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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윤난지 │ 아우름과 떠남의 미학: 김수자의 보따리
2020
Mark Rappolt │ Kimsooja - The New Normal
2020
Doris von Drathen │ KIMSOOJA, SCHAUENDES DENKEN
2020
‘작가 김수자’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보따리’다. 주로 서민들의 이삿짐이었던 알록달록한 이불 천으로 된 보따리는 김수자 작업의 화두이자 1990년대 미술의 주요 아이콘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또 다른 곳을 향한 떠남을 암시하는 보따리는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고 여행과 이주가 빈번해진 이른 바 전 지구화 시대를 표상하는 모티프가 되었다. 더하여, 한국의 토착문화,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문화와 그 문화의 이동을 의미함으로써 로컬과 글로벌, 주변과 중심이 교차하는 당대 세계의 문화지형도에도 적절하게 부합하였다. 보따리 작업이 구체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2년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이지만 그 연원은 이전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수자가 수업기를 보낸 1970년대 말~1980년대 초는 이른바 단색화 시대였는데, 이때부터 그는 단색화의 모더니즘 미학, 특히 그 고답적인 정신주의에 의문을 가지면서 천이라는 촉각적 재료와 바느질이라는 일상공예 기법을 평면작업에 적용하는 실험을 시도하였다. 또한 자신의 신체 움직임을 기하학적 구조로 분석한 <구조-몸의 연구>(1981, 사진, 실크스크린)에서처럼, ‘몸’을 작업의 주요 계기로 주목하게 된다. 몸과 그 몸이 살아가는 일상이라는 화두에 점차 이끌리게 된 것인데, 이에 확신을 갖게 한 계기가 작가가 자주 언급해온 어머니와의 바느질이다.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가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천이 가지는 기본 구조로서의 날실과 씨실, 우리 천의 그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드는 꿰매는 행위의 천과의 자기동일성,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1]
1983년의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당대 두 주류로 대치하고 있던 단색화와도, 민중미술과도 다른, 자신만의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이후 그는 알록달록한 천의 질감과 바느질 자국을 드러내는 천 콜라주로, 지게나 얼레 등 전통기물을 천으로 싼 오브제 작업으로, 그리고 천 조각들 자체를 오브제 삼아 집적한 아쌍블라주로 과감하게 나아갔다. 평면작업의 재료가 되었던 천이 점차 그 자체로서 미학적 의미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이런 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1992년 우연한 계기로 발견한 모티프가 ‘보따리’다. 그가 뉴욕 PS1에 체류 중이던 어느 날 천 재료들을 싸서 보관한 보따리가 눈에 띄게 되었는데, 작가의 말처럼, 그 순간 보따리는 “하나의 조각이고 회화”[2]가 되었다.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아우르는 보따리는 또한 바늘 없는 바느질, 즉 어머니와의 일상에서 발견한 새로운 미학의 또 다른 구현물이었다.
이렇게 발견한 보따리를 김수자는 같은 해 오픈 스튜디오에서 처음 전시하게 되는데, 이 작업에도 이전 오브제 싸기 작업과 마찬가지로 <연역적 오브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천으로 또 다른 평면을 만들어가는 초기 작업의 귀납적인 방법에 대해 천을 통해 오브제를 역 추적한다는 의미를 함축한 이 명칭이 보따리에도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보따리는 하나의 모티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업 원리를 구현한 시각 기호였던 것이다.
싸고 묶고 풀고 다시 싸는 과정을 함축한 보따리는 여성의 일상 특히 그 신체적 움직임과 긴밀하게 엮인 오브제인데, 이를 구체화한 예가 1994년의 전시 《바느질하여 걷기》(갤러리 서미)다. 전시장 바닥에 배치된 보따리들과 옷가지들, 오래된 가옥이나 자연 속에 놓인 보따리와 펼쳐진 천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작가를 찍은 영상, 그리고 그 설치 공간 속을 걸어 다니는 관람자를 찍은 실시간 영상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보따리가 여성 몸의 움직임과 하나가 되는 과정을 구현한 총체적 퍼포먼스였다. 영상에서 작가는 스스로 보따리들 중 하나가 되거나 보따리 천을 펼치고 싸거나 자연이라는 드넓은 천 속으로 바느질하듯 걸어 들어가는 행위를 시연하였다. 자신의 모든 작업을 천이 이끄는 ‘퍼포먼스’[3]라고 한 작가의 입장이 이 전시를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이렇게 관람자를 퍼포머로 끌어들이는 퍼포먼스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중외공원에서 이루어진 같은 제목의 작업에서 작가는 자연 속에 헌 옷과 보따리들을 펼쳐 놓고 관람자들이 그 속을 걸을 수 있게 하였다. 반전 운동의 상징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Imagine)’과 ‘스탠 바이 미(Stand by Me)’가 흘러나오는 현장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떠올리게 하면서 이 작업의 정치적 의미를 부각하였다. 두 달여 전시 후에 흙과 낙엽과 옷이 뒤범벅이 된 현장은 이를 다시 확인하게 했다. 이 작업을 통해 보따리는 희생자의 넋을 기린다는 치유의 의미 또한 함축하게 되었다. 보따리는 퍼포먼스와 엮이면서 바느질로, 그 신체적 구현으로서의 걷기로, 그리고 그 심리적 효과로서의 아우르기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간 것이다.
