, religion, and knowledge, begotten by intelligence and sentiment.
The process in which the artist has expanded the meaning of 'relation' to elements of nature, is to pull out 'the will to live' as pure crystal or nature which always exist in 'common term.' Therefore, a consciousness, which presupposes this process, cannot but desire the 'archetypal thought' of culture and 'reflections on memories'.
The urgentness of agony and symbolic death needs the occasion of 'resurrection'. A 'trance' or 'realization of an occult way' as a passage ritual lets us imagine an element of shaman. Shamans, who "begin their new true life by separation, or by spiritual crisis which is sufficiently permeated in the tragic greatness and beauty",[13] cure diseases and leave achievement as an ascetic. Additionally, they take roles of "a guide of soul, a priest, a mystic as well as a poem."[14] Their ultimate end is to mediate supernatural beings and humans. Great artists and scholars surely took a role as messengers for the understanding of the world. They found the connection to the new world from their unique identity and pioneered the way to the new intuition through the cognitive amplification of conceptual thinking. They were seeking for self-love and awareness, and then marching to the world with this spiritual arms. For them, being in the world is not simple 'being' but 'being' chosen by themselves. And they embrace the necessity of act through self-awareness. Now we may need and focus on the artist who expands our world with the significance of shaman. An agent who cuts across and connects the world through self-reflection and doubt, which are substantial for an artist, and memory and archetypal thought. This should be a modifier for kimsooja who is standing in the same course as a shaman.
Kimsooja always wears achromatic(black) clothes. Achromatic color is a symbol of anarchist, but also, on the other hand, it reminds one of 'Black(玄色)' which is considered the root of all colors in Eastern culture. Like a shaman who mediates transcendental world on the base of principle of yin, yang, and five elements, a philosophy of color, spiritually inherited from this world view, is composed of five pure colors(五方正色), 'blue, red, yellow, white, black'. Five pure colors were used for the bed sheet or fabrics of bottari, which were the main material of kimsooja's existing works, and these fabrics are objets which symbolized the archetypality traditionally accompanies our life from birth to death. This is the ground of the reason that the artist's objet is interpreted not as simple 'readymade' but as 'readyused' having cultural code.[15] However, Black(玄色) is made from blending of all colors, and it is considered 'chaos before distinction"[16] and 'root of all color'. It is another name of 'truth(道)' and another body which encounters 'every poverty' while wrapping the artist's body.[17]
"Art should produce the thing itself, or the incomprehensible. However art should describe things neither as the comprehensible (the symphathizable) nor as the incomprehensible, but it should describe them as the comprehensible not yet comprehended."[18]
In her videos, the artist reveals herself and, at the same time, has us revealed. This is because we are freely assimilated into the crowd as we watch the artist and visually recorded behaviors of people. However, we don't stop here. We are anxious to hear stories of each person who approaches the clue of the spark of life which their individuality and their worldwide existence cause in 'relation,' and, on the other hand, we feel pity for them. It also lets us ask ourselves "how much do we understand situations where the life of others unravel, situations that exist in other countries?"[19] By means of this, it shows not only people who experience various situations in the world but also ourselves, as observers, individuals, who are abandoned in a state of indifference.
The artist deliberately confined the space of observation and produced it into video to avoid the narcissistic concentration of the sight on 'being' of herself. [20]
<A Needle Woman(2005)> just sheds a light on the ritual which seeks for a proper human nature and embraces cultural differences, with an extremely simple act from which narration is removed. Starting from this, we can trigger the ethical mind of a person who encounters the uncomfortable part of our contemporary events through the artist's body projecting the axis of space-time. Left in a state where "if we know the fact that photographs bring the pain from remote places before our eyes, we don't accept the fact that the pain of others is closely related with us"[21] and we don't know what effect it has on our life, the artist's body becomes a kind of antenna, which leads the others to thought, and sacred medium, which embraces the site of injury.
[Note]
[1] Daegu Art Museum Opening Special Exhibition3
[2] [kimsooja, Thinking along the system of horizontality-verticality], 2010, Younghee Suh(Professor of Hongik University) : This article is a revised version of the article, previously published in 『Contemporary Artooo』, 2010.
[3] [Nomadism: Elements of Nomadic Life and Art], 2011, Lee Jin Kyung(autonym Park Tae Ho, Professor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4] [Cultural Memory, Cultural Archetype and Communication], 2011, Bak Sang Hwan(Professor of Sungkyunkwan University) : This article is revised and developed from 「The study of Communication and Possibility on the Cultural Contents and Humanism」,『Journal of the humanities』Vol. 41(Sungkyunkwan University Research Institute for the Humanities, 2008).
[5] [Shamanism as an Archetype of East Asian Culture], 2010, Yang hee Seok(Professor of Chonnam National University)
[6] "Striated space is a territorialized and layered space, characterized as sedentary, moving along the fixed and closed trace and in which development rather than creation(becoming) occurs. [...]the line of smooth space is vectorial and open, while the line of striated space is dimensional and closed[...]On the contrary, smooth space is nomadic and migratory, the space of speed, movement and creation, in which line is subordinated not to number or measurable decision but to vector and direction, and point is subordinated to line and trace[...]It means a space, without decided direction and course, which has no center, like a patchwork, and is able to be infinitely and formlessly connected and expanded." [Architecture and movement in time], 2009, Spacetime, Kim Won Kap : This is a philosophy of Deleuze [A Thousand Plateaus] applied to architectural concept.
[7] In [Nomadism: Elements of Nomadic Life and Art], Lee Jin Kyung is appealing his viewpoint that permeating strange things into the given existing arrangement through which the life as 'deterritorialization' is rearranged, is closer to the truth, rather than misunderstanding nomadism as a simple trace of movement.
[8] Shin Oh Hyun,「Freedom and TragedySartre's human ontology」, Moonji Publishing Co. p. 125 "Consciousness refuses to identify its existence with borrowed existence, to the extent that it doesn't exist by itself but exist in the relation with things exist by themselves, or by defining existing things as existence, so its existence is what is borrowed from things exist by themselves."
[9] Kim Yoon Sik,「Problem of inheritance of tradition in literature」,《Generation》, 1973, p. 219
[10] From the Artist's Notes in 1988
[11] Ibid.
[12] "A needle woman(Tokyo,1999), it was the first performance of this series. Video recording team and I were walking the city searching for appropriate time and place. I could not but stop walking in Shibuya where hundreds and thousands of people passing by. I was standing still while feeling the energy of the crowd and focusing on my body. I strongly felt the connection to the core of myself. At the same time, I realized what separated the crowd from myself. It was like a moment of epiphany, and I decided to record the performance showing my back to the camera." extracted from interview, Olivia Maria Rubio, 2006
[13] Mircea Eliade,「Shamanism」, translated in korean by Lee Yoon Ki, Kachi Publishing Co. p. 32
[14] Ibid., p.23
[15] In addition, it is not an objet as a simple 'readymade' but a heritage as a 'readyused', which symbolizes identity of Korea or shares cultural memory, and from which the occasion of 'meditation' on cultural awareness, or distancing could be made.
[16] Black(玄色) includes five pure colors and ultimately symbolizes 'The Supreme Polarity that is non-Polar(無極而太極), Unity of Heaven, Earth and Human(天地人一體)'. [Study on Korean's Color Sense], Park Myung Won
[17] "In the performance video needle woman, at the moment when the spectator doesn't aware my body any more, they come to see the world which I see, through my body. Or my body becomes a medium of self meditation for spectators.[...]I show my world view as it is without refraction to spectators. It is a zen like work which has been evolved from thorough questions to myself. At the same time, I hope for my body to be a barometer which reflect over the condition of mankind by taking a role of axis of space-time. I want to meet every person in the crowd and to hug them. It is a kind of pity for mankind who leads a life today."
[18] [Searching for a new art], 1998, Bertolt Brecht, edited and translated by Kim Chang Joo, New Road
[19] [KimSooJa: Less is More], 2006, Olivia Maria Rubio
[20] [Experiencing A Vacuum], 2005, Emanuela De Cecco
[21] Susan Sontag,「Regarding the Pain of Others」, 2008, translated by Lee Jae Won, ewhobook, p. 150
최윤정 (대구미술관 큐레이터)
2012
이번 기획은 포섭되어 있던 고정관념을 유지하기보다, 벗어나고 빗겨가는 관점에서 새로운 배치를 진입시키는 실험으로 마련되었다. 애초 '예비수장고', 창고의 시각적 구조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룸은 '지하_빛의 차단', '날 것 그대로 노출된 콘크리트' 벽면과, '길의 속성_통로와 교차로'를 잇는 형식을 띤다. 첫 번째 <메이드인대구>[1]가 전시공간으로서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면, 이번 전시는 공간자체가 지닌 특성을 기획으로 연결해보는 시도이다. 프로젝트륨은 애초 18개의 기둥만이 덩그러니 천장과 바닥을 잇고 있는 형태였다. 전시장으로서 기운을 심고자 각 기둥을 잇는 벽채를 완성하고 6개의 기둥을 인공적으로 더해 '통로_길', '교차로_중심'의 형태를 기본 골조로 한 공간조성이 진행되었다. 이 기본 형태는 전시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기초적으로 수행하면서도, 간접적인 빛이 전혀 들지 않기에 조명의 효과와 빛의 조도를 활용한 설치작품 및 연출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게 한다. '교차로_중심' 방향에서 보이는 각 면은 기본 너비가 6m가 넘는다. 이것은 또한 여러 각도에서 공간연출의 규준을 힘있게 제공하면서도, 공연과 퍼포먼스 그리고 필름 등 실험적이고 장르 통섭적인 기획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따라서 프로젝트룸의 기획은 공간의 특성적인 형태와 더불어, 지역미술의 실험성을 발굴하고, 젊은 예술을 수용하며, 공간해석을 통한 다양한 장르를 연구의 핵으로 삼아 '무차별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밀도 있는 공간해석 및 작품소개를 위해 초기부터 하나의 작품으로 구상된 '영상 시리즈'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구출신으로 세계 무대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 김수자(1957)를 초대하였고, 그가 프로젝트로서 선보여 왔던 영상작품들을 스터디하면서 그만의 색을 보이면서도 프로젝트룸 해석의 방향성과 유연하게 합치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첫 시작은 프로젝트룸의 '교차로형(십자형) 구조'에 대한 독해였으며, 지속되었던 논의 속에서, '통로형 구조'의 변형체로서 '대칭적인 미로' 구조를 상상하게 되었다. 하나의 프로젝트로 기획된 각 영상들은 기존 설치방식에 따라 구성되기보다, 의도한 동선 안에 위치한, 다양한 스크린 속에 놓여진다. 작품과 공간이 마치 하나의 설치작으로 일체화되어 공간의 의미가 보다 적극적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이번 기획에서 본 연구관점에 대한 핵심과 사유의 기준을 마련한 작품은 그녀의 대표작 <바늘여인>(2005)으로 이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가난, 국제적 고립과 내전의 상징적인 현장을 무대로 한다.
6점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슬로우모션을 통해 시간을 연장하고 실제 인물 사이즈를 구현한 형태로 본래 하나의 벽면에 나란히 놓였다. 작가의 몸은, 시간의 축으로서 관객과 세상 간 매개로 작용하고 보는 이는 작가의 몸을 빌어 시간적 간극을 인지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는 각 도시별 지니는 갈등적 요소가 이러한 인지과정을 통해 유화되어 심리적으로 자연스럽게 풀어지게 하고 그 근간에 남게 되는 인류의 보편성과 본질의 문제를 성찰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본 전시는 가능한 이를 놓치지 않고, 공간해석이 오히려 작품의 의미를 체험의 국면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그래서 공간이 지닌 '길' 구조가 감상의 물리적 거리를 설정하는 일차적인 역할을 하게 하고, 한 작품과 다음 작품을 이으며 걷는, 일종의 수행적 산책이 동선을 통해 유도된다. 이는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사색을 위한 심리적 거리distance를 과정적으로 의도한 것이며, 관찰과 몰입 그리고 작가의 몸을 매개로 인식할 수 있는 특유의 인지적 체험을 3종류의 여섯 화면을 통해서 보다 극적으로 이끌기 위함이다. 따라서 동선의 마지막에 놓인 작품까지 감상하고 난 뒤라면, 관객은 관람자 이상으로 전시자체에 '참여한 주체이자, 작품에 대한 고유한 사색의 궤적을 가질 수 있다.
본 연구단계에서 필진의 구성 또한 본 기획의 핵심을 형성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우선 체계적 사유의 기획으로 김수자의 전 작업을 문맥화하고, 작가의 작업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노마디즘'에 대해, 이에 적절한 적용과 해석을 꾀해본다. 그리고 '원형적 사유에 대한 단초로서 성찰과 기억에 대한 관점을 보이고, 문화적 원형에 있어 동아시아의 샤먼 사상과 유불도사상을 비교분석한 논문을 참조로 수록함으로써, 다각적으로 작가와 작품이 지닌 의의를 인문학적 시선으로 유도하기로 한다.
바느질 행위와 천 작업, 보따리 작업을 통해 세상 속에 자신을 내던지며 유전적인 문화적 기억들을, 내적필연성으로부터 비롯된 성찰적 흐름으로 보여 왔던 작가 김수자는 이제는 자신과 사물을 포함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매진하면서 본연에 대한 자각과 세상 보편적 가치에 대한 사유를 행위화한다. 이때 매개체로서 작가의 '몸'은 관점과 관계에 대한 소실점이자, 수행의 형식을 시각화하는 공진을 이끌어낸다.
<바늘여인>(2005)은 네팔 파탄, 쿠바 하바나, 이스라엘 예루살렘, 예멘 사나, 브라질 리우데 자네이루, 중부아프리카 차드의 자메나를 배경으로 한다. <바늘여인>(1999-2001)은 군중들이 집결해 있는 주요 메트로폴리스에서 작가가 '바늘로서 자신의 '몸'을 인식하고 또한 스스로 '바늘여인'으로 명명하는 일종의 성소적 의식이었다. 이에 <바늘여인>(2005)은 세계의 이권과 분쟁, 해결되지 않는 모순적인 대립을 상징하는 장소에 접근하여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보다 비교문화학적, 사회학적, 인문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더해 준다.
차드(자메나)는 주체적·자율적인 사회성장 과정을 겪지 못했던 구조에서 30년 이상 이슬람계와 기독교로 나뉘어진 중앙정부의 내전으로 고통을 겪어온 국가이고, 네팔(파탄)은 문화적인 성소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지도층의 사상적 갈등과 권력내분으로 인해 내전의 불안을 항시 떠안고 있는 곳이다. 예멘(사나)은 이슬람 근본주의(북예멘)와 분리주의 (남예멘)의 첨예한 대립의 현장이며, 가난과 폭력으로 점철되는 도시 리오데자네이로 (브라질)는 갱의 제국으로 불린 지 오래다. 그리고 불통과 이슬람 사회와의 극도의 대립을 보여주는 예루살렘(이스라엘), 포스트식민주의 이후 이데올로기와 그로부터 미국에 의해 주도된 국제사회 고립을 상징하는 쿠바(하바나). 이들은 여전히도 굳건한 제국주의적 으로 수용하여 영속적 반목의 긴장을 안고 있는 세상의 '모든 가난'이 만연한 실상들이다. 폭력들이 부추겨왔던 화해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모순과 종교·사상적 차이를 차별적 입장 이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은 '심정적'이다. 그가 고통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적대적, 이데올로기적 범주를 벗어나 고통에 처한 현실에 뛰어들어 고통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황자체에 대한 극적인 순간이나, 혹은 저널리즘과 같은 관점이 재현되지 않는다. 작가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펼쳐지는 그 현장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뿐이다. 마치 '유사죽음'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피폐해진 일상 안에서도, '살이'를 지속하는 사람들과, 인류를 위한 기념비와도 같이 '자신'을 매개로 하여 펼친 행위 자체는 그 어떤 이분화된 가치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이 모두를 다만 포옹하려는 바다. 이것은 광주학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업
'그 곳'과 '그 자신'을 잇는 행위 속에서 그 곳이 지닌 기억들에 심정적으로 겨누는 것. 감싸 안는 행위, 화해의 희구, 그리고 영적인 치료를 통한 치유로 인간적 가치를 재생시키는 바, 떠남과 머무름의 형식들을 보여 왔던 기존 작업들은 작가가 자신의 문화적 기억들을 세상에 '처해짐'을 통해 성찰을 행하는 과정이었고, 이를 상징하는 보따리는 어느새 작가의 작품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노마디즘'이라는 수식어의 모체가 되었다. 그로부터 <바늘여인> (2005)은 “낯선 삶, 낯선 세계, 낯선 타자들을 향해 언제나 자신을 열어두고 그 낯선 존재들을 통해 [...] 자신 안에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내”[7]고 있으며, 불안과 불신의 도시에 다가간 행위에 내재하는 목적들이란 노마디즘의 상식적 기제가 던지는 관계성의 근원을 구체화한다. 더불어 그 해석이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내는 타자성에서 비롯되어 주체를 규정해가는 과정에까지 연관된다면, 노마디즘은 작가의 태도적 측면에서 상술될 필요가 있다. 그 태도란 매개자로서 혹은 일종의 메신저로서 세상과 마주하며 스스로를 규정해가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더불어 작가의 태도적 문맥을 관통하는 '바늘'은 자아의 소멸을 꾀하고 더욱 극적으로 타자와의 일체감을 만들어내는 상징이 된다.
"바늘은 천을 꿰매는 자신의 매개역할을 하고 나면, 실자국만 남기고 자기 자신은 그 장소에서 사라집니다[...]저의 몸을 관객이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는 순간, 관객이 내 몸을 입고 그 자리에 서게 되는 것 역시 바늘의 속성과 다르지 않지요"_김수자
의인화된 바늘 즉 작가의 '몸'은 매개일 뿐, 의도하는 바 지워지는 대상이다. 이 경우 매개라는 것이 현상에 의지하는 존재적 한계를 함의하고 있고 그렇기에 그 자체만으로서는 아무런 필연성도 본질도 근거도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8] 그것이 창작에서 태도적으로 문맥화된 요소라면, 우리는 여기서 지워지는 대상으로서 '작가의 몸'을 단순한 사라짐으로 읽을 수 없다. 그것은 '역할의 마무리'가 아닌 '역할의 이행' 도정에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생명이 그 주어진 육체나 사회나 민족의 질서 속에 놓이면서 발하는 목소리, 존재하는 의식의 '순수 결정'이 어떤 형태를 취한 것이다.[9]
그의 작업은 자신과 사물간, 자신과 세계 간 즉 자기로부터 비롯된 '선zen'적인 깨달음에서 시작하여 그로부터 특수한 상황들 속에 자신을 내던져온 행위이다. 개체는 '공동존재’에 처해있는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존재적 의미를 습득한다. 그렇기에 바늘여인 퍼포먼스는 일종의 세상 속에 처한 자기 명명의식과도 상통한다. 이 명명의식은 모든 가능성 속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선별하고 배치하는 필연적인 계기로서 상황을 인식하고 동시에 상황을 인식시키는 행위이며, 상처내기와 치유의 성질을 갖는 '바늘'의 속성으로 자기 역할의 당위를 밝혀내는 상징장치이다. 이것은 태도를 규정하는 의식의 이면을 고려하게 한다.
다시금 '관계'의 범주는 자신과 사물(바느질행위, 보따리), 인간과 인간 <바늘여인>, 몸과 자연, 자연의 근원 <지수화풍>으로까지 소급해간다. 이때 작가의 '의식'은 이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는 처음과 끝이고, ‘몸’은 처음과 끝 속에 항시 세계에 대한 바로미터로서 역할하는 '매개항'이 된다. 작가의 질문은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 세계, 세계의 요소를 추적해 가는데, 이 과정은 “끝없이 도전하는 평면 앞에서, 자기존재의 모순 앞에서, 또한 독창성originality에 대한 강한 욕구 앞에서 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론을 찾는[10]” 절박한 자기구원의 요청에서 필연적으로 조우한 일종의 '접신체험'으로 비유된다. 이 양상은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가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묻어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11] 초기 작업들과 <바늘여인> 첫 작업 단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12] 또한 '바느질행위', '감싸는 행위(보따리)'의 현전을 거쳐 떠도는 행위로서 수행한, 전 작업의 시작점이다.
작업의 시작점이 되는 이러한 체험에서, 그에게는 절박함이 있었다. 모든 절박함은 상징적인 죽음으로도 치환된다. 적어도 살려는 의지가 인간의 본성이라면 그것이 욕망하는 바, 결핍과 불안을 치유하여 살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것은 고통을 안기는 일상과 현실을 넘어선, 삶의 그에게 정신적인 근원이란 신화적인 영감, 비일상화가 비추는 현실의 증거를 상기하게 의지가 기댈 수 있는 정신적인 근원을 본성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에게 정신적인 근원이란 신화적인 영감, 비일상화가 비추는 현실의 증거를 상기하게 하는 ‘문화 원형’인 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소급해볼 수도 있다. 작품의 오브제는 때로는 작가의 행위 이면에 놓인 무엇’을, 즉 범주를 형성하는 문화적 기억이거나 혹은 보편이 납득할 수 있는 인류문화의 원형을 발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물론 환경적 지리나 종種 혹은 세대와 같이 조건 지어진 특수성이 자리하지만, 그 특수성 안에서도 지성과 감성이낳은 신화와 종교, 학문 그리고 사회형성, 갈등과 화해에 대한 전승되고 습득되어온 공통항들이 유전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본성 혹은 순수 결정으로서 '살려는 의지'를 끄집어내기 위함이고, 그렇기에 분명 이 과정을 작가가 자연의 요소에까지 '관계'의 의미를 확장해 온 과정은, 바로 그 '공통항'에 존재하는 전제하는 의식은 문화기억에 대한 '원형적사고'와 '기억에 대한 성찰'들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고뇌와 상징적인 죽음이 갖는 절박함에는 '부활'의 계기가 더불어 필요하다. 이에 하나의 통과의례로서 '접신체험' 내지는 신묘한 '도의 깨달음'은 그 본연에 샤먼적인 요소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탈함separation으로써 우리가 곧 알게 되겠지만, 비극적인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모자라지 않게 깃들여 있는 정신의 위기spiritual crisis로써 자신의 새롭고 참된 삶을 시작”[13]하는 자, 샤먼은 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고행자로서의 행적을 남기기도 한다. 더불어 “영혼의 안내자, 사제, 신비가 노릇을 하는가 하면 시인 노릇”[14]도 한다. 여기에 궁극적인 목표는 초자연적 존재와 인간을 매개하는데 있다.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예술가들/학자들은 분명 세계인식에 대한 메신저로서 역할해왔다. 고유한 정체성으로부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연관을 발견하고 개념적인 사유에서 인지적 증폭을 통한 새로운 직관의 길을 열어주는 사람. 이들은 분명 세계를 통해 자기애와 자각을 꾀하고, 다시금 정신적으로 무장된 상태에서 세계로 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세상에 처해짐이란 단순한 처함이 아니고 스스로가 선택한 처함이다. 더불어 자기 자각을 통해 행위의 필연성을 안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 우리가 요구하고 주목하는 예술가는 어쩌면 이러한 샤먼적 의의를 통해 우리의 세계를 확장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술가로서 본질적으로 갖게 되는 자기 질문과 회의, 자신의 기억과 원형적인 사유를 통해 세상을 가로지르고 동시에 접합하는 행위자. 이것이 바로 같은 노정路程에 선, 작가 김수자에게서 우리가 샤먼적인 요소를 언급하는 수식이어야 한다. 작가는 항시 무채색의 옷을 입고 있다. 무채색은 무정부주의자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양에서 말하는 모든 색의 근원으로 일컫는 현색玄色을 떠올리게 한다.
음양오행의 기반으로부터 초월적인 세계의 법칙을 매개한 샤먼의 역할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세계관에서 정신사적으로 내재되어 온 색채관은 '청, 적, 황, 백, 흑'의 오방정색五方色으로 구성된다. 오방정색은 작가가 기존 작업에 주요했던 이불보나 보따리 페브릭들이 지닌 색채이기도 하며, 이 페브릭들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생로병사와 함께 해왔던 '원형성'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이다. 작가의 오브제가 단순한 레디메이드ready-made가 아닌, 레디유즈드 ready-used로서의 문화적 코드로 읽히는 이유는 바로 이에 준한다.[15] 그런데 이 색채들이 하나로 모인 것이 바로 현색玄色이며, 현색은 "분별 이전의 혼돈의 세계”[16]이자 '모든 색의 근원'으로 통한다. 그것은 도道의 동일한 이름이며 작가의 몸을 에워싼wrapping 채로 '모든 가난'을 마주하게 하는 또 다른 몸이기도 하다.[17]
"예술이란 물 자체, 즉 파악할 수 없는 것을 생산해야 한다. 하지만 예술은 사물을 자명한 것 (감정적으로 동조할 수 있는 것)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도 서술해서는 안 되며, 파악될 수는 있지만 아직 파악되지 못한 것으로 서술해야 한다."[18]
<바늘여인>(2005)의 비디오에서, 작가는 자신을 노출시킴과 동시에 우리를 함께 노출시킨다. 이것은 작가를 관찰하면서 밀집한 무리들 속으로, 사람들의 행위를 시각적으로 새기면서 스스럼없이 동화되는 탓이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 속에 펼쳐져 있는 그들이 지닌 개체성, 그들 존재"가 '관계' 속에서 일으키는 삶의 “스파크에 대한 단서에 다가서는 각자의 사연에 대해 궁금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 연민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타인의 삶이 펼쳐지는, 타지의 국가들에 실재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는가"[19]를 심정적으로 일으킴으로써, 단순히 세계 속에 다양한 경험체로서, 인류를 노출하고 있는 것만이 아닌 희생적 사건의 경험자들을 통해 관찰자로서, 그 속에 개별 존재자로서, 우리 자신이 처한 무관심적 요소에 대해서도 노출하도록 혹은 사유하게끔 여지를 남긴다.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작가는 또한 화면에서 그가 “존재함is"에 대해 "나르시즘적 방식으로 집중될 지도 모를 시선을 “피하고자”[20] 관찰의 공간을 한정하고 이를 화면으로 연출하였다.
<바늘여인>(2005)은 본연의 인간성을 희구하고 문화적 차이를 포용하는 제의를, 서사를 제거한 극도의 단순한 행위로서 비출 뿐이다. 이는 마치 정제되지 않은 의식의 편린인 관념이 끼치는 작용과 유사하다. 그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동시대 인류가 껴안은 불편한 '일부'를 맞이하기 위한 인간의 윤리적 심리를, 시공간의 축을 투영한 작가의 몸을 통해서,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을 우리 눈앞에 가져온다는 걸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국에서 그 다음 어떠한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보며 자신을 구축해가는지, 작가의 '몸'은 일종의 타인을 사유로 이끄는 안테나이자 상처의 현장을 감싸 안는 성소적 매개가 된다.
[Note]
[1] 대구미술관 개관특별전3, 2011년 8월 10일~11월 20일
[2] [김수자, 수직과 수평 체계 위에서의 사유] 2010, 서영희(홍익대학교 교수): 본 글은 미술평단 100호 (미술평론가협회, 2011.3월 발간, pp53-64)에 수록된 내용을 편집한 원고이다.
[3] [노마디즘: 유목적인 삶과 예술의 성분들] 2011, 이진경 (실명 박태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4] [문화기억과 문화원형 그리고 소통] 2011, 박상환(성균관대학교 교수) : 본 글은 「문화콘텐츠와 인문학의 소통가능성」, 「인문과학』 41호(성대 인문과학연구소,2008)의 내용을 수정 발전시킨 것이다.
[5] [동양문화 원형으로서의 샤머니즘] 2010, 양회석(전남대학교 교수)
[6] "홈패인 공간은 영토화되고 지층화된 공간으로, 정주적 특성을 지니며, 고정되고 닫힌 경로를 따라 운동이 전개되는 한편, 생성(-되기)대신 진전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의미한다[...]매끈한 공간의 선이 방향적이며, 열려있다면, 홈패인 공간의 선은 차원적이며, 닫혀있다[...] 반면에 매끈한 공간은 유목적, 이주적 공간으로, 속도와 운동, 생성의 공간이며, 선이 수치나 계량적 결정인이 아니라 벡터와 방향인으로, 점이 선과 궤적에 종속된다[...] 정해진 방향과 경로가 없으며, 패치워크와 같이 중심이 없어 무정형으로 무한대로 연결 확장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건축과 시간속의 운동] 2009, Spacetime, 김원갑
[7] [노마디즘: 유목적인 삶과 예술의 성분들] 에서 이진경은 단순히 이동의 궤적으로 노마디즘을 오해하기보다, 기존 주어진 배치에 이질적인 것이 범람하듯 스며들고, 이를 통해 '탈영토화'로서 삶이 재배치되 는 면모를 보이는 관점이나 행위들이 있다. 보다 그 진위에 가깝다는 관점을 피력하고 있다.
[8] p.125 「자유와 비극사르트르의 인간존재론」 신오현, 문학과 지성사. "의식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자와 관계함으로써 즉 존재자를 어떤 존재자로 규정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항상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부터 빌어온 것이요, 그러하 한에서 항상 빌어온 존재를 자기의 존재와 동일시하기를 거부한다"
[9] p.219 문학에 있어 전통계승의 문제」, 김윤식, <세대>, 1973
[10] 1988년 개인전 작가노트 중에서
[11] 위와 상동
[12] "바늘여인(도쿄, 1999), 그것은 본 시리즈의 첫 퍼포먼스였습니다. 적절한 때와 장소를 찾아 촬영팀과 도시를 걷고 있었죠.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나를 스쳐가는 시부야에서 난 내 의지 밖으로) 멈춰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중의 에너지들을 느끼면서 나는 내 몸에 초점을 맞추고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내 중심과 강하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나는 군중들과 나 사이 분리되어 구분되는 바를 깨달았습니다. 마치 섬광과도 같이 '도'를 깨닫는 순간과도 같았고, 그곳에 멈춰선 채 나는 카메라를 등지고 퍼포먼스를 촬영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Oliva Maria Rubio와의 Interview중 발췌, 2006
[13] p.32 「샤마니즘」, 미르치아 엘리아데 이윤기 역, 까치글방
[14] p.23 위와 상동
[15] 첨언하자면, 그것이 단순한 '레디메이드'로서의 사물이기보다 한국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즉 문화적 기억을 공유하는 '레디유즈드'로서의 유산이기에 또한 그로부터 문화적 자각에 대한, 혹은 거리두기에 관련한, 온 '성찰적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16] 현색(玄色)은 오방정색을 포괄하는 궁극적으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천지인일체(天地人一體)'를 상징한다. [한국인의 색채의식 연구], 박명원 <동양예술4호> p.297
[17] "바늘여인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저의 몸을 관객이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는 순간, 관객이 내 몸을 뚫고 내가 보는 세상을 보게 되지요. 즉 내 몸이 관객들의 자기 성찰을 위한 미디엄이 되는 것이지요[...]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굴절없이 있는 그대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또한 철저하게 나 자신으로부터의 질문을 통해 진화해온 선문답 같은 작업이니까요. 동시에 내 몸이 시공간의 축(Axis) 역할을 하여 인류의 모습을 성찰하는 바로미터가 되었으면 해요. 군중 속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나 그들을 포옹하고 싶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에 대한 연민이라고나 할까요" 김수자
[18] [새로운 예술을 찾아서], 1998. 베르톨트 브레히트, 김창주 편역, 새길
[19] [Kimsooja: Less is More], 2006 Oliva Maria Rubio
[20] [Experiencing A Vacuum], 2005 Emanuela De Cecco
[21] p.150 「타인의 고통」, 2008, 수잔 손택 이재원 역, 이후
2012
지난 20세기 동안 동.서 간의 정신적인 지적 교류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야기되는 부정적 면모를 순화하는 동시에 극단적인 합리주의 정신과 균형을 유지하도록 독려해왔다. 불교철학을 따르는 서양의 지식인들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반문화적이고 비판적인 화두의 증가, 비폭력적 저항, 그리고 아시아 작가들의 지속적인 집단적 이동, 곧 유목적인 삶은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면서 이러한 새로운 관점들을 조명하기 위한 초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 따른 『황금 꽃의 비밀』은 2천년 전에 쓰여진 도교서적의 영문판으로서 1931년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브 융과 리처드 빌헬름에 의해 서구에 소개되었다. 융과 빌헬름은 자아성찰을 목적으로 하며 해석학의 전통을 기반으로 둔 고차원적 지식의 영적 인지론 - 예를 들어 요가와 같은 물리적.감정적인 치유 방법, 그리고 인류에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초자연을 기반으로 한 집단 의식과정을 제시 하였다. 또한 『황금 꽃의 비밀』은 모든 신비주의적 전통의 지도자들이 추구하는 내적인 변모라는 연금술적인 논문이기도 하였다. ‘황금 꽃은 빛이며 천국의 빛은 도(道)이다. [1]
또 다른 저서인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우리는 13세기 몽고 쿠빌라이 칸 궁정에 도달했던 전설적인 베네치아 출신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의 모험을 듣게 된다. 17년간 대사로 지내면서 궁정에 머물렀던, 대부분 상상된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그가 책 속에서 방문했던 도시들에 관한 것, 또 어떻게 칸을 흥겹게 해주었는가가 포함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의미 있는 교훈을 남기며 끝을 맺게 되는데 이중 한문구를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살아있는 이들에게 지옥이 있다면 그것은 다가올 미래의 무엇이 아니라 이미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옥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면서 만들어가는 일상에 있다. 이 곳에서는 고통으로부터 탈출구는
없다.’ 이 문장들에 따르면 첫째 문장은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가 가능한, 곧, 은유적인 표현으로서 지옥을 받아들이고 이후 그 고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것을 언급한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의 의미는 다소 직설적이기도 하거니와, 지속적인 노력을 통한 이해가 필요한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지옥의 불구덩이 한 가운데에서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방법을 구하고 배우라. 너 자신은 지옥 불이아니기에 그 불구덩이를 견뎌내도록 그것들에 거리를 두라. [2]
김수자의 작품에는 바로 이러한 교훈과 지혜의 맥락이 새겨져 있다. 지난 30여 년간 그녀의 작품은 동서양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조형적 맥락을 추구하고 아름다움, 치유, 자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김수자는 실로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였고, 행위예술, 다큐멘터리, 설치를 통해 장소 특정적으로 개입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한국문화의 계보와 전지구적 수위의 현대미술의 언어 체계를 조형적인 언어로 연계하는 것이다. 호세 로카의 표현에 따르면 그 조형언어는, 타자에 열광하는 매체 내에서 좀 더 “이국적”이 되기 위한 변별성을 과장하는 동시에 현 시대의 다원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다시 말해 이미 면역된 국제주의로 해석되기를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3]
김수자는 직관을 지각의 즉각적인 인식방법으로 취한다. 즉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실로 서로 다른 문화를 이어가는 동안 작가는 지극히 보편적인 인류학에 근거한 제반 문화의 본질을 추구하며, 인류의 특성에 대한 모든 것을 고민한다. ‘나의 철학적, 예술적 목표는 나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질문을 수렴하고 통합하는 전체성을 획득하는데 있다.’ [4]
김수자가 여행한 도시, 길, 풍경은 환상적이지도 않고 상상의 결과물도 아니다. 작품 속 대도시들은 실제로 존재하고, 인구는 과밀하며, 전쟁으로 피폐해지고 식민통치로 착취되거나 이데올로기로 인해 거세된 장소들이다. 그녀가 택하는 길들은 지정학적인 경계 안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여행하는 통로들이다. 또한 그녀는 고대의 장소 혹은 원시적인 자연의 힘이 펼쳐지는 문맥을 선택한다. 김수자의 견고하고도 가녀린 신체는 자주 군중들 한 가운데나 바위 위에 서거나 누운 채로 등장하는데, 언제나 동요 없이 관객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 누구에게나 인식 가능한 그녀의 신체는 긴 머리를 뒤로 묶고, 명상적이며 움직이지 않은 채로, 세상 - 인도의 야무나(Yamuna) 강이거나 카이로의 군중의 바다가 되건 간에 - 이 흘러 가도록 허락한다. ‘퍼포먼스를 통해 얻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물인 비디오가 아니라 자신만의 경험과 과정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과 세상을 향해 지속적으로 행하는 질문법이다. [5]
이러한 작품들에는 최면 상태와 같은 강렬함이 있다. 작품들은 어수선한 관객의 눈길을 끌어 모아 순간적으로 작가의 고유한 경험과 동일시 되게 한다. 이들 작업의 제목은 작가의 철학적, 원형적 고민을 주목하기에 적절하다. <하늘과 땅 The Earth and the Heaven>(1984), <대지를 향하여 Toward the Mother Earth>(1990-1991), <세계와 마음 Mind and the World>(1991)와 같은 제목의 작품들은 우주적인 연결을 이야기한다. <바늘 여인 A Needle Woman>(1999-2009), <구걸하는 여인 A Beggar Woman>(2000-2001), <빨래하는 여인 A Laundry Woman>(2000), <거울여인 A Mirror Woman>(2002), <바람여인 A Wind Woman>(2003)은 치유자로서, 또는 매개자로서 여성의 역할을 암시한다. <숨쉬기 To Breathe>(2006)는 호흡과 빛의 회절을 통해 인간 본연의 감정에 주목하게 하고, <지수화풍 Earth-Water-Fire-Air>(2009-2010)은 자연의 요소에 대한 본질적인 명상으로 돌아간다.
형식적 측면에서 보자면, 197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친 김수자의 작업적 진화는 어떻게 그녀가 한국에서의 주도적인 흐름에 - 예를들어 단색화와 민중미술과 같은 - 둘러 쌓여있으면서, 동시에 독립된 거리를 유지하는 1980년대 평면적인 바느질 작업과 조각적 오브제 작업, 1990년대 보따리 설치, 시간예술인 퍼포먼스와 비디오작업을 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김수자의 상징적인 작업인 보따리는 그녀의 신비적인 비환원적 오브제이며, 보따리 설치작업은 김수자의 심사숙고 된 예술언어가 확장된 조각 영역에 어떻게 포함되는가를 보여준다. 심지어 요셉 보이스가 관객의 정신을 조형적으로 형상화 할 수 있다면 관념이라 하더라도 조각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언급하고 피에로 만조니의 작품 <세계의 기태 Socle du Monde>(1961)가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레디메이드로 탈바꿈시킨 이후, 예술가들은 실제를 재창조, 재구성, 탐험해 왔고 이것은 실제의 근본적인 물질: 사람들, 자연, 욕구, 파괴로부터 시작한다.
김수자는 자신의 시선을 세계에 고정하고 그 안에 개입하면서 언제나 극도의 예민함을 통하여 용어들을 병치한다. 또한 기성품이 ‘이미-만들어진’ 보다는 ‘이미-사용된’ 존재라는 맥락에 대하여 고민한다. 1983년 김수자는 할머니가 간직했던 옷을 처음으로 사용 하였고, 이후 한국의 전통의상이나 전통이불은 ‘우리의 신체와 삶 그 자체’를 재해석하는 도구가 되었다. [6]
재활용 되는 한국식 이불은, 곧 보따리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거나 바닥에 펼쳐져 있을 때 우리 삶의 캔버스이자 프레임의 의미로서 김수자의 작업에 계속해서 나타나게 된다. 마찬가지로 그녀 자신의 신체는 행위의 대상으로서 치유의 매개적 역할이 끝난 뒤 소멸하는 상징적인 바늘이 되었다. ‘바느질 하기와 천으로 감싸기는 명상과 치유를 공유하는 과정이었다.’ 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바늘과 천 사이의 관계는 내 몸과 우주의 관계와 동일하다.’ 라고 덧붙인다. [7]
또한 김수자의 작품은 한국의 관습적인 여성의 역할과 긴밀한 연관을 가질 뿐만 아니라 바늘이 가진 치유의 양가적 힘에 주목했던 루이스 부르주아와 같은 작가의 관점과도 연계될 수 있다. 김수자가 카메라를 등지고 서있는 모습은 시각적으로 캐스퍼 데이비드 프레드리히의 작업을 연상시킬 수도 있으나 김수자는 이와 구분되는 개념적인 차이를 확립하고 있다: 프레드리히의 작업은 우주적 고독에 젖은 감상적 인물을 묘사하고, 김수자의 시선은 비극적이지 않은 근접성, 일종의 지각을 형성하는 정지/침묵을 제시한다. 김수자가 끊임없이 신성한 기하학을 추구하는 것은 수평과 수직을 연계 하게끔 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세 가지 기본 구성 요소인 땅, 하늘, 인류 그리고 세계를 구성하는 에너지로서 음(陰), 양(陽)을 연결하는 것 모두가 피에 몬드리안과 같은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접신론과 추상적인 연구와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몇몇의 작업 중 작가가 행하는 창조적 여정에서 특히 중요한 작품은 이 전시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보따리: 알파해변 Bottari: Alfa Beach>(2001)에서는 하늘과 바다가 수평선을 중심으로 뒤바뀌어져 있는데 이는 작가의 의식과 감정을 가시화한다: 아프리카의 노예가 대서양 너머로 강제로 보내졌던 나이지리아 알파해변의 수평선을 보는 순간 하늘과 바다의 역전을 생각했다. 노예가 된 그들의 운명과 그들이 빼앗긴 자유를 생각하게 한 그 수평선은 내가 본 가장 슬픈 선(Line)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뒤집혀진 수평선이란 나에게 있어 하나의 왜곡된 수평선, 중력의 방향성을 잃은, 그리고 그들이 떠나야 했던 해변에 다다르는 파도의 밀물결에서 내가 감지할 수 있었던 노예들의 심리적인 회귀이다. [8]
그린란드에서 촬영된 삼부작 <물의 거울, 공기의 거울, 바람의 거울 Mirror of Water, Mirror of Air, Mirror of Wind>(2010)에서 자연적 요소가 가진 물질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김수자의 다른 작업에서도 나타나는 회화적 표면이라는 개념으로 돌아가도록 한다. 의심의 여지 없이 김수자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바늘 여인 A Needle Woman>은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상징적 작품이다. 1999-2001년에 제작된 <바늘 여인> 연작의 첫 번째 에디션에서 작가는 서로 다른 도시 도쿄, 상하이, 멕시코 시티, 런던, 델리, 뉴욕, 카이로, 라고스를 방문하여 관객을 등지고 서있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위해 제작한 에디션에서는 파탄, 예루살렘, 하바나, 리우데자네이로, 은자메나에 방문하였는데, 작품 속 김수자는 인간의 세포조직을 공간과 무한의 시간에 꿰메는 우주적인 바늘로 등장한다. 달아나는 듯한 풍경이 고속으로 촬영된 <바람 여인 A Wind Woman>(2003) 작업은 마치 이 풍경들이 공간과 공간 사이로 퍼져나가도록 바람으로 만들어진 붓 또는 시간의 실타래로 그려진 듯이 보인다. 작품 속 칠흑같이 어둡거나 환하거나, 혹은
밝고 푸르른 하늘이 꽉 들어 찬 풍경은 인상주의, 표현주의 심지어는 미니멀리즘과 같은 서로 다른 회화적 양식의 흔적을 드러내고 지워버린다. <앨범: 하바나 An Album: Havana>(2007)는 쿠바의 말레콘(malec n) 해변과 평행선을 이루도록 촬영된 연작이다. 영상 속 해안선, 사람, 풍경이 점차적으로 합쳐져 추상적이고 다이내믹하면서 동시에 공기와 같이 가벼운 구성을 이루며, 후반부에서 이들은 바람과 빛에 녹아든다. 이러한 작업들에서 작가의 신체는 미니멀한 단색톤이 지속적으로 다양한 색조로 변화하는 디지털 스펙트럼으로 처리된 영상이 투사되는 작업 <숨쉬기: 보이지 않는 거울 / 보이지 않는 바늘 To Breathe: Invisible Mirror / Invisible Needle>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스크린의 가시영역 바깥으로 생략된 것처럼 보인다. <숨쉬기: 보이지 않는 거울 / 보이지 않는 바늘>에는 작가의 평화로운 혹은 긴장된 호흡과 명상적인, 입을 열고 닫는 소리의 합성이 펼쳐진다.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상영된 이 작업은 캔버스라는 문제로 되돌아오고 있다. 작가는 미니멀리즘적 추상화(化)의 맥락 안에서 이렇게 묻는다. ‘표면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또한 ‘디지털 색상의 화면이 지속적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표면이 가진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작가는 말한다.[9] 동시에 기호나 한국의 전통이불, 옷과 같은 도상학적인 모티브들은 그 형태나 색상이 순수한 빛과 숨소리로 녹아 들어감에 따라 비물질화 된다. 관객들은 작가의 사운드 퍼포먼스에 따라 시청각적으로 호흡하게 되는 것이다.
인류학적 다큐멘터리의 경계선에 있으며 4개의 스크린으로 이루어진 공간 형식을 고수하는 비디오 설치 작품 <뭄바이: 빨래터 Mumbai: A Laundry Field>(2008)는 뭄바이를 관통하는 시각적인 산책이라 할 수 있다. 카메라는 빨래라는 고된 노동, 좁은 슬럼가의 골목길을 따라 여행하면서 지저분한 거주공간, 타맥(tarmac)위에서 잠든 사람들, 그리고 일상의 억압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가득 태운 기차를 아주 가깝게 끌어들여 포착한다.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말을 따르면 ‘이것은 극단적으로 힘든 인간 삶의 조건과 풍부한 시각적 경험이 모순되게 병치된 작업이다. 이 작업은 변형된 캔버스 작업이라는 미학적 구조를 따르는 동시에 힘겨운 뭄바이 슬럼가의 실제 일상을 드러내는 작업이며, (중략) 내게 있어서 이 작업은 이전 작업을 회고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전에 제작했던 작업의 구조와 그것의 층위가 상징적으로, 시각적으로 포함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옷과 직물은 인류의 현존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의 존재론적 질문을 상징한다.’[10]
<실의 궤적 제 1장 Thread Routes - Chapter 1>(2010)는 작가가 처음으로 16mm 필름을 사용하여 촬영한 현재진행 중인 연작으로 서로 다른 문화로 엮어진 물질과 비물질적 실의 궤적을 탐구한다. <제 1장 Chapter 1>(2010)는 야외원형극장의 한 가운데에 서서 한 여인이 실타래를 감는 파노라마로 시작된다. 호수의 물 속 침전된 모래가 만드는 선과 여인의 주름, 베틀의 양털실이 그러하듯이, 원거리에서 산등성이에서 마을을 향해 서서히 내려가며 촬영된 이미지는 씨실과 날실로 직조된 농경지 풍경을 드러냄으로써 직조와 경작의 구조적 관계성을 보여준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수사학적인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슬로우 모션 기법을 고집스럽게 유지한다. 또한 페루의 시적인 실타래 감는 행위와 작가가 서로 연계하려는 요소들의 회화적 병치라는 표현에 전념한다. 김수자는 이러한 시선에서 실을 감고 직조하고 뜨개질하는 행위를 기하학적, 농경적, 그리고 건축적인 형태와 연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풍경으로 엮인 구조, 명상적이며 반복적인 행위, 원형적인 진실과 미학을 드러내는 제의적 형식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11]
예술과 작가들은 그들이 관계하는 시간과 장소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 신기루를 꿰뚫는 통로를 다듬어가고 우리를 심오한 실체의 본질로 인도하는 것이다. 김수자를 포함하여 이러한 개념에 적용되는 작가들은 그들의 비전이 가진 진실을 제공하고 혼란을 비워내며 잡음을 사라지게 하는 매개자, 채널, 다리의 역할을 수행한다.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작가들은 자신들의 존재론적인 여정에서 수 많은 현상을 경험하지만, 이들은 창조적인 행위의 실천을 통해 이 경험을 정제할 수 있다. 김수자의 전 생애에 걸친 작업세계는 인식의 가장 깊은 영역을 가장 정확한 예술적 과정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풍부하게 만드는 확고한 의지다. 그녀는 기억, 감정, 거리, 보편적 실제를 이동하는 작업을 통해 이를 성취한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려는 시도; 하나되기를 요구하는 제스처, 자애와 암묵. 심지어 작가는 그녀의 바램이 곧 사라지는 것,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라 선언하였다: ‘나는 내가 결정하는 어느 시점에
서 사라지고 싶다. (사라지는 여인) 작업을 계획 중이다....’[12] 이 사라짐은 수 많은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점점 더 지워지고 은둔하고 싶은 작가의 요구, 세계에의 책임, 자신의 존재론적인 질문 그 모두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스의 시인 니코 카장차키는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썼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나는 자유롭다.’[13] 그의 묘비명은 영적인 실천이 광기 속의 지혜, 즉 모든 것은 희망과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와 관련된다고 선언하는 불교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실로, 무소유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는 것이 소유하는 것임을 그리고 사라짐을 두려워하는 것을 없애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이다.
김수자는 우리가 그녀의 작업을 통해 ‘무위(無爲)’로서 ‘행위(爲)’를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의 방법을 찾기를 바란다. ‘무위’를 취함으로써 의식의 순간, 예술적 실천 그 자체에서 얻어지는 ‘빛의 순간’과 같은 의미 있는 그 무엇이 드러날 수 있다.지, 수, 화, 풍으로 돌아감으로써 모든 예술적 실천은 빛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모든 죽음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함을 충분히 인식하게 한다. 이 같은 지혜로운 균형감각 덕분에 우리가 스러지거나 사라지리라는 두려움 없이 진정한 예술과 삶의 근본을 관조하게 하는 제3의 눈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Note]
[1] 칼 구스타브 융, 리차드 빌헬름, 『황금 꽃의 비밀, 중국의 삶에 관한 도서』, 라우트레지, 런던, 1999, p. 21. 초판은 1931년 런던의 라우트레지 앤 키간 폴 출판사에서 발행되었다.
[2]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교육학 연구소, 에모리 대학, 조지아. http://des.emory.edu/mfp/calvino/callast.html 에서 인용.
[3] 호세 로카, ‘김수자: 거울 여인’, 피터 블룸 화랑, 뉴욕, 2002.
[4] 제랄드 매트, ‘김수자와 제랄드 매트와의 인터뷰’, 『김수자: 빨래하는 여인』(전시 도록), 빈 아트센터, 비엔나, 2002.
[5] 메리 제인 제이콥, ‘김수자와의 인터뷰’, 재클린 바스와 메리제인 제이콥(편저), 『현대미술에 있어서의 불심』, 캘리포니아 대학 출판사, 로스엔젤레스, 런던, 2003.
[6] 제랄드 매트, ‘김수자, 제랄드 매트와의 인터뷰’, 앞의 책, 2002.
[7] 메리 제인 제이콥, ‘예술의 공간: 오늘의 부처와 문화’, 앞의 책, 2003.
[8] 로자 마르티네즈와의 인터뷰에서 발췌, 2012.
[9] 같은 저자.
[10] 같은 저자.
[11] 같은 저자.
[12] 제랄드 매트, ‘김수자, 제랄드 매트와의 인터뷰’, 앞의 책, 2002.
[13] 촉얌 트렁파, ‘RMDC, 1번 국도, 리버모어’, 『처음의 생각, 최선의 생각 - 108 편의 시』중 49 번째 시(詩). 알렌 긴스버그의 소개글이 수록되어있음. 매사추세츠: 샴발라 출판사, 1983, p. 85.
2012
During the twentieth century the desire to build bridges of spiritual intelligence between East and West has helped balance the excesses of the rationalist mind while it has eased the suffering imposed on the planet in the name of progress. The growing popularisation of Buddhist philosophy, the critical questioning of counterculture and non-violent dissidence and the continuous diaspora of Asian artists have resulted in new perspectives that extend and illuminate the global horizon.
In this landscape of exchanges, The Secret of the Golden Flower, a Taoist text written almost two thousand years ago, arrived in the West thanks to psychologist Carl Gustav Jung and sinologist Richard Wilhelm, who published the first English version in 1931. Jung and Wilhelm suggested the interconnection between gnosis (as a hermetic tradition of the profound knowledge of the Self), methods of physical and emotional healing such as yoga, and processes in the collective unconscious understood as a psychic substratum common to mankind as a whole. The Secret of the Golden Flower is also an alchemical treatise on inner transformation, which is something pursued by the masters of all mystical traditions. 'The Golden Flower is the Light, and the Light of Heaven is the Tao.' [1]
In another book, Invisible Cities, by Italo Calvino, we learn of the adventures of the legendary Venetian traveller Marco Polo, who arrived at the Mongolian court of Kublai Kahn in the thirteenth century. Remaining at the court as an ambassador for seventeen years, the story reveals how he entertained the Kahn with the tales of the cities he had visited during his travels, many of them imaginary. The book ends with an instructive reflection: 'The inferno of the living is not something that will be; if there is one, it is what is already here, the inferno where we live every day, that we form by living together. There are two ways to escape suffering it. The first is easy for many: accept the inferno and become such a part of it that you can no longer see it. The second is risky and demands constant vigilance and apprehension: seek and learn to recognize who and what, in the midst of the inferno, are not inferno and make them endure, give them space.' [2]
The work by Kimsooja is inscribed in this very context of learning and wisdom, as for over three decades her proposals have sought new forms of connection between East and West and have created spaces of beauty, healing and awakening. On her travels as an international artist Kimsooja has visited the most varied places, carrying out performances, making documentary films, holding exhibitions of her works and producing site-specific interventions. Her oeuvre has connected the genealogy of Korean culture to the linguistic systems of global contemporary art in a synthesis that, as José Roca has put it, maintains 'a position of resistance against being digested into an aseptic internationalism,' while it intends, 'in these days of multiculturalism, to hyperbolize the characteristics of its difference to become more "exotic" in a medium eager for otherness.' [3]
Kimsooja has prioritised intuition as a means of knowledge, linking different cultures with threads that can be visible or invisible, always seeking a common anthropological substratum as, from a clearly universalistic vision, she considers that everything about human nature concerns her. 'My philosophical and artistic aim is to achieve the totality which absorbs and unites the whole question of self and the world.' [4]
The cities, paths and landscapes travelled by Kimsooja are neither fantastic nor imaginary. Her metropolises are real, overpopulated, impoverished by war, colonial exploitation or ideological embargoes. The streets she chooses are paths travelled by beings that survive within the limits determined by their geopolitical position. She also chooses ancient places or contexts in which the primeval forces of nature unfold. Very often her firm slender body appears amidst the crowds or on the silhouette of a rock, either standing up or lying down, but always motionless and with her back to the spectator. This generic and at once recognisable body, the lank hair tied back, remains static and contemplative, allowing the world—be it India's River Yamuna or Cairo's human sea—to flow before or around her. 'For me the most important thing to arise out of these performances is my own experience of self and awareness as a process rather than the video as a result. That's how I continue to ask questions to the world and to myself.' [5]
These works have the intensity of a hypnotic trance. They manage to draw spectators out of their mental dispersion, making them momentarily identify with the artist's own experience. Their titles are apposite for focusing on her philosophical and archetypal concerns. The Earth and the Heaven (1984), Toward the Mother Earth (1990-1991) and The Mind and the World (1991) speak of cosmological connections. A Needle Woman (1999-2009), A Beggar Woman (2000-2001), A Laundry Woman (2000), A Mirror Woman (2002) and A Wind Woman (2003) allude to woman's role as healer and mediator. To Breathe/Respirar (2006) addresses key emotions through breathing and the diffraction of light, while Earth-Water-Fire-Air (2009-2010) returns to the contemplation of the fundamental elements of nature.
In formal terms, Kimsooja's evolution reveals how she was surrounded by, and yet remained independent from, the dominant forces in Korea from the late seventies to the nineties, i.e., monochrome painting and the Minjung movement, turning instead to two-dimensional sewn works in the eighties and sculptural objects, Bottari installations and time-based performances and videos in the nineties. Her iconic Bottari, her mysterious 'deductive' objects and her installations evince how her mature artistic language falls into the field of expanded sculpture. Since Joseph Beuys said that even a thought can be considered sculpture insofar as it plastically shapes the spectator's mind, and Piero Manzoni converted the world into a giant ready-made when he built his Socle du Monde (1961), artists have explored, reconstructed or reinvented reality starting from its fundamental materials: people, nature, desire and destruction.
Kimsooja fixes her gaze on the world and intervenes in it, always in an extremely delicate way for, juxtaposing terminology, she considers what exists more a 'ready-used' than a 'ready-made'. She used clothes belonging to her grandmother for the very first time in 1983, and since then traditional Korean clothes and bedcovers have been a means of recycling 'our body and life itself.' [6]
Whether they compose Bottari or unfold in space, these used Korean bedcovers, as canvases and as frames of our life, have appeared as a constant feature in her work, just as her own body has been a performative sculpture, a symbolic needle that abandons the place once its healing mediation is over. 'Sewing and wrapping clothes have always been processes shred with contemplation and healing,' says the artist, adding, 'The relationship of the needle to the fabric is same as my body to the universe.' [7]
As well as having close ties with the Korean female domestic roles, Kimsooja's work bears similarities with the visions of other artists such as Louise Bourgeois, who has also considered the ambivalent power of the needle and its ability to heal. When Kimsooja stands with her back to the camera, her work can be visually associated with that by Caspar David Friedrich, and yet she establishes a conceptual difference: for while the character depicted by Friedrich is immersed in cosmic solitude, her gaze offers us a non-tragic proximity in which stillness is a form of knowledge. Her continuous search for sacred geometry connects the horizontal with the vertical—the earth, the sky, and the human being, the same three basic elements of Taoism—and with yin and yang as energies that structure the world, all of which bears similarities with the theosophical and abstract research by painters such as Piet Mondrian.
Among the works on display in this exhibition are a few essential pieces in her creative itinerary that had not hitherto been shown in Korea. In Bottari: Alfa Beach (2001) the inverted arrangement of the horizon between the sea and the sky visualises the artist's consciousness and feelings: 'The inversion happened when I saw the horizon from the Alfa Beach in Nigeria where African slaves were sent to Atlantic ocean—this was the saddest line I've ever seen in my life, thinking of the destiny of the slaves and their deprived freedom. Thus the flipped horizon was, for me, a disturbed horizon, a disorientated sense of gravity and of the slaves' psychological return I perceived in the curls of the waves reaching the same shore from which they had left." [8]
In the trilogy Mirror of Water, Mirror of Air, Mirror of Wind (2010), filmed in Greenland, the texture of the natural elements takes the viewer back to the idea of a pictorial surface that connects so many of her works. A Needle Woman is no doubt one of her masterpieces and a significant icon in the history of contemporary art. In the first edition of the piece (1999-2001) the artist stood with her back to the crowds of Tokyo, Shanghai, Mexico City, London, Delhi, New York, Cairo and Lagos. In the edition made especially for her participation in the Venice Biennale of 2005 she travelled to the cities of Patan, Jerusalem, Sana'a, Havana, Rio de Janeiro and N'Djamena, appearing again as a cosmic needle sewing human tissue to space and timelessness. In A Wind Woman (2003) the fleeting landscapes filmed at high speed by her camera look as if they had been painted by brushstrokes of wind and threads of time in order to extend interstitial spaces. They also betray traces of different pictorial styles such as Impressionism, Expressionism and even Minimalism, as when the landscape is completely dark, light or pervaded by a bright blue sky. In An Album: Havana (2007), a sequence filming the parallel lines of the malecón and the seafront horizon, people and landscape gradually merge to create an abstract, dynamic and yet ethereal composition that ends up dissolving into the light and wind. In these works the artist's body appears elliptical, outside of the screen's field of vision, just as it is in To Breathe – Invisible Needle/Invisible Mirror, a projection of saturated monochrome colours, the changing spectrum of which is synchronised with the sound of the artist's peaceful or strained breathing and with meditative humming. Presented at La Fenice theatre in Venice, it is a return to the issue of canvas and asks 'Where is surface?', along the lines of Minimalist abstraction. 'When the digital colour spectrum is constantly changing, we don't grasp the reality of surface,' [9] says the artist. At the same time, the signs and iconographic motifs of Korean bedcovers and clothes dematerialise as forms and colours dissolve into pure light and breathing sound. The audience breathes visually, in harmony with the artist's sound performance.
Verging on the ethnographic documentary and yet preserving the spatial format of a four-screen video installation, Mumbai: A Laundry Field (2008) is a visual stroll through overpopulated Mumbai. The camera shows the arduous work of washing laundry: it travels along the narrow streets of the slums, captures dwellings filled with rubble in which people sleep on tarmac and draws up close to the overcrowded trains on an ongoing and oppressive circuit: 'This piece juxtaposes rich visual experience with extremely tough living conditions for mankind. It follows the aesthetics of fabrics as transformed canvases and, at the same time, reveals the harsh reality of daily life in slum areas of Mumbai. … For me it is a retrospective version of older works for it has the dimensions of the fabrics I used to make, both visually and symbolically; clothes and fabrics stand here for human presences and the questions that concern us all.' [10] Thread Routes. Chapter 1. Peru (2010) is the first 16mm film in an ongoing series in which the artist captures the material and immaterial threads woven by different cultures. Chapter 1: Peru begins with a panorama that covers the mountain peaks of the Andes. In the middle of a circular amphitheatre a standing woman turns a spindle. A long downward travelling shot reveals a landscape of farmed fields that resemble woven earth, as do the lines of sedimented sand under the water of a lake, women's plaits and the threads of wool in a loom. In this work the artist uses reiteration as a rhetorical figure, insisting on the slowness of the gaze and committing herself to lengthy descriptions that highlight the poetry of Peruvian thread works and the pictorial juxtaposition of the elements she interconnects. Her intention is for the gaze 'to link weaving and knitting activities to geometrical, agricultural and architectural forms, to the fabric of landscapes and to meditative repetitive actions and festivities that reveal their primeval truth and aesthetics.' [11]
Art and artists are proven to have a key function—to offer relevant interpretations of the time and place in which they emerge, to shape a path that will penetrate mirages and draw us towards the profound essence of reality. Relevant artists like as Kimsooja act as bridges, mediators, channels that offer the truth of their visions, arresting noise and clearing confusion. Like all other human beings, artists experience thousands of phenomena along their existential paths, but through creative practice they are gradually able to purify them. Kimsooja's oeuvre is characterised by a firm will to reach the deepest spheres of awareness by means of the most accurate of artistic procedures. She does so through works that transport memories, emotions, distances and universal realities; proposals for connecting heaven and earth; gestures that require coming together, alms or silence. The artist has even declared that one of her wishes is to disappear, to become invisible: 'I want to disappear at some point with my own decision, and I've been planning "A Disappearing Woman" piece …". [12] This disappearance has to do with both her own need to become increasingly slight and subtle after having travelled the world burdened by the memories of so many people, and with her reflections on her own ontological question.
The epitaph the Greek poet Nikos Kazantzakis chose for his tombstone, 'I hope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coincides with the Buddhist teachings of Crazy Wisdom, that declares that this spiritual practice is related to 'all that is free of hope and fear.' [13] Indeed, losing one's fear of not having is to have, and losing one's fear of disappearing is to remain.
In her oeuvre Kimsooja wishes to find new ways of perception in 'doing' by 'non-doing', for 'doing nothing' may reveal something meaningful as 'the moment of awareness or a moment of light that results from artistic practice itself.' [14] Thanks to this wise balance we may discover a third eye with which to contemplate the true foundations of art and life without fearing we shall dissolve or disappear, as we shall go back to being air, water, earth and fire, fully aware that every practice conveys a possibility of light and every death implies a new rebirth.
[Note]
[1] Carl Gustav Jung and Richard Wilhelm, The Secret of the Golden Flower. A Chinese Book of Life, Routledge, London, 1999 (p. 21). First published in 1931 by Routledge and Kegan Paul Ltd., London.
[2] Italo Calvino, Invisible Cities, Division of Educational Studies, Emory University, Georgia.
[3] José Roca, 'Kimsooja: A Mirror Woman,' Peter Blum Gallery, New York, 2002.
[4] Gerald Matt, 'Kim Sooja im Gespräch mit Gerald Matt', in Kim Sooja: A Laundry Woman (exh. cat.), Kunsthalle Wien, Vienna, 2002.
[5] Mary Jane Jacob, 'Interview with Kimsooja' in Jacquelynn Baas and Mary Jane Jacob (Eds.), Buddha Mind in Contemporary Ar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Los Angeles and London, 2003.
[6] Gerald Matt, 'Kim Sooja im Gespräch mit Gerald Matt', op. cit., 2002.
[7] Mary Jane Jacob, 'In the Space of Art: Buddha and the Culture of Now,' op. cit., 2003.
[8] Kimsooja in conversation with Rosa Martínez, 2012.
[9] Idem.
[10] Idem.
[11] Idem.
[12] Gerald Matt, 'Kim Sooja im Gespräch mit Gerald Matt', op. cit., 2002.
[13] Chögyam Trungpa, 'RMDC, Route 1, Livermore', poem 49 in the book First Thought Best Thought. 108 Poems. Introduction by Allen Ginsberg, Shambhala Publications, Inc., Massachusetts, 1983, p. 85.
[14] Gerald Matt, 'Kim Sooja im Gespräch mit Gerald Matt', op. cit., 2002.
2012
현재 뉴욕, 서울 그리고 파리를 오가며 거주 및 활동 중인 김수자(1957-)는 그녀의 가장 잘 알려진 작업 중 하나인 퍼포먼스 비디오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 킬로미터 Cities on the Move: 2727 kilometres Bottari Truck>(1997)를 통해 동시대의 다양한 전시의 담론을 생성해왔다. 이 작품은 무성의 로드 무비이기도 하며, 우리는 ‘보따리’라고 불리는 형형색색의 직물 꾸러미들이 마치 또 다른 산더미와 같이 쌓여 있는 푸른색 트럭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보따리 꾸러미 꼭대기에 앉아 유년시절부터 살았던 전국의 마을과 도시들을 따라 트럭과 함께 11일간 2727km여정을 떠난다. 2727 km의 퍼포먼스 여정 중에 제작된 비디오는 그녀가 각 한국의 풍경들을 스쳐 지나는 동안, 그 비디오 프레임은 고정되어 관객은 작가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치 가부좌를 튼 한 익명의 여성으로 인지하게 된다. <떠도는 도시들 Cities on the Move>(1997)[1]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후 한루가 기획했고, 다수의 작가들과 건축가들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세계화와 근대화의 결과물로써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도시의 변화에 주목하며 이를 작업에 반영했다. 그 연대로 인해 김수자의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 킬로미터>는 유목적인 삶과 이주의 개념을 환기시켜주면서 이 전시 주제의 궁극적인 메타포가 되었고, 그녀의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 킬로미터>은 국제적인 미술계에서의 그녀의 확고한 입성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2]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많은 언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우리는 국제적인 맥락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과 더불어 ‘문화적 전쟁’을 목도하고, 부유한 자와 빈곤한 자 혹은 경제강국과 약소국 사이의 급증하는 차이에 따른 서로 다른 인종과 종교의 차이를 아우름으로써 (중략) 이 논제들은 <보따리 트럭 Bottari Truck>과 <바늘 여인 A Needle Woman>을 통해 이주, 피난, 전쟁, 문화적 충돌, 서로 다른 정체성 등 현 시대의 주요한 주제를 언급하였다. 나는 관객들이 작품의 현실성을 통해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관심을 갖고 보게 된다고 본다. 아마도 이 점이 그 작업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3]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는 국제적인 비엔날레들의 다발적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내는데, 이는 그녀가 국제적인 비엔날레가 미술계 안에서 점점 더 강력해지며 파워를 행사하는[4] 구조에 대한 인지라 할 수 있다. 그녀가 스스로 시사하는 바에 따라 김수자의 작품은 변론의 여지 없이 글로벌한 문화의 성장과 동시에 지역적 가치들, 예를 들어 이주와 문화적 충돌에 따른 주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이는 더 심화되고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사물에 대한 동양적인 관점에 따른 강력한 영감이 그녀의 작품에 있어 퍼포먼스와 자연의 표현 모두에 대한 그녀의 진지하고도 독특한 개인적인 접근 방식이라는 점이다.
<바늘여인 A Needle Woman>(1999-2001)은 멀티채널 비디오 설치로써 작가의 부동의 명상적 관점을 제시한다. 작가는 관객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8개의 다른 대도시들 즉, 도쿄, 상하이, 멕시코 시티, 런던, 델리, 뉴욕, 카이로, 라고스의 군중 한가운데 서 있다. <바늘여인>은 작가가 스스로를 바늘로써 바라보며 서로 다른 지정학적 장소성에 따른 사회적 맥락들을 ‘관통’ 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관계미학’의 관점에서 서양의 특징적인 참여 모델과 동양적인 사색의 기술을 아우르는 매우 적절한 예시 방법이다.[5] 그녀의 작업들이 근본적으로 관계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작가군, 마우리치오 카텔란,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스터, 피에르 위그, 리크리트 티라바니야 들과 공유하는 태도가 있는 반면, 그녀의 관계미학은 시공간의 개념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리크리트 티라바니야의 작업에서는 집단적이고 단기적인 사회 활동과 같은 공공성이 주요 관심사인데, 김수자의 퍼포먼스들은 그러한 순간적인 사회적 연대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 즉, 서로 관계짓고, 드러내면서 어느 한 집중의 순간에 형성되는 객관성을 획득하게 된다. 즉, 본질적으로 통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현실에의 접근방식에 관심을 가진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왜곡됨이 없이 핵심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6]
김수자가 처음으로 본인의 위치를 작가로 정의했던 1980년대 초반 한국의 미술계는 서구 미술계에서 그러했듯이 문화적 정체성,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 사회적 관계의 의미에 대한 계속적인 논의가 진행되었다. 예술과 삶을 연계하고자 하는 필요성은 지역성에 관심을 갖게 하였고, 나아가 문화적 전통과 한국 역사성의 반영으로 파급되었다. 그녀는 신체, 기억, 친밀함, 일상적이고 주변적인 것들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에 속한다. 당시 그녀가 페인트와 캔버스를 폐기하기로 결심했던 순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표현 수단은 서양미술사에서 이미 공표된 것이었으며 또한 그녀가 홍익대학교에서 학생으로 있을 때 이미 완성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티라바니야와 같이 김수자 또한 그 출발점으로 일상생활의 재료와 행위들을 사용하였다. 면이나 비단으로 만들어진 전통적인 천 조각인 <이불보 ybulbo>는 형형색색의 무늬로 날염되어 예전부터 한국에서의 본래적인 기능들 즉,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자고, 그 위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보관용으로 혹은 여행을 목적으로 물품들을 싸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불보>는 작가의 새로운 ‘캔버스’가 되었고, 바늘과 실은 궁극적으로 작가의 ‘붓’이 되었다.
1980년대 김수자는 이러한 전통적인 천을 꿰매거나 덮개나 오브제들을 만들어 보따리에 넣고, 수 많은 설치작품과 퍼포먼스에 사용하였다. 여기서부터 작가는 신체를 바늘, 실, 혹은 세계를 ‘캔버스’로서 인식하는 작업 방식을 점차적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작가의 퍼포먼스는 에너지를 압축시킨 순간이자 세계와의 상호작용으로서 기록되었고, 여기서 비디오 스크린은 김수자와 나머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은유의 거울로서 작용한다. 김수자는 천주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한국에서의 일상 생활은 개신교, 유교, 불교와 샤머니즘이 섞인 혼합 종교 모두에 밀접하게 영향을 받았다. 불교 이후, 개신교,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는 한국의 주요한 종교들이 되었다. 과거 유교, 불교, 도교의 전통에서 보여지듯이 한국의 종교는 독특하지만 현실적으로 절충이 가능하였고, 또한 수많은 기독교적 요소 역시 수용하였다. 김수자의 작업이 도교 혹은 선불교의 원리와도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을 작가는 최근 뒤늦게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여전히 그녀의 작업을 동양적 혹은 서양적이라고 규정짓기를 원하지 않았고, 이러한 사고 방식이 서양의 미술 비평가들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하였다. 니콜라 부리요와의 인터뷰에서 김수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동양 사상이 현대미술 세계에 정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단지 포스트모던한 이국적인 것 혹은 서양의 심미적 탐구를 위한 장식으로 기능한다고 여깁니까?”에 대해 작가는 동양의 사고 방식은 단순히 이론이 아닌 인격과 존재에 녹아 든 하나의 삶의 태도로서, 현대 미술사의 모든 맥락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서양식 사고와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답한다 [7]
공공장소에 개입하는 김수자의 작업은 공개적이고 애매한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명상적 ‘사라짐’은 도덕적 호소력을 대중으로부터 만들어낸다. 김수자의 퍼포먼스 <집 없는 여인 – 델리 A Homeless Woman - Delhi>(2000)과 <집 없는 여인 – 카이로 A Homeless Woman - Cairo>(2001)에서 각각 델리와 카이로의 복잡한 공공 장소 한가운데 누워있으며, 또한 비디오 설치 작품 <바늘 여인>(2005)을 위해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6개의 도시 - 파탄(네팔), 예루살렘(이스라엘), 사나(예멘), 하바나(쿠바), 리오데자네이로(브라질), 엔자메나(차드) - 들을 방문하기도 한다. 미동 없이 몰입해 있는 작가의 침묵은 공허함과 정신의 집중을 끌어내고, 서로 다른 대도시들 안에서 작가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더 눈에 띄게 만든다. “나에게 작가로서의 야망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여 내가 소멸하는 그 순간에 다다르고자 한다는 것 이다.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작가일 필요가 없다. 단지 자유자족한 존재이거나 혹은 욕망에서 벗어난 무(無)의 상태인 것이다.”[8] 김수자는 작가로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이상을 최대한 단순하고 비소유적인 존재가 될 때 느낀다.
같은 맥락으로 작년 말 김수자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한국 영광 지역에 대규모 비디오 설치 작품 <지수화풍 Earth – Water –Fire – Air>(2009-2010)을 설치하는 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 대형 비디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문화관광부와 한국 수력원자력, 한진 해운 등 국내 기업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10] 작가는 150m 간격을 둔 8개의 대형 비디오 스크린을 부둣가 1200m를 따라 설치하였다. 영상은 카나리아 제도의 란자로테 섬의 다양한 자연의 요소들과 과테말라의 화산활동을 찍은 것으로서, 열반의 네 가지 요소 - 흙, 물, 불, 바람 - 가 서로서로 흐르면서, 그 추상적, 시각적 해석을 위한 초석으로 구성되었다. 흙, 물, 불, 바람이라는 각 요소는 그 성질이 불가분하게 다른 것들과 얽혀있는데, 이것은 6개의 영상 작품 제목에도 표현된다: <흙의 불 Fire of Earth>, <흙의 물 Water of Earth>, <물의 흙 Earth of Water>, <불의 공기 Air of Fire>, <흙의 공기 Air of Earth>, <물의 공기 Air of Water>, <물의 불 Fire of Water>, <불의 물 Water of Fire>. 2주간의 전시 기간 동안 방문객들은 해당 전력 단지의 안전 규정을 준수하는 한도 내에서 해가 진 후 저녁과 밤에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김수자는 원자력 에너지를 음(陰)과 양(陽) - 우주가 음양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믿는 중국 도교에서 말하는 두 종류의 반대되며 상호보완적인 가치 - 의 개념처럼 이해하고, 작품을 통해 생산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자연적인 에너지 원천의 사용과 인류, 또, 인류의 기원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명상을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최근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어났던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건으로 보았을 때, 이 작품은 더 안타깝고 시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초기 퍼포먼스 비디오 작품인 <바늘 여인 – 기타큐슈 A Needle Woman - Kitakyushu>(1999)에서 김수자는 일본 기타큐슈의 암반층에 누워있다. 이것은 - 하늘, 땅 그리고 돌 위에 누워있는 여인이 둘로 나뉘는 경계선을 만들어내는 - 지극히 단순한 이미지이다. 일본 서부 산업도시인 기타큐슈 지역에는 백 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기타큐슈는 1960년대 공기 오염으로 평판이 좋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재활용과 수질 정화기술을 적용하여 오염치수를 내림으로서 다른 대도시들의 귀감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 키타큐슈가 도시의 낡은 주변부에 위치한 자연의 이미지로만 비춰지는 것은 시대착오적 생각이다. 그러나 영상에서 땅과 공기는 고대의 중국 과학과 철학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의 역동적인 힘인 음(陰)과 양(陽)처럼 보편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에 대해 김수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새로운 커미션 작품을 위해 일본 기타큐슈 현대미술관에 초대 받았을 당시, 나는 막연히 퍼포먼스 작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도쿄에서 또 다른 하나는 자연 속에서 말이다. 이후, 나는 이 둘을 함께 병치했고, 인간과 자연에게 주어진 환경적
조건과 관계 속에서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고 정의되는지를 탐구하려는 것이었다. 그 결과 하나의 퍼포먼스는 군중 사이에서 부동의 자세로 서게 되었고, 다른 하나는 자연을 바라보며 돌 위에 누워있게 된 것이다. 결국 수직과 수평은 도시와 자연의 힘 사이에서의 역동적인 균형의 은유가 되었다.” [11]
[Notes]
[1]
[2] 김수자는 광주비엔날레 (1995, 2000)와 마니페스타비엔날레 (1996) 및 이스탄불비엔날레 (1997), 상파울로비엔날레 (1998), 베니스비엔날레 (1999, 2001, 2005, 2007), 타이페이비엔날레 (2000), 부산비엔날레 (2002), 휘트니비엔날레 (2002), 요코야마트리엔날레 (2005), 그리고 최근 테살로니키비엔날레(2009)와 모스크바비엔날레 (2009)에 참여하였다.
[3] 올리비아 샌드, ‘김수자와의 인터뷰’,
[4] 나는 여러 국제적인 행사에 참여하며 좋고 나쁜 경험을 모두 겪어봤지만, 일반적으로 국제적인 비엔날레는 예술과 미술작가에 대한 정당한 평가, 혹은 작품의 의미나 수준 보다는 점차 미술계 내에서의 권력구조와 마켓의 역학관계, 특정한 정치적인 관계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페트라 캅스, ‘김수자 - A One - 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 인터뷰, 2006, 김수자 홈페이지에 게재: www.kimsooja.com.
[5] 관계미학(relational aesthetics)’의 개념은 프랑스 큐레이터이자 이론가 니콜라 부리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1990년대 후반 그는 특정 예술과 예술가의 유형을 범주에 넣으려는 노력 하에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였다. ‘독립적이고 사적인 공간보다는 온전한 인간 관계와 그들의 사회적인 맥락을 중시하는 이론적이고 현실적인 출발점에 대한 일련의 예술적 관습’. 이 용어는 보르도의 CACP에서 개최된
[6] 2006년 리옹 현대미술관
[7] 김수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만약 서양 미술계가 동양의 사고 방식을 서양의 심미적 탐구의 장식으로만 여긴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 일 것이다. 즉, 동양의 사고방식이 예술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늘 내재해 온 전개방식 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분리된 어떤 요소만이 추가되는 것처럼 생각하면 말이다. 그 방식은 예술과 인생의 기본 조건에서 늘 변증법적으로 산재한다. 동양의 사고방식은 수동적이거나 드러나지 않은 표현 방식의 역할을 하는데 이것은 보이지 않거나, 언급 되지 않거나, 간접적이거나, 위장되거나 실체가 없어 보인다. 반면 서양의 사고방식은 일반적으로 해체적이기 보다는 건축적, 비물질적이기 보다는 물질적, 이해 보다는 논쟁, 그리고 자주 상대적인 관계의 심각성 등에 기반하여 기능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과정은 현대미술 내 필요한 양자의 존재에 대한 의식과 필요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것은 끝없이 변형하며 풍요롭게 하는 공존의 미학, 바로 음(陰)양(陽)의 미학이다.’
[8] 올리비아 마리아 루비오, ‘김수자와의 인터뷰’,
[9] 저자의 작가와의 인터뷰, 2010년 11월.
[10] 본 작품은 본래 란자로테 비엔날레와 서울의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커미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11] 앞서 언급된 노트9와 동일한 출처임.
2011
One of the best-known works by the Korean artist, Kimsooja (b. Taegu, 1957, lives and works in New York, Seoul and Paris) is the video and performance Cities on the Move: 2727 kilometres Bottari Truck (1997), created for the much-discussed exhibition, Cities on the Move. [1] It is a quiet version of a road movie. We see a blue truck, loaded with colourful bundles of textiles, called bottari in Korean, piled up on one another like a mountain. Kimsooja is sitting at the top of the pile and makes the journey together with the truck, 2727 kilometres along all the places she had lived as a child. The frame of the image is fixed: from the back, we see Kimsooja as an anonymous female figure in the lotus position, while cities and Korean mountain landscapes move past. For Cities on the Move (1997), curated by Hans Ulrich Obrist and Hou Hanru, artists, architects and designers investigated or reflected on urban transformations in Asia as a result of globalization and modernization. Because of the associations that the work evokes with the concepts of migration and nomadic lifestyles, Kimsooja's 2727 kilometres Bottari Truck became the ultimate metaphor for this theme. Her participation in the exhibition marked her definitive breakthrough into the international exhibition circuit. [2] Commenting on the great interest being shown in her work, she has said, 'Today, it seems that we are witnessing a "cultural war" with many issues arising in a global context, bringing together different races and beliefs, with an increasing discrepancy between rich and poor, economically powerful and less powerful countries. (…) The issues that that I address in Bottari Truck and A Needle Woman are very much related to current topics, such as migration, refugees, war, cultural conflict and different identities. I think people are interested in considering these topics through the reality of the works. This may be one reason for their success.' [3]
In this context, Kimsooja also expressed her criticism of the international biennial circuit, which she finds 'more and more focused on the power structure within the art world'. [4] Although Kimsooja's work, as she herself indicates, indisputably concerns the field of tension between the rise of a global culture and regional values and such themes as migration and cultural conflict, at the same time, it goes much further. Equally fascinating in her work is her utterly personal approach to performance and the representation of nature, both of which are strongly influenced by an Eastern way of looking at things.
A Needle Woman (1999-2001) is a multichannel video installation in which Kimsooja forms the unmoving, meditative central point. Her face turned away from the viewer, she stands in the middle of the masses of people in different urban metropolises: Tokyo, Shanghai, Mexico City, London, Delhi, New York, Cairo and Lagos. The title, A Needle Woman, describes how Kimsooja sees herself: as a needle that 'pricks through' the social, societal context of the different geographic locations. It is a handsome example of the way in which her work embraces a marriage between the characteristically Western model of participation in relational aesthetics and Eastern, meditative techniques. [5] While her work shares roots with the relational aesthetics of such artists as Maurizio Cattelan, Dominique Gonzalez-Foerster, Pierre Huyghe and Rirkrit Tiravanija, it begins with a concept of space and time that contradicts that approach. Where, in the work of an artist such as Rirkrit Tiravanija, the encounter with the public is the central focus, as a temporary social activity, Kimsooja's performances separate themselves from this temporary character and have the objective of creating a moment of concentration and focus that is binding, revealing and in essence holistic. 'I am interested in approaching the reality that embraces everything, because it is the only way to get to the point without manipulation.' [6]
In the Korean art scene in which Kimsooja first defined her position as an artist in the early 1980s, there was an ongoing debate about cultural identity, a critical review of formalism and the meaning of social engagement, similar to that of the art world in the West. The need to mix art with life went hand-in-hand with attention to local, cultural traditions and the reflection on the history of one's home country. Kimsooja belongs to a new generation of artists who are interested in the body, memory, intimacy, the everyday and the marginal. She found her identity as an artist at the point when she decided to abandon paints and canvas, the media canonized by the history of Western art that she had mastered as a student at the Hong-Ik University in Seoul. Like Tiravanija, Kimsooja chose to use everyday materials and activities as her starting point. The ybulbo, a traditional piece of cloth in cotton or silk, printed with colourful motifs and which has since time immemorial had a range of everyday functions in Korea - people sleep and children are born on them and they serve to wrap up items for safekeeping or for travel - became her new 'canvas', needle and thread her 'brushes'.
In the 1980s, Kimsooja stitched these traditional cloths together into covers and objects, bundled them into bottari and used them in countless installations and performances. From here, she gradually developed a working method in which she saw her own body as the needle or thread and the world as 'the canvas'. Her performances were recorded with video cameras as a condensed moment of energy and interaction with the world, whereby the screen functions as a metaphor of the screen that exists between Kimsooja and the rest of the world.
Kimsooja came from a Catholic family, but daily life in Korea is also permeated with both Confucianism and a mix of Buddhism and shamanism. After Buddhism, Christianity, both Protestant and Catholic, is the primary religion in South Korea. Korean religion is complex and eclectic in nature: it is founded in old Confucian, Buddhist and Taoist traditions but it also embraces many Christian elements. The fact that her work reveals so much in common with the principles of Zen Buddhism was something she only realized rather late in her career. Still, she does not want to refer to her work as either Eastern or Western. It is a way of thinking that confuses Western art critics. In an interview, Nicolas Bourriaud asked her, 'Do you think that oriental thought has a real impact on the contemporary art world, or is it only a postmodern kind of exoticism, a decor for western aesthetic investigations?' Kimsooja's reply was that the Eastern way of thinking inhabits every context of contemporary art history, not just as theory, but as an attitude melded into one's personality and existence, and is inseparable from Western thinking. [7]
Kimsooja's interventions in public space are not about an open, noncommittal social relationship. Her meditative 'disappearances' clearly make a moral appeal to the public. For her performances, A Homeless Woman - Delhi (2000) and A Homeless Woman - Cairo (2001), she set herself down on the ground in the middle of the busy, urban public spaces of Delhi and Cairo, respectively. For a new edition of the video installation of A Needle Woman (2005), she visited six cities in precarious political and social circumstances: Patan (Nepal), Jerusalem (Israel), Sana'a (Yemen), Havana (Cuba), Rio de Janeiro (Brazil) and N'Djamena (Chad). Her unmoving, meditative stillness creates an emptiness and a focus of concentration that makes everything happening around her in all these different metropolises all the more visible. 'I have an ambition as an artist: it is to consume myself to the limit where I will be extinguished. From that moment, I won't need to be an artist anymore, but just a self-sufficient being, or a nothingness that is free from desire.' [8] Kimsooja feels that the highest ideal that can be achieved by an artist is to be as minimal, as unprepossessing a presence as possible.
In her recent multichannel video installation,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2008), included in the Windflower exhibition, this principle reaches an apex. In this work, the images for which were taken along the beach in Goa, India, we see an exceptional eclipse in which the sun and the moon melt together. To the left and right of this are two additional video screens showing the waves washing up on the beach and the rhythm of the tides. Kimsooja herself is no longer in the image. We can only perceive her indirectly as the person who observes the natural phenomena from behind the camera, and who by way of a technical procedure, records the sun rise and set over the moon. When I asked her if she felt that she had taken an important step towards completely disappearing out of her own work, she replied, 'I personified the mirror symbolically as my body, as an inserted action/performance in between the sun and the moon, so that my presence becomes invisible, and my body/life vanishes while it transforms as a metaphor of an object. (…) When I disappear, I represent the act of nature more closely. Thus only my gaze becomes active.' [9]
Late last year, and from a comparable perspective, Kimsooja created the large-scale video installation, Earth-Water-Fire-Air (2009-2010), a temporary project on location on the grounds of one of the largest nuclear reactors in the province of Yonggwang, South Korea. This scale and setting of this version of the video installation was the result of a collaboration between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Korea, the korean Ministry of Culture and the company Korea Hydro & Nuclear Power, including Hanijin Shipping. [10] Kimsooja placed a video installation, comprised of eight large screens, each about 150 metres away from the others, on a 1200-metre long pier in the sea. Video recordings that she had taken on the island of Lanzarote in the Canary Islands and of volcanoes in Guatemala formed the cornerstone for an abstract, visual interpretation of nirvana, in which the four elements – earth, water, fire and air – flow into one another. The fact that the character of each element is inseparably bound to the other elements is also expressed in the titles of the six videos: Fire of Earth, Water of Earth, Earth of Water, Air of Fire, Air of Earth, Air of Water, Fire of Water, Water of Fire. For a period of two weeks, the video works could be seen after sunset, in the evenings and at night, with visitors having to submit to the strict security regulations of the industrial power complex. With this work, Kimsooja wanted to draw attention to the issue of nuclear energy as a form of energy that, like the concepts of Yin and Yang [two opposite and complementary values in Chinese philosophy-Taoism with which the universe presents itself –ed.], produces positive as well as destructive energy. The work is intended as a contemplation on the use of natural sources of energy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mankind, his origins and the earth. In light of the recent catastrophic events at the Fukushima nuclear plant in Japan following the earthquake and tsunami, this work has unexpectedly become all the more poignant and topical.
In an earlier work, the performance and video, A Needle Woman - Kitakyushu (1999), Kimsooja lies on a rock formation in the Japanese city of Kitakyushu. It is an extremely minimalist image: heaven and earth and a woman lying on top of a rock formation, forming the line that divides the two. Kitakyushu is an industrial city in western Japan, with a million inhabitants. In the 1960s, the city had a bad reputation because of air pollution, but today, the recycling and water purification techniques that are employed there are now being adopted as a model for other major Japanese cities. It is a strange anachronism that in the video, Kitakyushu is only represented in an image of the nature present in the tattered margins of the city. The earth and the air, however, appear as universal eminences, as Yin and Yang, the dynamic powers from the natural world, as we know them from classic Chinese science and philosophy. As Kimsooja explains, 'When I was invited to make a new commissioned work at the Centre for Contemporary Art in Kitakyushu, Japan, I thought I would do a performance piece – one in the city of Tokyo, and the other one in nature. Then I would juxtapose them together. This was to examine how my body reacts and defines, in relationship to the given environmental conditions that are the human being and nature. As a result, one was standing still in the middle of a crowd, while the other was lying down on a rock, facing nature. Verticality and horizontality were a metaphor for a dynamic balance between urban and natural forces.' [11]
In the West, people are sometimes inclined to identify Yin and Yang in terms of opposite ideas of good and bad, but the essence of Taoist philosophy is not to think in terms of the opposites of moral judgments, but from the idea of a balance. It is primarily this spiritual principle that is deeply anchored in Kimsooja's work and is a determining factor for her perspective of nature and landscape – being present, being absent, as actively as possible, so that a black hole is created that attracts all meaning towards itself. As an artist, one becomes a mirror of the complexity of the universe, facing the viewer. In this, Kimsooja is a master.
[Notes]
[1] Cities on the Move, travelling exhibition (1997-1999), successively in Vienna; CACP Bordeaux; PS1 New York; 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 Humlebaek Denmark; Hayward Gallery London; Bangkok (various locations across the city); Kiasma Museum of Contemporary Art, Helsinki.
[2] Kimsooja took part in the first edition of the Kwangju Biennial (1995) and Manifesta (1996), as well as Istanbul Biennial (1997), São Paulo Biennial (1998), the Venice Biennial (1999, 2001, 2005, 2007), Tapei Biennial (2000), Busan Biennial (2002), Whitney Biennial (2002), Yokoyama Triennial (2005) and recently, the Thessaloniki Biennial (2009) and the Moscow Biennial (2009).
[3] Olivia Sand, 'An interview with Kimsooja', Asian Art Newspaper, May 2006.
[4] 'Although I've been in many of these international events, and have had both positive and negative experiences, in general the international Biennials scene shows very little respect for art and artists. They seem to focus more and more on the power structure of the art world, and their specific political alliances with the artists and institutions, rather than the quality of the work and its meaning,' in Petra Kaps, 'Kimsooja – A One-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 interview, 2006, published on Kimsooja's website: www.kimsooja.com.
[5] The concept of 'relational aesthetics' was coined by the French curator and theorist, Nicolas Bourriaud. In the late 1990s, he used this term to try to categorize a certain type of art and artists, 'a set of artistic practices which take as their theoretical and practical point of departure the whole of human relations and their social context, rather than an independent and private space'. The term was first used in the catalogue for the exhibition, Traffic, at the CACP in Bordeaux, which was curated by Bourriaud and included such artists as Maurizio Cattelan, Dominique Gonzalez-Foerster, Liam Gillick, Carsten Holler, Pierre Huyghe, Philippe Parreno, Jorg Pardo and Rirkrit Tiravanija. They have historically become model examples of relational aesthetics. See also, Nicolas Bourriaud, Relational Aesthetics, Dijon, Les presses du réel, 2002.
[6] From an interview with Nicolas Bourriaud in Kimsooja: Conditions of Humanity, exhibition catalogue, Contemporary Art Museum, Lyon, 2003. The quote continues: 'Most people approach reality from analysis or "from language to colligation" which is the "truth", but I am proposing a "colligation to be analyzed" by audiences.'
[7] Ibid. Kimsooja's response was, 'It would be unfortunate if the Western art world considered Eastern thought as a decor for Western aesthetic investigation – as if it were another element to add without noticing the fact that it is a way – in the process of making art. It is always there, as a dialectic, in all basic phenomena of art and life together. Eastern thought often functions in a passive and reserved way of expression, usually invisible, nonverbal, indirect, disguised, and immaterial. Western thought functions more with identity, controversy, gravity, construction in general, rather than deconstruction, and material rather than immaterial, compared to Eastern thought. The process finally becomes the awareness and necessity of the presence of both in contemporary art. It is the Yin and Yang, a co-existence that endlessly transforms and enriches.'
[8] Olivia María Rubio, 'An interview with Kimsooja', Art and Context, summer 2006.
[9] Interview with the artist by the author, November 2010.
[10] The piece was originally created for and commissioned by the Lanzarote Biennale and Atelier Hermes in Seoul.
[11] Op. cit, note 9.
Kimsooja on the performance of non-action.
2011
ART iT: We were just discussing your understanding of the dynamic between globalism and locality, particularly with regard to your performance videos for A Needle Woman (1999-2001/2005). Your work is often discussed in terms of displacement. Is there any place to which your works return or come home?
Kimsooja: I tend to work on the move, mostly while I'm traveling. For the works themselves there is no sense of "home." The context changes each time they travel. When the same performance piece is shown in India it is different from when it is shown in Peru or Kenya. It elicits different connotations from the viewers, and in response to each specific time and geography.
I don't intend to make displacement a theme in my work but the constant nature of moving from one place to another in my life automatically creates that phenomenon. Also, the notion of displacement is already there in bottari making. As a physical container of bodies, memory, history and society, the bottari holds together many different notions of time, space, culture, society and gender, but at the same time it is also made with a single piece of square-shaped fabric, so formalistically it's a transformed painting that becomes a three-dimensional sculpture the moment you tie it up with a knot.
It was from this formalistic aspect that I first began working with bottari, and then in 1993 when I returned to Korea from my residency at PS 1 in New York, my interest evolved towards more personal, social and cultural significances. I was able to see my own culture and society differently after my stay in New York, and this created a different reality that could offset the formalistic aspect of the work. The notion of displacement in the bottari also relates to time. The bottari is a container of different tenses - the past, present and future - which are collapsed together all at once the moment I wrap it up.
In a way, the presence represented by the bottari can also be represented by the artist's body, which is similarly a container of all those problems. Maybe I'm unfolding them through my relationship to the nature and humanity of each city. For example, in the first version of A Needle Woman (1999-2001), I visited all the major world metropolises, but in the second version (2005) I went mainly to cities in war zones or to those that were sites of political and religious conflict. I visited Havana and Rio de Janeiro in order to witness issues of post-colonialism, exploitation and violence. I went to Patan, in the Kathmandu Valley, while a civil war was taking place, and it was a very dangerous moment. I wanted also to go to Afghanistan and Iraq, although ultimately it was too risky and I didn't want to gamble my life to that extent. But these were some of the symbolic locations that drew my attention at that time.
ART iT: Regarding the similarities between the bottari and the body, one thing that interests me about your works is posture. It's incredibly difficult to stand or sit still for any amount of time. To do so, your body has to assume almost architectural qualities. Is posture something that you've thought about over the years - not just the body itself, but also the shape of the body and the mechanics of how you hold it up or lay it down?
Kimsooja: In fact, even to stand still can be a production. When I did the first A Needle Woman performance in Shibuya I had to learn right at that moment how to stand still and how to breathe and be grounded. I had never practiced any meditation or yoga, but because of this urge that drove me to do the performance, I was able to start learning meditation practice on my own. In order not to move my shoulder, I had to learn how to breathe from my stomach, as I could only move horizontally. In order to be grounded, I had to stand solidly and rigidly, but also had to find a way to relax in order to maintain my circulation over the course of the performance. The only thing I could do was to order myself to relax my head, relax my left shoulder, relax my feet, relax my neck - and it worked. I learned to circulate my own body by practicing this performance. Looking at it, I see the body, as you say, as an architectural element. I see it very objectively rather than identifying with it.
The idea of a standing performance also developed from my awareness of and reaction against the aggressive and violent exposure of the self that often happens in performance practices in history. I was very aware of that, and I wanted to create a performance that is nonviolent that could show more by doing "nothing."
ART iT: In Chinese philosophy there is the concept of "wu wei" - acting without acting, a kind of non-expression or non-action. I think this concept is fascinating to explore further in an art context.
Kimsooja: In my performances, non-expression often creates a measure or barometer for understanding the other, similarity and difference. In A Needle Woman, viewers see the same performance of non-action taking place in all these different cities, and then become aware of the clear distinctions between the behavior of the people in the different cities and the different landscapes. After a certain point the viewers tend to forget my image and begin to see what I am seeing. My body begins to function as a void that is replaced by the bodies of the viewers, allowing them to experience each performance in each location. I think it would be very different if I excluded myself and showed only the cityscapes with people. There would be no entry point for viewers.
ART iT: You're both the needle and the fabric?
Kimsooja: I am both the needle and the bottari. There are all these folding and unfolding processes going on in my art and mind and body, but also through my gaze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my body and the people and the world, there is this other dimension of a needle that is weaving together different societies, geographies and cultures. I feel that my body becomes an axis of time and space. However, the first version of A Needle Woman was filmed in real time, and shows more of the axis of space than of time. The second version was filmed in slow motion, so it emphasizes the comparison in time. The people moving in slow motion appear to engage more sensitively and personally with my body, but at the same time my body, as a zero point of time, becomes an extended zero. What is that time? That is my question.
ART iT: It's like you are constructing a series of mirrors.
Kimsooja: I have worked with mirrors on several projects since 1999, but it was while I was preparing my solo show in 2008 at Shiseido Gallery in Tokyo,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that I realized the mirror is also an unfolded needle. My work dealing with nature unfolds as an extended fabric, while the needle is an extended tool of the human body that signifies the nature of humanity. Everything to do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needle/body, fabric/mirror evolves from my earlier pieces. In fact, the motivation behind my earlier work with sewing came from an awareness of the mirrorical aspect in painting. As a painter, I had always questioned problems regarding the surface of the canvas. I think the painter's life is all about wandering onto the canvas searching for different methodologies of producing one's own mirror. The notion of the mirror and one's identity has always been there, transformed through different media and methodologies.
ART iT: One of the major issues that we will continue to face in the future, and which we've already been dealing with for past centuries, is how to deal with the other. Maybe your way of dealing with this issue is to put yourself in the place of the other, rather than that of the self?
Kimsooja: That's very true. It's an interesting perception. The artist's main subject somehow is based on the self and the other. The confrontation with the canvas is always about how to deal with the other and how to project oneself. But I want to expand that issue to communication with the other, and embracing the other, and, finally, reaching a ground of oneness. This is an issue that ultimately everyone has to face.
ART iT: Now you are working on a new project called Thread Routes (2010- ). In conclusion, can you explain about how this project relates to your earlier work?
Kimsooja: Compared to A Needle Woman, the Thread Routes project is all about searching for the questions and roots of threads in an anthropological approach. It focuses on weaving, lace making, knitting and spinning - all actions with threads - in relation to the geographical, agricultural and architectural structures in various regions around the world. One inspiration for this project came from a visit to Bruges, where I saw a lace-making woman in the street, and immediately connected the structural and performative element of this action with local architectural practices. I began filming in Peru as the first chapter to this project. There, I juxtaposed different weaving communities' performances with the local landscapes, as well as architecture and archaeological structures. It was my first time shooting with 16mm film and I discovered a more special relationship with the camera than when I use digital film.
"Thread Routes" is a retrospective project in that I am looking back at my earlier sewing practices up till now, searching for the structural, cultural and psychological roots of my own interest. I will continue to film in Bruges, Burano, Croatia, Prague and Alhambra. I also can't help thinking of countries in the Middle East that have strong decorative architectural elements. Other locations include Mali and Rajasthan in India, where there are clay houses decorated with circular mirrors, which also recalls the Indian tradition of fabrics decorated with mirrors. I also plan to film the weaving culture of the Miao people in Sichuan, who have a unique garment tradition of pleated skirts that to me seems to be strongly related to their agricultural cultivation using mountainside terraces and the layers of traditional architecture that are built along the local landscape. Then there are also traditional Japanese stone gardens - the structure of which I can easily relate to weaving. Native American archeological sites are another planned location.
I'm also working on a site-specific commission by GSA that will take place right on the US-Mexico border in Arizona. I am making a video piece using a LED screen right on top of the first gate for entering the US, addressing the political problems and violence that occur with immigration and drug trafficking issues in the Mariposa Land Port of Entry. Again, this is a very delicate and vulnerable location with which to deal.
─ This article was published in Art iT magazine, July, 2011.
2011
In 1999, in Tokyo's bustling Shibuya neighborhood, Kimsooja produced the first in a series of performance videos collectively titled A Needle Woman (1999-2001). Standing still in the middle of the oncoming crowds, the artist achieved a minimal but not insignificant intervention into the rhythm of local daily life. Simultaneously confrontational and vulnerable, her action opened a window onto the collective humanity of the passersby - viewed from the advantage of hindsight, it is perhaps they who were the vulnerable ones that day. The first version of A Needle Woman eventually led Kimsooja to make similar performances in seven other international metropolises, while in 2005 she revisited the piece by traveling to an additional six zones of conflict and social tension, among them Jerusalem, N'Djamena and Patan.
A Needle Woman is part of a larger body of work investigating themes ranging from memory and form to nature and consciousness. Often invoking images related to fabric - namely, the Korean bottari cloth bundle, but also threads and needles - such works ask viewers to reconsider their bodily relations to social structures, and reflect about what it means to be both an individual and a member of a community. Realized and exhibited in cities across the world, they offer a universal perspective, but also reflect the unique conditions of specific times and places.
ART iT met with Kimsooja in Tokyo to discuss her practice to date and how she relates to issues of globalism, locality and site-specificity.
ART iT: You've done projects in cities around the world, ranging from Lagos and Delhi to New York, Paris and Tokyo. Given that experience, what does locality mean to you, and has its significance for you changed over time?
Kimsooja: First of all, I must say that I was never interested in globalism and that was not my starting point for traveling around the world doing site-specific performances and video pieces. I was mostly interested in locality. In the mid-1990s my Cities on the Move-2727km Bottari Truck (1997) performance video piece coincided with the emergence of global issues in the international art scene, and my work received exposure in the context of globalism from curators who were trying to understand the phenomenon as it relates to contemporary art. However, as an artist, I was only focused on each city and its own locality. I valued the beauty of the pure authenticity and reality of each city.
I have witnessed the development and transformation of many metropolises over the years. When I visited Lagos in 2000, the city had very tough living conditions, yet maintained authentic cultural realities. Now I hear the rough areas have been smoothed out and completely developed. For example, there was the Oshodi open-air marketplace that had been established along active railway tracks, which stretched for miles almost to the horizon. When a train arrived, people selling goods on the railway tracks would immediately clear out and then return once the train had passed. The marketplace was constantly moving and taking on different forms and dynamics. If it rained, the sellers would still stand there with their goods, even when the water reached their knees. It was the most amazing marketplace I had ever seen, and I’ve always wanted to return there to work again, but I hear now the market no longer exists as before. I understand that for the local economy it might be more productive to be modernized, but in terms of the authenticity of the local way of living and culture, I think it's a shame. With globalization, everything has become so standardized.
ART iT: What was the impetus for you wanting to make the video pieces in different cities?
Kimsooja: The motivation began with the A Needle Woman performance I did in Tokyo in 1999 for a commission by CCA Kitakyushu. I was thinking of doing a walking performance piece, but didn't have a definite idea, so I walked around the city waiting to find the right moment and energy in the right place. After walking for several hours I arrived at Shibuya. When I saw the hundreds and thousands of people coming and going, I was so overwhelmed that I couldn't walk any further and had to stop there immediately, hearing my own silent inner scream right at that moment. Once I stopped, I also realized the meaning of walking.
I asked the videographer to film me from behind. At the beginning of the performance it was very difficult to stand in the middle of a crowded street with all the people's energy coming toward me. I was determined to stand still; at the same time, I was in a vulnerable situation. I was totally exposed, but as time passed, I found my own center. I became very focused and entered a meditative state. As I stood there, I felt myself begin to mentally embrace and wrap the people who were passing me. I entered a state of mind of total concentration and peace, which allowed me to experience a certain kind of enlightenment. When I looked at the horizon of the waves of oncoming people, I could see a bright light coming from beyond them, and I found myself looking at the entire humanity of the world.
