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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문위원)
2013
‘보따리 작가’로 미술계뿐만 아니라 일반에게도 익히 알려진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 김수자가 2013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출품작가로 선정되었다. 그녀는 뉴욕에 거주하며 일 년의 절반 정도를 해외의 다양한 전시일정으로 보내고 있고 해외에서 이미 한국 현대미술의 아이콘으로 확고한 자리를 점하고 있다. 실제로 오래 전에 베니스비엔날레의 본전시에도 두 번이나 초대된 경험이 있는 작가에게는 이번 한국관 참가는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번 참가를 계기로 그녀가 계획하고 있는 출품작에 대한 구상과 그의 작품세계, 그가 바라보는 세계 화단에 있어서의 한국 현대미술의 정황과 과제, 그리고 한국 미술을 좀 더 효율적으로 세계무대에 등단시키기 위한 정책적 과제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고 그의 향후작품 활동 계획에 대해 알아본다.
김찬동
금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국제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통해 이미 오래 전에 상파울로비엔날레에도 참가하셨고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도 참가경력이 있지만 특별히 이번에 작가로 선정된 소감을 간단히 말씀해 주신다면?
김수자
90년대 후반 IMF 시절의 열악한 경제, 문화적 상황에서의 상파울로비엔날레 국가관 참여 이후 한국을 떠나 활동해 온 저로서는, 당시로부터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 놀라운 물질적 성장과 사회문화적 발전을 이뤄내고 있는 한국을 대표한다는 사실이 새롭고, 늘 아웃사이더의 시각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다가 제 자신이 인사이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뜻밖의 영광이며 국가가 지지하는 비엔날레가 과연 제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문해 봅니다.
김찬동
‘보따리 작가’로 이름을 떨치면서 동양성, 여성성, 노마디즘, 생태학 등과 관련된 주제로 일련의 작업을 해오고 계신데 이번 전시를 위해 선보이실 작품은 어떤 내용입니까?
김수자
국가관 건물 자체를 하나의 ‘보따리’ 개념으로 파악하였고, 가능한 한 만들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의 건축적 조건과 문제들을 출발점으로 건축 내에서 비물질적 보따리를 싸는 동시에 펼쳐 보이는 작업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즉 외부의 자연을 끌어들여 내부에 펼치고, 또 내부공간의 구조적 요소들을 열고 싸면서 외부의 자연을 조응하는, 보따리의 개념이 확장된 작업으로서 빛과 소리가 이를 매개할 것입니다. 특별히 지난해 뉴욕에서 경험하였던 자연의 재앙인 허리케인 샌디(Sandi)의 개인적인 경험이 기존의 작업에 본질적이고도 새로운 콘셉트의 방향성을 갖게 했습니다. 그리고 비물질적인 접근을 한국관의 기본 개념으로 설정한 커미셔너의 전시방향과도 공통적인 일치점을 찾은 것 같습니다.
김찬동
전시 참가기간 중 별도의 부대 행사 같은 것을 검토하고 있나요?
김수자
커미셔너와 많은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지만 늘 프로그레시브한 것에 관심을 갖고 대화중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예산이 허락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김찬동
다양한 비엔날레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경험을 갖고 계신데 개인적으로 베니스비엔날레는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김수자
개인적으로 베니스와 인연이 깊다고 생각하는데, 1995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한 ‘호랑이 꼬리’전에서의 보따리 설치작업을 시작으로, <보따리 트럭> 거울설치와 <바늘여인>을 선보였던 비엔날레 본전시(1999, 2005), 그리고 비엔날레 공식행사였던 ‘ArtTempo’에서의 <빨래하는 여인>, ‘비디오 보따리’를 콘셉트로 선보였던 베빌라콰 라마사 파운데이션과 라 페니체 극장에서의 개인전 ‘호흡’ 등 베니스에서의 일련의 전시들은 지속적이고 일관된 보따리 개념에의 전개과정 하나하나의 매듭을 푸는 전시들이었습니다. 이번에 보따리 개념이 비물질적이고 총체적인 요소로서 장소 특정적 설치작업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베니스비엔날레는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비엔날레인 동시에 제 작업의 핵심적인 맥을 순차적으로 짚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엔날레라고 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베니스에서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보따리 개념의 총체를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찬동
뉴욕에 거주하며 다양한 국가에서의 전시경험을 가지고 계신데, 해외미술계에서 바라보는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과 위상을 어떻게 판단하고 계신가요?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국제무대에서 생존과 관련하여 조언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김수자
과거와 달리 그동안 한국 미술계의 노력과 발전이 가시화 되어온 지 수년이 되었습니다. 이는 많은 젊은 작가들의 해외 진출이나 중견작가들과 원로들의 주요 미술관에서의 초대전이 반증합니다. 아무리 좋은 작가라도 국가나 미술계의 지원이 없다면 오늘 같은 물질만능의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력이 세계미술사에서의 자리매김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들의 치열한 작가정신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가정신은 작업행위 자체에 있다기보다 작가의 삶의 태도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일거수일투족이 속일 수 없는 작가의 예술성과 작가로서의 도덕성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젊은 작가들에게는 늘 “위험을 감수하라!(Take Risk!)”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찬동
위 질문과 관련하여 정부가 정책적으로 강화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내용일까요?
