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Lee Sunyoung │ Borders Crossed at Byways
2022
이선영 │ 김수자, 사잇길로 넘나든 경계
2021
김홍희 │ 김수자의 보따리
2020
윤난지 │ 아우름과 떠남의 미학: 김수자의 보따리
2016
정재숙 │ 김수자, 바늘이 되어 인류의 마음을 꿰매다
2013
Lee Sohl │ An Anomaly in the Palace of Self-Worlds
2013
이솔 │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이례와 변칙을 외친다
2013
이건수 │ 김수자 〈호흡: 보따리 (To Breathe: Bottari)〉
2013
김현진 │ 빛과 어둠으로 채운 한국관
2003
Jonathan Goodman │ Conditions of Anonymity: The Performance Art of Kimsooja
2003
김찬동 │ 김수자의 바느질
2002
Lilly Wei │ Kim Sooja at Peter Blum
2001
Gregory Volk │ Kim Sooja at P.S.1
2001
Ken Johnson │ One Woman's Serenity in the Thick of Things
2000
Paul Ardenne │ Sooja Kim: InterCommunication Center (ICC)
2000
Harald Szeeman │ Kim Soo-Ja: Bottari
1999
Barry Schwabsky │ Folds and Loose Threads
Lee Sunyoung (Art Critic)
2022
Even just a quick skim through Kimsooja’s career makes us wonder how a person could have possibly worked so hard. She made her debut on the international stage rather early, which was not all that large for Korean artists of her generation, and she gained domestic recognition, thanks to her success overseas. Yet that is not to say that she dives in for anything and everything; she refuses to show her work in exhibitions that do not align well with her philosophical and aesthetic beliefs or her sense of ethics, no matter how large and reputable they are. The long list of exhibitions and projects she participated in at home and abroad is the result of her enthusiasm about looking for opportunities to truly demonstrate her work and challenging herself through them. She took the decisive action to relocate not to settle somewhere, but solely for the sake of her work. Born in 1957, Kimsooja falls right in the middle of Korea’s baby boomer generation, which refers to those born between 1945 and 1965. Since this generation saw a surge in population, she had to live in an extremely competitive Korean society while compressed modernization was underway in the ashes of war. Opening a short critique of an artist’s work tritely with the generation theory is relevant to the questions about Kimsooja’s journey that seems close to impossible
In evolutionary terms, leaving the place one was born in and is familiar with is often due to the pressure for survival. This has been the case since ages ago when beings from the origin of our times moved from the waters to land and climbed down from the trees to dwell on land. Kimsooja is most widely referred to as the artist who globalized the very Korean object and concept of “bottari,” but nationality, ethnicity, school of thought, and school of art are typical
categories she wishes to avoid. The artist made clear judgments and had opinions about situations, but by nature, she was not aggressively vocal, which caused her to go on “cultural exile” in New York in the early 1990s when globalization was slowly starting to bud in Korea. Bottari, which had special meaning to the artist, was not so much about aesthetics to her, but rather a condition of life. In regards to her personal history, Kimsooja had to pack her bottari
often because her father was a soldier. Even today, where bottari is rare and due to the severance of tradition that has made hanbok material close to obsolete, bottari continues to occupy a place in the subconscious of Koreans that when someone tells us, “pack your bottari!” it strikes us like a bolt from the blue. Bottari sits between memory and expectation as well as between regrets and excitement. As in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of Bottari Truck (1997), through which the artist delivered an impressive performance of sitting on a bed of bottaris on a truck with her back facing us, the process is what’s important, not the starting point nor destination. Kimsooja’s bottaris paved the way for concepts and phenomena such as globalization, nomadism, and feminism that followed; however, an era is coincidentally encountered, not followed.
Meanwhile, Kimsooja’s work is transcendental and contemplative, as I noticed in her 2016 exhibition at the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Her work appears distant from metaphysical idealism because she connects an understanding from trivial, everyday activities of a woman, like sewing, with performance, which has become “grammar” of contemporary art. She gives considerate amount of thought to the empty space that will come to be filled abundantly. Archive of Mind, a participatory installation where visitors are invited to roll clay balls, involves a large 19-meter-long oval wooden table, but the method it employs is simple. It resembles the scene of people gathering in circles during Korean holidays to roll mochi balls, and Kimsooja’s table of participation creates a structure like the Möbius band that naturally joins the opposites into one. Archive and mind seem like things that would not meet, but the artist brings the two together like fabric and needle. The meeting of fabric and needle creates something—the harmony of the soft and hard, the harmony of the opposites. This is
the fundamental and ultimate message of Kimsooja’s work.
The newest version of Kimsooja’s bottari project, presented in 2021, is an on-site installation of a shipping container painted in five cardinal colors called obangsaek, which expands the meaning of bottari to an industrialized module. Another recent work from last year that was installed at Leeum Museum of Art and filled the space with rainbow auroras reveals the existence of light that is omnipresent like the air that channels sound and breath. This light seems to fall in the mystic tradition, rather than have a metaphysical aspect to it as “a metaphor for truth” as said by Hans Blumenberg. Women have placed more importance on love and spirit than on doctrines and scriptures.
— Article from Public Art, No. 193, October, 2022, pp.82-89.
이선영 (미술평론가)
2022
김수자의 작업 이력을 대략만 훑어봐도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해왔나 싶다. 작가가 속한 세대로 볼 때, 국내파에게 그리 넓지 못했던 세계무대에서 일찍이 활동을 개시했고, 그 덕에 국내에서도 평가받은 경우다. 하지만 무작정 열심히 한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명망 있는 큰 전시라 해도 자신의 철학과 미학, 더 나아가 윤리의식에 맞지 않으면 거부 의사를 밝혀왔다. 가령 ‘한국 미술의 양극단인 현대미술 그룹과 민중미술 그룹을 조사하고 병치시켰던’ 쿤스트할레 빈(Kunsthalle Wien) 한국 전시에 대한 참가 거부가 그것이다. 이는 작가 스스로 특정 화파와 무관하게 독립된 길을 걸어왔던 아웃사이더 입장을 표명한 경우다. 국내외의 수많은 전시 및 프로젝트 이력은 작업을 제대로 펼칠 기회를 찾아 꾸준히 도전해왔던 적극적 선택의 결과라는 점이다. 정주를 위한 이동이 아닌, 오로지 작업을 위한 이동의 감행이다. 1957년생의 작가는 전후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인 1945년에서 1965년의 중간에 속한다. 그 나이대의 인구수가 많아 전쟁의 폐허에서 진행된 압축적 근대화 와중 엄청나게 경쟁적인 한국 사회를 통과해야 했다. 구태의연하게 세대론으로 한 작가에 대한 짧은 평문을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김수자의 여정에 대한 의문과 관련된다.
진화론적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익숙한 장소를 떠난다는 것은 생존의 압박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인류의 먼 시원의 어떤 존재가 물에서 육지로 올라왔을 때 그리고 나무에서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부터 있었던 경향이다. 김수자는 ‘보따리’라는 한국적 소재를 세계화한 작가로 흔히 말해지지만, 국가나 민족, 학파나 화파 등은 작가가 회피하고 싶은 전형적인 유형이다. 상황에 대한 판단과 주관은 뚜렷했지만 그리 투쟁적이지 못한 작가의 성향이 한국에서 세계화가 슬슬 시작되던 1990년대 초에 뉴욕으로 ‘문화적 망명’을 떠나게 했다. 김수자에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 보따리는 미학이기보다는 우선 삶의 조건이었다. 자전적으로는 직업 군인인 아버지를 둔 탓에 어릴 때부터 보따리 쌀 일이 많았다. 한복 천이 소멸하다시피 한 전통의 단절 속에 보따리가 희귀해진 현재에도 ‘보따리 싸라!’라는 말이 청천벽력 같은 발언으로 다가올 만큼 한국인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존재다. 보따리는 기억과 기대, 회한과 설렘 사이에 있다. 트럭에 실린 보따리, 그 위에 앉아있던 작가의 뒷모습이 인상적인 작품 <떠도는 도시들-보따리 트럭2727km>(1997)처럼, 출발과 목적지가 아닌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세계화, 유목주의, 페미니즘 등을 따라오게 했다. 하지만 시대와는 우연히 만나는 것이지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OO이즘’은 늘 작가를 불편하게 했다. 김수자는 1980년에 학부를 졸업했는데, 당시 미술계는 단색화로 대표되던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이라는 ‘양대 산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문화적 좌우익에 공히 적용되던 근대성은 문화적 성과이면서도 억압으로 다가왔다. 굳이 그 양대 산맥을 좌표로 설정하자면, 김수자의 작품은 단색이 아닌 다색이었고, 민중이 아닌 민주였다. 또는 고향 대구에서의 큰 전시 때 인터뷰에서 말했듯이, 차라리 자신의 작업은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의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2011년, 대구미술관) 보따리나 퍼포먼스와 결합되는 천의 유치찬란한 색상은 한국뿐아니라 김수자가 연구하고 기록한 수많은 민속 전통에서의 아름다움과 같은 반열에 있다. 가령 2010년부터 진행 중인 ‘실의 궤적’은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한 세계 곳곳 원주민들의 직물 관련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탐구다. 작품 속에 담긴 그토록 아름답고 기이한 문화적 텍스트를 짜던 이들은 이름도 남아있지 않은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2021년에 발표한 최신 버전의 ‘보따리’는 컨테이너에 오방색을 칠한 현장 설치작품으로, 보따리의 의미를 산업화된 모듈로 확장한다. 지난해 리움미술관을 가득 채운 무지갯빛 작품은 소리와 호흡을 매개하는 공기처럼 편재하는 빛의 현존을 드러낸다. 이 빛은 ‘진리의 은유’(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로서의 형이상학적 차원을 가지기보다는 신비주의 전통에 속하는 듯이 보인다. 여성은 교리와 경전보다는 사랑과 영혼을 중시해왔다.
또한 김수자에게 ‘유목’은 느슨한 자유가 아니라 경계의 의식이 고조되는 치열한 실천이다. 낯선 장소에서 붐비는 군중 사이에서 홀로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 ‘바늘 여인’ 시리즈(1999-)는 세계의 주요 분쟁 지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진행된 것이 많다. 분단의 여파와 무관하지 않은 한국 문화에서 지금도 고질병인 이분법은 학업을 마치고 막 작업을 시작하려던 작가 에게 선명하게 다가왔다. 단색화파나 민중미술로 나뉜 화단은 물론, 이후 하위문화와 결합된 키치 스타일의 세대와도 자신을 구별지었다. 대립보다는 차이였다. 물론 위계적인 인간 사회는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악습에 절어 있지만 말이다. 김수자에게 중요한 것은 차이를 위한 차이가 아니라, 유의미한 종합을 위한 전제로서의 차이였다. 가령 수직/수평은 좌/우처럼 극적인 차이를 대변한다. 김수자가 1980년대 초반에 쓴 논문은 수직 수평과 관련된 십자형 코드에 대한 것이었다.
작가는 2017년 후 한루(Hou Hanru)와의 대담에서 “당시 자연, 캔버스, 온갖 십자형의 시각적 요소에 자리한 수직과 수평의 구조에 대해 연구했고, 이를 토대로 대학원에서 고미술에서부터 동시대 미술에 나타난 십자가 형상에 대한 졸업 논문을 썼다”고 회고했다. 수직 수평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실크스크린으로 제작된 작품 <몸의 연구>(1981)에서 잘 드러나는데,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구조를 연상시키는 수직 수평의 구조를 매개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관념이 아닌 몸이라는 점이 기성의 기하학적 추상과 다르다. ‘바늘 여인’에서 수많은 군중 틈 사이로 요지부동한 작가의 자세 또한 수직적인 부분이 없지 않은지, 이후에는 와불처럼 누운 자세도 등장한다.
당시 여성 작가라는 주변적인 위치는 이항 대립적 사고의 배타성과 폭력성을 날카롭게 의식하게 했다. 1980년대 그리고 이후로도 한참을 더 그 양대산맥은 동 세대 남성 작가들의 차지였다. 끼고 싶지도 않고 낄 수도 없었던 그 시대 또한 다 나간 시점에서, 홀로 갈 수밖에 없었던 여정을 소급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간 길이 극소수의 진짜 예술가로 남게 한 셈이다. 하지만 김수자에게는 ‘예술’ 또한 지양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대한 해법은 다소간 역설적이다. 김수자는 2013년 프랭크 고테로(Franck Gautherot)와의 인터뷰에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나의 연습은 점점 비물질화되어 왔다. 예술가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내 몸을 포함해 물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자급자족하고 욕망에서 해방되는 것은 제 예술에서 가장 큰 성취다. 예술적 에너지를 한계까지 소멸시켜 예술을 하거나 예술을 하는 것에서 해방되고 싶다.
이것은 단순히 예술을 하는 행위를 멈추는 것으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역설적으로 그것은 가장 심오하고 신랄한 방식으로 충만하게 살고, 예술을 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몸의 기하학>(2006-2015)은 작가가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요가 매트를 사용한 작품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몸의흔적을 그대로 담은 ‘회화’로 제시되었다.
김수자는 자신을 ‘천’이 아닌 ‘바늘’자리에 위치시킨다. 바느질을 마친 후에 바늘은 결과물에서 사라진다. 바늘은 마치 샤먼(shaman)처럼 매개자일 따름이다. 바늘 되기는 몸 또한 포함하기에 현존한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 때 느낀 바지만, 김수자의 작품은 초월적이고 관조적이다. 거의 고정되다시피 한 금욕적 차림새 또한 그런 인상을 더 한다. 하지만 김수자의 작업이 형이상학적인 관념주의와 거리를 두는 지점은 바느질 같은 사소한 여성의 일상으로부터의 깨달음을 현대미술의 한 문법이 된 수행성과 연결시키기 때문이다. 충만하게 채워질 빈 부분이 최대한 고려된다. 전시의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전시 부제와 같은 <마음의 기하학>(2016)은 관람객이 흙을 주물러서 구를 만드는 체험형 작품으로 제시됐다. 19m 길이의 타원형 나무 탁자는 규모는 크지만, 방식은 소박하다. 우연찮게 그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일시적인 공동체만을 이룰 따름이다. <마음의 기하학>은 명절 때 모여 새알심을 빚는 듯한 느낌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이며, 반대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뫼비우스띠 같은 구조다.