From this special experience, I determined to continue making A Needle Woman performances around the world in order to meet, possibly, every single person in the world. That was the starting point. For the first version of A Needle Woman (1999-2001), I was interested in major metropolises where I could meet many people on the street. In addition to Tokyo, I made performances in Shanghai, New Delhi, Mexico City, Lagos, Cairo, London and New York.
ART iT: You've spoken about the needle as a hermaphroditic tool that is both aggressive and passive. To stand in the middle of the crowd is both a vulnerable and a confrontational action, all the more so in a city where you're not a local. Is the confrontation an important part of the work?
Kimsooja: Every performance is a confrontation, both with one's self and the other. In this performance, the confrontation moved from the people on the street to myself and then slowly extended to the whole world, until ultimately I achieved a level of compassion whereby self and other became one. During the performances, these transformations were happening in my mind rather than in my body.
Of course, there were many different physical reactions from the different cities. Tokyo was the most critical experience I had - people in Tokyo were aware of others next to them, but they pretended not to see them. When you see the video from Tokyo, my body is there, but it seems as if I myself am not there. I am totally ignored or isolated from the crowd, as they don't pay attention to me or acknowledge my presence. I'm an invisible person, yet this is one of the most crowded streets in the world. The time-based video makes apparent this phenomenon. It's as if I am a ghost, or my body becomes increasingly transparent. It's also interesting how my state of mind changed during the course of the performance, because the more I embraced the people into my mind, the more I was also liberated from them, and could empty myself. The visual and physical processed and the psychological, spiritual process were moving in opposite directions.
Your comment on confrontation interests me not only in regard to my performance pieces but also in regard to earlier sewing pieces and installations. These were also very much related to a confrontation with "the other," through the medium of the canvas.
ART iT: How did the experience change from city to city? Did you see different things about yourself in different cities?
Kimsooja: Yes. It depended on the location and the energy of the place. In New Delhi, people found an Asian woman standing in the middle of the street to be very odd and mysterious, perhaps because of their associations with religious imagery in Indian culture. They would stop and look at me for a few minutes, trying to find out who I was and what I was doing. Some people would ask the camera crew whether I was a Buddha or a sculpture.
During the performances, I never engaged anybody in a direct gaze. I would focus on a single, vanishing point. This helped to keep myself stable, although I knew what was happening and how people looked at me. In New Delhi, the inner gazes shared between my mind and their minds were very intense. In Shanghai, people were only half-interested and would quickly return to their own business after glancing at me. In Cairo, people were playful and curious. Some people would stand in front of me, mirroring my position for a few minutes. There was also a man who brought a bottle of cologne and sprayed it in front of me to get my attention, and a woman who grabbed my ponytail and move it around my body. The reactions tended to be direct and very provocative.
In New York, people were always interested in looking all around, searching for new information on the street, so their heads were constantly moving - eating, walking, talking, laughing, sometimes mimicking me. In London, where there is a similar multinational population, they were more turned in on themselves, and their gazes tended to be directed downwards at a 45-degree angle, rather than looking up. So these performances gave me insight into the mentality of the people in each city and different cultures in various geographies.
ART iT: Have you ever done A Needle Woman or a similar kind of performance in Korea?
Kimsooja: No. I didn't want to position myself in the same place where I’ve lived for over 40 years. I wanted to have a degree of separation from and objectivity to the cities where I performed. Had I done it in Korea, everything would have been too familiar, with less tension. It would have been difficult to create a distinction between my body and the others - even if there were a visible distinction - because mentally and historically we share so much together. This was a piece that had to be examined outside of my own context.
ART iT: But you have done other projects and of course exhibitions in Korea, such as the Earth - Water - Fire - Air (2010) installation of videos along the breakwater of the Yeonggwang Nuclear Power Plant. What is your relationship - through your creative process - with Korea?
Kimsooja: Passions and troubles can feed creativity. All my problems are good resources. My private life, my family, my friends, my country - cultural, political and social relationships can all be material for me to work with. The more I know my own culture, the more I actually feel estranged from it because I know where it comes from and yet I know that I'm not fully part of it. It was interesting for me to have grown up in a society that was undergoing economic and political turbulence. But then I thought that living in the same homeland for about 40 years is more than enough to learn what you can from one place. I thought that if I continued to live there I would just repeat myself, and I needed another vital ground. Another factor in leaving Korea was that even until the late 1990s it was difficult for female artists to receive recognition or support in the male-dominated social hierarchy.
ART iT: Did this idea that you were moving away from your homeland at all affect the dynamic of doing projects in other cities and countries? For example, what keeps your practice from acting out a kind of artistic globalization?
Kimsooja: I think of globalization as being related to things like the profusion of a few brands across the world, or a process in which everything becomes standardized and preexisting cultures or ways of thinking and living are slowly eradicated. My intention with A Needle Woman was more about inner experience rather than expressing myself or showing off. For me, the performance inevitably became a kind of ontological question about living in the world, and the world in which I am living became my canvas - a backdrop, rather than a market. I’ve always been interested in experiencing the wakefulness of being in the world, rather than necessarily transforming my experience for the audience. Simply, the latter came naturally as a result of my being an artist.
If there is a certain global aspect in my work, it's perhaps more in that I present the performances together in multi-channel video installations so that viewers can simultaneously see the different momentums of each city around the world. But I don't know if I recreate the standardized format of globalization. I am the same person and I am doing the same performance, but my inner transformation has always been there. Is it possible for me to become a global item? I don't know. It could be interesting if that were so. Obviously, in the current era artists can take on brand-name value. I never thought of that in my own practice because for me it's not about the product or a work of art but the artist as a being. Art is a methodology of living for me.
ART iT: Maybe it's no coincidence, though, that in the age of globalization we have seen a rise in site-specific commissions asking artists to fly some place, do research and produce a project in that context. Sometimes this approach can produce powerful works, but it can also become an empty gesture towards an idealized notion of locality.
Kimsooja: Yes, it is true, and depending on the practices such commissions can take shape in different ways. Performance can be very different from installation, sculpture or even painting, which normally has less site-specificity in terms of interaction and can travel anywhere. A space-oriented site-specificity will be different from a time-oriented specificity, and a politically-oriented specificity will also be different from the other two. It varies so much with each project that it's very difficult to generalize.
─ This article was published in Art iT magazine, June, 2011.
2010
Maxa Zoller
Your work is concerned with boundaries between the self and the other. Cloth, the needle, and the activity of wrapping, sewing, walking, and breathing have become not only methods, but philosophical tools to investigate the liminal space of where the self ends and the other begins. I would like to start this interview with two of your works, the multi-channel video installations A Needle Woman (1999-2001, 2005) and then work our way back to your early bottari sculptures. In a way, this interview will work like a Russian doll in which the largest part includes the smallest, which in turn already anticipates that in which it is nesting. As your work is not linear, but cyclical and interconnected, I thought that this would be an appropriate way to gain insight into the relationship between content and method in your complex practice. The first and second versions of A Needle Woman are eight- and six-channel video installations respectively, which show a woman standing still in a crowd in different metropolises around the globe.
Kimsooja
Yes, the first series was performed and filmed beginning with Tokyo, then continued to Shanghai, Mexico City, London, Delhi, New York, Cairo, and Lagos (Nigeria). When I traveled around the world performing this first series, I learned a lot about the reality of the political and cultural differences around the world. When I was invited to present a piece for the Venice Biennale in 2005, the whole world was facing conflicts caused by the Iraq war, which created tensions between Muslim countries and the United States, and this conflict contaminated the rest of the world. I felt the urgency to create the same performance, focusing on cities in conflict, to witness the world, while keeping the same form and frame as in earlier performances. I decided to place my body in the middle of conflicted cities that were suffering from poverty, violence, postcolonialism, civil war, and religious conflicts. This is how I chose Patan (Nepal), Jerusalem, Sana (Yemen), Havana, Rio de Janeiro, and N'Djamena (Chad). I performed and documented all six cities in a few months in 2005. There is also a third, single-channel video made in 2009, which was commissioned by Nuit Blanche, Paris. With this version, separate from the first two versions, I decided to focus on different realities in Paris, performing in three neighborhoods that represented multi-cultural communities such as the BarbËs marketplace, a typical Parisian community on Rue de Montreuil, and a touristic location, the Champs-ElysÈes.
Maxa Zoller
I would like to quote the German curator Volker Adolphs who very eloquently wrote about the first A Needle Woman: I Like a needle, she pricks into the colorful social tissue of the cities, sewing different societies together. Kimsooja sees the needle as an extension of her body; she overcomes in-between spaces and disappears again. The thread remains as a binding and mediating trace of the ghost in the fabricís weave. . . . But it is also possible to see this the other way around. In this case the unceasing, endless wave of people is the stationary and enduring part, and the artist is the being in motion, who will go on, pass away, decompose, and disappear. I Can you talk about how you developed this extraordinary series of videos?
Kimsooja
Before I started using video as a medium for my performative practice, I was painting using Korean bedcovers and traditional clothing. I have always retained my artistic position as a painter. All of my experiments in different media have been a continuous evolution of my painting practice. Iive always been aware of Western art history and I have been writing my own painting history by contemplating my reality and condition as a Korean woman in a larger society. Iive been searching for my own methodology, one that articulates my questions about the structure of the canvas, nature, and the world focusing on horizontality, verticality, and duality but at the same time questioning the self and the other to unite them. I continued my sewing practice for almost a decade (1983-92). My documentary video about my daily practice of working with Korean bedcovers in nature, Sewing into Walking ─ Kyungju (1994) was the first video when I discovered that my body functions as a symbolic needle that weaves the great fabric of nature. That is how I started using video not because I was particularly interested in image making, but because the camera's gaze weaves the reality of the world and the video's frame is an immaterial way of wrapping object a bottari.
In 1999, when the Center for Contemporary Art, Kitakyushu, commissioned me, I thought to make walking performances using my body, one in the city, the other in nature. I began by walking for a couple of hours in different parts of Tokyo, but I couldn't find the right moment and energy to define it, nor the precise methodology to film it. At last, I arrived in the Shibuya area where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were coming and going. I was completely overwhelmed by the huge crowd and its accumulated energy. I was screaming inside and had to stop and stand still right there. At that very moment, I realized the meaning of my hours of walking: I immediately decided to perform standing still and document the performance from behind.
Maxa Zoller
So A Needle Woman is not so much about being a global citizen, but rather it developed out of a moment of personal crisis?
Kimsooja
Yes, it was a very personal encounter and contemplation of myself, others, and humanity. At first, I didn't think about the global citizen. I started the performance more as an existential question, but Iive been more and more engaged with the world since this first performance contemplating humanity's destiny and feeling compassion for it. At the beginning of the performance it was very difficult to resist all the energy on the street and I was truly vulnerable, standing still, as a woman totally naked, psychologically. But during the performance I found my own space and time and I learned how to breathe, how to be still, how to relax different parts of my body, and how to focus. It was like being in a vortex that created an enormous sound, but was silent at its core.
I experienced an amazing transformation and transcendence while performing in Tokyo. While the crowd was walking toward me, I perceived a white light coming from behind them, like a light coming through the eye of the needle. By the end, my mind was full of love, happiness and peace, and I was enlightened while looking at the waves of people coming and going. After the powerful experience of that performance, I was eager to continue the same performance on other continents and to meet everyone in the world.
Maxa Zoller
In these performance videos, you stand in for the needle that stitches all these different pieces of the world together, your long black hair becoming the eye of the needle. Over the many years of your sewing, wrapping, and performing art practices you have developed your own philosophical topology of the needle.
Kimsooja
In the first performance video, I used my body as a symbolic needle that weaves the great fabric of nature, but I was also conscious of the needle as an object having many dualities. A needle is used in healing, but it's also used to connect separated part so both actions performing pain. The needle is a hermaphrodite, and has a void, the eye of the needle, which allows the thread through, which in a way represents our soul and spirit. At the same time, the needle is an extension of our hands and body, so it combines the body, the spirit, the physical and the void, the material and the immaterial.
Maxa Zoller
In what way is the second version different from the first?
Kimsooja
In the second version, I chose cities that were in conflict. For example, Patan was caught up in a civil war at the time; I saw soldiers with guns everywhere and heard many gunshots. Through colonialism, Havana is related to the United States, which later blocked free travel between the two countries. Rio de Janeiro has issues of violence and poverty, as well as postcolonial issues; I visited the favelas and experienced severe violence and danger there. N'Djamena is in Chad, one of the poorest countries in the world and one with post-independence problems. Sana is in Yemen, which has political and religious conflicts with Israel. I had to travel from Sana via Jordan to Jerusalem, as there was no other way. We think we live in a global society and believe that we should be able to travel freely, but in fact, it is more and more difficult to travel freely and we have to take risks to live our lives.
In the second version of A Needle Woman, I considered my body more as an axis in time, whereas in the first version, I considered my body as an axis in space. I wove in different societies, economies, and cultures by positioning myself at zero time slowing down the movement of people on the street in relation to the real time of the audience. In this way, I created three different durational modes: real time where the audience is located, zero time where I stand still, and a slowed-down time as the passersby move around me. I am still questioning what happened when I stood still at point zero and I keep thinking about the permanency in it.
Maxa Zoller
I want to talk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assersby and the camera. Sometimes people approach the camera and, through the lens, look directly at us, the audience.
Kimsooja
In terms of photographic perspectives in performance and video, it's like having a third, hidden eye. Before I made the first A Needle Woman, I did another video, Sewing into Walking ─ Istiklal Cadessi(1997), in Istanbul. I positioned the camera (without myself) within a fixed frame so that people on this main street would be framed (wrapped) when they are coming and going, without manipulating them. If I compare the relationships to the A Needle Woman performance, the camera could be replaced with my body and the lens with my eyes. I wasn't aware of it while performing the first A Needle Woman, but Sewing into Walking was one of A Needle Woman's origins, which I might have to revisit at some point. I tend to go back and forth from different boundaries of my practice, away from and back to the central question. I think this enables me to grasp how I relate my eyes and my body to the audience, myself, and the location, creating different layered viewpoints. It's interesting for me to place my body in the center and as an observer.
Maxa Zoller
Letís talk about the role of your body in these performances. By positioning your back and not your front to the camera, you complicate the relationship between yourself and the stream of people walking toward you, the camera, and the viewer. In a way, it is through the reaction of the passersby that we come to identify with you, that we see your front.
Kimsooja
By positioning the camera away from the audience, I was able to stay anonymous; conversely, the audience could assume my position and focus on what I was experiencing. For example, in Lagos, I performed in the middle of the marketplace and there were kids and adults carrying the goods they were selling on their heads. They stood still, watching me from start to finish, a mirroring of what I was doing. At the same time, the audience in the exhibition space viewing this performance/video can also enter my body at a certain moment and experience what I perform.
Maxa Zoller
In other words, by becoming the mirror and the needle between the audience and the world, you remove yourself.
Kimsooja
In a way, I objectify myself as a needle and as a mirror to the audience. I believe that painters are always trying to find their own mirror on the surface of their canvases in order to find their own identity. I was also trying to question where the boundary lies in To Breathe ─ Invisible Mirror/Invisible Needle (2003ñ2005), a video, and The Weaving Factory (2004), a sound performance work; the two were presented at the Teatro La Fenice in Venice. We can never stop gazing at the endlessly transforming color field in To Breathe ñ Invisible Mirror/Invisible Needle because we cannot truly measure its depth or define its surface. This is also related to my early painting practice. The bottari represents a physical wrapping practice, as a canvas, an object, and a sculpture; however, I use the mirror as a physical and symbolic material having a similar function to video in terms of framing the images. Similar perceptions exist also in sound and light works ideas about wrapping immateriality within space. There are materialized and dematerialized elements that run parallel in my work, but in the end, they coexist as one.
Maxa Zoller
I recently read Jean-Luc Nancy's text on the Noli me Tangere story in the Gospel of St. John in which the resurrected Christ encounters Mary Magdalene and says to her, I Touch me not; for I am not yet ascended to my Father. I In A Needle Woman you serve as a sort of apparition; you produce difference by inserting your body in these particular environments. The reactions range from indifference to a rather threatening curiosity but nobody touches you, as if you are saying, I Noli me tangere.
Kimsooja
I think it has to do with the transcendent element of performances that deal with time. This is also true of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India, the performance I did in Delhi in 2000 on the bank of the Yamuna River, right next to a shmasana, a Hindu cremation site. The debris that you see on the river is from the cremations burnt body parts, flowers, and pieces of wood are slowly floating and passing by my body. I was contemplating human destiny, the purification of the burnt bodies and myself. In the middle of the performance, I experienced an unbelievable confusion I couldn't figure out if the river was moving, or if my body was moving while standing still. After a while, I found myself back in the center of the flow and away from the confusion. After this performance, I learned from the confusion. My inner and physical gaze was so focused that there was no boundary between myself and the other, like a needle's point that has no physical dimension, but only a location, and is open to the void. It was not the river that was in motion, but my body in time, which seemed to be a solid, physical entity that flowed and then disappears.
Maxa Zoller
I think that this experience also applies to the viewer. Speaking for myself, I entered a trance-like state in your exhibition at Baltic, Gateshead, England (2009), where you presented the A Needle Woman and A Laundry Woman installations.
Kimsooja
Yes, there is a kind of hypnotic element to time's passing. Time is a repetition of each moment of breathing inhaling and exhaling and this repetition creates a hypnotic state. I was so concentrated and focused on one point which was nowhere. There are no orienting points at the very tip of the needle, so you cannot relate yourself to anywhere, but at the same time you can relate yourself to everywhere. I learn from each performance, which offers deeper questions, and that's why I cannot but continue my work.
Maxa Zoller
The needle is like a threshold or an interface like a skin.
Kimsooja
Yes, that's why I consider the mirror as an unfolded needle as it has a similarity in its nature.
Maxa Zoller
Your understanding of the mirror as an unwrapped, unfolded needle is fascinating. Earlier you mentioned To Breathe ─ Invisible Needle/Invisible Mirror. Could you tell me about the particular needle-mirror relationship in this work?
Kimsooja
I find the needle and the mirror very interesting in that their identities are not revealed. The needle always functions dually as a medium that connects things, but at the same time it can also hurt. Only by hurting can it heal, and that's when its function as a medium manifests. In the end, the needle leaves the site.
Like the needle, the mirror is also an interesting object in terms of identity because it reflects everything but itself. The mirror creates a plane that reflects the self, and the illusion of the self. It's similar to the surface in painting, something I was always aware of because of the approach I had in my sewing practice. I did not begin my sewing practice because I was particularly interested in sewing, or the feminist aspects of the medium, or because I was a skilled seamstress, but because I was interested in the question of the fabric's surface as a canvas and in the questions about the Other, the self, and their relationship.
The whole process of questioning and answering is like pushing a needle into the fabric (canvas) and pulling it through as a repetitive action. This circular movement of sewing-as-dialogue led to my wrapping fabrics around Korean folkloric objects and to bottari pieces as a three-dimensional form of sewing. The moment I discovered bottari was very intuitive and astonishing. I was staring at the ordinary bottari in my studio when suddenly it presented itself as a new painting, a new sculpture, and a new object. The journey with the bottari truck in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1997), and the whole idea of the mirror concerns the mirror as a border. I spent much of my childhood near the Korean Demilitarized Zone where I heard casualties on the border; this must have drawn my attention to the idea of borders. It's not unrelated to the constantly changing spectrum in To Breathe ─ Invisible Mirror/Invisible Needle.
When I was invited to create a piece for La Fenice, I knew that it's an opera house and discovered that singing is all about breathing. I wanted to emphasize that element, but I also realized that breathing is the same as sewing inhale and exhale and it can be the defining moment of life and death. So breathing is related to sewing and defining a surface's depth. With the changing spectrum I wanted to incorporate my breathing with the audience's within the architecture, so I could embrace the architecture as a living, breathing body.
Maxa Zoller
To Breathe ─ A Mirror Woman, also made in 2006, is clearly related to the La Fenice installation. Can you tell us about this large-scale intervention in this extraordinary space?
Kimsooja
It was in the Palacio de Cristal, Madrid, and organized by the Reina SofÌa. When I saw the space I was stunned by its beauty; I thought it was an absolutely beautiful object in itself that didn't need anything added. So instead, I decided to empty the space in order to push the void out, all the way to the exterior of the building. I covered the entire glass facade with diffraction grating film, which diffused the light into a rainbow spectrum, and placed mirrors across the whole floor to reflect the structure of the building, creating a virtual space.
I also added the sound of breathing from La Fenice, The Weaving Factory: there are two different stages, the sound of inhaling and exhaling, and the sound of humming. The result sounds like a chorus of my own voice echoing and bouncing on the mirrored floor. Depending on the light and time of day, the color spectrum changed endlessly and amazingly. In a way it was a bottari of light and sound, combining all the different concepts of needle, mirroring, breathing, and wrapping all of these elements together in one space.
Maxa Zoller
I want to return to Sewing into Walking ñ Kyungju, a key work that connects your architectural installations, the color and video projections of the 2000s, and your early bottari works. In that work, you use breathing and walking as an extension of the sewing and wrapping practices in the bottari.
Kimsooja
I didn't intend it to be a video. I just wanted to make a documentary record of how I related to fabric in my daily practice, so it was done quite naturally. But when I reviewed the video, especially in slow motion, I discovered the transitional nature of the performative element in my daily life.
The fabrics I use are mainly bedcovers for newly married couples in Korea, and are gifted to the bride and groom by the bride's parents. The performance ended with me wrapping all the bedcovers together, tying them into bundles, and then leaving the site.
The bed is the frame of our lives: where we are born, where we dream, love, suffer, and die. So wrapping and unwrapping the bedcover has a symbolic meaning for me: wrapping life and death, in the end. When unfolded, the bedcover signifies a couple, family, love, settlement, and location. When wrapped into a bundle, the bedcover suggests the opposite, separation and dislocation, migration, and the status of refugees. When a Korean woman says, I Wrap the bundle, it means she is about to leave her family to pursue her own life so in Korean society it has a feminist element as well. By working with the boundaries of wrapping and folding, I have been able to create different perspectives and dimensions in my work.
The first bottari I made (or rather discovered) was in 1992 in my studio in P.S. 1, New York. Bottari were always with me in my studio and as part of the Korean household, I used them to store things and fabrics from the beginning of my sewing practice, which started in 1983 but I didn't pay much attention to it until later. I was turning my head and looking around at my studio and there was this unusual object, so familiar but totally distinctive. It was a unique painting and at the same time a sculpture made with one very simple knot, a readymade, and a ready-used object. So it was a surprising new discovery: a three-dimensional sewn object made by wrapping which was a three-dimensional canvas a painting and a sculpture. Since then, live developed projects and installations that defined different dimensions and concepts of bottaris.
Maxa Zoller
These bottari also raise questions related to modernist practices of medium-specificity: what is a canvas? What can be done with a canvas?
Kimsooja
Bottari are very much linked to our bodies and our daily lives. I consider our bodies as the most complicated bottari, so for me the bedcover is like a skin. Without that close link to reality, it would be less meaningful, more abstract, and I wouldn't have been able to create a broader question and concept for my work. It's quite interesting for me to discover the parallels between aesthetic and formalistic evolution and the physical, psychological, and philosophical examination of our body, sexuality, human relations to the world in general, even political problems within bottari.
Maxa Zoller
Earlier you mentioned your upbringing close to the Demilitarized Zone. Can you share some details about this time in your life?
Kimsooja
My father was in the military service from the Korean War until he retired. We moved from one city to another, one village to another every other year, wrapping and unwrapping. As a nomad, I have always been aware of the border, not only in my own work, but also physically and psychologically. I always felt a certain awareness of the Other, or a danger when I lived in that region. Since I was a little child, I have been very sensitive to the pain of others, which could be related to my experience near the DMZ. I was always aware of places other than my own, which is not unrelated to my use of fabric and questions on boundaries in different practices. Without realizing it, I began to discover more about my own history and destiny through my work. At the Venice Biennale in 1999 I installed D'Apertutto, or Bottari Truck in Exile, a bottari truck installed in front of a mirrored wall and dedicated it to the refugees of the Kosovan War. The mirror opened up a virtual exit, but it was a road that you could not pass through so it also represented the frustrations and conditions of the refugees.
Maxa Zoller
Traveling also features in your video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for the exhibition of the same title.
Kimsooja
I was very inspired by the exhibition's title, which was linked to my life. The distance traveled for over eleven days in Cities on the Move was very meaningful to me the bottari truck and my body as another bottari sitting on top endlessly moving like a line on a graph, in time and space. I was very much aware of time in this performance, looking back at my past and forward to the future, and drawing lines along the journey onto the topology of the South Korean land.
Maxa Zoller
Is that why the video is in slow motion?
Kimsooja
Not necessarily, but I think slow motion can reveal much more of the realities around us, ones that don't often get much attention. In a way it resembled my inner rhythm or my mind's wavelength.
Maxa Zoller
Your work is not linear, but as I said in my introduction, moves in different directions, all of which are interconnected. It has a somewhat crystalline structure. As a last question, I would like to ask you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different stages in your early practice.
Kimsooja
In one of the earlier pieces, The Heaven and the Earth, a crucifix shape from 1984, I used pieces of my grandmother's clothing, which I sewed together I'm still using remnants in other works. In another piece, Portrait of Yourself from 1991, I assembled parts of used clothing from anonymous people, it was like a network of invisible existences. In the sense of human bodily traces and relations, it can be compared to A Needle Woman. In Mind and the World (1991), I wrapped a bamboo pole with used clothing and then leaned it against the center of the sewn surface pieces. Looking back, I think of this pole, in relation to the sewn fragments of used clothing, as being like my mind and body leaning toward humanity and the world, just as A Needle Woman stands in front of the world.
Retrospectively, I realize that I was able to evolve all these earlier practices with used fabrics because wrapping fabrics onto objects, or bottari, in the end was the same methodology as sewing: wrapping the surface of a fabric with threads around. The cruciform and circular structures were already there, and that might have been how I could continue this work, without a pre-conception, responding directly to the physicality of the materials, only following my intuition and the urgency of my desire.
— Edited transcript of an interview held at Tate Modern, London, February 20, 2010, in collaboration with Art Monthly; first published as part of Talking Art Series, London: Art Monthly and Ridinghouse, 2017, pp. 316-326. It is republished here with the kind permission of Maxa Zoller.
2010
Ryu Byounghak: I'd like to say, your recent series of art works feels slightly different on the surface from Bottari and A Needle Woman, which are well known to us. So before we look into the new work, I think it is very important to retrace one by one your footsteps in the making of these earlier works.
Kimsooja: People who have seen my Bottari pieces and A Needle Woman series — works that deal with humans — may think that my recent works — Earth-Water-Fire-Air, are only about nature. Nevertheless, I have continued to make a series of video works that deal with the themes of humans and nature simulateneously; which is something that has been present in my work since the beginning of my career. From my perspective, nature is an extension of a fabric and the needle is an extension of a body. In this sense, I think the relation between the fabric and the needle has evolved through the contemplation of nature as fabric, and a human body as a needle, that meditates towards humanity. In the end, these two are one.
Ryu: So it seems we need to shed some light on this path to understand your work thoroughly. To start the conversation, let's discuss the motive of Bottari. In the mid-1990s, you once said, Keeping bottari (bundle) is a very common domestic practice in Korea, and bottaris have been around me my whole life, especially, since I began working on sewn pieces using used cloth and clothes in the 80s. I became aware of new possibilities for conceptualizing bottari from a mundane daily object to a completely new way of making painting, sculpture and installation. This opened up a new vision of its cultural, aesthetic, socio-political, and philosophical dimensions. One day in my P.S.1 studio in 1992, I turned my head and there was a bottari that I had put there a while before, which I used to look at everyday. When I gazed at this bottari in that moment, a completely different perspective emerged; a totally new bottari was sitting there. I had been wrapping and unwrapping bottaris for my clothes for sewn pieces, but I hadn't seen its hidden formalism and meanings before that moment. That bottari in front of my eyes was a completely new object and discovery. It was a sculpture and a painting and a ready made and a used object — all without doing anything except simply making a knot. Through this simple act of tying up, bottari making opens up a possibility for transforming two dimensions into three; which simultaneously transforms the object into both a pictorial plane and a sculptural volume.
Ryu: With this content, we can say you already found that bottari can be a sculpture and, in this way, your work Bottari is a sort of ready-made.
Kimsooja: Yes. 'ready-made', in the sense that it has been existing as an object and a form, and at the same time, a 'ready-used' object, in the sense that it is made from materials which have already been used by people.
Bottari is a fluid and transformable ready made and ready used. However, both contexts co-exist as a oneness in my bottari. As the nature of both a painting and a sculpture exists in one single body of bottari, and this object reveals the reality of life, it also has a diachronic temporality. To me, bottari contains radical aspects in many senses, but in Korea it is just an object that is so embedded in daily life, that this work might have been hard to understand and recognize distinctly as an artwork because it is so closely tied to daily life practices. My work is all about recognizing new artistic value and contextualizing and recontextualizing mundane daily life objects, and daily life actions with the least maniplulation. In fact I see the bottari that I rediscovered at P.S.1 in 1992 as more pro forma. I was focusing on the moment of transformation that the fabric, the two dimensional tableau, becomes the three dimensional object and sculpture by the ordinary act of tying. I have shown the installation Bottari also at the New Museum and Ise Art Foundation, New York, in 1993 but my vision changed around the time when I came back to Korea and prepared for my solo exhibition (1994). I had a new understanding of Korean society as a woman, and also as a person who had experienced the reality of an open society. That is to say, I came to understand that bottari wasn't just an aesthetic or formal object, but one made of the "reality of our lives". Since then, I started to use not only fragments of fabrics and clothes of various colors and patterns, but also used clothes from anonymous people as a pre-existing form. I began to work with the thought of wrapping humans, our life and memories rather than simply taking a formalist approach.
Ryu: Looking at your works from late 1990s, I had a thought about formality. They are ready-mades for sure, but they are different from the ready-mades of Marcel Duchamp. Duchamp had fixed a urinal, a common product, into Fountain, the artwork, but Bottari travels back and forth between the common product and the artwork. You also transform a common product: bottari into the artwork Bottari, then after a certain period of time the art work is disassembled and turned back to a common product, and then a common product bottari appears again as an artwork in a different form. Through the 1990s your exhibitions were about wrapping the bottari, then going to another place and unwrapping it again, by doing this its mobility is emphasized. Looking at the successors of Duchamp's ready-made, like Carl Andre's Equivalent VIII also known as The Bricks, Dan Flavin's Monument made with fluorescent lights and Jeff Koons' New Shelton Wet/Dry Double Decker arrangement of vacuum cleaners, we can see that they are each fixed. But your works are fluid. Interestingly, you can wrap all three items: the brick, the fluorescent light and the vacuum cleaner, with the fabric and the shape changes differently in each case. Bottari is read as the work of a certain kind of magic. I think that is the other aspect of formality in your works.
Kimsooja: The fabric naturally possesses fluidity, so I hope that my works can be expanded to transcend all its limits.
Ryu: Especially in the works after 1994, you used bedcovers a lot. In a past interview, you once said the bedcover holds the contents that covers us from birth to death, I think this symbolic content is telling of a sense of place.
Kimsooja: Actually when I was working on Bottari, many people thought I wrapped the bottari with Korean traditional wrapping fabric (bojagi), but I only used bedcovers. More precisely, I used traditional Korean bedcovers for newlywed couples. I think the bedcover is a field in which function and specific meaning coexist; in the sense that it is a place where we are born, love, dream, suffer and die. It is a frame for our life. Within this frame is the wishes of our whole lifetime — love, long life, wealth, and fertility are embroidered as forms and letters. Perhaps this might be considered a contradiction when we consider that this everyday, almost mundane yet colorful object — the bedcover — is covered with aspirations and festive elements. So, when the bedcover is unfolded, it is a tableau that has a place to stay. It is a two dimensional surface that implies memories of the loving life of a couple, sex, rest, stability, or family and comfort. However, the context gets reversed when it is tied into a bottari; suddenly it suggests dislocation, mobility, departing, migration and separation. The tableau (bedcover) that wraps and forms the bottari acts as a 'border' determining the dichotomy in life and art.
Ryu: Let's talk about the work you installed at the cafe in Central Park, for the Whitney Biennial, in 2002. You used bedcovers as tablecloths. Did the local audience know they were bedcovers?
Kimsooja: If I did not provide an explanation about the work, they would not have known. As a matter of fact, I showed the tablecloth installation first at Fruitmarket Gallery in Edinburgh in 1995, then in Manifesta 1, and again at Setagaya Museum in Japan in 1998 as well as at the Central Park café for the Whitney Biennale 2002. At that time, after a series of bottari works, the meaning of unfolding the bottari became connected to the process of returning them into the original form of a canvas. In other words, the idea of using a bedcover as a tablecloth was to wrap invisible elements in the space, with mind and gaze, by turning the bedcovers back into a canvas. By unfolding the bottari and presenting it as a tableau, it folds invisible activities around the table into the tableau. For example, in cafes, people meet, talk to each other, share food and drinks, listen to the music and so on. I presented the tablecloth installation to wrap all these intangible communicational interactions, under the concept of an invisible wrapping. Ephemeral elements that appeared in the work are connected to the site-specific installation called To Breathe - A Mirror Woman, shown at Crystal Palace in Spain. At Crystal Palace, I intended to juxtapose the illusion of the mirror and the reality of space together — mirroring as a sewing activity — by covering the entire floor in mirrors. I also installed translucent film on all the glass windows of the architectural structure, in order to diffract the sunlight into a rainbow's spectrum when it penetrates the interior space from its source in the exterior space. Also, I unified all the elements of the notion of sewing by installing the amplified sound of my breathing — inhaling and exhaling — as voice performance. Holding the void of the space attached to the skin of the architecture, I presented the mirrored structure of the building itself, like a double-sided crystal palace with a division of a mirror surface on the ground so that it creates a negative space of the palace as a sewn architecture — a closed bottari — with the sound of my breathing creating a bottari of light and sound. In that, this work maximizes the immaterial character of the concept of bottari.
Ryu: I see. Although, I didn't see the installation of the bedcovers on the cafe tables firsthand, I did see it in a catalog. It was shocking. Especially after you mentioned that the bedcovers you used were intended for newlyweds. And bedcovers, by their characteristics, immediately convey the love making of newlyweds. In human natural desires, there are appetites and the libido. In that work, the two just fell into place. I wondered did the local public know that these were bedcovers, and how did they react to them.
Kimsooja: At the first exhibition in Edinburgh, an audience member came to see the installation and she said that I was brave (laugh). In a way this work is provocative, but on the other hand it is presented in a very passive form. Some of the Korean bedcovers are quite exquisite and have delicate needlework, and there I used many beautifully preserved examples, so that the work drew a lot of attention. Yet the true meaning of the work that I am concentrating on is not just the cultural and aesthetic value of the bedcover.
Ryu: I want to connect the next question to our earlier conversation about the ready-made. Once you said, "I don't believe in the aphorism that the artist is the person who makes a new thing. I think the role of the artist is to find a new way of reading the existing world with specific observations, and by providing new contexts or concepts. However, whatever material I used at that time, it was mostly to refer to the life of the user." Based on my feeling, I made the connection that your video works, like A Needle Woman, had come about as you turn yourself into the ready-made. Like the Deleuzian notion of becoming, your works came to me as becoming a needle woman and becoming a laundry woman, in a fashion. It is known that A Needle Woman started in Tokyo, Japan, in 1999. How did you come to start this work?
Kimsooja: When I was commissioned to do a project with CCA KITAKYUSHU, I simply thought that I would like to do some kind of performative piece. In my first year living in New York City as an artist in exile, I felt that personally I was standing on the edge of a cliff — which kept me mentally very sharp. So, as I was becoming more aware and concentrating on my body more sensitively, I began to think deeply about subjects like isolation, the self and the other. Initially, I had been walking around downtown Tokyo for a couple of hours, waiting for a certain decisive time and place. Then I arrived at Shibuya, the street where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flood in and out, and I experienced a moment in which I could not walk one step more. In Zen Buddhism, there is a sound which expresses awakening, "Ak!". I was shouting the inner scream, "Ak!" in a silence that I kept inside of me, and I couldn't move my feet but just had to stand still right at that specific moment in that location. Having that experience of standing still in that place, I have come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walking. In other words, the relation between my body and the presence of a crowd accumulated in the bottari (my body), through the accumulated time and energy in the act of walking. I set that place for the first performance of A Needle Woman. Without even time to reconsider, I thought "This is it!" and started the performance right away and told the cameraman to record my appearance and the crowd in a certain frame from behind. I remember that performance was one of the most special experiences of my life. Over the waves of oceans of people, beyond the horizon of the people, I saw bright white light rising beyond the horizon of humanity. My mind was filled with love, joy and peace as well as compassion for all humanity. Through this unforgettable experience, I reached the point where I felt that "I wish to meet every single human being in the world." To meet everyone in the world, I continued the project A Needle Woman visiting eight metropolises on each continent. Looking back at all these events, I realized that all of these attempts to meet others was only a way to meet my own true self.
Ryu: The eight cities were Tokyo, Shanghai, Deli, New York, Cairo, Lagos and London. After that, I remember you continued to other cities, such as Patan, Nepal, Havana, Cuba, Rio de Janeiro, Brazil, N'Djamena, Chad, Sana'a, Yemen and Jerusalem, Israel.
Kimsooja: These are the cities I performed in for the second series of A Needle Woman. In the first series, I placed my body as an axis of the space in the 8 metropolises in different continents, while in the second series, I presented my body as an axis of time. From my experiences visiting the first eight cities which were facing severe political, religious, economic and social conflicts within the country or with other ones, I decided to visit and confront the conflicting reality of the world choosing these 6 cities. Especially when I was visiting Patan, in the Kathmandu valley in Nepal, the country was in the midst of a civil war so I heard a lot of gunshots during the working process and saw many armed soldiers. These works, different from the first series, were made in slow motion so that the world I see as an equal value and delicate emotional relationship between my body and passers by, is more pronounced. In the first version which was shot in real time, the performative aspect of my body and the tension between my body and the passers by was more visible. I think the intersection of the times; the psychological relationship of the bodies and the passers by stand out more in the second version (2005) and my body reacts more as an axis of time rather than space. Because my body is in the time zone of zero — stillness — I was wondering "what kind of time it is when zero is expanded within this stillness showing in slow motion?". In fact, it is eternity. We can see the three different temporalities — my body as the extended point of zero (in the zone of zero); the time of the people who are walking in the street (in slow motion); and the time of the audience who watch the relation of these (in real time), and how they coexist and relate to each other.
Ryu: Most of the places that were mentioned earlier, posess a historic sense of place like Patan, Nepal and Havana, Cuba. In the case of A Lighthouse Woman, you wrapped the lighthouse of Morris Island, Charleston, with various colored lights. In this way I discovered that Charleston, the capitol of South Carolina, was where the United States Civil War began. In other works, there are cities whose sense of place oddly has an alternating point of life and death, too, like the sense of place of the bottari and the bedcover. Also there is a feeling of a certain significance in the sense of place of Earth-Water-Fire-Air. Is there a reason you chose Lanzarote, the volcanic island in the Canary Islands, Spain, and the volcano in Guatemala?
Kimsooja: Surely an invitation from Lanzarote Contemporary Art Museum and a subsequent visit to Lanzarote Biennale, 2009, served as momentum, but I had been dreaming of a project about the four elements of nature for years, so I explored this exceptional location without hesitation. Looking back on it now, the choice of the place where the fire — the lifeforce of the volcano — is completely extinguished, is more meaningful when considering that the extinct volcano was the nirvana of nature.
Ryu: I had a funny experience earlier when I was looking at the work. When you look at a video work, the lens of the projector sometimes gets covered by a viewer, and a shadow appears on the screen. So by approaching the work closely, my shadow rose in the middle of the sea waves.
Kimsooja: In fact when I screen A Needle Woman or A Laundry Woman, from time to time audiences overlap their bodies on the screen by standing in front of the work. When viewers are watching my back on the screen, at some point my figure is removed, and they replace my body — and my point of view — with their own. It's like the magic of foreshortening. For me, what the multilayered point of sight in A Needle Woman suggests is very interesting. I sometimes see that the different perspectives of A Needle Woman affects the audiences' point of view in analyzing a photographic or videographic image in term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artist, the subject and the viewer, by establishing three different perspectives which is an approach that hasn't been examined or discussed before in photography and video or film making.
Ryu: All eight titles of each work in Earth-Water-Fire-Air are metaphoric. They are different from common titles. For example, the title of the video of the sea of waves is not waves of ocean but Earth of Water. So I studied it carefully, and could see then that the waves looked like a mountain on Earth if I looked at the water in the ocean as a landscape. Was that your intention?
Kimsooja: As I looked at it, water has the element of fire, as well as air and earth, and earth has the elements of fire, water and air as well. Therefore, each element circulates and connects to the others. In the process of looking at them as four separate elements, I intended to reveal that they cannot stand alone and are leaning on each other as humans. As a method of addressing their connectivity and internal dynamics, as a means of defining the element of earth in water, I also looked at the relationship of fire and air by switching them (Air of Fire). When permutated the combinations are 16, and when two elements in each pair are alternated there can be as many as 32 combinations. In other words, this can be considered as a starting point for trying to contemplate the four elements. In that sense, the work comes from feeling the power and weakness of nature; understanding that in the end, each of the elements are one and unified within our body. This led me to ask: what is the humanity of fire, or what is the humanity in water, earth and air? The work contains these questions based on the unifying principle that humans and nature are, after all, one. Notably, when confronted with the lava, which becomes stone and falls apart in reality, I witnessed the boiling magma spurting out from deep in the Earth, running and becoming the lava stone; soon after turning into dust. Stepping on the hot ground and feeling the heat while working on a plateau 3000 meters high, I realized that the ground that we all walk on is a hot, breathing, physical organism. In the disappearance of the heat, a tableau vivant was created, and as that occurred, I had the opportunity to recognize one by one all the elements of nature: from the small lava stone that evaporates into dust, into 'nothing'; just like human destiny.
Ryu: In one of the works, a car is driving through a dark place and shining a flashlight on and off so that only the place where the light is on can be seen and vanished again. At first I was wondering what that was, but soon I found out the scene centered on the volcano and was lit and shot in the place where the flashlight you lit towards the landscape from the car. The thing that appears and disappears is made from the cooled down lava (a fireball of lust) spewed from the volcano. In the video, I could feel the brevity in which every human must turn to ashes. Lastly, for the audience, may I ask how you would like them to appreciate the work?
Kimsooja: Well, rather than mentioning how to question, I would like to say that I want to observe, and share this with you. With a question for the endless pictorial journey, I want to ask once again the first and the last question: what is the matter that this life is made of?
─ This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in Korean in Art in Culture magazine, February 2010. English translation was published in Art in Asia magazine, June, 2013.
류병학 (미술평론가)
2010
류병학
2010년 새해 벽두, 오랜만에 국내 개인전을 열게 된 것을 축하 합니다. 이번 개인전은 로댕갤러리 개인전 이후 10년 만에 개최되는 국내 개인 전이죠. 당시 전시 제목이 <김수자: 세상을 엮는 바늘>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 다. 일명 <보따리> 작업들과 <보따리 트럭> <바늘 여인> <빨래하는 여인> 등, 우 리가 익히 알고 있는 선생의 작업들을 총망라한 대대적인 전시였죠. 이번엔 <지수화풍(風)>으로 돌아오셨군요. <지수화풍>은 스페인의 화산섬인 카나리아제도와 과테말라의 파카야 화산 풍경을 담았다고 들었습니다.
김수자
이번 전시에서 <지수화풍>이라는 제목을 붙였지만, 사실 저는 전시 제목을 한글로 쓰지 않고
류병학
사실 이 영상 작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보따리>나 <바늘 여인> 작업과는 표면적으로 보기에 언뜻 다르다고 느낄 만합니다. 그래서 신작을 설명하기 전 에 이전 작업에서 어떠한 발자취를 거쳐 왔는지 차근차근 밟아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번 신작을 너무 일반적으로 이해하지 않기 위해서죠.
김수자
<보따리> <바늘 여인> 같이 '인간'을 다룬 작업만을 본 사람들은 이번 신작을 보고 '자연'만을 주제로 다룬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2000년도부터 '보따리'라는 제목 아래 일련의 자연을 감싸는 비디오 작업들을 진행했으나 국내에서 선보일 기회가 없었죠. '인간과 자연'이라는 주제는 제 작업에서 처음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바늘과 천의 관계, 말하자면 천이 자연으로 전개가 되고 바늘은 몸으로 전개되었다고 봅니다. 또한 천과 바늘의 관계가 천을 통한 자연에의 성찰, 바늘을 통한 인간의 성찰, 즉, 내 몸을 통한 인류애의 성찰로 전개되었기에 결국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천안(天眼)에 자연의 요소가 이미 있었고, 몸과 손과 마음의 연장으로서의 바늘에 인간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류병학
동감합니다. 사실 10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라고는 하지만, 그 10년이라는 국내에서의 공백 기간은 한편으로 해외에서 바쁜 일정 속에 새로운 작업을 꾸 준히 선보여 온 시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그 과정을 조명해 봐야 선생의 작업을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말꼬를 트기 위해서 <보따 리> 작업의 시작 동기에 대해서 짚어 보죠. 1990년대 중반쯤 이런 얘기를 하셨 죠 "보따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내 주위에도 항상 있었다.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1992년 P.S. 1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던 중, 우연히 고개를 돌린 순간 거기에 보따리가 보였다. 천 작업을 하려고 보따리를 싸 놓은 것을 나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 그 보따리는 전혀 새로운 보따리였다.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조각이었고 회화였다. 그래서 단순히 묶는 행위를 통해서 2차원을 3차원화할 수 있는 가능성, 즉 회화적 방법을 연출할 수 있었고 또한 볼륨있는 조각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내용을 보자 면, 이미 보따리가 하나의 조각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인데, 그런 측면 에서 선생의 보따리 작업은 일종의 '레디메이드'라고 볼 수 있겠군요.
김수자
네. 레디메이드(Ready-made)이자, 레디유즈드(Ready-used), 페인팅이 자조각, 그리고 삶의 궤적의 양면성을 드러내면서 통시적 시간성을 가진 오브제로 보죠. 저에게는 하나의 화두이지만, 한국인의 일상 속에 함몰되어 있는 오브제이기 때문에 제 작업이 한국에서 이해되기가 더 어려웠을지도 모르죠. 물론,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세계를 최소한의 행위로 제시하면서 새롭게 인식 하고 문맥화하는 것이 제 작업이기도 하고요. 사실 초기에 P.S. 1에서 발견한 보따리는 보다 더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보따리라고 봅니다. '천'이라는 2차원 의 평면(Tableau)이 단순히 '묶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서 3차원의 오브제이자 조각이 되는 변형(Transformation)의 순간에 주목했던 것이죠. 이후에 뉴욕 뉴뮤지엄이나 이세아트파운데이션에서도 <보따리> 설치를 선보였지만, 한 국으로 돌아와 개인전 준비를 할 즈음에는 제 시각에 변화가 생겼어요. 한국 사회를 재인식하게 됐고, 여성이자 여성작가로서, 그리고 합리적인 세계를 경 험한 사람으로서 우리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이미 달라져 있었어요. 즉 그 보따리는 단지 미학적이고 형식적인(Formalistic) 보따리가 아니라, 우리 삶의 리얼리티(Reality)라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그때부터는 색색의 천 조각이 아닌 출처를 모르는 헌 옷들을 넣어서 보따리를 만들었고, 보다 더 '인간과 삶을 싼다' 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류병학
1990년대 말 선생의 작업을 보면서 그 형식적 측면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분명 레디메이드지만, 뒤샹의 레디메이드와는 다른 점이 있죠. 뒤샹은 '소변기' (일상품)을 '샘' (작품)으로 박제시킨 반면, '보따리' 작품은 일상 품과 작품 사이를 왕복합니다. 선생은 '일상품' 보따리를 작품 보따리로 전이시키고, 일정 전시 기간이 지나면 작품이 해체되어 다시 일상품으로 돌아가 고 그 '일상품 보따리는 다시 다른 형태의 '작품'으로 나타납니다. 1990년대 내내 선생의 전시 내용은 보따리를 싸서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펼치고, 그러면 서 '이동성이 강조되죠. 뒤샹의 레디메이드 후계자들을 예로 들자면, 칼 앙드 레의 벽돌 작업
김수자
천이 가진 자연의 속성인 가변성 때문에 제 작업이 확대되고 또 극복될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류병학
1994년 이후 작업에서 특히 '이불보를 많이 사용하셨죠.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이불보는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아우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 상징적인 내용이 바로 '장소성'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수자
사실 제가 <보따리> 작업을 할 때 보통 많은 사람들이 보자기로 보따리를 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저는 이불보, 그 중에서도 한국의 전통적인 신혼부부 이불보 중 버려진 것들로 보따리를 싼 것입니다. 즉, 기능과 특정 의미가 공존하는 오브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불보란 우리가 태어나서 사랑하고 꿈꾸고 고뇌하다가 죽어가는 장소'라는 점에서 말이죠. 즉 우리 삶의 프레임(Frame)입 니다. 그 프레임에 대해 또 하나 형식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사랑 장수 수복 다산 등 평생 동안의 우리 삶의 기원들이 이불에 자수로 새겨져 있는데, 어쩌면 그 화려한 이불보의 기원과 축제적인 요소들이 우리 삶의 리얼리티와는 모순된다 고도 볼 수 있죠. 그래서 이불보가 펼쳐졌을 때 그것이 하나의 타블로 (Tableau)이자, 부부 성(Sex), 그리고 정착 가정 휴식 등의 의미를 내포하며 2차원적인 평면으로서의 장소성을 갖는다면, 보따리로 묶이는 순간에는 그 정반대의 컨텍스트를 가지게 되죠. 즉, 이동 이별 이주 분리 등 말입니다. 즉 보따리를 싼 이불보(Tableau)는 삶과 예술의 형식과 내용의 양면성을 결정하는 하나의 경계(Boundary)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류병학
2002년 휘트니비엔날레에서 센트럴파크에 있는 카페에 설치한 작업 말입니다. 당시 이불보를 테이블보로 사용했잖아요. 현지인들은 그게 이불보라는 것을 알았나요?
김수자
제가 작업에 대한 설명을 달지 않았더라면 몰랐겠죠. 사실 그 작업은 에딘버러의 프룻마켓 갤러리에서 1995년에 처음 선보인 다음, 1996년 마니페스타1, 1998년 일본, 그리고 휘트니비엔날레에서 네 번째로 선보인 겁니다. 물론 각각의 컨텍스트는 달랐지만요. 당시 '보따리를 펼친다'는 것의 의미는 일련의 보 따리 작업 이후에 그것이 다시 캔버스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불보를 다시 캔버스로 되돌려,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비물질적인 방법(마 음)으로 감싼다는 개념입니다. 보따리를 펼쳐서 하나의 타블로로 만듦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들을 타블로 안에 끌어들이는 거죠. 이를테면 카페에서의 사람들의 만남, 대화, 음식을 나누고 음악을 듣는 이 모든 소통 행위들을 '보이지 않게 감싼다' (Iinvisible Wrapping)는 개념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그 작업에서 나타난 비물질적인 요소들이 일련의 비디오 작업과 2006년 스페인 크리스탈 팔라스에서 선보인 <호흡: 거울 여인>과도 연계된다고 할 수 있어요. 크리스탈 팔라스 작업에서 건물 바닥 전체에 거울을 깔아 펼쳐진 바늘로서의 거울의 허 상과 실상의 바느질을 시도했고, 특수 필름을 건물 유리창 표면 전체에 부착하여 빛이 투과할 때 생기는 무지개 스펙트럼을 외부 공간에서 내부 공간으로 끌어들였어요. 또 삶과 죽음의 매 순간을 의미하는 저의 호흡 퍼포먼스 사운드를 설치하여 모든 요소를 일체화했습니다. 건축의 '허(Void)'의 공간을 건물의 피 부까지 밀어내어 그 건축물 자체의 구조와 거울의 양면성, 호흡의 양면성, 그리고 안과 밖의 양면성을 빛과 소리의 보따리로 제시함으로써 보따리의 비물질성을 극대화한 작업입니다.
류병학
그렇군요. 저는 선생이 카페 테이블에 이불보를 깐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고, 어느 도록에 실린 것을 봤거든요. 그때 보고 참 쇼킹했어요.
김수자
도발적이라고 생각하셨나요?(웃음)
류병학
왜냐하면 특히 작업에서 신혼부부 이불보를 썼다고 하셨는데, 이불보라는게 특성상 신혼부부의 '잠자리'가 바로 연상되는데, 사람의 자연적 욕구로 보 자면 식욕과 성욕이 있잖아요. 그 두 가지가 여기서 딱 맞아 떨어지는 거예요. 과연 외국에서도 이게 이불보라는 것을 알았을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 했어요.
김수자
처음에 에딘버러에서 전시했을 때 갤러리의 스텝이 와서 보고는 "You are Brave"라고 하더군요.(웃음) 이 작업은 어떻게 보면 도발적인 행위이지만, 한 편으로는 매우 수동적인 형태로 제시된 것으로 볼 수 있죠. 한국의 이불보 자체 가 자수도 섬세하면서 굉장히 화려하고, 오래되어 아름답게 낡은 것들도 많아 서 눈길을 끌기도 했어요. 물론 제가 주목하는 진정한 작업의 의미는 그 이불보의 문화적 미학적 가치에만 있는 것은 아니죠.
"인간과 자연'이라는 주제는 제 작업에서 처음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바늘과 천의 관계, 말하자면 천이 자연으로 전개가 되고 바늘은 몸으 로 전개되었다고 봅니다. 또한 천과 바늘의 관계가 천을 통한 자연에 의 성찰, 바늘을 통한 인간에의 성찰, 즉 내 몸을 통한 인류의 성찰 로 전개되었기에 결국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류병학
이렇게 2000년 로댕갤러리 개인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보따리> 작업들을 다양한 형태로 작업을 진행해 왔죠.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보따리 안의 내용 물들, 헌옷들을 산에 풀어 놓았구요. 인천 용유도에서 설치 작업을 한 후 사진 으로 남긴 것도 있고요.
김수자
보따리 작업과 이불보를 펼치는 작업은 대개가 재활용된 것이에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작업들이 컬렉션이 안됐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제 작업에 있어 결정성'이라고 할까요, 'Finish'의 개념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옳 습니다.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보따리를 싸는 행위는 항상 형태의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늘 하나의 과정으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류병학
아까 나온 레디메이드에 대한 이야기로 다음 질문을 연결하고 싶습니다. 아 까 예로 든 작가들도 그렇듯, 레디메이드 작품이 알고 보면 다 공산품이에요. 공산품이 아닌 레디메이드가 나온 게 2000년도에요. 기욤 바일이라는 작가가 슈퍼마켓을 전시장에 옮겨 놓아 농산품을 처음 사용했고, 이후에 주목 받은 데 미안 허스트의 경우 상어처럼 수산품을 레디메이드로 쓴 거죠. 허스트가 그 다 음엔 해부학 모형을 크게 확대시켜 만들더니, 최근에는 다이아몬드로 해골을 만드는 것을 보고 '인간'을 레디메이드로 삼고 싶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사 실 '인간' 도 레디메이드잖아요. 선생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더군요. "아 티스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것 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게 아티스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가 어떤 물건을 사용했을 때는 그 물건을 사용한 사람의 삶을 사용하기 위해서 다"라고 말이죠. 제가 느낀 점은 이제 선생 자신이 레디메이드로 자리매김되면서 <바늘 여인>과 같은 영상작품이 나오게 된 게 아닌가 하고 연관지어 봤어요. 들뢰즈의 '~되기' 라는 말이 있듯, 선생의 작업이 바늘 여인되기' 빨래하는 여인되기' 그런 식으로 보이더군요. <바늘 여인> 작업은 1999년 일본 도쿄에서 시작한 작업으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요?
김수자
1999년 CCA 기타큐슈에서 제작 의뢰를 받았을 때, 무언가 퍼포머티브한 작업을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는 제가 뉴욕에 가서 살던 첫 해로, 나 자신이 삶의 벼랑 끝에 위치한 상태였고 정신적으로도 매우 첨예한 상태 를 유지하던 때였습니다. 그렇기에 제 몸에 대해 더욱 예민하게 인식하고 주목 하면서 '외로움'(Isolation) '자아'(Self) '타자'(Others)와 같은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죠. 원래는 '워킹(walking) 퍼포먼스'를 생각해서 무언가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가 나오길 기다리며 수 시간 동안 도쿄 시내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부야에 도착한 순간 수십 만 명의 인파가 밀려 오고 밀려 나가는 그 길 위에서 저는 더 이상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순간을 경험했어요. 선불교에서 '악!' 소리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야말로 정말 가슴 속에서 '악!' 소 리를 지르며 꼼짝없이 서서 발을 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그 자리에 부동의 자 세로 서게 되면서 비로소 걷는 행위의 의미, 말하자면 걷는 행위의 시간성을 통해 나 자신의 몸이라는 보따리에 싸여 누적된 모든 인파와 내 몸의 관계성을 이 해하게 된 것이었죠. 그 장소가 바로 첫 <바늘 여인> 작업으로 설정된 것입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퍼포먼스를 시작했고, 카메라맨에게 제 뒷모습을 기록해 달라고 한 후 그 자리에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서 있겠다고 했어요. 그 때 가 저에게는 가장 특별한 퍼포먼스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마음의 평정과 중심을 얻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어요. 수많은 인파의 에너 지를 한 몸으로 받고 감싸며 대항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몰입의 상태에 다 다르면서 내가 싸고 엮으며 관계 지으려 했던 의도와는 정 반대의 현상이 벌어 지더군요. 그들로부터 아득히 멀어지면서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거기서 완전한 해방을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엔 끝없는 평화의 미소가 절로 스며 나오고, 내 가슴은 인류애의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죠. 그 수많은 인 파의 물결 너머, 인파의 수평선 너머로 후광 처럼 떠오르는 흰 빛을 봤어요. 그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면서 '세상의 모든 인류를 한 사람 한 사람 만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각 대륙의 8개 대도시를 방문하면서 <바늘 여인> 프로젝트를 이어갔습니다.
류병학
그 8개 도시가 도쿄 상하이 델리 뉴욕 카이로 라고스 런던이었죠. 그 후에도 다른 도시들, 네팔의 파탄, 쿠바의 하바나,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차드의 은자메나, 예멘의 사나와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이어진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수자
<바늘 여인>의 두 번째 시리즈입니다. 사실 첫 번째 <바늘 여인> 시리즈에서 는 내 몸이 어떤 '공간의 축'으로 위치했다면, 2005년 두 번째 작업은 앞서 8 개의 대도시를 돌아다니고 세계를 경험한 이후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첨예한 갈등과 문제에 봉착해 있는 도시들을 찾아 내 몸을 '시간의 축'으로 제시하며 인류의 보편적 휴머니티를 찾고자 했습니다. 특히 네팔의 파탄은 방문 당시 내전 중이어서 수많은 총성을 들으며 작업을 진행했어요. 이 작업들 은 첫 번째와 달리 리얼타임이 아닌 슬로우 모션으로 제작했어요. 그래서 첫 번째 버전에서 내 몸의 퍼포먼스적인 측면이 부각된다면 두 번째 버전은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성이 더 드러나지요. 시간과 시간의 교차, 몸과 몸의 부딪힘, 정신의 교감의 통로가 더 드러나고 내 몸이 공간보다는 시간의 축으로서 더 작용을 하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내 몸은 부동성(Stillness)이라 는 제로(Zero)의 시간의 영역(Zone)에 있고, 그 제로를 슬로우 모션으로 확장 했을 때 그것은 과연 어떤 시간인지를 탐구하게 된 것이니까요. 연장된 제로의 포인트인 내 몸(Zone of Zero)에서, 화면 속에서 걷는 이들의 시간(Slow Mode), 그리고 이것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간(Real Time), 이렇게 3 자의 서로 다른 시간성이 공존하며 관계 맺어가는 것을 볼 수 있죠.
류병학
<바늘 여인>의 뒷모습은 흥미롭게도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낀 바다를 건너는 방랑자>(1818)의 뒷모습 풍경화를 연상시키는데요. 그렇게 수많은 인파가 눈 앞에서 밀려오는 것을 마주하는 순간에서는 과연 무슨 생각이 들 까 너무 궁금해요. 저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 것 같은데 말이죠. 말씀 중에 앞에 빛이 보였다고 했는데 그것은 완전히 평정심을 얻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김수자
<바늘 여인>이나 <빨래하는 여인>을 프리드리히의 작품과 연관시켜서 해석 하는 이론가들이 서구에 꽤 있었죠. 프리드리히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어느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과 제 작업을 나란히 놓겠다고 제 작품을 컬렉션한 적도 있어요. 흥미로운 관점이지만 정신 세계나 작업 의도는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인도 델리의 무나강 옆의 화장터를 방문한 후 강가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던 중 문득 어떤 에너지가 느껴져서 잠깐 차에서 내려 강둑으로 내려간 적이 있어요. 그 강물이 흐르는 장면을 본 순간 '여기다 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퍼포먼스를 한 것이 바로 영상 <빨래하는 여인>이 되었죠. '장소성' 에 있어 계속되는 이야기지만, 저는 그 장소에서 어떤 특별한 에너지를 느껴야 만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에너지를 느끼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되지만 말이죠. 그러다가 어떤 에너지가 느껴졌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서슴없 이 작업을 하게 됩니다. <빨래하는 여인> 퍼포먼스를 할 때는 내 몸을 비껴가며 흘러 떠내려가는 야무나 화장터의 부유물들, 삶과 죽음, 생명의 무상함과 그 에 대한 연민, 그리고 내적으로는 나 자신과 주검의 정화 예식을 하던 중 굉장 한 혼란에 빠지기도 했어요. 강을 바라보면서 과연 흐르는 것은 강인가 나인가 하는 혼란 말이죠.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깨닫게 됐습니다. 강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흐르고 있는 것은 사실 가장 부동의 자세로 확고히 서 있는 나 자신 임을 말입니다. 내 몸이야말로 정말 흘러가고 사라질 것이라는 자각 말이죠.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떻게 내가 그렇게까지 혼란을 느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제가 생각한 답은 내가 너무나도 집중했기 때문에 그 집중이 마치 바늘 끝과 같았다는 거죠. 그 집중의 중심에는 경계가 없어요. 바늘은 위치만 있을 뿐 어떤 대상화될 수 있는 물질적 흔적이 없는 거예요. 바 늘 중심으로부터 세계는 끝없이 확장되어 있고 동시에 축소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떤 경계도 기준도 없습니다. 안과 밖이 공존하는 시점에서 제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류병학
제가 보통 '집중'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몰입' 이거든요. 그만큼 거기에 빠지는 건가요?
김수자
빠지기보다는 어떤 '상태'라고 보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가장 중립적인 상태라고 할까요. 사실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집중하지 않은 상태죠. 집중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평정을 향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각 원소들은 서로 순환하고 연계되는 관계입니다. 그것을 4가지 원 소로 각기 바라보는 과정에서 각 원소들의 '홀로 설 수 없음, 기대어 있음'을 드러내 보고자 했습니다. 결국 그 각각의 요소가 '하나' 이고 결국 우리 '몸'과 일치한다는 것, 또 자연의 힘과 그 연약함을 늘 느 끼면서 작업했습니다.”
류병학
앞서 언급한 네팔의 파탄, 쿠바의 하바나 등 대부분 역사의 장소성을 내포한 곳들이 등장합니다. <등대 여인>의 경우, 찰스턴의 모리스섬 등대를 다양한 색 상의 빛으로 감쌌죠. 알고 보니 찰스턴은 미국 남북전쟁의 발발지인 사우스 캐 롤라이나의 수도입니다. 그 외의 작업도 그 장소성이 보따리나 이불보의 장소 성처럼 묘하게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지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번 신작의 장소성 역시 어떤 의미심장한 내용이 느껴집니다. 왜 스페인의 화산섬인 카나리제도의 란자로테 섬과 과테말라의 화산을 선택한 건지요?
김수자
물론 제가 란자로테 비엔날레에 초대되어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되기도 했지 만, 몇 년간 자연의 4원소에 관한 작업을 꿈꾸고 있었기에 그 특별한 땅을 주저 없이 탐색하게 됐어요. 지금 생각하니 화산의 생명줄인 '불'이 완전히 소멸한 장소를 선택한 것이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화산이 바로 자연의 '니르바나(Nirvana)였다는 자각 때문이죠.
류병학
이번 <자수화풍>이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선생 작품의 형식과 조금 다르다 는 점에서, 감상하는 데 있어 당황스러운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이전 비디오 작업의 경우는 '인파와 작가' 라는 관계성이 형성되기 때문에 보는 이가 어떤 드라마를 형성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관객 스스로가 드라마를 형성해야 하는 상황이니 조금 난감할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는 이번 작품을 보면서 거기에 선생의 뒷모습 만 없을 뿐이지 여전히 지난 작업과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의 뒷모습이나, 바로 관객으로 바뀐 것이라고 말이죠.
김수자
사실 제가 등장하지 않고 <바늘 여인>과 똑같은 형식으로 지나가는 인파를 촬 영한 <Sewing into Walking─Istanbul〉(1998)이라는 비디오 작업이 있었어요. 카메라가 제 몸을 대신하고, 카메라 렌즈가 제 눈을 대신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고정된 프레임으로 인파가 오가는 장면을 20, 30분간 담고 하나는 거 리의 소리를, 또 하나는 티벳 승려들의 독경을 담아 두 개의 채널로 제작한 작업 입니다. 이번 작업에서 사람이 부재하는 것은
류병학
아까 작품을 바라보다가 재미있는 체험을 했는데, 보통 영상 작업을 볼 때 프로젝터의 렌즈 부분을 가리면 관객의 그림자가 화면에 생기잖아요. 작품 쪽으로 가까이 가다보니 제 그림자가 바다의 물결 한가운데에 생기더군요.
김수자
사실 제가 <바늘 여인>이나 <빨래하는 여인>을 상영하면, 관객들이 자주 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오버랩해 보곤 합니다. 제 뒷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제 모습이 걷히면서 제 등을 바라보는 자리가 아닌, 내 몸에 관객의 몸을 대입해 나의 시점으로 한걸음 다가가게 되죠. 마치 축지법을 쓰듯이 말이죠. 저로서는 <바늘 여인>의 다층적 시점이 시사하는 바가 의미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관객이 기존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점이 <바늘 여인> 이전의 태도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이지요.
류병학
<지수화풍>의 총 7점의 작품 제목이 전부 은유적이에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짓는 제목과는 다르죠. 이를테면 물결이 치는 바다를 촬영한 영상의 제목은 <바다의 파도>가 아닌 <물의 대지>입니다. 그래서 유심히 바라보다 보니, 만일 바다 장면에서 물을 땅으로 본다면 파도의 물결이 마치 땅 위의 산이라는 풍경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의도한 건가요.
김수자
그렇게 바라봤죠. 물은 불의 요소를 가지고 있고 땅이 불과 물 공기의 요소를 가지고 있듯이, 각 원소들은 서로 순환하고 연계되는 관계입니다. 그것을 4 가지 원소로 각기 보는 과정에서 각 원소들의 '홀로 설 수 없음, 기대어 있음'을 드러내 보고자 했습니다. 그것들의 연계성, 내적인 역동성에 제 나름대로 주목하려는 방식, 이를 테면 물에서 땅의 요소를 주목한다는 의미에서 타이틀 을 <물의 땅>로 명명했죠. 대지를 해질녘에 촬영한 것은 땅을 하나의 물의 속성 으로 바라보고 <땅의 물>), 또 불과 공기의 관계를 치환해서도 바라봤어요. <<불의 공기>>. 이 4가지 요소는 사실 순열 조합하면 16개의 관계성이 나오는데 각기 두 가지의 요소가 엇물려 있으므로 32개의 각기 다른 조합이 가능하다고 봐야겠죠. 말하자면 그 4원소에 대한 사색을 시도하는 하나의 출발점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결국 그 각각의 요소가 하나' 이고 결국 우리 '몸'과 일치한다는 것, 또 자연의 힘과 그 연약함을 늘 느끼면서 작업을 했죠. 불 속에 있는 인간성, 즉 물속, 땅 속, 그리고 공기 속에 있는 인간 성 그것은 과연 무엇인가, 결국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일체성을 근간으로 한 질문들을 담고 있어요. 특히 화산 용암이 돌이 되어 떨어지는 모습을 실제로 마주한 채로, 펄펄 끓는 용암이 땅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온 다음 흘러 화석 이 되고 먼지가 되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3000m 고지에서 그 뜨거운 땅을 밟고 열기를 느끼며 작업을 하면서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자체가 너무나도 뜨거운 숨 쉬는 생명체라는 것을 몸소 느꼈죠. 그 열기의 스러짐이 자연이 그리는 극적인 장면(Tableau Vivant)을 연출하는 동시에 작은 화산석 하나에서 먼지 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자연 요소들을 각기 하나 하나의 생명체로 재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류병학
한 작품은 온통 칠흙처럼 캄캄한 곳을 달리는 자동차에서 손전등을 비추어 빛이 비추는 부분만 보였다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곤 합니다. 처음에는 그것 이 무엇일까 궁금했지만 곧 그 풍경이 화산을 중심으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빚을 비추는 곳을 촬영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그것은 바로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용암(욕망의 불덩어리)이 식어서 만들어진 것이었구요. 그 영상에서 '모든 인간은 재로 돌아간다' 는 무상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Art in culture 독자를 위해서 이번 신작을 어떻게 봐주면 좋겠다고 한 말씀 부탁합니다.
김수자
글쎄요. 어떻게 봐달라고 주문하기보다 저는 '이것을 같이 보고, 질문하고, 나누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끝없는 회화적 여정으로의 질문과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 질문인 '생명'의 문제에 대해서도 재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 This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in Korean in Art in Culture magazine, February 2010. English translation was published in Art in Asia magazine, June, 2013.
2010
You see nature’s landscapes as they are, unscathed by civilization; and the mingling of water, fire and air in volcano strata. They are the moments of the beginnings of the universe, and at the same time, aged appearances of the ae ons of endurance. We realize we cannot fathom the age of nature, because nature is not a “paused” scene; it is a living organ- ism that ceaselessly flows and changes in and out of different states and forms. Nature as we perceive with our senses, and a mystical world beyond such sensory perceptions, are in fact adjacent to each other; and from this, the artist explores the meaning of “Earth-Water-Fire-Air”.
This is Kimsooja’s first exhibition show back in her home country since 2000 at Rodin Gallery. What is being exhibited – these site-specific installations – are some of the most essential focal points that she has dealt with while she travelled extensively for 10 years and carried out many different art projects. Strangely enough, in contrary to her epithet, <Bottari [1] Artist>, the current installation does not contain any of her gaudy trademark bottari cloth, crowds of people, nor the back of herself – what the artist has explained to be the vanishing point of her ego. Instead, scenes from nature are presented. They are something strange, undecipherable; they are squirming underneath a surface. Many con- temporary artists nowadays deal with issues of the urban lifestyle, the fragmented identities, social relationships arising from them and their antimonies working against them. But what Kimsooja pays attention is instead ancient nature, and furthermore, the basic elements comprising the nature, both of which are far off the mark of the context of con- temporary art. She has shown a compassionate gaze at these aspects of contemporaneous life before, but this time, she sheds a new light on such life through the primary elements of nature; and they are always seemingly standing on the opposite of our lives. It would not be inadequate to interpret that the psychic energy that the artist felt when she sewed goes hand in hand with nature’s earth, water, fire and air. We find a consistent flow that passes from life to nature and the consequent collusion of the two.
One day in 1983, university painting major Kimsooja was sewing together with her mother duvet cover onto the mattress [2] when she all of a sudden felt a moment so special that she has cherished it all her life. At the moment when the needle poked through the duvet cover, some kind of electric energy from the tip of the needle penetrated and pervaded through her entire body. What could be called a dramatic encounter with the needle was in fact the passage to the answer to the question on the surface of the canvas that Kimsooja was looking for: it was the answer to the depth and structure of the surface, the world, and the void beyond it. In her early sewing pieces and Deductive Object Series, she mostly made use of sewing and wrapping fabrics around the objects that conveyed verticality of the needle upon the horizontal flatness of the fabric and the structure of the objects. She tries to find structure and the underside of it by the symbolic action of sewing: her artwork, Sewing Into Walking, adopted her ‘walking’ to places; whereas in , she became the ‘needle’ as she stands still against the wave of people walking towards her; faces nature, with her back to the viewer. She says that she turns herself over as a needle between one person and another, between people and nature, mediating between them as her own body becomes the “vanishing point” of it all. What this means is that when the needles disappears behind the fabric, it is as if she, the medium for relationships and communication, vanishes into people and nature, and subsequently because she has her back to the viewers, she becomes the “avatar of the others”, resulting in the extinction of the self and identity.
The artist further developed her theme, which is the unification with the others by the dissolution of the self, by the use of mirrors, objects that are of equal symbolic importance to needles. Her needle works focused upon the structure of human relations and their healing via stitching, while mirrors, through the mechanism of reflection, would momentously lead her to deal with the nature that is opposite side to the humans. The first time she used a mirror was in the 1999 Venice Biennale. At the end of the Arsenale, there standing still was a truck loaded full of bottari; and in front of the truck, she installed a large mirror and in turn created an imaginary road that the truck can drive onto, and at the same time, exuded the ambience of space being wrapped around with something. In 2002, she started the Series. Just as the mirror cannot be reflected by itself, so she also cannot find herself reflected upon mirrors, thus she identifies herself as an object of
It is inevitable that after observing all the different types of human lives, civilizations and the beyond in the corners of the world, Kimsooja’s path found itself crossing nature’s fundamentals, that is, earth, water, fire and air. These four elements, including yin and yang, are the ‘rhizomes’ of the universe. They have been considered to be part of the 115 elements that made up the world since the Enlightenment Age; this is in conjunction to the philosophy of the Oriental, where it is believed that 5 elements are the most important make ups – gold, water, wood, fire and earth. In Buddhism, it is believed that earth, water, fire, wind and air are the roots. As the Western philosophical tradition explained in 6 BC by Empedocles, just like there are four seasons, four stages of life (childhood, adolescence, adulthood and old age), or four directions (north, south, east and west), there are four spheres of material (earth, water, fire and air). The synthesis and exchange of the four indestructible and unchangeable elements are brought together through philia and neikos, that is, Love and Strife. This power relationship between energy and the material can be compared to the Oriental’s yin and yang. Moreover, this is also the story of eternal recurrence (ewige wiederkunft, Nietzsche), or Freud’s Eros and Thanatos, that humans are driven by two conflicting central desires. Kimsooja’s brings her works under the spotlight: firstly, the place is where the material nature meets intimately with human nature. Secondly, she embraces and grasps human nature vis-à-vis nature as they are in fact, one.
The video installations which filmed the dormant volcanoes located at Lanzarote in the Canary Islands and Pacaya volcano in Guatemala, comprise of six separate video scenes. They were all fortuitously captured by the camera, that is, from the moving car, between stops during the walk. The random, incidental scenes of landscape happened to have caught the artist’s eyes. One wonders whether it is possible to hold the nature’s principality within the frame in accordance with the intended image map, and capture it even as the symbolic body of such as made. Should it be an impossible mission, the artist could only opt for presenting the video images as that of road signs indicative of what is beyond the framed images. Still it falls on to an artist’s scope how the coincidental images would be arranged, and by summoning up the primary elements beyond the images, thus constructing the thoughtful relevance among the works, the seemingly contradictory concept of Empedocles’ is realized; the inevitability of contingent occurrences.
The images of the volcanic areas in Lazarote were exhibited in a separate space within the Atelier Hermes. They were video images taken at night in- side a car as it was moving along the road. The artist lit the flashlight towards the darkish landscape, and the landscape in the dark around the dim edges of the circular torch light were thus captured. Through the nocturnal scenes, this work, titled
Another two works
Above the blighting volcano hangs the clear and blue sky. The work is titled,
Kimsooja believes that the foundation of life and the principle elements of nature are not as they are visually seen, but lie in the beyond, in the mystic combination of the elements and their hidden meanings. Thus her works pose as a piece of slippery puzzle that is impossible to complete. There are 128 combinations that can occur with the 4 elements; however with circumstantial chance and irregularity, they transcend the limits of the mathematical inference. Instead, as in Bachelard’s “Dreams of the Material”, or the boundlessness of the fully blossoming Mandala – they are of the nature. To Kimsooja, the completion of works means the moment has come when she does not need to create any more works. It will be exciting, until the moment comes, to watch Kim devote herself to other works relating to the release of light and the evolution of life.
[Note]
[1] The Korean word for a “bundle (of belongings).”
[2] In Korea, the duvet cover was sewed onto the actual mattress as bed-frames.
안소연 (삼성미술관 로댕갤러리 학예실장)
2010
문명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광들. 물과 불과 공기가 어우러진 화산의 지층들. 그들은 자연의 태초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수억 년의 세월을 견딘 노쇠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그 자연의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까닭은 그들이 정지한 풍경으로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유동하고 새롭게 생성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이루어내기 때문이다. 감각으로 지각되는 세계, 그러면서도 그 너머의 신비의 세계와 맞닿아 있는 자연의 풍경에서 작가는 ‘흙, 물, 불, 공기: Earth-Water-Fire-Air’란 사원소의 의미를 되새긴다.
2000년 로댕갤러리 전시 이후 첫 귀국전으로 마련된 김수자의 이번 전시는 지난 10년 동안 그가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진행해온 여러 프로젝트들의 가장 근원적인 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더한다. ‘보따리 작가’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화려한 원색의 이불천도 군중들도 그리고 자아의 소실점이라 할 그 자신의 뒷모습도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에게 생경하기만 한 꿈틀대는 자연 풍경만이 제시될 뿐이다. 도시적 삶과 파편화된 자아들, 그들의 사회적 관계와 모순들에 전념하는 현대미술의 지평에서 원시의 자연에 주목하는 일, 더 나아가 그 자연의 구성 원소들을 상기시키겠다는 발상은 현대미술의 문맥에서 한참 동떨어진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동시대인의 삶의 양상에 주목하고 그에 대해 깊은 연민의 시선을 보내온 작가는 우리들 일상의 반대편에 놓인 자연의 구성 원소로써 우리의 삶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그가 처음 바느질을 경험한 사적인 순간과 자연의 흙, 물, 불, 바람의 원소는 이미 맞닿아 있었다고 해야 할 만큼 김수자의 작품세계는 삶으로부터 자연에 이르는 일관된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던 김수자는 1983년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이불보를 꿰매던 일상 속에서 우연히 경험한 매우 특별한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바늘이 천에 꽂히는 순간 바늘 끝을 통해 자신의 온 몸을 관통하던 어떤 에너지를 체감한 것이 바로 그것인데, 바늘과의 극적인 조우라 할 수 있는 이 경험을 계기로 캔버스의 평면에 대한 오랜 질문으로부터 세계의 깊이와 구조, 그 이면의 공허를 향해 나아가는 해답을 찾게 된다. 초기의 천과 바느질 작업이 수평의 평면에 물리적으로 관통하는 수직의 세계를 제시했다면<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그가 걷거나<바느질하여 걷기(Sew
ing into Walking)> 세계 각도시의 군중 속에서 움직임 없이 서있는 작업<바늘 여인(A Needle Woman)>, 뒤돌아서서 자연과 마주한 작업<빨래하는 여인(A Laundry Woman)>에서는 상징적인 바느질 행위를 통해 현실과 그 이면을 시각적으로 꿰뚫어 보고자 했다. 스스로를 바늘로 상정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를 매개하는 행위를 하면서 작가는 스스로의 몸이 ‘소실점’이 된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 말은 천의 표면 뒤로 사라지는 바늘의 끝처럼 관계와 소통의 매개체로서 사람과 자연 속으로 사라지는 자아를, 관객으로 하여금 뒤돌아 선 작가의 몸을 통해 그 앞에 마주한 광경을 경험하게 하는 ‘타인의 아바타’로서의 자아 소멸을 의미한다. 자아의 소멸을 통한 타자와의 일체화는 바늘만큼이나 의미심장한 ‘거울’을 통해 더욱 본격화된다. 바늘이 관계성과 치유에 의미를 두면서 인간적 삶의 구조를 더 직접적인 다루었다면 거울은 ‘반영’이란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적 삶으로부터 그에 상반된 요소인 자연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한다. 김수자가 거울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장의 막다른 벽면에 다다른 보따리 트럭 앞에 전면 거울을 설치함으로써 트럭이 전진할 가상의 도로를 확장하고 후면의 아르세날레 공간 전체를 감싸 안는 시도를 한 작품에서다. 이후 2002년부터 <거울 여인 (A Mirror Woman)> 시리즈를 전개하면서 그는 모든 사물을 비출 수 있지만 자기 자신만은 비출 수 없는 비존재(Non-Being)의 오브제인 거울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다. 작품으로부터 자신의 수행적 이미지를 제거한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이며 대신 작품의 내부에 관객이 휴식하고 명상할 수 있는 장소특정적 건축 공간을 구성하게 된다. 또한 바늘이나 보따리에서 다루었던 이중성의 화합은 상반된 것을 드러내는 상징적 거울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사유된다. 거기에는 자아와 타자, 남성과 여성, 감싸기와 펼침의 세계는 물론 실재와 가상, 정신과 물질, 해와 달, 양과음, 들숨과 날숨과 같이 자연의 원리에 근접하는 요소들이 적극적으로 다루어진다. 예를 들어 <거울 여인> 시리즈 중에서 가장 최근의 영상작업인 <해와 달>(2008)에서 김수자는 바다 수면 위에 드리워진 햇빛과 달빛의 이미지를 포착하고 이클립스로 인한 그 둘의 중첩현상을 다루면서 개념적으로 불가능한 양과 음의 합일을 시각화했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만난 무수한 삶의 파노라마를 목도하면서도 그 너머의 세계를 지향해 온 김수자에게 자연이 피상적인 현상으로서가 아니라 흙, 물, 불, 공기의 근원적 요소로 인식된 점은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이 네 가지 요소는 그의 작품 전 영역을 관통하는 음과 양의 요소와 더불어 ‘세상 만물의 뿌리(Rhizome)’로서 인식된다. 물질로서의 자연의 4원소는 비록 계몽주의 이래 115개 원소의 일부로 파악될 뿐이지만, 사상적으로는 시공을 초월해서 동양의 오행사상(金水木火土)의 근간이 되는 것은 물론, 불교에서 말하는 만물이 생겨나는 다섯 가지 원소(地水火風空)의 핵심이자 서양의 철학적 전통으로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우주를 네 가지 요소로 설명 하려 했던 기원전 6세기의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는자연의 사계절이나 인생의 네 단계(유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동서남북의 4방위 개념과 더불어 물질계를 흙, 불, 불, 공기 사원소의 혼합체로 파악했다. 그에 따르면 이 세상에서 창조되거나 소멸하는 원소는 없으며 다만 네 가지 원소 상호 간의 조합과 교환의 결과물만이 존재하는데, 원소들을 결합하거나 분산하는 것이 사랑(philia)과 증오(neikos)의 힘이라는 것이다. 동양의 음양사상으로도 대체될 수 있는 이 에너지와 물질 간의 역학관계는 세계를 생성과 변화의 역동성으로 이끄는 ‘영원 회귀’의 원동력으로 파악되고(니체) 에로스와 타나토스처럼 인간의 무의식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프로이트). 물질로서의 자연이 인간의 내면과 긴밀하게 다시 만나는 지점. 김수자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을 파악하고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감싸 안으려 시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페인 카나리 군도의 란자로테 섬에 위치한 사화산과 과테말라 파카야 활화산을 촬영해 모두 7개의 독립된 영상으로 구성한 작품들은 대부분 우연의 산물로 포착되었다. 우연히 달리는 차 안에서, 길을 걷다가 걸음을 멈춘 사이 우연히 작가의 시야에 들어온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자연의 근원적인 모습을 프레임 안의 의도된 도상으로, 또는 만들어진 상징체로 포착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것이 불가능한 미션일 때 작가는 프레임 밖의 세계를 향해 열려진 지표로서의 영상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때 우연히 얻은 영상들의 배열이야말로 순전히 작가의 몫으로서 지극히 창의적으로 이미지 너머의 원소들을 호명하고 작품 상호간의 배려깊은 연관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엠페도클레스가 말한 ‘우연의 필연성’이란 모순된 원리를 실현해낸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공간구조상 독립된 방안에 전시된 첫 작품은 란자로테 섬의 화산지대를 어두운 밤중에 자동차로 달리면서 차창 밖 화산섬을 향해 플래쉬를 비춘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 희미하고 둥근 손전등 빛 주위로 달무리처럼 풍경이 서린 광경을 보여준다. <공기의 불>이란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밤’풍경 속 보이지 않는 공간인 허공의 깊이를 가늠하면 서 창조의 근원으로서의 공기에 대해 사유한다. 문명 이전의 어둠과 텅 빈 공간에 대한 은유이면서 인간의 무의식과 상상계에 대한 언급인 이 작품은 다가올 불의 생성을 암시하기도한다. 반면 본 전시장에 들어가 마주하는 <불의 공기>는 거친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연무 위에 떠오르는 놀라운 무지개, 그리고 장엄한 파도소리로 말미암아 가장 관객을 압도하는 작품이다. 드라마틱한 자연의 용틀임에 속에서 보는 이의 피부에 포말이 와 닿을 듯 생생함을 전해주는 이 작품이 불에 관한 사유인 것은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지개를 통해 텅 빈 무의식의 공간에서 태어난 불의 찬란한 욕망과 프로메테우스가 신들로부터 훔쳐온 문명의 기원에 대해, 그리고 상징계의 탄생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준다.
이어진 <흙의 불>과 <흙의 물>은 화산지대를 낮과 저녁시간에 자동차를 달리며 바라 본 풍경으로 첫 작품인 <공기의 불>과 더불어 빛이 풍경의 표면에 닿음으로써 변화하는 공간의 깊이를 탐구한 작품이다. 풍경의 평면에 맞닿은 빛의 바늘의 구조적인 공간 탐색이라고나 할까. 이들이 변모하는 인상을 갖는 것은 모두 부동의 대지를 대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빛과 속도라는 유동적인 요소와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흙의 공기>는 활화산의 불길이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불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여전히 흙에 대한 사유로서 제시된다. 작가와 스텝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불구덩이의 이삼백 미터 근방까지 접근해서 촬영한 이 작품에서 정작 주목되는 것은 이글거리는 불이 아니라 돌덩이들이 타오르는 생명을 소진하다 남기는 재다.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현자(賢者)는 자연이 열반에 드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자 했을까. 만물은 흙으로 회귀하고 그런 흙은 노년과 겨울, 그리고 죽음의 실재계를 떠올리게 한다. 이글거리는 활화산의 머리 위에는 맑고 푸른 하늘이 걸려있다. 역시 역설적이기만 한 <물의 공기>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흙의 공기>와는 불과 물, 땅과 하늘이라는 이중적인 대립항을 형성한다. 그것은 또 만지면 마치 단단한 저항감을 손바닥에 전해줄 것 같은 물결의 움직임을 포착한 <물의 흙>이라는 작품과 서로 비껴서 마주하고 있다. 모든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는 여신으로서 물은 공기의 공허함과 불의 야망, 흙의 비관을 모두 감싸 안으며 새로운 시작과 생명의 기원을 약속한다.
삶의 근원과 자연의 원소들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이면의 의미, 또는 원소들의 신비한 조합에 있다고 믿는 김수자의 작업은 마치 기표와 미끄러지는 기의의 퍼즐 맞추기처럼 완성이 불가능하다. 네 원소의 순열조합은 총 128개지만 그의 작업은 수학적 추론의 한계를 벗어나 우연과 돌연변이가 개입될 수 있는 자연의 순열조합으로서 바슐라르가 주장한 ‘물질의 상상력’까지 더해진다면 무궁무진한 ‘만달라의 만개(滿開)’를 기대할 수 있다. 김수자에게 작업의 완성이란 더이상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 오기까지 어떤 빛의 방출과 어떤 생명의 진화가 전개될 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 This article was published for a review of Kimsooja’s solo exhibition at Atelier Hermes in Seoul in Wolganmisul Magazine of Feb., 2010. Translated by Kate YK Lim (Arte en Fide Representative)
2010
For the 2009 5th Lanzarote Biennial, Kimsooja has undertaken a project of five videos, filmed entirely on the island of Lanzarote, that tackles the subject of the four elements that have been employed by philosophers since antiquity to describe the essential components of material reality and the source of all energy and life, both in Western traditions and in the East: earth, water, fire, and air. Always charged with great symbolism, the four elements which date back to the time of Pre-Socratic philosophers and later received a more precise explanation from Empedocles, persisted through the Middle Ages to modern times and profoundly influenced the development of European thought and culture. These Western conceptions coincide with Indian, Japanese, and Buddhist traditions, which like Aristotle added a fifth element, ether (or the container of the cosmos) and with the Buddhist tradition. In some Asian countries like Korea and China, air is substituted for wind.
Kimsooja has uncovered, in the volcanic, ocean landscape of the island of Lanzarote, the force and inspiration of these elements, the essential energy that we all depend on as living beings, as well as an invitation to fantasy and a source of creativity. Kimsooja compels us to see fire in water, earth in water, air in water, and therefore, also the opposite: water in air, water in earth, water in fire. In a way, as the artist notes, water alone would suffice to represent all four elements, even though one might imagine that each element admits only a singular and unique representation.
The first three videos: Fire of Earth; Water of Earth and Fire of Air, share a common "journey" and form a trilogy. They have been filmed in different moments of day and night, in slow motion, while the artist was driving though the rocky landscape of the island. Each one of these videos evokes the elements of fire, water, and air, respectively.
The first video, Fire of Earth, was filmed during the day, and depicts the island's daytime landscape. The camera leads us through the island's rocky scenery, and makes us feel the body of the earth as if it were a skin. The camera's ample panoramic lens serves as a counterpoint to the partial vision of the nocturnal scene in the second video.
Here, the movement of the camera, sometimes sped up and other times slowed down, guides us through the rocky scene creating a trompe l'oeil effect: it looks as though the mountains in the background remain still, while the rocky terrain of the foreground moves faster, then slower, creating the illusion that the sea rocks, charred by the volcano's fire, are gliding across the landscape as if being dragged by a lava flow or a movement from deep inside the earth. At times, the mountains in the background also seem to move, but in the opposite direction as the foreground's rocky landscape; or that the fore is spinning, turning around the mountainous background in a circular motion of eternal return. The silence that envelopes everything and counters the ceaseless movement creates a mood of estrangement that is heightened by the moonscape of the boulder field, transmitting all the energy and spirituality of cosmic connection, typical of these extraordinary spaces.
The second video, Water of Earth, filmed at night and also in slow motion while driving, roams the nocturnal landscape of Lanzarote with a substantially different impact than the daytime film. Here we also encounter a trompe l'oeil effect. Again we experience the dynamic of mobility in the foreground and immobility in the background (in this case the sky), as in the daytime video, but here, the vista is obscured. In contrast with the complete view of the first video, our vision is now reduced by the darkness of night or absence of light. Also, due to the absence of light, the foreground takes on a larger role. Here the fore stands out against the sky, and the mountains that appear during the daytime disappear almost completely into the background. In this video the effect of movement occurs on several levels and always flows in the same direction. Altogether it resembles a deep river of dark waters moving quickly in the background and sliding slowly into the fore. The background is covered with scrub and rocky hills that appear like ghosts darkened by the night and almost completely fill the frame obscuring our view of the bottom. Sometimes the screen is pierced by poles or trees that pass across our field of vision like shooting stars. The varying degrees of acceleration evoke many other natural processes such as streams, floods, and rapids.
In the third video, Fire of Air, the artist illuminates the darkness with a spotlight while driving through the fields of volcanic rock. Focusing in on the center of the frame and leaving the rest of the screen dark, we see the blackness that envelops everything, except when the light collides with a physical object.
With the appearance and disappearance of light, and therefore the landscape, the images become unrecognizable. When the light appears, what we see is like a sort of swirling cloud, blowing in the wind. The night's darkness envelops everything until the light reappears. The light here is the source of energy that illuminates the space but is also absorbed by the darkness when it does not cross a physical object. Only when the light crosses or collides with something physical does it consume its energy. And as the artist herself notes, "darkness and distance play the roles of absorbing light in a vacuum and consuming the source/energy of light in physicality."
The appearance and disappearance of light creates an aura of mystery. The spotlight that the artist guides, like the sun lighting the earth, turns the landscape into something ethereal, abstract, resembling an eddy of clouds being swept away by the wind, spinning like a Ferris wheel of light. The rocky, nocturnal landscape of Lanzarote disappears and turns into a mass of light and clouds. Only every so often do tiny points of light appear on the horizon.
This trilogy speaks about how natural light and darkness, or lack of light, as well as the use of artificial light is associated with our modes of perception. In some way, it reveals how our visual reality is directly related to light, darkness, perspective, emptiness and physicality, simultaneously creating the mystery of our vision that goes beyond reality and lead us into the realm of fantasy. Fact and fiction are paired in these videos, opening our minds to a deeper reality that transcends habitual perceptions.
The movement of the earth, the movement of life, the acceleration and deceleration of events, the fleetingness of life… these elements also become manifest in contemplating this work.
This project is accompanied by two individual videos, Air of Fire and Earth of Water, which focus on the elements water and air and the energy generated when both come into play. To do this, Kimsooja selects two particular moments in the continuous movement of the sea and the undulating waves produced by air currents.
In the first, Air of Fire, the artist selects a segment of sea where the ocean joins with the earth on a cliff of black volcanic rock to depict the beautiful spectacle of a rainbow forming. When the waves of white foam, propelled by the wind, collide with the cliff, breaking and jumping through the air, the colors of the rainbow appear in their entire splendor. These waves soar to the top of the cliff, dispersing droplets as if to revive the fields of volcanic rock. In the middle of the video, the picture disappears from the screen and it goes black, leaving on our retina the image of the waves and rainbow, while we continue to hear the sound of water crashing against the cliff and dispersing with the force of the air. This separation of image and sound shows how meaning is created and reconstructed at the intersection of the auditory and visual senses. The sound of the waves breaking on the cliff, the beauty of foam leaping through the air, the appearance of a rainbow set against dark rocks, all of this is a hymn to the glory of nature, but it also drives us to question the mystery of creation.
In the second video, Earth of Water, Kimsooja films another section of the sea, framed as if it were a living painting. Rolling waves, continually shifting the movement and form of their own landscape, create a hypnotic mood that is enhanced by the gray scale of the sea's natural palette. One wave, gentle and repetitive, like a harmonious melody, rippling the sea.
Through these five videos in Lanzarote together with living volcanic and the sky scene in Guatemala that will be evolved in the future, the artist employs the reality of landscape and its materiality in order to transform beyond it. Juxtaposing fact and imagination, she imbues the series with elements of ambivalence and mystery. These works convey our diverse modes of perception and the creation of new meanings.
─ Essay of the Catalogue, 'Earth, Water, Fire, Air'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Yeong Gwang Nuclear Power Plant Art Project (Organized by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Translated by Bianca Kang / Victoria Restler
올리바 마리아 루비오 (미술사가 / 큐레이터)
2010
김수자는 2009년 스페인 란자로테에서 열리는 다섯 번째 비엔날레를 위해 란자로테 섬에서 촬영된 다섯 개의 영상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땅, 물, 불과 공기는 생명력과 힘의 원천이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의 철학자들이 물질의 실체를 형성한다고 믿었던 요소들이다. 이 네 개의 요소들은 더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닌 하나의 무언가와 연결되어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시작되어 엠페도클레스 때에 와서 더 구체화 되었으며, 중세, 근대의 유럽사상과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개념은 에테르, 즉 천공이라는 하나의 요소를 더 했다는 점에서 인도나 일본 불교문화의 그것과 일치한다.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동양국가에서는 바람이 공기를 대신한다.
김수자는 화산과 바다로 이뤄진 란자로테 섬의 자연 속에서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완전히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이 본질적인 원소들의 힘과 영감 뿐만 아니라 동시에 환상과 창조적인 발상의 근원지를 발견한다. 김수자는 우리에게 불에서 물을, 땅에서 물을, 공기에서 물을 보기를 원하며 이와 마찬가지로 반대의 상황, 즉 공기에서 물을, 땅에서 물을, 물에서 불을 보기를 원한다. 이들은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물은이 나머지 요소들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요소들이 지닌 특징들은 유일하고 독창적인 것이다.
처음 세 개의 영상들인 <Fuego de Tierra / Fire of Earth>, <Agua de Tierra / Water of Earth> 그리고 <Fuego de Aire/ Fire of Air>의 동일한 “여정”을 다루며, 이들은 3부작을 이룬다. 이는 작가가 섬의 바위 지역들을 지나며 낮과 밤에 걸쳐 느리게 촬영하여 얻어낸 결과물로써, 각각 불, 물과 공기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첫 영상인 <Fuego de Tierra / Fire of Earth>은 낮에 촬영한 것으로 섬의 주간 풍경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화산섬의 바위투성이 지형을 보여주며 우리로 하여금 땅의 표면을 피부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광범위한 파노라마적 시선은 두 번째 밤의 풍경에서 보여주는 제한적인 시야와는 대조적이다.
카메라는 우리를 이 바위투성이 섬으로 안내하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움직이며 트롱프 뢰유 효과를 만들어낸다. 마치 화면 배경에 있는 산은 가만히 있는 반면 화면 전방의 바위 지형은 빠르게 또는 느리게 움직이면서 화산에 의해 까맣게 탄 바위들이 용암에 의해 지평선을 따라 흘러가는 또는 심층에서 움직이는 듯한 착시 현상 보여준다. 가끔씩 뒤에 위치한 산도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전방의 바위들이 흘러가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보이며 지면이 이 산 주위로 원형을 그리며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을 감싸는 동시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화면과 대조를 이루는 고요함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황폐한 바위 지형을 통해 극대화 되며 우주와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모든 에너지와 영성을 전달한다. 이것은 또
한 이러한 기묘한 지형의 특징이기도 하다.
두 번째 영상인 <Agua de Tierra / Water of Earth>은 작가가 란자로테 섬을 차를 타고 돌며 느리게 촬영했다는 점에서는 첫 번째 영상과 같지만, 낮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밤의 풍경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역시 트롱프 뢰유 효과를 찾아볼 수 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지면의 움직임과 배경의(이 경우는 하늘) 움직이지 않는 굳건함이 반복 되나 지형은 매우 모호하다. 전편에서 보여 주었던 전체적인 풍경에 반해 이제는 밤의 어두움과 빛의 부재함으로 인해 부분적으로만 보인다. 빛이 없음으로 지면의 비중이 더 커진다. 낮의 영상에서 볼 수 있었던 산의 모습들은 하늘의 어두움에 가려져 없어진다. 이 영상에서는 움직임의 효과가 다양한 반면, 움직임의 방향은 낮의 풍경과 동일하게 유지 된다. 지면과 배경이 합쳐진 밤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깊고 어두운 강물이 땅과 하늘 사이에서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영상은 마치 바위투성이의 산들 덤불들을 보지 못하도록 밤의 어두운 유령들이 화면 전체를 꽉 채운 것 같다. 영상 중간 중간에 가로등이나 나무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고, 이는 또한 움직임의 속도에 따라 시각적으로 홍수나 증수와 같은 자연 현상들을 연상시킨다.
세 번째 영상인 <Fuego de Aire / Fire of Air>에서 작가는 같은 화산 바위 풍경을 달리는 차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로 어둠에 싸인 밤풍경을 비춘다. 불빛이 비추는 부분을 영상의 중심에 담고 그 주위는 어두운 화면 그대로 촬영한 것을 보면서, 우리는 빛이 물리적인 실체와 부딪치지 않는 이상 어두움이 이를 흡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빛의 희미해짐과 선명해짐이 반복되며 우리는 풍경의 사물들을 잘 식별할 수 없게 된다. 불빛이 선명해지면 바람이 흔들어 놓은 듯한, 또는 구름 회오리 같은 화면이 보인다. 밤이 되면 날이 밝아지기 전까지는 어두움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다. 빛은 공간을 밝게 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물체와 맞닥뜨리지 않는다면 그대로 어두움에 흡수된다. 빛이 물체와 맞닥뜨릴 때만이 이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어두움과 거리는 물질 세계에서 공기 중 에너지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빛의 생성과 소멸은 신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작가가 들고 있는 스포트라이트는 대지를 환히 비추는 태양과 같이 풍경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만들어 버린다. 이 이미지는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구름의 회오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란자로테의 바위투성이 밤 풍경은 없어지고 빛과 구름의 여상만 남게 된다. 지평선 너머로 아주 작은 불빛들만이 가끔 보일 뿐이다.
이 3부작은 자연의 빛과 어두움 또는 빛의 부재뿐만 아니라 인공적인 불빛들이 어떻게 인간의 지각과 연결되어 있는지 알려준다. 빛과 어두움, 사람의 관점과 물리적 세계가 정작 눈에 보이는 현실과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도 알려준다. 우리의 눈이 현실을 넘어서 환상을 보게 될 때에 느껴지는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 영상들에서는 공상과 실제가 서로를 보완해주며 우리가 평소에 인지하는 것들을 넘어서 더욱 깊은 진실로 우리를 안내한다. 땅의 움직임, 생명의 꿈틀거림, 행위의 속도, 덧없음..., 이 모든 것들은 이 일련의 작품들 속에 녹아있는 뚜렷한 특징들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추가로 두 개의 독자적인 영상들이 더해진다. 물과 공기, 이 두 요소를 더 강조하는 <Aire de Fuego / Air of Fire>와 <Tierra de Agua / Earth of Water>이 바로 그것들이다. 물과 공기가 활동을 시작하면 이 둘의 조화가 뿜어내는 힘은 대단하다. 바다의 끊임없는 요동과 공기의 흐름 속에서 감지되는 작은 파동들이 이 영상들에 담겨있다.
두 번째 영상인
김수자는 자연으로부터 자신의 완전한 프로젝트인 이 다섯 개의 영상들을 얻어냈다. 뿐만 아니라 실체와 관객의 환상을 적절하게 조화해 자신의 작업에 신비함과 감정의 교차를 더하고 있다. 김수자의 이 일련의 작업들은 우리에게 세계에의 보다 다양한 지각방식과, 기존의 자연에의 새로운 의미 창조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 Essay of the Catalogue, 'Earth, Water, Fire, Air'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Yeong Gwang Nuclear Power Plant Art Project (Organized by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번역 강하얀
Choi Eunju (Senior Curator / Head of Development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2010
It is generally agreed that the modern art of the twentieth century came into being and gained the momentum of development in tandem with: the extended conception of matter, the emergence of a science of the unconscious, and the changes in the modes of communication, to name only a few. As an attempt to pose a question about the characteristic of the contemporary art of the twenty-first century, various art critics and curators of the contemporary art cited several key words such as‘place’, ‘spirituality’, ‘identity’ and ‘consumption’in the project, Art 21 of Susan Sollins. The project introduced Kimsooja’s art with details in the expression of a mobile lifestyle, the contemplation of humans and nature, and the artist’s identity seen via the others. Along with those issues, Kimsooja contained critical views on the contemporary society within her works, which could be thus be valued as leading to significant art issues in the twenty-first century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of Korea has been exploring the possibility of a public art project outside the museum since December 2009. In order to try it out, a preliminary test for the project was ensued. The museum decided to select Kimsooja’s video installations titled as ‘Earth-Water-Fire-Air’ series to feature for the Yonggwang Nuclear Power Plant Art Project. The museum's curators had been engaged in vigorous discussions and research on art projects that could deliver new ideas and fresh formats. The focal concern was how the museum could expand its sphere, and not enclose the exhibitions and other projects only within its walls. Curators looked into the precedence of such, as in the Anyang Public Art Project in Korea, the Naoshima Project in Japan and the Loire Project in France, sizing up strengths and drawbacks in each project. Meanwhile, in conjunction with the nation's enhanced status in the world economy, the idea of the possibility of combining Korea’s industrial strength with the realization of an art project was put forward. In other words, the museum eventually made a decision potential for challenging future debates and voices: it threw art into the realm of its apparent antithesis. At that time the export scheme of the nuclear plant to UAE surfaced in Korea, which was in lieu with the promotion of the public awareness of the unrevealed identity of nuclear power and its allied industries. The inves-tigative questions raised were both basic and controversial, illuminating on different facets of what was at stake: is nuclear power only destructive and fearful as infamously known in a nuclear explosion? Or could it be the alternative way to solve the lack of energy and environmental problems? Would it be plausible to combine such explosive societal and global issue with the arts? If possible, what kind of responses and reactions would be derived from such a marriage? And furthermore, what kind of artistic communication can be delivered? No one dared to experiment with the very conception, and yet in May 2010, we plunged into the practical procedures to realize the project in the exact place where the plant was located.
