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

김수자 │ 천, 색면, 변주

천,색면,변주
Cloth, Color space, Variation

김수자

1989

  • 한 조각의 천, 그것도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있어 삶의 우여곡절을 느끼게 하는 그것을 바라보고 앉았노라면 지난날의 어느 시점, 혹은 어느 공간을 향하여 마음이 모아진다. 삶의 부대낌과 소음이 밀려간 빈자리에 서서히 밀려오곤 하는 것, 그것은 늘 지나간 시절 몸담았던 자연의 어느 모서리이거나 잊을 수 없는 인물들의 모습이었다.

  •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위하여 끝없이 산속에 헤매이거나 낯선골목길을 누비고 다녔던 유년의 경험, 남몰래 다락방에 올라가 어둠속에서 들추어 보던 아버지의 해묵은 서적이며 앨범, 할머니의 반닫이 속에 든 갖가지 집기며 보따리들의 기억…., 그것은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보랗빛 도라지 꽃을 발견했을 때 처럼 나에게 은밀한 감동을 안겨주곤 했고, 그런 일이 있던 밤이면 잠자리에 누워 깊은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 내 마음 한 켠에 각인된 지울 수 없는 또다른 영상들이 있다. 그것은 왜곡되어 있는 듯 싶고 어쩌면 이 세상과 무관한 듯도 싶은 그런 인물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화사하거나 웅장한 그 무엇보다 더욱 절실한 하나의 의미로써 영혼의 떨림을 불러일으킨다, 어린시절 할머니를 따라 다리가 아프도록 걸어갔던 어느 먼 산속 과수원, 그 안에 딸린 한간 토담집 초가에 유배자처럼 홀로 살던 어느 친척 아저씨의 죽음, 등 뒤에서 수런대던 공포에 가까왔던 그의 죽음에 관한 어른들의 뒷 이야기, 그때 느껴지던 토담방의 흙내음, 한 인간의 파괴, 혹은 바람부는 저녁, 옷자락을 펄럭이며 절뚝이던, 눈도 코도 귀도 뭉그러진 사람들의 기억…., 이러한 잊을 수 없는 숱한 기억들이(작업을 하는 동안 수없이)밀려왔다 밀려가곤 한다.

  • 삶의 체취를 맡으며 기억의 파편들을 꿰매고, 내 마음의 갈래들을 하나의 평면 속에 통합시키는 과정, 그 시간은, 그것이 갖는 조형적 성과만큼이나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다. 내가 굳이 손으로 일일이 바느질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사색과 고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고 단순한 조형적인 효과로써 꿰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간을 살고 있으며 그 삶을 통해 인간적인 허물과 존재의 모순, 나아가 자유에의 영원한 열망을 극복하고자 한다. 천을 꿰매는 행위 속에서, 나는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가 일치하는 은밀한 일체감을 경험하고 있고, 묻어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다. 천이 가지는 부드러움, 날실과 씨실의 조직, 우리 천의 그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드는 꿰매는 행위의 천과의 자기동일성,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매료되어 있다.

  • 색면들은 하나의 천의 선택으로부터 시작하여 네모꼴의 단위속에서 변주되고 이 단위들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확산되면서 하나의 형태화된 평면으로써의 당위성을 얻고자 한다 최근의 작업들은 원색적인 천의 소리들이 많은 부분 검정속으로 흡수되고, 반면에 평면의 質의 표현이 중요시 되어있다. 또한,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언어의 표기는 그것이 전체적인 조형에 무리를 가져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명명함으로써 하나의 의미와 구체적인 이미지를 탄생시키고자함이며,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내가 마음속으로 「아름답다....,」라고 되뇌어 보듯이 시각을 통하여 하나의 청각적인 반향을 얻고 싶음이라 할 수 있다.

  • 그러나 낙서와 같이 무의식적이거나, 전체 작품속에서 부차적인 요소로 남기 보다는 다분히 의도적이며, 의미상으로 작품 자체를 정의하는 등가적인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작업에서의 검정의 출현은 검정이 갖는 관념적인 의미 그대로 절망, 허무, 죽음과 같은 침몰된 정신상태의 반영이라 할 수 잇다. 그리고 수평과 수직의 만남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로 나의 작업에는 일련의 십자형 내지는 그 변형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러한 형태의식은 우리가 피부로 접해온 한국의 건축공간의 격자형태나 문자등, 우리문화 전반에 나타나는 동직적인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으나, 무엇보다 존재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속에서 이루어진 하나의 만남의 결과였던 만큼, 나에게는 절박한 자기구원의 의미로 남아있다.

─ 『SPACE』, 1989. January. No.257, pp.11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