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뉴욕 맨해튼에 있는 국제사진센터(ICP)에서 제3회 사진·비디오 트리엔날레가 《드레스 코드(Dress Codes)》라는 제목으로 전시 중이다. 2009년 10월 1일 저녁에 오프닝 행사에 찾아가니, 관객이 굉장히 많이 몰려 미술관 측은 건물 앞에서 관객을 길게 줄 세운 채 입장객 수를 제한하고 있다. 전시실 안은 어느 한구석 쉽게 비집고 다니기 힘들 정도다.
뭄바이 빨래터 : 작가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는 회고작
사진과 비디오 장르를 다루는 세계적 작가들을 초청한 이 국제전시에 김수자가 빠졌을 리 없다. 지하 1층에 따로 칸을 막고 마련된 방 안에서 그의 새 작품 〈뭄바이: 빨래터(Mumbai: A Laundry Field)〉 (2007-2008)가 전시되고 있다.
인도 뭄바이의 빨래터, 밤거리 풍경, 슬럼가 골목, 사람들이 문에 매달려 가는 출퇴근 기차 등 각 10분짜리 영상 4개가 사방 벽에서 상영되고 있다.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까 싶게 좁고 더러운 슬럼가 골목에는 너절하지만 빛깔이 고운 빨래가 널려 있다.
그 옆으로 달려가며 고개 돌려 비디오 카메라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아이들의 맑은 표정, 형형색색 널려 있는 빨래 모두 이 골목의 현실과는 달리 밝고 다채롭다. 기차 출입문에 짐짝처럼 매달려 있는 사람들의 하늘거리는 옷 역시 그들의 가난한 삶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비참한 경제적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동적이고 즐거운 사람들의 삶이 이 작은 방 안에서 대조를 이루며 바삐 돌아간다.
김수자는 그가 가장 즐겨 입는 검은 옷차림으로 방 앞에 서 있었다. 한국 현대미술의 전문가로 잘 알려진 미술 평론가 로버트 모건(Robert C. Morgan)이 마침 전시를 보고 나오는 중이었다. 그는 “정말 강렬한 작품(intensive work)이네요. 움직임이 각기 다른 화면 네 개가 아주 잘 병치(juxtaposition)되어 있어요”라며 감탄했다.
김수자는 2007-2008년 2년 동안 뭄바이를 세 번 방문하며 이 작품을 찍었다. “사람들 삶의 여러 환경 조건, 특히 약자들의 삶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슬럼가를 꼭 찍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사실 이 뭄바이 작품은 김수자가 지난 25년 동안 해온 작품 세계의 주제를 아우르는 회고작 같은 면이 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작품을 찍는 동안 김수자의 일관된 관심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삶을 그리는 데 매개체로 사용되는 오브제는 언제나 ‘천(fabric)’과 관련이 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공통된 큰 줄기 안에서 그의 작품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형상화한다. 지난 9월 시작한 러시아 모스크바 비엔날레에서는 그가 2007년 파리에서 한 트럭 퍼포먼스 〈보따리 트럭 – 이민자들(Bottari Truck – Migrateurs)〉의 기록 영상이 전시되고 있다.
그는 1997년에 보따리 수백 개를 트럭에 싣고 11일 동안 우리나라 전국을 달리는 퍼포먼스〈떠도는 도시들-보따리 트럭 2,727km〉를 진행한 바 있는데, 이번엔 이 퍼포먼스를 파리에서 한 것이다. 작가는 보따리를 실은 화물차 짐칸에 등을 돌린 자신의 몸을 짐처럼 맡기고, 파리 시내의 다양한 인종 커뮤니티를 하나하나 돈다.
중국타운, 인도타운, 아프리카타운을 돌고 바스티유를 거쳐서 생베르나르 성당까지 가는 트럭 여행이다. “생베르나르 성당은 프랑스의 불법 이민자들이 기거하면서 데모를 했었던 곳이에요. 프랑스의 이민자들 역사를 훑어가는 퍼포먼스지만, 사회·정치적인 이슈보다는 이 사람들 삶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 했어요.”
보따리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역시 사람이 관심이다. 김수자의 작품마다 지탱하고 있는 공통된 큰 줄기가 바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방법으로 그는 ‘꿰매고 싸는 행위’를 택했다. 보따리를 늘어 놓는 설치, 보따리를 트럭 가득 싣고 떠나는 퍼포먼스 등으로 처음 유명해졌기에 해외에서는 그를 ‘보따리(Bottari) 작가’라 부르기도 한다. 김수자 덕분에 서양 미술계에 ‘보따리’라는 말이 알려졌을 정도다.
그가 보따리, 특히 한국 고유의 이불보에 끌렸던 것은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대학원 재학 시절인 1980년대 초반이었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구상화에는 처음부터 아예 관심이 없었어요. 세계의 구조를 수직과 수평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어떻게 2차원 평면에서 보여줄까, 그리고 자아와 대상, 즉 캔버스를 어떻게 일체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와 이불을 꿰매려고 바늘 끝을 실크 천에 대는 순간, 번개가 치듯이 머리를 때리는 충격적인 에너지를 체험했어요. 천과 바늘과 내 관계 속에서 어떤 강렬한 결속을 느꼈어요. 그만큼 결속을 느낀 적은 그 이전에는 없었어요. 우주의 에너지와 내 몸의 에너지, 그 모든 것들이 바늘 끝으로 통하는 것을 느꼈지요.”