우유니 소금사막을 떠올리게 하는, 건축적 규모를 가지는 거울반사형 시공간의 연출 또한 유일한 세계를 반영하거나 변형하는 차원이 아닌, 평행하게 존재하는 우주에 대한 신비로운 상상을 담고 있다.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면서 그리고 낯선 도시들에서 자신을 바늘 삼아 서 있던 경험을 말하는 대목에서 사물 또는 사람들과 하나가 된 준종교적인 체험을 이야기한다. 여러 가지로 실망을 안겨주었던 한국에도 관심을 가질만한 샤머니즘이 있었다. 마음과 기하학은 연결될 것 같지 않지만, 작가는 그것을 천과 바늘처럼 잇는다. 천과 바늘의 만남이 무엇인가를 만든다. 부드러운 것과 단단한 것의 만남이다. 반대되는 것의 조화다. 여기에 김수자 작품의 기본적이면서도 궁극적인 메시지가 있다. 작가가 선택한 소재인 보따리 자체가 융통성 있는 기하학에 바탕한다. 보따리는 가방처럼 빈 상자가 아니라, 접고 펼칠 수 있는 적극적인 공간-시간을 전제하는 현대적 기하학이다. 보따리는 진화를 거듭하여 작품 <연역적 오브제>(2016)처럼 우주의 알처럼보이는 괴물체가 되기도 한다. 김수자의 보따리는 무엇이든 쌀 수 있고 그래서 무엇이라도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
— Public Art, No. 193, October, 2022, pp.82-89.
보따리로 감싸고 자수로 엮어낸 여성성…공통된 키워드는 ‘관계맺기'
2021
김수자의 보따리 작업은 바느질과 같은 여성의 가사행위가 예술적으로, 동시에 세계 무대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의미화되는지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준다. 어머니와 함께하던 바느질 기억으로부터 천을 이어 붙이는 회화적 천 작업과 조각적 보따리 작업이 탄생했다. 그 보따리는 30년 창작활동과 국내외 전시를 거치면서 양식적·매체적으로 다변화되고 미학적·정치적으로 심화, 확장되고 있다.
지금은 전설이 된 역사적 전시회 ‘떠도는 도시들(Cities on the Move)’(1997~1999)은 신자유주의와 글로벌리즘 영향하에 아시아가 지리정치학적 요지로 부상하면서 신도시 건설붐과 새 도시문화가 부흥되던 1990년대를 배경으로 기획된 시의적인 전시회였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서 이정표가 된 ‘떠도는 도시들: 보따리 트럭 2727킬로미터’를 발표했다. 보따리를 가득 실은 트럭을 타고 장장 2727㎞를 달린 방랑의 여정을 기록한 이 비디오에서 작가는 스쳐가는 한국 풍경을 뒤로하며 보따리 위에 걸터앉은 채 고정된 프레임 속에서 내내 뒷모습만 보인다. 현대적 도시현상과 진보개념을 역행하듯 보따리와 쓸쓸한 여인의 뒷모습이 유랑민의 소외와 향수를 환기시킨다.
김수자는 1999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문화적 망명자”를 자처한 그는 이방인의 삶을 영위하는 “한계 상황” 속에서 ‘바늘 여인’과 같은 퍼포먼스 비디오를 탄생시킨다. 첫번째 ‘바늘 여인’(1999~2001)은 도쿄·상하이·런던·뉴욕 등 인구가 밀집한 8개 대도시에서 촬영한 다채널 비디오다. 작가는 여기서도 관객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대도시 군중 물결 한가운데 부동의 자세로 서 있다. 내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부동의 뒷모습, 그 특유의 이러한 미장센은 도쿄 시부야 번화가에서 느꼈던 실존적 경험에 근간한다. 행인 인파로 자신이 “지워지는” 느낌을 받는 순간, 그들과 하나 되는 일체감으로 “안도와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고 그는 회고한다. 이것이 무명의 군중을 보자기로 감싸는 연민·포용·환대의 감흥이 아니었을까?
두번째 ‘바늘 여인’(2005~2009)에서 작가는 정치적·종교적 분쟁, 내전·폭력과 빈곤으로 피폐해진 6개 도시인 파탄·예루살렘·사나·하바나·리우데자네이루·은자메나를 탐방했다. 착취되고 거세된 현장, 유토피아·디스토피아가 엇갈리는 혼란을 대면하면서 작가는 자신이 찌르고 봉합하는 바늘이 돼 지구와 인류의 불행을 지우는 치유자가 되기를 염원했다.
우리를 각성시키는 바늘 여인의 메시지는 ‘실의 궤적’(2010~2019) 연작에서 다른 모습으로 계승된다. 인류학적·고고학적·문명사적 다큐멘터리이자, 유럽과 남·동아시아, 북·남미, 아프리카 등 다른 문화권을 이동하며 직물의 경로를 추적한 이 대하 서사시에서 작가의 모습은 사라지고 카메라 뒤에서 응시하는 눈이 직조문화의 원형적 장면과 어휘를 포착하며 다양한 직조문화에 내재한 인간 존재의 원형, 원초적 생명원리를 발견하게 한다.
김수자는 한편으로 자신의 몸을 매체화하는 숨소리 사운드 퍼포먼스를 수행해왔다. ‘직조공장’(2004)은 폴란드 우치의 공장 빈 건물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숨소리와 허밍 사운드로 공장을 재가동시킨다는 개념으로 발상됐다. 들숨·날숨의 반복되는 호흡을 씨줄·날줄로 교차되는 직물에 유비시키는 호흡 퍼포먼스는 2006년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발표한 ‘호흡: 보이지 않는 거울, 보이지 않는 바늘’로 본격화됐고, 같은 해 마드리드 크리스탈 팰리스 개인전 ‘호흡: 거울여인’에서는 건축물에 부착된 특수필름과 바닥에 설치된 거울을 통해 반사되는 빛이 호흡 퍼포먼스와 어우러지는, 빛과 호흡이 공명하는 공감각적 보따리를 창출했다.
숨소리와 빛으로 공간을 감싸는, 탈물질화된 보따리를 ‘후기 보따리’로 명명한다면,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가 이를 명문화한다. 작가는 한국관의 유리 전면을 특수필름으로 덮어 무한대로 굴절되는 무지갯빛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고, 바닥에 거울을 부착해 반사된 빛을 재투영시키는 만화경 같은 미러링 효과를 연출했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시리즈 개인전 ‘마음의 기하학’에서도 관객이 점토를 구형으로 빚게 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후기 보따리’를 예증했다. 특수필름을 사용하는 빛 작업과 함께 ‘구의 궤적’이란 새로운 소리 작업으로 관객을 공명시켰다. 커다란 타원형 탁자 위를 굴러가는 찰흙 공의 마찰 소리와 작가의 가글링 소리가 뒤섞인, 어떤 언술보다 강력한 주술적 초성의 마력이 관객과의 일체감을 조성했다. 이로써 주객체를 연결하는 ‘마음의 기하학’이 완결됐다.
— The Kyunghyang daily news, March 2021
2020
‘작가 김수자’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보따리’다. 주로 서민들의 이삿짐이었던 알록달록한 이불 천으로 된 보따리는 김수자 작업의 화두이자 1990년대 미술의 주요 아이콘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또 다른 곳을 향한 떠남을 암시하는 보따리는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고 여행과 이주가 빈번해진 이른 바 전 지구화 시대를 표상하는 모티프가 되었다. 더하여, 한국의 토착문화,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문화와 그 문화의 이동을 의미함으로써 로컬과 글로벌, 주변과 중심이 교차하는 당대 세계의 문화지형도에도 적절하게 부합하였다. 보따리 작업이 구체적으로 시작된 것은 1992년 우연한 계기를 통해서이지만 그 연원은 이전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수자가 수업기를 보낸 1970년대 말~1980년대 초는 이른바 단색화 시대였는데, 이때부터 그는 단색화의 모더니즘 미학, 특히 그 고답적인 정신주의에 의문을 가지면서 천이라는 촉각적 재료와 바느질이라는 일상공예 기법을 평면작업에 적용하는 실험을 시도하였다. 또한 자신의 신체 움직임을 기하학적 구조로 분석한 <구조-몸의 연구>(1981, 사진, 실크스크린)에서처럼, ‘몸’을 작업의 주요 계기로 주목하게 된다. 몸과 그 몸이 살아가는 일상이라는 화두에 점차 이끌리게 된 것인데, 이에 확신을 갖게 한 계기가 작가가 자주 언급해온 어머니와의 바느질이다.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가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천이 가지는 기본 구조로서의 날실과 씨실, 우리 천의 그 원초적인 색감, 평면을 넘나드는 꿰매는 행위의 천과의 자기동일성,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향수... 이 모든 것들에 나 자신은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할 수 있다.”[1]
1983년의 이 경험을 통해 그는 당대 두 주류로 대치하고 있던 단색화와도, 민중미술과도 다른, 자신만의 작업에 집중하게 된다. 이후 그는 알록달록한 천의 질감과 바느질 자국을 드러내는 천 콜라주로, 지게나 얼레 등 전통기물을 천으로 싼 오브제 작업으로, 그리고 천 조각들 자체를 오브제 삼아 집적한 아쌍블라주로 과감하게 나아갔다. 평면작업의 재료가 되었던 천이 점차 그 자체로서 미학적 의미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이런 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1992년 우연한 계기로 발견한 모티프가 ‘보따리’다. 그가 뉴욕 PS1에 체류 중이던 어느 날 천 재료들을 싸서 보관한 보따리가 눈에 띄게 되었는데, 작가의 말처럼, 그 순간 보따리는 “하나의 조각이고 회화”[2]가 되었다.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아우르는 보따리는 또한 바늘 없는 바느질, 즉 어머니와의 일상에서 발견한 새로운 미학의 또 다른 구현물이었다.
이렇게 발견한 보따리를 김수자는 같은 해 오픈 스튜디오에서 처음 전시하게 되는데, 이 작업에도 이전 오브제 싸기 작업과 마찬가지로 <연역적 오브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천으로 또 다른 평면을 만들어가는 초기 작업의 귀납적인 방법에 대해 천을 통해 오브제를 역 추적한다는 의미를 함축한 이 명칭이 보따리에도 부합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보따리는 하나의 모티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작업 원리를 구현한 시각 기호였던 것이다.
싸고 묶고 풀고 다시 싸는 과정을 함축한 보따리는 여성의 일상 특히 그 신체적 움직임과 긴밀하게 엮인 오브제인데, 이를 구체화한 예가 1994년의 전시 《바느질하여 걷기》(갤러리 서미)다. 전시장 바닥에 배치된 보따리들과 옷가지들, 오래된 가옥이나 자연 속에 놓인 보따리와 펼쳐진 천들 사이에서 움직이는 작가를 찍은 영상, 그리고 그 설치 공간 속을 걸어 다니는 관람자를 찍은 실시간 영상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보따리가 여성 몸의 움직임과 하나가 되는 과정을 구현한 총체적 퍼포먼스였다. 영상에서 작가는 스스로 보따리들 중 하나가 되거나 보따리 천을 펼치고 싸거나 자연이라는 드넓은 천 속으로 바느질하듯 걸어 들어가는 행위를 시연하였다. 자신의 모든 작업을 천이 이끄는 ‘퍼포먼스’[3]라고 한 작가의 입장이 이 전시를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이렇게 관람자를 퍼포머로 끌어들이는 퍼포먼스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 작업으로도 이어졌다. 중외공원에서 이루어진 같은 제목의 작업에서 작가는 자연 속에 헌 옷과 보따리들을 펼쳐 놓고 관람자들이 그 속을 걸을 수 있게 하였다. 반전 운동의 상징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Imagine)’과 ‘스탠 바이 미(Stand by Me)’가 흘러나오는 현장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참상을 떠올리게 하면서 이 작업의 정치적 의미를 부각하였다. 두 달여 전시 후에 흙과 낙엽과 옷이 뒤범벅이 된 현장은 이를 다시 확인하게 했다. 이 작업을 통해 보따리는 희생자의 넋을 기린다는 치유의 의미 또한 함축하게 되었다. 보따리는 퍼포먼스와 엮이면서 바느질로, 그 신체적 구현으로서의 걷기로, 그리고 그 심리적 효과로서의 아우르기로 그 의미가 확장되어 간 것이다.
이런 퍼포먼스와 함께 보따리가 움직임 혹은 이동의 매체이자 도상으로 부각된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보따리와 작가의 몸이 함께 이동하는 <떠도는 도시들-2727Km 보따리 트럭>(1997)이 그 증거다.
“보따리를 싸고 풀듯이 내 몸 역시 끊임없이 머물고 떠납니다.”[4]
1995년의 한 대담에서의 작가의 이 말이 예언이 된 듯, 2년 후 그는 스스로 하나의 보따리가 되어 다른 보따리들과 함께 머물고 떠나는 여정을 시도하였다. 보따리를 실은 트럭에 작가가 함께 타고 11일 동안 전국의 마을들을 누비는 퍼포먼스이자 이를 기록한 비디오 영상인 이 작업은 아우름과 함께 떠남의 계기를 함축하는 보따리 미학을 작가가 몸소 실천한 예다. 이사가 잦았던 어린 시절 주거지들을 거쳐 가는 이 여정을 통해 그 자신도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끊임없이 떠나는, 혹은 떠남으로써 또 다른 것을 아우르는 보따리가 되었다.
작가 자신 또한 유목 혹은 여행의 주체로 부각된 것인데, 전 세계 여러 도시들에서 이루어진 거리 퍼포먼스를 기록한 <바늘 여인> 시리즈(1999~)는 이런 작가 개념이 또 다른 형태로 이어진 예다. 작가 스스로 바늘이 되어 현지인들 속으로 스며드는 과정을 기록한 이 비디오 작업에서 보따리는 사라졌지만 그 의미는 “치유의 도구”[5]로서의 바늘을 통해 구현되었다. 여기서 김수자는 자신의 몸을 스쳐 가는 낯선 이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뒷모습으로 등장한다. 그에게 여행은 다른 문화를 포획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또한 있는 그대로 두고 떠나기 위한 것이다. 이는 19세기 산업혁명이 촉발한 남성적 정복의 여행과 대극에 있다. 마치 바늘이 헝겊과 헝겊을 이어주고 떠나듯, 보따리가 서로 다른 천들을 감쌌다 풀어주듯 그는 아우름과 떠남의 반복으로서의 여행, 이른바 여성적 포용의 여행을 실천한 것이다. 어머니와의 바느질 체험이 사회적 차원으로 드러난 그의 여행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부드러운 정치학의 구현이다. 소외된 지역이나 분쟁 지역에서 이루어진 이후의 작업들이 이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김수자의 작업을 이끌어 온 것이 보따리와 그 미학이며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보따리는 펼쳐져 빨래처럼 널리기도, 낯선 이국 카페의 테이블보로 쓰이기도, 조각조각 잘려 벽돌 틈새에 끼워지기도 하면서 변이를 거듭해 왔다. 비디오 작업 또한 장소를 달리하면서 지속되었다. 보따리 트럭은 1998년 사웅파울로 비엔날레 등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전시되면서 이른바 노마디즘(nomadism)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특히 ‘코소보 난민에게 바침’이라는 부제가 붙은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것은 이주와 그에 따른 문제를 전 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 파리에서 이민자 관련 장소들을 순회하면서 다시 제작된 보따리 트럭에는 ‘이주’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는 최근 작가가 전시감독을 맡은 푸아티에 비엔날레 《가로지르기/김수자》(2019.10.12.~2020.1.19.)에도 전시되었으며, <보따리>라는 이름으로 설치된 뉴욕 이삿짐 컨테이너와 함께 전시의 의미를 각인시켰다. 보따리가 바느질로 개념화된 <바늘 여인> 또한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시연되어 왔다.