There are four power plants in Korea. Out of the plants in Uljin, Worsung, Gori and Yonggwang,the Yonggwang plant is situated in beautiful Honam area, the south-western part of Korea. In the course of constructing the plant in the city, a public park was created for the sake of the dwellers, utilizing earth and sand which was unearthed due to the construction work. It is called Han-ma-eum Park, meaning “one mind” in Korean – and the in-habitants are currently enjoying the park. The artworks will be installed on the bank built within the plant site, similar to breakwater. The stretched bank functions to cool down the sea water which was heated up in the process of generating the nuclear power. It is as long as 1,136 meters, surrounded by the sea. Yet once one walks along the bank, one can feel the sweeping view as if its path running towards the sea with breath-taking gallops. From there,viewers can see We Island in Buan away off where the residents had staged strong protests against building the waste disposal facility. The artist chose this place because it was deemed as the intersection between civilization, posed as nuclear technology,and art, represented by humans and nature.
Kimsooja’s ‘Earth-Water-Fire-Air’ series is the outcome of her philosophical search for the relation between human beings and nature. She rounded the whole project off with the completion of 'Water of Air' which is video images of glaciers in Greenland,filmed up from a helicopter in July 2010. The whole works comprise eight separate series, the core concept of which is that the four primary elements of nature – earth, water, fire, air – by means of the organic synthesis go through changes, perishment, and creation. The titles of works invite viewers to ponder on the implications of the relations between the two elements keyed in the title; Fire of Earth,Water of Earth, Earth of Water, Air of Fire, Air of Earth, Air of Water, Fire of Air, Water of Air. They reveal that four elements are interconnected in the bond of a circulatory system. To sum it up, the at-tributes of earth are derived from water and air, and fire gives birth to air, and air is the incarnated form of water. Titles are rich in suggesting the four elements’ wondrous liaison with one another. One is reminded of the Oriental philosophy concerning five classical elements of the universe created by Yin and Yang energy- Gold, Water, Wood, Fire, and Earth, which were expounded in the theory of Oh Hang Sang Seng(五行相生). Kimsooja’s previous series such as A Needle Woman, A Beggar Woman, and A Mirror Woman deal with both the contradictory and relational facets of connections between individuals, humans and society, or humans and nature.The two factors upon the encounter generate conflict and thereby inflict scars on each other, and yet they might work to heal in certain circumstances, Kimsooja observed. The artist herself standing still with her back to the viewers serves as an axis for those relations and their interactions to flow and swirl around, so that the artist in stillness comes to be the integral recipient of perception.
Kimsooja often explained in many of her interviews that her art stemmed from the unique personal encounter with needles and sewing. In the similar vein,the long-stretched breakwater at the site of the power plant with the light house at the end where it faces the sea, is once again transformed into the artist's Being as a ‘Needle Woman’. The site poses questions on the relations of nature and energy,materials and humans. The experience of sudden aggregations and intensity of the universal energy imposed upon and penetrated into Kimsooja while she was sewing with her mother long time ago, is to revive in this project, only on a much grander scale.
The artist sees the nuclear energy as part of the order of synthesis – the process being fission and fusion – and one could say that this is an extension of ‘Earth-Water-Fire-Air’ Series. Nuclear energy, did in the end, come from nature, and was subsequently transformed into an energy both capable of total annihilation and construction. The subject of this art project becomes the arena where all the various kinds of discussions and debates of contemporary art come together. For this project, Kimsooja's six-channel video installation will be shown on fabricated outdoor screens that equally segmented and separated out along the boardwalk. Against the backdrop of the power station, we find ourselves in the midst of the convergence of technology and art by the artist’s alchemic touch, and her acute perceptive abilities. People might ask questions about humans and nuclear power, about harmony and collision – about art as a public realm.
“A needle is an intriguing being which has duality residing in its existence. While the tip of the needle hurts and separates when aggressively attacks, the needle eye heals and combines two divided parts together. We could even say that the needle has hermaphroditic qualities. I was so bewitched by the needle that I continued to have persisting questions in it. Once the performance of sewing is done, all that remains is the thread, and the needle vanishes from the site.
– Excerpt from Lee Kyuhyun, “Hello, Mr./Ms. Artist!”, Nexus Publication 2010, An Interview With Kimsooja -
─ Essay of the Catalogue, 'Earth, Water, Fire, Air'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Yeong Gwang Nuclear Power Plant Art Project (Organized by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Translated by Kate YK Lim (Arte en Fide Representative)
최은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 / 사업관리팀장)
2010
20세기 모던 아트의 등장은 물질(matter) 개념의 확산, 잠재의식과 정신분석학의 영향,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 등에 의해 추동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비교하여, 21세기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의 특성은 과연 무엇일까? 수잔 솔린즈(Susan Sollins)에 의해 주도된 <Art 21 : Art in the Twenty-First Century>(2001-2009) 프로젝트에서, 현대 미술 비평가와 큐레이터들은 ‘장소(Place)’, ‘정신성(Spirituality)’, ‘정체성(Identity)’, ‘소비(Consumption)’의 개념이 21세기 현대 미술에 있어서 시각언어의 확산을 이루어 낸다고 이야기하였다. 김수자의 작품세계 역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상세히 소개되었다. 유동하는 삶의 표현,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유, 타자와 구별되는 작가의 정체성,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는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의식 등이 21세기를 주도할 수 있는 현대미술의 가능성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관 밖에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그 가능성을 탐색해 보기 위한 첫 번째 파일럿 프로젝트로서 김수자의 멀티 채널 비디오 작품인 <지·수·화·풍(Earth·Water·Fire·Air)> 시리즈를 선정하여 <영광원자력발전소 아트프로젝트>를 준비해왔다. 당시에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진들 사이에선 새로운 형식의 아트 프로젝트에 관한 진지한 토론들이 심심치 않게 전개되곤 하였다. 미술관 영역 안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전시와 프로젝트를 밖으로 끌어내어 미술관의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일본의 ‘나오시마(直島)프로젝트’, 프랑스의 ‘르와르(Loire)강 프로젝트’ 등이 살펴졌고 각 프로젝트의 장, 단점이 토론되었다. 그러는 중에 세계 경제계의 중요한 동반자로 등장한 한국의 산업 역량을 예술 프로젝트와 결합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도출되었다. 결과적으로 미술관은 어떤 면에서 보면 가장 어려울 수도 있는 선택을 하였다. 당시 ‘UAE로의 원자로 수출’이라는 성과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었던 원자력에너지와 산업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원자력 에너지란 무엇인가? 원자력은 핵폭탄을 연상시키는 두려움의 대상인가? 아니면 지구의 환경문제와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시켜 줄 미래적 대안인가? 원자력 영역과 예술 영역의 만남은 가능할 것인가? 그 결과는 해당 산업계와 미술계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 것인가? 그리고 어떤 예술적 소통이 가능할 것인가?’ 등의 질문이 끊임없이 던져졌다. 이전에 그 어느 누구도 시도해보지 못한 상상의 프로젝트를 원자력 발전소라는 특정 장소에서 펼쳐 보이자는 계획이 구체적으로 준비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부터이다.
우리나라의 울진, 월성, 고리, 영광의 4개소 원자력 발전소 중 영광이 이번 프로젝트의 대상지로 선정된 이유는, 호남 지역 특유의 아름다운 지형 속에 원자력 발전소가 설치되어 있고 특히 발전소 조성 시 발생한 토사를 재사용하여 만들어진 한마음 공원이 시민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되었다. 작품이 설치되는 곳은 원자력발전소 내의 방류제이다. 방류제란 일종의 방파제인데, 원자력 발전소 방류제는 원자력발전으로 데워진 바닷물을 식히는 기능도 함께 갖고 있다. 전장 길이 1,136m에 달하는 방류제는 영광 앞바다에 둘러싸여 있고 바다를 향해 질주하는 듯한 경관을 자랑하며 방폐장 유치 논란으로 뜨거웠던 부안의 위도도 바라볼 수 있다. 김수자 작가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원자력 발전이라는 기술의 영역과 자연과 인간을 해석하는 예술의 영역이 이곳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김수자의 <지·수·화·풍> 시리즈는 시리즈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철학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금년 7월, 그린랜드 지역의 빙하를 헬리콥터에서 촬영하여 편집한
김수자의 작업세계는 종종 ‘바늘’과 연관된 독특한 체험과 표현으로 설명되어 왔고 작가 스스로도 여러 인터뷰에서 그 사실을 밝히고 있다. 끝머리에 노란 등대가 설치되어 있는 1,136m의 좁고 길게 뻗은 방류제는 또 한 번 ‘바늘여인’ 김수자의 실존을 상징한다. 방류제는 바늘이 되어 자연과 에너지, 물질과 인간의 관계성에 대해 다시 묻는다. 오래 전 실크이불보를 어머니와 함께 바느질하던 순간에, 갑자기 찾아온 자신의 에너지와 우주의 에너지가 한꺼번에 바늘 끝으로 향하는 것 같았던 그 충격적 체험이 방류제에서 보다 더 큰 스케일로 재현되는 것이다.
김수자는 분열과 융합을 통하여 ‘혼성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자연물질 중 하나로서 원자력을 해석하여 <지.수.화.풍 > 시리즈의 영역을 확산시키고자 한다. 자연 물질의 하나이면서 현대에 들어와 생성과 파괴의 상징성을 동시에 지닌 원자력 에너지라는 소재는 앞서 언급한 현대미술의 담론들을 한꺼번에 녹여내는 용광로와 같기 때문이다. 방류제에 김수자는 6개의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흙, 물, 불, 공기의 자연 요소들을 배치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본 주제에 대한 작가의 첨예한 문제의식들은 예술 프로젝트로 거듭나게 된다. 인간과 원자력, 상충과 상생, 예술성과 공공성에 대한 질문 과 대답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을 방류제로 인도한다.
침 끝으로 공격하고 상처를 내는가 하면, 바늘귀를 통해 치유하기도 하지요.
나아가 양성구유(兩性具有)의 특징을 한 몸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바늘이 가진 이러한 모순된 속성에 매료됐기 때문에 바늘과 연계된 질문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늘은 분리된 천을 잇고 꿰매는 자신의 역할을 하고 나면, 실의 흔적만을 남기고 자신은 그 사이트에서 사라집니다.”
─ 『영광 원자력발전소 아트프로젝트 2010, 지-수-화-풍, 김수자』, 국립현대미술관, 2010
2010
"Whether we try to make it or not, the sound is heard" [1]
The new work of Kimsooja, Earth-Water-Fire-Air (2009), which is based on the four elements of nature—earth, water, fire and air—and their organic combination, seems to consist only of typical natural landscapes of a volcanic area, when seen in just a visual context. These landscapes capture the "natural phenomenon" itself, without any deliberate intervention, artificial transformation or staging on the artist's part. The artist silently brings the spectators before nature, as she previously took them amidst the numerous people in various places of the world such as Tokyo, Shanghai, New Delhi, New York City, Mexico City, Cairo, London, Lagos (Needle Woman, 1999-2001), Patan, Havana, Jerusalem, Sana'a, Rio de Janeiro, and N'Djamena (Needle Woman, 2005). However, the rear view of the artist, who had guided spectators to witness the diverse lives taking place in every corner of the world, is no longer visible. "If the perspective in Needle Woman was me looking at myself from behind, my perspective in this work exists beyond the bodies of spectators and me, and is a perspective that sees more than simply the landscape. In other words, it is the gaze of the 'third eye'." [2] The back view of the artist is replaced by the eye of the camera in Earth-Water-Fire-Air, and the perspective of the artist becomes the "third eye," which gazes through the eye of the camera. The "eye of the camera" is mobilized in the same context as "bottari"—the tied bundles in her well-known works—existed as a gigantic frame (bottari-frame) to encompass or spread out people's invisible lives. Her "eye of the camera" (bottari-frame), rotating 360 degrees, captures the sky, land, lightning, snow and fog of New York and Mexico City (2000-2001), while the stationary eye of the camera stares at the eclipse, the sunlight and moonlight reflecting off the dark blue surface of the sea (Mirror Woman: Sun and Moon, 2008). In Earth-Water-Fire-Air (2009), it captures directly the natural phenomena of volcanic areas in the Canary Islands and Guatemala. These works, in which the back view of the artist moves to the position of the camera, and the eye of the camera works at the same line as the "bottari-frame," conceptually transverse all Kimsooja's previous works, in search of a connection with the infinite energy hidden in humans' invisible lives and in nature. Now in Earth-Water-Fire-Air, Kim is turned into the "third eye," which exists everywhere but cannot be seen anywhere, withholding direct comment or interpretation on the "greater theme" of the relationship between nature and humans, or fundamental reflection on this, but opening up infinite possibilities to spectators to participate in the eloquent speech of nature.
To what kind of world does the "third eye" of Earth-Water-Fire-Air invite viewers? It is a world of principles of nature, origins of matter, essence of humans and life, and mutuality and coexistence of all such qualities. The four elements of nature—earth, water, fire and air—are the roots of western philosophy, but also related to the five elements (metal, water, wood, fire and earth) that form everything in the universe according to the eastern theory of yin, yang and wu xing, or the five elements of creation (earth, water, fire, wind and void) according to Buddhist philosophy. Such elements, which are the core of Eastern and Western thought, and the energy created by their mutual combination enable us to think about the recurrent structure of circulation known as the birth and death of all things, to realize the mysterious relationship between nature (matter) and humans, and to ponder on the life of humans. "As water has an element of fire and the earth has the elements of fire, water and air, each element is in a relationship of mutual circulation and connection. In the process of looking at them separately as four elements, I intended to reveal their 'inability to stand alone, and dependency'." [3] In extension of such thought, through this work Kimsooja visualizes the dynamic relations of "water, fire, earth and air" and their infinite energy through "the natural phenomenon itself." Each of the seven landscapes taken of the dead volcano of Lanzarote in the Spanish Canary Islands, and of the live volcano of Pacaya in Guatemala, has an independent title. In these works, the relations between the titles and images suggest a different element hidden within a certain element based on a permutation or combination structure of sets of two elements, or visualize the organic relation between two elements and their energy. Blazing red lava (Air of Earth), the clear blue sky looking down upon the lava (Air of Water), dark blue waves of the sea (Earth of Water), a rainbow emerging from the waves breaking against the volcano (Air of Fire), three different landscapes taken while slowly driving along the same volcanic terrain in the day, evening and night (Fire of Air, Fire of Earth, Water of Earth)... But the combination of these elements does not allow direct reference to any particular ideology of East or West. The artist wants to contemplate not on the persuasiveness of such ideology, but rather on nature, the elements that form nature, and the origin and methods of existence of humans, through free combination and exchange among the elements.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Kimsooja's work, regardless of what it deals with—city, people, life, the world, or nature—can be found in the perspectives or ways of thinking about these, and the attitude of raising questions about them. This indicates that her work does not communicate the artist/subject's viewpoint of this world to others one-sidedly, and that the world seen by the artist/subject no longer aims at a consistent message. If so, how is the "subject," which encompasses the "landscapes" of the world as a compound collective of different elements, reflected in her works? This "artist-subject," who pays attention to the world's diverse cities, nature, people and their lives, is neither a romantic subject who reflects inner tension and conflict before colossal nature, nor a heroic subject of American abstract expressionism who pursues absolute sublimity transcending this world, nor a phenomenological subject who presents perceptional phenomena by connecting sensuous experience and visual sense, nor an archeological subject who excavates social-cultural vestiges. The work of Soo-ja Kim no longer pursues or reflects a "single subject" that has emerged in the history of art. Her work announces the coexistence of numerous subject-spectators within time-space, and the birth of those anonymous subjects' multilateral perspectives. The moment the spectator focuses on the "rear view" of Needle Woman or Woman Washing Clothes, he/she will wear "the clothes of the artist's body," stand exactly where the artist stands, and see beyond the world the artist sees. The relationship between subject and spectators of the work Bottari, in which discarded old clothes are wrapped in a blanket cover once used by someone of unknown origin and are carried all over the world in search of something, can also be read in the same context. In Kimsooja's work the spectator is no longer a passive subject who accepts a single perspective presented by the artist. In her work the spectator is an active subject who lives positively within the forms of life through the guidance of the artist. Thus, the spectator can leave together with the artist on a long journey to understand and embrace even more and different lives, and can share the world's diverse realities, different people, and their lives.
Most of Kimsooja's works are extremely static, continent, and extraordinarily simple, having no narrative or dramatic plot. They present amazing eloquence, however, through the speeches of the objects (bottari, needle, and mirror) in her works, which slowly dominate the spectator through persuasive powers reminiscent of the prosopopea of ancient orators. This "personification" is not simply confined to personified imagery, but is one of the rare oratories that start from the idea that personified objects can think, and that they can be made to talk. This method of personification, which generally has made objects speak about the wisdom of god to enlighten people about their arrogance, ignorance or limitations, now seems to reveal its effect through the experiences of the objects in Kimsooja's works, which start from compassion and love for humankind, and attempt to understand and embrace humans and their lives. As a child, while sewing blanket covers together with her mother, the artist reports feeling a mysterious energy flow through her body at the moment the point of the needle pierced the cloth; as she connected the different pieces of cloth together one by one, she smelled the delicate scent of life from the gigantic blanket cover. With the artist's declaration—"The needle is the medium, mystery, hermaphrodite, abstraction, barometer, and shaman. And so is my body" [4] —the quiet, eloquent speech begins. The artist's body becomes a needle connecting different cultures, diverse lives, people's love, compassion, agony, loneliness, etc., throughout the world as if she were taking stitches one by one, finally giving birth to the "wrapping cloth (bojagi) of life," in a variety of colors. All sorts of races, culture, and traces of their "differences" are marked on the bojagi, which attempts to meet with more stories in other time-spaces.
The needle becomes the "axis" of time-space, which allows "connections" among many other subjects, and serves as a medium that makes simultaneous communication with spectators possible. Along with the joy, anger, sorrow and pleasure of human life contained in the bottari (Bottari Truck series), the "needle," which enables encounters among all human beings in the world (Needle Woman, Woman Washing Clothes series), meets with the "mirror" (Mirror Woman series), which enables thought about me and others, the group and the individual, and the human and the world, once more bringing spectators into the paths of these objects in a natural manner. The mirrors spread across the entire floor of the Crystal Palace become a "spread-out needle," attempting to sew together the false image and the real image (To Breathe — A Mirror Woman, 2006), and the monochrome projection of primary colors and the recorded sounds of the artist's own inhalation and exhalation, performed at the Teatro la Fenice, Venice in the same year under the "same title," invite spectators to a mediation of life and death. Through To Breathe: Invisible Needle/Invisible Mirror (2006), performed at the Theatre du Chatelet in Paris, which seeks merging of material and spirit through the complete dematerialization of body/needle/mirror, and through Mirror Woman: Sun and Moon (2008), which captures the sun and moon during an eclipse, the natural phenomenon of sun and moon light reflecting off the surface of the dark blue sea, the artist ultimately aims to become one with the breath of humans and the cosmos, opening questions about the origin of all creation and the principles of nature. And abundant questions on this matter are continued in Earth-Water-Fire-Air. The artist's body penetrates the lives of the world through the "needle," connects the dualities of the inner and outer aspects of the human, as well as of existence and non-existence, by being a "mirror," and this needle and mirror breathe in and breathe out as they talk about life and death, going back and forth between the worlds of material and nonmaterial. The paths of the needle and the mirror then expand from the human to nature and the universe, beginning a journey to the world of the origin and essence of all creation.
From the early 90s until now, spectators have participated in Kimsooja's world of work together with the endlessly mobile body of the artist through "needle" and "bottari." Some read post-modern nomadism or global culture in her performances and objects, while others have made connections between the Korean objects, colors and references to Eastern culture that appear in her work, and national identity or feminism. Of course, in today's culture, which pursues movement, cultural diversity and difference, each cultural code and reference reflects the identity of the concerned group. If, however, we assume the state of art now as the effort to preserve the autonomy of each of the differences, and to pursue their mere coexistence, ironically, such identities will be destined to remain as folklore or exotic elements. Artists' work today is based on references to their unique culture and regional codes, and Kimsooja's world of work is no exception. But what is important is that such elements in her work transcend the local and construct significance in the global dimension, forming a circuit. That is, her work seeks cooperation among the multiplicity of different cultural seeds, and proposes continuous adaptation among their peculiarities. Minimalist aesthetics and the "ready-used" concept, which can be sensed throughout her work, connect Korean objects, local culture and Eastern thought to the Western history of art, undergo new adaptations, and form extraordinary and creative routes that enable us to journey through the life of humankind.
Kimsooja's bottari, blanket covers, needle work, etc., have created a new model that traverses Korean tradition, Eastern philosophy and art-historical codes. All of Kimsooja's objects are ready-made. Of course the "readymade concept" is no longer an issue of interest for us today. The point is not the fact that Kim took the readymade objects, but how she expanded and transformed the concept of readymade. "My work redefines the already existing concept of the object. This preexistence is hidden within daily life, particularly in the perspective of the West. Art history does not speak of such preexistence, and does not conceptualize this idea. It is only conceptualized when someone makes it break away from its original production, and shows it in the frame of representation/performance. To create a context of its own in art history: this is the work I do. So my work has nothing to do with making a new object without a previous life." [5] Her interest in bottari, blanket covers and other objects is not in the "already made (action/result)," but in how it has been used (time/experience). In other words, when the artist uses old clothes or blanket covers that were worn or used by someone, she is using that someone's "life." Kimsooja transforms blankets, wrapping cloths and bottari, permeated with the colorful lives of anonymous people, into unique objects with diachronic aspects of time; follows the traces of our lives; feels the breath of the people; and sets out in search of the love of humanity. The transfer from "readymade" to "readyused" in her works is carried out through a certain "acetic practice," stitching blanket covers, wrapping bottari, meeting many people, and participating in their life journeys. This ascetic attitude and practice enable the artist to become an anonymous being, wrapping and unveiling other anonymous life, revealing and re-contextualizing the preexisting but invisible tracks of life. The colorful blanket-wrap becomes a frame of life embellished with all deeds of life; the flamboyant, multicolored bottari becomes a flexible vessel that embraces such anonymous life; and the needle-body, which connects all of this, becomes a gesture to visualize the anonymous subjects while extinguishing itself in the process. Moreover, the artist/subject, who has disappeared from the picture-plane, becomes the "third eye," beginning contemplation on fundamental life. The process of contextualizing the present through the times, lives and traces of objects once used by someone is always born with minimum intervention and minimum action in Kimsooja's work. Such aesthetics of the least in her work process is a kind of meditation, "making nothing and being nothing." Making nothing but revealing something more powerful, visualizing perpetuity through extinction, and saying the most with the least — this is Kimsooja's world of work.
[Notes]
[1] John Cage, cited from interview of Kimsooja by Nicolas Bourriaud in Cat. Kim Sooja: Condition of Humanity, 2003.
[2] Cited from interview of Kimsooja by Byoung-hak Yoo, Art in Culture, March 2010.
[3] Cited from interview of Kimsooja by Byoung-hak Yoo, Art in Culture, March 2010.
[4] Cited from interview of Kimsooja by Nicolas Bourriaud, in Cat. Kim Sooja: Condition of Humanity, 2003.
[5] Cited from interview of Kimsooja by Nicolas Bourriaud, in Cat. Kim Sooja: Condition of Humanity, 2003.
2010
"Whether we try to make it or not, the sound is heard" [1]
자연의 4원소 '물, 불, 흙, 공기'와 그것의 유기적 결합을 근간으로 하는 김수자의 신작 <Earth-Water-Fire-Air, 2009>는 시각적으로만 보면 전형적인 화산지대의 자연풍경들로만 구성되었다. 이 풍경들은 작가의 의도 적 개입, 인위적 변형, 혹은 그 어떤 연출도 가하지 않은 '자연현상' 그 자체를 포착한 것이다. 작가는 관객을 그 자연 앞에 말없이 데려다 놓는다. 도쿄, 상하이, 뉴델리, 뉴욕, 멕시코 시티, 카이로, 런던, 라고스 <바늘여인, (1999-2001)>, 파탄, 하바나, 예루살렘, 사나, 리오 데 자 네이로, 자메나 <바늘여인>(2005) 등, 세계 곳곳의 수 많은 사람들 속으로 관객을 데려다 놓듯이 말이다. 단, 세계 구석 구석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삶을 목도하며 그곳으로 관객을 안내하던 작가의 뒷모습이 여기서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바늘여인>에서의 시점이 나 자신이 내 등을 바라보는 시점이었다면, 이번 작품에서의 나의 시점은 나와 관객의 몸 너머에 존재 하며, 단순한 풍경 이상을 바라보는 시점이다. 즉 '제 3의 눈'의 응시라고 할 수 있겠다." [2]
작가의 뒷모습은
-“물은 불의 요소를 가지고 있고 땅이 불 과 물, 공기의 요소를 가지고 있듯이, 각 원소들은 서로 순환하고 연계되 는 관계다. 그것을 4가지 원소로 각기 보는 과정에서 각 원소들의 '홀로 설 수 없음, 기대어 있음'을 드러내 보고자 했다.” [3]
이러한 사유를 연장하며, 김수자는
김수자 작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무엇을 다루든 간에 -도시, 사람 들, 삶, 세계 그리고 자연-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과 사유하는 방식, 그리고 그것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태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작업은 작가/주 체가 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타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으며, 작 가/주체가 보는 세계는 더 이상 하나의 일관된 메시지를 향하고 있지 않다 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각기 다른 요소들의 복합적 집합체로서 이 세상의 '풍경'을 아우르는 '주체'는 그의 작업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전 세계의 다양한 도시들, 자연, 사람들, 그들의 삶에 주목하며, 그것을 향 해서 있는 이 '작가주체'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내면적 긴장과 갈등을 반 영하는 낭만주의적 주체도 아니고, 현세를 초월한 절대적 숭고를 추구하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영웅적 주체도 아니며, 감각적 경험과 시각을 연결하며 인지적 현상을 제안하는 현상학적 주체, 혹은 사회문화적 침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적 주체도 아니다. 김수자의 작업은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이러 한 '하나의 주체'를 모색하거나 반영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은 시공간 속의 다수 주체-관객의 공존과 그 익명의 주체들의 다각적 관점의 탄생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관객이 <바늘여인>, <빨래하는 여인>의 '뒷모습'에 주목하 는 순간 관객은 '작가의 몸'을 입고, 바로 작가가 선 자리에서 작가가 바라 보는 세계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그 누군 가가 사용했던 이불보로 버려진 헌 옷들을 싸며, 그것을 싣고 이 세상 곳곳을 찾아 나서는 <보따리> 작업 또한 동일한 맥락에서 읽혀질 수 있을 것이다. 김수자의 작업에서 관객은 더 이상 작가가 제시하는 하나의 관점을 수용 하는 수동적 주체가 아니다. 그의 작업에서 관객은 능동적 주체로서 작가가 안내하는 삶의 형태들 안에서 적극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관객은 더 많은, 또 다른 삶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한 긴 여정을 작가와 함께 떠 날 수 있으며, 이 세계의 다양한 현실, 서로 다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삶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김수자의 작품들은 대부분 극도로 정적이고 절제되어 있으며 지나치리만치 단순한 구성을 갖고 있다. 그 어떤 내러티브도 없으며, 극적인 플롯도 존재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작품들은 놀라운 웅변력을 갖고 있다. 그 것은 바로 김수자 작업 속의 사물들(보따리, 바늘, 거울)의 웅변을 통해서 펼쳐지고 있다. 그의 사물들은 마치 고대 수사학자들의 의인법prosopopoeia을 연상시키는 설득력으로 관객을 서서히 압도하고 있다. 이 '의인법'은 단순히 사물의 의인화된 이마주리에 멈추지 않고, 의인화된 사물들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하며, 사물들에게 말을 하게 한다는 보기 드문 수사학 가운 데 하나다. 일반적으로 사물들을 통해서 신의 지혜를 말하게 함으로서 인간 의자만 혹은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었던 이 의인법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에서 출발하고, 인간과 삶을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김수자 작업의 사물들 의 체험을 통해서 그 효력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어머니와 함께 이불보를 꿰매던 어린 시절, 바늘 끝이 천을 꿰뚫는 순간, 작가는 자신 의 몸을 관통하는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느꼈고, 각기 다른 천 조각들을 하나 씩 연결하면서 탄생한 하나의 거대한 이불보에서 삶의 애잔한 냄새를 맡았다.
"바늘은 미디엄, 신비, 자웅동체, 추상, 바로미터, 샤만이다. 그리고 나의 몸도 그러한 것이다" [4] 라는 작가의 선언과 함께, 이 '바늘-몸'의 세계 를 향한 조용한 웅변이 시작된다. 바늘이 된 작가의 몸은 바느질을 한 땀 한 땀 뜨듯 세계 곳곳, 각기 다른 문화, 다양한 삶, 인간의 사랑, 연민, 번뇌, 외로움 등을 연결하며, 형형색색의 '삶의 보따리'를 탄생시킨다. 각양각색 의 인종, 문화, 그리고 그것의 '다름'의 흔적들은 이 보따리에 새겨지고, 또 다른 시공간에서 또 다른 이야기들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것이다.
바늘은 시공간의 '축'이 되고, 그 축은 또 다른 다수의 주체와 타자의 '연결' 을 허용하며, 관객과의 동시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 보따리 에 담긴 인간사의 희로애락과 함께(보따리 트럭 시리즈), 세상의 모든 인류 한 사람 한 사람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바늘'(<바늘여인>, <빨래하는 여인> 시리즈)은 나와 타자, 집단과 개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유를 가능 하게 하는 '거울'(<거울여인> 시리즈)과 조우하며, 관객을 이 사물들의 행 보에 다시 한 번 자연스럽게 동참시킨다. 크리스탈 팔라스 바닥 전체에 깔린 거울은 '펼쳐진 바늘'이 되어 거울의 허상과 실상의 바느질을 시도하며 <호흡: 거울여인>(2006), 같은 해 베니스 라 페니체 극장에서 공연된 <호흡: 보이지 않는 바늘/보이지 않는 거울>(2006)은 원색 모노크롬 프로젝션과 자신의 들숨과 날숨을 녹음한 사운드 작업과 함께 관객을 삶과 죽음 의 명상으로 초청하며 몸/바늘/거울의 완전한 비물질화를 통해 물질과 정신 의 합체를 지향한다. 그리고 이클립스eclipse 현상을 포착한 해와 달, 검푸른 바다 수면에 반사되는 햇빛과 달빛의 자연현상을 담은 <거울여인: 해와 달>(2008)을 통해서 마침내 작가는 인간과 우주의 호흡과 합일을 시도하며, 만 물의 근원, 자연의 원리에 대한 질문을 열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에 대한 보다 풍요로운 질문들이 바로
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관객들은 '바늘'과 '보따리'를 통해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작가의 몸과 함께 김수자의 작업세계에 동참해 왔다. 그의 퍼포먼 스와 오브제들에서 포스트 모던적 유목주의 혹은 글로벌 컬처를 읽는 사람 들도 있고,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한국적 오브제들과 색깔, 동양문화에 대 한 참조들을 민족적 정체성, 페미니즘 등과 연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동, 다문화주의, 다름을 지향하는 오늘날, 각각의 문화적 코드와 참조들은 소 속 집단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각기 다름의 자율성을 보존하려는 시 도들, 또 그것의 평이한 공존만을 지향하는 것이 오늘날 예술의 현주소라고 생각한다면, 역설적으로 이러한 정체성들은 민속적 혹은 이국적 요소들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작가들은 그들 고유의 문화에 대한 참조들과 지역적 코드들을 기반으로 작업한다. 김수자의 작업세계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김수자 작업에서 이러 한 요소들이 지역을 넘어서 전지구적 차원에서 그 의미를 구축하며, 순회할 수 있는 경로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그의 작업은 각기 다른 문화적 종자들의 다수성 사이에서 모종의 협력을 시도하며, 또 그것의 특이성들간의 지속적 번안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 전반에서 감지 할 수 있는 미니멀리즘 미학과 '레디유즈드' 개념은 한국적 오브제들, 지역 적 문화, 그리고 동양 사상을 서구 미술사와 연결시키고, 새로운 번안을 거치며, 인류의 삶을 순회할 수 있는 특이적이고 독창적인 경로를 형성하고 있다. 김수자의 보따리, 이불보, 바느질 등은 한국전통, 동양사상과 서구 미술사적 코드를 가로지는 하나의 모델을 탄생시켰다. 김수자의 모든 사물들은 레디메이드 오브제들이다. 물론 '레디메이드 개념은 오늘날 더 이상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슈는 아니다. 핵심은 김수자가 레디메이드 오브제들을 취한 것에 있다기 보다는, 그 레디메이드 개념을 어떻게 확장하고 전환시켰는가에 있다.
"나의 작업은 이미 존재하는 오브제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있다. 이 선재성(先在性)은 특히 서양의 관점에서는 일상 속에 감춰져 있다. 미술사는 이러한 선재성을 말하지 않고, 오브제의 선재성을 개념화하지 않는다. 이것은 누군가가 이것을 그 본래의 기능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하며, 재현/ 퍼포먼스의 프레임 안에서 보여주었을 때 비로서 개념화되는 것이다. 미술 사에서 오브제의 고유한 컨텍스트를 창조한다는 것, 이것이 나의 작업이다. 나의 작업은 그 이전의 삶이 없는 새로운 오브제를 만드는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5]
보따리, 이불보, 혹은 다른 사물들에 대한 그의 관심 은 이미 만들어진 것(행위/결과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사용 되어져 왔는가(시간/경험)에 있는 것이다. 즉, 작가가 누군가가 입었던 헌 옷가지나 덮고 살았던 이불보를 사용했을 때, 작가는 그 물건을 사용한 사람의 '삶'을 사용하는 것이다. 김수자는 익명의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이 배어 있는 이불보, 보자기, 보따리를 통시적 시간성을 가진 특이적 오브제로 전 환시키며, 우리 삶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 사람의 숨결을 느끼며, 인간애를 찾아 나선다. 그의 작업에서 '레디메이드readymade'에서 '레디유즈드readyused, 로의 이행은 이불보를 꿰매고, 보따리를 싸며,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들의 삶의 여정에 동참하는 '수행성'을 통해서 전개된다. 그의 이러한 수행적 태도는 작가 스스로 익명 가운데 하나가 되어 또 다른 익명의 삶을 감싸고 펼치며, 이미 존재하는preexisting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삶의 궤적을 드러내 며 재맥락화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이불보는 인생만사가 새겨지는 삶의 프레임이 되고, 형형색색의 보따리는 이러한 익명의 삶을 포용하는 유연한 그릇이 되며, 이러한 모든 것을 연결하는 바늘-몸은 자신을 소멸시키며 익명의 주체들을 가시화하는 제스처가 된다. 그리고 화면에서 사라진 작가/주체는 '제 3의 눈'이 되어 보다 근원적인 삶에 대한 사유를 시작하고 있는 것이 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었던 오브제들의 보이지 않는 시간들, 삶, 그 리고 그 흔적을 통해서 현재를 맥락화하는 과정은 김수자의 작업에서 언제나 최소한의 개입과 최소한의 행위로 탄생된다. 그의 작업의 최소한의 미학은 '아무 것도 만들지 않으며, 그 무언가도 되려고 하지 않는' 일종의 참선 과정과도 같다. 만들지 않으면서 만든 것보다 더 강렬한 것을 드러내는 것, 소멸을 통해서 영속성을 가시화하는 것, 최소한 것으로 최대한의 것을 말하는 것, 이것이 바로 김수자의 작업세계인 것이다.
[각주]
─ Essay of the Catalogue, '지·수·화·풍'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the Fondation D'Enterprise Hermès. Seoul, Korea. 2010. pp. 39-49.
2008
Sunjung Kim
I would like to begin with a question about your video installation, A Needle Woman, perhaps your best-known work. It was made from 1999 until 2001, and was shot in various locations, such as Tokyo, Shanghai, Delhi, New York, Mexico City, Cairo, Lagos, and London. Could you describe your experiences in those cities and countries, and the background of the work?*
Kimsooja
When the CCA (Center for Contemporary Art) Kitakyushu [in Japan] approached me about a new project, I had the idea of making a performance video that would show the relationship between my body and the people on the streets of Tokyo. But it wasn't clear what form it would eventually take. At first, I got on and off crowded subway trains, and walked around for two hours. After this two-hour-long period, when I arrived to a street in Shibuya, where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were constantly passing through, like waves of a human ocean ebbing and flowing - I suddenly became aware of the meaning of my ‘walking'. It was a breathtaking moment. I had to stop on the spot and stand still- creating a contradictory position against the flow of the pedestrians, like a needle or an axis, observing and contemplating them coming and going, weaving through and against my body as a medium, like a symbolic needle. I determined to record this experience of standing motionless in a crowd, viewed from behind. I immediately let the cameraman know and documented the performance. As if facing and sustaining a giant surf, my body was completely exposed to everyone in the middle of this street, and in the course of this intense standoff, my body and mind gradually transcended to another state. In other words, as I accelerated the state of my isolation, the presence of my body seemed to be gradually erased by the crowd. Simultaneously, as the sustained immobility of my body was leading me toward state of peace and balance in my mind, I passed the state of tension between the self and others and reached the point in which I could bring and breathe others into my own body and mind. My heart began to slowly fill with compassion and affection for all human beings living today. Experiencing the extreme state that the body and mind could reach and embrace sympathies for humankind, paradoxically, liberated my mind and body from the crowd. I saw the aura of a bright white light emerging from an unknown source beyond the horizon, and I cannot help but feel that it was a mysterious, transcendental experience.
Kimsooja
After the Tokyo performance, I had a desire to see all of the people in the world, and the series A Needle Woman came out of this desire, in which I visited eight metropolises on five different continents. The relationship between my body and the crowd of each city was different in each instance, and the responses I got were also quite diverse. According to the geographical, cultural, religious, and socio-economic conditions, people responded completely differently to the body of the performer as an other—or an Asian female—and my inner reaction also manifested itself in various ways.
In this work, I established the immobility of my body as a symbolic needle, and further questioned my relationships with others through the act of a social, cultural sewing. At the same time, I see this video series as an extension of my bottari work, in which I tried to embrace the humanity within myself.
Sunjung Kim
A new version of A Needle Woman was made for the 2005 Venice Biennale, with footage you shot in rather dangerous places riddled with many social and political problems. I'm curious about the reasons why you selected those cities and what kinds of issues you wanted to address in such backgrounds.
Kimsooja
The first series of A Needle Woman consisted of real-time videos that focused on the spatial dimensions created by the body as a symbolic needle, or an axis within various spaces, in the midst of densely populated metropolises. The new version I presented at the 2005 Venice Biennale takes more of an interest in the cities that are experiencing poverty, violence, post-colonialism, civil wars, and religious conflicts—Patan, within Kathmandu Valley (Nepal), Havana (Cuba), Rio de Janeiro (Brazil), N'Djamena (Chad), Sana (Yemen), and Jerusalem (Israel). My intention was to present a critical perspective on current conditions of humanity. Created in slow motion, this new series places my body at the zero point on the axis of time, and explores temporal dimensions by showing the contrast between my motionless body and the others' slow motion. This work also shows the subtlet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bodies, and their emotional transitions and psychologies. This was another opportunity for me to explore the question of time, which has been important to me since my first video, Sewing into Walking.
Sunjung Kim
To Breathe: A Mirror Woman, which was presented in your solo exhibition in the Palacio de Cristal, commissioned by The Reina Sofia Museum in Madrid, was a work that changed the context of a given space and its spatiality. It seems that the work places emphasis on changing a space, and on the experience one may have in that space. If your earlier work had been about the two-dimensional experience of visiting different places via performance translated into video, this work asks viewers to experience the very space in which it is shown. Could you discuss the background and intention of this piece?
Kimsooja
To Breathe: A Mirror Woman is a site specific project that brings together and amplifies the relationships between yin and yang ,and the concepts of the needle and sewing, that I have been developing for two decades. - from sewing into wrapping, sewing into walking, sewing into looking, and sewing into breathing. The idea of this project is based on wrapping the transparent architecture of Palacio de Cristal building into a bottari of light and sound. I incorporated the diffraction grating film with the entire glass pavilion of the Palacio de Cristal, to create a constantly changing spectrum of colors; the sound element consisted of a chorus blended from my own breathing and humming. Both elements were absorbed in and reflected out onto the mirror that covered the whole floor of the building, expanding a "void" within the skin of the architecture, and even becoming one with viewers' bodies and breaths as a sanctuary.
The body is an important element in your work. If A Needle Woman substitutes your own body for the needle, what does A Mirror Woman do? What kinds of metaphorical functions are performed by the needle and the mirror?
If A Needle Woman featured my body as a tool, which symbolizes the needle, in A Mirror Woman, the mirror functions in lieu of the body, that observes and reflects the "other." One can see the linguistic operations of anthropomorphizing the "needle" and the "mirror," which draw out the meaning of the works.
Sunjung Kim
I didn't have a chance to visit your public project A Lighthouse Woman, and only got to see photographs of it. How did you start this project?
Kimsooja
The piece was commissioned as part of the Spoleto Festival in Charleston, South Carolina, in 2002, under the theme of "Witness of Water, Witness of Land". Charleston was one of the coastal cities of importation for African slaves. My work consisted of projecting a lighting sequence onto a lighthouse that had been out of commission for almost forty years in Morris Island, , where the devastating Civil War began. The piece was intended to breathe life back into the lighthouse and to commemorate the numerous lives lost in the war. The lighthouse was wrapped with a spectrum of nine colors, which gradually changed in a thirty-minute cycle in rhythm with the waves. A Lighthouse Woman structurally symbolized the body of a woman waiting for her husband and lover, children and brothers, who had gone off to war. I installed another work at the Drayton Hall Plantation House: four black carpets embroidered with the names of the slaves who worked there, which were placed in front of the fireplaces of the house.
Sunjung Kim
Your Bottari Truck addresses mobile globalism. Does the importance of this work lie in the concept of globalism in mobility? Or is it the notion of identity or "being" in the global era?
Kimsooja
I wasn't thinking about globalism when I made Bottari Truck, as I have never made a work related to a particular "ism" or category. I was always interested in the notion of body, personal histories and memories, and the questions of human despair and desire. I think this particular piece began to be interpreted from the perspective of globalism because the notions inherent in it came to be considered an important point of departure for globalism —such as location/dislocation and locality — and the work evolved with this social change. While I was performing 11 days throughout Korea, I was paying attention to the mobility of the bottari truck, and the continuity of both the bottari truck and the stillness of my body on the move. The truck was a moving sculpture, loaded with histories and memories, and its constant mobility, and the immobility of my body, co-incided on a temporal and spatial grid.
Sunjung Kim
It seems to me that works such as Bottari Truck and A Needle Woman are located on a "border." They also encompass dualities such as inside and outside, life and death, pleasure and sadness. What would you say constitutes your interest in the border?
Kimsooja
One might say that a consciousness about the "border" forms a sensitive spiritual axis in my thoughts. The idea connects with Eastern spirituality, which interprets all of existence in terms of yin and yang. Awareness of "border" in my work can refer to the question of the surface in painting, which was one of the starting points in my earlier sewing work. I consider the canvas as a mirror of identity, upon which artists are searching for their whole lives.
Perhaps, my obsession with "border" also has to do with my childhood, which was spent near the dangerous border of the De-Militarized Zone (DMZ).
Sunjung Kim
In your 1994 solo exhibition Sewing into Walking, you developed the concept of "sewing" into "walking" by transforming "sewing stitch by stitch" into "walking step by step." Did your engagement with sewing start from a feminist point of view, or would you say that it started from personal experience?
Kimsooja
This sewing practice didn't arise from a feminist point of view, or because I was particularly fond of, or good at, sewing. At that time I was exploring the structure of two-dimensionality and the world and its methodologies. One day in 1983, I was sewing a bedcover with my mother and suddenly came to realize possible formal, aesthetic, psychological, and cultural anthropological implications of the act of sewing. It was a question and an answer that came to me like a lightening bolt, or a divine revelation. I have to say that it was like a fated encounter between the universe and the needle, my hands and my body, that became an unforgettable event. This realization was completely unrelated to works that were made as part of the feminist art movements taking place in the United States and other places. As the notions of the "needle" and "wrapping" developed, the notion of sewing also expanded and evolved to relate to other acts of daily life, such as walking, looking, breathing, and mirroring.
Sunjung Kim
Please describe the new works you are planning.
Kimsooja
In the long term, my wish is to make my artistic desire disappear. In the short term, I'd like to make works that are like water and air, works that, like most of my works, cannot be possessed, but can be shared by everyone. I'd still like to wander around the world and answer questions that come to me at each moment, freely using any media. I will continue to be working without any preconceived plan, and answer questions that come to me through the evolution of my ideas.
Sunjung Kim
What do "Korea" and "Korean" mean for you?
Kimsooja
My Korean identity and my life in Korea are my main source of inspiration, but this source isn't always a positive one. Korea seems to me to be a land of shamanistic energy. I will continue to live as an anonymous outsider, as an anarchistic cosmopolitan.
2008
Kelly Gordon
What is your process when you make video works? Do you begin with notes, diagrams, sketches, or storyboarding? How much does it change on site?
Kimsooja
I basically refuse to "make" things, and I try to keep everything as it is and as natural as possible. My ideas are almost never written down or based on stories. For example, when I was trying to do a commissioned video performance for CCA Kitakyushu, I had in mind a walking performance but I wasn't completely sure how to realize it in that particular environment. I was walking around the city with the videographer for a couple of hours because I couldn't find an idea for doing the performance in that cityscape in relation to my body and spirit. Finally, when I arrived at a street in Shibuya, where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were constantly passing through, like waves of a human ocean ebbing and flowing, I immediately understood the significance of my walking. I had a clear awareness of the contrast created between my body and the environment around me. It was a breathtaking moment. I had to stop and stand right there, remaining motionless against the flow of the people walking. I became like an axis, observing and contemplating the moment of people's coming and going, weaving past my body as a medium, like a symbolic needle. This is the moment when the standing still performance that occurs in A Needle Woman first happened.
This is also how I worked for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India. I stopped while passing by the Yamuna, next to a cremation facility, where all the debris was floating by. In that moment, I found the connection to the location and time within my spirit and body, and I immediately asked my videographer to start documenting my performance.
Usually the performance lasts a maximum of thirty minutes, as that is the threshold of how long I can keep my body still. By the time my body reaches its limit, and through intense focus on the relationship of the self and the other, I experience different stages of awareness and a new perception of the status of my body and the world around me. For example, there was a moment during the A Laundry Woman performance when I was completely confused whether it was the river moving, or me. Then I came to the awareness that my concrete body was standing motionless but that, in another sense, it was also running and would burn to ash very soon.
Kelly Gordon
In several of your videos, including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India, you appear with your back to the camera in a dark, featureless outfit, almost like a silhouette. Is this to suggest that you represent an "everywoman" character? Or a Sprecher figure, like those in Renaissance paintings who bear witness and offer authenticity to a scene? Do you draw from other literary or artistic inspirations? During the shoot, how do you retain the expression on your face that the viewer cannot see?
Kimsooja
There have been interesting comparisons made between Casper David Friedrich's paintings and my performance videos, especially with A Laundry Woman and A Needle Woman. Actually, the Museum Folkwang in Germany exhibited my work next to Casper David Friedrich's paintings. As I turn my back towards the audience, my body functions as a void through which viewers can look and contemplate what I am gazing at, placing themselves in my position. Yet I still have to create a corporeal figure that witnesses, mediates, and contemplates on the here and now in each location.
I am not interested in showing my identity, but I can't imagine ever using a surrogate to replace me. The work should be performed with my own awareness of the energy of the location. If I were to substitute someone else, the figure would become empty, and would have no connection to this idea of the here and now. The most important aspect of my performance videos is what I experience within myself during the process. I actually don't care much about the resulting video piece, but when the experience is strong and special, the actual video seems to be strong and special too, so I just focus on the moment. To concentrate on the here and now I need inner silence and motionlessness. The performance comes from my awareness of other people or the river passing by rather than from my intention. I don't perform in order to make videos; rather, I make videos to document the moment of performance and my awareness.
Most audiences are curious about my facial expression while my back is turned. I don't want to show my face as it will draw people's attention to my identity rather than what I am experiencing as an anonymous figure. My approach in making these videos is not to guide the audience in a specific direction but to leave the experience open. I do not borrow or reference things in my work. The pieces usually develop from my intuition, which is based on my experiences and the conditions of my life, rather than from logic. At the same time, I believe in the logic of intuition.
Kelly Gordon
Which comes first, the idea or the site? You have filmed all over the world but the sites often feel very similar and have a trance-inducing quality. Do these attributes inform how you select the sites? What is your technique for making the viewer feel vividly there—present with you?
Kimsooja
I usually don't plan things in advance; I just let it happen—sometimes waiting, sometimes wandering around until the right moment arrives. It arrives when I feel the energy, accumulated from that precise time and place, in my body. Then I immediately start a performance. It is a temporary mobile temple that I establish. This only happens when I am ready and have been searching for some connection between my mind and body and a specific context of space, culture, geography, and the conditions of nature and human beings within a place. The whole process feels true to myself. The performances and videos seem to be vivid and engaging to the viewer as a result.
Kelly Gordon
Your video works suggest a timeless dimension on several levels. While the works typically have ambient or minimal sound, one can imagine a voice-over beginning with "Once upon a time..." Yet even the videos from ten years ago seem very current.
Kimsooja
Your perception of my work with regards to the spectrum of time is interesting. It is true that it looks current but at the same time quite old. I think this is because through most of my work I've been pursuing a sense of universality that is timeless and fundamentally truth—general human experiences. I also think that the present tense is created as the presence of my body as it functions as a medium or a void, through which the audiences gaze, rather than as an static and iconic representation. I don't believe in creating something new but in inventing new perspectives based on mundane daily life as it relates to contemporary art.
Kelly Gordon
What are you working on now, and how is it like or unlike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India and your other video works?
Kimsooja
All my projects can look similar and at the same time be totally different. I've been working on a project called Mumbai: A Laundry Field since 2006, and am adding a couple more channels now. I've been to Mumbai again this year to film in another slum area where many people sleep on the streets, and I plan to go back this summer to film during the monsoon season. It is quite different from the other videos I've made so far, closer to a documentary format, without commentary but with edits. This piece brings together many of my previous practices relating to fabrics, the human body, and humanity, so it has a retrospective element to it.
Another video I am making now is called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which is a four channel video I filmed in Goa, showing the parallel relationship with The Sun and The Moon overlapped on top of the ocean waves and its reflections. I still have a series of videos I've been working on since 2005, involving architectural cityscapes around the world, which I haven't been able to finish yet. Other than that, I have a few other site-specific architectural projects I am currently working on in Europe, as well as a few other site-specific projects.
I actually don't think about consistency and the pieces' relationship to my other work. I believe they must be related naturally in the larger scheme. I only focus on trying to break my own boundaries by constantly questioning and opening up new horizons.
Kelly Gordon
Your work often explores the physical and metaphorical aspects of materials and threads. What is the source of your fascination with textiles? How has this been manifest as your practice has evolved?
Kimsooja
My fascination with fabric as a medium began when I was sewing a Korean bedspread with my mother in 1983. At this time I was questioning the "dimension of the surface on painting," and also searching for a methodology that could reveal the horizontal and vertical structure of the world in a way not yet examined in the history of painting. When I put a needle into the structure of the fabric, which has both a vertical and horizontal surface, I was thrilled and exhilarated, as if a ray of energy that seemed to come from the whole universe was penetrating through my body and my hands, and reaching to the needle point where it met the surface of the fabric. I was also interested in the fact that sewing layers on top of the structure of the fabric in a circular, performative way. This was the moment of my encounter with the yin and yang energy that has evolved in many different paths and levels in my practices.
─ From the Solo Exhibition 'Black Box: Kimsooja' at the Hirshhorn Museum and Sculpture Garden, 2008.
2008
Kimsooja, who comes from a nomadic tradition in which all of one's possessions were designed to be folded up and taken away, recalls Chen's "transexperience" in both her heritage and her current experience as a woman living between her Korean past and her Western present. Her sculpture and installation works are combined with or accompanied by performances in which she appears as an alter ego known variously as A Needle Woman, A Mirror Woman, or A Beggar Woman. In the video A Needle Woman, 1999-2001, Kimsooja sits impassively, her back to the camera, in front of a variety of bustling streets — in Cairo, Delhi, Lagos, London, Mexico City, New York, Shanghai, and Tokyo — becoming a kind of motionless center, a cosmic outsider, existing in another time and consciousness apart from the world around her.
A Mirror Woman: The Ground of Nowhere, 2003, a sixty-foot-high vertical cylinder of white fabric, was installed in the lobby of Honolulu's colonial-era City Hall, whose atrium roof Kimsooja arranged to have reopened. Sealing off all but the opening to the sky directly above the fabric column, she placed a mirror floor on the ground the column's center, so that visitors who stepped inside found themselves standing on a piece of sky. Meanwhile, the fabric swayed gently in the breeze, creating a seemingly living, breathing space. Clouds drifting above and reflected below suggested, paradoxically, the feeling of rolling on an open sea. As part of an arts festival celebrating Korean immigration to the United States, A Mirror Woman referenced the immigrant's sense of destabilized identity, but it also provided a universal experience of merging with earth and sky.
─ Art & Today, Published in London: Phaidon. 2008. pp. 314-319
2008
Within the confines of our linear notion of experience and imagination, the conjunction of sun and moon is merely an idea and, to us, unthinkable. Exceptional constellations of planets, such as the eclipses of the sun and the moon, are, by their very essence, quite different, for these do not feature the two celestial bodies at the very same time, but more the moment of shadow when the one is moving in front of the other and robbing it of light. The actual conjunction of sun and moon bursts the bounds of our reality, in a way that has always been conceived as metaphor for expressing the transgression of the impossible, the transgression of the duality of day and night that occludes all formulae and laws of time and place. The conjunction of sun and moon is the icon of impossibility.
When, in her video installation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Kimsooja lets us experience precisely this impossibility on screen, she is not working with tricks. The sequence of images unfolds in real time, for the full duration of sunset and moonrise. One could almost say that the work of art in itself, however, remains invisible: it is the very point where Kimsooja is standing and observing the events in the sky. The artist is positioned on a spot, which is precisely gauged by seismograph, in fact at the zero point of a place, in that splice of space between the planets, in the chink between the orbits of sun and moon, on the verge of consciousness, at the brink of the mirror. The rest is waiting, with a fixed camera and an open frame, so that the rise of the moon and the setting of the sun are able to overlie one another.
Yet what does this say about the event, which the viewer is experiencing in that pictorial space, spanned between the four walls of Kimsooja's latest 4-channel video installation? For the fascination that takes hold of the viewer is immense; when, right at the threshold, one is caught up by the incessant sound of waves, when one gazes, transfixed, onto that horizon of the ocean which, in barely noticeable motion, traverses a silvery pane of light that has risen from the endlessly soft, shallow waves, whitely shimmering, roseate in reflection and alabaster in transparency, whilst the line of the horizon is left more and more below. And at the same time, and just as slowly, a red glowing ball of sun that glimmers in the foam moves closer to this extremely large moon, at some point touches its upper outer edge, enters into the circle of the moon, touches from inside against that selfsame edge to glide with the same slowness, yet moving freely, across the silvery surface of that circular pane and at some point, touch from inside against its lower edge and then, still touching this lower edge from the outside, gradually leaves the moon to move closer to the horizon, gradually, almost unnoticeably yet all of a sudden, immerses itself into its space of haze and disappears. There are several forms of motion that interlink in this pictorial space: not only do sun and moon draw closer to one another in the opposing orbits of their rise and fall. In ancient harmony, the waves of the ocean surge and join in with the orbits of the planets: the more the moon rises, the more the waves pull back, and over and over again wash over the sand. Shadow-like, against the light, palm leaves stir in the wind as if to tune in with the chorale in this momentous gathering of breath. For the waves that ceaselessly wash over the sands, withdraw, only to spill over the sand again, seemingly inscribed in the cosmic harmony of the huge orbital paths of the moon and those of the sun that, as we know, embody the illusion of the actual movement of the earth. The slow rhythm of the barely noticeable motion is in alignment with the shallowness of the waves, which at no single moment ever rear up into dramatic walls of water but, restrained and soft, roll on in horizontal dynamics in accompaniment to the line of horizon. The longer one is transfixed by this sequence of images, the more it appears as if the planetary orbits and the waves of the ocean are borne and pulsated by one single respiratory movement, as if one could imagine something like a cosmos, the founding principle of which lies in the simplest of movements, namely that of aspiration and exhalation, a constant contraction and expansion. This all engulfing breath is described by Hermann Broch after his contemplation of nature at night: "The quietude aroused by the drawing of breath, the night filled with the drawing of breath and, evolving from night and tranquillity, that omnipresence, that breath of the world in sleep. The dark exhaled, became more and more structured, filled with minion upon minion, ever more terrestrial, ever more abounding in shadow. (...) And that breathing being wandered through the breath of the night, over field and garden and sustenance, they too drawing their breath; and the breath of the universe opened itself to receive the creature, opened to the Oneness of the world that, in receiving love, receives its own structure." [1]
The singularity of the work of Kimsooja, however, is that she does not illustrate such an idea as cosmic breath or universal principle that might well apply to the creation as a whole, but vice-versa, she derives it from an "almost" everyday observation. For were one to gaze like Kimsooja and her camera, one would after all be able to observe this conjunction of sun and moon, this respiratory chorale of the planetary orbits and the movement of the ocean every single month. In fact it is this fundamental principle of breathing that correlates very distinctly here with her previous work. And it is only in viewing this new video composition that the dimension of the light and sound of her former composition To Breathe (invisible mirror / invisible needle), 2005, now becomes clearer; for this work, Kimsooja composed a genuine chorale from the sound of her own breathing and performed it at the Venetian theatre La Fenice; coloured light projections switched their respiratory rhythm as they took their cue in front of the closed stage to then roam through the audience.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also relates to the performance A Needle Woman, Kitakyushu, 1999, when Kimsooja, in supine position, nestles close to a rock to become part of that breathing horizon, her back turned towards the viewer whose gaze she can thus transport conjointly with her own into the far distance. Likewise related to this work is also the complex performance of A Needle Woman between 1999 and 2001, when Kimsooja placed herself as immovable vertical axis in the midst of crowds of people who are streaming by, this one single moment of an encounter gauged in an extended time. For what we see when looking at the planetary orbits of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is indeed this, an encounter between differing time currents that meet up at one particular point.
It might well seem to be symbolic of the work of Kimsooja when, on a second wall in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video installation, she shows the slow, gleaming approach of a shallow wave as it rolls to splay out over the sand, which has become a mirror of the returning waters and reflects the glowing spot of light from the sun. Infinitely gentle, the flat wave slinks towards the mirror of light, touching its outer edge, to spill a little more over this second sun before withdrawing, only to start again. The soft gentleness of this wave as it spreads over the sand calls to mind that fabric which in Korea traditionally has served as a Ybulbo, which is the Korean word for these artistically woven and decorated cotton or silk bedcovers that can be wrapped for multiple uses as a Bottari (a bundle). For people sleep on these spreads, children are born on them; they serve to wrap up items for safekeeping or for travel and were also used to carry the ill, or to cover and transport the deceased. Not only does this reflecting imagery relate to this fabric, one of the principal leitmotifs in Kimsooja's work, but also, and above all, the motif of the mirror emerges that in like manner is one of the recurrent elements in her work and plays a major role in her installation A Mirror Woman, 2002: here, a number of lines of these traditional bedcovers were suspended across a large interior space; the walls were mirrored, so that countless fabrics were reproduced in endless space. The performance A Laundry Woman, Yamuna River, 2000, in Delhi also could be understood as the imagery of a mirror; for once again, as immovable axis of time, the artist stands on the bank of the burial river; a few miles further down the river the dead were being burnt; and some residue of the decoration that was not combustible was borne onwards by the river together with ashes of the incinerated bodies. With her back to the viewers, her gaze carries their eyes into the distance, over the river and its horizon and the comparison with the mirror is set: whereas the river will ever continue to flow, the artist becomes conscious of her own shorter span of life. A sort of leap in time is set in scene, derived from observation of the world around us and culminating in the laws of the universe.
And this is exactly what is happening when in the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the sand is washed over, when the waves roll leisurely to the shore to play with the sun mirror: an everyday perspective that in the sequence of orbital imagery becomes an insight into cosmic motion. For the longer one contemplates this pictorial space, the more it seems as if it were the most natural thing that the motion of the waves, which at some point touch the mirrored sun, is inscribed in the imagery of wandering orbits of sun and moon. What is so breathtaking about this? Is this phenomena not related to the question of boundaries, the awesome secret of dynamics and power that seem, just as with the waves, to set constraints on the motion and expansion of the moon, the sun and the earth? Time and again, Kimsooja uses her observations of the world around us to span and create her own spatiality, one that is far removed from our understanding and touches upon the enigmas of the cosmos. Hardly any mystical train of thought would seem to open the door to such abundance of imagery as in Judaism, where those dynamics of a power, which is able to dictate here and no further, is considered as one of the divine manifestations, namely Shaddai. What is so surprising about this term, which denotes the forces of equilibrium of the universe, is that the cabalistic numerical value of its letters is 314; in other words, it corresponds exactly to the Greek pi. So that the mathematical, transcendental number for the rapport between the circumference of a circle and its diameter, i.e. the very tension and expansion of the circle, reflects the ancient mystical conceptions of Shaddai. [2] These spherical movements also coincide in the work of Kimsooja with the notion of cosmic forces, when moon and sun wander across sea and sky and, spellbound, we watch how they traverse the horizon of the earth, well knowing that this horizon, like the movement of the sun, is nothing but a deception of our own restricted range of vision. In the imagery of the 4-channel video installation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the other walls, the third and the fourth, show formations of water that are immersed in the roseate silvery light of the moon as it rises at the same time as the sun sets. In one of these sequences, the camera takes a close shot of the heaving sea without shoreline or horizon. The viewer merges into the incessant breathing of the sea, as it gives forth its waves, allowing them to rise and subside in eternal circuit, as if the sea were fitted with a flywheel. On the fourth wall, shallow waves lap over some small rocks, swelling upwards to cover them, only to withdraw again to release the stones. Rather like a fixed marking, the stones appear to be parameters for the motion of the waves; here too, an encounter takes place between differing conjunctures. It is the endless repetition of the motion of the waves that gives a homogeneous sense of time; because of the persistent contraction and expansion of the ocean, the breathing of the sea, the viewer becomes susceptible to the circuit of the celestial bodies in the selfsame endlessness of their return. In this image, time is tangible; it is duration; as Bergson would say, a "homogeneous medium" which leaves behind the dimension of a succession of events. [3] It would be possible here to draw a comparison with the myths surrounding the wheel, the association of the potter's wheel, i.e. the principle of creation and the unremitting whirl of its cycles. The sole chance of escaping from this constant rotation is, as Indian and Asian sages teach, [4] by concentrating on the innermost Self. And that is why, more on a sublimed level than from a formal aspect, one could say that this work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has the strength of being the sum of Kimsooja's oeuvre — up to the present day.
However, when the works of Kimsooja consistently bring over this moment of supreme and absolute presence, this concentration on the innermost Self, then it is possible to recognise here her utter self-containment and inner repose, where quietude and meditation are more an inner position than any exceptional condition and penetrate every moment of her day. In the same way, her work is embedded in the direct, close observation of the world surrounding us.
This too is how the photographs The Sun - Unfolded were generated that strike as if from another world. Magical circles of spectral colours take concentric shape around the sun, like rays of light that unfold in concentric waves. The Sun - Unfolded is the name of these concentric circles that are reminiscent of a mandala. The distinctive element of the work of Kimsooja is, however, that these photographs are not manipulated; they were taken on the brink, as it were, by coincidence, whilst preparing the video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on Goa beach. It is paradoxical that it is in particular these photographs, which seem to complete this work; as if the sunlight itself reveals its secret and in one wave-like respiratory movement, unfolds the energy that lightens our vision day by day.
And it is interestingly this somewhat incidental creation, which, compared to the cosmic works of Kimsooja hitherto, comes full circle. For in the year 2003 she created A Mirror Woman: the ground of nowhere. In a room that was open to the sky the artist installed a 19-metre oscillating pillar composed of strips of muslin; on the ground she placed a mirror of the same diameter. Stepping through the wafting muslin, the visitor hence looked downwards to the sky and could watch the clouds and seagulls pass beneath his feet. On the one hand, just as with a glance into a well, there is the surprise effect of the world being upside-down; on the other, however, as so often in her work, Kimsooja broaches the sensitive topic of displacement, the fate of the emigrant who lives the experience that there is no ground any more under his feet, his only anchorage being within himself and in the sky. Yet in terms of the moon and the sun orbits, another dimension becomes apparent, namely that of the wholeness of the world, the idea of oneness that is found in the Egyptian writings of Hermes Trismegistos: "That which is above is the same as that which is below and that which is below is the same as that which is above". [5] This train of thought, which in its substance said that all is derived from The One and can be returned to The One, maintained its validity from the times of classical antiquity in the writings of Plato, of the Renaissance at the Medici court, through to the era of the Enlightenment and its philosophers, such as Leibniz. Again today, these thoughts are topical in the search for a systemic image of man and universe. In the eastern world of Islam, Hinduism and Buddhism, the idea of Oneness has always been at the heart of spiritual imagery. Emphasis is made of this philosophy here because in the series The Sun - Unfolded it would seem to find its icon. Peculiar as it is, these circles are identical to the drawings of Leibniz when setting down his own philosophy of The One.
The concentric waves of light from the work The Sun - Unfolded also come full circle in To Breathe - A Mirror Woman, which Kimsooja installed at the Palacio de Cristal in Madrid. From glass wall to glass wall, a mirror covered the flooring so that the construction of the high glass vault repeated itself beneath the feet of the visitor and swung in the bottomless space of doubled dimension. The entire cupola of the palace was covered with a transparent refractile coating, so that inside the endless space, a coloured light, such as found in church windows, set about its dancing twirls and doused the visitor in a thousand-fold splatter of spectral colours. Here too, the room was replete with the sound of the artist's breathing, the rhythm of which varied according to differing states of emotion, from joy, calm, doubt and anxiety through to a confidence reclaimed. The sound of breathing throws the visitor involuntarily back onto himself and his own rhythm of breathing. This is what is so unparalleled in the work of Kimsooja. The viewer is included in the pictorial space and an intimate dialogue is threaded between the viewer and the work of art; the artist knows how to render herself invisible and to transpose her own experience to the viewer. And this is precisely what happens in the oeuvre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her position at the zero point between the orbits of the moon and the sun becomes a place in the splice of space, at the dividing wall of the mirror that generates consciousness; from here, she can view the impossible, open her range of vision into the cosmos, intensify her own sense of consciousness towards transcendence. At this moment of absolute presence, an ethical dimension reveals itself; this absolute liberty demands the relinquishment of territory, the relinquishment of an identity that is defined by belonging; it calls for an awareness that concentrates utterly and absolutely on the Self.
Translated from the German by Pauline Elsenheimer.
[Notes]
[1] Hermann Broch, Tod des Vergil, Frankfurt, 1976, p.212 "Atmungserweckt die Stille, atemerfüllt die Nacht, wuchs aus Nacht und Stille das immer Vorhandene, der atmende Weltenschlaf. Aufatmete die Dunkelheit, wurde gestalteter und gestalteter, kreatürlicher und kreatürlicher, irdischer und irdischer, wurde schattenreicher und schattenreicher. (...) Das Atmende durchwanderte den Atem der Nacht, mitwanderten Feld und Garten und Nahrung, mitatmend auch sie, und der All-Atem öffnete sich die Kreatur zu empfangen, öffnete sich zur Welteneinheit, die liebeempfangend die eigene Gestalt empfängt."
[2] Marc-Alain Ouaknin, Mystères de la Kabbale, Paris, 2000, p.369 cf Gershom Scholem, Die jüdische Mystik in ihren Hauptströmungen, Frankfurt, 1980, p. 152.
[3] cf Henri Bergson, Zeit und Freiheit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Frankfurt, 1989, p.76.
[4] cf Jean Chevalier and Alain Gheerbrant, Dictionnaire des Symboles, Paris, 1969, Vol. 4, p.119.
[5] Hermes Trismegistos, "Verfertigt von von Alethophilo", 1786, Stuttgart 1855, p.51.
Jung Joon Mo │ Between Existence and Non-Existence
2008
김수자가 보따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이미 십 수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을 덧대거나 이어서 캔버스라는 사각형의 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그는 대학원 시절 천이라는 매체와 바늘과 실 이라는 전통적인 규방문화적 재료와 방법론을 차용해서 작업을 시도했다. 그의 이런 작업은 당시 한국적 환원주의라는 교조적인 미술풍토에 대한 외면인 동시에 모더니즘 조차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의사모더니스트들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는 회화의 지지체로서의 평면의 의미가 강조되던 시절 평면 그 자체도 결국은 오브제라는 결론에 이르면서 그는 평면을 버리고 보다 순수한 평면적 존재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 삶과 유리된 교양 있는 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모더니즘적 사고로 결별을 선언하고 민족주의를 외치는 사이비 좌파들의 ‘삶의 예술’이 아닌 삶의 진정성에 방점을 찍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가 모두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묻어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천이 갖는 기본 구조로서의 날실과 씨실, 우리 천의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들며 꿰매는 행위의 천과의 자기 동일성,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완전히 매료되었다."<1988년 현대화랑 도록-작가노트 중에서>
이렇게 그의 초기 작업은 천에서 시작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천은 일상적인 옷에 다름 아니었다. 옷이란 인간이 부끄러움을 알고 나서부터 걸치기 시작한 것으로 인간에게 옷이란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의미하는 동시에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대체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또 옷이란 인간에게 있어서는 삶의 조건이자 삶의 향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옷은 제 2의 피부라는 말처럼 그 사람을 대변하기도 한다. 즉 옷이란 외피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과 사람 됨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세상을 떠난 고인의 옷을 태우는 우리네 관습도 따지고 보면 옷이란 것이 갖는 인물의 대체재로서의 의미 때문일 것이다. 이런 보자기가 오브재를 이루면 보따리가 된다. 사실 보자기는 순수한 우리말이지만 우리말 외에 ‘보’(褓) ‘복’(袱) 또는 ‘복’(福)으로 불린다. 여기서 복 복자를 쓰는 경유는 보자기를 복을 싸두는 용기의 개념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 각 지방별로도 이름이 조금씩 달라서, 보대 밥부재 보재기 보래기 포대기 보자 보따리 등 다양하게 불린다. 보자기가 처음에는 무언가를 가리고 덥는 옷의 개념이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최고의 보자기인 선암사의 탁자보를 탁의(卓衣)라 부르고 갓난아이를 싸는 천을 강보(襁褓)라 부르는 것도 바로 옷의 의미가 지녔기 때문이다.
이어령은 ‘서양인은 가방을 만들어냈고 동양인은 보자기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같은 운반용, 포장용 수단이지만 가방은 한 가지 기능만 하는 대신에 보자기는 다양한 목적과 수단을 지닌다. 또 가방은 용도가 없을 때도 자체 모양과 무게를 지니지만 보자기는 접어두면 된다. 게다가 자신을 위한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정한 자기모양이 없기 때문에 어떤 모양이라도 다 지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양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두루 다 쌀 수 있다. 그래서 보자기는 그 자체가 ‘공(空)’인 까닭에 천변만화(千變萬化)가 가능한 것이다. 이런 보자기로 김수자는 세계를 싸서 보따리를 짓기 시작했다.
그의 바느질(The Heaven & the Earth, 1984)은 연역적 오브제로 이어진다. 그에게 바느질은 바늘을 가지고 천에 구명을 내어 서로를 잇는 행위였다. 하지만 바느질이란 바늘로 상처를 내는 한편 그 상처를 치유한다는 이율배반적 행동에 다름 아니다. 그리하여 바느질이란 하나의 행동이 물질이나 사물의 성격 그리고 인간의 행동이 또 같지만 경우에 따라 그 결과와 의미가 서로 다르게 인식되고 나타나는 것처럼 이중적 의미와 가치, 상반된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지게 등 민속적인 농기구들이나 사다리, 빨래걸이 등을 일일이 천으로 싸고 감는 행위<Untitled, 1991>를 통해 당시 물성에 대한 생각을 안료가 아닌 천을 통해 구현하기도 한다. 물질을 에워쌈으로서 새로운 물질로 치환시키는 이런 작업은 당시 매우 신선한 반응을 일으켰다. 이렇게 진화를 시작한 김수자의 천과 보자기는 사각의 틀을 벗어나 벽면에 부착되기도 하고 <어머니의 땅을 향해, 1990-91> 바닥에 놓이거나 모서리에 걸쳐지거나 또는 다른 오브제를 감싸면서 새로운 공간 즉 장소와 만나게 된다. 이 장소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만남이 일어나는 장소, 그리하여 본래의 의미가 사라지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또 다른 의미로 전이되는 곳, 새로운 변형의 장소를 만남으로서 보따리 또는 보자기도 관객도 새로운 환경에서 서로를 새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장소’가 된다.(꽃을 향하여, 1992, P.S. 1) 향후 이 장소라는 개념은 그의 보따리만큼이나 작품을 결정짓는 뼈대가 된다. 그리고 그의 보자기는 이 장소에 던져진 것처럼 널려있거나 전시장 벽면의 틈새에 끼워지는 형태의 전면적인 설치작업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더 이상 천을 자르고 꿰매는 일 대신에 천에 조그마한 힘을 가해서 있는 그대로의 천에 최소한의 형태를 부여하는 보따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보따리가 된 보자기는 김수자와 여행을 떠난다. 사실 한국의 보따리는 안으로는 포용과 감싸 안음인 동시에 외적으로는 배척과 경계를 동시에 상징한다. 따라서 보따리의 안은 내 식구지만 밖은 남이다. 하지만 그 안과 밖의 의미가 고정된 것은 아니다. 보따리를 푼다는 것은 정착과 안식을 뜻하는 정주를 의미하고 싼다는 것은 결별과 방랑을 의미하며 유목민의 삶을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정착하고자 하면서도 그 역마살을 어쩌지 못해 반복적으로 길을 떠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이런 보따리의 양면성은 김수자 작업의 키워드이자 핵심이다. 김수자는 보따리를 통해 일상과 예술을 때로는 동시에 때로는 분리하서 서로가 서로를 조명하기도 하고 조망하기도 한다. 이런 그의 보따리는 1997년부터 여행을 떠난다. 물론 그의 이런 유랑은 이미 1994년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1993년 <연역적 오브제-옷과 천>을 통해 자신의 신체와 옷감의 일체화를 실험했던 그는 퍼포먼스와 비디오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보따리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이런 그의 행동은 보따리의 이중적 의미를 확인하거나 실천하기 위한 실험이자 실천이었다. 이듬해 그는 관훈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전시장 밖에 옷을 가득 싼 보따리를 적당하게 쌓아 외부로 나오더니 이후 경주 옥산서원 계곡에서 이불보를 헤쳐 계곡을 덮었다가 다시 보따리에 사는 퍼포먼스 <자연에 눕다.> (1994년 경주옥산서원계곡) 를 행하면서 전통과 자연이라는 절대적인 환경 속에서 보따리로 의미 지어지는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보따리는 경주의 양동마을의 고가에서 다시 민숙마을이라는 시간과 장소 속에 설치되어 작품화 한다. 이후 이런 자연과 일체를 이루는 설치와 행위는 다시 인천의 용유도 백사장에서 다시 환생한다. 이런 그의 일련의 작업들은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니 먼 길을 떠나기 전 천지신명께 길 떠나는 것을 고하며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제의식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의 이런 유랑벽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군인으로 나라에 봉사했던 아버지를 따라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대개 군인들은 일 년이나 2년 단위로 임지가 바뀌는 지라 그 가족들까지도 한 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언제나 떠 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단촐 한 살림살이와 이부자리 두어 채를 이불보따리에 싸서 떠나면 그만이었다. 이렇게 쓸쓸한 유랑민의 가장 호사스러운 가재도구는 아마도 이불보가 아니었을까. 이불보의 그 처연한 아름다움은 짧은 시간이지만 사귀었던 친구들과의 이별을 의미하는 동시에 새로운 친구들에 대한 기대를 아울러 의미하기도 했다. 미지의 장소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라는 보자기의 안과 밖 같은 이중적 구조는 김수자의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분자이다. 이러한 그의 보자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 김수자는 본격적으로 그의 퍼포먼스를 단지 기록하는 것이 아닌 퍼포먼스와 비디오가 결합된 작품들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비디오 작품은 아마도 수십 개 아니 수 백 개의 보따리를 트럭에 싣고 11일 동안 전국을 달리는 퍼포먼스를 기록한 작품이 아닐까 한다. <떠도는 도시들-보따리 트럭 2727킬로미터>라는 제목의 비디오 작품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작품은 비디오 작품인 동시에 그의 퍼포먼스를 기록한 기록물로 그의 작품의 골간을 이루는 유랑(Nomad)이라는 개념의 집합이자 결산이기도 하다. 이 비디오 작품에서 작가는 보따리를 실은 화물차 짐칸에 마치 보따리처럼 함께 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뒷모습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보따리에 삶을 맡긴 익명의 사람들을 대신해서 그들과 여정을 같이한다. 그에게 있어 그의 몸은 움직이는 또 하나의 보따리이다. 사랑과 욕망, 겸손과 자만, 절제와 욕망, 채움과 비움, 편협과 포용, 이기심과 배려같은 상충된 모든 현상들이 천의 피부를 통해 안과 밖으로 갈라서는 접점에 그는 그들을 대신해서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움직이는 트럭의 화물칸에서 마치 석고상처럼 움직임이 없는 작가의 뒷모습을 뒤로하면서 주변은 물처럼 흘러간다. 움직이는 것은 트럭일진데 마치 주변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과연 진실일까 아니면 착시현상일까. 이러한 비디오 작업은 <바늘여인>(1999~2001)이란 제목으로 이어진다. 수만의 인파가 지나가는 도쿄와 상하이, 뉴 델리, 뉴욕, 멕시코, 카이로, 라고스의 도심에서 인파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있는 작가의 모습과 일본 기타쿠슈의 돌산위에 비스듬히 누워 안식을 취하는 작품에 이어 카이로와 멕시코와 라고스의 도로 위에서 보시를 요구하는 (2000~2001)과 뉴델리와 카이로에서 길에 작가자신이 길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2001)과 델리의 바라나시로 유명한 야무르 강가 저편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잡은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India> (2000)로 이어진다. 그리고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된 (2005)로 이어진다. 네팔의 파탄과 쿠바의 하바나, 리우 데 자네이로, 챠드의 은자메나, 예면의 사나와 예루살렘에서 예의 뒷모습을 보인 채 그들을 함께 걷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모습의 비디오를 통해 숭고한 역사와 시간의 견고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 도시가 갖는 노예무역이라는 치욕스러운 인간의 욕망과 휴머니티의 역사, 살육과 투쟁 그리고 역설적으로 평화라는 장소성과 역사성을 일깨워 주면서 아름다운 화면에 감추어진 인간의 욕망과 절제사이의 간극은 더욱 넓어지고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놀라움은 더욱 확대된다.
─ Originally Published in Shin DongA Magazine, Vol. 585, June 2008.
2008
Identifying nomadism as a condition that is inevitably linked to contemporary existence, Kimsooja draws on her own continual displacements as material that is indispensable for the creation of her work. Repeating an experience connected to her nomadic childhood, she positions herself in new contexts, in which she renegotiates the uniqueness of her identity.
Although directly tied to her biography, Kimsooja’s art does not indulge in narrative details, but instead strives to transform the subjective into the universal. Thus, whether she finds herself amid the crowd in Shanghai, New York, Tokyo, or Mexico City, or at the edge of a river or sea in any part of the world, whenever the artist appears in her work, she portrays herself from the back. Transforming presence into absence, her figure becomes a means, a door thrown open to the world’s infinite mutability.
Taking the form of videos, installations, or performances, many of Kimsooja’s works recognize the act of sewing as a powerful metaphor. Like a needle, which is capable of disappearing after having connected otherwise separate fragments, Kimsooja sees the value of her art in its possibilities for uniting individuality and multiplicity, body and spirit, East and West.
Sometimes the artist uses bottari, bundles of bedcover fabric traditionally employed in Korea, her native country. Usually employed for transporting objects connected to daily life, they embody the very idea of wandering and the multiple facets of elation and sorrow.
The word bottari also appears in a series of videos to which the work in the collection, Bottari: Alfa Beach, 2001, belongs. The video was filmed in Africa, on a Nigerian beach whose name is linked to the slave trade. The work features the inversion of the horizon line, exchanging the position of the sky with that of the sea. Seemingly simple, the reversal suggests the sudden impossibility of establishing one’s own position in the world, evoking the drama of the slaves who were kidnapped from their own land and forced to face voyages to destinations utterly unknown to them. The sense of dislocation is heightened by the lack of sound.
─ Text by Marcella Beccaria from "The Castle, The Collection", Castello di Rivoli Museo D’Art Contemporanea, published in 2008 by Skira.
2007
David Claerbout's work Shadow Piece opens the view from the inside to the outside, from the house to the street. Streets and houses shape the city. The city is a space. Michel de Certeau describes space as "a web of movable elements. It is to a certain extent filled by the totality of the movements that unfold within it. It is therefore a result of activities that give it a direction, that temporalize it." [1] This result doesn't yet define identity and unity; the city manifests itself as "a single mass of pedestrians..., a web of slapdash, out‑of‑the‑way accommodations, a traversing of your assumed own places and a universe of rented places, which are beset by a non‑place or dreamed‑up places." [2] Our concepts are not clear. Do place and space stand in relation to each other like house and place to the street, like standing‑still to going on, like the closed to the open? Does the place at first seem to us to be something stable and motionless, only a point at which we come to a halt and where we linger? But as soon as something happens at the location and with the location, i.e., a movement, it expands, becomes a space that leads to other spaces. Places have the most diverse functions. They divide up the protected area I can retreat to. They are also public zones that I share with others, places where I meet confidants just as much as places that are transitory and anonymous. Places can be places of passage, transit rooms, railway stations, ticket offices, where people pass each other, where they disperse to other parts of the city via a network of streets. The city is not merely a sequence of places and not a static geometry of streets. It is, repeatedly, a newly created movement in time and space, in which the different processes of walking come together: the goal‑oriented, or meandering and strolling walk, walking around, passing‑by, lingering. The city happens. In a fancy‑free stroll through Paris, the French situationists à la Guy Debord created another, open structure of experience, i.e., their own changing topography of the city beyond any fixed plan. The activity of pedestrians who take over the city space generates an urban network, provides the city with energy and determines its velocity. The reality of growing cities encompasses both the sedentary and the nomadic. It's a reality that can bear me up or isolate me. A café, a street, a quarter are familiar to me, but at the next corner I am already a stranger. The city is like an organism, which is held together in some way or other that I cannot really make out. In order to move around in the city, I have to constantly tear up my roots; in walking, I disengage myself from a place and fail to reach it. Some live in the city; they remain, they wait, have in fact not arrived, remain underway.
In her four‑channel video installation A Needle Woman from 2000‑2001 (Fig. p. 110/111), Kimsooja stands with her back to the viewer as a stationary, vertical axis in the heart of four metropolises: Mexico City, Cairo, Lagos and London, in a stream of people who meet her and go past her. At first the viewer takes in the waves of intermingling passersby, the continuum of urban life, into which the artist has plunged. In the midst of the mass movement, the artist appears, in her own words, to be a "barometer", a "witness", a "compass", a "surveying pin" that records the different cultures. [3] Like a pin, she pricks into the colorful social tissue of the cities, sews different societies together. [4] Kimsooja sees the pin as an extension of her body; she overcomes in‑between spaces and disappears again. The thread remains as a binding and mediating trace of the ghost in the tissue's weave. [5]
The fact that people always move in the same way seems to blend cities into a global unconcern in which the artist surfaces at random, alternating locations, but a closer look also shows peoples' social identities in differing hierarchies, classes, relations to each other, different reactions to the artist that are noted or avoided and ignored. In London's cosmopolitan bustle, people walk around self‑engrossed, unreceptive, single‑minded. In Lagos they react with curiosity, laughter, irritation. In one city, Kimsooja becomes transparent, almost vanishes; in the other she appears as a counterpart. She is both present and absent, part of the cities' space and time and outside of that space and that time. She obviously stands in the way as a physical impediment and yet her physical existence is ignored. She meets the others and is isolated; she is divided from the life of the others and in the same way integrated in the passage of that Iife. The viewer looks at the back of the artist, takes up her position and also that of the people who go past her, tries to imagine Kimsooja's face that radiates self‑confidence and the safety in staying within the flow of passing life. Even when she is a perceived object, her inner nature remains closed to the others. She is the observer as such, not only of what happens around her, but also of the processes that go on inside her.
The speed of the video has been reduced by 50 percent. By means of this prolongation, time, the artist's encounters, the flow of people, stationary and fleeting time -all are more intensely experienced. The artist is the indicator of time and space; both make up a unit, both are physical. "Although, when I place my motionless body in space as a vertical axis, I create a form of timelessness, I simultaneously open up another movement: it is a vertical movement directed inwards; time in the form of consolidation. We cannot separate the coexistence of time and corporeality and therefore of spatiality; they will always belong together." [6] A Needle Woman thus transmits three perceptions of time, standing still in the body of the artist in which past, present and future meet, which, in comparison and despite the slowdown, incorporates the visible speed of the other passing figures plus the perspective of the viewers, who stand respectively for real‑time.
Kimsooja, on the one hand, opposes the acceleration of life; her motionlessness highlights the floundering, empty movement and temporal mechanism of the human stream around her. But it is also possible to see this the other way around. In this case the unceasing, endless wave of people is the stationary and enduring part and the artist is the existence that is in motion, will go on, pass away, decompose and disappear. Kimsooja speaks of the finitude and infinity of being. We are in time and timeless; we are transient and without any durable substance and thus also have access to and an experience of delimitation, of transcendence or going beyond time.
Although the nomadic lifestyle is a characteristic phenomena of this era, it could also be one's choice; we can still live without moving around much and be rooted in one's own place. Human curiosity and the desire for communication expands its physical dimension and happens to control human relationships and the desire for possessions, and pursuing the establishment of a global community, which includes the virtual world. But a true nomadic life wouldn't need many possessions, or control and it doesn't need to conquer any territory; it's rather an opposite way of living from a contemporary lifestyle, with the least amount of possessions, no fear of disconnection, and being free from the desire of establishment. It is a lifestyle that is a witness of nature and life, as a kind of process of a pilgrim. Nomadism in contemporary society seems to be motivated from the restless desire of human beings and its follies, rather than pursuing true meaning from nomadic life.
[Notes]
[1] Kimsooja, in: Art and Context, Summer 2006.
[2] Michel de Certeau, "L'invention du quotidian",.
[3] Ibid.
[4] See Kimsooja im Gespräch mit Doris von Drathen, in: Kimsooja. Künstler. Kritisches Lexikon der Gegenwartskunst, edition 4, no. 12, 2006, p.14.
[5] Ibid.
[6] See the statements by Kimsooja in an interview with Nicolas Bourriaud in: Kimsooja. Conditions of Humanity, cat. Musée d'art contemporain de Lyon/museum kunst palast, Düsseldorf 2003/2004, p. 56.
2007
A prominent subtheme resonates throughout the works in "Listening Awry" — the contrast between the modalities of sound and vision. In Kimsooja's Mandala: Zone of Zero (2004), this contrast assumes transcultural, historical, and metaphysical dimensions. Unlike the other works in the exhibition, one first experiences Mandala indirectly, as a faint light softly diffusing around the edges of a pair of partitions. Visitors follow the glimmer through a dim transitional space to then enter a cloistered, alternative realm. The main feature is a radiant, vividly‑hued jukebox, outfitted with mirrored tesserae and flashy ornamentation, and positioned squarely to face the beholder. Carpeting hushes one's footsteps, and the overall calming effect is enhanced by serene, twilight blue walls engulfing the space, lit solely by the jukebox's incandescence. Incongruously, a soundtrack of Tibetan Buddhist, Gregorian and Islamic chants resonates in the room, providing a sacred vocal counterpoint to the visual flamboyance of the jukebox. The disparity between sound and vision could hardly be more extreme or more succinctly composed. Eastern vs. Western cultures, traditional vs. postmodern sensibilities, spiritual vs. materialistic pursuits — these and other polarities suffuse Kimsooja's installation and create a form of listening awry based on paradoxical juxtaposition.
In many ways, the jukebox epitomizes the materialism of American culture. Recalling the postwar optimism and economic surge of the 1950s, the jukebox serves as an icon for youthful, leisurely distraction and ephemeral popular culture. A conspicuous fixture of bars, diners, bowling alleys and other socializing venues for the past century, it still maintains a cultural relevance in the digital era in the figure of the "celestial jukebox" — the utopian repository of personal choice and universal variety. Either as a nostalgic cultural artifact or futuristic ideal for the music industry, the jukebox functions as both the object and enabler of desire. With its flickering reflections, gaudy colours, streaming bubbles, and roulette‑wheel appearance, Kimsooja's jukebox, however, would seem to be one of the last items to be associated with spirituality. Even as the readymade stands alone, disconnected from its complementary cabinet of records or CDs, hovering transcendently, its link to the superficialities of consumer culture and the escapist pleasures of mass entertainment renders it seemingly antithetical to introspection.
Yet, for the artist, the jukebox hears an uncanny resemblance to the geometric schema present in a number of religious traditions, specifically Tibetan Buddhism and Hindu Tantrism. Mandala, the Sanskrit term for "circle," is a sacred diagram that facilitates concentration for spiritual initiates. Symbolically, it can depict the figure of one or several deities, represent the stages of consciousness that adepts pass through on the way to enlightenment, as well as delineate an outline of the cosmos. The formal correspondences between the jukebox and mandalas are striking: both employ hands of concentric circles, a central focal point, and four equidistant markings or "gates" at the cardinal points. For Kimsooja, who moved to New York from Korea in 1998, the similarities were remarkable, if not also painfully ironic. Contrary to the discipline and profundity embodied by the mandala, the jukebox's visual cacophony is designed to amuse. Its entrancing spectacle may inspire stillness to some degree, though probably due more to hypnosis than meditation. Nevertheless, the overall effect of the lights, carpet and enveloping blue walls (blue being one of the conventional signifiers of divinity) conveys a palpable sense of tranquility and sanctuary.
The chanting of monks from three major world religions resound through the space and counteract the jukebox's glitzy presence. At times sonorous, at other times discordant, the chants go in and out of phase as each becomes dominant at various points in the mix. The deep, rumbling bass of Tibetan monks forms a near‑continuous drone upon which the mid‑range polyphonic melodies of a Gregorian choir glide over. At a higher register, the ecstatic vocalizations of a muezzin calling the faithful, along with the ringing of bells, pierce through to intensify the devotional collage. The outpouring of these traditional, centuries‑old chants from a commercial jukebox — instead of the expected pop, rock, hip‑hop, or country & western tunes — not only reconceives the mechanism but also the character of the museum space and those within it. No longer a neutral site for aesthetic contemplation, Mandala charges its surroundings with the mystical energies said to be evoked by the recitation of mantras, prayers and holy texts.
Which side prevails in this "zone of zero," as the subtitle of the piece indicates? Does the simultaneous presence of different belief systems bring forth a greater unity or effect a canceling out? Are the chants reduced to the level of commercial top ten hits, in essence nullifying their esoteric meaning, or is Mandala an object cleverly adapted for surreptitiously inserting spiritual content into a materialistic culture? In the general context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East and West, the artist considers their two opposing sensibilities to be engaged in a dialectic, one that brings together "all basic phenomena of art and life":
Eastern thought often functions as passive and reserved expression: invisible, non‑verbal, indirect, disguised and immaterial. Western thought functions more with issues of identity, controversy, gravity, construction and materiality. The process is finally the awareness and necessity of the presence of both in contemporary art and life. It is the Yin and Yang, a co‑existence that endlessly transforms and enriches.
But more than just a confrontation between consumerism and devotion, Mandala's creation after the invasion of Iraq informs its significance. Like her audio piece Letter from New York (2001), which collages together the chanting of Tibetan monks along with police sirens and jet engines that allude to the World Trade Center attacks, Mandala emerges out of a climate of crisis. The invasion of Iraq has been questioned by many for its dubious rationale and disastrous consequences for the Iraqi population and security around the world. The artist, disturbed by the U.S.'s unprincipled foreign policy and subsequent catastrophes, sought to identify its root causes, which she located in the materialism at the heart of the American ethos. Given this social and political context, Mandala provides both a critique and an antidote. In Kimsooja's meditative space, conflicting sonic and visual experiences combine, antithetical cultural practices interpenetrate, and polarized spiritual and secular sensibilities co‑exist to offer visitors the chance to contemplate the possibility of an improbable, but all‑too necessary, harmony within difference.
A striking aspect of the works discussed above is the degree to which the body is implicated. As Richard Leppert notes, a central paradox of sound lies in its contradictory semiotic status — while the product of (sometimes intense) physical activity, it nevertheless serves as a paradigm of abstraction and ephemerality. Such foregrounding of the physicality of sound's production, as well as its reception, becomes another subtheme in the practices associated with listening awry. Tse, for example, plays the cello and inserts her own body into the dialogic relationship with the natural landscape. Sierra, meanwhile, enlists buglers to stand and perform a twenty‑four‑hour aural fusillade. The simple fact of their bodily presence aggravates the metropolitan security apparatus and confirms the piece's provocational significance. For Marclay, the body is the endpoint for a series of translations that originate in music. However mute, the body conveys a version of musicality twice‑removed via gestural performance. And in the case of Kimsooja's enveloping installation, the bodies of viewers themselves become sound resonators within the sanctuary‑like space. An emphasis on corporeality in these works complements the notion of embeddedness informing "Listening Awry": The embodiment of sound correlates with the embeddedness of sound in social practice, thus completing an overall circuit between listening and being, self and other, the individual and society. Through the din of trumpets, chants, echoes, and noisome gestures can be heard the knocking of the embedded against the embodied as history, affect and politics are brought forward for artistic reflection and critique.
─ Jim Drobnick's text is excerpted from his essay in Listening Awry, Hamilton, ON: McMaster Museum of Art, 2007.
© Jim Drobnick, 2007. No part of this essay maybe reproduced without the author's permission.
2006
Kimsooja (Taegu, Korea in 1957) is one of the most acclaimed Korean artists in the international artistic panorama. Currently, she lives and works in New York. Her works have been exhibited at biennials such as Venice, Whitney (New York), Lyon, Kwangju (Korea), as well as in the most relevant museums around the world. In our country, she has participated in important exhibitions such as Mujeres que hablan de mujeres included in the program of Fotonoviembre (Tenerife, 2001), PhotoEspaña, Valencia Biennial in 2002, MUSAC (2005), among others. She makes installations, photographs, performances, videos and site specific projects, the most recent of which was presented in Madrid's Palacio de Cristal: To Breathe: A Mirror Woman. Not long before, she had presented another site-specific project at the Teatro La Fenice in Venice. Since 1993, one of the most distinguishable elements in her work are the bottari, a kind of bundle made of traditional Korean lively colored bedcovers, which is often used for packing old clothes. Nomadism is a key subject for her, but she also tackles issues such as the relation with the other and the feminine roles, revealing not only the importance of the human being in the chaotic world we are living in but also her loneliness and fugacity.
Oliva María Rubio
Studying your work over time, we can say that it is a very singular work. Nevertheless, you are always dealing with present issues, such as nomadism or the relationship with the others. What are the sources of your work?
Kimsooja
I guess the reason why my work has been engaged to present issues, regardless of a continuous singular context, is because I've been questioning old and fundamental issues on art and life. All human activities and problems come from the same root, which are old questions that have no answer, and endlessly repeat in history in one form or another. When we are planted in our own root, one can grow naturally from one's own source without trying to search another resources branches of temporary issues come out of this root in the end.
Oliva María Rubio
Has this singularity anything to do with an education such as yours, where Asian ways of thinking are mixed with the Western philosophy Christianity, Zen Buddhism, Confucianism, Shamanism and Taoism?
Kimsooja
In general, the complicated religious background in Korean society might confuse one's identity rather than keeping it in singular mind. It seems to be more connected with one's personality and individual history rather than social tendency. I can say that I wanted to be firmly rooted in my own culture and my own perspectives. I noticed many Korean artists in my generation were imitating and easily adopting Western practices and philosophies without question, just by reading magazines and books. At that time, in the late 80's, I decided to stop reading for almost a decade. This allowed me to question, by myself, issues on art, and to pull out ideas from my own self, rather than exterior resources. Another reason I stopped reading books was that there were so many things to read in the world besides books and magazines life and nature. My mind was always active reading all of the visible and invisible world.
Oliva María Rubio
The bottari and the Korean traditional bedspreads with lively colours are characteristic elements of your work and have a strong presence in your installations. What do these elements represent for you?
Kimsooja
There are two different dimensions in my use of traditional Korean bedcovers: one is the formalistic aspect as a tableau and as a potential sculpture. The other is as a dimension of body and it's destiny that embraces my personal questions as well as social, cultural and political issues. The bright colourful bedcovers that celebrate newly married couples for happiness, love, fortune, many sons and long life are contradictory symbols for life in Korean society, for a country that is going through such a transitional period: from a traditional way of life to a modern one.
Oliva María Rubio
Despite the fact that you say you are not political matters, you have created several installations or pictures that are clearly related to political or social events, such as "Bottari Truck in Exile" (1999), presented in the 48th Biennial exhibition of Venice, or "Epitaph" (2002), a photograph taken after the September 11th attack against the World Trade Center in New York. What are the reasons for you tackle these subjects?
Kimsooja
My practices were started solely on my personal issues and structural questions on tableau, which can be seen in the beginning of my earlier 'sewing' work and my 'wrapping' series of Bottari. However, my artwork has gradually embraced basic human problems, which have recently become a bigger part of my questions and concerns. My own vulnerability and agony on life had a presence in my earlier work, which was an important part of the healing process for me to survive. It then transformed naturally into 'compassion' for others, and turned to the healing process for others. All of my works that relate to political issues and problems originate from 'compassion for the human being', people who suffer by violence, poverty, war and injustice, which often stem from individual problems and conflicts. I would say one can categorize some of my work as a political reaction, but it is more from concern on humanity, rather than as a direct political statement as an activist.
Oliva María Rubio
Between 1999 and 2001 you created one of your most relevant video installations, "A Needle Woman". A product of performances where you are the protagonist, always in the middle of a crowd in Tokyo, Shanghai, New Deli, New York, Mexico, Cairo, Lagos and London. For the 51st Biennial exhibition of Venice (2005) you did a new version traveling to another six cities: Patan (Nepal), Havana, Rio de Janeiro, N'Djamena (Chad), Sana'a (Yemen) and Jerusalem. Taking into account that many of these countries undergo serious problems, have you ever felt that something could happen to you? Which has been the strongest experience you have lived through while you were doing these performances?
Kimsooja
In terms of the performance itself, the A Needle Woman performance I did in Tokyo (1999) was the strongest experience I had. It was the first performance of the series. I was walking around the city with a camera crew to find the right moment and place where I could find the energy of my own body in it. When I arrived in the Shibuya area there were hundreds of thousand of people sweeping towards me, and I was totally overwhelmed and charged by the strong energy of the crowd. I couldn't help but to stop in the middle of the street amongst the heavy traffic of pedestrians. Being overwhelmed by the energy of the crowd, I focused on my body and stood still, and felt a strong connection to my own center. At the same time, I was aware of a distinguishable separation between the crowd and my body. It was a moment of 'Zen' when a thunderbolt hit my head, as I continued to stand still there, and I decided to film the performance with my back facing the camera. During the performance there were moments I was conscious of my presence, but with the passage of time, I was able to liberate myself from the tension between the crowd and my body. Furthermore, I felt such a peaceful, fulfilling, and enlightened moment, growing with white light, brightening over the waves of people walking towards me.
Oliva María Rubio
The first series of "A Needle Woman" was focused on encountering people in eight Metropolises around the world. The second version, made in 2005 with the same title, was focused on cities in trouble, from poverty, political injustice, colonialism, religious and political conflict in between countries and within a country, civil war, and violence.
Kimsooja
I chose the most difficult cities in the world, although I couldn't make it to a few of the cities I wished to visit, such as 'Darfur' in Sudan, and 'Kabul' in Afghanistan. It was one of the most difficult trips I've ever experienced in my life. The difficulties with this series of performances were more about the conditions of traveling, rather than during performance time.
When I first visited Nepal, the country was in a state of emergency, and there was no phone service in between the cities and even countries, with no internet connection during most of my stay. Foreign ambassadors were being called back to their own countries, gunshots were heard from different parts of the country while traveling, and armed soldiers were occupying every corner of the streets in Kathmandu. Even in my video, there's a scene with armed soldiers passing by. To be able to travel to Havana in Cuba, I had to travel through Jamaica, as there was no direct airline service, and no collaboration whatsoever between the US and Cuba. In Rio de Janeiro, Brazil, I went to a huge favela area called Rocinha, where I heard a series of gun shots from one mountain side to another, as if they were shooting directly from the back of me. I was standing on the roof of the central part of the area surrounded by mountains of poverty although local people considered it to be signals between the drug dealers. I also saw a number of young men carrying guns in the middle of narrow alleys to control the people in that neighbourhood. I also witnessed more poverty in N'Djamena in Chad, which is known as one of the poorest countries in the world. I witnessed conflicts between Yemen and Israel. I could only travel from Sana'a in Yemen to Jerusalem via Jordan, as there's no direct airline service in between these two countries, and the Yemeni people wouldn't allow me to enter their country if I was traveling from Israel.
Oliva María Rubio
When you are in these types of situations, there is no room for fear.
Kimsooja
People believe we live in an era of globalism, which allows us to travel freely and that we are connected to anywhere in the world, but in fact, it is not true, and the world is still full of discrimination, hatred, and conflict.
When I finished these pieces, in slow motion, they turned out to be quite similar from one city to another, regardless of the problems within. We have a very shallow perception of ourselves in terms of our notion of time, and how we perceive an extreme situation in our own time frame, but in fact, all of these cities could be seen as a similar situation in a larger perception of time.
Oliva María Rubio
According to works such as "A Needle Woman" or even according to the symbolism of using the bottari, travel and changing places is very present in your career, both personal and professional. Could we say that the contemporary man is a nomadic being that is forced to go from one place to another without a rest?
Kimsooja
Although the nomadic lifestyle is a characteristic phenomena of this era, it could also be one's choice. We can still live without moving around much and be rooted in one's own place. Human curiosity and the desire for communication expands its physical dimension and happen to control human relationships and the desire of possessions, and pursuing the establishment of a global community, which includes the virtual world. But a true nomadic life wouldn't need many possessions, or control, and it doesn't need to conquer any territory; it's rather an opposite way of living from a contemporary lifestyle, with the least amount of possessions, no fear of disconnection, and being free from the desire of establishment. It is a lifestyle that is a witness of nature and life, as a kind of a process of a pilgrim. Nomadism in contemporary society seems to be motivated from the restless desire of human beings and it's follies, rather than pursuing true meaning from nomadic life.
Oliva María Rubio
During these past years you are going for site-specific projects. You have just finished one at La Fenice Theatre in Venice, and now this one in Madrid. What is the most attractive thing about this kind of projects?
Kimsooja
I wouldn't say site specific installation projects are more intriguing for me than other projects such as video, performance, and photos, as these were also site specific projects from my point of view. The difference is, for this type of site-specific installation, there's a solid question already existing, which I am interested in pondering. But the answer may raise another question to the audience. Other projects, such as video, performance or photos, are those I am questioning from myself, my own problems either in art practice or life, and the questioning goes both ways, to myself and to the audiences. I am interested in problems, questioning, and responding to the conditions of the site.
Oliva María Rubio
Once having seen the results of your project for the Palacio de Cristal (Crystal Palace) in the Retiro Park in Madrid, "To Breathe: A Mirror Woman", a work that consists of an intervention in the palace [a diffraction grating film that covers all the crystal part of the building and a mirror on the ground that works as the unifier and multiplier of the space and an audio with your own breathing from the performance "The Weaving Factory" (2004)], have your expectations been met? Is the result very different from your initial idea?
Kimsooja
Not totally, but only in terms of some technical issues. I've never used the diffraction grating film in my work before, and I'd been experimenting with its effects on a small scale model. The effect coming from the Crystal Palace, with actual sunlight, and its degree and direction, created a much more spectacular environment than from the model. I could envision the effect of the mirror floor and the effect of the sound within the Palacio de Cristal, as I had already experimented with both mirror and sound in other installations.
Oliva María Rubio
Considering that this new project for Crystal Palace is both a logical continuation and a new step in the development of your artistic career, what does it mean for you?
