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 2008, 4 channel video projection, sound, 12:33 loop.

김수자: 검은 심연, 명상적인 사라짐, 그리고 우주적 거울로서의 자연

잉그리드 코망되르 (Ingrid Commandeur)

2012

  • 현재 뉴욕, 서울 그리고 파리를 오가며 거주 및 활동 중인 김수자(1957-)는 그녀의 가장 잘 알려진 작업 중 하나인 퍼포먼스 비디오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 킬로미터 Cities on the Move: 2727 kilometres Bottari Truck>(1997)를 통해 동시대의 다양한 전시의 담론을 생성해왔다. 이 작품은 무성의 로드 무비이기도 하며, 우리는 ‘보따리’라고 불리는 형형색색의 직물 꾸러미들이 마치 또 다른 산더미와 같이 쌓여 있는 푸른색 트럭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보따리 꾸러미 꼭대기에 앉아 유년시절부터 살았던 전국의 마을과 도시들을 따라 트럭과 함께 11일간 2727km여정을 떠난다. 2727 km의 퍼포먼스 여정 중에 제작된 비디오는 그녀가 각 한국의 풍경들을 스쳐 지나는 동안, 그 비디오 프레임은 고정되어 관객은 작가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치 가부좌를 튼 한 익명의 여성으로 인지하게 된다. <떠도는 도시들 Cities on the Move>(1997)[1]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후 한루가 기획했고, 다수의 작가들과 건축가들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세계화와 근대화의 결과물로써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는 도시의 변화에 주목하며 이를 작업에 반영했다. 그 연대로 인해 김수자의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 킬로미터>는 유목적인 삶과 이주의 개념을 환기시켜주면서 이 전시 주제의 궁극적인 메타포가 되었고, 그녀의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 킬로미터>은 국제적인 미술계에서의 그녀의 확고한 입성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2]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많은 언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 우리는 국제적인 맥락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과 더불어 ‘문화적 전쟁’을 목도하고, 부유한 자와 빈곤한 자 혹은 경제강국과 약소국 사이의 급증하는 차이에 따른 서로 다른 인종과 종교의 차이를 아우름으로써 (중략) 이 논제들은 <보따리 트럭 Bottari Truck>과 <바늘 여인 A Needle Woman>을 통해 이주, 피난, 전쟁, 문화적 충돌, 서로 다른 정체성 등 현 시대의 주요한 주제를 언급하였다. 나는 관객들이 작품의 현실성을 통해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관심을 갖고 보게 된다고 본다. 아마도 이 점이 그 작업들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3]

  •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는 국제적인 비엔날레들의 다발적 움직임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내는데, 이는 그녀가 국제적인 비엔날레가 미술계 안에서 점점 더 강력해지며 파워를 행사하는[4] 구조에 대한 인지라 할 수 있다. 그녀가 스스로 시사하는 바에 따라 김수자의 작품은 변론의 여지 없이 글로벌한 문화의 성장과 동시에 지역적 가치들, 예를 들어 이주와 문화적 충돌에 따른 주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이는 더 심화되고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사물에 대한 동양적인 관점에 따른 강력한 영감이 그녀의 작품에 있어 퍼포먼스와 자연의 표현 모두에 대한 그녀의 진지하고도 독특한 개인적인 접근 방식이라는 점이다.

  • <바늘여인 A Needle Woman>(1999-2001)은 멀티채널 비디오 설치로써 작가의 부동의 명상적 관점을 제시한다. 작가는 관객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8개의 다른 대도시들 즉, 도쿄, 상하이, 멕시코 시티, 런던, 델리, 뉴욕, 카이로, 라고스의 군중 한가운데 서 있다. <바늘여인>은 작가가 스스로를 바늘로써 바라보며 서로 다른 지정학적 장소성에 따른 사회적 맥락들을 ‘관통’ 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관계미학’의 관점에서 서양의 특징적인 참여 모델과 동양적인 사색의 기술을 아우르는 매우 적절한 예시 방법이다.[5] 그녀의 작업들이 근본적으로 관계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작가군, 마우리치오 카텔란,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스터, 피에르 위그, 리크리트 티라바니야 들과 공유하는 태도가 있는 반면, 그녀의 관계미학은 시공간의 개념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리크리트 티라바니야의 작업에서는 집단적이고 단기적인 사회 활동과 같은 공공성이 주요 관심사인데, 김수자의 퍼포먼스들은 그러한 순간적인 사회적 연대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 즉, 서로 관계짓고, 드러내면서 어느 한 집중의 순간에 형성되는 객관성을 획득하게 된다. 즉, 본질적으로 통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모든 것을 수용하는 현실에의 접근방식에 관심을 가진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왜곡됨이 없이 핵심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6]

