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이경진 │ 45년의 예술 여정, 아티스트 김수자의 깊고 긴 숨.

2024

Volga Serin Suleymanoglu │ Kimsooja Discusses the Intriguing Stories Behind Her Art

2024

유선애 │ Kimsooja Universe

2024

Yu Seon Ae │ Kimsooja Universe

이경진

2024

  • 이경진
    지난가을 일본 후쿠오카를 방문했더군요. 그곳 우치하마 중학교 학생들과 대화하고 박수받으며 퇴장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뭉클했어요. 약 45년간 활동해 온 예술가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나요?

  • 김수자

  • 제 작업을 600명의 학생에게 소개하는 자리였어요. 따뜻하고 감동적이었죠. 내게 주어진 1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남을 기억이 돼 영감을 주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언을 해야 할 자리가 생기면 늘 꿈을 포기하지 말고 위험을 감수하라는 얘기를 합니다. 젊은 작가들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죠. 물론 분별이 있어야겠지만,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는 힘이 필요해요. 이번 경험을 통해 저도 옛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학생 때 접했던 새로운 경험은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미술관에 갔던 일, 프랑스 작가 클로드 비알라(Claude Viallat)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 강의를 들었던 순간처럼요. 그보다 더 어릴 땐 아버지의 군 복무로 방방곡곡을 떠돌며 유목민 생활을 했고, 미술관 방문이나 미술과 관련된 경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 이경진
    미술가라는 역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 김수자
    문학과 음악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중 미술을 택한 건 은퇴 없이 지속적으로 삶을 사유하고 반영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 작곡을 공부한 동생을 비롯해 음악인이 많은 가정이라 성악 같은 음악 분야가 저에게는 더 가까운 진로일 수도 있었죠. 하지만 성악은 신체와 나이의 한계가 있으니 전 생애에 걸쳐 예술 의지를 불태우기에는 활동 가능한 기간이 짧다고 느껴졌어요.

  • 이경진
    긴 호흡의 예술 활동으로서 미술을 꿈꿨군요.

  • 김수자
    항상 미술을 사색하고 응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삶과 예술을 사유하는 긴 호흡의 활동으로 미술을 택했던 것 같아요.

  • 이경진
    “삶과 예술의 토털리티(Totality)에 도달하고 싶다”고 자주 얘기해 왔어요. 미술가가 되지 않았으면 종교인이 됐을 거라는 말도 한 적 있습니다.

  • 김수자
    특히 휴머니즘에 관심이 있었어요.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신체적 · 정서적으로 취약하고 연약한 상태, 전쟁 혹은 어떤 부당함.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늘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땐 내가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는 데 죄책감을 느꼈어요. 그런 면에 민감했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채석장으로 가려는 마음도 먹었습니다. 삶의 터전에서 고통을 겪는 이들과 함께 힘듦을 나누고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스스로 많이 괴로워했어요.

  • 이경진
    괴로움을 기꺼이 겪으며 타인의 고통을 응시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 김수자
    글쎄요. 자연스럽게 그리 됐어요. 정현종 선생님의 시 ‘고통의 축제’ 구절이 내면에 잠재된 시절이었죠. 저는 타인의 고통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 이경진
    올해도 예술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빼곡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많은 관람객이 방문한 파리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에 펼친 전시가 있었죠. <엘르>는 올해를 빛낸 이름을 조명하는 ‘엘르 스타일 어워즈 2024’에서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해 무대로 모시기도 했고요.

  • 김수자
    밀도 있는 성취감을 느낀 해였습니다. 상반기에 중요한 프로젝트를 여러 개 마쳤고, 모두 잘 구현돼 기분 좋았어요. 각 사이트에 맞게 새로운 언어를 채굴하는 작업이었죠.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울라 사막에 설치한 ‘To Breathe-AlUla’ 프로젝트도 그랬고, 파리 피노 컬렉션의 로툰다 홀 작업은 미니 회고전 같은 전시였기 때문에 제 작업을 관통하는 ‘보따리’ 컨셉트의 총체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어요. 메츠 성당(Metz Cathedral)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영구 설치한 작업의 프로토타입을 다시 악셀 베르보르트에서 전시할 기회도 있었고요. 탄야 보나크다르(Tanya Bonakdar) 갤러리와 함께 20년 만에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어 그간 의미 있는 작업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 이경진
    피노 컬렉션 로툰다 홀을 채운 작품 ‘호흡-별자리 To Breathe-Constellation’는 이제껏 싸매온 ‘보따리’ 컨셉트를 건축물로 전환시킨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상징적인 레이나 소피아 크리스털 팰리스(Crystal Palace, Museo de National Reina Sofia)의 작업 ‘To Breathe-Mirror Woman’이 연상됐어요. 숨과 호흡은 김수자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김수자
    페인터로 작업을 시작한 1970년대부터 저에겐 캔버스가 하나의 질문이었어요. 캔버스의 표면이나 구조를 고민했죠. 캔버스는 회화에 있어 대상이자, 다른 타자이자 그 자신이고, 항상 대립이 있는 대상이었어요. 정면으로 맞서면 동시에 뒷면을 꿰뚫어보고 싶은 의지를 느끼게 했죠. 캔버스의 표면은 하나의 보더(Border)이기도 하고, 벽이기도 해서 바느질이라는 방법론으로 그 깊이를 가늠하고 이어가는 작업을 1980년대 초부터 이어왔어요. 바느질에는 이원론적인 면이 있죠. 안과 밖을 들락거리고, 매스큘린하면서도 페미닌하고, 공격적인 한편으로는 치유하고, 두 개로 갈라진 틈새를 이어줍니다. 2004년 폴란드의 우치 비엔날레(Ƚódź Biennale)에서 과거 텍스타일 공장이었던 빈 공간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직조 기계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순간적으로 제 몸이 생생하게 의식됐어요. ‘숨 쉬는 일이 곧 직조 행위구나.’