이런 퍼포먼스와 함께 보따리가 움직임 혹은 이동의 매체이자 도상으로 부각된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보따리와 작가의 몸이 함께 이동하는 <떠도는 도시들-2727Km 보따리 트럭>(1997)이 그 증거다.
“보따리를 싸고 풀듯이 내 몸 역시 끊임없이 머물고 떠납니다.”[4]
1995년의 한 대담에서의 작가의 이 말이 예언이 된 듯, 2년 후 그는 스스로 하나의 보따리가 되어 다른 보따리들과 함께 머물고 떠나는 여정을 시도하였다. 보따리를 실은 트럭에 작가가 함께 타고 11일 동안 전국의 마을들을 누비는 퍼포먼스이자 이를 기록한 비디오 영상인 이 작업은 아우름과 함께 떠남의 계기를 함축하는 보따리 미학을 작가가 몸소 실천한 예다. 이사가 잦았던 어린 시절 주거지들을 거쳐 가는 이 여정을 통해 그 자신도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끊임없이 떠나는, 혹은 떠남으로써 또 다른 것을 아우르는 보따리가 되었다.
작가 자신 또한 유목 혹은 여행의 주체로 부각된 것인데, 전 세계 여러 도시들에서 이루어진 거리 퍼포먼스를 기록한 <바늘 여인> 시리즈(1999~)는 이런 작가 개념이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진 예다. 작가 스스로 바늘이 되어 현지인들 속으로 스며드는 과정을 기록한 이 비디오 작업에서 보따리는 사라졌지만 그 의미는 “치유의 도구”[5]로서의 바늘을 통해 구현되었다. 여기서 김수자는 자신의 몸을 스쳐 가는 낯선 이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에게 여행은 다른 문화를 포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또한 있는 그대로 두고 떠나기 위한 것이다. 이는 19세기 산업혁명이 촉발한 남성적 정복의 여행과 대극에 있다. 마치 바늘이 헝겊과 헝겊을 이어주고 떠나듯, 보따리가 서로 다른 천들을 감쌌다 풀어주듯 그는 아우름과 떠남의 반복으로서의 여행, 이른바 여성적 포용의 여행을 실천한 것이다. 어머니와의 바느질 체험이 사회적 차원으로 드러난 그의 여행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부드러운 정치학의 구현이다. 소외된 지역이나 분쟁 지역에서 이루어진 이후의 작업들이 이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김수자의 작업을 이끌어 온 것이 보따리와 그 미학이며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보따리는 펼쳐져 빨래처럼 널리기도, 낯선 이국 카페의 테이블보로 쓰이기도, 조각조각 잘려 벽돌 틈새에 끼워지기도 하면서 변이를 거듭해 왔다. 비디오 작업 또한 장소를 달리하면서 지속되었다. 보따리 트럭은 1998년 사웅파울로 비엔날레 등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전시되면서 이른바 노마디즘(nomadism)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특히 ‘코소보 난민에게 바침’이라는 부제가 붙은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것은 이주와 그에 따른 문제를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 파리에서 이민자 관련 장소들을 순회하면서 다시 제작된 보따리 트럭에는 ‘이주’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는 최근 작가가 전시감독을 맡은 푸아티에 비엔날레 《가로지르기/김수자》(2019.10.12.~2020.1.19.)에도 전시되었으며, <보따리>라는 이름으로 설치된 뉴욕 이삿짐 컨테이너와 함께 전시의 의미를 각인시켰다. 보따리가 바느질로 개념화된 <바늘 여인> 또한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시연되어 왔다.
