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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과 삶

김수자

1994

  • 인간이 태어나 최초로 접하는 물질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태아를 감싸는 무명일 것이다. 우리는 이 천이라는 부드러운 물질을 죽는 순간 까지 두르고 살아가며, 마지막 시신까지도 천으로 감싸져 땅에 묻히는 진통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삶의 중요한 대목들, 이를 관·혼·상·제에 있어 그 예식의 상징적인 매개물이 바로 천 임을 목격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서 때로 천이라는 오브제는 물질을 넘어 살을 맞대고 함께 호흡하던 신체와 동일시 되며 또 그 신체의 영혼까지도 묻어있는듯 여겨지기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입던 옷가지와 덮던 이불 등을 태우는 행위가 바로 그의 몸과 혼을 하늘, 즉 저승으로 보낸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아닐까? 십여년간 천을 만져 오면서 나는 작업을 한다기 보다 한 조각의 천이 이끄는대로 혼자만의 퍼포먼스를 하며 헌옷더미에 묻혀 살아온 느낌이다.

  • 과연 무엇을 꿰매어 왔던가.

  • 또한 무엇을 그리도 칭칭 동여매고, 보따리 보따리 싸매어 왔던가.

  • 언제쯤 바느질 뜸을 따라 걸어가는 이 길이 끝날 것인가.

  • 나의 누에는 제 실을 다 풀어 허물을 벗을 것인가.

  • 그리고 갈 곳없는 보따리들은 제갈길을 찾을 것인가.

  • 1994년 11월 김수자

─ Artist’s Note from Gallery Seomi Solo Show ‘Sewing into Walking’, Seoul, Korea,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