  • 이경진
    그렇게 ‘더 위빙 팩토리(The Weaving Factory)’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그 공간을 위해 선보였습니다. 다양한 속도와 강도, 깊이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소리를 공간에 채웠어요.

  • 김수자
    2004년의 일이에요. 이후에는 2006년 초에 베니스의 오페라 극장 라 페니체(La Fenice)가 불에 탄 뒤 다시 오픈할 때 무대 위 스크린에 프로젝션 작업 커미션을 받았어요. 그때 오페라 극장인 라 페니체의 성격을 생각했죠. 노래라는 것 역시 ‘숨’이 확장돼 발생한, 문학적 내러티브가 있는 예술 형태잖아요. 숨을 다시 연결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운드를 설치하고 스크린에 비디오 프로젝션을 했는데 디지털 컬러 스펙트럼이 계속 루핑되는 화면이었어요. 제가 주목한 부분은 그 프로젝션 작업에서 과연 평면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시각, 응시하는 행위도 하나의 ‘바느질(Needling)’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To Breathe’라는 타이틀을 사용했어요. 같은 해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선보인 ‘To Breathe-A Mirror Woman’은 건축 공간을 하나의 보따리로 보면서 내외부 공간을 나누고, 실제와 버추얼한 이미지를 반사시키는 거울 표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숨, 날숨과 들숨 같은 것을 공간에 설치한 겁니다. 숨은 무엇보다 우리 존재가 나선 여행길의 시작과 끝입니다. 숨의 지속성은 삶의 지속성과 연결돼 있습니다. 제가 발전시켜 온 삶과 세계의 이중 구조를 통한 반영. 거기에서 드러나는 해답들. 이를 넘어서는 어떤 피안의 세계. 이런 것에 던져온 질문이 ‘숨’이라는 개념과 맞닥뜨려진 것 같아요.

  • 이경진
    피노 컬렉션에서 관객들이 ‘호흡-별자리’를 경험하는 모습도 장관이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왔고, 아마도 모든 관객은 김수자의 비밀스러운 퍼포머였겠죠.

  • 김수자
    싸매는 행위를 하지 않고 보따리를 싼 거죠. 다만 이번에는 옷이 아니라 휴머니티로요. 제가 그걸 퍼포먼스라고 발표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관람객 각자의 개성과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눈여겨보며 즐겼고, 기대보다 액티브한 리액션이 나와서 사실 놀랐어요. 많은 이가 그 공간 안에서 자신의 존재성을 다시 재인식하고 가늠해 봤죠.

  • 이경진
    이 작품으로 촉발된 새 질문이 있나요?

  • 김수자
    로툰다 홀의 ‘호흡-별자리’ 작업을 하며 보따리 컨셉트에 연관될 수 있는 24개의 작품을 24개의 비트린(유리 전시장)에 설치했어요. 퍼포먼스도 있고, 한지를 손으로 쥐었다 펼친 작업도 있었죠. 로툰다 홀에 거울을 설치하여 발아래에 다시 돔이 시각적 ‘보이드(Void)’를 창조하였어요. 우리가 달항아리를 제작할 때 두 점의 베이스를 사용하는 것과 같죠. 두 개의 돔을 엎어 연결하는 행위가 되잖아요. 베이스와 베이스가 서로 맞닿는 경계는 바로 거울이고요. 굉장히 큰 깨달음이었어요. 경계의 만남, 어둠과 보이드의 관계, 거울과 보이드의 관계. 양자적 관계성이 지금도 큰 물음으로 남아 있어요.

  • 이경진
    공간 요소를 새로 제작하는 작업이 아닌 주어진 공간 조건 속에서 최소한으로 개입해 최대한의 경험으로 응답한다는 입장으로 작업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는 어떤 물음에 대한 답이었나요? 또 결국 ‘보따리’가 김수자에게 중요한 컨셉트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지점은 무엇이었는지요?

  • 김수자
    보따리는 이미 존재하는 오브제라는 점이에요. 이미 존재하는 사물의 의미를 끊임없이 채굴하고 드러내는 일이 그동안의 제 작업이었습니다. 그 근간에 결정적 영향을 준 존 케이지(John Cage)가 198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시연한 작업을 하나 본 거죠. 그의 사운드 피스를 듣기 위해 6m 길이의 빈 컨테이너에 들어갔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측면에 적힌 간단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Que vous essayez de le faire ou pas, le son est entendu.(만드려고 하든 안 하든, 소리는 들립니다.)” 저는 완전히 충격받았어요. 이제까지 예술은 다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는 만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작업을 전했죠. 그때부터 어떻게 만들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지, 있는 것은 그대로 두되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일에 지속적으로 천착했죠. 최소한의 행위나 오브제를 공간에 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이면서 새로운 의미나 개념을 전달할 수 있는 작업을 지속해 온 거예요.

  • 이경진
    보따리 작업은 긴 시간 다변화되고 확장돼 왔습니다. 최근 메타 페인팅 작품을 선보이고 있죠. 페인터의 지점으로 다시 회귀한 걸까요?