마드리드 크리스털 궁전 설치 작업(2006)에서 시작된 <숨쉬기> 연작은 보따리 개념을 건축적 공간에 적용한 예다. 유리창에 붙인 회절격자 필름을 통해 오방색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을 연출한 것인데, 이는 빛으로 가득 찬, 그리고 그 빛의 움직임처럼 살아 숨 쉬는 보따리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작가의 숨소리와 허밍소리는 그 공간을 거대한 신체로 체험하게 한다. 전 세계 다양한 건물들을 옮겨 다니며 지속되고 있는 이런 작업과 함께 보따리는 점차 비 물질화되고 개념화되어 왔는데, 근작 <마음의 기하학>(2016)은 그것이 심리적인 차원으로 발현된 예다. 관람자들은 점토로 각자의 형상을 만들면서 마음의 보따리를 싸고 푸는 과정을 통해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넘나들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를 관통하고 2000년대로 이어진 김수자 작업은 그 자체가 신체적, 심리적 유목의 도정이었다. 평면도 입체도, 비움도 채움도 되는 보따리의 유연함이 그의 작업, 그 유목을 가능하게 한 것이며, 이를 통해 그의 작업은 인간 사회를 넘어 자연과 우주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작업의 내용 뿐 아니라 작업방식, 나아가 전시와 사회활동에 있어서도 작가의 유목은 지속되었다. 자신의 뉴욕 행을 일종의 “문화적 망명”[6]으로 본 작가 말대로, 그는 단지 물리적으로 뿐 아니라 심리, 사회적으로도 거처를 옮겨 다닌 것이다. 1980년대 중·후반에는 일본과 대만, 1990년대 초·중엽에는 뉴욕, 이후 전 세계 여러 도시들로 이어진 그의 여정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언제쯤 바느질 뜸을 따라 걸어가는 이 길이 끝날 것인가”7라는 작가 자신의 질문은 진행 중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는 작업의 여정에서 작가 이미지는 거의 변하지 않는 모습, 즉 긴 검은 머리를 묶거나 땋은 뒷모습으로 기호화되어 왔다. 작업의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작가 자신은 전형적인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이미지를 고수해왔는데, 이런 이미지는 그의 작업을 페미니즘과 관련짓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김수자 스스로도, 페미니스트 작가를 자처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여성적 정체성을 부정하지는 않으며 작업을 통해서도 이를 일관되게 추구해왔다. 여성적 일상, 특히 어머니와의 모성적 유대관계를 통해서 발견한 소재와 기법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이른바 ‘여성적 감수성(feminine sensibility)'의 존재를 확인하게 하는 점에서 페미니즘 중에서도 본질주의(essentialism)와 닿아 있다. 자신의 재료인 천을 “감싸고 덮고 보호하는 것” 즉 “여성의 자궁과 같은 이미지”8로 본 작가의 입장이 이를 확인하게 한다.
1990년대 미술에서 김수자 작업이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재료와 기법을 통해 여성적 일상을 미술의 영역으로 수용하고 설치와 퍼포먼스, 비디오 등 새로운 방법과 매체 실험을 시도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몸과 마음 같은 생리, 심리의 세계와 기하학적 구조라는 수학 혹은 과학의 원리를 융합하려는 의도가 초기 작업에서부터 일관되게 내재되어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듯이, 그의 작업의 진정한 의미는 서구 근대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넘어선 또 다른 미학을 제안한 점에 있다. 이는 서구 근대를 추동한 남성 미학, 그 배제의 논리에 대해 포용의 원리라는 대안을 제안하는 점에서 여성 미학으로 이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보따리는 이러한 여성 미학의 출발점이자 그 도상이다.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도 또한 모든 것을 떠나보내는 보따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정진해 온 모더니스트 영웅 신화, 그 남성적인 직진의 논리를 비껴간다. 한국성의 기호이자 여성성의 기호인 보따리는 다양한 문화들과의 접점과 함께 차이를 또한 만들어내면서 로컬 문화를 글로벌한 지평에 스며들게 하였다. 로컬 문화를 통한 글로벌한 아우름의 표상인 그것은 정복이 아닌 포용을 지향하는, 그런 의미에서 여성적인 글로벌리즘의 도상이다.
몸과 천이 하나가 된 또 다른 보따리 <만남-바라보며 바느질하기>(1998, 2011)에서 나는 천에서 혼령을 불러내는 영매와 같은 예술가, 김수자를 본다. 그는 보따리 작업을 시작한 이래 아우름과 떠남을 반복하면서 인간과 인간, 문화와 자연의 교응을 중개해 왔다. ‘아우르고 떠나기’ 이것이 김수자의 노마디즘, 이를 통한 글로벌리즘의 진정한 정체다.
[Note]
[1] 김수자, 「작가노트」, 『김수자』(전시도록), 갤러리 현대, 1988, p.9.
[2] 박영택, 김수자(대담), 「김수자: 평면에서 입체로의 접근, 보따리」, 『공간』, 1996년 6월, p. 116.
[3] 김수자, 「천과 삶」, Sewing into Walking(전시리플릿), 갤러리 서미, 1994, n.p.
[4] 황인, 김수자(대담), “Sewing into Walking: Cloth, Video, Sound Installaion by Kim Soo-Ja”, 『공간』, 1995년 1월, p. 38.
[5] 김수자의 편지(2000. 2. 15): 태현선, 「김수자: 세상을 엮는 바늘」, 『김수자: 세상을 엮는 바늘』(전시도록), 로댕갤러리, 2000, p.13.
[6] 후 한루, 김수자(대담), 「새로운 빛을 밝히다」, 『김수자: 마음의 기하학』(전시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16, p. 24.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2016
김수자(Kim Soo-ja, 金守子)는 1999년 ‘천으로 삶을 표현한 보따리 작가’로 미국 뉴욕에 발판을 마련한 뒤 늘 길 위에 있었다. 세계 곳곳을 떠돌며 ‘제 몸을 바늘 삼아’ 사람과 삶의 궤적을 직조하며 살아왔다. 그가 4년 만에 고향에서 여는 전시회 제목은 “김수자-마음의 기하학(Archive of Mind)”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풀어놓은 9점의 작품들은 작가의 바느질이 인류의 근원에 더 다가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수자는 어느 장소에서나 그 실루엣만으로 눈에 잘 띈다. 승려나 사제가 입을 법한 검고 긴 옷에 하나로 질끈 묶은 긴 생머리는 그에게 선(禪)을 탐구하는 도인의 이미지를 입혔다. 예순을 바라보도록 여일한 그 심플 스타일은 그의 일관된 예술 세계를 드러낸다. 김수자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보따리(Bottari)’ 더미 위에 저 모습을 하고 앉아 지구 수십 바퀴를 돌며 주요 도시를 선승처럼 유랑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마련한 개인전에서 그는 지난 30년 걸어온 행위의 흔적을 정리했다. 특히 관람객이 자연스레 작품에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치 마련에 고심한 듯 보인다. 해외 곳곳에서 살인적인 스케줄을 이어가며 종종걸음 쳤던 국제적 작가의 위상을 잠시 내려놓고 무엇이 ‘나를 그렇게 몰두하게 했을까’ 함께 생각해보자고 관객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수자를 국제 미술 무대에 각인시킨 첫 작업은 보따리 트럭이었다. 알록달록 갖가지 색채 꽃무늬로 장식된 큼직한 보따리 위에 올라앉은 그의 뒤태를 처음 찍어 세상에 알린 사람은 사진작가 주명덕이었다. 그 사진은 한 여성 미술가의 시도를 평범한 물체 싸기에서 사람을 엮는 비범한 예술 개념으로 승화시켰다. 천(fabric)을 매개체로 사람들을 그리는 김수자에게 바늘은 손의 연장이자 몸의 늘림이었고, 실은 마음의 연장이었다. 작가는 바늘과 만났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어머니와 이불보를 꿰매다 문득 천의 앞뒤를 오가는 바느질에서 삶과 죽음, 들숨과 날숨, 음양의 이치를 보았다.”
홍익대 미대 회화과 시절부터 그는 남다른 고민으로 조숙했던 작가였다. “오래도록 삶을 관조하며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미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미술 입문의 이유다. 세계의 구조를 수직과 수평으로 파악해 그걸 어떻게 2차원 평면에서 보여줄까 고민했던 그에게 바느질과의 만남은 일순에 과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다. 펼치면 2차원 평면이요, 싸면 3차원 입체가 되는 보따리의 포용성과 융통성, 가변성은 인류의 모든 것을 품고 싶었던 김수자에게 맞춤한 도구이자 개념으로 들어앉았다.
그의 이름 ‘수자’는 힌디어로 바늘이라는 뜻이다. 운명적인 선택이었을까. 그는 분쟁과 불화의 도시 한복판에서 인파를 꿰뚫고 지나가는 그 자신을 바늘의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보따리’ 연작에 이어 ‘바늘 여인(A Needle Woman)’ ‘거울 여인(A Mirror Woman)’ 시리즈로 진화한 행보는 그를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바쁜 국제미술계의 스타 작가 중 하나로 만들었다.
오늘날 국제적인 유명 작가를 가늠하는 조건으로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는 무엇일까. 한때 그 답은 경매나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작품가격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잣대가 생겼다. 비행기 탑승 마일리지다. 각국에서 주최하는 비엔날레 참여나 유명 미술관 초대 등으로 1년 내 어디론가 떠도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작가는 그 유목민의 숙명으로 이미 작품 세계에 방랑의 기운을 품기 마련이다.
김수자도 1999년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뒤 1년 중 다섯 달은 뉴욕, 한 달씩은 서울과 파리에서, 나머지는 개인전이나 초대전을 위해 도시에서 도시로 움직여야 하는 고된 일정을 소화해왔다.
미술 담당 기자 이메일 함에는 1주일이 멀다 하고 김수자 스튜디오에서 보낸 새로운 전시회 소식이 도착한다. 여행 와중에 새 아이디어를 내고 짬짬이 실행의 도구를 챙기며 만들어가는 작품 세계는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이 핵심이기 마련이다.
김수자 역시 사람을 매개로 진화해왔다. 자신의 작품 세계 특징을 ‘장소성, 정신성, 정체성’으로 잡지만 그 중심 동력은 인간이고, 그들이 움직여가는 인간의 미래다. 2010년 9월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에서 선보였던 설치 프로젝트 <지-수-화-풍(地水火風)>은 핵폭탄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반도의 현실을 영상물로 다룬 작품이었다. 원자력의 폭력성을 품은 동시에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시켜 줄 미래 대안의 이중적 성격을 지닌 원자력발전소에서 작가는 유목민의 시각을 드러낸다.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이 순환하는 자연 속에 자신을 맡기라고.
<마음의 기하학>(2016년 7월 27일-2017년 2월 5일)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관람객이 만나는 건 긴 지름 19m에 이르는 거대한 타원형 탁자다. 실내에서 만나기에는 너무나 큰 그 테이블은 보는 이에 따라 심상(心象)일 수도 있고 은하계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 대형 탁자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토를 주물러 구(球)를 만든다. 오랜만에 만져보는 찰흙의 질감을 느끼며 반죽을 손바닥에서 굴려 원형을 일군다. 동그랗게 흙을 동글리며 사람들은 생각한다. ‘왜 원형만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까?’ 워크숍 참여 방법에 김수자의 마음이 들어있다.
작가는 작품 설명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비우고, 마음의 모서리를 깎는 자리입니다.” 인간사에 모난 모서리는 얼마나 많은가. 분쟁과 분열의 모서리 탓에 테러가 터지고 전쟁이 발발한다. 손으로 찰흙을 감싸며 굴리는 순환 행위는 관객이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두 손바닥에서 마찰하는 힘 사이에서 뭔가를 느끼게 한다. 원초적인 촉각을 자각하며 허(虛)를 감싸는 손짓을 반복하면서 문득 무(無)의 둥근 환영을 접한다. “인도에는 검은 돌을 갈고 닦아 거울을 만든다는 말이 있죠.” 작가가 한마디 덧붙였다. 이 전시 표제작과 함께 전시되는 사운드 퍼포먼스 신작 <구의 궤적 Unfolding Sphere〉은 구형 찰흙이 흩뿌려진 타원형 탁자 표면의 이미지와 조응하여 관객을 우주적 조형성에 휩싸이게 한다.
<몸의 기하학(Geometry of Body)>은 작가가 지난 10년 동안 온 몸을 던져 정진했던 요가용 깔개를 벽에 붙여놓은 작품이다. 손과 발이 닿은 흔적, 땀과 눈물로 적셔진 물질의 변화가 드러난 일종의 ‘몸 회화(body painting)’다. 여기서 매트는 기존의 미술이 오랫동안 받들어온 기성품 오브제가 아니다. 몸의 흔적이 마음에 투영돼 나타난 ‘사용된 오브제(used)’다. 몸의 흔적이 새로운 개념의 회화를 창조했다.
김수자는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평생 수직과 수평의 문제에 집착해왔다. 1981년 작 <몸의 연구(A Study on Body)>는 그 초심을 보여주는 시각 자료다. 여기에서 작가는 스스로 행한 퍼포먼스 사진으로 45점 실크스크린 연작을 떴다. 몸은 그가 자신과 세계를 자각한 출발이자 그의 작품 세계의 밑둥치처럼 보인다.
<숨(One Breath)>은 들숨과 날숨이 만들어낸 파동을 기록한 디지털 자수다. 작가는 인간의 생존 조건인 숨쉬기의 구조와 형식을 직물 사이를 누비는 바느질로 형상화했다. 새틴 위에 수 놓인 숨의 순환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절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인가, 생각하게 된다. 2004년에 발표했던 호흡 사운드 퍼포먼스 <직물공장(The Weaving Factory)>의 음파 그래픽이 기초가 됐다.
