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FULL OF MIND 45년의 예술 여정, 아티스트 김수자의 깊고 긴 숨.

2024

Kimsooja Discusses the Intriguing Stories Behind Her Art

Lee Kyoung Jin

2024

지난가을 일본 후쿠오카를 방문했더군요. 그곳 우치하마 중학교 학생들과 대화하고 박수받으며 퇴장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뭉클했어요. 약 45년간 활동해 온 예술가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나요?

  • 제 작업을 600명의 학생에게 소개하는 자리였어요. 따뜻하고 감동적이었죠. 내게 주어진 1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남을 기억이 돼 영감을 주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언을 해야 할 자리가 생기면 늘 꿈을 포기하지 말고 위험을 감수하라는 얘기를 합니다. 젊은 작가들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죠. 물론 분별이 있어야겠지만,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는 힘이 필요해요. 이번 경험을 통해 저도 옛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학생 때 접했던 새로운 경험은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미술관에 갔던 일, 프랑스 작가 클로드 비알라(Claude Viallat)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 강의를 들었던 순간처럼요. 그보다 더 어릴 땐 아버지의 군 복무로 방방곡곡을 떠돌며 유목민 생활을 했고, 미술관 방문이나 미술과 관련된 경험이 전혀 없었습니다.

미술가라는 역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 문학과 음악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중 미술을 택한 건 은퇴 없이 지속적으로 삶을 사유하고 반영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 작곡을 공부한 동생을 비롯해 음악인이 많은 가정이라 성악 같은 음악 분야가 저에게는 더 가까운 진로일 수도 있었죠. 하지만 성악은 신체와 나이의 한계가 있으니 전 생애에 걸쳐 예술 의지를 불태우기에는 활동 가능한 기간이 짧다고 느껴졌어요.

긴 호흡의 예술 활동으로서 미술을 꿈꿨군요.

  • 항상 미술을 사색하고 응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했어요. 삶과 예술을 사유하는 긴 호흡의 활동으로 미술을 택했던 것 같아요.

“삶과 예술의 토털리티(Totality)에 도달하고 싶다”고 자주 얘기해 왔어요. 미술가가 되지 않았으면 종교인이
됐을 거라는 말도 한 적 있습니다.

  • 특히 휴머니즘에 관심이 있었어요.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신체적 · 정서적으로 취약하고 연약한 상태, 전쟁 혹은 어떤 부당함.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늘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땐 내가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는 데 죄책감을 느꼈어요. 그런 면에 민감했죠.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채석장으로 가려는 마음도 먹었습니다. 삶의 터전에서 고통을 겪는 이들과 함께 힘듦을 나누고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스스로 많이 괴로워했어요.

괴로움을 기꺼이 겪으며 타인의 고통을 응시하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요?

  • 글쎄요. 자연스럽게 그리 됐어요. 정현종 선생님의 시 ‘고통의 축제’ 구절이 내면에 잠재된 시절이었죠. 저는 타인의 고통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올해도 예술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빼곡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많은 관람객이 방문한 파리 부르스 드 코메르스-피노
컬렉션에 펼친 전시가 있었죠. <엘르>는 올해를 빛낸 이름을 조명하는 ‘엘르 스타일 어워즈 2024’에서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해 무대로 모시기도 했고요.