  • 김수자
    페인터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실험해 왔기 때문에 항상 열정의 본질과 시작점은 페인팅에 있습니다. 보따리도 저에게 사실 하나의 페인팅이죠. 이불보 자체는 페인팅인데 싸는 행위는 퍼포먼스이고, 싸여 있는 형태는 조각이고 설치 혹은 오브제이기도 합니다. 그것 자체가 어떤 결정체로서 질문과 해답을 갖고 있어요. 메타 페인팅은 일련의 순환적 실험을 통해 다시 돌아간 지점이죠. 넓은 땅에 아마씨를 뿌렸어요. 리넨 캔버스 섬유와 린시드 오일의 재료가 되는 아마씨 오일을 얻을 수 있는 씨를 뿌리고, 수확해서 오일도 만들고, 섬유도 만들어 리넨 캔버스 천을 짰습니다. 직접 짠 것은 아니고 주변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았죠. 다시 회화의 본질로 돌아가는 작업의 시작이었어요. 더불어 ‘만들지 않음(Non-making)’의 태도와 방향성으로 되돌아가는, 새로운 목적지이자 출발점이에요.

  • 이경진
    오늘 저희가 만난, 서울에 마련된 작은 전시공간을 채운 이 블랙 페인팅도 같은 맥락인가요?

  • 김수자
    리넨 캔버스는 서구 회화의 가장 중요한 재료이지요. 여기에 스프레이한 검은 안료는 그 물질성을 최대한 제거하는, 더 이상의 블랙이 없는 ‘블래키스트 블랙’에 준하는 페인팅 재료예요. 거의 리플렉션이 없는데, 수많은 레이어의 스프레이 작업을 통해 안착된 스프레이 안료들을 가까이 보면 여전히 수많은 공간이 있죠. 바늘구멍 같아요. 공간이 어떻게 바늘구멍이 될 수 있을까요? 바늘구멍은 어떻게 공간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그 어둠의 캔버스를 바닥에 세우니 작업이 묘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개인의 묘비명이거나 페인팅으로 이뤄진 어둠의 보따리 혹은 보따리에 들어 있는 어두운 공간인지도 모릅니다. 이 역시 뭔가를 드러내지 않고, 최소한의 행위로 새롭게 생성되는 것이 현재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 이경진
    한 인터뷰에서 “결과를 빨리 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 적 있어요. 1999년 뉴욕으로 이주하며 문화적 망명자를 자처한 것처럼 쉽고 어려운 것이 놓인 선택의 기로에서 늘 후자를 택한 것 같습니다.

  • 김수자
    결혼 초기에도 우리 부부는 소록도행을 택했어요. 그들과 함께 살면서 정신과 의사였던 남편은 봉사를 했고 저는 관망자로 살았죠. 인생의 선택도 마찬가지였어요. 뉴욕으로 이주하며 가족과 분리된 삶을 20년간 지속해 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작가로서 판매에 관심도 없고, 작업 그 자체에만 몰두했죠. 제 성향대로 살아온 것 같아요.

  • 이경진
    “다른 사람의 고통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괴로웠다”는 말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고난을 선택하고 역경에 맞서는 방식으로 살아온 삶을 통해 괴로움이 좀 덜어졌는지 궁금합니다.

  • 김수자
    지금도 전쟁이나 기아, 폭력을 접하기란 참 힘듭니다. 근래에는 이를 작업으로 표현하는 단계에서 조금 벗어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광주 비엔날레에 헌사하거나, 일본에서 큰 쓰나미가 일어난 후 그곳의 옷을 가져와 보따리를 싼다든가 하면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헌옷과 보따리 설치미술 작업을 했어요. 이제는 이를 초월하는 상태에 관심이 많아요. 순수한 미학과 추상성을 더 좇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이경진
    약 45년의 예술 인생 내내 상업적이지 않은 영역을 걸어왔습니다. 그 치열하고 긴긴 세월을 지탱해 준 건 무엇이었나요?

  • 김수자
    자신을 믿었던 것 같아요. 오래전 클로드 비알라가 예술은 예술적 의지나 열망, 욕망이 주도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저도 그런 욕망을 믿는 편이에요. 보통의 일상에서는 다소 부족하지만 예술적 에너지, 나라는 존재가 우주
    와 맞닥뜨리는 지점에선 신뢰가 있었죠. 그런 우주의 에너지를 믿었어요.

─ ELLE Magazine Korea, Decempber 2024, pp. 98-103.

Volga Serin Suleymanoglu

2024

  • The world-renowned artist Kimsooja, known for her profound explorations of identity, culture, and spirituality, continues to captivate audiences with her impactful projects and thought-provoking installations. In a recent conversation, we delved into her artistic journey and career, discussing the influences that have shaped her work and the messages she wishes to convey through her art. From her unique perspectives on Korean heritage to her innovative approach to conceptual art, Kimsooja offers insights that illuminate her creative process and vision. She also shared, for the first time, some exciting details about new exhibitions she’s planning for next year.

  • Volga Serin Suleymanoglu
    Could you please briefly introduce yourself?

  • Kimsooja

  • I am Kimsooja, a conceptual Korean artist currently living and working in Seoul.

  • Volga Serin Suleymanoglu
    What kind of childhood did you have that inspired you to become an artist?

