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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윤난지 │ 아우름과 떠남의 미학: 김수자의 보따리
2020
Mark Rappolt │ Kimsooja - The New Normal
2020
Doris von Drathen │ KIMSOOJA, SCHAUENDES DENKEN
2020
김복기 │ '바늘 여인’, 세계를 직조하다
2020
‘작가 김수자’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보따리’다. 주로 서민들의 이삿짐이었던 알록달록한 이불 천으로 된 보따리는 김수자 작업의 화두이자 1990년대 미술의 주요 아이콘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또 다른 곳을 향한 떠남을 암시하는 보따리는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고 여행과 이주가 빈번해진 이른 바 전 지구화 시대를 표상하는 모티프가 되었다. 더하여, 한국의 토착문화,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문화와 그 문화의 이동을 의미함으로써 로컬과 글로벌, 주변과 중심이 교차하는 당대 세계의 문화지형도에도 적절하게 부합하였다. 보따리 작업이 구체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2년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이지만 그 연원은 이전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수자가 수업기를 보낸 1970년대 말~1980년대 초는 이른바 단색화 시대였는데, 이때부터 그는 단색화의 모더니즘 미학, 특히 그 고답적인 정신주의에 의문을 가지면서 천이라는 촉각적 재료와 바느질이라는 일상공예 기법을 평면작업에 적용하는 실험을 시도하였다. 또한 자신의 신체 움직임을 기하학적 구조로 분석한 <구조-몸의 연구>(1981, 사진, 실크스크린)에서처럼, ‘몸’을 작업의 주요 계기로 주목하게 된다. 몸과 그 몸이 살아가는 일상이라는 화두에 점차 이끌리게 된 것인데, 이에 확신을 갖게 한 계기가 작가가 자주 언급해온 어머니와의 바느질이다.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가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천이 가지는 기본 구조로서의 날실과 씨실, 우리 천의 그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드는 꿰매는 행위의 천과의 자기동일성,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1]
1983년의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당대 두 주류로 대치하고 있던 단색화와도, 민중미술과도 다른, 자신만의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이후 그는 알록달록한 천의 질감과 바느질 자국을 드러내는 천 콜라주로, 지게나 얼레 등 전통기물을 천으로 싼 오브제 작업으로, 그리고 천 조각들 자체를 오브제 삼아 집적한 아쌍블라주로 과감하게 나아갔다. 평면작업의 재료가 되었던 천이 점차 그 자체로서 미학적 의미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이런 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1992년 우연한 계기로 발견한 모티프가 ‘보따리’다. 그가 뉴욕 PS1에 체류 중이던 어느 날 천 재료들을 싸서 보관한 보따리가 눈에 띄게 되었는데, 작가의 말처럼, 그 순간 보따리는 “하나의 조각이고 회화”[2]가 되었다.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아우르는 보따리는 또한 바늘 없는 바느질, 즉 어머니와의 일상에서 발견한 새로운 미학의 또 다른 구현물이었다.
이렇게 발견한 보따리를 김수자는 같은 해 오픈 스튜디오에서 처음 전시하게 되는데, 이 작업에도 이전 오브제 싸기 작업과 마찬가지로 <연역적 오브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천으로 또 다른 평면을 만들어가는 초기 작업의 귀납적인 방법에 대해 천을 통해 오브제를 역 추적한다는 의미를 함축한 이 명칭이 보따리에도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보따리는 하나의 모티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업 원리를 구현한 시각 기호였던 것이다.
싸고 묶고 풀고 다시 싸는 과정을 함축한 보따리는 여성의 일상 특히 그 신체적 움직임과 긴밀하게 엮인 오브제인데, 이를 구체화한 예가 1994년의 전시 《바느질하여 걷기》(갤러리 서미)다. 전시장 바닥에 배치된 보따리들과 옷가지들, 오래된 가옥이나 자연 속에 놓인 보따리와 펼쳐진 천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작가를 찍은 영상, 그리고 그 설치 공간 속을 걸어 다니는 관람자를 찍은 실시간 영상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보따리가 여성 몸의 움직임과 하나가 되는 과정을 구현한 총체적 퍼포먼스였다. 영상에서 작가는 스스로 보따리들 중 하나가 되거나 보따리 천을 펼치고 싸거나 자연이라는 드넓은 천 속으로 바느질하듯 걸어 들어가는 행위를 시연하였다. 자신의 모든 작업을 천이 이끄는 ‘퍼포먼스’[3]라고 한 작가의 입장이 이 전시를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이렇게 관람자를 퍼포머로 끌어들이는 퍼포먼스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중외공원에서 이루어진 같은 제목의 작업에서 작가는 자연 속에 헌 옷과 보따리들을 펼쳐 놓고 관람자들이 그 속을 걸을 수 있게 하였다. 반전 운동의 상징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Imagine)’과 ‘스탠 바이 미(Stand by Me)’가 흘러나오는 현장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떠올리게 하면서 이 작업의 정치적 의미를 부각하였다. 두 달여 전시 후에 흙과 낙엽과 옷이 뒤범벅이 된 현장은 이를 다시 확인하게 했다. 이 작업을 통해 보따리는 희생자의 넋을 기린다는 치유의 의미 또한 함축하게 되었다. 보따리는 퍼포먼스와 엮이면서 바느질로, 그 신체적 구현으로서의 걷기로, 그리고 그 심리적 효과로서의 아우르기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간 것이다.
이런 퍼포먼스와 함께 보따리가 움직임 혹은 이동의 매체이자 도상으로 부각된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보따리와 작가의 몸이 함께 이동하는 <떠도는 도시들-2727Km 보따리 트럭>(1997)이 그 증거다.
“보따리를 싸고 풀듯이 내 몸 역시 끊임없이 머물고 떠납니다.”[4]
1995년의 한 대담에서의 작가의 이 말이 예언이 된 듯, 2년 후 그는 스스로 하나의 보따리가 되어 다른 보따리들과 함께 머물고 떠나는 여정을 시도하였다. 보따리를 실은 트럭에 작가가 함께 타고 11일 동안 전국의 마을들을 누비는 퍼포먼스이자 이를 기록한 비디오 영상인 이 작업은 아우름과 함께 떠남의 계기를 함축하는 보따리 미학을 작가가 몸소 실천한 예다. 이사가 잦았던 어린 시절 주거지들을 거쳐 가는 이 여정을 통해 그 자신도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끊임없이 떠나는, 혹은 떠남으로써 또 다른 것을 아우르는 보따리가 되었다.
작가 자신 또한 유목 혹은 여행의 주체로 부각된 것인데, 전 세계 여러 도시들에서 이루어진 거리 퍼포먼스를 기록한 <바늘 여인> 시리즈(1999~)는 이런 작가 개념이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진 예다. 작가 스스로 바늘이 되어 현지인들 속으로 스며드는 과정을 기록한 이 비디오 작업에서 보따리는 사라졌지만 그 의미는 “치유의 도구”[5]로서의 바늘을 통해 구현되었다. 여기서 김수자는 자신의 몸을 스쳐 가는 낯선 이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에게 여행은 다른 문화를 포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또한 있는 그대로 두고 떠나기 위한 것이다. 이는 19세기 산업혁명이 촉발한 남성적 정복의 여행과 대극에 있다. 마치 바늘이 헝겊과 헝겊을 이어주고 떠나듯, 보따리가 서로 다른 천들을 감쌌다 풀어주듯 그는 아우름과 떠남의 반복으로서의 여행, 이른바 여성적 포용의 여행을 실천한 것이다. 어머니와의 바느질 체험이 사회적 차원으로 드러난 그의 여행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부드러운 정치학의 구현이다. 소외된 지역이나 분쟁 지역에서 이루어진 이후의 작업들이 이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김수자의 작업을 이끌어 온 것이 보따리와 그 미학이며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보따리는 펼쳐져 빨래처럼 널리기도, 낯선 이국 카페의 테이블보로 쓰이기도, 조각조각 잘려 벽돌 틈새에 끼워지기도 하면서 변이를 거듭해 왔다. 비디오 작업 또한 장소를 달리하면서 지속되었다. 보따리 트럭은 1998년 사웅파울로 비엔날레 등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전시되면서 이른바 노마디즘(nomadism)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특히 ‘코소보 난민에게 바침’이라는 부제가 붙은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것은 이주와 그에 따른 문제를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 파리에서 이민자 관련 장소들을 순회하면서 다시 제작된 보따리 트럭에는 ‘이주’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는 최근 작가가 전시감독을 맡은 푸아티에 비엔날레 《가로지르기/김수자》(2019.10.12.~2020.1.19.)에도 전시되었으며, <보따리>라는 이름으로 설치된 뉴욕 이삿짐 컨테이너와 함께 전시의 의미를 각인시켰다. 보따리가 바느질로 개념화된 <바늘 여인> 또한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시연되어 왔다.