김수자
그동안 국가가 많은 노력과 지원을 해온 것이 사실이나, 그러나 과연 어떤 형태로 예산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도 포퓰리즘에 의거한 정책들을 목격합니다. 순수예술은 대중예술과 달리 소수의 탁월한 개인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 소수의 예술가만이 세계의 폭넓은 관객을 갖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술지원은 복지지원이 아니며, 정례의 국제적인 안목과 경험, 그리고 미술사적 통찰력이 있는 최고의 전문가, 때로는 작가들에 의해 선정된 작가들이나 큐레이터, 그리고 기관에 아낌없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건 없는 충분한 지원이 아닌 한 단시간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특히 상업주의의 팽배와 큐레이터들의 역할이 증폭되면서 예술비평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국내미술계의 실정을 고려한다면, 많은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비평문화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많은 비평지나 전문서적을 지원하고 그들의 해외 리서치를 도우며 한국에서도 국제무대에 내세울 수 있는 비평가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작가들의 미술사적 자리매김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지속적인 지원으로 아카이브를 축적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떠들썩한 잔치가 아닌 차근차근 견고한 한국 미술사의 지층을 쌓아가는 정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찬동
최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비엔날레가 개최되어 과거에 비해 비엔날레의 의미와 성격이 많이 달라졌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엔날레가 상업주의와 결탁한 폐해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수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오늘날 현대미술의 양상은 비엔날레는 물론이고, 큐레이터나 미술관, 작가 역시 거대한 상업주의의 그물망 속에서 존재합니다. 이는 공공기관이나 전문가들이 경제적 자율성을 갖지 못한 데에 기인함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늘 꿈꾸는 작가와 제작자들의 생리에도 기인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알게 모르게 상업주의의 폐해가 발생합니다. 조건 없는 순수한 지원이 아닌 한 그들의 상업행위는 주고받는 이들의 도덕성과도 깊이 연계되어 있습니다. 다만, 상호존중의 태도를 잃지 않는 상호관계 속에서만 불가피한 자본주의적 속성을 인정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공식적인 예산만 가지고, 혹은 예산 없이 전시를 한다면 어떤 흥미로운 일들이 발생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도움을 예상할 수 없는 작가 선정, 조금 복잡한 문제일 테지만, 권력지양적인 비엔날레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다만 상업주의로 점철된 비엔날레는 좀처럼 치열한 프로젝트가 아닌 한 대중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고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신생 비엔날레들이 비엔날레 고유의 성격인 현대 미술의 현재를 제시하며 새로운 담론을 생성한다는 목적에서라기보다, 각국의 자치도시들이 그들의 세계 속에서의 자리매김과 관광수입내지 선전효과에 연연한 나머지 확고한 존재의미나 검증 없이 생겨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이 도출된다고 봅니다.
김찬동
광주비엔날레 등 국내에도 다양한 국제 비엔날레가 있는데, 이러한 행사들이 국제무대에서 그 위상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수자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의 비엔날레 숫자는 세계 미술계에 유래가 없고 이 좁은 나라에 가히 폭발일로에 있습니다. 세계미술계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동안 타당성을 갖고 성공적으로 세계미술계에서 자리매김한 비엔날레 외에는 다른 명칭 내지는 포맷으로 전시를 하면서 고유의 전시형태와 담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하나라도 제대로 된 비엔날레를 자신이나 자신의 지역의 관계여부와 상관없이 넉넉하게 봐주고 또 협조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은 한 비엔날레의 성공이 다른 지역의 작가의 성공에 기여하고 나아가 한국의 위상을 프로페셔널하고 자신 있게 알리는 길이라고 봅니다.
김찬동
비엔날레 참가 계획 이외에 향후 전시나 작품 활동과 관련한 별도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김수자
올해 벤쿠버미술관에서의 회고전 형식의 전시가 가장 중요한 전시가 될 것 같습니다. 오랜 기간 상의해 왔고 30년간의 작업을 조망하는 전시로서 작업 전체의 스펙트럼을 보일 수 있는 전시라 특별히 의미를 둡니다. 그 외에 미국 공공시설청(GSA)에서 커미션한 미국과 멕시코 국경선에 설치할 신작 비디오의 영구설치와 유럽과 아시에서의 설치작업들도 논의 중입니다. 진행 중인 ‘실의 궤적’ 시리즈도 늘 스케줄에 포함되어 있으나 올해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비엔날레나 테마전들은 작업의 컨텍스트를 확장하고, 나름대로 제 작업을 다각도로 질문해 볼 수 있어 흥미로운 질문이라면 참여할 계획입니다.
김찬동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전시참가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 Article from Arko Webzine Vol.227, 28 January,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