  • Kimsooja
    My childhood inspired me more gradually, and only later in life did I become aware of how my daily life and activities of my childhood could be translated into an artistic vocabulary. In other words, rather than my childhood inspiring me to be an artist, it is now, as an artist, that I reflect back on those memories. Becoming an artist felt like it was in my blood. I grew up near the DMZ, with a nomadic lifestyle due to my father’s military service, which left me with rich sensory memories that find their way into my work.

  • Volga Serin Suleymanoglu
    What are the elements of your art?

  • Kimsooja
    I use various media to explore concepts in unique ways. For instance, I use bed covers for “bottari” (bundles) and filming as an immaterial wrapping method, capturing the reality of humanity and nature. Each medium, from textiles to video, unfolds different dimensions of universality and broadens the concepts within each work. Physicality in my work also reveals the void and spirituality inherent in life’s ephemeral moments.

  • Volga Serin Suleymanoglu
    What role do fabrics play in expressing your art?

  • Kimsooja
    Fabrics are like a second skin, carrying bodily memories. Traditional Korean bed covers, with their symbolic embroidery and patterns, represent unfulfilled desires, love, solitude, and even death. The bed becomes a frame for existence, holding memories that resonate deeply in my work.

  • Volga Serin Suleymanoglu
    Could you tell us about some important memories from your early childhood that had a defining impact on your life and views as an artist?

  • Kimsooja
    One day while sewing a traditional bedspread with my mother, I felt an energy surge as I observed how the needle pierced the fabric. This “revelation” pointed me toward the structural simplicity of horizontality and verticality, foundational to various life systems. It was a defining moment, showing me the deeper cross-structures in nature, mind, and artistic practice, which still influence my work.

  • Volga Serin Suleymanoglu
    Your “bottari” works are quite fascinating. What inspired you to focus on “bottari” and how has this idea evolved over time?

  • Kimsooja
    Since working on sewing practice during the early 80s, keeping “bottari” had always been part of the scene in my studio or at home for storing small objects or fabric scraps. It got transformed into a total art form while I was at P.S.1 Studio in New York in 1992. It became a sculpture, a painting, and a performance all in one. Over time, “bottari” has grown from bundles on a truck to architectural installations like the “Crystal Palace” in Madrid. Each evolution explores new ways of wrapping and unwrapping, mirroring life’s complexity through a simple form.

  • Volga Serin Suleymanoglu
    What is the story behind combining your name into a single word, from Kim Soo-Ja to “Kimsooja”?

  • Kimsooja
    A name often carries a deep sense of self-identity and, in my case, layers of history. My grandfather, who had hoped for a grandson, gave me the name Soo-Ja—a name with a strong, traditionally female sound in Japanese. My parents considered changing it, but ultimately respected his choice. Over time, I discovered even more meanings hidden within my name. While filming “Mumbai: A Laundry Field” in a Mumbai slum in 2007, I learned that in Hindi, the pronunciation of the word “Sooja” translates to "a needle," particularly a large, 30 cm needle used for sewing mattresses. This unexpected meaning left me speechless, almost as if I were a needle stitching together stories across cultures.


    My family heritage also plays a role. The Kim clan to which I belong, specifically the "Samhyun branch," is believed to be descended from King Suro, the founder of the Gaya dynasty (45–562 CE) in southeastern Korea. King Suro married Queen Hur, an Indian princess from Ayodhya, who is credited with introducing Buddhism to Korea. Embracing the combined name "Kimsooja" allowed me to weave these fragments of history, culture, and personal identity into one unified expression.

  • Volga Serin Suleymanoglu
    The 'A Needle Woman' video series is captivating. What emotions did you experience while shooting it, what were the biggest challenges, and how did you feel once the project was completed?

  • Kimsooja
    "A Needle Woman” was a series of performance videos shot from 1999 to 2009 in crowded cities worldwide, capturing my solitude amidst social conflict. Some moments were challenging, particularly in areas with strong economic or religious tensions. Witnessing humanity’s ephemerality and suffering over a long period of time and across many places was a truly transformative experience for me, filling me with compassion and broader perspectives on existence.

  • Volga Serin Suleymanoglu
    How have Korean women and their stories influenced you?

  • Kimsooja
    For me, initially, “bottari” was just an aesthetic object, not a social one, but when I returned to Korea, I saw women’s roles as the mothers, wives or daughters under a new lens. Korean women’s resilience in the face of social constraints inspired me to work with entire used garments within “bottari”, rather than cutting them before placing them inside, revealing the realities of the human body and life stories. This allowed me to present “bottari” as something so much more than an aesthetic component.

  • Volga Serin Suleymanoglu
    How did the artwork 'Archive of Mind,' which was completed with the participation of many visitors to the exhibition, come about?

  • Kimsooja
    “Archive of Mind” emerged from a contribution to Yoko Ono’s Water Event in 2016. I realized that shaping a clay sphere could be a communal, meditative act, where visitors could share in the experience of creation. This interactive process allowed for a collective exploration of physical, geometric, and spiritual aspects of art.

  • Volga Serin Suleymanoglu
    In your piece 'To Breathe – Constellation' exhibited at the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in Paris, France, what message are you trying to convey to the diverse visitors from different ethnic backgrounds?

  • Kimsooja
    “To Breathe- Constellation” uses a mirror floor to create a wholeness in space, merging reality and illusion within the architecture of the marvelous dome in that space. Visitors, regardless of their background, become performers, looking, walking, sitting, posing, dancing, exploring their own reflections and engaging with existential questions in a shared, universal space. This piece dissolves boundaries, emphasizing the unity of human experience.