  • 밀도 있는 성취감을 느낀 해였습니다. 상반기에 중요한 프로젝트를 여러 개 마쳤고, 모두 잘 구현돼 기분 좋았어요. 각 사이트에 맞게 새로운 언어를 채굴하는 작업이었죠.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울라 사막에 설치한 ‘To Breathe-AlUla’ 프로젝트도 그랬고, 파리 피노 컬렉션의 로툰다 홀 작업은 미니 회고전 같은 전시였기 때문에 제 작업을 관통하는 ‘보따리’ 컨셉트의 총체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어요. 메츠 성당(Metz Cathedral)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영구 설치한 작업의 프로토타입을 다시 악셀 베르보르트에서 전시할 기회도 있었고요. 탄야 보나크다르(Tanya Bonakdar) 갤러리와 함께 20년 만에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어 그간 의미 있는 작업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피노 컬렉션 로툰다 홀을 채운 작품 ‘호흡-별자리 To Breathe-Constellation’는 이제껏 싸매온 ‘보따리’ 컨셉트를 건축물로 전환시킨 작업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상징적인 레이나 소피아 크리스털 팰리스(Crystal Palace, Museo de National Reina Sofia)의 작업 ‘To Breathe-Mirror Woman’이 연상됐어요. 숨과 호흡은 김수자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페인터로 작업을 시작한 1970년대부터 저에겐 캔버스가 하나의 질문이었어요. 캔버스의 표면이나 구조를 고민했죠. 캔버스는 회화에 있어 대상이자, 다른 타자이자 그 자신이고, 항상 대립이 있는 대상이었어요. 정면으로 맞서면 동시에 뒷면을 꿰뚫어보고 싶은 의지를 느끼게 했죠. 캔버스의 표면은 하나의 보더(Border)이기도 하고, 벽이기도 해서 바느질이라는 방법론으로 그 깊이를 가늠하고 이어가는 작업을 1980년대 초부터 이어왔어요. 바느질에는 이원론적인 면이 있죠. 안과 밖을 들락거리고, 매스큘린하면서도 페미닌하고, 공격적인 한편으로는 치유하고, 두 개로 갈라진 틈새를 이어줍니다. 2004년 폴란드의 우치 비엔날레(Ƚódź Biennale)에서 과거 텍스타일 공장이었던 빈 공간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직조 기계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순간적으로 제 몸이 생생하게 의식됐어요. ‘숨 쉬는 일이 곧 직조 행위구나.’

그렇게 ‘더 위빙 팩토리(The Weaving Factory)’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그 공간을 위해 선보였습니다. 다양한 속도와 강도, 깊이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소리를 공간에 채웠어요.

  • 2004년의 일이에요. 이후에는 2006년 초에 베니스의 오페라 극장 라 페니체(La Fenice)가 불에 탄 뒤 다시 오픈할 때 무대 위 스크린에 프로젝션 작업 커미션을 받았어요. 그때 오페라 극장인 라 페니체의 성격을 생각했죠. 노래라는 것 역시 ‘숨’이 확장돼 발생한, 문학적 내러티브가 있는 예술 형태잖아요. 숨을 다시 연결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운드를 설치하고 스크린에 비디오 프로젝션을 했는데 디지털 컬러 스펙트럼이 계속 루핑되는 화면이었어요. 제가 주목한 부분은 그 프로젝션 작업에서 과연 평면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시각, 응시하는 행위도 하나의 ‘바느질(Needling)’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To Breathe’라는 타이틀을 사용했어요. 같은 해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선보인 ‘To Breathe-A Mirror Woman’은 건축 공간을 하나의 보따리로 보면서 내외부 공간을 나누고, 실제와 버추얼한 이미지를 반사시키는 거울 표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숨, 날숨과 들숨 같은 것을 공간에 설치한 겁니다. 숨은 무엇보다 우리 존재가 나선 여행길의 시작과 끝입니다. 숨의 지속성은 삶의 지속성과 연결돼 있습니다. 제가 발전시켜 온 삶과 세계의 이중 구조를 통한 반영. 거기에서 드러나는 해답들. 이를 넘어서는 어떤 피안의 세계. 이런 것에 던져온 질문이 ‘숨’이라는 개념과 맞닥뜨려진 것 같아요.

피노 컬렉션에서 관객들이 ‘호흡-별자리’를 경험하는 모습도 장관이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왔고, 아마도 모든 관객은 김수자의 비밀스러운 퍼포머였겠죠.

  • 싸매는 행위를 하지 않고 보따리를 싼 거죠. 다만 이번에는 옷이 아니라 휴머니티로요. 제가 그걸 퍼포먼스라고 발표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관람객 각자의 개성과 프라이버시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눈여겨보며 즐겼고, 기대보다 액티브한 리액션이 나와서 사실 놀랐어요. 많은 이가 그 공간 안에서 자신의 존재성을 다시 재인식하고 가늠해 봤죠.

이 작품으로 촉발된 새 질문이 있나요?

  • 로툰다 홀의 ‘호흡-별자리’ 작업을 하며 보따리 컨셉트에 연관될 수 있는 24개의 작품을 24개의 비트린(유리 전시장)에 설치했어요. 퍼포먼스도 있고, 한지를 손으로 쥐었다 펼친 작업도 있었죠. 로툰다 홀에 거울을 설치하여 발아래에 다시 돔이 시각적 ‘보이드(Void)’를 창조하였어요. 우리가 달항아리를 제작할 때 두 점의 베이스를 사용하는 것과 같죠. 두 개의 돔을 엎어 연결하는 행위가 되잖아요. 베이스와 베이스가 서로 맞닿는 경계는 바로 거울이고요. 굉장히 큰 깨달음이었어요. 경계의 만남, 어둠과 보이드의 관계, 거울과 보이드의 관계. 양자적 관계성이 지금도 큰 물음으로 남아 있어요.