마드리드 크리스털 궁전 설치 작업(2006)에서 시작된 <숨쉬기> 연작은 보따리 개념을 건축적 공간에 적용한 예다. 유리창에 붙인 회절격자 필름을 통해 오방색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을 연출한 것인데, 이는 빛으로 가득 찬, 그리고 그 빛의 움직임처럼 살아 숨 쉬는 보따리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작가의 숨소리와 허밍소리는 그 공간을 거대한 신체로 체험하게 한다. 전 세계 다양한 건물들을 옮겨 다니며 지속되고 있는 이런 작업과 함께 보따리는 점차 비 물질화되고 개념화되어 왔는데, 근작 <마음의 기하학>(2016)은 그것이 심리적인 차원으로 발현된 예다. 관람자들은 점토로 각자의 형상을 만들면서 마음의 보따리를 싸고 푸는 과정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넘나들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를 관통하고 2000년대로 이어진 김수자 작업은 그 자체가 신체적, 심리적 유목의 도정이었다. 평면도 입체도, 비움도 채움도 되는 보따리의 유연함이 그의 작업, 그 유목을 가능하게 한 것이며, 이를 통해 그의 작업은 인간 사회를 넘어 자연과 우주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작업의 내용 뿐 아니라 작업방식, 나아가 전시와 사회활동에 있어서도 작가의 유목은 지속되었다. 자신의 뉴욕 행을 일종의 “문화적 망명”[6]으로 본 작가 말대로, 그는 단지 물리적으로 뿐 아니라 심리, 사회적으로도 거처를 옮겨 다닌 것이다. 1980년대 중·후반에는 일본과 대만, 1990년대 초·중엽에는 뉴욕, 이후 전 세계 여러 도시들로 이어진 그의 여정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언제쯤 바느질 뜸을 따라 걸어가는 이 길이 끝날 것인가”7라는 작가 자신의 질문은 진행 중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작업의 여정에서 작가 이미지는 거의 변하지 않는 모습, 즉 긴 검은 머리를 묶거나 땋은 뒷모습으로 기호화되어 왔다. 작업의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작가 자신은 전형적인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고수해왔는데, 이런 이미지는 그의 작업을 페미니즘과 관련짓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김수자 스스로도, 페미니스트 작가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여성적 정체성을 부정하지는 않으며 작업을 통해서도 이를 일관되게 추구해왔다. 여성적 일상, 특히 어머니와의 모성적 유대관계를 통해서 발견한 소재와 기법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이른바 ‘여성적 감수성(feminine sensibility)'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는 점에서 페미니즘 중에서도 본질주의(essentialism)와 닿아 있다. 자신의 재료인 천을 “감싸고 덮고 보호하는 것” 즉 “여성의 자궁과 같은 이미지”8로 본 작가의 입장이 이를 확인하게 한다.
1990년대 미술에서 김수자 작업이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재료와 기법을 통해 여성적 일상을 미술의 영역으로 수용하고 설치와 퍼포먼스, 비디오 등 새로운 방법과 매체 실험을 시도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몸과 마음 같은 생리, 심리의 세계와 기하학적 구조라는 수학 혹은 과학의 원리를 융합하려는 의도가 초기 작업에서부터 일관되게 내재되어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듯이, 그의 작업의 진정한 의미는 서구 근대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넘어선 또 다른 미학을 제안한 점에 있다. 이는 서구 근대를 추동한 남성 미학, 그 배제의 논리에 대해 포용의 원리라는 대안을 제안하는 점에서 여성 미학으로 이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보따리는 이러한 여성 미학의 출발점이자 그 도상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또한 모든 것을 떠나보내는 보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진해 온 모더니스트 영웅 신화, 그 남성적인 직진의 논리를 비껴간다. 한국성의 기호이자 여성성의 기호인 보따리는 다양한 문화들과의 접점과 함께 차이를 또한 만들어내면서 로컬 문화를 글로벌한 지평에 스며들게 하였다. 로컬 문화를 통한 글로벌한 아우름의 표상인 그것은 정복이 아닌 포용을 지향하는, 그런 의미에서 여성적인 글로벌리즘의 도상이다.
몸과 천이 하나가 된 또 다른 보따리 <만남-바라보며 바느질하기>(1998, 2011)에서 나는 천에서 혼령을 불러내는 영매와 같은 예술가, 김수자를 본다. 그는 보따리 작업을 시작한 이래 아우름과 떠남을 반복하면서 인간과 인간, 문화와 자연의 교응을 중개해 왔다. ‘아우르고 떠나기’ 이것이 김수자의 노마디즘, 이를 통한 글로벌리즘의 진정한 정체다.
[Note]
[1] 김수자, 「작가노트」, 『김수자』(전시도록), 갤러리 현대, 1988, p.9.
[2] 박영택, 김수자(대담), 「김수자: 평면에서 입체로의 접근, 보따리」, 『공간』, 1996년 6월, p. 116.
[3] 김수자, 「천과 삶」, Sewing into Walking(전시리플릿), 갤러리 서미, 1994, n.p.
[4] 황인, 김수자(대담), “Sewing into Walking: Cloth, Video, Sound Installaion by Kim Soo-Ja”, 『공간』, 1995년 1월, p. 38.
[5] 김수자의 편지(2000. 2. 15): 태현선, 「김수자: 세상을 엮는 바늘」, 『김수자: 세상을 엮는 바늘』(전시도록), 로댕갤러리, 2000, p.13.
[6] 후 한루, 김수자(대담), 「새로운 빛을 밝히다」, 『김수자: 마음의 기하학』(전시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16, p. 24.
2020
While most people were locking down this May, Korean artist Kimsooja was hanging out laundry, in a wood northeast of Malmö, not too far from the border between Sweden and Denmark, on the site of a medieval castle and an organic farm. Between the trees, 100 pristine white bedsheets are pinned to clotheslines and flap, like so many captured cartoon ghosts, in the wind. They give an idea of stains removed, fresh starts, new beginnings, extreme hygiene and slates wiped clean. And, with their embroidered trims (an example of local craftspersonship), of old traditions of manufacture and housework, which to a lot of us might seem anachronistic in a world of urbanised living, rapid manufacture, household convenience and washing machines. White: the mark of mourning, purity and rebirth. Or perhaps all this is to overthink what is simply evidence of an easily comprehensible, quotidian routine.