나무 탁자 위에 두 팔만 덩그러니 놓인 <연역적 오브제(Deductive )>는 문득 외로워 보인다. 허(void)를 표상하고 있어서일까. 석고로 본뜬 작가의 양 손에서 엄지와 검지는 서로 맞닿아 있다.
전시의 대단원은 영상 작품 시리즈 “실의 궤적(Thread Routes)>”의 새로운 챕터(Chapter V) 첫 공개다. 작가가 평생 천착해온 직조, 직물 문화에 대한 탐구가 21분 48초 영상물에 담겼다. 평론가들은 그의 영상작업을 “내러티브가 없는 시각적 시”, “시각적 인류학”이라고 명명했다.
전시의 대단원은 영상 작품 시리즈 “실의 궤적(Thread Routes)”의 새로운 챕터(Chapter V) 첫 공개다. 김수자는 2010년부터 전 세계를 무대로 16mm 기록영화 “실의 궤적”을 찍고 있는데 6편 중 5번째 편이 완성된 것이다. 작가가 평생 천착해온 직조, 직물 문화에 대한 탐구가 21분 48초 영상물에 담겼다.
화면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나바호족과 호피족이 살아가는 인디언 보호구역과 뉴멕시코 지역에서 촬영됐다. 평론가들은 그의 영상작업을 “내러티브가 없는 시각적 시” “시각적 인류학”으로 이름지었다. 인류의 시원을 더듬게 하는 아득한 평원, 석기 시대를 연상시키는 거친 폐허, 우뚝한 돌산과 끝없는 지평선이 캔버스의 밑칠처럼 떠오른다. 그 속에서 무언가를 짜고 풀고 또 짜고 있는 여인들이 도톰한 바느질처럼 질감을 드러낸다. 인간이 걸어온 길은 저것이 다일 수 있다.
자연 속에 바느질되어 들숨과 날숨을 호흡하며 허(虛)로 스며들기.
보따리를 바느질하던 작은 바늘 여인은 지구를 바느질하는 큰 바늘 여인이 되어 오늘도 은하계를 여행한다.
─ Article from Koreana Online Magazine, Winter 2016.
Lee Sohl (Art critic and curator)
2013
This year’s Korean Pavilion at the Venice Biennale is an anomaly. Curated by commissioner Seungduk Kim, the co-director of Le Consortium in Dijon, the pavilion features Kimsooja’s installation ‘To Breathe: Bottari’ (2013), for which the artist covered the building’s inner surface with mirrors and diffraction grating film sheets. From afar, the pavilion resembles a crystal palace, or a pseudo-architecture that dissipates into the air like a mirage. Only a dozen or so visitors are allowed to enter the translucent pavilion at a time, forming a noticeably long queue during the preview week— giving the act of entering the feel of a privilege or a sacred ritual. At the entrance, the friendly guides tell the visitors to take off their shoes, another ritualistic activity before visitors willingly submit themselves to the pavilion with nothing inside except light and warmth. In a corner tucked in the pavilion, the artist also constructed Breathe: Blackout (2013), a small anechoic chamber of absolute darkness in which only one person at a time can experience the nothingness. The phenomenological exhibition of illumination and blackness as a whole is an anomaly for two reasons. It seems, at least on the surface, far removed from the artist’s previous works, which of ten prey on culturally specific metaphors with a global spin. Additionally, it creates a visual disjuncture from the rest of the Venice Biennale, which I will discuss later. It is a fantastically orchestrated anomaly that is the hidden jewel of this year’s biennale— especially in the context of the Korean Pavilion, the last national pavilion erected in Giardini that celebrates its tenth participation in the art world’s Olympics.
To give greater context to Kimsooja’s oeuvre: it is rare to discuss the art of Kimsooja without mentioning terms like the artist’s female body, the diasporic identity and global itinerancy. The South Korean-born artist began her overseas career in the mid-1980s, after her study abroad at the 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Arts in Paris. In the 1990s, she then quickly joined the circuit of contemporary artists whose frequent traveling coincided with the international art bienniales and galleries in metropolitan cities. Her most celebrated work comprises a range of adaptation and appropriation of bottari (bundles enveloped with silk clothes) and yibul (quilt-like bed covers), which the artist designates under the metaphors of sewing, wrapping, and, more specifically, the Korean cultural tradition embodied in the artist’s self. While weaving yibul with her mother back in 1983, as Kimsooja famously accounts, she rediscovered clothes and needles as her artistic medium, eventually leading her to abandon the canvas and brush. The vibrant silks in Kimsooja’s bottari and yibul series therefore conjure a culturally gendered aura, if not the mystified persona of the artist, wherever the works are installed, either in white cubes (P.S.1,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Lyon, etc.) or in site-specific spaces (a public park in Gwangju, the Greenlawn Cemetery in Brooklyn, etc.). In more recent years, she began to perform her pieces standing immobile on the bustling streets of Tokyo, Cairo, Lagos, New York, Shanghai and more, with her back turned away from the viewers. The subject of her videos, titled A Needle Woman (1999 – 2001; 2005), is the diverse portraits and varied reactions of passers-by, of whom the artist, like a ‘needle’, weaves in and out. Here, a question should be raised.
If Bottari and the act of weaving and wrapping have long functioned as the central theme for the artist—and there is no silk, bundles, or artist’s image posed as a Korean woman in ‘To Breathe: Bottari’ at this year’s Korean Pavilion—how then does this work fit or challenge Kimsooja’s path? Before delving into this question further, I would address the pavilion’s dissonant relationship to the rest of the Biennale. This year’s main exhibition, entitled ‘The Encyclopedic Palace’, is curated by Massimiliano Gioni, which takes inspiration from a 1955 architectural model of the same title. Built by Marino Auriti, an Italian American who dreamt of an imaginary museum housing all the knowledge of the world, the model was of course never realised in real life. The leap of utopian fantasy and artistic obsession, however, are more than alive in Gioni’s own encyclopedia of dynamic contemporary art. Perhaps too similar to what Gioni showcased at the 2010 Gwangju Biennale, this year’s main exhibition in Venice is packed with microcosms constructed by creative, at times erratic, artistic minds. Indeed, the reproduction of portraits or self-images is one significant thread, as seen from the fact that Gioni shared his curatorial authorship with only one other person—Cindy Sherman, who is another inspiration for the curator and to whom he ‘outsourced’ the curation of a room in Arsenale. Sherman’s gallery is, surprisingly, focused on the staged nature of portraits, photographs, and sculptures, exposing the lack of an innate quality in one’s identity. A picture is a picture, even though it is the only means through which to express the self. Likewise, art is not a transparent reflection of the world, but is contingent with the world around us, and is simultaneously world-making.
Unlike any other worlds imagined in Venice—for example, the Golden Lion winner Edson Chagas’s Angolan Pavilion, which featured still-life photographs as stacks of posters that visitors can collect in a provided folder to make his/her own collection of Angolan images, or Stefanos Tsivopoulos’s Greek Pavilion with a three-channel video about the world of alternative currency— the world proposed by Kimsooja for the Korean Pavilion seems empty. It is at least empty of images created by the artist for the viewer to see. What welcomes the visitors at the Korean Pavilion is the double-bound set of light and darkness, transparency and opacity, which calls for a heightened bodily experience. In the room of light, the viewers confront the images of themselves on intermittently installed planes of mirror on existing walls. Some walls refract the self-images because they are of a half-transparent, half-reflective surface that lets the light from outside.
Considering Kimsooja’s interests in the female body and self-image, her works like A Needle Woman might strike lines of affiliation with Cindy Sherman’s Film Stills. However, the current installation of the light-filled room with no built-in portraits signifies Kimsooja’s break away from the play on representations and appropriation that have earned her international recognition. It must also be recognised that this trajectory began in 2006, when she enveloped the Crystal Palace at the Reina Sofia with diffraction grating film sheets. Here, Bottari as a metaphor had lost its cultural root in Korean women’s domestic labor and their mobility forced by the country’s rapid modernization; it has become a mere gesture that wraps things, at times even a building. If Bottari previously allegorized the artist’s body, it has now become a bundle as an empty signifier, to which the viewers as breathing bodies enter and look into the self-images. Or as Lacan would say, they would face the images of not-me, the mis-recognized self (méconnaissance).
That is the magical irony of Kimsooja’s Korean Pavilion. What no longer lingers in the exhibition are the deep-seated metaphors of ‘Koreanness’ based on the artist’s personal history—or to be more precise, pre modern Korean traditions revived as contemporary art tropes which the artist articulated alongside her own transcultural trajectory. The visual and symbolic disappearance of the Korean Pavilion is telling this year, especially when the German and French ones controversially swapped galleries with each other in order to critique the embraced nationalism in the pavilion system at Venice. The magical disappearance of the Korean Pavilion can be said to demonstrate a more compelling aesthetic impact than the Franco-German scandal.
There is another story to be told about the aptness of Kimsooja’s Bottari for this year’s Korean Pavilion. One has to remember that such a clever visual trick owes much to the fact that the pavilion is essentially built with glass and steel—that is, light materials, compared to the concrete or limestone of any other national pavilion. When selected as this year’s commissioner, Seungduk Kim sought to intervene in the pavilion’s architectural location and history. She was well aware that in 1993, when Nam June Paik shared the Golden Lion award with Hans Haacke, Paik argued with impassioned force for the construction of a national pavilion for Korea. Biennale’s first response to this request was that it was ‘impossible’, as Yongwoo Lee, who collaborated with Paik during the historical moment, accounts in his essay included in the catalogue. The last card that Paik played, and which eventually won South Korea the current site, was, to the surprise of many people today, none other than North Korea. Paik argued that the pavilion would serve both Koreas on cultural terms, at a time when the post-Berlin Wall era had just begun and many conjectured an optimistic future for the divided peninsula. In exchange for the relatively central location of the pavilion, the city of Venice barred the building from obstructing the view onto the Grand Canal located right behind it —hence the current shape and material of the pavilion.
Of course not a single North Korean artist has ever exhibited in the Korean Pavilion, which is why the mirror play in ‘To Breathe: Bottari’ is tragically beautiful and poignant. It pays homage to the misrecognized political motivation back in 1993, while making self-as-other portraits emerge within the very empty signifier of peace and hope. Moreover, the portraits of visitors are not only replicated through mirror reflection but also fractured and multiplied into numerous fragments via the aluminum sheets laid on the floor. As seen in the picture of the Korean Pavilion, the exhibition hall is less a linear mise-en-abÎme than a kaleidoscopic image composed by a dozen visitors whose dismembered images, like tapered needles, effusively crowd the gigantic Bottari. For such a striking visual metaphor to arise in the Korean Pavilion, the personal allegories of the artistic self had to be minimized. The sound installation of the artist’s breathing titled The Weaving Factory (2004 – 2013) is effectively over to the blackout that the artist experienced in New York during Hurricane
Sandy takes on a different epistemological spin in the context of the Korean Pavilion. Isn’t the northern half of the peninsula the darkest part of the world, as apparent in the infamous satellite photograph of Northeast Asia? It is quite a coincidence that Minsuk Cho, the Korean commissioner for next year’s Venice Architecture Biennale, announced that his show would feature commentaries on North Korean architecture as well as South Korean. Such a curatorial direction might evince the reality that the marquee ‘COREA’ inscribed on the pavilion’s facade does not indicate either the South or the North. A more convincing tack, however, is that the South Korean arts can only exist because of the presence of Northern society and culture, and vice versa. The binary of light and darkness never promises the absolute but is always already defined in relative terms. In this sense, the political, social, and cultural path-taking of North Korea in the post-Communist era serves not as a catastrophic exception but as an unavoidable symptom of the unidirectional neoliberal march taken by the rest of the world, as if the anomaly of ‘To Breathe: Bottari’ is symptomatic of the Venice Biennale and the Korean Pavilion.
─ Article from Space Magazine, August 2013, pp.114-120.
이솔 (비평가, 큐레이터)
2013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은 이례적이다. 프랑스 디종 콩소 시움의 공동디렉터인 김승덕 커미셔너와 작가 김수자의 협업으로 개최된 <호흡: 보따리>전은 한국관 내부 표면을 거울과 반투명 필름으로 뒤덮었다. 자르디니 정원에서 보았을 때 건물 전체가 마치 투명한 유리궁전처럼 혹은 사라져가는 신기루처럼 보인다. 한번에 10명 내외의 관람객 입장할 수 있는 규칙 때문에 프리뷰 기간 내내 함상 길게 줄을 서기다린 뒤, 신발을 벗으라는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발로 전시관에 들어서고 나서야 환한 빛의 공간을 맞닥뜨릴 수 있다. 이러한 전시관 한구석에 절대적인 어둠을 경험할 수 있는 '호흡: 정전’이란 제목의 무향실을 설치했다. 여기는 또 한번에 한 명의 관광객만 입장하여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홀로 경험하도록 했다. 이처럼 빛과 어둠의 현상학적인 경험을 끌어내는 이번 전시는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두 가지 이유에서 이래 혹은 변칙이라 할 수 있다. 우선 표면적으로 이 전시는 종종 한국 문화의 특수한 메타포에 글로벌한 감각을 첨가했던 작가의 지난 작업들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리고 나중에 더 다루겠으나, 김수자의 이번 전시는 베니스비엔날레의 다른 국가관 전시들과 견주어 보아도 시각적으로 이례적이다. 하지만 자르디니 공원에 세워진 마지막 국가관으로 미술계의 올림픽인 베니스비엔날레 참여 10회째를 맞이하는 한국관의 문화사적 맥락을 참 고할 때 올해 한국관은 탁월하게 기획된 변칙이며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숨겨진 보물이라 할 수 있다.
