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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바 마리아 루비오 (미술사가 / 큐레이터)
2010
김수자는 2009년 스페인 란자로테에서 열리는 다섯 번째 비엔날레를 위해 란자로테 섬에서 촬영된 다섯 개의 영상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땅, 물, 불과 공기는 생명력과 힘의 원천이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의 철학자들이 물질의 실체를 형성한다고 믿었던 요소들이다. 이 네 개의 요소들은 더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닌 하나의 무언가와 연결되어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시작되어 엠페도클레스 때에 와서 더 구체화 되었으며, 중세, 근대의 유럽사상과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개념은 에테르, 즉 천공이라는 하나의 요소를 더 했다는 점에서 인도나 일본 불교문화의 그것과 일치한다.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동양국가에서는 바람이 공기를 대신한다.
김수자는 화산과 바다로 이뤄진 란자로테 섬의 자연 속에서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완전히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이 본질적인 원소들의 힘과 영감 뿐만 아니라 동시에 환상과 창조적인 발상의 근원지를 발견한다. 김수자는 우리에게 불에서 물을, 땅에서 물을, 공기에서 물을 보기를 원하며 이와 마찬가지로 반대의 상황, 즉 공기에서 물을, 땅에서 물을, 물에서 불을 보기를 원한다. 이들은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물은이 나머지 요소들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 요소들이 지닌 특징들은 유일하고 독창적인 것이다.
처음 세 개의 영상들인 <Fuego de Tierra / Fire of Earth>, <Agua de Tierra / Water of Earth> 그리고 <Fuego de Aire/ Fire of Air>의 동일한 “여정”을 다루며, 이들은 3부작을 이룬다. 이는 작가가 섬의 바위 지역들을 지나며 낮과 밤에 걸쳐 느리게 촬영하여 얻어낸 결과물로써, 각각 불, 물과 공기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첫 영상인 <Fuego de Tierra / Fire of Earth>은 낮에 촬영한 것으로 섬의 주간 풍경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화산섬의 바위투성이 지형을 보여주며 우리로 하여금 땅의 표면을 피부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광범위한 파노라마적 시선은 두 번째 밤의 풍경에서 보여주는 제한적인 시야와는 대조적이다.
카메라는 우리를 이 바위투성이 섬으로 안내하며,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움직이며 트롱프 뢰유 효과를 만들어낸다. 마치 화면 배경에 있는 산은 가만히 있는 반면 화면 전방의 바위 지형은 빠르게 또는 느리게 움직이면서 화산에 의해 까맣게 탄 바위들이 용암에 의해 지평선을 따라 흘러가는 또는 심층에서 움직이는 듯한 착시 현상 보여준다. 가끔씩 뒤에 위치한 산도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전방의 바위들이 흘러가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보이며 지면이 이 산 주위로 원형을 그리며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을 감싸는 동시에 끊임없이 움직이는 화면과 대조를 이루는 고요함은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황폐한 바위 지형을 통해 극대화 되며 우주와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모든 에너지와 영성을 전달한다. 이것은 또
한 이러한 기묘한 지형의 특징이기도 하다.
두 번째 영상인 <Agua de Tierra / Water of Earth>은 작가가 란자로테 섬을 차를 타고 돌며 느리게 촬영했다는 점에서는 첫 번째 영상과 같지만, 낮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밤의 풍경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역시 트롱프 뢰유 효과를 찾아볼 수 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지면의 움직임과 배경의(이 경우는 하늘) 움직이지 않는 굳건함이 반복 되나 지형은 매우 모호하다. 전편에서 보여 주었던 전체적인 풍경에 반해 이제는 밤의 어두움과 빛의 부재함으로 인해 부분적으로만 보인다. 빛이 없음으로 지면의 비중이 더 커진다. 낮의 영상에서 볼 수 있었던 산의 모습들은 하늘의 어두움에 가려져 없어진다. 이 영상에서는 움직임의 효과가 다양한 반면, 움직임의 방향은 낮의 풍경과 동일하게 유지 된다. 지면과 배경이 합쳐진 밤의 풍경을 보고 있으면 깊고 어두운 강물이 땅과 하늘 사이에서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영상은 마치 바위투성이의 산들 덤불들을 보지 못하도록 밤의 어두운 유령들이 화면 전체를 꽉 채운 것 같다. 영상 중간 중간에 가로등이나 나무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고, 이는 또한 움직임의 속도에 따라 시각적으로 홍수나 증수와 같은 자연 현상들을 연상시킨다.