But overthinking is a pastime in which many of us have had an opportunity to indulge over the past few months. Locked down, changing our routines, afraid of other people, afraid of going out, conjuring profundity out of banality and, egged on by politicians around the world, constantly redefining what we mean by ‘normal’. As if the term was anything other than subjective in the first place.
The sheets make up an artwork titled A Laundry Field (2020). If that ‘A’ before ‘laundry field’ suggests that it is one of many, it is. And in more ways than one. On the one hand, because what we see is nothing new: many people around the world hang out their washing to dry; they’ve been doing it since they had things to wash, and things to hang them on. If you stumbled across the washables here, at Wanås Konst, you’d be forgiven for thinking that it was simply evidence of a routine interrupted by, say, a sudden global health emergency meaning that no one was around to take it in. On the other hand, A Laundry Field is a development of earlier works by Kimsooja, such as Mumbai: A Laundry Field (2007–08), a multi-channel video that uses footage of the city to cast the overcrowded Maharashtra port as a field inhabited by people wearing clothes and people cleaning or drying clothes. Both works play with their ‘matter-of-fact’ nature and are evocative in their banality, their normality and the ways in which they accept – but do not insist on – projection and interpretation on the part of the viewer. You want to see garments as embodying the history and traces of human bodies? Fine. You just see ordinary life? That’s a truth too. It’s a form of equivocation that lies at the heart of much of Kimsooja’s work. And, you might say, at the heart of much good art. ‘I saw art in life and life as art,’ the artist said in a 2008 interview with Susan Sollins. ‘I couldn’t separate one from another. So my gaze to the world and my questions were always related to life itself.’
Kimsooja’s best known works feature bottari, a traditional Korean cloth bundle used to wrap goods in preparation for transport by hand. While such fabrics (bottari are often recycled from colourful bedspreads) have acquired links over time to the gendering of labour, the dynamics of domestic and civic power and the segregation of public and private space, bottari bundles are also evocative of displacement and migration (frequently, and particularly in terms of Korea’s modern history, as a result of war and famine), symbolic of both the home and a lack of one.
Although this interest is born of the artist’s Korean cultural heritage – her own ‘reality’, as she puts it – it developed as a medium to be used in more than just two-dimensional works (the artist trained as a painter) when she was displaced from that heritage, during a 1992 residency at moma ps1 in New York. There, the museum became a space in which to accept the bottari’s cultural baggage and to subvert it. In the resultant installation, Deductive Object, she inserted fragments of Korean bedcovers into gaps in the gallery’s brick wall and made static sculptures out of a series of everyday objects covered in bottari cloth. Over the years the bottari works have developed simultaneously as a reality and an abstraction, similar to the way in which civic and social culture across the world has drifted these past few months.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1997, first shown in the group exhibition Cities on the Move, from which the work’s title derives) was a performance and video documenting the artist’s 11-day journey across South Korea, visiting places with which she had a personal connection, on the back of a truck overloaded with tied bottari bundles; To Breathe: A Mirror Woman (2006) saw her clad Madrid’s Crystal Palace in translucent, light-refracting film in such a way that the building itself and the atmosphere within it became a colourful wrapping, a type of bottari.
At the same time Kimsooja has expanded such interests beyond her own cultural inheritance in works like the ongoing Thread Routes (2010–), a series of videos inspired after witnessing traditional lace- making in Bruges in 2002. Taking the performative elements of local textile cultures as its subject, the first focuses on Peruvian weaving and the relationship it has with issues of tradition, gender, historic and vernacular architecture, and local landscapes.
Further chapters have explored European, Indian, Chinese, Native American and Moroccan practices to create a body of work that further evokes relationships between the particular and the universal, and brings to mind the poetry of mystics such as Kabir. A fifteenth-century Muslim weaver from India, Kabir linked the process of textile manufacture to meditation on and exploration of the divine in his verses. Indeed, they proved to be so successful and easily comprehensible that his influence spans both Islam and Hinduism, and the practices of Bhakti and yoga. Works by Kimsooja such as To Breathe: A Mirror Woman and the interactive installation Archive of Mind (2016) have featured recordings of the artist’s own breathing as components of the installation, while she refers to the videos that make up Thread Routes as a form of “visual poetry”.
“The reality of myself and my culture has constantly and gradually evolved, and rather dramatically since I moved to New York,” the artist writes as we exchange emails between London and Korea and their respective lockdowns.
“This move gave me the perspective of my own culture as part of a multi-cultural context. Yet, I held the string of my particular personal life as a continuum that questions fundamental and existential problems: what Zen Buddhism describes as ‘Wha Du (in Korean, Gong An in Chinese)’. This might have given me the consistency and long breath in my career.” She’s referring to the practice in which a story, statement or question is used to provoke a crisis of doubt in the mind of a student of Zen on their pathway to enlightenment. And perhaps nowhere in her work is such a crisis evoked more than in the video series A Needle Woman (1999–2001). In it the artist, clad in grey, is recorded, standing motionless, her back to camera, generally against the flow of traffic, in some of the busiest pedestrian junctions in some of the most densely populated metropolises in the world (Shanghai, Tokyo, Mexico City and Delhi). It’s a work that explores the ways in which losing yourself is linked to finding yourself, about the individual and the collective, and one that has added resonance now that crowds are a source of added fear. The last is something the Nobel Prize-winning writer Elias Canetti described as ‘the touch of the unknown’ in his 1960 analysis of relations between the self and others, Crowds and Power. Although one of Canetti’s assertions – ‘It is only in a crowd that a man can become free of this fear of being touched. That is the only situation in which fear turns into its opposite’ – is looking a bit shaky right now.