공간 요소를 새로 제작하는 작업이 아닌 주어진 공간 조건 속에서 최소한으로 개입해 최대한의 경험으로 응답한다는 입장으로 작업을 지속해 왔습니다. 이는 어떤 물음에 대한 답이었나요? 또 결국 ‘보따리’가 김수자에게 중요한 컨셉트가 될 수 있었던 첫 번째 지점은 무엇이었는지요?

  • 보따리는 이미 존재하는 오브제라는 점이에요. 이미 존재하는 사물의 의미를 끊임없이 채굴하고 드러내는 일이 그동안의 제 작업이었습니다. 그 근간에 결정적 영향을 준 존 케이지(John Cage)가 1985년 파리 비엔날레에서 시연한 작업을 하나 본 거죠. 그의 사운드 피스를 듣기 위해 6m 길이의 빈 컨테이너에 들어갔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측면에 적힌 간단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Que vous essayez de le faire ou pas, le son est entendu.(만드려고 하든 안 하든, 소리는 들립니다.)” 저는 완전히 충격받았어요. 이제까지 예술은 다 만드는 것이었는데, 그는 만들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작업을 전했죠. 그때부터 어떻게 만들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지, 있는 것은 그대로 두되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일에 지속적으로 천착했죠. 최소한의 행위나 오브제를 공간에 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이면서 새로운 의미나 개념을 전달할 수 있는 작업을 지속해 온 거예요.

보따리 작업은 긴 시간 다변화되고 확장돼 왔습니다. 최근 메타 페인팅 작품을 선보이고 있죠. 페인터의 지점으로 다시 회귀한 걸까요?

  • 페인터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실험해 왔기 때문에 항상 열정의 본질과 시작점은 페인팅에 있습니다. 보따리도 저에게 사실 하나의 페인팅이죠. 이불보 자체는 페인팅인데 싸는 행위는 퍼포먼스이고, 싸여 있는 형태는 조각이고 설치 혹은 오브제이기도 합니다. 그것 자체가 어떤 결정체로서 질문과 해답을 갖고 있어요. 메타 페인팅은 일련의 순환적 실험을 통해 다시 돌아간 지점이죠. 넓은 땅에 아마씨를 뿌렸어요. 리넨 캔버스 섬유와 린시드 오일의 재료가 되는 아마씨 오일을 얻을 수 있는 씨를 뿌리고, 수확해서 오일도 만들고, 섬유도 만들어 리넨 캔버스 천을 짰습니다. 직접 짠 것은 아니고 주변 커뮤니티의 도움을 받았죠. 다시 회화의 본질로 돌아가는 작업의 시작이었어요. 더불어 ‘만들지 않음(Non-making)’의 태도와 방향성으로 되돌아가는, 새로운 목적지이자 출발점이에요.

오늘 저희가 만난, 서울에 마련된 작은 전시공간을 채운 이 블랙 페인팅도 같은 맥락인가요?

  • 리넨 캔버스는 서구 회화의 가장 중요한 재료이지요. 여기에 스프레이한 검은 안료는 그 물질성을 최대한 제거하는, 더 이상의 블랙이 없는 ‘블래키스트 블랙’에 준하는 페인팅 재료예요. 거의 리플렉션이 없는데, 수많은 레이어의 스프레이 작업을 통해 안착된 스프레이 안료들을 가까이 보면 여전히 수많은 공간이 있죠. 바늘구멍 같아요. 공간이 어떻게 바늘구멍이 될 수 있을까요? 바늘구멍은 어떻게 공간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요? 그 어둠의 캔버스를 바닥에 세우니 작업이 묘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개인의 묘비명이거나 페인팅으로 이뤄진 어둠의 보따리 혹은 보따리에 들어 있는 어두운 공간인지도 모릅니다. 이 역시 뭔가를 드러내지 않고, 최소한의 행위로 새롭게 생성되는 것이 현재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에요.

한 인터뷰에서 “결과를 빨리 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 적 있어요. 1999년 뉴욕으로 이주하며 문화적 망명자를 자처한 것처럼 쉽고 어려운 것이 놓인 선택의 기로에서 늘 후자를 택한 것 같습니다.