Kimsooja
From this project, I discovered 'Breathing', not only as a means of 'sewing' the moment of 'Life' and 'Death', but 'Mirroring' as a 'Breathing self' that bounces and questions in and out of our reality. Evolving the concept from my earlier 'sewing practice' into another perspective, 'Breathing' and 'Mirroring' as a continuous dialogue to my work was the most interesting achievement of a new possibility in experimenting with waves of light, sound, and mirror as a result of the space of emptiness.
Oliva María Rubio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this installation and other previous needle and sewing works?
Kimsooja
To Breathe: A Mirror Woman is related to my earlier practices such as 'sewing', 'wrapping', and the question of 'surface', as well as the notion of 'reflection', that was always a part of my work in the metaphysical sense. Interestingly, a mirror can be another tool of 'sewing' as an 'unfolded needle' to me, as a medium that connects the self and the other self. If 'mirroring' can be a form of 'sewing the self', which means questioning the self, and connecting the self, 'breathing' is, in its dimension of action, a similar activity of 'sewing' that questions our moment of 'Life' and 'Death'. In mirroring, our gaze serves as a sewing thread that bounces back and forth, going deeply into oneself and to the other self, re connecting ourselves to its reality and fantasy. A mirror is a fabric that is sewn by our gaze, breathing in and out.
Oliva María Rubio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A Needle Woman" and "A Mirror Woman"?
Kimsooja
Again this goes back to the idea of surface, a continual question. A needle / body, which questions and defines the depth of fabric / surface, and a mirror that embodies the depth of body and mind, defining our existence, through a needle. I am standing as a needle to show A Needle Woman video as a mirror of the world, to question my own identity amongst others. At the same time, I am standing as a mirror that reflects the world, gazing myself from the reflected reaction the audience bounces back to me. A needle is a hermaphroditic tool that can be a subject and an object, and this theory can be applied similarly to a mirror. In that sense, I can consider a 'needle' as a 'mirror', by definition and a psychological healing tool, and a 'mirror' as a multiple and unfolded needle woven with the gaze, as a field of questions.
Oliva María Rubio
This intervention in the Palacio de Cristal is visually very beautiful but one may even feel some kind of anguish or have the feeling that he or she is in prison. How would you explain this effect?
Kimsooja
People may feel as if they are in my body, as the Palacio de Cristal seems to breathe, or in a cathedral bathed with stained glass, or in a space of fantasy, while walking on a mirror floor that feels like a liquid surface. Hearing my breathing and humming within the space might cause the audience to hold its breath, and they may become conscious of their own body and breathing. Maybe this feeling of being imprisoned comes from the prison of ones' own body?
Oliva María Rubio
Inside and outside, life and death, disruption and joy, anguish and delight, uncertainty and acknowledgement, these are aspects of feelings we feel when we are inside the Palace. Why are you interested in this idea of opposites, and duality?
Kimsooja
From the beginning of my career, back in the late 70's when I was at college, I was already intrigued by the dualities existing in the structure of the world, that are the combination of 'Yin' and 'Yang' elements. I've been looking at all existing things and the structure of the world from this perspective. An example from my earliest sewn piece Portrait of Yourself, 1983, and also The Heaven and The Earth, 1994, have vertical and horizontal elements, or a cross shape. I've been establishing my structure of perception and creation through this perspective. There was a series of assemblage based on random shapes in my work from 1990, such as Toward the Mother Earth, 1990-91, and Mind and the World, 1991, where 'duality' as 'yin' and 'yang functioned as a hidden structure. On another level of the surface, there comes another layer of yin and yang relationships, and this phenomenon goes on and on in each dimension of structure.
But this doesn't mean that I was doing art mathematically or logically most of my works were created by the most irrational decisions and a sudden intuition rather than building up theories or logic itself, and I have always believed in the logic of sensibility within the process of creation. Duality can be one way to start understanding existences of the world, although there are so many different factors that surround and define the structure of the world. When the creation process starts, this duality theory doesn't work anymore, and it goes beyond the logic, and leads it's own life and process.
Oliva María Rubio
Your works aspire to capture the whole of the human experience: the body and the soul, the mind and the body are appealed to in the same extent in your creations. Why is it so important for you to make art a nothingness that experience of the body and the senses, as well as of the mind and the imagination?
Kimsooja
Ever since I was aware of the totality of the world, I had to work on it, and it naturally involved different aspects of ways of existences, structure of metaphysics, and that of frustration and fantasy. That's what I know, what we live, and what I can express.
Oliva María Rubio
Throughout your career, we can see that your new pieces refer to other previous works. Each of your new installations has a trace, an element, something that relates it with previous works. Do you conceive the whole of your artistic career as a kind of 'work in progress'?
Kimsooja
For me, there is no concept of a completion. I am just moving towards a future where I find a better answer than the previous answer. This is totally against commercialism, as the art market requires a finished object to be sold and to collect. My work is still evolving and unfinished, and is just a process.
Oliva María Rubio
And in this sense, where are you heading to? What is your ambition as an artist?
Kimsooja
If I have an ambition as an artist, it is to consume myself to the limit where I will be extinguished. From that moment, I won't need to be an artist anymore, but to be just a self-sufficient human being, or a nothingness that is free from desire.
─ This text was published in Art and Context, Summer 2006.
2006
Kimsooja (b. Taegu, Korea, 1957) is a world-renowned artist, who has been living in New York since 1999. She has been included in many important contemporary art publications throughout the world, and has been exhibiting her works in Asia, America and Europe. Her work includes installation, performance, video and photography. Nomadism has been a constant in her life since childhood, and has also become a strategy that she has been using continuously to articulate her artistic work — the imperatives of the ego, passion and desire; detachment from material, and relationships with other people, are a continuous search throughout her artistic creations. The main themes she deals with are movement, totality, time and space, life, death, and the ephemeral aspect of the material world. Different interpretations of her work offer a wide spectrum of readings and several contexts — from minimalism, feminism, nomadism, buddhism, to aesthetic and political ideologies. Nevertheless, the main purpose of her work is a mode of artistic creation, her belief in intuition, and reaching balance. Compassion is an element of Kimsooja's work that manifests also as a response, not in terms of direct political activism, but as conscience and conscious presence; as witness. Kimsooja's work was presented to Slovenia at the last year's exhibition The Fifth Gospel in Celje.
The following text is from a conversation with the artist Kimsooja, and the intense personal experience and subsequent reflection provoked by seeing her video works. The questions that followed the primary impulse was how did the artist, with seemingly minimalistic means, succeed in opening up a new perspective for the viewer, and at the same time awaken human consciousness in a remarkably simple and fascinating way. When we are standing in front of Kimsooja's artwork, we are actually confronting ourselves.
Petra Kapš
A One-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 is the first statement on your website project. At first sight, the notion of anarchism seems to be in complete contrast with your work. On the other hand, your activities in the Western art world and society in terms of minimalism, detachment, reduction of the ego, your respect to nature and all living beings and unmindfulness of self-image, they all work subversively to that first impression.
Kimsooja
What I made in this comment on my website, 'A One-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 was a symbolic cultural statement in respect to naming an individual who lives as an outsider from one's own society, as a spectator rather than as an activist who practices anarchism in an actual political context.
Petra Kapš
In public you appear with the name Kimsooja, the identity of which is explained on your website with the following words: "A one word name refuses gender identity, marital status, socio-political or cultural and geographical identity by not separating the family name and the first name." Can your intentions in the art world also be indicated with these words?
Kimsooja
I was actually more interested in the possibilities the art world has, which allows universal language and diversity. This is in contrast to my own limited socio-cultural daily life context from Korea — to be more independent as a human being out of hierarchy, to question and open up a new relationship to the society.
The symbolic meaning of the different ways a married women's name appears in different societies is quite interesting — married women's names in Western society follow after their husband's name, and that of Asian women's follow after their own father's name, both of which eventually keep the male dominant family name. This gives an interesting contrast and level of perception of what degree and hierarchy those two societies are similar as male dominant societies, and different in terms of women's status. This idea of putting my first name and last name together suddenly stimulated my desire to be free from any of social structures, and expanded my imagination to obtain an absolute independency as a human being, within the art world at least. Different from a person's name in daily life, the name presented in the art world usually represents no personality or emphasis of their gender, but functions more as a symbol of a specific art practice as a character. However, it was a symbolic gesture for me to explain my social, cultural burden from Korean society, from which I wished so much to be liberated.
Petra Kapš
Upon entering your website, the user reads your words: "I was hoping for an ideal society and relationship among people in the art world in which we could share real opinions with honesty, sincerity, dignity and love of art and life. I hope that my website project will not just introduce my activities but can bring more articulated discussions and criticism on art and the world." The site was published on 14 July 2003 — what are your experiences with this appeal now? Also, what do the individual responses to your 'Action Two: It Is Not Fair' mean to you?
Kimsooja
It is quite a delicate issue. Around the time when I decided to start my website, I was very disappointed by the dominate big international biennale scenes. Although I've been in many of these international events, and have had both positive and negative experiences, in general these international biennale scenes show very little respect for art and the artists. They seem to focus more and more on the power structure of the art world, and their specific political alliances with the artists and institutions, rather than the quality of the work or it's meaning. The peak of this phenomenon has past, and there seems to be an effort to make some balance between the role of artists and that of curators. There must be a balance between the creator and the organizer, and neither should empower the other, but instead communicate and encourage each other in equal amounts. Although both artists and curators have different attitudes and perspectives, in the end we always learn from each other. This is just one example of the varied relationships between people that I wished to address.
The 'Action Two: It Is Not Fair' project was started to give an opportunity to question the notion of 'fairness' as it is related to this phenomenon in the art world, but rather than narrowing it only to the art world, I opened up a broader discussion. My position in this project functions as a 'witness' and as a 'questioner' rather than an answerer. All of the responses I've gotten gave me positive and negative questions and perceptions on the human relationship towards other humans, society, and to themselves. From the diverse and specific perspectives I've received, I have arrived at a fine balance of fairness on a broader level beyond the individual statements.
The fundamental creative principles, processes and concepts of Kimsooja's artistic articulation are continuously present since the beginning of her career. At first, she was mainly focusing on painting, specifically on questions about the surface. She created paintings out of pieces of fabric, combining sewing, painting and drawing. Her paintings were made of used fabric, rags, and clothing. The first clothing that she incorporated into her paintings were owned by her grandmother. She later started to collect used clothing from anonymous people, and to explore the their invisible presence in the fabric. From the early 1980's, sewing became the essential principle of her artistic process — sewing as a monotonous repetition of movement ... the possibility of a meditative gaze into the human interior (self) ... a fluid journey of mind and spirit. The processes of sewing, covering, and wrapping are tightly connected to everyday activities (mostly female activities in Korean, as well as in Western, tradition). Putting them into an artistic context creates a balance between the artistic procedures and the creative elements of everyday activities. The meditative process hidden beneath a common marginal act of sewing exposes the performative process of the reduction of the ego, already in these early works. With meditative means, the artist is reaching a certain state of consciousness, where she focuses and eradicates herself, and she simultaneously creates space for the viewers to enter. It can be present in the imprint of the body left on the used fabrics, the smell of anonymous people on clothing, and on bedcovers. This space is also 'the void' through which the viewer enters. By focusing on herself, she reaches towards the point where the ego slowly disappears. Kimsooja is creating the void, an empty space through which the viewer can reach the balance between human relationships and life.
With her residency in New York at the beginning of the 1990's, her experience based on living and working in Korea intermingled with that of a different view over her own artistic practice and cultural context in New York. Her artistic point of view was radically changing towards re-questioning cultural, social and political Korean traditions.
Petra Kapš
In talking about your work, we can use a few key words: journey (nomadism), detachment from matter or attachment to human being, existing beings, time, life, death, mobility as a necessary condition of life, totality. What is your relationship to these words?
Kimsooja
I guess all these words are related to the destiny of our existence.I am questioning my own destiny in this world in various paths, but reaching to the totality of it.
Petra Kapš
Your works express the relationship of life and art in a very special way. Is this the prime notion for your artistic engagement - art as a tool for understanding the mobility of life? In Martin Heidegger's conversation with Shinji Hisamatsu we find a very interesting word, geido — a 'path (journey) of art', this word comprises of a deeper relation to life, to our own being. It is a word for art that has substantial importance for existence.
Kimsooja
I must say, the result of art making which we call 'art work' is a secondary thing for me. The most important part in making art for me is, "questioning life, self, the other, and the world", and finding my own path for answers, which leads to another question, as always. In that sense, I find geido, as mentioned by Shinji Hisamatsu, to be a very coherent interpretation.
In the Korean tradition, it is quite common that bedcovers are received by newlyweds as a gift. The richly embroidered fabrics with symbolic patterns are filled with familial and social desires, expectations and demands. The bedcover is wrapped around the body in various life circumstances (among others, during birth, rest, sex, illness, death). In the eyes of a Western observer, this piece of fabric is an aesthetic object of provocative, intensely radiant colours. Colour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constants in Kimsooja's work, contextually related to Korean tradition and Western modernism. The bedcovers that the artist includes in her work are discarded bedcovers, that have all served their time. The echos of a once present body remain as traces of smell and form.
By the beginning of the 1990's, Kimsooja used bedcovers as bottari (which means bundle), in which people wrap their belongings for travelling. She wrapped the clothes of anonymous people and daily objects within them. Bottari is a metaphor for the artist's life credo — a nomadism that is the basis of her creative practice. It implies the idea of a constant readiness to leave, detachment from the physical world, and is a universal metaphor for mobility. In the photo of the performance entitled Encounter, Looking Into Sewing, a figure is completely covered, with bedcovers draped over their head. This image brings several associations to the mind of the viewer — the image of a bride, a metaphor of torture. In this work, the artist has exposed strong feelings of intimate denial, abstinence (especially in the life of a woman from Korean society), and explor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visible, and the hidden yet present. Bedcovers that imply an intimate environment are embraced in public spaces. The artist put them on café tables as table cloths in one of her projects entitled Deductive Object, presented at Manifesta 1 in 1996. By doing so she confronted an aesthetic exterior and functionality with the Korean prohibition of eating in bed.
In her project Sewing Into Walking - Dedicated To The Victims of Kwangju, 1995, Kimsooja piled up loose clothing, and clothing wrapped in bedcovers, and put them in a 2.5 ton heap. In the Korean tradition, clothing preserves the spirit of their owners, and are therefore burned after a person dies. In this installation, they represent the reincarnation of people, the memory and the guilt, over the massacre in Kwangju in 1980.
In the 11 day performanc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1997, she travelled through her childhood hometowns on a heap of bundles, bottaris loaded on a truck. In this way, her initial introspective sewing gaze manifested itself in a real journey. By later placing this truck in a gallery space (Bottari Truck In Exile, d'APERTutto, Venice, 1999) she transformed her personal experience into a universal issue of cycle and passing of life, and cohabitation of time and space. At the same time, by dedicating this installation to the victims of war in Kosovo, she took the position of a quiet yet indelible witness.
Petra Kapš
I am interested in your experience of suppression and endurance that you talk about in connection with the traditional Korean bedcovers. Bedcovers have a strong intimate seal for every individual. A bedcover can (un)cover the most intimate parts of an individual and the shape of life as well that is re-established by the cohabitation of two individuals.
Kimsooja
It is interesting that you point out the word 'cohabitation' within the bedcover's hidden structure. Most people don't see that dimension, which involves another big issue in my life and work. People's gaze often ends up with the beauty of the fabrics or the cultural aspect of it, and imagining the couple's memory and intimacy, but there is another big issue in dealing with the 'reality of relationship' and 'self' and 'other' within this frame. Things become a question when they are problematic - it is good material to live and to question. Again this problematic 'co-habitation of duality' raises all sorts of questions on human existence.
Petra Kapš
Time is connected with memory and reminiscence. One of the main topics you deal with is death. We can also understand your works as 'preservers of memory' of the dead, of the sufferers who are present in clothes, ashes, bedcovers, bottari, carpets, in cessation of breathing ... They are interventions against concealment and oblivion. Where does this continuous emphasis on life and death come from?
Kimsooja
I am also curious about this continuity of my own concern: my obsession on body, death, and its memory to try to reveal the truth of victimized and disappeared beings, among other dimensions of my work. I think I have a strong compassion for all ephemeral beings, including myself.
Aside from exploring various contexts of found objects and used fabrics, their meanings and physical presence, performance and video represent another area of Kimsooja's artistic activity. The series of video works A Needle Woman, 1999-2001 is a video record of performances carried out in eight world metropolises (London, Lagos, New York, Tokyo, Mexico City, Cairo, Delhi, Shanghai). The artist uses a consistent structure of visual imagery (a static camera frames the view, and the artist is turned away from the viewer, and is situated on the street with an extraordinarily large number of people). The artist's body is in a state of a seemingly static and deeply contemplative posture. The viewer meets the mass of moving people. The artist's body can be interpreted as the entrance door, a point of identification or watching (observing the relation of the passersby to the artist, we can only make conclusions about her responses to the people from their faces). If we focus on the pieces from Lagos and Tokyo, two extremely different realities, we can follow the whole spectrum of social, political and cultural contexts that we find in the response of people's bodies and faces. In the installation of these video works, we begin to observe particular specificities of people, small daily events recorded by the camera — unobtrusive presentation, emphasising the particularities of every individual. With her minimal intervention that is actually merely presence, the artist is documenting people in a simple way, positioning herself as observer, not an arbiter. The element of time modification causes variation in the recorded natural mobility of people and their surroundings. The minimal slowing down enables the viewer to observe details and characteristics in th continuous 'flow' of people, the image passing by remains conscious for a moment. The interpretative field of this series is extensive and applies to all Kimsooja's work. From the analogy of a sewing needle and the artist's body forming a relationship to the passersby with its immobility, exploring the responses on its presence for mental and physical personal space, to the social context of the heterogeneity of social phenomena and the role of human being in contemporary world.
One of the defining parameters of Kimsooja's work in this context is her research of movement, mobility. Her body seems to be immobile, completely static compared to the mass of moving people. This seemingly motionless body is also analogous with a statue, a static object.
Petra Kapš
The image of your body in video performances, being turned away from the viewer, addresses people in a special way. This body-image cannot be interpreted as a symbol, but as an emptiness that, on one side opens up the space for the viewer, and on the other represents mobility towards human life, to his essence. How do you comprehend your body at this particular point?
Kimsooja
I find your perception of my body as a 'void' one of the most accurate and relevant descriptions of the presence of my body in my videos. The emptiness is created by turning my back towards the audiences, by not showing my personal identity, and also by allowing my body to function as a passageway for the audience to go through or enter into - this enables the audience to experience what I see and experience in situ. It is a similar function to a needle point, which has a decisive form of function, but works only through the empty hole of a needle eye, which is on the opposite side of the needle point. They can never meet each other, and they have this Yin and Yang relationship serving itself as a medium between fabrics. I weave the social and cultural fabrics with my presence and void as a medium. But I also believe that there's ego, which was not there while performing- I must say, standing there in the middle of the crowds was also a process of emptying my own ego, while receiving all of the people and their energy in my body and mind. This process of emptying the ego allows people to enter your body and create a void of your own self.
Petra Kapš
Your artwork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India, 2000 was shown at the exhibition The Fifth Gospel in Celje. The video projection was placed inside the Catholic Church of Saint Mary. The strong context in which the work was placed added an interesting analogy. Through the body of the artist - place/point of identification/entrance - the viewer entered into the artwork in the same way as Western civilization entered the body of Christ in history. How the viewer experienced it from this point onwards was dependent upon himself. The body functioned as a mediator. What are your thoughts about this different context that has a strong 'point of possibility' to influence the work?
Kimsooja
Locating my body in the midst of crowds or in nature is to question my existence and that of others on what I see, where I am, and where we are going. It is the question raised from the experiences of these performances that leads me to go forward and question further. Relating my work within the context of the Catholic Church and its history can be controversial in the sense of my way of thinking and that of Catholicism. I am interested in this kind of contradiction, as it can sometimes create an unexpected innovation, as if two different ways of mathematics can solve the same question from a different method. When those two different approaches and energies crash and merge together, they can break through the existing way of thinking. This is a fascinating side of fusion in art making and art reading.
When the function of one sense is prevented, for whatever reason, other senses sharpen to compensate for the missing information. The artist uses this effect for achieving special (meditative) states in the viewer, and to sharpen the human senses that are necessary in perceiving reality. Her video works mostly exclude sound. The intensity of the video image overwhelms us in the beginning, and only gradually do we become conscious of the fact that individual sounds — the flowing of a river, the dripping of water, a gust of wind, birds singing, human speech, street noise — are all missing. With this absence (and consequently, the orientation of human consciousness toward a sole level of perception) the artist directs our attention to the field of the visible and further to the field of spirit. The sharpened act of seeing centers our perception exclusively on the image. There is an obvious intertwining of artistic and meditative strategies that mostly omit sound, and focus on directing the (inner) gaze. In her work The Weaving Factory, 5.1, sound is the only element of the installation. Simple and minimal expressive means are the logical choice for achieving the goal — to direct, to sharpen the sight, and hearing. This year, the artist joined light, colour and sound in her work To Breath / Respirare, presented in La Fenice theater in Venice. The video installation was a combination of the projection of intensive monochromatic colours alternating in regular rhythm and the recorded sound of the artist's breathing. The sound element transitioned from a relaxed tempo that aroused pleasant, relaxed feelings, to an unbearably quick tempo, awakening anxious feelings verging on physical pain.
Petra Kapš
I have experienced your art works as a visual world, and a world of silence, where different phenomena are shown that lead the viewe into (self) consciousness. Furthermore, this consciousness of things that are outside of us aims at harmonizing and balancing the individual in life.
Kimsooja
A sense of consciousness, equilibrium and harmony ha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my work, but at the same time, this is nothing but my own personality. I used to raise questions from the point where the consciousness of an unbalanced and un-harmonized situation stays — that which has a lack of care or lack of fulfillment as a whole and as a oneness. The whole process of making art is about balancing the situation through a Yin and Yang perspective, like an acupuncturist. I often see the situation in the complexity of duality and try to find the necessary remedy for it.
Petra Kapš
On watching your video works (in Celje and Venice) I had a very interesting experience of time; with each work I had a feeling of being thrown out of the common concepts of time. Time extended, or it was as though it did not exist anymore. How do you define time?
Kimsooja
I often feel that I am in a state where I am out of a specific time frame, either in the midst of concentration or in a meditative state. When I see my videos, I feel similar states of my own experiences I have in daily life. Time is not there when I am there, and when there is time I am not there anymore. Time exists when one has consciousness of the other or one's other self - when one can see the other, even oneself as the other. Time is the body that you see with your eyes of consciousness. Time exists when a separation of your body and consciousness occurs. Time is space, and space is time.
Petra Kapš
What are your feelings about your past projects?
Kimsooja
All of my past work functions as just one 'station' towards another, as a process to reach to the final destination towards 'void', or the 'extinguishment' of my artistic and existential self.
Petra Kapš
What role does beauty play in your life and aesthetics? What is your relationship to this phenomenon?
Kimsooja
I believe in beauty as a reflection of truthfulness, harmony, and purity — but also as a reflection of decadence, as well as in its inevitable complexity within its own contradiction. Beauty is discovered when the viewer has eyes for it, and everything in this world has its own connection to beauty.
Petra Kapš
Ethics, which ha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history of Western art, was not discussed in connection with art in the time of modernism. This situation is changing at the moment. Your works express strong ethical messages. What is your attitude towards these two spheres of ethics and contemporary art?
Kimsooja
Ethical attitude generally comes from the pursuit of harmony and concern of others. I think art can be ethical in the pursuit of beauty and reality, although there's some contradiction between art and ethics in aesthetic methodology. Art often didn't respond much to the reality of our life and present time in modernism, and the creative process of art making often involved a de-constructive element. There are also so many different levels of ethics - ethics for ethics, ethics to prove truth and fairness, ethics that revenges the negative phenomena of society. These two aspects of being destructive in their own process and being ethical to idealism can be coherent at some level and it is inevitable to respond to present conditions of life in any form.
Petra Kapš
It seems that nowadays we consume art only through filters of digital technology, images in a digital camera or a movie camera. Watching through digital media is like consumption, I watch with my eyes like I use things; a commodity. But at the same time, it seems that these media membranes do not mutilate your work. The viewer doesn't need any knowledge of contemporary art for experiencing your work. Are such effects important for you?
Kimsooja
I don't think much about the viewer's point of view, or have interest in guiding them to a particular way of looking at my work. What leads the viewer to access my work is probably because I am not dealing with only specific issues and questions in contemporary art, but also with essential questions on life from mundane daily life.
Petra Kapš
How do you develop your works from the first impulse to the final realization?
Kimsooja
In most cases, the first impulse leads to another reflection that creates a concept, and the concept leads to another impulse and they fuse ... But sometimes just one intuition or concept is enough.
Petra Kapš
It seems as though Korean tradition is getting more and more hidden, covered in your work.
Kimsooja
I left Korea at the end of 1998 after participating in the Sao Paulo Biennale, and I've been living in New York since then. As the years go by, my living and working conditions are more based in New York daily life and my travels throughout the world. I live in a somewhat different social and cultural life than in Korea, although I still question Korean culture and my own identity and relationships. I've started working with daily objects I discover in New York, communicating and thinking more in English, and being aware of the political and socio-cultural status of my present living conditions within the world.
I consider myself to be a cosmopolitan, which might be the reason why the Korean cultural elements I used to deal with have been disappearing little by little from my work. But I am sure, at some point, there will be another moment when I re-discover my own culture from a different perspective than when I was in Korea.
Petra Kapš
You have been working in the Western world for almost a decade now. What is your relationship to the Korean period today? What did the last decade give to you?
Kimsooja
It gave me personal independence, financial support, social freedom, and detachment from my society and relationships.
Petra Kapš
What would you say about the notion that your art works are not questioning particularity of subjectivity that is so relevant today but are addressing fundamental questions of being, basic questions of life such as the balance of inside and outside, spirit and body, mind and soul, human as a natural and cultural being, being that exists in time and space of 'now'?
Kimsooja
I have always been dealing with present issues around me and the society that I was in. People sometimes see it that way because I used traditional materials, but it was my and my society's reality, although diminishing, and it had symbolic cultural connotations that are part of contemporary global society's issues as well. I just didn't use Western fabrics or images as it wasn't my reality and they created strong present questions for me. If I used Western fabrics, I wouldn't have been able to create my own conceptual context as a relationship to the bedcover, body and cohabitation — that has to do with my reality within Korean culture.
Petra Kapš
Are there any new horizons in your art?
Kimsooja
I know my work goes further and further away from the materialistic world but I am still interested in materiality itself as a strong presence of existence and a body of time. I also know that the whole process is just an endless circulation of comprehension of the world and self, and I wish one day I could be just a simple being freed from desire of making art and see as it is and live as I am within the world as it is.
─ Likove Besede, Summer 2006, pp.75-76.
2006
Kimsooja came to international fame in the 1990's following a P.S.1 residency in New York, which paved the way for one of her most famous pieces to date, Bottari Truck, a video that was subsequently shown in numerous exhibitions and biennales. Bottari Truck consisted of a truck loaded with bottari, the Korean word for bundle, and traveled throughout Korea for 11 days. The bundles were actually made of bed covers, an item accompanying the key moments of our existence from birth, marriage, sickness, to death. A Needle Woman, a video performance showing the artist from the back standing in the middle of a mainstream avenue in various cities throughout the world, further developed the concept of sewing towards abstraction bringing together people, cultures and civilizations. In a subtle way Kimsooja (b. 1957 in Korea), who works primarily in video, performance, installation, and photography has advanced to a premier artist in her discipline taking up sensitive issues like migration, integration or poverty. Besides taking us on her journey, Kimsooja's work is an invitation to question our existence, and the major challenges we are facing. In the interview below, she looks back at the past decade, and discusses her latest projects and undertakings. Olivia Sand reports.
Olivia Sand
Certain pieces you completed are seminal pieces (see above), and have toured numerous biennales and museums over past years. What mikes these pieces so important and why do you think people feel attracted to them?
Kimsooja
The formal and the aesthetic aspects may draw people to these pieces, but I believe their success is also based on their content and the topics they address. Today, it seems that we are witnessing a 'cultural war' with many, issues arising in a global context bringing together different races and beliefs with an increasing discrepancy between rich and poor, economically powerful and less powerful countries. Needless to say, the present power structure causes many problems and disasters around the world. The issues that I address in Bottari Truck and A Needle Woman are very much related to current topics, such as migration, refugees, war, cultural conflict, and different identities. I think people are interested in considering these topics through the reality of the work; this may be one reason for their success. In addition, the aesthetics and some elements of the form in A Needle Woman, for example, are things with which people can identify. The piece demonstrates a different approach towards performance compared to what has been done in performance so far. It is a different format and a different perspective from a 'classical' performance, where the artist is 'doing' an action. I believe that you can connect people and bring them together to question our condition without aggressive actions.
Olivia Sand
You learnt to sew with your family. Is sewing actually the element that led you to pursue an artistic career, ultimately serving as a means of expression, which remains to this day in your work?
Kimsooja
Definitely. The practice and my concept of sewing represent the constant basis of all of my work, from the beginning until today. The concept of sewing is always redefined, redeveloped and regenerated in different forms. After sewing pieces on the wall, or the Bottari pieces, which represent another way of three-dimensional sewing, I began to connect the relationship between people, my body, and another way — actually an invisible way — of sewing, like weaving the fabric of society and culture for example. My practice of sewing is always evolving, generating new ideas to redefine concepts.
Olivia Sand
You recently started a website, www.kimsooja.com. While presenting the site, you come to the conclusion that 'a one 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 What do you mean by that?
Kimsooja
I do not think of myself as an anarchist with any critical political meaning. I see myself as a completely independent person, independent from any belief, country, or religious background. I want to stand as a free individual, who is open to the world.
I had thought about starting a website for some time, but I was reluctant to do so because of the commercial aspect linked to such an undertaking. One day, however, I decided to move forward, and I began to carefully think about a website address. With the rapid growth of the internet, an email address is the key to getting access to the world to a universe without boundaries. I wanted to present myself as a free individual from any connotations (which exist around a name — the affiliation through marriage, for example), but not as an aggressive anarchist activist trying to change the world.
Olivia Sand
On your website you talk about 'twisted information', and your desire to promote ideas that have not been given the importance they deserve. To what are you referring?
Kimsooja
I realize that the media cannot be objective towards all the topics they cover, and personal points of view and experiences are also of great importance in the way the news is presented. However, I frequently witnessed how the media failed to acknowledge the relevance of an artist, which also resulted in ignoring or misunderstanding some of their existing art works. Through the website, which I launched in 2003, my goal was to open a forum for people to communicate openly and honestly about the art world, and the world in general. I am aware that it is a very modest undertaking, but I nevertheless wanted to offer a place where people could share their thoughts. All too often, people find themselves in a situation where they have no power, where they are manipulated, and they have no means to access or reveal the truth. So far, there have not been many people from the curatorial side, but there are many ordinary people, and a few artists, who use the site.
Olivia Sand
It seems that people are used to getting distorted information...
Kimsooja
In a certain way, yes. I think this can mainly be attributed to the fact that whatever is written becomes true, and people tend to believe whatever is written. I just want to provide a forum for people who want to speak up.
Olivia Sand
It seems that we are living in a strange time: never has the access to information been so great and the sources so diverse, but a lot of people just seem to be getting and relying in 'distorted' information. Do you agree?
Kimsooja
We just need to consider our domestic television networks (in the US), which provide very little information on foreign countries, on their view and response regarding the status of America in the world today. One needs to rely on the European and Asian channels to get a better awareness of what is going on in the world. As an artist, there is always a dilemma: should an artist take action following certain political decisions or should an artist stay away from politics? In my case, I want to open the floor for people to discuss and exchange ideas. In a way, I am a witness and I am not making any direct comments or statements. I do not see my role as to judge people, but rather as to raise awareness about certain topics. The response will be in the hands of each individual.
Olivia Sand
Do you feel that today artist have the power to set things in motion?
Kimsooja
Yes and no. Yes, artists could set things in motion, and can be very 'loud', but artists do not have enough power to persuade people to change the world. However, we are responsible for our own example and how we perform them. It is not necessary to make political statements, for example, but we can make a statement in a beautiful, peaceful, and spiritual way. In my opinion, artists can do something to resolve certain problems, but it is not easy, and it tends to remain a modest attempt of a very different scale than the head of a political section. Within a few seconds, they can give instructions to empower certain people, yet take it away from others. As modest as our attempt may he, I think it is important to bring attention to the suffering and death caused by unconditional unfairness. We cannot just neglect that.
Olivia Sand
Nam June Paik passed away at the beginning of this year. Do you feel that in terms of contemporary art, he has left a legacy behind in Korea?
Kimsooja
Absolutely. Before the 1988 Olympic Games in Seoul, he had no presence in Korea, nobody knew him except for some art insiders, and none of his works were shown. Although since 1988 things have changed dramatically, and Nam June Paik has been widely seen in Korea, still I do not think he received enough recognition or support from the Korean government. Throughout his career, he did a lot for Korea, and for the Korean people. He was very influential on Korean artists, and he contributed to creating a good image of Korea. He should have been more appreciated and supported by Korea, the Korean people, and by Korean museums. However, I am glad that ultimately the county where Nam June Paik was born has decided to build a museum dedicated to his work. The county has been acquiring hundreds of his pieces, and I consider it a great gesture — all the more so as it is based on the initiative of a provincial political officer and not a museum. This is very encouraging, as the museum will permanently be dedicated to Nam June Paik.
Olivia Sand
Has Nam June Paik changed the attitude of museums in Korea, encouraging them to collect the work of contemporary Korean artist like you, who are mainly working in video and performance?
Kimsooja
Presently, only one of my pieces is in a Korean museum: A Needle Woman, which belongs to the Samsung Museum. This specific piece caused many difficulties when the museum decided to acquire it, as my video piece was purchased by the museum, the Korean government charged considerable tax on it because it was considered a commercial movie. Consequently, the Samsung Museum and the Korean tax customs were in a lawsuit for many years. Korean law makes no differentiation between contemporary art works like my video pieces and a mass production commercial movie. Ironically, the tax authorities believed my video work was similar to Nam June Paik's work, which is considered the father of video art. The museum finally won the lawsuit last year, but it took over five years to settle the dispute. My case set a precedent, and today, artists can sell their video pieces without paying these enormous taxes. So far, A Needle Woman remains the only piece from my work in a museum collection in Korea.
Olivia Sand
What is the reason for your 'under representation' in museum collections in Korea?
Kimsooja
It is difficult to say. Perhaps it has a lot to do with the way the system (the galleries, the museums etc.) work, or perhaps they simply do not like my work.
Olivia Sand
Is your work widely represented in American museums?
Kimsooja
My work is represented in some American museums (P.S.1, some West Coast museums, etc.), but most of my projects are actually taking place in Europe.
Olivia Sand
Do you think your work is 'too different' for an American audience?
Kimsooja
I think the perception on art is very different in America and in Europe. If we take a closer look at the gallery scene in New York, most of the shows taking place in Chelsea are based on 'products' and people buy these 'products' rather than artworks that inspire them. I think the materialistic perception and the environment in the US clearly influence the collectors and their taste. There are always some exceptions, but I personally tend to find European audiences more sensitive, often more knowledgeable, and perceptive.
Olivia Sand
You presently have a show in Madrid that runs until July. Can you describe the piece?
Kimsooja
The exhibition is at the Crystal Palace, which is run by Reina Sofía. It is a beautiful glass pavilion, and I decided to create one large single installation. I covered the whole glass pavilion with a diffraction grid film, which creates a rainbow like effect all over the surface. The effect varies quite dramatically over the glass depending on the light source, the direction of the light, and its sharpness. In addition, there is a mirror structure over the floor, which reflects the entire structure of the building below the feet of the audience. I also installed the Weaving Factory, which I previously showed in Venice.
Olivia Sand
How would you say your work has evolved since your residency at P.S.1 in New York?
Kimsooja
For me, P.S.1 was one of the most influential experiences: it opened my career to the international art world. It led me to create my Bottari piece, and I started to do more installations based on my work from P.S.1. When I went back after a stay abroad, I became aware of the cultural conflicts within Korean society because by that time, I had the experience that things could be different. I had even more difficulties after coming back following a one year and a half stay in New York. I had to struggle because I had different perspectives, while the society was still very closed, stressful, and not supportive. I decided to leave the country to settle in New York, which was difficult, but at the same time very challenging. Putting myself on the edge of my life was a great challenge, and in retrospect, I think it made my professional practice even more focused, and more in depth. Since then, everything has been positive with museum shows around the world, participation in the most prestigious international shows and biennales, and good reviews.
Olivia Sand
Has religion, Buddhism, had an impact on your projects?
Kimsooja
I am not a practicing Buddhist, but I am very interested in Buddhism. It is very similar to the way I am thinking and to the way I perceive life, death, and daily life. I believe it carries great truth, but I do not want to represent any specific religious belief. I want to go beyond that, and embrace everyone's beliefs.
Olivia Sand
Which projects are closest to your heart?
Kimsooja
The sewing piece, the Bottari piece, and, of course, A Needle Woman. The Lighthouse Woman was also one of my favorite projects, in part because it was temporary and site specific with a very special environment and collaboration. I am strongly drawn to the idea of completing additional site specific and temporary installations, especially in Europe, where there are numerous very interesting sites.
─ This text was published in Asian Art Newspaper, May 2006.
2006
Kimsooja (Taegu. Korea, 1957) has dedicated her long, intense artistic career to developing her own personal vision of the world through the use of installations, performances, photography, videos and site-specific projects. Her obvious singularity has tempted some to seek out links with certain Eastern philosophical and artistic traditions, but her core material is reality itself. The ideas that inform her work follow from questions she asks about life and art, about individuality and our relationship to others, about emptiness and the ephemerality of our existence. Her upbringing and life experience have helped shape her thinking into a unique blend where Christianity and Western philosophy is intimately entwined with Zen Buddhism, Confucianism, Shamanism and Tao. In the history of Western art, we can find several referents to her work in performance and body-art circles, where artists such as Marina Abramovic and Ulay or Valie Export parallel her concerns. But rather than allowing herself to be swayed by theoretical issues and philosophies, whether Eastern or Western, Kimsooja has followed a trajectory marked mainly by a social and political commitment ensuing from her own life story, memory and sensitivity. Her work has deep universal roots and aspires to capture the totality of human experience: her creations appeal equally to mind, body and soul.
From the beginning of the Nineties, after having worked with abstract collage compositions combining sewn objects with drawing and painting, Kimsooja began to create installations and spatial objects that she dubbed Deductive Objects, where sewing was both a metaphor and an activity in itself. Needles, cloths, threads, quilts and such like formed part of her creative universe. Sewing, wrapping, stretching, folding, unfolding, covering are activities to which she repeatedly returns. The materials she chooses and the way she employs them derive from the traditional use of cloths in Korea. She began to show her bottariat two exhibitions she held in New York in 1993: the first in PS.1, where she had arrived the previous year on an international residence grant, and the other at the ISE Foundation. The bottari are bundles stuffed with cloths, clothes, etc, wrapped up in well-worn traditional Korean bedcovers. As the artist explained, second-hand bed clothes "bring with them smell, memories, desires, holding the spirit and life of former owners". From then on, these commonplace objects in Korean culture became a constant in her work. In Korea they are associated with mobility (voluntary or obligatory), as they are used to carry around unbreakable domestic chattels such as clothes, books, food and gifts. Kimsooja's work presented them in all possible combinations: individually; alongside bedding laid out on the floor; against the backdrop of a landscape evoking their core function as a way of transporting necessary goods, symbolizing nomadic values; in dialog with video installation, etc.
The artist went on to use the term bottari as the recurrent title for a series of videos she made in several different countries during 2000 and 2001. One such was Bottari-Zócalo, where we see a huge crowd of people - tiny multicolored bundles- swarming around the Zócalo plaza in Mexico City. Another was Bottari - Alfa Beach, shot in one of the slave-trading ports of Nigeria. On a screen split in two with sea and sky inverted, the constant to-and-fro of the waves in a green-grey sea, occasionally splashed by the white foam of breaking waves, contrasts with the quiet sky of fluffy clouds underneath. It transmits the same hope and uncertainty that the slaves must have felt in the face of an unknown future that loomed before them. Then there is Bottari - drawing the snow, where dark snowflakes fall across the white screen like birds scattering from their flock in all directions. And Bottari - waiting for the sunrise, filmed in Real de Catorce, Mexico, where a fixed camera focuses on a stony road that disappears into the horizon. The day is breaking but we cannot yet see the sun. For nearly five minutes, during which nothing moves, we try to discern the landscape, feeling the slow passage of time. Suddenly, we notice white light moving at the back from the right to the left of the screen. As the light coincides with the center of the road it seems that time and space have merged; but before it can begin to dazzle us, the video ends.
These three videos were first presented, alongside another four, at the Bevilacqua La Masa Foundation exhibition in Venice, January 2006, and foreshadowed Kimsooja's most recent works. They emit no sound. It seems as if the artist wants us to concentrate on the space, on what the screen is showing, placing unique importance on vision. Everything else is left to our imagination. The sense of movement, traveling, transition, disorientation, uncertainty and hope — all aspects that play a vital role in our lives — is ever-present in the author's videographic output and connects them to both her earlier and her later work. Kimsooja reflects on various aspects of life in which analogy and metaphor assume special relevance.
Apart from the bottari, another characteristic element in her work is the employment of brightly colored, well-used traditional Korean bedclothes. For Kimsooja, they symbolize women, sex, love, the body, rest, sleep, privacy, fertility, longevity and health. Elements brimming with significance and present in human life from cradle to grave. Like the bottari, the bedclothes appear in various works, assembled in different manners: spread out on the floor in Sewing into Walking (1995); in combination with bottari in Deductive Object (1996); covering a mannequin in the photograph entitled Encounter - looking into sewing (1998-2002), which speaks to us both of loss of identity and of its weight; hanging from pegs as if hung out to dry in, for example, A Laundry Woman (2000) and A Mirror Woman (2002), another metaphor for female roles. These last two were presented in several places, including the Contemporary Art Museum in Lyon and the Peter Blum Gallery in New York, respectively.
As of the mid-Nineties, Kimsooja began to use video fundamentally as a way to document and record performances in which she herself played a leading role. Between 1997 and 2001 she filmed a series of videos from performances she held in various towns and places the world over. Both the process and the pictures that these generated link into her attempt to reconcile the tensions inheren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our ego and others'. The first video she entitled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It was made in November 1997, on an eleven-day journey through Korea on a truck loaded with colorful bottari. The 7:03 minutes of footage record the trip in space and time. A metaphor for her own life — constantly crossing frontiers — but also for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contemporary artists and our society as a whole: nomadism is one of the mainstays of Kimsooja's art. We find it in many works of hers: in the installations with the bottari as symbolic elements and in other video pieces.
The common denominator to this series of videos is the female form, a motionless woman with her back to the camera. It is presented in a myriad of settings: standing amongst passers-by in Tokyo, Shanghai, New Delhi, New York, Mexico, Cairo, Lagos and London or reclining on a rock in Kitakyushu, Japan — A Needle Woman (1999-2001); sitting on the pavement asking for alms in Cairo, Mexico and Lagos — A Beggar Woman (2000-2001); lying in the streets of New Delhi and Cairo — A Homeless Woman (2001); or standing next to a river in New Delhi — A Laundry Woman (2000). But wherever she may be, the figure of the artist is always inaccessible, her face hidden from the viewer. The viewer is thus refused what the crowds are permitted. The woman who will not let us see her face, who obliges us to ask uncomfortable questions of ourselves, becomes an abstraction. Her image, immobile before the river Yamuna, ends up merging into the current and flowing away with the debris that it carries. In these works, immobility envelops everything. However firmly the author places herself in the centre of the picture, she still manages to distance herself from it. Her simple yet oddly energizing appearance there is a kind of self-affirmation. She manages to be herself and the 'other' at one and the same time: both presence and absence. Kimsooja is simultaneously subject and object of our gaze; an individual and an abstraction; a specific woman and all women; instrument and actress; immobile and resolute. This seamless duality is something that Bernhard Fibicher described in "Obvious but Problematic", his article for the exhibition catalogue for Kimsooja, A Needle Woman, held in Kunsthalle Berne, in 2001.
There is no sound in the bustling streets and in the landscapes where we see the artist, so reception is reduced to pure vision. Nor do we know who is filming her, what she is like, or with what expression she might face the crowds. The passers-by, inhabitants of enormous cities, become involuntary actors. In the Needle Woman video, the artist is standing stock still in the middle of streets overflowing with people. Her absolute immobility contrasts with the hurly-burly of the metropolis and with the noise that -although we do not actually hear it — we cannot help but divine must be there. The camera films the mass of passers-by treading the streets of these cities. It shows the faces of this anonymous throng while hiding that of the artist. Thousands of people walk towards her, enter the camera's field of vision and then disappear. Like a sociologist, the camera records the reactions of this multitude in a confrontation with the 'other'. In London, New York and Mexico, people almost ignore the artist as they pass her by. In Shanghai, New Delhi and Cairo, she sparks more interest. Some people even turn round or stop a moment to look at her. But it is in Lagos that she elicits greatest curiosity. Here, the video footage shows individual faces, feelings, reactions... However, in Tokyo, a smile on the face of a woman is the only element of emotion amidst the anonymous crowd. In A Homeless Woman, it is in Cairo that people pay most attention to her. A group of men cannot resist approaching her, moving in close and staring directly into the camera.
For the 51st Venice Biennial in 2005, Kimsooja made a new version of A Needle Woman for which she visited a further six cities: Patan (Nepal), Havana, Rio de Janeiro, N'Djamena (Chad), Sana'a (Yemen) and Jerusalem. In six contiguous screens, presented as a video-installation in the midst of absolute silence, we can only intuit the teeming sounds of the passers-by and the noise of traffic in the distance. Once again, the artist brings us face to face with people's varied reactions to the ineffable figure she cuts. In this new set of videos, it is in Rio de Janeiro where people are most inquisitive about the artist's presence. In Jerusalem, only a small minority observe her with curiosity, although a policeman comes up to her smiling, looks at her, makes a hand-gesture to onlookers and leaves her alone. In general, however, passers-by seem more drawn to something that must be happening to her right, which is where they fix their eyes. In Patan, where flocks of birds swarm across the screen in stark contrast to the placid tranquility displayed by the inhabitants, it is mainly children who are attracted by her unmoving form. In Havana, a man pulls a face at her; many smile at her and a few can be seen making comments as their paths cross. In Sana'a, the men, especially the young men (there are hardly any women out on the street and where there are, they are fully covered by their black tunic and scarf with just a tiny slit at eye level) surround her and stop to stare at her attentively. In N'Djamena, the artist's figure merges into the mass of colorful garments and the rhythmic swarm of the passers-by — many of them carrying packages and bowls on their heads — as they surround her, then stop and gaze at her fixedly, greeting her with hand-movements, even speaking to her and apparently asking her questions. The curiosity on their faces is unmistakable. We, mere observers of their actions, look on expectantly. We cannot help but be slightly nervous of the reactions that people might have to the artist's presence. We fear the unexpected, always aware that there could be a sudden outbreak of violence at any moment. But as we watch the action unfolding, we wonder about the artist's reaction to the stares, smiles and comments to which she is subjected. We begin to feel intrigued about what the surprised passers-by could be saying, the words we cannot hear but deduce her unforeseen presence must elicit. We want to know more. We would like to be in the middle of this mass of people so that we could gather our own conclusions, evince their opinions, discover whether they are attracted by this sudden encounter with an unmoving figure in their path, or whether it has unsettled or upset them. It is true that we can observe their reactions, which in general appear to be respectful, since the camera shows their faces as they enter its field of vision, as they become unwary protagonists. But at the same time, we have an innate desire to hear their comments as they pass by. The artist exposes herself and exposes us. Observing her, we are also opened up to the crowd; with her, we merge into the surrounding mass, registering people's reactions. But we always want to know more, to have a hint of their singularity, a spark of their being in this world.
Through their actions, capturing their expressions and reactions as they come across her, the artist also forces us to experience the shortcomings to our understanding of the real situation in other countries as lived by other peoples. The author is investigating, seeking out the minimal differences between each country and each person, trying to put her finger on what sets one apart from the rest. She shows human beings as individual beings and as experiences. Her choice of cities and countries for the performances is not random. Kimsooja's selection reflects her awareness of the conflicts that assail them, problems stemming from post-colonialism, civil wars, border skirmishes and violence triggered by the extreme poverty of their inhabitants. However, it is in these countries, ridden by conflict, far from jaded, ageing Europe, in stark confrontation with the unknown, that her creativity seems to find moaning and inspiration.
In all these videos, Kimsooja makes her presence felt in this world through the continuity of reiterated situations and shots of her own unaltering image. People's physical, material being intrudes into her work in the same way as Nature. They are all a manifestation of different ways of being in this world, a statement of our alone-ness, but also a reminder that the world is ever present and that we are surrounded by others. Her work goes far beyond the gender issues, an area where she can be too simplistically pigeon-holed. She is demonstrating the manifest importance of being human in the chaotic world we inhabit, with all its solitude and its ephemerality. Directly or indirectly, through the traces that it leaves behind, people's 'footprint', humankind is always present in her work.
Although the artist is not interested in tackling political issues as such in her creative output, her interest in the human condition and human reality has, on occasions, led her to create installations that are clearly related to political or social events. Sometimes these are a response to what has happened, other times they constitute a memory of them or render homage to their victims: Sewing into Walking (1995), presented at the first Kwangju Biennial, consists of a set of used cloths and bundles scattered over the ground in a park. They look like bodies abandoned on the battlefield. The piece is dedicated to the victims of the massacre at Kwangju, which took place in May 1980 when hundreds died in their struggle for democracy. Deductive Object - Dedicated to my Neighbors (1996), shown at the City Art Museum of Nagoya, Japan, uses a mixture of Korean and Japanese cloths; it is dedicated to the victims of the collapse of the Sampoong department store in her neighborhood in Seoul that same year. D'APERTutto or Bottari Truck in Exile (1999), presented at the 48th Venice Biennial, shows a truck reflected from a mirror structure installed in front of it, loaded up with brightly colored bottari. The mirror creates an endless opening, but the truck is blocking its own way ahead. It is dedicated to the refugees from Kosovo, a reminder of the dreadful consequences of war: displacement, death and destruction that were occurring at that time only a few kilometers from Venice. Responding to the events of the 11th of September 2001, Kimsooja created her Epitaph (2002), a powerful, emotional and beautiful photographic image in which the artist unrolls a colorful quilt on the ground in the Greenlawn cemetery in Brooklyn. In the background we can see the gaping absence of the emblematic Twin Towers on the Manhattan skyline.
Throughout her career, and especially in recent years, along with her installations, photographs, performances and videos, Kimsooja has also been involved in setting up site-specific projects. Cloths, especially the eye-catching Korean bedclothes; sequences of light and color; mirrors; the chanting of Tibetan, Gregorian and Islamic monks, and the sound of her own breathing are resources that she uses for these and have become identifying characteristics. Planted Names and A Lighthouse Woman (2002), were two such projects, installed under the umbrella of the Spoleto Festival USA 2002 in Charleston, South Carolina. The artist was responding to an invitation to join in an exhibition entitled Memory of the Water, evoking the cosmopolitan character of this colonial capital and its maritime legacy. Planted Names commemorated the slaves who served in the Drayton Hall plantation. It also echoes the artist's own story as daughter of an army officer, growing up in the demilitarized zone in South Korea and continuously on the move from one town to another with her family. Four black carpets with the names of the African-origin slaves who worked in that plantation until their emancipation standing out in white lettering, transformed each of the rooms around the great hall on the first floor of Drayton Hall — the oldest plantation mansion still standing in America, conserved as a jewel of Georgian Palladian architecture. They are acts of meditation on the past and strategically placed in surroundings where the memory of these people who were deprived of freedom has special resonance. In A Lighthouse Woman, the artist uses light, color and sound to transform the abandoned lighthouse in Morris Island (Charleston, South Carolina) into a memorial. Made to commemorate the victims of the civil war fought out on Morris Island where the lighthouse is located, this work is also a tribute to the eternal relationship between light and water, symbolized in the lighthouse itself.
Exhibited in the Vienna Kunsthalle, A Laundry Woman (2002) comprises colorful bedclothes and the sound of Tibetan monks chanting. The bedclothes can be seen from outside through the enormous windows of the Kunsthalle: they are pegged onto ropes, as if hanging on a clothesline. They operate as a metaphor for female roles, establishing a dialogue between the interior space of the Kunsthalle and the urban landscape, between life and art, intimacy and universality.
The organizers of the 2nd Valencia Biennial invited the artist to set up something on an empty site in the city. The resulting Solarscope is a sequence of light with a range of changing colors projected onto a building, conferring life on what had been an abandoned plot of land. In the Rameau palace in Lille (France) her Lotus: Zone of Zero (2003) was an installation of three-hundred and seven lights with music. The red bulbs hang in a lotus-flower arrangement in the circular hall of the building. The space is flooded with the sound of Tibetan, Gregorian and Islamic chant. Over and above the eye-catching beauty of the installation, it is a call to peace, love and understanding amongst human beings.
A Mirror Woman - the ground of nowhere (2003) was installed on a roundabout at the Honolulu city-hall in Hawaii. The piece formed part of Crossings 2003: Korea / Hawaii, a series of activities organized to celebrate one century of Korean immigration to the United States. A fine gauze curtain hangs eighteen meters from the ground, rolled up at the base to form a huge cylindrical tube, six meters in diameter. The sky is reflected in the mirrored flooring. Walking or lying on this mirror/floor, visitors can only see the cobalt-blue sky with its white clouds and their own reflection. The piece tries to capture the atmosphere of hope, excitement and homesickness that the Korean immigrants must have felt on arriving in the United States, the sense of nothingness that must have overwhelmed this first wave of newcomers arriving on the island of Hawaii one hundred years earlier.
Four sound-channels broadcast Tibetan, Islamic and Gregorian chants, which inundated one of the rooms at The Project in New York, for which Kimsooja conceived Mandala: Zone of Zero, in 2003. Creating a space for isolation, meditation and daydreams, she placed a brightly colored juke-box speakers on each of the four walls of the room, exploiting their formal similarity to traditional Buddhist mandalas to imbue an object of Western pop culture with Eastern religious connotations. The mixture of chants issuing from the record-players surround and envelope the spectator with their beams of sound. Reflecting their assimilation of different cultures, social contexts and aesthetics, this installation explores the notion of unity and totality according to which mind and body are spiritually united.
In 2003, following up the idea of playing with light and color already used in some of her site-specific projects, such as A Lighthouse Woman and Solarscope, the artist made a set of videos experimenting with sequences of light and the color palette, employing its beauty and energy to play with different frequencies and rhythms. Invisible Mirror, Invisible Needle and A Wind Woman belong to this series. In the first, the colors change their range and intensity slowly, almost imperceptibly, until they have exhausted the entire color spectrum. In the second, the speed of sequencing increases until it becomes so frenetic that the eye can barely perceive the tonality of the colors whizzing across the screen. The third, A Wind Woman is a work on Nature. It was first shown in the United States at the Henry Art Gallery and then presented for the first time in Europe at the Fondazione Bevilacqua La Masa exhibition in Venice. The artist created an abstract painting in the style of Gerhard Richter, using her video camera to record high-speed Nature. All three are silent videos where the only sound is in our imagination. The first two have been put together in a single video-installation into which The Weaving Factory 5.1 has been synchronized. This latter piece was made in 2004 with the sound of the artist breathing. The ensemble, entitled To Breathe / Respirare (Invisible Mirror, Invisible Needle), was presented at the Fenice Theatre in Venice on 27th January 2006 and projected during February and March before the opera performances of the Die Walkure and / Quatro Rusteghi by Ermanno Wolf-Ferrari, scheduled in the theatre for this time. Visitors are confronted by a large screen on which all the tonalities of the color range gradually succeed one another. They are surprised by the sound of slow breathing, whose source is intriguingly difficult to identify on entering. The colors, with their different intensities, are shown on a screen which seems to be mirroring the colors thrown back at it from the theatre. Meanwhile, the breathing becomes more intense, deeper, and seems to pervade the entire space. In the first part, the rhythm of the artist's breath speeds up and deepens until it reaches moments of real anguish. In the second, the tone, modulation and rhythm of breathing change as they reach a harmonious crescendo that turns into an anthem, a prayer, a choir, the sound of wind instruments. Visitors are impelled into this experience. Feeling that we form part of the piece, we follow the cadenza and the different rates of air-intake and expulsion. We accompany the breathing with our own feelings of anxiety or relief. As if it were a metaphor for life, we oscillate through the most diverse mood states: from uncertainty to calm, from anguish to respite, from the twinge of danger to real enjoyment. We feel health and sickness, chaos and harmony. The respiration seems to absorb us so deeply that it enters inside our very body. It is a piece that, on its own, acts through contrasts. But placed where it is placed, the simplicity of the breathing and the purity of the light emanating from the colors, harmoniously bathing the space, contrast exquisitely with the baroque style of the theatre.
With a minimum number of simple elements, Kimsooja achieves maximum effects, sensations, emotions and a rich onslaught of ideas and concepts. Her art appeals both to the senses and to the imagination. Its enormous beauty in no way distracts us from the disquieting questions it poses about concepts and situations in our life experience. As an artist who participates in her times and their problems, her work avoids introspection and embraces the world by subjecting it to the wordless scrutiny of her gaze.
Her pieces seem to be enveloped in silence. An aspiration to isolation and withdrawal seeps through videos of her performances, in the installations made with cloths and even in her video-installations with sound. They are an invitation to escape momentarily from the chaos and noise of the world around us, in order to reencounter our selves and question our relationship with others; to reflect on our place in this world and stare the essential problems of existence in the face. Exhibition space made sanctuary.
For the Palace de Cristal in Madrid, Kimsooja has made To Breathe - A Mirror Woman, comprising an intervention in space and her earlier sound piece, The Weaving Factory, 2004. The project is a logical continuation of her previous works. The artist has exploited the structure of the building, leaving it intact so that it forms a whole with the installation of a mirror on the floor. This acts as a multiplier and a unifier of the original architectural space. Here, Kimsooja submerges us in a transfiguring experience that uses minimal elements: a translucent diffraction grating film covering the glazed dome and wall of the crystal palace, a mirror covering its floor and the sound of her own breathing. We are invited into an experiment with our minds and our senses, to give free rein to our sensorial perception and our imagination.
The title itself not only refers back to other projects in which the artist used mirrors and the sound of her breathing, but also to her work with needles and sewing. As in her video-installations, such as A Needle Woman, where she herself is the needle piercing the crowd, in A Mirror Woman the artist is the mirror; the mirror that reflects and creates reality. Like a surface returning what comes to it, the artist sucks up one reality but reflects another, creating another reality. She is the reflector and also the creator of the reality that the mirror reflects.
The project as a whole also takes us back to her bottari since there too she was enveloping and wrapping. In this case, the author has enveloped the Palacio de Cristal with translucent film. However, whereas the bottari wrapped and transported clothes and belongings over distance, here the building is wrapping us and transporting us through an experience of our bodies, imaginations and senses.
The light shining in from outside enters through the glass of the pavilion and the translucent film disseminates it into rainbow spectra. This not just transforms the view of the exterior we see from inside the palace but also the look and feel of the interior, where the entire structure and the multi-colored rays of light are reflected and re-reflected in the mirrored floor. Seen from outside, the interior of the palace is transformed by the reflection of light and trees. This effect is especially powerful on sunny days. But even when it is overcast, any break in the clouds or in stormy skies, any sunbeam that slips through, increases the contrast levels of the light, thereby creating a multiplicity of rainbows. Similarly, the direct sunlight on the diffraction film produces an additional effect of projecting its spectra onto the interior surface of the palace, where the mirror bounces back the colored light onto the visitors and throughout the interior of the building. We get the impression of being drawn into the rainbows, of forming part of them and becoming one with them. The ad infinitum reproduction of the spectrum varies throughout the day, acquiring different shapes: rays, gusts, aureolae, zigzags, etc. It not only brings to mind the colorful traditional Korean bedding so often used by the artist, but also her work with Nature in A Wind Woman. At certain times of day, depending on the intensity of the light, the glazed structure of the building becomes an abstract painting configured together with the trees in the surrounding gardens.
Natural light, color and sound, all such very ethereal elements, almost tangibly fill the space. There are no objects to distract our gaze. Just light and color. The artist's breathing from her The Weaving Factory performance pours into the space, bouncing back again and again from the mirroring, expanding throughout the interior of the building, becoming one with it and breaking down the barriers between time and space. As the artist explains: "The waves of light and sound, and those of the mirror, breathe and interweave together with our body within the space. I find mirroring to be another way of sewing."
Her slow, soft, scarcely perceptible respiration in the first part of the performance gradually becomes deeper and faster, until its pace becomes unbearable, producing a sensation of anguished discomfort. We experience rapidly changing mood states through the artist's breath pattern, which merges into ours. In the second part, we can hardly make out her breathing, except as background sound. The tone, modulation and rhythm have changed. We would think that it is an external sound, but it is still her own respiration that is creating this rhythmic crescendo, this sensation of harmony, obtaining by superimposing different notes one on top of the other. In both the first and the second part of the performance, the inspiration and expiration is exclusively nasal. She never opens her mouth. However, in the second she not just breathes but actually hums through her nose. The artist considers reflecting to be like breathing, since the structure of both operations is the same; both share the directionality from out to in and in to out so that both extract one reality and create another.
She uses a minimal part of her body to achieve a myriad of sounds, similar to the myriad of light beams produced by the diffraction film. The onslaught of sound and color runs visitors through an entire spectrum of emotions. During the eleven minutes, thirty-eight seconds of the audio performance, we are rocketed from puzzlement to delight, from anxiety to joy, from uncertainty to recognition. Kimsooja is inviting us to take an inward-bound trip: to the inside of the space, the inside of the rainbow, the inside of the mirror, the inside of our breathing. The final destination is inside ourselves. And on this inward trip we come face to face with the other, that other so ever-present in her work. The mirror connects the ego and the alter-ego and reflects the otherness that we always carry within. The mirror attracts and reflects. Reflecting is another way of exteriorizing the ego. Kimsooja is talking to us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our body and space. She makes art into an experience of body and mind, of our sensory perception and of our imagination.
— Essay of the Catalogue, 'Kimsooja: To Breathe - A Mirror Woman,' 2006
2006
Francesca Pasini
Space, light and the body are the elements with which you give form to the world. In all your works the purity of the images might seem to situate the vision in metaphysical space, but you accomplish this in the physical dimension.
Kimsooja
Physical and metaphysical states coexist simultaneously as one, rather than as separate or parallel entities. Physicality represents the metaphysical, in the similar state of space as time, and time as space, I believe.
Francesca Pasini
How important is the idea of the "void" in your process of "making space"?
Kimsooja
For me, making space means creating a different space, rather than "making" a new one. The space is always there in a certain form and fluidity, which can be transformed into a completely different substance. For example, our brain cells or mental space construct a physical and visual tableau, sculpture, or environment, which are transformed spaces. My interest in "void" is as a negative space in relationship to "Yin" and "Yang," as a way of inhaling and exhaling, which is the natural process of "breathing" as a rule of living. This idea of duality can be found in all of my working methods from the beginning of my practice.
Francesca Pasini
In the audio work The Weaving Factory, which accompanies the projection presented on the screen at the Theater La Fenice in Venice, what is the link between the "breathing" that comes from the color spectrum, versus the one that is created by your breathing?
Kimsooja
The breathing element in my video projection To Breathe: Invisible Mirror / Invisible Needle is based on the abstract of the phenomena of nature, which was generated by a digital color spectrum. This creates a clear distinction from the video pieces I've shown at Fondazione Bevilacqua La Masa, which are captured from the existing phenomena within nature, as part of my study on nature. The sound for the vocal performance for The Weaving Factory was made from my own breathing at different speeds and depth, and humming different notes through my nose and, in the end, by opening and closing my mouth. Both audio and visual breathing is performed within the body of La Fenice Theater, which I took as my own body, which breathes in and out, connecting the bodies of the audience to that of the theater. It was also interesting to relate the nature of the lyrical theater, which is all about singing, which in turn, is breathing.
Francesca Pasini
In your current project at Palacio de Cristal in Madrid, you also use the same combination of color and breathing "to make space."
Kimsooja
The glass pavilion is covered with translucent diffraction film, that diffuses the light coming through the structure into rainbow spectrums, which is then reflected by the mirrored floor, while the breathing from the audio piece The Weaving Factory fills the space, bouncing back and forth onto the mirror. The waves of light and sound, and that of the mirror, breathe and interweave together with the viewers' bodies within the space.
Francesca Pasini
What kind of relationship is there with the project in Venice?
Kimsooja
Both To Breathe: Invisible Mirror / Invisible Needle and To Breathe: A Mirror Woman are related in terms of the notion of "surface", "sewing", and "wrapping". Interestingly, a mirror is another tool for sewing, as an "unfolded needle," that connects the self and the other self. Mirroring is sewing and to sew is, in the end, to breathe.
Francesca Pasini
I see a progression with respect to your previous works. To an increasing extent, the visible loses its perspective limits: in Bottari - Throwing the globe, as well as in A Wind Woman, we have the perception of colors' movement without any distinct image; meanwhile, in To Breathe: Invisible Mirror / Invisible Needle we have only a color spectrum.
Kimsooja
Most of the videos I showed at Fondazione Bevilacqua La Masa are entitled "Bottari...". The word "Bottari" means "bundle" in Korean. A Bottari is wrapped fabric that contains daily objects, for carrying one's belongings and moving households. It is the easiest and simplest way to locate and dislocate one's belongings. When Koreans say, "Wrap the bundle," and Westerners say "Wrap it up," it means, finish the relationship or move on. But when it is used by women in a specific way in Korea, it means she is "leaving her own husband and family to pursue her own life." In the series of those videos with subtitles, I applied the general meaning of Bottari as a wrapped image rather than focusing on the feminist connotation. The works at Fondazione Bevilaqua La Masa in Venice are studies on nature where the boundaries are ambiguous and continuous, except for the frame of the video. Especially in To Breathe: Invisible Mirror / Invisible Needle, there seems to be no surface that remains in our gaze as the color spectrum light from the projection is constantly changing and transforming from one color into another, so there is no definition of surface in this "painting." My motivation for creating this piece was to question the depth of the surface, as well as questioning its definition, and this has been one of my constant themes since the sewing pieces earlier in my career. Where is the surface? What in the world is there between things?
Francesca Pasini
And the distance between what we see, and what we perceive, is it important? You mentioned your sewing pieces, could you explain the development in relation to the videos?
Kimsooja
My work is based in part on questions of perception — it can be found continually in my practice. In making art, I am particularly interested in getting close to the most accurate answer to the questions on the relationship and reality of things and life. I started working in video in 1994 from my interest in its "frame" as a means of "wrapping," rather than focusing on the image-making quality of the video. In the context that "wrapping" is, in fact, three dimensional sewing, it is all connected and influenced by the notion of "sewing" and "wrapping", in which the camera lens plays the part of the needle's eye.
Francesca Pasini
In other videos at Fondazione Bevilacqua La Masa, such as Bottari -Waiting for the Sunrise, as well as in Bottari - Chasing the fog, or in Bottari - Drawing the Snow, the viewer must wait in front of an image that changes very slowly, and in doing so, captures the perception of time itself, inside a sort of immobility. Does the concept of time take on the function of an emotional state?
Kimsooja
The immobility of the audience's body occurs while watching what is taking place in the video, and its relationship to the passage of time. The body of the video camera and the body of the audience take on the same barometric role, to measure and capture the passage of time. Our waves of emotion and perception of the video move along with the transition of time and the changing landscape within the video.
Time exists in our minds only when we are conscious of what we think, feel or act. To percieve what we see, we need to focus on moments that extend the duration of time with our own consciousness.
─ This text was published in Tema Celeste, Vol. 166. July/August 2006.
2006
In her 2006 New Year's wishes to her friends, Kimsooja included a short and true story about a pair of twin girls who were born prematurely. One of the twins was not expected to live. A nurse from the hospital decided to break the rules and placed the two infants in the same incubator. Once the newborns were placed together, side by side, they embraced each other. The stronger of the two helped to regulate the body temperature and heartbeat of the weaker one, thus enabling the weaker one to survive against all expectations. Nothing could introduce this book, the second collaborative effort between La Fenice Theatre and the Bevilacqua La Masa Foundation, more poetically than the story of this metaphoric event. For the duration of one month, and preceding each opera performance at the Teatro La Fenice, the public will have the opportunity to view Kimsooja's latest video work projected on the theater's screen. The Bevilacqua La Masa Foundation is proud to be the first Italian art center to have established an agreement of this kind with an opera house. Upon viewing Kimsooja's videos, both at La Fenice and at the gallery space of the Foundation, but in particular the one selected for the theater, it seems only fitting to ask ourselves what the contents and significance of such videos are. Indeed, here is one of those rare occasions that demonstrate how the methods of interpreting contemporary art are not so dissimilar from those used for interpreting opera: the initial and instinctive pleasure one receives is deepened and made more complete only upon having learned something about the musical score and the operatic libretto. It is only after a first reading that one is then ready for a second, more competent and knowledgeable understanding.
The title of the video chosen for the occasion is To Breathe / Respirar. It is a succession of colors that anticipate the rhythm of breathing‑at times hurried, at times calm and composed. The video does not portray any images, rather only colors, and speaks of the need for air, emptiness, and space for filling our lungs. Breathing is an act of survival as well as a therapeutic response to the small and large troubles that life imposes on us. Breathing as an essential act explains why the video is an image reduced to its basic essence, that is, to light.
Although indebted to Mondrian from an artistic and theoretical point of view, as Kimsooja confirms herself, the artist does not betray her first and foremost tradition which stems from a deep relationship to Korean life and aesthetics. In this way To Breathe / Respirar leads us to look for its origins in the artist's previous works. In the 1980s Kimsooja used the fabrics and clothes that had belonged to her grandmother as a source for her geometric patchworks, which were often made in the form of a cross as in The Earth and the Heaven (1984). To the detriment of its geometry, the fortuitousness of the composition as then intensified in such later works as Toward the Mother Earth (1990‑91) and The Mind and the World (1991): pieces of material arranged like rapid brush strokes, but also like fragments of life, collected from the street and somehow brought back to life. Also the series 'Deductive Objects', created in the early 1990s, included strips of material compiled in this same way, even if scattered on the floor in a multi‑colored trail or hung like tablecloths over tiny bar tables.
Many of the artist's subsequent works show concepts similar to the one presented in the video at La Fenice, where the idea of pieces of fabric, or rags, has been substituted by the valuable cloth that in Korea is given to newly wed couples as a nuptial bed covering. We are speaking of Bottari, which Kimsooja has used in numerous and varied ways. On different occasions they have been displayed like ordinary clothes, or as extremely decorative and interrelated layers of colors (e.g., Bottari, 2000; A Laundry Woman, 2000; A Mirror Woman, 2002). In the early 1990s Kimsooja presented the Bottari in another form, that of a traveling bundle: a swollen fruit containing just a few of one's possessions. In the performance presented at the exhibition "Cities on the Move", Kimsooja traveled by truck for eleven days in November of 1997 through all the Korean towns and cities that had been fundamental to the formation of her own identity. She was aware that she would soon be leaving behind Korea — and her fond attachment to it — to live and work i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The images produced in this performance show her standing upright, with her back against the truck cab, and supported by the mound of Bottari that also served as a psychological reminder of her burden.
The Bottari as a sign of bound identity, as a way to be seen but also as a way to not see, became a cascade of color that draped and spilled forth from the body of the artist in the performance Encounter: Looking into SewingA Needle Woman (1999‑2005). Here her body is presented as a needle which, although immobile and harnessing the flow of people around her, penetrates the crowd and knits the people together. In metaphorical terms, the combining of colors and pieces of cloth is no different than the "gathering" or "garnering" of people.
Breathing is a symmetrical act, and thus it is akin to a given aesthetic found in the majority of Kimsooja's works — both those where her own body is at play and those where objects are the central focus. Take for example the installation Lotus: Zone of Zero (2003) erected in the center of the nearly monumental greenhouse of Lille. The installation consisted of 307 lanterns in the form of lotuses, from which issued the sounds of three cultural sources: an interweaving of Tibetan, Gregorian, and Islamic chants, presented always in the spirit of sewing and binding. The symmetry also becomes a way for emphasizing the relationships therein: right / left, above / below, inner / outer. It is no coincidence that in the version of A Mirror Woman presented at the Honolulu City Hall (A Mirror Woman - the ground of nowhere, 2003), hands, emotions and friendships were sewn together in a completely symmetrical tower of gauze. Here visitors were invited to lie down on a circular mirror placed on the floor, one that reflected a portion of open sky exposed by another circle located above the tall cone of gauze. The position that Kimsooja assumes in almost all of her performances is one of symmetry, including her solitary meditation along the sacred Yamuna River, as well as her immersion in the chaos of Times Square on March 11, 2005 (A Beggar Woman). The emotional shock produced which in the first case can be seen simply by the artist's exposure to nature and to her own intimate and internal thoughts — is also felt in A Beggar Woman by all those people who notice her sitting on the ground, immobile as a lotus, like some unexpected flower that has suddenly sprung forth. Even in those images where symmetry is absent, such as in the portion of A Needle Woman in which the artist leans against a rock, or in the disjointed movements of A Wind Woman (2005), the lack of harmony is reasserted along with a desire to regain it. This also happens in the repetitive and circular passage of day into night, a cycle characterized by a conciliatory symmetry that the artist has marked out in more than one of her videos.
The video To Breathe / Respirar is an extreme and mature synthesis of all the themes presented in Kimsooja's works. Nothing is more symmetrical than the monochrome. These monochromes are sewn together by that electronic needle called post‑production. The color and form are similar to a kind of Asian silk, but also to Western modernism: in this way, one inhales and exhales, duality harmonizes, distant cultural traditions unite and connect like mirrored images, or like two twins helping each other to live.
— Essay of the Catalogue, 'Kimsooja, To Breathe / Respirare' solo show at the La Fenice Theater, The Bevilacqua La Masa Foundation, Venice, Italy
2006
Needles and mirrors are associated with femininity. They represent things done for others, or things done for oneself. But in the hands of Kimsooja, these simple objects become cosmic metaphors. Transcending the quiet confines of the domestic world, they point to new ways of thinking about our place in the universe.
Take the needle, for instance. When Kimsooja assumes the role of A Needle Woman, she draws on early memories of sewing with her mother and using bed clothes lovingly sewed by her grandmother. A Needle Woman makes reference to the simple actions that bind things together to sustain daily life. But this persona also reflects the fact that the first time Kim held a needle, she felt an incredible surge of energy, as if cosmic forces were converging on the needle's point. This experience has lead her to the post-Einsteinian notion that space, time and energy are interconnected. Their existence is relative rather than absolute — an insight which lies behind a work like A Needle Woman 1999-2001, in which the artist becomes a still point within a series of cityscapes marked by the swirl and chaos of urban life. In this series of videos, we see the motionless back of the standing artist, as residents of such diverse cities as Delhi, Lagos, London, Mexico City, Tokyo, Cairo and Shanghai pass before and around her like actors on a giant stage. Her long black hair, tied at her neck and dropping straight down her back, becomes a vertical force line anchoring her to the earth. This work offers three experiences of time — that of the artist, who becomes our reference point, that of the surrounding urbanites, rushing about their daily business, and that of the viewer who experiences these two very different modes simultaneously.
Kimsooja has extended this idea in a number of other works. For A Beggar Woman, filmed in Lagos, Nigeria in 2001, she sits on a street with her hands open like a beggar. In Homeless Woman (2001), she lies motionless and vulnerable on the bustling streets of Delhi. In this works, her transcendence of ordinary time takes on a political cast, as she identifies herself with the outcasts of society.
Describing her mental state as Needle Woman, Kimsooja has remarked: "it is the point of the needle which penetrates the fabric, and we can connect two different parts of the fabrics with threads, through the eye of the needle. A needle is an extension of the body, and a thread is an extension of the mind... The needle is medium, mystery, reality, hermaphrodite, barometer, a moment and a Zen." As a needle, she gathers power into herself so as to refocus it out into the world.
The mirror has similar complexity. In the popular mind, it symbolizes female vanity. However, a mirror is also a reflective surface in which we hope to glimpse deeper realities. The idea of painting as a mirror of the world is a mainstay of western art tradition. In the modern era, the mirror has turned inward, reflecting an interior world rather than external one.
But mirrors are unreliable tools. They can be misleading and even deceitful, which is why artists have so frequently employed them to play tricks on viewers. One famous example is Velazquez' Las Meninas in which a mirror in the background of a royal family portrait reflects back the image, not of present day viewer who seems positioned to be its subject, but the patrons for whom it was originally created. Something similar happens in Manet's A Bar at the Folies Bergere, in which the a frontal view of the barmaid directly confronting the viewer is transformed in the reflection of the mirror behind into an image of the woman serving a male customer.
More recently, artists have incorporated real mirrors into works in order to multiply or expand space, to dissolve the distance between viewer and surroundings or to destabilize the space which the viewer inhabits. Two notable practitioners of mirror art are Michelangelo Pistoletto and Yayoi Kusama. By silkscreening photographic images of men and women onto sheets of highly polished steel, Pistoletto literally brings the viewer into the image, collapsing the realms of "reality" and representation. Kusama, meanwhile, has created several completely mirrored rooms filled with hundreds of tiny lights which so multiply and distort the viewer's reflection that one begins to loose any sense of self.
Kim's Mirror Woman partakes of a similar disorientation. In her work mirrors dissolve distinctions between interior and exterior realities so as to allow individual consciousness to meld with the larger cosmos. In an 2002 installation titled A Mirror Woman, Kimsooja strung pairs of colorful fabrics, traditional Korean coverlets, in a room with completely mirrored walls. They created a maze through which the viewer could wend, creating a kaleidoscopic sense of fracture, as body and fabric seemed to merge into each other.
Needle Woman and Mirror Woman are thus two aspects of Kim's quest for cosmic integration. Needle Woman cuts through landscapes in order to stitch them up again. Mirror Woman dissolves differences between inside and out. These personas are most fully embodied in a pair of public installations which serve as precursors to Kim's installation at the Teatro La Fenice. A Lighthouse Woman was created as part of the 2002 Spoleto Festival in Charleston, South Carolina. In this work, Kim created a computer synchronized nighttime display ( KS: "This was a lighting installation using actual light source and the pieces I show in La Fenice is video piece which was computer generated color spectrum rather than lighting installation." ) which bathed the exterior of a disused lighthouse with an ever changing sequence of colored light. The work was mesmerizingly beautiful as saturated veils of gold, crimson, aquamarine and purple washed slowly over the elegant nineteenth century lighthouse shaft. For Kim, the lighthouse served as a surrogate of her own body. She projected herself into the structure, which became the embodiment of all the women over the years who waited for the safe return of those who had gone to sea. This work harked back to the idea of the needle, here symbolized by the lighthouse shaft, as the collector of energy. It also echoed Kimsooja earlier works in which bottari served as both paint and canvas to transform space, and knit together memory, history and consciousness. Here, a similar effect was created by light as a tapestry of color merged past and present, sky and water, mind and matter.
Mirror Woman, meanwhile, reaches her fullest embodiment to date in A Mirror Woman: The Ground of Nowhere, a work created for the exhibition Crossings 2003 Korea/Hawaii. Installed in the lobby of Honolulu's colonial era City Hall, this installation consisted of a sixty foot high vertical cylinder of white fabric set in the center of an uncovered atrium. In order to create this work, Kim orchestrated the reopening of a long closed aperture in the atrium roof. She sealed off all but the area directly above her fabric column, which she left open to the elements. Inside the fabric column, Kim laid down a mirror floor, so that visitors who stepped inside the muslin walls found themselves standing on a piece of sky. Meanwhile the fabric swayed gently in the breeze, giving a sense that one was inside a living, breathing space.
Clouds drifting above and reflected below gave one the feeling, paradoxically, of rolling on an open sea. At night the stars flickered above and below. As part of an arts festival celebrating Korean emigration to Korea, A Mirror Woman made reference to the immigrant's sense of destabilized identity. But this hypnotic installation also provided visitors a more general experience of becoming one with earth and sky.
These works provide underpinnings for Kim's new installation. TO BREATHE - Invisible Mirror / Invisible Needle - 2003-2005 which has been installed in the Teatro La Fenice. This work is also a light installation. It consists of a slowly changing overlay of colored light which washes across the auditorium and audience. Accompanying this display is a chorus woven together from the sounds of human breath ( KS: "my own voice and performance" ). Here, as in Mirror Woman in Hawaii and Needle Woman in Charleston, space is infused with a sense of life. As ear and eye are taken over by the symphony of light and sound, time loses its schematic quality and distinctions between space, self and other disappear.
Kim's work is often discussed in relationship to her status as an immigrant, a nomad, or an Asian woman displaced into western culture. These ideas were reinforced by her use of Korean materials like the bottari, which she has often presented bound up in bundles (Bottaris in Korean), suggesting a lifestyle in which all one's worldly goods are easily gathered for easy departure. A sense of displacement permeates works like 2727 Bottari Truck (1997), a video depicting her journey through rural Korea on the back of a truck filled with bundles composed of bound bottari. Here again, the camera presents her from the back, a still center in the midst of a changing landscape. But if works like these touch on traditional concepts of home and roots and celebrate the traditional female activities which give us a sense of place, it is dangerous to oversimplify Kim's intentions.
On one hand, her work clearly involves a rejection of western dualisms which make distinct and irreconcilable entities of such pairs as mind/matter, space/time, or self/other. Instead, she is more attuned to Buddhist inspired ideas about the circular nature of time and the transcendence of desire and physical limitations. But she refuses the easy division of East and West. Instead, she reminds us that even in the West, there are more wholistic traditions which bear kinship to her thinking.
For instance, there is the notion of duration as explored by French philosopher Henri Bergson in the late 19th century. Bergson described duration as lived time, the experience in which time and space and past and future are fused with the continual present. He likens duration to the perception of dance, where prior and future movements are implied at every moment in the sweep of the performer's continuous gesture. Thus, instead of making the present disappear, as happens when the linear experience of time rushes us along a prescribed path from past to future, duration creates a consciousness of our unity with the dynamic nature of the world. This seems a satisfying description of the experience evoked by TO BREATHE.
A few decades after Bergson published his speculations, Albert Einstein turned to physics to propose a similar revolution in our thinking about time. His theory of relativity also rejected the notion of space and time as self sufficient and independent entities. Instead, he fused them into a single interactive entity called spacetime. More recently advances in electronic communication make it possible to experience what video artist Bill Viola calls "parallel time", the sensation of existing simultaneously in one's own body and in some far flung locale. Viola notes that it is possible to be as aware of what is happening in a loft in New York as in a street in Paris or a war zone in the middle east. This idea certainly resonates with the multiple experiences of time and space expressed by the Needle Woman.
Thus, in referencing ancient Asian traditions and philosophies, Sooja Kim (Kimsooja) is also presenting us with tools for thinking about the complexities of life today. Needle Woman and Mirror Woman face backward and forward, tying together history and the future, while reminding us that in the end, it is the infinite present in which we live our lives.
— Essay of the Catalogue, 'Kimsooja, To Breathe / Respirare' solo show at the La Fenice Theater, The Bevilacqua La Masa Foundation, Venice, Italy
2005
One of the influencial topics in Western art since the late eighties is — in different facets — the issue of absence. Service art, art as curating, the nomadic existence, the anonymization of individual authorship due to collective creativity — this and more are indicators for the fact that artists have increasingly tried in the past few years to break out of the system of self-reference which has been a major influence on Western art since the Sixties. Absence is used here mainly as a strategy, in order to undermine the increasing personalization in the arts and to access fields once again, which open up a stronger connectivity between art and its social dimension. Nevertheless, these strategies always inhere the matrix of self-reflexiveness. The opening of Western art to cultural influences from other continents — due to globalization — is of special importance in this situation, because from here, beyond the discourse-safe products for the western art market, also originate important impulses for a renewed debate about how art can dedicate itself again to the general questions of the human life in a way that it fulfills contemporary aesthetic standards at the same time.
Kimsooja was born in 1957 in Korea, and now lives in New York. She is one of those artists who have, over the past fifteen years, contributed significantly to this re-orientation of contemporary art. She has grown up in a culture shaped by Confucianism, yet her immediate environment was dominated by Catholicism. The fact that the family had to move repeatedly, due to her fathers occupation in the military, led to the early experience of uprooting, a sentiment that has also influenced Western culture throughout the 20th century. In an interview with Gerald Matt, Kimsooja characterized herself in these words: "Travelling is not always voluntary for me. I was often forced to travel. Travelling belongs to my life, since I was a small girl (...) Settling down and being shuffled around, meeting and separation - these topics were always present for me. I have the mentality of a person living on a border line, and the materials, with which I work, correspond to that. Since my childhood I had a lot to do with 'longing' and ' homesickness' with 'memory gaps' and 'adjustment to the new environment'." [1]
This personal background influenced the development of Kimsooja's art and her body of consistent work has grown since the 80s. The materials refered to above were first those which belonged to the artist's grandmother. After her death, Kimsooja used the fabrics in order to create large sized murals, which are in the spirit of the painting she had initially studied in Korea. But already the use of these materials tainted with memories - with all colouredness of the individual materials, which were formed to abstract compositions focuses on absence, i.e. the loss of her grandmother. At the same time, the use of these fabrics in itself breaks a taboo, as cloths are regarded to belong to the people who wore them during their lifetimes. This double "absence" (the mental-physical of the grandmother on the one hand, the disrespect of tradition on the other hand), this ambivalence is characteristic of Kimsooja's artistic procedure altogether.
It cannot be the place here, to discuss in detail the development of Kimsooja's œuvre, for this I would like to point briefly to the recently published overview of her work. [2]
Yet, it is crucial for me, that the motif of absence can be found in the entire body of work that Kimsooja has realized so far. It is to be observed that the artist understands absence not as a motif of deficiency, but as a constructive, dialectic strategy. After her scholarship at P.S.1 in New York, Kimsooja's first new work concentrated above all on the traces of usage on objects, Deductive Objects. With this group of works the artist succeeded in detaching herself from the painting as the focus of her visual production, and consequently extended her vocabulary in rapid steps by installation, video, photo and performance.
Fabrics play a particular role in the group of works, Sewing Into Walking, the Bottaris, and partly also in the series, A Laundry Woman. Finally, they also form the basis for the 2004 graphic edition, Seven Wishes, featuring different motifs of Korean cloths which were used also for the Bottaris and different installations in the series of A Laundry Woman. Furthermore, works like the photo/video/performance work Encounter and the photowork Epitaph, demonstrate Kimsooja's 'souverain' handling of this topic.
In another group of work, absence is connected with spatiotemporal questions. In these works, the allegorical function of the above mentioned works with a stronger pictorial character step back in favor of a dialectic relationship between work and viewer. I am refering specifically to the performance series A Needle Woman, developed for the video camera (a second set of performances in this series is pending) as well as the related series A Homeless Woman and A Beggar Woman and several works from the series A Laundry Woman. In these works, Kimsooja is always located in the center of the picture, her back towards the viewer, immobile, sitting or lying. All that happens takes place around her. Either she is surrounded by streams of people in metropolises of different continents, or the slow stream of a river flows, passing before her. The dialectic of immobility and mobility in these works, already discussed by different authors, rotates around the center of absence, as it is featured in Kimsooja's work. The artist herself has highlighted it in the following statement: "Everything moves, and movement is a fundamental condition of being. The oscillation of each moment has its own rhythm. Nevertheless the difference between mobility and immobility for me is comparatively small. I have aligned my body to a certain extent to the threshold of a sensitive barometer, which differentiates between the fine borders of mobility and immobility. It is somewhat logical therefore that the mobility of my body located in certain roads, in certain cities, in different continents represents an example of immobility, while my decision to move is on the contrary completely sudden and takes place unconsciously. The decision falls within an energetic conflict between two different elements, my body and the external world. I always wanted to show reality by presenting to people things the way they really are, without doing something, making or creating something further, while most artists and actors strive to create or show something new." [3]
Absence is thus for the artist an important means in her art to communicate to the public an experience corresponding to her own experience and her own reflections. Therefore Kimsooja's artistic approach has not unjustifiably been called "existential minimalism", a term, she emphatically embraces for her uvre. Under this label a contemporary western current meets the timeless practices of Zen Buddhism. For Buddhists the void, i.e. absence, means abundance, inasmuch as the emptiness gives space for meditation on life. We can therefore define Kimsooja's work as a rare case of intercultural fertilization, which highlights the particular importance of her art.
For the Kewenig Galerie in Cologne, Kimsooja conceived an exhibition which is to be understood as an installation. The center point is an old truck, loaded with Bottari bundles, further individual Bottaris, the graphic edition Seven Wishes, likewise related to the Bottari materials and 4 video projections. The exhibition title refers unmistakably to the transitory nature of the manifestation. Already three linguistic elements refer to it: The term of the Bottari itself, the date and finally the combination with the place. Bottaris are bundles, in which Korean people, in particular women, are traditionally tying together their belongings in cloths, to take with them when moving out of necessity or voluntarily - to another place. The cloths are usually bed cloths or bedspreads, given as the traditional Korean wedding gift. Thus they are closely bound to their owners, often accompany them until the end of their life, also because the motifs, inserted into the cloths, represent the well wishes of the giver, which are hoped to be fulfilled during the course of life. In Seven Wishes, Kimsooja features five of these motifs, complemented by two large size abstract motifs, i.e. by wish-motifs, which are waiting to be filled with life.
Directly in the entrance area of the gallery, the visitors are greeted by a Bottari bundle, but mainly in the basement of the gallery, in the areas with compact and simple vaults, individual Bottaris are to be found. The mood of these installations always inheres a tendency of loneliness, which here becomes particularly effective, not alone through the aesthetics of the space, though. Even if the Bottari bundles can always be understood as a testimony of an individual life charged by that person's personality, Kimsooja has succeeded here in creating an extraordinarily impressive reference to the special history of this place. In the neighbouring part of the building, next to the Kewenig Galerie, the secret state police maintained prison cells during the Nazi-era where systematic torture took place. The destruction of the individual sought by the Nazi regime is counteracted by Kimsooja's quiet, but indeterminable note highlighting the indestructibility of the human soul.
An age-old three-wheel truck Tempo, from 1938, is located in the center of the upstairs gallery, its cargo area loaded with Bottari bundles that reach over the roof of the driver's cabin. Entering the space, the visitor approaches towards the protruding and pointy bonnet, giving a morphic twist to the car. This Bottari Truck is a newer version of the original truck, in which the artist drove in 1997 for eleven days, a performance crisscrossing through Korea. If the original was later being seen "in exile" in different exhibitions, Kimsooja realised a new truck for the Cologne exhibition, a somewhat smaller version. The original performance took place in the context of the project, Cities On the Move, and illustrated the special state of mind of people who are forced due to their life circumstances to move their homes again and again. The resulting special relationship to space and time, typical for migrants, which is usually hard to comprehend for non-migrants, becomes especially apparent in the Bottari Truck. The artist described it as follows: "Bottari Truck is a processing object throughout space and time / locating and dislocating / ourselves to the place / where we came from / and where we are going to." [4] There are few works, which focus on the topic of migration and how it seizes people again and again in the same way, with such precision, yet, without falling into any kind of the ideology.
The artist has placed four video projections in the same gallery, which transpose the emotional motif of the Bottari Truck onto a more abstract, philosophical level. All video work originates from the years 2000 and 2001 and has so far only been shown rarely. Only one work features a crowd, immediately drawing an association to the performance series A Needle Woman. There is however no connection between the work Bottari - Zocalo and the performance series. Here the artist herself cannot be recognized, she is not surrounded by the flow of people as in A Needle Woman, the crowd is nearly static, it does not move in a superordinate direction. The spectator only recognizes single, individual movements, which go into different directions. The majority of people remain unrecognizable on the spot, similarly as in large concerts in football arenas. Because the image is projected somewhat accelerated and is at the same time also blurred, strangely abstract effects arise. The optical proximity to other abstract cyclographic pictures, in which the origin of the elements' movement is not evident, transposes the perception of the concrete situation, in which people are in the recording, on a general level, and which the emphasis is placed on the dialectic between static of the crowd and the movement of its individual components.
Something similar takes place in the work Bottari - drawing the snow, which shows the falling snow on a winter night. The camera looks up into the falling snow, and like before, the image contains no orientation coordinates. What remains is the apparently coincidental direction of motion of each individual snow flake in contrast to the seemingly immovable flakes disappearing into the darkness of the space behind. This image has such a high degree of abstraction that it already reaches the dimension of the concrete, into which the viewer immerses. Is it an image of meditation?
The work Bottari - wrapping the thunderstorm takes up the Bottari - drawing the snow motif again, breaking however from any kind of natural image. The viewer only sees the electronic "snow" that develops on-screen if the screen does not receive a proper signal. The term for the title of this work, taken out of nature, supplies the starting point for an interpretation in this case. Because the "storm" here is on a more micrological level, reaching such high speed, it appears nearly motionless again for the human perception. Also the depth of the area which can still be suspected in " Bottari - drawing the snow " is here left exclusively to the imagination of the viewer.
The fourth video projection, Bottari - Alfa Beach, however, features 'natural space'. The image of the barely moving sea and a piece of sky is projected upsidedown. The horizon lies in the center of the picture, and watching it, the question emerges regarding the coordinates having led to this picture. Upwards downwards, surface and depth — all these terms become questionable in view of this simple gesture of a reversal and are begging for reassurance.
With one exception (Seven Wishes) all works in this exhibition carry the first title Bottari, including the video projections. If one accepts the ambivalent representational character of the bound "bundles" — to be on the one hand a metaphor of migrating, concomitantly the internal state of migrants, on the other hand a concrete, nearly magic component of a lived life — as meaningful basis, then once more this installation refers to absence as endowied with meaning, emptiness as abundance, because it becomes apparent, "that Kimsooja's art is directed towards another kind of void — neither the void of art history nor the void of today's split in human consciousness, but the void of the self, the concept of 'no mind'." [5]
Robert Morgan's words turn into a nearly soothsaying dimension given Kimsooja's exhibition at the Kewenig Galerie in Cologne. The Bottari gains thereby a further level of meaning, which has not been recognized in Kimsooja's œuvre so far. It becomes a time capsule, which, in contrast to the linear temporality of Andy Warhol's Time Capsules, connects time with those dimensions, which extract themselves from our conscious and controlled access. Kimsooja already expressed this in 1997 with the following words: "Time is mental space whose physical presence can never be grasped, space from which we can never escape. Whenever we want to, we can always recall a particular time, but we can never relocate our body with respect to that moment." [6]
Vaduz, June 2005
[Notes]
[1] Kimsooja talking to Gerald Matt, in:
[2] Gerald Matt (ed). "Kimsooja - A Needle Woman", Vienna 2002, p. 7 - 33, here pp 8.
[3] "Kimsooja - Conditions of Humanity", exhib. Cat. Musée d'art Contemporain, Lyon and Museum KunstPalast, Düsseldorf, 5 Continents Edition, Milan 2003.
[4] see Gerald Matt, pp.7
[5] Exhibition catalogue "Kimsooja - A Needle Woman", Kunsthalle Bern, 2001, pp. 35-43, here p. 36.
[6] Robert Morgan, Kim Sooja - The Persistence of the Void, in: "Kimsooja - A Needle Woman", exhibition catalogue, Kunsthalle Bern 2001, pp. 47-56, here, p. 55.
[7] "Kimsooja - A Needle Woman", exhibition catalogue, Kunsthalle Bern 2001, p. 36.
─ Thoughts accompanying the exhibition, "Kimsooja - Bottari Cologne 2005", Kewenig Galerie, Cologne 29.1 - 23.4, 2005
Friedemann Malsch is the Director of Kunstmuseum Lichtenstein, Vaduz, and served as a curator there from 1996-2000. Among the many shows he has curated, he assembled the show Migration in 2003, which Kimsooja participated in. At Kunstmuseum Lichtenstein, under the title Dialogue, Malsch has established a forum for rapidly changing collection presentations, on which historical and stylistic demarcations are set aside in favor of thematic aspects. Malsch is considered, among other things, as a specialist in video art.
2005
'The space is nowhere. The space is within itself like honey in a comb.' [1] The enigmatic quality of this image lies in the special powers of honey — first to accrue and then to spread out, and, resistant to being sealed off, to transform and expand space with its light and scent. This observation can assume broader implications as an analogy for a universal outlook that from the Renaissance through to the present has been formulated by philosophers and poets alike. Namely, that the way we experience exterior space, its boundlessness and its limits depends on the inner space of the subject experiencing it. It is this inner space alone that determines the extent and expansion of space and things, an insight Rilke couched in the words 'the one space stretches through all beings, an inner cosmos', and, elsewhere, 'Space spreads transposingly from us to things: / to properly feel how a tree upsprings, cast around it space from that which inwardly / abides within in you. Surround it with retention. / It has no bounds. Not until its reascension / in your renouncing is it truly tree.' [2]
To examine experience and objects in terms of their dynamic power to seize and occupy space, to think through time and space in terms of their capacity to expand, in other words to give visual form to the potent equivalence between substance and 'extance' [3] is probably the most important creative principle propelling Kimsooja's work.
Born in Taegu in 1957 and a resident of New York since 1999, the Korean artist has no need to impress through heroic gestures. The barest means — needle and thread, and a few pieces of used cloth — are quite enough for her. These can, for example, end up as The Heaven and the Earth, one of her first works from 1984. Kimsooja was 27 years old when she stitched together the scraps of material left over from those of her deceased grandmother's old silk dresses that were not fully worn-out and faded. Here, echoing the title, the entire universe is laid out before us — the earth's four quadrants designated by the four points of the compass and at their centre, as described in many ancient cultures, the fifth realm where the 'world mountain' or the site of the 'column of heaven' [4] is located. That this can indeed be understood to represent a universe is confirmed if one closely examines and elucidates the full body of Kimsooja's art and its underlying coherence.
Having studied painting in Seoul and lithography in Paris, the artist was concerned from the outset with finding means of abandoning the frame encompassing the canvas and the image. In the early nineties she stitched together patches of coloured fabric into relief-like, freely proliferating forms, mounting onto walls a rich spectrum of semi-circular shapes or tondi. Cloth, needle and thread in lieu of canvas, paints and brushes. But these are fabrics that once 'had a life': worn garments or traditional Korean bedspreads. Kimsooja seeks out these pieces of cloth because they 'retain the smells of others' lives, memories and histories, though their bodies are no longer there — embracing and protecting people, celebrating their lives and creating a network of existences.' [5] These works also have titles that allude to something far beyond the borders of the object and fill it with interior space, such as Toward the Mother Earth.
For Kimsooja the act of sewing quickly became far more than a mere departure from painting, as this shift gave her the means to evolve a cognitive approach and a world view, spawning a central idea that was soon to animate her entire work. All the works she has produced since then can be considered part of an exploratory quest to fathom this mythical universe spun around needle and thread. Indeed, unlike any other instrument the needle is able to hold 'the thread, drawing it through the surface into the lower layers, into an underworld of downward motion. There is the needle that moves along the boundary, between the panels it is about to join together. It overcomes intermediary space. But the needle has no existence of its own. It is an instrument, a means; once the work is done, the needle disappears.' [6] When Kimsooja — who even sewed her own name together from her forename Sooja and her family name Kim — describes the needle's attributes one clearly sees how closely she identifies with this instrument of artistic labour. At the time she was making her large and increasingly expansive relief-like textile collages, she also began working on objects which she modified by covering their surfaces with fabrics. There are, for instance, the large runged wheels some 185 cm high, steel structures made by the artist and assembled together with discarded farming tools; these interest her less as ready-mades than as objects which once had a purpose and are thus imbued with their own time and history. The fabric cover softens the sharp edges and points, transforming the work tool into a feminine and visual object. [7] While these experimental pieces are perhaps less striking than Kimsooja's other work they nonetheless assume a pivotal function within her artistic development in the sense that they mark the point of transfer of her textile surfaces into the third dimension.
This is the basis on which Kimsooja then founded a wholly new understanding of her role as an artist. In her subsequent works she no longer treated the needle as an extension of her hand but increasingly regarded herself and her own body as the needle, using it as a sewing tool to move between layers of textile. It was this new awareness that led her to make her first bottari, the Korean word for the cloth bundles that are so deeply part of Korean tradition. Even today the large, richly coloured and decorative bedcovers woven in silk or cotton are still used in Korea to transport clothes, books and household articles on journeys or as storage around the home. But these bundles are also the expression of a culture exposed to colonialist threat and repression, one whose constant preparedness for departure and escape has become fully ingrained in the habits of everyday life. A large cover of this kind still represents a typical wedding gift for young couples. Its functions mark the poles of human existence: as a bedspread it is equated with tranquillity, tenderness and birth; as a suspended stretcher it is used as a cradle for carrying the sick and the dead. But besides its place in Korean tradition a further significant aspect becomes evident if one considers the position textiles have held in age-old African-Arab culture. When a woven fabric is removed from the loom and the threads are cut the women pronounce the same ritual blessing as they would at the severance of a baby's umbilical cord. Thus in terms not only of its function but also of its manufacture a cloth could be likened to a bridge spanning the entire breadth of human existence, with the four sides of the loom signifying the four ends of the world.
The idea of or awareness for the bottari arose during the period of Kimsooja's artistic residency at P.S. 1 in New York in 1992—93. In her studio she caught sight of the bundle in which she kept her clothes, as she had commonly done in Korea. Living in alien surroundings had changed her perception: 'Suddenly the bundle meant something entirely new to me. It was a sculpture and a painting in one and I realized that by the simple act of tying it together I could shift from two to three dimensions', she noted. [8] At the P.S. 1 open studio in 1992 and the New Museum in New York a year later Kimsooja created her first installation made of bottari. On her return to Korea she exhibited them for the first time in her home country. In the village Yangdong in the Kyungju region she came across a deserted house which she chose as the site to install this work — brilliantly coloured cloth bundles spread out over the floor. Not only did this manifest an alien view of her own culture but it also instantly set the course for her adoption of alienness as a way of life. Within Kimsooja's oeuvre the bottari evolved into a kind of module that would recur in ever-changing variations in altogether different contexts during her travels over the following years.
At the same time, however, in 1995, she used fabrics to construct an ephemeral monument commemorating the two thousand Koreans who were shot dead in Kwangju. In May 1988 students and others who demonstrated against the imposition of martial law were brutally murdered by the government. For this work Kimsooja covered the ground of a wooded terrain with two and a half tons of cotton clothes, some bundled up into bottari, others piled in loose heaps. Visitors were able to walk over the laid-out clothing. As the installation ran its two-month course and the seasons progressed the items of clothing became increasingly intermingled with the earth of the forest floor. Called Sewing into Walking, a piece in which first she and then each of the visitors acted as needles gradually stitching together not only the past and the present but also the man-made and the naturally grown, the dead and the living.
This new dimension, whereby 'sewing' is extended to the outside world, gave rise to a spectacular image in her 1997 performance titled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 Bottari Truck. For this work Kimsooja heaped piles of bottari onto the uncovered loading area of a lorry, fastening them with a crisscrossed web of strong elastic rope and then, seated on top of this bundle of bundles, travelled for eleven days though Korea visiting all the places she had ever lived in and which for her were thus loaded with memory. To reach these towns and villages the truck climbed sinuous roads over mountains and through valleys, boarded ferries to cross from seashore to seashore. Kimsooja explains why it was so important for her to sit on top of these itinerant bundles of belongings: 'my body — which is just another bottari on the move — is in the present, is tracing the past and, at the same time, is heading for the future, non-stop movement by sitting still on the truck. And though I used myself in this work, I tried to locate a more universal point where time and space coincide.' [9]
This journey encompassed two extremes at once: the more or less conscious act of bidding farewell to her home country before moving completely to the US and the starting-point of a life that was to be increasingly shaped by the rhythm and her personal awareness of being on the move. But the 'universal point' Kimsooja was seeking might, arguably, reside in the perception of these folded clothes and tightly tied bundles as metaphors for the universe. The bundles could be seen as an altogether concrete expression of Leibniz's notion of the universe as a vast cloth that, however many new folds it acquires, always remains one and the same piece of cloth. 'The entire universe is a continuous body that is not divided but like wax can assume various forms and like a tunic can be folded in a variety of ways.' [10] Even if Kimsooja herself, who is familiar in like degrees with eastern and western culture, would not draw such a reference to Leibniz, her work nonetheless offers evidence of a sensibility which grasps cloth as a phenomenon and takes account of its pronounced cultural-historical and philosophical connotations. Indeed, her work seems almost to have been woven from all the different contrasting manifestations of this same phenomenon, whether packed together in round, thick, heavy bundles placed on the ground or as pictorial surfaces fluttering gently and delicately against the wall — in the manner of how she went on to work with cloth. Besides fabric, there is hardly another material so rich in associative potential: it is capable of being one and many at the same time, yet can be returned to being one. But the particular quality of Kimsooja's work lies in how she takes the spiritual-corporeal dual nature of cloth, which for so long has fascinated philosophers and poets alike, and transposes it into a constantly revitalized and ever-evolving exploration of time and space.