  • 김수자가 처음으로 본인의 위치를 작가로 정의했던 1980년대 초반 한국의 미술계는 서구 미술계에서 그러했듯이 문화적 정체성, 형식주의에 대한 비판, 사회적 관계의 의미에 대한 계속적인 논의가 진행되었다. 예술과 삶을 연계하고자 하는 필요성은 지역성에 관심을 갖게 하였고, 나아가 문화적 전통과 한국 역사성의 반영으로 파급되었다. 그녀는 신체, 기억, 친밀함, 일상적이고 주변적인 것들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에 속한다. 당시 그녀가 페인트와 캔버스를 폐기하기로 결심했던 순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표현 수단은 서양미술사에서 이미 공표된 것이었으며 또한 그녀가 홍익대학교에서 학생으로 있을 때 이미 완성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티라바니야와 같이 김수자 또한 그 출발점으로 일상생활의 재료와 행위들을 사용하였다. 면이나 비단으로 만들어진 전통적인 천 조각인 <이불보 ybulbo>는 형형색색의 무늬로 날염되어 예전부터 한국에서의 본래적인 기능들 즉,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자고, 그 위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보관용으로 혹은 여행을 목적으로 물품들을 싸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불보>는 작가의 새로운 ‘캔버스’가 되었고, 바늘과 실은 궁극적으로 작가의 ‘붓’이 되었다.

  • 1980년대 김수자는 이러한 전통적인 천을 꿰매거나 덮개나 오브제들을 만들어 보따리에 넣고, 수 많은 설치작품과 퍼포먼스에 사용하였다. 여기서부터 작가는 신체를 바늘, 실, 혹은 세계를 ‘캔버스’로서 인식하는 작업 방식을 점차적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작가의 퍼포먼스는 에너지를 압축시킨 순간이자 세계와의 상호작용으로서 기록되었고, 여기서 비디오 스크린은 김수자와 나머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은유의 거울로서 작용한다. 김수자는 천주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한국에서의 일상 생활은 개신교, 유교, 불교와 샤머니즘이 섞인 혼합 종교 모두에 밀접하게 영향을 받았다. 불교 이후, 개신교,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는 한국의 주요한 종교들이 되었다. 과거 유교, 불교, 도교의 전통에서 보여지듯이 한국의 종교는 독특하지만 현실적으로 절충이 가능하였고, 또한 수많은 기독교적 요소 역시 수용하였다. 김수자의 작업이 도교 혹은 선불교의 원리와도 깊은 연관성이 있는 것을 작가는 최근 뒤늦게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여전히 그녀의 작업을 동양적 혹은 서양적이라고 규정짓기를 원하지 않았고, 이러한 사고 방식이 서양의 미술 비평가들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하였다. 니콜라 부리요와의 인터뷰에서 김수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동양 사상이 현대미술 세계에 정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단지 포스트모던한 이국적인 것 혹은 서양의 심미적 탐구를 위한 장식으로 기능한다고 여깁니까?”에 대해 작가는 동양의 사고 방식은 단순히 이론이 아닌 인격과 존재에 녹아 든 하나의 삶의 태도로서, 현대 미술사의 모든 맥락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서양식 사고와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답한다 [7]

  • 공공장소에 개입하는 김수자의 작업은 공개적이고 애매한 사회적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보여주는 명상적 ‘사라짐’은 도덕적 호소력을 대중으로부터 만들어낸다. 김수자의 퍼포먼스 <집 없는 여인 – 델리 A Homeless Woman - Delhi>(2000)과 <집 없는 여인 – 카이로 A Homeless Woman - Cairo>(2001)에서 각각 델리와 카이로의 복잡한 공공 장소 한가운데 누워있으며, 또한 비디오 설치 작품 <바늘 여인>(2005)을 위해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6개의 도시 - 파탄(네팔), 예루살렘(이스라엘), 사나(예멘), 하바나(쿠바), 리오데자네이로(브라질), 엔자메나(차드) - 들을 방문하기도 한다. 미동 없이 몰입해 있는 작가의 침묵은 공허함과 정신의 집중을 끌어내고, 서로 다른 대도시들 안에서 작가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더 눈에 띄게 만든다. “나에게 작가로서의 야망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여 내가 소멸하는 그 순간에 다다르고자 한다는 것 이다. 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작가일 필요가 없다. 단지 자유자족한 존재이거나 혹은 욕망에서 벗어난 무(無)의 상태인 것이다.”[8] 김수자는 작가로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이상을 최대한 단순하고 비소유적인 존재가 될 때 느낀다.