  • 결혼 초기에도 우리 부부는 소록도행을 택했어요. 그들과 함께 살면서 정신과 의사였던 남편은 봉사를 했고 저는 관망자로 살았죠. 인생의 선택도 마찬가지였어요. 뉴욕으로 이주하며 가족과 분리된 삶을 20년간 지속해 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작가로서 판매에 관심도 없고, 작업 그 자체에만 몰두했죠. 제 성향대로 살아온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고통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괴로웠다”는 말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고난을 선택하고 역경에 맞서는 방식으로 살아온 삶을 통해 괴로움이 좀 덜어졌는지 궁금합니다.

  • 지금도 전쟁이나 기아, 폭력을 접하기란 참 힘듭니다. 근래에는 이를 작업으로 표현하는 단계에서 조금 벗어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광주 비엔날레에 헌사하거나, 일본에서 큰 쓰나미가 일어난 후 그곳의 옷을 가져와 보따리를 싼다든가 하면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헌옷과 보따리 설치미술 작업을 했어요. 이제는 이를 초월하는 상태에 관심이 많아요. 순수한 미학과 추상성을 더 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약 45년의 예술 인생 내내 상업적이지 않은 영역을 걸어왔습니다. 그 치열하고 긴긴 세월을 지탱해 준 건 무엇이었나요?

  • 자신을 믿었던 것 같아요. 오래전 클로드 비알라가 예술은 예술적 의지나 열망, 욕망이 주도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저도 그런 욕망을 믿는 편이에요. 보통의 일상에서는 다소 부족하지만 예술적 에너지, 나라는 존재가 우주
    와 맞닥뜨리는 지점에선 신뢰가 있었죠. 그런 우주의 에너지를 믿었어요.

─ From ELLE Magazine Korea, Decempber 2024, pp. 98-103.

Volga Serin Suleymanoglu

2024

  • The world-renowned artist Kimsooja, known for her profound explorations of identity, culture, and spirituality, continues to captivate audiences with her impactful projects and thought-provoking installations. In a recent conversation, we delved into her artistic journey and career, discussing the influences that have shaped her work and the messages she wishes to convey through her art. From her unique perspectives on Korean heritage to her innovative approach to conceptual art, Kimsooja offers insights that illuminate her creative process and vision. She also shared, for the first time, some exciting details about new exhibitions she’s planning for next year.

  • This interview took place via email in writing between August 17 and October 24.

Could you please briefly introduce yourself?

  • I am Kimsooja, a conceptual Korean artist currently living and working in Seoul.

What kind of childhood did you have that inspired you to become an artist?

  • My childhood inspired me more gradually, and only later in life did I become aware of how my daily life and activities of my childhood could be translated into an artistic vocabulary. In other words, rather than my childhood inspiring me to be an artist, it is now, as an artist, that I reflect back on those memories. Becoming an artist felt like it was in my blood. I grew up near the DMZ, with a nomadic lifestyle due to my father’s military service, which left me with rich sensory memories that find their way into my work.

What are the elements of your art?

  • I use various media to explore concepts in unique ways. For instance, I use bed covers for “bottari” (bundles) and filming as an immaterial wrapping method, capturing the reality of humanity and nature. Each medium, from textiles to video, unfolds different dimensions of universality and broadens the concepts within each work. Physicality in my work also reveals the void and spirituality inherent in life’s ephemeral moments.

What role do fabrics play in expressing your art?

  • Fabrics are like a second skin, carrying bodily memories. Traditional Korean bed covers, with their symbolic embroidery and patterns, represent unfulfilled desires, love, solitude, and even death. The bed becomes a frame for existence, holding memories that resonate deeply in my work.

Could you tell us about some important memories from your early childhood that had a defining impact on your life and views as an artist?

  • One day while sewing a traditional bedspread with my mother, I felt an energy surge as I observed how the needle pierced the fabric. This “revelation” pointed me toward the structural simplicity of horizontality and verticality, foundational to various life systems. It was a defining moment, showing me the deeper cross-structures in nature, mind, and artistic practice, which still influence my work.

Your “bottari” works are quite fascinating. What inspired you to focus on “bottari” and how has this idea evolved over time?