The broad scope of her travel performanc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 Bottari Truck came full circle when she parked her lorryload of bottari in the 'd'Apertutto' [11] hall during the Venice Biennale in 1999. The truck was installed in front of a large mirrored wall — as though her notion of living in exile were characterized by this dual vision of things. In this particular setting the installation was indeed titled Exile. The fact of departure is irrevocably sealed by the fact of arrival. In another performance, which felt almost like an inverted echo of her Venice installation, Kimsoojaspread one of these magnificently coloured fabrics over the grass between the gravestones of a cemetery in Brooklyn, where the cloth was billowed out by the wind like a sail. Looming behind her was the silhouette of New York with its towers looking as stone-carved as the tombstones. Performed in 2002, just a year after the terror attack on September 11, the piece she titled Epitaph was nothing further than a fluttering gravestone inscription. The Greek word epitaphion means 'at the grave', and it is precisely this embodiment of nothing more than the prepositional gesture of 'at', of hovering in the intermediate realm, of being suspended on the edge that constitutes the poetry of her work. This single gesture might also evoke Rilke's call to cast one's own immeasurable inward space around things so as to free them from their limits, to grasp them concretely in one's vision. But in this instance it was not just any object that she had taken to expand the space of experience. This too is why the 'ybulbo' — the name for large Korean bedcovers steeped in history and tradition — were able to 'spread open' their own space when long rows of them were suspended on washing lines traversing the room in the work A Mirror Woman (2002). Here, not only was the viewer's gaze immersed in a swirl of colour but his ears were also awash with sound, with the chants of Tibetan monks. But the covers were also hung between two walls of mirrors, incorporating the viewer into a never-ending reflection as he wandered through the floating, wafting walls of fabric, these swaying pictorial panels that in endless repetition constantly unfurled new fata morganas and chimerical spatial realms.
This installation was one of the works that again centrally featured fabrics, which are capable of filling space and creating space of their own. At the same time this work acted as a seam, a threshold and a turning point for a new stage in Kimsooja's work. Hereafter she began to envisage the entire space of her surroundings, the world she observes and experiences, as an immense piece of cloth through which she herself travels as a needle.
A Needle Woman (1999) is the name Kimsooja gave herself in the performance she held in Kitakyushu in Japan when she reclined on top of a cliff with her back to the viewer. She lay on her side, her body nestling against the curves of the rock, one of her arms outstretched, cushioning her head, the other clasped along the length of her body. With her legs closed, her body traced a single line starting at the tip of her outstretched feet. She did not support herself: this reclining horizontal posture is not an expression of passivity but a sign of balance and alertness. The colour of the pale limestone echoed that of her gown, reinforcing the sense of unity between the human body and the geological body. This is probably one of her quietest, most peaceful works. 'Nothing changes in this video except the natural light from the sky and a little bit of breeze, and at the end there is one fly that is just passing by against the slow movement of the clouds. Of course, I had to control my breath, so my shoulders wouldn't move; I taught myself how to breathe with my stomach. I was there a pretty long time. The rock was a little bit cold, but it was just so peaceful. I was completely abandoning my will and desire to nature and I was at such a peace.' [12] Her words may have the ring of Far Eastern meditative culture, but Kimsooja actually expounds a world view that is more a fusion of eastern and western culture and treats meditation as part of everyday life. [13] Hence, as the horizontal Needle Woman lying on the mountainside of Kitakyushu she can equally associate herself with the crucifix. For her body is 'located at the central point of four different elements which are in-between the sky and the earth, nature and human beings. I located myself on the borderline of the earth and the sky, facing nature and away from the viewers'. [14] Here one can sense the vision of the universe alluded to in the cross of cloth called The Earth and the Heaven that was mentioned at the outset which, when set in proper context, increasingly reveals its true dimensions.
The further one probes the logic woven into Kimsooja's work — following the weave, as it were — the more it appears to be oriented towards forming an image of the world with universal scope. One year later, with a quietness similar to that witnessed in Kitakyushu, but now tipped into a vertical axis, the artist stood on the steep slopes of the Yamuna river in India near Delhi, not far from where the dead are cremated. She can be seen peering across the water, watching the blossom, ornaments and other remains of incinerated ritual objects drifting away towards the horizon. Again Kimsooja is observed from the rear, the viewer's gaze following hers into the space that to her resembled a painting, a space holding 'anonymous people's life and death, including mine.' [15] The fact that she is viewed from behind has been frequently commented upon. Yet how else is such a pictorial space meant to arise, one that allows the viewer to participate in what is seen and experienced? Is it not precisely through this distending glance that space and meaning can be generated? [16]
Kimsooja's appearance in her own pictorial spaces is evidence of 'being in the world', a state that absorbs and incorporates its audience, as opposed to the viewer being excluded and treated as 'other'. Moreover, her presence in these spaces is not that of a melancholy dreamer but of an active axis. Whether in a horizontal or a vertical position, she is always the one who, as she says, condenses movement and time. The artist transforms time into corporeality that not only circumscribes space but actually opens it up: 'For me, space is time — time is space. Every single movement and any physicality is time. If we draw a line from a given point, time runs exactly parallel to it. A line is the physical expression of movement in time. And through this movement space is also opened up. When I position my body as a stationary, vertical axis in space I am to some degree creating a form of timelessness, but I am simultaneously opening up another kind of movement — a vertical, inwardly directed movement, time in the form of condensation. We cannot separate the coexistence of time and corporeality, and hence spatiality; they are for ever immutably fused.' [17] This conception of time and space as corporeal entities can be witnessed not only in Kimsooja's living images of devotion to the structures of the cosmos and nature, but also in her performances in the open spaces of collective experience in the world's cities. In A Homeless Woman she can be seen lying on the ground in the same posture as she assumed on the Kitakyushu mountain, but now directly on the streets of cities like Delhi and Cairo. As a needle, barometer, seismograph and compass she seems to be doing more than just personifying time and space, she is also indicating the everyday dramas that usually go undetected in our habit-formed lives. The social fabric has now become her material. Her gown is as grey as the dusty road; her presence evolves into silent, physical testimony.
This performance also has a vertical equivalent. As in her extensive performance series A Needle Woman (1999-2001), which she resumed in 2005, urban residents become the cloth in which Kimsooja wraps herself when she travels to large cities and implants herself as a perpendicular axis amid teeming passers-by, standing bolt upright and motionless in the very places where the crowds are densest. The videos on which these performances are recorded are silent; the viewer can fully concentrate on the image and its time and space. Here again the artist's gaze is directed at events before her and the people passing by. People in Delhi, Lagos, Tokyo, New York, London, Mexico City, Shanghai and Cairo. Here we see people with time to notice the artist, to smile at her, to turn around and look back; or others who are focused wholly on their own purposes and hurry onward without registering her. Immobile and with steady gaze, the artist stands in the surging floods of people, stems herself against the current, her motionlessness acting as a gauge of passing time. Similar to how she stood as a vertical living axis by the Yamuna river, fully aware that even if she were no longer there the vast horizontal current would outlast the arc of her existence and continue to flow onward, here it seems much the same, that the broad currents of surging humanity will never cease to flow, will outlast this corporeal needle measuring the present.
In her most recent performances series A Needle Woman from 2005 Kimsooja turned to examine an entirely different theme, even though she barely altered her pictorial means. For this she travelled to trouble spots around the world, places with a background of prolonged struggle against colonialism, regions that have been plagued by war, civil strife, economic conflict and dire poverty, that have been decimated by ancient feuds between warring ethnic groups. She visited Havana where the scars of colonial experience are still keenly felt; she went into the favelas in Rio de Janeiro where everyday life is constantly menaced by street warfare; she travelled to N'Djamena in Chad, the poorest country in Africa and to Sana'a in Yemen, a country currently embroiled in conflict with both the US and Israel — not to mention Patan in Nepal and Jerusalem. These journeys were more tokens of physical testimony than of the possibility of physically experiencing time; the purpose and implications of this testimony are made clear by the high degree of risk to which Kimsooja exposed herself in these places and on her travels. While the viewer again witnesses her as a calm and stationary pole standing in the midst of milling crowds, among which are also variously uniformed soldiers, she herself can hear the rattling of machine-guns from all around her and on more than one occasion has feared she might be shot in the back.
This video installation was shown on six screens at the 2005 Venice Biennale. For the first time the video's speed was not real time but cut by fifty per cent, thereby stretching the duration of the performance, distending the moment of encounter between Kimsooja as an immobile axis and the passing people. Only when time is expanded does the encounter between standstill and flowing time become properly visible. This gives rise to three different time zones within the pictorial space. First there is the form of timelessness embodied by the stationary vertical pole of A Needle Woman. Very similar to her performanc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 Bottari Truck where, seated on top of the lorry's fastened load of bundles like a human bottari, she acted as a sign of the present travelling through the past while constantly moving towards the future, here again she is a stationary pole that personifies past, present and future in one. Holding the past within her, Kimsooja encounters the present and looks into the future. Secondly, besides this form of condensed time there is also the motion of the passers-by who are the concrete manifestation of a time composed of countless juxtaposed moments of the present. Finally, a third time zone is introduced into the image by the viewers themselves, for it is they who embody the link to real time. To a greater extent than the physical experience of space, this work manifests the physical experience of time. [18] It offers concrete evidence of the degree to which our relational systems are determined by both space and time. Time, like space, can isolate or connect. By expanding time Kimsooja's video work emphasizes the encounter, but is more than just a phenomenon of simultaneity. What instead transpires is similar to what happens when we observe the expanded space in her Kitakyushu and Yamuna river performances: the viewer is drawn into a state of consciousness comparable to that of experiencing the horizon. Expanded time opens up the experience of one's own boundary. While the viewer is watching the videos of these six spaces of conflict filled with teeming human crowds he is looking in the same direction as the artist, is standing motionless as her and experiences his own time, its limitation and thereby the possibility of imagining how this boundary might be surpassed.
With the Venice piece the role of A Needle Woman visibly evolved into the political role of a witness, of someone who 'was there', who was in the midst of everything, who also suffered, who partook in need and hardship and is now able to report about it. Here she has become a needle that gauges reality, a clock hand registering the events of our time. But in this role A Needle Woman also embodies our relationship to current events, our unshielded vulnerability towards the moment, an exposure that lacks reflective distance. It is the dislocating filter of imagery that offers the means of overcoming such blind, mute and excessive proximity in our experience of the present. For even if the viewer himself experiences events from the same perspective and, conceivably, with the same inner calm as the artist it is the distance established by the image that provides him with a filter of time and space, thereby engendering insight. Kimsooja has created a profoundly ethical anthropological work. The universe she stretched open when she started out as an artist has evolved into a truly committed condition of 'being in the world', which for the artist herself only makes sense as a political embodiment of our spatial and temporal experience. The full dimensions of her pictorial world are only properly revealed when one perceives it as fostering a sphere of concrete metaphysics — but one which seeks its raison d'être in ethics.
[Notes]
[1] Joë Bousquet, 'La neige d'un âge', quoted in: Gaston Bachelard, La poétique de l'espace, Paris, 1957/2004, p. 183.
[2] Rainer Maria Rilke, Sämtliche Werke, vol. II, Frankfurt/M., 1991, p. 168: 'Raum greift aus uns und übersetzt die Dinge / dass dir das Dasein eines Baumes gelinge, wirf Innenraum um ihn, / von jenem Raum, der in dir west. Umgib ihn mit Verhaltung. / Er grenzt sich nicht. Erst in der Eingestaltung / in dein Verzichten wird er wirklich Baum.'
[3] Bachelard, ibid.
[4] Otto Friedrich Bollnow, Mensch und Raum, Stuttgart, 1963/2004, p. 64.
[5] Kimsooja in conversation with Mary Jane Jacob in In the Space of Art: Buddha and the Culture of Now, 2004; see: www.kimsooja.com/texts/jacob.html.
[6] Kimsooja in conversation with Doris von Drathen in June 2005; see Künstler Kritisches Lexikon der Gegenwartskunst, Nr. 74, vol.12, Munich, 2006, pp.14—15.
[7] Kimsooja in an email to the author, 5 January 2006.
[8] Kimsooja in conversation with Mary Jane Jacob, ibid.
[9] Ibid.
[10] Horst Bredekamp, Die Fenster der Monade, Berlin 2004, p. 16. ('Totum universum est unum corpus continuum. Neque dividitur, sed instar certae transfiguratur, instar tunicae varie plicatur.')
[11] The name coined by Harald Szeemann for the exhibition of young artists staged in the Arsenale during the Venice Biennale he directed.
[12] Kimsooja in conversation with Mary Jane Jacob, ibid.
[13] Cf. Kimsooja in conversation with Doris von Drathen, reproduced in this publication.
[14] Kimsooja in conversation with Mary Jane Jacob, loc. cit.
[15] Ibid.
[16] Cf. Rilke, loc. cit.
[17] Kimsooja in conversation with Doris von Drathen, reproduced in this publication.
[18] Ibid.
─ This essay was first published in German in Künstler Kritisches Lexikon der Gegenwartskunst, Nr. 74, vol. 12, II quarter, Munich, 2006. Translated from the German by Matthew Partridge.
Doris von Drathen is a German art historian who lives in both Paris and New York. Since the publication of her book Vortex of Silence: a proposition for an art criticism beyond aesthetic categories (Charta, 2004), she teaches art theory at Cornell University — an art theory which she coins as: Ethical Iconology. Her latest publication is a monograph on Pat Steir (Charta, 2006).
2005
The artist stands immobile with her back to us, and the river flows slowly by. It's the Yamuna River, in Delhi, and the flowers, ashes and charred remains afloat in it come from a nearby crematory. Since the middle of the 1980s, the Korean artist Kimsooja has been using installations, performances and video for poetic transformations of various elements of the culture from which she comes into metaphors of the human condition. The contrast between fixity and motion, particularly in relation to the human body, is one of the constants of her work. In the performance A Needle Woman, she dresses in a stern, dark suit, erect and motionless in the middle of the street, offering resistance to the surging energy of a crowd of passers-by. In A Homeless Woman, she lies stretched out along the ground. In A Beggar Woman she sits with crossed legs in the midst of urban traffic. In all of these positions and situations she confronts us with the metaphor of a life that withdraws from the hubbub around it.
The body that faces away from us revises the notion of the artist as protagonist or predominant actor: this is a body on a search for otherness, while nonetheless unable to oppose the order of things, and even less to alter it. In an interview in which Kimsooja describes her state of mind while filming A Laundry Woman, she remarks that there was a moment when she came to understand that movement, here, belonged not to the river, which would always remain, whereas her body would disappear from the world. The contemplation of a landscape situation that evokes the endlessness of nature and the finitude of the human condition refers necessarily to the compositions of C. D. Friedrich where a figure generally seen from behind stands out against sublime landscapes which emphasize and underline the incommensurability of the horizon. The contemporary context has doubtless changed, but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 subject and a horizon — cultural no less than environmental — once again brings existential questions to the foreground: questions on permeability and impermeability, on the separateness and intimate inter-relationship of the human being and the world.
─ Essay from the Group Exhibition 'The Perception of the Horizontal' at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MUSEION), 2005.
2005
As a writer coming from a Westernized context, I regard the work of Kimsooja with a great deal of specificity, rarefied thought, and emotion. At the same time, I understand her need to relinquish desire — first in herself, and then, in relation to her work. If desire offers a means to grapple with the emotional realities that exist in relation to the external visual and material world, then the sensory cognitive aspect of the human body serves as its refining conduit. In this respect, Kimsooja posits the sensorium of the body, together with the cognitive apparatus of the mind, as a kind of actionist sanctuary. Her persona — "a needle woman" — suggests that our bodies are where we stand — as she stands anonymously facing the momentum of people walking towards her in the crowded streets of Shanghai and London — or where we lie down — as she lies down under the shade tree in a public place in Cairo. In such circumstances, the artist's body acts as a conduit between the interior realm of the spirit and the external world of perennial chaos. A Needle Woman suggests that by focusing on the body without desire, we offer ourselves the potential to make ourselves whole. The body is what nourishes us and gives us substance. The Fakirs in India have known this for centuries. The body is capable of nourishing itself over extended periods of time. And this notion of self-nourishment is far from the narcissistic desires that have come to possess human beings in the storm of illusory wealth, provided by the monarchs and moguls of globalization.
When I look at the works of Kimsooja — whether her early "deductive objects" as in the wrapping of ordinary household objects, or her brilliant installations of suspended ybulbo, or her magnificent still-body interventions in crowds of people in various major cities, or even in her spinning jukebox wheels overlaid with the mixed sounds of Buddhist chant, Gregorian, and Islamic chants, I begin to see a pattern of recognition. When I observe her video of A Beggar Woman performance in Lagos, I cannot refrain from having an emotional response. I never know exactly how to respond to the kind of aesthetic/anti-aesthetic whirl that spins in my head upon seeing these works by Kimsooja. How do I respond to this feeling of a language that is exorbitant, ineluctable, and mysterious? Yet somehow I discover an unexpected relief from the sensory burden of everyday life, the existential reality that I share with others who feel as I do. I have to admit to a certain beauty in all of this, the kind of beauty that gives strength to carry on. I reflect on Sooja's image of light projected against the lighthouse tower on Morris Island, Charleston (during the Spoleto Festival) in 2002 as a kind of double entendre as symbolizing both doubt and hope. It is here that Sooja becomes "A Lighthouse Woman". I think to myself — Is this not what art is supposed to do? Isn't art supposed to carry the mind and body into a different realm of being, an elevated state of contemplation and understanding of the world in which we inhabit?
Kimsooja is a woman on a journey. She is an artist and a human being like everyone else. Her hanging polychrome ybulbo (traditional Korean bedcoverings) and her bottari bundles transmit moments of enlightenment and redefinition. They reclaim the space that has been lost to ideology, fashion, mass media, and commerce. They transform the habitation of public space to a place of solace and intimacy that gives substance to everyday life. One may ask upon seeing these works whether the polarities of East and West still mean anything in our postmodern world torn by violent struggles between the rich and poor nations of the world, or even by nations who divide the rich from the poor.
Sooja's persona is "the needle woman" or "the laundry woman"; — and here is the point where my emotions start to swell. I am filled with a sense that life is, in fact, a journey, with a purpose and that compassion is more important then passion. Sooja's video projections — the needle women poised on a rock in Kitakyushu, and her laundry woman on the edge of the Yamuna River in Delhi where the burnt ashes of deceased human beings float to eternity — were made within two years of one another, in 1999 and 2000 respectively. These works asserted a turning-point in her career where the performance and video became an essential component in her work.
Earlier, in 1995 — when asked to participate in the first Gwangju Biennial — Sooja did a second version (first performed in 1994) of Sewing into Walking - Dedicated to the Victims of Gwangju. Her ybulbo were scattered in a forest — used cotton cloth in rumpled piles in chaotic bundles strewn to the winds. Here fabric was returned to nature, one given back to the other. Here she commemorates the struggle for democracy in 1980 where six hundred Korean were gunned down for insisting on their human rights.
The sensory / cognition domain of human beings causes much internal strife and is too often projected outward — violently released into the environment. While this may be part of her message or her mission, she is after all an artist. I express her calling in this way, only to suggest that Kimsooja carries a certain demeanor of gregarious humility. At the same time, I recognize that she is shrewd, sensitive, resilient, brilliant, humble, yet without self-effacement. Art is the focus of her attention. While one may read various phenomenological or minimal dimensions of "being in the world" in her work, there is scarcely a predetermined aspect in her work. I would argue that because she is so clearly in touch with her intuition, a wide breadth ofaesthetic and political speculations may appear as having ideological intentions.
For example, there are those who want to see her work in terms of Buddhism or feminism or minimalism or nomadism. There are those, particularly in Korea, who want to read her work as an anti-Confucianism statement, as a revolt against the way women have been treated in her culture through the manipulation of a distorted Confucian morality at the outset of the Chosun Dynasty.
While these arguments may be well-founded as part of the context in which her work may be understand, none of these issues are the central issue. Through her desire to relinquish the burden of the ego when necessary, to understand compassion as a human practice and necessity, and to allow her body to create an absolute stillness in the universe whether on the rock in Kitakyushu or on the banks of the Yamuna River, here we must return to the central issue. As an artist, Kimsooja has taken advantage of the signifier of self-liberation to free herself from unnecessary worldly restraints and encumbrances, while at the same time she is willing to give art an ethical dimension according to the context of her immediate actions, not according to an overarching principle of rightness, The signifier of freedom in her art also requires something of equal importance, and that is where Kimsooja enters into a transglobal history. She understands that freedom is also the ability to take responsibility for one's own life, and to know that — ecologically speaking — every action has a reaction. Call is Buddhism, if you will — but from another angle of vision, her presence as an artist offers a pragmatic vision for those in search of a better world where happiness and justice will be shared by all.
— Essay of the Catalogue, 'Kimsooja: Journey into the World'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Athens, 2005.
2005
As the feet of man take up a small space on the earth, it is thanks to the space that they do not occupy that man can walk on the immense earth.
— Zhuang-zi
One of the most salient aspects to emerge in the works of certain artists over the last decade regards a return to dialogue with minimalist language. Looking at the works of Mona Hatoum, Doris Salcedo, Rachel Whiteread, Felix Gonzalez Torres, Miroslaw Balka,in this perspective, it is quite clear how their work finds a sort of common denominator in this linguistic base. It is not a relationship based on subjection, nor on a form of citation. The significant point - which marks a departure from the past and offers the possibility to return to a strong connection with contemporary urgencies - is the assumption of a tradition, turning its meaning upside down from within. Minimalism lends itself, for its presumed liberated universality, freed from subjective tensions (in reality far from universal, far from neutral, more precisely expression of the very Western sense of the dominant thought in modernity), to be reread, re-interpreted, re-proposed in order to face the desire to recover a close contact with reality in all its aspects. Forms that appear simple, appeasing, in fact bear dramatic, intimate contents, capable of introducing searing themes, aimed at giving form to the shadowy areas of a society that is more interested in celebrating its own potency.
The frontal methods of protest are substituted with a transversal method which adopts a much subtler strategy, in which the artist's attention is equally divided between the sense of his own discourse and the dialogue with the language of art.
It is within this context that Kimsooja's work finds a natural collocation.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last decade, her work begins to be known and recognized. While this is only one of many perspectives, it is evident in many of her works.
The return to a comparison with minimalism at the beginning of the '90's marks an important step, as it gives voice to various forms of differences that lived in silence throughout History: the cultural difference of those who come from non-Western contexts, sexual differences, the differences in the way information has treated some difficult themes (death, conflict, illness), the different ways in which aspects related to the body, to sentiments, and to intimacy are treated by mass communication (such as the promises of well-being and earthly paradise upon which advertising is based). The extraordinary pathways outlined in these artists' work consist in suggesting another way, another possibility to deconstruct the rules of a seemingly mastered language , stabilized in art history manuals.
While other works created during the last decades contained a clear "anti-" statement, such as in the first phase of feminist art in which women artists needed to affirm their right to exist in an art scene that was prevalently masculine, in this case the revolution develops in overcoming the logic of "with me or against me". A third hypothesis is visible, alongside the choice between working within tradition or departing from it: Us and Them, rather than Us or Them.
Thanks to these artists, the non-Western eye, the sexual difference, the personal history, death, violence, themes which are dear only to minorities, acquire a new centrality, and the works speak to those who come near to them with a language that is able to speak to the soul of the individual and to the collective, in a form of rapport that includes the public as well as the private, which was previously unheard of.
In Kimsooja's installations, the cold, minimalist floors, created with solid materials that are not ruined when walked upon, become colored surfaces, made up of a patchwork of Korean family bedspreads.
They bear the memories, the wishes, the stories of those who once owned them and used them daily. At the same time, the monochrome canvases in the artist's installations remind one of the laundry hung out to dry. The canvases are still bedcoverings, elements that belong to the Korean culture, and yet evoke the more intimate dimension, rarely visible, non-official, hardly an object of attention.
Kimsooja's work takes form based on her experience. Her personal vocabulary is full of objects that come from her culture: not only the bedcoverings, but also bottari — the Korean word for bundles — that the artist creates by filling canvases with used clothes that she arranges randomly about the exhibition space, evoking the nomadic condition, her own, but also that of an entire people.
These presences give life to a statement aimed not only at those who are able to understand the specific aspects of a culture as they touch themes that are part of everyone's lives.
The introduction of personal experience, the poetic reflection on birth, death, the intimacy that Kimsooja's work speaks of, all have the ability to create a larger statement that we can all relate to. From the specific one passes to a possible form of universality which is no longer abstract and distant — typical of the project of modernity - but is a contemporary form of universality soaked in the singular stories of the people who once owned the objects, that become part of the piece, ready to take in the world of the observer.
It is a work that is strongly marked by a subjective point of view with respect to the artist's own condition, cultural, historical, gender, and at the same time able to create a space in order to avoid remaining centered on herself in a narcissistic way. There is no doubt that, in her case, the heredity of minimalism consists in the adoption of an essential language, where there is nothing more than what is necessary to center in on the core of the issue.
But, as I mentioned earlier, this is only one of the perspectives. In fact, Kimsooja lives with an autonomy that renders this relationship relative and which speaks with references from another provenance.
It is a work which - as many others have written — maintains an active dialogue with both the Korean culture and with the Zen Buddhist practices, with which it shares the tension of the creation of an empty/dense space where a contradiction is resolved, a contradiction which only appears as such, between the presence and the absence of the artist.
In one of her most famous pieces — A Needle Woman (1999-2001), eight performances (filmed on video) carried out in eight major cities around the world (Cairo, Lagos, Tokyo...), Kimsooja simply "is", standing in the midst of the crowds of people that pass by and react in different ways to her presence.
In this, as in all her actions, she is exposed in the first person but, with her back to the camera, immobile, exposed to the external world without protection, doing nothing, her presence loses its subjective connotation and becomes "the other". It is in this passage — in the reduction of the ego, which does not mean disappearing but rather a different way of being present — that the artist creates the conditions for an empty space in which she becomes the instrument and not the ends of the action that she carries out, and element of transmission and not the protagonist, an element which connects but does not center on.
With this, the title of the work is emblematic. A Needle Woman, which she explains as a needle is "an extension of the body, and a thread is the extension of the mind. The traces of mind stay always in the fabric, but the needle leaves the site which its medialization is complete. The needle is a medium, a mystery, a reality, a hermaphrodite, a barometer, a moment, a Zen." during an interview with Nicolas Bourriaud, published in the catalogue of her exhibition at the Contemporary Art Museum in Lyon in 2003.
In her doing nothing, each time the surrounding scenario becomes the protagonist with the different reactions of the people passing by, finding themselves before this silent, concentrated presence. The camera view is such that, in watching the video we have the feeling that we are a part of the group of passers-by.
Standing before each of Kimsooja's works we find ourselves standing before ourselves. It is in these terms that another aspect of the artist's work emerges, which takes on a significant connection with Buddhism. Where "demolishing the reasons that feed the 'I' of the individual conscience means attacking the basis of all the mental constructions that derive from the presumption of this subjective 'I' and thus avoiding the psychic and physical damage that those constructions generate and host: to embrace and practice emptiness of the 'I' means emptying all opposition which is unbearable, each conflict that feels irremediable, each dualism that seems absolute, of its weight. Positively speaking, this means transforming the body and mind into constellations of interacting elements, in structures of interdependent parts, in nets with interconnected knots, where interdependence and connections guarantee the absence of multiple 'I's, the eclipse of absolute identities and fixed identifications." [1] These words seem written to describe the work of Kimsooja. In an historical phase in which individualism prevails, where the dominating declination of the "desire" is "desire to consume", and the growing revendications of belonging and of identity are fed by a dangerous logic of exclusion, the practice of an artist who with her silent presence alone suggests something else, taking existence from these predominating perspectives resounds with a further meaning. On additional meaning.
Furthermore, in A Beggar Woman, the artist sits in the street with her hand out, in the act of asking money from passers-by, in A Homeless Woman, she puts herself in the shoes of the homeless, again doing nothing in the midst of the crowds... Her rigorous testimony, her intentionally not adding anything to the world, the use she makes of her body, leave space to the world, in all its moving intensity.
[Note]
[1] Giangiorgio Pasqualotto, Estetica del vuoto, Venezia, Marsilio, 2004, p. 50.
— Essay of the Catalogue, 'Kimsooja: Journey into the World'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Athens, 2005 Translated from Italian by Donna Fox Page.
2005
Kimsooja's Bottari Truck has begun its new journey...
With the baggage of the present bearing silent witness to multicoloured journeys, the artist, immobile and free, crosses time, wanders amongst familiar places and memories, visits histories and fragments of histories, returns to the world of singularity and difference. To her own body.
Her reconciliation is like the rhythmic fluidity of the Needle-Woman on the curve of the rock, there where earth meets the heavens; it is also like the poetic meditation of the immobile woman before the painting of the River Yamuna.
Kimsooja's journey is our journey, too.
Alone, with her back to us, but with her gaze on a level with our own, she invites us to journey into ourselves through her eyes. She becomes the in between space that unites the self with the other. Which is why any similarity with Caspar David Friedrich's Wanderer is confined to contrast. She counterposes the sanctity of her anonymity and the unity with the antagonistic gulf between the romantic ego and the Sublime. Female mystery with male conquest. Alterity with identity; the alterity of her self and of her gender. Of her exile and of her nomadic wanderings.
The same desire for reconciliation brings her and brings us into the world, into the heart of its metropolises. Silent and immobile once more, she penetrates powerfully and resolutely into the body of the crowd, always against the tide. With her difference interrupting and bridging the flow at one and the same time. With her poetic subtlety revealing the counter forces, but neutralizing them, too. Daring to dramatize human conditions and situations she fights. Social and political exclusion, isolation, want, marginalization. Using the persona of the foreigner, the homeless woman, the beggar woman, to break through to the Other side.
It is Kimsooja's journey into herself and others. Through the others. A journey into the world.
— Preface of the Catalogue, 'Kimsooja: Journey into the World'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The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Athens, 2005
2005
Kimsooja’s video, A Laundry Woman (2000), places the viewer before a silent screen across which a river passes, its surface carrying refuse and fragments of branches, plants, and flowers swept from unseen banks. At the top of the screen, the river vanishes in a white glare, perhaps from the morning sun that hangs just above the river and greets an anonymous Indian woman who has come to the edge of the Yamuna River at Delhi to wash laundry. We see her only from the back, and she never moves. She is the only thing that does not move. After a few moments, the viewer wonders if she is really there. Perhaps she has been burned into the video tape by some mechanical process, or inserted by digital editing. In the age of Photoshop, is anything actually real? Not a hair flutters on her head, her clothing registers no wind or motion.
Yet she is human, and the eye returns to her stalwart, central figure again and again. She stands with her immovable back to the viewer, an Asian version of the so-called Rückenfigur, the familiar device of placing a figure seen from the rear in the foreground of a picture, a favorite contrivance of Romantic painters in Europe in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It lures viewers into the painting, directing their vision and pulling them to the picture plane, which tends to vanish as they compare themselves to the figure, perhaps even regarding the figure as another version of themselves, or as their fictive counterpart within the work of art. A Laundry Woman recalls this iconographical motif by freezing the figure in the video. The artist used the same motif in another silent video, A Needle Woman (1999-2001), which she has performed by standing motionless in the crowded streets of Tokyo, Shanghai, Delhi, Cairo, Lagos, and London, among others. In doing so, Kimsooja blurs the distinction between painting and video as media, a move bolstered by the absence of sound.
Why engage in this sort of ambivalence in her medium? Is it one more tired involution of art referring to art? A much better purpose may be at work. The artist pushes her medium to the limits of its ontology, one might say. She extends video to the point where it threatens to turn into something it's not — in this case, painting. She cloaks the imagery in silence in order to deprive the viewer of the effect of sound, which would clearly distinguish video from non-moving visual media. Even though the water never ceases to flow, and the cloudy surface is continually disrupted by flotsam that ambles by, moving from left to right, I found myself repeatedly rediscovering that it was a river. The white glare across the top of the screen strongly tends to flatten the image, which is affirmed by the lack of shadows and depth in the water. The motionless figure might be staring into a snowstorm, or a scrim, but for the lolling gait of lily pads and fragments of vegetation, plastic bags, and the shadows of birds. Even now as I remember the scene, I find myself dubbing in sound — the distant call of the birds, the drop of water, the skitter of water bugs, the hushed lapping of water at the shoreline out of sight. By depriving us of so much, Kimsooja asks us to look hard and to question the very act of looking. By pressing a visual medium to its threshold, an artist tests the nature of seeing, probes especially the elusive seams where a medium stitches itself to the airy fabric of consciousness.
A medium is never stable, despite what we may wish to think about it. The imagination animates drawings, photographs, and films, supplying what is not there, ignoring what is, and sometime even subverting what one expects or wants to find present. The very same holds true of the mind itself, which is the fundamental medium of consciousness. It is not a stony blank slate on which is etched the secure features and principles of reality. The mind is the very surface of water that the artist envisions in her video. And the mind is anything but stable. The Dhammapada, one of the oldest and most widely revered Buddhist sutras, describes the mind as "wavering and restless, difficult to guard and restrain". "Fickle and flighty, [the mind] flies after fancies wherever it likes." [1] Yet the wisdom of many religions is that our greatest problem can become our most powerful means of salvation. The mind and the body are trainable. Hinduism regards the individual ego or self as something like the larger self, the atman, the being or essence of all things that expresses the ultimate, but ineffable reality called Brahman. Christianity can speak of the individual self as hiding within Christ, who becomes the truer aspect of the self (Colossians 3: 3). The redeemed are those whom another New Testament text describes as "partakers of the divine nature" (2 Peter 1: 4).
To be sure, the world’s religions should not be melted down to a stew with one taste. Yet, because they all grapple with the same material — the human struggle with selfishness, suffering, and mortality — it is not surprising that a number of parallels may be discerned in very different religious traditions. In each of those cited, the human self, embedded in the mortal body, is the place where longing for deliverance begins as well as the locale in which it is realized —l by albeit starkly different means. For many Christians, body and mind become deeply engaged in transforming suffering into an imitation of God’s presence in Christ. For Hindus, body and mind are engaged in mitigating the cause of suffering by training the body in yoga, in dietary practices, and in prayer and ritual offerings. According to The Dhammapada, the person "whose mind in calm self-control is free from the lust of desires, who has risen above good and evil, ... is awake and has no fear". And so begins the rigorous discipline of Buddhist training, to steal the mind against the frailty of the body in order to dismantle the manifold attachments to the fear, lust, anger, and ignorance that propel the illusion of the self-centered self.
Even this lightly comparative consideration of three religions may help us consider Kimsooja’s video and, by extension, a great deal of art work today, which explores aspects of religion or addresses parallels between art and religion. As with the comparison of different religions to one another, the task is not to reduce art to religion or vice versa, but to ask in what manner the two appear to operate similarly, and what that means for artistic practice today. Is art a replacement for religion? The claim is not a new one. In the early nineteenth century, the German philosopher Arthur Schopenhauer described two forms of transcendence that might release human beings from suffering: aesthetic contemplation and the life of asceticism. Both were ways of renouncing what Schopenhauer called the will, the blind force that drives all things in the universe. In delineating the two means, Schopenhauer set the stage for subsequent reflection about the relation of art and religion as two roughly parallel, though not equivalent practices.
Aesthetic contemplation, he claimed, is the means of saying no to the will, of becoming a "pure, will-less subject of knowledge", an eye surveying a work of art or an object of nature from beyond the grip of the will and seeing only the essence of the thing, the timeless being manifest in the phenomenon. Beauty is the experience of this transcendental reality. Schopenhauer described the operation of aesthetic experience as follows, which merits quotation at length:
Raised up by the power of the mind, we relinquish the ordinary way of considering things... we do not let abstract thought, the concepts of reason, take possession of our consciousness, but, instead of all this, devote the whole power of our mind to perception, sink ourselves completely therein, and let our whole consciousness be filled by the calm contemplation of the natural object actually present, whether it be a landscape, a tree, a rock, a crag, a building, or anything else [such as a river]. We lose ourselves entirely in this object, to use a pregnant expression; in other words, we forget our individuality, our will, and continue to exist only as pure subject, as clear mirror of the object, so that it is as though the object alone existed without anyone to perceive it, and thus we are no longer able to separate the perceiver from the perception, but the two have become one, since the entire consciousness is filled and occupied by a single image of perception. If, therefore, the object has to such an extent passed out of all relation to something outside it, and the subject has passed out of all relation to the will, what is thus known is no longer the individual thing as such, but the Idea, the eternal form, the immediate objectivity of the will at this grade. Thus at the same time, the person who is involved in this perception is no longer an individual, for in such perception the individual has lost himself; he is pure will-less, painless, timeless subject of knowledge. [2]
Schopenhauer went on to cite Byron's experience of the oneness of landscape and soul in Childe Harold’s Pilgrimage, and the utterance of Brahman in the Upanishads: "I am all this creation collectively, and besides me there exists no other being." [3] The Upanishads or Vedanta presented the absolute, Brahman, as the imperishable soul (atman) that exists behind all appearances as the ground of everything. It was this reality that Schopenhauer identified with the state of consciousness achieved in aesthetic experience. But art was less permanent than the renunciant’s way of denying the will. Art, in the end, was not equal to religion, but a passing version of it.
Certain versions of Buddhism have accorded an important place to artistic practice, regarding activities like painting, pottery, calligraphy, flower arrangement, gardening, and the performance of the tea ceremony meditative forms of practice. Making things and doing things can be absorptive activities that release the mind from its attachments and train it to attend singularly to immediate tasks, without the flitting distractions the Dhammapada noted. But it is important not to mistake the purpose of these creative forms of meditation. They are not merely an alternative way of making art. Buddhism is often romanticized by those who wish to see in it no more than a serene aesthetic and amusingly paradoxical witticisms. This fantasized version of Buddhism is never up to the challenge of actual practice. Skimming the mere look of Buddhism (or any religion) from the torso of lived practice is something that art — in tandem with commerce — is all too capable of doing. Artists, curators, and art historians are sometimes happy to indulge in aestheticizing a religion because they operate on the presumption that art is neatly separable from religion, as if art were the flower to be plucked from the otherwise irrelevant plant of pious practice.
Is that what we encounter in the ten silent moments of Kimsooja’s video? Are we urged to clip from Buddhism or Hinduism or from the daily life of an anonymous laborer some universal essence that can be imported into the marketplace of our lives and appropriated as if it were a commodity in global tourist trade? Does she invite us to peel off the picturesque exterior of a life-world and chuck the irrelevant innards into the passing river — all in the liberal name of Art? These are important questions to ask in the age of hyper-capitalism, when anything may be commoditized to supply the self-construction of inexhaustibly acquisitive consumers. Is nothing sacred? Absolutely not, the marketplace answers.
An instructive catalogue essay by Elizabeth Brown informs us that the figure at riverside is not a laundry woman, but the artist herself. [4] The artist also appeared as herself in A Needle Woman, having herself spent several years engaged in the practice of needlework. These videos are not, therefore, ethnographic documents. A Laundry Woman is the artist’s portrayal of a laborer who watches fragments of a Hindu funeral rite pass by her on the river’s murky surface, contemplating human fate (as she told Brown). The artist constructs the work of art as a literal projection of herself into the place of another, and invites viewers to follow her lead. In doing so, she acts on the belief that the human situation as diagnosed by Hinduism or by Buddhism is also available to the rigors of artistic practice. She may assume that the boundaries separating the two are blurred. The AWAKE project, in which Kimsooja has participated, asserts in its webpage, that Buddhism need not be construed as a religion, but as a science of the mind, whose principles, it follows, can be productively exported and applied by non-Buddhists in works of art. [5]
If Buddhism’s analysis of human consciousness produces penetrating insights, particularly insights that are comparable in striking ways to artistic practice, is it an act of cultural skimming for artists to act like Buddhists (or Hindus or Christians or Zoroastrians)? As the brief foray into the philosophy of Arthur Schopenhauer might suggest, the modern project of establishing the independently revelatory power of art and the autonomy of artistic genius argues resolutely that aesthetic experience is an embodied operation that parallels religious experience because it proceeds from the underlying structure of human consciousness. Religion happens the way it does, like art in its right, because of the nature of the mind-body on which they are built as human activities. But Schopenhauer did not propose a religion of art. He regarded art as a consolation, not an explanation of life or a therapy for curing its ills. Art is no other than the short-lived result of looking at the world disinterestedly, aesthetically. Art, therefore, cannot claim to get things more right than religion, any more than the reverse, but only differently.
If there is any truth to this, Kimsooja is not acting like a Hindu or Buddhist in her video (she was born in Korea, but is not a practicing Buddhist). By paring itself away to the silent presence of a painting, as suggested above, the video recalls Korean or Chinese ink paintings of poets lost in thought before mist-covered lakes. Yet the video exchanges the aristocrat-poet for a common laborer, perhaps in order to urge that enlightenment is for everyone, not just poets and artists. A Laundry Woman immerses the viewer, any viewer, in a sustained act of looking, an absorbed state in which consciousness fills up with the object of perception such that one no longer thinks about what one sees, but think as it, having overcome the subject-object distinction that Schopenhauer identified as the basic structure of rational knowledge or reason. In this absorbed state of mind, which one finds in all religions as well as in the transfixed stare of the beach comber, the ego and its small sphere of suffering fade blissfully away.
We have in this slowly moving visual field only a single frame, which is repeatedly penetrated by flotsam and gentle eddies. The mind is directed to the world off-screen, the world we can only infer by the passing objects and shimmering reflections that appear and then vanish. At its undisciplined level, human consciousness is just this single frame, a fragile apparatus imposed on a welter of events. But the discipline of looking that art and meditation pursue brings the viewer to rest, suspends one in silence to find the world taking shape in the small bounds of the human frame. As Buddha put it in a famous sermon, "Within this fathom-long sentient body itself, I postulate the world, the arising of the world, the cessation of the world, and the path leading to the cessation of the world." [6] The instrument of suffering is also the instrument to end suffering.
For the millions of people who worship Buddha as a divine being who assists them in attaining higher rebirth and progressing toward ultimate release, Buddhism is clearly a religion. For others, however, Buddhist meditation is essentially a science of mind, and not a religion. For the latter, art-making and viewing may act as a non-religious form of meditation. Although he may have separated art and life more than many artists today would prefer, Schopenhauer regarded art as a way of looking at life. As such, art is a special form of consciousness, operating like meditation and teaching us to simplify our lives and to loosen the hold that our fears and desires exert over us. Such art does not save us. It is not a religion. But like meditation, it can help us see clearly.
Art may not last long in its brief epiphanies. As I’ve tried to suggest, that is because its task is different than religion’s. Art is sensuous thinking, what might be called embodied or sensate cognition. It thinks in the sensations that flood the field of perception and it seeks to change and deepen the registers of thought and feeling that we bring to our experience — all experience. Religion also traffics in transcendence, but its final aim is to keep us there — whether it is in this world or the next. Given this similar content, it is not surprising that religion has always made use of art (for this reason and many others) or that artists find fascinating parallels between their creative practices and those of religious believers. But the two are not reducible to one another. Kimsooja is not trying to make believers of us, but better seers.
[Notes]
[1] The Dhammapada: The Path of Perfection, tr. Juan Mascaró (London: Penguin, 1973), 40.
[2] Arthur Schopenhauer, The World as Will and Representation, tr. E. F. J. Payne, 2 vols. (New York: Dover, 1969), vol. 1, 178-79, §34. Emphasis in original.
[3] Ibid., 181.
[4] Elizabeth A. Brown, “Exploring WOW; or, How Works of Art Work,” in WOW: The Work of the Work, exhibition catalogue (Seattle : Henry Art Gallery, University of Washington, 2005), 15.
[5] www.artandbuddhism.org, p. 1.
[6] In the Pali canon’s Añguttara-nikāya,quoted in Walpola Sri Rahula, What the Buddha Taught (Oxford: Oneworld Publications, 1997), 42.
─ From Curator: The Museum Journal, vol. 49, no. 3 (2006): 295-300. David Morgan.
2004
The Western rationality of Munoz’s classicism establishes a provocative comparison to the videos of Kimsooja, particularly A Laundry Woman (2000). This beautifully resolved piece originates in a meditation, dependent on the artist’s quiet and mindful presence in time and the world. Each component of the simple composition gradually progresses from minimal form to comprehended detail to immutable: there is a silhouette centered in the frame, which we first realize is an actual person (the artist herself), then see her to be a part of the scene contained within the stable camera frame. Her back to us, she faces a soft field of pale blue, which we soon discern is a river flowing from left to right. With the horizon above the camera’s frame, all detailing, information, and visual incident is contained in the river currents. Occasionally a bird flies overhead or a cloud passes, visible only by their reflections in the water. Material also floats by, including pieces of wood, scraps of fabric, or flowers bobbing in the water. Kim never moves, although wind sometimes ruffles her dress or hair. Nothing changes yet everything changes, as in the Buddhist view of life: it is always the same river, yet it is never the same river twice.
The image, projected life-size on a wall in a darkened room, places the viewer in the position of both observer and participant, as the artists vantage point becomes the viewer’s own. Stated another way, Kim’s body becomes a middle ground between the viewer and the landscape. She describes it as "actually three different layers of the image: the nature, the body, the viewer, and my body functions as the medium of both nature and the viewer relating my and [the] viewer’s spirituality to eternity." Spend time with this work and you slow down, finding yourself increasingly at ease with its deliberate pace and enjoying its patient unfolding.
The Yamuna River is even more sacred in Hindu ritual than is the Ganges. The mysterious clumps of material and fragments of flowers are the remains of funeral pyres from Hindu rituals. Kim thus compares "the destiny of our life with the element of cremated body floating on the river."
Despite its very different rhythm, A Wind Woman engages both contemporary painting and a Buddhist understanding of the world in a similar way. For A Wind Woman the artist holds a camera steady as a segment of the world passes by and through it. She helps us to be present by modeling the action: remaining stable and focused while the busy drama of the momentary floods in. In A Laundry Woman we see the artist; in A Wind Woman we see what the artist sees. Her body is no longer present. The subject is less spiritual, more focused on the essence of things in the world. Kim characterizes it as "trying to investigate the depth of the borderline which exists in-between things...the fine line of co-existing space of the in-betweenness."
Kim's videos are disarming in their simplicity. There is no elaborate production. The artist does not insist on a precise installation structure, as do her video colleagues in the exhibition, who stipulate that walls and ceilings frame their images precisely. Rather, the work screens at a certain scale that presents the artist’s body at approximately the same size as ours.
This work teaches a way of seeing. Its meaning becomes clear if one gives it time — the duration of the tape, or even the temporal space to allow for an experience. Your body is engaged by empathy with the person in the image or behind the camera, who is upright, disposed vertically like the viewer. After a short while your shoulders might begin to rebel, acknowledging the difficulty of standing still, or you might feel a push-pull in your spine or feet. Your relationship to the video becomes somatic—felt because of the interaction of stable vertical and moving horizontal. At times a reversal may be felt, where it seems that your move, rather than the wind or the water.
Up to this point, "the work of the work is discussed in regard to its ability to represent abstract functions, such as isolating a precise sort of experience or evoking a certain affect. In some cases, however, the notion of function can be seen much more concretely. For example, Mandala: Zone of Zero would make an ideal meditation room. It employs a series of rotating jukeboxes that both convey Tibetan, Gregorian, and Islamic chants and act as a visual object for meditation. The artist describes the center of the space, where the three soundtracks combine, as the Zone of Zero. To stand there is to find yourself entering a meditative state. Elements flash and revolve, casting lighted slices of yellow, red, blue. Even though this work comprises several parts, its effect is precise and economical; the lit structures are quite small in relation to their impact.
─ From Group Exhibition 'WOW: The Work of the Work', Henry Art Gallery, University of Washington, Seattle
2004
In the beginning, readymades were chosen for their dumb simplicity: a bicycle wheel, a bottle rack, a shovel. Kimsooja, on the other hand, has chosen an object that is spectacular in its own right. The circular jukebox speaker that appeared four times in the installation Mandala: Zone of Zero features concentric bands of colored plastic, circulating bubbles, mirrored tiles and colored lights, all surrounding a brocade-covered audio element. A rotating knob at the center supports the resemblance to a roulette wheel; vaguely pagoda-shaped brackets give it a generic Asian accent. In the exhibition, the speakers were each centered on a wall in a room painted a deep soothing indigo and unlit, except for the audio units' multihued glow. Carpeting enhanced the serenity.
But it was a jangly calm, which matched the east/west discordance of the glitzy object itself, a sensory buzz amplified by the sound composition Kimsooja assembled. Mixing Gregorian chant, Muslim singing and Tibetan bells, the music was, like the bubbling speakers, almost embarrassingly engrossing. The mutually subversive and anyway kitsch-challenged spirituality of the three soundtracks produced genitive dissonance where an unlikely and altogether gorgeous aural harmony reigned.
The connection Kimsooja saw between the jukebox speakers and Tibetan mandalas is evident in this installation's title. Implicit in the subtitle is the question of whether its musical mixed messages transcend sectarianism to attain a higher level of spirituality than any one faith can offer (a zone of zero where striving particularity can be sublimated), or if the work points to the crass commercialism of which every religion can, at times, be found guilty (a zero zone of spiritual aridity).
A Korean artist now in her 40's, Kimsooja is a past master of imperturbable resistance to conclusive statement. Her previous work includes installations of filmy Korean textiles hung on lines like drying laundry and, perhaps best known, an international series of performances called A Needle Woman. Standing sentinel in London, Cairo, New Delhi, Lagos, Mexico City, Shanghai, and elsewhere, Kimsooja was the unmoving obstacle around which pedestrian traffic swirled. In the video documentation that followed, she is always shown from the back. It's possible to read committed asceticism in her posture, but also frank refusal to engage.
The same disinclination to take sides is evident in Mandala. Somewhere between the aggressive irreverence of Jason Rhoades's imaginary trip to Mecca, documented in his rapturously messy recent installation Meccatuna, and the prim eroticism of Duchamp's Precision Optics, with their hypnotic rotating geometries, is the null zone of quietly pulsing intransigence where Kimsooja has taken up residence.
— From Art in America, April, 2004.
Barbara Matilsky (Curator of Exhibitions Ackland Art Museum)
2003
"My work explores the awakening of the self and the other... It is an awakening of the hidden meanings in elements of our mundane lives, to which the viewers previously haven't paid much attention."
Growing up in South Korea, Kimsooja describes her complex spiritual background informed by Buddhism, Catholicism, and a code of moral conduct influenced by Confucianism. After high school, she intentionally "stepped out of organized religion in order to experience the real world". The artist felt uncomfortable with the systematization of beliefs and behavior within the faith traditions. Although Kimsooja does not practice Buddhism formally, her beliefs and personal practices strongly parallel this philosophy of life.
A Laundry Woman (2002) is a video projection that suggests the harmony of the universe through its stillness and tranquility (figs. 25 and 26). It documents a meditative performance by the artist along the Yamuna River in North India. Videotaped from a slightly elevated vantage point and seen from the back, Kimsooja's figure is silhouetted against blue, opalescent waters. Although the sky is not visible, the viewer is made conscious of its presence by the reflections of flying birds in the water. The artist remains perfectly still while the video captures her state of quiet mindfulness.
Kimsooja describes her experience during this meditation: "In the middle of the performance, I was completely confused...[about] whether it is the river which is running and moving or myself." The artist's perceptions of space and time were turned upside down and mentally she became completely immersed in and at one with the water. She later realized that it is not the river that constantly changes but her body, which is transforming all the time: "My body will disappear while the river is still flowing."
While watching the video, the viewer slowly becomes aware of the ritual offerings and ashes of deceased people who were cremated at a site along the river. The cycle of life and death becomes a powerful theme in the work. Kimsooja began thinking of the decomposed bodies that floated before her. She meditated on "their lives and their memories and was trying to purify their bodies as well as mine. Praying for their future life with compassion for human beings." The artist experienced a heightened sense of what she describes as "awakeness", particularly in her awarenes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nature and the body, stillness and movement, life and death.
By interpreting the confluence of river and atmosphere, Kimsooja highlights an idea embraced by many artists in the exhibition: the unity of life. She describes the effect of blending water and sky as a mirror presenting both reality and its opposite dimension. From a formal perspective, the artist conceives the river as a surface that is similar to a two-dimensional canvas. There is a strong impulse towards abstraction in A Laundry Woman, which reflects Kimsooja's early career as a painter.
Through the video, the artist invites the viewer to share her meditative experience. As she explains, "That is why my body is facing against the viewer. Look at what I look at. I do not present my ego, my identity." Kimsooja's desire for the viewer to "wear" her body suggests the idea of the artist as mediator in order to open possibilities for other people to participate in a "certain awareness and awakening." She points out that there are few opportunities in daily life to achieve this concentrated state of mind.
In A Laundry Woman, Kimsooja's body in essence becomes an offering for others to use in order to achieve an expanded consciousness. "Some people referred to me as a shaman who mediates between the dead and the living. I sometimes feel that way too because, in a way, I am doing that all the time. I think it comes from compassion. Understanding others' suffering. Sharing suffering. Sharing love." For many people familiar with India, the title of the work may conjure images of the low-caste women whose livelihood revolves around the river. In this interpretation, the artist becomes the laundry woman in an act of empathy.
While discussing the idea of pairing A Laundry Woman with a small sculpture of Buddha Shakyamuni touching the earth to witness his enlightenment, Kimsooja immediately responded to the shared symbolic gesture in the two works of art (fig. 4). She noted that her video establishes connections between the individual and nature; similarly, the Buddha links himself to the land. Through the body, she also connects herself with other human beings from all cultures. As she explains, "All human activities are about linking the self to the other."
Relationships are a central theme in a group of installations that depict sewing as a metaphor for threading together different aspects of life. Kimsooja conceives her video works as "invisible sewing." The artist created another work with the title of Laundry Woman (exhibited at the Kunsthalle in Vienna and the Zacheta Gallery of Art in Warsaw, 2002), an installation consisting of suspended fabrics that suggest linens drying outdoors. These materials become symbols of women, love, the body, and sleep. On a social level, they are associated with women's roles in society. For Kim, cloth transcends its materiality and functions as "a container for the spirit"; people are swathed at birth and at death in cloth, and it is also used ceremonially in weddings and other rites of passage.
The Laundry Woman also relates to a group of works called Bottari — beautifully wrapped bundles of used Korean bedcovers, fabrics that are either manufactured or sewn by mothers and daughters as shared experiences. These pieces of cloth remind us of the cycle of life; they are used to bundle together household possessions when leaving home, and they help to establish domestic comfort in the absence of a true shelter. Their stitches bind people together.
Kimsooja insists that what is most essential is not the body of work but the questions that it raises. She hopes that the viewer will participate in her works by sharing this inquiring state of mind. When asked what her hopes were for the museum visitor, she replied, "I would like the audience to share with me the experience I had during my performance, question and answer, and really put each one's state of mind and body into that position."
— Interviewed by Barbara Matilsky, August 2003.
2003
Visitors arriving at this gallery, recently relocated to midtown from Harlem, will step into a darkened room carpeted and painted meditative, deep-space blue. Sitting down risks becoming entranced by the little bubbles moving around one of the four circular red-yellow-and-blue jukebox speakers placed on each wall, where they emit a warm, tap-room glow.
Some viewers may be as struck by the speakers' resemblance to Tibetan mandalas (symbolizing the design of the universe) as was Kimsooja, who arrived in New York from South Korea in 1998 and saw in these artifacts of American pop culture a perfect meld of East and West. Others maybe reminded of stained-glass windows, since what pours out is an ethereal mix of Gregorian, Islamic and Tibetan chants that circulate, like those bubbles, in an endless loop of male voices, both rumbling and sweet.
In her previous installations and videos, Kimsooja focused on the body as a protective cover for powerful emotions. Korean textiles figured prominently, wrapping immigrants or outcasts as they moved from place to place with belongings that survived them and were passed to others. It is the unmoving viewer being wrapped this time, in waves of sound and light. But because there is more here to experience internally than to see, viewers may dismiss the work as a literalized notion of the-gallery-as-chapel in which to worship at the altar of art, without realizing that they are part of the ritual.
— From TimeOut, New York: November 27 - December 4, 2003.
2003
Nicolas Bouriaud
In Buddhist philosophy, there is a notion which has a great importance: the impermanence of the world we live in. The needle woman stands in front of passing-by elements, like as if you were stressing on this impermanence, or on the fluidity of things. How does the Eastern way of thinking match contemporary art history, in you work?
Kimsooja
The impermanence of our lives is an important notion in my work and thinking and with this perception, comes a deeper compassion for human beings. Meditation about impermanence has been shading in my work since I first started the sewing pieces in the early 80's — connecting fragments of my deceased grandmother's clothes.
Buddhist philosophy, especially Zen Buddhism is similar to the way I perceive and function in the world. However, the ideas in my work are created from my own questions and experiences, not from Buddhist theory itself. (It is more complicated — as I was brought up formally a catholic, and practiced also Christian for some time, but Korean daily life practice is greatly dominated by Confucianism, mixture of Buddhism, and Shamanism.)
Certainly, where my immediate perceptions and decisions in art making meets the disciplines of Buddhism — making art and living my life are not consciously borrowed from theories. I intentionally stopped reading over a decade ago to concentrate and follow my own thoughts, but I recently started reading again especially on Buddhism as I find amazing similarities in my work and perception of life in it.
I might add that, the Eastern way of thinking inhabits every context of contemporary art history not just as a theory but as attitude melded in ones personality and existence and is inseparable with Western thinking.
Nicolas Bouriaud
Do you think that oriental (eastern) thought has a real impact on the contemporary art world, or is it only a postmodern kind of exoticism, a decor for western aesthetic investigations?
Kimsooja
It would be unfortunate if the Western art world considered Eastern thought as a decor for Western aesthetic investigation — as if it were another element to add without noticing the fact that it is a way — in the process of making art. It is always there — as a dialectic — in all basic phenomena of art and life together. Eastern thought often functions in a passive and reserved way of expression, usually invisible, non verbal, indirect, disguised, and immaterial. Western thought functions more with identity, controversy, gravity, construction in general rather than de-construction, and material than immaterial compared to Eastern. The process finally becomes the awareness and necessity of the presence of both in contemporary Art. It is the 'Yin' and 'Yang' — a co-existence that endlessly transforms and enriches.
Nicolas Bouriaud
You could have chosen to ignore your Korean cultural background, but you decided to use it as a material. In a way, especially the Bottari series, your work Post-produces formal elements from this already existing Korean shapes and patterns. But formally speaking, your exhibitions are playing with minimal art. Would minimalism play a special role onto this connection between East and West? And which movements or artists were the most influential for you?
Kimsooja
I have always used my personal life as the basic material for my work — hoping it would embrace the other. If I hadn't grown up and lived as a married woman in a Korean society, I wouldn't have chosen these traditional bedcovers. In Korea, they have a special meaning as the bed is the site of birth and death — of sleeping, loving, suffering, dreaming dying — it frames our existence. The bedcover is given to and used by newly married couples in Korea with messages beautifully embroidered and emblematic of wishes for love, fortune, happiness, many sons, and a long life.... it is so easy to notice it's contradiction when we see these symbols. I can't interpret my own culture with other culture's materials in the same way..... I try to find materials in their own context, but it always ended up with me bringing materials from Korea as theirs looked so neutral and hard to get the sense of the energy I feel from ours.
As for minimalism, I agree with you as a part of the nature of my practice but in the sense of extension of it's interpretation to the life as well as formalistic terms. The Japanese art critic Keiji Nakamura perceives my work as 'existential minimalism,' and this makes sense to me also. I greatly respect minimalism in the sense of the process of making art as well as it's vision. However the contents minimalists deal with are often maximal. It's hard to name any particular artist who was influential to me as I've been influenced in a way from anyone whom I have an opinion on their work-even from the ones we don't agree with. Yet, there is one statement by John Cage I saw it written in the bottom corners of an empty container at the 1985 Paris Biennale; that has reverberated for a long time in my mind. "Whether we try to make it or not, the sound is heard.".
Nicolas Bouriaud
You are partly working with objects and surfaces made by other people. Of course the readymade is not a stake anymore, but in your case it could be questioned on a social or psychological level. The notion of existential minimalism could bring us to this direction, too, because it carries the idea of humanity, concrete people making products in a particular context. So what is the status of those objects in your mind and in your work in general? Is it a neutral process to use those bedcovers, or do you consider their context of production and the condition of the workers? And, more generally, what is the status of pre-existing things in an artwork?
Kimsooja
Analyzing the nature of my already-mades, can give a significant clue to the context of my work. I've been using objects from Korean domestic daily life significantly in my series, 'Deductive Object' from the early 90's. Here, I chose traditional Korean domestic already-mades; wooden window frames, reels, drums, and agricultural tools; a saw, shovels, forks, hooks... and wrapped them with old Korean clothes and bedcovers.
Now, I as am working exclusively in New York, I'm using objects found here; a child's toilet, a swing, vessels and an old directory board from a department store...etc. I've been thinking more about people who owned and used the objects and their traces rather than the people who made or manufactured them in those objects and I'm noticing that they are symbolically genderized in form and function.
Perhaps we need to re-define the notion of readymade in a larger context than relying on Marcel Duchamp's investigation — especially in this mass producing, global networking era which needs constant re-definition. My work is about pre-existing things buried into our daily lives — not mentioned nor conceptualized in art history.
My work also includes a presentation of the daily life of women's labor and her domestic performance trying to re-define the social, cultural and esthetic meaning of it to create it's own context in contemporary art history.
Nicolas Bouriaud
This concept of pre-existence of things is very interesting. In a way, one could say that you are working with the ghosts of the objects, their aura, trying to turn the invisible into a shared experience. The anonymous is supposed to be invisible; so is the past, mostly. Is that important for you to make them visible?
Kimsooja
Yes. Depending on the nature of the already-made objects, my interest lies on different issues; for example, when I work with bed covers, I am working with pre-existing objects focusing more on the fact of 'pre-used' rather than 'pre-made' as I am more focused on anonymity of the bodies and the destinies of the couples rather than on anonymity who made the bed covers, although I am concern about the people who made them.
On the other hand, the folklore objects I've used, my interest lies more on the genderized nature and esthetic structure of the object and it's function in daily life rather than the anonymous beings who made or used them. But when I made a series of carpets which embeded names of the African American slaves who used to work for the plantation houses in the US, I was trying to combine the nature of the painstaking labor of carpet weavers and that of the African American plantation slaves emphasizing both of theirs hardships as I find carpet weaving and plantation job is similar jobs in different dimension. I wish to reveal this anonymity — as myself — one of the anonymous.
Nicolas Bouriaud
The Needle woman is a central figure in your video works: You are standing in front of people and objects, right in the middle of a maelstrom of things, as if you were out of the world. Is that another figure of anonymity (the voyeur? Or are you even more into the world by watching it pass?)
Kimsooja
It is the point of the needle which penetrates the fabric, and we can connect two different parts of the fabrics with threads, through the eye of the needle.
A needle is an extension of the body, and a thread is an extension of mind. The traces of mind stays always in the fabric, but the needle leaves the site when it's medialization is complete. The needle is a medium, a mystery, a reality, a hermaphrodite, a barometer, a moment, and a Zen.
Nicolas Bouriaud
Watching the needle woman, I was also thinking about a negative image of the baudelairian flaneur, an archetypal figure of the occidental modernity. Are you inscribing your work in the field of modernity, or is it a notion that is totally irrelevant for you?
Kimsooja
It is interesting to see my work discussed in this way — being compared to others from a completely different culture and social identity and also born at different time and space. My work is focused on the totality of life and art. One can see different realities in one persona or in art. Perhaps that is why one sees diverse similarities in my work.
Nicolas Bouriaud
In a way, you are trying to capture the totality of human experience, which is quite rare. As you said, your work is not about any particular issue? Can you tell me what this ambition implies, and means?
Kimsooja
Totality is the truth and the reality of things. And it takes time to clarify in language as a whole. I am interested in approaching the reality that embraces everything because it is the only way to get to the point without manipulations. Most people approach reality from analysis or 'from language to colligation' which is the truth', but I am proposing a 'colligation to be analyzed' by audiences. My working process is intuitive and I believe it's own logic. If I have an ambition, it is to be just a 'being' who has no need to be anyone special, but is freed from human follies and desires — without doing anything particular. 'Being nothing/nothingness' and 'making nothing/nothingness' is my goal. It is a long process.
Nicolas Bouriaud
To be "freed from desires" sounds very buddhistic. Is the artist a kind of boddhisattva, who tries to free himself/herself and to liberate the viewer?
Kimsooja
I remember the way desire was talked about in the 80's through the work of "simulationnist" artists such as Jeff Koons or Haim Steinbach : art was the absolute object of desire, a "pure merchandise," a perfect exchange value. Desire was examined in terms of compulsion and acquisition. So today, what would be the relationships between art and desire?
In any case, artists have been constantly dealing with their own desire and audience. For me, artists' practices are similar to that of Buddhist monks' in the sense that they both try to liberate and to become beyond themselves. In this era of globalization and technology however, the self, the body, the spirit, and the other can be perused in many ways -Artists deal with different types of desires depending on their social and cultural context. Desire can be visualized in a physical object form which satisfies sense of 'possession' or in a psychological and metaphorical way that deals desire as another 'subject'. When Claud Viallat said 'Desire leads', I think he referred to another origin of art instinct which links and visualizes these two different source of desires. Artists cannot help ask what is the origin of their desire, and what role desire plays in their work. To understand that this is 'the subject' an artist confronts in the end, and to extinguish it.
─2003 Solo Exhibition Catalogue, 5 Continents Editions, pp. 45-57.
2003
In the art of Korean-born, New York-based Kim Sooja, we see an entire career built upon the notion of the anonymous as a metaphor for the wish to merge with forces and circumstances usually acting against the forthright assertion of self. Kim's art inverts expectations as a way of embracing the world. Her performance of self is at once oppositional and acquiescent, fated and willed. There is a tremendous strength and assertion in her apparently anonymous actions, which are not so much transgressions as they are recognitions of fate. It may well be that the very circumstances Kim addresses, presenting as oppositions, are what the self needs to define itself — in much the same way the whole defines the part. Kim stands alone, unnamed, in her struggle to achieve a consolidated awareness, whose definitions may be seen as Buddhist in their unboundaried flow. In the elaborations of her anonymity, then, Kim presents a sensibility acutely aware of the warring contradictions between her desire for an erasure of self and the kind of resolve necessary to confront the environment she so eloquently, albeit silently, strives against.
When, in the performance A Needle Woman (1999-2001), Kim stands against waves of Japanese passersby on a street in Shibuya, Tokyo, her pose begins as antithesis but becomes, over time, a wordless affirmation of human resilience, even of individual worth, despite the conditions of anonymity she imposes upon herself. In a remarkable transformation of value, her actions quite literally embody the progress of a self increasingly cognizant of its mortal limits — it is as though Kim is mourning death, which is always ahead of its time. Yet the overall thrust of her vision is far from dark or macabre; her art demonstrates a knowing perception of life's circumstances that is by implication assenting, and her engagement with different cultures — Kim has performed A Needle Woman in eight cities throughout the world (in order: Tokyo, Shanghai, Delhi, New York, Mexico City, Cairo, Lagos, and London) — amounts to an affirmation of existence no matter what the environment.
Kim's development as an artist has been steady and assured. Born in 1957 in Taegu, Korea, she studied painting at Hong-Ik University in Seoul, where she completed graduate school in 1984. She spent half a year in France, on a grant from the French government. In 1992-93, Kim came to New York as an artist-in-residence at the contemporary art center P.S. 1. Deciding on cultural exile, Kim again returned to New York in 1998; this move marked her permanent stay in America, where she has received more and more recognition, becoming an artist of international reputation. Although Kim did not stay long as a painter, she remains interested in investigating the issue of surface, an activity she has continued throughout her career. Indeed, Kim comments, "This pursuit [of the surface], along with my will towards artistic freedom, enabled me to open up new horizons in my art." The change in expression came quickly to Kim; as early as 1983, while still in graduate school, she first "discovered the methodology of sewing as a means of questioning art and life while I was sewing a traditional bedspread in 1983." Kim made the decision to use fabric in daily life as a new kind of canvas. But the act of sewing was also personal, being tied to mourning: "My first attempt at sewing used clothes was done with the remains of my grandmother's clothing, left behind after her death a year before."
Kim began as a painter who questioned the surface of her canvas, seeing it as "a wall and barrier that painters wish to overcome." Over the course of a decade, she moved into new developments incorporating different media and strategies — videos and performances — in which the emphasis shifted from a treatment of surface to her now recognized language of wrapped used clothes and bedding: an image bundle. The changes in her art revolved around an increasingly emblematic use of materials; when asked why she makes use of bedcovers, Kim replies: "The bedcover is a symbolic site. It is where we are born, where we rest and love, where we dream and suffer and finally die. It keeps memories of the body alive, which result in another dimension." Now that she is concentrating on the world of performance and video, Kim has turned toward an increasingly allegorical reading of her environment, in which her life and actions function as an existence representative of ours. The human condition is taken up as essentially anonymous because Kim comprehends that all of us share the recognition that our actions reveal a deep-seated isolation, as well as an unconscious awareness that behavior takes on paradigmatic meaning in the face of our limited span of time. In Kim's art our understanding of death becomes enlightened by her mediation as an individual toward her audience; her actions resonate because they enter into an existential dialogue with their viewers, replete with the high moral seriousness the presence of death inevitably calls to mind.
A Needle Woman enacts the isolation we all feel by offering a resonant silence, contemplational in nature, in the midst of the crowd. Kim, who is not a practicing Buddhist, nevertheless sees Zen Buddhist affinities in her recent performances. Her art is suggestive of meditational mind in the encompassing awareness of its practice. She disavows her sense of herself in favor of a stance that heals and binds by taking in the energy, or noise, of the world. As Kim herself has said, "After a decade of sewing practice [since 1983], I came to see myself as a needle weaving the fabric of nature."
The artist intends to bring together disparate parts of the real as an act of selflessness represented by the precise metaphor of needle and silk. Her silent, even prayerful, interactions with the amused, bemused crowds in eight cities show a tenacity of purpose as well as a self deliberately obliterated so as to take in, out of harm's way, the various responses her stillness and silence create. Video witnesses her activities, creating an archive of interactions. Interestingly, Kim sees the use of video, which documents her activities in different places, metaphorically as well: "Another encounter occurs when audiences see the video resulting from my performance. My body functions as a barometer, as a needle connecting people from a different time and space." She means to emphasize the ties that bind people, by extinguishing, for the duration of the performance, the illusion that the self is primary.
Kim's epic eleven-day journey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November 1997) retraced sites in her memory; she traveled to different cities and villages where she used to live, carrying colorful bottari on a flat-bed truck. Kim considers the performance "a social sculpture, loaded with memory and history, which locates and then equalizes physical and mental space." The video, witnessing Kim's transit in Korea's Taebek Mountains, movingly and also literally presents the baggage she carries with her as she seeks to face her past. The performance presents her travels as a metaphor for the narrative of our existence; as Kim states in a catalogue accompanying the piece, "Bottari Truck is a processing object throughout space and time/locating and dislocating ourselves to the place/where we come from/and where we are going to." The figurative language engages the viewer on a metaphysical plane, demanding that we read her journey as emblematic of our own. Kim is particularly strong when her imagery is offered as a symbolic representation of awareness; the notion of moving along a path resonates in sympathy with the inevitable determination that the path will end when the person is gone. Asked in the catalogue to comment on unrealized projects, Kim replies, "I contain my projects in my body which I find as my studio, and I don't try to remember or describe them all." The statement returns us to the idea that Kim holds within her body a wellspring of creativity, which acts as the counterpart to the anonymous public self she so carefully presents. If it is true that we never see her face in her performance videos, it is because her anonymity is large enough to incorporate whatever occurs in the world around her.
As one follows the steps left by Kim in her sojourns of memory, it becomes clear that the implications of her path — itself a Buddhist term — suggest deep affinities with Buddhism. Kim comments that her "attitude and way of looking are similar to that of Buddhists." At the same time, she reserves the right to remain "an independent individual, who looks at the world in one's own way and who recognizes that one's own path can sometimes meet with a broad stream of thought." In the isolation of her artwork, Kim seeks out a generalized correspondence with the world, but on her own terms and from her own experience. Her allegories are successful because they originate, despite seeming otherwise, from a highly individuated sense of purpose. In a way, Kim's anonymity is a subterfuge, a manner of relating a sense of self whose boundaries are so extended as to do away with the notions of limit entirely. The odd thing about Kim's isolation is that it in fact completely engages with her audience; just as she offers solitude as a way of emphasizing universal implications, so she underscores her autonomy as a way of proceeding toward a wide involvement with others. Indeed, her lonely actions appear to call for help — in the video A Beggar Woman, done in Lagos in 2001, she sits crosslegged, her palm extended for alms. Someone gives her some change, and the muteness of the scene intensifies the artist's vulnerability. We read the interaction as evidence of need everywhere; in her dramatization of want, Kim reduces herself — and us as well — to a egoless composite of desires, an enactment of utter poverty.
As a result, Kim objectifies our intuitive knowledge in a language of actions stripped to the bare essence of their intent. There are of course feminist implications to her devotions, accomplished with a purposeful humility. In a remarkable performance, entitled A Needle Woman-Kitakyushu, done in 1999 in Japan, Kim stretched out on top of a limestone mountain, her curving body echoing the stony rise. The video confirms the artist's procedure, whereby her interaction with her surroundings envelops them in a unified will. The suggestion of the earth mother comes into play; there is a sense of limitless identification with nature. At the same time, some of the other performances have political implications, as suggested by A Beggar Woman or A Homeless Woman — Delhi (2000), in which Kim lies down on the sidewalk of a busy street. The lack of a direct message advocating social change does not affect the two pieces, which render suffering as intrinsic to our condition. Indeed, the indirectness of Kim's premises actually enhances her expression, which feels inevitable in light of its universality.
In the recent installation A Mirror Woman (2002), Kim hung used bedcovers across the width of the Peter Blum Gallery in New York City. She also placed mirrored surfaces on both of the side walls, reflecting the path of visitors as they made their way through a labyrinth of colorful cloth. There was a sound element as well — the chants of Tibetan monks accompanied the exhibition. Overall, the experience of the piece was otherworldly to the point of being disturbing. Perhaps, in the largest sense, Kim's interventions are indeed disturbing, for they remind us of our mortality. In Epitaph (2002), Kim waves a bedcover in the midst of a cemetery in Greenpoint, Brooklyn; it is a moment that merges life with its apparent opponent, death. As such, the work suggests that the interpretation between existence and nonbeing may be forced; sometimes, a seeming dichotomy is actually two surfaces of a single idea. Kim's great strength as an artist is to find the moment wherein passion and calm, action and passivity, merge.
She would have us understand that art is the great equalizer of false dualities; our mind is a place capable of including most everything. In the generosity of her vision, Kim reiterates the great truths of the unknown, what lies above and beyond our lives. She takes what we implicitly know and bestows upon it a public grace. As she grows larger in her art, so do we, so completely are we included in her generous expanse of her imagination.
— From Art AsiaPacific, Fall 2003
2003
Since the 1980s, between thread and needle, Kim Sooja's work has been developing; from Korea to New York, via Paris and a number of other cities across the different continents, like an avowed metaphor of the act of sewing. But it is less a question of sewing as such than linking up and uniting fragments of varied realities that were previously disparate. From her first works, with pieces laid end to end and sewn together, like a sort of collage involving both hand, body and mind in relation to matter, up to the recent videos of A Needle Woman, where the artist herself becomes a needle and integrates into the urban fabric, sewing has been the guiding thread in a subtle research project from which a language has evolved, and where a unique commitment can be read, with references that are first of all local, but whose scope has become global.
Over the course of time, Kim Sooja went from matter and the plane of the painting to the conquest of a liberating third dimension, and this allowed her to acquire greater mobility with the works entitled Bottari. In her videos and performances, her language subsequently became ever more economical, pursuing as though by incursion the possibility of the emergence of her oeuvre. The artist would like to be a needle that leaves no mark, that sews and disappears after closing the wound; after joining two bits of cloth, two continents or states of consciousness. Her discretion is consubstantial with her research, and her self-effacement facilitates revelation: to the appearance of the other, and to his presence. This path starts out from an approach to textiles, and a practice, that are rooted in Korean tradition but go beyond these local references through a language which is that of wandering, exchange and openness to the other, the unknown.
Kim Sooja's training as a painter predisposed her to consider the plane surface of the canvas as a field of exploration. Her first compositions were formal, based on grids and interlinking motifs. She had a penchant for the art of the 20th-century avant-gardes, and notably Mondrian, both in her practice and in the theoretical spirit that informed all her work. But the physical dimension of her sewn canvases dominated her work. The very act of making a picture with pieces of fabric became predominant, and this opened the way to gestures that were simpler, though just as emblematic.
Sewing thus became the essential element of her artistic process in the 1980s, to the point where it overshadowed pictorial considerations as such, and introduced the emotional charge that she had discovered while sewing by her mother's side. The act of sewing is one of intimacy, of withdrawing into oneself, close to symbiosis with a state of being that represents both tradition and family memory. This activity — almost passive, enthralling — locks the artist into a sequence of slow movements that repeat to infinity and are conducive to meditation. It is to be one with oneself, the fact of saturating oneself in one's own history. And the blankets made by Kim Sooja and her mother brought together two worlds that had previously been dissociated: the ancestral Korean tradition and her own pictorial quest.
Kim Sooja's first works were an introspection turned towards herself, and a way of calling herself into question so as to become a totality. In this sense, the action she accomplished could be seen as the denouement of the self. Skein, bobbin or hank: the thread has to be unwound.
The process begins with choosing pieces of cloth. To collect different textiles is to recompose one's being as one would reconstruct the fragments of a past: bits of individual stories that are becoming a new wholeness. The assemblage of these lacerations retains the marks and stigmata of the bodies that have borne them, with their dreams and daily sufferings. These recomposed entities become offerings, surrogates through which the memory of the other can act.
To salvage materials, assemble them, and sew them together is an intoxicating, almost ecstatic act of patience and repetition (from immobility to rapture). By the monotony of the gesture, this process makes it possible, also, to create a void within oneself — a void which can become a plenitude. For Kim Sooja, a work like Portrait of Yourself (1990-1991) is a solitary confession, an incessant and infinite conversation with oneself. The process is as important as the result. The production of this particular work is something like a meditation, and if one approaches it with the required intimacy it becomes a mandala. Iso it is both a self-portrait and a profound expression, a communication of the artist's humours, which shows how she carried out an apprenticeship on herself, how she matured through experiencing the passage of time and stepping aside from its onward movement. Despite the repetition of a movement that could become tiresome, the artist claims to have derived a great deal of energy from the experience. Through it she renewed her resources, as is suggested by the title of a work dating from this period, Towards the Mother Earth (1990-1991).
The back-and-forth movement of the needle through the material, from front to back, again and again, ended up by going beyond the plane surface, surreptitiously opening up towards a third dimension. Applying a reductionist logic to her work, Kim Sooja began covering objects with fabric, and thereby conquering space.
At the beginning of the 1990s came the first constructions of this order (Untitled, 1991). Two hoops connected by rods made the shift from the line to the third dimension. These constructions were then enveloped in pieces of fabric as a way of freeing them from the wall (which indicated a transition in the oeuvre), and from the plane surface of the painting, without giving up the symbolic charge of the first sewn works. For a time, the artist moved away from the act of sewing, strictly speaking, and transposed her metaphor into the simple act of covering objects.
Always seeking greater simplicity, Kim Sooja has rendered this emancipating act more radical still over the last decade, with works which now constitute, in a way, her signature: the bundles entitled Bottari.
The first of these date from 1992. They were created in the Open Studio at the P.S.1 (a contemporary art centre in New York, now associated with MOMA), and came into being, according to the artist, spontaneously, unrelated to any particular consciousness of things. But though nothing anticipated the event, everything announced the simplification of the procedure that had already been set up, in the direction of its essence and its highest degree of efficacy, with the abolition of all artifice, accessory or substrate in favour of the fabric alone. Cloth became the content and the container of the work, its structure and its surface, inside and outside. The Bottari provided an aesthetic solution to the question of the surface by stepping outside it, with a structure which was both open and closed; which revealed and concealed at the same time.
The bundle corresponds as much to a reference within the Korean tradition as to a universal metaphor of displacement, or even adventure, and a Bottari can hold all an individual's belongings. Originally, the custom was to use still-serviceable scraps of bright-coloured, precious silk from worn-out clothing, something of which was thus preserved.
In Korea, fabrics are traditionally used for multiple common functions such as storing bedding and clothing, or moving it around, notably when it has to be washed, as well as transporting food, or even wrapping gifts. For Koreans, the Bottari is both intimate and familiar, and is used on a daily basis. It is a sign of time-honoured aesthetic refinement, and is often an object of great value. It carries a strong affective charge, and is passed down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It is symptomatic that Kim Sooja first explored the Bottari's possibilities while living outside Korea. She marked her return from her memorable stay at the P.S.1, where she had been a guest artist, with a Bottari installation in an abandoned house in Kyunju (1994). Bottari symbolize, in a way, the migrant who can put all his material goods in a bundle and be ready to set off at any moment. So when she came back and placed her bundles on a floor, Kim Sooja was reclaiming the space, but she was also indicating her readiness for an imminent departure. The inclination to travel is constant, or even necessary, when one has been elsewhere.
The "elsewhere" through which the artist found herself confronted with another perception of woman remains implicit as an underlying theme in her work: the body is torn between the modern Western world and her Eastern ancestral universe. This ambivalence would be irreconcilable if travelling did not offer a possibility of agreement between two different universes, in their alternation.
The resulting tension, which is latent in all her work, was laid bare by an installation, Deductive Object / Dedicated to my Neighbors, presented at Nagoya in 1996, where two forms amongst her productions were brought together in the exhibition space. For the first time, Kim Sooja made a contrast between the placing of the bundles and an arrangement of Korean bedspreads on the floor.
These are often given as presents to accompany a bride's trousseau, and are one of a household's most treasured possessions. In their folds they silently attest to the history of the couple. The motifs are symbolic references and exhortations to a happy life full of love, children and health.
Between the revelation of the bedspreads' symbolic motifs and the mystery of the bundles, with the precious contents that can be imagined, there is a tension which is all the stronger when one realizses the particular importance of the traditional bedspread in the Korean context; and it goes beyond a purely formal interpretation of the opposition between the flat surface of the bedspreads and the sculptural dimension of the bundles. The installation thus makes it possible to appreciate, simultaneously, the unveiling of a private life and the intensity of a retreat into oneself.
The bedspread is a witness-object whose day-to-day contact everyone can feel, It accompanies love, sex, dreams, nightmares, childbirth... and finally, at the moment of death, it becomes a shroud. So this envelope is a sort of skin, carrying in its folds what could be considered as a sort of portrait of its owner(s). Folded onto itself as a Bottari, the bedspread gathers up intimate possessions and protects them from inquisitive eyes. Opened out, it gives itself up in its flatness, and suggests the dreams that are incorporated into its traditional motifs.
In this sense, the Nagoya installation, so simple and pure in its expression, contained an entire mode of thinking about time, and the cycle of life and death. Later, exploiting the charged nature of such references, the artist used the bedspreads by themselves in various situations, as restaurant tablecloths and lines stretched out for washing to be hung on. With each installation, the visitor's participation is decisive, since it is up to him to activate the mechanism. In the case of a tablecloth, it is the actual use of the table by the visitor, in a museum restaurant, that makes the work exist. In the Korean context, this almost-reverse use of the bedspread as a tablecloth is of the order of thea transgression, since tradition prohibits eating in the place where one sleeps. For the duration of a meal, the tablecloth is an integral part of the table companions' life. It is imprinted with the stains they leave, the traces of this slice of existence that it will have subtly transformed by its presence.
As in most of Kim Sooja's other installations, the onlooker is thus a protagonist — a constitutive element of the space in question. When he moves around to look at the work from different viewpoints, it is renewed at each step. Pursuing this logic so as to extend it ever further, in a recent presentation of the Laundry installations at the Peter Blum gallery in New York, A Mirror Woman (2002) had mirrors on all the walls with lines stretched out for hanging up washing. The spectator's contemplation of the work was eroded by his discovery of himself in the mirrors, which projected the field of the work into an infinite space. This visual confrontation with oneself is a curious, singular fact in a work that is characterizsed rather by the inconspicuousness of the artist in the interest of internalizsed reflection. In general, when a figure appears in her work (and in her more recent videos it is often herself), it has its back turned, as if to suggest a presence, but not a particular individuality. This is the case, for example, in the video of her performanc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In November 1997, rejoining the nomadic life of contemporary artists, the better to in order to better reinforce it (but also enlarging the field of action of her work and its semantic purview), Kim Sooja decided to take her bundles on the road. She spent eleven days going round towns and other places in Korea that held specific memories for her. This meant that her bundles were loaded with new content: the memory of her past history and travels. In the filmed performance she is seen from behind, hieratic and impassive, sitting above firmly-attached Bottari in a truck driving through ever-changing scenery.
The idea of moving around becomes a reality in this video, which combines, for the first time in such an obvious way, a sense of the intimate and with a public dimension. The artist's silhouette, in its sobriety and black clothes, unlike the Bottari with their vivid, varied colours, stands up straight, like a needle.
The fact that she presents us only her back is a procedure that challenges us and thrusts us into the middle of the landscape. As in Caspar David Friedrich's romantic paintings, the silhouette of a back becomes our bodily referent, and we project onto it. This transfer gives extra substance to the work, and confers on it a shape for us, so that we become the subject. (The phenomenon is clearer still in the later videos of towns, which this performance adumbrates). Perched high up on the bundles, while the road goes by, the needle-woman both cuts through the landscape and sews it up again, the way a wound closes up. Finally, this Calvary of memory is a way for Kim Sooja to forge a link with her history and re-inject an emotional charge into her itinerary. So the Bottari that she takes round with her are phantoms of time gone by, to which this itinerary pays tribute. Each of them can be related to a person, and the journey takes on the character of a pilgrimage in honour of dear, loved beings.
This dimension of personal ritual was transcended when the artist presented her Bottari Truck in major festivals of contemporary art. What was of the order of the intimate then took on a universal, even denunciatory dimension with regard to its context.
She has taken part in the biennials which are the focal points of artistic nomadism: São Paulo (the 24th, in 1998), Venice (the 48th, in 1999), and Lyon (the 5th, in 2000). Arriving as in a bazaar upon which groups from different regions converge to exchange merchandise and cultures, the truck filled with Bottari of every colour accentuates the idea of displacement at the very moment when the international press is taking an interest in the situation of populations forced into exile across the world. But if Kim Sooja's installation can express displacement as a positive value, a search for a new paradise, it cannot cancel out the premises that any change of place is firstly seen as the breakup of a unity that has been lost forever. Displacement always implies cutting oneself off from one's birthplace and ancestral roots. There are voluntary exiles who have struck it lucky and found a better life. But deep in the soul of the uprooted person there is always a secret, persistent wound.
The historical context of the Bottari Truck cannot fail to recall the atrocities committed at the time of its creation in the Balkans, Africa and the Near East (to mention only those that made the headlines).
It is often never-ending struggles, and more rarely natural disasters, that force entire populations to pack up their bundles and set out from home, into the unknown. The Bottari, with their shimmering colours, convey all these paradoxical feelings, which are stirring memories but also as well as deep wounds.
Following the thread of her wanderings, Kim Sooja's recent series of videos are both at once subtle in their poetry, strong in their presentation, and complex in their social implications. They are grouped together by generic title. A Needle Woman alludes to her desire to disappear like a needle in a haystack, but also to be the needle that insinuates itself into the urban fabric. These performances, and the ones that derive from them, like A Beggar Woman, were presented for the first time in a solo exhibition at P.S.1 in 2001.
A Needle Woman (1999-2001) is a set of eight videos projected simultaneously on the four walls of a room. Each shows Kim Sooja from behind, dressed identically in the most neutral possible way, immobile, facing the human wave that is rushing round her in a busy street in one of the world's most populous cities: New York, Tokyo, London, Mexico City, Cairo, Delhi, Shanghai and Lagos.
The artist transports us into cities in every continent by taking them into a place where we become active participants. The large-format projections bring us face to face with life-size people, justifying a total immersion in the space of the work. The artist's back — as we said above — allows us to pass through into the work, into the depths of metropolises, and to narrowly avoid the abyss. This illustrates, more or less, the Kantian definition of the sublime: to feel an emotion through the devices the artist offers us as she opens up her own experience so that we can enter into it without risk or peril. The unobtrusiveness of the artist, in spite of her presence, could produce a multitude of approaches in which individuality would give way to the essence of our own thinking.
Kim Sooja's discretion eliminates every psychological aspect of the ordeal she has taken on. The whole point is what occurs around her, which appears as a catalyst. Taking our place in this installation, we realizse what is intimate and personal about the ordeal, for anyone who goes through it. Evidently the physical side of it begins with a meditation that leads to a sort of ecstasy. And in this sense, the artist, as an individual, is outside herself. She abstracts herself and becomes like a keyhole, or a negative image of herself, which makes perception possible for us.
Her interest in the elsewhere makes her central to the generation of migratory artists who, at the dawn of the new millenium, are questioning the limits of globalizsation. As an artist, she is invited to present her work in cultural institutions around the globe, while the art world has gone beyond the rich countries — where there are people who take an interest in such creative activity — to include less favoured countries. The result is that artistic discourse is becomes enriched by other voices, and the circulation of works finds new perspectives.
The simultaneity of her presence in these no more than a hunch: distant though they are from one another, and different as the historical and economic contexts may be, apart from their urbanistic and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these cities are alike in the steady streams of individuals people going about their business, moving towards an inevitable meeting with their destiny. And so a continuum of races and peoples finds itself virtually at the centerre of the space. Simultaneity of presentation makes the common features of the beings in movement in these eight videos obvious at a glance. Only an attentive eye will be able to discern what differentiates them.
While the time of the work is acting on us, our body replaces that of the artist, and becomes the needle that leads the guiding thread. A Needle Woman, as Kim Sooja likes to define herself, weaves, as much as she rends, the urban fabric. The fine needle pierces the world, but the whole universe passes through the eye of the needle. In certain contexts, in spite of her self-effacement, the artist cannot escape her otherness: she is the foreigner, the observer, the element that can split apart as well as bind together. In fact she cuts the human flow, which has to pass around her, avoid her like an obstacle, open up before her. The specificity of each particular population appears in this encounter. And the encounter is the indicator of the specificity.
The characteristics of towns come out through contrast, according to what opposes them. Each possesses a distinct rhythm that is demonstrated by the perfect immobility of the artist as an immutable reference. Her proper time seems to be in suspension, while the rest of the town swirls round her. Kim Sooja's passivity is a source of worry and tension. One expects something to happen: an intrusion, something violent... Possible violence, like a specterre haunting life in these metropolises at every moment.
The reactions of the passers-by (or their total absence of reaction) are archetypes of the imaginative profile that a given city suggests. And thus, without wanting to paint a sociological portrait, the videos comprise a number of elements that make it possible to characterizse the people and their surroundings: their clothes, their way of occupying the street, their attitude in urban space... For example, passers-by in New York, London and Tokyo are distinguished by their rapid, determined gait. They have an objective, and their walk is a "power walk": they are efficacious, and scarcely notice the artist's presence. They have an individual goal, outside the range of the camera, in the direction of a horizon that protects them and immunizses them against everything that could deflect them from their path. Their life is traced out, and there is no place for the unexpected. The street is only a vector, and not a place of sociability.
In these cosmopolitan cities, all racial differences seem to fade. The artist goes almost unnoticed, and her features do not mark her out in places where there are people of all origins, and where hybrids are common. Modernity asserts itself here as an exacerbation of individuality, a sort of autism that tends towards homogeneity. Such cities are so full of stimuli and diverse fantasies that the intervention of an artist attracts little attention.
In places like Cairo, Delhi, Mexico, and especially Lagos, on the other hand, there is a tension between the modern and the traditional which means that existence is highly charged. The individual finds his full dimensions in an open space where he is attentive to those around him, because he seeks to evaluate his position and rank in the immense gamut of social classes and traditional hierarchies that are an essential part of these cultures.
The members of different castes and social classes mix in the street. They are wary of one another; they keep an eye on one another and expose themselves to situations in which there is always tension. Here, the street becomes a place of both coexistence and distinctions.
In these cities where the contrasts are strong, individuals want to assert themselves across the cleavages. They look at one another so as to make comparisons between one another, and every look contains a question (Am I from the same class or not? How am I to position myself, and where, in such a wide spectrum?); so it is not surprising that these are the cities where the immobile presence of Kim Sooja gets garners the most reactions. They are still preserved from blasé mundanity, and the artist stands out more strongly as a stranger. But it is above all her passivity and her determination to abstract herself that arouse curiosity, along with a desire to make her react, to draw her out of herself, so as to bring her back to everyday life and the flux of the community. In all these cities, it is the ever-present children who are the least hesitant about teasing the artist and turning her performance into a game.
The virtual meeting-point of eight streets in a unique space plunges us into the improbable river of the human continuum. Engulfed in the multitude, the artist is invisible, as she often aspires to being. This takes her work beyond the nature-culture cleavage, or the opposition of the contemporary urban to original nature. In natural settings, as in the performance A Needle Woman / Kitakyushu (1999), where she is stretched out on a rock, or in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India (2000), where she is facing the river in question, she strives for the same contemplative detachment as in urban settings. Perhaps her deepest desire is to reconcile perfect immobility and perpetual motion. And is this not what she seems to be seeking when she indicates her wish to disappear for an entire month, as she dreamt of doing during the last Whitney Biennial? Is there not a paradox in the fact of wanting to be simultaneously everywhere and nowhere?
Kim Sooja embodies the complexity of the kind of globalizsation which both proclaims and denies the local spirit. Her work with textiles had a specificity that was linked to the Korean context of her origins. This opened up in the course of her peregrinations, gaining in breadth without cutting itself off from its roots, or disowning them. Her videos combine nature and the urban, the individual and the collective, the global and the local. The richness of her approach, in its discretion and subtlety, lies no doubt in her unique way of transcending divisions and resolving them in works that place the spectator at the heart of an extreme questioning process, which for each individual becomes personal and intimate.
— From the exhibition catalogue of Kimsooja: Conditions of Humanity, Contemporary Art Museum, Lyon, 2003:
Maria Brewinska (Curator at Contemporary Art Center in Warsaw)
2003
The trace of a body. Not long ago, maybe just a while ago, there was a body here. It lived in a rhythm of everyday behaviour and actions, shaping the values and sense requisite to the existence of the objects surrounding it; clothes above all, the obvious, but usually trivialized signs of life, which remain in the body's place, in the place vacated by it, empty and useless. The independent existence of clothes, alongside the body's life, begins at birth, starting with little baby clothes and moving on to bigger and bigger ones. Clothes — there are always some bodies putting them on, wearing them, desiring them, striving to get them, taking possession of them, discarding, storing, inheriting. Nearly all their life bodies never part with what clothes, adorns and protects them, what is closest to them, next to the skin, what absorbs its smell, grime and sweat.
The objects left by the body, the clothes saturated with its physicality — are they not the most obvious and tangible traces of its reality, the proof of its existence? Is the material world coexisting with the body not its most faithful memory? The sense of this world disappears with the passing of a particular life, although it can be reborn with the life of new bodies. One moment, a freeze frame of the stream of life changes forever the state of the subject and object. It is maybe the most strongly felt — physically and psychically — end of the stream of the time of life, flowing in between, in space and time..
Kim Sooja: "We are wrapped in cotton cloth at birth, we wear it until we die, and we are again wrapped in it for burial. Especially in Korea, we use cloth as a symbolic material on important occasions such as coming of age ceremonies, weddings, funerals, and rites for ancestors. Therefore cloth is thought to be more than a material, being identified with the body - that is, as a container for the spirit. When a person dies, his family burns the clothes and sheets he used. This may have the symbolic meaning of sending his body and spirit to the sky, the world of the sky, the world of the unknown."
Scattered clothes and bottari, bundles stuffed with clothes, made of traditional Korean fabrics, are spread on the ground in a forest during the First Biennial in Kwangju in 1995. This installation, made of 2.5 tonnes of second-hand clothes and entitled Sewing into Walking was dedicated by Kim Sooja to the victims of the suppression of a democratic protest in Kwangju in 1980. The tragedy of those victims was expressed by an installation made of a mass of used clothes, those most obvious signs of the presence of a body.
Kim Sooja, e-mail, April 1, 2003:
The Kwangju Massacre happened in the 1980 and hundreds of people died for their democracy movement. When I was invited from Kwangju, I couldn't do anything before I commemorate their lives...
Deductive Object-dedicated to my neighbours was done in 1996 when the department store was completely collapsed and killed hundreds of people and I was in that building with my son 30 mins before collapse, and we used to live in the same block. I had to comment and commemorate the victims of my neighbours especially when I had an occasion to install my piece in Japan which had a lot to do with Korea in the history (war, colonization, conflict ...). So the neighbour means both my own neighbour in Seoul but also Korea-Japan relationship, so I mixed the Korean used clothes with Japanese.
Kwangju, Seoul and Kosovo are just a few of the many places in the world which have been marked forever by the death of many beings. Kim Sooja sees it, but she does not get involved in political conflicts. So when she presents Bottari Truck — in Exile, a truck loaded with colourful bottari, at the Venice biennial and dedicates that event to the [victims of] the war going on at the same time in Kosovo (so close to Venice), that gesture is just an expression of concern for the lot of other people.
Kim Sooja conceptualizes political events through installations in which an important element are bottari and traditional Korean bedcovers, objects strongly associated with women and the roles they play (in Korea considerably limited by Confucianism). Another key element of the installation are used clothes, which in Korean tradition are carriers of the spiritual element, and in Kim Sooja's works also become a representation of the human body. Those are, it seems, the only three projects with implied political, social and emotional meanings; all the others are creative acts made concrete as objects, installations, performances and videos; recently, those are becoming increasingly minimalist. An attitude of conscious "inaction" is articulated ever more plainly in the performances realized and registered on video in different places around the world and shown in exhibition rooms.
In an essay published in this catalogue Adam Szymczyk proposes a new interpretation of the artist's work. Giving descriptions of journalist's reports of the war in Iraq, he confronts Kim's quiet presence with the media clamour accompanying the current political situation in the world. Kim Sooja's media personality is radically different from the way the media operate. In her video performances she shows her body, but remains silent and conceals her face, turning away from the viewers. She seems to be protesting against the noise made by the media and against all acts directed against human beings, including accidental tragedies (such as the collapse of the supermarket in Seoul), expressing her opposition to the pain and suffering accumulated in the clothes.
Kim Sooja consciously cultivates this attitude by a contemplative perception of the world and a rejection of excess information (e.g. deciding not to read books). She is a nomadic artist, constantly on the move, but she seems to stand firmly on the ground. In fact, her attitude may be interpreted, in a simplified way, as a practical exemplification of Heidegger's being-in-the-world, an existence cast into the world, but conscious of its "spatiality"; concerned, but not frightened; a being open to cognition and "the world's worldliness"; a being which accepts other "beings".
Kim Sooja: "When I look back over my more than twenty years of handling bedcovers, I feel that I have always been performing, guided by the piles of cloth I haved live among. What in the world have I stitched and patched. What have I tied up in bundles. When will the journey of my needle end, my silkworm unwrap its flesh. Will it in the end slough off its skin. Will the boundless with no destinations find theirs ways to go."
Looking at the twenty years of Kim Sooja's work we can see that they form a consistent process. After art studies in Seoul, until about 1992, Kim Sooja makes abstract collage using traditional Korean fabrics and clothes. She combines sewing as a technique with drawing and painting. In those pieces sewing becomes not only a direct way of creating form, but a constitutive element defining her work. The use of this unique technique, associated rather with gender art, women's art, is blends with the artist's personal experience, taken from her family home, of sewing the traditional bedspreads together with her mother and grandmother. She sews her first objects from inherited clothes and bedspreads.
Kim Sooja's early collages come in different geometrical shapes, as flat reliefs, their surfaces made of bits of fabric sewn together, painted in ink or covered with abstract drawings — The Earth and the Heaven (1984), Blue (1987), Black (1987). In the 1990s they are gradually transformed into three-dimensional objects, assemblages, which, although they can be hung like paintings, have a richer texture, as they consist of larger pieces of cloth, creased, draped in a baroque fashion, fastened to the base. They form a crumpled, crammed, multicoloured mass, suggestive of an abstract flower (Toward the Flower, 1992), of earth, (Toward the Mother Earth, 1990-1991), of a portrait (Portrait, 1991), or carrying even more metaphorical meanings (Mind and the World, 1991). Some of them are objects leaning against the wall or propped up with bamboo sticks. As such, they already belong to the genre of installation — between the reality of a two-dimensional wall and space.
At the same time, from about 1991 Kim Sooja starts creating spatial objects and installations, leaving the painting and more or less flat textile compositions almost entirely behind. Those new compositions feature ready-made objects, always covered, wrapped up, rolled up in cloth (among others, a ladder, part of a rowing boat, a table, some tools and many old-fashioned objects of everyday use, which the artist treats with nostalgia, as the most precious traces of life and also as beautiful forms.) A series of those objects is called Deductive Object; it was afterwards expanded to include spatial objects made solely of fabrics. Needles, cloth, threads, sewing, sewing together, wrapping, covering, unfolding and spreading define Kim Sooja's artistic activities.
Kim Sooja, e-mail, April 2, 2003
"Korean traditional wrapping cloth is 'Bojagi'( I prefer to use this way although people used to call it Pojagi - now Koreans try to match with the actual pronunciation of (Po)jagi and (Bo)ttari is same letter and pronunciation in Korea. Bojagi is traditionally used as wrapping cloth which was made out of small pieces of cloth sawn by anonymous women. But I used only used bedcovers which are made for the newly married couples.
'Bottari' is a wrapped bundle but normally people wrap households, cloth, clothes, books, gifts,...whatever, but my bundle is wrapped used clothes from anonymous people — I used yellow pages and white pages from New York in 1993 before I leave NYC as if wrapping people in New York."
A turning point in Kim Sooja's work was her exhibition in P.S. 1 Studio in New York in 1992. There, beside earlier work, she presented bottari made of traditional Korean bedspreads, filled with clothes. She also exhibited pictures, assemblage and even a kind of "tableau" made of crumpled fabrics, stuck to a surface and partly extending beyond the frame, as if pulled out of the inside of the picture. It was through those objects that a symbolic disruption of frames was effected. A year later at the Ise Art Foundation in New York Kim Sooja shows only a massive bottari, provocative not only in its shape, but also through the intensive red of the rectangular piece of fabric.
In the early 1990s Kim Sooja departs completely from the closed form of "tableau" with its limitations, and devotes herself to multi-directional exploration of space. The group exhibition "In Their Own Images" at the P.S.1 Museum in New York (1994) marks the starting point of Kim Sooja's new experiment with the "spatiality" and intimacy of a wall. Deductive Object — scraps of cloth filling cracks in a wall — is used by her at the 5th Biennial in Istanbul in 1997. While at the P.S.1 Museum colourful bits of fabrics protruded blithely beyond the wall, in Istanbul the blend discreetly with the old walls of the Hagia Eireni museum, becoming no more than patches of colour, hardly visible in the arcaded corridor. The association between those scraps stuck in the cracks of a wall with the Wailing Wall in Jerusalem is rather obvious.
Since the exhibitions at the P.S.1 Studio (1992) and the ISE Art Foundation (1993) Kim Sooja increasingly often exhibits bottari entitled Deductive Object, arranging them in different ways: a solitary bottari in a gallery (Museum Fridericianum, Kasel, 1998), one combined with bedcovers spread on the floor (Akira Ikeda Gallery, Nagoya, 1996 and the 5th Biennial in Lyon, 2000); crammed (Kwanhoon Gallery, Seoul, 1994), or against the background of a landscape, where they evoke their basic function: a practical means of transporting the most necessary things or one's all belongings, thus becoming a symbol of nomadism (Yongyou, Korea, 1995), and finally in combination with a video installation at the Seomi Gallery in Seoul (1994), consisting of bottari, monitors and scattered clothes. It was that installation, entitled Sewing into Walking, that anticipated the one dedicated to the victims of the Kwangju Massacre.
Apart form bottari, the most important thing are the traditional Korean bedspreads — to the artist, symbols of woman, of sex, love, the body at rest, sleep, privacy, fertility, longevity and health. They can also be interpreted as a special kind of traces of life. They are used fabrics — extraordinary witnesses of life, birth and death. At the artist's second individual exhibition at the Hyunday Gallery (1991) a single one of those is hung, together with old, sentimental objects. Then we encounter a whole mass of them, forming a patch of colourful fabrics. Long before, Sooja ties them into bottari, spreads them on the grass with deliberately slow gestures (performance Sewing into Walking, 1994). In recent years, they most often appear in installations such as A Laundry Woman, a simple presentation of a number of cloths hung out in the gallery to resemble drying linen. Is that not a metaphor for the roles of woman in Korean society, and women's roles in general? All the time Kim Sooja imitates women's activities in spare, minimalist gestures: she spreads, ties, folds, hangs out.
