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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ttari Truck, 2000. Used clothes and bed covers, Rodin gallery, Seoul. Courtesy Samsung Museum, Seoul. Photo by Kim Hyun Soo.

김수자 : 세상을 엮는 바늘

태현선 (삼성미술관 주임연구원)

2000

  • 지난 한 세기, 우리에게 전통과 세계화의 문제는 예술은 물론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공통된 갈등의 요소였으며, 여전히 해결되어야 할 앞으로의 과제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많은 국내 작가들이 주요 국제전과 비엔날레에 진출하여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면서 그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다. 김수자 역시 개성적인 작업으로 현재 국내외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우리 작가로, 그의 작업에는 20세기 말과 새로운 세기의 한국은 물론 세계 미술계의 주요 담론들이 융해되어 있다. 흔히 '보따리'로 축약되는 그의 작업은 가장 즉각적으로 여성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으며, 예술과 삶의 관계를 생각케 한다. 또한 그의 작업은 최근 부각된 유목주의 (Nomadism)에 닿아 있으며, 시간성을 내포하며, 소통과 관계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문제를 담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담론들을 한 작가의 작업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천, 바느질 그리고 보따리

  • 김수자는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반, 형식주의 미술이 화단의 주류를 형성하며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반성의 기운이 감돌던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시 미술 계의 가치는 단연 '평면'이었고 김수자의 작업 역시 평면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되 어, 일상에 대한 두 번의 깨달음을 통해 촉발되었다.

  •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 수성과 행위가 모두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 며, 묻어 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 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천이 가지는 기본 구조로서 의 날실과 씨실, 우리 천의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들며 꿰매는 행위의 천과의 자기 동일성,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완전히 매료되었다." [1]

  • 천은 인간이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접하는 물질이며, 삶의 흐름에 따라 일생 동안 우리의 생활에 밀착된 존재로, 단순한 장식무늬 뿐 아니라, 다산, 무병, 축수(祝壽), 벽사(辟邪)등 인간의 안위와 행복을 기원하는 온갖 상징적 인 기호와 문자들로 이루어진 문양들을 담고 있으며, 그 색채까지도 대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천과 인간의 관계는 보온과 보호, 치장 등 단순히 기본적인 생 활을 위한 기능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정신적인 국면까지 개입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천은 유교적인 성(性) 개념 속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전 통적인 여성 역할의 매개이기도 하다. 완전히 산업화가 이루어진 요즘, 방 한 가득 이불솜을 펼치고 요와 이불을 만들던 정경은 이미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의 것인듯, 과거의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여전히 거기에는 여성의 노동이 얽혀 있고, 성과 사랑 등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게다가 그가 작업에 사용하는 이불보천은 형형색색의 꽃무늬가 때로는 유치해 보이기까지 하는 우리네 평범한 서민들의 생활소품으로, 누군가가 실제로 사용했던 것들이다. "살을 맞대고 함께 호흡하던 신체와 동일시하며 그 신체의 영혼까지도 묻어 있는 듯 여기기도 한다."[2]는 작가의 말처럼, 그에게 천은 단순한 섬유질의 오브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충만한 소재로 다가온 것이다.

  •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이미 신화화된 이 일화는 천과 바느질의 발견이 그가 논리를 통해 도달한 깨달음이 아니라, 작가로서의 예술적 혜안이 있었기에, 또 그가 여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시사한다.

  • 천이라는 소재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바느질은 천의 표면과 이면을 되풀이하여 오가는 과정으로, 작가는 이 바느질 행위의 수직적인 움직임에서 '평면'의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간파하였다. 작가에게 있어 그것은 지속적인 대화와 상호작용을 가 능케 하는 행위였다고 한다. 이를 구체화 시킨다면, 김수자에게 바느질은 평면과의 대화이며 공간과의 상호작용이었다고 볼 수 있다.

  • 천과 바느질을 통해 김수자의 작업에 대해 가장 즉각적으로 도출되는 논의는 여성 성의 문제이다. "여성의 일상은 평면작업, 입체작업, 설치작업, 그리고 행위예술로 점철되어 있다."고 본 김수자의 작업은 "일상의 개념화"[3]를 통해 유교적인 가치에서 평가절하된 전통적인 여성 역할의 위상을 높이고, 편협한 모더니즘이 배제시킨 일상의 영역을 포용했던 것이다.