“Artists often discover the art in daily life,” the artist writes, “and bring daily life to the museum to contextualise it within art history.” Indeed, even before the intrusions of urinals and readymades and the age of modern art museums, attempts by the authors of poetry (whether visual or written) to engage with the unauthored poetics of everyday life have enjoyed a rich history, not least in painting, and works by Joseon artists such as Danwon, or the seventeenth-century Dutch masters. Yet on the site of the museum there is often a question about what – between daily life and art history – is contextualising or responding to what. And an anxiety about whether it is the artworks in a museum or the circumstances of lived experience that gets audiences closer to truths about the world. All of which responds to a more general paranoia that what enters the museum is removed from lived life. And perhaps it’s a paradox of museum culture for artists like Kimsooja that the more she has sought to introduce the ordinary, the more her work is celebrated as extraordinary.
As we discuss A Laundry Field, Kimsooja explains that her works have been shown mostly within the museum context, but for a few exceptions. “In museum spaces,” she writes, “I used fans, lights, and sounds to give a vibration to it and bring sensation to the audiences as they encounter the persona of the fabrics. When situated within nature, such as Wanås sculpture park [the Swedish foundation is located in a natural landscape], the wind, light, cast shadows of trees, and bird sounds paint the laundered bedcovers and evoke the memories and poetics of the bedcovers. I find A Laundry Field installed at Wanås sculpture park gives an experience that blurs the boundary between daily life and the museum context that maximises the audience’s imagination and experience.” Reading this, it’s hard not to think of the new work as an attack on the exceptionalism of the museum context.
In that, the exhibition at Wanås, titled Sowing into Painting, goes a little further than other works by Kimsooja. It traces a circle through her varied output (it contains chapters one, two and four of Thread Routes, a series of the Deductive Objects (1993–2020), Meta-Painting (2020, which comprises stretched and frame linen canvases as well as bottaris made of linen canvas and used clothes) and To Breathe (2020, an evolution of the work shown in Madrid). And it traces a circle through the manufacture of painting in the title work Sowing into Painting, a field sown with two types of flax that are harvested to produce canvas and other fabrics as well as the linseed oil that is classically used as a binding agent in Western painting. It returns the exceptional to the normal, culture to nature, and a life observed (not least in the types of paintings of ‘everyday’ life that populate museums and other archives) to a life lived.
— ArtReview Asia, Summer 2020
2020
Zweimal in ihrem 37-jährigen Werk hat sich die südkoreanische Künstlerin auf ihr persönliches Leben bezogen. Im Herbst 2019 stellt Kimsooja einen 6 mal 2,4 mal 2,6 Meter großen Container auf den Platz vor die Kathedrale von Poitiers (s. Kunstforum Nr. 265) und markiert damit ihren Abschied von New York, wo sie, seit den ersten Stipendien bis heute, fast 30 Jahre gelebt hatte. Ein radikaler Wendepunkt, denn seither pendelt Kimsooja zwischen Seoul und Paris, wo sie sich vielleicht in der Zukunft niederlassen wird, auch wenn sie längst im Unterwegssein zuhause ist. Der Container aber birgt nicht nur ihre Umzugskisten, sondern auch ihre künstlerische Weltsicht: Gelb, Rot, Blau, Weiß, Schwarz, Gelb, Rot, Blau … skandieren die leuchtenden Streifen auf seinen Wänden die alte koreanische Tradition eines Farbkosmos, der bis heute das analogische Denken der Künstlerin prägt: So entspricht Blau dem Holz, Rot dem Feuer, Gelb dem Erdmittelpunkt, Weiß dem Metall und Schwarz dem Wasser; die fünf Elemente finden ihr Pendant in den fünf Himmelsrichtungen und Jahreszeiten, die ihrerseits um ein Zentrum kreisen. Wie das Farbspektrum lebendig wird im Sonnenlicht, so erwacht der Kosmos im universalen Atemstrom zu beständiger Wandlung und Bewegung. Ein webender Austausch verbindet alle Elemente, Zeiten, Winde und Wesen zu unaufhörlich neuen Analogiereihen. Der Container hat den Titel „Bottari 1999 – 2019“ und holt damit den zweiten ebenso radikalen Wendepunkt ins Gedächtnis: Zur Biennale von Venedig 1999, stellt Kimsooja in Harald Szeemanns d’Apertutto ihren blauen „Bottari Truck in Exile“ vor eine Raum öffnende Spiegelwand. Das Vehikel ist Zeitzeuge ihrer Abschiedsreise von Korea, als ihr fester Wohnsitz in New York entschieden war. In elf Tagen hatte sie 2.727 Kilometer zurückgelegt und in den Orten ihrer Erinnerung die Einwohner um ausgediente Kleider und Bettüberwürfe gebeten. Gefaltet, eingewickelt, an den Stoffenden zusammengeknotet, so entstanden die traditionellen Reisebündel, die seidigen, farbenreichen „Bottaris“, die bald zum Leitmotiv ihrer Arbeit werden sollten. Zwischen den anwachsenden Bergen von Bottaris auf der offenen Ladefläche des Lasters sitzend fuhr sie über Bergpässe und Feldweg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hieß diese erste gefilmte Performance.