마드리드 크리스털 궁전 설치 작업(2006)에서 시작된 <숨쉬기> 연작은 보따리 개념을 건축적 공간에 적용한 예다. 유리창에 붙인 회절격자 필름을 통해 오방색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을 연출한 것인데, 이는 빛으로 가득 찬, 그리고 그 빛의 움직임처럼 살아 숨 쉬는 보따리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작가의 숨소리와 허밍소리는 그 공간을 거대한 신체로 체험하게 한다. 전 세계 다양한 건물들을 옮겨 다니며 지속되고 있는 이런 작업과 함께 보따리는 점차 비 물질화되고 개념화되어 왔는데, 근작 <마음의 기하학>(2016)은 그것이 심리적인 차원으로 발현된 예다. 관람자들은 점토로 각자의 형상을 만들면서 마음의 보따리를 싸고 푸는 과정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넘나들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를 관통하고 2000년대로 이어진 김수자 작업은 그 자체가 신체적, 심리적 유목의 도정이었다. 평면도 입체도, 비움도 채움도 되는 보따리의 유연함이 그의 작업, 그 유목을 가능하게 한 것이며, 이를 통해 그의 작업은 인간 사회를 넘어 자연과 우주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작업의 내용 뿐 아니라 작업방식, 나아가 전시와 사회활동에 있어서도 작가의 유목은 지속되었다. 자신의 뉴욕 행을 일종의 “문화적 망명”[6]으로 본 작가 말대로, 그는 단지 물리적으로 뿐 아니라 심리, 사회적으로도 거처를 옮겨 다닌 것이다. 1980년대 중·후반에는 일본과 대만, 1990년대 초·중엽에는 뉴욕, 이후 전 세계 여러 도시들로 이어진 그의 여정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언제쯤 바느질 뜸을 따라 걸어가는 이 길이 끝날 것인가”7라는 작가 자신의 질문은 진행 중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작업의 여정에서 작가 이미지는 거의 변하지 않는 모습, 즉 긴 검은 머리를 묶거나 땋은 뒷모습으로 기호화되어 왔다. 작업의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작가 자신은 전형적인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고수해왔는데, 이런 이미지는 그의 작업을 페미니즘과 관련짓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김수자 스스로도, 페미니스트 작가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여성적 정체성을 부정하지는 않으며 작업을 통해서도 이를 일관되게 추구해왔다. 여성적 일상, 특히 어머니와의 모성적 유대관계를 통해서 발견한 소재와 기법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이른바 ‘여성적 감수성(feminine sensibility)'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는 점에서 페미니즘 중에서도 본질주의(essentialism)와 닿아 있다. 자신의 재료인 천을 “감싸고 덮고 보호하는 것” 즉 “여성의 자궁과 같은 이미지”8로 본 작가의 입장이 이를 확인하게 한다.
1990년대 미술에서 김수자 작업이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재료와 기법을 통해 여성적 일상을 미술의 영역으로 수용하고 설치와 퍼포먼스, 비디오 등 새로운 방법과 매체 실험을 시도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몸과 마음 같은 생리, 심리의 세계와 기하학적 구조라는 수학 혹은 과학의 원리를 융합하려는 의도가 초기 작업에서부터 일관되게 내재되어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듯이, 그의 작업의 진정한 의미는 서구 근대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넘어선 또 다른 미학을 제안한 점에 있다. 이는 서구 근대를 추동한 남성 미학, 그 배제의 논리에 대해 포용의 원리라는 대안을 제안하는 점에서 여성 미학으로 이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보따리는 이러한 여성 미학의 출발점이자 그 도상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또한 모든 것을 떠나보내는 보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진해 온 모더니스트 영웅 신화, 그 남성적인 직진의 논리를 비껴간다. 한국성의 기호이자 여성성의 기호인 보따리는 다양한 문화들과의 접점과 함께 차이를 또한 만들어내면서 로컬 문화를 글로벌한 지평에 스며들게 하였다. 로컬 문화를 통한 글로벌한 아우름의 표상인 그것은 정복이 아닌 포용을 지향하는, 그런 의미에서 여성적인 글로벌리즘의 도상이다.
몸과 천이 하나가 된 또 다른 보따리 <만남-바라보며 바느질하기>(1998, 2011)에서 나는 천에서 혼령을 불러내는 영매와 같은 예술가, 김수자를 본다. 그는 보따리 작업을 시작한 이래 아우름과 떠남을 반복하면서 인간과 인간, 문화와 자연의 교응을 중개해 왔다. ‘아우르고 떠나기’ 이것이 김수자의 노마디즘, 이를 통한 글로벌리즘의 진정한 정체다.
[Note]
[1] 김수자, 「작가노트」, 『김수자』(전시도록), 갤러리 현대, 1988, p.9.
[2] 박영택, 김수자(대담), 「김수자: 평면에서 입체로의 접근, 보따리」, 『공간』, 1996년 6월, p. 116.
[3] 김수자, 「천과 삶」, Sewing into Walking(전시리플릿), 갤러리 서미, 1994, n.p.
[4] 황인, 김수자(대담), “Sewing into Walking: Cloth, Video, Sound Installaion by Kim Soo-Ja”, 『공간』, 1995년 1월, p. 38.
[5] 김수자의 편지(2000. 2. 15): 태현선, 「김수자: 세상을 엮는 바늘」, 『김수자: 세상을 엮는 바늘』(전시도록), 로댕갤러리, 2000, p.13.
[6] 후 한루, 김수자(대담), 「새로운 빛을 밝히다」, 『김수자: 마음의 기하학』(전시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16, p. 24.
2020
While most people were locking down this May, Korean artist Kimsooja was hanging out laundry, in a wood northeast of Malmö, not too far from the border between Sweden and Denmark, on the site of a medieval castle and an organic farm. Between the trees, 100 pristine white bedsheets are pinned to clotheslines and flap, like so many captured cartoon ghosts, in the wind. They give an idea of stains removed, fresh starts, new beginnings, extreme hygiene and slates wiped clean. And, with their embroidered trims (an example of local craftspersonship), of old traditions of manufacture and housework, which to a lot of us might seem anachronistic in a world of urbanised living, rapid manufacture, household convenience and washing machines. White: the mark of mourning, purity and rebirth. Or perhaps all this is to overthink what is simply evidence of an easily comprehensible, quotidian routine.
But overthinking is a pastime in which many of us have had an opportunity to indulge over the past few months. Locked down, changing our routines, afraid of other people, afraid of going out, conjuring profundity out of banality and, egged on by politicians around the world, constantly redefining what we mean by ‘normal’. As if the term was anything other than subjective in the first place.
The sheets make up an artwork titled A Laundry Field (2020). If that ‘A’ before ‘laundry field’ suggests that it is one of many, it is. And in more ways than one. On the one hand, because what we see is nothing new: many people around the world hang out their washing to dry; they’ve been doing it since they had things to wash, and things to hang them on. If you stumbled across the washables here, at Wanås Konst, you’d be forgiven for thinking that it was simply evidence of a routine interrupted by, say, a sudden global health emergency meaning that no one was around to take it in. On the other hand, A Laundry Field is a development of earlier works by Kimsooja, such as Mumbai: A Laundry Field (2007–08), a multi-channel video that uses footage of the city to cast the overcrowded Maharashtra port as a field inhabited by people wearing clothes and people cleaning or drying clothes. Both works play with their ‘matter-of-fact’ nature and are evocative in their banality, their normality and the ways in which they accept – but do not insist on – projection and interpretation on the part of the viewer. You want to see garments as embodying the history and traces of human bodies? Fine. You just see ordinary life? That’s a truth too. It’s a form of equivocation that lies at the heart of much of Kimsooja’s work. And, you might say, at the heart of much good art. ‘I saw art in life and life as art,’ the artist said in a 2008 interview with Susan Sollins. ‘I couldn’t separate one from another. So my gaze to the world and my questions were always related to life itself.’
Kimsooja’s best known works feature bottari, a traditional Korean cloth bundle used to wrap goods in preparation for transport by hand. While such fabrics (bottari are often recycled from colourful bedspreads) have acquired links over time to the gendering of labour, the dynamics of domestic and civic power and the segregation of public and private space, bottari bundles are also evocative of displacement and migration (frequently, and particularly in terms of Korea’s modern history, as a result of war and famine), symbolic of both the home and a lack of one.
Although this interest is born of the artist’s Korean cultural heritage – her own ‘reality’, as she puts it – it developed as a medium to be used in more than just two-dimensional works (the artist trained as a painter) when she was displaced from that heritage, during a 1992 residency at moma ps1 in New York. There, the museum became a space in which to accept the bottari’s cultural baggage and to subvert it. In the resultant installation, Deductive Object, she inserted fragments of Korean bedcovers into gaps in the gallery’s brick wall and made static sculptures out of a series of everyday objects covered in bottari cloth. Over the years the bottari works have developed simultaneously as a reality and an abstraction, similar to the way in which civic and social culture across the world has drifted these past few months.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1997, first shown in the group exhibition Cities on the Move, from which the work’s title derives) was a performance and video documenting the artist’s 11-day journey across South Korea, visiting places with which she had a personal connection, on the back of a truck overloaded with tied bottari bundles; To Breathe: A Mirror Woman (2006) saw her clad Madrid’s Crystal Palace in translucent, light-refracting film in such a way that the building itself and the atmosphere within it became a colourful wrapping, a type of bottari.
At the same time Kimsooja has expanded such interests beyond her own cultural inheritance in works like the ongoing Thread Routes (2010–), a series of videos inspired after witnessing traditional lace- making in Bruges in 2002. Taking the performative elements of local textile cultures as its subject, the first focuses on Peruvian weaving and the relationship it has with issues of tradition, gender, historic and vernacular architecture, and local landscapes.
Further chapters have explored European, Indian, Chinese, Native American and Moroccan practices to create a body of work that further evokes relationships between the particular and the universal, and brings to mind the poetry of mystics such as Kabir. A fifteenth-century Muslim weaver from India, Kabir linked the process of textile manufacture to meditation on and exploration of the divine in his verses. Indeed, they proved to be so successful and easily comprehensible that his influence spans both Islam and Hinduism, and the practices of Bhakti and yoga. Works by Kimsooja such as To Breathe: A Mirror Woman and the interactive installation Archive of Mind (2016) have featured recordings of the artist’s own breathing as components of the installation, while she refers to the videos that make up Thread Routes as a form of “visual poetry”.
“The reality of myself and my culture has constantly and gradually evolved, and rather dramatically since I moved to New York,” the artist writes as we exchange emails between London and Korea and their respective lockdowns.