  • 그러나 그는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것을 조심스럽게 거부한다.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 작업에 나타나는 여성적인 영역은 "많은 요소의 하나일 뿐"[4]이며, 그의 작업 은 여성의 문제 보다는 일상에, 다시 말하여, 여성이기에 자연스러웠던 일상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거부 또는 저항의 몸짓이 아닌 '포용하는 자세’[5]로 성을 초월하여 인간, 인격체라는 보편적인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 2차원이면서 3차원의 체험을 가능케 하는 소재이며 행위인 천과 바느질을 발견한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김수자는 캔버스와 물감 대신 천과 바느질을 이용한 천꼴라 주 작업에 몰두하였다. 이 시기의 천 작업은 대체로 <방(Dans Ma Chambre, 1988)>과 같이 천 위에 드로잉 또는 채색이 가해지고 사각 평면을 고수하고 있어 일상의 소재가 기성의 예술 형식의 틀에 맞추어 조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창틀이나 지게, 얼레 등 전통적인 일상의 오브제들을 천으로 감싸 오브제의 기본 구조를 확인하는 입체작업인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Object)>와 수많은 천조각들을 집성시킨 앗상블라주 작업에 도달하면서 작가는 차츰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 첫 깨달음을 얻은지 약 10년 후인 1992년, 뉴욕의 P.S.1 작업실에서 그는 작업을 위해 곁에 두었던 보따리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 "보따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제 주위에도 항상 있었습니다. 그 작업을 하기 전부터 제 화실에도 있었고요.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뿐입니다. 그런데 92년 P.S.1 작업실에서 작업하던 중 우연 히 고개를 돌린 순간 거기에 보따리가 보였습니다. 천 작업을 하려고 보따리에 싸놓았던 것을 제 스스로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때 그 보따리는 전혀 새로운 보따리였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조각이고 회화였습니다." [6]

  • 그것은 '보따리'라는, 익숙한 우리 일상의 한 단편을 발견한 것으로, 울긋불긋한 평범한 보따리들에서 그는 이불보천 자체가 지닌 표현력과 그 자연적인 속성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이는 작가가 굳이 별다르게 작업을 하지 않아도 보따리는 그 스스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음을 깨달은 것과 같다.

  • 작가는 이제 실제 바느질을 하지 않는다. 천을 경계로 2차원 평면의 표리를 관통하는 3차원의 행위인 바느질 대신 묶는 행위로 2차원과 3차원의 전환기능을 대체하고 있다. 일회성의 꿰매기보다, 싸고 묶고 풀고, 다시 싸서 묶어야 하는 보따리를 통해 작가는 더더욱 자신과 작품간의 거리를 좁혔고, 반복되는 자신의 삶과 행위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보따리의 발견은 작가가 10년 전 일상에서 추출해내었던 천에서 예술적인 가필을 제거하여 다시 본연의 일상의 존재로 돌려보내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작가의 행위 역시 순수 조형적 행위에서 보다 일상에 근접한 행위로 나아가게 된다.