  • 전시에서 선보였던 비디오 설치 최근작인 <거울 여인: 해와 달 A Mirror Woman: The Sun & The Moon>(2008)에서 김수자의 이러한 원칙은 정점에 달한다. 작품에서 인도 고아의 해변을 따라 석양이 지는 동시에 달이 함께 뜨는 극히 이례적인 식(蝕)을 볼 수 있으며, 작품의 나머지 3개의 스크린에는 파도와 조수의 만유인력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이 이미지 속에 없다. 관객은 오로지 카메라 뒤에서 자연적 현상을 지켜보는 자 혹은 태양이 지고 달이 떠오름을 지배하는 이 자연광경을 기록하는 자로서만 그녀를 간접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작품에서 작가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중요한 단계를 거치고 있는지에 대하여 물어보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나는 거울을 마치 나의 몸처럼 상징적으로 의인화시켰다. 마치 해와 달 사이에서 벌어지는 궤도의 움직임을 실행하는 퍼포먼스로서 그, 나는 보이지 않고, 나의 신체는 은유적인 오브제인 보이지 않는 거울로써 변형되어 사라진다 (중략) 내가 사라지면, 자연의 움직임을 더욱 친밀하게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나서는 오직 나의 시선의 현존만이 그곳에 남게 된다. [9]
  • 같은 맥락으로 작년 말 김수자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한국 영광 지역에 대규모 비디오 설치 작품 <지수화풍 Earth – Water –Fire – Air>(2009-2010)을 설치하는 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이 대형 비디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문화관광부와 한국 수력원자력, 한진 해운 등 국내 기업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10] 작가는 150m 간격을 둔 8개의 대형 비디오 스크린을 부둣가 1200m를 따라 설치하였다. 영상은 카나리아 제도의 란자로테 섬의 다양한 자연의 요소들과 과테말라의 화산활동을 찍은 것으로서, 열반의 네 가지 요소 - 흙, 물, 불, 바람 - 가 서로서로 흐르면서, 그 추상적, 시각적 해석을 위한 초석으로 구성되었다. 흙, 물, 불, 바람이라는 각 요소는 그 성질이 불가분하게 다른 것들과 얽혀있는데, 이것은 6개의 영상 작품 제목에도 표현된다: <흙의 불 Fire of Earth>, <흙의 물 Water of Earth>, <물의 흙 Earth of Water>, <불의 공기 Air of Fire>, <흙의 공기 Air of Earth>, <물의 공기 Air of Water>, <물의 불 Fire of Water>, <불의 물 Water of Fire>. 2주간의 전시 기간 동안 방문객들은 해당 전력 단지의 안전 규정을 준수하는 한도 내에서 해가 진 후 저녁과 밤에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김수자는 원자력 에너지를 음(陰)과 양(陽) - 우주가 음양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믿는 중국 도교에서 말하는 두 종류의 반대되며 상호보완적인 가치 - 의 개념처럼 이해하고, 작품을 통해 생산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자연적인 에너지 원천의 사용과 인류, 또, 인류의 기원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명상을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최근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어났던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건으로 보았을 때, 이 작품은 더 안타깝고 시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초기 퍼포먼스 비디오 작품인 <바늘 여인 – 기타큐슈 A Needle Woman - Kitakyushu>(1999)에서 김수자는 일본 기타큐슈의 암반층에 누워있다. 이것은 - 하늘, 땅 그리고 돌 위에 누워있는 여인이 둘로 나뉘는 경계선을 만들어내는 - 지극히 단순한 이미지이다. 일본 서부 산업도시인 기타큐슈 지역에는 백 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기타큐슈는 1960년대 공기 오염으로 평판이 좋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재활용과 수질 정화기술을 적용하여 오염치수를 내림으로서 다른 대도시들의 귀감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 키타큐슈가 도시의 낡은 주변부에 위치한 자연의 이미지로만 비춰지는 것은 시대착오적 생각이다. 그러나 영상에서 땅과 공기는 고대의 중국 과학과 철학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의 역동적인 힘인 음(陰)과 양(陽)처럼 보편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에 대해 김수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새로운 커미션 작품을 위해 일본 기타큐슈 현대미술관에 초대 받았을 당시, 나는 막연히 퍼포먼스 작업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도쿄에서 또 다른 하나는 자연 속에서 말이다. 이후, 나는 이 둘을 함께 병치했고, 인간과 자연에게 주어진 환경적
조건과 관계 속에서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고 정의되는지를 탐구하려는 것이었다. 그 결과 하나의 퍼포먼스는 군중 사이에서 부동의 자세로 서게 되었고, 다른 하나는 자연을 바라보며 돌 위에 누워있게 된 것이다. 결국 수직과 수평은 도시와 자연의 힘 사이에서의 역동적인 균형의 은유가 되었다.” [11]

  • 서양에서는 종종 음(陰)과 양(陽)을 좋고 나쁜 정 반대의 개념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도교 철학의 본질은 도덕적 정의의 양 극단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균형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김수자의 작품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정신적인 원칙이자, 자연 - 존재하거나, 부재하거나, 혹은 활동적인 - 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일종의 검은 심연은 모든 의미를 끌어들일 수 있게 만들어진다. 김수자는 한 작가로서 우주의 복잡함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 관객을 대면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는 거장이다.