  • Volga Serin Suleymanoglu
    What advice would you give to young artists?

  • Kimsooja
    My advice is to keep moving forward, taking risks confidently, no matter what challenges or untruths may exist in the art world. Trust that your art will prove itself in time, and stay true to who you are and the world you live in.

  • Volga Serin Suleymanoglu
    For those who wish to study or explore art in Korea, what aspects of Korean culture and art would you recommend they look into and learn about?

  • Kimsooja
    Rather than focusing on specific aspects, I’d recommend fully immersing yourself in Korea—experiencing everything from its society, language, and food to its unique philosophy, humble beauty, and natural landscapes. Encounter the spirit of the “Seonbi” (a learned scholar’s ethos) and absorb the complexities and passion that define this place. It is an incredibly rich source of inspiration.

  • Volga Serin Suleymanoglu
    What projects are you planning for the future? Could you share a bit about them with us?

  • Kimsooja
    I will continue to contemplate current questions I have from different specific sites, themes of exhibitions, or biennales, exploring, answering, or questioning back to each of them. In this journey, I am planning to unveil a site-specific project for the main rotunda of the prestigious San Giorgio di Maggiore in Venice during the Venice Architecture Biennale 2025, followed by another site-specific project for the Oude Kerk, the oldest building and a church in Amsterdam, celebrating the city of Amsterdam’s 750-year anniversary, among others.

— Honorary Reporters, October 2024.
This interview took place via email in writing between August 17 and October 24.

유선애

2024

  •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몸과 마음을 감싸 안아주는 듯한 경험을 한 적 있는가. 차분히 맞춰지는 눈, 낮은 목소리, 등을 쓰다듬는 손... 김수자 작가와 마주 앉으면 소란하던 사위가 고요해진다. 일찍이 ‘보따리’ 연작을 통해 싸는 행위, 감싸고 아우르는 ‘포용’을 작업의근간으로 삼아온 김수자 작가는 자신이 창조하고 행해온 작품처럼 드넓은 품과 태도로 눈 앞의 이를 어루만진다. 2년 전 서울에서 처음 만난 그를 지난 4월 파리에서 다시 만났다. 현대미술의 가장 뜨거운 현재라고 불리는 부르스 데 코메르스-피노 컬렉션(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으로 부터 카르트 블랑슈(Carte blanche, 기획부터 실현까지 전시 전권을 아티스트에게 일임하는 것)를 부여받으며 참여한 전시 <흐르는 대로의 세상(Le monde comme il va)>이 열리는 때였다.

  • 이 전시에서 작가는 부르스 데 코메르스의 가장 상징적 공간인 지름 29m, 높이 9m의 원형 홀 ‘로통드(Rotonde)’ 바닥에 4백18개의 거울을 설치해 ‘호흡 – 별자리(To Breathe – Constellation)’를 완성했다. 거울을 이용해 반원형의 천장 돔을 바닥에 반사시켜 완전한 ‘구(球)’를빚어냈다. 동그란 건축적 보따리, 달항아리 안에서 관람객은 저마다 천장과 발아래를 수차례 번갈아 보고, 산책하듯 걷기도 하고, 드러누워 하늘을 보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신비에 몸을 맡겼다. 그 외 로통드를 아우르는 24개의 쇼케이스에는 40여 년간 김수자 작가가 축적한 작업의 역사가 선별돼 있었다. 수십 년간 작가가 사용해 몸의 움직임이 그대로 기록된 요가 매트, 밤하늘의 별을 보고 바느질을 떠올린사진 작업, 굽는 과정에서 갈라지고 뒤틀린 모습을 그대로 품은 달항아리 등 성찰과 수행, 존재와 관계, 이해와 포용, 나눔과 공존에 골몰해온 사유의 흔적들이었다. 전시장 지하에서는 ‘바늘 여인’, ‘실의 궤적’ 등 세계의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영상 작업을 상영했다. 그야말로 김수자 작가의 결정적 순간들을 망라한 전시였다.

  •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를 위해 그가 오랜 시간 머물고 있는 레지던시로 자리를 옮겼다.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단출한 침대, 책상과 의자 하나, 작은 조리대가 전부인 8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생활을 위한 물건은 최소한으로 청빈하게 자리해 있었다. 방금 머물던 부르스 데 코메르스의 화려함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이 작은 방이 작가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예술가가 생에 걸쳐 차분하고도 고집스럽게 쌓아온 철학의 가장 깊은 곳을 목격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전에 만났을 때 “예술가가 아니었다면 종교인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와 무릎이 닿을 거리에 마주 앉아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기 위해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떠올렸다. 좁은 방에서 시작한 대화는 무한히 드넓은 곳으로 뻗어나갔다.

  • 유선애
    레지던시가 검박해서 놀랐습니다. 마치 종교인의 거처 같달까요. 좀 전까지 부르스 데코메르스에 머물다 와서 그런지 공간의 낙차가 더 드라마틱하게 다가옵니다. 이 작은 방이 김수자 작가의 많은 것을 설명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 김수자
    실제 과거에 수도원으로 사용되었던 곳이에요.파리에 머물 때는 늘 이곳에서 지냅니다. 필요한 물건들만 최소한으로 뒀는데 불편하지 않아요. 일상을 살아가는 데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은 편이에요.

  • 유선애
    두 달 뒤면 2024 파리 올림픽이 열리죠. 파리를 찾는 세계인이 광활한 거울 정원 ‘호흡 - 별자리’를 거닐게 될 텐데요. 40년 전, 에콜 드 보자르가 주관하는 프랑스 국비 장학생으로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기대에 얼마나 가까워진 건가요?