바늘 여인

  • 한편, 평면에서 출발했던 작가의 관심은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보따리를 발견하면 서 필연적이고 자연스럽게 공간의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장소(site)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면서 그는 점차 화랑 공간과 작품의 이질적인 유리를 거부하게 되었고, 여기에 천과 보따리는 이들을 이어주는 아주 훌륭한 매개였다. 1992년, 뉴욕 P.S. 1 미술 관에서의 벽 설치작업은 천의 물리적인 속성과 틈이 많은 벽돌벽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을 유기적으로 활용한 작가의 탁월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 그러나 장소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어 갈수록 그의 작업 영역은 미술관과 화랑 공간에 머물지 않고 점차 전시장 밖과 자연으로 확장되었고, 더불어 바느질이라는 행 위 역시 개념화 되어갔다. 바느질 행위를 '호흡 또는 소통(communication) 같은 것' 이라 여기는 그는 걷고, 말하고, 바라보는 평범한 일상적인 행위 자체가 분리된 것을 이어가는 바느질 행위라고 보았다."[7] 이러한 바느질 개념의 확장은 1994년 서미화랑 개인전 때의 설치 작업인 <바느질하여 걷기(Sewing into Walking)>에서 처음으로 실현된다. 헌 옷과 보따리, 그리고 비디오를 이용한 이 설치작업에서 바느질은 전시 장 바닥에 널려 있는 헌 옷들을 밟으며 걸어다니는 관람객의 동작에 의해 이루어지며, 작가가 멀리 마이산 봉우리를 향하여 걸어가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 작업에서는 작가의 한걸음 한걸음이 바늘 한땀 한땀이 되어 자연을 천삼아 바느질하고 있다." 전에는 실과 바늘이 천을 꿰매었다면 이번에는 내 몸이 하나의 자연을 꿰매는 침이 되어 자연이라고 하는 넓은 천을 꿴다고 할 수 있다."고 하였듯이[8] 이때부터 작가는 자신을 바늘에 비유하기 시작한다.

  • 바늘은 "상처를 줄 수 있는 도구"이지만 매개체로서의 바늘은 "치유의 도구이기도 하다.[9] 이번 전시에 처음 소개되는 최신작인 <빨래하는 여인(A Laundry Woman, 2000)>은 이러한 치유로서의 바늘 개념을 구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인도 델리의 야무나(Yamuna)강 가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서 있는 작가는 흘러가는 물과, 삶과 자연의 단편인 떠내려가는 화장터의 부유물들, 이 모든 것들이 작가의 몸을 통과하는 동안 빨아짐으로써 정화되기를 기대한다. 삶과 죽음에 대한 관조를 통해 인간 본연의 문 제로 회귀하고 있는 이 비디오는 강물을 향해 돌아서 있는 작가의 뒷모습에서조차 망자(亡)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 이렇게 최근 바늘에 대한 작가의 사유는 초기에 비하여 철학적 깊이를 더하고 있다. 바늘은 매개체로서 갈라진 틈을 지나 자신이 매개한 물질에서 곧 떠나버리고, 단지 바늘과 연결되었던 '실'만이 그림자처럼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이렇게 매개체로서의 역할이 끝난 후 '무(無)'화되는 바늘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 하고 있다.

  • 바늘로서의 작가의 모습은 일본 동경의 시부야 거리와 중국 상하이, 그리고 인도 델리에서 벌인 퍼포먼스를 담은 비디오 작품 <바늘 여인(A Needle Woman, 1999-2000)>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길 한가운데에 미동도 없이 서 있는 작가에 대하여 전혀 무심한 시부야 거리의 행인들, 힐긋 힐긋 뒤돌아보며 호기심 어린 관심을 보이는 상하이 시장거리의 중국인들, 가던 길을 멈추고 그를 마주하고 응시하기까지 하는 인도인들, 그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지만, 가만히 서 있는 작가와 그들간에는 보이지 않는 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듯 하다. 이 비디오 작업은 자신의 몸을 매개로 하여, 여성이라는 특정 성에 국한되지 않은 보편화된 인간으로서 나와 타인, 나와 세계의 관계를 엮고자 하는 작가의 최근의 시각을 가장 극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신작으로, 그는 이 작업에 대해 "하나의 매개체(medium), 혹은 바로미터 또는 나 침반으로서의 작가의 몸은 인파 속에서 스쳐가는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관계지을 뿐 결국 투명인간 처럼 거의 '무'의 상태로 소외되고 사라지고 만다."고 설명하고 있다. [10]