  • Since working on sewing practice during the early 80s, keeping “bottari” had always been part of the scene in my studio or at home for storing small objects or fabric scraps. It got transformed into a total art form while I was at P.S.1 Studio in New York in 1992. It became a sculpture, a painting, and a performance all in one. Over time, “bottari” has grown from bundles on a truck to architectural installations like the “Crystal Palace” in Madrid. Each evolution explores new ways of wrapping and unwrapping, mirroring life’s complexity through a simple form.

What is the story behind combining your name into a single word, from Kim Soo-Ja to “Kimsooja”?

  • A name often carries a deep sense of self-identity and, in my case, layers of history. My grandfather, who had hoped for a grandson, gave me the name Soo-Ja—a name with a strong, traditionally female sound in Japanese. My parents considered changing it, but ultimately respected his choice. Over time, I discovered even more meanings hidden within my name. While filming “Mumbai: A Laundry Field” in a Mumbai slum in 2007, I learned that in Hindi, the pronunciation of the word “Sooja” translates to "a needle," particularly a large, 30 cm needle used for sewing mattresses. This unexpected meaning left me speechless, almost as if I were a needle stitching together stories across cultures.

  • My family heritage also plays a role. The Kim clan to which I belong, specifically the "Samhyun branch," is believed to be descended from King Suro, the founder of the Gaya dynasty (45–562 CE) in southeastern Korea. King Suro married Queen Hur, an Indian princess from Ayodhya, who is credited with introducing Buddhism to Korea. Embracing the combined name "Kimsooja" allowed me to weave these fragments of history, culture, and personal identity into one unified expression.

The 'A Needle Woman' video series is captivating. What emotions did you experience while shooting it, what were the biggest challenges, and how did you feel once the project was completed?

  • “A Needle Woman” was a series of performance videos shot from 1999 to 2009 in crowded cities worldwide, capturing my solitude amidst social conflict. Some moments were challenging, particularly in areas with strong economic or religious tensions. Witnessing humanity’s ephemerality and suffering over a long period of time and across many places was a truly transformative experience for me, filling me with compassion and broader perspectives on existence.

How have Korean women and their stories influenced you?

  • For me, initially, “bottari” was just an aesthetic object, not a social one, but when I returned to Korea, I saw women’s roles as the mothers, wives or daughters under a new lens. Korean women’s resilience in the face of social constraints inspired me to work with entire used garments within “bottari”, rather than cutting them before placing them inside, revealing the realities of the human body and life stories. This allowed me to present “bottari” as something so much more than an aesthetic component.

How did the artwork 'Archive of Mind,' which was completed with the participation of many visitors to the exhibition, come about?

  • “Archive of Mind” emerged from a contribution to Yoko Ono’s Water Event in 2016. I realized that shaping a clay sphere could be a communal, meditative act, where visitors could share in the experience of creation. This interactive process allowed for a collective exploration of physical, geometric, and spiritual aspects of art.

In your piece 'To Breathe – Constellation' exhibited at the Bourse de Commerce - Pinault Collection in Paris, France, what message are you trying to convey to the diverse visitors from different ethnic backgrounds?

  • “To Breathe- Constellation” uses a mirror floor to create a wholeness in space, merging reality and illusion within the architecture of the marvelous dome in that space. Visitors, regardless of their background, become performers, looking, walking, sitting, posing, dancing, exploring their own reflections and engaging with existential questions in a shared, universal space. This piece dissolves boundaries, emphasizing the unity of human experience.

What advice would you give to young artists?

  • My advice is to keep moving forward, taking risks confidently, no matter what challenges or untruths may exist in the art world. Trust that your art will prove itself in time, and stay true to who you are and the world you live in.

For those who wish to study or explore art in Korea, what aspects of Korean culture and art would you recommend they look into and learn about?

  • Rather than focusing on specific aspects, I’d recommend fully immersing yourself in Korea—experiencing everything from its society, language, and food to its unique philosophy, humble beauty, and natural landscapes. Encounter the spirit of the “Seonbi” (a learned scholar’s ethos) and absorb the complexities and passion that define this place. It is an incredibly rich source of inspiration.

What projects are you planning for the future? Could you share a bit about them with us?

  • I will continue to contemplate current questions I have from different specific sites, themes of exhibitions, or biennales, exploring, answering, or questioning back to each of them. In this journey, I am planning to unveil a site-specific project for the main rotunda of the prestigious San Giorgio di Maggiore in Venice during the Venice Architecture Biennale 2025, followed by another site-specific project for the Oude Kerk, the oldest building and a church in Amsterdam, celebrating the city of Amsterdam’s 750-year anniversary, among oth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