먼저 김수자 작업의 맥락은 작가의 여성적 신체 디아스포라 정체성 글로벌한 순례 등의 용어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수자는 프랑스 에콜 데 보자르에서 수학 한 뒤 1980년대 중반부터 해외 미술계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곧이 어 1990년대부터 세계적인 미술가 대열에 합류하여 국제적인 비엔날레와 전시를 따라 전 세계 대도시들을 이동해왔다. 작가의 작업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보따리와 이불을 차용하고 활용한 것으로 이러한 소재들은 바늘을 이용해 천을 꿰매거나 오브제를 천으로 감싸고 다시 튀거나 푸는 행위에 대한 비유로 언급되었다. 좀 더 정 확히 말해 보따리와 이불은 작가 자신의 내면에 새겨진 한국적인 문화의 전통을 표상한다. 잘 알려진 일화에 따르면 작가는 1983년 어머니와 함께 이불을 꿰매던 중 그동안 대학의 미술교육으로 익숙해진 캔버스와 붓을 포기하고 천과 바늘을 작업의 주요 매체로 쓰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따라서 뉴욕의 P.S.1. 리옹의 현대미술관 등의 화이트큐브 안에 설치되거나 광주의 산등성이 혹은 브루클린의 공동묘지 등의 장소 특정성을 띤 야외에 놓이는 것에 별 관계 없이 김수자의 이불과 보따리 작업에 쓰인 비단의 화려한 색상은 문 화적(한국적)이며 젠더적(여성적인 코드가 덧씌워진 아우라를 표 출하며 작가의 신비화된 페르소나 또한 자아낸다. 최근 10여 년 동안 작가는 도쿄, 카이로 라고스, 뉴욕, 상하이 등 여러 도시의 붐비 는 거리 한가운데서 관람객들에게서 등을 돌린 채 움직이지 않고서 있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이를 영상작업으로 남기기도 했다. ‘바늘 여인’(1999~2001: 2005)으로 명명된 이 영상작업 시리즈의 주제는 작가의 모습이 아닌 그녀를 지나치는 행인들의 다양한 초상과 반용들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작가는 자신을 보이지 않는 바늘로서 수많은 도시들의 외면과 이면을 엮는 매체로 상징화한다.
그렇다면 <호흡: 보따리> 전시에서 과연 보따리는 실재하는가? 전시 에서 바늘의 메타포가 지속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한국관이 베니스비엔날레의 본 전시나 다른 국가관과 비교했을 때 어떤 이례적 면모를 보이는지 언급하고자 한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는 <백과사전식 궁전>으로 기획을 맡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1955년에 이탈리아계 미국인 건축가 마리노 아우리티가 착상한 건축 모델에서 전시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아우리티의 건축 모델은 세계의 모든 지식을 담은 상상 속 박물관으로, 물론 실제로 구현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꿈꿨던 유토피아적 환상과 예술 적인 집착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구축한 동시대 미술의 백과사전 에서 역동적인 것 이상으로 구현되었다. 어쩌면 3년 전 지오니기 최한 2010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보여준 것과 지나치게 비슷할 수도 있지만,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는 창조적이며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예술적 사고로 구축된 수많은 소우주로 가득했다. 초상이나 자화상의 이미지는 올해 본 전시의 주요한 축이었고, 이는 지오니가 전시의 유일한 공동큐레이터로 신디 셔먼을 선택한 데서도 살펴볼 수 있다. 지오니는 신디 셔먼을 자신의 전시 세계의 영감으로 삼는다며 그녀에게 아르세날레진의 전시실 하나를 아웃소싱하였다. 신디 셔먼이 기획을 맡은 전시실은 너무나도 당연히 초상화와 사진, 조각의 연출된 성격에 초점을 맞추었고, 정체성은 본질적 속성의 결여로 재현됨을 역설했다. 이미지는 언제나 이미지일 뿐이지만 이미지 재현은 자아를 표현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일 수 있다. 이처럼 예술은 세계를 투명하게 반영하지 않으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걸쳐져 있는 동시에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본 전시와 마찬가지로 올해 비엔날레에 참여한 여러 국가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각각의 세상을 상상 구축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에드슨 치가스가 참여하여 황금사자상을 받은 앙골라 국가관은 길가에 놓여진 정물의 사진을 포스터로 인쇄하여 전시장에 쌓아두고 관람객들이 미리 배포된 폴더에 각자 앙골라에 대한 이미지 컬렉션을 만들 수 있게 했으며, 스테파노스 치보포물로스를 내세운 그리스 국가관은 금융위기에 관한 사유로 대안화폐에 관한 3채널 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하지만 김수자가 참여한 한국관 전시는 이와 상반되게 텅 빈 듯 보이는 세계를 제시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김수자의 전시장은 적어도 관람객이 감상할 수 있는 이미지를 작가가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텅 비어 있는 것이다. 한국관을 찾은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이중으로 구속된 빛과 어둠, 투명함과 불투명함으로 긴장된 육체적 경험을 유발한다. 관람객은 빛으로 이루어진 방에서 전시장 의 기존 벽면 이곳저곳에 설치된 거울에 비친 제 모습과 맞닥뜨린다. 전시장 내벽의 일부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굴절하는데 반투명, 반반 사 소재로 만들어져 외부의 빛 혹은 풍경 또한 비추기 때문이다. 어둠의 방에서는 시청각적 경험을 최소화시키고 선험적 느낌만을 강조한다.
1980년대부터 지속된 여성의 신체와 자아 이미지에 관한 작가의 관심을 고려해볼 때, ‘바늘여인'과 같은 작업들은 신디 셔먼의 '영화 스틸’ 작업과 유사성을 지닌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벽에 걸린 작업 없이 빛으로만 공간을 채운 설치를 선보인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작가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데 이바지한 재현과 전유의 놀이에서 탈피했음을 알린다. 한편 이러한 흐름은 이미 2006년부터 전조를 보였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크리스털 궁을 둘러싼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업에서 보따리는 한국 여성들의 가사노동과 급격한 현대화로 빚어진 불가피한 이동이라는 한국적 뿌리를 상실하며 사물을 감싸는 하나의 제스처로 변환된다. 물론 싸고 묶는 제스처의 대상은 종종 건물 전체가 되기도 한다. 초기 작업에서 보따리가 작가의 신체를 비유했다면 이제 보따리는 텅 빈 기표가 된 것이다. 관람객들은 호흡하는 신체로서 김수자의 작업 안에 들어가 자아이미지를 바라 보게 된다. 라캉식으로 말해보면 관람객들은 나 아닌 것(not-me) 혹은 오류 인식된 자아(meconnaissance)를 마주하는 것이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김수자의 한국관이 선보이는 마술적인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에 있다. 김수자의 작품 세계 깊숙이 자리 잡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은유, 정확히는 동시대 미술의 비유로 부활한 전 근대적인 한국의 전통과 더불어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작가의 인생 발자취에 기반을 둔 탈식민지적 망명에 빗댄 작품 해설은 한국관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소위 한국적인 것과 더불어 한국관이 시각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도 소멸한 것은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의 맥락에 서 강력한 효과를 자아낸다. 이는 특히 바로 옆에 위치한 독일과 프랑스가 베니스비엔날레의 국가관 체제에 내재한 국가주의를 비판하고자 서로 전시장을 맞바꾼 것에 비추어보았을 때 더욱 그러하다. 한국관이 김수자의 작업을 통해 마술적으로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은 프랑스와 독일이 일으킨 일련의 스캔들보다 더 충격적이고 정교한 미적 효과를 자아낸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한국관 기획과 작업은 또 다른 맥락에서 적절하다. 여기서 우리 는 작가의 재치있는 시각적 속임수가 한국관 건물이 유리와 강철로 세워졌기에 가능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콘크리트나 대리 석 등으로 세워진 다른 국가관들에 비해 한국관은 시각적으로 가벼운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김승덕 큐레이터는 커미셔너로 선정된 후 한국관의 건축과 위치, 역사에 관해 언급하는 전시를 기획 하고자 노력했는데, 한국관의 기원은 정확히 20년을 거슬러 올라가 1993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때 백남준은 한스 하케와 더불어 독일 관을 대표해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이미 몇 해 전부터 구상해온 한국관 건립 논의를 베니스 시에 강력히 건의했다. 백남준의 요청은 "불가능하다"라는 차가운 대답으로 돌아왔는데, 한국관 건립에 관해서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던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이 이번 한국관 전시 도록에 기고한 글에서 자세히 기술했다. 지금의 관점 에서는 꽤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지만 한국관 건립 과정에서 백남준이 던진 마지막 승부수는 새로 지어질 한국관이 문화적인 측면에서 남한과 북한 모두를 위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로 한반도 분단체제의 미래에 관해 낙관적인 전망이 범람했고, 그 결과 한국은 이례적으로 뒤늦게 자르디니 공원의 마 지막 국가관을 획득했다. 베니스 시 당국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중심 부에 가까운 지점에 건물을 세우도록 허가하는 대신 건물이 뒤편의 대운하를 가리지 못하도록 했고, 이러한 이유로 한국관 건물의 형태 와 소재는 지금과 같이 가볍고 투명하며 소규모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국관에서 지금까지 북한 작가가 소개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이런 점 역시 <호흡: 보따리>에 쓰인 거울이라는 소재가 비극적인 아름다움과 신랄함을 전달하는 이유가 된다. 김수자의 작업은 한국관 건립이 이뤄진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정치적인 오류 인식을 오마주하며, 평화와 희망이라는 텅 빈 기표 안에서 떠 오르는 타자로서의 자아의 초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더 나아가 관람객의 초상은 벽에 설치된 거울에 반사될 뿐만 아니라 바닥과 천 장에 설치된 알루미늄 패널에 의해서 수없이 많은 파편된 이미지로 복사, 재생된다. 사진으로 기록된 한국관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전시장은 정돈된 모습의 미장아빔(mise-en-abime)이 아닌 좁은 공간을 공유하는 10여 명의 자아들의 만화경 이미지를 성립한다. 관람객들은 텅 빈 보따리 안에 들어가는 순간 수많은 뾰족 바늘이 되어 보따리를 가득 채우는 것이다.
한국관에서 이처럼 충격적인 시각적 은유를 끌어올리기 위해 작가의 자아에 관한 개인적인 은유는 최소화된 것 같다. 작가의 호흡으로 만든 사운드 작업 ‘더 위빙 팩토리 '(2004~2013)는 빛의 전시관에 설치되어 있지만 전시관의 시각적 요소에 사실상 압도되며, 작가가 허리케인 샌디 상륙 기간에 뉴욕에서 겪은 정전을 바탕으로 구축했다는 무반향실은 한국관의 역사적 맥락에서 또 다른 의미를 얻는다. 동북아시아를 촬영한 위성사진 이미지를 통해 잘 알려졌다시피, 한반도의 북쪽 절반은 사실상 전 세계에서 가장 어두컴컴한 부분이 아니 었던가?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로 선정된 조민석이 남한만 아니라 북한 건축에 대한 포섭을 발표한 것은 이런 점에서 꽤 심상치 않은 우연일 것이다. 이런 발상은 한국관에 새겨진 'COREA'라는 푯말이 남한과 북한 어느 한 곳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으로 뒷받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남한의 문화가 한 반도 북쪽의 사회와 예술의 존재를 통해 비로소 지금의 형태를 띠는 것이고 북쪽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것이 더 큰 이유로 작용한다. 빛과 어둠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상대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지난 20년간의 북한의 사회·문화·정치적 행보는 그다지 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한 방향으로 몰려가는 전 지구적 흐름의 한 징후로 작동하는 것 같다. 마치 <호흡: 보따리>의 이례성 또한 베니스비엔날레와 한국관의 징후로 그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처럼.
─ Article from Space Magazine, August 2013, pp.114-120. 번역 박재용
이건수 (월간미술 편집장)
2013
김수자는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984년 파리의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주요 개인전으로 마이애미뮤지엄의 <김수자: 바늘여인>(2012), 영광 원자력발전소 아트프로젝트(2010), 아틀리에 에르메스의 <지-수-화-풍전>(2009), 리히텐슈타인 쿤스트뮤지엄에서 주최한 <뭄바이: 빨래터>(2010), 영국 발틱센터의 <바늘여인>(2009), 브뤼셀 BOZAR의 <로투스: 영의 지점>(2008),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의 크리스탈팰리 스에서의 <호흡: 거울여인>, 베니스 라 페니체극장과 폰다치오네 베비라콰라마 사에서의 <호흡>(2006), 리옹현대미술관, 뒤셀도르프 뮤지움쿤스트팔라스트, 밀라 노PAC에서의 순회전인 <인간의 조건>(2003~04), PS1 현대미술센터와 MoMA의 <바늘여인>(2001), 쿤스트할레 베른의 <김수자>(2001) 등이 있다. 그룹전으로는 베니스의 <아르템포(Artempo)>, <인-파니툼(In-Finitum)>, <움직이는 도시 (Cities on the Move)> 순회전 뿐만 아니라 포츠난비엔날레(2010), 모스크바비엔날레(2009), 베니스비엔날레(2005, 1999), 휘트니비엔날레(2002), 부산비엔날레 (2002), 상파울로비엔날레(1998), 이스탄불비엔날레(1997), 광주비엔날레 (1995, 2000) 등이 있다.
올해로 10번째 전시를 여는 한국관엔 설치작가 김수자가 참여했다. 1999년, 2005년 본전시에 두 차례, 비엔날레 공식 기획전 등 지금까지총 6차례에 걸쳐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작가는 드디어 '예술적 망명의 길을 끝냈다. 1999년 본전시에서 코소보 전쟁 난민들에게 헌정하는 보따리 트럭 작업을 소개했던 작가가 이번 전시에는 한국관 전체를 숨쉬는 보따리로 바꿔 놓았다. 전시 제목은 〈호흡: 보따리 (To Breathe: Bottari)〉.
신발을 벗고 한국관에 들어서면 아무 것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저 빈공간과 그 안을 배회하는 관객들만 보일 뿐이다. 바닥은 거울로, 유리벽은 반투명필름(회절격자필름)으로 뒤덮여져, 텅 빈 공간은 오직 외부의 움직임 때문에 일렁이는 무지개 빛으로만 가득하다. 작은 수정궁이라할까? 관객은 빛의 공간 속에서 작품을 스스로 완성해 간다. 그 공간속을 거니는 동안, 작가의 숨소리를 녹음한 사운드 퍼포먼스 작품 <더 위빙 팩토리(The Weaving Factory)>를 동시에 체험하게 된다.
빛의 궁전속을 한동안 거닐고 난 후 줄을 서서 또 하나의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른바 <호흡: 정전(Black Out)>이라고 하는, “자궁이자 무덤이기도 하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어둠의 공간이다.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흑암만이 가득한 공간속에서 관객들은 조금 전에 체험했던 빛의 잔영을 지워버린다. 빛과 어둠으로 유위(有)와 무위(無爲)의 의미를 존재론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보따리>, <바늘여인>, <실의 궤적> 시리즈 등을 발표하면서 삶과 예술의 직조에 일관된 작품세계를 보여 왔던 작가답게 김수자는 "미국 뉴욕에 머물 당시 허리케인 샐리 때문에 1주일간 전기, 물공 급 같은 것이 멈춰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 경험을 녹일 것"이라고 비엔날레 참여 직전 밝힌 바있다.