In November 1997 Kim Sooja takes an 11-day performance-trip around Korea in a truck. The 33-minute video from that trip is a record of the views of the truck with its load of colourful bottari. Possibly, Kim Sooja is making a journey into the past, going back to the journeys which her family was obliged to embark on following her father, an Army man working in the demilitarized zone. At the same time it is a metaphor for her current life — the life of a nomad artist, crossing ever new borders in order to meet new people. That aspect of nomadism, shown in Kim Sooja's performances, in installations using the symbolic bottari and in videos, is one of the key points of her art. Such nomadism takes place in open spaces and needs them to come into being, although it is confronted with the horizontal plan of the world and the limitations imposed by the organization of space by the "state".
Kim Sooja's videos are a record of performances happening in various cities and places around the world. Kim appears in them with her back to the camera. She is the woman who stands among passers-by or lies on a rock in Kitakyushu (A Needle Woman); the woman who sits on the pavement and begs in Cairo and Mexico (A Beggar Woman); the woman lying in the street in Delhi and Cairo (A Homeless Woman) and standing by the river in Delhi (A Laundry Woman).
As a figure against the background of the filmed spaces and people she is clearly distinct from their rhythm, their movement, their image. That is an effect of the medium of communication — video, which produces a flat and illusion-like picture. It is also due to the artist taking on the role of the "other" or even "stranger", and the position of the motionless figure — in the foreground — further prevents her from integrating with the surroundings. There is no sound from the crowded streets and the landscapes in which we see Kim Sooja; she reduces the reception to pure vision. We do not know who's filming her; if it were not for the artist's figure in the centre of the picture, it could be perceived as the record of an anonymous security camera, continuously controlling the streets, filming live with no scenario. All the passers-by, inhabitants of great cities, are filmed and become unwitting actors.
In the video A Needle Woman (1999-2001) the artist stands in crowded streets. Her complete immobility contrasts with the movement and noise of the metropolis, but the noise we can only guess at. The camera films the masses of bodies making their way along the streets of London, Tokyo, Shanghai, Lagos, New York, Cairo, Mexico City, Delhi. In Tokyo, the crowd does not get thinner even during the sultry summer. It moves smoothly, pattering and shuffling in a characteristic Japanese way. In the evenings, what sounds like one huge conversation hovers over the city, intermingled with street sounds.
In Kim Sooja's video, however, we will not hear Tokyo. In this, as in other films, instead of the sounds and the artist's face, we are shown her body and the face of the anonymous crowd. Thousands of people walk towards her, enter the frame and disappear after a moment. The video takes on the role of a sociologist's record — it shows the reactions of the crowd in confrontation with "another". In London, New York and Mexico City that crowd passes Kim Sooja ignoring her almost entirely. Similarly in Tokyo — here the indifference is greatest (no wonder many street performances were held here, for example by the group HiRed Center, to "activate" the street and the crowd). In Shanghai, Delhi and Cairo the crowd shows more interest; sometimes somebody turns, or stops for a while to stare. It is in Lagos that Kim Sooja arouses the greatest curiosity. Freeze frames from the video show not a crowd, but individual faces, feelings, reactions. In Tokyo, a smiling Japanese woman's face appearing for a moment is the only instance of emotion in the anonymous crowd. In Cairo the camera registers little events: somebody meets somebody, there is a warm greeting etc. Those are the most fascinating observations that Kim Sooja presents us with. On the other hand, it is well known what hostility and aggression a "crowd" can show: against itself as a whole, but also against the individuals that constitute it. Those video records and the artist's attitude express a sort of protest and something that stems from her affirmation of the world and total "being-in-the-world". There is also something innocent and naïve about them, and certainly something brave. Kim Sooja may not pose the question, but it would be difficult not to ask ourselves: why do stranger bodies incite so much hatred in us?
In A Beggar Woman Sooja begs on the streets of Lagos, Cairo, Mexico. In Cairo, two issues coincide: the problem of gender and of cultural differences. Kim — a woman, an "other" is surrounded solely by men, younger and older; a crowd of them encircle her body so that at times the motionless figure is no longer visible. In A Homeless Woman, shot in Delhi and Cairo, it is in Cairo that the homeless woman excites greatest interests. A group of men can not restrain their curiosity: they talk, they stare, even directly into the camera.
Kim Sooja makes her presence in the world noticeable through the continuity of repeated situations and shots of her own unchanging image: a figure standing among people or against a natural background. People bring in their own physicality and materiality into her works, and so does nature. It is a manifestation of various ways of being in the world. In that way Kim Sooja points to the basic problems of existence: that we are always alone, but also, that we always have the world and people around us.
— From the exhibition catalogue kimsooja solo show at the Zacheta Gallery of Art, Warsaw 2003.
Maria Brewinska worked as a curator at Contemporary Art Center in Warsaw. She currently works as a curator at the Zacheta gallery of Art, Warsaw. She curated Chinese Artist show in 2004 and the Yayoi Kusama solo show 2004 including the Kimsooja solo show 2003.
2003
Flaminia Generi Santori
In your work you have been using very consistently two media: fabrics and video. The most immediate connection one makes comes out from the title of one of your video works: the series Needle woman. Who is the needle woman? Is she a metaphor? Does she represents a condition of humanity, as the title of your show in Lyon would suggest? And what i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needle woman and the fabrics use have been using?
Kimsooja
The fabrics I've been using for my sewn work, Object, and installation were used Korean traditional costumes, bedcovers and used clothes which I found from anonymous people. These fabrics represent presence of body whose smell, memory and time is still there. On the other hand, a series of my video pieces represent and wrap the actual human body in immaterial way, while the fabric installations are materialistic way of representing and wrapping human body — yet it represents the invisible body.
In my recent video performance A Needle Woman (1999-2001), my body stands as a medium between the viewers of the video and the people in the street where my performance is taking place, as if it functions as a barometer while weaving/woven (by) different nation, races, culture, society and economy by standing still in the middle of the busy streets in 8 different metropolitans in the world.
Apart from A Needle Woman video, I've been also examining the conditions of human being by putting myself in one of the lowest state of human being as A Homeless Woman, A Beggar Woman, A Laundry Woman and as a refugee by making Bottari installations — refugee as a persona, as a woman, and as a collective group of people in a broad sense of refugee in existential, social, cultural, and political context.
Flaminia Generi Santori
The needle woman might take different positions, like in Needle Woman - Kitayashu, in which she lies on a rock facing the sky perfectly still. Or she might take different names, like in Laundry Woman, where, in the same position, she faces the Yamuna river in Delhi...
Kimsooja
As I mentioned earlier, the Needle Woman signifies a medium which connects different parts of the fabrics of society, culture and landscape — in that sense, A Needle Woman - Kitakyshu divides and links four different element of the world which are the earth and the sky, the human side and that of the nature. As long as my body functions as a mediator, A Laundry Woman is not different from the other performances although the position is different depending on the structure of the landscape and cityscapes. But I could say my work has also a parallel relationship to the structure of the painting in formalistic reading.
Flaminia Generi Santori
In these works you stand perfectly still, in crowded cities in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or in the landscape. Watching them one cannot but think about how you managed to reach such an immobility and concentration. And also they made me think about the goal of so many meditation practices: the ability to live the present moment to its ultimate intensity, or the notion of impermanence. However you said that zen theory has not been important in your work...
Kimsooja
Immobility comes out of mobility. I could reach to the immobility only by practicing mobility in my life. I was always thinking every moment is a meditation and the moment when a perception and an artistic decision comes up to my mind was Zen, but I'd never practiced Zen meditation.
Flaminia Generi Santori
In all of your video installations the viewer is faced with your back, so that he shares your point of view. In Needle Woman the viewer is immersed in a 8 channels installation in which he witnesses you standing still in the middle of the most crowded streets of the world. Do you imagine the viewers standing on your back when you do your video performances? What kind of visual and emotional experience you project on your viewers?
Kimsooja
It would have been very interesting if someone on the street stood right behind me posing exactly the same way I do. I would say the person who is standing behind me is the camera which is eyes of myself. This idea can be compared to my video I made in a crowed street in Istanbul in 1997 which takes people coming and going in Istiklal street by setting a fixed frame for an hour wrapping people into the camera lens which can be juxtaposed to my body.
Flaminia Generi Santori
Time, it seems to me, is a crucial element in your work. Not only because of the duration of the videos but also because in all of them you watch transient elements: people in the streets, clouds in the sky or flowers in the river. Time and past experiences seem to be crucial also in your work with fabrics in which you use tissues which have been used already and carry with them the sign of past experiences.
Kimsooja
The idea of impermanency of existences gives me a deep compassion for human being and has been embedded in my work since the beginning of my sewing practice till now — the fabrics I first sewn together were the remained fragments from my grandmother's clothes when she passed away — memorizing her presence. I've been living such mobile life from my childhood wrapping and unwrapping household and luggage and the strong memory I have from my childhood were the huge mountain in front which I was looking in the dark from our house yard and the passing by landscapes I used to see on our way to somewhere else from a bus or a train. Leaving people behind us from where I live and meeting new people in a strange city was part of my family life.
Flaminia Generi Santori
You have been using the fabrics in a variety of contexts and often in public places, like in a old post office in Trieste (am I right?) and in the open air cafè in Central Park New York. You also took them, as Bottari, to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in a work eventually dedicated to the Kosovo refugees. What is the relation, if there is, between private memory and public place, function and aesthetics?
Kimsooja
Presenting private materials in public spaces sometimes provokes intimate questions such as table cloths and laundry installation I made with newly married couple's bedcover cloth from Korea. Eating in the bed, or Wrapping bundle/Bottari ( especially when it's refered to a woman) are Taboo in Korea. I am questioning this site of birth, sleep, love, suffer, and death considering as our frame of life and its reality in sexuality, morality, conflicts in humanity as well as its impermanency. On the contrary, the color and embroideries of those fabrics are brilliant and beautiful, while showing contradiction in reality of life which is not always same as these symbols signify and the esthetic structures I present in situ.
Flaminia Generi Santori
Lately you have been working with lights and sound, like in Charleston or like in a lighted mandala you showed in Lyon. Is this a new direction in your work?
Kimsooja
A permanent question and desire I have has a lot to do with possession and its void in Yin and Yang relationship in our world. The whole process of my work has to do with process of void in life and art and its extinguishment at the end.
— From the interview in 'Il Manifesto', Rome, 2003.
Flaminia Gennari Santori is research coordinator at the Fondazione Adriano Olivetti in Rome and adjunct professor of Italian Art History at New Hampshire University Italian Program. She holds a PhD from the European University Institute, in Fiesole and she was a Fullbright Scholar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She published 'The Melancholy of Masterpieces'. Old Master Paintings in America 1900-1914, Milan, 5continents editions 2003 and articles in Italian and British journals and books. With Annie Claustres and Anne Pontegnie she coordinates the research "Une Nouvelle Scène de l'Art", to be published by Les Presses du Réel in 2005. She contributes book and exhibitions reviews to the Italian daily newspaper il Manifesto.
Jacob, Mary Jane (Independent Curator)
2003
Mary Jane Jacob
Let's talk about how sewing has been a contemplative practice for you and a way of connecting your body to a greater whole?
Kimsooja
One day in 1983, I was sewing a bedcover with my mother and then at the very moment when I passed the needle through the fabric's surface, I had a sensation like an electric shock, the energy of my body channeled through the needle, seeming to connect to the energy of the world. From that moment, I understood the power of sewing: the relationship of needle to fabric is like my body to the universe, and the fundamental relationship of things and structure were in it. From this experience, for about ten years, I worked with cloth and clothes, sewing and wrapping them, processes shared with contemplation and healing. By 1992, I started making bundles or bottari in Korean — I always used old clothes and traditional Korean bedcovers — that retain the smells of other's lives, memories, and histories, though their bodies are no longer there — embracing and protecting people, celebrating their lives and creating a network of existences.
Mary Jane Jacob
Korea was not a very visible part of the contemporary art world. You yourself came to the U.S. in 1992 on a residency at P.S. 1 in New York. Then Korea joined the ranks of international biennale presenters in the southwestern city of Kwangju, a place where Korean and American identity is sadly linked.
[In May 1980 students and other demonstrators against martial law were killed by government forces with brutal force, the death toll mounting to 2000, though officials claim only 191. The U.S. was implicated in support of President Chun who seized power in a military junta and a wave of botched diplomatic that followed.]
Kimsooja
This is the site of a national tragedy. It is marked by anniversary reenactments each year. With my work for the first biennale there, Sewing into Walking: Dedicated to the Victims of Kwangju, I placed 2.5 tons of clothes in bundles on a mountainside at the Biennale site. It was the image of the sacrificed bodies. People could walk on them, listening to the "Imagine" song by John Lennon which, through the audiences' bodies, evoked the confrontation of stepping on bodies and guilty conscience, as well as memorializing the victims' lives. Over the two months of the show, the seasons changed and the clothes became mixed with the soil, rain, and fallen leaves, becoming like dead bodies: this was the installation scene I wished to create for the viewers. The audience — the Korean people — opened the bundles and removed nearly one ton of clothes; they hung some onto the trees and took others away with them.
Mary Jane Jacob
Have your works, as a means of healing and connecting, been autobiographical?
Kimsooja
When I went back to Korea in 1993, after spending time in the U.S. and having a different perspective on my own culture and gender roles in Korean life, I re-confronted the society as a woman and a woman artist. I started realizing my own personal history in bottari projects, using them more as real bottari than for an aesthetic context. My first video performance piece, Sewing into Walking-kyung ju (1994), resulted from an installation; in its documentation I recognized that my own body was a sewing tool, a needle that invisibly wraps, weaves, and sews different fabrics and people together in nature. For my next video performanc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in 1997, I made an eleven-day journey throughout Korea atop a truck loaded with bottaris, visiting cities and villages where I used to live and have memories. Because the bottari truck is constantly moving around and through this geography, viewers question the location of my body: my body — which is just another bottari on the move — is in the present, is tracing the past and, at the same time, is heading for the future, non-stop movement by sitting still on the truck. And though I used myself in this work, I tried to locate a more universal point where time and space coincide.
I realize now that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emerged from the history of my family that moved from one place to another almost every two years, mostly near the DMZ area, because of my father's job in the military. We were wrapping and unwrapping bundles all the time; we were endlessly in a new environment, leaving people whom we loved behind and meeting new neighbors, as we passed from one city to another, one village to another. We were, in fact, nomads, and I am continuing the nomadic life as an artist, a condition which has become one of the main issues in contemporary art and society. Yet I am also aware that migration is just an extension of nature and we are literally in a state of migration at every moment.
Mary Jane Jacob
It seems like sites — out in the world — have become your studio for making art?
Kimsooja
Usually, I don't like to make or create anything in nature because I am really afraid of damaging it. Instead, I decided to use existing elements which can be related to my idea of location/dislocation and its gravity and energy towards the future. In 1997 I did another work in the series, Sewing into Walking-Istiklal Cadessi, a video shoot in Istanbul. I experimented with documenting peoples' coming and going through the fixed frame of the lens; it was an invisible way of sewing and wrapping people. Then, with A Needle Woman project (1999-2001), I inserted myself in the middle of the busy street and looked towards the people of eight different metropolises in the world: Tokyo, Shanghai, Berlin, New York, Mexico City, Cairo, Lagos, and London. I considered my body to be a needle that weaves different people, societies, and cultures together by just standing still. Inverting the notion of performing and remaining fixed within the crowd, my body functioned like a barometer, showing more by doing nothing. The needle is an evident yet ambiguous tool, androgynous, maintaining contradiction within it. The needle functions only as a medium; it never remains at the site and disappears at the end. It just leaves traces, connecting or healing things.
Each performance lasted 25-30 minutes, during which I just stared straight ahead. I eventually cut each tape to an unedited section 6-minutes and 30-second in length. In the beginning I had a difficulty resisting all the energies from people coming at me. By the middle of the performance I was centered and focused, and could become liberated from them. In the beginning my body was very, very intense, but in the end I was just smiling, liberated from all attention. I could see the light coming from the back, far from the front, over these waves of people. I was in complete enlightenment.
I didn't know where the smile came from but I was just smiling. Maybe it was the moment when I was freed from my self-consciousness and engaged with the whole picture of the world and people as oneness and totality beyond this stream or ocean of people in the street. I think enlightenment can be gained by seeing reality as it is, as a whole which is a harmonious state within contradiction that requires no more intentional adjustment or healing.
Mary Jane Jacob
Your personal posture as well as the overall stance of your art, seems to aim to profoundly communicate experience. So while we do not have your experience as it was in the real time of making the video, it is still more than our experience of an artwork; you become this portal through which we pass to have our own experience in real time. At the same time you are a conduit for others' experience, the needle through which they pass, the empathetic locus. And like Buddhism, these works are about relationality, not just of human beings but among all beings and with nature.
Kimsooja
I did another performance called A Needle Woman at Kitakishu in Japan, laying down my body on a limestone mountain, the front of my body away from the viewer. Nothing changes in this video except the natural light from the sky and a little bit of breeze, and at the end there is one fly that is just passing by against the slow movement of the clouds. Of course, I had to control my breath, so my shoulders wouldn't move; I taught myself how to breathe with my stomach. I was there a pretty long time. The rock was a little bit cold, but it was just so peaceful. I was completely abandoning my will and desire to nature and I was at such a peace. There is one face of nature that caresses the human being in the most harmless way. So we feel at absolute peace in this mild nature. Of course, when it becomes harmful, nothing can compete with its absolute damage.
In a way this work looks a little bit like the reclining Buddha, parinirvana; but, abandoning my ego, at the same time, in a different way, I consider it as a form of crucifix. My body is located at the central point of four different elements which are in-between the sky and the earth, nature and human beings. I located myself on the borderline of the earth and the sky, facing nature and away from the viewers. In the beginning of the video I think my body looks fragile and dramatic, feminine and provocative: an organic body or a body of desire. Over time, I find that my body, with its duration of stillness — breathing in the rhythm of nature — becomes a part of nature as matter itself, neutral, a transcendent state. To me it is like offering and serving my body to nature.
Mary Jane Jacob
Has performance become an actual practice of meditation for you, focusing and centering, to attain something for you, perhaps enlightenment, as well as give an experience to the viewer?
Kimsooja
For me, the most important thing (to arise out of) these performances is my own experience of self, and awakenness, rather than the video as an artwork. That's how I continue to ask deeper questions to the world and to myself. That is the enlightenment I encounter while doing this kind of performance. One such experience occurred with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India (2000) I was just looking at some different locations for a performance, but when I passed by this riverside, I immediately felt the energy and decided, “Let's do it.” Again I put my back to the viewer and looked to the river. It was right next to the cremation place on the Yamuna, so the floating images on the surface of the river were all flowers and debris from cremations. While I was facing the river, I was actually looking at anonymous people's life and death, including mine. It was a purifying experience, praying and celebrating. There's a lot of detail on the surface of the river, so I consider this piece as a painting. It's all reflection: there is no sky, but it looks like sky; there are no real birds passing, only reflections of birds from above. So, in a way, the river functions as a mirror of reality.
I decided to be there until the limit of my body. I was there for almost an hour in total. In the middle of standing there, I was completely confused: is it the river that is moving, or myself? My sense of time and space were turned completely upside-down. I was asking and asking and asking again, is it the river or myself? I finally realized that it is river that is changing all the time in front of this still body, but it is my body that will be changed and vanish very soon, while the river will remain there, moving slowly, as it is now. In other words, the changing of our body into a state of death is like floating on the big stream of river of the universe. Doing this performance gave me an important awakenness. It suddenly reminded me of one unforgettable dream that I had in my early twenties. I was looking down at Han River from a hillside in Seoul. After looking at the surface of the river for some time, my vision was fixed on the river and the movement of water inside it, showing me the bottom of the river with sand and round stones. Then I started seeing the dancing and spinning stones touch and hit together, mashing and breaking them into pebbles and dust, which eventually will become part of the river itself: "Stone is Water, Water is Stone!" I screamed in the dream and woke up being shocked by this awakenness as if my brain was hit by a strong metal bell.
Mary Jane Jacob
Your awareness of the impermanence of all things and embodiment of compassion--which is key to the teachings of Buddha--have brought your earlier expressions of healing to another level. I now recognize that this was at the root of our work together for the Spoleto Festival USA in 2002: Planted Names--four unique carpets at the 1742 Drayton Hall, bearing the names of enslaved Africans and African-Americans who built and cultivated this Palladian plantation--and A Lighthouse Woman in which you used the Morris Island Lighthouse.
Kimsooja
When I was filming A Needle Woman in Lagos, I happened to visit to an island offshore from which slaves were put on ships to cross the Atlantic Ocean. Standing there, looking out, I could feel the enormous pain of those who departed. The horizontal line of the ocean looked like the saddest line I had ever seen in my life. Then when I visited Drayton Hall and learned about the history of African-American slaves from the other side of the Atlantic Ocean, I immediately saw this plantation site as a vast carpet where enslaved bodies were embedded. There are so many sad stories behind these colonial places. Carpets are not about the beauty of an artist's design, but about the labor of the carpet maker, so I chose carpets as the form to celebrate their labor and time.
In the companion work, I considered this lighthouse on Morris Island as a witness of water, witnessing all the histories and memories standing still there. When I first visited it, I was so impressed by this lighthouse's loneliness. I related its loneliness to a woman's body and to women who wait for their sons, lovers, brothers and fathers to come home from the sea, who stand by the sea, waiting for them. I programmed a one-hour sequence of nine saturated colors that illuminated the whole tower, spilling onto and reflecting in the surrounding water, changing its rhythm as if it was breathing with the same rhythm of the ocean tides — in and out, inhale and exhale. It wasn't captured in video this time: it was important to experience in the site with the sound of the waves, and the air, and the real sequence of the rhythm of change. I miss the lighthouse.
Mary Jane Jacob
Yvonne Rand has spoken about how we can develop our capacity to be with suffering, as it arises, by developing our ability to be in attention. A way to develop this capacity is to continually, over and over, come back to the posture of the body that goes with being in attention. This arrangement of the body entails having the three energy centers in the torso in alignment: the head energy center for perception, the heart energy center for emotions, and the energy center in the belly, the hara, for spiritual strength and stability. When these three energy centers (located in the center of the body just in front of the spine) are lined up, then one is in the posture of attention or presence. This centered posture, in combination with a breath, allows one to be present. When I am fully present, in the moment, I can then be in the field of energy that I stand in with others. Here, in this field, I can more easily put myself in another's shoes, imagine their point of view--not in the "either/or" way of thinking but "both/and": I can hold both what is true in my experience and what is so for the other person. This is what it means to be present and, out of that, to have the skillfulness to develop the capacity to experience another person's suffering. So, Yvonne recognized that you had developed your capacity to become present in your breath with your own suffering as it arose and fell, and simultaneously experiencing the suffering of others, not as separate from yourself but as one: as you stood at the shore of the Yamuna River, on that coast of the island off Lagos, and in the Lowcountry of South Carolina.
— From the book 'In the Space of Art: Buddha and the Culture of Now', 2004:
Mary Jane Jacob is an independent curator whose exhibition programs test the boundaries of public space and relationship of contemporary art to audiences. She has worked closely with artists creating over 50 exhibitions and commissioning over 100 new artists' projects as chief curator at MCA/Chicago and MoCA/Los Angeles; as consulting curator for Fabric Workshop and Museum/Philadelphia; and for such public projects as "Places with a Past" (Charleston, 1991), "Culture in Action" (Chicago, 1993), "Points of Entry" (Pittsburgh, 1996), and "Conversations at The Castle" (Atlanta, 1996). Currently, she is curator for the Spoleto Festival USA's ongoing "Evoking History" program in Charleston, South Carolina. She is co-editor of an upcoming recent book — Buddha Mind in Contemporary Art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fall 2004) — for which she has conducted insightful with a dozen leading figures about their artmaking practices. This volume is the culminating work of "Awake: Art and Buddhism, and The Dimensions of Consciousness", a consortium research effort based in the Bay Area, which she co-organized. Ms. Jacob is Adjunct Professor at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and on the adjunct faculty of Bard College's Graduate Center for Curatorial Studies in New York.
Adam Szymczyk (Curator and Writer)
2003
On March 24, 2003 the police in New York arrested a hundred and forty participants of an anti-war demonstration, who had lain down in Fifth Avenue, blocking traffic and bringing the city to a standstill.
The demonstrators lay motionless on their backs; some were holding photographs of civilian war casualties in Iraq. Police officers lifted them off the ground and carried them into cars, slowly making their way along the body-strewn street. That "die-in" demonstration was one of hundreds of bigger and smaller manifestations of civil disobedience which swept over cities in all parts of the world in response to the war waged under American leadership in Iraq.
An act of civil disobedience consists in an ostentatious and consistent breach of the existing law. The disturbance is deliberate and limited in scope. Such an act of disobedience may be compared to a well-posed question. When it is one carefully chosen element of the system that becomes the object of criticism, the act is expressive and effective in exposing a false, albeit legally sanctioned, state of affairs.
A special form of civil disobedience are demonstrations in which a group of people temporarily occupies a section of public space to which they have no right at that moment. This includes such forms of protest as "sit-in", popularized by the American movement against racial segregation in the 1960s (the iconic sit-in by four black citizens, known as the "Greensboro Four", started at the counter of a white-only bar in Woolworth's department store on the first of February 1960) and then adopted by the student revolt of 1968, or "be-in", demonstration through being together (creatively) in a certain area - from mass gatherings of hippies (the most famous one took place in the Golden Gate Park, San Francisco, on the 14 of January 1967) to the occupation of premises, which is also a form of pressure through occupying space the right to which is disputed. Occupying a place in defiance of the norms regulating its use is an expression of the wish to be able to decide maters important to that place and to the people in it. New York's "die-in" dramatizes the risk of participants being run over by cars, but its main point is made through the clash between the concrete image of demonstrators lying in a street symbolizing ultimate material wealth and the vision of a heap of bodies - the clich image of how war affects civilians in a poor country. The renunciation of violence expressed in the form of a theatrical death on an improvised stage acquires the force of an ultimatum.
Quiet and persevering like stones which no one throws, Kim Sooja's works inevitably resonate with various forms of symbolic behaviour through which active members of civil society respond to the definitions of war put forward in media commentaries, using military metaphors of movement, and to the summary interpretations which politicians direct through the same media - always downwards, like bombs, leaflets and food supplies. One of the most suggestive images revealing this one-way movement - from the top down - is the agency photo of a truck, from which charity workers are throwing food parcels directly into the outstretched hands of hungry people. At the very top, on the roof of the truck, a group of reporters are standing, pointing their cameras down. It is easy to imagine what this scene, filmed from the roof of the truck, would look like on a TV screen: it would be us, the kindly viewers, who would be handing out food through other's hands to the people in need.
Kim Sooja stages her presence as a gap: motionless "being-in", which is gradually removed from the onlooker's field of vision, becoming something as known and obvious as the place itself. Being in a place becomes the place. Like the surface of water closes over a stone, like the eye fills in a blind spot for us. By remaining in a place, being gains a right to it, not through some special title located outside the place, in the space of ideology and codified law, but because it becomes a place, for some time a certain place in uncertain times and in places of uncertainty, in cities on the move. Sewing and travelling across (borders), begging in (the streets), lying on (a rock) and under (the sky), sitting under (a tree), standing in front of (a marching crowd). Sewing the top to the bottom, sewing with oneself, with a disappearing stitch, a blind stitch.
A typical TV report from the front lines: after many hardships a journalist managed to get there; his tired, happy face confirms the truth of his account. Wearing a helmet and a bullet-proof vest, the reporter grips a microphone. Although he's often dressed in camouflage, he is unarmed and that's why we should trust him. The reporter looks us in the eye and speaks to us. Behind him there is action, or just an epilogue or prologue to action. The movement of vehicles, of soldiers, of civilians, burnt-out ruins, wrecked equipment, a captured bridge, some children. The caption on the screen removes all doubt as to the place: a specific geographical name combined with a concrete person who is there and is talking to us now. There can be no more doubt: this is presence and we are experiencing it.
In a series of films shot in different cities around the world Kim Sooja does not show her face. A static camera films a motionless, standing figure from behind. The black vertical shape in the centre of the screen partially blocks the view. On the edges of the screen a crowd throngs; we see it fragmentarily, between the edge of the frame and the dark figure in the middle, on which it is hard to focus. Our view of the scene taking place here is as if "delegated" to that person, about whom we don't know much, not being able to see her face. We don't even know if her eyes are open, if she is looking. She's just a stubborn presence, a gap in our field of vision, standing between us and the image we want to see in its entirety. It's someone who is standing in front of us and whom we want to push aside to be able to see more. Kim Sooja leaves us with this sense of partial knowledge, which will not be made complete.
Her works make one think of the analogies between ways of working with human presence in the conceptual art of the 1960s and 70s and various forms of demonstrating civil disobedience through a political staging of human presence with reference to a given context.
In 1970 Adrian Piper decided to "become the object of art" and to stop making objects. In a series of performances realized in various public places (street, bar, bus stop etc.) the artist used herself as a "persona" slightly disrupting the usual order of things and testing the reactions of onlookers to the appearance of the Other. In Catalysis III (1970) she entered a department store wearing clothes covered in white paint, with the sign WET PAINT. The situations arranged by Adrian Piper were direct interventions by the black artist in the falsified sphere of aesthetics and custom, which conceal violence.
Kim Sooja also confronts the possibility of violence and responds to it with her directed personality. In Beggar Woman (Lagos, Nigeria) Kim Sooja sits in the street with her hand outstretched, in a beggar's pose. At the beginning the hand is empty; then someone puts some coins into it; the hand does not close, so somebody else steals them. In this microsituation, apart from economic motivations, issues of trust and responsibility emerge. The beggar's hand becomes a place of transit, an intermediate point/spot in the transit of money. It accepts and offers a gift. The beggar creates a certain community. Abstaining from the usual begging activity - the game of persuasion and resistance - she establishes a network of relations, sets a whole business operation in motion around herself. Kim Sooja's work is also reminiscent of the Real Money Piece (1969) be Lee Lozano, who started with 585 dollars in a jar. The people she met could either take out or add money to the jar; the circumstances, names and sums were recorded. An economic circulation was created, undermining the economy from inside.
If we define art stemming from a minimalist syndrome of progressive self-questioning of the object and focusing on the conditions of its presentation as, using Dennis Oppenheim's words, "displacement of sensory pressures from object to place", Kim Sooja's works certainly initiate a move of attention from object to place. Kim Sooja attracts our attention only to transfer it entirely to the place where she is.
— From the Zacheta Gallery exhibition catalogue, 2003:
Adam Szymczyk: Born 1970, curator and writer. Co-founder and curator of the Foksal Gallery Foundation in Warsaw 1997-2003. Since 2003, he is the director of the Kunsthalle Basel.
2003
Kimsooja transforms the quotidian act of sewing and traditional cloths into art that embraces life and society. She has exhibited her art all over the world, including many prominent international art biennales such as Venice, Sao Paolo, and Lyon. It was sometime in the early 1980s, Kim recalls, that she came to realize cloth as a new artistic medium, while sewing a blanket cover with her mother. In the act of sewing, which necessarily accompanies the material of cloth, Kim also discovered a possibility of overcoming the limitations of the "surface plane" — the concept to which the modernist-dominated art world still was fettered. Through the late 1980s, she produced a series of works — drawings and paintings done on unstretched cloths — to break away from the painting canvas, but these works were still an extension of 2-dimensional painting. In the early 1990s, Kim began to produce the series titled Deductive Objects; she took traditional everyday objects such as a doorframe, an A-frame, and a bobbin, and swathed them with cloths, in the process reassuring the objects’ basic structures. With this series of works, Kim reached a turning point in her art, in which cloth is no longer treated as a 2-dimensional pictorial surface, but a material open to many 3-dimensional potentials.
Kim’s encounter with the bottari (a bundle of household belongings wrapped in traditional Korean bedcovers), for which she would be widely known, took place rather fortuitously when she was in artist’s residency at P.S.1, New York. One day, Kim began to see wrapped bundles"bottaris"she had collected in a corner of her studio with a new eye. Kim states that the bottari turns flat cloths into a three-dimensional object through the simple act of "wrapping" — a method of making that is both painterly and sculptural; the bottari is a flat surface turned into a volumetric object, and can also further evoleve into an installation when located in specific place. Although she was initially interested in cloth as an alternative to the modernist flat surface, Kimsooja soon came to understand the material’s infinite possibilities through her exploration of its multi-faceted character. It was through her discovery of the bottari, the form that can flexibly adapt to different environments, that her work began to develop spatially.
In her 1997 video work Cities on the Move - 2727 km bottari truck, she traveled throughout the countryside of Korea for 11 days in a small truck piled high with bottaris in the back. This work is an eloquent testimony to how her work went through the processes of painting, object, and installation, gradually exploding out of the gallery walls. Kim moved often when she was a child because her father, who was a serviceman, had frequent job transfers. In that sense, Cities on the move is a travel through the memories of her own childhood. At the same time, it is a metaphor for her current state of being, an artist who constantly travels for work to different places in the world, and the work expresses the sensibilities of "on the move" and "itinerant" inherent in the bottari. When the video protion of the work, accompanied by the bottari truck, were shown at the 1998 Bienal do Sao Paolo and the 1999 La Biennale di Venezia, Kimsooja became known in the art world as the so-called bottari artist who poses the questions of identity, mobility, borderlessness, and nomadism.
The main methodology of her artmaking"sewing"also went through subsequent evolutionary processes. In more recent years, sewing for Kim has become a conceptual act, without an actual needle or thread, of forming and mediating relations. Pointing to the function of "healing" which the needle possesses, the artist compares her own being to the needle. For Kim, sewing is "like breathing, or communicating" and is an act of bringing separate beings together by linking them, one stitch at a time. The needle is a mediator that travels in the gap, closing it. But when the needle completes its work, the trace of its labor remains only as the thread which it was attached to. The artist identifies with the needle, then in the sense that when her role as mediator is finished, her being becomes "Nothing".
The artist as the needle appears again and again in A Needle Woman (1999-2000), a series of video works which records Kim’s repeated performances on the streets of Shibuya (Tokyo), Shanghai, Delhi, and New York. In all these videos, Kimsooja stands motionless, with her back facing the camera and her front facing the oncoming traffic of pedestrians. The bypassing people’s responses captured by the camera’s eye are varied depending on the location of the performance. The work is a manifestation of the artist’s wish to sew the self and the others, and the self and the world into relationships, using her own body as the medium. Kim explains A Needle Woman as follows: "the artist’s body, as a medium, or a barometer or a compass, forms only unseen links between people passing by it, but in the end, it becomes alienated and almost disappears into the state of nothingness, like an invisible man." Earlier, Kimsooja’s art developed cloths (an irreplaceable part of our lives) and sewing (traditionally women’s labor) into the general human context through her art. Now, she sees her art as a metaphor, and in it, she wishes to make relationships of healing, cleansing, and ultimately, embrace.
─ Mind Space(2003), Samsung Museum of Modern Art, Seoul, Korea. pp. 110-112.
2003
베니스, 상파울로, 리용 등 세계 유수의 비엔날레에 초대되면서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수자는 전통적인 천과 바느질이라는 일상적인 행위를 삶과 사회를 포용하는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이다. 그는 1980년대 초반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다가 천이라는 소재를 새롭게 자각 하게 되었고, 천이라는 소재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바느질의 행위에서 당시 자신은 물론 미술계가 천착하였던 '평면' 의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주로 천 위에 드로잉 또는 채색을 가미한 그의 1980년대 후반까지의 작품들은 비록 캔버스를 벗어나긴 하였으나 평회화의 또 다른 연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창호지 문틀이나 지게, 얼레 등 전통적인 일상의 오브제들을 천으로 감싸 그 기본 구조를 재확인하는 <연역적 오브제> 시리즈 작업을 하면서 그는 천을 평면적으로 다루던 기존의 작업에서 탈피하여 천이 가진 입체성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김수자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한 보따리와의 만남은 뉴욕 P.S. 1에서 작업을 하던 중 우연히 이루어졌다. 천 작업을 하려고 싸놓았던 보따리를 어느 순간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된 것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보따리는 평면적인 천을'묶는다'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서 3차원화 할 수 있으며 따라서 회화적 방법을 연출할 수 있는 동시에 볼륨있는 조각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보따리는 평면이 3차원화한 입체내지는 오브제이면서 그것이 놓이는 장소성이라 는 문제와 연관될 때 설치로서 자리하기도 한다. 처음에 평면에 대한 대체물로 천을 채택하였던 김수자는 천의 여러 가지 다양성을 모색하면서 그것의 끊임없은 확산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고, 특히 공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보따리를 발견하면서 계속적으로 공간, 장소에 대한 관심을 확대해 나아갔다.
1997년 11일간 트럭에 보따리를 가득 싣고 전국을 일주하는 퍼포먼스를 담아 제작한 비디오 작품 〈떠도는 도시들-2727km 보따리 트럭〉은 평면, 오브제, 설치 작업의 과정을 두루 거치면서 그의 작업 영역이 전시장 밖으로 더욱 확장되어 나아갔음을 보여 준다.이 작품은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자주 하였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의 흐름을 따라가는 여정이자 작업을 위해 세 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은유하면서 보따리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이동'과 '유 랑' 의 정서를 표출한 작품이다. 이 보따리 트럭이 1998년 상 파울로 비엔날레와 1999년의 베니 스 비엔날레에 출품되면서 김수자는 세계미술계에 유랑과 자유로운 의식의 유목주의적 사유와 함 께 정체성에 대한 문제 등을 제기한 일명 '보따리' 작가로 알려지게 된다.
김수자 작업의 기본이었던 바느질이라는 행위도 실제로 꿰매는 행위 없이 실과 바늘이 없이도 관계를 맺어 가는 개념적인 바느질 작업으로 전개되어 나아갔다. 작가는 특히 바늘이 갖는 '치유의 도구'로서의 기능에 주목하면서 스스로를 바늘에 비유하기 시작한다. 그에게 바느질 행위는 '호흡 또는 소통같은 것'이며 분리된 것들을 한땀 한땀 이어 나가 관계를 맺게 하는 행위이다. 바늘은 매개체로서 갈라진 틈 사이를 지나면서 그 틈을 연결시키지만 정작 남는 것은 자신과 연결되었던 실만이 흔적으로 남을 뿐이다. 작가는 이렇게 매개체로서의 역할이 끝난 후 무(無)화되는 바늘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것이다.
바늘로서의 작가의 모습은 일본 동경의 시부야 거리와 중국 상하이, 인도 델리, 그리고 미국 뉴욕에서 벌인 퍼포먼스를 담은 비디오 작품 <바늘 여인>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길 한가운데에서 마주 오는 행인들을 바라 보며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작가의 모습과 각 도시 행인들의 다양한 반응을 담은 이 비디오 작업은 자신의 몸을 매개로 하여 나와 타인, 나와 세계의 관계를 엮고자 하는 작가 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이 작업에 대해 "하나의 매개체, 혹은 바로미터 또는 나침반으로서 의 작가의 몸은 인파 속에서 스쳐 가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관계 지을 뿐 결국 투명 인간처럼 거의 무의 상태로 소외되고 사라지고 만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일상 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천이라는 소재와 전통적으로 여성의 노동이었던 바느질이라는 일상적 행위를 인간의 보편적인 문맥으로 발전시켜 나간 김수자는 결국 자신의 예술을 사유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그 속에 치유, 정화, 그리고 포용을 내포하는 관계 맺기를 지향하고 있다.
─ 『Mind Space』(2003), 삼성미술관(현 리움미술관), pp. 110-112.
2003
한국 미술에 있어 1980년대 중·후반은 종래의 모더니즘 미학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좀더 넓고 개방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정치·사회적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기와 올림픽을 계기로 한 국제화가 촉발됨으로써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하던 폐쇄적 사유방식과 획일적 가치관이 점진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시기는 기존의 인습과 새로운 사고를 위한 열정이 혼융된 하나의 과도적 시기이기도 하였다.
형식주의 모더니즘을 거부하는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 은 한편으로는 민족적 현실과 결부되어 ‘민중미술’로 대표되는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형식주의를 비판적으로 계승코자 한 입장에서는 새로운 형상성의 추구와 복합 매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이 놓이는 공간이나 환경과의 상관성 속에서 작품을 재문맥화하는 설치미술이나 장소성이 강조된 새 로운 양식으로 확산되어 나타나기도 하였다.
서구 포스트모던에 대한 깊은 이해는 부족하였지만, 1980년대 중·후반은 모더니즘의 미학이 가지는 제반 문제점들이 폭넓게 검증되기 시작하면서, 탈(脫)모던의 양상들이 매우 복잡하게 대두되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와 달리 대규모의 집단활동보다는 다양한 소그룹 활동이 활성화되었고, 더 나아가 독특한 개인 활동들을 중심으 로 개별성과 다원성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획일적 거대 담론보다는 작은 이야기들과 소수자들의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서구 문화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 전통과 그 언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전통을 소재로 한 작업들과 개인의 체험을 기반으로 한 작업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과거에 비해 역량 있는 많은 여성 작가들 이 등장하게 되는데, 종래의 남성 중심의 미술계 구도와는 다른 큰 변화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자는 이 시기에 등장한 매우 출중한 여성 작가 중 하나이다. 그녀는 현재 각종 국제비엔날레 등을 통해 확고한 국제적 인지도를 획득한 작가인데, 그녀의 초기 작업은 현재의 작 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많은 잠재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작업은 이불보나 보자기와 같은 천을 사용하며, 바느질을 기본적인 기법으로 사용한다. 천을 조각보처럼 꿰매어 이어 붙이기도 하고 천으로 오브제를 감싸기도 한다. 개울가에서 천을 빨아 널어놓기도 하고, 천을 카페의 탁자보로 사용하여 작품을 일상 공간 속에서 실재적 기능과 조형적 요소로 작동시키기도 한다. 또 천을 보따리로 만들어 전시장에 늘어놓기도 하고, 보따리들을 트럭에 싣고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했던 지역들을 옮겨 다니기도 한다. 이외에도 그녀는 문화권이 다른 새로운 지역들을 여행하며, 여행지를 소재로 한 다양한 유목적 사유를 구현하는 비디오 작업을 수행하기도한다.
그녀의〈땅과 하늘〉(1984)은 초기작으로 당시의 조형 적 관심사를 잘 구현해 내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그 녀의 작품은 형식적으로는 전통 규방문화의 산물인 조각보의 현대적 변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금박의 전통문양을 곁들인 원색의 비단 천과 같은 이불보 등의 천 조각들을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꿰매어 가는 공정은 동양 여성의 감수성을 조형화해 내는 적절한 코드로 작용한다. 또한 천이 가지는 가변성은 그것이 보자기로 사용될 때 증폭되며, 보자기는 비밀스러움과 내포성, 이동성 그리고 여인의 애환 등과 같은 복합적 의미를 함의토록 한다. 또한 바느질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연결시키는 재문맥화 행위이며, 또한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애환이며, 애환을 구성하는 내러티브 만들기이기도 하다. 천들이 여인의 삶의 숱한 편린이라면 바느질은 그 편린들을 모았다 흩어버리는 사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녀의 바느질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여정이며, 한 곳에 정착하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유목적 사유의 조형화이다.
─ 『문화예술』 12월호, 2003, pp. 100-101.
2003
When I decided to open a website using my name — which I hesitated to do for years because of its commercial aspect — I was hoping for an ideal society and relationship among people in the art world in which we could share real opinions with honesty, sincerity, dignity and love of art and life. I hope that my website project will not just introduce my activities but can bring more articulated discussions and criticism on art and the world.
I am careful to open this site, as mass media is one of the most influential media and another form of power which often leads this (art)world unfairly and untruthfully. But this is also what I wanted to work out and to bring out the true face of it — by opening another critical mass media to balance the public opinions. Think how much internet information and how many discussions are going on in this world — it is excessive. But I find most of them nothing but consuming information which have no content or true concern about art and the world.
I feel a responsibility now to put my endeavor to the (art)world in a modest way, even with one single person in this whole world to share and to support the real concerns — which I've been thinking for sometime, experiencing how the opinion of the society can be twisted by leading the public with wrong information or by not giving information, or by manipulating the reality mainly using mass media — partly because they are ignorant, partly because they are insecure, and are serving themselves for money and power. I wish to see the real art and meet real spirit, and to create something real with real people, and share it with every single person one to one, mostly discovering the ideas that have not been revealed or appreciated enough in this world.
One night, I suddenly discovered an important aspect in naming the website domain which keeps mostly one-word name — and it drove me to make up my decision to open a website for the public which I've been hesitating to do for years — like others, <www.kimsooja.com>. I was struck by the fact that it shows no reference of the name which has two or three words put together, with the first name and the family name, sometimes with a middle name.
A one word name refuses gender identity, marital status, socio-political or cultural and geographical identity by not separating the family name and the first name. Action One: "A One-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 is my first statement for opening my website project.
You are invited to my station to share any concern or critical ideas and I will communicate with you one to one, posing questions, inviting significant artists, writers and thinkers, as well as curators in the near future.
Thanks very much for your concern and support for this project.
Please feel free to contact me if you have any questions or ideas to share.
I look forward to communicating with you soon.
Sincerely,
Kimsooja
— New York, July 14, 2003
2003
상업성에 대한 고민으로 주저하던 수년을 뒤로하고 내가 홈페이지를 열기로 결정했을때, 나는 예술과 삶에 대한 진실성과 순수함, 존엄과 사랑이 함께하는 진정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작품 안에서 이상적인 사회와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 홈페이지는 단순히 내 작업과 활동을 소개하는 도구가 아니라 미술과 세계에 대한 더 활발한 대화와 평론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매스미디어는 가장 강력한 미디어이자 자주 이 (미술)세계를 불공평하거나 진실되지 못하게 만들어 가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이 홈페이지를 여는 것이 조심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대중 앞에 또 하나의 중요한 매스미디어 형식으로 내놓음으로써 문제의 진정한 단면을 보고 부딪쳐보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정보와 토론이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이는 수를 셀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예술과 삶에 대한 진정한 염려가 배제되어 있고 우리의 시간만 낭비하게 한다.
나는 이 (미술)세계로 허식없는 노력을 쏟는 것에 대한 의무감을 느낀다. 그리고 단 한 명이 될지라도 진실된 염려를 나누며 함께하고자 한다. 한동안 생각해 왔던 것이지만 무지와 불안감때문에 혹은 돈과 힘을 얻기 위해 잘못된 정보, 고의적 정보의 부재, 통신매체를 이용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은 결국 대중이 사회에 대한 뒤틀린 의견을 갖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나는 진정한 예술과 진정한 혼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참된 사람들과 참된 무언가를 만들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하거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것들을 발견해 보고 그것을 모든 이들과 나누고 함께하고 싶다.
어느 날 밤 나는 한 단어로 된 홈페이지 주소의 이름을 생각해 보며 갑작스러운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발견은 수년간 망설여오던 대중을 위한 홈페이지를 만들도록 이끌었다. <www.kimsooja.com> 나는 이 웹주소가 성, 이름, 또는 미들네임 등 두 세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이름의 구분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한 단어의 이름은 성과 이름을 구별하지 않음으로써 성별, 결혼의 유무, 사회 정치적, 문화적, 또는 지리적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다. 액션 1: “한 단어 이름은 무정부주의자의 이름이다” 는 나의 홈페이지를 여는 것에 대한 첫 번째 성명이다.
나는 어떤 의견이나 비평적 아이디어도 함께 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이 공간에 초대한다. 나는 이곳에 찾아오는 여러분 개개인과 의견을 나눌 것이며 가까운 시일 내에 작가, 사상가, 그리고 큐레이터들을 이 공간으로 초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에 대한 염려와 지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의문과 의견을 나누고 싶은 분들은 언제라도 연락을 바란다.
곧 함께 의견을 나누길 기대하며.
김수자
2002
From February 23 to May 18, 2002, the Peter Blum Gallery of New York presents the exhibition A Mirror Woman by the Korean artist Kimsooja. At the same time, her work can be seen as part of the Whitney Biennial (which this year has overflowed the physical limits of the Marcel Breuer building, taking over part of the public space of Central Park). The work of Kimsooja in the Biennial is titled Deductive Object, and is in the Leaping Frog Cafe in the Central Park Zoo.
The notion of nomadism has been privileged in the discussion and practice of the visual arts in the last decade, coinciding with the phenomenon of globalization and the effects that this has had on the circulation of goods and ideas — as much in economic as cultural terms — and the "mutual contamination" that this traffic implies. Kimsooja, a Korean artist living in New York, is one of those artists who exemplify in a complex way the paradoxes of globalization. While she works with deeply local materials and references, her work has been inserted comfortably into the international scene, holding a position of resistance against being digested into an aseptic internationalism but taking care, in these days of multiculturalism, to hyperbolize the characteristics of its difference to become more "exotic" in a medium eager for otherness.
Kimsooja is not a new face in New York. A year ago, P.S.1. (the "alternative" space par excellence of the 90s, nowadays associated to MoMA) presented an individual exhibition of her work, which had been shown already in that same space shortly before, within the framework of the very publicized Cities on the Move. Perhaps the work that has given her the greatest international visibility is her series of videos titled A Needle Woman, initiated in 1999. The artist traveled to eight cities in several continents, among them some of the most populated cities of the world: Cairo, New Delhi, Lagos, London, Mexico City, New York, Shangai and Tokyo. Generally, they are presented / displayed as large-format projections, in whose image is seen the artist from the back in a crowded city street.
The passers-by look in the direction of the camera — which they encounter from a considerable distance — and this depth of field has the effect of "leveling" the image on which figure and background are based and is difficult to calculate the proximity between the artist and the locals that encounter her. The artist is immovable in a meditative attitude, totally passive to the reaction of the people. This passivity generates a tension: at any moment we are hoping that she is interrupted, bothered, or even attacked. One of the immediate readings provoked by this work is one of the uncomfortable relation of the individual with society, a personal act of meditation facing the collective interaction in a public space. The artist opposes the slowness of individual, metaphysical time, at the speed of the collective time, whose rate is marked by conventions. A Needle Woman is, in the words of Paulo Herkenhoff, "the cartography of a 'displaced being.'" The needle, the artist reminds us, is an ambiguous image, as much masculine as feminine: "it can inflict a wound and at the same time be used to heal it." When facing the human river in the streets of these great cities, Kimsooja is penetrating the social weave and is simultaneously being permeated by its particularities. This tension is clearly perceivable in the videos, in which there is always a latent sensation of violence — implicit in the confrontation between individual and society, foreigner and locals, the woman and a phallocentric society; the confrontation is literalized by the formal disposition of the performance.
The status of a foreigner in another country and the condition of the urban immigrant is also invoked here. The tension between the urban landscape, full of color and vitality, and the immovable image of the artist, always dressed in the same grey tunic (which recalls the clothes of indigents and the poor, unavoidable presences in all contemporary metropolises) adds a political reading to this confrontation between individual and society. It is worth noting that the use of an indefinite article to title the work, "A" Needle Woman instead of "The" Needle Woman, testifies to the will of Kimsooja to allude more to the human condition than to a particular history, presenting / displaying "the lost soul to us of globalized modernity," as the critic Ken Jonson wrote in the New York Times.
The work of Kimsooja is in the tradition of the performance, though the body remains immovable here. But it is also in the tradition of the landscape and, why not, of the urban documentary. These videos are pictures of the local life in each one of the selected contexts: the chaotic architecture in which tradition and modernity mix in cities like Delhi and Shangai; the human rivers in New York or Tokyo. Each video incorporates abundant sociological information on the "local color": clothes, means of transport, forms to be related in the public space. In New York and London people ignore each other (and the artist) but simultaneously speak on cellular phones, establishing an alternative relational plot in which the notion of the street as the space of social interaction par excellence is challenged by the technological and social reality of the great contemporary large cities.
The images of the eight cities vary significantly, in their color, texture and, as was already said, in the attitude of the passers-by with respect to the artist, confirming that in the base of national stereotypes much truth exists: in London and New York, cultures in where individuality is an appraised good, people pass to the side without becoming jumbled, minding their own business, doing something that is not there. In the cities of Asia a similar attitude is perceived, although the furtive glances attest more to a timid nature than of an affirmation of individuality. And readings could be made still more particular: as the critic Gregory Volk writes, in Tokyo the artist could just as well not be there, because the people ignore her completely, "before which it is inevitable to think about how the Korean minority in Japan has long suffered from cultural invisibility and discrimination." In Sao Paolo or Mexico City, people were more direct in satisfying the curiosity generated by this unusual urban presence (an Asian woman completely immovable in a sidewalk is without a doubt an unexpected appearance), whereas in Lagos, the performance caused a true collapse in the circulation of this large African city, when a group of boys crowded itself around the artist to watch her, to ask her questions and to try to obtain some type of reaction. And so on in each case.
From 1994 the artist has used multicolored fabrics presented/displayed in several ways: spread on the ground, folded in piles, hung on lines as if they were being dried in the sun or in bunches (called Bottaris), which have become one of her more characteristic visual resources. In their different uses, these colorful fabrics have a great evocative capacity; they recall the clothes hung in the patios, or put out to dry on the banks of rivers in the rural areas of many countries — no only in the Third World. The bunches have more complex readings; it is inevitable to think of displaced urbanites with their properties in the hills, or of associations even more macabre, because many of them are the size to wrap a human body. The fabric in this case is a delicate limit between interior and outside, spirit and materiality, the individual and the world that surrounds it. The Bottaris are made from fabrics traditionally used in Korea to surround domestic objects like clothes or books. These bulks symbolize the historical displacement of the Korean population, but they touch upon a global preoccupation, the phenomenon of internal migrants and the immigrants, displaced from their places of origin for diverse reasons — religious, political, economic — one of the subjects of greatest importance in the postindustrial societies. The Bottaris are the house in the absence of the house, indices of a left or lost place, that guarantee a connection with history.
A Mirror Woman, the installation in the Peter Blum Gallery, consists of a kind of multicolor labyrinth formed by the fabrics that hang from cables like the ones used to dry clothes, that cross - extended across the rectangular space of the gallery. In the two sidewalls the artist has placed mirrors that cover the entire surface of the walls, with which one has the sensation to be immersed in an infinite space. For Kim, the mirror is "another way to surround the world". These textiles are associated with the condition of the woman in Korean society, and to domestic rites like sewing and embroidering bedcovers as marriage gifts. Kimsooja has described how she arrived at this material: "I was sewing bedcovers for my mother and after a while I had a strange sensation in which my thoughts, my feelings and my actions seemed to get to be on [with the fabric and the act of sewing it]." These fabrics are all the same form and size (a regular square), but vary significantly in their color, texture and composition, because they are made in many cases from pieces of used dresses or other blankets. Most of them belonged to somebody, and this "biographical load" is perceivable in the installation, in where they are a stirring presence.
The intervention in the Leap Frog Cafe in Central Park is very subtle, because as it is not an artistic space, the fabrics tend to merge with the colorful atmosphere of the park. When using the bedcovers like tablecloths in the restaurant, Kimsooja incorporates in this scope of socialization the presence of experiences lived in other times and other contexts; apparently this displacement is a transgressive act, because in Korea it is taboo to eat upon the bed. Probably a casual person at the table does not perceive the presence of "the work", but this is the risk associated with all intervention that is not codified by its inclusion in a museological space. What is certain is that for many others the social act around the table (eating, talking, drinking coffee) will be mediated by their presence, and by the consciousness that these fabrics have been dumb witnesses of many other lives. Like the mirrors.
─ 2002 Solo Exhibition at Peter Blum Gallery. New York, USA
2002
The work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1997) by the Korean artist Kimsooja has prompted many commentaries – on the Internet too – that are full of inaccurate quotes and half-truths, but that also include some quite imaginative interpretations. For example, there is talk of the "video loop of her sojourn throughout Seoul and the surrounding countryside" (I am deliberately excluding source references here.) In the film itself, however, there is nothing to be seen of the metropolis of Seoul. In another commentary: "In 1997, Kimsooja toured Korea for eleven days in a truck containing a large number of 'bottari' made from clothing she had gathered from all over the world." This universalistic interpretation is contradicted by the following reduction to local history in another text: "The mountain of colorful, knotted cloths in the truck alludes to the troubled episodes of Korean history, in which city dwellers and the inhabitants of the countryside alike were forced to flee their homes, carrying their valuables in similar large 'bottari'." However, it is impossible to examine the content of the bundles in the film, and inconceivable – at least for the lay person – to deduce the forced nomadism of the Korean people from the truck journey performance. What I am attempting here, therefore, is to allow the images to speak for themselves and at the same time take account of the written information which the artist has provided in her film.
A woman is sitting on a truck loaded with bundles. The bundles are tightly secured with thick ropes; they also serve as a seat for the woman. Throughout the whole film this female figure is shown only from behind. Occasionally, at a bend in the road, her concealed profile appears momentarily. She is wearing a neutral black dress that defies classification, either chronologically or geographically, and her hair is bound up. The camera following her tries to vary as little as possible the distance it keeps from her and to always keep her at the centre of the frame. Accordingly, in the lower half of the frame we see the heap of colorful bundles (only once does the rear of the truck sways briefly into the image), and in the upper half, we see the woman and the passing scenery [2]. The truck first travels upwards along a mountain road, then, having crossed a pass, down again into the valley. The road winds, with fairly sharp bends, through a landscape which during the ascent looks quite barren, but on the descent turns out to be wooded. Traces of snow can be seen at the road-side and around several groups of buildings. The landscape is geographically unidentifiable. There could be places like this in almost any continent of the world. The script on one of the passing road-signs, however, indicates the Asian region.
The information directly available from the images is complemented by some written data. The almost seven-minute video begins with a fade-in followed by the title "Cities on the Move". This refers to the context in which the work originated – namely, the exhibition "Cities on the Move", which was created by Hou Hanru and Hans Ulrich Obrist and, in keeping with the theme, was shown in different formats in different cities and continents [3].
Right from the beginning, this fade-in also provides a pointer to the general problem of how cities are developing. What is specifically "on the move" is the truck fully loaded with bundles. The truck must, therefore, be associated with "cities." And yet only a mountain road is visible in the frames. Do the bundles come from cities? Are they being transported to cities? Throughout the whole film, the word "cities" lodges in our mind like a foreign body, forming the conceptual counterpart to the landscape, which is visible all the time in the background. The general title "Cities on the Move" implies that the journey passes through city and country. Shortly before the end of the film, its actual title appears: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Only now do we realize that the seven-minute sequence is no more than an extract from a much longer journey. The final credits contain information on the director (Kimsooja), the year the film was made (1997) and the location. Thus the point in time (the present) and the place where the action occurs (Korea) become clear. Yet we still feel confused. As image and text mutually influence each other, there is a tense interplay at several levels: between city and country, part and whole, now and (almost) any time, here and (almost) everywhere – or, in contemporary terms: the local and the global. Furthermore, the linear structure of the film and the journey is weakened by its repetition (the video runs in a loop). Although the journey is the central theme of this work by Kimsooja, stasis proves to be just as vital.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can be seen as a minimalist road movie. The classical road movie simultaneously depicts a physical and a spiritual journey: a person, but mostly two people, travel the country in a car or on a motorcycle in order to find both the true America and themselves [4]. Though the road movie refers to the past and suggests a future, it concentrates on the in-between, the road, the distance between past and future, city and country, civilization and nature, immobility and movement. In an e-mail interview with Hans Ulrich Obrist, Kimsooja writes: " 'Bottari Truck' is…a loaded in –between"[5]. The road promises not only release from the bonds of the past but also the adventure of a new beginning. The reasons that drive someone onto the road have a lasting effect on the plot of the road movie. In Kimsooja's film there is neither action nor motivation. The woman dressed in black is traveling alone. She remains seated, while still moving forward. Deleuze and Guattari refer to the progress in repose of the nomad in their Nomadology: "The nomad distributes himself in a smooth space; he occupies, inhabits, holds that space; that is his territorial principle. It is therefore false to define the nomad by movement. Toynbee is profoundly right to suggest that the nomad is on the contrary he who does not move. …Of course, the nomad moves, but while seated, and he is only seated while moving (the Bedouin galloping, knees on the saddle, sitting on the soles of his upturned feet, 'a feat of balance')." [6] We do not know where the dark female figure comes from or where she is going to. We are not informed about her reasons for making the journey, why she has tied up her bundles. She exists only in this in-between space constituted by the road. Deleuze and Guattari emphasize this in-between space as a further characteristic of nomadism: "The nomad has a territory; he follows customary paths, he goes from one point to another, he is not ignorant of points (water points, dwelling points, assembly points, etc). …A path is always between two points, but the in-between has taken on all the consistency and enjoys both an autonomy and a direction of its own. The life of the nomads is the intermezzo." [7] The classical road movie operates with the opposition between space and place. Space – abstract space, wide open space –symbolizes inestimable freedom, while place – the precisely localized place – means civilization, the norm, the rule, i.e., restriction. In Kimsooja's film the two terms coincide in the concept of the bundle. This temporary place, the bundle, on which the woman is sitting, is simultaneously space and movement. It thus integrates the opposites of stasis and displacement, bondage and freedom. In the interview with Obrist, the artist puts this paradox as follows: " 'Bottari truck' is a development-object through space and time, an object that brings us to and from the place from which we came and to which we will return." [8] Kimsooja uses the elementary bundle – literally a "transitory object" – as a complex, contradictory symbol of location and placeless-ness.
At first sight, everything in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seems to be in motion, flowing: the truck with the bundles roped onto it, the woman swaying slightly on the bends and at times shaken because of the bumpy road, the passing landscape. Meanwhile, the woman is taken as a fixed point (the heaped bundles function as a mere "plinth"); she is the referential object, although almost all we see of her is a cloth covering. The woman cannot be identified and is thus as anonymous as the bundles, whose contents remain concealed. This makes her a genuine identification figure. She can be anyone. Her body is a bundle, a container of many things, a corpus. In the interview with Hans Ulrich Obrist, Kimsooja remarks: " 'Bottari Truck' is a laden self, a laden other." [9] The body as bundle enables the transfer between "me" and "the other in me", between "me" and "the other". [10] The travelling woman seated on the bundles is not least a symbol both of primitive and of modern man, of nomadism and of the mobility and flexibility that have been raised to the new ideal and are often linked with values such as non-identity, placeless-ness, migration, cultural hybridism, etc. Yet this woman radiated an immense loneliness – melancholy? Marc Auge analyses the loneliness of modern cartography and in so doing, he investigates both those "places" which are characterized by identity, relation and history, and those "non-places" which have no anthropological identity. His conclusion is: "Movement adds a special experience, a form of loneliness, to the juxtaposition of the worlds and the experience of the anthropological place." As the images pass by, loneliness manifests itself in them "as a going beyond individuality, in short, the flickering of the hypothesis of a past and the possibility of a future." [11] Is loneliness perhaps the unexpected price to be paid for being open to the world?
[Note]
[1] "Gerald Matt interviewing Kimsooja", p. 12, in: exhibition catalogue: Kim Sooja. A Laundry Woman, Kunsthalle Wien, 2002, p. 7-33.
[2] å pendant to Kimsooja's women in black seeen only from behind in Michelangelo Pistoletto's "La Venere degli stracci" (Rag Venus, 1967). In it, a replica of a classical female nude with her white back turned to the viewer snuggles up to a heap of clothing and pieces of fabric that towers above her. There is a clashhere between the ideal form and the attraction of the informal. Thirty years later, Kimsooja no longer needs this shock effect: the woman and the cloth bundles belong in one and the same universe.
[3] Cities on the Move, exhibition catalogue Secession, Vienna, Musée d'art contemporain, Bordeaux, ed.: Hatje Verlag, Ostfildern, 1997/98.
[4] Several interesting essays on the theme are contained in the reader The Road Movie Book, ed.: Steven Cohan and Ina Rae Hark, London, New York: Routledge, 1997.
[5] Reprint and German translation of the interview in: Kim Sooja. A Needle Woman, exhibition catalogue Kunsthalle Bern, 2001, no page numbers.
[6] Gilles Deleuze and Félix Guattari, A Thousand Platea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translated by Brian Massumi, London: The Athlone Press, 1987, p. 381, chapter 12, A Threatise on Nomadology: The War Machine.
[7] Ibid., p.380
[8] Kimsooja, 2001.
[9] Ibid.
[10] Little wonder that of all things a female body assumes this mediating role.
[11] Marc Augé, Orte und Nicht-Orte. Vorüberlegungen zu einer Phänomenologie der Einsamkeit, Frankfurt am Main, 1994, p. 103.
Lilly Wei (Independent Curator)
2002
New York-based since 1998, Kim Sooja here exhibited a new installation titled A Mirror Woman. The artist, who was much praised last year for her riveting video A Needle Woman, seen at P.S.1 and later at this year's Whitney Biennial, has said that in her native Korea, her work is sometimes not seen as art, since it so closely approximates the look of daily life. For this show, she presented the best-looking room of laundry you're ever likely to see: gaily colored silk bedspreads, 14 rows deep, pinned to clothes-lines strung across the gallery, whose walls had been mirrored from floor to ceiling for the occasion. The coverlets, elaborately embroidered with phoenixes, dragons, fruits and flowers — symbols of long life and fertility — were strikingly festive, with their high-pitched color schemes of fuchsia, emerald green, sour lime, royal blue, golden yellow, ripe plum, hot pink and cherry red. The mirrors extended the installation in endless, repetitive sequences.
Traditionally given as gifts to newly married couples, these salvaged wedding bedspreads are domestic objects that can be folded, wrapped and carried away, if need be; indeed, like tents, these covers can create a dwelling, an emblematic compound of sorts, in which women perform centuries-old, conventional domestic tasks, like hanging out the wash, attending to fabrics they have woven and embellished in considered acts of art and meditation. "A fundamental site," the artist says, "these bedcovers refer to marriage beds and shrouds, birth and death, love and pain, hope and despair, sleep and awakenings, cycles of incarnation and dreams, a delicate but comprehensive view of a woman's world."
Hung, with the exception of the first and the last two rows, in pairs, the bedcovers were strategically positioned. Entering the installation was a little like entering a painting. As you negotiated the space, which resembled a maze, you had to choose your route, your subsequent progress gently controlled in a ritual of passage both profoundly symbolic and quite ordinary. Small unobtrusive ceiling fans set the silk aflutter as if it were animated by chi, the breath of life. Encompassed by planes of color, you were soothed by the faint hum of recorded Tibetan mantras interrupted by the tinkling of bells — a spiritual version of pillow talk, perhaps. This was a comely, courteous kind of feminism, from an Asian Buddhist perspective seen lightly, self-consciously, through artfully arrayed mirrors.
— From Art in America, September 2002:
Lilly Wei is a New York-based independent curator, essayist and critic who writes for several publications in the United States and abroad. A frequent contributor to Art in America, she is also a contributing editor at ARTnews and Art Asia Pacific.
2002
We are wrapped in cotton cloth at birth, we wear it until we die, and we are again wrapped in it for burial. Especially in Korea, we use cloth as a symbolic material on important occasions such as coming of age ceremonies, weddings, funerals, and rites for ancestors. Therefore, cloth is thought to be more than a material, being identified with the body — that is, as a container for the spirit.
When a person dies, his family burns the clothes and sheets he used. This may have the symbolic meaning of sending his body and spirit to the sky, the world of the unknown. When I look back over my more than twenty years of handling bedcovers, I feel that I have always been performing, guided by the piles of cloth I have lived among.
What in the world have I stitched and patched. What have I tied up in bundles. When will the journey of my needle end, my silkworm unwrap its flesh. Will it in the end slough off its skin. Will the bundles with no destination find their way to go.
— Artist statement accompanying "Kim Sooja: A Mirror Woman", Peter Blum gallery, New York City.
Exhibition from February 23 to May 18, 2002.
2002
Compared to the sixties and the seventies when performance as a visual arts medium was in its initial stages as a popular medium to explore, today, very few contemporary artists rely on performance as their primary medium of artistic expression. Kim Sooja (b. 1957 in Korea) is one of the leading contemporary artists in the field, combining her performances with video and photography. In her latest project A Needle Woman and as a performance artist, Kim Sooja could almost be described as an 'non-performance artist': silently standing still in the street with her back towards the camera, the audience appearing to be the actual performer.
Over the past years, the work of Kim Sooja has gone through important transitions. However, the idea of sewing remains central to all of her pieces, in a more figurative way at first in her early work, and recently, in a more abstract way. What started as a remnant, as a static patchwork of several individual lives (the sewing together of traditional Korean used clothes gathered by the artist or brought together as bundles on a truck, as in Cities on the Move - Bottari Truck), turned into the tailoring of a garment larger than life, that on a global level would include the existence of millions of people from different continents.
Kim Sooja, now based in New York, gained critical acclaim with her Bottari Truck, which was shown in the Sao Paulo Biennale in 1998 and the Venice Biennale in 1999 based on her performance of driving a truck loaded with bottari bundles through Korea. Kim Sooja's performances are very subtle and never does she impose any conclusions on the viewer. On the contrary, it is the flow of her deliberate 'inaction,' her silence that over time creates an almost meditative state of mind or religious experience for the viewer. With minimal action, Kim Sooja's performances include aesthetics, poetry and contemplation, qualities that often appear to be missing in contemporary art today.
In the following interview, Kim Sooja discusses her recent projects, performance art, as well as the contemporary art scene in Korea.
OS: You are one the very few non-US artists that has been selected for the Whitney Biennial opening in New York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What type of work will you be showing?
KS: We were talking about a project in Central Park, but it is not confirmed yet. The first proposal I made was actually rejected because that specific space in Central Park was already being used (a space similar to a stage close to the fountain). I was going to install theatre curtains in relationship to the piece. I was planning on entitling it Invisible Woman, where I would disappear for the whole month. That was my plan, but it is not going to be realized. However, we are still trying to find another location and I might install table-cloths in one of the cafeterias of the zoo. The museum is very excited about the project. I was also given a space within the museum to do an installation. We nevertheless have to confirm whether I can use both spaces.
OS: How did you select the various sites for your performances of A Needle Woman, your latest work?
KS: I tended to select cities that had a very large population, where I would meet many people on the street. I did not really plan to go to mega cities, located in different continents, but this is what actually happened. After my first performance in Tokyo, people told me I should go to Shanghai where I would meet a lot of people. In order to complete my project, I ended up going there. Following that, I, of course, also thought of India as a place for a performance. I chose Delhi, then Mexico City, another city with a large population, then Cairo and Lagos. All these cities in different continents are very unique. In a way, A Needle Woman addresses globalism, but also localism. At the same time, it is interesting to witness how people from various cultures react differently towards my work. For me, this project created fascinating interactions.
OS: More specifically, how was the reaction to the performance in these various places?
KS: Of course, the reaction was very different from one place to another. In Tokyo, when I was standing in the street, nobody dared to look at me. It was as if I was an invisible person. In the beginning, my body was very tense, but at the end, since nobody was looking at me anyway, my body became lighter and lighter, and I was in a state of meditation. As people were just ignoring me and passing by, my body became like a ghost. In Shanghai, the people showed more interest. They looked at me with curiosity, but without really approaching me. They just went on their way. In Delhi, it was more intense because people on the street were so curious. They stopped in front of me trying to understand what I did, and who I was. Needless to say, I caused a lot of traffic problems! Many people inquired with my cameraperson whether I was a sculpture or a Buddha. I think that in a way, they were just so innocent and didn't have many experiences of that kind with foreigners. It was a very intense encounter. Mexico City was more like a mixture between Shanghai and Tokyo. The people didn't overtly show their interest, but they still found me 'strange'. They would look back, and sometimes laugh and talk about me, but without ever touching my body.
Cairo was a very different experience because people were very curious, and tried to provoke me. For example, a man just ran into my performance and sprayed some perfume at me in order to wake me up, and see how I would react. Also, a woman started walking around me. She suddenly approached me and grabbed my hair. The audience just played with me like a doll, and of course, I couldn't move. It was interesting the way they reacted. They were very eager to communicate with me, coming into the camera frame, talking to the camera people. There was always some interaction going on. The next stop was in Lagos. It was the most static performance as far as the relationship with the audience goes. People on the marketplace stood in front of me as if they were taking a group photo that included me. They were trying to provoke me by waving their hands in front of me to see if I would react or not. They wanted to find out whether I was a ghost. Children were always standing there, laughing. Sometimes they were curious, sometimes they became very serious about what I was doing. At the end of the performance, they all took a photograph. With them, it was similar to a humanistic relationship. London was also very similar to New York. People were just following their way, coming and going, walking fast, talking on their cell phones. Also, a lot of people were having their lunch on the street while was performing, and they tried to find some information about my presence. Sometimes, they were even trying to imitate what I was doing.
OS: Do you welcome the interaction with the audience?
KS: Most performers are doing and showing something which involves moving their body, with people watching in a static position. Instead, I wanted to show different reactions from people towards my performance by standing still, and not moving my body.
OS: Throughout your latest projects, how did you become 'a needle woman'?
KS: Initially, I was sewing together used clothing from my grandmother, mother and family. Then, I started collecting anonymous clothing, used clothing. They kept people's smells and the shape of their body. The sewing process enabled me to become a needle itself. In the beginning, I was sewing with my hands with the needle, but then, I started my 'wrapping series.' This also deals with sewing because I see sewing as a wrapping process of the fabric with the thread. Then, I developed the wrapping series of the bundles. I feel that the bundle is another type of sewing. It is almost three-dimensional sewing that wraps together. In 1994, I started connecting my body as a symbol of a needle with a piece called Sewing into Walking where I was performing in nature. On the ground, I put bed covers, and I would then walk around to collect these fabrics one by one. So this walking process, the collecting and gathering of all these things is about the meaning of the needle which my body is serving. From that point, I started to focus more on the invisible character of the needle like in Sewing into Looking: I see people's way of looking, communicating, eating, loving. In a way, everything that implies a connecting process is sewing. When I did Laundry woman, Looking into Sewing, Laundry Field, it was related to my sewing, looking, and walking process all together as one function of the needle. My body became the needle itself. Of course, it is symbolic but I find I don't really need to do needle-work by hand anymore. I am now more interested in the invisible daily activities of people. Putting myself in the middle of people is like a weaving process. Over the years, my work has become more abstract, different from the work I was previously showing. I am discovering a new horizon.
OS: Most of the time you have used cloth both in a positive and in a negative way. Are you planning on further exploring the negative side of cloth?
KS: I did that kind of performance / video / photo work in 1998. I covered myself with cloth, I was completely hidden. I am actually thinking of doing more performances in a hidden situation. Overall, the cloth and clothing that we wear living together for our whole life deals with my basic question on life, and also with my question on surface which is canvas, since I started out as a painter. For example, the Korean bed cover is a symbol of our body and stands as the frame of our life. It is the site where we are born, where we love, dream, sleep, suffer and die. So it is a symbolic field of human life. Wrapping and unwrapping inside is more about questioning our own way and our own destiny. Putting clothes in it was also very much related to my earlier sewn pieces, but also it is completely related to my recent needle woman performances.
OS: So your early training was as a painter?
KS: I studied painting so my questions came through the painting issues in contemporary painting. Of course, I was examining oil painting, objects, doing all these different experimental paintings and exploring various processes. Still, I was always wondering how I could really get into the object I was dealing with, and become one with this object? That was my main question. However, I could never feel the oneness when I was dealing with canvas, paper, or any other medium. I was always trying to find the level where I can completely overlap myself. I had a great desire to melt with this object. The sewing process is all about desire, which can also be love in a way. I discovered the tactility in the sewing process in 1998 when I was making bed covers: putting the needlepoint to the fabric, I almost felt an electric shock, which intrigued me. I felt that I had found what I was looking for, this was the way I could explore the question of surface, the question of life itself. Sewing was a very important starting point which then led me to use my body as a needle.
OS: During your studies, you traveled extensively. Which trip was the most influential?
KS: I received a grant from the French government to study in Paris at the Ecole des Beaux Arts. It was also an important opportunity for me to discover Europe, and I traveled to Italy, Germany and Denmark. These trips just confirmed what I had learnt from books, but they were not that influential to my work. The one most important trip to me was the one to Japan. I went there in 1979. Until then, in Korea, one was not allowed to travel abroad, and consequently we didn't have much information about our neighbours. Before going to Japan, I thought all Asian countries were the same culture. When I went to Japan, I found it was very different from my country, Korea. In Japan, the structure, the culture and architecture are all very humble and 'simple'. Although I was fascinated by what I saw in Japan, I also felt that there were some limitations in terms of aesthetic quality. Their art is very sophisticated, and I find it very interesting. However, I also found my own reality from that trip, and I started to appreciate our culture in Korea with its colourful, and almost 'shamanistic' elements. I became very interested in further discovering the Korean aspects dealing with structure and aesthetic. That is one reason why I was very keen to use typical Korean fabrics as material in my work.
OS: The Bottari Truck project is one of your most famous pieces. How did it come about? Which cities did you cover?
KS: It was started in 1997 in Korea. I made a trip in Korea to visit old cities and villages I used to live in, and in which I had memories. It took 11 days to make the whole trip. Out of this trip, I made one video called Cities on the Move, 2727 km which was showing my back passing through the mountains. It explores the question of time and space, and their coexistence. Initially, while I was sewing, my mind would always travel somewhere else. I would always dream of traveling. The Bottari Truck performance was my actual traveling, with my mind going back towards the past, looking back on my life in Korea.
OS: Recently more and more curators and dealers travel to Korea to find "new talent".
KS: Over the past decades, there were two important changing points: the Olympics in 1988 and the first Kwangju Biennale in the mid 1990's. Following the Olympics, more people from abroad started coming to Korea, and after the Biennale, more and more people could come to visit artists studios and exhibitions. Today, there are numerous contemporary art exhibitions taking place, and the artists get to show their work abroad. There has been a major transition from the time when it used to be very closed to today where it is completely open.
— From Asian Art Newspaper, London, 2002.
Robert C. Morgan (Writer, Critic, Curator, Poet, and Artist)
2002
Having followed the work of Kim SooJa for nearly a decade, I have become increasingly aware of her focus and commitment in developing a unique vision of the world through art. Her vision is, of course, a subjective one. It is subjective in relation to the conjugation of mind and body. As with any refined manner of subjectivity, SooJa depends on a type of alertness based on the sensing of her immediate environment. While performing in relation to the video camera, whether in an urban metropolis or in the wilderness of nature, she maintains a relaxed aura. Her demeanor reveals a purposeful intensity combined with the sensitivity of observation. To develop one's sense of the world through art — indeed, to develop a perception of oneself — is initially contingent on observation, and later, on a phenomenological reduction of what one sees through the process of reflection; in essence, it is the search for an intentionality.
In working with brightly colored textiles in various contexts, SooJa has discovered a ground for her recent observations. She has discovered a way of making sense, of finding an order, regardless of the chaos that intervenes on the surface. In recent years she has extended the meaning of her textile installations ('deductive objects') and bottaris (wrapped bundles of cloth) through a series of remarkable video performances, collectively known as A Needle Woman. Through her process of engagement in the world — in other people's worlds, in specific places and cultures, such as Tokyo, Shanghai, Delhi, New York, Mexico City and Cairo — Kim SooJa has gone deeply within herself in order to find a new transcultural reality.
As an artist, she is not concerned with repeating hypothetical universals borrowed from the Modernist past. This is clearly antithetical to her position, to her ethos. As with her ongoing work, A Needle Woman, SooJa searches for a structural invisibility as the means by which to communicate her intention. To be deeply personal (which is also to be spiritual) opens up the possibility of significant communication — a human transmission — on a transcultural level. By going deeply within oneself, below the surface of narcissism (as defined in Western terms), one discovers the invisible self paradoxically asserting itself within a transcultural, transglobal world.
As is sometimes the case, and I am thinking specifically of Yves Klein, the most radical departures at any given moment in art are often confused with traditional ideas (l'ancien et l'ultramoderne ). What changes, of course, is the context in which the ideas are felt. One might consider that certain ideas in art retain an accelerating force as they evolve within a perpetually shifting globalized environment. Kim SooJa's bottaris have this potential. They refer to a certain kind of transport, a personal history, a private vision of one's own space, a nomadic space, going from one place to another. In the process of going from one place to another, there is a momentum that builds, a certain engagement with the transition of the present. Within this transition of present time — what the philosopher Husserl calls 'internal time-consciousness' — there is the possibility to reflect on the space of the moment. In Zen Buddhism, this is the place of samadhi or the contemplation of a single thought, a sense of oneness, that is often used in meditation. Samadhi offers the possibility of feeling a sense of wholeness, of bringing one's thought into focus, into a single thought, of entering into the space of that thought with full consciousness. This was used by Yves Klein in a manner quite differently from Kim SooJa. Even so, one cannot ignore the affinity — though at a different time and place, a different culture, to be sure.
If anything, A Needle Woman — already emphasizing a kind of anonymity by using the article 'A' as opposed to 'The'— is about the space of samadhi on one level, but only on one level. Contrary to the position of Arthur Danto, not all art exists at the service of philosophy. While the spirit of samadhi is close to A Needle Woman, it cannot operate as its raison d'etre. It can only function as a parallel system, as a personal motivation that the artist feels. In essence, Zen Buddhism may offer an affinity with SooJa's work — particular, it would seem, in A Needle Woman — but it cannot become her art. It is precisely for this reason that Kim SooJa rejects the lamination of theoretical rhetoric against her art. This is particularly true given the varieties of feminist theory, exported from the West, that often usurps the possibility for her art to speak on its own terms, and thereby suggest other parallel systems of thought. Kim SooJa is not interested in making her art an air-tight case and is certainly not a gender-case; it is about the significance of the human being in a chaotic world, how to survive the virtual excess and abandonment of the self, through a rejuvenation of mind/body awareness. Rather than following the theoretical pre-occupations of the West, she follows her own course of social and political engagement emanating from her own history, memory, and intelligence of feeling.
While Western rhetoric may have taken the foreground of attention in much recent art — more intent on "investigations" and visual anthropology than upon the phenomenology of experience — SooJa's position is more related to the nomadic artist, the human being who moves at will (not as a refugee), but within the another context of globalized reality. In doing so, she confronts excesses of all kinds, prematurely archaic or obsolescent structures that have devolved through overabundant information, tabloid-receptive populations who feel devalued in their everyday work and without a sense of history. This puts her art in opposition to the prevailing cynicism of the day, the ultimate detachment that is de rigeur /span>in the fashion world, the failing present where time exists without duration, without memory, and without any sense of a cause-and-effect impact on the proverbial future.
The poet and critic T.S. Eliot has spoken of the "perfect artist" as one who is so committed to his (her) art, with such ineluctable consistency, that the personality becomes less the issue than what is being transmitted through the art. I find Eliot's paradigm interesting in relation to Kim SooJa. One could say that the emphasis in her work has always been one of non-emphasis; instead of a presence we get an absence. The absence is always more profound, more subtle, and somehow more durable. The terms of absence are literally true, specifically in her rediscovery of bottari in 1992 as a kind of ready-made gesture, and most recently in her video projections.
The feeling of absence is also true in her earlier work. Going back to an earlier work, such as Portrait of Yourself (1985), SooJa ingeniously reverses the gaze of the viewer through the presentation of sewn pieces of cloth into a colorful garment. The work suggests that she is there, somehow within the space of the garment. By identifying the trace of her body within a form of representation, the viewer becomes complicit with the intimacy of the work. One may sense the transmission of memory as the cloth has been sewn, painted, and constructed. Absence exists as a condition of memory — a 'trace' of what is being represented. The process leads inevitably to the maker, to the one perceiving what is being made, in essence, to the craft of its making. This is an intimate, more than a social act(ion); yet it is consistent with what SooJa has recounted on afternnon in 1983 while she was sewing a bedcover with her mother: "I made a surprising discovery, whereby my thoughts, my feelings, and my activities of the moment seemed to come into harmony. And I discovered new possibilities for conveying buried memories and pain along with the quiet passions of life."
In the West, art historians are fond of saying that no artist or movement in art comes from the void, that there are always cause-and-effect linkages, relationships, motivations, and consequences. This is, to some extent, true; but its truth is isolated within the discipline of art history, not necessarily within the process of how an artist thinks. What is happening in today's "art world" — the transcultural satellite of globalization — is relevant only to the following extent. Most of these objects and events are academicized into oblivion by the time they hit the market. They are merely symptomatic of the bifurcation between advanced technologies and the socioeconomic well-being of people's lives, particularly those living outside of the Western world.
Here is the crux of the issue: Many artists live in an environment of high transition filled with enormous frustrations. They spend hours in front of the computer. They are dependent on mobile phones and internet data. Traffic on city streets and airport terminals is greater than ever before. They cannot keep us with the piles of work that confront them in the studio. When do they have time to think about the direction of our work? Or, more relevant, when do they have time to think of their lives as forming the substance of their work? These questions, by the way, are not only germane to artists. Many of us are in a similar boat. And this boat seems more often than not to be floating in an empty void — a Western schism that is far removed from the nature of the self.
This is to suggest that Kim SooJa's art is directed towards another kind of void — neither the void of art history nor the void of the today's split in human consciousness, but the void of the self, the concept of "no mind" as described by the Japanese Zen teacher (Sensei) Daisetz Suzuki. When we look at the interwoven elements — material, visual, conceptual — as presented between SooJa's tactile and virtual images, we get a sense of her vision. Somewhere in the interstices between the bottari and the video projections, there is a profound coherence to everything we know. We are exhilarated as human beings to know that we are allowed to "unknow" the burden that constitutes much of our superficial identity. The temptation is always there — to avoid the void. In confronting the crowds of Shanghai, Delhi, or Istanbul, we may become aware that the feelings of the void so clearly articulated in the performances of Kim SooJa, are endangered in a world of chaotic excess. We can only look to the void that she has created, the cancellation of the chaos around her, and ultimately receive the infinite joy of being who we are.
— From Kunsthalle Bern exhibition catalogue, 2001:
Robert C. Morgan is a writer, critic, curator, poet, and artist. He holds an MFA in Sculpture and a Ph.D. in contemporary art history. He is the author of some 1500 essays and reviews. His books include Art into Ideas (Cambridge, 1996), Between Modernism and Conceptual Art (McFarland, 1997), The End of the Art World (Allworth, 1998), Gary Hill (Johns Hopkins, 2000), and Bruce Nauman (John Hopkins 2000). Among his many exhibitions, he curated Komar and Melamid: A Retrospective (Ulrich Museum of Art, 1979), Women on the Verge (Elga Wimmer, 1995), and Clear Intentions (The Rotunda, 2003). His performance work was shown at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1976) and in numerous other galleries and museums until he stopped producing art in 1990. He travels and lectures frequently and is completing a book on Eastern thought and contemporary art.
2002
Reactions to Kim Sooja's silent video projections tend to be just as soundless - indeed speechless - as the works themselves. We have little trouble recognizing what is shown; there is no "plot" whatsoever, nor does any new information crop up at any point during a sequence. In short, there is hardly food for discussion. This makes it all the more tempting to seek some sort of exegesis with respect to the work of this Korean artist, to link it historically with certain artistic or philosophic traditions, in order to define it in words. To that end, certain catchwords represent particularly appealing departure points: Zen Buddhism, meditation, yoga, the suspension of the body, the emptying of the mind, ecstasy through asceticism, becoming one with the cosmic forces, and so forth. Kim's art may well touch upon any or all of these. Public response to her work, however, has repeatedly proven that viewers who balk at Eastern philosophy are nonetheless capable of empathizing with what she presents.
This leads us to consider linking Kim's work with Western Existentialist or phenomenological trends, prone as they are to claiming universalism. For instance, then, the mere fact of the artist's Da-Sein (that is, her being + there) in her videos might to some extent relate to Heidegger's notion of Ek-sistenz as analyzed in Being and Time . His "being-in-the-world" means to exist, from the Latin ex-sistere, the equivalent of standing outside one's self in a state of being that has always preexisted. In other words, it is precisely the most innocuously quotidien aspect of life that allows us to be and become what we already are, enabling the pure "what is and is to be" to emerge while "wherefrom and whereto" remain shrouded in mystery. To Heidegger, the body is inconsequential, simply there, a mere background for our acts, never standing in the foreground; the body is an instrument of transcendence. Might we not say as much of the artist's body, as it appears in her videos? By contrast, for Maurice Merleau-Ponty, author of a most important 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our perception of things always depends on a standpoint, namely that of our body. To be body means to be linked to a certain world ("Etre corps, c'est être noué à un certain monde..."). And that world is what makes me aware of my body "at the center of the world," as "the unperceived end point towards which all objects turn their face" ("le terme inaperçu vers lequel tous les objets tournent leur face"), "the hub of the world" ("le pivot du monde"). By way of illustration, see the four-part video installation A Needle Woman !
Several art-historical contexts might lend themselves to "explaining" Kim Sooja's work. Traditional Chinese landscape painting, for instance, uses the dialectical relationship between solid and liquid: the landscapes reflect the reciprocal influence of rock and water, mountain and clouds, as captured by the interplay of brush and India ink. Although painting is not her medium, Kim does seem to follow these roughly sketched principles, allowing the stiff bodies she presents to interact with flows found in nature or streaming crowds.
Western art history, too, offers several frameworks within which it would be feasible to position Kim's work. "Forerunners" of sorts easily come to mind in the realms of performance and body art: one thinks of the Marina Abramovic/Ulay pair's experiments with the basic positions of the human body - standing, lying, sitting - or the statue-like and aura-pervaded standing role into which James Lee Byars enjoyed casting himself. However, art historians also tend to link Kim's stance in her videos with the back-view figures that so frequently appear in Caspar David Friedrich's paintings of around 1818. The title figures of two of these - his Woman before the Setting Sun (Museum Folkwang, Essen) and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Kunsthalle Hamburg) - each stand full-length, parallel to the painting and in the foreground, exactly in the middle of the composition. Both turn their back to the viewer: solitary individuals, they stand confronted by the endless breadth and immeasurable magnitude of Nature. Just as in Kim's work, through their anonymity, these figures seen from behind serve as substitutes - within the painting - for the viewer. They are at once subject and object of our gaze.
It would certainly be interesting to carry some of these ideas a few steps further, or to explore still others, such as the concept of the sublime, or Baudelaire's notion of the " bain de foule" (to revel in crowds). For the purposes of this essay, however, we shall focus on the video images themselves, attempting to discover what constitutes their definition-defying fascination. The common denominator for most of Kim's works is the standing or lying female figure, motionless and seen from the back. In the first place, the figure is inaccessible because the woman turns her face away, that is, away from the viewer. It is the crowd streaming towards the "Needle Woman," in the video sequence by that name, who can see her from the front; they see something we are denied. Were we to take the place of the female figure, we would discover nothing more than what we already see as viewers. Hence, to identify with the back-view figure is relatively beside the point. It would be far more interesting to adopt the standpoint of one of the passersby. In the last analysis, it seems that the figure "invisible" to us holds the key to the whole scene. Why are the passersby looking at her or ignoring her? Is she crying or laughing, speaking or holding her silence? Are her eyes open or shut? Is she pretty or ugly? The gazes of the passersby offer no clue in the matter. This woman is no individual (she can be multiplied) but an abstraction. Clad in neutral gray, the artist's figure seems incorporeal, silhouette-like, a shadow of ourselves, a Doppelgänger. And yet she stands her ground with respect to the crowd, tacitly but nonetheless forcefully asserting her presence. In fact, the artist strikes a delicate balance between presence and absence; she is at once herself and the "other."
A second factor rendering inaccessible the figure viewed from behind is that the viewer is incapable of sharing her standpoint. The "Needle Woman" on the rocks lies above the viewer's eye level and above the horizon; no pathway leads to her. Moreover, deprived of a foreground, she cannot be situated in depth. The landscape lying ahead of her is invisible to us. We wonder if the woman is sleeping or meditating with closed eyes, whether she even deigns to cast a glance at what is hidden from us. Not content with refusing to show herself, she further denies us the possibility of seeing things from her standpoint, thus cutting off our view ahead. This female figure represents unattainable distance. The "Laundry Woman" presents similar spatial problems, inviting us to wonder where it is that she is standing. Very near the river bank? High above the river? The water forms a wall in front of her: instead of mirroring the artist herself, it reflects the sky above and its flock of whirring birds. On the other hand, the viewer is refused her standpoint, prevented from sharing her space. Here, the female figure is invisible to us from the waist down, with only her upper body jutting out into the image. (The reclining figure, too, does not seem to be in the picture but to project itself onto the picture from the side, shoving itself in between the rocks and the sky.) This "upper-body figure" is impossible to pin down in any fixed spatial terms. Nevertheless, the figure seems "grounded" in the literal sense of the word, standing as it does exactly at the center of the image, which it divides symmetrically into two. It is this figure that determines and creates the spatial coordinates. Everything starts out from it, relates to it: it is the center, the alpha and the omega.
The third reason that this back-view figure is inaccessible has to do with the space itself — the space the figure faces, to which it is exposed. This space is unstable, constantly changing, liquid. A longer look makes even the supposedly solid rocks in Kitakyushu, upon which the "Needle Woman" reclines, seem subject to "change": the ridges look like the flow of hair that has been let down. Anthropomorphic elements begin appearing in the rocks, something like the features of a human skull lying about. The woman sitting on the bundles in Cities on the Move may be shaken about a bit by the potholes in the street, but it is nonetheless she who remains the static element in the sequence. The street winds its way through the images before our eyes, and the landscape comes towards us. Yet, despite the space's instability — its dynamic quality to put it more positively — no uneasiness or menace is suggested (by contrast, for instance, with the progressive deformation and narrowing of the lead character's living quarters in Boris Vian's Froth on the Daydream. The female figure not only exists in space that is anisotropic, but also belongs to another time — an extremely slow-motion version of our own world. Kim's video imagery portrays the world's continuous transformation as an inexorable but altogether natural turn of events. However, the strength of the individuals exposed to this unending transformation is equally inexorable: through the simple fact of their presence-laden Da-Sein, they are capable of neutralizing it.
Here we have what most probably explains the fascination of Kim Sooja's video works. Refusing to draw her systematic play of contrasts into any sort of tension-charged dialectical relationship, she instead achieves such a delicate equilibrium that opposite poles are brought to the fore as a natural basis for harmony. Although what she stages is commonplace, her video imagery does not come across as believable. The balance struck between presence and absence exists not only in her images, but in our head as well, inasmuch as the back-view figure can show itself as soon as the video projector is switched off. Kim Sooja: at once subject and object of our gaze, an individual and an abstraction, a specific woman and every(wo)man, instrument and actress, motionless and purposeful. In theories of perception, the fact that the eye sees what moves is a truism. In Kim's work, it is immobility that catches the eye. While setting herself at the center of the imagery, the artist distances herself from it. Her forceful but simple appearance is an incredible manner of self-assertion, proving that it is possible here and now, and with a strict economy of means, to adventure into new spatial and temporal dimensions.
— From Kunsthalle Bern exhibition catalogue, 2001:
Bernard Fibicher's special fields of expertise are the art of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and public art. He was curator of the Cantonal Art Museum in Sion and chief curator at the Zürich Kunsthaus (1995-97) in the prints, drawings and video department where he was responsible for the exhibitions "Erotica", "Wall Drawings" (with Maria Eichhorn, Simon Patterson and Gary Simmons) and shows by Gillian Wearing, Callum Innes, Pierrick Sorin, Inez van Lamsweerde etc. At Kunsthalle Bern, he has specialized in exhibitions of contemporary artists from all over the world (especially Africa and Asia), presented a number of group shows such as "Genius Loci", "White Noise", "South Meets West", "I Never Promised You a Rosegarden", "Basics", "Danger Zone", etc., as well as solo shows by the following artists: Marie-José Burki, Thomas Hirschhorn, "Big Tail Elephant Group", Cecilia Edefalk, Callum Innes, Christoph Rütimann, Ceal Floyer, Martin Kersels, Michel François, Rémy Zaugg, Kim Sooja, Anne Katrine Dolven, Gregor Zivic, Richard Wright, Maria Eichhorn, Pascale Marthine Tayou, Ilona Ruegg, Meschac Gaba, Maria Eichhorn, Salla Tykkä, Mark Lewis, Tomoko Takahashi, Brian Tolle, Marjetica Potrc, Kay Hassan, Serge Spitzer, Ann Veronica Janssens, Martin Creed, Chloe Piene and Ai Weiwei. He will be director of this institution until the end of 2004.
Gerald Matt (Director of the Kunsthalle Wien)
2002
Gerald Matt
When I visited you for the first time in your apartment in downtown Manhattan I felt as if I had just been transported into another world; an enclave of contemplation and concentration in a city whose maxim is the acceleration of the pace of life. Have you brought your world from Korea with you and transplanted it into the city context of New York (almost like a Bottari-Bundle ) or do you rather see this Korean world as an alternative design/parallel universe to an accelerated existential rhythm which has almost exceeded the human being's biological capacities?
Kimsooja
Whether I live in Korea or in New York, I live in my own world which is isolated from outer world, and that's the way I keep distance from the other. In the sense of isolation, New York can be more isolated place than Korea in physical way, but I felt much more isolation in Korea in intellectual, and psychological way, in a society which is overwhelmed by mass consumption which often happens in developing counties. This idea obviously influences to the art world in Korea.
Gerald Matt
Is it a splendid isolation?
Kimsooja
Well, sometimes. It often fulfils different part of my desire and this loneliness and isolation enables me to reach to the absolute world.
Gerald Matt
Travelling plays a central role in your work. The continu ous ly changing new locations in which you place yourself and your art continue to change the context of your work. (In this respect, one might almost characterize your work as context art.) Would you say that traveling is a sort of means of survival for you - an activity which evokes positive feelings or do you think what Paul Virilio called "the small death of departure" has a role to play here?
Kimsooja
Travelling for me is not always voluntary one but was often forced ones. It's been part of my life since I was a little girl. My father used to be in military service since Korean War and our family had to move from one village to another, one city to another almost every two years. We've been lived and moving around near DMZ area for many years... It was a surprise for me to realize that we have been packing and unpacking bundles all the time which is my actual body of work since early '90s and how clear and strong the passing by landscape images from train was in my childhood like it was presented in my recent videos. Location and dislocation, encounter and separation were always there and I find myself who has a borderline mentality and think the fabric I deal with in a way is doing that role. I had to carry on a great deal of 'longing' and 'nostalgia' as well as 'laps of memory' and 'adjustment to the new environment' since little girl. When I wasn't traveling somewhere and stayed in these mountain villages, I was always looking at the black big mountain which was standing in front of me as if an obstacle and longing to go beyond these mountains to discover another world.
Gerald Matt
But do you feel at home when you travel? Or do you miss home?
Kimsooja
I don't think too much about home when I travel as I know I am going back. I think we tend to have different attitude to travel according to the ways we travel. When we are in a train or a bus, our memories left behind stay in our mind longer than when we are in the plane. Airplane separates us digitally to nowhere to the place where there is no life, creating a moment of disconnection.
Everlasting location and dislocation, leaving people behind, and meeting strangers in a strange place, of course, were a strong impact to my growth, and I had to deal with these heavy memories of people and the place as well as dealing with new condition of life.
Gerald Matt
Your artistic journeys imply a double-code: On the one hand, you introduce (of whatever disposition) a Korean identity into a new milieu and, in doing so , exercise an influence on your immediate environment, on the other hand, you subject your own sensibility to new impressions thereby potentially altering your own conscious experience of the world. A theorist once remarked that it is at once the curse and delight of travelling that it makes 'readable' places which formerly seemed boundless. Would you say that, for you this process is generally one of the disillusionment or over fulfillment of dreams?
Kimsooja
My interest on travel lies on my own perception on the world and it's awakening but not about sentimental fulfillment of dreams, and I think disillusionment is the nature of encounter if there were any illusion.
Gerald Matt
For your work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you loaded the back of a lorry with Bottaris and drove through Korea in 1997, and in Venice Biennial in 1999, you made a journey from Korea to Venice which was titled Bottari Truck in exile / or d'Apperttuto dedicated to the Kosovo refugees. Which role does the political dimension play or, more precisely, political intervention, in your aesthetics?
Kimsooja
In the sense that my interest lies tremendously on human condition and its reality, I would say it is inevitable to be connected to political dimension, but basically, I am not so interested in dealing demonstrative political issues in a direct way in contemporary art. My work is more related to the dimension of pure humanity and it's affection, and contemplation towards mankind rather than revealing political problems. I always hated political attitude in human behavior and this idea made me even stay away from political issues as I simply don't like people who deals politics whom I often find dishonest. Of course, I don't want to generalize my personal attitude toward politicians and there are people who sacrifice themselves for this issue with dignity.
Gerald Matt
You dedicated it to Kosovo refugees.
Kimsooja
The Kosovo war was still going on near Venice during the Biennale and I simply couldn't do anything else without mentioning this tragedy and memorizing the victims of the war which never ends in this world, especially which was happening right nearby Venice. Same situation happened to my piece at the 1 st Kwnagju Biennale which was dedicated to Kwangju Messacre in the 80's and for the piece at Nagoya City Art Museum when the Sampoong Department store building was collapsed in Seoul and killed hundreds of people in my neighbourhood.
War was always next to me since I was a little girl, the time when my family lived near DMZ. My friends and I used to wander collecting empty bullets and fragments of mine in the wild field and played with them often.
Gerald Matt
What is your attitude towards the theme of the native and the foreign? Do you feel yourself today to be a New Yorker, a Korean in exile or a nomadic citizen of the world. Do you think that the concept native homeland continues to have relevance when describing contemporary modern conditions?
Kimsooja
All of them. Homeland exists no more in reality but only in our memory in this era.
Gerald Matt
In your work "A Needle Woman" but also in A Laundry Woman you present yourself schematically from behind, statue-like and in various milieus and geographical contexts. The global nomad, which generally implies an activism, is rendered immobile whereas the surrounding alien world continues to move. How do you define this dialectic of motion and immobility?
And what role does the Zen Buddhist concept of the samadhi play here — the ideas of contemplation and unity, which are often used in meditation?
Kimsooja
Nothing is immobile... and mobility is the fundamental state of existing being. Any moment is in vibration in it's own rhythm.
It is a relative fine line which divides mobility and immobility and this hypothetical standard functions only within a certain perspective. I located my body to the limit to the fine barometer which divides immobility and mobility. It is in a way logical that the mobility of my body which enabled to locate in a specific street of the cities in different continents functions as an example of immobility, while my instant decision of being immobility is made in a brief moment with no reasoning. It is made in the midst of conflict of energy of the intense mobility happening between two different elements, the one which is my body, and the other which is outer world.
I always wanted to show the reality of the world more by 'doing nothing' 'without making something' and showing 'as it is' while most performers try to show and create something new by doing or acting something.
I've never practiced meditation in my life but I find every moment for me was a meditation itself. I reached to the similar state of Zen Buddhism through completely my own way of meditation on life and art and its practice without referring any model or a text. I even haven't read any book for over a decade since I decided not to in the late 80's and I recently started to read some books again. I had no time to follow other's perception and didn't want to be influenced. Now I find extreme similarities between my practice and Zen Buddhism.
Gerald Matt
In your video performances you either stand sit or lie — statue-like — with your back to the audience at the centre of the image - a schematic, faintly delineated presence. You become a template-like form drawing the gaze of the observer towards the centre of the image and then confront him with an empty space. Is your intention here to select as a central theme the idea of the "invisible self"; to delineate an area that must first be filled by the vibrations of a feminine elan vital?
A critic for the New York Times experienced your presence in the videos as mythical and melancholic. He characterises you as a "lost soul in a globalised modernity". Do you find this diagnosis appropriate?
Kimsooja
I don't think about my gender while I am performing and my body stays completely in neutral state during this performance and it only functions as a tool which witnesses the world. Maybe it is the reason the critic characterises me as a lost soul in a globalised modernity as I am the only being in the scene who separates my body from the rest of the people on the street and look at the whole world while others are relate their gaze and concern within themselves .Audiences who see the video in the show has another layer of distance as video is already edited frame which shows only upper waist back part of myself and the audiences gaze replaces the camera's eye.
I don't doubt it could be seen as a mythical presence but regarding his perception 'melancholic', I would say 'yes' if only standing still in the middle of the crowd means melancholic. It is a very provocative act and decision.
Gerald Matt
Contexts / environments play a central role in your work as, to a certain extent, you form the dialogue partner in the exchange between art and life.
How do you select these environments: How, for example, do you work within the specific framework that the Kunsthalle Vienna provides?
Kimsooja
Well, I've been always making site-specific installations so I had to consider the character of the space which is unique glass pavilion.
I find the elements of the cityscape of Wien around this building quite interesting and unusual for an art space so I decided to take this as a positive elements to invite the city-scape to the space and reflect and overlap my installation to the city-scape using this glass. I thought laundry installation could work quite well giving an interesting contrast to the city.