  • 김수자
    오늘 같은 날을 기대하거나 상상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프랑스 미술계가 제 작업에 대해 꾸준히 관심과 지지를 보내준 덕분에 작가로서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올 수 있었어요. 그 도움의 시간들을 지나며 지금에 온 것인데...글쎄요. 흥미로운 건 있어요. 줄리 머레투(Julie Mehretu)와 뉴욕 할렘 갤러리에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딛었거든요. 이후 그는 상업적으로 승승장구했고, 지금 베니스 팔라초 그라시-피노 컬렉션(Palazzo Grassi-Pinault Collection)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잖아요. 같은 시기에 저는 파리에 있고요. 지금까지 비상업적 공간에서의 전시나 비엔날레, 인스티튜션을 주로 떠돌며 작업 해왔는데,오늘날 세계 미술 시장을 좌지우지한다 할 피노 컬렉션에서 전시를 하는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로워요. 피노 컬렉션이 품는 작품의 폭이 상당히 넓다는 걸 새삼 느끼고요. 다양한 작업을 아우르는 포용성과 열린 안목을 지닌 분이죠.

  • 유선애
    보따리를 가득 실은 트럭에 몸을 싣고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난민,이주, 전쟁, 테러 등 동시대의 폭력 앞에 두 발로 선 시간도 깁니다. 그런역사 때문인지 이번 전시는 주류 미술 시장에 최적화된 작가가 아님에도 자기 세계를 구축하다 보면 어느 순간 중심에 선다는 메시지로도 다가옵니다. 그래서 더 고무적이고요.

  • 김수자
    저 역시 이 전시를 통해 젊은 작가들에게도 희망의 여지가 전해졌으면 해요. 많은 작가들이 상업적으로 자신을 알리기 위해 초조해하고 번민하는 것을 목격할 때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상업화의 반대 방향으로만 걸어왔잖아요.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고요.

  • 유선애
    미술계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청년들에게도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 김수자
    삶의 가치라는 것은 특정한 물질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그 역시 손쉽다고 할 수도 없지만.

  • 유선애
    돌이켜보면 김수자 작가의 보폭이나 걸음의 방향은 늘 같았습니다. 재료와 방법을 실험하며 방대한 작업을 해나가면서도 전시의 규모나 명성에 치우치지 않고, 필요한 자리에 섰습니다. 필연적으로 주류 미술계의 반응이나 화답이 있지 않은 순간도 있었을텐데요. 외롭진 않으셨나요?

  • 김수자
    세간의 관심보다는 전시마다 내게 주어진 질문에 적절하게답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해왔어요. 장소나 시간, 주제와방법 등에 대해 최대치의 사색 끝에 던지는 한마디의 답을 세상에 제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어요. 그 외적인 것들에는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함께 작업해온 큐레이터들에게 감사해요. 작가는 비엔날레를 통해 동시대의가장 첨예한 질문과 주제를 건네받게 되는데 이를 고민하며 저역시 발전해왔죠. 장소 특정적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는 특정 장소에서 할 수 있는 접근 방법이나 최선의 솔루션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 과정을 거치며 나아갈 수 있었어요. 찾아가고 알아가는 와중에도 마음 안에 분명한 건 있었어요. 작업 과정의 노력들이 어느 순간 종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 유선애
    과정 중임을 인식하는 것이 긴 호흡을 갖게 한 것이죠?

  • 김수자
    그렇죠. 저는결과를 빨리 보려고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절대로.

  • 유선애
    전시를 앞두고 미술관으로부터 작가에게 전시의 기획부터 실현까지 전권을 부여하는 카르트 블랑슈를 제안받았습니다. 흔치 않은 특권입니다. 이 기회를 허투루 쓰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무엇을, 어떻게 펼치고자 했나요?

  • 김수자
    작가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건 전적으로 신뢰한다는의미잖아요. 영광스러운 동시에 책임이 따르는 일이고요. 전시의중심이 되는 로통드관은 거울을 이용해 건축적 보따리로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바닥에 설치한 거울이 돔을 비추며 발아래 시각적인 돔을 만드는 거죠. 관람객을 천상과 천하, 그 중간 세계 어딘가에 놓고자 했어요. ‘nowhere’인 것이죠. 어디도 아닌 곳. 지상인지 지하인지 모를 곳을 그저 부유하는, 중력이 사라진 공간처럼도 느껴지도록요. 그리고 로통드 관을 24개의 쇼케이스로 둘러싸, 지금까지 보따리를 배회하며 던졌던 질문들의 흔적을 선별해전시했습니다. 로통드가 몸통이라면 쇼케이스는 손과 발의 형상인 거죠. 24개의 쇼케이스를 통해 제가 지금까지 다양한 매체와방법론을 통해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달리 해석하고 시도해왔음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유선애
    20여 년 전부터 거울을 도구로 다른 차원을 열어왔습니다. 시작은 1999년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였죠. 당시를 기억하시나요?