“This move gave me the perspective of my own culture as part of a multi-cultural context. Yet, I held the string of my particular personal life as a continuum that questions fundamental and existential problems: what Zen Buddhism describes as ‘Wha Du (in Korean, Gong An in Chinese)’. This might have given me the consistency and long breath in my career.” She’s referring to the practice in which a story, statement or question is used to provoke a crisis of doubt in the mind of a student of Zen on their pathway to enlightenment. And perhaps nowhere in her work is such a crisis evoked more than in the video series A Needle Woman (1999–2001). In it the artist, clad in grey, is recorded, standing motionless, her back to camera, generally against the flow of traffic, in some of the busiest pedestrian junctions in some of the most densely populated metropolises in the world (Shanghai, Tokyo, Mexico City and Delhi). It’s a work that explores the ways in which losing yourself is linked to finding yourself, about the individual and the collective, and one that has added resonance now that crowds are a source of added fear. The last is something the Nobel Prize-winning writer Elias Canetti described as ‘the touch of the unknown’ in his 1960 analysis of relations between the self and others, Crowds and Power. Although one of Canetti’s assertions – ‘It is only in a crowd that a man can become free of this fear of being touched. That is the only situation in which fear turns into its opposite’ – is looking a bit shaky right now.
“Artists often discover the art in daily life,” the artist writes, “and bring daily life to the museum to contextualise it within art history.” Indeed, even before the intrusions of urinals and readymades and the age of modern art museums, attempts by the authors of poetry (whether visual or written) to engage with the unauthored poetics of everyday life have enjoyed a rich history, not least in painting, and works by Joseon artists such as Danwon, or the seventeenth-century Dutch masters. Yet on the site of the museum there is often a question about what – between daily life and art history – is contextualising or responding to what. And an anxiety about whether it is the artworks in a museum or the circumstances of lived experience that gets audiences closer to truths about the world. All of which responds to a more general paranoia that what enters the museum is removed from lived life. And perhaps it’s a paradox of museum culture for artists like Kimsooja that the more she has sought to introduce the ordinary, the more her work is celebrated as extraordinary.
As we discuss A Laundry Field, Kimsooja explains that her works have been shown mostly within the museum context, but for a few exceptions. “In museum spaces,” she writes, “I used fans, lights, and sounds to give a vibration to it and bring sensation to the audiences as they encounter the persona of the fabrics. When situated within nature, such as Wanås sculpture park [the Swedish foundation is located in a natural landscape], the wind, light, cast shadows of trees, and bird sounds paint the laundered bedcovers and evoke the memories and poetics of the bedcovers. I find A Laundry Field installed at Wanås sculpture park gives an experience that blurs the boundary between daily life and the museum context that maximises the audience’s imagination and experience.” Reading this, it’s hard not to think of the new work as an attack on the exceptionalism of the museum context.
In that, the exhibition at Wanås, titled Sowing into Painting, goes a little further than other works by Kimsooja. It traces a circle through her varied output (it contains chapters one, two and four of Thread Routes, a series of the Deductive Objects (1993–2020), Meta-Painting (2020, which comprises stretched and frame linen canvases as well as bottaris made of linen canvas and used clothes) and To Breathe (2020, an evolution of the work shown in Madrid). And it traces a circle through the manufacture of painting in the title work Sowing into Painting, a field sown with two types of flax that are harvested to produce canvas and other fabrics as well as the linseed oil that is classically used as a binding agent in Western painting. It returns the exceptional to the normal, culture to nature, and a life observed (not least in the types of paintings of ‘everyday’ life that populate museums and other archives) to a life lived.
— ArtReview Asia, Summer 2020
2020
Zweimal in ihrem 37-jährigen Werk hat sich die südkoreanische Künstlerin auf ihr persönliches Leben bezogen. Im Herbst 2019 stellt Kimsooja einen 6 mal 2,4 mal 2,6 Meter großen Container auf den Platz vor die Kathedrale von Poitiers (s. Kunstforum Nr. 265) und markiert damit ihren Abschied von New York, wo sie, seit den ersten Stipendien bis heute, fast 30 Jahre gelebt hatte. Ein radikaler Wendepunkt, denn seither pendelt Kimsooja zwischen Seoul und Paris, wo sie sich vielleicht in der Zukunft niederlassen wird, auch wenn sie längst im Unterwegssein zuhause ist. Der Container aber birgt nicht nur ihre Umzugskisten, sondern auch ihre künstlerische Weltsicht: Gelb, Rot, Blau, Weiß, Schwarz, Gelb, Rot, Blau … skandieren die leuchtenden Streifen auf seinen Wänden die alte koreanische Tradition eines Farbkosmos, der bis heute das analogische Denken der Künstlerin prägt: So entspricht Blau dem Holz, Rot dem Feuer, Gelb dem Erdmittelpunkt, Weiß dem Metall und Schwarz dem Wasser; die fünf Elemente finden ihr Pendant in den fünf Himmelsrichtungen und Jahreszeiten, die ihrerseits um ein Zentrum kreisen. Wie das Farbspektrum lebendig wird im Sonnenlicht, so erwacht der Kosmos im universalen Atemstrom zu beständiger Wandlung und Bewegung. Ein webender Austausch verbindet alle Elemente, Zeiten, Winde und Wesen zu unaufhörlich neuen Analogiereihen. Der Container hat den Titel „Bottari 1999 – 2019“ und holt damit den zweiten ebenso radikalen Wendepunkt ins Gedächtnis: Zur Biennale von Venedig 1999, stellt Kimsooja in Harald Szeemanns d’Apertutto ihren blauen „Bottari Truck in Exile“ vor eine Raum öffnende Spiegelwand. Das Vehikel ist Zeitzeuge ihrer Abschiedsreise von Korea, als ihr fester Wohnsitz in New York entschieden war. In elf Tagen hatte sie 2.727 Kilometer zurückgelegt und in den Orten ihrer Erinnerung die Einwohner um ausgediente Kleider und Bettüberwürfe gebeten. Gefaltet, eingewickelt, an den Stoffenden zusammengeknotet, so entstanden die traditionellen Reisebündel, die seidigen, farbenreichen „Bottaris“, die bald zum Leitmotiv ihrer Arbeit werden sollten. Zwischen den anwachsenden Bergen von Bottaris auf der offenen Ladefläche des Lasters sitzend fuhr sie über Bergpässe und Feldweg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hieß diese erste gefilmte Performance.
Als Artist in Residence am PS1, hatte die Künstlerin 1992 in ihrem New Yorker Atelier zum ersten Mal den skulpturalen Aspekt ihrer eigenen Reisebündel gesehen. Von jeher war sie an die Gestik gewöhnt, Kleider, Hausrat, Bücher mit den Bettüberwürfen, die traditionell in jede Familie gehörten, zusammenzubinden. Auf diesen Tüchern, den kunstvoll gewirkten Ybulbos, wurde geruht, geliebt, geschlafen, darin wurden Säuglinge auf den Rücken gebunden und getragen, Kranke und Tote transportiert. Die Funktionen der Ybulbos beschreiben also einen Existenzbogen. 1994 hatte die Künstlerin in Korea ihre erste Installation photographiert: Bottaris auf der Türschwelle eines verlassenen Hauses, im südkoreanischen Dorf Yangdong, der Umgebung von Gyeongju. Die leuchtend farbigen, kunstvoll gewirkten Bottaris als Spuren von Angst, Hast und Flucht vor diktatorischer Unterdrückung. Dieser politische Hintergrund prägt die Bilder der Performance-Reis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Die Gesten des Zusammenfaltens, Bündelns, Knotens hatten den Rhythmus dieser Zeitreise bestimmt. Als Bottari der Gegenwart hatte die Künstlerin sich selbst verstanden, die auf ihrer Reise in die Zukunft versucht, Spuren der Vergangenheit zu sammeln. Denn die ausgedienten Kleider und Bettüberwürfe mit ihren Gerüchen und eingeprägten Gesten sind für Kimsooja vor allem dies: Erinnerungsvehikel menschlicher Gegenwart. Ähnlich wie Photographien bezeugen sie vergangenes Leben.
In diesem Sinn hatte Kimsooja im Jahr 1995, zum 15. Jahrestag des Massakers von Gwangju, auch hier abgelegte Kleidung und Bett-Tücher gesammelt. Die südkoreanische Stadt war weltweit bekannt geworden durch den von Studenten angeführten, massiven Aufstand der demokratischen Bewegung, die vom Militärregime im Mai 1980 brutal niedergeschlagen worden war. Kimsooja baut kein Monument. „Sewing into Walking“ heißt ihre Performance: Die Künstlerin schleppt Bottari um Bottari in den Wald des Massenfriedhofs, und deckt im langsamen Gehen die alten Kleider und Ybulbos über die Erde, als müßte sie heilend gewärmt werden, als müßte den Toten, die Umarmung ihrer Nachbarn nachgetragen werden. So näht Kimsooja tatsächlich die Vergangenheit in die Gegenwart, näht Zeiträume, Entstehen und Vergehen zusammen. Auf ihrem Weg, in ihrem „Walking“, tritt sie zum ersten Mal als verkörperte Nadel auf, die in ihrer Vertikalität die horizontale Kleiderschicht mit der Erde verbindet.
