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오광수 │ 김수자의 근작: 원형에의 회귀

1991

Kwang Soo Oh │ Recent Works of Kimsooja - A Return to the Archetype

Portrait of Yourself, 1985, Thread ink, crayon, and acrylic on used cloth

김수자의 근작: 원형에의 회귀

오광수 (미술 평론가)

1991

  • 천을 매체로한 작품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틀 속에 조여진 캔버스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틀을 벗어난 물질로서의 천 작품을 가리킨다. 천은 틀 속에 갇혀진 캔버스로 등장했 을 때는 평면이 되지만 틀을 벗어났을 때는 평면이자 입체 적인 속성을 동시에 띤다. 따라서 천은 평면과 입체의 양의 적 속성을 안고 있는 물질이기도 하다.

  • 천은 아주 일상적인 기물, 요컨대 신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옷과 장갑과 양말과, 또는 머리를 감싸는 스카프로 등장하지만 때로는 청마(靑馬)의 시(詩)에서처럼 이념의 푯대로서 깃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천은 연인과의 친화 속에서 그 독특한 정감의 의미항을 띤다. 어머니와, 어머니 의 어머니와, 그리고 그 어머니로 이어지는 여인의 삶의 뒤안길에 천은 물질을 넘는 내밀한 정서의 띠로 등장한다. 여인들의 소담한 꿈과 안으로 삭이는 인고의 엮음이 어찌 천을 매개로한 것이 아닌 다른 어디에 있을 것인가.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 가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묻어 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 천을 통해 나와 어머니와의 일체는 다시 어머니의 어머니와의 일체, 그 어머니의 어머니와의 일체가 되면서 여인의 내면의 역사를 엮어낸다. 그래서 김수자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들 어머니와 그 어머니로 이어지는 존재에의 회귀를 보는 것 같은 감회에 젖게 된다. 천으로서의 물질이 아니라 천으로 매개되는 여인들의 내밀한 삶의 역사를 보게 된다.

  • 종전의 김수자의 작품은 그것의 모양이 사각형의 화면이 아닌 삼각형, T자형 또는 이런 여러 형들이 중복된 , 것이긴 하지만 평면을 지향한 것이었다. 비록 액자라고 하는 틀을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벽에 걸리는 평탄한 면을 지탱 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작품들은, 물론 때로는 벽면에 걸리는 종전의 회화적 관념이 남긴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강한 입체성을 띠는 경향을 보인다. 평면이 입체성을 지향 한다고 했을 때 먼저 연상할 수 있는 것은 현실화라는 문맥 이다. 회화가 평면에 묶여진다고 했을 때 그것은 언제나 일루전의 세계를 의식한 반면, 입체화된다고 했을 때는 일루전의 세계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분석적 큐비즘 시대의 피카소, 브라크, 그리가 시도한 파피에 꼴레(Papier Collé)가 직접의 현실에로의 회복을 노린 방법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거니와 큐비즘이후, 특히 전후에 오면서 왕성하게 시도된 현실적 물질의 화면에의 도입도 가상의 세계에서 직접의 세계에로의 열망을 말해주는 것이다.

