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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으로 채운 한국관

김현진 (일민미술관 학예실장)

2013

  • 2013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이 6월 1일 개막과 함께 일반에 공개됐다. 올해 한국관 전시는 프랑스 현대미술센터 르콩소르시움 공동디렉터인 김승덕이 커미셔너를 맡아 ‘보따리’ 작가로 널리 알려진 김수자의 작품을 전시했다. 김수자는 ‘호흡-보따리’란 제목의 설치작품으로 한국관을 빛과 어둠의 공간으로 나누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과 주제관, 주요 국가관들의 전시를 따라가 본다.

  • 올해 한국관의 작가와 작업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특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시작 당시 만국박람회의 미술 버전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자르디니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관 모델로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1998년부터 소위 보다 복잡한 경향들의 동시대 미술씬이 강력해지면서 기획력과 방향 제시가 가능한 큐레이터들을 초대하여 특별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헤럴드 제만의 아페르튀토를 시작으로 올해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요 큐레이터들의 특별전들은 지난
    십여 년간의 베니스비엔날레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 국제 미술의 향방을 점치는 순간들로 여겨져 왔다.

  • 동시대 미술에 있어 새로운 형식이나 경향들은 이미 포화상태에 달하였고 그만큼 새로운 비전의 제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미술 내부에 새로움의 신화가 공황상태를 맞이한 오늘날, 21세기 동시대 미술 현장을 타개해 나가려는 노력 중에 눈에 띄는 방법론이라면 리서치와 아카이브와 같은 수집과 연구적 태도일 것이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의 특별전, ‘백과사전적 궁전(the Encyclopedic Palace)’ 역시 리서치를 방법론으로 취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를 축적하고 재발견하는 방법이자 동시대를 재탄생시키는 과정으로 유효하다. 하지만 리서치와 아카이브적 방법론을 전체화하거나 지극히 일반화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접근해야 한다.

  • | 김수자의 보따리- 비우고 빛으로 채우기

  • 이러한 가운데 올해 한국관은 1인의 작가 선택에 집중하던 기존 방식을 지속하면서도, 한계로 여겨져 왔던 전시 공간을 급진적으로 활용하여 비움을 통해 완성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한국관은 90년대 동시대 미술부터 현재를 관통해 김승덕, 김수자 세대의 주관과 고집에 입각한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 큐레이터인 김승덕 씨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90년대부터 왕성한 활동을 보여 왔으며, 작가로 초대된 김수자 씨 역시 뉴욕 기반으로 90년대부터 국제적인 활동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작가로 한국의 전통적인 ‘보따리’에 담긴 여성주의적 역사나 유랑, 보따리 천의 짜임과 색채 등 보따리로부터 함의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소재로 오랜 기간 작업해 왔다.

  • 작가로서 국제적으로 오랜 활동을 한 만큼 이미 김수자 작가에 대한 정보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바가 많다. 때문에 새로운 버전의 보따리 오브제나 보따리가 은유적으로 확장된 노마딕한 여정과 풍광을 드러내는 영상 작업이 예측될 만한 상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기획자와 작가는 공간은 비우고 오랫동안 전시 공간으로서의 한국관의 문제나 한계에 대한 논란을 적극적으로 보듬어 앉으면서도 빛이라는 요소를 통해 그 공간을 매우 적극적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 꽉 찬 수집품 박물관의 피로감을 안고 자르디니로 향했을 때 한국관은 잠시 하나의 색다른 명상적 공간을 통해 숨 쉴 자리를 마련해 준다. 이 빛의 공간은 오랜 세월 김수자 작업의 인상을 결정해왔던 다양한 색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보따리 천의 요소나 한국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정서를 절제와 수용 사이에서 아름답게 조율하고 있다. 이 공간은 무엇보다 조도나 날씨 상태에 따라 공간에서 경험되는 빛이 달라지기 때문에, 관람객이 날을 달리해 재차 방문한다면 재현 불가능한 매일의 서로 다른 경험을 가져갈 수 있다. 아마도 비워진 공간 내부로 창을 통해 스며드는 오묘한 빛들은 건물이 전시장으로써 기능하지 못하지만 국가관이라는 거대 서사에서 방문자들을 위한 새로운 ‘집’의 소서사의 의미를 찾게 해준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정서적인 경험은 비규범성을 강력하게 통제된 공간에 패키지화한 백인 남성 큐레이터의 ‘백과사전적 궁전’과는 대조적인 면모라 할 수 있다. 물성을 절제하면서도 명상적 공간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있는 이 공간은 동아시아 배경을 가진 여성의 유연함과 수용력을 기반으로 완성되고 있으며, 여기서 또한 김수자 작가의 작업에 대한 새로운 향방을 보여주려는 큐레이터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람객은 빛의 공간 후 암흑으로 가득 찬 작은 방에서 1분간 보내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극적 구성과도 같은 단절로써 전시적 내러티브를 완성하게 된다.

  • 국가 간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글로벌한 사회가 펼쳐져 왔지만 역설적으로 국경의 문제는 곳곳에서 더욱 첨예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니스비엔날레는 국가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로맨스가 허락되는 유일한 영역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거대한 국제 행사라는 점에서 큐레이터들에게 이러한 문제는 늘 어딘가 불편한 동참이다. 때문에 단일한 국가이데올로기를 다원화하고 이상적인 초국가성을 예술적 이상과 함께 추구해 온 수많은 큐레이터들의 노력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자르디니 안에 수용되지 못한 국가들이 베니스 전역에 흩어져 자르디니 국가관들의 패권성을 견제할 뿐 아니라 더 좋은 전시들로 자르디니의 나태함을 대조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올해 주목받은 대부분의 국가관은 자르디니 외부에 존재한다. 한국관 역시 이러한 점에서는 좀 더 다른 기획적 혁신이 요구되기도 한다. 한편 대체로 신선한 전시적 접근보다는 작가 1인의 대표성으로 귀결되는 한국관의 한계는 사실 전시 공간으로써의 적합성이나 그 한계가 늘 도마에 오르는 한국관 내부 공간의 문제로부터 기인하는 점도 크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타개할 근본적인 고민도 함께 필요하다.

─ Article from Arko Webzine Vol.237, 17 June,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