In dieser Künstlerauffassung eines konzeptuellen Nähens, hatte sie 1984 in Seoul, nach ihrem Studium der Malerei, die Arbeit „The Earth and the Heaven“ aus Seidenresten zusammengenäht, ein Achsenkreuz aus den Farbfeldern der fünf Elemente. Was sie daran interessierte, war die Gestik an der Grenze, die Nadelbewegung selbst, in ihrem verbindenden Durchqueren unterer und oberer Schichten, die Kimsooja wie selbstverständlich auf die Zeit, den Raum und das Universum bezieht. Die Bewegung der Hände, wenn sie die vier Stoffzipfel der farbenreichen Bett-Tücher unter- und übereinander führen und einen Knoten festzurren, ist der nähenden Geste vergleichbar. Wenn aus dem Falten und Bündeln des Tuches nun eine kugelförmige Dreidimensionalität entsteht, erscheint es für Kimsooja wiederum selbstverständlich, darin eine Welt zu sehen. Damit nähert sie sich, so könnte man es sehen, über ihr experimentell künstlerisches Tun, einem Mathematiker und Philosophen der europäischen frühen Aufklärung: Leibniz war aus dem spirituell-körperlichen Doppelcharakter des Tuches und dessen Faltungen, die er eingehend betrachtet hatte, die Einsicht hergeleitet, das gesamte Universum sei ein einziger kontinuierlicher, sich wandelnder Körper, der verschiedene Gestalten annimmt. Die Möglichkeit dieser Parallele zeigt die transkulturelle Dimension, die Kimsoojas Weltsicht öffnet.
In einer Reihe von Performances zwischen 1999 und 2005 erweitert sie die Logik ihrer Künstlerkonzeption, Nadel zu sein. Als unbewegliche Gestalt im grauen Gewand wird sie in der Rückenansicht für den Zuschauer zum Medium, das vermag, den Atem und die Wahrnehmung zu verlangsamen, den Betrachter hineinzuziehen in verdichtete Situationen des Zeitraums. So sehen wir sie 1999 in Japan, als „A Needle Woman – Kitakyushu“, horizontal auf einem langen, glatten Felsen ausgestreckt; ihr Körper verbindet sich mit der grauen Gesteinsformation, zeichnet die Grenzlinie zwischen Himmel und Erde nach. Der Zuschauer, auf ihren Rücken schauend, atmet wie sie den offenen Himmelsraum und dessen Stille, teilt ihr Erleben. Ein Jahr später steht sie in Indien an der Böschung des Yamuna River; vorübertreibende Verbrennungsreste zeigen sein stetiges Strömen. Kimsooja nennt sich hier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schaut in dunstige horizontlose Ferne, weiß, der Fluß wird weiterströmen, auch nach ihrem Lebensende. In folgenden großen Video-Reihen, steht sie im Mittelpunkt von dicht bevölkerten Metropolen, wie Tokio, Mexico City, London oder Kairo. Ihre unbewegliche graue Gestalt erscheint als Seismograph im Zeitstrom der vorüberziehenden Menschenmassen; ein Strom, der kaum innehält, wenn das Gesicht eines Vorübergehenden dem ihren begegnet. In einer zweiten großen Serie bereist sie ebenso als unbeweglicher Zeitzeuge, konzentriert auf ihr physisch gegenwärtiges Sein, die Krisenherde der Zeit, Havanna, Rio de Janeiro, Jerusalem, N’Djamena, Sana’a, Patan und Nepal. Fast einem Kriegsreporter gleich, muß sie in dieser zweiten Performance-Reihe, oftmals um ihr Leben fürchten. Ihre Präsenz bewegt sich also auch hier an einer Grenze. Die Identifikation mit der physischen Zeugenschaft der Künstlerin, mag im Betrachter eine neue Aufmerksamkeit für das Weltgeschehen wecken. Die Video-Installation der zweiten Reihen war 2005 in Aperto zu sehen.
Vom Phänomen der Nadelbewegung, vom Prinzip ihres Verbindens verschiedener Raum- und Zeitschichten ausgehend, entwickelt Kimsooja von nun an erweiterte Bildkonzeptionen, indem sie das Phänomen des Spiegels, das schon angeklungen war, zum Thema macht. Denn auch der Spiegel führt verschiedene Raumschichten zusammen. Wie die Nadel bleibt der Spiegel unsichtbar, erschafft Bilder und verschwindet mit ihnen. Wie die Nadel markiert der Spiegel eine Grenze des Raums. Auch sein Auftritt bezeichnet eine Grenze der Zeit, den haarscharfen Augenblick, wenn Zeit erst geschieht. Im Palacio de Cristales in Madrid verband Kimsooja dieses Agieren des Spiegels mit ihrem ruhigen Atemgeräusch. „To breathe – A Mirror Woman“ hieß die Arbeit, im Jahr 2006: Einer lebendigen Bestimmungsgröße des Raums gleich, so steht sie als zierliche schwarze Gestalt auf einem grenzauflösenden Spiegelboden, inmitten von hohen, funkelnden Glaswänden, die mit einem optischen Prisma beschichtet sind. Kein Halt nirgends: Unter den Füßen werden die Glaskuppeln zum schwankenden Abgrund, der Körper schwebt im Raum, dessen Grenzen zerstieben in einem Feuerwerk der Spektralfarben. Atmender, Licht durchpulster Raum. Damit öffnet Kimsooja ihre Performance für den Betrachter, der hier nun selbst die Bewegungen von Raum und Zeit ausloten kann.
Das ist der Absprung für die Künstlerin in eine bis dahin nicht gekannte Freiheit, die Welt aus dem Blickwinkel des Ein- und Ausfaltens von Stoffbahnen zu verstehen: Kimsooja findet ihre Bilder auf der Straße und in der Natur. So beobachtet sie die Wäscher in den Armenvierteln von Mumbai: die daraus entstandene Videoinstallation heißt, „Mumbai: A Laundry Field“, 2007–2008. Die Kamera schafft eine Analogie zwischen Körper und Tuch, wenn die Wäscher ihre harte Arbeit, das Bürsten und Reiben, das Ausspülen, Wringen und Ausschlagen der hoch auffliegenden, spritzenden Stoffe unterbrechen und sich selbst unter den Wasserschlauch stellen. Daneben Bilder von der alten Gleichung Habitat und Habit, wenn Obdachlose ihren Schlafplatz auf der Straße und sich selbst mit Tüchern schützen.
Die seltenen Weltgegenden, die von menschlicher Zerstörung noch bewahrt sind, sind das Thema in einer Folge von acht Filmen, die das unaufhörliche Verwandeln im Austauschtanz der Elemente beobachtet: „Earth-Water-Fire-Air“, 2009 – 2010. Achtmal zeigt die Kamera deren fließende Interdependenz: Das innere Feuer der Erde und seine rotglühende Lava erstarren zu schwarzen, noch weiterglühenden Gesteinsflammen; das Feuer kann ohne die Luft nicht sein; eine Wasseroberfläche gleicht Bodenwellen; eine Meereswelle schlägt meterhoch gegen einen Felsen, während ihre im Sonnenlicht aufwehende Gischt das Feuerwerk der Spektralfarben entfacht – unmögliche, alltägliche Verbindung von Feuer und Wasser. Was Kimsooja zeigt, ist das haarscharf austarierte Zusammenwirken der Elemente und ihrer Kräfte, deren Wandlungen ohne unser Zutun beständig neue Bilder erzeugt, an der Zeitgrenze des Augenblicks. Kimsooja zeigt die andere Seite: Als gelte es für den Betrachter ein Atemreservoir zu schaffen, trägt sie unermüdlich Bilder zusammen aus einer weiterlebenden Harmonie. Ihr Künstlercredo heißt verbinden, heilen, weben, statt trennen, zerreißen und verwerfen. „Thread-Routes“ ist der Titel ihrer bis heute weitergeführten Folge, die 2010 begann, und bisher sechs abgeschlossene Filme umfaßt: Quer durch die Welt folgt die Künstlerin hier den selten gewordenen Spinnerinnen, Weberinnen, Klöpplerinnen, Gerbern und Stoffdruckern mit der Kamera. Auf den Gebirgspfaden des Altiplano von Peru beobachtet sie, wie alteingeübte Hände Schafswolle zu Fäden zwirbeln, im Gehen, die Spindel kreiseln lassen, irgendwo unterwegs einen Haken in die Erde schlagen, Fäden spannen und ihr Weben beginnen. Der Wiederholungstanz uralter Gesten beseelt von Afrika bis Kroatien diese Filme, deren Bilder immer wieder das Weben des Windes, der Wolken, des Lichts und der Schatten verbinden mit den fabrizierenden Händen und ihren Fadenwegen. Die Akteure sind in jedem Filmabspann mit Namen aufgeführt, oftmals zusammengenähte Namen aus den ursprünglichen und später aufgezwungenen Kulturen. Vier dieser Filme waren im Herbst 2019 in Poitiers zu sehen. Nichts ist nostalgisch; die Bilder leben aus dem dokumentierten Tun heraus.
Nichts manipulieren, nichts hinzufügen, das ist ihr Schaffensprinzip. Kimsooja, die ihre Arbeit aus ihrer pragmatischen Beobachtung entwickelt, anerkennt nur ein Künstlervorbild: John Cage. Kurz nach ihrem Studium hatte sie 1985 zur Biennale von Paris dessen weißen Container gesehen. Im Innenraum seiner Leere und Stille war an der Wand ein einziger Satz zu lesen: „Whether you try to make it or not, the sound is heard“. Diese Worte haben die Künstlerin seither begleitet und bestärkt in ihrer Künstlerhaltung eines „Non-Making“, in ihrer Überzeugung, keine Gegenstände herzustellen. Bis heute ist sie davon nicht abgerückt. Während ihrer Ausstellung in Poitiers, im Herbst 2019, sind die Besucher aufgefordert, an einem „Archive of Mind“ mitzuwirken. Im Palais der Ducs d’Aquitaine steht, wie zuvor im Museum für zeitgenössische Kunst in Seoul, der große ovale Holztisch mit seinen Schemeln. Die Gäste bedienen sich aus großen Lehmklumpen, setzen sich an den Tisch, drehen ihre Handvoll Lehm zu einer Kugel und hinterlassen sie dort. Die Stille öffnet das Gehör für ein leises auf- und absteigendes Wassergurgeln, ein vertikales Echo auf die horizontalen Kreisbahnen am Tisch. Es dauert, bis eine Kugel sich formt. Die Wiederholungsgeste wird zum Alltagsfilter. Das Freigeben eines eigenen Bottari öffnet einen anderen Denkraum. Sich beteiligen, ohne zu besitzen, ohne zu besetzen.