Als Artist in Residence am PS1, hatte die Künstlerin 1992 in ihrem New Yorker Atelier zum ersten Mal den skulpturalen Aspekt ihrer eigenen Reisebündel gesehen. Von jeher war sie an die Gestik gewöhnt, Kleider, Hausrat, Bücher mit den Bettüberwürfen, die traditionell in jede Familie gehörten, zusammenzubinden. Auf diesen Tüchern, den kunstvoll gewirkten Ybulbos, wurde geruht, geliebt, geschlafen, darin wurden Säuglinge auf den Rücken gebunden und getragen, Kranke und Tote transportiert. Die Funktionen der Ybulbos beschreiben also einen Existenzbogen. 1994 hatte die Künstlerin in Korea ihre erste Installation photographiert: Bottaris auf der Türschwelle eines verlassenen Hauses, im südkoreanischen Dorf Yangdong, der Umgebung von Gyeongju. Die leuchtend farbigen, kunstvoll gewirkten Bottaris als Spuren von Angst, Hast und Flucht vor diktatorischer Unterdrückung. Dieser politische Hintergrund prägt die Bilder der Performance-Reise,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Die Gesten des Zusammenfaltens, Bündelns, Knotens hatten den Rhythmus dieser Zeitreise bestimmt. Als Bottari der Gegenwart hatte die Künstlerin sich selbst verstanden, die auf ihrer Reise in die Zukunft versucht, Spuren der Vergangenheit zu sammeln. Denn die ausgedienten Kleider und Bettüberwürfe mit ihren Gerüchen und eingeprägten Gesten sind für Kimsooja vor allem dies: Erinnerungsvehikel menschlicher Gegenwart. Ähnlich wie Photographien bezeugen sie vergangenes Leben.
In diesem Sinn hatte Kimsooja im Jahr 1995, zum 15. Jahrestag des Massakers von Gwangju, auch hier abgelegte Kleidung und Bett-Tücher gesammelt. Die südkoreanische Stadt war weltweit bekannt geworden durch den von Studenten angeführten, massiven Aufstand der demokratischen Bewegung, die vom Militärregime im Mai 1980 brutal niedergeschlagen worden war. Kimsooja baut kein Monument. „Sewing into Walking“ heißt ihre Performance: Die Künstlerin schleppt Bottari um Bottari in den Wald des Massenfriedhofs, und deckt im langsamen Gehen die alten Kleider und Ybulbos über die Erde, als müßte sie heilend gewärmt werden, als müßte den Toten, die Umarmung ihrer Nachbarn nachgetragen werden. So näht Kimsooja tatsächlich die Vergangenheit in die Gegenwart, näht Zeiträume, Entstehen und Vergehen zusammen. Auf ihrem Weg, in ihrem „Walking“, tritt sie zum ersten Mal als verkörperte Nadel auf, die in ihrer Vertikalität die horizontale Kleiderschicht mit der Erde verbindet.
In dieser Künstlerauffassung eines konzeptuellen Nähens, hatte sie 1984 in Seoul, nach ihrem Studium der Malerei, die Arbeit „The Earth and the Heaven“ aus Seidenresten zusammengenäht, ein Achsenkreuz aus den Farbfeldern der fünf Elemente. Was sie daran interessierte, war die Gestik an der Grenze, die Nadelbewegung selbst, in ihrem verbindenden Durchqueren unterer und oberer Schichten, die Kimsooja wie selbstverständlich auf die Zeit, den Raum und das Universum bezieht. Die Bewegung der Hände, wenn sie die vier Stoffzipfel der farbenreichen Bett-Tücher unter- und übereinander führen und einen Knoten festzurren, ist der nähenden Geste vergleichbar. Wenn aus dem Falten und Bündeln des Tuches nun eine kugelförmige Dreidimensionalität entsteht, erscheint es für Kimsooja wiederum selbstverständlich, darin eine Welt zu sehen. Damit nähert sie sich, so könnte man es sehen, über ihr experimentell künstlerisches Tun, einem Mathematiker und Philosophen der europäischen frühen Aufklärung: Leibniz war aus dem spirituell-körperlichen Doppelcharakter des Tuches und dessen Faltungen, die er eingehend betrachtet hatte, die Einsicht hergeleitet, das gesamte Universum sei ein einziger kontinuierlicher, sich wandelnder Körper, der verschiedene Gestalten annimmt. Die Möglichkeit dieser Parallele zeigt die transkulturelle Dimension, die Kimsoojas Weltsicht öffnet.