당시 국내에서는 모노크롬 회화가 유행이었고, 민중미술이 부상하기 직전이었다. 당시 트렌드와 전혀 동떨어진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당시의 유행이나 사조에 대한 반발이었을까?
“글쎄요, 딱히 반발이라기보다는, 모더니즘의 미학을 존중하면서도 획일적인 표현방식을 따르고 싶지는 않았어요. 학교에서도 토론을 하게 되는 자리가 있으면, 다양한 입장이 논의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어서 거의 매번 의도적으로 반론을 제기하곤 했어요. 순수미술을 좋아하고 존중하면서도 과연 미술이 삶과 연계돼 있지 않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도 늘 가지고 있었고요. 어찌 보면 그런 나 자신의 고민과 질문을 해결해준 도구가 바로 보따리였어요.”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분명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는 것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지만, 실제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김수자는 소중한 작가다.
작가의 이름, ‘수자’는 힌디어로는 ‘바늘’을 의미한다
보자기를 꿰매는 행위는 바늘을 통해 이뤄진다. 그래서 그의 작품 세계 한 축에는 ‘바늘’이 있다. 그는 1999년부터 일본 도쿄에서 시작해 상하이, 델리, 뉴욕, 카이로, 라고스, 런던, 파리 등에서 〈바늘여인〉을 찍어 왔다. 이 영상에서 작가는 군중 사이에 서서 등을 돌리고 가만히 서 있다. 옆으로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그의 몸은 인파 사이를 꿰뚫고 지나가는 바늘의 역할을 한다.
작가 자신의 몸을 ‘바늘’로 제공하고 이 세상 사람들 사이를 엮어주는 철학적인 행위가 해외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인도에 가서 작업할 때, 제 이름 ‘수자’가 힌디어로 ‘바늘’이라는 뜻이라고 들었어요. 충격적이었죠. 너무 신기하죠?” 그는 바늘과 자신이 처음부터 운명이었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보따리나 바늘은 한국 여인인 김수자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일상용품이다. 이미 있는 흔한 오브제를 택했다는 점에서 그는 현대미술의 큰 궤도 안에 있지만, 그의 작품에 사용된 물건은 물건 자체보다는 그 물건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삶과 현대미술의 첨단적인 면을 언급하기 위한 결정적인 도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레디메이드’라기 보다는, ‘레디-유즈드(ready-used)’ 오브제라고 해야 한다. ‘눈에 안 보이는’ 사람의 삶을 눈에 보이도록 환원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보따리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정말 다양하게 들어 있어요. 이불보로 펼쳐졌을 때에는 가족·부부·사랑·정착·안식을, 꽁꽁 싸매진 상태에서는 떠남·결단·이별 같은 의미를 담고 있어요. 보따리는 한 장소에 놓였을 때에는 한 인간의 삶이 정착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동시에 언제라도 다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어요. 또한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포괄하고 있지요.”
현대미술에서 이제는 흔해진 주제 ‘노마디즘(nomadism)’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수자에게 ‘노마디즘’은 그냥 삶 자체였다. 아버지가 군인이었기에 그는 어려서부터 보따리를 싸고 푸는 유랑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내 삶과 깊이 연관된 주제를 다루었던 게 지금껏 생명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라면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작품에 제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이 들어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아티스트로서 내 경험이 작품의 영감으로 번개처럼 순간적으로 연결이 되는 때가 있어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불교에서 말하는 ‘선(禪)’의 순간이 작가에게는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김수자의 작품은 관객에게도 ‘선’의 경지에 달하는 깨달음의 순간을 유도하곤 한다. 겉보기에 그의 작품은 별 말이 없다. 전시장에서 옆 사람과 떠들면서 작품을 무심결에 훑어보다가도 관객은 김수자의 작품 앞에 서는 순간 갑자기 말을 잃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관객으로 하여금 “쉿! 조용!” 하고 유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 들어 있는 메시지가 너무 강해서 관객에게 말없이 성찰하는 기회를 주곤 한다.
인도 델리의 야무나강 가에 서서 강 건너 저편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담은 〈빨래하는 여인(A Laundry Woman: Yamuna River, India)〉(2000), 도로 위에서 보시를 요구하는 〈구걸하는 여인(A Beggar Woman〉(2000~2001), 작가 자신이 길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집 없는 여인(A Homeless Woman)〉( 2001), 스페인 마드리드의 크리스털 팰리스(the Crystal Palace)를 빛과 숨소리로 바꾸어 호평 받은 〈호흡: 거울여인(To Breathe: A Mirror Woman)〉(2006), 도쿄 시세이도 갤러리에서 초청받아 제작한 작품 〈거울여인: 해와 달(A Mirror Woman: The Sun and the Moon)〉(2008) 등이 그런 성찰예술의 절정이었다.
왜 말이 없는 것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그는 “제가 원래 내러티브한 사람이 못 돼요” 했다. “이야기를 따라갈 수가 없어서 소설도 못 읽어요. 순간순간 영감을 던져주는 식의 소설이 아니라면, 진행이 안 돼서 못 읽어요. 아마 그게 제 성향인가 봐요.” 그래서 문학으로 치면 김수자는 소설가가 아니라 시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이규현, “천으로 삶을 표현한, 보따리 작가: 미술가 김수자”, 화제의 인물: 미술가(서울: 네이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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