Diese Logik wird einen Kreis schließen, wenn Kimsooja im Verlauf von 2020 im Park der schwedischen Wanås Foundation, Leinen aussäen, seine blau blühenden Felder, seine Ernte und schließlich das Fadenspinnen und Weben von groben Leinwänden beobachten wird. Keine Objekte, keine Bilder. Auch nicht im Dezember 2020, wenn sie in der Kathedrale von Metz ein Fenster aus dichroitischem Glas herstellen wird: eigentlicher Autor werden die Farbbrechungen des Lichts sein. Was sie erschafft, sind Seherfahrungen, mit Leibniz gesagt, ein schauendes Denken.
— Kunstforum, Bd.267, May 2020
2020
글로벌 아티스트 김수자(金守子). 그가 매머드 전시를 열고 있다. 프랑스의 중세도시 푸아티에에서 열리고 있는 비엔날레 형식의 제1회〈트라베르세/김수자 (Traversées/Kimsooja)〉(2019. 10. 12~ 2020. 1. 19). 전시제목인 ‘트라베르세’는 ‘통과(crossing)’ 또는 ‘가로지르기 (traverse)’라는 뜻이다. 전쟁 이주 망명 등 오늘의 ‘글로벌 위기’를 반영하는 주제다. 여기에, 유목(nomad)의 표상인 ‘보따리 작가’ 김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그는 사운드를 아우르는 장소특정적 설치와 퍼포먼스 오브제 비디오 필름 라이트설치 등 총 15점의 대형 작품을 발표했다. 또 주제에 부합하는 글로벌 작가를 초대하는 큐레이터 역할까지 맡았다. 실로 김수자 예술의 빛나는 무대가 아닐 수 없다. 김수자와 초대작가 14명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13개의 역사적인 기념 건축에 작품을 선보였다. 이 전시에 주목해 작가와 인터뷰를 가졌다. 내용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트라베르세/김수자〉의 전시 개념과 공간 매핑, ‘글로벌 위기’에 대응하는 개별 작품을 소개했다.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참여작가 간의 조형적 연계성을 리뷰했다. 또 하나는, 김수자의 ‘관객-주체’ 퍼포먼스, 무지갯빛 스펙트럼, 실재와 가상이 혼재하는 거울 설치 등 근자의 작품에 주목해 그 조형론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하여 바느질과 보따리 같은 모국주의 개인사에서 출발해 인간의 존재론 같은 보편적 예술 성취로 이어지는 작품 여정을 조망한다.
Art : 김수자는 작년 연말에 뉴욕 스튜디오를 철수했다. 한국으로 캠프를 이동하는 중이다. 작가로서 큰 전기를 맞고 있다. 작가 이전에 자연인으로 본다면,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나 할까, 고향으로의 회귀의식이 발동한 것인가. 그 소회를 듣고 싶다.
Kim : 수구초심으로 한국으로 돌아온 건 아니고, 그저 한 자연인으로서 나를 필요로 하는 가족의 일원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 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정확하게 말하면 ‘돌아왔다’기보다는 ‘와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에 있다 해도 과연 얼마나 한국에서 산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선 거의 섬에 살듯이 지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 기간 뉴욕에서 화상이나 컬렉터, 미술관의 아무런 지원 없이 주로 유럽의 지원에 의존해 작업해 왔다. 2000년대 이후 점점 상업성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뉴욕이 더 이상 나에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떠날 계획을 이미 갖고 있었다.(사실 인텔렉추얼한 측면에서 뉴욕을 아끼는 부분이 아직도 남아 있다. 뉴욕은 역시 내가 그 속에서 죽고 싶은 마지막 도시이다.) 1년 전만 해도 파리를 유럽의 베이스로 삼아 그곳으로 스튜디오를 옮기려 했다. 이번에 근 20년간 거주한(그래 봐야 실제로는 10년도 채 못 살았지만) 뉴욕의 이스트빌리지 아파트 짐을 모두 컨테이너에 실어 프랑스의 푸아티에로 운송하는 새로운 작업 〈보따리 1999-2019〉은 애초 파리에 정착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 이전에 보다 경제적인 도시 베를린으로 옮겨 보려고 6개월간 오가며 지내 봤지만, 정붙이기 어려웠다. 여러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역시 나는 파리가 수월하다. 프랑스 정부나 자치단체, 그리고 미술관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오고 있다.
Art : 이번 인터뷰에서 다룰 중점 사안은 현재 프랑스 중부 도시 푸아티에 전역에서 열리고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 〈트라베르세/김수자(Traversées/Kimsooja)〉다. 우선 ‘트라베르세(traversées)’는 ‘통과(crossing)’ 또는 ‘가로지르기(traverse)’라는 뜻이다. 이게 바로 전시 주제인데, 무엇보다 이 전시의 시스템이 아주 특별하다. 여느 국제전과 달리 한 명의 예술가를 선정해, 그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까지 도시 전역에 전시하는 방식이다. 그 첫 번째 축제의 〈트라베르세〉를 이끄는 주인공으로 김수자가 선정됐다. 그러니까 김수자는 작품 발표뿐만 아니라 큐레이터 역할까지 맡았다. 주연배우와 감독을 겸하는 일이니, 작가로서 이보다 더 큰 영광이 또 있을까 싶다. 푸아티에 예술축제의 설립 배경, 미션과 비전은 무엇인가?
Kim : 푸아티에는 파리에서 보르도 방향인 남서쪽으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인구 9만 5,000명 정도의 작은 중세도시다. 한국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한때 프랑스의 수도이기도 했고, 푸아티에 전투로 유명했던 아랍권과의 전쟁 등을 겪으며 끊임없이 외부의 도전을 받았다. 그러니까 실제로 과거에 수많은 주변국가와 그 문화의 트라베르세가 일어났던 곳이다. 또 이 푸아티에 전투로 인해 ‘유럽’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탄생지이기도 하며, 종교와 교육도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애초에 40여 명이 참여하는 비엔날레로 기획한 이 프로젝트의 전체 제목이 〈트라베르세〉이고, 초대작가를 한 명으로 압축하여 트라베르세의 의미를 오래 탐구해 온 작가에게 전시 콘텐츠를 전권위임(Carte Blanche)함으로써, 그 첫 에디션의 제목을 〈트라베르세/김수자〉로 시작한 것은 이 비엔날레의 독특한 성격을 대변한다. 특히 도시의 진보적인 정치 성향과 현 시장의 이민과 난민 수용의 포용정책이 프로젝트의 추진 동력이 됐다. 무엇보다 도시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삼아 한 작가의 작업으로 매핑(mapping)할 뿐 아니라, 작가와 이번 전시에 연계될 수 있는 다른 작가의 작업을 초대할 수 있는 권한과 지원을 해 준 것은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비엔날레 형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트라베르세/김수자〉는 푸아티에 시장인 알랭 클래이(Alain Claeys)가 푸아티에 출신이며 전 루브르미술관 관장이자 2015년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행사를 총지휘한 앙리 루아레트(Henri Loyrette)의 제의를 받아들임으로써 만들어졌다. 전 퐁피두센터-메스 디렉터이자 현재 팔레드도쿄 관장인 엠마 라비뉴(Emma Lavigne)와 독립큐레이터 엠마누엘 드 몽가종(Emmanuelle de Montgazon)을 공동 예술감독에 임명함으로써 그 첫발을 내딛게 됐다. 시장은 이 행사를 통해 푸아티에를 국제사회와 국제미술의 지형 속에 자리매김한다는 취지와 함께 최근 유럽의 가장 첨예한 이슈인 전쟁, 난민, 이주 문제를 전적으로 포용하는 입장을 표명하고자 했다. 또한 푸아티에에는 매우 흥미로운 콩포르모데른(Confort Moderne)아트센터가 있지만 아직 현대미술관이 없다. 중세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도시의 중심에 자리잡은 상징적인 건물이며 최근까지 법원으로 사용된 아키텐 공국의 궁전(Palais des ducs d’Aquitaine)을 새로운 현대미술 공간으로 전환해 시민에게 선사한다는 의미도 크다.