In einer Reihe von Performances zwischen 1999 und 2005 erweitert sie die Logik ihrer Künstlerkonzeption, Nadel zu sein. Als unbewegliche Gestalt im grauen Gewand wird sie in der Rückenansicht für den Zuschauer zum Medium, das vermag, den Atem und die Wahrnehmung zu verlangsamen, den Betrachter hineinzuziehen in verdichtete Situationen des Zeitraums. So sehen wir sie 1999 in Japan, als „A Needle Woman – Kitakyushu“, horizontal auf einem langen, glatten Felsen ausgestreckt; ihr Körper verbindet sich mit der grauen Gesteinsformation, zeichnet die Grenzlinie zwischen Himmel und Erde nach. Der Zuschauer, auf ihren Rücken schauend, atmet wie sie den offenen Himmelsraum und dessen Stille, teilt ihr Erleben. Ein Jahr später steht sie in Indien an der Böschung des Yamuna River; vorübertreibende Verbrennungsreste zeigen sein stetiges Strömen. Kimsooja nennt sich hier „A Laundry Woman – Yamuna River“, schaut in dunstige horizontlose Ferne, weiß, der Fluß wird weiterströmen, auch nach ihrem Lebensende. In folgenden großen Video-Reihen, steht sie im Mittelpunkt von dicht bevölkerten Metropolen, wie Tokio, Mexico City, London oder Kairo. Ihre unbewegliche graue Gestalt erscheint als Seismograph im Zeitstrom der vorüberziehenden Menschenmassen; ein Strom, der kaum innehält, wenn das Gesicht eines Vorübergehenden dem ihren begegnet. In einer zweiten großen Serie bereist sie ebenso als unbeweglicher Zeitzeuge, konzentriert auf ihr physisch gegenwärtiges Sein, die Krisenherde der Zeit, Havanna, Rio de Janeiro, Jerusalem, N’Djamena, Sana’a, Patan und Nepal. Fast einem Kriegsreporter gleich, muß sie in dieser zweiten Performance-Reihe, oftmals um ihr Leben fürchten. Ihre Präsenz bewegt sich also auch hier an einer Grenze. Die Identifikation mit der physischen Zeugenschaft der Künstlerin, mag im Betrachter eine neue Aufmerksamkeit für das Weltgeschehen wecken. Die Video-Installation der zweiten Reihen war 2005 in Aperto zu sehen.
Vom Phänomen der Nadelbewegung, vom Prinzip ihres Verbindens verschiedener Raum- und Zeitschichten ausgehend, entwickelt Kimsooja von nun an erweiterte Bildkonzeptionen, indem sie das Phänomen des Spiegels, das schon angeklungen war, zum Thema macht. Denn auch der Spiegel führt verschiedene Raumschichten zusammen. Wie die Nadel bleibt der Spiegel unsichtbar, erschafft Bilder und verschwindet mit ihnen. Wie die Nadel markiert der Spiegel eine Grenze des Raums. Auch sein Auftritt bezeichnet eine Grenze der Zeit, den haarscharfen Augenblick, wenn Zeit erst geschieht. Im Palacio de Cristales in Madrid verband Kimsooja dieses Agieren des Spiegels mit ihrem ruhigen Atemgeräusch. „To breathe – A Mirror Woman“ hieß die Arbeit, im Jahr 2006: Einer lebendigen Bestimmungsgröße des Raums gleich, so steht sie als zierliche schwarze Gestalt auf einem grenzauflösenden Spiegelboden, inmitten von hohen, funkelnden Glaswänden, die mit einem optischen Prisma beschichtet sind. Kein Halt nirgends: Unter den Füßen werden die Glaskuppeln zum schwankenden Abgrund, der Körper schwebt im Raum, dessen Grenzen zerstieben in einem Feuerwerk der Spektralfarben. Atmender, Licht durchpulster Raum. Damit öffnet Kimsooja ihre Performance für den Betrachter, der hier nun selbst die Bewegungen von Raum und Zeit ausloten kann.
Das ist der Absprung für die Künstlerin in eine bis dahin nicht gekannte Freiheit, die Welt aus dem Blickwinkel des Ein- und Ausfaltens von Stoffbahnen zu verstehen: Kimsooja findet ihre Bilder auf der Straße und in der Natur. So beobachtet sie die Wäscher in den Armenvierteln von Mumbai: die daraus entstandene Videoinstallation heißt, „Mumbai: A Laundry Field“, 2007–2008. Die Kamera schafft eine Analogie zwischen Körper und Tuch, wenn die Wäscher ihre harte Arbeit, das Bürsten und Reiben, das Ausspülen, Wringen und Ausschlagen der hoch auffliegenden, spritzenden Stoffe unterbrechen und sich selbst unter den Wasserschlauch stellen. Daneben Bilder von der alten Gleichung Habitat und Habit, wenn Obdachlose ihren Schlafplatz auf der Straße und sich selbst mit Tüchern schützen.