  • 김수자는 자기 자신을 점차 '무'화하는 매개체로 보는 반면, 관람객의 신체를 적극적으로 작품 속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의 설치작업에서 사람들은 보따리를 열어 보고 들춰보거나 헌 옷가지를 집어 간다. 전통적인 미술품 개념에서는 고귀하고 신 성한 예술품에 대한 훼손이며 모독이겠지만 김수자의 작업에는 그러한 관람객의 호 기심과 특별한 반응들이 수용이 되며 그렇게 관람객과 작품이 관계맺어지는 것이다. 또한 이는 헌 옷과 이불보의 실제 주인이었던 과거의 인물과 현재에 그것을 보고, 그 위를 걸어다니고, 또는 가져가 버리는 미지의 인물이 작가를 매개로,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 바느질을 걷는 동작으로 확대시킨 <바느질하여 걷기>가 그러하며, 1997년의 설치 작업 <빨래터-바느질하여 걷기, 바라보며 바느질하기 (A Laundry Field-Sewing into Walking, Looking into Sewing)>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관계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설치작업에서 이불빨래를 너는 김수자는 누군가가 사용했을 그 이불보에 묻어 있는 삶의 애환을 빨래라는 정화의 과정을 통해 씻어 낸다. 이불보들이 널려 있는 이 공 간은 제목 그대로, 줄에 널린 이불보를 바라보며 종으로 횡으로 질러다니는 관람객 의 신체와 그들의 시선이 바늘이 되어 이불보들을 잇는 능동적인 참여의 공간이 된다. 즉 이 작업은 작가는 빨아 널고, 관람객은 이를 엮어가는, 즉 작가와 관람객의 협업으로 완성해가는 설치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자에게 관람객은 바라보는 '눈'만 있는 방관자적인 존재가 아니라 행위하는 '몸'이 있는 존재로서, 그의 설치 공간에서 관람객은 퍼포머(performer)인 것이다.

  • 더욱 적극적인 예가 있다. 영국 에딘버러의 프루트마켓 갤러리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뵈닝겐 미술관, 일본 동경의 세타가야 미술관 카페에서 김수자는 우리에게는 취침을 위해 사용되는 형형색색의 이불보를 실제 일상의 행위인 음식을 먹고 마시는 공간에 마치 테이블보인 듯 깔아 놓고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이는 우리의 문화에서 보면 생활의 도리에 맞지 않거나 어색한 설정이지만,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관람객의 행위를 끌어들이기 위하여, 전통을 잇되, 이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 속에 적용할 수 있는 탄력성을 발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나의 오브제나 설치작업은 '바느질'이라는 행위의 연장선 상에 놓여 있다."는 작가의 말처럼 보따리 발견 이후 그의 작업은 실제로 꿰매는 행위를 하지 않고 실과 바늘이 없이도 관계를 맺어 가는 개념적인 바느질 작업으로 전개되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인간의 일상과 환경과 자연을 더 큰 재료로 삼았고 이렇게 공간이 작업에 수용되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의 몸이 개입되어, 김수자의 작업은 작가의 퍼포먼스와 불가분의 관계가 된다.

비디오, 또 하나의 보따리

  • 김수자는 정지된 공간에 머무르기 보다 이동을 시도하여 공간의 영역을 넓혀 왔다. 1997년 가을, 작가는 보따리를 가득 실은 트럭을 타고 11일간 전국을 일주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퍼포먼스를 담아 제작된 비디오 작품 <떠도는 도시들- 2727Km 보따리 트럭(Cities on the Move-2727km Bottari Truck, 1997)>은 우리 의 보따리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이동'과 '유랑'의 정서가 드러난 것으로, 20세기 말과 세기 초, 세계 미술계의 공통된 화두의 하나인 유목주의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게 부합되는 작업이다.[11] 보따리에 은유적으로 내재된 시간성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들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유목민처럼 이사를 다녀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그리고 작업을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현재의 자신의 모습에서 착안한 작업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의정부-연천-전곡-대광리-철원-김화-속초-정선-안동-대구-경주-부산-진주-순천-소록도-광주-대전-용인-서울로 끝을 맺는 추억을 되짚는 11일간의 긴 여정, 그것은 신체의 이동일 뿐 아니라, 작가의 정신의 이동이며 기억의 흐름이다. 이미 1998년의 상파울로 비엔날레와 1999년의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그의 보따리 트럭은 앞으로도 또다시 세계의 도시들로 떠나야 할 여정이 남아있고, 또 언젠가는 다가올 정착의 순간까지 내포하고 있어 이런 의미에서 김수자의 보따리 트럭에 대한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를 포함한 시간성 논의는 타당하다고 하겠다.