Art : ‘트라베르세’, 이른바 ‘경계 넘기’ ‘가로지르기’는 익히 잘 알려져 있듯이, 그동안 김수자가 견지해 온 작품 주제다. 1992∼93년 뉴욕 PS1창작스튜디오 작업실에서 태동된 〈보따리〉 시리즈 이후 김수자의 작품은 유목(nomad)의 표상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푸아티에 예술 축제에서는 이 트라베르세의 개념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품에 실현되었는가. 〈보따리〉가 푸아티에라는 사이트에서 어떻게 새롭게 구현되었는가. 전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Kim : 우선, 두 명의 공동디렉터는 유서 깊은 중세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로 삼아 작업할 수 있도록 전적으로 나를 믿고 지원하며 〈트라베르세/김수자〉의 길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 나로서는 큰 영광이었다. 또한 푸아티에라는 도시의 ‘열쇠’를 한 작가에게 넘겨줄 수 있는 시장과 디렉터들의 용기와 실험정신이 없었다면, 이런 대규모 비엔날레 형식의 개인/공공 프로젝트가 이처럼 새롭게 탄생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드림 큐레이터(Dream Curator)팀’이었다.(Curator는 ‘신경쓰다’ ‘돌봐 주다’를 뜻하는 라틴어 ‘curare’에서 나왔다.) 우선 트라베르세라는 타이틀을 받았을 때, 국제적인 지형도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아이디어는 그동안 내가 오래 계획해 온 유럽으로의 베이스 이동, 특히 뉴욕에서 파리로의 이주를 실행할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삶 자체를 옮기는 작업인 〈보따리 1999-2019〉는 지난 20년간 살아온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아파트에 쌓인 나의 일상생활의 모든 짐을 오방색 컨테이너에 싣고 푸아티에로 옮겨 피난처로서의 상징성을 지닌 성당(Cathedrale de Saint-Pierre) 앞에 내려놓는 여정이었다. 반면 푸아티에 도시 내의 지형도는 팔레(Palais des ducs d’Aquitaine)를 중심축으로 십자를 그으며 구도시와 맞닿는다는 생각으로 팔레로부터 매핑을 했다. 그래서 팔레의 중심에 〈마음의 기하학(Archive of Mind)>을 설치해 시민이 함께 모이는 중심축으로 상정했고, 구도심을 관통하는 오래 닫힌 팔레의 문을 열어 중세부터 중심 길이었던 카테드랄 길(rue de Cathedrale)을 통과해 성십자미술관(Musée Saint-Croix)과 콩포르모데른 아트센터에 이르는 긴 산책로의 좌우측 군데군데에 산재한 성당과 교육시설, 회랑 등 도시의 역사적 건물들을 문맥에 따라 경험하도록 계획했다. 각 사이트가 전체와 서로 연계를 가지면서도 각기 하나의 시각적 의미론적 중심으로서 내러티브를 갖도록 했다.
Art : 《e-flux》에 실린 컨테이너 〈보따리 1999-2019〉가 인상적이다. 한국의 보따리가 컨테이너로 치환된 작품이다. 한마디로 보따리의 변주인데, 이 작품의 함의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주 이동 유목의 의미를 담고 있는 보따리라는 이름을 유지하면서도 실제 보따리 형상은 컨테이너로 바뀌었다. 보따리의 ‘문화 번역’이라고 해야 할까. 컨테이너 표면은 5가지 원소(목 화 토 금 수)를 표상하는 한국의 전통 오방색으로 색띠를 그려 넣었다. 보따리의 원천을 유지하면서도 실제 작가 자신의 이주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는, 그래서 리얼리티가 강한 작품으로 보였다. 사실 2016년부터 〈연역적 오브제〉라는 입체작품을 발표했는데, 이 역시 색동천의 변주가 아닌가. 강철을 용접한 난형(卵形)의 형태에 기본 방향(동 남 중앙 서 북)과 전통 오방색으로 아주 현대적으로 입체화한 작품으로 보인다.
〈보따리 1999-2019〉는 지난 8월 말 뉴욕의 짐을 컨테이너에 실어 푸아티에로 보내면서 말 그대로대서양을 횡단해 설치한 작품이다.
Art : 김수자는 큐레이터 자격으로 일본의 타다시 가와마타(Tadashi Kawamata), 인도의 수보드 굽타(Subodh Gupta)를 초대했다. 이 작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고,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 콩고의 새미 발로지(Sammy Baloji)도 참가했다. 그 외 초대작가와 김수자 작품과의 개연성이랄까, 이번 전시 프로젝트와의 관련성에서 들여다보는 일이 중요할 것 같다.
Kim : 이번 전시에서 개인적으로 대단히 흥미로웠고 영감을 준 요소는 내가 이번 테마와 연계되는, 혹은 나의 작업과 연계되는 다른 동료작가를 초대해, 내 작업과의 연계성을 공유하며 〈트라베르세〉의 의미를 심화하고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타다시 가와마타의 작업을 남성적 직조 행위로 본다. 그의 작업은 내가 2010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는 〈실의 궤적(Thread Routes)〉 16mm 필름 프로젝트를 맨 처음 발상할 당시인 2002년, 벨기에의 브루주(Brugge)에서 보빈 레이스(Bobbin Lace)를 짜고 있는 한 여성을 보면서 바로 병치하게 된 남성적 직조 행위로서의 건축 행위를 연상시킨다. 텍스타일에서 여성적 직조 행위와 건축에서 남성적 직조 행위는 그동안 내가 〈실의 궤적〉 필름 속에 병치해 왔다. 이러한 건축적 요소를 이번에 팔레의 입구 기둥에 설치한 가와마타의 〈둥지〉를 통해 물리적으로 잘 병치할 수 있었다.
Art : 가와마타는 기존의 건축에 기생하는 나무로 된 집 혹은 둥지 같은 형상의 설치작품을 통해 구축과 해체의 모호한 풍경을 연출한다. 시작도 끝도 아닌, 일종의 이항대립의 중간지대와 같은 차원은 마치 김수자의 〈보따리〉가 이제 막 떠나려는 상황과 이제 막 도착한 상황, 그 두 상황의 사이 혹은 공존과도 통한다.
Kim : 공감한다. 관객들이 가와마타의 〈둥지〉를 지나 팔레 내부로 들어가면 중심에 설치된 〈마음의 기하학〉(2019)을 체험할 수 있다. 여기서 보따리와 구(球)로의 이행을 보다 더 구체적이고 물리적으로, 또 심리학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지적한 대로 형식적으로 하나의 가능태로서의 보따리가 형성과 해체의 가능성을 공유하고 있는 동시에 이 전시가 강조하는 중요한 요소인 ‘환대와 보호(Hospitality and Protection)’라는 측면, 즉 미셀 푸코가 말하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특수한 장소성을 가지면서도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하는 환대와 환영의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첫 입구에 가와마타의 작업을 선보였다. 전시의 중심축이 되는 18m 길이의 타원형 테이블 위에서의 퍼포먼스 〈마음의 기하학〉은 팔레 내의 다른 두 설치, 과거 재판관들의 개인 사무실 공간이었던 투르 모베르종(Tour Maubergeon)의 〈숨쉬기(To Breathe)〉 거울과 숨소리 설치에서 다시 아치형 천장과 그 구조의 반사로 인해 조성된 타원형의 가상적 공간을 만든다.
Art : 김수자 예술에서 퍼포먼스의 중요성을 빼놓을 없다. 흔히 ‘작가-주체’의 퍼포먼스로는 〈바늘 여인〉이나 〈빨래하는 여인〉처럼 작가 스스로를 공간의 축이자 시간의 축으로 설정하는 작품이 있다. 그런데 근자의 〈마음의 기하학〉에서는 ‘관객-주체’의 퍼포먼스로 이동했다. 〈마음의 기하학〉은 많은 사람이 작은 찰흙 구(球)를 빚어 텅 빈 거대한 타원형 테이블을 채우는 작업이다. 단순히 관객 참여형이라고만 평가하기에는 작품의 의미가 대단히 깊고 넓다. 작품의 주제가우주라든가 우리 인간의 존재론과 같은 문제로 이동했다. 각기 다른 사람이 만들어 낸 각기 다른 형태의 찰흙 구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소우주이고, 그 소우주가 모여 은하수와 같은 대우주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우주의 소리를 연상시키는 사운드 〈구의 궤적〉이 조합된다. ‘오디오 퍼포먼스’라고 해야 할까. 결국 촉각 시각 청각이 총동원되는 작품이다.
Kim : 팔레에는 특별히 이번에 푸아티에시에서 커미션하여 모로코에서 새로 제작한 아프리카 챕터인 〈실의 궤적 Vl〉과 함께 전체 프로젝트의 하나의 센터로서 각기 다른 형식(설치 퍼포먼스 사운드 필름 라이트)으로 전체 프로젝트의 스펙트럼을 대변하게끔 설치하였다. 또한 가와마타의 〈터널〉은 오랜 세월 막혀 있던 구도시로 통로를 열어 주는 매개 작업이었다. 이렇게 다다른 카테드랄 길은 2012년 런던올림픽 때 참가국으로만 제작된 〈숨쉬기: 깃발〉 이후 국가를 상징하는 모든 존재하는 국기를(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차별 없이 알파벨 순서로, 여기서 남한과 북한의 국기가 오브랩된다) 사용해 재편집한 비디오 작업에서 추출한 이미지들로 초국가적 깃발을 제작해, 카테드랄 길을 따라 컨테이너 보따리가 있는 생피에르 성당까지 설치되어 뮤지엄 쪽으로 안내하게 된다. 여기서 또 시리아 난민의 도착 장소 중 하나이고 근년에 가장 회자되었던 그리스의 레스보아 섬에서 발견한 난민의 구명조끼로 제작한, 그리스 작가이자 건축가 아킬레아스 수라스(Achilleas Souras)의 돔 형식의 설치 〈SOS(Save our Souls)〉를 만나게 된다. 바다 내음과 소금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이 작업은 성탄절 전날 밤 설치 일부가 불에 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 시점의 유럽과 프랑스의 여러 정치 종교 사회적 문제를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사건은 불안정한 시대를 대변하는 이 작업의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사건이 됐다.
Art : 구명조끼를 작품에 끌어들이는 다른 작가도 있지만, 아킬레아스 수라스의 경우 건축가여서인지 단순히 구명조끼를 난민의 상징으로 외형적으로 돋보이게 하기보다는 대단히 구축적인 조형이 돋보인다. 가와마타의 작품 〈둥지〉와 〈터널〉과도 구조적으로 잘 어울린다.
