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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수 (월간미술 편집장)
2013
김수자는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984년 파리의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주요 개인전으로 마이애미뮤지엄의 <김수자: 바늘여인>(2012), 영광 원자력발전소 아트프로젝트(2010), 아틀리에 에르메스의 <지-수-화-풍전>(2009), 리히텐슈타인 쿤스트뮤지엄에서 주최한 <뭄바이: 빨래터>(2010), 영국 발틱센터의 <바늘여인>(2009), 브뤼셀 BOZAR의 <로투스: 영의 지점>(2008),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의 크리스탈팰리 스에서의 <호흡: 거울여인>, 베니스 라 페니체극장과 폰다치오네 베비라콰라마 사에서의 <호흡>(2006), 리옹현대미술관, 뒤셀도르프 뮤지움쿤스트팔라스트, 밀라 노PAC에서의 순회전인 <인간의 조건>(2003~04), PS1 현대미술센터와 MoMA의 <바늘여인>(2001), 쿤스트할레 베른의 <김수자>(2001) 등이 있다. 그룹전으로는 베니스의 <아르템포(Artempo)>, <인-파니툼(In-Finitum)>, <움직이는 도시 (Cities on the Move)> 순회전 뿐만 아니라 포츠난비엔날레(2010), 모스크바비엔날레(2009), 베니스비엔날레(2005, 1999), 휘트니비엔날레(2002), 부산비엔날레 (2002), 상파울로비엔날레(1998), 이스탄불비엔날레(1997), 광주비엔날레 (1995, 2000) 등이 있다.
올해로 10번째 전시를 여는 한국관엔 설치작가 김수자가 참여했다. 1999년, 2005년 본전시에 두 차례, 비엔날레 공식 기획전 등 지금까지총 6차례에 걸쳐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작가는 드디어 '예술적 망명의 길을 끝냈다. 1999년 본전시에서 코소보 전쟁 난민들에게 헌정하는 보따리 트럭 작업을 소개했던 작가가 이번 전시에는 한국관 전체를 숨쉬는 보따리로 바꿔 놓았다. 전시 제목은 〈호흡: 보따리 (To Breathe: Bottari)〉.
신발을 벗고 한국관에 들어서면 아무 것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저 빈공간과 그 안을 배회하는 관객들만 보일 뿐이다. 바닥은 거울로, 유리벽은 반투명필름(회절격자필름)으로 뒤덮여져, 텅 빈 공간은 오직 외부의 움직임 때문에 일렁이는 무지개 빛으로만 가득하다. 작은 수정궁이라할까? 관객은 빛의 공간 속에서 작품을 스스로 완성해 간다. 그 공간속을 거니는 동안, 작가의 숨소리를 녹음한 사운드 퍼포먼스 작품 <더 위빙 팩토리(The Weaving Factory)>를 동시에 체험하게 된다.
빛의 궁전속을 한동안 거닐고 난 후 줄을 서서 또 하나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른바 <호흡: 정전(Black Out)>이라고 하는, “자궁이자 무덤이기도 하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어둠의 공간이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흑암만이 가득한 공간속에서 관객들은 조금 전에 체험했던 빛의 잔영을 지워버린다. 빛과 어둠으로 유위(有)와 무위(無爲)의 의미를 존재론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보따리>, <바늘여인>, <실의 궤적> 시리즈 등을 발표하면서 삶과 예술의 직조에 일관된 작품세계를 보여 왔던 작가답게 김수자는 "미국 뉴욕에 머물 당시 허리케인 샐리 때문에 1주일간 전기, 물공 급 같은 것이 멈춰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 경험을 녹일 것"이라고 비엔날레 참여 직전 밝힌 바있다.
"한국관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보따리로 변모시켜, 그동안 집적된 보따리의 개념과 문맥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보따리 결정판이다. 한국관 전체를 보따리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자연과실 내 공간이 나뉘는 경계지점을 반투명 필름으로 싸보았다. 건물외부의 유리창을 하나의 피부로, 한국관을 내몸으로 제시한 작업이다. 빛의 밝기나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온종일 변화하는 작업이다. 보따리의 싸고 푸는 성격, 빛과소리를 최대한 밀도 높게 전개하였다. 특히 신체적으로 맞닿는 관객의 체험을 유도하려 했다. 빛과 어둠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호흡: 정전>에서는 내 숨소리가 차단된 곳에서 관객이 자신의 호흡을 마주하는 경험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 빛도 어둠의 일부이며, 어둠 없이 빛이 존재할수 없다. 어둠 속에서 자기 몸만 느끼다가 쏟아지는 빛 가운데로 나와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 30년간 작업을 총체적이면서도 가장 비물질화된 환경으로 제시한 것이다. 거대한 보따리로 상징되는 한국관은 인간과 자연, 어둠과 빛, 남과 여, 음과 양의 상호관계가 비물질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개념 같지만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 하나이듯 결국 모두가 연결된 것이 아니겠느냐. 자궁 속에서 접한 어둠, 마지막 숨을 내쉴 때 만나는 어둠, 두 어둠은 결국 빛의 연장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 어둠과 빛, 소리와 정적 등을 체험하며 자신의 인식 체계와 감각 체계를 돌아보고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발적 망명에서 모국으로부터 받은 가장 영예스러운 초대이다. 1999년 한국을 떠나면서 '망명작가’처럼 살았다. 이번 기회에 모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보려고 했다."
이번 한국관 커미셔너인 김승덕(프랑스 르 콩소르시엄 공동디렉터)은 "외관이 유리로 되어 있어 매번 커미셔너를 괴롭혀온 전시 공간의 문제점을 오히려 프로젝트의 중요한 이슈로 삼고 한국관의 구조물에 정면으로 맞서고 도전하는 방법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애당초 작가에게 제시한 한국관의 기준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화이트큐브 콘셉트에서 벗어나 비물질적인 요소로 구성하는 방법. 둘째는 옥상에서 바다가 보이고 나무가 울창한 한국관 주변의 자연적인 요소를 살리는 방법. 자연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안에서 밖을 내다볼수 있는 비물질적인 것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한국관의 특징과 건축구조를 전시의 주요 방향으로 채택하여, 기존의 공간을 변형시키는 대신 한국관 고유의 건축적 특징을 부각시킨 장소특정적 프로젝트로 진행하였다. 전시장의 작품은 작가가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햇빛과 어둠, 숨소리다. 작가에게 까다롭기로 유명한 한국관 건축물 자체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관객에게는 새롭고 초월적인 공간 경험이 되는동시에 스스로 적극적인 퍼포머가 되도록 유도하려 했다. 빛과 어둠, 소리와 정적 등이 극명하게 대비된 조건 속에서 자신들의 감각과 인식을 곤두세우게 될 것이다. 인간과 현대문명 제반조건에 문제를 제기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빛과 색들로 이루어진 순간을 경험하고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여행이 될 것 이다.무언가를 많이 넣거나 빼지 않고 그저 반투명 필름으로 한국관을 보따리처럼 싸서 우리가 늘 보는 빛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체험케하고, 진짜 고요가 무엇인지 느낄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의 일원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시인 고은은 "다른 국가관 전시는 자기 주장을 너무 강하게 펼쳐 시끄러웠는데 여기는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작가가 조용히 사라진 것 같은 작업이다. 전시장에서 마치 엄마의 몸, 자궁 속 태아와 같이 스스로가 정화된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중국의 독립 큐레이터 황두는 "빛, 어둠, 명상, 간결함 등이 떠오른다."면서 한국관을 호평했다.
─ Article from Montly Art Magazine, Wolgan Misool, July 2013, Vol. 342, pp. 8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