  • 김수자 작업의 시간성은 그가 자신의 퍼포먼스를 비디오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더욱 부각되는 특성이다. 퍼포먼스를 반복하여 보여주는 연속 편집 이외에 아무런 비디오그래피 (videography)나 이미지 편집 없이 시간의 흐름대로 보여지는 그의 비디오 작업은 그가 작업공간을 자연으로 확장시키게 되면서 자연 속에서 행한 자신의 행위들을 전시공간에 옮겨 오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되었고,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비디오 작업을 '이미지 보따리'[12]라고 하였다. TV모니터가 보따리들 사이에 또 다른 형태의 보따리로 놓였던 초기 작업 <바느질하여 걷기>가 오브제로서의 비디오를 구현하는 비디오 설치에 가까웠던 반면에 최근의 비디오 작업은 순전한 비디오 영상만으로 작품의 의미와 개념을 전달하고 있다.

  • 비디오에 기록된 작가의 퍼포먼스에는 현저한 변화가 나타난다. 초기의 퍼포먼스 에서 작가는 걸어가거나 이불보를 걷어올리거나 보따리를 들고 이동하는 등 구체적이고 분명한 행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바느질하여 걷기 이스탄불(Sewing into Walking - Istanbul, 1997)>에서 작가의 모습은 일체 등장하지 않고 무수히 많은 행인들만이 '이미지 보따리'인 고정된 카메라에 포착되었다가 사라지는 일이 되풀이될 뿐이다. 다시 등장한 작가의 모습은 '보따리 트럭' 위에 그 스스로가 또 하나의 보따리로 얹어져 조용히 트럭에 몸을 맡긴 채 떠돌고 있는 절제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 그러나 최근작인 <바늘 여인>과 <빨래하는 여인>에는 이제까지의 퍼포먼스에 수반되었던 천과 보따리가 모두 소멸되고 없다. 작가의 행위까지도 최소로 축소되어, 작 가는 더 이상 걷지도 보따리를 싸지도 않는다. 그러나 미동도 않고 서서 정면을 응시 하는 지극히 미니멀한 그의 행위 속에는 세상의 바늘이 되고자 하는 그가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들이 응축되어 있다. 행위는 극소화된 반면, 그는 자신의 신체가 물리적으로 점유할 수 있는 공간보다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이전의 작업이 몸으로 세상을 엮었다면, 이제는 눈과 정신으로 엮어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비디오 에서 천과 바느질, 그리고 보따리는 사라졌다기 보다는 개념화되었다는 것이 옳다.

  • 비디오 미술의 진정한 매체는 기계적 장치가 아니라 심리적 상황이라는 로잘린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말처럼 그의 비디오는 무위(無爲)의 상태를 느낄 수 있으며, 생태적인 연출이나 영상이 없이도 자연과 교감하게 해주는 듯하다. 김수자에게 비디오는 그의 작업을 개념화하여 보편적 층위로 이끈 매체로서, 비디오 작업을 통해 천과 바느질과 보따리가 모두 일상의 의미를 넘어 인간과 관계와 소통의 문제로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 지난 이십 년간 그의 작업은 객체인 평면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하여 오브제로, 오브제에서 공간으로 관심을 확대해 가면서 나 자신, 나와 타인, 즉 주체인 인간의 문제에 접근하였고 여기에 천과 바느질은 작가를 이끌어준 견인차였고 보따리는 그 촉매였다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에서 천의 사용이 물론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미술 재료의 확장을 가능케 한 레디메이드의 역사에서도 발견되며, 무엇보다도 섬유 예술의 형태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김수자 역시 90년대 초반까지는 천이 제공하는 재료의 확장과 조형성에 크게 이끌렸지만, 점차 그 본래의 가치로 되돌아와 천, 특히 이불보를 우리 고유의 삶의 매개물로서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천은 작가에게 첫 화두였던 평면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되기도 하였다. 1950~60년대(우리 나라의 경우 1970년대) 일련의 모더니즘 회화의 경향들은 캔버스 의 평면성을 회화의 본질로 규정하고 그 제약적 인식을 전제로 천 자체의 다양한 잠재성과 물성을 무시 혹은 간과하였다. 그러나 김수자는 천과 필연의 관계에 있는 일 상의 행위인 바느질을 예술행위로 격상시킴으로써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존재 로서의 천의 본질, 즉 모더니즘이 간과한 가치들을 되찾아 주었고, 그렇게 그는 형식 주의를 훌쩍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작가가 선택한 천이라는 소재는 평면의 문제, 독창성에 대한 욕구, 작가 개인의 삶과 작업의 괴리를 해소시킬 방법론을 모두 만족시키는 소재였다.

