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박정애 │ 김수자 ─ 통합을 통한 보편성의 추구

김수자 ─ 통합을 통한 보편성의 추구

박정애 (미술평론가)

2018

  • 김수자는 1957년 대구 출생이다. 1980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하 였고 또한 동(同)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1984년 미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과정 재학 중이던 1983-1984년 프랑스 정부 장학금으로 파리에서 작품을 제작하였다. 1992-1993년에는 뉴욕의 P.S.1 Museum에서 artist-in-residence로 뉴욕에 거주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99년 뉴욕으로 이주한 이후 현재는 주로 뉴욕과 파리에서 작품 제작을 하고 있다.

  • 김수자가 사용하는 소재는 전통적인 한국의 이불보이다. 한국의 전통적 직물은 그녀에게 서양 문화로 이동된(displaced) 이주자, 유목민, 그리고 동양 또는 한국 여인의 위치를 표현하는 독특한 방법을 제공한다. 비디오 작품 《보따리 트럭》은 보따리 더미들로 가득한 트럭의 중심에 김수자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으면서 변화하는 풍경 속에 작가가 살았던 한국의 지역들을 여행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편리한 운송을 위해 사람들의 세속적인 물건들을 쉽게 포장 할 수 있는 천이나 일상 용품들을 이불보로 묶은 보따리는 김수자에게 있어 현대의 유목적인 삶의 양식에 대한 상징이다. 거의 모든 것을 쉽게 포장할 수 있는 융통성 때문에 보따리는 동양 정신의 수용성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통적인 천을 사용하면서, 김수자는 자신의 이야기 기록을 통해 한국과 다른 국가들에서의 사회적 성의 이슈와 여성의 노동을 언급한다. 그렇게 하면서 김수자는 한 가정에서의 여성의 삶의 조건이 가지는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재정의하고자 한다.

  • 김수자가 보따리를 소재로 사용하게 된 데에는 자신의 개인적 역사와 관련된다. 직업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2년마다 이사를 다니면서 보따리를 묶고 풀었던 경험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잠재되어 있었다. 뉴욕의 P.S.1 스튜디오에서 문득 보따리를 바라보던 어느 날부터, 새로운 형식으로서의 보따리를 보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미술 매체로 한국의 보따리를 사용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머리에 떠오른 한국의 보따리는 매우 생경하고 독특한 것으로 되새겨진 것이다. 이렇듯 미국에서 한국적인 것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P.S.1 레지던시 이후 한국에 돌아갔을 때 한국 문화와 한국 사회에 대해 좀 더 명확한 견해를 가질 수 있었다.

  • 그러나 이렇듯 자발적으로 한국의 소재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수자는 자신의 주제와 소재가 어느 특정 문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유니버설한," 즉 "보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이유로 김수자는 자신의 매체 보따리가 단지 한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유태인, 터키인, 그리고 일본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나라에서 사용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김수자 자신은 결코 한국 문화를 의도적으로 추구하지 않는다. 자신이 한국적 소재를 사용하는 이유는 국가적 정체성의 문제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관심사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수자는 미술가가 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과 국가적 정체성이 지극히 별개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이 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적 정체성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오히려 김수자는 자신이 유니버설한 차원의 작품을 항상 마음에 그리는 코즈모폴리턴으로 간주한다.

  • 전세계 몇몇 대도시에서 삼라만상의 변형된 모습을 상징하는 보행자들의 파도가 그녀를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정작 자신을 움직이지 않는 정적인 고독한 인물로 위치 설정한 또 다른 작품 《바늘 여인 A Needle Woman》에서 김수자는 우주적 통합에 대한 탐색에 열중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김수자는 세계인을 함께 연결시키고 묶기 위해 인파의 물결을 뚫고 지나가는 하나의 바늘이다. 그녀의 몸은 자연이라는 큰 천의 판을 짜는 동시에 전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 간의
    차이를 묶는 상징적 바늘이다. 자연의 천의 판은 조직의 판이면서 전개의 판이다. 이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김수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않고 단지 사람들 사이에 서 있다. 그 순간 자신에게로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도록 허락하면서 그녀의 육체는 초월되고 해방되면서 비워진다.

  • 김수자의 장소 특정적(site-specific) 설치 작품, 《Lotus: Zone of Zero》는 만다라 모양의 원 안에 2,000개의 연꽃등(燈) 유리의 파빌리온으로 둘러싸인 설치 작업이다. 그 배경에서는 그레고리안, 티베티안, 이슬람 성가가 울려 퍼진다. 그러면서 그 뿌리가 심원하게 다르고 이질적인 믿음들 간의 평화로운 통합을 시각화한 제로 영역으로 불리는 것을 통해, 그 지역은 감상자들을 위한 명상의 장소를 제공한다. 무한 0으로서의 융합성의 제로 존은 우주와 합일되는 궁극적 지대이다. 0의 제로는 또한 무(無)로서의 근본을 의미한다. 무와 병합되는 것은 평화로운 망각의 길이다.

  • 김수자에게 있어 미술은 한편으로 그 자신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론적 질문과 세계에서의 자아에 대한 답을 찾는 수단이다.

— 박정애, 『보편성의 미학: 세계화와 한국 미술』, 「제2장 한국 미술가들의 작품, 예술적 의도, 미적 가치」, pp. 66-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