"한국관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보따리로 변모시켜, 그동안 집적된 보따리의 개념과 문맥을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다. 보따리 결정판이다. 한국관 전체를 보따리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자연과실 내 공간이 나뉘는 경계지점을 반투명 필름으로 싸보았다. 건물외부의 유리창을 하나의 피부로, 한국관을 내몸으로 제시한 작업이다. 빛의 밝기나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온종일 변화하는 작업이다. 보따리의 싸고 푸는 성격, 빛과소리를 최대한 밀도 높게 전개하였다. 특히 신체적으로 맞닿는 관객의 체험을 유도하려 했다. 빛과 어둠이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호흡: 정전>에서는 내 숨소리가 차단된 곳에서 관객이 자신의 호흡을 마주하는 경험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 빛도 어둠의 일부이며, 어둠 없이 빛이 존재할수 없다. 어둠 속에서 자기 몸만 느끼다가 쏟아지는 빛 가운데로 나와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갖도록 했다. 30년간 작업을 총체적이면서도 가장 비물질화된 환경으로 제시한 것이다. 거대한 보따리로 상징되는 한국관은 인간과 자연, 어둠과 빛, 남과 여, 음과 양의 상호관계가 비물질적으로 구현된 작품이다.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개념 같지만 삶과 죽음, 빛과 어둠이 하나이듯 결국 모두가 연결된 것이 아니겠느냐. 자궁 속에서 접한 어둠, 마지막 숨을 내쉴 때 만나는 어둠, 두 어둠은 결국 빛의 연장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 어둠과 빛, 소리와 정적 등을 체험하며 자신의 인식 체계와 감각 체계를 돌아보고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발적 망명에서 모국으로부터 받은 가장 영예스러운 초대이다. 1999년 한국을 떠나면서 '망명작가’처럼 살았다. 이번 기회에 모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보려고 했다."
이번 한국관 커미셔너인 김승덕(프랑스 르 콩소르시엄 공동디렉터)은 "외관이 유리로 되어 있어 매번 커미셔너를 괴롭혀온 전시 공간의 문제점을 오히려 프로젝트의 중요한 이슈로 삼고 한국관의 구조물에 정면으로 맞서고 도전하는 방법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애당초 작가에게 제시한 한국관의 기준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화이트큐브 콘셉트에서 벗어나 비물질적인 요소로 구성하는 방법. 둘째는 옥상에서 바다가 보이고 나무가 울창한 한국관 주변의 자연적인 요소를 살리는 방법. 자연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안에서 밖을 내다볼수 있는 비물질적인 것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한국관의 특징과 건축구조를 전시의 주요 방향으로 채택하여, 기존의 공간을 변형시키는 대신 한국관 고유의 건축적 특징을 부각시킨 장소특정적 프로젝트로 진행하였다. 전시장의 작품은 작가가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햇빛과 어둠, 숨소리다. 작가에게 까다롭기로 유명한 한국관 건축물 자체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관객에게는 새롭고 초월적인 공간 경험이 되는동시에 스스로 적극적인 퍼포머가 되도록 유도하려 했다. 빛과 어둠, 소리와 정적 등이 극명하게 대비된 조건 속에서 자신들의 감각과 인식을 곤두세우게 될 것이다. 인간과 현대문명 제반조건에 문제를 제기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빛과 색들로 이루어진 순간을 경험하고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여행이 될 것 이다.무언가를 많이 넣거나 빼지 않고 그저 반투명 필름으로 한국관을 보따리처럼 싸서 우리가 늘 보는 빛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체험케하고, 진짜 고요가 무엇인지 느낄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권영빈)의 일원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시인 고은은 "다른 국가관 전시는 자기 주장을 너무 강하게 펼쳐 시끄러웠는데 여기는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작가가 조용히 사라진 것 같은 작업이다. 전시장에서 마치 엄마의 몸, 자궁 속 태아와 같이 스스로가 정화된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중국의 독립 큐레이터 황두는 "빛, 어둠, 명상, 간결함 등이 떠오른다."면서 한국관을 호평했다.
─ Article from Montly Art Magazine, Wolgan Misool, July 2013, Vol. 342, pp. 88-91.
김현진 (일민미술관 학예실장)
2013
2013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이 6월 1일 개막과 함께 일반에 공개됐다. 올해 한국관 전시는 프랑스 현대미술센터 르콩소르시움 공동디렉터인 김승덕이 커미셔너를 맡아 ‘보따리’ 작가로 널리 알려진 김수자의 작품을 전시했다. 김수자는 ‘호흡-보따리’란 제목의 설치작품으로 한국관을 빛과 어둠의 공간으로 나누어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과 주제관, 주요 국가관들의 전시를 따라가 본다.
올해 한국관의 작가와 작업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특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시작 당시 만국박람회의 미술 버전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자르디니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관 모델로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1998년부터 소위 보다 복잡한 경향들의 동시대 미술씬이 강력해지면서 기획력과 방향 제시가 가능한 큐레이터들을 초대하여 특별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헤럴드 제만의 아페르튀토를 시작으로 올해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요 큐레이터들의 특별전들은 지난
십여 년간의 베니스비엔날레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 국제 미술의 향방을 점치는 순간들로 여겨져 왔다.
동시대 미술에 있어 새로운 형식이나 경향들은 이미 포화상태에 달하였고 그만큼 새로운 비전의 제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미술 내부에 새로움의 신화가 공황상태를 맞이한 오늘날, 21세기 동시대 미술 현장을 타개해 나가려는 노력 중에 눈에 띄는 방법론이라면 리서치와 아카이브와 같은 수집과 연구적 태도일 것이다. 이번 베니스비엔날레의 특별전, ‘백과사전적 궁전(the Encyclopedic Palace)’ 역시 리서치를 방법론으로 취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와 현재를 축적하고 재발견하는 방법이자 동시대를 재탄생시키는 과정으로 유효하다. 하지만 리서치와 아카이브적 방법론을 전체화하거나 지극히 일반화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 한국관은 1인의 작가 선택에 집중하던 기존 방식을 지속하면서도, 한계로 여겨져 왔던 전시 공간을 급진적으로 활용하여 비움을 통해 완성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한국관은 90년대 동시대 미술부터 현재를 관통해 김승덕, 김수자 세대의 주관과 고집에 입각한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 큐레이터인 김승덕 씨는 프랑스를 기반으로 90년대부터 왕성한 활동을 보여 왔으며, 작가로 초대된 김수자 씨 역시 뉴욕 기반으로 90년대부터 국제적인 활동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작가로 한국의 전통적인 ‘보따리’에 담긴 여성주의적 역사나 유랑, 보따리 천의 짜임과 색채 등 보따리로부터 함의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소재로 오랜 기간 작업해 왔다.
작가로서 국제적으로 오랜 활동을 한 만큼 이미 김수자 작가에 대한 정보는 보편적으로 알려진 바가 많다. 때문에 새로운 버전의 보따리 오브제나 보따리가 은유적으로 확장된 노마딕한 여정과 풍광을 드러내는 영상 작업이 예측될 만한 상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기획자와 작가는 공간은 비우고 오랫동안 전시 공간으로서의 한국관의 문제나 한계에 대한 논란을 적극적으로 보듬어 앉으면서도 빛이라는 요소를 통해 그 공간을 매우 적극적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 꽉 찬 수집품 박물관의 피로감을 안고 자르디니로 향했을 때 한국관은 잠시 하나의 색다른 명상적 공간을 통해 숨 쉴 자리를 마련해 준다. 이 빛의 공간은 오랜 세월 김수자 작업의 인상을 결정해왔던 다양한 색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보따리 천의 요소나 한국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정서를 절제와 수용 사이에서 아름답게 조율하고 있다. 이 공간은 무엇보다 조도나 날씨 상태에 따라 공간에서 경험되는 빛이 달라지기 때문에, 관람객이 날을 달리해 재차 방문한다면 재현 불가능한 매일의 서로 다른 경험을 가져갈 수 있다. 아마도 비워진 공간 내부로 창을 통해 스며드는 오묘한 빛들은 건물이 전시장으로써 기능하지 못하지만 국가관이라는 거대 서사에서 방문자들을 위한 새로운 ‘집’의 소서사의 의미를 찾게 해준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정서적인 경험은 비규범성을 강력하게 통제된 공간에 패키지화한 백인 남성 큐레이터의 ‘백과사전적 궁전’과는 대조적인 면모라 할 수 있다. 물성을 절제하면서도 명상적 공간으로 관람객을 맞이하는 있는 이 공간은 동아시아 배경을 가진 여성의 유연함과 수용력을 기반으로 완성되고 있으며, 여기서 또한 김수자 작가의 작업에 대한 새로운 향방을 보여주려는 큐레이터의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람객은 빛의 공간 후 암흑으로 가득 찬 작은 방에서 1분간 보내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극적 구성과도 같은 단절로써 전시적 내러티브를 완성하게 된다.
국가 간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글로벌한 사회가 펼쳐져 왔지만 역설적으로 국경의 문제는 곳곳에서 더욱 첨예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니스비엔날레는 국가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로맨스가 허락되는 유일한 영역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거대한 국제 행사라는 점에서 큐레이터들에게 이러한 문제는 늘 어딘가 불편한 동참이다. 때문에 단일한 국가이데올로기를 다원화하고 이상적인 초국가성을 예술적 이상과 함께 추구해 온 수많은 큐레이터들의 노력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자르디니 안에 수용되지 못한 국가들이 베니스 전역에 흩어져 자르디니 국가관들의 패권성을 견제할 뿐 아니라 더 좋은 전시들로 자르디니의 나태함을 대조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올해 주목받은 대부분의 국가관은 자르디니 외부에 존재한다. 한국관 역시 이러한 점에서는 좀 더 다른 기획적 혁신이 요구되기도 한다. 한편 대체로 신선한 전시적 접근보다는 작가 1인의 대표성으로 귀결되는 한국관의 한계는 사실 전시 공간으로써의 적합성이나 그 한계가 늘 도마에 오르는 한국관 내부 공간의 문제로부터 기인하는 점도 크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타개할 근본적인 고민도 함께 필요하다.
─ Article from Arko Webzine Vol.237, 17 June, 2013.
2003
In the art of Korean-born, New York-based Kim Sooja, we see an entire career built upon the notion of the anonymous as a metaphor for the wish to merge with forces and circumstances usually acting against the forthright assertion of self. Kim's art inverts expectations as a way of embracing the world. Her performance of self is at once oppositional and acquiescent, fated and willed. There is a tremendous strength and assertion in her apparently anonymous actions, which are not so much transgressions as they are recognitions of fate. It may well be that the very circumstances Kim addresses, presenting as oppositions, are what the self needs to define itself — in much the same way the whole defines the part. Kim stands alone, unnamed, in her struggle to achieve a consolidated awareness, whose definitions may be seen as Buddhist in their unboundaried flow. In the elaborations of her anonymity, then, Kim presents a sensibility acutely aware of the warring contradictions between her desire for an erasure of self and the kind of resolve necessary to confront the environment she so eloquently, albeit silently, strives against.
When, in the performance A Needle Woman (1999-2001), Kim stands against waves of Japanese passersby on a street in Shibuya, Tokyo, her pose begins as antithesis but becomes, over time, a wordless affirmation of human resilience, even of individual worth, despite the conditions of anonymity she imposes upon herself. In a remarkable transformation of value, her actions quite literally embody the progress of a self increasingly cognizant of its mortal limits — it is as though Kim is mourning death, which is always ahead of its time. Yet the overall thrust of her vision is far from dark or macabre; her art demonstrates a knowing perception of life's circumstances that is by implication assenting, and her engagement with different cultures — Kim has performed A Needle Woman in eight cities throughout the world (in order: Tokyo, Shanghai, Delhi, New York, Mexico City, Cairo, Lagos, and London) — amounts to an affirmation of existence no matter what the environment.
Kim's development as an artist has been steady and assured. Born in 1957 in Taegu, Korea, she studied painting at Hong-Ik University in Seoul, where she completed graduate school in 1984. She spent half a year in France, on a grant from the French government. In 1992-93, Kim came to New York as an artist-in-residence at the contemporary art center P.S. 1. Deciding on cultural exile, Kim again returned to New York in 1998; this move marked her permanent stay in America, where she has received more and more recognition, becoming an artist of international reputation. Although Kim did not stay long as a painter, she remains interested in investigating the issue of surface, an activity she has continued throughout her career. Indeed, Kim comments, "This pursuit [of the surface], along with my will towards artistic freedom, enabled me to open up new horizons in my art." The change in expression came quickly to Kim; as early as 1983, while still in graduate school, she first "discovered the methodology of sewing as a means of questioning art and life while I was sewing a traditional bedspread in 1983." Kim made the decision to use fabric in daily life as a new kind of canvas. But the act of sewing was also personal, being tied to mourning: "My first attempt at sewing used clothes was done with the remains of my grandmother's clothing, left behind after her death a year before."
Kim began as a painter who questioned the surface of her canvas, seeing it as "a wall and barrier that painters wish to overcome." Over the course of a decade, she moved into new developments incorporating different media and strategies — videos and performances — in which the emphasis shifted from a treatment of surface to her now recognized language of wrapped used clothes and bedding: an image bundle. The changes in her art revolved around an increasingly emblematic use of materials; when asked why she makes use of bedcovers, Kim replies: "The bedcover is a symbolic site. It is where we are born, where we rest and love, where we dream and suffer and finally die. It keeps memories of the body alive, which result in another dimension." Now that she is concentrating on the world of performance and video, Kim has turned toward an increasingly allegorical reading of her environment, in which her life and actions function as an existence representative of ours. The human condition is taken up as essentially anonymous because Kim comprehends that all of us share the recognition that our actions reveal a deep-seated isolation, as well as an unconscious awareness that behavior takes on paradigmatic meaning in the face of our limited span of time. In Kim's art our understanding of death becomes enlightened by her mediation as an individual toward her audience; her actions resonate because they enter into an existential dialogue with their viewers, replete with the high moral seriousness the presence of death inevitably calls to mind.
A Needle Woman enacts the isolation we all feel by offering a resonant silence, contemplational in nature, in the midst of the crowd. Kim, who is not a practicing Buddhist, nevertheless sees Zen Buddhist affinities in her recent performances. Her art is suggestive of meditational mind in the encompassing awareness of its practice. She disavows her sense of herself in favor of a stance that heals and binds by taking in the energy, or noise, of the world. As Kim herself has said, "After a decade of sewing practice [since 1983], I came to see myself as a needle weaving the fabric of nature."