  • 결론적으로, 그가 현재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업이 한국적 소재를 사용하여 강한 민족적 특성을 표출하면서도 결코 국수주의로 흐르지 않아 전통 계승과 세계화의 균형을 훌륭히 이루어 내고 있으며, 바느질 행위와 그 개념화를 통해 여성의 이야기이면서도 인간의 본질을 다루는 보편적 문맥에 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적인 작업인 보따리, 이불보 설치작품을 소개함은 물론, 비디오 작업을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해가는 그의 작업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 공간 자체를 해석의 대상으로 삼는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먼저 로댕갤러리의 공간해석 작업부터 착수하였다. 그는 로댕의 <지옥의 문>과 <깔 레의 시민>이 전시되어 있는 글래스 파빌리온 바닥에 헌 옷을 설치하여 로댕 작품에 표현된 설화와 역사 속의 인물과, 헌 옷의 주인들인 과거의 인물, 그리고 전시장을 돌아다니게 될 현재의 관람객의 신체가 서로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헌 옷들은 시공을 초월한 그 '만남'의 매개물인 것이다.

  • 1994년 경주 옥산서원 계곡에서 벌인 퍼포먼스를 기록한 비디오 작업 <바느질하여 걷기>에서 이불보를 하나씩 거두어 보따리를 싸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떠도는 도시들-2727Km 보따리 트럭>에서 보따리들을 가득 실은 트럭 위에 앉아 있는 뒷모습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 작품은 비디오 상영은 물론, 실제 보따리 트럭이 갤러리 입구의 광장에 설치되어, 트럭을 타고 작가가 경험했던 유랑의 시간을 관람객이 간접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어, 앞서 언급한 신작 <바늘 여인>과 <빨래하는 여인>이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 첫 선을 보이게 되며 또한, 해외에서 먼저 소개되어 호평을 받았던 대규모 이불보 설치작업이 국내에서 처음 설치되어 관람객에게 다이나믹한 체험과 참여의 공간을 제공할 것이다.

[Notes]
[1] 김수자, "작가노트" 김수자, 개인전 도록, 갤러리 현대, 1988, p. 9
[2] 김수자, "천과 삶," 김수자, 개인전 팜플렛, 서미화랑, 1994
[3] 김수자, "일상의 개념화," 여성 그 다름과 힘, 김홍희 편저, 1994, pp. 82-83
[4] 박영택, "김수자: 평면에서 입체로의 접근, 보따리" 공간, 1996년 6월호, p. 116 인터뷰 기사 중
[5] 김애령, "김수자: 보따리에 싸인 삶과 예술." 월간미술, 1999년 10월호, p. 168
[6] 박영택, "김수자: 평면에서 입체로의 접근, 보따리" p. 113
[7] 박영택, 위의 글.
[8] 황인, 김수자 대담, "Sewing into Walking-Cloths, Video, Sound Installation by Kim Sooja, 공간, 1995년 1월호, p. 38
[9] 김수자, 위의 편지.
[10] Kim Sooja, letter from the artist, February 15, 2000. > return to article >
[11] 실제로 이 작품은 1997년 유목주의를 주제로 한 한스-울리히 오브리스트(Hans-Ulrich Obrist)와 후한루(Hou Hanru)가 기획한 동명의 전시프로젝트를 위해 제작되었다.
[12] 황인, 위의 글.

  • — Essay of the Catalogue, 'KIMSOOJA : A Needle Woman'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the Rodin Gallery (Plateau Samsung Museum of Art), Seoul, Korea.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