  • 김수자
    ‘망명의 보따리 트럭(d’APERTutto or Bottari Truck in Exile)’이라는 작품이었어요. 보따리를 실은 2.5톤 트럭 전면에 거울을 설치했는데이는 당시 코소보 전쟁(1999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의 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과 세르비아 정부군 간에 벌어진 전쟁) 난민들에게 헌정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트럭 앞에 놓인 거울을 하나의 출구로 제시하고자 했어요. 반사 효과를 통해 거울 뒤로 보이는 모든 공간을 감싸는 의미로 트럭이 한 번 더 싸이고, 다시 싸이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 유선애
    이후 거울을 사용해 공간의 무한성, 접힘과 열림, 채움과 비움 등을 꾸준히 탐구해왔습니다. 보따리로 시작된 ‘구’의 형태는 작가에게 중요한 개념이자 키워드이고요.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의 주요 개념들이 단 한작품 안에서 집대성 됐습니다. 어떤 경로로 개념들이 모이게 되었나요?

  • 김수자
    지금까지 거울을 통해 공간을 반사함으로써 하나의 정체성을, 총체성을 갖는 공간을 선보이고자 했습니다. 특히 이번 공간은 돔이라는 명확하고 명쾌한 형태를 지니고 있기에 구를 만들고자 하는바람이 자연스럽게 일었죠. 구 형태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느낀 건 ‘연역적 오브제 보따리(Detective Object-Bottari)’라는 제목으로 달항아리를 보따리로 개념화한 세라믹, 테라코타 작업을 했었는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돔 아래 거울을 놓는 것이 마치 달항아리를 만들 때 두 개의 반원을 뒤집어 엎는 작업과의 동일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한데 이를 사전에 계산하고 작업한 건 아니었거든요. 계속해서 질문을 품으며 작업하다 보니 다르다고 여겼던 두 작업이 만나게 된 거죠.

  • 유선애
    개념적으로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행함으로써 알게 되는 사실이 있는거죠?

  • 김수자
    제 작업 대부분이 그래요. 바느질, 감싸기 컨셉트나 그것이다시 보따리가 돼 삼차원적 바느질로 재해석되는 것, 바늘과 몸의관계 등 사전에 철저히 개념화해 시작한 작업이 아니에요. 직관적인 논리의 감각이라 해야 할까요. 직관과 예술적 충동으로 실행한것 같지만 그 안에는 저조차도 인식하지 못한 규율이 이미 존재했던 거죠. 행함으로써 나를 발견해왔어요. 지나고 나서 규율들이 보이고 한데 꿰어지는 거죠. 이 작업을 왜 시작했고,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를요. 어떻게 보면 자연의 이치를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유선애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관람객들입니다. 10명 남짓한 어린이 관람객들은 손을 잡고 둥글게 서서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기도 하고, 어떤 관객은 편안히 누워 있더군요. 공원의 한 풍경처럼 느껴졌어요. 각자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을 품는 포용성도 느껴지는 작업입니다.

  • 김수자
    ‘크리스털 팔라스’ 작업을 할 때 부터 관객을 제 작업의 퍼포머라고생각하고 있었어요.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저 혼자서 그분들을 ‘비밀스러운 퍼포머’라 상정한 거죠. 그래서 이번 전시역시 즐기는 마음으로 관람객들을 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동작 하나하나를, 어떤 만남과 어긋남 같은 것들, 혹은 나르시시스트적인 반응들을요. 그리고 위로만 보던 천장을 발아래로 골똘히 보다 보면 ‘여기가 어디지?’, ‘내가 이렇게도 보일 수 있네?’ 하는 질문들이 만들어지기도 하잖아요. 그 모습들을 보며 저에게도 새로운 질문이 생겼어요. 천상과 천하의 세계, 그 중간 지점은 절단면이기도, 연결선이기도, 공간이기도 하고 허(虛)이기도 하잖아요. 과연 그것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해부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전개가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어요.

  • 유선애
    소재도 방법도 다른 와중에 작가의 작품은 공통된 개념을 예리하게 통과합니다. 작가의 작품을 두고 ‘영적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고요.

  • 김수자
    나를 둘러싼 우주의 진동과 흐름, 빛과 어둠 등 자연의 현상을 감지하고 반응하고 흡수하는 모든 과정이 어떤 계시처럼 다가옴을 느끼는 순간도 있어요. 그렇다면 이런 순간들을 어떻게 만났는가 하면, 글쎄요. 그냥 오는 것 같아요. 직관과 예술적충동으로 길을 찾아가다 보면 모든 것이 하나로 만나는 접점이 있어요. 그렇게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도 분명한 목표는 있어요. 삶과 예술의 토털리티(totality)에 도달하고 싶다’고 수십 년 전부터 이야기했어요. 그 총체성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 유선애
    삶과 예술을 이분화 하지 않았던 것이죠. 삶의 일관됨이 작업의 일관됨과도 연결됨을 느끼십니까?

  • 김수자
    느끼죠. 내가 사는 삶이 결국 내 작업을결정할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삶을 가치 있게 살아내고자 했어요. 그만큼 예술이 내게 중요했고, 예술이 중요한 만큼 삶을 견디고 지키려 했어요.

  • 유선애
    그래서일까요. 김수자 작가의 작업에는 예술과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태도가 진실되게 담겨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날수 있는 2백 50장의 한지를 수평과 수직을 맞춰 쌓아 올린 작품 ‘Meta Painting’은 시간이라는 비물질을 생생하게 우리 눈앞에 보여주죠.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홀대받는 지금, 작가의 작업이 더 깊게 다가옵니다.

  • 김수자
    ‘Meta Painting’에는 수많은 시간의 축적이 보이잖아요. 그 가운데 노동이 보이고요. 우리가 보는 것 이상의 것을 보는 거예요.이런 작업들을 해오는 저 또한 행하는 과정에서 보는 것 이상을봅니다. 이제 뭔가가 좀 보이는 것 같다 싶어요. 나아가 나의 어떤생각에 대해 그게 틀린 생각만은 아닐 거라는 확신도 생기고요.