The artist intends to bring together disparate parts of the real as an act of selflessness represented by the precise metaphor of needle and silk. Her silent, even prayerful, interactions with the amused, bemused crowds in eight cities show a tenacity of purpose as well as a self deliberately obliterated so as to take in, out of harm's way, the various responses her stillness and silence create. Video witnesses her activities, creating an archive of interactions. Interestingly, Kim sees the use of video, which documents her activities in different places, metaphorically as well: "Another encounter occurs when audiences see the video resulting from my performance. My body functions as a barometer, as a needle connecting people from a different time and space." She means to emphasize the ties that bind people, by extinguishing, for the duration of the performance, the illusion that the self is primary.
Kim's epic eleven-day journey Cities on the Move — 2727 Kilometers Bottari Truck (November 1997) retraced sites in her memory; she traveled to different cities and villages where she used to live, carrying colorful bottari on a flat-bed truck. Kim considers the performance "a social sculpture, loaded with memory and history, which locates and then equalizes physical and mental space." The video, witnessing Kim's transit in Korea's Taebek Mountains, movingly and also literally presents the baggage she carries with her as she seeks to face her past. The performance presents her travels as a metaphor for the narrative of our existence; as Kim states in a catalogue accompanying the piece, "Bottari Truck is a processing object throughout space and time/locating and dislocating ourselves to the place/where we come from/and where we are going to." The figurative language engages the viewer on a metaphysical plane, demanding that we read her journey as emblematic of our own. Kim is particularly strong when her imagery is offered as a symbolic representation of awareness; the notion of moving along a path resonates in sympathy with the inevitable determination that the path will end when the person is gone. Asked in the catalogue to comment on unrealized projects, Kim replies, "I contain my projects in my body which I find as my studio, and I don't try to remember or describe them all." The statement returns us to the idea that Kim holds within her body a wellspring of creativity, which acts as the counterpart to the anonymous public self she so carefully presents. If it is true that we never see her face in her performance videos, it is because her anonymity is large enough to incorporate whatever occurs in the world around her.
As one follows the steps left by Kim in her sojourns of memory, it becomes clear that the implications of her path — itself a Buddhist term — suggest deep affinities with Buddhism. Kim comments that her "attitude and way of looking are similar to that of Buddhists." At the same time, she reserves the right to remain "an independent individual, who looks at the world in one's own way and who recognizes that one's own path can sometimes meet with a broad stream of thought." In the isolation of her artwork, Kim seeks out a generalized correspondence with the world, but on her own terms and from her own experience. Her allegories are successful because they originate, despite seeming otherwise, from a highly individuated sense of purpose. In a way, Kim's anonymity is a subterfuge, a manner of relating a sense of self whose boundaries are so extended as to do away with the notions of limit entirely. The odd thing about Kim's isolation is that it in fact completely engages with her audience; just as she offers solitude as a way of emphasizing universal implications, so she underscores her autonomy as a way of proceeding toward a wide involvement with others. Indeed, her lonely actions appear to call for help — in the video A Beggar Woman, done in Lagos in 2001, she sits crosslegged, her palm extended for alms. Someone gives her some change, and the muteness of the scene intensifies the artist's vulnerability. We read the interaction as evidence of need everywhere; in her dramatization of want, Kim reduces herself — and us as well — to a egoless composite of desires, an enactment of utter poverty.
As a result, Kim objectifies our intuitive knowledge in a language of actions stripped to the bare essence of their intent. There are of course feminist implications to her devotions, accomplished with a purposeful humility. In a remarkable performance, entitled A Needle Woman-Kitakyushu, done in 1999 in Japan, Kim stretched out on top of a limestone mountain, her curving body echoing the stony rise. The video confirms the artist's procedure, whereby her interaction with her surroundings envelops them in a unified will. The suggestion of the earth mother comes into play; there is a sense of limitless identification with nature. At the same time, some of the other performances have political implications, as suggested by A Beggar Woman or A Homeless Woman — Delhi (2000), in which Kim lies down on the sidewalk of a busy street. The lack of a direct message advocating social change does not affect the two pieces, which render suffering as intrinsic to our condition. Indeed, the indirectness of Kim's premises actually enhances her expression, which feels inevitable in light of its universality.
In the recent installation A Mirror Woman (2002), Kim hung used bedcovers across the width of the Peter Blum Gallery in New York City. She also placed mirrored surfaces on both of the side walls, reflecting the path of visitors as they made their way through a labyrinth of colorful cloth. There was a sound element as well — the chants of Tibetan monks accompanied the exhibition. Overall, the experience of the piece was otherworldly to the point of being disturbing. Perhaps, in the largest sense, Kim's interventions are indeed disturbing, for they remind us of our mortality. In Epitaph (2002), Kim waves a bedcover in the midst of a cemetery in Greenpoint, Brooklyn; it is a moment that merges life with its apparent opponent, death. As such, the work suggests that the interpretation between existence and nonbeing may be forced; sometimes, a seeming dichotomy is actually two surfaces of a single idea. Kim's great strength as an artist is to find the moment wherein passion and calm, action and passivity, merge.
She would have us understand that art is the great equalizer of false dualities; our mind is a place capable of including most everything. In the generosity of her vision, Kim reiterates the great truths of the unknown, what lies above and beyond our lives. She takes what we implicitly know and bestows upon it a public grace. As she grows larger in her art, so do we, so completely are we included in her generous expanse of her imagination.
— From Art AsiaPacific, Fall 2003
2003
한국 미술에 있어 1980년대 중·후반은 종래의 모더니즘 미학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좀더 넓고 개방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정치·사회적으로 민주화에 대한 열기와 올림픽을 계기로 한 국제화가 촉발됨으로써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하던 폐쇄적 사유방식과 획일적 가치관이 점진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시기는 기존의 인습과 새로운 사고를 위한 열정이 혼융된 하나의 과도적 시기이기도 하였다.
형식주의 모더니즘을 거부하는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 은 한편으로는 민족적 현실과 결부되어 ‘민중미술’로 대표되는 사회적 리얼리즘으로, 형식주의를 비판적으로 계승코자 한 입장에서는 새로운 형상성의 추구와 복합 매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작품이 놓이는 공간이나 환경과의 상관성 속에서 작품을 재문맥화하는 설치미술이나 장소성이 강조된 새 로운 양식으로 확산되어 나타나기도 하였다.
서구 포스트모던에 대한 깊은 이해는 부족하였지만, 1980년대 중·후반은 모더니즘의 미학이 가지는 제반 문제점들이 폭넓게 검증되기 시작하면서, 탈(脫)모던의 양상들이 매우 복잡하게 대두되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와 달리 대규모의 집단활동보다는 다양한 소그룹 활동이 활성화되었고, 더 나아가 독특한 개인 활동들을 중심으 로 개별성과 다원성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획일적 거대 담론보다는 작은 이야기들과 소수자들의 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서구 문화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 전통과 그 언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전통을 소재로 한 작업들과 개인의 체험을 기반으로 한 작업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과거에 비해 역량 있는 많은 여성 작가들 이 등장하게 되는데, 종래의 남성 중심의 미술계 구도와는 다른 큰 변화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자는 이 시기에 등장한 매우 출중한 여성 작가 중 하나이다. 그녀는 현재 각종 국제비엔날레 등을 통해 확고한 국제적 인지도를 획득한 작가인데, 그녀의 초기 작업은 현재의 작 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많은 잠재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작업은 이불보나 보자기와 같은 천을 사용하며, 바느질을 기본적인 기법으로 사용한다. 천을 조각보처럼 꿰매어 이어 붙이기도 하고 천으로 오브제를 감싸기도 한다. 개울가에서 천을 빨아 널어놓기도 하고, 천을 카페의 탁자보로 사용하여 작품을 일상 공간 속에서 실재적 기능과 조형적 요소로 작동시키기도 한다. 또 천을 보따리로 만들어 전시장에 늘어놓기도 하고, 보따리들을 트럭에 싣고 자신이 태어나고 성장했던 지역들을 옮겨 다니기도 한다. 이외에도 그녀는 문화권이 다른 새로운 지역들을 여행하며, 여행지를 소재로 한 다양한 유목적 사유를 구현하는 비디오 작업을 수행하기도한다.
그녀의〈땅과 하늘〉(1984)은 초기작으로 당시의 조형 적 관심사를 잘 구현해 내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그 녀의 작품은 형식적으로는 전통 규방문화의 산물인 조각보의 현대적 변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금박의 전통문양을 곁들인 원색의 비단 천과 같은 이불보 등의 천 조각들을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꿰매어 가는 공정은 동양 여성의 감수성을 조형화해 내는 적절한 코드로 작용한다. 또한 천이 가지는 가변성은 그것이 보자기로 사용될 때 증폭되며, 보자기는 비밀스러움과 내포성, 이동성 그리고 여인의 애환 등과 같은 복합적 의미를 함의토록 한다. 또한 바느질은 다양한 이미지들을 연결시키는 재문맥화 행위이며, 또한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애환이며, 애환을 구성하는 내러티브 만들기이기도 하다. 천들이 여인의 삶의 숱한 편린이라면 바느질은 그 편린들을 모았다 흩어버리는 사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녀의 바느질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여정이며, 한 곳에 정착하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유목적 사유의 조형화이다.
─ 『문화예술』 12월호, 2003, pp. 100-101.
Lilly Wei (Independent Curator)
2002
New York-based since 1998, Kim Sooja here exhibited a new installation titled A Mirror Woman. The artist, who was much praised last year for her riveting video A Needle Woman, seen at P.S.1 and later at this year's Whitney Biennial, has said that in her native Korea, her work is sometimes not seen as art, since it so closely approximates the look of daily life. For this show, she presented the best-looking room of laundry you're ever likely to see: gaily colored silk bedspreads, 14 rows deep, pinned to clothes-lines strung across the gallery, whose walls had been mirrored from floor to ceiling for the occasion. The coverlets, elaborately embroidered with phoenixes, dragons, fruits and flowers — symbols of long life and fertility — were strikingly festive, with their high-pitched color schemes of fuchsia, emerald green, sour lime, royal blue, golden yellow, ripe plum, hot pink and cherry red. The mirrors extended the installation in endless, repetitive sequences.
Traditionally given as gifts to newly married couples, these salvaged wedding bedspreads are domestic objects that can be folded, wrapped and carried away, if need be; indeed, like tents, these covers can create a dwelling, an emblematic compound of sorts, in which women perform centuries-old, conventional domestic tasks, like hanging out the wash, attending to fabrics they have woven and embellished in considered acts of art and meditation. "A fundamental site," the artist says, "these bedcovers refer to marriage beds and shrouds, birth and death, love and pain, hope and despair, sleep and awakenings, cycles of incarnation and dreams, a delicate but comprehensive view of a woman's world."
Hung, with the exception of the first and the last two rows, in pairs, the bedcovers were strategically positioned. Entering the installation was a little like entering a painting. As you negotiated the space, which resembled a maze, you had to choose your route, your subsequent progress gently controlled in a ritual of passage both profoundly symbolic and quite ordinary. Small unobtrusive ceiling fans set the silk aflutter as if it were animated by chi, the breath of life. Encompassed by planes of color, you were soothed by the faint hum of recorded Tibetan mantras interrupted by the tinkling of bells — a spiritual version of pillow talk, perhaps. This was a comely, courteous kind of feminism, from an Asian Buddhist perspective seen lightly, self-consciously, through artfully arrayed mirrors.
— From Art in America, September 2002:
Lilly Wei is a New York-based independent curator, essayist and critic who writes for several publications in the United States and abroad. A frequent contributor to Art in America, she is also a contributing editor at ARTnews and Art Asia Pacific.
2001
This first solo New York exhibition by Korean artist Kim Sooja featured recent videos, but her work is really a mixture of video, performance, sculpture (involving Kim's own body) and private acts of meditation in outdoor public spaces. The centerpiece was A Needle Woman (1999 — 2001), for which Kim traveled to eight major population centers — Cairo, Delhi, Lagos, London, Mexico City, New York, Shanghai and Tokyo — only to stand motionless, with her back to the camera, on downtown thoroughfares packed with pedestrians and sundry vehicles. At P.S.1, the silent videos of these actions, taken from a stationary camera several yards behind Kim, were projected on the walls of one large hall. Wearing a simple gray dress, Kim stands amid human motion and commotion, as people surge toward her and around her. Sometimes she seems about to be overwhelmed, perhaps even struck or otherwise menaced, and you fear for her safety. At other times, she is a strong enigmatic presence who simply waits in one place while everyone else goes every which way.
Always visually lush, these videos tap into the uneasy relationship between the individual and mass society, the dislocation of being a foreigner engulfed by another culture, and questions of how to maintain one's own equilibrium in a swirling, destabilizing world. Even though you never see Kim's facial expression, it is clear that her actions required courage and intense inner vitality. Throughout everything, she exudes a patient acceptance and a spiritual calm which is deeply affecting. Also part of the performance is the life of the streets — i.e., hundreds of anonymous people striding, pedaling or driving toward Kim, then disappearing from view: on-the-go New Yorkers too preoccupied to notice, multiethnic Londoners yammering into cell phones, Shanghai residents stealing surreptitious glances.
What's particularly impressive is how such minimal actions on Kim's part result in provocative portraits of the different cities. In Tokyo, Kim is so completely ignored that she could be a ghost, and you can't help but think how the Korean minority in Japan has long suffered from cultural invisibility and discrimination. Just the opposite is Lagos, where people cluster around her with a lively curiosity.
Also included in the show were videos of related actions, sometimes projected and sometimes on monitors. Lying on her side in Cairo while surrounded by staring men and young boys, Kim becomes a female "other" par excellence, her unobtrusive yet bewildering behavior confounding the onlookers. As she stands on the bank of the Yamuna River in Delhi, the river lows from left to right, its surface festooned with slow-moving flotsam. This is garbage moving past, but you think of memories passing, of wishes and losses, the dazzling scraps of a life. Kim Sooja's unassuming actions really draw you in with their complex and evocative power.
— From Art in America, December 2001.
Ken Johnson (Art Critic for The New York Times and Art in America)
2001
An art form of chameleonesque elasticity, video can adapt to a bewildering variety of formats, from tiny television monitors to whole-wall, wraparound projections. It can mimic narrative approaches from real world documentation to surrealistic montage to Hollywood-style fantasy, and it can readily absorb the colors and patterns of digital abstraction.
Still, as the works of Kim Sooja demonstrate in "A Needle Woman", on view at P.S. 1, one of video's most effective uses in the gallery is the creation of rectangular pictures on the wall — like old-fashioned photographs or paintings, but with moving parts.