Die seltenen Weltgegenden, die von menschlicher Zerstörung noch bewahrt sind, sind das Thema in einer Folge von acht Filmen, die das unaufhörliche Verwandeln im Austauschtanz der Elemente beobachtet: „Earth-Water-Fire-Air“, 2009 – 2010. Achtmal zeigt die Kamera deren fließende Interdependenz: Das innere Feuer der Erde und seine rotglühende Lava erstarren zu schwarzen, noch weiterglühenden Gesteinsflammen; das Feuer kann ohne die Luft nicht sein; eine Wasseroberfläche gleicht Bodenwellen; eine Meereswelle schlägt meterhoch gegen einen Felsen, während ihre im Sonnenlicht aufwehende Gischt das Feuerwerk der Spektralfarben entfacht – unmögliche, alltägliche Verbindung von Feuer und Wasser. Was Kimsooja zeigt, ist das haarscharf austarierte Zusammenwirken der Elemente und ihrer Kräfte, deren Wandlungen ohne unser Zutun beständig neue Bilder erzeugt, an der Zeitgrenze des Augenblicks. Kimsooja zeigt die andere Seite: Als gelte es für den Betrachter ein Atemreservoir zu schaffen, trägt sie unermüdlich Bilder zusammen aus einer weiterlebenden Harmonie. Ihr Künstlercredo heißt verbinden, heilen, weben, statt trennen, zerreißen und verwerfen. „Thread-Routes“ ist der Titel ihrer bis heute weitergeführten Folge, die 2010 begann, und bisher sechs abgeschlossene Filme umfaßt: Quer durch die Welt folgt die Künstlerin hier den selten gewordenen Spinnerinnen, Weberinnen, Klöpplerinnen, Gerbern und Stoffdruckern mit der Kamera. Auf den Gebirgspfaden des Altiplano von Peru beobachtet sie, wie alteingeübte Hände Schafswolle zu Fäden zwirbeln, im Gehen, die Spindel kreiseln lassen, irgendwo unterwegs einen Haken in die Erde schlagen, Fäden spannen und ihr Weben beginnen. Der Wiederholungstanz uralter Gesten beseelt von Afrika bis Kroatien diese Filme, deren Bilder immer wieder das Weben des Windes, der Wolken, des Lichts und der Schatten verbinden mit den fabrizierenden Händen und ihren Fadenwegen. Die Akteure sind in jedem Filmabspann mit Namen aufgeführt, oftmals zusammengenähte Namen aus den ursprünglichen und später aufgezwungenen Kulturen. Vier dieser Filme waren im Herbst 2019 in Poitiers zu sehen. Nichts ist nostalgisch; die Bilder leben aus dem dokumentierten Tun heraus.
Nichts manipulieren, nichts hinzufügen, das ist ihr Schaffensprinzip. Kimsooja, die ihre Arbeit aus ihrer pragmatischen Beobachtung entwickelt, anerkennt nur ein Künstlervorbild: John Cage. Kurz nach ihrem Studium hatte sie 1985 zur Biennale von Paris dessen weißen Container gesehen. Im Innenraum seiner Leere und Stille war an der Wand ein einziger Satz zu lesen: „Whether you try to make it or not, the sound is heard“. Diese Worte haben die Künstlerin seither begleitet und bestärkt in ihrer Künstlerhaltung eines „Non-Making“, in ihrer Überzeugung, keine Gegenstände herzustellen. Bis heute ist sie davon nicht abgerückt. Während ihrer Ausstellung in Poitiers, im Herbst 2019, sind die Besucher aufgefordert, an einem „Archive of Mind“ mitzuwirken. Im Palais der Ducs d’Aquitaine steht, wie zuvor im Museum für zeitgenössische Kunst in Seoul, der große ovale Holztisch mit seinen Schemeln. Die Gäste bedienen sich aus großen Lehmklumpen, setzen sich an den Tisch, drehen ihre Handvoll Lehm zu einer Kugel und hinterlassen sie dort. Die Stille öffnet das Gehör für ein leises auf- und absteigendes Wassergurgeln, ein vertikales Echo auf die horizontalen Kreisbahnen am Tisch. Es dauert, bis eine Kugel sich formt. Die Wiederholungsgeste wird zum Alltagsfilter. Das Freigeben eines eigenen Bottari öffnet einen anderen Denkraum. Sich beteiligen, ohne zu besitzen, ohne zu besetzen.
Diese Logik wird einen Kreis schließen, wenn Kimsooja im Verlauf von 2020 im Park der schwedischen Wanås Foundation, Leinen aussäen, seine blau blühenden Felder, seine Ernte und schließlich das Fadenspinnen und Weben von groben Leinwänden beobachten wird. Keine Objekte, keine Bilder. Auch nicht im Dezember 2020, wenn sie in der Kathedrale von Metz ein Fenster aus dichroitischem Glas herstellen wird: eigentlicher Autor werden die Farbbrechungen des Lichts sein. Was sie erschafft, sind Seherfahrungen, mit Leibniz gesagt, ein schauendes Denken.
— Kunstforum, Bd.267, May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