  • 유선애
    예술가로 살아온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보인다는 말씀이시죠?

  • 김수자
    하나씩 교감하고, 스스로를 검증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죠. 한데 이것이 명징하게 인과적으로 해석되거나 직선적으로 인식된다기보다는 굉장히 복합적이고 입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와요. 내가어디에서 어떤 질문을 하고 답을 해도 이제는 내가 표현하고자한 것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자유로워요. 어떤 재료든, 어느 장소에서든, 무엇을 하더라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지금 들어요. 겁이 좀 없어졌다고 해야하나? 조심스러웠던 부분도 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면될 것 같아요. 물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지만. (웃음) 그런 때가 온 것 같아요.

  • 유선애
    난민, 이주, 전쟁, 테러 등 시대적 폭력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이는 곧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20세기를 치열하게 건너온 작가님에게 여쭙고 싶어요. 세계가 나아지고 있다고 믿나요?

  • 김수자
    삶의 향유 면에서는 발전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성 자체의 휴머니티는 퇴보하고 있죠. 이 세상에는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치유를 위한 창조를 하는 이들이 존재하는가 하면 공존을 방해하는 파괴적인 부류의 사람들도 반드시 있죠. 인간의 이중성만큼이나 사회 역시 양분돼 있어요. 이는 인류가 지닌 불치의 병이 아닐까 싶다가도 그럼에도 노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봅니다.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Desert ×AlUla 2024>라는 프로젝트에 긴 고민 끝에 참여했어요. 나를 결단하게 한 건 ‘부끄러운 역사가 없는 국가는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인류에 반하는 행위를 했죠. 그 프로젝트는 예술과 문화를 통해 과오를 개선하고 치유해 나가려는 노력을 아주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사례라 여겼어요. 내 쪽에서 레드 라인을 그으며 그들의 노력을 꺾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보다는 한 발 힘을 주는 것이 더 옳은 태도겠죠. 완벽한 평화와 공존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어요.

  • 유선애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우린 무엇을 갖고 있고,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 김수자
    사랑만큼 중요한 가치가 또 있을까요. 사랑이 어떻게 발아되는지는 모르겠어요. 실을 엮듯 사랑이라는 감각과 느낌, 이성적 사고나 판단력,그로 인한 행위 등 수많은 망들이 마치 인다라망(因陀羅網, 불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온 세상을 덮고 있는 거대한 그물로각 그물코마다 구슬이 달려 있어 서로 연결되고, 동시에 서로를비춘다)처럼 섬세히 조합되고 빛을 만들며 신비한 세계를 이루는것 같아요. 그게 사랑의 본질 같아요. 왜 우리는 ‘사랑’ 하면 하나의 사랑이 가슴으로 턱 하고 뭉뚱그려져 전체로서 다가오잖아요.하지만 사랑 그 자체는 굉장히 복합적이고 총체적인 미세한 과정을 통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 같아요.타인을 사랑한다는 건 그래서 기적이에요. 분석 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마음의 상태이자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최상의 마음 상태 아닐까요.

  • 유선애
    마무리할까요. 김수자 작가 하면 뒷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세계의 그늘을 찾아 정면으로 직시하던 모습을요. 지금은 어디를 바라보고, 향하고 있나요?

  • 김수자
    점점 죽음의 실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나아가 내 몸과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고요. 내가 모르는 미래 속으로 어느 순간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요. 죽음으로 인한 변화는 또다른 형태의 삶이겠죠. 또 다른 형태의 빛과 그림자인 거예요. 그빛과 그림자를 내가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풀어내야 하는지가 지금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 유선애
    무수히 많은 경계를 바느질하고 이어왔는데, 삶과 죽음을 잇는 작업을생각하고 계시군요.

  • 김수자
    맞아요. 날숨과 들숨을 반복하다 그것이 멎는순간 끝나는 거잖아요. 끊임없이 바느질을 이어가다 멈추는 것.인터뷰의 마무리가 너무 새드한가?(웃음) 한데 정말 의미 있는 작업을 남길 수 있다면 죽음은 두렵지 않아요. 앎에 대한 열망이 유난히 커서 그럴까. 작업은 곧 앎의 표현이잖아요. 더 정확히는 앎과 모름의 표현이죠. 이 앎이라는 게 지식이 아니라 어떻게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가, 자기의 시각에서 해석하는가인 것 같아요.내가 어떻게 삶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표현하는가인데 이를 미술이라는 매체를 빌려 이야기하는 것이죠.

  • 유선애
    지금껏 앎의 과정에서 무수한 도전들이 있었음에도 이를 놓지 않은 이유이지요?

  • 김수자
    되레 그럴수록 더 강해져요. 도전의 순간에 더 예술적충동이 일어나죠. 행복할 때, 좋은 기운으로 작업할 수도 있지만작가로서 결정적인 순간은 도전과 역경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어요. 그래서 흥미로워요. 도전과 그로 인한 예술적 충동 속에 드러나는 우주의 진실, 트루스(truth)를 목격하는것이 흥미롭고, 자꾸만 빠져들어가는 것 같아요. 모르면서 하고,모르면서 또 하면서.(웃음)

— Marie Claire, August, 2024. pp.40 -65.

Yu Seon Ae

2024

— Marie Claire, August,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