Gerald Matt
The installation A Laundry Woman will be hanging out washing on a line in Vienna — a common sight in Mediterranean and tropical countries and yet, in Vienna, much less common. Does this concern the demarcation of cultural differences; perhaps also the idea of making the public space more intimate by means of the public spectacle of personal pieces of clothing?
Kimsooja
Laundries, especially hung with used bedcovers can be very much intimate material not only because they are personal items but also bedcover itself is about our body and intimacy. I am using this universal way of laundry (it is disappearing, though) as my own statement which has been related to everlasting subject on life for me. Each laundry hung on the cloth line is a big question for me.
Gerald Matt
Could you give more idea about this input of your private life, your biography, in terms of your work or relation to your work?
Kimsooja
I never mentioned about my private life in my work or in interviews but in fact, my work is all about my private life, its sexual suppression and liberation, its insight and sympathy, and its contextualisation in contemporary art.
You asked earlier about the reason why I use only Korean bedcovers and if it is to create a cultural and visual contrast in Western society. The meaning of bedcover and it's fantasy and social context is different from Koreans and westerners. Bedcovers I use are mostly abandoned used ones and those are the ones made for the newly marriage couples. As you see, these bedcovers have embroideries and patterns with it's unique opposite colour combination which signifies Yin and Yang, and has symbols of love, happiness, wealth, long life and many sons which most Koreans wish and carry on* through their lives. Wishing many sons is typical wishes in Confucian society.
I am using these fabrics as these are my own reality and social, aesthetical environment which influenced my life so much but western bedcovers do not have such diverse meanings and relationship to me and there's not such a strong suppression and endurance in private life in western society. It is same reason that I wrap the Bottari with Korean bedcover as it embraces and questions so many different issues and has private, social, cultural context to me. Bedcover for me is nothing but a frame of our bodies and lives and it is the most fundamental site of human being where we get born, love and dream, rest, we suffer, and we finally die there.
Gerald Matt
A work situation you often like to choose is the artist performing in front of the desiring video eye; a standard situation in environments in which the individual must continually reflect on his or her suitability within the framework of advanced media conditions. (Something which, through the music video, has become a general social form of communication). Could we interpret this as an investigative project, in which the relationship of the subject, media representation and the existential concentration to the surrounding milieus is subjected to a visual analysis?
Kimsooja
Probably. Locating my body in the crowd in different part of the world is an act of posing question (catechism) to myself and to the others who are in the milieus in an intimate but strange and direct way as well as to the viewers for the videos in the exhibition space in much more neutral way through framing and filtering by media locating audiences body to the backside of my body which was located camera's eye.
Gerald Matt
You have been working with decorated ordinary Korean bedcovers for many years now: sewn-together and printed fabrics. It is these objects, which in Korea have been allocated to a feminine sphere. Was it important for you, in a male-oriented Confucian society to place these objects at the center of your art; thereby ascribing to yourself an aura-like presence, which you do not have in an everyday context? By doing that and putting it out of the female circle or the household, you put it on a totally different level, in a way, it worked like a emancipation strategy.
Kimsooja
It is true. Sewing, wrapping, hanging laundry, cleaning house, spreading table cloths, cooking... these are all domestic female activities which never considered as meaningful important activities as high art. I find these activities to be most amazing fundamental art activities in terms of aesthetic, cultural, social, psychological dimension which most people are not aware much and which art historians are not mentioning much. But please don't misunderstand that I am doing this as a feminist artist as my interest lies on totality in perception and it's realization.
Women's domestic activities are fully composed with activities of painting, sculpture, installation and performances and we can analyse each activity in the contemporary art context.I am trying to create and expend my own concept of women's and everyday's activity in contemporary art context by focusing mundane domestic female activities as well as everyday activities .I found the methodology of 'sewing' while I was searching for a methodology which enables to express my structural vision of the world in the early 80's (structure of surface and the world and that of life), by practicing this methodology with this particular gaze, I was able to extend and come back again to the vision toward the whole world which is broad mundane act of human being. That is how my 'sewing' clothes transformed into 'A Needle Woman' video performance.
Gerald Matt
The Pojagi are commonly made from already used, worn out pieces of material, which are sewn together. So biographies, personal life histories, are written into them. A procedure is thus realised in everyday usage which became dominant in Western art during the nineties, namely, in the form of Remix / Recycling / Sampling. Naturally, although it is not possible to compare the conditions of production and milieus, it is possible to compare the way of processing the material. also, all these materials tell at least some stories about the people who used them- and you put all these stories, in a way, together, by linking them and so on. You recycle material which was already used for certain functions now, for another function, an artistic function to tell a story. Did this similarity play a role in the design of your own types? So when you started and felt this effect?
Kimsooja
First of all, I have to make a clear definition between my wrapping cloth which was originally 'bedcover', which supposed not to be made to wrap things but people often use it when they move as it is the biggest cloth we can find in household, but this is originally made for covering our body to keep worm. 'Pojagi' which is sewn with left over cloths in household mainly called for 'Korean wrapping cloth' is made as means of wrapping and when it is used for covering as well, usually for food. My bedcover functions as Pojagi, in broad meaning of wrapping cloth, as the term 'Pojagi' is used as a symbol of wrapping cloth in Korea but Pojagi doesn't function as a bedcover, so the 'Pojagi' is not the 'Bedcover' which I am using as wrapping cloth.
As I mentioned before, my recycling idea especially for using used clothes was started from 1983 when I first made a sewn work with my grandmother's left over traditional Korean clothes when she passed away. Since then, I always collected used clothes and used for my sewn pieces, but this was not just to recycle the material but recycling rather our body and life itself.
Gerald Matt
In this connection: the Senegalese fashion designer Oumou Sy, famous for her wild combinations of Western and African styles and materials, calls her globally coloured designs "Metissage", a combination of everything, which pays little attention to tradition and origins. Are such ideas also important for you?
Kimsooja
What I saw in my earlier carrier was used traditional Korean clothes from my grandmother, from my mother, and since 90's I also collected used modern clothes from friends and from unknown people. So most important issue for me was the persons who used to wear the clothes remained though these physicality of cloths but not just an aesthetical aspect of the materials.
The first sewn piece I made in 1983 was from my grandmother's remains after she passed away and I was so much attached by the texture of the cloth and her own woven silk which seems to be a skin her body which keeps all memories and love of herself. I expended my materials later on with unknown people's clothes which kept human smell always, so my sewing practice was in a way invisible networking of human being and it's morning and my aesthetic concern went always parallel to it.
When I ask to myself, what in the world, did I sew and wrap over 20 years, I can say now it was the scars, pain, longing, love, passion, tear parts of my psychology and body as well as my loneliness which needed to be attached. My sympathy towards others is nothing but a self-love, I find.
Gerald Matt
In Africa a non-verbal form of communication is unfolded in the pattern, colours and symbols on textiles — a non-idiomatic language competence, so to speak. Are such elements of language / segments of communication "woven" into your pastiches, which include, as they do, completely new combinations of traditional patterns and embroidery?
Kimsooja
Absolutely. As I mentioned earlier, these bedcovers have symbolic patterns and rich embroideries — since they are specially made for the newly marriage couples, there are always meaningful signs and wishes of our lives such as birds (especially peacock or a Chinese Phoenix) and butterflies together with flowers which signify love, turtles for long life, purses for wealth, dears for many kids and happiness of family, and there are also written words such as 'happiness', 'pleasure', 'long life'... in fact, the fabrics are full of these life long wishes we carry on. But the fabrics I find are mostly abandoned ones which means the couple thrown it away or they are not together anymore.
With all these symbols, I always find empty bodies which were left which used to stay there for a while in their own history and memories.
Gerald Matt
In the abstract quality of traditional Korean fabrics, critics have pointed out the similarities to Mondrian or the abstract Expressionists. Would you agree with this and do you play with these superficial similarities or would this be a mistaken interpretation?
Kimsooja
I find that there's great similarities in the colour combinations and formal structure between Korean Pojagi and Mondrian painting. But Korean Pojagi was made 500 years earlier than Mondrian's if we compare the dates. And they are mostly made by anonymous Korean women who divert their minds from sorrow, loneliness, their hardship and tedious life.
Gerald Matt
The work with fabrics / textiles / colours implies a hands-on aesthetics, a direct physical contact with materials, which was common in earlier forms of art (sculpture/painting) but which has since assumed a much less significant position. Does one aspect of your work concern the retrieval of the material as such, in a world which is becoming increasingly less material? As a metaphor is the "Needle" preferred to the computer mouse?
Kimsooja
One could say 'Yes' if one create a concept which computer mouse can replace our body. But computer mouse is already part of our body and I know how the tool can replace our body through my own process of needle work. Needle could have been replaced to my body as it is a tool which is extension of our body, then why not computer mouse?
Gerald Matt
In this connection, the body, or more especially, the disappearance of the body, belongs to one of the central themes of contemporary art. In a time of digital production the physical is often reduced to a trace element of its material presence; think of the online-chats, in which digital shadows communicate with each other. Could your work over the last ten years be understood as an attempt to make conscious and realise the fleeting nature of the bodily and visceral in an age where the body is itself disappearing?
Kimsooja
My disappearance and immaterialization is nothing to do with global digital issues but from my own vision and for my own necessity of being light. I've been dealing with so much weights of bodies which was tremendous heaviness to me. I guess the whole clothes I've been dealing with was at least many dozens of tons, and they are basically from millions of anonymous people. I wish I could have payed some amount of my Karma and to liberate myself.
I really wish to disappear at some point with my own decision, and I've been planning 'A Disappearing Woman' piece since last year, although we have to someday.
Gerald Matt
It sounds like you are a magician.
Kimsooja
Magician? It is interesting because one Korean-American writer called Joan Kee sent me a message saying that there's a hypnotic element in my work which I find very interesting perception.
Gerald Matt
What does the wrapping of objects as something you often work with, signify (Deductive Objects). Should the object be made to disappear or through visible invisibility (the fabric coverings emphasise the contours) be especially aura-like and erotically charged?
Kimsooja
Maybe you are right. The reason why I call these object works as 'Deductive Object' is to make difference between sewn series and object series in terms of its process. If the sewn pieces were inductive methodology of creating a secondary surface which was already planned in form, the object pieces was the opposite way, so to speak, examining the existing structure by wrapping or covering with accumulating action but is ending off to the original form. That's how I titled the object pieces as 'Deductive Object'.
Gerald Matt
As part of your communication with the public, the visitors may open the Bottaris and examine the contents. Is this a conscious attempt to establish the difference to Western reception, where such "interventions" are interpreted as damaging or sacrilegious and, as such, sanctioned?
Kimsooja
I didn't particularly allow people to touch Bottaries or any other fabric installations but people just do it as they are so curious about this colourful Korean tactile materials and about the content what's inside Bottaries even though they were installed in the museums. Since it is happening all the time even if there's a guard, I decided to accept the fact and the changes by public.
In 1995, when I installed two tons and a half used cloth es for the 1 st Kwangju Biennale on outdoor woods w hich was dedicated to Kwangju Messacre, almost o ne ton has has been disappeared — the show went for two months and during this period people opened Bottaries and took used clothings - so at the end, with change of the season from summer into fall, with rain and people's foot steps on the clothes —, it looked almost like a ruin. And I thought that was the point the piece was done.
I find the perception on used items, on the contrary to what you mentioned, is different from Koreans and Westerners especially for the used clothes. You say western people might think audiences' intervention as sanctioned but I find westerners are more familiar with used items. For example, they buy and wear used clothes worn by unknown people without hesitation (I guess that's why there's so many second hand markets in western countries), but Koreans believe that the spirit of the person who used to wear the clothes is remained in it, so they are resistant to wear unknown person's clothes. We have a tradition to burn his or her clothes when the person dies and believe the person's body and soul is sent to the heaven.
Gerald Matt
Also, in your video performances you allow people to take part of it, isn't it? And you have named your current work cycle A Needle Woman and not 'The Needle Woman'. The choice of the indefinite article implies a certain indeterminate quality while, at the same time, a drifting away from a sharply defined individuality to an imaginary collective. Through the focus of your artistic sensibility, would you say your intention is to themetize the specificities of the Korean woman in general?
Kimsooja
Not at all. But maybe I wanted to hide myself... The title 'A Needle Woman' is nothing to do with emphasis on woman but to describe myself who is a person who cannot be named as a man. When I make indefinite identity for my presence as 'A Needle Woman', it means it can be anybody, like an inexplicable neutral icon, and it's not necessary to define my presence and I wanted to keep distance between myself and the performer who is in the video and who will be seen to myself later on but not to imply any Korean women issue. There is no evidence that I am a Korean woman in that video and I don't even wear a Korean dress.
Gerald Matt
Your work is often discussed within the framework of a differentiated Western feminism. Would this be an appropriate theoretical foundation or is it lacking its object, namely, the role of the female artist in contemporary Korean society?
Kimsooja
As I mentioned earlier, I've been denying to be called as a Feminist ever since I started my carrier. I would accept it only in the sense that Feminism is all about Humanism. Of course women's role in contemporary Korean society is so important and we have to be treated equally with no prejudice and movement for women's right should be continued in our society. But my philosophical and artistic aim is to achieve the totality which absorbs and unites the whole questions of the world.
Gerald Matt
When did you initially envision yourself to be an artist? When did you first think you wanted to be an artist? Or to study art?
Kimsooja
When I was 11 years old, my homeroom teacher at elementary school asked us to write two different occupations we want to be in the future.
I wrote 'painter' and 'philosopher'. My passion for art was so strong when I was in high school and I was almost trying to quit the school to be just an artist. At the same time I had a strong conflict between the desire of being an artist and being a religious person, for example, a Catholic sister, or someone who devote her life for the people in need. The time I felt I was already an artist was when I was 13 years old in middle school, when I decided not to participate any art competition which gives prize which I could win easily and which was common process for the students who want to be an artist or to go to collage in Korean society.
Gerald Matt
You first began as a painter. You now work exclusively with installations and moving pictures. Does this have to do with the step from the two-dimensional to the three-dimensional, with the aspect of motion as opposed to immobility? Or was painting simply too far away from the realities of life? Now you add acoustic dimension in your work.
Kimsooja
I was interested in sound piece since 1992 and acoustic element in my video and installation has been tried since 1994 and I used to use popular music and monk chanting. I've been also making single sound pieces which I want to develop more.
Ever changing my vision on space and time enabled to open up new horizon but I only followed the logic of sensibility and my inspiration that led me to make artistic decision. The way I develop my idea from two-dimensional stage into three-dimensional and then to video which allowed to deal with time and space is originated from my concept of sewing, wrapping and unwrapping. I think 'Nature of Sewing and wrapping' already have elements of opening new dimension to time, so to speak, it was already there.
Gerald Matt
Do you "paint" today with an 'extended' brush: A metaphorical needle that sews together the material, mediums, cultures and epochs and, in the form of an extended bricolage, creates continually new combinations of object connections?
Kimsooja
In terms of methodology, yes.
Gerald Matt
If someone ask you a commission to do a new work, and give you one million dollars, what would you do?
Kimsooja
I would donate the money to support children in famine and pain in this world.
Gerald Matt
So you would give the money to those children; you wouldn't use it for your work?
Kimsooja
It's my work.
Gerald Matt
In what way would you say your attitude to the media has changed over the years? TVs used to be integral elements of installations — in some senses, television bottaris. Today, for example, in Laundry Woman, video is only used in its function as conserving or recording material, namely exterritorialised. On the other hand, the earlier silent works now have an acoustic dimension. Are these changes in the use of media possibilities intuitive decisions or conscious aesthetic priorities?
Kimsooja
Although there's moments where I consider aesthetic and logical aspect of work, my artistic decision is always made at intuitive and instant moment. I think the moment of making artistic decision is similar to the state of 'Zen' which transforms the whole world to another dimension.
Of course, I started video works as I consider video as an 'Image Bottari' or a 'Wrapped Image' to show my concept of 'wrapping' and I wasn't so interested in creating images when I first started video in 1994, so my intension to use video was completely different from other video artists.
Gerald Matt
Were you — or are you — interested in western or European philosophy? And are there any philosophers you are especially interested in?
Kimsooja
Until around late 80's, I was interested in Structuralism as I was focused on fundamental structure of the world, so I was interested in Wittgenstein's linguistic approach, Levi Strauss's research on cultural and geographical examples and structure, C.G. Jung's psychological structure, and I was also interested in Heidegger related to existential subjects... and now I find how similar their thoughts were in relationship to Zen Buddhism which I had no concrete idea around the time. So my interests on Western thoughts actually stopped at that period as I decided not to read books and information since late 80's and I haven't read books for over decade and I didn't want to be influenced by outer information. And I had also no time to follow other's thoughts. I recently started reading books again. I was of course aware of De-Structuralism and following recent issues although I haven't read as it is logical to create this idea following Structuralism.
Gerald Matt
What was the last book you read most recently?
Kimsooja
I read a book called Western Philosophy and Zen Buddhism by John Stephanie, a comparison between Zen Buddhism and Western philosophy and I find it very interesting. I'd never read any book which compared literally, word to word, Zen Buddhism with Western philosophy, the differences and the similarities. But I think this issue should be researched and developed much further as there's a huge gap between Western and Oriental thoughts and methodology.
Gerald Matt
So, as you told me, when you were young, you were asked what you wanted to be and you said, "a painter or a philosopher" — If one were to ask you today what you want to be, what would you answer?
Kimsooja
A lover, or a monk.
Gerald Matt
Thank you.
Lawrence Rinder (Curator of Contemporary Art, Whitney Museum)
2002
Kim Sooja's installations, videos, and performances link art with everyday life by transforming common materials and concise gestures into poetic commentaries on the human condition. One key body of work involves the use of traditional Korean bedcoverings as sculptural elements. These textiles, traditionally given to newly married couples, are typically embroidered with symbolic patterns and made of contrasting colors, such as red and blue, which together signify the unification of yin and yang. In Kim's works, the bedcovers are laid flat on the ground, hung in rows like laundry on a line, or filled with old clothing and knotted in clusters of bottari, flexible bundles traditionally used to transport household goods. The becoverings are always used, artifacts of anonymous lives.
Kim's bedcover pieces are deceptively simple in form, yet resonate with multiple layers of experience and meaning. On one level, they are strikingly sensuous compositions, spreading out before the viewer in an array of color, pattern, and texture. These fabrics are also immediately accessible: we all use bedcoverings virtually every night, from birth to death. They are fraught with feelings and emotions from comfort and desire to solitude and exhaustion. Bedcovers, in Kim's words, "are frames of our bodies and lives." When bundled as bottari, the bedcovers become a kind of universal symbol of human movement, hinting at migration, nomadism, and the experience of refugees. Bottari are also metaphors for the human form. "I find the body to be the most complicated bundle," explains Kim.
On their most abstract level, which is the level most important for Kim herself, the bedcovers are veils that divide one state of being from another, inside from outside, the hidden from the seen. "Through the quite present and simultaneously distance engagement of cloth," comments curator Harald Szeeman, "she challenges us to reflection on our most basic conduct: consciousness of the ephemera of our existence, of enjoying the moment, of change, migration, resettlement, adventure, suffering, of having to leave behind the familiar. She masterfully sets her fabrics, rich in memory and narrative, into the situation of the moment, as zones of beauty and affecting associations. With a grace that knows ever so much."
— From the Whitney Biennale 2002 catalogue.
Mr. Rinder was chief curator of the 2002 Whitney Biennial. He curated, with Debra Singer, the Museum's groundbreaking exhibition BitStreams, which explored the impact of digital technology on contemporary art in 2001, and in 2003, The American Effect, which surveyed global perspectives on America from 1990 to 2003. Mr. Rinder was founding director of the CCAC Institute at the California College of Arts and Crafts, San Francisco and Oakland, California, and was Assistant Director for Exhibitions and Programs and curator for twentieth-century art and MATRIX curator at the Berkeley Art Museum. He is an Adjunct Professor of Art History and Archaeology at Columbia University.
2001
Bottari is the traditional wrapping cloth of Korea. Bottari, or bundle, has had many uses. Traditionally made by women of all classes of society, they were used to cover food and store things, wrap clothing, move house, or for sending as gifts and other precious items. One translation of bottari is 'wrapping luggage with a wrapping cloth'. Such cloths may be embroidered, painted, made from oiled paper, patchwork, or just plain cloth. The most popular wrapping cloths used patchwork designs, and were made from small pieces of discarded scraps. Similar to the practice of quilting, these bottaris were made by stitching patches of bright cloth onto the surface of a blanket. A simple sheet could be transformed into a colourful blanket, and later used as a bed cover. Kimsooja is a Korean artist who has deliberately chosen to work with the meanings and traditions of bottari made by ordinary people, so as to create new works of art. As the artist related to me in my interview with her:
'As a medium, bottari is traditionally feminine. In Korean, the expression to 'bundle up a bottari' means that a woman has lost her status in the household and has been forced out. Bottari also has significance as a container, or vessel, for carrying and transporting all sorts of goods. It can be unwrapped just as it can be bundled up, and in this regard I see our body as being, in the subtlest kind of way, a kind of bottari'. [1]
In this essay, I will discuss some of the ways in which Kimsooja has used bottaris in her work, and also touch on some feminist elements that are implicated in her practice. My discussion can be viewed within the context and transformations that have taken place in her work since the 1980s.
Korean women are taught from an early age to sew and develop needlework skills. Consequently, making wrapping cloths can never be separated from women's everyday life, just as the blankets and bedclothes they make are indispensable objects in daily use. As such, bottaris hold a special place for 'conveying buried memories and pain, as well as life's quiet passions'. [2] Blankets and bedclothes offer a place for rest when one is tired. As humans, we are born on a blanket and die in one. Cloth protects and decorates: it is an essential element of life. The blanket is a site for human life and a place of its joy, anger, grief and pleasure. In Korea, traditional folk belief suggests that good luck and happiness can be preserved inside the cloth. The patterns on the blanket are ornaments and symbols that encompass our aspirations, such as fertility, health and longevity. The colours also have symbolic meaning. [3]
As I have already mentioned, Kimsooja is an artist who has visually and consciously combined tradition with contemporary art in an effective way. In my view, many contemporary artists have tried to offer new ways of working with conventional materials and concepts, whilst still retaining their traditional distinctive character, but I think none have been as successful as Kimsooja. In many works, women artists refer to the traditional labour associated with sewing and material. They introduce craft skills such as quilting and knitting into their work, and these elements have often referred to their individual lives and memories. This approach has been associated with tendencies in feminist art, but I do not think I would define Kimsooja simply as a feminist artist, although feminist traits can be found in her work.
Kimsooja graduated from an art college and graduate school in Korea in the 1970s. At that time, 'monochrome' was the dominant form of art, along with other styles and experiments. During her studies, Kim was mainly influenced by formalism and conceptual art and, keeping these various trends of modern art in mind, her conceptual work was initially concerned with questions of 'the surface'. Although she experimented with various styles and expressions, she struggled to expand her vision and find her voice. In 1983, an incident occurred which had a new and lasting influence on her work. While sewing a blanket with her mother, Kim gained a new insight into cloth. She experienced a feeling of complete immersion in the realm of infinity. This experience led her to experiment with cloth and its surface, and resulted in a two dimensional work which she has described as follows:
'In the midst of a common act of sewing blankets with my mother, I had a clandestine and surprising experience in which all of my senses, thoughts and activities all coincided with one another. In this experience, I discovered the possibility that so many memories, pains and affection of life buried unnoticed so far could be connoted in it. I was totally fascinated by the lines of longitude and latitude as the basic structure of cloth; its primordial colour; the feeling of identity between the cloth and me while it was being sewn; and the curious nostalgia evoked by those things'. [4]
While sewing blankets, Kim found a new possibility of overcoming the limits of the two dimensional surface through the process of moving the needle above and beneath the cloth, and began to use this experience in her work. Such works were significant in that they connected women's everyday life to artwork through the use of the material of cloth and the activity of sewing. Many Korean women artists use 'sewing' in their work, while others reference the human body. Kimsooja's early works use sewing as representative of these early ideas about women's work and labour. More recently, she has consciously used the body:
'I regard bottari as the body itself. Like bottari, which can be bundled and unwrapped, the presence of the body lingers and departs. The cloth, in my view, is like our skin'. [5]
For me, her sewing works evoke a sense of femininity, labour and healing. However, there is also a difference between Kimsooja's early work and many other feminist art forms, since she uses fabric as a canvas, which is a surface. In addition, she uses needlework as a tool, which asks endless questions on this border of surface, trying to identify the subject and the object.
In the 1980s, many Korean artists began to escape from the formalist, minimal monochrome art of the 1970s and related their works to social issues. They began to treat reality as a basis for a critical practice that represented social and political ideas. These practices presented a resistance to existing art activities and to the social system. The Minjoong Art movement was established by a number of Korean artists who shared these ideals. [6]
As a consequence many artists turned their backs on the individualistic works of the 1970s and began to deal with real life, to develop a critical vision about their society and its politics. One of the great influences of Minjoong Art was that it made people think about art in terms of communication. Kimsooja's introduction of everyday life into her practice through sewing processes can be seen as a result of this influence. But she never joined the group, since she did not agree with group activism and the fixed ideas, systems and power it holds over the individual. She continued to work on pieces in which canvas and painting were replaced by cloth and sewing. Such works can be described as modernist, in that the work of sewing and cloth was done within the two dimensional surface.
The act of sewing necessarily accompanies the material of cloth. The action is repeated across the surface above and beneath. Kim attempted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the 'surface' through repetitive horizontal and vertical stitching. Paints were applied over the colours and patterns of the cloth with brush strokes, line drawings and stitched marks. These showed the variation of space. The action of sewing enabled the artist to interact with the material of cloth. In sewing, Kim engages with the surface, simultaneously extending the space. I think that the introduction of cloth and sewing into her artwork brings the realm of the feminine into the art world, and overcomes the exclusion of ideas and practices that were prevented by modernism in a Confucian society. Kim seeks to transcend gender difference and to celebrate the universal value of the human being.
Kim also produced collage works that used cloth and needle instead of canvas and paint. Although she added drawing or paint to the cloth in "Dans Ma Chambre" (1988), the cloth work still sticks to the square surface.
Since the early 1990s, Kim has wrapped her objects, using the title "Deductive Object". In such works, Kim wrapped the cloth or hung it around common objects such as farming tools, sticks, ladders and laundry bars.
These works were significant in that Kim attempted to escape materiality and the frame imposed upon it by the painting. She still called these attempts 'deductive' because she wanted to get out of her earlier inductive works, in which materials were assembled and connected by sewing. Deductive works reconfirm the structure of the object through the activity of wrapping it. As Kim has observed:
'With my objects, it's as though I'm bandaging a wound. I wrap the object as if I was treating a wound, and through the wrapping and bandaging, the objects are transformed into something feminine'. [7]
The two dimensional frame of painting was left behind. A freer placement of shapes and objects on the wall was now possible. As the critic Oh Kwang Soo remarked:
'Even though there still remains the concept of her early paintings that are hung on the wall, most of Kimsooja's works bear strong tendency toward three dimensionality. Although still wary of the wall, Kim's work is a world of painting turning its back on reality, out of the illusion and into the direct reality. Therefore, her works got out of the concept of painting or drawing and consisted of stitching, weaving or wrapping direct materials. In these works, Kim stresses the meaning of assemblage of things rather than just sewing them together, while her early works consisted of quilts'. [8]
This commentary suggests that Kimsooja's work deals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loth and the space in addition to revealing the cloth as cloth. Cloth has a number of purposes and meanings for people, whether as blankets or as clothes. Other than a visible meaning, an invisible meaning also exists within the cloth. Ancestors of the Korean people believed in transmigrations and the invisible spirit. For these ancestors, cloth is the best material to convey the spirit. I think that Kim evokes the immaterial through the materiality of cloth. Just as she had once experienced the feeling of unity with her mother through sewing together, Kim 'converses' with an invisible being through the medium of cloth.
In her P.S.1 studio residency in America (1992 and 1993), a series of works stretched the limits of merely experimenting with Korean material. This can be seen in one of the Deductive Object pieces made in 1993. Kim collected a large amount of cloth and transformed it into assemblages. These moved from the form of painting stuck inside the square frame to the three-dimensional form of the object, and then into space.
"Mind and the World" illustrates this gradual development. In this oval shaped work, a pile of cloth was attached and stacked to the wall. Bamboo was connected to the pieces on the floor and on the wall. Different clothes were arranged in an oval shape and placed on the wall. Pieces of bamboo were wrapped with cloth as a supporting element. The use of bamboo reminds me of a needle form. In earlier works, this needle form was only visible as the trace of a thread it left behind, but in Mind and the World, the needle takes on multiple meanings. It connects the work and the earth, the artist's and the viewer's mind. The original function of a needle is to connect patches of cloth, but Kim uses it as a vertical force in horizontal space. All the works she made previously seem to converge, thereby establishing themselves as a new force. In my view, Mind and the World is a work of total harmony as it brings together all elements: assemblage, sewing and winding, shape and colour.
Many "Deductive Object" works were produced and contributed to new installation practice. In the one made for the 5th Istanbul Biennale, entitled Deductive Object - dedicated to my marriage, patches of crushed cloth were pushed into the cracks of the wall in her studio, creating an autobiographical message through the use of traditional Korean clothes or cloth. For the first time, she completed a work by utilizing the whole space of her studio. Both the form of placement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artwork and space was changed. America profoundly affected Kim's practice in several different ways. Firstly, she expanded the concept of space and secondly, bamboo stood in for the structural qualities and metaphoric possibilities of a needle form.
The bottari reappeared, as Kim noted:
'The bottari has always been around us. The bottari was in my studio even before I worked on it. I just did not notice it. Then, when I happened to turn my face accidentally in the P.S.1 studio, the bottari was there. I myself did not notice the patches of cloth wrapped in a bottari that I had intended to use for cloth work. That bottari was a totally new one. It was surely a sculpture and a painting'. [9]
Having abandoned the idea of placing cloth only within a frame, Kim wrapped a variety of objects, placing them on the floor and the wall. Although similar to the artist Christo in terms of the action of wrapping, Kim's wrapping work stresses the connection with everyday experience.
The bottari was defined as crossing the boundary between painting and sculpture. Kim's work was no longer a matter of form and composition but began to unfold in a different dimension, in much the same way Marcel Duchamp could no longer be a futurist painter after inventing the readymade. Bottari, however, is an ambiguous object that cannot be construed simply as a readymade. Unlike the transformation of industrial products, such as bicycle wheels or toilets, into works of art as a result of the artist's choice, signature and exhibition, there is no boundary between the bottari as a work of art and as a common object. [10]
The common function of bottari is twofold. They are used for official functions and ceremonies, and by ordinary people to store, wrap, and carry things when on the move. Kimsooja's bottari works embrace the activity of wrapping as a sign of being on the move, as well as functioning as a 'real' bottari containing patches of cloth. The bottari in this context occupies an ambiguous position between life and art.
The bottari installed in a villa, contemporary gallery, museum, or outside in the world takes on very different meanings (see colour plate 9). The bottari is temporal in character. It is tied with bedclothes, but inside there are used clothes. Clothes contain individual memories, stains and smells, and the artist's experience, and exist as a part of the body. In human life, clothes have dual aspects of protection. They protect us from the cold and danger, and signify the wearer's taste. The activity of wrapping up clothes into a bottari can be interpreted in many ways. To wrap up means protection and confinement at the same time. The confinement signifies severance from the outside world. To wrap up also signifies a women's status in Korean society. As if wrapped up, Korean women are confined in the name of protection. The artist sees these blankets and bedclothes as places on which we are born and die, a foundational field which is the frame of our lives. To women, a blanket is a comfortable resting place during the night, while being related to the bed in a sexual sense as well. Women give birth to children on a blanket. Thus, it is a space where women continue human history. The blanket was also a symbol of oppression by Confucian morals and strict social ideology during the Chosun Dynasty (1392 - 1910). Within a social hierarchy that privileged men, women found pleasure and emotional survival through their needlework. Sewing was one of the few accepted activities that they could do. In a society in which the expression of colour was prohibited, Korean women used colour to decorate their blankets and bedclothes, and communicate their hope. At a time when bright colours were not allowed in ordinary life, the blanket could be as brilliant in colour as the women liked.
In her more recent work, Kimsooja allows bedclothes and blankets to take on a meaning of 'invitation'. By spreading a blanket across a table in a public restaurant, Kim's work quietly sneaks into the ordinary life of people eating and talking, outside the confines of a domestic interior. To place a bedcover on an eating table can be read as an attack on traditional custom. In Confucian society, men and women eating together in public was strictly taboo. They lived in separate quarters and the kitchen was located within the women's area. In Kim's 'used bedcover' work, the blanket acts as a sign of resistance against this convention. In this respect, I think Kimsooja is an example of an artist who questions convention and, by doing so, reveals the expressive power of an ordinary object such as bottari. I believe that Kim's life experience is accurately represented in the bottari. The conservative Confucian tradition, which influenced her youth, finds expression in her work. In the shade of men, Korean women are like shadows without existence. Women are responsible for domestic economy and Kim's work evokes something for me about middle aged women, (rather than women in general), and the renunciation of femininity. In other words, women appear as maternal beings who embrace and cure everything. Now the bottari no longer stays in a gallery environment, but is moved onto the top of a truck, into nature or becomes a shrine. In A Laundry Field, Sewing into Walking, Looking into Sewing, Kim hung bedcovers with laundry clips as if hanging real laundry. This bedcover installation occupied the whole space, and could be viewed from various angles. The work was used as a stage ornament for a dance performance. [11]
Bedcovers and bottari are used as signs of a metaphorical and literal journey in Kimsooja's video works. In 1997, she traveled from Seoul through several other Korean cities, before returning again to Seoul. The journey took eleven days, and many bottari were loaded on the truck.
In Cities on the Move - 2727 KM Bottari Truck, the meanings of 'migration' and 'origin' are extended, as Kim traveled and 'performed' around the whole country. The video made en route was shown in Cities on the Move, an exhibition organised by Hans Ulrich Obrist and Hou Hanru. As I note from the title of the show, this whole curatorial project dealt with the topic of nomadism. Cities on the Move - 2727 KM Bottari Truck encapsulates two themes: the artist's memory of her early days when she had to move constantly (her father was a military man), and her current experience of traveling all over the world for artistic projects. This is a journey of body and soul together, and a journey into the memory and the past.
Usually a journey is a movement between places, but Kimsooja's journey shows the travel of time through the transition of places. The vertical concept of time is added to Kim's journey so that the journey in general becomes a linear movement between places. A similar work was made for the Venice Bienniale in 1999. Kim's Bottari Truck is both a symbol for her journey to other cities and other worlds, and a comment on those displaced from their homelands. She identifies the bottari with herself. She faces herself in the front mirror of the truck, and confronts her past experiences. In all her video works, the identification with 'the journey into the other world' is constantly visualised.
In a video piece that records a performance in Delhi, Kim ended her identification with the bottari and made herself a needle sewing the earth, that is, A Needle Woman. This work shows how Kim identifies herself with the needle (see colour plate 10). She conceptualises the activity of sewing. While considering this activity as 'breathing or communication', she identifies walking and staring with sewing. Mind and the World was the first work in which this concept of sewing was stressed. In Sewing into Walking, Kim herself is a needle, connecting the bedcovers on the ground with the earth. In her video works, Kim deploys used clothes, bottari and video monitors to connect the exhibition space and the viewers with the activity of sewing. The artist has said, 'previously thread and needle sewed cloth whereas this time my body is a medium that sews wide cloth that is nature'.
As we can see in this remark, Kim's needlework has evolved from the actual activity of sewing into conceptual sewing, revealing the relationship of intertwining without thread and needle. The artist sews the common life, environment and nature with her own body. This action replaces the needle. A needle can also be a tool that hurts, but it can be also be a tool that cures, as in Oriental medicine.
Kim is a needle that connects the body and the soul. Although the needle connects, it does not leave its trace. Kim herself becomes a needle to remove her own being. The responses of passersby are diverse: the pedestrians in Tokyo look totally disinterested; the occasionally looking back Chinese in Shanghai appear to be curious; and the Indians stop and stare at the artist. The artist is a needle that continues to sew her with passersby. In the repeated sewing, the artist disappears and nothing remains.
In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India, made in India in 2000, Kim's empty state of mind appears more emphasized. In one scene, Kim meets the souls, as the remains of a burnt dead body passes by in front of her in the Yamuna River. Kim's body is slowly assimilated into the river. She is free from all thoughts and ideas and goes into a different state of mind. As in all her video works, her activity is minimal. Many stories are condensed as her works change from the bottari to the needle and then to nature. Kim once sewed the world with her body as medium, but now she tells us another story with her eye and mind. As Rosalind Krauss has observed, the real medium of video art is not the mechanical apparatus but the psychical circumstance. In Kim's video work, one can feel the state of being nothing and experience the correspondence with nature without any skill. [12]
In conclusion I believe that Kim positions her itinerary between life and death. She sees each sewing stitch as an endless itinerary. She is the needle that travels across the cloth. She once discovered this while sewing blankets with her mother, and then overcame the limitation of the two dimensional surface by sewing onto a blanket. In a progressive variation of bottari works, Kim developed the concept of journey or migration into Cities on the Move - 2727 KM Bottari Truck, then she evolved into A Needle Woman, and finally in her video works the needle is identified with the body. The thread has continuity and circularity. This aspect of continuity and circularity of life is apparent in her work. This also signifies transmigration in Buddhism.
Kimsooja's journey is not over yet.
[Notes]
[1] Kim SunJung, Interview with Four Korean Women Artists, Art AsiaPacific Vol. 3, 1996, p. 59.
[2] Ibid. p. 60.
[3] For further analysis on this subject, see Huh Donghwa's essay, History and art in traditional wrapping cloths, in Claire Roberts and Huh Donghwa (eds), Rapt in Colour: Korean textiles and costumes of the Chosen Dynasty (Sydney: Powerhouse Museum and The National Museum of Korean Embroidery, 1998) p. 21. I think it useful to quote one extract here as it impacts on how Kimsooja uses the meanings of bottari in her work; 'the warm colours represent the sun and blood, while blues and greens suggest the trees, grass, birth, growth and prosperity. These five colours correspond to the four points of the compass and the centre; the five elements of the weather (cold, warmth, wind, dryness and humidity); the five elements of the universe (wood, fire, metal, water and earth); the four seasonal differences (spring, summer, autumn and winter); and the five blessings (longevity, wealth, success, health and luck)'.
[4] Taken from the artist's statement, Exhibition Catalogue, Gallery Hyundai, Seoul, 1988.
[5] Ibid. p. 58.
[6] Minjoong Art is a radical form of art fostered by the political upheaval during the 1980s. After the Kwangju Democratization Movement, many forms of social movement emerged and spread across the whole country. Naturally they had a strong impact on the new direction of art. Artists started to stand for anti-modernism and incorporated a new reflection of reality into their art. They also advocated direct comments and criticism of social events, and embraced group activities such as issuing manifestos and other publications.
[7] Ibid. p. 60.
[8] Oh Kwang Soo, A Return to the Archetype: Recent Works of Soo Ja Kim, essay for exhibition catalogue, Gallery Hyundai, Seoul, 1991.
[9] Taken from the artist's statement, Exhibition Catalogue, Gallery Hyundai, 1988.
[10] Kim Ai-Ryung, Sooja Kim, the Wrapping View of Art and Life, Wolgan Misool, October 1999, pp. 162-171.
[11] Exhibition Catalogue, Video Installation by Kimsooja: A Needle Woman, 2000, ICC, Japan.
[12] Ibid.
2001
This first solo New York exhibition by Korean artist Kim Sooja featured recent videos, but her work is really a mixture of video, performance, sculpture (involving Kim's own body) and private acts of meditation in outdoor public spaces. The centerpiece was A Needle Woman (1999 — 2001), for which Kim traveled to eight major population centers — Cairo, Delhi, Lagos, London, Mexico City, New York, Shanghai and Tokyo — only to stand motionless, with her back to the camera, on downtown thoroughfares packed with pedestrians and sundry vehicles. At P.S.1, the silent videos of these actions, taken from a stationary camera several yards behind Kim, were projected on the walls of one large hall. Wearing a simple gray dress, Kim stands amid human motion and commotion, as people surge toward her and around her. Sometimes she seems about to be overwhelmed, perhaps even struck or otherwise menaced, and you fear for her safety. At other times, she is a strong enigmatic presence who simply waits in one place while everyone else goes every which way.
Always visually lush, these videos tap into the uneasy relationship between the individual and mass society, the dislocation of being a foreigner engulfed by another culture, and questions of how to maintain one's own equilibrium in a swirling, destabilizing world. Even though you never see Kim's facial expression, it is clear that her actions required courage and intense inner vitality. Throughout everything, she exudes a patient acceptance and a spiritual calm which is deeply affecting. Also part of the performance is the life of the streets — i.e., hundreds of anonymous people striding, pedaling or driving toward Kim, then disappearing from view: on-the-go New Yorkers too preoccupied to notice, multiethnic Londoners yammering into cell phones, Shanghai residents stealing surreptitious glances.
What's particularly impressive is how such minimal actions on Kim's part result in provocative portraits of the different cities. In Tokyo, Kim is so completely ignored that she could be a ghost, and you can't help but think how the Korean minority in Japan has long suffered from cultural invisibility and discrimination. Just the opposite is Lagos, where people cluster around her with a lively curiosity.
Also included in the show were videos of related actions, sometimes projected and sometimes on monitors. Lying on her side in Cairo while surrounded by staring men and young boys, Kim becomes a female "other" par excellence, her unobtrusive yet bewildering behavior confounding the onlookers. As she stands on the bank of the Yamuna River in Delhi, the river lows from left to right, its surface festooned with slow-moving flotsam. This is garbage moving past, but you think of memories passing, of wishes and losses, the dazzling scraps of a life. Kim Sooja's unassuming actions really draw you in with their complex and evocative power.
— From Art in America, December 2001.
Ken Johnson (Art Critic for The New York Times and Art in America)
2001
An art form of chameleonesque elasticity, video can adapt to a bewildering variety of formats, from tiny television monitors to whole-wall, wraparound projections. It can mimic narrative approaches from real world documentation to surrealistic montage to Hollywood-style fantasy, and it can readily absorb the colors and patterns of digital abstraction.
Still, as the works of Kim Sooja demonstrate in "A Needle Woman", on view at P.S. 1, one of video's most effective uses in the gallery is the creation of rectangular pictures on the wall — like old-fashioned photographs or paintings, but with moving parts.
Ms. Kim, who was born in South Korea in 1957 and moved to New York in 1998, uses video with bare bones directness yet uncommon elegance to document her quietly provocative performances. In each of her works, the artist stands, sits or lies very still with her back to the camera while the world around her rushes by. The best have a surprising emotional impact.
In the main installation, eight projections show Ms. Kim standing on busy sidewalks in different cities: New York, Cairo, Tokyo, London, Mexico City, New Delhi, Shanghai and Lagos. Pedestrians hurry by while this enigmatic, unprepossessing figure with a long black ponytail stands like a statue, a motionless stone in a river of humanity.
Most people ignore her; some glance at her quizzically; some stop and stare or take pictures. In Lagos, mischievous children study her as though considering what they might do to get a rise out of her.
The tension between the colorful, all-over busyness of the crowd and the stillness of the central figure makes these works captivating pictorially and as a real-time narratives.
In addition, the still woman has a mythic and curiously melancholy presence. She might be the lost soul of globalized modernity.
Two other large projections in other galleries shift the setting from city to country. In one, we look down from a slightly perspective onto the artist, who stands with her back to us facing a glassy, slowly flowing river. Spatially this is the most interesting of Ms. Kim's works because the reflective surface of the river appears at first to be far away; then you realize it is almost at the artist's feet. The collapse of distance is breathtaking.
In the other video, the artist reclines on her side on the rocky summit of a hill holding still as clouds drift slowly by. Both videos have a soothing, meditative effect.
The image of the lone artist facing cosmic spaces calls to mind the lone wanderers that Casper David Friedrich painted, and video adds the dimension of time. Just as the protagonist in the video contemplates the flow of time in nature, viewers in the gallery contemplate the flow of time not only as represented in the video by flowing water or shifting clouds, but also in the real-time flow of the video itself. And again, as in the artist-in-the-madding-crowd videos, the centered figure embodies an inspirational equanimity of spirit in the face of what must lead, after all, to death.
Ms. Kim goes wrong in a piece called "A Beggar Woman" that she performed in Nigeria. At P.S. 1 a video monitor shows her sitting cross-legged on a patch of public ground holding out one hand as if begging for money. Some people put money into her hand; one man steals money out of her hand. While the image of the beggar is not without resonance and the events captured by the camera are not without interest, the element of deception is troubling. Unlike the other works, in which the artist's enigmatic presence casts no judgment on the crowd, this one shines a light of moral inquisition on passerby, implicitly questioning their relationship to people in need; yet the artist herself is behaving with an ethically questionable duplicity.
One wonders where Ms. Kim might go from here. Can — or should — she venture beyond this one idea of the motionless, anonymous woman in tension with worldly movement? Might new performance ideas lead to new formal possibilities? Repeated too often, the performance of motionlessness could start to seem like a gimmick, but who knows? Maybe it could be extended and deepened through ritualistic repetition into a powerfully spiritual enterprise.
— From The New York Times - Friday September 7, 2001.
Annett Reckert (Curator at Sprengel Museum, Hanover)
2001
A tied bundle, something 'saved' in both the objective and metaphorical sense, arouses the same simultaneous attraction and curiosity as a body lying on the ground. To grasp the knot that holds the enveloping cloth together would reveal the enigma of what was concealed within, the story of the bundle and its origin. It is likely the story of a passage, a story of departure, travel, and arrival. Not least, the bundle, whether reference or literary motif, is an archetype deeply anchored in the consciousness of nearly everyone. When the hero of a novel resolutely girds himself, 'ties his bundle', it marks a dramatic turning point in the course of the story. The form of this putatively simple baggage, reversible at any moment, stands for an open process, a complex anticipation of what is to come. It can be a condensate of life, fully functional for some other life-space, or life-time.
Kim Sooja designates the exuberantly bright and richly patterned cloth bundles she has been presenting in ever more varied contexts and constellations since 1992 as bottari, the Korean term for 'bundle'. Despite the recent upheavals and electrifying renewal in her South Korean homeland, tied bundles of cloth, as before, are used like ordinary containers for the safe-keeping or transportation of a family's worldly goods. They are not meant for a family's valuables or heirlooms, but for the most elementary household goods with which to make a start in another place.
Getting under way, lingering, leading a nomadic existence, or settling are central categories of human life that the instantaneity of our present-day means of transportation allows us to barely comprehend. Elsewhere, alongside travel that affords even tourists the extreme luxury of a trip around the world, endlessly slow and arduous journeys are undertaken. Though reflecting on the nature of the journey, the play of associations around the bottari is decisively influenced by the composition of the surrounding space, especially the ground. Unlike the neutral floor of a gallery, a rough, inhospitable surface like that of the Museumplatz at the Sprengel Museum in the city of Hannover, Germany. reminiscent of cobblestones, leads one to think rather of those people who carry all their possessions with them on foot. It recalls the forced mobility of those who, because of political or ethnic persecution, illness, ecological disaster or financial ruin, were able to save only their skins, and a bundle. Promoted from implement to art-object and presented in a museum, Kim's bundles become symbols of the restive or restless, the stateless, uprooted, and uninvited, of the stranger or foreigner. Rolled up in the artist's bottari are the cast-off clothes of many people unknown to us.
The pieces of clothing are stand-ins for the people whose second skin they once were. They have little to do with brave heroes in novels. Kim, whose comments display a perceptibly extraordinary capacity for empathizing with other people and their way of life, has herself expressed her compassion for "the anonymous victims of heroism, hierarchy, penury, rigid ideas, discrimination, ignorance and untruth in our society." [In a 1998 e-mail to curator Hans-Ulrich Obrist for Cities on the Move artist's book, and in the exhibition catalogue, Kunsthalle Bern, 2001.] Here she is no doubt thinking of the history of her own South Korean homeland. Furthermore, with her ambulatory, transportable bundles, she has succeeded in calling forth a reflection on the connection between movement and consciousness, knowledge, time and space. Thus linked to the existential themes of flight and migration, the question of freedom and coercion comes into play.
In 1997, Kim, herself profoundly marked by the constant moving of her family, crossed her homeland in a truck to the bed of which she had lashed a mountain of her bottari. This 11-day travel-performanc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has been captured in several video works. They show Kim enthroned above her mountain of bundles, gazing in the direction of her movement, granting us only a view of her from the back. As the camera follows the moving truck, always from the same distance, relations seem to reverse: it is the traveler who strikes us as immobile within a landscape that in turn seems set in motion. A sound-version of Cities on the Move has a voice-over of the artist almost imploringly reciting the names of the places she passes through. Yet the question of the beginnings, end, and purpose of the journey increasingly fades the longer one views it. The trip becomes a journey through Somewhere and Everywhere. A detailed perception of the landscape flowing by gives way to a dazed one, as if some filter had been slipped in; this is what may constitute the addictive potential of traveling. Perhaps this daze, so typical of traveling, is protection against the troubling movement of something that generally appears immobile. It makes it possible to concentrate on one's own interiority and on the now freed stream of thought.
It is precisely through the use of materials like cloth and clothing, classically denoted as female, that Kim raises the question of the role of woman. Traditionally, women have been the adversary of movement, that is, classified under domesticity and 'keeping'. The previously used bedcovers the artist uses are sewn by Korean women for their families. A viewer socialized in Western culture could only guess that their patterns, colors, and composition may have special meaning. Accompanying the life-cycle of a human being, a couple, or a family, they bedeck the bed as the place of love, of sleeping and dreaming, a place of witness, childbearing, suffering, and dying.
Consequently, these rounded bundles, so tempting to the touch, do not at first evoke the impression of intense corporeality or intimacy. But contact with a soft, smooth, clinging material like cloth is itself body-related, connected to its extending motions. No one can tie a bundle with just one hand, in the words of an African proverb. To spread out and gather up, shake out and hang up, smooth out, crease, cover, wrap, arrange in bundles or piles — these are ancient, at times ritual, manners of handling cloth, and precisely the ones Kim employs in her art. Whether she places the bottari cloths directly on the ground like carpets or spreads them out like tablecloths, they turn into inviting gestures. When she hangs her cloths on a line, as in her installation A Laundry Field - Sewing into Walking, Looking Into Sewing (1997), she refers to an everyday behavior in exhibitions, but one which in itself is seldom conscious. Nothing is more suitable than a weekly domestic textile exhibition in the yard for initiating oneself into meta-linguistic levels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or social recognition and differentiation.
Kim undertakes dealing with cloth, needle, and thread in an ordinary way, but raises it to the level of a concept. Thus, sewing along with her mother was not only an initiatory experience that showed the artist, who studied painting at the arts academy in Seoul, a way of going beyond the two-dimensional canvas to object and space. An idea, far-reaching both for herself and for the viewers of her work, manifests itself in her self-conceived role as 'A Needle Woman' — that of sewing as an interaction in space, sewing as a social behavior that endlessly constructs new and more or less unstable living-spaces. There is a beguiling, even entrapping note in this idea, as when we tighten the bonds of friendship or weave a web of relations. Kim's obsessive travels are the weaving of such a net, for only movement makes bonds and separation clearly perceptible. In just this way, materials influence our feelings of closeness and distance. In different metropolises like Shanghai, Tokyo, New York and New Delhi, she has repeated a performance where she stands with almost unreal rigidness facing passers-by who flow past her as if she were a rock in a stream. Gazing on the back of the artist, viewers watching a video of Kim's performance also look these people, who react in various ways, right in the face. For a moment Kim touches on those invisible spaces in which all individuals establish themselves, and in which they move according to a behavioral plan that is seldom intuited.
For Kim, bottari are a 'body of her own', "a self-contained world — but one which can contain everything like a vessel, materially and conceptually, since one can tie up a bundle without revealing the contents." [The artist, in an e-mail to the author, 2001.] In a museum context, the bottaris, carefully fashioned into a temporary unit and arranged in the space, become a cause for reflecting on the concrete themes of travel and migration. The constellations of many bundles, site-related and thus different every time, create a unity of multiple elements. Yet each individual bundle is a unity that comprises numerous parts. An everyday act, rolling up and spreading out squares of cloth, comes to symbolize the inextricable interplay of concentration and diffusion that permeates every sphere of human thought and action, and of the cosmos and nature.
The bundle, which in other contexts appears to be an example of clustering, condensing, and compromising, is a generative ordering principle that augments our knowledge. It is no doubt indissociable from its contrary movement, that of expansion. Thus, matter or energy highly compressed entails a simultaneous loss of spatial extension. Extensions take up space, but thereby lose strength and tensility. This is well known as a physical or chemical phenomenon, as in the concentrations of ingredients in liquids. Our present-day view of the world would be unthinkable if natural scientists were unable to tie together bundles of objects and phenomena, and to formulate valid and useful laws about them, without having to know the individual parts of those bundles. As a strategy for human behavior, a directed action is comparable to a bundle. It conflicts with widely scattered initiatives. We are endowed with an emotional state, the capacity for inner concentration, along with a wide-ranging attention. Thought-processes may precipitate as long brainstorms or intensely pointed hypotheses. Bundling is the human ability to bring together perceptions, information, and thought into momentarily useful complex units, then to return them back into the flow of things. Only in this way is orientation within the infinite plenitude of individual phenomena possible for us.
Bottari is everywhere, body and mind, womb and tomb, globe and universe, bundle of a bundle of bundle folding and unfolding our mind and geography, time and space... [In a 1998 e-mail to curator Hans-Ulrich Obrist for Cities on the Move artist's book, and in the exhibition catalogue, Kunsthalle Bern, 2001.] So in Kim's concept of bottari there is not merely the superposition of an intense, sensually perceptible metaphorics of the body onto the all-pervasive phenomenon of mobility. It is interwoven with moments of Asian and Western culture, the everyday and art, past and present. On this mental voyage the artist herself has even managed to think up an interpenetration of the motifs of 'bundle' and 'planet'. For her, each bundle is in a certain sense "like a planet, for example, Mercury, Venus, Mars, Jupiter, Saturn, Uranus, Neptune, or Pluto — like the lucky sign of our destiny which indicates the differing character of human longing." [The artist, in an e-mail to the author, 2001.]
— From the Solo project brochure at Sprengel Museum, Hanover 2001
2000
Is there any duration in a painting?
Do videos become paintings when hung in a series on a wall, which you will pass without staying very long?
Does bringing Sooja's videos and Ming's landscape painting together turn them into spectacles?
When you project light over a painting hung in the dark, what does it bring you? Does it turn the exhibition room into a kind of a movie theater?
Do we try to challenge white with black? Darkness with light? Black box with white cube? Can we disintegrate the white cube just by erasing its walls?
How does Ming's black-and-white dark landscape, alongside the bright red self-portraits, collaborate with the hieratic back side of Sooja's figure in her videos?
When Sooja turns her back to the audience, does the absence of herself become a strong presence?
Is Ming looking at his self-portrait in the same way as Sooja is looking at the cityscape? Are you looking at Sooja in the same way she is looking at the cityscape? Is she looking at all? When is it your turn to look?
After having painted Mao as well as his own father, does Ming, in the new Autoportrait en pére in turn become a fatherly Chairman Mao?
Does Sooja, with her grey clothing and her famous braided long black hair, become the so-called mysterious oriental figure?
Is Ming's Paysage International more anonymous than Tokyo, Shanghai, New Delhi or New York as depicted in Sooja's videos?
Do you hear the quietness of the crowded cityscapes and the noise in the empty, deserted landscape?
Is there any correspondence between the movement of the brushstrokes of Ming's painting and the movement of the crowd in ?
Is the narrative in the paintings more hidden when the subtitle Scene of Crime suggests enigmatic clues?
Is the Needle Woman the one who can sew new meanings at the Kunsthallen Brandts Klaedefabrik?
Do the fabrics spread all over it make the Invisible Man more tangible, like the sacred Turin shroud?
What does it mean to you to be surrounded by one entire, circular installation?
While both Ming and the crowd of the megalopolis are looking at videotaped Sooja, is she looking at all?
And what are you looking at?
Could this show have an unplugged version?
Will any narrative produced by anybody become the truth?
Does the context of the show provide scope for eloquence?
─ First published in the catalogue in conjunction with the exhibition SelfScape at Kunsthallen Brandts Klaedefabrik, Odense, Denmark, February 12, 2000 - February 25, 2000
2000
Soo Ja Kim (Korea, 1957) first got out there in Europe at Manifesta 1 in Rotterdam in 1995. Since then people have gotten used to her installations made up of sheets and blankets laid out on the floor or rolled up into bundles. Seen at Venice last year and the Lyon Biennale this summer, these somber metaphors provoke reflection on the body and its finalities (the sheet as envelope wrapping a newborn child, lovers, a corpse).
But Soo's A Needle Woman represents a singular achievement. This video installation presented at the InterCommunication Center (ICC) in Tokyo is the finished version; an earlier and less worked-out one was shown at Basel art fair in June 1999. The theme is our relationship to space and time, treated here with great subtlety. On six screens laid out in a rectangle, the artist shows herself filmed from behind, wearing a long black dress and set in the middle of urban and natural landscapes: standing in the middle of busy streets in New York, Delhi, Shanghai and Tokyo, stretched out on a rock by herself in Kitakyushu in Japan; and finally standing again, and again alone, by the Jamuna river in India. The needle in the piece's title is a reference to that gender-specific tool but also, and more importantly, to the compass needle evoked by her immobile position, this being particularly striking in the street scenes where passers by bustle all around her.
The initial impact of A Needle Woman is very powerful. The viewer is struck by the image of her solitary body stationed amid people and things moving all about her, highlighted and amplified by the artist's completely rigid pose and the silent projection. It brings to mind a question which is never answered: why this isolated body, torn away from all contingency, from its earthly attachments? Then there is the powerful process of identification that this piece sets off in the viewer. This body standing proud in stubborn self-affirmation despite the power of the crowd or of nature, has to be me. A third strong point is the simultaneous use of two kinds of time. The street scenes are infused with humanity's time, the stuff of active lives, a temporality driven by doing.
The two nature sequences, in contrast, are governed by a different kind of time, a temporality where we are torn out of our common condition as individuals in which activity alienates us. The river as a reference to a Heraclitus's metaphor, and the rock with its extreme mineral hardness — these images take their distance from all too human time and instead opt for the rhythm of the earth and the cosmos. Soo's prone position on the rocks, in opposition to her standing station, evokes rest and contemplation, a state of contained tension in which human beings, confronted with that which is beyond them, relearn their own measure. It may make us think of the languid Buddha, the parinirvana, observing the world and Creation. An earlier video, Sewing into Walking (1997), shows a street scene in Istanbul and suggests the adoption of the simplest view one can have of things: simply noting them. This sequence can also be read by weighing, on the one hand, the reality of the world, with its density and rhythms far beyond human understanding, and on the other hand our own position as we search eternally for fusion and harmony. Speaking of A Needle Woman, the curator of the ICC exhibition, Keiji Nakamura, summed it up perfectly: "existential minimalism".
Tae Hyunsun (Curator at Samsung Museum of Modern Art, Seoul. Korea)
2000
For the past 100 years for Koreans the problem of tradition and globalization has not simply been relegated to the art field. They have been elements of conflict that are shared throughout the realms of the larger society and culture and represent an issue we must resolve in the future. After the mid-nineties the works of many Korean artists have been shown in international exhibitions and Biennales. Among those who have been active in the international art scene attempting to find clues to solving to this problem is Kim Sooja, who with her own unique opus has emerged as a leading figure in both international and Korean art circles.
The work of Kim Sooja offers material for a new discourse in not only the national, but also in the international at the juncture between the end of one century and the beginning of a new one. In her work, which has been frequently condensed to the term bottari (a bundle wrapped with Korean traditional bedcovers for carrying household belongings), the viewer is offered perhaps the most immediate insight into the stories of women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life. In addition it addresses the newly emerging theme of nomadism forcing us to deal with issues like notions of time, as well as communication and relationships. Yet, more than anything else, Kim Sooja's work addresses the problems of humanity. What is it, then, in this artist's work that prompts this variety of discourse?
From the late seventies until the early eighties Kim Sooja attended college and graduate school. This was a time when formalism was a dominant movement in Korean art circles, yet a period when self-reflection about this was also present. One of the main concerns was 'surface plane' and Kim's work began with speculation about this. However her thoughts included not one, but both sides of the surface. Her investigations into the surface plane were inspired by two revelations about the ordinary. It was in 1983, when Kim was sewing with her mother, that she rediscovered one of her most familiar materials, cloth:
"One day while sewing a bedcover with my mother, I had a surprising experience in which my thought, sensibility, and action at that moment all seemed to converge. And I discovered new possibilities for conveying buried memories and pain, as well as life's quiet passions. I was fascinated by the fundamental orthogonal structure of the cloths, the needle and thread moving through the plane surface, the emotive and evocative power of colorful traditional cloths." [1]
Cloths are something that mankind comes into contact with from practically the moment of birth until death. They follow the rhythms of and last throughout our lives. The designs on the cloths are not merely decorative either, they hold a myriad of symbolic meanings from fecundity, health, and long life to happiness and even the colors have symbolic significance. The relationship between cloths and mankind does not simply exist on a functional level like providing warmth, protection or embellishment; they have a spiritual dimension as well. Furthermore, following the precepts of Confucianism, traditionally cloths have been a medium for women's roles. In our now completely industrialized world, it is difficult to find women making traditional bedding, which consisted of a mattress filled with cotton down and covered in cloths and an equally decorative fluffy quilt-like covering. However the connotative elements that traditional bedding had — women's work, sex and love — can still be found in the cloths. Moreover the bedding covers that she uses in her projects are all actually used by someone, making them not merely cloths as objects, but materials that have a life and soul of their own. "Cloths are more than matter, they touch the skin and are one with the living body. I regard that body [of cloths] as even having a soul." Said Kim. [2] In a relatively brief period of time this episode has become myth. Her discovery was not simply of cloths and needlework, but both artistic perspicacity and an insight that she obtained because of her experiences as a woman.
Needlework naturally is associated with cloths. The artist, in using the needle to pass into the surface and back through the undersurface of the cloths, suggests the possibility of overcoming the limits of the surface plane. The artist comments, "I suppose I was attracted to the cloths as it was a part of my life. It also had an inside and an outside which permitted me to have an ongoing conversation or interaction through the process of needlework." To be more precise, for Kim needlework was a conversation with the surface as well as an interaction with space.
One of the most immediate issues that Kim's work with cloths and needlework raises is that of feminism. The everyday lives of women are found throughout Kim's work from "surface work, to three-dimensional, installation, and performance art." Her work is "the discovery of painterly rational in the everyday lives of women" and the "conceptualization of the ordinary." [3] Kim Sooja has elevated the status of women's housework, which according to Confucian values had been denigrated, and encompassed the realm of the ordinary that had been excluded by modernism. However the artist carefully rejects being termed a feminist. As she says herself in reference to the feminine element in her work "it is one of many." [4] Rather than dealing with the issue of women directly in her work, it is the ordinary, or to put it another way, it is a natural focal point since she was a woman, and in her work this act of inclusion is one of "embracing" [5] rather than rejection or opposition. In short, Kim has attained a universal level that transcends sex for the human.
After discovering cloths and the act of sewing, until the late-eighties the artistic immersed herself in the creation of cloths collages using cloths and needlework rather than canvas and paint. In general, works of this period are like Dans Ma Chambre (1988) where she either draws or applies color on cloths where the square surface is preserved and thus ordinary materials are fitted to suit the established artistic forms. However in the nineties the artist began to free herself from form. She took ordinary objects from traditional lifestyle like window frames, an A-frame or a bobbin and wrapped them in cloths confirming the initial form of that object (hence the name: Deductive Object) and created assemblage with colleciotn of cloth scraps.
In 1992, approximately ten years after she had her first revelation, at her art studio at P.S.1 Museum in New York she noticed for the first time (in an artistic sense) bottari filled with old clothes she had lying around her.
"Everyone has bundles around. I had bundles in my art studio before I started to incorporate them into the work, but I didn't notice them. In 1992, when I was working at the P.S.1 studio I happened to see a bundle put there. I put clothes in a bundle and didn't realize it. The bundle was something new to me. It was a sculpture and a painting. I saw that just by tying things I could change a two-dimensional work into a three-dimensional work." [6]
This was Kim Sooja's discovery of another aspect to what was a common object in the lives of Koreans, the bottari. In the colorful, but ordinary bottari, the artist has discovered in the cloths itself a power of expression and its own natural character. With almost no effort on the part of the artist, the bottari could tell its own story. The artist would now no longer use needlework. Instead she substituted the three-dimensional act of sewing that had penetrated the two-dimensional inside and outside surface of the cloths, with the transformation of the cloths from a two-dimensional to a three-dimensional object by tying it. Rather than the one time act of sewing, Kim using the bottari, which could be wrapped, tied, untied, and wrapped again and again to narrow the distance between herself and her work and to bring her life and action into the work. Ten years ago the artist, with ordinary used cloths and no artistic retouching, returned it to its state as a common entity in our lives. In the artist's purely formal act she successfully approached the essence of the ordinary.
Kim Sooja had discovered the possibilities of bottari during her residence in New York, so it was only natural that for an artist who had taken her point of departure from the surface plane, she should expand to include the spatial dimension as well. With her interest piqued about site, Kim now rejected the unnatural isolation between the gallery space and the work. Here cloths and bottari served as outstanding media in linking the two. A wonderful example of Kim's work with cloths in a site-specific project was the 1992 wall installation at P.S.1 Museum. It was overwhelmingly evident that the artist had organically utilized the material characteristics of the fabrics as well as the special nature of the brick wall with its many cracks.
As Kim's interes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work and the site grew, her work was no longer confined to perimeters of art museums and galleries and moved towards the unconventional exhibition spaces as the act of sewing became conceptualized. The artist, who considered needlework the same as breathing or as a form of communication, then began to regard use it as way of relating separate activities like walking, talking, and looking. [7] This expanded concept of needlework was first realized in the 1994 exhibition entitled Sewing into Walking held at the Gallery Seomi, Seoul. In this installation project consisting of old clothes, bottari, and video, the "needlework" was represented by the walking of visitors across the floor where the old clothes were scattered. In a video of the artist walking towards a distant Mt. Mai, each of her steps becomes one stitch of the needle transforming nature into cloths which she is "sewing." Kim explains, "Previously I sewed cloth with thread and needle. This time my body serves as a needle sewing large cloth pieces of nature." [8]
The needle is "something that can injure, but as a medium it is a instrument of healing." [9] In a video work that premieres at this exhibition A Laundry Woman (2000) the concept of the artist-as-needle-as-healing device is realized. The artist is shown looking at the Yamuna River in Delhi, India where the flowing water brings slices of life in the objects floating from a crematory. These objects pass by the body of the artist, who in effect is “washing” them in an act of purification. Through this meditation on life and death this video returns the original problem of mankind. Even from the rear view of the artist, who is facing the river, we feel the empathy between the living and the dead.
Recently the artist's concern with needle has developed a more philosophical dimension. As a medium, the needle passes between separated spaces and as a means of mediation instantly disappears. Moreover, like the needle, once her role as a medium has ended, she becomes a nonentity. In a performance video of Kim entitled A Needle Woman (2000) filmed in Shanghai, China, and Shibuya, Japan, and Delhi, India, Kim was standing completely still, in the middle of a street in Shibuya where passersby reacted to her with total indifference and in a busy street in Shanghai where the people reacted by looking over their shoulders at her, and finally in India where the people stop and stare intently at her. While the reactions of passersby were quite different it appears as if there was a thread between them and the still artist. In this video project, where the artist's body acts as the medium and represents a universal human not defined by gender, her recent interest in linking herself to others and to the world becomes clear. Kim explains that "The artist's body, used as a type of medium, barometer, or compass needle effects only an unseen relationship with the passersby. In the end she becomes virtually nonexistent and in this state is alienated and disappears." [10]
In contrast to Kim Sooja, who in her role as an intermediary merges into nothing, the physical presence of the viewers is embraced in her work. In her installation work the bottaris can be untied, the contents examined, and even taken by exhibition visitors. In the traditional concept of art objects as being rare, valuable, and sacred, these would be considered as acts of damage or sacrilege, but in Kim's projects the curiosity and individual reactions of the viewers are accepted as reveal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m and the object. Here the artist is acting as an intermediary between the actual past owners of the old clothes and bedding covers and those who currently look at or take them away-future, unknown persons. In her role the artist may be invisible, but her presence is strong in creating such a relationships.
While Sewing into Walking in 1994 expanded needlework into walking, in A Laundry Field: Sewing into Walking, Looking into Sewing (1997) we are able to see an even more interesting relationship developed. In this installation project, Kim set up lines of laundry. Viewers "looked" at cloth lines of bedding covers as their bodies "penetrated" through or between them. Their line of sight became the needles and the covers a linking, spontaneous, participatory space. For Kim Sooja visitors to her exhibitions are the performers.
There are even more compelling examples. In Edinburgh's The Fruitmarket Gallery (1995), the Museum Boymans Van Beuningen Gallery in Rotterdam, and the cafe of the Setakaya Art Museum in Tokyo, the artist took brilliantly colored bedding covers and used them to cover tables like table cloths in actual places where people did ordinary activities like eating and drinking. For Koreans, using our traditional cloths associated with sleeping and bedding (like sheets in the West) in such a fashion might provoke something of a cultural shock, but the artist in an international setting was inviting the actions (and reactions) of a variety of visitors to her work. While linked to tradition, it was not tied to it, and these installations represent an example of a sense of flexibility that could be applied anywhere in the world.
My object or installation work is an extension of my actions called 'needlework'." As the artist indicates, her work after bottari developed into conceptual needlework that created relationships without the actual act of sewing. This could be described as her use of nature and the ordinary routines of people as "larger" materials.
Kim Sooja, rather than confining herself to fixed spaces, attempted to move and widen her range. In the fall of 1997 she held a performance that involved loading a truck full of bottaris and making an eleven-day journey throughout Korea. The video that recorded this performance, Cities on the Move - 2727 km Bottari Truck underlined the inherent sentiments — movement and wandering — that the bottari connotes in addition to being a timely exploration of the theme of nomadism recurrent in artistic circles in the nineties. [11] This work, which explores the metaphors of time originates in Kim's memories of her family's frequent moves all over Korea during her childhood as a result of her father's career in the military. It also reflects her current life as an artist who travels the world.
The journey, which took her and her bottari truck from:
Seoul - Uijongbu - Yonchon - Chonkok - Daegwangri - Cholwon - Gimwha - Sokcho - Chongsun - Andong - Daegu - Gyongju - Busan - Jinju - Sunchon - Sorokdo - Gwangju - Daejon - Yongin - Seoul
was an experience that was not simply physical movement, but spiritual movement through memories themselves. The bottari truck, which was shown at the Sao Paulo Biennale (1998) and the Venice Biennale (1999) still has many journeys to make throughout the world before it reaches its final destination. In Kim Sooja's bottari truck implied the notion of time including the past, present, and future.
The element of time in Kim Sooja's work has become an even stronger in her performance videos. In Kim Sooja's videos she uses no videography and no editing. Instead she uses repetition to emphasize simply the passage of time, where nature becomes a workspace, they become a device for conveying her acts and images to the exhibition space. These videos Kim identifies as her "image bottari." [12] In her early video work, Sewing into Walking, the TV monitors placed under the bottari serves as another type of bottari. Therefore the work is closer to a video installation in that she deals with video monitors as objects. However, recently she conveys the meaning and concept of her work only through the medium of video projection.
In recent videos like A Needle Woman and A Laundry Woman the real fabric and bottari that accompanied her performance early on have disappeared. The activities of the artist herself have been reduced to a minimum, she no longer walks or wraps her bottari. While extremely minimalist in act, with the artist standing still and staring straight ahead, these videos are replete with discussions of the artist's desire to become a "needle of the world." Actions have been minimalized, but instead of the physical world that a person's body to link the world, now the eye and the mind replace the body. Thus it would be more correct to say that cloths, needlework, and bottari in her work have not disappeared, they have been conceptualized. As Rosalind Krauss puts it, the true medium for video art is not a mechanical device, but psychological circumstances. Kim's videos, even without human direction allow us to feel inaction and experience sympathy with nature. In her videos, cloths, needlework, and bottaris all transcend the meaning of the ordinary to encompass the problems of human relations and communications.
In the past two decades Kim Sooja began with an investigation into surface planes, then expanded her interests to include object and then moved from object to space. In doing so she has touched on the problems of self, the self and others, in other words, the subject: mankind. Here the cloths and needle has served to lead the artist along with the bottari the catalyst for the experience. Of course in modern art the use of cloths is nothing new. As we discover in the history of readymade, which made it possible to expand the use of cloths as artistic material, form has an imposing presence in textile art and craft. Until the early nineties in Kim Sooja's work also expansion of material and plasticity were important themes, but in that decade she returned to the original values of cloths basing her work on her pre-eminent interpretive involving cloths. Here we can assume that for the artist cloths has much more significance than being simply material.
For the artist cloths, which had been her first interest, is also a solution to the problem of the surface plane. In the fifties and sixties (and for Korea in the seventies) the essence of painting was the two-dimensional surface of the canvas in accordance with the tradition of modern painting. With the limited understanding as a premise, the diverse possibilities and the latent properties of cloths themselves were ignored or overlooked. Kim Sooja in her needlework, which is both an everyday activity and a natural way to relate to cloths, raised sewing to an artistic activity. As such her activities led to the rediscovery of the essence of cloths as an entity that moves between two and three dimensions and human stories behind. What she found were values that had been overlooked in modernism's limited understanding and in the process she completely overcame formalism as well. To this was then added Kim's own creativity. In the end the artist's choice of material (cloths) was a way of dealing with the problems of surface plane and the desire for creativity as well as resolving the estrangement between life and work.
In conclusion, the reason for Kim Sooja's activity on the international art scene and the attention she has drawn globally is that while she uses Korean materials and her sense of ethnicity is strong, in the end this does not become strident nationalism. She achieves a wonderful balance between a traditional heritage and globalization. While her work, through needlework and its conceptualization, is on women, it attains a universal context of the essential human.
This exhibition featuring the installations of bottari and bedding covers, also allows us to see her development through video work. The artist has taken on the entire gallery itself as a subject for interpretation. In the Glass Pavilion of the Rodin Gallery, where Rodin's Gates of Hell and the Burghers of Calais are installed, Kim has first scattered old clothes establishing a physical relationship between the past; the figures of legend and history in Rodin's sculptures and the original owners of the clothes, and the viewers who will be walking around the exhibition in the present.
In the video rooms, the figure of the artist herself photographed from behind from a 1994 video taken at Gyongju's Oksan Seowon valley entitled Sewing into Walking where she raises bedding covers one-by-one, wraps them into a bundle and leaves, moves onto a the video of her (also taken from behind) atop her fully loaded bottari truck for Cities on the Move - 2727 km Bottari Truck. Along with the screening of these videos the actual truck itself is installed in the plaza in front of the gallery. In addition, the videos mentioned earlier, A Needle Woman and A Laundry Woman, will receive their first public showing here. The installation of bedcovers, A Laundry Woman, will receive its Korean premiere. In this comprehensive exhibition of the conceptual and artistic world of Kim Sooja we look forward to the dynamic participation of all visitors.
[Notes]
[1] Kim Sooja, "Artist's Note," Kim Sooja, exhibition catalogue, Gallery Hyundai, Seoul, 1988, p.9. > return to article >
[2] Kim Sooja, "Cloths and Life," Kim Sooja, exhibition catalogue, Gallery Seomi, Seoul, 1994. > return to article >
[3] Kim Sooja, "Conceptualizing the Ordinary," Women: Their Difference and Power, Kim Honghee(ed.), 1994, pp.82-83. > return to article >
[4] Bahk Youngtaik, "Kim Sooja: To Approach from Plane to Three-Dimension, A Bundle," Space, October 1996, p.116. > return to article >
[5] Kim Airyung, "Kim Sooja: Life and Art Wrapped in Bottari," Wolgan Misul, October 1999, p.168. > return to article >
[6] Bahk Youngtaik, ibid., p.113. > return to article >
[7] Bahk Youngtaik, ibid., p.113. > return to article >
[8] Hwang In, "Sewing into Walking : Cloths, Videos, Sound Installation by Kim Sooja," Space, January 1995, p.38. > return to article >
[9] Kim Sooja, letter from the artist, February 15, 2000. > return to article >
[10] Kim Sooja, letter from the artist, February 15, 2000. > return to article >
[11] This work was created for the exhibition curated by Hans-Ulrich Obrist and Hou Hanru in 1997 entited Cities on the Move. > return to article >
[12] Hwang In, ibid. > return to article >
— Essay of the Catalogue, 'KIMSOOJA : A Needle Woman'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the Rodin Gallery (Plateau Samsung Museum of Art), Seoul, Korea. 2000.
Tae Hyunsun is a curator at Samsung Museum of Modern Art, Seoul. She studied French Language and Literature and Art History at Ewha Womans University in Seoul. Since 1999, She curated Encounter with Rodin, Kim Sooja: A Needle Woman, 2000 at Rodin Gallery, Illusion and Reality: Hyperrealism Painting in Korea and America at Ho-Am Art Gallery, Human Figure in 20th Century Sculpture, 2001, and Ahn Sang-Soo: Imaninging Hangul at Rodin Gallery. She coordinated Yes, Yoko Ono show at Rodin Gallery and Artspectrum at Ho-Am Art Gallery in 2003.
태현선 (삼성미술관 주임연구원)
2000
김수자는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반, 형식주의 미술이 화단의 주류를 형성하며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반성의 기운이 감돌던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시 미술 계의 가치는 단연 '평면'이었고 김수자의 작업 역시 평면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되 어, 일상에 대한 두 번의 깨달음을 통해 촉발되었다.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 수성과 행위가 모두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 며, 묻어 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 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천이 가지는 기본 구조로서 의 날실과 씨실, 우리 천의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들며 꿰매는 행위의 천과의 자기 동일성,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완전히 매료되었다." [1]
천은 인간이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접하는 물질이며, 삶의 흐름에 따라 일생 동안 우리의 생활에 밀착된 존재로, 단순한 장식무늬 뿐 아니라, 다산, 무병, 축수(祝壽), 벽사(辟邪)등 인간의 안위와 행복을 기원하는 온갖 상징적 인 기호와 문자들로 이루어진 문양들을 담고 있으며, 그 색채까지도 대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천과 인간의 관계는 보온과 보호, 치장 등 단순히 기본적인 생 활을 위한 기능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정신적인 국면까지 개입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천은 유교적인 성(性) 개념 속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전 통적인 여성 역할의 매개이기도 하다. 완전히 산업화가 이루어진 요즘, 방 한 가득 이불솜을 펼치고 요와 이불을 만들던 정경은 이미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의 것인듯,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거기에는 여성의 노동이 얽혀 있고, 성과 사랑 등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게다가 그가 작업에 사용하는 이불보천은 형형색색의 꽃무늬가 때로는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우리네 평범한 서민들의 생활소품으로, 누군가가 실제로 사용했던 것들이다. "살을 맞대고 함께 호흡하던 신체와 동일시하며 그 신체의 영혼까지도 묻어 있는 듯 여기기도 한다."[2]는 작가의 말처럼, 그에게 천은 단순한 섬유질의 오브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충만한 소재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이미 신화화된 이 일화는 천과 바느질의 발견이 그가 논리를 통해 도달한 깨달음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예술적 혜안이 있었기에, 또 그가 여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시사한다.
천이라는 소재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바느질은 천의 표면과 이면을 되풀이하여 오가는 과정으로, 작가는 이 바느질 행위의 수직적인 움직임에서 '평면'의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간파하였다. 작가에게 있어 그것은 지속적인 대화와 상호작용을 가 능케 하는 행위였다고 한다. 이를 구체화 시킨다면, 김수자에게 바느질은 평면과의 대화이며 공간과의 상호작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천과 바느질을 통해 김수자의 작업에 대해 가장 즉각적으로 도출되는 논의는 여성 성의 문제이다. "여성의 일상은 평면작업, 입체작업, 설치작업, 그리고 행위예술로 점철되어 있다."고 본 김수자의 작업은 "일상의 개념화"[3]를 통해 유교적인 가치에서 평가절하된 전통적인 여성 역할의 위상을 높이고, 편협한 모더니즘이 배제시킨 일상의 영역을 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것을 조심스럽게 거부한다.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 작업에 나타나는 여성적인 영역은 "많은 요소의 하나일 뿐"[4]이며, 그의 작업 은 여성의 문제 보다는 일상에, 다시 말하여, 여성이기에 자연스러웠던 일상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거부 또는 저항의 몸짓이 아닌 '포용하는 자세’[5]로 성을 초월하여 인간, 인격체라는 보편적인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2차원이면서 3차원의 체험을 가능케 하는 소재이며 행위인 천과 바느질을 발견한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김수자는 캔버스와 물감 대신 천과 바느질을 이용한 천꼴라 주 작업에 몰두하였다. 이 시기의 천 작업은 대체로 <방(Dans Ma Chambre, 1988)>과 같이 천 위에 드로잉 또는 채색이 가해지고 사각 평면을 고수하고 있어 일상의 소재가 기성의 예술 형식의 틀에 맞추어 조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창틀이나 지게, 얼레 등 전통적인 일상의 오브제들을 천으로 감싸 오브제의 기본 구조를 확인하는 입체작업인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와 수많은 천조각들을 집성시킨 앗상블라주 작업에 도달하면서 작가는 차츰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첫 깨달음을 얻은지 약 10년 후인 1992년, 뉴욕의 P.S.1 작업실에서 그는 작업을 위해 곁에 두었던 보따리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보따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제 주위에도 항상 있었습니다. 그 작업을 하기 전부터 제 화실에도 있었고요.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뿐입니다. 그런데 92년 P.S.1 작업실에서 작업하던 중 우연 히 고개를 돌린 순간 거기에 보따리가 보였습니다. 천 작업을 하려고 보따리에 싸놓았던 것을 제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때 그 보따리는 전혀 새로운 보따리였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조각이고 회화였습니다." [6]
그것은 '보따리'라는, 익숙한 우리 일상의 한 단편을 발견한 것으로, 울긋불긋한 평범한 보따리들에서 그는 이불보천 자체가 지닌 표현력과 그 자연적인 속성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이는 작가가 굳이 별다르게 작업을 하지 않아도 보따리는 그 스스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음을 깨달은 것과 같다.
작가는 이제 실제 바느질을 하지 않는다. 천을 경계로 2차원 평면의 표리를 관통하는 3차원의 행위인 바느질 대신 묶는 행위로 2차원과 3차원의 전환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일회성의 꿰매기보다, 싸고 묶고 풀고, 다시 싸서 묶어야 하는 보따리를 통해 작가는 더더욱 자신과 작품간의 거리를 좁혔고, 반복되는 자신의 삶과 행위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보따리의 발견은 작가가 10년 전 일상에서 추출해내었던 천에서 예술적인 가필을 제거하여 다시 본연의 일상의 존재로 돌려보내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작가의 행위 역시 순수 조형적 행위에서 보다 일상에 근접한 행위로 나아가게 된다.
한편, 평면에서 출발했던 작가의 관심은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보따리를 발견하면 서 필연적이고 자연스럽게 공간의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장소(site)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면서 그는 점차 화랑 공간과 작품의 이질적인 유리를 거부하게 되었고, 여기에 천과 보따리는 이들을 이어주는 아주 훌륭한 매개였다. 1992년, 뉴욕 P.S. 1 미술 관에서의 벽 설치작업은 천의 물리적인 속성과 틈이 많은 벽돌벽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을 유기적으로 활용한 작가의 탁월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장소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어 갈수록 그의 작업 영역은 미술관과 화랑 공간에 머물지 않고 점차 전시장 밖과 자연으로 확장되었고, 더불어 바느질이라는 행 위 역시 개념화 되어갔다. 바느질 행위를 '호흡 또는 소통(communication) 같은 것' 이라 여기는 그는 걷고, 말하고, 바라보는 평범한 일상적인 행위 자체가 분리된 것을 이어가는 바느질 행위라고 보았다."[7] 이러한 바느질 개념의 확장은 1994년 서미화랑 개인전 때의 설치 작업인 <바느질하여 걷기(Sewing into Walking)>에서 처음으로 실현된다. 헌 옷과 보따리, 그리고 비디오를 이용한 이 설치작업에서 바느질은 전시 장 바닥에 널려 있는 헌 옷들을 밟으며 걸어다니는 관람객의 동작에 의해 이루어지며, 작가가 멀리 마이산 봉우리를 향하여 걸어가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 작업에서는 작가의 한걸음 한걸음이 바늘 한땀 한땀이 되어 자연을 천삼아 바느질하고 있다." 전에는 실과 바늘이 천을 꿰매었다면 이번에는 내 몸이 하나의 자연을 꿰매는 침이 되어 자연이라고 하는 넓은 천을 꿴다고 할 수 있다."고 하였듯이[8] 이때부터 작가는 자신을 바늘에 비유하기 시작한다.
바늘은 "상처를 줄 수 있는 도구"이지만 매개체로서의 바늘은 "치유의 도구이기도 하다.[9] 이번 전시에 처음 소개되는 최신작인 <빨래하는 여인(A Laundry Woman, 2000)>은 이러한 치유로서의 바늘 개념을 구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인도 델리의 야무나(Yamuna)강 가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서 있는 작가는 흘러가는 물과, 삶과 자연의 단편인 떠내려가는 화장터의 부유물들, 이 모든 것들이 작가의 몸을 통과하는 동안 빨아짐으로써 정화되기를 기대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를 통해 인간 본연의 문 제로 회귀하고 있는 이 비디오는 강물을 향해 돌아서 있는 작가의 뒷모습에서조차 망자(亡)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이렇게 최근 바늘에 대한 작가의 사유는 초기에 비하여 철학적 깊이를 더하고 있다. 바늘은 매개체로서 갈라진 틈을 지나 자신이 매개한 물질에서 곧 떠나버리고, 단지 바늘과 연결되었던 '실'만이 그림자처럼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이렇게 매개체로서의 역할이 끝난 후 '무(無)'화되는 바늘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 하고 있다.
바늘로서의 작가의 모습은 일본 동경의 시부야 거리와 중국 상하이, 그리고 인도 델리에서 벌인 퍼포먼스를 담은 비디오 작품 <바늘 여인(A Needle Woman, 1999-2000)>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길 한가운데에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작가에 대하여 전혀 무심한 시부야 거리의 행인들, 힐긋 힐긋 뒤돌아보며 호기심 어린 관심을 보이는 상하이 시장거리의 중국인들, 가던 길을 멈추고 그를 마주하고 응시하기까지 하는 인도인들, 그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지만, 가만히 서 있는 작가와 그들간에는 보이지 않는 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이 비디오 작업은 자신의 몸을 매개로 하여, 여성이라는 특정 성에 국한되지 않은 보편화된 인간으로서 나와 타인, 나와 세계의 관계를 엮고자 하는 작가의 최근의 시각을 가장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신작으로, 그는 이 작업에 대해 "하나의 매개체(medium), 혹은 바로미터 또는 나 침반으로서의 작가의 몸은 인파 속에서 스쳐가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관계지을 뿐 결국 투명인간 처럼 거의 '무'의 상태로 소외되고 사라지고 만다."고 설명하고 있다. [10]
김수자는 자기 자신을 점차 '무'화하는 매개체로 보는 반면, 관람객의 신체를 적극적으로 작품 속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의 설치작업에서 사람들은 보따리를 열어 보고 들춰보거나 헌 옷가지를 집어 간다. 전통적인 미술품 개념에서는 고귀하고 신 성한 예술품에 대한 훼손이며 모독이겠지만 김수자의 작업에는 그러한 관람객의 호 기심과 특별한 반응들이 수용이 되며 그렇게 관람객과 작품이 관계맺어지는 것이다. 또한 이는 헌 옷과 이불보의 실제 주인이었던 과거의 인물과 현재에 그것을 보고, 그 위를 걸어다니고, 또는 가져가 버리는 미지의 인물이 작가를 매개로,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바느질을 걷는 동작으로 확대시킨 <바느질하여 걷기>가 그러하며, 1997년의 설치 작업 <빨래터-바느질하여 걷기, 바라보며 바느질하기 (A Laundry Field-Sewing into Walking, Looking into Sewing)>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관계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설치작업에서 이불빨래를 너는 김수자는 누군가가 사용했을 그 이불보에 묻어 있는 삶의 애환을 빨래라는 정화의 과정을 통해 씻어 낸다. 이불보들이 널려 있는 이 공 간은 제목 그대로, 줄에 널린 이불보를 바라보며 종으로 횡으로 질러다니는 관람객 의 신체와 그들의 시선이 바늘이 되어 이불보들을 잇는 능동적인 참여의 공간이 된다. 즉 이 작업은 작가는 빨아 널고, 관람객은 이를 엮어가는, 즉 작가와 관람객의 협업으로 완성해가는 설치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자에게 관람객은 바라보는 '눈'만 있는 방관자적인 존재가 아니라 행위하는 '몸'이 있는 존재로서, 그의 설치 공간에서 관람객은 퍼포머(performer)인 것이다.
더욱 적극적인 예가 있다. 영국 에딘버러의 프루트마켓 갤러리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뵈닝겐 미술관, 일본 동경의 세타가야 미술관 카페에서 김수자는 우리에게는 취침을 위해 사용되는 형형색색의 이불보를 실제 일상의 행위인 음식을 먹고 마시는 공간에 마치 테이블보인 듯 깔아 놓고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이는 우리의 문화에서 보면 생활의 도리에 맞지 않거나 어색한 설정이지만,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관람객의 행위를 끌어들이기 위하여, 전통을 잇되, 이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 속에 적용할 수 있는 탄력성을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의 오브제나 설치작업은 '바느질'이라는 행위의 연장선 상에 놓여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보따리 발견 이후 그의 작업은 실제로 꿰매는 행위를 하지 않고 실과 바늘이 없이도 관계를 맺어 가는 개념적인 바느질 작업으로 전개되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인간의 일상과 환경과 자연을 더 큰 재료로 삼았고 이렇게 공간이 작업에 수용되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몸이 개입되어, 김수자의 작업은 작가의 퍼포먼스와 불가분의 관계가 된다.
김수자는 정지된 공간에 머무르기 보다 이동을 시도하여 공간의 영역을 넓혀 왔다. 1997년 가을, 작가는 보따리를 가득 실은 트럭을 타고 11일간 전국을 일주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퍼포먼스를 담아 제작된 비디오 작품 <떠도는 도시들- 2727Km 보따리 트럭(Cities on the Move-2727km Bottari Truck, 1997)>은 우리 의 보따리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이동'과 '유랑'의 정서가 드러난 것으로, 20세기 말과 세기 초, 세계 미술계의 공통된 화두의 하나인 유목주의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게 부합되는 작업이다.[11] 보따리에 은유적으로 내재된 시간성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들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유목민처럼 이사를 다녀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그리고 작업을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서 착안한 작업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의정부-연천-전곡-대광리-철원-김화-속초-정선-안동-대구-경주-부산-진주-순천-소록도-광주-대전-용인-서울로 끝을 맺는 추억을 되짚는 11일간의 긴 여정, 그것은 신체의 이동일 뿐 아니라, 작가의 정신의 이동이며 기억의 흐름이다. 이미 1998년의 상파울로 비엔날레와 1999년의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그의 보따리 트럭은 앞으로도 또다시 세계의 도시들로 떠나야 할 여정이 남아있고, 또 언젠가는 다가올 정착의 순간까지 내포하고 있어 이런 의미에서 김수자의 보따리 트럭에 대한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를 포함한 시간성 논의는 타당하다고 하겠다.
김수자 작업의 시간성은 그가 자신의 퍼포먼스를 비디오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더욱 부각되는 특성이다. 퍼포먼스를 반복하여 보여주는 연속 편집 이외에 아무런 비디오그래피 (videography)나 이미지 편집 없이 시간의 흐름대로 보여지는 그의 비디오 작업은 그가 작업공간을 자연으로 확장시키게 되면서 자연 속에서 행한 자신의 행위들을 전시공간에 옮겨 오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되었고,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비디오 작업을 '이미지 보따리'[12]라고 하였다. TV모니터가 보따리들 사이에 또 다른 형태의 보따리로 놓였던 초기 작업 <바느질하여 걷기>가 오브제로서의 비디오를 구현하는 비디오 설치에 가까웠던 반면에 최근의 비디오 작업은 순전한 비디오 영상만으로 작품의 의미와 개념을 전달하고 있다.
비디오에 기록된 작가의 퍼포먼스에는 현저한 변화가 나타난다. 초기의 퍼포먼스 에서 작가는 걸어가거나 이불보를 걷어올리거나 보따리를 들고 이동하는 등 구체적이고 분명한 행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바느질하여 걷기 이스탄불(Sewing into Walking - Istanbul, 1997)>에서 작가의 모습은 일체 등장하지 않고 무수히 많은 행인들만이 '이미지 보따리'인 고정된 카메라에 포착되었다가 사라지는 일이 되풀이될 뿐이다. 다시 등장한 작가의 모습은 '보따리 트럭' 위에 그 스스로가 또 하나의 보따리로 얹어져 조용히 트럭에 몸을 맡긴 채 떠돌고 있는 절제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최근작인 <바늘 여인>과 <빨래하는 여인>에는 이제까지의 퍼포먼스에 수반되었던 천과 보따리가 모두 소멸되고 없다. 작가의 행위까지도 최소로 축소되어, 작 가는 더 이상 걷지도 보따리를 싸지도 않는다. 그러나 미동도 않고 서서 정면을 응시 하는 지극히 미니멀한 그의 행위 속에는 세상의 바늘이 되고자 하는 그가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들이 응축되어 있다. 행위는 극소화된 반면, 그는 자신의 신체가 물리적으로 점유할 수 있는 공간보다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이전의 작업이 몸으로 세상을 엮었다면, 이제는 눈과 정신으로 엮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비디오 에서 천과 바느질, 그리고 보따리는 사라졌다기 보다는 개념화되었다는 것이 옳다.
비디오 미술의 진정한 매체는 기계적 장치가 아니라 심리적 상황이라는 로잘린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말처럼 그의 비디오는 무위(無爲)의 상태를 느낄 수 있으며, 생태적인 연출이나 영상이 없이도 자연과 교감하게 해주는 듯하다. 김수자에게 비디오는 그의 작업을 개념화하여 보편적 층위로 이끈 매체로서, 비디오 작업을 통해 천과 바느질과 보따리가 모두 일상의 의미를 넘어 인간과 관계와 소통의 문제로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이십 년간 그의 작업은 객체인 평면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하여 오브제로, 오브제에서 공간으로 관심을 확대해 가면서 나 자신, 나와 타인, 즉 주체인 인간의 문제에 접근하였고 여기에 천과 바느질은 작가를 이끌어준 견인차였고 보따리는 그 촉매였다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에서 천의 사용이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미술 재료의 확장을 가능케 한 레디메이드의 역사에서도 발견되며, 무엇보다도 섬유 예술의 형태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김수자 역시 90년대 초반까지는 천이 제공하는 재료의 확장과 조형성에 크게 이끌렸지만, 점차 그 본래의 가치로 되돌아와 천, 특히 이불보를 우리 고유의 삶의 매개물로서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천은 작가에게 첫 화두였던 평면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기도 하였다. 1950~60년대(우리 나라의 경우 1970년대) 일련의 모더니즘 회화의 경향들은 캔버스 의 평면성을 회화의 본질로 규정하고 그 제약적 인식을 전제로 천 자체의 다양한 잠재성과 물성을 무시 혹은 간과하였다. 그러나 김수자는 천과 필연의 관계에 있는 일 상의 행위인 바느질을 예술행위로 격상시킴으로써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존재 로서의 천의 본질, 즉 모더니즘이 간과한 가치들을 되찾아 주었고, 그렇게 그는 형식 주의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작가가 선택한 천이라는 소재는 평면의 문제, 독창성에 대한 욕구, 작가 개인의 삶과 작업의 괴리를 해소시킬 방법론을 모두 만족시키는 소재였다.
결론적으로, 그가 현재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업이 한국적 소재를 사용하여 강한 민족적 특성을 표출하면서도 결코 국수주의로 흐르지 않아 전통 계승과 세계화의 균형을 훌륭히 이루어 내고 있으며, 바느질 행위와 그 개념화를 통해 여성의 이야기이면서도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보편적 문맥에 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적인 작업인 보따리, 이불보 설치작품을 소개함은 물론, 비디오 작업을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해가는 그의 작업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 공간 자체를 해석의 대상으로 삼는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먼저 로댕갤러리의 공간해석 작업부터 착수하였다. 그는 로댕의 <지옥의 문>과 <깔 레의 시민>이 전시되어 있는 글래스 파빌리온 바닥에 헌 옷을 설치하여 로댕 작품에 표현된 설화와 역사 속의 인물과, 헌 옷의 주인들인 과거의 인물, 그리고 전시장을 돌아다니게 될 현재의 관람객의 신체가 서로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헌 옷들은 시공을 초월한 그 '만남'의 매개물인 것이다.
1994년 경주 옥산서원 계곡에서 벌인 퍼포먼스를 기록한 비디오 작업 <바느질하여 걷기>에서 이불보를 하나씩 거두어 보따리를 싸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떠도는 도시들-2727Km 보따리 트럭>에서 보따리들을 가득 실은 트럭 위에 앉아 있는 뒷모습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 작품은 비디오 상영은 물론, 실제 보따리 트럭이 갤러리 입구의 광장에 설치되어, 트럭을 타고 작가가 경험했던 유랑의 시간을 관람객이 간접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어, 앞서 언급한 신작 <바늘 여인>과 <빨래하는 여인>이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 첫 선을 보이게 되며 또한, 해외에서 먼저 소개되어 호평을 받았던 대규모 이불보 설치작업이 국내에서 처음 설치되어 관람객에게 다이나믹한 체험과 참여의 공간을 제공할 것이다.
[Notes]
[1] 김수자, "작가노트" 김수자, 개인전 도록, 갤러리 현대, 1988, p. 9
[2] 김수자, "천과 삶," 김수자, 개인전 팜플렛, 서미화랑, 1994
[3] 김수자, "일상의 개념화," 여성 그 다름과 힘, 김홍희 편저, 1994, pp. 82-83
[4] 박영택, "김수자: 평면에서 입체로의 접근, 보따리" 공간, 1996년 6월호, p. 116 인터뷰 기사 중
[5] 김애령, "김수자: 보따리에 싸인 삶과 예술." 월간미술, 1999년 10월호, p. 168
[6] 박영택, "김수자: 평면에서 입체로의 접근, 보따리" p. 113
[7] 박영택, 위의 글.
[8] 황인, 김수자 대담, "Sewing into Walking-Cloths, Video, Sound Installation by Kim Sooja, 공간, 1995년 1월호, p. 38
[9] 김수자, 위의 편지.
[10] Kim Sooja, letter from the artist, February 15, 2000. > return to article >
[11] 실제로 이 작품은 1997년 유목주의를 주제로 한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Hans-Ulrich Obrist)와 후한루(Hou Hanru)가 기획한 동명의 전시프로젝트를 위해 제작되었다.
[12] 황인, 위의 글.
Keiji Nakamura (Art critic)
2000
Dressed in a dark, austere, almost monastic robe, long hair tied loosely, a woman stands in the middle of the screen, back to the camera — it is the artist KIM Sooja herself. She alone is in monochrome, she alone does not move. Though since all she does is stand there, amidst the crowded Shibuya area of Tokyo, for example, she does at times vanish from view when her motionless figure is swallowed by the on-going multicolored flow of foot traffic that crisscrosses heedlessly in front and back of her. Which summons a groundless sense of disquiet — where did she go? — until suddenly a moment later, as if everyone else had made way for her, that unmistakable back of hers re-emerges. Her presence cuts through the crowds, creating a singular opening, seemingly spotlighting her alone. An instant of emptiness in the space, an eternal space. Time that stopped while she disappeared begins to flow again. A certain calm visits the viewer.
But why should we fixate so upon this image of her just standing in a crowd? It is because we feel the sheer force of will, the determination that radiates from her backside with scarcely a movement. It is because her whole being is standing there in the performance. Perhaps she is not standing on the street, but transmigrating between this reality and the netherworld, between life and death. And upon her passages we viewers project the fundamental uncertainty of our own being. As she vanishes, submerging into the tides of men, we read the transience of existence and grow unsettled; only to take reassurance in the constancy of life forces as her figure resurfaces, poised and unmoving.
In her Shibuya piece, the passers-by generally walk at a fast clip, not one stopping to look in her direction. Each is occupied with his or her own affairs, busily hurrying toward some goal, whether business or pleasure. Whereas in Shanghai, the people walk relatively slower, each seemingly meandering along a random course. Most of them cast a glance at her, look back over their shoulders, or even stop and stare. And in bustling backstreets of Delhi we witness the same curiosity, the same lack of reserve.
Nonetheless, not to make culturo-anthropological comparisons between people's actions and reactions city-to-city: the "where" of things is secondary. For even in the most chaotic urban Brownian motion, even in Shibuya where the mindless distraction of foot-traffic takes on a strange regularity, all she does is stand there. Again swept under, again floating up in the human stream, she slowly embroiders her way into the fabric of the streets, of the people. She finds her place as the "Needle Woman" stitching it all together, patching things up.
The instant her hidden figure comes back into the picture, the viewer is struck by an awakening. It is the moment she establishes her presence, thereby beginning to charge the viewer's inner being. Just standing there, voiding herself, the world opens up, transparent: do you not suddenly see yourself? It is an almost erotic encounter with existence, Ekstase (Heidegger), an existential epiphany.
This becomes clear in her two pieces enacted not in the city but against nature. In one work she lies upon a great rock, one arm outstretched. Motionless, of course. As if we are looking at a parinirvana, an image of the reclining Buddha, though funnily enough, from behind. Under a clear blue sky, lying on that great stone as if meditating upon sensual illusions, backgrounded by the slight passing of clouds and the resultant varying nuances of light. The rock does not move, but time is surely passing. In A Laundry Woman, the work where she stands watching the Yamuna River in India, what at first appears to be almost stagnant water is shown by the appearance of drifts of rubbish to be a surprisingly rapid current. As this river of refuse flows past her it actually appears to be flowing through her, so that she is washed and purified by the waters.
In these two works, by synchronizing with natural time, she seems to have grasped her own inner time. So that, ultimately, viewer time also merges with her take on cosmic time.
KIM Sooja's videoworks are neither mere audiovisual records set in different locations town and countryside; nor are they tape works complete in themselves. They only become "finished" through the psychosomatic interactions engendered between the visuals and the viewer. And for this reason, viewing on a monitor is insufficient; the works must be projected in a specially created space or setting. There must be this psychosomatic interplay with the viewer, a dialogue between the figure of the artist seen from behind and the flux of persons around her in a such a way that watching the videos becomes participation in her performance. For although at the original shooting stage she was performing alone, when projected as part of an installation it takes on new life as another viewer-participation performance, the viewers creating their own meanings.
Almost nothing happens on screen. Nor do the visuals offer up meaning. Yet as the quietive, near-static visuals awaken a mixture of diverse uncertain and fulfilling emotions, the viewer and the viewed begin to share a singular reality. And this makes for a meaning to the images thrown back to the screen.
Yet just how are we viewers to participate interactively in these works? How are we to share in the awakening of the woman-from-behind? Here, surely more intuitive than consciously thought out, are the secrets to her method. First of all, none of the tapes is edited; all seven-odd-minute tapes are slices of real time. So that the addition of oneself to this timespan constitutes a sharing in the performance-as-photographed. Fixed-frame shooting without image manipulation likewise does away with all inverisimilitudes.
Moreover, in all the tapes she is shown largely from the waist up; that her legs are not seen proves quite important. Very likely if her whole body were in frame, viewers would watch the picture with detached objectivity. By not seeing her lower body, viewers can place themselves directly behind her to observe the scenes in physical identification with her. Herein the images transcend the mere visual to attain a whole-body reality. Thus her image should not be projected too large; ideally she should appear roughly the life-size equivalent of the viewer.
In this regard, although not exhibited here, her 1997 Sewing into Walking may be regarded as an experimental forerunner to the present works. In this work the artist herself does not appear; a fixed camera merely records a busy street in Istanbul. Yet because of the eye-height field of vision, we get an odd en-scéne sensation of standing right beside her and looking on. It is this lack of artifice that brings home her reality to the viewer. In this way her unadulterated street visuals become images of being itself. Here we find the origins of her later Needle Woman series.