Kim : 19세의 젊은 그리스 건축가 아킬레아스 수라스의 작업 역시 이민과 난민의 문제, 또 환대의 문제를 제기한다. 나는 그의 작업과 〈보따리〉의 의미와 형식적 유형을 여기서 또 한번 연계하면서 내용적 유사성을 제시했다. 내가 초대한 작가들에게서는 여타의 유사한 재료를 쓰거나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의문은 들지 않았다. 그 의미의 진정성과 형식과 내용의 일관성 때문이다. 일단 뮤지엄 광장에 들어서면 리크리트 티라바냐(Rirkrit Travanija)의 수직수평 구조로 대나무를 사용한 건축적 미로와 중심에 위치한 찻집 설치와 다도(茶道)를 아우른 작업 〈무제(the infinite dimension of smallness)〉(2018) 역시 그가 오래 유지해 온 헤테로토피아적 공간 제시와 환대를 대변하는 나눔의 퍼포먼스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이다.
Art : 이번 프로젝트에 입체 설치작품 이외에 퍼포먼스의 비중도 높은 것 같다. 리밍웨이(Lee Mingwei)의 〈수선 프로젝트〉는 한눈에 봐도 김수자의 작품과 연결된다. 바느질, 이른바 직조라는 개념인데, 남성작가의 바느질이 흥미롭다.
Kim : 미술관 내부에 설치한 리밍웨이의 〈수선 프로젝트〉 역시 비폭력주의와 환대 내지는 관용적 태도와 맥을 같이 하는 남성의 바느질 작업이다. 그의 작업은 전자의 남성적 직조라기보다는 여성성에 기초한 남성의 직조로 보이는 러빙 케어(Loving Care)의 의미를 늘 추구하고 있다. 그의 예술적 접근 역시 비폭력주의와 나눔, 포용, 그리고 상처 치유와 통합과 하모니를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내 작업과 맥락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 그러한 일련의 접근은 미술관 2층에 설치된 〈실의 궤적 l, ll, lll〉에서 바느질, 마름질, 염색, 레이스 뜨기, 직조, 쿠킹, 노마딕 생활상과 각 챕터의 지역성에 기초한 역사적 건축물과 자연과 현지의 수공예적 감수성과 미학의 병치를 통해 종합적으로 통합되어 선보인다. 콩고 출신의 작가 세미 발로지 역시 구리 탄피를 녹여 십자가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과 그 십자가를 목에 매단 교회의 소년합창단을 통해 과거 콩고의 식민지배의 역사와 문화를 성스러운 안무와도 같은 필름과 설치작업 〈Tales of the Copper Cross Garden〉(2017)에 담아냈다. 폭력을 치유로 전환시키고 있는 이 작가의 작업 역시 나의 감수성과 방향성과 결을 함께한다고 생각된다.
Art : 식기를 소재로 삼아 다양한 입체 설치작품을 펼치는 인도작가 수보드 굽타는 이번에 요리 퍼포먼스로 각광을 받았다.
Kim : 굽타는 푸아티에 건축센터(Maison d’Architecture)에서 오래된 부엌의 소스팬과 냄비 등을 이용하여 하나의 투과성 있는 독특한 집을 만들고 그 안을 부엌 겸 식당으로 꾸며 인도음식 퍼포먼스 〈요리 세계〉(2017)를 펼쳤다. 작가가 관객과 대화하며 본인의 레시피를 가미한 인도의 거리음식을 나누는 퍼포먼스는 문화적 건축적 미학적이었고, 이식된 공동체를 오감과 함께 느낄 수 있는 풍부한 경험이었다. 나 역시 2018년 중국의 인촨비엔날레(Yinchuan Biennale)에서 시도한 장소특정적인 죽(porridge) 프로젝트를 푸아티에 현지 조건에 맞추어 실행하고 싶었지만, 10여 개의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겨를이 없어 포기했다. 굽타와 한 공간의 블랙박스에 나는 뭄바이의 슬럼가와 공공빨래터 도비갓(dhobighat), 또 인산인해를 이루며 기차로 출퇴근하는 모습을 담은 〈뭄바이: 빨래터〉(2007)를 병치했다. 인도의 문화와 사회적 현주소를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 주어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온 프로젝트였다. 사실 이 작업은 나의 이불보 설치작업의 연장으로 보면 된다. 한편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세례성당(Baptistère Saint-Jean)에서는 한국의 국악인 정마리가 정가를 불렀다. 지고한 순수미와 독특한 창법으로 〈영속하는 기쁨의 노래〉를 60분간 쉼 없이 노래하며 관객 모두에게 명상과 초월적 경험을 선사했다. 끊일 둣 이어지는 그녀의 숨막힐 듯 가녀린 목소리의 풀림은 마치 직조행위를 비물질화하여 바라보는 것 같은 연상작용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녀의 소리를 이 프로젝트의 미학적 정점에 놓고 싶었다.
Art : 이번에도 무지갯빛 효과를 자아내는 빛 작업을 선보였다. 김수자가 빛을 작품에 끌어들인 것은 2006년 스페인의 마드리드 크리스털 궁전의 설치작품 〈숨쉬기–거울여인〉(2016)에 이어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였다. 유리창에 회절격자 필름을 부착해 빛이 스며들면 무지갯빛 효과를 낼 수 있다. 전시공간은 마치 우주와 같은 스펙터클한 환경으로 바뀐다. 김수자가 비물질을 작품 재료로 끌어들인 것은 획기적인 변화다. 베니스에서는 빛이 스며드는 공간과는 대조적으로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적막한 공간을 조성하기도 했다. 외부 공간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빛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빛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빛은 김수자 예술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가?
Kim : 이 답변을 위해서는 색의 스펙트럼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오방색과 십자, 보따리에 대한 내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다. 근 40년 가까이 내가 끊임없이 실험해 온 지속적인 문제 중 하나는 화가로서의 시각을 견지하며 질문해 온 캔버스의 표면(surface), 나아가 경계(border), 캔버스를 지탱하고 있는 십자구조이다. 이 십자구조는 1980년 홍익대 대학원 졸업논문으로 발표했던 〈조형기호의 유전성–십자형 기호를 중심으로〉에서도 다루었다. 나는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 1875∼961)의 만다라에서 보인 마음의 원형(Archive of Mind)에서 그 구조적 심리적 근원을 찾았다. 십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구조적으로도 많은 작가가 거치지 않을 수 없는 터널과도 같은 것이다. 색의 기본적인 스펙트럼으로서의 오방색은 그 방향성과 계절, 맛과 물질의 성질을 포함하는 우주의 스펙트럼이라고 해야 옳다. 이보다 더 풍부한 의미를 내포하는 색의 정의가 있을까.
Art : 예나 지금이나 화가에게 색채에 대한 물음은 결국 그 시작과 끝이 빛의 세계로 귀결된다. 무지갯빛의 스펙트럼은 결과는 비물질이지만, 실상 회절격자의 물질이 매개가 된 것이다. 김수자가 보여 준 물질과 비물질이라는 이중구조에의 관심에서 본다면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기본적으로 바로 이 오방색(빛에 내재하는)과 십자구조인 회절격자 필름의 만남이 내가
Kim : 사용하는 무지개 스펙트럼의 핵심이다. 이 필름은 1cm에 거의 수천 개의 수직수평 스크래치로 긁혀져 특수 제작된 것이다. 거의 나노스케일이어서 눈에 감지되지 않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투명한 천이다. 나의 작업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필름이 유리창에 부착되어 외부의 빛을 통과할 때 유리창 면과 하나가 된 필름 표면은 프리즘처럼 빛을 굴절시킨다. 결국 유리창은 하나의 빛의 타블로인 셈이다. 날씨 변화에 따라 빛을 호흡하고 변주하면서 벽과 바닥, 또는 천장과 사람의 신체에 빛의 페인팅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때 바닥에 설치된 거울은 또 한번의 반사굴절로 내부 공간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인다. 이 필름이 부착된 표면을 처음 사용할 때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구조의 궁전 건축물 자체를 아무런 오브제도 설치하지 않고 하나의 ‘보따리로 싼다’는 개념이었다. 여기에서 바닥의 거울도 보따리 천에 해당된다. 허의 공간을 건축 표면까지 밀어낸 것, 즉 공(vide)의 공간과 나의 숨소리(삶과 죽음의 경계로서의)가 바로 보따리의 구조물이 됐던 것이다. 관람객들은 기존 보따리의 상징적인 인물인 헌옷 대신 살아 있는 퍼포머로 그 안에 싸여지는 것이다. 또 바닥의 거울설치를 통해 그 건축물마저도 이중성을 갖게 되며 하나의 완전성인 구(球)를 지향하는 것이다.
Art : 반사의 매개체인 거울은 실제와 가상이 혼재하는 확장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투과성을 띠는 빛과 함께 거울을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Kim : 거울을 처음 사용한 것은 하랄트 제만이 감독을 맡았던 1999년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의 본전시 아페르투토(d’Aperttuto)에서였다. 그때의 거울은 코소보 난민에게 헌정한 〈아페르투토, 혹은 보따리트럭(d’Aperttuto, or Bottari Truck in Exile)〉(1999)을 위한 하나의 가상의 길을 여는 작업이자 동시에 아르세날레의 전체 공간을 거울로 싸서 보여 주는 보따리 작업이었다. 거울의 운용은 그때그때 사이트가 요구하는 질문에 응답하며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왔다. 돌이켜 보면,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1979년에 지금은 없어진 그로리치화랑에서 동료 이윤동 작가와 〈호흡전〉이라는 2인전을 열었다. 그때 창호지를 제거한 한국 가옥의 투명한 격자구조의 문짝을 들고 서서 홍익대 뒷쪽 와우산을 배경으로 일련의 퍼포먼스 사진(흥미롭게도 그때 입었던 스커트가 무지개 색의 사선으로 된 줄무늬 스커트였다)을 흑백 네거티브로 프린트한 투명필름을 빨랫줄에 걸어 한 공간에 설치했다. 또 검은 카펫이 깔려 있던 갤러리 바닥에는 지름 10~15cm 정도의 두 개의 길고 가는 나무둥지를 거의 40~50cm 간격으로 잘라 조금씩 어긋나게 드로잉을 하고, 그 어긋난 나이테 사이에 30cm 정방형의 투명 플렉시글라스를 끼워 넣었던 설치작업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바늘땀이었던 것 같다. 수직수평의 개념도 함축되어 있었고. 내가 회화의 평면성을 질문하던 그때부터 투명성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필름의 투명성이나 투과성, 나 자신과 세상을 비추는 거울의 상징적 투명성과 대상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푸아티에의 거울 작업처럼 있는 그대로의 특정 공간의 바닥에 거울을 설치해 공간의 구조를 거울이라는 경계를 통해 재해석하기도 하고, 관객을 의도되지 않은 자율적인 퍼포머로 바라보기도 한다. 또한 10폭 거울 병풍을 새로운 회화 형식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거울은 아직도 나의 조형적 질문의 대상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개념이 발견될 것만 같은 거울을 기회 있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실험할 계획이다.