Ms. Kim, who was born in South Korea in 1957 and moved to New York in 1998, uses video with bare bones directness yet uncommon elegance to document her quietly provocative performances. In each of her works, the artist stands, sits or lies very still with her back to the camera while the world around her rushes by. The best have a surprising emotional impact.
In the main installation, eight projections show Ms. Kim standing on busy sidewalks in different cities: New York, Cairo, Tokyo, London, Mexico City, New Delhi, Shanghai and Lagos. Pedestrians hurry by while this enigmatic, unprepossessing figure with a long black ponytail stands like a statue, a motionless stone in a river of humanity.
Most people ignore her; some glance at her quizzically; some stop and stare or take pictures. In Lagos, mischievous children study her as though considering what they might do to get a rise out of her.
The tension between the colorful, all-over busyness of the crowd and the stillness of the central figure makes these works captivating pictorially and as a real-time narratives.
In addition, the still woman has a mythic and curiously melancholy presence. She might be the lost soul of globalized modernity.
Two other large projections in other galleries shift the setting from city to country. In one, we look down from a slightly perspective onto the artist, who stands with her back to us facing a glassy, slowly flowing river. Spatially this is the most interesting of Ms. Kim's works because the reflective surface of the river appears at first to be far away; then you realize it is almost at the artist's feet. The collapse of distance is breathtaking.
In the other video, the artist reclines on her side on the rocky summit of a hill holding still as clouds drift slowly by. Both videos have a soothing, meditative effect.
The image of the lone artist facing cosmic spaces calls to mind the lone wanderers that Casper David Friedrich painted, and video adds the dimension of time. Just as the protagonist in the video contemplates the flow of time in nature, viewers in the gallery contemplate the flow of time not only as represented in the video by flowing water or shifting clouds, but also in the real-time flow of the video itself. And again, as in the artist-in-the-madding-crowd videos, the centered figure embodies an inspirational equanimity of spirit in the face of what must lead, after all, to death.
Ms. Kim goes wrong in a piece called "A Beggar Woman" that she performed in Nigeria. At P.S. 1 a video monitor shows her sitting cross-legged on a patch of public ground holding out one hand as if begging for money. Some people put money into her hand; one man steals money out of her hand. While the image of the beggar is not without resonance and the events captured by the camera are not without interest, the element of deception is troubling. Unlike the other works, in which the artist's enigmatic presence casts no judgment on the crowd, this one shines a light of moral inquisition on passerby, implicitly questioning their relationship to people in need; yet the artist herself is behaving with an ethically questionable duplicity.
One wonders where Ms. Kim might go from here. Can — or should — she venture beyond this one idea of the motionless, anonymous woman in tension with worldly movement? Might new performance ideas lead to new formal possibilities? Repeated too often, the performance of motionlessness could start to seem like a gimmick, but who knows? Maybe it could be extended and deepened through ritualistic repetition into a powerfully spiritual enterprise.
— From The New York Times - Friday September 7, 2001.
2000
Soo Ja Kim (Korea, 1957) first got out there in Europe at Manifesta 1 in Rotterdam in 1995. Since then people have gotten used to her installations made up of sheets and blankets laid out on the floor or rolled up into bundles. Seen at Venice last year and the Lyon Biennale this summer, these somber metaphors provoke reflection on the body and its finalities (the sheet as envelope wrapping a newborn child, lovers, a corpse).
But Soo's A Needle Woman represents a singular achievement. This video installation presented at the InterCommunication Center (ICC) in Tokyo is the finished version; an earlier and less worked-out one was shown at Basel art fair in June 1999. The theme is our relationship to space and time, treated here with great subtlety. On six screens laid out in a rectangle, the artist shows herself filmed from behind, wearing a long black dress and set in the middle of urban and natural landscapes: standing in the middle of busy streets in New York, Delhi, Shanghai and Tokyo, stretched out on a rock by herself in Kitakyushu in Japan; and finally standing again, and again alone, by the Jamuna river in India. The needle in the piece's title is a reference to that gender-specific tool but also, and more importantly, to the compass needle evoked by her immobile position, this being particularly striking in the street scenes where passers by bustle all around her.
The initial impact of A Needle Woman is very powerful. The viewer is struck by the image of her solitary body stationed amid people and things moving all about her, highlighted and amplified by the artist's completely rigid pose and the silent projection. It brings to mind a question which is never answered: why this isolated body, torn away from all contingency, from its earthly attachments? Then there is the powerful process of identification that this piece sets off in the viewer. This body standing proud in stubborn self-affirmation despite the power of the crowd or of nature, has to be me. A third strong point is the simultaneous use of two kinds of time. The street scenes are infused with humanity's time, the stuff of active lives, a temporality driven by doing.
The two nature sequences, in contrast, are governed by a different kind of time, a temporality where we are torn out of our common condition as individuals in which activity alienates us. The river as a reference to a Heraclitus's metaphor, and the rock with its extreme mineral hardness — these images take their distance from all too human time and instead opt for the rhythm of the earth and the cosmos. Soo's prone position on the rocks, in opposition to her standing station, evokes rest and contemplation, a state of contained tension in which human beings, confronted with that which is beyond them, relearn their own measure. It may make us think of the languid Buddha, the parinirvana, observing the world and Creation. An earlier video, Sewing into Walking (1997), shows a street scene in Istanbul and suggests the adoption of the simplest view one can have of things: simply noting them. This sequence can also be read by weighing, on the one hand, the reality of the world, with its density and rhythms far beyond human understanding, and on the other hand our own position as we search eternally for fusion and harmony. Speaking of A Needle Woman, the curator of the ICC exhibition, Keiji Nakamura, summed it up perfectly: "existential minimalism".
Harald Szeeman (Independent Curator)
2000
There are words for activities — for existential doing — that always trigger a forceful shift into the visual: 'sew', 'spread', 'fold', 'wrap', 'assemble', 'tie'. These apply to working with brightly colored traditional fabrics used for bedcovers. These are also the underlying theater for birth and death, one that each and every one of us regards as our own place. And when we store or move on, each of us ties up our own bundle, our own bottario (is there such an Italian word for bundle?). Kim Sooja uses this richly decorated fabric as part of an originally imagistic, now always spatial and environmental utterance. Through the quite present and simultaneously distanced engagement of cloth, she challenges us to reflection on our most basic conduct: consciousness of the ephemera of our existence, of enjoying the moment, of change, migration, resettlement, adventure, suffering, of having to leave behind the familiar.
She masterfully sets her fabrics, rich in memory and narrative, into the situation of the moment, as zones of beauty and affecting associations. With a grace that knows ever so much.
— From Welt am Sonntag newspaper, Hamburg, 2000
1999
Kim Soo-Ja's art is either some of the most humble, open, context-sensitive work that exists, or else some of the most self-consistent, implacable, and inner-directed: take your pick.
First approximation: Kim makes no objects, neither builds nor constructs, transforms nothing. She simply takes some ordinary quotidian things, namely pieces of used fabric, primarily colorful embroidered Korean bedcovers, moves them around, and places them into situations. Although these rectangles of fabric are juxtaposed with sites to which they may be alien, they neither hide the site, interfere with it, nor contest it: perhaps it would be most accurate to say they assay it. The site shows the cloth and the cloth shows the site. Nothing is ever denied. It's not that there is a "work" that can be installed in the space, and then reinstalled differently or similarly somewhere else. There is a supply of materials which the artists carries from place to place, and which she will dispose differently or similarly, depending on her perception of what is already there, a perception that may take into account aesthetic, architectural, functional, social, or any other noticeable factors.
Second approximation: the work is self-consistent, for instance, in regard to precisely the question of materials. And isn't it interesting that, in English, the word "material" means both matter or substance, generally, and cloth, fabric in particular, as though cloth were a natural synecdoche for matter. Kim is, so to speak, married to her fabric. Yes, she uses other media from time to time (video, recorded sound), but only insofar as she can deal with them as not-material. Whatever it is she's going to articulate, she's got to do it through those same means. As for implacability, these humble textiles are really loud, strident. Just as their bright colors clash among themselves, they cut against the grain of the situations in which they are placed, producing a distinct tension. For all the work's sensitivity to its varying situations, in another way what it is asserting is just the opposite, the importance of having a project that can be developed, unfolded, in as many circumstances as possible, unattached to any one of them. Just bundle up your stuff and move on. No nostalgia, no regrets, just self-containment. When I asked her, recently, about the studio she'd found in New York, having moved here at the beginning of the new year, she shrugged. "Well, since I'm not making things anymore, it's more of a symbolic studio..." And when asked by curator Hans-Ulrich Obrist to comment about her unrealized projects, she replied, "I contain my projects in my body which I find as my studio, and I don't try to remember or describe them all." A videotape Kim showed in Cities on the Move, the exhibition Obrist and Hou Hanru organized for the Secession in Vienna in 1997, and which I saw in its reduced version at P.S. 1 in New York the next year, showed the artist sitting atop a load of bright cloth bundles strapped to a truck traveling the highways of Korea: a scenario of nomadism, of endless movement, certainly, but because the camera filming it was mounted on a vehicle following Kim's truck at a constant distance, a view of immobility, of constancy as well. The artist remains as she is, allowing the landscape to move around her.
Kim, born in 1957 in Taegu, Korea, was educated both in Korea and at the Ecole des Beaux-Arts in Paris (1984-85). In France, she undoubtedly became aware of the Supports / Surfaces artists, whose analysis of painting into material components, including fabric, is echoed in her own early work. (Patrick Saytour, in particular, used readymade printed fabrics with minimal painterly intervention in ways that anticipate aspects of Kim's work.) From her years in Paris through the end of the decade, Kim's work consisted of "combine paintings", as one Korean critic called them, echoing Robert Rauschenberg's usage. In them, rectangles of differently colored and patterned textiles were roughly sewn together, and used as surfaces for drawing and painting. These works, which were usually not rectangular in format but rather cruciform, T-shaped, or in some other way irregular yet rectilinear, were hung unstretched.
In 1989, Kim began using cloth in a more sculptural way, as wrapping or sometimes as stuffing for mundane objects. With these works, the parallels with Supports / Surfaces began to diminish, while those with Arte Povera began to increase — most obviously, with Michelangelo Pistoletto's works incorporating rags. She began giving all these works the same title, Deductive Object. (An echo, perhaps, of Pistoletto's Minus-Objects?) Yet the reiterated title masks the diversity in the way the objects were made, at least from 1992 on. In some, the cloth functioned essentially as color applied to an object; these works are still indebted to the Supports / Surfaces-inflected analysis of painting (especially since the objects, among them window frames, wheels, and so on, could often easily be seen as stand-ins for the idea of stretcher bars). But in others, cloths were simply draped across objects. For instance, a Deductive Object shown in 1992 at P.S. 1 in New York, where Kim was in the visiting artists' studio program, consisted of a chair whose legs were wrapped with cloth, as with the earlier Deductive Objects, but whose seat and back were simply loosely draped with a single sheet of gaudy pink and gold fabric. It was at this time, too, that Kim sometimes began showing her cloths tied up in large bundles.
These bundles, I think, are the key to everything Kim has done since. For one thing, they definitively withdrew her use of textiles from an essentially pictorial notion of them as surfaces upon which something would be visible; in the bundles, it is more important that something is contained, that is, subtracted from the realm of the visible. They speak to the notion of potential more than to that of accomplishment, of departure more than arrival, storage rather than use, and of the body and its obscurity rather than the field of vision and its lucidity. "The human body is the most complicated bundle," as Kim says.
Kim began with an understanding of fabric as surface which developed into a treatment of it as object, and the bundles take their beginning within the field of objects, certainly, but do not end up there, and I would question whether Kim's continued use of the title Deductive Object is really justified as she is now working with situations more than with objects. Perhaps, like Lygia Clark in her last phase, it would be better for Kim to speak of "propositions" (as long as it is understood that Kim's work is not burdened with the therapeutic pretensions behind Clark's). When she unbundles her cloths and, for instance, lays them out on the tables of a museum café, as she has, for instance, at the Boymans van Beuningen in Rotterdam, or at the Setagayara Art Museum in Tokyo (for the exhibitions Manifesta I, 1996, and De-Genderism, 1997, respectively), she is hardly presenting an object in anything like the usual sense. She is decorating a space by overloading it with color, and she is displacing assumed distinctions between the realms of art and everyday life (and not necessarily in the sense of relaxing those relations: I assume that a common reaction among viewer / diners at these museums must have been a heightened self-consciousness about the act of consuming drinks and snacks, since a residual quantum of "respect" for art would have led them to be more than ordinarily careful about soiling the cloths — a care, which could well have resulted in the opposite effect, a clumsiness leading to even more spills than usual.) And not only between art and everyday life, but within different orders of everyday life: if your mother brought you up not to eat in bed, or at least to be a little embarrassed by it, then the idea that you are eating on what is in fact a bedspread and not a tablecloth may induce peculiar ruminations about the connections between what goes on in bed and what goes on at table, and even about the mixing of the various sorts of stains that can come to cloth in the two different situations.
Not only does Kim's work heighten one's sense of the tensions between art and life, and between one order of quotidian activity and another, it can heighten the tensions between one work of art and another, as I came to understand when she participated in Ceremonial, a group show I organized in 1996 at the non-profit exhibition space Apex Art in New York. Her work for the exhibition was a Deductive Object consisting of a single bright-green fringed bedspread on the floor; with the traces of its having been folded into a small square visible, it was something like a verdant landscape with a cartographer's grid superimposed on it. A striking landscape, but not a welcoming one: I had the damnedest time situating the other works so that they did not clash with its garish hue. By the time I'd figured out how to do that, I'd realized that this work, which ought to have been unrecognizable as an art work except by its context, was actually, so to speak, forcing the other works to react to it, and thereby imposing its own identity on the entire exhibition. Later on, when I gave a lecture about the show and heard myself saying that, basically, the show's subject was "folds and loose threads," I realized that I was implicitly equating the show with this one work.
"That green as the colour of a tablecloth has this, red that effect, does not allow us to draw any conclusions as to their effect in a picture," as Wittgenstein observed in his notations "On Colour". The point of Wittgenstein's remark depends on the dichotomy between the way color functions in art work and in daily life, a presumption that is somewhat surprising coming from a man who is known to have been fanatically sensitive to the aesthetics of ordinary living as expressed in, for example, architecture. Kim's humble / implacable, sensitive / detached, gaudy / austere, mundane / extravagant work reminds us that art may not be so much a separate realm as a way of posing questions to any realm in which it may occur.
— From Art/Text 65, May - July 1999