세 번째 영상인 <Fuego de Aire / Fire of Air>에서 작가는 같은 화산 바위 풍경을 달리는 차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로 어둠에 싸인 밤풍경을 비춘다. 불빛이 비추는 부분을 영상의 중심에 담고 그 주위는 어두운 화면 그대로 촬영한 것을 보면서, 우리는 빛이 물리적인 실체와 부딪치지 않는 이상 어두움이 이를 흡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빛의 희미해짐과 선명해짐이 반복되며 우리는 풍경의 사물들을 잘 식별할 수 없게 된다. 불빛이 선명해지면 바람이 흔들어 놓은 듯한, 또는 구름 회오리 같은 화면이 보인다. 밤이 되면 날이 밝아지기 전까지는 어두움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다. 빛은 공간을 밝게 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물체와 맞닥뜨리지 않는다면 그대로 어두움에 흡수된다. 빛이 물체와 맞닥뜨릴 때만이 이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어두움과 거리는 물질 세계에서 공기 중 에너지를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빛의 생성과 소멸은 신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작가가 들고 있는 스포트라이트는 대지를 환히 비추는 태양과 같이 풍경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만들어 버린다. 이 이미지는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구름의 회오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란자로테의 바위투성이 밤 풍경은 없어지고 빛과 구름의 여상만 남게 된다. 지평선 너머로 아주 작은 불빛들만이 가끔 보일 뿐이다.
이 3부작은 자연의 빛과 어두움 또는 빛의 부재뿐만 아니라 인공적인 불빛들이 어떻게 인간의 지각과 연결되어 있는지 알려준다. 빛과 어두움, 사람의 관점과 물리적 세계가 정작 눈에 보이는 현실과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지도 알려준다. 우리의 눈이 현실을 넘어서 환상을 보게 될 때에 느껴지는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 영상들에서는 공상과 실제가 서로를 보완해주며 우리가 평소에 인지하는 것들을 넘어서 더욱 깊은 진실로 우리를 안내한다. 땅의 움직임, 생명의 꿈틀거림, 행위의 속도, 덧없음..., 이 모든 것들은 이 일련의 작품들 속에 녹아있는 뚜렷한 특징들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추가로 두 개의 독자적인 영상들이 더해진다. 물과 공기, 이 두 요소를 더 강조하는 <Aire de Fuego / Air of Fire>와 <Tierra de Agua / Earth of Water>이 바로 그것들이다. 물과 공기가 활동을 시작하면 이 둘의 조화가 뿜어내는 힘은 대단하다. 바다의 끊임없는 요동과 공기의 흐름 속에서 감지되는 작은 파동들이 이 영상들에 담겨있다.
두 번째 영상인
김수자는 자연으로부터 자신의 완전한 프로젝트인 이 다섯 개의 영상들을 얻어냈다. 뿐만 아니라 실체와 관객의 환상을 적절하게 조화해 자신의 작업에 신비함과 감정의 교차를 더하고 있다. 김수자의 이 일련의 작업들은 우리에게 세계에의 보다 다양한 지각방식과, 기존의 자연에의 새로운 의미 창조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 Essay of the Catalogue, 'Earth, Water, Fire, Air' from the artist's solo show at Yeong Gwang Nuclear Power Plant Art Project (Organized by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번역 강하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