  • 김수자의 근작은, 비록 부분적으로 벽체를 의식하고 있긴 하지만, 이미 현실로 되돌아온 세계, 일루전의 세계에서 회화를 직접의 현실로 되돌린 세계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 은 종래의 그린다든지 칠한다는 개념을 벗어나 직접의 물질 을 서로 꿰매거나 이어붙이거나 엮어내거나 감싸는 일이 된다. 종전의 그의 작업은 주로 짜투리 천들을 서로 이어 누비는 것이었다면, 근작은 단순히 꿰매는 일에서 더욱 벗어나 오히려 집성(assemblage)한다는 의미가 강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훨씬 물질적 속성과 공간적 스케 일을 환기하는 경향이 되고 있다. 그것은 곧 천을 천으로서 드러낸다는 문제 외에 그 천들이 갖는 공간에의 존재의 문제들을 다시 상기한다는 것이 된다. 놀라웁게도 천들은 가장 직접적인 물질로서의 강한 속성과 더불어 그 많은 천들 속에 숨쉬는 수많은 인연들을 환기해내는 접신의 떨림 을 동반하고 있다. 치마, 저고리, 두루마기, 이불 등속에 아직도 숨쉬고 있는 혼령들이 보이지않는 존재의 그물을 짜내고 있다고 할까. 따라서 그의 공간에의 존재의 문제는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심경적이다. 연두, 자주, 옥색, 노랑, 빨강 그리고 온갖 식물적 문양들이 엮어내는 화려하고도 슬픈 분위기는, 염염한 여인의 꽃다운 모습을 떠올리 게도 하고 억울한 죽음의 사신을 부르는 무속(巫俗)의 애절 한 가락을 듣는 것 같기도 하다. 차라리 그 질펀한 색상과 강렬한 몸짓에선 타작마당을 누비는 풍물잡이의 신명을 보는 느낌이다. 그것들은 언제나 강렬한 존재물로서 다가오 지만 동시에 강렬한 심경의 울림을 동반하고 있다. 말하자 면 물질적인 것이지 동시에 비물질적인 것으로의 존재로 다가온다. 언제나 작품은 구체적인 물질로 나타나지만 동시 에 작품은 비구체적인 정신의 항상성(恒常性)에 잇대어 있을 때 그것의 참다운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金子의 정신의 항상성은 원형의 회귀라는 보다 뚜렷한 문맥을 드러 내고 있다. 꿰매고 누비는 작업을 통해 어머니와의 은밀한 일체감을 체험했듯이 이제는 아득한 옛날에로 잇대어지는 일체감을 체험함으로써 원형의 회귀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 다. 만주와 몽골을 거쳐 멀리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는 샤머니즘의 잔존 속에서 희미한 원형의 그림자를 좇고 있는 것이다.

— 「김수자의 근작: 원형에의 회귀」, 갤러리현대 『Kim, Soo-Ja』(1991) 개인전 도록 수록 글, pp.2-5.

Portrait of Yourself, 1985, Thread ink, crayon, and acrylic on used cloth

Recent Works of Kimsooja
- A Return to the Archetype

Kwang Soo Oh (Art Critic)

1991

  • When we say an art work is done with fabrics as medium, usually we do not mean that it is a piece of canvas stretched on a frame but it is a fabric art, a material object freed from frame. A piece of fabric, when appeared as canvas locked in a frame, becomes 2-dimensional plane; when it is freed from the frame, it has dual nature of 2- and 3-dimensional character. Therefore, cloth is a material which retains dualistic nature of 2- and 3-dimensions.

  • Cloth is used in such everyday objects accompanying human body as clothes, gloves, socks, or scarves wrapped around heads. Sometimes it becomes a flag, an emblem of ideology like in a poem by Chong-Ma. But cloth's true value lies in its affinity with women. Cloth connects the lives of mother, mother's mother, and her mother with its secretive emotional attachment. What else in the world other than the medium of cloth represents so well the humble dreams and endurance in hardship of women? The artist says. "One day I was sewing up bed covers with mother, when suddenly I experienced intimacy and amazing oneness in which my thoughts, sensitivity, and gesture are all united and fused. I also found a possibility to embrace in it numerous long-buried memories and pains, and even the love of life."

  • Through the medium of cloth, the history of inner world of women is woven as the union of myself and my mother becomes that of myself and mother's mother and her mother, and so on.

  • In from of Kimsooja's works, therefore, we are moved, as if we witnesses a return to the original existence which links us to our own mother and mother's mother. We do not see the cloth as a material but see the secretive history of women mediated by cloth.

─ Essay for the Catalogue, Solo show 'Kim, Soo-Ja' at Gallery Hyundai. Seoul, Korea,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