[Notes]
[1] , 순회전 (1997-1999), 비엔나에서 시작하여 보르도의 CACP; 뉴욕의 PS1;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 덴마크의 훔레백; 런던의 헤이워드 갤러리; 방콕 (도시의 다양한 장소에서); 헬싱키의 키아즈마 현대미술관으로 순회하였다.
[2] 김수자는 광주비엔날레 (1995, 2000)와 마니페스타비엔날레 (1996) 및 이스탄불비엔날레 (1997), 상파울로비엔날레 (1998), 베니스비엔날레 (1999, 2001, 2005, 2007), 타이페이비엔날레 (2000), 부산비엔날레 (2002), 휘트니비엔날레 (2002), 요코야마트리엔날레 (2005), 그리고 최근 테살로니키비엔날레(2009)와 모스크바비엔날레 (2009)에 참여하였다.
[3] 올리비아 샌드, ‘김수자와의 인터뷰’, , 2006년 5월.
[4] 나는 여러 국제적인 행사에 참여하며 좋고 나쁜 경험을 모두 겪어봤지만, 일반적으로 국제적인 비엔날레는 예술과 미술작가에 대한 정당한 평가, 혹은 작품의 의미나 수준 보다는 점차 미술계 내에서의 권력구조와 마켓의 역학관계, 특정한 정치적인 관계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페트라 캅스, ‘김수자 - A One - Word Name is an Anarchist’s Name’, 인터뷰, 2006, 김수자 홈페이지에 게재: www.kimsooja.com.
[5] 관계미학(relational aesthetics)’의 개념은 프랑스 큐레이터이자 이론가 니콜라 부리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1990년대 후반 그는 특정 예술과 예술가의 유형을 범주에 넣으려는 노력 하에 이러한 용어를 사용하였다. ‘독립적이고 사적인 공간보다는 온전한 인간 관계와 그들의 사회적인 맥락을 중시하는 이론적이고 현실적인 출발점에 대한 일련의 예술적 관습’. 이 용어는 보르도의 CACP에서 개최된 전시에서 처음 쓰였다. 부리요가 기획한 이 전시에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도미니크 곤잘레스-포스터, 리암 길릭, 카르스텐 휠러, 피에르 위그, 필립 파레노, 요그 팔도, 리크릭 티라바니아 등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관계미학’에 대한 역사적인 모델이 되었다. 참고 니콜라 부리요, <관계성의 미학>
[6] 2006년 리옹 현대미술관 전시 도록의 니콜라 부리요와의 인터뷰에서 발췌. 인용문은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석 또는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언어에서 결합되는 것”으로 현실에 접근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관객에 의한 “분석되어야 하는 결합”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7] 김수자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만약 서양 미술계가 동양의 사고 방식을 서양의 심미적 탐구의 장식으로만 여긴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 일 것이다. 즉, 동양의 사고방식이 예술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늘 내재해 온 전개방식 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분리된 어떤 요소만이 추가되는 것처럼 생각하면 말이다. 그 방식은 예술과 인생의 기본 조건에서 늘 변증법적으로 산재한다. 동양의 사고방식은 수동적이거나 드러나지 않은 표현 방식의 역할을 하는데 이것은 보이지 않거나, 언급 되지 않거나, 간접적이거나, 위장되거나 실체가 없어 보인다. 반면 서양의 사고방식은 일반적으로 해체적이기 보다는 건축적, 비물질적이기 보다는 물질적, 이해 보다는 논쟁, 그리고 자주 상대적인 관계의 심각성 등에 기반하여 기능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과정은 현대미술 내 필요한 양자의 존재에 대한 의식과 필요성을 드러내게 된다. 이것은 끝없이 변형하며 풍요롭게 하는 공존의 미학, 바로 음(陰)양(陽)의 미학이다.’
[8] 올리비아 마리아 루비오, ‘김수자와의 인터뷰’, , 2006년 여름.
[9] 저자의 작가와의 인터뷰, 2010년 11월.
[10] 본 작품은 본래 란자로테 비엔날레와 서울의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커미션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11] 앞서 언급된 노트9와 동일한 출처임.

  • ─ Essay from the Group Exhibition 'Windflower, Perceptions of Nature' at the Kröller-Müller Museum, Otterlo, The Netherlands, 2011. Translated by Zoe Minkyung Chun, Jihyun Ha, Bona Hyun-Yi Yoo published to accompany the exhibition of 'Kimsooja: To Breathe'(2012) at Kukje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