Her previous works have been variously labeled according to their concerns with "Korean tradition and modernization," "women's roles and feminism," even "nomadism." One reason being her longtime use of traditional Korean bedcover fabrics. In her very first works, she collaged cut-up swatches of these fabrics, sewing them together into patchwork wall-hangings. Then later she bundled up old clothes in these colorful bedcovers-cum-wrapping cloths (bottari) and made installations of these large bundles, or piled them into a truck and drove them around Korea as an 11-day performance. Or again, she hung them up laundry line style, or spread them like tablecloths on museum café tables.
Of course, bedcovers are replete with meanings: newborn babies are swaddled in them, they also cover corpses on death-beds. And in between people see them throughout their lives as the site of sleeping, resting and sex. Moreover, as she always appropriated somebody's actual used bedcovers, they were by no means neutral.
Thus, as women learn to sew from their mothers, then wrap up their household possessions when they leave home, she becomes "A Needle Woman" bundling everything, the whole world in cloth, stitching people together. Which perhaps explains why KIM Sooja's works have been proven so unintentionally topical in "post-modern" and "post-colonial" circles. Even though her aims are more universal, she has been burdened with well-meaning but trivial readings. In some ways, while totally different in genre, her relationship with fabric recalls Trihn T. Minh-ha's film, Surname Viet Given Name Nam. Both their works have provoked altogether too much discourse, almost more than their enjoyment as works in themselves.
Fabric is text, and the artist herself has made not a few statements about her use of fabric. Thus the many labels are not necessarily wrong. But the fact that, fully aware of these deeply compounded layers of meaning, she continues to use fabrics perhaps indicates that while recognizing her own beginnings in cloth, her thinking is to seek transcendence to a more universal level. Thus, her videowork, wholly removed from fabric, may well constitute a pursuit of means able to cast off all labels. We may see her performance of simply standing as a no-nonsense, unadorned minimalist action, an existential minimalism.
KIM Sooja in video appears totally free from everything.
— From exhibition catalogue, ICC, Tokyo, 2000. Translated by Alfred Birnbaum.
Harald Szeeman (Independent Curator)
2000
There are words for activities — for existential doing — that always trigger a forceful shift into the visual: 'sew', 'spread', 'fold', 'wrap', 'assemble', 'tie'. These apply to working with brightly colored traditional fabrics used for bedcovers. These are also the underlying theater for birth and death, one that each and every one of us regards as our own place. And when we store or move on, each of us ties up our own bundle, our own bottario (is there such an Italian word for bundle?). Kim Sooja uses this richly decorated fabric as part of an originally imagistic, now always spatial and environmental utterance. Through the quite present and simultaneously distanced engagement of cloth, she challenges us to reflection on our most basic conduct: consciousness of the ephemera of our existence, of enjoying the moment, of change, migration, resettlement, adventure, suffering, of having to leave behind the familiar.
She masterfully sets her fabrics, rich in memory and narrative, into the situation of the moment, as zones of beauty and affecting associations. With a grace that knows ever so much.
— From Welt am Sonntag newspaper, Hamburg, 2000
1999
Kim Soo-Ja's art is either some of the most humble, open, context-sensitive work that exists, or else some of the most self-consistent, implacable, and inner-directed: take your pick.
First approximation: Kim makes no objects, neither builds nor constructs, transforms nothing. She simply takes some ordinary quotidian things, namely pieces of used fabric, primarily colorful embroidered Korean bedcovers, moves them around, and places them into situations. Although these rectangles of fabric are juxtaposed with sites to which they may be alien, they neither hide the site, interfere with it, nor contest it: perhaps it would be most accurate to say they assay it. The site shows the cloth and the cloth shows the site. Nothing is ever denied. It's not that there is a "work" that can be installed in the space, and then reinstalled differently or similarly somewhere else. There is a supply of materials which the artists carries from place to place, and which she will dispose differently or similarly, depending on her perception of what is already there, a perception that may take into account aesthetic, architectural, functional, social, or any other noticeable factors.
Second approximation: the work is self-consistent, for instance, in regard to precisely the question of materials. And isn't it interesting that, in English, the word "material" means both matter or substance, generally, and cloth, fabric in particular, as though cloth were a natural synecdoche for matter. Kim is, so to speak, married to her fabric. Yes, she uses other media from time to time (video, recorded sound), but only insofar as she can deal with them as not-material. Whatever it is she's going to articulate, she's got to do it through those same means. As for implacability, these humble textiles are really loud, strident. Just as their bright colors clash among themselves, they cut against the grain of the situations in which they are placed, producing a distinct tension. For all the work's sensitivity to its varying situations, in another way what it is asserting is just the opposite, the importance of having a project that can be developed, unfolded, in as many circumstances as possible, unattached to any one of them. Just bundle up your stuff and move on. No nostalgia, no regrets, just self-containment. When I asked her, recently, about the studio she'd found in New York, having moved here at the beginning of the new year, she shrugged. "Well, since I'm not making things anymore, it's more of a symbolic studio..." And when asked by curator Hans-Ulrich Obrist to comment about her unrealized projects, she replied, "I contain my projects in my body which I find as my studio, and I don't try to remember or describe them all." A videotape Kim showed in Cities on the Move, the exhibition Obrist and Hou Hanru organized for the Secession in Vienna in 1997, and which I saw in its reduced version at P.S. 1 in New York the next year, showed the artist sitting atop a load of bright cloth bundles strapped to a truck traveling the highways of Korea: a scenario of nomadism, of endless movement, certainly, but because the camera filming it was mounted on a vehicle following Kim's truck at a constant distance, a view of immobility, of constancy as well. The artist remains as she is, allowing the landscape to move around her.
Kim, born in 1957 in Taegu, Korea, was educated both in Korea and at the Ecole des Beaux-Arts in Paris (1984-85). In France, she undoubtedly became aware of the Supports / Surfaces artists, whose analysis of painting into material components, including fabric, is echoed in her own early work. (Patrick Saytour, in particular, used readymade printed fabrics with minimal painterly intervention in ways that anticipate aspects of Kim's work.) From her years in Paris through the end of the decade, Kim's work consisted of "combine paintings", as one Korean critic called them, echoing Robert Rauschenberg's usage. In them, rectangles of differently colored and patterned textiles were roughly sewn together, and used as surfaces for drawing and painting. These works, which were usually not rectangular in format but rather cruciform, T-shaped, or in some other way irregular yet rectilinear, were hung unstretched.
In 1989, Kim began using cloth in a more sculptural way, as wrapping or sometimes as stuffing for mundane objects. With these works, the parallels with Supports / Surfaces began to diminish, while those with Arte Povera began to increase — most obviously, with Michelangelo Pistoletto's works incorporating rags. She began giving all these works the same title, Deductive Object. (An echo, perhaps, of Pistoletto's Minus-Objects?) Yet the reiterated title masks the diversity in the way the objects were made, at least from 1992 on. In some, the cloth functioned essentially as color applied to an object; these works are still indebted to the Supports / Surfaces-inflected analysis of painting (especially since the objects, among them window frames, wheels, and so on, could often easily be seen as stand-ins for the idea of stretcher bars). But in others, cloths were simply draped across objects. For instance, a Deductive Object shown in 1992 at P.S. 1 in New York, where Kim was in the visiting artists' studio program, consisted of a chair whose legs were wrapped with cloth, as with the earlier Deductive Objects, but whose seat and back were simply loosely draped with a single sheet of gaudy pink and gold fabric. It was at this time, too, that Kim sometimes began showing her cloths tied up in large bundles.
These bundles, I think, are the key to everything Kim has done since. For one thing, they definitively withdrew her use of textiles from an essentially pictorial notion of them as surfaces upon which something would be visible; in the bundles, it is more important that something is contained, that is, subtracted from the realm of the visible. They speak to the notion of potential more than to that of accomplishment, of departure more than arrival, storage rather than use, and of the body and its obscurity rather than the field of vision and its lucidity. "The human body is the most complicated bundle," as Kim says.
Kim began with an understanding of fabric as surface which developed into a treatment of it as object, and the bundles take their beginning within the field of objects, certainly, but do not end up there, and I would question whether Kim's continued use of the title Deductive Object is really justified as she is now working with situations more than with objects. Perhaps, like Lygia Clark in her last phase, it would be better for Kim to speak of "propositions" (as long as it is understood that Kim's work is not burdened with the therapeutic pretensions behind Clark's). When she unbundles her cloths and, for instance, lays them out on the tables of a museum café, as she has, for instance, at the Boymans van Beuningen in Rotterdam, or at the Setagayara Art Museum in Tokyo (for the exhibitions Manifesta I, 1996, and De-Genderism, 1997, respectively), she is hardly presenting an object in anything like the usual sense. She is decorating a space by overloading it with color, and she is displacing assumed distinctions between the realms of art and everyday life (and not necessarily in the sense of relaxing those relations: I assume that a common reaction among viewer / diners at these museums must have been a heightened self-consciousness about the act of consuming drinks and snacks, since a residual quantum of "respect" for art would have led them to be more than ordinarily careful about soiling the cloths — a care, which could well have resulted in the opposite effect, a clumsiness leading to even more spills than usual.) And not only between art and everyday life, but within different orders of everyday life: if your mother brought you up not to eat in bed, or at least to be a little embarrassed by it, then the idea that you are eating on what is in fact a bedspread and not a tablecloth may induce peculiar ruminations about the connections between what goes on in bed and what goes on at table, and even about the mixing of the various sorts of stains that can come to cloth in the two different situations.
Not only does Kim's work heighten one's sense of the tensions between art and life, and between one order of quotidian activity and another, it can heighten the tensions between one work of art and another, as I came to understand when she participated in Ceremonial, a group show I organized in 1996 at the non-profit exhibition space Apex Art in New York. Her work for the exhibition was a Deductive Object consisting of a single bright-green fringed bedspread on the floor; with the traces of its having been folded into a small square visible, it was something like a verdant landscape with a cartographer's grid superimposed on it. A striking landscape, but not a welcoming one: I had the damnedest time situating the other works so that they did not clash with its garish hue. By the time I'd figured out how to do that, I'd realized that this work, which ought to have been unrecognizable as an art work except by its context, was actually, so to speak, forcing the other works to react to it, and thereby imposing its own identity on the entire exhibition. Later on, when I gave a lecture about the show and heard myself saying that, basically, the show's subject was "folds and loose threads," I realized that I was implicitly equating the show with this one work.
"That green as the colour of a tablecloth has this, red that effect, does not allow us to draw any conclusions as to their effect in a picture," as Wittgenstein observed in his notations "On Colour". The point of Wittgenstein's remark depends on the dichotomy between the way color functions in art work and in daily life, a presumption that is somewhat surprising coming from a man who is known to have been fanatically sensitive to the aesthetics of ordinary living as expressed in, for example, architecture. Kim's humble / implacable, sensitive / detached, gaudy / austere, mundane / extravagant work reminds us that art may not be so much a separate realm as a way of posing questions to any realm in which it may occur.
— From Art/Text 65, May - July 1999
Yilmaz Dziewior (Curator of the Museum Ludwig Cologne, Germany)
1999
Cities on the Move is a globally conceived and constantly widening project by Korean artist Soo-Ja Kim being realized in different media and contexts. It consists of an 11-day performance, the two videos that resulted from it, a sound-installation, a contribution to the in-flight magazine of Asian Airlines, a catalogue, and several art exhibitions. She borrowed the title of her project by agreement with Hans-Ulrich Obrist and Hou Han-Ru, whose migrating exhibition of the same name brings together, against the background of the profound structural changes in Asia, recent architectural vision with the work of younger artists, predominantly of Asian origin.
From November 4 to 14, 1997, Soo-Ja Kim traveled through Korean cities to which she has a direct per-sonal relationship, criss-crossing her homeland from north to south and east to west as she did so. The videos of this performance show the small Bottari Truck, on the bed of which a mountain of cloth bundles (bottari) is lashed together, as it slowly makes its way through town and country. In one of the videos Kim sits atop the pile loaded onto the truck, traveling through the changing landscape. One sees the artist only as a background figure, which conveys the feeling that one is traveling in her stead through the countryside. The cloth bundles are an essential component of the performance. Classical bottari designates a bundle in which unbreakable objects like pieces of clothing, bed-linens, household utensils, and books can be kept. For the Korean critic Airung Kim, the bottari symbolizes restlessness.
In Korea espe-cially, where the population has often been forced to leave their homes in order to flee war or famine or to look for work, the bundles are historically charged and emblematic objects. They were used both by refugees and merchants, who transported their wares in them. On a metaphorical level, the bottari also functions as a signifier of mobility in unbound space, and is thus at the same time a container that includes its own contents.
With her performance, Soo-Ja Kim is not merely thematizing mobility, whether voluntary or forced by external circumstances. The textiles also refer to the condition of women in Asian society, for Korean women sew bed-linens from these pieces of cloth. These spreads, sewn by the artist herself from tradi-tional textiles, may thus be interpreted as an allusion to the discrepancy between an emancipated con-sciousness and restrictions on specific female activities. Starting from references to her own cultural identity, [Kim's] bottari join feminist concerns to very personal matters. Kim describes her motives for the use of these textiles as follows: 'One day, as my mother was sewing a bedsheet, I made a surprising discovery, whereby my my thoughts, my feelings, and my activitities of the moment seemed to come into harmony. And I discovered new possibilities for conveying buried memories and pain along with the quiet passions of life. I was fascinated by the primal, orthogonal structure of the fabric, the needle and thread moving through its smooth surface, and with the expressive powers of the brightly colored traditional cloth.'
Soo-Ja Kim has been using this cloth since the middle of the 1980s. Although at the beginning, she emphasized more strongly the abstract, formal qualities, and thus the imagistic character, of the cloth, it already contained within it memories of its work on walls, and allusions to its own past and to its former owners. Subsequently, Kim developed a stronger interest in more performative and interactive processes, as in the installations where she used the fabrics for tablecloths in the museum cafe. Viewers were also actively involved in her installation for the Kwangju Biennial, where they could walk on and take home with them pieces of cloth spread out through a forest. The once private fabric thereby became a public Memento mori. At the same time, Kim sketches out an allegory of global migration, and, by thus reflecting back on her own cultural tradition, creates work of contemporary relevance.
[Note]
[1] Kim Airung, Soo-Ja Kim: Solitary Performance with Old Cloth, in Echolot, or Nine Women on the Periphery, exhibition catalogue, Museum Fredericianum, 1998, p. 6. 2. Ibid., p. 7.
1998
To abolish the distance separating art from life is the most constant desire found in the art of this century. However this doesn't mean that art should be dissolved in life but rather the desire to link art to the concrete areas of life and everyday experience. The prestige of the artist lies in his capacity to reveal our relationship to the world and our existence in it through signals developed through reason and sensitivity.
In the 80's there was an abundance of artists who wanted to base their art on the most immediate and mundane. They rejected altogether sterile and formalism and facile expressionism. The new generation of artists started to be interested in the body, the memory, the intimacy, the vernacular, the marginal, the unstable, the despicable, and the infamous.
In Korea, Soo-Ja Kim's home country, this period was marked by the debate about cultural identity, by the criticism of formalism, by political commitment. Korean art started to reflect on the country's history, present reality and tradition. It was in this context that Soo-Ja Kim made the discovery which was to become the origin of her art.
"One day while sewing a bedcover with my mother, I had a surprising experience in which my thought, sensibility and action at that moment all seemed to converge. And I discovered new possibilities for conveying buried memories and pain, as well as life's quiet passions. I was fascinated by the fundamental orthogonal structure of the fabric, the needle and thread moving through the plane surface, the emotive and evocative power of colourful traditional fabric."
She made a complete break with established medium i.e. blank canvas stretched over a frame. From then on, her canvas was made by assembling a variety of fabrics. From the beginning of the 90's, the materialism becomes ever more prominent and the work develops a direct relation to actual space. The assembling becomes more heterogeneous and less dependent on the wall. When she establishes a relationship with the wall, it's inside it, the narrow spaces of holes and cracks. The fabric spreads out, hangs and wraps various objects. This gave rise to a series called Deductive Object. Unlike assembling built by adding elements, wrapping an object in fabric confirms the initial form of that object. Hence the name: Deductive Object. The artist analyses the important moment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aterials, the work process and the result.
The first Deductive Objects are the tools and frames covered with strips of fabric. They become bodies made of a skeleton and skin. In spite of the desire to find a new relationship between the material elements of painting, i.e. the medium and the structure, these objects are seen as fetishes. Toward the Flower (1992) is a work which synthesises assembling, sewing and Deductive Object. The emotional current is so strong that the work tends toward "Art Brut". At this precise moment, Soo-Ja Kim chooses to minimise gesture instead of giving way to the ceremonial of nostalgia and dreams. The following year she shows a piece of bedcover spread over the ground, bundles of anonymous clothes, pieces of fabric inserted into cracks in the wall. Physical structure is eliminated and the materials used consist only of the worn clothing and the bedspread. The artist gives them structure using only the ordinary, time-honoured gestures for handling fabrics: spreading, folding, enveloping, wrapping, knotting...
Thus she has undone for her own purpose the picture object and its function as a screen surface. There is no longer a question of relationship between parts and the whole, between form and substance; there is only a mobile medium which is at the same time substance and form, surface and volume. This materialistic concept of pictorial construction is close to the work of the French Supports Surfaces group. However, Soo-Ja Kim doesn't limit herself to the strictly material aspect of painting: she allows the old fabrics to tell their own story and memories.
The big rectangles of fabric used by Soo-Ja Kim are the decorative covers of Korean bedding. These bedcovers are in fact "the basic field of birth and death". In the Koreans' daily environment, these fabrics with their bright colours and symbolic motifs belong to their hidden private life. The contrast of red and green symbolises newlyweds; flowers, butterflies and birds depict a happy married life; symbols of long life, happiness, joy and riches spread like prayers all over the surface. The women make bedding for their homes using this material. They too unfold them each evening and fold them back each morning. The bedcovers are a reminder of night-time, bodies in repose, dreams, woman, and intimacy. Their manifestation is significant in itself in a society where ancestral Confucian ethics still dominate human relationships on all levels. Soo-Ja Kim spreads them on the ground and on the table; she uses them to wrap other object; she hangs them on washing lines. A square of fabric on a table shown at the PS 1 Studio, New York in 1993 has developed into a large-scale set-up at Edinburgh's Fruit Market Gallery, at the Boysmans van Beuningen Museum at Rotterdam and at the Setagaya Art Museum in Tokyo. At these three sites, she has covered all the tables in the cafeterias with her multicoloured bedcovers. Covering the table with a cloth is a universal sign of invitation.
"I tried to invite people to express themselves right on the table cloths (...) Spreading bedcovers on the tables is like creating canvas which is invisibly wrapping the whole space." Since she's used textile objects in their original state, Soo-Ja Kim seems to be interested in reducing the intervention of the artist. She allows herself to be guided by the logic of things and remains attentive to what is happening. By using banal movements of housework she creates a situation where the spectator, in turn, lives out his everyday movements and actions differently. Soo-Ja Kim's works often attract attention because of the eccentricity of the materials but they refuse to become objects in themselves, a creation. Open and modifiable, they take their part in creating a meeting place. Other examples where interaction is created are Sewing into Walking at the Seomi Gallery (1994) and her work at the Kwangju Biennial 1995. Sewing, by which means the artist discovered unrestricted and flexible medium, is freed of its function of linking separate pieces and begins to be perceived as a dallying between two sides of a fabric. When sewing is viewed in this way, the universal symbol of feminine work represents all repetitive and reciprocal movement — walking, breathing, seeing and communicating. The first set-up Sewing into Walking is conceived as a successive fitting together of spaces and times. The bundles containing clothes, the video screens which the artist calls "bottari of images", the clothes sewn on the ground, and the spectator whose body is considered the most complex bottari, are reflected in one another creating the effect of being lost in space. This labyrinthine device can only work with the spectator's participation.
At Kwangju, the set-up is outdoors. The artist places at the spectators' disposal 2.5 tons of worn clothes and numerous bundles of clothing. They are invited to walk on the path covered with clothes and are free to touch them or even to take them. As he walks, the participating spectator forms the imaginary seam which links the memory of the site (the Kwangju massacre) and each individual's history.
The bottari which has become Soo-Ja Kim's trademark is a bundle containing objects which are usually flexible and unbreakable such as clothes, bedding, books. The bundle is a form of improvised container which is very common in Korea; as with the idea of a bundle, bottari implies that it wraps things of little value. But for those leaving their homes, their bundle contains the absolute essentials. The artist remembers discovering bottari:
"Everyone has bundles around. I had them in my studio before I started to incorporate them into my work, but I didn't notice them. In 1992, when I was working at the PS 1studio, I happened to see a bundle put there. I put clothes in a bundle and didn't realise it. The bundle was something new to me. It was a sculpture and a painting."
What fascinated her in this mundane artifact was firstly the possibility of moving from a flat surface to a volume simply by making knots. But the bottari opened up an unexpected field. Unlike the ready made article, Soo-Ja Kim's bottari is a real bundle fulfilling its function of container and at the same time a symbolic object conceptualizing the mundane gesture of wrapping with a square of fabric. Its function and status are not changed for good. The border between the bottari-artefact and the bottari-work of art is mobile and temporary. Even if Soo-Ja Kim's bottari is in itself an expressive object by its form gathered in towards the middle, and its bright colour it only becomes a work of art when set in context (installation).
It should be considered as a state or a moment rather than a fixed thing. The video performance Lying on the Nature (1994) shows the artist picking up multicoloured bedcovers from the floor, making them into a bundle and leaving the scene. The film doesn't show the arrival at the site but it is easy to imagine that the piece shown is symmetrical to the piece we don't see. The bundle of bedcovers will be opened somewhere, its contents spread out and then again gathered into a bundle. Here the transformation is continual: repetition doesn't mean a return to the original state. Life unfolds in perpetual movement.
The bottari is the symbol of wandering. For Koreans who have moved home so often to flee war and poverty and also to find work, bottari are part of the country's history scenes. We remember bottari seen on the shoulders of refugees, on the heads of traveling merchants, on removal lorries. The bottari is a form of mobility in an unlimited space and at the same time a receptacle closed round its contents. With just this difference, it asks the sometimes worrying question about the journey's purpose: where are we coming from and where are we going?
In November 1997, Soo-Ja Kim made a performance trip across her country, North to South and East to West with a lorry loaded with several dozen bottari. From her 11-day trip she made a 33-minute film: Bottari - Truck. The view of the lorry going through towns and countryside is accompanied by the artist's voice repeating the name of the place she's travelling through. There is something of the ceremonial in this call: incantation or anamnesis bringing the past up to the present. But the lorry doesn't stop either in the past or the present; it continues on its way. Even if it returns to the starting point, it must go on. The artist says that Bottari - Truck is in memory of her family who moved house frequently and also that it is her story as an artist going from town to town to discover new places and meet different people. This performance, which in fact shows pure mobility, causes us to reflect on contemporary society whose technology and networks are creating nomadism on a planetary scale.
From sewing, the secular, woman's work, Soo-Ja Kim develops a spatiotemporal dimension in which all vital, social or imaginary activity is inscribed. Through the fabric she forges a link with the past and expresses the memory of women and of the community without falling into nostalgia. Whilst apparently celebrating colour and matter, she develops her reflection on the invisible links which weave today's world. By doing this solitary performance with old fabric she opens up to us places where we can meet the Other and can find ourselves.
[Notes]
[1] Artist's notes, catalogue of a solo exhibition, Hyundai Gallery, Seoul, 1988
[2] Interview by Hans-Ulrich Obrist, Flash Art p. 70, Jan. - Feb., 1997
[3] Ibid p. 72
[4] Bottari is a Korean word which means a bundle. As this refers to a typically Korean bundle, it would seem more precise to use the original term. In addition, the Toronto Dance Theatre gave the name Bottari to their show created with Soo-Ja Kim's collaboration. The show was produced at the Premiere Dance Theatre at Toronto from Dec. 2 no 6, 1997.
[5] Interview by Bahk Young-Taik, Space, p. 117, June 1996.
— From the exhibition Catalogue 'Echolot' at Kunsthalle Fredericianum, Kassel, 1998. Translated by Agnes Flandrin
Kim Airyung was born in 1957 in Korea and lives and works in Paris since 1979. After BA at Hong Ik University, Seoul and finishing her MA at Ecole National Superieure des Arts Decoratif, and Esthetics at Paris I University for BFA and DEA, she continued her study in Auoditor in History and Theory of Art at Ecole des Hautes Etudes des Sciences Sociales, Paris. As a Free-lancer curator and editor, she is in charge of the artistic director of the Editions Cercle d'Art, Paris, and curated numerous shows such as 'Un lieu, sept espaces' 7 young artists from Korea and France, 1996, Manufacture des Oeillets, Ivry-sur-Seine, France, 1997, 'Open Air Sculpture Symposium', Tongyong, Korea, 1997, 'Resonance-Korean contemporary art' OECD-Korea, Paris, 1998 and worked as the director of 'Suite coréenne' Korean year of International Geography Festival, Saint-Dié-des-Vosges, France, 1999, Assistant curator of 'Gwangju Biennale', Gwangju, Korea, 2000, artistic director of 'Busan Biennale', Busan, Korea, 2002. Her recent projects are 'In Movement-Unesco salutes women video artists of the world', Unesco, Paris,2004 and 'Officina-Asia' young contemporary art from China, Japan and Korea, Bologna Galleria d'arte moderna, Cesena Palazzo del Ridotto, Rimini, Palazzo dell'Arengo in May 2004.
Interviewed by Hans Ulrich-Obrist (Curator based in Paris, London and Vienna)
1998
Hans Ulrich-Obrist
Your "Cities on the Move" project takes place on several layers: as a real-time event, as videos, as a sound installation, as an exhibition on airplanes, as a book. Marcel Broodthaers said, "The Museum is one truth which is surrounded by many other truths which are worth being explored."
Kimsooja
Cities on the Move is our mind and spirit, sewing this whole globe. It is my oxygen - it is my being.
Hans Ulrich-Obrist
Alighiero e Boetti wrote, "It all moves across waves and waves are made of high and low intervals, pauses, and silences."
Kimsooja
Across the waves of mountains and valleys, across the waves of our body and spirit, a breath.
Hans Ulrich-Obrist
Do you see the "Bottari Truck" as a social sculpture?
Kimsooja
Bottari Truck is a loaded self, a loaded others, a loaded meanings, a loaded history, a loaded in-between.
Hans Ulrich-Obrist
Everything is in-between.
Kimsooja
Nothing is in-between.
Hans Ulrich-Obrist
Time has become more important than space throughout the '90's in art. Could you tell me about the way your "Cities on the Move" projects in progress are happening in time — rather a process than a product, or rather oscillating between the process and the object?
Kimsooja
Time is mental space we can never grab, as physical presence is space we can never escape from. We can always recall the time when we want, but can never locate our body the moment we want to.
Bottari Truck is a processing object throughout space and time, locating and dislocating ourselves to the place where we came from, and where we are going to.
Hans Ulrich-Obrist
Could you tell me about the "Cities on the Move" sound piece you created in Vienna? You told me that you had previously recorded the sounds of "Cities" in Asia.
Kimsooja
Since 1993, I used to record the environmental sound including my footsteps and vehicles, people chatting on the street and in the restaurant, as well as the sound of train stations in New York, Paris, Tokyo, Milan... etc.
Actually, since my stay in New York in 1992, I was very much aware of all those different languages and communication sounds weaving in the public spaces. Once we had a table of friends from Russia, Finland, Ireland, Norway, Germany, France, England, Korea...in a Vietnamese restaurant. It was great to be in the middle of these languages sharing food together, and I recorded that day's sounds on the table.
For the sound piece at the Secession, I recorded a series of sounds from a subway circulation in Seoul from one station to another, including sounds of compartments of the train, station announcements, people's footsteps and conversations with continuous chattering sound of the train. In this piece, I tried to relocate this drawing sound of Seoul to the Secession space, Vienna, which I perceive as another kind of "Bundles on the Move."
Hans Ulrich-Obrist
Who are your heroes?
Kimsooja
Unfamiliar word for me... but if there are, they will be anonymous victims of heroism, hierarchy, customs, fixed ideas, discrimination, ignorance, and untruth of the society. It could be me, it could be you.
Helio Oiticica referred to marginal heroes, Deleuze to minor heroes.
Hans Ulrich-Obrist
Could you tell me how the magazine exhibition on all Asiana Airlines happened? Through the fact that you exhibit on all board bulletin magazines, the show is on view 1000 meters altitude. Andreas Slominski called the page of a board bulletin on a plane "A Flying Carpet" in his show for Museum in Progress on board Austrian Airlines.
Kimsooja
Asiana Airlines in-flight magazine project was possible with the support of SSAMZIE, which asked me to do an advertisement in Asiana Magazine for their company with the image of my work. A plane is an interesting object and site which connects one city to another, containing people on the move. So instead of doing a usual advertisement, I asked the company if I could do this as my Cities on the Move project and they accepted my idea.
I've been thinking of realizing a project in the plane for many years — it could be on monitors, magazines, seats, carpets, foods, sounds, costumes of the crews in the plane. It is always exciting to imagine the incredible altitude from the plane — also from the ground.
Hans Ulrich-Obrist
Has the art world in Korea changed since the economic crash last year? I heard from Chitti-Kasemkitvatana that in Bangkok there are recently lots of new initiatives popping up in empty buildings, but also exhibitions in cafes. Are there similar new structures in Seoul?
Kimsooja
There are some cafes where concerts, performances, exhibitions are happening, yet more on commercial levels... but I have a feeling that these will bring more alternative space activities in Seoul. Artists whose work is not saleable have no place to show their work.
Hans Ulrich-Obrist
Do you have unrealized projects? Projects which were too expensive to realize? Projects which were censored? Projects you forgot to realize?
Kimsooja
There are projects which were not possible because of economics, time, space, and technical problems. Some forgotten projects will come back to my mind when it is needed. I contain my projects in my body which I find as my studio and I don't try to remember or describe them all.
Hans Ulrich-Obrist
You exhibit in museums, on the street, in an airplane magazine, etc. etc. What seems very important with your "Cities on the Move" project is that there is no hierarchy of these spaces. As de Certeau said, "Space is practiced place (or vice versa)."
Kimsooja
If Bottari Truck is a bundle with clothes, an airplane is a bundle of people, same as the compartment of a subway train. Bottari is everywhere, body and mind, womb and tomb, globe and universe, bundle of bundle of bundle... folding and unfolding our mind and geography, time and space.
Hans Ulrich-Obrist
Do you like to be on planes?
Kimsooja
I like the non-gravitation like state of time and space on the plane where I situate myself nowhere, in-between, and apart from all relationships... but it's phobic.
Hans Ulrich-Obrist
About mobile housing, Buckminster Fuller made a statement for housing as a service rather than a propriety.
I just saw your catalogue from Kassel. Could you tell me about the show there?
Kimsooja
I made three different installations in the Museum Fridericianum. One with bundles, another space with video and sound, and in the tower space as a performance piece with covered mannequins and the video documentation of performance. For the Bottari piece, I installed 13 Bottari in a room which has a small window toward outside.
The video piece titled Sewing into Walking - Istiklal Caddesi was the one I made in Istanbul last year. I captured people's walk coming and going on Istiklal Caddesi in Taxim, by just locating the camera beside the tramway, and I left it for an hour without changing any format, angle, or focus. This is an "Image Bottari", wrapped real people's walk by looking through the camera lense and capturing... and I put Tibetan monk chanting sounds onto these images of people.
The third one was a performance piece in relation to the covered figure in the audience, installing mannequin which was fully covered with used bed covers in circular structure of arrangement onto its body from the top to the bottom, in the middle of the cross-shaped room in the tower. I see the audience as performers who are trying to figure out this feature by peeling off these barriers of fabrics which hide the figure by "looking." So the title is Encounter - Sewing into Looking.
It was my intention to set up an unmovable figure as a performer instead of myself, so that people automatically become performers by their movements. I tried to create a kind of tension between audience, and the uncertain figure, while the audience looks at the covered uncertain figure waiting for a performing movement from it which isn't supposed to move. This is the moment when a strange encounter is happening between this unknown figure and the audience with intense look.
Hans Ulrich-Obrist
How do you see the bundles in time? Is it a personified abstraction?
Kimsooja
Bottari in time, Bottari as personified abstraction... Bottari is an abstraction of a personage, an abstraction of society and history, and that of time and memory. It is past, present, and future.
— From Cities on the Move artist book published by the artist in the occasion of Cities on the Move exhibition curated by Hans Ulrich Obrist and Hou Hanru, 1997.
Hans Ulrich-Obrist (Curator based in Paris, London and Vienna)
1997
Hans Ulrich-Obrist
How did you start working with clothes?
Kimsooja
In 1983, I spent some time sewing bed covers with my mother. At that time, I was looking for a proper methodology with which to examine both the ideas of surface and life. Painters always struggle with surfaces which, to me, seem like walls that we can hardly overcome. I wanted to overcome that wall and to reach the other side of its surface. When my grandmother passed away, I saved all the traditional Korean clothes she used to wear. They reminded me of her presence. Then, when I decided to create my own form of art by sewing, I started using these worn clothes as my preferred material.
Hans Ulrich-Obrist
Was your grandmother close to you?
Kimsooja
Yes, her fascination with fabrics influenced me a lot; then, my mother taught me how to represent this closeness through my work. One day, while I was sewing a bed cover with my mother, I put a needle right in the middle of the texture of the fabric. At that moment, I realized that I had found the methodology I was searching for. In the texture of the fabric I discovered the answer to all my questions; in sewing I learned to nurture my emotions and pains.
Hans Ulrich-Obrist
I'm very interested in the different uses of the same object and also by the different relations to clothes in eastern and western contexts. In Japan, when a grandmother or grandfather dies, the family saves the clothes: throwing away the clothes of a dead person is a taboo. In Europe it is very different, people want to get rid of them as soon as possible. How is it in Korea?
Kimsooja
In Korea they usually ceremonially burn cloths used by the dead person. But it really depends on the family; in my case I wanted to keep all the clothes with me.
Hans Ulrich-Obrist
You often mention the relation between painting and sewing. Could we say, in terms of material too, that painting is a very male dominated form of expression?
Kimsooja
Yes, I think so. I was not conscious of doing "feminist work." But of course I do, as I live as a woman artist in a country like Korea. For me, the most important material is my life. I cannot escape from the feminist issue because that is my reality, but I don't want to define myself as a feminist artist; I would like to reach the totality of life and art.
Hans Ulrich-Obrist
The issue of women artists is now emerging in Korea too. When I first visited Korea, it was very obvious that the most interesting work within the younger generation of contemporary artists, was being done by women...
Kimsooja
Yes, this is a very recent development. I, for example, try to solve my own difficulties and pressures within our society through my work, in a very indirect way.
Hans Ulrich-Obrist
Tell me more about this notion of "wrapping the bundle."
Kimsooja
In Korean society, when we say "wrap the bundle," it generally means leaving or moving. My bundles, instead, have nowhere to go. Instead of wrapping the bundle for leaving, I prefer to accumulate them.
Hans Ulrich-Obrist
The issue of clothes and the choice of material lead, somehow, to the question of the ready-made. You said that you exhibited clothes that have all already been used.
Kimsooja
1 usually wrap clothing that has been used; so, in a way, it's like hugging the people who wore them.
Hans Ulrich-Obrist
The frequent use you make of bedcovers is striking. The bed is basically the place where we are born and where we die.
Kimsooja
Yes, it is the basic field of birth and death. And the human body, the most complicated bundle, lies on and under this bedcover. Making bundles is like wrapping bodies and souls within your own skin. The skin represents another kind of fabric, while the bedcover is like our skin. It protects and isolates you from the world outside. It is hugging; it is rejecting.
Hans Ulrich-Obrist
When you showed me the images of the work you exhibited at the Kwangju Biennial, the skin seemed to me to be a particular kind of fluid. The skin represents the barrier from the inside to the outside; but the skin is also a porous surface...
Kimsooja
Yes, it is always a question of going back and forth, in-between the woven fabric which is made of horizontal and vertical structures. Also, the process of sewing is composed of a series of vertical and horizontal acts, moving against and beyond the fabric itself.
Hans Ulrich-Obrist
It is like sewing through boundaries.
Kimsooja
When you see the sewn work from the surface, it looks like a complete structure. But when you see the whole series of processes, they remind you more of a circulating spiral shape. My work, which is wrapping the fabric on the object, is a similar process to sewing. Sewing is like wrapping fabric with threads. Sewing also entails a series of circular processes, just like my objects and my installation with wrapped rings. This time, the ring sews the space itself.
Hans Ulrich-Obrist
These big rings can be moved by people. It is very interesting to compare them to sewing: going from plane to round implies a transition. Could we say that the rings mark the moment when you actually go into the space and transform it in an installation?
Kimsooja
For me the process of wrapping and sewing is like holding or hugging with the intention of keeping things to myself. Whenever I make bundles, it's like inviting things to become part of my skin. Things can be visible but also invisible. It is really a symbolic act, more symbolic than actually wrapping and binding.
Hans Ulrich-Obrist
When I saw your bundles I thought of migration in terms of homelessness, refugees, or immigrants of any sort, a nomadic population with all of their objects and belongings carried in the bundle.
Kimsooja
In the moderm society, bundles have been changing into bags. For me this is like a symbolic ghost that can't be thrown away; a ghost representing our life. A bundle is the minimum we carry through our lives. When I was little, we moved a lot from village to village, city to city, and it influences my work. This is a nomadic body of work.
Hans Ulrich-Obrist
Jonas Mekas distinguishes the voluntary migrant from the involuntary migrant, the refugee, the person who is not able to choose his/her emigrating destiny. In a conversation I had with Paul Virilio, he talked about all these travelers, homeless, refugees, and about an increasingly mobile society. How do you feel about this notion of migration right now?
Kimsooja
It is linked to the opening up of a world of information and a world of interaction between cultures and people. A global sewing... But it seems also to be a question of the hesitation of living here or not, of being or not being; that is why there is all this moving around.
Hans Ulrich-Obrist
So one could say that, somehow, it's all a general "in-between-ness." Jean-Luc Godard said: "everything is in between."
Kimsooja
I think so too. We can be in, we can be out. I wrap my bundle, I open it up, as I need... When I feel full of energy, I open up my bundles, as I need them, to liberate and release my body. When I did a wall piece at P.S.1 in New York, I put small pieces of fabrics into the holes of the wall and it was like burying fragments of my body. After taking out the fabrics, I felt as though I was being released from the wall, from the intensity. I am very fascinated by that kind of energy that flows in between an object and myself.
Hans Ulrich-Obrist
In your most recent work, the object seems always related to the subject. People are encouraged to walk on your piece, or to open the bundles, where they are allowed to put some of the clothes and make their own monuments. In the piece you made in Edinburgh for the cafeteria you covered the table with bed covers: the objects seem increasingly placed in relation to people.
Kimsooja
You are talking about Information and Reality, the show at the Fruitmarket. I tried to invite people to express themselves right on the table cloths, communicating, eating, drinking, arranging glasses and dishes... Spreading bedcovers on the tables is like creating a canvas which is invisibly wrapping the whole space.
Hans Ulrich-Obrist
How did it happen in the Kwangju installation with millions of people walking on it? Did it really work?
Kimsooja
I think so. I didn't imagine that so many people could interact within the installation. The visitors opened up all the bundles and took the clothes wrapped inside. At the beginning, I brought 2.5 tons of clothes, and almost 1 ton was taken away by the audiences. This was an outdoor project, but when I presented it in a museum the audience touched and took some fabrics from the bundles, even while the guards were there.
Hans Ulrich-Obrist
At the exhibition in Nagoya you are showing the same thing in three different forms.
Kimsooja
On the floor at the entrance, I put several piles of used clothes; in between I installed some bundles; then I covered the piles with used Korean bedcovers: it was like putting my hands on dead bodies. For me, these different stages of using fabrics represent three different kinds of planes. But they also represent three different stages of mind.
Hans Ulrich-Obrist
Were the transitions fluid?
Kimsooja
Mostly. I also put Japanese clothes like Kimonos, and ordinary everyday Japanese clothes together, and I wrapped the bundles with Korean clothes. The day after the opening, somebody, I don't know who, came and spread one big sheet of Japanese cloth on the piles.
Hans Ulrich-Obrist
On the Korean clothes?
Kimsooja
It seemed like that, yes.
Hans Ulrich-Obrist
Were they initially separated?
Kimsooja
There were some Korean and Japanese clothes mixed together, but I think he or she considered it as a nationalistic statement.
Hans Ulrich-Obrist
When I saw your bundles, I clearly understood that your work deals with the concept of participation. This is that notion of object-subject that, as we said, can he found in your work.
Kimsooja
The clothes spread on the mountain hill in Kwangju are meant to be like one big sheet of fabric covering nature. I let people walk on this fabric which is somewhere between nature and the body. Here our body represents the needle with which I am sewing the fabric of nature.
Hans Ulrich-Obrist
I can see this notion also in those big photographs where the clothes seem to be like an organic element.
Kimsooja
In the work I did in 1994 for the show Sewing into Walking in Seoul, I tried to connect the concept of "sewing" to that of "walking." I transferred my concepts from the field of painting to that of daily life.
This text was published in Flash Art, Vol. XXX No.192. January - February, 1997.
Hans Ulrich Obrist was born in May 1968 in Zurich, Switzerland, and currently lives and works in Paris. In 1993, he founded the migratory Museum Robert Walser and began to run the Migrateurs programme at the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where he now serves as a curator for contemporary art. He is editor in chief of the hybrid artist pages Point d'Ironie, published by agnés b and begun in collaboration with her in 1997. He has been a frequent curator for the Museum in Progress, Vienna and lecturer at Facolta delle Arti, IUAV in Venice. Accompanying his curatorial projects, he has edited the writings of Gerhard Richter, Louise Bourgeois, Gilbert and George, Maria Lassnig and Leon Golub. The first volume of his ongoing interview project was recently collected in Hans Ulrich Obrist: Interviews (Milan: Edizioni Charta, 2003, produced by Pitti Imagine).
Interviewed by Park Young Taik (Senior Curator of the Kumho Museum of Art)
1996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Park Young Taik
Kimsooja
— This is a revised version of an interview first published in Korean and English in SPACE(June 1996), No.344, pp. 112–119. It is republished here with the kind permission of Park Young Taik.
Interviewed by 박영택 (금호미술관 선임큐레이터)
1996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박영택
김수자
— SPACE(June 1996), No.344, pp. 112–119.
Interviewed by Hwang In
1994
Hwang In
I’d like this interview to address your ideas of the art world, your peers, and interpretations of art and life as they intersect. To begin with, the title of the installation exhibited at Gallery Seomi, Seoul, is Sewing into Walking (1994). Can you explain the title and the meaning behind the work?
Kimsooja
Sewing into Walking is an installation that combines my sewn works from 1983 with my Bottari works from 1992. The concept of sewing is transformed by walking, with the viewers acting as the needle that connects and sews the clothes that are laid on the gallery floor. This experience will allow the viewers to experience sewing in their conscious state.
Hwang In
On the video monitors, you are seen walking along a road toward Mount Mai in the distance.
Kimsooja
In past exhibitions, my sewn works were physically made with needle and thread. In this exhibition, my body acts as the needle, sewing together the fabric of nature. With my walk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round and my breathing process is comparable to the in-and-out motion of a threaded needle. Before, while sewing, I walked in my conscious state; now, I sew in my conscious state while walking.
Hwang In
Can you explain how your work developed and transitioned from your sewn works to the current “walking” works?
Kimsooja
Working with old and used cloth is my way of connecting with life. When I first worked with cloth, I accepted it as a two-dimensional structure. I was absorbed in the process of identifying the systematic structure of cloth, with shapes that were horizontal, vertical, cruciform, and T-shaped. As I continued my sewn works, I began to simplify and pare down the colors and patterns; as a result, the cloth’s material quality was foregrounded. I experimented and assembled sewn works into square and circular shapes, as well as wrapping daily objects, thus transforming them into a tableau or sculpture. This way of working is a way of connecting to life and nature; I think of this process as a logic of desire, not a certain logical conclusion.
Hwang In
Your work has transitioned from two- to three-dimensions, as well as transforming space. In this current exhibition, your body alters the space, creating a different energy. Perhaps I could call this “the artist’s entrance into space”?
Kimsooja
Certainly. I needed to reinterpret the gallery space to fit my work, or look elsewhere for a more appropriate space—which is why I chose the traditional village, Yangdong near Gyeongju, to be the place I would install the Bottaris, and Oksanseowon Valley and Mount Mai to install used bedcovers and have my walking performance. The encounter with nature was very meaningful to me, so I wanted to think of other ideas where I could make the natural landscape in the gallery space. As a result, the concept of “image bundle” led to the use of TV monitors in my work.
Hwang In
In Sewing into Walking, monitors are lined up like trees on an avenue with used clothes laid on the ground to form a path or road. As viewers walk along the path toward the corner of the room, they encounter five monitors, stacked on top of each other with one Bottari at the very top. On one of the monitors, a scene of the sound installation in one room appears within a scene of the second room. Can you elaborate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spaces?
Kimsooja
The installation I created in nature are “wrapped” on the monitors that are installed on the gallery floor. The first space is wrapped by the Bottari of the second space by means of a closed circuit camera. Installations in the second room and the monitor, televising the first room, are seen on another closed circuit camera in the second room. Thus viewers going into the gallery are able to stand in front of the monitors and see their own backs. That is how I try to convey the two spaces through several processes of wrapping.
Hwang In
Regarding your Bottaris, sometimes you would spread them out flat like a bedcover and at other times, you wrap them up in a bundle. Can you talk more about the concept behind your Bottaris?
Kimsooja
A bottari can be wrapped or unwrapped. I consider the human body as the most complicated bottari. Just as a bottari can be wrapped and unwrapped, my body can stay and leave in a continuous manner. So cloth symbolizes skin by creating a border between the inside of the body and the outside. The relationship between tension and relaxation and the dual structure of working may confuse viewers; however, I’m not perplexed at all, because all this happens inside my body.
Hwang In
As wrapping and unwrapping of bottaris can symbolize a body staying and leaving, can’t sewing also belong to the same category?
Kimsooja
Yes, sewing is like the act of breathing or communicating. I would move the threaded needle into the rear side of the cloth and then the needle’s point pushes upward, towards the side that faces me. Similarly, in conversation the same process takes place continually, where the act of speaking is enacted back and forth between two people. It is an in-and-out act or movement.
Hwang In
The art we have seen so far requires the existence of concrete objects, whether they are two-dimensional, three-dimensional, or an installation. These concrete objects can contain the spirit of the artist’s body, but they do not identify the artist. Your work, transcending the boundary of a gallery space, is attributable to your identity. Conversely, the space of working is expanded without limit, inevitably, causing the artist to be completely immersed in the creative process. This is seen as a new effort to dismantle the conventional conflict between the artist and the artist’s work. As a result, art is closer to the human body, like music or dance. This attempt may appear to relate to the culture of nomads; it could be called nomadic art.
Kimsooja
Maybe so. I have always worked in a comprehensive manner to connect closer to life. Artists are the ones who have overcome their own contradictions, desires, and limitations with their artistic language. The formation of an artistic language is created through the artist’s solitary and intimate encounter with the world.
Hwang In
Another element of Sewing into Walking is the introduction of sound. How do you interpret the sound of the first space and the thumping sound in the second space?
Kimsooja
The thump sound is created by placing a bottari on the ground of a traditional Korean house; it is connected to the monitor of another room. The sound symbolizes the burden of life as I experience it. In the next room, a popular jazz song and applause are interpreted as a serious appeal to each bottari and also a gesture to lighten the burden of life.
Hwang In
Part of Nina Simone’s concert performance was played repeatedly. Do you have a special reason for including this?
Kimsooja
I feel that she interprets songs, like “Ne me quitte pas” an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with their themes of ordinary life, in a raw and honest way. I wanted to capture her passion for life and have part of her performance interact with the Bottaris. The concert and the thumping sounds of bottaris falling are good to be heard together and separately in each room. In the future, I would like to use a female black singer’s performance for a sound piece, more realistic and beyond racism.
Hwang In
After speaking with you, I find that your work has a dual meaning. Although it seems to be an awkward encounter at first, one image permeates another image, thus creating a new concept. That’s the beauty of formative art, isn’t it? Today’s conversation may be as light as a stitch in sewing, but I hope that it will be the place a needle must pass through.
— Kimsooja: Interviews Exhibition Catalogue published by Verlag der Buchhandlung Walther König in association with Kunstmuseum Liechtenstein, 2018, pp.15-18.
This is the revised version of an interview first published in SPACE, (January 1995), pp. 35–37. It is published here with the kind permission of Hwang In.
인터뷰: 황인
1994
황인
오늘 이 대담에서는 김수자씨 개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조망은 물론이려니와 이를 통해 우리 동세대가 갖고 있는 미술에 대한 공통된 관심과 해석, 더 나아가서 미술과 삶이 본질 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그 지점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려 합니다. 우선 이번 서미갤러리에서의 설치작업의 제목이 「Sewing into Walking」 이라고 되어 있는데요. 그 제목과 작품의 디스플레이에 대한 개인적인 내력부터 설명해 주시지요.
김수자
사실 이번 서미갤러리에서의 설치 작업은 83년 이후 지속해오던 바느질 행위(Sewing)와 92년도 이후 발표해 온 보따리 작업에 대한 재검증이라고 할 수 있고, 「바느질 한다(Sewing)」라는 개념을 「걷는다(Walking)」 라는 개념으로 전환, 내지는 확대해석하면서 관객의 신체라고 하는 또 하나의 걸어가는 보따리를 등장시켜 바닥에 깔린 와이셔츠를 밟아 들어가며 의식 속에서의 Sewing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입 니다.
황인
이번 전시의 제목이 Sewing into Walking이고 실제로 작가가 멀리 마이산(馬耳山)이 보이는 길을 계속 걸어가는 모습이 모니터에 보이던데요.
김수자
전에는 실과 바늘로 천을 꿰매었다면, 이번에는 내 몸(body)이 하나의 자연을 꿰매는 침이 되어 자연이라고 하는 드넓은 천을 낸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자연을 걷는다고 했을 때, 한발이 착지해서 다른 발로 옮겨지는 연속 과정에서의 대지와 우리의 신체와의 호흡관계를 땀의 이동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전에는 바느질을 하면서 의식속에서 소요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걸어가면서 저의 의식 속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황인
그러면 여기서 처음의 평면 천작업이 최근의 Walking으로까지 진행된 경과를 단계별로 설명해 주세요.
김수자
처음에는 천을 평면의 구조로서 먼저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그때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었던 오래되고 낡은 천을 사용했음은 삶에의 애정을 동반한 것이었지만요. 말하자면 천의 조직적 구조와 바느질행위의 궤적이 갖는 수직 수평 구조, 그리고 십자형이나 T자형등이 갖는 전체 구조와 바느질 행위의 자기동일성에 몰두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다가 천위의 채색이나 드로잉 이 차차 소거되면서 천의 물질성이 더 강화되고 사각형태로 부터 원형에 가까운 천의 아상블라주(Assemblage), 그리고 일상의 오브제를 천으로 감는 작업으로 전개되면서 점차 저의 작업이 삶의 공간을 향하여 원운동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최근 다시 자연으로 이어지고 있구요. 그런데 그러한 과정을 저는 어떤 논리적인 귀걸이라기 보다 욕망 혹은 감성의 논리로 보게 됩니다.
황인
그렇게 보면 김수자씨의 작업은 단순한 평면에서 물질성이 강화된 평면으로, 또 그 물질성이 돌출하여 입체로 그리고 보다 큰 설치공간으로 이어졌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신체가 공간에서 큰 변화를 보여준 것같습니다. 이를테면 작가가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는 표현이 가능할른지요?
김수자
네. 더이상 무엇을 만들어 전시장에 놓 는다는 것에 관심이 없어진 이후 '화랑'이라는 인위적인 공간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저는 화랑공간을 가장 잘 해석해 내던가 그렇지 않으면 가장 적절한 그릇, 즉 공간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보따리가 놓일곳, 이불보가 펼쳐질 장소, 또 신체가 걸어갈 길을 찾은 곳이 경주 부근의 양동리 한옥마을과 옥산서원 계곡, 그리고 진안 마이산 등이었습니다. 자연과의 만남이 제게는 새로운 의미와 소중함으로 다가왔고 이 자연을 화랑공간으로 싸올 방법이 없을까 생각한 끝에 TV모니터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지 보따리 개념으로 TV모니터를 차용한 것이지요.
황인
와이셔츠가 깔린 바닥에 모니터가 가로 수처럼 길을 내주고 있고, 그 길을 따라 걸어들어가다 보면 코너에 보따리를 인 다섯개의 TV 모니터가 탑모양으로 쌓아 올려져 있더군요. 또 한 첫번째 보따리와 소리 설치장면이 감시용 카메라로 잡혀져 두번째 공간의 정경과 나란히 모니터에 나타나고 있는데요, 그 두 공간의 관계에 대해 좀 설명해 주시지요.
김수자
말하자면 야외에서의 행위와 설치작업이 바닥에 놓인 TV모니터에 싸여 (wrapping) 있고, 첫번째 공간이 C.C 카메라를 통해 두번째 공간이라는 보따리에 싸여진 것이 됩니다. 그리 고 두 번째 방의 설치물과 첫번째 방의 영상이 나오는 TV모니터가 모두 두번째 방의 또 다른 C.C 카메라에 잡혀서 영상화됩니다. 그럼으로 해서 걸어들어가는 관객은 자신의 뒷모습과 마주서게 되는, 다중의 wrapping을 통해 공간 전체를 조망해보려 하였다고나 할까요.
황인
말머리를 조금 돌려서 보따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것을 펼치기도 하고 묶기도 하던데,
김수자
보따리는 쌀 수도 있는 만큼 풀 수도 있 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 몸 자체를 가장 미묘한 보따리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보따리를 싸고 풀듯이 내 몸(Body) 역시 끊임없이 머물고 떠 납니다. 말하자면 천이란 우리몸의 안팎을 경계짓는 피부와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혹, 이러한 긴장과 이완의 관계, 작업의 중층구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혼란을 야기시킬지도 모를 일이지 만 사실 제 자신은 전혀 혼란스럽지가 않습니 다. 모두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황인
그런데 보자기의 풀고 묶음이 만남과 단절을 의미하듯이 Sewing도 같은 작업으로 엮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김수자
Sewing은 호흡 내지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같은 것입니다. 내가 정확하게 한 바늘의 뜸을 짜서 천이라는 경계의 배 면으로 꼭 찔러 들어갔을 때 바늘 끝이 다시 내 게로 되돌아오는 것처럼 우리가 대화할 때 그런 작용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목격합니다. 우리가 「말한다」는 행위, 또는 「바라본다」 라고 하는 행위가 바로 끊임없는 Sewing 아닐까요?
황인
우리가 이제껏 보아오던 미술이란 그것 이 평면이든 입체이든 혹은 설치든 그것은 구체적인 물체의 담보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작가의 신체를 이미 떠난 어떤 구체적인 존재들의 집합이 되겠지요. 아무리 거기에 작가의 혼이 배어있다고 해도 작가자신과는 동일시 할수 없는 것들이지요 그렇다면 김수자씨는 화랑이라는 전시공간을 떠남으로해서 오히려 자신의 작업을 자신의 인격속으로 끌어들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뒤집어서 작품의 공간을 무한히 확장한 결과로 작가가 작품속으로 스며들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껏 관행되어오던 작가와 작품의 대결구조를 해체하려고 하는 새로운 노력으로 보여집니다. 그것은 미술이 음악이나 무용처럼 신체에 훨씬 가까이 다가서는 양식을 취하게 되는 셈인데, 그 결과는 질량을 점점 가볍게 벗어버 리는 문화형식 이를테면 유목문화의 양식에 접근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떠돌이의 예술이라고나 할까요.
김수자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저는 삶. 즉 작업에 전존재로서 총체적으로 다가가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또한 예술가란 자신의 모순이나 욕망, 그리고 한계를 예술적 언어로써 극복하는 장르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조형 내지 예술적 언어들은 작가와 세계와의 고독 하고 은밀한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고요.
황인
마지막으로 이번 설치의 또다른 특징적 인 요소로 소리의 도입을 들 수 있겠는데요. 첫 번째 공간에서 들리는 노랫소리와 두번째 공간 외 「털썩」하는 소리의 반복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김수자
한복 방의 TV모니터와 연결된 보따리를 들고 들어와 한옥마당에 털썩 떨어뜨리는 소리는 삶의 무게를 내 가슴에 던지는 운명적 행위를 소리 메시지로 전달하는 것이라면 옆방의 사운드, 즉 풍속적인 재즈의 노래와 박수소리는 보따리 하나하나 향한 진솔한 호소인 동시에 삶의 무게를 벗으려는 허무한 몸짓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황인
흑인여가수 Nina Simone의 공연실 황중의 일부를 반복해서 들려주신 것으로 아는 데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김수자
그녀는 「Ne me quitte pas」 (날 떠나지 마오)라든가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오해하지 말아주오)등 통속적인 삶의 테마들을 온전히 자기화하여 해석하고 있는 거짓없는 창법을 구사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녀의 삶에 대한 애정과 진실성이 보따리의 사연과 만나 서로 응답할 수 있기를 기대했고, 혹인 여가수의 공연실황을 사용함으로써 보다 현장감있는 인종을 초월한 소리굿을 연출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또한 이 공연실황과 보따리 놓는 소리는 각방에서 따로 들어도 좋고 연결해서 들어도 좋을 것입니다.
김수자
김수자씨의 말을 듣고 보니 작업의 조그만 행위 하나에도 매우 중층적인 의미가 뒤섞여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어색한 만남 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로 녹아들면서 근사한 새로운 컨셉(concept)이 생기는 것이 조형예술의 미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오늘의 대화가 바느질 한땀에 불과한 미미하고 초라한 것일른지 몰라도 바늘이 반드시 지나쳐야 할 그 지점에 자리했으면 더없는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계속 분발을 부탁드립니다.
— Interview from SPACE, (January 1995), pp. 35–37.
Jae-Kil Yoo (Art critic and professor at Hong-Ik University in Seoul, Korea)
1994
"All painting is the art of space, and the history of modern painting has been regarded as a struggle for and against space." — Barnett Newman (1905-1970)
The formative works of Kimsooja show different expressive formats, such as abstract expressionist style paintings, collages in relief, and sculptural expression using objects. In her works, we see her tenacity for a handicraft character, and for pure form in her sewing of cloth. They are lyrical "combined paintings", which involve the true features of life.
Working for more than ten years in collage, combining the techniques of sewing and drawing with cloth, Kimsooja has focused on reflecting life in her art. In the early stages of her art, she pursued "pure abstract form" through sewing cloth and drawing. From the beginning of the 1990s, she changed her format into "object works in unity with life tools", pursuing open form in three-dimensions. And through her works at the P.S.1 Museum in New York City, she moved to three-dimensional works by which she achieved a "harmony with given space", together with picturesque expressions of objects. Recently her works have evolved into installation works, which accomplish a "unity with nature".
Kimsooja's work with cloth starts with the techniques of sewing and drawing. Her art life started, she says, with the "unity of my thoughts, sensitivity, and activity. They were caused by the everyday act of sewing bedcovers with my mother."
Kimsooja's formative language comes from her tenacity, either conscious or unconscious, for life. For her, formative works are life itself. She visualizes the essence and specialty of life from repeated flower-patterned cloth and cloth striped in red, yellow, and blue. Her formative language expresses not just simple sewing but her internal world as well. Emphasizing the unity of the activity, of sewing and her thinking, she makes them involve the "various memories, pains, and affections which have been intentionally forgotten." For her, this expresses "the meaning of desperate self-salvation."
Her collages and object works, expressed in lyric abstraction, are intended to sincerely expose her "tenacity and nostalgia for prototypical things". After her sewing and drawing works, Kimsooja's interest moved from the two dimensional plane to three dimensions, to "object works making unity with life tools", "unity with given space", and "unity with nature". We find a sense of history and a feeling of locality in the general character underlying her works — descriptions of many unforgettable memories, beautiful colors and abstract forms of lyricism, and experiments beyond the artificial frames of forms: there we can read a new change in vision after Modernism.
"My object and installation works are extensions of the act of sewing." — from Kimsooja's Art Notes
Kimsooja's early Sewing works, which she started in 1983, had a strong trend of color plane abstractionism, free from frames. Trying to escape from the frame, but still being attached to the character of the plane, has something in common with Post-Abstractionism along the lines of Modernism. The quadrangular or triangular patches of cloth she sewed show a strict geometrical beauty of abstraction, and they make a picturesque world directly exposing human senses, like that of Expressionism.
The color plane of her Sewing works, like the structural relief, is neither concrete nor descriptive. Viewers should be satisfied just by their pure formative composition and various colors. Her Sewing works, with descriptive titles like The Earth and the Heaven, The Earth, Portrait, and The Inevitability of Life, continued until 1988. If we look at her works in this series, such as Fall 1983 or The Earth and the Heaven 1984, we can easily understand the evolution of her art work during that period.
Kimsooja's colors are ready-made, artificial ones. The colors (red, yellow, black, and white) are smudged onto cloth, and they reject any arbitrary happenings. The features on her screen are also artificial ones in repeating patterns. Moreover, she tries to escape from the plane of the frame and from quadrangles in her works.
The above works are variations of "combined painting". Kimsooja's formative specialty arises just from this. It is not constituted in a restricted space of canvas, and it announces a birth of open space and open forms. Her canvases, accordingly, escape from formal frames and restricted areas to acquires a liberal way of thinking.
The formative traits of her early Sewing series are irregular basic forms of "X", 'W", "T", "+", or triangles. We come to see various aspects of life from these unexpected basic forms. They are never made by chance. Kimsooja says, "They have something to do with the homogeneous character of Korean culture, like the latticework of construction and of letters." Variations of the basic forms make new spaces available. Above all, "since it is a result of my wretched trials to overcome the contradiction of existence, it means a desperate self-salvation."
The unexpected liberal forms show, as completely independent abstract paintings, the beauty of purely formative composition, and there we see a trait of action. She wants to unify the trait of action with our identity. It can be called a work of Modernism, in which a purely formative beauty is pursued in "the paintings themselves" and it is also a creative formative language which emphasizes the acts of human beings.
The Sewing series continued during her study in France in the mid 80s. Representative works of this period, like Blue 1987 and Black 1987, show more tension, with heavy blues and blacks and with big quadrangular planes. The general feeling of these is dark, from the big quadrangles and dark grey and black colors. But the large and small mosaic color-planes pursue one goal in the open space.
These works have a darker feeling than her early works, in which she portrayed life more brightly. The divisions of the color planes are no longer clear. Distinctions among planes are erased. Kim makes a formative search which depends upon expression of the sense of Abstractionism rather than of spatial composition. The cloth patches are not smooth as they were, and they portray the pains of life like scars. The divisions of the color planes are not clear, and the thick black color makes the bright planes of pure colors merge into a melancholy sentiment.
"Deductiveness means reaching individual recognitions from general ones; inductiveness means reaching general recognitions from individual ones." — Dictionary of Philosophical Terms
From Kimsooja's early Sewing series, we see the problem modern painting has with two-dimensional quadrangles. That is to say, it makes us realize that paintings do not have to stay in the restricted frames of quadrangles. The peculiarity of Kimsooja's formative works are the various forms which have unexpected transformations of space and which are free from quadrangles. But from the point of view of form, we find that the transformation she tried to apply did not overcome the two-dimensional restriction of conventional paintings. Though she relieved herself from the forms of quadrangle picture frames, her works where she keeps to two dimensions still force viewers to find an illusion.
When an artist wants to establish a more concrete human relationship and present the features of things in a way free of the visual imagination of illusion, he chooses, without any hesitation, to get out of two dimensions into three dimensions. This, as in Kimsooja's non-illusionist Sewing works, bears a peculiar formative language of the artist himself. It is an object of special life which leads into individual recognition from the generally recognized daily-life objects.
Kimsooja's Deductive Object shows folk customs and natural factors as they are. The daily-life tools she chooses provide viewers with a unity with life, and makes them feel the stream of ages-long time. In the 90s with Wall in the Wall and Toward the Earth 1990-91, Kimsooja started a new structure of formative works, Deductive Object. She says that this experiment is an "act of self-salvation resulted from the pressures of life", like the Sewing works, in which she wanted to show Korea's unity and uniqueness.
The full sense of her Deductive Object started in 1991. Many commonplace objects like Deductive Object - Memory, Deductive Object - Reel and Spool, and Golden Flag were made into works of special meaning. The meaning of objects and subjects in her early works can be interpreted easily with their concrete objects. Lattices, A-frames, kites, reels, small spools, and long pieces of color-striped cloth are changed into objects of the Deductive Object and invoke old stories.
"There is nostalgia for village landscapes and trains and old and mysterious small pieces of furniture and utensils found in the attic. Looking at that old stuff, I find a structural beauty." This is a nostalgia anybody can have, but Kimsooja unbinds and breaks them up as if she were unifying knots and formalizes them into concrete art works.
Not like the Sewing works, which were full of hidden meanings and a search for abstract pure formativity, the everyday objects in her recent works approach us as independent figures. Kimsooja takes old stories from the traditional tools and changes them into three-dimensional structures, not into two-dimensional mosaic paintings. It is what our daily lives are. They look lovely and even poetic, inspiring our nostalgia.
When Kimsooja continued her work in America, at the invitation of P.S.1 Studio, a big change in her Deductive Object occurred. Rather than being satisfied with the classical expression of life, she pursued a unity with given spaces. Her work began to consider the age she lived in. Though this was experimental work for the short period of one year, it meant a struggle to search for a "unity with given spaces" to actively show current life. Ladders, daily-life stories transcending the character of time and space, American objects, exotic colors, and some Korean features appeared in her work, and she tackled open spaces in three-dimensional ways.
After she came back to Korea, these changes persisted. In her recent works, nature appears in relation of unity with given space. It is not an accidental encounter with nature but an intentional communication with nature. The unity of human beings with nature is emphasized. Lying in the Nature 1994, which was made in the valley of Oksanseowon in Kyungju, shows the unity of color-striped cloth objects with nature. It is a feature of life which transcends time and space.
Now Kimsooja's Deductive Object works have started in earnest. I think she wants to revisit the past and also to emphasize current life. The endlessly changing nature of Kimsooja's pure forms show our past and present reality, as well as the open world of our future.
In conclusion, Kimsooja's "combined paintings" — Sewing and Deductive Object — might look unfinished. But they can be recognized as independent formative languages which Kim alone possesses from her encounters with given spaces or with nature. She does not stay still, and portrays the features of life confidently. She frees herself from habitual aesthetic notions and concepts, and portrays the features of liberal life. All of this make me more attached to her works.
─ 『Soo-Ja Kim』(1994), Art Vivant No.21, SIGONGSA, p.76
유재길 (미술평론가, 홍익대 교수)
1994
"모든 회화란 공간의 예술이라 말하며, 현대회화의 역사는 늘 공간을 위한, 또는 공간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여겨졌다." — 바네트 뉴만 (Barnett Newman, 1905-70)
김수자의 조형 작업은 추상표현의 회화적 기법과 부조적 성격의 콜라주, 그리고 오브제를 이용한 조각적 표현 등 다양한 표현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색동 천과 꿰매기 작업으로 재료의 특성을 살리면서 공예적 성격과 함께 순수 조형성 모색에 집착하는 그의 작업은 삶의 진솔한 표정들을 담은 서정적 느낌의 '복합 회화 Combine painting’이다.
10여 년 넘게 색동 천을 가지고 '꿰매기'와 '드로잉' 기법을 혼합시킨 콜라주 작업을 계속해 온 그는 무엇보다 미술 속에 생활 을 반영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어 왔다. 초기 작업에서 그는 천의 꿰매기와 드로잉을 통한 평면에서의 '순수 추상적 조형성'을 추구하였으며, '90년대 초부터는 점차 평면에서 입체로 열려진 형태를 추구하는 '삶의 도구와 일체감을 이루는 오브제' 작업으로, 그리고 이후 미국 P.S.1 미술관에서의 작업은 오브제의 회화적 표현 작업과 함께 '주어진 공간과의 조화를 이루는 입체 작업으로 변모하면서 근작에는 자 연과의 일체감을 이루는 열려진 형태의 설치작업으로 전개되고 있다.
'꿰매기'와 '드로잉' 기법으로 시작된 김수자의 색동 작업은 복합적 회화'를 탄생시키면서 삶의 예술로 폭넓게 전개되고 있 다. 그의 출발점은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면서, 바느질이라는 일상적 행위에 전율하게 되면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 그리고 행 위성 등, 이 모든 것의 일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김수자의 조형 언어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삶의 집착에서 나온다. 그에게 있어서 조형 작업은 삶, 그 자체이다. 빨강, 노 랑, 파랑 등의 색동 천과 반복된 꽃무늬 천 조각들을 보고 삶의 본질과 고유의 체취를 시각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또한 그의 조형언어는 단순한 바느질의 꿰매기' 그 자체가 아닌 자신의 내면 세계를 담고 있다. 작가는 '꿰매기'라는 행위와 사고思考의 일체감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것들은 "묻어 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애정까지 내포한다... 나에게 이것은 절박한 자기 구원의 의미"를 표현한다고 말한다.
-서정적 추상표현의 콜라주와 오브제 작업은 삶의 원형적인 것에 대한 애착과 향수'를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꿰매기'와 '드로잉' 작업 이후 전개된 평면에서 입체로 '삶의 도구와 일체감을 이루는 오브제 작업', 그리고 '주어진 공간과의 조화', '자연과의 일체감'을 이루는 작업들이 현재까지의 진행사항이다. 그의 작품 밑바탕에 깔려있는 전반적인 성격은 잊을 수 없는 숱한 기억들이 담겨진 서술성과 서정적 복합의 아름다운 색채와 추상 형태, 그리고 인위적 구성 틀을 벗어난 실험성에서 우리의 역사성과 지역 적 특성을 발견하게 되며, 모더니즘 이후의 새로운 시각적 변화를 읽게 된다.
"나의 오브제나 설치 작업은 바느질'이라는 행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 작가 노트 중에서
1983년부터 시작된 김수자의 초기 '꿰매기' 작업은 사각형의 틀에서 벗어난 색면추상화 경향이 강하다. 사각에서 탈피하면서 도 평면성을 유지하려는 구성된 천 조각의 색면들은 모더니즘 경향의 후기 회화적 추상과 공통된 성격을 갖는다. 그가 꿰매어 붙인 사각이 나 삼각형의 천 조각들은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미를 보여주면서, 표현주의와 같은 인간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회화 세계가 만들어진다.
구축적인 부조와 같은 '꿰매기' 색면들은 구체적이거나 서술적이지 않다. 보는 사람들은 사각이나 삼각형의 순수 조형적 구성과 다채로운 색, 그 자체에 만족해야 한다. 1983년부터 제작된 「하늘과 땅」이나 「대지」, 「초상」, 「삶의 어쩔 수 없음」 등과 같은 서술적 제 목의 '꿰매기' 작업은 '88년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 진다. 여기서 초기 작품인 「가을」이나 「하늘과 땅」의 연작들을 비교하여 보면 당시의 작품 전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김수자에게 있어서 색채는 이미 만들어진 인공적 사물의 색이다. 붉은 색이나 황색, 검정과 흰색 등이 천 속에 스며들어 손끝 에서 나오는 우연성을 배제한다. 화면에 등장한 형상들 역시 인공적 연속 무늬들이다. 또한 그의 작품은 평면과 사각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같은 작업은 '복합 회화'의 다양한 변화이다. 김수자의 조형적 독창성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며, '복합 회화'가 탄생되는 것 이다. 이는 캔버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열려진 형태와 열려진 공간의 탄생을 예고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화폭은 형식 적 틀과 제한된 영역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자유로운 사고를 획득하게 된다.
초기 ‘꿰매기' 연작의 조형적 특성은 'X'자 'W'자 'T'자 혹은 '+'자형과 '삼각형' 등 불규칙한 기본형의 틀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이같은 예기치 못한 기본형에서 삶의 다양한 표정을 읽게 된다. 그의 예기치 못한 기본형은 결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형태들은 "우리가 피부로 접해온 한국의 건축 공간의 격자 형태나 문자 등, 우리 문화 전반에 나타나는 동질적인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작가는 말한다. 기본형의 다양한 변화는 새로운 공간의 형성이며, 무엇보다 "존재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만남의 결과였던 만큼, 나에게는 절박한 자기 구원의 의미"라고 그는 생각한다.
한편 김수자의 예기치 못한 자유로운 기본형들은 완전히 독립된 추상화로 순수 조형적 구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행 위성이 나타난다. 그의 행위성은 우리의 정체성identity과 일치시키려 한다. 이것은 '회화 그 자체'에서 순수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 하였던 모더니즘 작업이며, 인간(여성)의 행위(일)를 강조하는 독창적 조형 언어이다.
'꿰매기' 연작은 '80년 중반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에도 계속된다. 「푸름」이나 「검음」작품은 당시 작업을 대표하는 것으로 청 색과 흑색 등 무거운 색채와 커다란 직사각형의 면들이 긴장감을 더해 주고 있다. 또한 커다란 사각형의 대비와 어두운 무채색에서 나오는 중압감으로 어두운 느낌이다. 그러나 모자이크된 크고 작은 색면들은 열려진 공간 속에서 하나의 목표를 지향한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삶의 표정을 밝게 그려냈던 초기 작업과 달리 어둡게 느껴진다. 색면의 분할은 더이상 명확하지 않다. 면 과면 사이의 구분이 지워지면서 공간적 구성보다는 추상성에서 주는 감정적 표현에 매달린 조형성 모색이다. 천 조각들을 연결한 부분들 도 과거처럼 매끄럽게 이어져 있지 않아 상처의 흔적처럼 삶의 고통스러움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색면들의 분할 자체가 모호해지고 순 색의 밝은 면들은 검정과 탁한 청색이 우울한 감상에 젖게한다.
"연역적이란 보편적 인식에서 개별적 인식의 도출이다. 이에 반해 귀납적은 개별 인식에서부터 보편적 인식을 도출하는 것이다." — 철학 용어 사전
김수자의 초기 꿰매기' 연작에서 우리는 현대회화가 안고 있는 사각의 평면성 문제를 더욱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즉, 이제 그림은 한정된 사각틀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였던 조형 작업은 예측하기 힘든 공간의 변형과 사각에 서 벗어난 다양한 틀이 만들어지는 것에서 조형적 특성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형식적인 점에 있어서 그가 시도하였던 '변형' 들이 완전히 전통적 회화의 평면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비록 사각이라는 액자의 틀을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평면성을 유지한 그의 작품에서 관객은 여전히 일루전을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하는 것이다.
실제 사물처럼 느껴지는 일루전이라는 시각적 상상력에서 벗어나 좀더 구체적인 사물의 표정과 인간관계를 원하였을 때, 작가 들은 평면 양식에서 벗어나 서슴없이 입체화하려 형식을 취한다. 이것은 탈 일루저니즘의 '꿰매기' 작업으로 독특한 자신의 조형언어를 탄생시키며, 보편적 인식의 일상적 사물(오브제)들에서 개별적 인식을 이끌어내는 특수한 삶의 오브제이다.
김수자의 「연역적 오브제」들은 토속적 성격과 자연적 요소를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 그가 선택한 생활 도구들은 삶과 일체감을 갖게하며, 오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89년 이후 제작된 「벽 속의 벽」이나 「대지를 향하여」를 끝으로 '90년대에는 「연역적 오브제」라는 새로운 구조의 조형 작업을 시작한다. 이러한 실험 작업을 작가는 우리의 동질성이나 고유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꿰매기' 작 업과 같이 "절박한 삶에서 나오는 자기 구원의 행위"이라고 말한다.
「연역적 오브제」연작이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시작하는 것은 1991년부터이다. 「연역적 오브제-기억」이나 「연역적 오브제북과 얼레」 그리고 「황금빛 깃발을 비롯하여 많은 평범한 사물(오브제)이 특수한 의미의 작품들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초기 이러한 작품들에서 나타난 주제나 소재의 의미는 구체적 물체의 등장으로 그 해석이 쉽게 드러난다. 즉, 창호지 문틀이나 지게, 연을 날리는 얼레, 소북, 색동 의 기다란 천들이 「연역적 오브제의 주제가 되면서 과거의 이야기를 서술적으로 전개시켜 나간다.
"어린시절 산촌의 풍경과 기차, 그리고 다락에서 찾아낸 오래되고 신기한 골동 집기들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 오래된 우리의 기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거기에 매우 아름다운 구조의 미를 깨달았어요." 라고 말한다. 이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향수와 추억 들이나, 작가는 이것을 매듭풀듯 하나하나 풀어 헤쳐 나가면서 구체적으로 조형화한다.
추상적 순수 조형의 모색과 숨겨진 의미들이 가득찼던 꿰매기' 작업과 달리 추론이 가능한 일상적 사물들은 독자적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 스며든다. 토속적 성격의 기물들에서 과거의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어 평면적 모자이크 페인팅이 아닌 입체적 구조로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표정이며, 향수를 느끼게 하는 사물들로 사랑스럽고 시적詩的이기까지 하다.
그후 김수자는 P.S.1 미술관 초청으로 미국에서 작업을 계속하게 되면서, 「연역적 오브제」 작업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 일으킨 다. 이제 그는 삶의 고전적 표현에 만족하기보다 시대를 생각하는 작업으로 주어진 공간과의 조화를 추구하게 된다. 비록 1년간의 짧은 기 간 동안 미국에서의 실험적 작업이였으나 그에게는 오늘의 삶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게되는 '주어진 공간과의 조화'를 모색하는 싸움이었 다. 사다리가 등장하고 시간성과 지역성을 뛰어 넘는 일상 생활의 이야기나 색다른 미국적 오브제들, 반복되는 이국적 성격의 색들과 한국 적 형상들, 그리고 평면에서 벗어난 입체적 표현으로 열려진 공간과의 만남 등이 새롭게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귀국 후 이같은 변화는 지속성을 갖게 되며, 근작에서는 주어진 공간에서의 조화에 '자연'이 등장하게 된다. 이는 우연한 자연 과의 만남이 아닌 의도적인 자연과의 대화로 자연과 인간의 일체감을 강조한다. 경주 옥산서원 계곡에서 이루어진 「자연에 눕다」는 인간 이 만든 색동 천의 오브제들과 자연과의 일체감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삶의 표정들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김수자의 「연역적 오브제」 작업은 과거를 다시 바라보면서 현재의 삶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끊임없는 변화를 주고 있는 김수자의 순수 조형 작업은 우리의 과거와 오늘의 현실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미래의 열려진 세계를 향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김수자의 '복합 회화'인 '꿰매기' 양식, 「연역적 오브제」 작업은 미완성의 양식으로 보일지 모르나 주어진 공간과, 또는 자연과의 만남을 시도하면서 자신만이 갖는 독자적 조형 언어로 인정된다. 그는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삶의 표정들을 자신있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타성화된 미적 관념이나 개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의 표정을 그리고 있는 그의 작품에 더욱더 애착을 갖게 된다.
─ 『김수자』(1994), Art Vivant No.21, 시공사, p.76
Kimsooja
1994
We are wrapped in cotton cloth at birth, we wear it until we die, and we are again
wrapped in it for burial. Especially in Korea, we use cloth as a symbolic material on
important occasions such as coming of age ceremonies, weddings, funerals, and rites for ancestors. Therefore, cloth is thought to be more than a material, being identified
with the body -- that is, as a container for the spirit.
When a person dies, his family burns the clothes and sheets he used. This may have
the symbolic meaning of sending his body and spirit to the sky, the world of the
unknown. When I look back over my more than twenty years of handling bedcovers, I
feel that I have always been performing, guided by the piles of cloth I have lived among.
What in the world have I stitched and patched.
What have I tied up in bundles.
When will the journey of my needle end, my silkworm unwrap its flesh.
Will it in the end slough off its skin.
Will the bundles with no destination find their way to go
─ Artist’s Note from Gallery Seomi Solo Show ‘Sewing into Walking’, Seoul, Korea, 1994
김수자
1994
인간이 태어나 최초로 접하는 물질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태아를 감싸는 무명일 것이다. 우리는 이 천이라는 부드러운 물질을 죽는 순간 까지 두르고 살아가며, 마지막 시신까지도 천으로 감싸져 땅에 묻히는 진통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삶의 중요한 대목들, 이를 관·혼·상·제에 있어 그 예식의 상징적인 매개물이 바로 천 임을 목격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때로 천이라는 오브제는 물질을 넘어 살을 맞대고 함께 호흡하던 신체와 동일시 되며 또 그 신체의 영혼까지도 묻어있는듯 여겨지기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입던 옷가지와 덮던 이불 등을 태우는 행위가 바로 그의 몸과 혼을 하늘, 즉 저승으로 보낸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아닐까? 십여년간 천을 만져 오면서 나는 작업을 한다기 보다 한 조각의 천이 이끄는대로 혼자만의 퍼포먼스를 하며 헌옷더미에 묻혀 살아온 느낌이다.
과연 무엇을 꿰매어 왔던가.
또한 무엇을 그리도 칭칭 동여매고, 보따리 보따리 싸매어 왔던가.
언제쯤 바느질 뜸을 따라 걸어가는 이 길이 끝날 것인가.
나의 누에는 제 실을 다 풀어 허물을 벗을 것인가.
그리고 갈 곳없는 보따리들은 제갈길을 찾을 것인가.
1994년 11월 김수자
─ Artist’s Note from Gallery Seomi Solo Show ‘Sewing into Walking’, Seoul, Korea, 1994
Kwang Soo Oh (Art Critic)
1991
When we say an art work is done with fabrics as medium, usually we do not mean that it is a piece of canvas stretched on a frame but it is a fabric art, a material object freed from frame. A piece of fabric, when appeared as canvas locked in a frame, becomes 2-dimensional plane; when it is freed from the frame, it has dual nature of 2- and 3-dimensional character. Therefore, cloth is a material which retains dualistic nature of 2- and 3-dimensions.
Cloth is used in such everyday objects accompanying human body as clothes, gloves, socks, or scarves wrapped around heads. Sometimes it becomes a flag, an emblem of ideology like in a poem by Chong-Ma. But cloth's true value lies in its affinity with women. Cloth connects the lives of mother, mother's mother, and her mother with its secretive emotional attachment. What else in the world other than the medium of cloth represents so well the humble dreams and endurance in hardship of women? The artist says. "One day I was sewing up bed covers with mother, when suddenly I experienced intimacy and amazing oneness in which my thoughts, sensitivity, and gesture are all united and fused. I also found a possibility to embrace in it numerous long-buried memories and pains, and even the love of life."
Through the medium of cloth, the history of inner world of women is woven as the union of myself and my mother becomes that of myself and mother's mother and her mother, and so on.
In from of Kimsooja's works, therefore, we are moved, as if we witnesses a return to the original existence which links us to our own mother and mother's mother. We do not see the cloth as a material but see the secretive history of women mediated by cloth.
─ Essay from Gallery Hyundai Solo Show, 'Kim, Soo-Ja', Seoul, Korea, 1991, pp.2-5.
오광수 (미술 평론가)
1991
천을 매체로한 작품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틀 속에 조여진 캔버스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틀을 벗어난 물질로서의 천 작품을 가리킨다. 천은 틀 속에 갇혀진 캔버스로 등장했 을 때는 평면이 되지만 틀을 벗어났을 때는 평면이자 입체 적인 속성을 동시에 띤다. 따라서 천은 평면과 입체의 양의 적 속성을 안고 있는 물질이기도 하다.
천은 아주 일상적인 기물, 요컨대 신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옷과 장갑과 양말과, 또는 머리를 감싸는 스카프로 등장하지만 때로는 청마(靑馬)의 시(詩)에서처럼 이념의 푯대로서 깃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천은 연인과의 친화 속에서 그 독특한 정감의 의미항을 띤다. 어머니와, 어머니 의 어머니와, 그리고 그 어머니로 이어지는 여인의 삶의 뒤안길에 천은 물질을 넘는 내밀한 정서의 띠로 등장한다. 여인들의 소담한 꿈과 안으로 삭이는 인고의 엮음이 어찌 천을 매개로한 것이 아닌 다른 어디에 있을 것인가.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 가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묻어 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천을 통해 나와 어머니와의 일체는 다시 어머니의 어머니와의 일체, 그 어머니의 어머니와의 일체가 되면서 여인의 내면의 역사를 엮어낸다. 그래서 김수자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들 어머니와 그 어머니로 이어지는 존재에의 회귀를 보는 것 같은 감회에 젖게 된다. 천으로서의 물질이 아니라 천으로 매개되는 여인들의 내밀한 삶의 역사를 보게 된다.
종전의 김수자의 작품은 그것의 모양이 사각형의 화면이 아닌 삼각형, T자형 또는 이런 여러 형들이 중복된 , 것이긴 하지만 평면을 지향한 것이었다. 비록 액자라고 하는 틀을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벽에 걸리는 평탄한 면을 지탱 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작품들은, 물론 때로는 벽면에 걸리는 종전의 회화적 관념이 남긴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강한 입체성을 띠는 경향을 보인다. 평면이 입체성을 지향 한다고 했을 때 먼저 연상할 수 있는 것은 현실화라는 문맥 이다. 회화가 평면에 묶여진다고 했을 때 그것은 언제나 일루전의 세계를 의식한 반면, 입체화된다고 했을 때는 일루전의 세계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분석적 큐비즘 시대의 피카소, 브라크, 그리가 시도한 파피에 꼴레(Papier Collé)가 직접의 현실에로의 회복을 노린 방법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거니와 큐비즘이후, 특히 전후에 오면서 왕성하게 시도된 현실적 물질의 화면에의 도입도 가상의 세계에서 직접의 세계에로의 열망을 말해주는 것이다.
김수자의 근작은, 비록 부분적으로 벽체를 의식하고 있긴 하지만, 이미 현실로 되돌아온 세계, 일루전의 세계에서 회화를 직접의 현실로 되돌린 세계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 은 종래의 그린다든지 칠한다는 개념을 벗어나 직접의 물질 을 서로 꿰매거나 이어붙이거나 엮어내거나 감싸는 일이 된다. 종전의 그의 작업은 주로 짜투리 천들을 서로 이어 누비는 것이었다면, 근작은 단순히 꿰매는 일에서 더욱 벗어나 오히려 집성(assemblage)한다는 의미가 강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훨씬 물질적 속성과 공간적 스케 일을 환기하는 경향이 되고 있다. 그것은 곧 천을 천으로서 드러낸다는 문제 외에 그 천들이 갖는 공간에의 존재의 문제들을 다시 상기한다는 것이 된다. 놀라웁게도 천들은 가장 직접적인 물질로서의 강한 속성과 더불어 그 많은 천들 속에 숨쉬는 수많은 인연들을 환기해내는 접신의 떨림 을 동반하고 있다. 치마, 저고리, 두루마기, 이불 등속에 아직도 숨쉬고 있는 혼령들이 보이지않는 존재의 그물을 짜내고 있다고 할까. 따라서 그의 공간에의 존재의 문제는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심경적이다. 연두, 자주, 옥색, 노랑, 빨강 그리고 온갖 식물적 문양들이 엮어내는 화려하고도 슬픈 분위기는, 염염한 여인의 꽃다운 모습을 떠올리 게도 하고 억울한 죽음의 사신을 부르는 무속(巫俗)의 애절 한 가락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차라리 그 질펀한 색상과 강렬한 몸짓에선 타작마당을 누비는 풍물잡이의 신명을 보는 느낌이다. 그것들은 언제나 강렬한 존재물로서 다가오 지만 동시에 강렬한 심경의 울림을 동반하고 있다. 말하자 면 물질적인 것이지 동시에 비물질적인 것으로의 존재로 다가온다. 언제나 작품은 구체적인 물질로 나타나지만 동시 에 작품은 비구체적인 정신의 항상성(恒常性)에 잇대어 있을 때 그것의 참다운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金子의 정신의 항상성은 원형의 회귀라는 보다 뚜렷한 문맥을 드러 내고 있다. 꿰매고 누비는 작업을 통해 어머니와의 은밀한 일체감을 체험했듯이 이제는 아득한 옛날에로 잇대어지는 일체감을 체험함으로써 원형의 회귀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 다. 만주와 몽골을 거쳐 멀리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는 샤머니즘의 잔존 속에서 희미한 원형의 그림자를 좇고 있는 것이다.
— 『Kim, Soo-Ja』(1991) 갤러리현대 개인전 도록 수록 글, pp.2-5.
김수자
1989
한 조각의 천, 그것도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있어 삶의 우여곡절을 느끼게 하는 그것을 바라보고 앉았노라면 지난날의 어느 시점, 혹은 어느 공간을 향하여 마음이 모아진다. 삶의 부대낌과 소음이 밀려간 빈자리에 서서히 밀려오곤 하는 것, 그것은 늘 지나간 시절 몸담았던 자연의 어느 모서리이거나 잊을 수 없는 인물들의 모습이었다.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위하여 끝없이 산속에 헤매이거나 낯선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던 유년의 경험, 남몰래 다락방에 올라가 어둠속에서 들추어 보던 아버지의 해묵은 서적이며 앨범, 할머니의 반닫이 속에 든 갖가지 집기며 보따리들의 기억…., 그것은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보랗빛 도라지 꽃을 발견했을 때 처럼 나에게 은밀한 감동을 안겨주곤 했고, 그런 일이 있던 밤이면 잠자리에 누워 깊은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내 마음 한 켠에 각인된 지울 수 없는 또다른 영상들이 있다. 그것은 왜곡되어 있는 듯 싶고 어쩌면 이 세상과 무관한 듯도 싶은 그런 인물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화사하거나 웅장한 그 무엇보다 더욱 절실한 하나의 의미로써 영혼의 떨림을 불러일으킨다, 어린시절 할머니를 따라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갔던 어느 먼 산속 과수원, 그 안에 딸린 한간 토담집 초가에 유배자처럼 홀로 살던 어느 친척 아저씨의 죽음, 등 뒤에서 수런대던 공포에 가까왔던 그의 죽음에 관한 어른들의 뒷 이야기, 그때 느껴지던 토담방의 흙내음, 한 인간의 파괴, 혹은 바람부는 저녁, 옷자락을 펄럭이며 절뚝이던, 눈도 코도 귀도 뭉그러진 사람들의 기억…., 이러한 잊을 수 없는 숱한 기억들이(작업을 하는 동안 수없이)밀려왔다 밀려가곤 한다.
삶의 체취를 맡으며 기억의 파편들을 꿰매고, 내 마음의 갈래들을 하나의 평면 속에 통합시키는 과정, 그 시간은, 그것이 갖는 조형적 성과만큼이나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다. 내가 굳이 손으로 일일이 바느질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사색과 고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고 단순한 조형적인 효과로써 꿰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간을 살고 있으며 그 삶을 통해 인간적인 허물과 존재의 모순, 나아가 자유에의 영원한 열망을 극복하고자 한다. 천을 꿰매는 행위 속에서, 나는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가 일치하는 은밀한 일체감을 경험하고 있고, 묻어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천이 가지는 부드러움, 날실과 씨실의 조직, 우리 천의 그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드는 꿰매는 행위의 천과의 자기동일성,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매료되어 있다.
색면들은 하나의 천의 선택으로부터 시작하여 네모꼴의 단위속에서 변주되고 이 단위들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확산되면서 하나의 형태화된 평면으로써의 당위성을 얻고자 한다 최근의 작업들은 원색적인 천의 소리들이 많은 부분 검정속으로 흡수되고, 반면에 평면의 質의 표현이 중요시 되어있다. 또한,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언어의 표기는 그것이 전체적인 조형에 무리를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명명함으로써 하나의 의미와 구체적인 이미지를 탄생시키고자함이며,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내가 마음속으로 「아름답다....,」라고 되뇌어 보듯이 시각을 통하여 하나의 청각적인 반향을 얻고 싶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낙서와 같이 무의식적이거나, 전체 작품속에서 부차적인 요소로 남기 보다는 다분히 의도적이며, 의미상으로 작품 자체를 정의하는 등가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작업에서의 검정의 출현은 검정이 갖는 관념적인 의미 그대로 절망, 허무, 죽음과 같은 침몰된 정신상태의 반영이라 할 수 잇다. 그리고 수평과 수직의 만남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로 나의 작업에는 일련의 십자형 내지는 그 변형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러한 형태의식은 우리가 피부로 접해온 한국의 건축공간의 격자형태나 문자등, 우리문화 전반에 나타나는 동직적인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으나, 무엇보다 존재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만남의 결과였던 만큼, 나에게는 절박한 자기구원의 의미로 남아있다.
─ 『SPACE』, 1989. January. No.257, pp.112-113.
김수자
1988
내가 오래된 한복 천들을 모아 바느질 작업을 하기 시작한 것은 몇 가지 감성적, 논리적 필연성으로부터였다. 80년대 초반까지의나의 관심은 온통 사물의 내부구조와 그 관계에 집중되어 있었고,당시 나에게 있어 회화(繪畵)란, 자연에 대한 나의 인식을 표면화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자연(自然)과 인간(人間)에 대한 본질적인 요소로써의 천(天) · 지(地) · 인(人), 그리고 그 존재방식으로서의 수평 · 수직구조의 조형적 탐구를 의미했다. 평면을 통해, 혹은 오브제(object)나 신체를 통해 이러한 인식의 조형화를 시도하였으나 그러한 사고가 점차 관념화되면서 사고의 경직성을 낳았고, 구조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표현적인 요소가 점차 소거되어 결국 작업에서의 행위의 부재,내지는 무의미를 가져왔다. 또한 나 개인의 삶과 작업 사이에서도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구조 위에 살을 붙이고 숨을 불어넣는 인간화(人間化)의 작업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끝없이 도전하는 평면 앞에서, 자기존재의 모순 앞에서, 또한 독창성(originality)에 대한 강한 욕구 앞에서 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론을 찾아 고심하던 중, 1983년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가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묻어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천이 가지는 기본구조로써의 날실과 씨실, 우리 천의 그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드는 꿰매는 행위의 천과의 자기동일성,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작업에서 보여지는 색면들은 하나의 천의 선택으로부터 시작하여 네모꼴의 단위 속에서 변주되고, 결국 이 단위들의 통합된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네모꼴의 각기 다른 천들이 유기적 관계 속에서 확산되면서 하나의 형태화된 평면으로써의 당위성을 얻고자 했다면, 다소 굴곡이 있지만 최근의 작업들은 원색적인 천의 소리들이 많은 부분 검정톤(tone)으로 가라앉으면서, 평면의 질(質)의 표현이 중요시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작업에서의 검정의 출현은 검정이 갖는 관념적인 의미 그대로 절망, 허무, 죽음 같은 침몰된 정신상태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수평과 수직의 만남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로 나의 작업에는 일련의 십자형(十字形), 내지는 그 변형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형태의식은 우리가 피부로 접해온 한국의 건축공간의 격자형태나 문자 등, 우리문화 전반에 나타나는 동질적인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으나, 무엇보다 존재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만남의 결과였던 만큼, 나에게는 절박한 자기구원의 의미로 남아있다.
─ 『Kim, Soo-Ja』, 갤러리현대 개인전 도록 수록 글, p.12.
Sung-Rok Suh (Art Critic)
1988
Every artist has his (or her) own distinctive idiom. An artist expresses and communicates by the idiom, and his (or her) artistic realm is characterized by it. For example, it was "Spraying" for Wassily Kandinsky, "Vertical bands of color" for Barnett Newman, and "Dripping" for Jackson Pollock. This idiom becomes a device for work production and at times becomes a goal in itself. Artists have manifested creative processes and intentions through these idioms within their own schematic use of color.
From this perspective, what then is Kimsooja's idiom? If she has her own idiom, what are her motives, justifications, and intentions? My interest lies in these issues.
Clearly, Kimsooja’s idiomatic expression is "Sewing". She gathers a variety of cherished cloths, some of them inherited from her mother and grandmother, such as satins, linens, color-striped silks, and fine silk gossamers, and then successfully incorporates them into an artistic composition. Once a variety of cloth pieces are in her hands, they are joined, torn, quilted, folded, and stitched into a work of art.
At a glance, the jointed cloths seem like heavily patched up rags. Looking closely, however, one notices each has its own unique character: floral and or geometric patterns on multicolored cloths, slight crumples on obscure and gloomily colored cloths, drawings on plain cloths, etc. These cloths, spread out and woven together in joints and seams, assume a structural narrative. In other words, individual cloths which have distinct expressions of their own create illusions within a new material structure. What kind of illusions do they evoke? According to Kimsooja, they are about nostalgia resulting from the numerous pains, affections, and emotional attachments long buried within the primordial memory.
Accompanying the illusions produced by the patchwork is a spiritual facet and origin focused on human relationships. Kimsooja reveals her personal experience in the mundane gesture of sewing. She feels a certain intimacy and an amazing oneness in which her thoughts, sensitivity and gesture are all fused, thus empathizing with the cloth itself.
With this unique experience as a foundation, the artist concentrates on the basic pattern of using horizontals and verticals to symbolize the primordial order of existence. She acknowledges the horizontal and vertical structure as an essential and universal framework in which nature and man meet. She tries to induce another state, by fusing both subject and object. Of course the artistic process leading to the oneness of bodily gesture and thought the infusion of nature and man is, in her case, the gesture of "Sewing". Graphically, the gesture of sewing exists as a medium which connects the subject and the object, at times inducing an empathy between the two.
Having already mentioned the unique attributes of Kimsooja’s "Sewing" and its underlying logic, I will explain the characteristic appearance of her work. Overall, her works yield dim and obscure impressions, revealing her own personal view of the object, as if the works intend to envelope the viewer in darkness. They overwhelm and block the viewer, reflecting the artist’s experience as a child living in a mountain village, while at the same time, expressing the weight of everyday life. Whatever the origin of such impressions may be, in her works we observe the suppression of bright colors, the regression of form, self-containment and two-dimensional construction. In her recent works, along with the expansion of an expressive vocabulary, elements gradually collapse while others are firmly established. Consistently manifested, however, is the artist's quest for the control of life and her search for a relationship between existences through the joining and sewing of cloths. Through the gesture of sewing, Kimsooja continuously measures the depths of planarity, while at the same time artistically exploring other aspects of the world she lives in.
─ Essay from Gallery Hyundai Solo Show, 'Kim, Soo-Ja', Seoul, Korea, 1988, pp.2-3.
서성록(미술 평론가)
1988
작가마다는 자신의 독특한 언어가 있다. 그 언어로 작가는 말하고 의사를 전달하며 이것에 의해 작품세계가 특징지어지기도 한다. 칸 딘스키에게는 '뿌리기'가 있었다면 뉴만에게는 '긋기'가 있었고 폴 록에게는 '홀리기'가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들의 언어는 창 작을 꾸며나가는 수단이 되고 때로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 및 그 '색깔'에 의해 작가는 '그려가는 바'와 '의도하는 바'를 표출해왔던 것이다.
김수자의 언어는 이런 측면에서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어떤 동기와 정당성 및 목적을 가지고 있을까? 필자의 관심은 이런 부위에 머물게 된다.
김수자의 표현언어는 두말할 나위없이 '꿰매기' 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할머니, 또 그녀의 모친에게서 물려받거나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각종 천조각들, 이를테면 양단 · 색동 · 삼베 ·비단· 갑사 등을 모아 조형화시키는 데 성공한 경우에 속한다. 일차로 자신의 손에 각종 천이 들어오면, 그것들은 잇고 찢고 누비고 접고 꿰매져서 한덩어리의 세계를 형성시킴을 볼 수 있다. 흡사 '누더기'를 연상시킬 만큼 천은 덕지덕지 붙어있으면서도 곰곰이 뜯어보면 그 나름대로 표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알록달록한 색깔에 꽃 무늬나 기하학적 모양이 새겨진 것, 어슴프레하거나 어둠침침한 색 깔에 약간의 구김이 가해진 것, 평범한 천조각에 드로잉을 새겨넣은 것 등. 이같은 천들은 '이음'을 통해 평면으로 펼쳐지고 봉합을 통해 엮어짐으로써 한편의 구조적 스토리를 가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표정을 가진 한조각 한조각의 천의 '이음' 또는 '꿰매기'를 통해 또하나의 색다른 물질적 짜임새가 연출하는 일루젼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일루젼을 환기시키는 것일까? 작가의 말을 빌면, 그것은 '묻어두었던 숱한 기억들과 아픔, 애정' 그리고 이를 통한 '원형적인 것에 대한 애착과 향수'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작가의 패치 워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루젼의 성격과 아울러, 작품 전체에서 빚어지는 정신적 위상 및 그 실체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야기되는 관계항으로 집약된다. 작가는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모두가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다'고 말하면서 '천과의 자기동일성'을 획득 했다는 사적인 경험을 털어놓은 바 있다.
이러한 독특한 경험을 밑바탕에 깔면서 작품은 존재의 원형적 질서를 나타내는 수평, 수직의 기본적 형태구조에 집착하게 된다. 수평 및 수직의 형태를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본질적', '보편적' 틀로 인정, 여기서 또하나의 주 · 객체의 자기동일성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행위와 사고의 일체감' '자연과 인간의 동일성'에 이르는, 또 그것을 발견하는 조형방식은 물론 '꿰매기'라는 자신의 특별한 행위를 부 가함으로서 이다. 도식적으로 말하면 '꿰매기'라는 몸짓은 주. 객의 동일성을 연결하고 때로는 자아내는 매개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자의 꿰매기의 속성 및 그것을 지배하는 근거에 대하여 언급하였으므로 남은 문제는 작품 자체의 표현적 특질을 설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작품의 대체적 느낌은 작가의 대상에 대한 시각을 나타내듯 침침하고 어둑어둑하며 우리를 어둠에 가두어 두려는 인상을 갖게 만든다. 작가의 말처럼 '어린 시절 산촌에 살면서 느껴왔던 위압감과 가로막힘 그리고 삶의 무게'를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이러한 인상의 유래야 어떻든, 씨의 작품은 약간의 색깔의 금욕주의, 형태의 환원성, 표현 자체의 내재성, 마지막으로 평면의 구조성을 띠고 이같은 요 소들은 근자에 와서 '표현의 확장과 곁들여 점차 무너져가고 또 어떤 것들은 더욱 견고하게 구축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수되고 있는 방법, 그것은 작가 자신이 여러 천조각의 잇기 및 꿰매기를 통하여 삶을 다스리고 그 가운데 존재에 대한 관계성을 묻고 파악하려는 탐구적 자세라 할 수 있다. 계속되는 꿰매기의 몸짓속에서 평면의 깊이를 재고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이모저모를 다른 세계의 것들과 견주어 추적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 『Kim, Soo-Ja』(1988), 갤러리현대 개인전 도록 수록 글, pp.2-3.
윤우학 (미술비평가)
1979
우리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서는 기성 작가들의 그것과는 달리 어떤 솔직함과 담백함을 엿볼 수 있는 작업들이 많다. 물론 그러한 작업들은 작업의 세련미와는 거리가 있는 것들 일는지는 모르나, 적어도 그들은 쓸데없이 완결된 채 작업적인 분위기만 조성하는 겉늙은 작업들에 비교하여 훨씬 가치있는 작업임에 틀림없다. 바로, 김수자와 이윤동의 작업이 그와 같은 솔직성과 담백성을 지닌 것이라 말할 수 있고 그들의 작업은 무엇보다 이러한 점에서부터 관심을 끄는 것이라 믿어진다.
사실, 그들의 작업은 결코 어떤 복잡한 구조 관계 내지 필요 이상의 의미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김수자의 경우, 살아있는 나무와 가공된 나무를 照應(조응)시킴으로서 나타나는 둘사이의 관념적 관계를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집중화 혹은 투명화시킨다든지, 잘려진 나무의 토막들을 투명한 플라스틱 판으로 등분시켜 그들의 관념적 거리감 내지 단절감을 새롭게 연결시켜 본다든가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며 (이점은 잘려진 나무토막들을 약간씩 어긋나게 자르고 나열시키는데서 우선 발견되어진다) 그의 작업은 이와같은 直喩法(직유법)에 꽤 큰 재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라, 보는자로 하여금 금방 작가의 발상적인 위트(Wit)에 휘말려 들게끔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이윤동의 경우는, 塗料(도료)가 천에 묻은 상태와 그 무게에 따라 긴장되고 변화하여 가는 천의 주름들이 하나의 특징적인 표정으로서 나타나며 그들의 표정은 흡사 연륜을 쌓아감에 따라 변하여가는 인간의 주름살처럼 그속에 어떤 內化(내화)된 표정을 남겨 놓는 점이 바로 그러한 솔직한 면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그들의 작업은 결코 숨김이 없는 그러한 발상과 그만큼의 결과를 보인 것들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이들은 그러한만큼 그 나름의 거리낌 없는 표현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만 이윤동의 그것은 작품 전체의 표정을 지나치게 물리적인 因果性(인과성)에 의존시키고 있는 느낌이다. 그 자신이 어떻게 그러한 인상을 지워 갈 수 있을것인가가 하나의 문제로 남겨져 있는듯 하다.
─ 『SPACE』, 1979, 10. No.148, pp.91-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