Art : ‘경계 넘기’ ‘가로지르기’는 1990년대 광주비엔날레의 ‘경계를 넘어서’ 같은 주제나,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보니토 올리버가 내세웠던 ‘유목성’ 같은 주제를 떠올린다.김수자의 〈보따리〉가 이 시기에 태동된 것은 참으로 절묘하다. 이 시기의 경계나 노마드는 글로벌리제이션으로 쏠려 있다. 동서 냉전 이데올로기의 해체 이후 복합문화주의의 도래, 비서구권 미술의 약진 등 여러 환경 변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Kim : 보따리가 1992년에 탄생했다고 할 때, 노마디즘이나 글로벌리즘의 이슈가 미술과 사회에 거의 동시에 등장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단지 내 작업에서의 유목적 특성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에 기인하며, 그 당시 글로벌리즘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떤 ‘이즘(ism)’ 등의 프레임워크에는 현재까지도 별 관심이 없다. 보따리는 한순간 직관적으로 발견된 것이지만, 하나의 전체(totality)로서 그 안에 논리적 형식적 내용과 삶의 본질적인 철학과 정서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지속성을 가지고 진화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보는 이의 관점이 낭만적일 때 작업도 더 낭만적으로 보일 것이고, 그것이 더 이상 낭만적일 수 없는 시점에서의 감상은 보다 리얼해 보일 것이다.
Art : 돌이켜보면, 1992년 〈보따리〉가 나오면서 김수자의 작가적 행보가 급속하게 분주해졌다. ‘물꼬가 터졌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해야 하리라.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호랑이 꼬리〉, 1995년 광주비엔날레, 1996년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의 한일교류전 〈1990년대 한국미술 이야기〉 등에서 ‘보따리의 변주’가 이어졌다. 보따리야말로 천변만화의 가변성을 지닌 입체 구조다. 묶기/풀기, 닫음/열림, 구축/해체, 수직성/수평성, 3차원/2차원, 긴장/이완, 수축/팽창, 채움/비움, 정지/이동 등의 조형 체계와 사유의 임의성을 지니고 있다. 이불보를 바닥에 가지런히 깔거나, 테이블보로 설치하거나, 빨랫줄에 널듯이 걸거나…. 〈보따리〉는 이 다양한 얼굴이 무엇보다 매력이다. 1997년에 〈떠도는 도시들-보따리 트럭 2727km〉를 제작하고, 그 이후 1999년부터 〈바늘 여인〉〈빨래하는 여인〉 시리즈가 이어졌다. 〈바늘 여인〉은 서영희가 지적했듯이 “자신이 바늘(수직축)이 되어 세계의 도시와 인파의 층(수평축)을 거듭 관통하며 시공간을 넘어 기억과 체험을 하나로 연결한 작업이다.” 각 대륙의 8개 도시를 방문하면서 〈바늘 여인〉 시리즈를 이어 갔다. 긴 머리를 동여맨 김수자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이 뒷모습은 천상 바늘로 보인다. 1999년 김수자는 뉴욕으로 삶의 무대를 옮겼다. 작품도 작가도 이동, 이주가 본격화되었다.
Kim : 때때로 글로벌리즘의 이슈로 읽히기도 했던 〈바늘 여인(1999∼2001)의 첫 번째 시리즈는 마침 9.11테러가 일어난 바로 그날도 뉴욕 MoMA PS1 개인전에서 전시 중이었다. 그 이후 이라크전쟁 발발과 함께 전 세계가 불신과 증오와 혼란에 빠지고 이슬람권과 기독교권과의 대립이 심화된 상황은 나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시작한 첫 작업이 지금은 사라진 뉴욕의 전설적인 갤러리 더프로젝트(The Project)에서 처음 선보였던 〈Mandala: Zone of Zero〉(2004)였다. 이 작품에는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고, 동시에 세계의 평화와 화합을 암시하는 작업으로 부시(Bush)정책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담았다. 키치한 미국의 겜블링 오브제 상점에서 착상한 주크박스 스피커 3개에 티벳과 그레고리언, 그리고 애초엔 이슬람의 성가들이 각각 푸른 벽의 공간에 섞여 다소 혼란스러운 불협화음이 나도록 병치시킨 설치였다. 하지만 실상 이 불협한 세계의 종교와 이념을 모아 들어보면, 매우 공평하고 조화롭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는가. 거의 베이스와 바리톤, 그리고 테너의 성악적 체계가 공존하며 나름의 음색으로 대화하듯이 조화로운 코러스를 이룬다. 이번 〈트라베르세/김수자〉에서도 싱글 주크박스에 3개의 성가가 혼합되어 들리도록 제작한 싱글채널 에디션을 콩포르모데른(Confort Moderne) 아트센터에 선보였다. 현재 로마의 21세기미술관 MAXXI에서도 다른 에디션이 선보이고 있고, 시애틀아시아미술관(Seattle Asian Art Museum)에서도 곧 초기 에디션이 동시 다발적으로 선보이게 된다. 이제야 이 작업이 제도권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Art : T. J. 디모스 같은 이론가는 1980, 90년대의 진행되었던 글로벌리제이션 속의 현대미술의 패러다임은 대단히 로맨틱한 ‘노마디즘’이었다고 간주하는 한편, 2000년대에 와서는 글로벌리제이션에 의해 일어났던 다양한 갈등을 되묻는 물음으로 패러다임이 변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9.11이후의 상황을 ‘글로벌 위기(Crisis Globalization)’이라 부르고, 그것이 내포하는 여러 모순과 아티스트들의 실천 관계를 묻는다. 그것은 오늘의 세계 상황에 대한 미술의 대응이라 요약할 수 있다. 국경을 뛰어넘는 자본주의 경제의 끊임없는 유동,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태어난 글로벌 사회는 냉전 종식과 함께 세계 질서의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었지만, 그 꿈은 결과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이 와중에 진행되었던 경제 불균형의 확대, 난민의 증가, 새로운 정치적 대립은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글로벌 아트를 지향해 왔던 아티스트와 큐레이터들의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작금은 글로벌한 규모로 이동하는 삶의 양태 그 자체, 이를테면 망명, 디아스포라, 난민에 개입해 상상력을 갖춘 비판적 도큐멘터리로서의 아트가 전면에 나왔다. 2017년의 카셀도쿠멘타(여기에 김수자의 〈보따리〉가 출품되었다), 2018년 광주와 부산의 비엔날레에서도 크게 보면, ‘글로벌 위기’가 주제였다. 여기서, 좀 거칠게 묻는다. ‘트라베르세’ 혹은 김수자의 작품은 오늘의 세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Kim : T. J. 디모스의 해석에 공감한다.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프로젝트를 위해 〈바늘 여인〉의 두 번째 시리즈를 제작할 때, 나는 첫 번째 시리즈(1999~2001)와 달리 세계의 중심적 대도시가 아니라 경제적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충돌이 발생하는 각 대륙의 문제의 도시와 후기식민주의 문제를 안고 있던 도시를 찾아 나섰다. 그럴 필요를 강력하게 느꼈다. 첫 번째 퍼포먼스를 통해 세계가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는지 내 눈으로 확인했다면, 9.11 이후에 폭력과 대립이 만연한 전 세계의 이중삼중의 충돌현상, 그 혼란의 파고를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나는 현 시대에 살며 한 개인사에서 출발해 확장된 인간의 조건들에 천착해 왔다. 세계에 던지는 나의 존재론적 질문들, 혹은 정치사회적 인류학적 질문들은 언제나 비폭력과 평화, 정의와 진실, 사랑과 화해, 즉 휴머니즘과 유토피아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Art : 앞으로 작품 활동 계획은?
Kim : 뉴욕 스튜디오의 짐도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다. 새로운 스튜디오도 마련해야 하는데 뜻대로 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늘 불확정적인 삶을 살아서인지 스튜디오가 없어도 걱정되지 않는다. 현재도 뉴욕에서 일하는 어시스턴트가 있고 오랫동안 일해 온 협업자들이 있다. 파리는 파리대로 일을 도와주는 어시스턴트가 있어 모든 프랑스 프로젝트를 현지의 협업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협업자를 찾고 있다. 한국을 기반으로 멀리 여행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그동안 관심을 가졌던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를 펼치고 싶다. 사실 그동안 글로벌하게 협업자들과 일해서 어디를 가더라도 더 이상 거주지가 문제시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한국 관객들과 더 자주 만나고 참여하며, 작업 외에 한국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간 잘 뒤쫓아 가지 못했던 한국미술도 좀 속속들이 보고 싶다. 늘 낯설고 쉽지 않지만 한국에 조금씩 적응해 봐야 할 것 같다.
— Art in Culture, January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